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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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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의 숫자는 수용소의 번호 / 북창수용소의 경우 북한 인권위서 폐지로 판단했으나 사실상 다시 부활함.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운영

교화소

(1) 개천 교화소

(3) 신의주 교화소

(4) 강동 교화소

(8) 용담 교화소

(12) 회령 전거리 수용소

(22) 오로 교화소

(25) 청진 교화소

(77) 단천 교화소

관리소

(14) 개천 수용소

(15) 요덕 수용소

(16) 화성 수용소

(18) 북창 수용소

집결소

청진 농포 집결소

신의주 집결소

무산 집결소

혜산 집결소

온성 집결소

노동 단련대

온성 노동단련대

영광 노동단련대

명칭 불명

대흥 수용소

아오지 탄광

철산 탄광

폐지

관리소

(11) 경성 수용소

(12) 창평 수용소

(13) 종성 수용소

(18) 북창 수용소

(21) 단천 수용소

(22) 회령 수용소

(23) 덕성 수용소

(24) 동신 수용소

(26) 승호 수용소

(27) 천마 수용소

명칭 불명

동림 수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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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통일 이후 예상4. 패러디5. 같이보기

1. 개요[편집]

阿吾地炭坑 / Aoji Coal Mine

북한함경북도 경흥군에 있는 탄광. 광복 당시 행정구역은 함경북도 경흥군 아오지읍 일원이다.

'아오지(阿吾地)'라는 지명은 동북 방언으로 '두 물이 만나는 곳'이라는 설, 또는 '아, 오지마오.' 에서 유래했단 설도 있다.

과거 백학산 남쪽의 웅기읍과 함께 경흥군의 양대 중심지로 번영했다. 정작 옛 군청 소재지였던 경흥면은 이 때도 쩌리였었다(...) 1952년 구 신아오지리 지역에 경흥읍을 설치하고 1967년 아오지 탄광을 6.13탄광[1]과 오봉 탄광으로 분할, 1981년에 구 아오지리를 학송리로 개편하면서 공식적으로 아오지라는 지명은 북한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그럼 이제는 "학송리 탄광"?

2. 상세[편집]

이곳에서는 주로 갈탄이 나오며, 이른바 함북 남부탄전이라는 길주-명천 지구대 일대와 함께 이곳은 한반도에서 둘 뿐인 갈탄 채굴 지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탄질은 휘발분 41%, 고정탄소 31%, 발열량 6,225cal으로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매장량은 약 1억 5천만 톤으로 추정했는데 설비의 노후화로 채광을 못 하는 것으로 보인다. 2015년 미국 자유아시아방송은 함경북도 탄광 대다수가 설비 노후화와 자재 부족으로 채광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1936년 일제강점기에 석탄 액화 시설을 세워 인조 석유를 만드는 공업지대로 유명했다. 1940년 상하면이 아오지읍으로 승격해, 일제 말기에는 면적 205.46㎢[2], 인구가 5만 명에 가까울 만큼 큰 읍이었다. 만일 승격 되었으면 아오지시(阿吾地市)인가(...)[3]

하지만 이곳은 저런 자원이 문제가 아니라 바로 아오지 탄광에서 일하는 사람들 때문에 유명하다. 평안북도 철산군철산 탄광과 함께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양대산맥이며, 일반인에게 있어서 인지도는 이쪽이 압도적으로 높다. 바로 1970~1980년대의 반공 교육에서 정치범 수용소의 대명사로서 많이 나와서였다. 사실 탄광 이름은 유월십삼일탄전(6.13탄전)으로 바뀐 지 오래지만, 남쪽에서는 여전히 아오지 탄광이다. '아오지'라는 그 미묘한 어감도, 이쪽이 철산 탄광에 비해 유명해지는 데에 한몫 했다.

해방 뒤 6.25 전쟁 직전까지 북한 내 반대파, 신의주 학생의거의 참가자 등을 여기로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박명림은 6.25 전쟁 때 미군이 북한 지역에서 노획한 문서인 아오지 이송명부 등을 토대로 전쟁 전에도 북한 안에 조직적인 반대 세력이 있었다고 할 정도였다.

이 밖에도 한국전 당시의 반대 세력[4]을 감금하는 용도로도 써서, 전쟁시 월남자들을 거쳐 정치범수용소로 드러났다. 이쪽 관련 서적에 따르면 철산 지역의 모나즈 광산도 꽤 악명 높았다고.

지금도 많은 정치범들이 험악한 노동 조건에서 강제적으로 다이나믹 로동을 한다고. 국군 포로들도 있다는 증언이 있다. 북한 군인들은 복무하다 사고쳐서 불명예 전역하면 주로 이곳으로 간다. 탄광이 고갈해도 그냥 막장 파느라 못 나오는 모양이다.

