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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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경우 유럽연합 탈퇴 국민 투표에서 과반수가 찬성하였으며 이에 따라 2017년 3월 29일 탈퇴를 규정한 리스본 조약 50조를 발동했다.
* 부속 규정에 의거하여 영국은 유럽연합과의 탈퇴 협상을 시작하며, 2년이 경과한 2019년 3월 29일까지 협상이 마무리 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럽연합에 가입한 27개 회원국들 중 단 하나의 회원국이라도 협상의 시한 연장을 거부할 경우, 협상의 진행 상황과 타결 여부와 무관하게 2019년 3월 29일부로 영국의 유럽연합 회원국 지위는 자동으로 상실된다.
* 탈퇴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은 영국의 유럽연합 회원국의 지위는 유지된다. 다만 영국 정부가 희망하면 유예기간 내에도 탈퇴는 가능하다.

아일랜드
Éire
Ireland

파일:아일랜드 국기.png

파일:아일랜드 국장.png

국기

국장

상징

국가

Amhrán na bhFiann(전사의 노래)

표어

Éire go deo(아일랜드여 영원하라)

국조

댕기물떼새(관습상)

역사

1919년 1월 21일 (독립선언)
1922년 12월 6일 (아일랜드 자유국 성립)
1937년 12월 29일 (헌법 개정, 영연방 탈퇴 선언)
1948년 4월 18일 (공화국법 제정)

수도

더블린

면적

70,273km²

인문 환경

인구

총인구

4,812,134명(2018년)

인구밀도

68.2명/km2

출산율

1.9명(2017년)

공용 언어

아일랜드어, 영어

국어

아일랜드어

종교 구성

국교 없음(정교분리)
가톨릭 86.8%, 개신교 5.4%, 무종교 4.4%

자국군 보유 여부

아일랜드군

하위 행정구역

31개 카운티

정치

정치체제

단일국가, 양원제, 의원 내각제

민주주의 지수

169개국 중 6위(2017년)[완전민주주의]

국가원수

마이클 D. 히긴스 (Michael D.Higgins)

대통령

정부요인

총리

리오 버라드커 (Leo Varadkar)

부총리

사이먼 코브니(Simon Coveney)

경제

GDP

전체 GDP

$3,850억(2018년) / 세계 42위

1인당 GDP

$80,641(2018년) / 세계 4위

GDP PPP

전체 GDP

$3,820억(2018년) / 세계 56위

1인당 GDP

$79,925(2018년) / 세계 7위

화폐

공식 화폐

유로(이전에는 파운드)

ISO 4217

EUR

ccTLD

.ie

국가 코드

IE, IRL, 372

국제 전화 코드

+353

단위

법정연호

서력기원

시간대

UTC 0(서머타임 적용)

도량형

SI 단위

외교

대한수교현황

대한민국: 1983년
북한: 2003년

국제연합(UN) 가입

1955년

위치[2]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80px-Ireland_location_map.svg.png

아일랜드어 : Éire[3]

영어 : Ireland[4]

한국어 : 아일랜드


1. 개요2. 국호(국명)3. 국기4. 국가
4.1. 전사의 노래(Amhrán na bhFiann)4.2. 아일랜드의 부름(Ireland's Call)
5. 역사6. 정치7. 군사8. 경찰9. 경제10. 종교
10.1. 아일랜드의 개신교10.2. 아일랜드 가톨릭의 성범죄 스캔들
11. 외교
11.1. 영국과의 관계11.2. 미국과의 관계11.3. 대한민국과의 관계
12. 행정구역13. 언어14. 교육
14.1. 초/중등 교육14.2. 고등 교육
15. 문화16. 스포츠17. 여행18. 동성결혼 합법화19. 낙태 합법화20. 기타
20.1. 아일랜드 출신 유명인20.2. 아일랜드 국적, 출신 캐릭터
21. 참고 서적22.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영국의 바로 서쪽 아일랜드 섬 대부분을 통치하는 섬나라로, 면적은 약 70,200km². 남한의 70% 정도로 영국(약 244,000km²)의 1/3보다 약간 작다.

수도더블린. 국가는 Amhrán na bhFiann으로 해석하면 '전사의 노래(영어:The Soldier's Song)'라는 의미다.

유럽 대륙과 브리튼 섬에서 로마인, 게르만족 등에 밀려난 켈트족이 마지막까지 버틴 지역으로, 현재 남아 있는 켈트 신화 중 대다수는 아일랜드 출전이다.

아일랜드인의 신체적 특징으로는, 서유럽북유럽 사람치고는 머리색이 어두운 편이지만 눈동자와 피부색은 밝은 편이라는 거다. 링크1링크2 일반적으로 서유럽과 북유럽 사람들이 멜라닌 색소가 적은 금발벽안을 지니고 남유럽 사람들은 어두운 눈동자와 머리색을 지니고 있지만 아일랜드인들의 경우 이러한 특징들이 정반대로 나타나는데 스페인포르투갈사람처럼 이베리아반도에 거주하였던 켈트족이 북유럽으로 이주하였을 것이라 추측된다. 물론 아랍과 아시아 사람들처럼 심하게 어두운건 아니고 은근히 금발도 많은 편이다[5]. 그리고 적발 유전자를 지닌 보인자들도 상당히 많은 편이라 적발의 비율도 높은데 이를 보면 타 유럽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율이 고른 편이다.

2. 국호(국명)[편집]

자국어(아일랜드어)로는 이 나라를 에이레(Éire: 빛의 여신 에일린의 이름을 딴 것)라고 한다. 켈트 신화에 나오는 에린이 바로 이곳이다. 영어명인 아일랜드(Ireland) 역시 이 Eire와 land가 합쳐진 것이다.

아일랜드 헌법에 따르면 이 나라의 정식 명칭은 아일랜드어로 Éire(에이레), 영어로는 Ireland(아일랜드)라 하고 있다. 한편으로 1948년에 제정된 아일랜드 공화국법(Republic of Ireland Act 1948)에서는 이 나라를 '아일랜드 공화국(영어로 Republic of Ireland, 아일랜드어로 Poblacht na hÉireann)'이라 하고 있지만 이는 이 나라에 대한 description일 뿐, name인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는 헌법에서 자국명을 Ireland로 아예 못박았기에 이와 모순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아일랜드를 오랫동안 지배했던 영국에서는 1949년 이후 이 나라를 일반적으로 '아일랜드 공화국'(Republic of Ireland)이라 칭하고 있다. 이는 아직 영국 땅인 북아일랜드와 구분하기 위해, 그리고 지리적 의미의 아일랜드 섬과 구분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아일랜드에서는 역사적으로 북아일랜드 영유 문제와 관련하여 북아일랜드를 제외한 아일랜드 지역만을 의미할 수 있게 되는 '아일랜드 공화국'이라는 명칭을 기피하는 경향도 있다. 한때 영국을 정식 명칭인 '그레이트브리튼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이라 부르는 것을 거절한 적도 있다. 지금은 영국에서도 공식적으로 이 나라를 Ireland로 일컬어주지만, 실제로는 '아일랜드 섬'과 혼동될 수 있기 때문에 '아일랜드 공화국'이라 칭하는 경우가 흔하다.

아일랜드의 통치 지역을 북아일랜드와 대비해 '남아일랜드'(Southern Ireland, Deisceart Éireann)라 칭하기도 한다.

