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원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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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메리카의 원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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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메리카의 원주민. 참고로 그림의 주인공은 문명 5에서도 잉카의 지도자로 등장하는 파차쿠티 황제

미국식 영어: Native Americans, American Indians
캐나다 영어: First Nations, Aboriginal Peoples, Indigenous People
영국식 영어: American Indian - 'Indian'이 인도(인/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영국에서는 보통 American Indian이라고 한다.
가이아나 영어: Amerindian
프랑스어: Premières Nations, Amérindien
스페인어: Pueblos indígenas, Amerindio, Aborigen(아르헨티나식), Indio
네덜란드어: Indianen
포르투갈어: Povos ameríndios, Índio
터키어: Kızılderili - '붉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 즉 '홍인'이라는 뜻이다. 서구에서는 인종차별로 여겨질 수 있는 단어지만, 터키어에서는 이를 대체할 만한 단어가 아직 없다. 마찬가지로 '흑인'을 뜻하는 터키어는 아랍어에서 가져온 zenci, 혹은 '검은 사람'이라는 뜻의 siyahi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1]

1. 정의2. 기원3. 클로비스인4. 호칭5. 유럽인들의 이주6. 북미 아메리카 원주민의 사회와 문화7. 남미 원주민의 사회와 문화8. 농경
8.1. 아즈텍의 식문화
9. 원주민의 현재10. 북미 원주민 복권과 대중문화11. 북미 원주민- 창작물에서12.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목록
12.1. 북극권12.2. 북아메리카12.3. 중앙아메리카12.4. 남아메리카
13. 아메리카 원주민 출신 실존 인물14. 아메리카 원주민 캐릭터
14.1. 아메리카 원주민을 모티브로 한 부족/인종
15. 관련 문서

1. 정의[편집]

말 그대로 아메리카 대륙원주민. 그런데 미대륙이 남북미 합쳐서 약 42,549,000km². 남한의 약 425배 정도고 아시아(44,579,000km²)와 거의 맞먹는 크기이다. 땅도 넓고 사람도 많으니 지역별로 천차만별의 문화와 생활상을 보인다. 특히 중남미의 멕시코나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 일대는 아메리카판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고 할 만큼 많은 국가들이 탄생했다. 혈통상 분류로는 프로토 몽골로이드와 초기 북아시아 원주민과 유사점이 크다.[2]

2. 기원[편집]

홍적세 말기인 기원전 18000년 경 베링 육교를 건너 알래스카에 처음 정착했고, 이들을 클로비스 수렵인이라고 부른다. 그 이후 만년빙에 틈이 생기자 캐나다 이남까지 갈 수 있었으며, 아메리카 남단의 파타고니아까지 도달하는 데에는 1000년이 걸렸다. 이 시기에 아메리카의 대형 동물들이 대거 멸종했는데, 때마침 간빙기가 끝나머 빙하가 녹기 시작해서 생성된 대량의 담수가 해류를 막으며 대륙 전체에 미니 빙하기가 도래했으며, 대형 동물군이 모두 절멸했다.

3. 클로비스인[편집]

