아침 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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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의 작품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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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 1집 (1971年)

친구

아하 누가 그렇게

바람과 나

저 부는 바람

꽃 피우는 아이

아침 이슬

그날

종이연

눈길(연주곡)

김민기 전집 1 (1993年)

가을편지

내 나라 내 겨레

두리번 거린다

꽃 피우는 아이

아침 이슬(연주곡)

아침 이슬

잃어버린 말

아름다운 사람

그날

친구

잘가오

Morgentau

김민기 전집 2 (1993年)

새벽길

나비

혼혈아(종이연)

그사이

고향 가는 길

철망 앞에서

눈산

차돌 이내몸

아무도 아무데도

바다

눈길(연주곡)

김민기 전집 3 (1993年)

상록수

기지촌

가뭄

식구생각

서울로 가는 길

늙은 군인의 노래

강변에서

주여, 이제는 여기에

소금땀 흘리흘리

밤뱃놀이

김민기 전집 4 (1993年)

봉우리

아하 누가 그렇게

백구

작은 연못(연주곡)

날개만 있다면

작은 연못

인형

고무줄 놀이

천리길

아침(연주곡)

이외에 나무위키에 등재된 김민기의 작품들(주로 희곡계열)

지하철 1호선

공장의 불빛

이 세상 어딘가에

소리굿 아구

기울임체로 쓰여진 작품은 2004년 'Past life of 김민기' 에 수록된 작품입니다.

1. 개요2. 가사3. 금지곡 선정 논란4. Morgentau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70~80년대를 살았다면 모를 수가 없는, 한 시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명곡.

1971년 김민기가 작사, 작곡한 대표적인 민중가요. 김민기의 1971년 1집 앨범에 수록되었으며, 같은 해 동일한 곡을 김민기가 편곡하여 양희은이 부른 아침 이슬이 대중들에게 더 유명하다.

경상대학교 인문대학 노래패 ‘아침이슬’이 이 곡의 제목에서 따왔다. 이후 명칭이 바뀔 때도 가수 양희은의 이름을 따 ‘희은’이라는 명칭으로 현재까지 활동중이다.

2. 가사[편집]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의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3. 금지곡 선정 논란[편집]

1975년 유신 정부의 긴급 조치 9호에 의해 금지곡에 선정된 것으로 유명하다. 긴급 조치 9호는 약 2천여 곡의 노래들을 사회 통념 위반, 근로 풍토 저하 따위의 이유로 금지곡에 선정했는데, 유일하게 아침 이슬만큼은 금지곡 선정 근거가 없었다. 이후 세간에 알려진 아침 이슬의 금지곡 선정 이유는 '태양이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른다'는 가사가 불순하다라는 이유이다. 왜 하필이면, '불길하게 묘지 위에 떠오르냐?' 그것 때문에 금지곡으로 지정당했다는 것이다. 헌데 이 노래가 처음 발표된 1971년에는 아름다운 노랫말로 '건전가요 서울시문화상'을 수상했다는 것이 함정. 그럼 태양이 붉게 떠오르지 퍼렇게 공중제비라도 돈다는 건가

물론 해석하기에 따라서 '묘지는 당시 민주 항쟁으로 죽어간 이들을 뜻하고 그 위에 떠오르는 태양은 일출의 이미지, 즉 새로운 아침, 새 시대, 새 희망을 뜻한다'거나, 보다 과격하게는 '위대한 인민 지도자(태양)이 혁명파 인민들의 시체(묘지)들을 넘고 공산주의 락원(붉게)을 세운다(떠오른다)'고[1] 굳이 억지스럽게 말을 엮을 수는 있겠으나, 도둑이 제발 저린 격이며 레드 콤플렉스에 찌든 억지나 다름없다.