3. 국기[편집]

파일:external/www.irish-flag.org/irish-flag-640.jpg

아일랜드 국기의 비율은 2대 1이며, 흰 바탕에 폭이 같은 초록, 하양, 주황의 3가지 색이 세로로 그려져 있으며, 녹색은 섬나라와 가톨릭을, 주황색은 개신교[6], 흰색은 두 종교 집단의 평화와 이해를 상징한다. 이 국기는 1848년 청년아일랜드운동의 기수인 토머스 프랜시스 미거(Thomas Francis Meagher)가 최초로 도입했으며, 그 이후 1916년 자유 아일랜드의 상징이 되었으며, 1922년에 아일랜드 자유국으로 독립하면서 정식 국기로 채택되었다. 색상 배치가 반대인 코트디부아르의 국기와 거의 유사한데, 아일랜드의 국기가 조금 더 오래된 것으로 19세기 중엽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여담으로 색상 배치가 이탈리아의 국기와도 거의 유사한데, 특히 주황색 부분을 애매하게 진한 주황색 등으로 해 놓을 경우, 정말로 분간이 잘 안 가는 경우도 있다. 이탈리아의 국기를 오래 놔둬서 색이 바래면 아일랜드의 국기로 저절로 바뀐다고 한다[7]

4. 국가[편집]

4.1. 전사의 노래(Amhrán na bhFiann)[편집]


전사의 노래(Amhrán na bhFiann - 어우란 나 비언)는 피더 키어니(Peadar Kearney)와 패트릭 히니(Patrick Heeney)가 1907년에 작곡했으며, 1907년에 피더 키어니가 영어로 작사한 것을 1923년에 Liam Ó Rinn이 아일랜드어로 번역했고, 1926년국가로 제정되었다. 아래의 아일랜드/역사 항목을 읽어보면 이해할 수 있지만, 곡조는 평화롭지만 영국에게 당한 끔찍한 고통이 녹아들어있어 가사내용은 정말이지 처절하다. 긴 버전과 짧은 버전이 있는데 국가로 쓰이는 것은 '짧은 버전'으로 긴 버전의 코러스 부분에 해당된다.

아일랜드어

Sinne Fianna Fáil
우리는 전사라네
Atá faoi gheall ag Éirinn
아일랜드의 생존을 서약한
Buíon dár slua
어찌하여 왔는가
Thar toinn do ráinig chughainn
파도 너머의 땅으로부터
Faoi mhóid bheith saor
우리는 자유를 쟁취하겠다는 맹세를 하네
Sean-tír ár sinsear feasta
우리들의 옛 조국의 땅은
Ní fhágfar faoin tiorán ná faoin tráill
압제와 노예 상태를 벗어버리리
Anocht a théam sa bhearna bhaoil
오늘 밤 우리 전사들은 '위험의 절벽'을 넘어
Le gean ar Ghaeil chun báis nó saoil
아일랜드인들의 삶, 아니면 죽음을 위해
Le gunna scréach faoi lámhach na bpiléar
대포의 굉음과 총성을 울리며
Seo libh canadh Amhrán na bhFiann
전사의 찬가를 부르리라

4.2. 아일랜드의 부름(Ireland's Call)[편집]



아일랜드의 부름(Ireland's Call)은 아일랜드 럭비협회에서 작곡한 곡으로 럭비 세계대회에서 주로 국가 대신 불리우던 곡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럭비를 포함하여 아일랜드 하키, 크리켓, 코프볼 등 여러 스포츠의 세계리그에서 국가대신 제창되고있다.

가사

Come the day and come the hour,
그 날이여 오라 그 시간이여 오라,
Come the power and the glory!
힘과 영광이여 오라!
We have come to answer our country's call,
우린 우리 조국의 부름에 대답하게 되었도다,
From the four proud provinces of Ireland
아일랜드의 자랑스러운 4개 지방[8]에서 말이네
Ireland, Ireland,
아일랜드여, 아일랜드여,
Together standing tall!
다함께 당당하게 서있으면서!
Shoulder to shoulder,
어깨와 어깨를 맞대어,
We'll answer Ireland's call!
우린 아일랜드의 부름에 대답할 것이네!
From the mighty Glens of Antrim,
위대한 앤트림의 계곡[9]에서부터,
From the rugged hills of Galway!
갤웨이의 굳센 언덕에서부터!
From the walls of Limerick, and Dublin Bay,
리머릭의 요새벽[10]과 더블린 만에서부터,
From the four proud provinces of Ireland!
아일랜드의 자랑스러운 4개 지방에서부터
Ireland, Ireland,
아일랜드여, 아일랜드여,
Together standing tall!
다함께 당당하게 서있으면서!
Shoulder to shoulder,
어깨와 어깨를 맞대어,
We'll answer Ireland's call!
우린 아일랜드의 부름에 대답할 것이네!
Hearts of steel and heads unbowing,
강철의 심장과 절대 숙이지 않을 머리를 가지고
Vowing never to be broken!
맹세는 절대 깨어지지 않을 것이네!
We will fight, until we can fight no more,
우린 더 이상 싸울 수 없을 때까지 싸울 것이네,
From the four proud provinces of Ireland!
아일랜드의 자랑스러운 4개 지방에서 말이네!
Ireland, Ireland,
아일랜드여, 아일랜드여,
Together standing tall!
다함께 당당하게 서있으면서!
Shoulder to shoulder,
어깨와 어깨를 맞대어,
We'll answer Ireland's call!
우린 아일랜드의 부름에 대답할 것이네!
Ireland, Ireland,
아일랜드여, 아일랜드여,
Together standing tall!
다함께 당당하게 서있으면서!
Shoulder to shoulder,
어깨와 어깨를 맞대어,
We'll answer Ireland's call!
우린 아일랜드의 부름에 대답할 것이네!
We'll answer Ireland's call!
우린 아일랜드의 부름에 대답할 것이네!

5. 역사[편집]

6. 정치[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아일랜드/정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군사[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아일랜드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경찰[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평화수호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 경제[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아일랜드/경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0. 종교[편집]

종교가톨릭이 지배적이었으나 최근 사회적 자유화로 영향력이 급격히 약화되었다.[11] 이유는 아일랜드의 수호성인 성 파트리치오[12] 주교가 아일랜드의 골칫거리였던 들을 모두 없애버렸다는 전설을 적절하게 사용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빙하기 시기 모조리 얼어죽은 후, 해빙기 때 바다로 둘러싸여 뱀이 상륙하지 못하게 되면서 발생한 일. 아일랜드는 지금도 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이 덕분에 켈트족들이 토속신앙을 버리고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유럽에서 룩셈부르크, 리히텐슈타인,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폴란드 등과 함께 굳건히 가톨릭 비율이 80% 이상인 나라다. 다른 유럽 나라들은 세속화되어 무신론자가 절반 이상이기도 하지만[13] 이 나라들은 여전히 80% 이상이 가톨릭을 믿는 곳이다.

아일랜드인들은 가톨릭 신앙을 굳건하게 지켰기 때문에 성공회를 믿는 잉글랜드인, 장로회 신앙의 스코틀랜드계 켈트인들(청교도)들과의 갈등이 심했다.[14] 하지만 그러한 성공회/장로회와의 대립은 순수한 종교의 대립이라기보다는 잉글랜드/영국에 핍박받으며 자유를 보장받지 못한 상황에서 가톨릭 신앙에 민족 정체성을 부여했던 것이 종교의 차이로 인한 대립과 결합되어 나타난 거다.

아일랜드는 최근까지 OECD에서 낙태가 가장 어려운 나라였다. 성적으로 보수적인 한국은 고사하고, 그 낙태가 어렵다고 소문난 유럽국가인 폴란드보다도 더 어려운 상태였다. 이는 가톨릭의 영향이다. 하지만 2018년 5월 26일 낙태죄를 폐지하는 개헌국민투표에서 낙태죄 폐지에 66%가 찬성하였고, 개정 헌법에 따라 관련 법률도 개정할 예정이다.

10.1. 아일랜드의 개신교[편집]

아일랜드에 있는 개신교는 아일랜드 성공회가 최대 종파로, 잉글랜드계 아일랜드인(Anglo-Irish)을 중심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19세기까지는 아일랜드의 유일한 국교로서 가톨릭을 탄압하였으나, 국교 해제 이후에는 교세가 주춤해진 상태였다. 현재 신자는 40만 명 가량으로 대표적인 인물이 성공회 성직자였던 조너선 스위프트기네스 맥주로 유명한 기네스 가문, 그리고 아일랜드 초대 대통령인 더글러스 하이드가 있다. 그 밖에 소수 종파로 장로회, 감리회, 침례회 등등도 있다. 아일랜드 성공회를 비롯하여 아일랜드의 모든 개신교 교단들은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를 같은 총회에서 관할한다. 북아일랜드 소속 노회(지방회)와 아일랜드 소속 노회(지방회)가 같은 총회의 산하에 있는 것이다.