아메리카 최초의 문화는 클로비스(Clovis) 문화라고 불리며, 클로비스 문화를 일군 아메리카 최초의 사람들을 클로비스인, 클로비스 문화의 유적이 발견된 곳을 클로비스 포인트라고 부른다. 일반적인 설명은 클로비스인들이 바로 베링 해협을 건너온,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조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클로비스인들은 시베리아에서 베링 해협을 통해 들어온 것이 아니라 유럽에서 대서양을 건너서 들어왔다는 주장도 있다. 빙하기에 북반구 전반에 걸쳐있던 빙하 북부의 빙하 근처 해안을 따라 배를 타고 건너갔다는 것. 많은 학자들이 당시 인류의 항해 능력에 회의를 보내고 있기 때문에 정설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베링해를 배로 건널 능력이 있었다는 주장조차 회의적인 시각을 받는 마당인데, 대서양을 배로 건넜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황당하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당한 주목을 받은 학설인 것은 사실이며, 나름대로 분명한 근거도 있다. 클로비스인들이 시베리아에서 건너왔다면 시베리아 쪽에서 클로비스 문화와 유사한 계통의 석기가 발견되어야 하겠지만, 클로비스인들의 화살촉을 비롯한 석기가 시베리아 쪽과는 계통이 상당히 달라서 잘 연결되지 않는 반면 오히려 유럽의 것과는 유사하기 때문이다. 또한 클로비스 포인트가 비록 북아메리카 전 지역에 분포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중에서도 미국 동부 해안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는 점도 근거가 된다. 이 학설에서는 당시 미 동부는 일시적으로 온화한 기후였기 때문에 클로비스인들은 이곳에서 생활하다가, 빙하가 북대서양으로 흘러들어 북대서양이 급격히 냉각되면서 북대서양 부근의 해류 순환에 마비가 오면서 미 동부 지역이 저온건조한 기후가 되어서 미 중부 내지 서부 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다만 환경에 따라서 서로 다른 지역의 석기가 비슷하게 제작되었을 가능성도 없진 않으며, 동부지방을 중심으로 발견되는 이유는 그 시기에는 다른 지역들보다 인간이 살기 좋은 환경이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한편 2014년 유카탄 반도의 수중동굴에서 발견 된 클로비스인이 선사시대의 시베리아의 인종과 유전적으로 비슷하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순서는 다르더라도 그들 역시 베링 해협을 건넜다는 주장이 다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아니면 최소 혼혈되었거나.

클로비스인들이 나타난 후에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에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대형 포유류들이 대거 멸종했으며, 이는 흔히 인간이 과도한 수렵으로 생태계를 무너뜨려 포유류들이 멸종하고 사냥감을 잃은 인간도 멸종 직전에 몰린 것으로 해석되지만, 당시에 극심한 기후변화가 일어나거나 다른 자연재해, 전염병 등의 이유로 대형 포유류가 사라진 것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4. 호칭[편집]

또 다른 말로 인디언(영어)/인디오(스페인어)라 부르기도 한다. 대개 인디언은 북아메리카 대륙 원주민을 이르는 것이고, 인디오는 남아메리카 원주민을 말한다. 뭐, 그게 그거지만. 인도 사람을 영어로 인디언, 스페인어로 인디오라 하니까. 이는 콜럼버스를 위시한 서양인들이 이곳에 처음 도착하고 나서 인도인 줄 알아서이기도 하고, 원주민의 뿌리가 아리안 계통의 인도 쪽이라고 생각한 탓이기도 하다. 물론 비하하기 위한 용어로 쓰이기도 했다.

비슷하게 홍인, 혹은 홍인종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들이 붉은 점토로 치장하고 붉은 가죽을 둘러쓴 모습에서 유래했다고 하기도 하고, 중북부 지방에서 초원 생활을 했던 원주민들은 주로 피부가 발갛게 익었기 때문에 이렇게 부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홍인종이란 표현은 현재 아메리카 원주민들 사이에선 으로나 통한다. 미국 내에서 원주민들보고 부르는 욕인 'Dirty Red Skin'이 그 예다. 노예로 팔려나간 원주민들 중 홍인종이라 하여 유랑단에 인종전시를 당하기도 한 치욕적인 역사도 있다.

더불어 인디언, 인디언 하면 원주민들은 물론 인도(즉 인도 공화국)와 혼동될 우려가 있으니 꼭 아메리칸 원주민이라고 부른다.[3] 인도 영자신문이 인디언 타임즈, 인디언 포스트, 인디언 헤럴드 같은 신문들이다. 더불어 인디언 관련 뭐라고 하면 죄다 인도와 연관된 것이다. 용어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지금은 인디언이나 홍인이란 말 대신 미국에서는 네이티브 아메리칸을 쓰고, 캐나다에서는 퍼스트 네이션스 퍼스트 멘 라고 불리다 점점 애보리지널 피플즈라는 용어로 대체되고 있으며, 스페인어권에서는 각 민족명을 호칭하는 것으로 대체한다. 그래도 일단 굳어진 용어가 있어서 인디언 전쟁 같은 경우는 그대로 작성한다.