보통 사형수들의 형이 집행되었을 때,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고 표현한다. 때문에 "아침 이슬"이라는 노래 제목과 가사에서 사용되는 예가 극히 드문 "묘지"라는 단어를 쓴 점으로 볼 때, 금지곡 선정위원들이 보기에는 충분히 불순한 의도로 곡을 만들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리고 가사가 추상적이고 비유적이지만 억압과 해방의 뉘앙스가 느껴지고, 선율도 거룩하고 엄숙하기에 폭압적으로 권력을 유지하고 있던 유신 집권층에서는 본능적으로 거부감과 공포를 느껴 별다른 이유도 제시하지 못하고 금지곡으로 지정했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9월 13일에 방영된 뉴스룸의 인터뷰에서 밝히길, 원래 아침 이슬이라는 곡을 구상할 때에는 영감이 오지 않아 막혀있었다고 한다. 그것의 원래 가사는 '그의 시련일지라'였는데,[2] 이것을 어찌어찌 '나의 시련일지라'로 바꾸어 보았다고 한다. 그렇게 바꾸어보니 훨씬 더 감정의 이입이 잘 되고, 당시의 시대상을 마주한 '나'의 기분을 잘 쓸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때부터 가사가 잘 써지기 시작하고, 아침 이슬이 탄생했다.

실제로 1971년 김민기 앨범의 원곡은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듯한 창법으로 노래되며, 이는 같은 해 양희은이 노래한 직설적이고 곧은 발성의 아침 이슬과 사뭇 다르다. 이 앨범에 참여한 정성조 쿼텟이 클래식 풍의 편곡을 선보였기 때문에 보다 세련된 면이 있다.[3]

따라서 '붉은 태양이 김일성의 공산주의 혁명을 의미한다'는 주장은 우익측의 아전인수식 해석에 가깝고, 굳이 좌익적인 해석을 붙인다면 '독재의 탄압 아래 신음하는 민중이 언젠가는 다시 일어설 것'이라는 해석이 타당하다. 실제로 집회에 참석한 군중들 사이에서 아침 이슬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면, 정말 뭔가 처연하고 장중한 분위기가 조성되는 기분이 든다. 아침이슬 시위.

다만 가사의 해석을 떠나 작곡적인 측면에서는 혁명적인 구조를 하고 있는데, 유행을 노리는 전형적인 노래 구조인 A-A'-B-A 구조[4]에서 벗어나 A-A'-B-C 라는 새로운 구조를 하고 있다. 또한 C장조임에도 불구하고 4도인 F음(파)으로 불안정하게 시작하고, 클라이맥스(B) 이후에 메인 테마(A)로 돌아오지 않고 또 다른 새로운 테마(C)로 진전하며 끝나버린다.[5] 이는 메인 테마를 사람들에게 각인시킴으로써 앨범 판매를 부추기는 A-A'-B-A의 구조가 아니었기에, 1971년 처음 이 곡이 김민기의 앨범에 발표되었을 때에는 비명도 못 지르고 3천 장의 앨범도 판매하지 못한 채 시장에서 묻혔다.

하지만 이 메인 테마로 돌아오지 않는 파격적인 구조는 '광야로 떠나는' 가사와 절묘하게 맞물려서 당시 한국 운동권들의 주요 이데올로기였던 혁명적 낭만주의가 가장 수용하기 쉬운 민중가요로써의 아침 이슬을 탄생시켰으며, 여기에는 양희은의 타협을 허락하지 않는 단호한 목소리가 큰 요소로 작용하였다. 아침 이슬이 운동권 집회에서 널리 불려지고 유신 정부의 금지곡 병크가 겹치면서, 스트라이샌드 효과 1987년 6월 항쟁 당시에는 신촌 로터리 부근에 운집한 100만 명의 군중들이 유일하게 다 같이 아는 노래가 애국가와 아침 이슬밖에 없었다고 할만큼 대중적인 민중가요가 되었다.[6] 그로부터 30년이 지나 2016년 11월 26일 박근혜 즉각 퇴진 5차 범국민행동광화문 광장에 운집한 100만 인파가 양희은과 함께 아침 이슬을 다시 부르기도 했다.영상, 떼창이 더 잘 표현된 이 영상은 정말 장관이다. 영상

이수만의 경우 다른 무대에서 아침 이슬을 불렀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을 뻔한 적도 있다.[7]