이렇듯 아일랜드 가톨릭 신자들은 가톨릭에 자신들의 민족 정체성을 부여하여 영국에 대한 저항의 아이콘으로 여겼지만[15] 정작 아일랜드의 독립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간 애국지사들 가운데는 상당수가 개신교인이었다. 오히려 가톨릭은 공식적으로는 독립운동에 부정적인 가운데 신부와 신자들이 어디까지나 개인 자격으로 독립운동에 가담한 것. 이렇듯 개신교인이면서 아일랜드 독립운동에 가담한 애국지사들을 '개신교 공화주의자'(Protestant republican)이라고 한다. 1798년도 아일랜드 독립전쟁을 이끈 유나이티드 아이리시멘(United Irishmen)은 기본적으로 초교파를 표방했으나 수장인 울프 톤을 비롯하여 주도권은 개신교인들이 쥐고 있었다. 독립전쟁 당시 지휘관 4명 가운데 2명은 성공회(울프 톤, 에드워드 피츠제럴드), 1명은 장로회(헨리 조이 매크래켄) 교인이었으며 나머지 1명(존 머피)만이 가톨릭 신부였다. 이들 말고도 윌리엄 오어, 토머스 러셀, 새뮤얼 닐슨, 토머스 오스본 데이비스 등등 많은 독립운동가들은 가톨릭이 아닌 개신교를 믿었다. 가톨릭 신자들이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가담한 것은 19세기 말, 20세기 초부터이다.

개신교 국가인 영국에 저항했다는 역사로 인해, 아일랜드에서 개신교는 매국종교인가 헷갈리는 사람들이 많으나 아일랜드 개신교=친영 매국노는 절대로 아니다! 이렇듯 개신교 공화주의자들은 독립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현재 아일랜드의 개신교 교인들은 영국을 지지하는 북아일랜드의 개신교 교인들과는 달리 거의 대부분이 개신교 공화주의 노선을 따른다. 현대 북아일랜드의 근간이 된 얼스터 지방의 개신교도들은 16세기 말의 오닐의 봉기, 17세기 중반 킬케니 연방의 봉기를 진압하면서 아예 토착 아일랜드인들을 강제로 추방해 버린 다음에 현지에 눌러 붙으며 지속적으로 고향인 스코틀랜드, 잉글랜드와 교류를 유지한 기원이나, 정체성이나 완전 영국인인 반면, 얼스터 넘어서는 그 만큼의 개신교 포교(라기 보다는 사실 강권에 가깝지만)가 거의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숫자도 적었고, 현지 아일랜드 게일 토착민들의 사회, 문화에 적극적으로 동화되어 가면서 민족주의가 부흥할 시점에 진작 아일랜드 민족주의 쪽으로 방향을 갈아탔다. 북아일랜드와 다르게 가톨릭 눈치 때문에라도 온건한 신학적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16]

현재 아일랜드에서 개신교 교파인 성공회가 무서운 속도로 성장 중인데, 가톨릭 신부들이 정말 가공할 수준의 병크를 터트림으로써 가톨릭의 신뢰도가 완전히 바닥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현재 아일랜드에서 가톨릭은 한국에서 기득권자의 종교 그 이상으로 대차게 까이고 있다. 거기에 실망하고 가톨릭을 떠난 사람들 가운데 종교를 완전히 버리지 않은 사람들이 개신교로 가는 것이다. 대체로 성공회로 가기 때문에 성공회가 무서운 속도로 성장 중이다. 때문에 아일랜드 성공회는 전 세계적으로 저교회파[17]가 대세인 것과는 달리 고교회파[18]가 우세하다. 가톨릭에서 개종한 사람들에겐 아무래도 고교회파의 예배 방식이 익숙할 테니까. 성공회 이외의 기타 종파는 아무래도 북아일랜드 중심으로 돌아가다 보니 성장 추세가 느리지만, 아예 아무 종파에도 소속되지 않은 독립교회들도 무서운 속도로 치고 올라가는 중이다. 이러한 독립교회들은 아일랜드 성서 학원(Irish Bible Institute)라는 초교파 신학교육 기관에서 신학 과정을 이수한 목사들이 목회를 한다. 아일랜드 개신교 교회의 무려 50%가 이러한 독립교회이다.

10.2. 아일랜드 가톨릭의 성범죄 스캔들[편집]

아일랜드는 대부분의 학교가 미션스쿨이고, 종교에 따라서 가톨릭이나 개신교 학교로 진학하게 된다. 이 가운데 가톨릭을 믿는 서민층의 교육은 아일랜드 신부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크리스천 브라더스(Christian Brothers)라는 기관에서 세운 학교들이 주로 담당하고 있다.[19] 그런데 이 크리스천 브라더스의 신부들이 자기네들이 가르치는 학교의 남학생들을 장기간에 걸쳐서 성추행한 사실이 2002년도에 폭로되었다. 이것 말고도 아일랜드 신부들이 저지른 온갖 섹스 스캔들이 사회 이슈로 떠오르면서, 아일랜드 가톨릭의 사회적 신뢰도는 폭락했고, 젊은 층은 급속도로 가톨릭에 등을 돌리게 되었다. 골 때리는 것은 그 반대로 아일랜드에서 성공회 교인은 증가하고 있다는 점. 가톨릭 신부들의 막장 짓거리에 분노한 신자들이 가톨릭을 버리고 성공회로 가는 것이다.

아일랜드에서 신부는 특별한 종교적 권위가 있다는 인식을 대다수의 신자들이 가지고 있는데, 가톨릭은 교황 이하의 성직자들은 자신보다 계급이 높은 성직자(장상)에게 순명해야 한다는 교리가 있으며, 만인제사장설을 거부하기 때문에 일반 신자에 대한 신부의 권위와 신부들끼리 계급에 따른 수직적 위계질서가 강하다. 아일랜드의 경우 1640년대 킬케니 가톨릭 연맹의 봉기를 올리버 크롬웰이 때려 잡고 10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공식적으로 가톨릭 신앙을 금지하면서 가톨릭이 다수 종교이면서도 지하 종교가 되어 버리는 역사를 거쳤다. 이에 비밀리에 열리는 미사를 이끄는 신부를 개인적으로 추종하는 경향이 유독 심해져 신부는 특별한 영적 권위를 가진다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당연시되고 있(었)다. 물론 그렇지 않았다면 괜찮은데 이런 역사를 거치면서 제대로 된 성직에 봉사하기에 신학적, 인격적 소양이 한창 모자란 인간들이 신부 노릇을 해 먹으며 그 지역 공동체 내의 유지 노릇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신부들이 이를 악용하여 성추행을 저지른 것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 대상이 성인 여성도 아니라 남자 어린이였다는 것이다. 더블리너스 멤버인 에이먼 캠벨도 자신이 성추행 피해자였음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크리스천 브라더스의 아동 성추행은 장기간에 걸쳐 조직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아무튼 그 결과 현재 아일랜드인들이 가톨릭 신앙심이 독실하다는 건 50대 이상 나이 많은 사람들 한정이고, 더블린에서 20대의 미사 참례율은 20%도 되지 않으며, 빠른 속도로 무교의 비율이 급속도록 증가하는 추세다. 여기서 무교란 무신론, 불가지론, 그냥 종교에 관심없음 등등을 다 포괄하는 개념. 젊은 층의 경우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한 스펙경쟁 때문에 종교에 신경 쓸 틈이 없는 이유도 있고, 막장스러운 짓거리로 사회를 충공깽에 빠트린 가톨릭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종교에 아예 등을 돌려 버린 이유도 있다. 또한 앞서 말했듯 성공회 신자 수도 빠른속도로 증가 추세다.