그러나 정작 미국의 아메리카 원주민들 쪽에서는 스스로를 "아메리칸 인디언"이라 부르는 것이 알맞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설문 조사의 결과도 있다. 인디언 문서 참고 바람. 아마도 워낙 명칭이 굳어진 탓일 듯하다. 미국에서는 원주민들이 '아메리칸 인디언'이라는 말로 불리기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많으며 설사 '아메리카 원주민'을 선호하는 원주민들조차 Indian을 차별적인 용어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다시 'American Indians'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한때(90년대~2000년대 초반) 미국의 공공기관에서는 인디언이라는 단어가 거의 퇴출되었지만 2010년대 부터는 유명 언론매체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American Indian'이라는 말을 다시 사용한다. 미국 정부 기관에서조차 아메리칸 인디언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미국 통계국 그렇다고 'Native Americans'라는 말이 사라진 건 아니고 혼용되고 있다. 물론 여전히 'Redskin'이라는 말은 인종차별 논란이 있으니 함부로 사용하면 곤란하다.

남아메리카도 북아메리카보다 나라 숫자도 훨씬 많고 다양한 원주민족이 사는 곳인만큼, 종종 자신을 스스로 '인디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원주민들은 어지간하면 자기 민족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선호하며, 외부인 입장에서는 항상 그렇게 생각하고 인디오라는 표현을 먼저 사용하지 않는 편이 낫다.

5. 유럽인들의 이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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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인구는 지역마다 편차가 심해서 그렇지 일단 전성기였던 14~15세기 당시 잉카 제국의 인구가 1500만명, 아즈텍 제국의 인구가 800~1000만명이었다.[4] 멸망하기 전에는 잉카 제국이 1200만명, 아즈텍 제국이 500만~600만명이었다. 잉카 제국은 동시대 오스만 제국과 동급 혹은 그 이상으로 인구가 많았으며, 중앙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제도화된 전쟁을 통해 주기적으로 인구 조절까지 이뤄지고 있었다. 다만 유럽인이 오기 전에도 인구 밀도가 유라시아의 정주문명지역 수준인 곳은 전체 아메리카 대륙에 비해 코딱지만한 중미 지역과 안데스 산맥 지역 정도이고, 나머지 아메리카 대륙 대부분의 지역은 인구 밀도가 매우 낮았다.

그리고 북아메리카 원주민, 특히나 미국 같은 경우는 황량한 그랜드 캐니언 같은 곳에서 살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데, 당연하지만 아니다. 유럽인들이 이주하기 이전에는 당연히 더 사람 살기 좋은 동부나 서부의 해안가에서 몰려 살았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은 훗날 유럽인들이 들어오면서 내륙 쪽으로 다 쫓겨나다 보니까 황량한 곳에서 살게 된 것이다.

역사시대에 북미를 처음 도달한 유럽인은 아이슬란드 - 그린란드를 징검다리처럼 건너 캐나다 지역까지 내려온 해양민족 바이킹이었다. 이는 빈란드 사가에 잘 드러난다. 그러나 이들의 정착은 소빙기 등의 이유로 실패한다. 그 이후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위시로 한 유럽 탐험가들이 1492년 서인도 제도에 도달하면서부터 유럽인들의 아메리카 정복이 시작된다.

앵글로 아메리카의 경우, 멀쩡하게 잘 살던 중 갑툭튀한 백인들이 풍토병 + 농업 실패로 말라 죽어가는 걸 주고 옥수수 줘서 먹여 살려줬더니, 갑자기 자기들을 미개인 취급하며 개화를 외치며 미국 정부에게 고난과 핍박을 당해왔다... 고 정리된다. 엄연히 따지면, 유럽에서 온 초기의 이민자들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어중이떠중이들이 세운 버지니아의 제임스 타운. 이들은 후일 미국 남부의 시조가 된다. 다른 하나는 청교도들이 매사추세츠에 세운 플리머스 항. 이들이 후일 미국 북부의 시조가 된다. 전자의 경우는 도착했을 때부터 원주민들과 충돌했지만,[5] 후자의 경우는 초기에는 비교적 잘 지냈다.[6]

추수감사절로 알려진 Thanksgiving Day는 초기 이주민들이 북미 대륙에서 적응하지 못해서 반 죽어가고 있는 걸 원주민들이 겨우 살려서 옥수수 농사 짓는 법 등을 알려줘 5년 만에 겨우 수확에 성공하자, 그것을 감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날이라는 동화가 있지만 말 그대로 동화이며 사실이 아니다. 1960년대 후반부터 미국 정부가 정책적으로 원주민들의 권익을 보장해주기 시작함에 따라 정책적인 뒷받침을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 실제로는 이주민들이 유럽에서의 관습을 계승한것. 이와 동시에 원주민에 대한 세금 감면, 원주민 보호구역의 면세 혜택 등이 이 시기에 만들어진다.