여담으로 북한중학생들과 대학생들이 1990년대에 전국적으로 널리 부르던 곡이라고 한다. # 심지어 탈북자 출신의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의 블로그에 따르면 북한에서 군 생활 당시 훈련받을 때도 이 노래를 합창했다고 하니, 한국에서는 금지곡인 노래였지만 북한에서는 상당히 대중적인 노래였던 것 같다.[8] 하지만 유행했던 시기가 하필 고난의 행군 때여서 이 노래가 전국적으로 유행하자 북한 지도부에서 불안감을 느끼는 바람에 1998년에 금지곡이 되었고, 현재 아침 이슬을 부르다 당국에 걸리면 강제노동형에 처해진다고 한다. 역시 극과 극은 통한다. 인민의 소리 방송[9]에서는 이 노래를 약간 개사해서 내보낸다. 이 노래 부른다고 잡아갈 땐 언제고?(...) 심히 골룸한 건 이 방송은 배경 음악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도 내보낼 때가 있다는 것.

4. Morgentau[편집]


2004년 <Past life of 김민기>에 수록된 독일어 버전 아침 이슬. 김민기의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원래 독일의 원작을 번안한 작품인데, 한국에서 이것이 초히트를 치고 기어이 2000회까지 공연하게 됐다.[10] 이를 본 독일 원작의 공연팀인 독일 그립스 극장의 단원들이 김민기의 지하철 1호선 2000회째 공연을 축하하기 위해 직접 내한하여 건네준 선물이다. 원작자 폴커 리트비히가 직접 아침 이슬의 가사를 한글로 번역했다고. 원작 공연팀이 내한해서 직접 불렀을 때의 영상이 남아있는데, 옆에서 쭈그려 앉아 겸연쩍은듯 얼굴을 가린 김민기의 모습이 압권.

5. 관련 문서[편집]

[1] 이도 애매한 해석인 것이, 묘지는 부정적인 시어이고, 태양이 떠올라서 한낮이 되었을 때 시련이 찾아오므로 이 가사에서는 태양 역시 부정적인 시어이다.[2] 여기서 '그'는 예수 또는 석가로 대유되는 성인 또는 초월적 존재를 말한다고 한다.[3] 음악평론가 강헌의 평론에 따르면, 대중들에게 아침 이슬을 선동적인 분위기의 민중가요로써 각인시킨 것은 이미자로 대표되는 1960년대 기존 여성 보컬의 우수에 젖은 목소리에서 과감히 탈피해 비브라토를 극도로 절제하고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노래한 양희은의 아침 이슬이라고 한다.[4] 1970년대의 트로트에서부터 오늘날 한국 발라드에도 주로 사용되는 구조인 메인 테마(A)-변형 테마(A')-클라이맥스(B)-메인 테마(A)의 구조이다.[5] 심지어 2절도 클라이맥스(B)부터 반복하지, 결코 메인 테마(A)로 돌아오지 않는다. 안드로메다행[6] 당시 군중들의 연령대가 10대 고등학생부터 40대 장년층까지 다양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다 같이 아는 노래가 드물었다고 할 수 있다. 신촌 로터리부터 시청 앞까지 늘어선 100만명의 군중이 동시에 아침 이슬을 합창할 수는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돌림노래가 되었는데, 그 광경이 진히 장관이었다고.[7] 1978.4.1 동아일보[8] 다만 남한의 노래라는 사실은 남한에 오고 나서 알았다고 하며, 북한에서는 대남선전용으로 제작한 노래라고 알려졌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김광석의 노래이면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삽입곡 중 하나인 '이등병의 편지'도 현재 북한에서 징집을 앞둔 북한 젊은이들과 북한군 사병사이에 불려지고 있다고 한다.[9] 자칭 '조선로동자총동맹'이란 북한의 지하 단체가 김일성 정권을 까는 방송이지만, 실상은 그렇게 꾸며서 대한민국의 국정원에서 하는 방송이다.[10] 결국 2008년에 4000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대한민국 최다 공연 뮤지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