2015년 아일랜드는 세계 최초로 국민투표에 의해 동성결혼이 합법화한 나라가 되었다. 찬성 62%, 반대 38%였으며, 주로 젊은 층의 찬성이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전까지 세계적으로 18개국이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으나, 어디까지나 모두 의회 입법이나 법원 판결을 통해서였다. 이에 대해 유명인사인 팬티 블리스는 "아일랜드가 상당히 오래 전에 이미 변해 있었다는 것을 이번에 확인한 것"이라며 "아일랜드는 이제 더 이상 가톨릭교회가 통치하는 나라가 아니다"는 메시지를 세계에 전한 것이라고 봤다. 물론 당연히 아일랜드 가톨릭 교계는 이에 대해 "아일랜드 교회는 결혼을 남성과 여성 간의 결합이라고 정의한다"며 "이번 국민투표 결과가 정의를 바꾸지 못한다"고 반발하였다.[20]

2018년 낙태가 합법화되는 데도 영향을 주었다. 국민투표 결과 찬성 66% 반대 33%로 더블스코어 차이였다. 2018년 현재까지도 영향을 준 셈.

11. 외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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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영국과의 관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영국-아일랜드 관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아일랜드인들의 대영제국의 강점기에 대한 반감은 매우 뿌리깊다.

11.2. 미국과의 관계[편집]

영국과는 달리 미국과는 사이가 매우 좋은 편이다. 미국의 독립 이전에 아일랜드인들이 미국으로 건너가는 경우도 많았고, 19세기에 아일랜드인들이 미국으로 대거 이주했다. 그리고 미국에서도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편이다. 거기에다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은 대통령[21]을 배출하기도 하는 등 미국과 매우 우호적인 편이다.

11.3. 대한민국과의 관계[편집]

아일랜드와의 인연은 생각보다 꽤 오래 전에 있었다. 일제강점기중국 단둥에 있던 이륭양행(怡隆洋行)은 아일랜드인이었던 조지 쇼(George L. Shaw)[22]가 세운 무역선박회사로, 실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교통국 역할을 수행하며 독립운동가의 중국 망명, 독립운동 자금 모집, 무기 구입, 연통제 운영 등의 역할을 했다. 의친왕의 망명 시도도 이륭양행을 이루어졌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과 아일랜드와의 공식적인 관계는 다음과 같다. 1961년에 처음 외교 접촉을 했고, 한때 주한영국대사관에서 겸임해 왔다가 1983년에 가서야 공식 외교 관계가 성사되어 서울과 수도 더블린에 상주 대사관이 설치되었다.

1988 서울 올림픽 때 자국 선수단을 파견하였으며,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16강전 때 스페인과의 대결을 위해 일본에서 조 예선을 치르게 된 후 축구선수와 응원단이 방한한 적이 있었다.

대한민국과 아일랜드의 관계는 그동안 정부 간의 교류보다 가톨릭 사제들과 수도자들을 통한 민간 교류의 비중이 높았다. 제주특별자치도의 유명 관광지인 이시돌 목장은 1954년 아일랜드인 신부들이 주축이 된,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 신부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담당 지역은 전라남도 지역(천주교 광주대교구)이었는데, 제주특별자치도는 8.15 광복 이전에 행정구역이 전라남도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아일랜드인 사제들이 일제강점기부터 제주 지역(천주교 제주교구)에서 사목했다.

아일랜드인 사제들은 4.3 사건으로 인해 삶의 기반이 파괴되어 가난에 시달렸던 제주도 중산간 주민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서 목축업을 장려하기로 하고, 제주도 한림읍 금악리 일대에 농장을 건설했다. 뉴질랜드호주에서 면양과 소, 돼지를 들여와서 한때 가축 수백만 마리를 사육했던 동양 최대의 목장으로 성장시켰고, 제조 설비까지 들여 와서 우유 및 치즈와 같은 낙농 제품을 생산하기도 했다. 현재 이시돌 목장은 가톨릭 성지화되어 각종 종교 및 복지시설이 세워졌고, 말과 한우를 사육하고 있다.

이외에도 수많은 아일랜드인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가톨릭교회 및 비영리단체를 통하여, 6.25 전쟁 이후 여러 지역에서 교육 및 빈민구호활동을 펼쳤다.


미군이 대한민국에 대해서 써놓은 최초의 보고서에서는, "한국인들은 동양의 아일랜드인이다."라고 써놓은 것이 기록 조사 중에 밝혀졌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수많은 전쟁을 하며 자주국으로서 국가를 지키고 천자국을 지향했으므로 아일랜드와 비교하긴 어렵다. 대한민국에선 아일랜드가 영국의 침략과 수탈, 학살에서 항거하여 결국 독립을 맞고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내 근대화에 성공해 선진화를 이룩했듯이, 대한민국 역시 일본에게서 비슷한 일을 겪고도 자신을 지켜내며 일어섰다는 점을 이야기하긴 한다. 하지만 이것이 "조선인은 엽전이다" 라고 일제강점기 때 대한민국의 역사를 폄하한 일본의 주도로 널리 퍼진 이야기인 것은 확실하다. 주한 아일랜드 대사관도 비슷한 언급을 했다. 이웃나라인 영국과 일본이 섬나라이자 제국주의 국가였다는 점도 동일하다.

미국캐나다 이민자 사회에서 한국인 = 동양의 아일랜드인 드립은 적어도 1950년대부터 퍼졌던 농담인데, 술 마시는 문화나, 술 마시고 싸우는 문화나, 술 마시고 싸우고 화해한 뒤 친구 먹는 문화 등 양 민족의 음주 문화와 관련된 드립이 많다. 사회권력적인 관점에서 주로 약소 민족으로 시작하여 억척스러운 근성으로 수 많은 피눈물 끝에 나름 번영하는 이민자 사회를 건설하며, 이 과정에 생긴 집단적 스트레스를 강력한 종교성과 음주가무로 풀어 내는 문화와 역사를 통해 상당히 웃픈 스트레오 타입을 공유하게 된 셈이다.

이에 대해서는 70년대에 일본 신문 기자가 아일랜드 역사를 홋카이도와 아이누족의 역사를 비교하며 칼럼을 쓴 것이 와전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당시 일본 신문 기자는 일본의 아이누족과 부라쿠민들의 차별에 대한 칼럼을 썼다. 도래인인 야요이들이 일본 열도를 평정하고 일본 선주민인 아요이족과 하야토들은 홋카이도로 이주하거나 부라쿠민이 된 것이 영국과 아일랜드의 역사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몇 일본 기자들은 그것에 대해 창피함을 느꼈고 그래서 아일랜드와 역사가 비슷한 건 한국이라는 식으로 칼럼을 자주 썼으며 그것이 와전되어 한국 사람들도 한국 역사와 아일랜드 역사가 비슷하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현재 인천국제공항에서는 더블린으로 가는 직항이 없어서 아일랜드로 가려면 환승해야 한다. 주로 런던이나 파리, 암스테르담 등에서 환승하는 편.

12. 행정구역[편집]

아일랜드는 전통적으로 크게 얼스터(Ulster: 북부),[23] 렌스터(Leinster: 동부, 수도 더블린이 포함된 중심지), 코노트(Connacht: 서부), 먼스터(Munster: 남서부)의 4개 지역으로 나뉘어지며, 유의미한 행정구역으로는 32주(County: 현 아일랜드령 26주, 북아일랜드 6주)로 구분되어 왔다. 그러나 티퍼레리(Tipperary) 주가 1898년 남 티퍼레리 주와 북 티퍼레리 주로 나뉘어졌으며, 더블린 주가 1994년 던 리어리래스다운(Dún Laoghaire-Rathdown), 핑글(Fingal), 사우스더블린(South Dublin)의 3개 주로 나뉘어지면서 29주가 되었다.