물론 원주민들도 반드시 백인들에 우호적이지만은 않고 가끔은 약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좋은 일화로 네덜란드인들이 뉴암스테르담(오늘날의 뉴욕)을 단돈 24달러로 산 일화가 있다. 이 사실이 간혹 원주민들의 비정치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며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호도되기도 했는데, 진실은 그 지역에 살고 있는 부족과 대치 중인 부족이 백인이 그 땅을 눈독 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 부족으로 위장하여 접촉, 자기들 땅도 아닌데 헐값에 팔아넘기고 분쟁을 조장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당시는 백인들이 다른 세계에서 온, 작은 이방인 부족이라는 인식이었고, 만약 대치 중인 두 부족 모두 결국 백인들이 했던 만행을 알았더라면 분쟁을 조장하지 않고 연합해서 싸웠을 것이다. 잉카나 아즈텍 같은 문명국의 경우 유라시아 다른 문화권에 비할 수는 없으나, 정복 및 권력다툼 등의 암투극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결국 이 바닥도 사람 사는 동네였다는 것(...) 원주민도 같은 사람이며 당연히 부족간 분쟁과 전투는 있었다. 하지만 북미 원주민의 경우 분쟁에 있어 명예와 의리를 중요시했으며, 다른 '문명' 국가들처럼 학살이나 기타 만행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즉, 전투는 있었으나 전쟁이란 없는 사회였으며, 전투에 있어서도 살해보다는 제압을, 대규모 전투보다는 지도자 둘만의 일기토, 더욱이 포로로 잡은 상대편 적이나 특히 민간인에 대해서는 오히려 극진히 대접해 주었다. 진정한 대인배들 오오 이 역사적 사실들은 이후 백인들과의 전쟁에서 명실공히 드러나니 참고해 보길 바란다. 백인 여성과 미성년자가 포로로 잡힌 경우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았고, 오히려 말을 같이 타고 살던 곳으로 되돌려 주었다.

또한 원주민이 면역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병균을 득실득실하게 가지고 있는 유럽인은 원주민에게는 살아있는 세균 병기와 같은 존재였다. 레지던트 이블 실사판 콜럼버스 시절의 유럽 도시는 하수 시설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상상 이상으로 불결했기에 이 문제가 더 심각했다. 파리 같은 도시들은 말할 것도 없고. 괜히 유럽에서 향수가 유행한 것이 아니다. 여기에 현재 인간의 질병은 대개 가축의 질병에서 기원한 것이 많은데, 아메리카 대륙에는 가축화할 만한 대형 포유류가 소빙하기 때 대부분 멸종하고 없어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상대적으로 이런 질병들에 취약했다. 가축과도 같이 잠을 자던 (혹은 같은 공간에서 자던) 중세 유럽인들에게는 이러한 동물 면역력이 있었던 것.[7]

때문에 유럽인이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것만으로 전염병이 퍼져서 도시 국가급의 문명이 붕괴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총, 균, 쇠에 따르면 최대 100%의 사망률도 나왔다고. 일단 아즈텍-잉카 일대에서만 수백년에 걸쳐서 몇천만 명이 죽었다.[8]

이러한 병원균의 존재는 뜻하지 않게 개척자들의 삶에도 영향을 끼치곤 했는데, 원인불명의 병으로 부족민이 픽픽 쓰러져나가는 와중 개척자들만이 멀쩡히 돌아다니는 것을 본 원주민들이 이를 저주로 오해하고, 선의를 가지고 접촉한 개척자(주로 선교사)들을 살해하는 일들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오레건 주의 휘트먼 가족이 있었다. 이 가족은 부족민의 대다수를 홍역에 의해 잃은 카유세 부족에게 살해당했다.

한편, 처음엔 우연히 병을 옮기던 백인들은 원주민들의 약한 면역력을 알게 되자 나중엔 고의적으로 병을 퍼뜨려 원주민 인구를 줄이는데 노력하는 악랄한 모습도 보여준다. 질병 외에도 알코올에 면역력이 없는[9] 원주민들에게 선물이랍시고 도수 높은 술을 마구 뿌려댔고, 그 결과 술에 대한 위험성을 모르던 많은 수의 원주민들이 알코올 과다섭취 등으로 생긴 병 때문에 죽어나갔다.