북한의 스포츠 선수들이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같은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 하면 이리로 온단 소문을 사실처럼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거짓이다. '인민 루니' 정대세는 2012년 한 예능방송에 출연해 이 루머에 대해 해명하기도 했는데, 올림픽이나 월드컵에 진출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 선수들과 감독들의 지위도 과거에 비하면 높아졌다고 한다. 그래서 감독이 아오지에 가는 일은 절대 없다고. 애초에 그게 사실이라면 스포츠 대회 첫 출전해서 메달 못따면 다 선수 그만 둬야하는데 그러면 선수 씨가 마른다(...). 실제로는 부상, 기량 하락이 아니면 각 종목 대표선수들은 각종 대회에 계속 나온다. 그리고 애초에 거기서 운동선수 정도면 핵심계층 내에서도 최상위권[5]이다.

그러나 한국 선수와의 대결에서 패배하는 경우에는 탄광에 끌려갔다는 증언이 있다. 전 북한 유도 국가대표 선수였던 이창수는 북경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한국의 정훈에게 패한 후 삼진탄광에 끌려갔다고 하였다.[6] 다만 자신이 탄광에서 일한 기간은 단 2일이라고... 북한에서도 어차피 해당 선수들로 계속 메달을 따야하기에 오래두지는 않는다고 한다.

또한 아오지까지는 아니더라도 노동교화소 수준의 처벌을 받는다는 증언이 있다. 전 북한 리듬체조 선수이자 탈북자 이경희는 "성적이 안좋으면 아오지에 가나"라는 진행자의 질문에 한국 쪽 사람들과 만나거나 해서 성적이 떨어지면 "처벌"이 있을 수 있다는 식으로 말 한적이 있고 후지모토 겐지는 자기 회고록에서 국제대회에서 부진했던 축구선수들을 강제로 감자농사에 참여시키도록 고위 간부가 시켰다고 증언했다.동무 봄감자가 맛있디

3. 통일 이후 예상[편집]

일단 학송리를 그대로 쓸 이유는 없으니, 당연히 나진시 아오지읍 아오지리로 바뀌는 것이다. 그런데, 전술했듯, 아오지탄광의 유명세(...)가 너무 크다[7]

4. 패러디[편집]

  • 과거 MBC의 개그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웃으면 복이 와요>에서 <오데로갔나>라는 노래에서 풍자했다. "잡히기만 해봐라 아.오.지.야요~" 하는 그 노래.

  • 굽시니스트가 본격정치만화에서 이를 패러디해서 "아오지에 아, 오지 좀 말지"라고 했다(...).

  •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에서 살인자한테 잡힐 경우, 맵별로 갈고리가 있는 지하실이 있는데 이곳에 끌려가는 걸 아오지 탄광에 끌려간다고 말한다. 출입구가 하나 밖에 없어서 한번 끌려간 이상 탈출이 극도로 힘들기 때문이다.

  • 웹툰 군인RPG에서 오아지 탄광으로 패러디되었다.

  • 대한민국의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루어냈던 거스 히딩크 감독이 북한 대표팀을 맡고 싶다고 했는데, 댓글이 "동무 4강 못 가면 어디 가는 지 알지?"였다(...).

  •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출연하는 북한 인민군 중대장 출신인 새터민 정민우씨가 남한에 정착하여 아오지막노동을 해서 모은 돈으로 '평양총각식당'을 개업했는데 메인메뉴가 "아오지 돼지국밥" 이었다고.. 그런데 평양총각이 아니고 정말 아오지의 맛이라서 망했다 카더라.

5. 같이보기[편집]

[1] 룡연로동자구 소재다.원래의 아오지 탄광은 이쪽이며, 이 탄광을 끼고 번영했던 곳이 구 아오지리다.[2] 당시 청진시의 면적과 비슷했다.[3] 만일 남북분단이 없었다면 함남 단천읍과 함께 빠르면 1946년, 늦어도 1949년에 아오지부나 아오지시로 승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랬으면 향후 1995년에 나진+경흥+아오지 통합 가능성도 있기도 하고.[4] 구월산 유격대나 치안대 관계자[5] 안그러면 해외 경기를 뛰러 갔다가 탈북해버리기(...) 때문이다.[6] 모란봉클럽 83회[7] 얼마나 유서깊은(?) 곳인지 북한의 'ㅂ'자도 함부로말할 수 없었던 군사정권시절에도 아오지탄광은 널리 알려져 있었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