또한 더블린, 코크(Cork), 리머릭(Limerick), 골웨이(Galway), 워터퍼드(Waterford)의 5개 시가 주와 동급이며, 행정구역상으로도 주와 분리되어 독립적인 지방의회를 가지는 시[24]로 존재하여 현재 아일랜드의 행정구역은 29주 5시로 되어 있다.

아일랜드의 5대 도시는 위에 언급된 5개의 도시이며, 인구 순은 다음과 같다.(2016년)

1. 더블린(55만)[25]
2. 코크(12만, 광역 40만)
3. 리머릭(9만 4천)
4. 골웨이(8만)
5. 워터퍼드(5만 4천)

13. 언어[편집]

국어(national language)이자 공식적인 제1언어는 아일랜드의 고유어인 아일랜드어(An Ghaeilge, 혹은 아일랜드 게일어), 제2언어가 영어(An Béarla)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영어가 가장 널리 사용되는 언어다. 그래서 이 나라는 앵글로색슨이 아닌 켈트계 국가임에도 토플 점수가 면제된다.

수백년에 걸쳐 영국의 지배를 받은 탓에 아일랜드 고유의 언어인 아일랜드어(아일랜드 게일어)를 사용하는 아일랜드인의 숫자는 현저하게 줄었지만, 완전히 소멸되지는 않았다. 400만 아일랜드 인구 중 아일랜드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은 55,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즉, 제1언어로 쓰는 인구가 약 2%가량 있으며, 전체 인구의 40%는 아일랜드어를 안다.[26] 독립한 후에 아일랜드어 복원 사업을 계속 벌였으며, 아일랜드어를 학교 교육과정과 공무원 시험에의 필수 과목으로 넣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특히 교사 임용이나 교수 임용 등 교육자를 임용하는 시험에서는 아일랜드어 시험에 떨어질 경우 다른 점수가 아무리 높아도 무조건 탈락이다. 그러나 여전히 일상 생활에서는 영어에 비하면 사용 빈도가 안습. '세미나에서 아일랜드어 발표를 준비하기 위해 아일랜드어를 공부하고 연습한다'는 교수가 있을 정도이니…

그러나 아일랜드 서부 지역에는 이른바 게일타흐트(An Ghaeltacht)라고 불리는, 아일랜드 게일어만 통하는 언어 보호 지역들이 있으며, 이 지역에서는 교통 표지판 등도 모두 아일랜드 게일어로만 되어 있다. 아예 법안으로 정해서 도로 표지판에 영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아일랜드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아일랜드인도 아주 조금씩이나마 늘어나는 추세이기는 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영어를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게일타흐트 지역의 아일랜드인들은 거의 모두 영어도 사용 가능한 이중언어 사용자들이다.

전국에 걸쳐 영어가 강세이긴 하지만, 아일랜드 서부의 애런 제도에서는 아일랜드어가 영어보다 우세하다. 특히 애런 제도 가운데에 위치한 섬 이니슈만에서는 아일랜드어의 세력이 극단적으로 강해 젊고 어린 연령대의 주민도 외국어로서 영어를 배운 비영미권 주민과 비슷한 수준인 경우가 많다. 한국인보다 영어를 못한다거나 영어 울렁증을 호소하는 청년도 있다.

문제는 이 아일랜드어가 표준화되어 있지 않다고 알려져 지레 겁먹고 포기한다는 것. 사실 표준화는 이미 1920년대에 거의 이루어졌다. 지역마다 발음의 차이가 매우 크다고도 하지만, 실제로는 북부 얼스터 지방 vs 나머지 지방의 미미한 차이밖에 없고, 아일랜드어의 완벽하게 통일된 기준안이 아일랜드에서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이야기는 저런 데서 와전된 이야기인 것 같다. 구사자 수가 워낙 적다보니 외국에서는 이러한 잘못된 지식이 전해지는 경우가 많을 뿐더러, 수가 적은 것 자체로도 문제가 크다.

그런 이유로, 켈트 신화나 게일어가 들어간 아일랜드 문학가들의 작품을 번역할 때는 많은 애로사항이 꽃핀다. 예를 들면 국내에 번역 출간된 『켈트 신화와 전설』의 경우, 번역자들이 한국에 거주하는 아일랜드인 교수에게 자문을 구했지만 역시 '정확한 표기'라는 걸 단정지을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일랜드 대사관에까지 자문을 구했지만, 역시 완벽한 표기를 알아내는 건 불가능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그 교수가 한국에서 사는 건 다른 많은 외국파 아일랜드 교수들처럼 게일어를 제대로 못하기 때문에 외국까지 나와서 교수 활동을 했을 수 있고, 대사관의 답변 역시 아일랜드어 시험이 의무화되기 전에 이미 나랏녹을 먹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일랜드어 능력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형식적으로만 이루어졌기에, 대사관에 있던 사람들이 다 어설펐을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흔히 크로우 크루아흐로 널리 알려진 아일랜드 신화의 신 Crom Cruach는 IPA 표기상으로 [ˈkɾˠɔmˠ ˈkɾˠuəç]로, 굳이 한글로 옮기면 크롬 크루어히가 된다. 그런데 이 책에는 "크롬 크루아히"와 "크롬 크루아이히"라고 따로따로 표기되어 있다. 책을 대충 번역해서 그렇다 한국예이츠학회에서는 예이츠의 작품에 등장하는 게일어 고유명사 표기를 위해 따로 '게일어 고유명사 한글 표기 통일안'을 만들었지만, 이것은 예이츠의 작품에 나오는 게일어를 표기하기 위한 일종의 '약속'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것도 현지 발음과 비교해 보면 오류가 많다고 한다. 참조

아일랜드어 표기만 되어 있는 게일타흐트 지역을 제외하면 역 이름이라든가 중요한 표지판들은 대부분 영어/아일랜드어를 병기하고 있다. 영어도 물론 공용어이며, 아일랜드 출신으로 저명한 영문 문학가도 상당히 많이 있다. 예컨대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 던세이니, 조지 버나드 쇼, 사뮈엘 베케트, 피네건의 경야와 율리시스, 더블린 사람들 등을 쓴 제임스 조이스 등이 있다. 사실 무려 800년에 가까운 오랜 영국 지배 기간동안 이렇게 고유어를 지켜온 것이 대단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일단 영어가 공용어이기는 하지만, 좀 나이 많으신 분들이 사용하는 아일랜드 억양 영어는 표준적인 영국 영어에 비하면 상당히 괴악한 편이다. 그래서 영어 좀 안다고 자부하고 이 나라에 갔다가 좌절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참고로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초대 덤블도어 교장 역할을 맡은 배우 리처드 해리스의 영어가 이 아일랜드 억양 영어다. 멀리 갈 필요없이 WWE의 프로레슬러인 셰이머스핀 밸러, 베키 린치가 말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또블류또블류이 챰피온 놀라운 점은 이 괴랄한 발음을 미국인들은 섹시하다고 느낀다는 것. 유튜브와 구글을 검색해보면 아일랜드식 발음이 영국 발음보다 섹시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흔히 영드로 잘못 알려져 있는 드라마 튜더스에 많은 아일랜드 출신 배우들이 나온다. 헨리 8세부터 아일랜드 배우인 조너선 리스 마이어스.

14. 교육[편집]

14.1. 초/중등 교육[편집]

아일랜드의 교육제도는 초등과정(Primary Education), 중등과정(Secondary Education), 고등과정(Higher Education)으로 나뉘며, 6세 ~ 16세에 해당하는 초등과정과 중등과정은 의무교육을 실시한다. 아일랜드의 의무교육은 6세부터 16세까지다. 초등과정은 8년이며, 국립 초등학교·특수학교·사립 초등학교로 구분되며, 아일랜드 전역에는 3천 300여 개의 초등학교가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국립 초등학교에서 수학하고 있다. 중고등과정은 6년이며, 일반 중학교·종합학교(Comprehensive School)·지역학교(Community School)가 있다. 종합학교와 지역학교는 각각 15개와 24개가 있으며, 일반 중학교와 병행하는 직업학교가 245개가 있으며, 그 외에 지역기술학교가 8개 도에 있다.