그 결과 1500년 경 멕시코를 포함한 북아메리카만 총 인구 3000만 이상이었던 것이 한때 140만까지 줄어들었다. 100%의 사망률을 보인 곳은 콜럼버스가 처음 '발견'한 히스파니올라 섬. 원래는 25만 명에 달하던 원주민(아라와크 족)의 숫자가 1515년에는 약 5만 명이 되더니 1550년에는 겨우 500명만이 살아 남았고, 1650년에 이르러서는 0명이 되었다.[10] 정확히는 순혈 원주민[11]이 학살과 질병로 멸종한 것이다.

현재 아메리카 대륙에서 백인, 흑인, 메스티소만 바글거리지, 원주민들을 찾기 힘든 이유가 다 있다. 2006년 미국 통계청의 조사 결과, 미국에 거주하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총수는 알래스카하와이를 포함하여 400만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왔다. 사실 이것도 높은 출산율 + 의학 기술 향상의 영향으로 많이 늘어난 수치로 1900년에 25만 명에 불과했다. 또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인식이 시궁창 수준이었기 때문에, 인디언의 피가 섞인 혼혈인들이 자기가 아메리카 인디언이라고 응답하기 꺼려했었기에 좀 적게 집계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멕시코(약 1500만 명)와 캐나다(약 140만 명)는 좀 사정이 나았다. 이쪽은 20세기 중, 후반에 미칠 듯한 인구 증가 버프 덕을 봤다. 1950년의 멕시코 인구가 2829만 명이었는데, 2000년엔 1억 387만 명 수준으로 증가했다. 그래서 멕시코인의 대다수가 어떠한 형태로든 원주민의 피가 섞인 걸 감안해도 많이 증가한 것.

그래서 심지어는 중앙아메리카와 남미의 아즈텍과 잉카 제국 멸망 과정에서 그들의 내분 과정이나 병크를 무시하고 그저 지나치게 스페인 침략자(콩키스타도르)들만 잔인하게 묘사하는 게 정작 북미에서 원주민들의 준 전멸을 달성한 영국-북미 사관의 영향이란 말도 있다. 아즈텍 제국을 멸망시킨 에르난 코르테스말린체의 관계를 보아도 이는 분명하다. 특히 슬픔의 밤 사건과 오툼바 전투 때는 상당수의 틀락스칼텍인들이 스페인 침략자들을 도와 같은 인종인 아즈텍인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이는 당연한 결과였다. 아즈텍 항목에서 볼 수 있듯 아즈텍인들은 귀족들을 위시로 한 고급 문화(...)의 일종으로 식인을 즐겼는데, 그 공급처가 바로 틀락스칼텍였다. 물론 틀락스칼텍인들이 순순히 자기 몸뚱이를 내줄 리는 없고, 아즈텍이 무력으로 틀락스칼텍인들을 끌고 간 것이다. 그것도 틀락스칼텍를 멸망시킬 만한 무력이 있었지만, 인간목장의 용도로 쓰려고 남겨두었다. 설령 잡아먹지 않더라도 가혹한 세금으로 틀락스칼텍을 착취했다. 즉, 틀락스칼텍인들의 입장에선 아즈텍이 스페인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 하지는 않았다는 것. 심지어 그보다 잔인하게 잉카 제국을 멸망시킨 프란시스코 피사로도 그랬다. 여하간 스페인 침략자들은 그나마 좀 더 공존에 치중했다는 평. 특히 스페인 쪽에서는 1550년 바야돌리드 논쟁 이후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자신들과 같은 문명인으로 공식 확정하고 노예화도 금지시켰다. 게다가 인신공양 관습을 철저하게 금지하며 가축을 공양하도록 했다.