14.2. 고등 교육[편집]

고등 교육인 대학과정은 종합대학·공과대학·교육대학으로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대학들은 상당부분을 국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지만 대학의 자치·자율권을 갖고 운영한다. 종합대학으로는 1592년에 설립된 트리니티 대학교(Trinity College)가 있으며, 1908년에 설립된 더블린아일랜드 국립대학교(University College Dublin), 골웨이아일랜드 국립대학교(University College Galway), 아일랜드 코크 대학(University College Cork)이 있다. 그 외에 리머릭대학교(University of Limerick), 더블린시티대학(Dublin City University)과 신학대학인 세인트패트릭대학(St. Patrick's College) 등이 있다.

15. 문화[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아일랜드/문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6. 스포츠[편집]

전통 스포츠에 대한 자존심이 강해서 이들만을 관장하는 스포츠 협회인 GAA(Gaelic Athletic Association) 따로 둘 정도이다. 이 협회에서 관장하는 스포츠를 게일릭 게임이라 하며 하키의 일종인 헐링, 여성용 헐링인 카모기, 풋볼의 일종인 게일릭 풋볼이 주요 종목이다. 이 둘은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 스포츠이지만 게일릭 풋볼의 경우 아일랜드 최고의 인기 스포츠이다. 매년 여름에 지역 대항 게일릭 풋볼/헐링 선수권 대회 기간에는 관련 뉴스가 스포츠면을 뒤덮고 주말에는 공중파에서 경기를 중계할 정도이다. 그 외에 스쿼시와 유사한 게일릭 핸드볼과 야구와 유사한 라운더스가 있다.

그 밖에도 축구, 크리켓, 럭비와 같은 영국에서 넘어 온 스포츠를 많이 하는데, 축구나 럭비에 비해서 크리켓은 성적이 좋지 못하다. 오죽하면 2007년 크리켓 월드컵에서 강호인 파키스탄을 3:0으로 이기고 8강에 진출하자, 파키스탄에선 굴욕이라고 난리가 벌어진 적도 있을 정도다. 그리고 영국인인 파키스탄 국대 크리켓 감독인 밥 울머(1948~2007)가 살해당하기까지 했다.

국가대표 축구는 한때 강호였으나 최근 세대교체 실패로 전력이 예전만 못하다. 2017년 2월 현재 FIFA 랭킹 25위에 랭크되어 있다. 자세한 것은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조.

클럽 축구는 국가의 경제 규모의 한계로 세미프로리그로 운영되다가 최근에 1부리그 12팀으로 리그가 재편되었으나, 여전히 대학교 클럽이 참가하고 있다. 왜냐하면 바로 옆나라워낙 거대한 축구 시장이 있어서, 싹수가 있는 선수들은 일찌감치 잉글랜드 축구의 팜 아일랜드를 떠나 잉글랜드 클럽으로 흡수되기 때문이다.

사실 축구보다는 럭비가 더 인기가 많은 편인데, 독특하게 아직도 북아일랜드와 단일팀으로 출전하고 있다. 그래서 독립 이후 국가나 국기 문제에 있어 논란이 계속 있어왔는데, 럭비에 한해서 고유의 깃발을 내걸기로 하고, 95년 Ireland's Call이라는 신곡(?) 국가가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어느정도 그쪽으로 정리되는 분위기. 물론 아직도 더블린 홈경기에 한해서는 아일랜드 국가도 연주되며 이어서 Ireland's Call을 연주한다.[27] 국가대표와 클럽 모두 식스네이션스하이네켄컵 같은 유럽 대항전에서는 종종 우승하는 등, 성적이 준수한 편이다. 2015년에는 뉴질랜드에 이어 세계랭킹 2위를 찍기도 했으나, 월드컵 8강 탈락으로 다시 하락 중인 상황. 월드컵 성적은 좋지 못하다. 아일랜드 내에서는 8강 징크스라고 말이 나올 지경인데, 아닌게 아니라 잉글랜드는 우승, 프랑스는 준우승, 거기에 웨일즈와 사실 한수 아래로 여겨지는 스코틀랜드도 4강에 올라가본 판에 식스네이션스는 심심찮게 우승하면서 8강만 가면 맥을 못춘다. 2015년 럭비 월드컵에서도 몇 수 아래의 아르헨티나를 만나 징크스를 깨나 했으나 43-20으로 처참히 이변의 희생양이 되어버렸다.

필드 하키 역시 인기가 많고 은근히 강한 편이다. 다체로 세계 랭킹 10위권을 유지하지만, 2018년 하키 월드컵에서 여성 대표팀이 준우승을 차지하는 대이변을 연출하여 아일랜드 전체가 흥분하였다. 당시 네덜란드와의 결승전은 공영방송인 RTE가 특별 생중계를 하여 평균 시청률 41%를 달성하였다.

구기 종목 외에는 복싱이 강한 편이다. 아일랜드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꽤 가난한 나라였고, 헝그리 정신이 넘치는 훌륭한 복서들을 많이 배출해냈다. 오늘날까지도 그 명맥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지, 아일랜드가 현실적으로 올림픽에서 메달을 기대할 수 있는 종목은 복싱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골프 역시 대중적인 스포츠다. 스코틀랜드와 자연 환경이 비슷한지라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 코스와 흡사한 모래바람 날리는 해변의 골프장들이 널려 있다. 18홀 정규 코스 외에도 룰을 간소화한 약식 골프가 중년 여성들의 생활 스포츠로 자리잡았다.

영국의 영향으로 경마, 승마 문화도 발달했지만, 도그 레이스가 훨씬 대중적이다.

WWE 프로레슬링 선수 셰이머스, 핀 베일러, 베키 린치와 2016년 현재 UFC 역사상 최초로 두 체급[28] 동시 석권 챔피언인 코너 맥그리거의 고향이기도 하다.

여담으로 무슨 스포츠든 아일랜드 출신 선수가 나오면 관중들은 올레 챈트를 외쳐대기 바쁘다.

17. 여행[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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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스 오브 모어(Cliffs of Moher)

전반적으로 다른 유럽의 관광 명소에 비해 인지도가 다소 낮은 편이다. 배낭여행 일정 중에 아일랜드가 있다고 하면, 10의 8~9은 의아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심지어 나라 이름 때문에 아이슬란드와 혼동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나라를 혼동하지는 않더라도 철자가 Ireland가 아닌 Island라고 알고 있는 사람도 꽤 된다. 일단 둘 다 이니까[29]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섬나라라는 특성상 가는 것 자체가 불편해서인지, 유럽 여행을 갈 때 아일랜드는 제외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한국에서 유럽으로 출발하는 경우 가장 흔한 도착지인 영국을 기준으로, 다른 나라들과는 완전히 반대 방향인 서쪽에 있기 때문에 갔다 오려면 시간을 내서 왕복을 해야 하는 등 여행 코스를 짜기도 애매하다. 그래서인지 동양인 관광객이 발에 채이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아일랜드에는 동양인 관광객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물론 아일랜드로 영어를 배우러 오는 어학연수생들은 시내 돌아다니면 좀 있다 여행하는 사람들도 수도인 더블린만 짧게 여행하고 마는 경우가 많다. 다만 배낭여행객에 비해 유럽여행을 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좀 있는 유럽 내 유학생의 경우에는 예외.

하지만 사람이 많은 더블린 교외만 나가봐도 전체적인 분위기는 좋은 편이고 이미 관광객들로 배가 부를 대로 부른 다른 국가에 비하면 관광객들에게 매우 친절하게 해 준다. 더블린 외에도 골웨이 같은 명소들이 잘 찾아보면 의외로 많이 있으며, 사람이 많고 줄서서 오래 기다리느라 혼잡한 다른 명소들에 비해 여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소매치기와 같은 경범죄를 비롯한 치안 문제도 거의 없다.[30] 소매치기가 극성인 유럽 국가를 방문한 후에 아일랜드에 방문하면 경계심이 풀리고 마음에 안정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 여행하려면 코스가 애매하지만[31] 반대로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북미에서 유럽으로 여행하는 경우는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국적기인 에어 링구스가 미 대륙을 오가는 저렴한 항공편을 제공하기 때문에, 북미 사람들이 특정 국가가 아니라 유럽 전역을 여행하려고 하는 경우, 경비 절약을 위해 아일랜드를 도착 지점 혹은 미 대륙으로 돌아가는 출발 지점으로 택하는 일이 흔하다. 또한 아일랜드계 미국인이 3천만이 넘기에 아일랜드에 관심을 갖는 미국인 후손들이 많기도 하다. 이 때문인지 동양인보다는 미 대륙 쪽에서 온 아일랜드계 고향 방문단 관광객들이 꽤 많다. 그러다 2017년 비긴 어게인 아일랜드편 방영 이후 한국인이 꽤 보이기 시작했다.

아일랜드는 영국처럼 입국 심사가 조금 까다로운 편이다. 이는 영국과 아일랜드가 국경개방조약을 체결해 서로 입국 심사 없이 입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입국 심사가 까다로운 편이다보니 영국으로 무심사 입국할 수 있는 아일랜드 역시 입국심사가 까다롭게 마련이다. 아일랜드에서 영국으로, 혹은 그 반대로 입국할 때는 전용 입국장을 통해 심사를 거치지 않고 입국할 수 있다.

아일랜드의 여행의 포인트는 문화 기행과 자연 경관이다.

문학, 음악, 연극 등 문화 예술이 발달한 나라답게 소프트웨어적인 관광 자원이 주를 이룬다. 길거리나 펍에서 훌륭한 연주자들을 만날 수 있고 전문적인 음악인이라면 지역의 뮤지션들과 조인을 하여 버스킹을 시도해 볼 수 있다. 영문학에 조예가 있다면 유명한 작가들의 흔적을 따라 문학 기행을 즐길 수도 있다. 그리고 영화 원스에서 느껴지는 것과 같은 아일랜드 특유의 우수에 젖은 도시의 경관이 휴양을 원하는 여행자에게는 힐링 포인트이기도 하다. 기네스, 머피스를 비롯한 흑맥주와 제임슨과 같은 아이리시 위스키양조장도 널리고 널린 나라라서 주당이라면 양조장 기행을 추천한다. 특히, 더블린에 위치한 기네스 스토어하우스는 아일랜드 관광의 거의 필수 코스나 다름없어서, 찾아가면 더블린 여행객들이 모두 여기에 모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사람이 많다.[32] 게일릭 게임(헐링, 게일릭 스포츠)에 관심이 있다면 시즌이 있는 여름(6~8월)에 방문해야 한다.

아일랜드의 자연은 인구 과밀 지역인 유럽 도시의 생활에 지친 사람들의 쉼터이기도 하다. 교외로 나가면 완만한 언덕에 푸른 목초지가 펼쳐져 있고 점점이 흩어져 있는 양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골웨이를 중심으로 하는 아일랜드 서부는 땅이 척박한 인구 희박 지역이지만 빙하가 할퀴고 지나간 황량한 풍광으로 자연 경관 여행의 중심지이다. 강한 바람에 휘어져 자란 나무와 척박한 목초지에 돌담이 사방으로 끝없이 세워져 있는 모습을 보면 흡사 우리나라의 제주도를 연상케 한다. 북대서양의 강풍을 온 몸으로 받을 수 있는 해안으로 나가면 클립스 오브 모어(Cliffs of Moher)라는 절벽이 절경이다. 북대서양의 거친 파도의 침식이 300만년 동안 만들어 낸 이 절벽의 높이는 200m. 서부의 황량한 풍광과 더불어 각종 영화나 뮤직비디오의 배경으로 사용되었다. 절벽을 따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는데 목책이나 철책이 없기 때문에 추락에 주의해야 한다. 바다 건너 편에는 판타지 게임이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경관을 가지고 있는 아란 군도(Aran Islands)가 있다. 5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장 큰 섬인 이니시모어(Inis Mor)가 여행의 중심지다. 내륙으로는 코네마라(Connemara) 국립공원이 있는데 경관이 같은 빙하 침식 지형인 스코틀랜드의 하이랜드(Highland)와 비슷하다. 다만, 이러한 자연 경관 명소 대부분은 대중교통으로 찾아가기에 어려움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 미리 조사하는 것을 추천한다.아니면 운에 맡기는 방법도 있기는 하다 현지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으로, 비용이 조금 더 들기는 하지만, 여러 명소들을 직접 버스로 데려다주는 장점이 대중교통을 조사하다 보면 절실히 느껴질 정도로 크다.

18. 동성결혼 합법화[편집]

뿌리깊은 가톨릭의 영향 때문에 한때는 성적으로 보수적인 국가였다. 이혼이 합법화된 게 1995년일 지경.[33] 하지만 가톨릭이 신부들의 잇따른 성추행 사건으로 신뢰를 완전히 상실하고 젊은 층 사이에서 가톨릭 신자가 급감하는 등 사회적으로 개방적인 성향이 크게 확산되었고, 거기에 겉으로는 보수적 성 윤리를 고수하면서 정작 신부들은 그것도 자기네가 가르치는 남학생들을 성추행을 할 정도로 막장적인 가톨릭 신부들의 위선성에 대한 반발심까지 더해짐에 따라 이로 인해 그 동안 금기시되었던 동성애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여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2015년 5월 23일(현지 시각), 동성결혼을 합법화할 것인가에 대한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는데, 결과는 찬성 62.1%로 찬성파의 압승이었다. 이로 인해 아일랜드는 동성결혼을 법제화한 국가인 동시에, 최초로 국민투표를 통해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국가가 되었다.

19. 낙태 합법화[편집]

2018년 5월 28일에는 낙태도 합법화가 되었다. 개표 결과 찬성 66.4%로 또 찬성파의 압승이다. 한 지역만 빼고[34] 전 지역에서 압승한 것은 덤.

20. 기타[편집]

최근 들어 러시아, 이탈리아 등의 국가의 항공사들이 자국 등록번호룰 받지 않고 아일랜드의 EI- 등록번호를 애용하면서 불법 항공기 등록의 메카가 되고 있다(...). 이유는 추가 바람.

20.1. 아일랜드 출신 유명인[편집]

20.2. 아일랜드 국적, 출신 캐릭터[편집]

21. 참고 서적[편집]

한울아카데미사에서 나온 『아일랜드의 역사』(원서명: The Course of Irish History)가 아일랜드의 통사를 잘 서술하고 있다. 사실 아일랜드 역사에 대해 그나마 제대로 서술된 책이 나온 게 이 책과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박지향 교수의『슬픈 아일랜드』[35]뿐이다. 물론 통사이기 때문에 상세한 부분에 있어서는 영어 원서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 외에 『20세기 포토 다큐 세계사』 5권(부제 : 아일랜드의 세기)에서 아일랜드 근현대사와 함께 참고가 될 만한 사진 자료를 많이 살펴볼 수 있으며, 시공디스커버리의 『아일랜드 대기근』에서 아일랜드 대기근 당시 상황을 살펴볼 수 있다. 참고로 지금까지 언급한 서적들이 아일랜드사를 아는 데 번역서로는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아일랜드사가 서양사에서 절대 주류라고는 할 수 없기에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만. 결국 아일랜드 역덕후가 되기 위해서는 영어 능력이 필수이다. 아일랜드어까지 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역사를 주제로 하지 않은 으로는, 푸른 길에서 나온『이승호 교수의 아일랜드 여행 지도』가 있다. 건국대학교 지리학과 교수인 이승호 교수가 안식년에 아일랜드에서 1년간 생활하고 쓴 책이다. 교수의 전공이 전공인지라 인문지리적인 정보가 많다.

22. 관련 문서[편집]

[완전민주주의] [2] 섬 북부의 회색으로 표시된 지역이 영국령인 북아일랜드, 나머지가 본 항목의 아일랜드(공화국)이며 구분선은 카운티(County)의 경계이다.[3] 발음은 (eːʲɾə)이다. 에이러 정도로 읽으면 정확하진 않아도 비슷한 발음이다.[4] Oxford Advanced Learner's Dictionary 8th Edition과 Longman Dictionary of Contemporary English 5th Edition에서는 'aɪələnd'하고 읽으라고 가르쳐준다. 아이얼런드 정도의 발음. 아이어랜드[5] 아일랜드인의 밝은 머리색의 비율은 전체인구에서 38%, 금발은 15%, 적발은 9%.[6] 주황색이 개신교를 상징하게 된 것은 윌리엄 3세 때문이다. 주황색을 국가의 상징색으로 쓰는 네덜란드의 지배자 윌리엄 3세가 명예혁명으로 영국과 아일랜드의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아일랜드의 개신교도들이 윌리엄 3세를 지지했기 때문.[7] 비슷하게 바레인 국기와 카타르 국기가 있다. 원래 둘의 국기는 색이 같았다가 카타르 쪽의 국기가 햇빛에 색이 바랜 것을 그대로 쓰기 시작한 것이다.[8] 얼스터, 먼스터, 렌스터, 코노트.[9] 북아일랜드 앤트림에 있는 9개의 계곡(Glen)을 가리킨다. 뛰어난 쟈연경관으로 이름이 높다.[10] 리머릭에 있는 존 왕의 성을 가리킨다. 922년 바이킹에 의해 건설된 성으로 현재의 성은 1200년 존 왕의 명으로 건설된 성이다. 1690년 윌리엄 3세의 아일랜드 정복 당시 이 성을 두고 여러 차례 격전이 벌어져 아일랜드인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11] 얼마나 가톨릭 신앙이 대단했냐면, 이곳의 공영방송이자 국가 기간 방송인 RTÉ에서 오후 6시에 삼종기도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를 1분간 방송한다. 때문에 이후에 방송되는 뉴스 시작 시간은 6시 1분이다.[12] 영어로는 Saint Patrick (세인트 패트릭), 아일랜드어로는 Naomh Pádraig(니브 파드리그)라고 한다. 원래는 영국에 살던 로마인이었으나, 로마 제국이 영국에서 물러나면서 침략한 켈트족에 의해 잡혀, 아일랜드의 양치기 노예가 되었다. 그러다가 탈출에 성공해서 갈리아(지금의 프랑스)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그리고는 사제가 되어서 다시 바다를 건너 아일랜드로 가서 가톨릭을 전파했는데, 노예로 아일랜드에서 살아온 경험으로 켈트족의 풍습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선교에 성공했다.[13] 대도시 한정. 시골 내려가면 여전히 신정국가 비슷한 분위기가 난다. 당장 프랑스만 해도 파리를 벗어나면 아직도 믿음이 굳건한 바이블벨트삘 나는 동네가 나오고, 영국네덜란드 등 개신교 국가들도 바이블벨트가 존재한다.[14] 한 예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의 아버지인 제럴드 오하라가 1세대 아일랜드계 미국인인데('오하라'라는 성씨도 아일랜드인 성씨인 Ó hEara에서 유래), 이웃 매킨토시 일가가 스코틀랜드 청교도 출신이라는 이유로 매우 싫어하며 절대 교류하려 들지 않는다. 물론 이 매킨토시 일가는 제럴드에게 미움을 사는 요소 이전에, 기본적으로 사교성이 부족해서 다른 마을 사람들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15] 실제로 개신교 신자였다가 독립운동 도중에 가톨릭으로 개종한 사례들도 꽤 된다. 대표적으로 콘스탄츠 매키비치 백작부인.[16] 아일랜드뿐 아니라 프랑스처럼 가톨릭이 대세인 나라들에서는 칼뱅주의 간판을 단 교단이라도 울며 겨자먹기로 자유주의나 신정통주의 신학을 할 수밖에 없다. 안 그랬다간 바로 묵사발 될테니 사실상 가톨릭교도와 세속주의자들이 사이좋게 개신교 목을 조르고 있는 셈.[17] 다른 개신교 교파들과 유사한 방식으로 감사성찬례(=성공회의 예배)를 드린다.[18] 개신교 교리를 따르지만 가톨릭과 유사한 방식으로 감사성찬례를 드린다. 한국에서는 서울시청 옆 성공회 서울대성당에 가면 11시 예배를 이 방식으로 드린다.[19] 가톨릭을 믿는 부유층의 교육은 예수회에서 세운 학교가 주로 담당한다.[20] 신기하게도 세속화된 유럽 북미 지역의 대부분인 기독교 국가들도 낙태나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이런추세로 가고 있다.[21] 캐네디 대통령도 아일랜드계 미국인이었다.[22] 1963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으나 그의 후손을 찾지 못해 대한민국 정부에서 보관하다, 2012년 후손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전달하였다.[23] 얼스터는 9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중에서 6개 주는 영국북아일랜드에, 3개 주는 독립국 아일랜드에 속한다. 그렇기에 엄밀히 말하면 틀린 개념이지만, 얼스터의 대부분이 영국령이라서 흔히 얼스터를 영국령 북아일랜드를 가리키는 대명사로 쓰기도 한다.[24] 이 시의 개념은 한국의 특별시광역시의 개념과 거의 일치한다.[25] 더블린을 중심으로 한 베드타운위성도시들을 포함한 광역 도시권의 인구는 약 190만. 아일랜드의 전체 인구인 450만의 40%에 가깝다.[26] 이 안다는 건 어디까지나 제2언어로써 안다는 것이고,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다는 건 아니다. 그나마 학교에서 가르치고 각종 국가시험에서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니까 공부해서 아는 거지, 일상생활에서는 잘 안 쓰기 때문에 그렇다.[27] 북아일랜드에서는 1950년대 초반 아일랜드 출신 선수들이 영국 국가를 거부하면서 충돌을 우려해 이후 2007년까지 럭비경기가 열리지 못했다. 2007년부터는 Ireland's Call만 연주.[28] 페더급과 라이트급.[29] 사실 아일랜드는 은근히 유명한 것들이 많다. 머피의 법칙, 성 패트릭 축일, Giant's Causeway, 래프러콘, 기네스 등.[30] 펍에서 술마시고 새벽 3시에 강변을 따라 걸어다녀도 위험하지 않다.그렇다고 따라하라는 말은 아니다[31] 그나마 굳이 아일랜드를 여행하려면 암스테르담 스키폴 국제공항이나 파리 샤를 드 골 국제공항,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 헬싱키 반타 국제공항 중 한 곳을 경유해서 가거나 영국 런던 히드로 국제공항을 경유해서 가야 한다.[32] 인터넷으로 방문 시간 예약이 가능하므로, 줄서기 싫으면 예약하고 가는 것이 좋다. 아일랜드의 대부분 관광 명소는 앞서 문단에 언급된대로 여유롭고 한적한 편인 반면, 기네스 스토어하우스는 아침 일찍이 아니라면 대기 줄이 비교적 긴 편이다.[33] 이 때문인지 아일랜드에서 출산율이 인구대체수준인 2.1명 아래로 처음 떨어진 게 1989년이었다. 다만 아직까지도 아일랜드의 출산율은 유럽에서 높은 편이고,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고령화가 덜 진행된 편이다.[34] 그 지역도 48%:51%로 불과 3% 차이였다.[35] 단, 이 책은 박지향 교수의 뉴라이트 성향이 반영되어, 아일랜드의 독립운동을 평가절하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정말 안타까운 건, 한국에서 그나마 아일랜드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게 박지향 교수뿐이라는 사실. 그래서 국내에 번역된 아일랜드 역사 관련 서적은 모두 박지향 교수의 감수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