6. 북미 아메리카 원주민의 사회와 문화[편집]

이름 짓는 방식이 상당히 특이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빛나는 나뭇가지', '주먹 쥐고 일어서', '늑대와함께춤을' 같은 식으로. 그러나 사실 다른 문화권 이름도 별 차이는 없다. 영어 이름도 뜻풀이해서 표기하면 특이한 이름이 된다. 록펠러는 돌절벽, 스미스는 대장장이, 셰익스피어창을 흔들다. 즉 고유명사를 번역함으로써 생긴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앞의 원주민 이름을 한자로 풀이하면 光枝(광지), 拳立(권립), 豺舞(시무)가 된다. 한국 역시 한자 이름은 성명학에 의해 일부러 뜻이 되지 않게 지은 이름들이 많다. 사실 이름 자체보다는 이름을 짓는 방식에 그 특징이 있다. 원주민 부족들은 아이가 어느 정도 크게 되면 그 아이의 특성을 따서 이름을 짓는다고 한다. 예를 들어 굼뜬 아이는 '느린 거북'이란 이름을 붙여준다거나. 물론 위키니트 사이에서 제일 유명한 것은 단연 오타쿠웨이

정치적인 면과 종교적인 면은 다음과 같다.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이들은 추장을 중심으로 하는 부족 사회가 아니다. 부족마다 체제는 다르지만, 기본적으로는 사회의 연장자나 능력이 알려진 젊은이들을 포함하여 회의를 개최, 만장일치 혹은 다수결의 결과로서 부족의 결정이 내려졌다.

추장이란 이들이 회의 결과 뽑은 공무원을 지칭하는 단어이고, 1명이 다스리는 군주 체제가 아닌 직접민주정치의 형태였다. 수렵을 주로 한 경우는 이런 경우[12][13].

아메리카 원주민의 정치 체계가 현대 민주주의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유럽에서 온 이주민들에게 원주민들의 정치 체계는 유럽식 왕정과는 다른 매력적인 대안으로 여겨졌으며, 이것이 뒤에 궁극적으로 미국의 정치체계를 민주주의로 만드는 데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다만 큰 근거는 없는 이야기다. 무엇보다도 유럽인 자신들부터가 유구하고 풍부한 공화정의 전통을 갖고 있다. 당장 미국을 지배하던 영국부터가 의회제도를 가지고 있었다[14].

추장은 주로 전투추장 국방부 장관과 수렵추장 산업자원부 장관, 그리고 위차샤 와칸(wichasha wakan)으로 불린 제식추장으로 나뉘어졌다. 수우족 언어로 위차샤는 '남자', 와칸은 이해할 수 없는 '신성한 권능'을 의미. 수우족이 믿는 위대한 정령 와칸탕카에도 들어가는 말이다. 물론 평화추장이나 농경추장 같은 것도 있다. 추장만 붙으면 다 말 된다 유명한 전투추장으로는 타탕카 이요타케(앉아있는 소, 일명 시팅 불)가 있으며 타탕카 이요타케는 후에 위차샤 와칸도 겸한다. 위차샤 와칸은 태양춤을 춰 예언하는 역할을 맡았다.

태양춤은 제식 기간 동안 외부 부족과 접촉하지 않고 미리 축적해 놓은 식량을 사용하며 4일 동안 축제를 즐긴 후, 위차샤 와칸이 축제 마지막에 무리의 한가운데로 들어오며 시작한다. 무리는 둥그렇게 원을 형성하여 와칸의 태양춤을 보게 된다. 태양춤은 축제 기간 내내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아 매우 몽롱해진 위차샤 와칸이 담배나 마약류를 섭취하여 혼미한 상황에서 창으로 자신을 찔러 피가 몸을 적신 상황에서 창을 가운데 꽂고 그 주변을 춤을 추며 도는 의식이다. 피를 뒤집어쓰는 부분은 부족별로 차이는 있지만 초원 지방의 수우족은 창을 사용했다. 아예 피를 보지 않고 춤을 추는 부족도 있다. 극한의 육체 상황에서 위차샤 와칸은 환각을 보게 되고, 보지 않더라도 의식이 끝난 후 첫 잠자리에서 꿈으로 계시를 받게 된다. 이 계시는 상당히 중요한 메시지로 부족 구성원들에게 전달되었다.

1889년 위차샤 와칸인 워보카가 창시한 2차 유령춤 운동 역시 위차샤 와칸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나타낸다. 유령춤은 죽은 자의 부활과 내세의 안정을 기원하는 춤으로, 덕이 있는 자들이라면 파이널 판타지 10유우나가 춘 춤을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워보카는 파이우트족의 위차샤 와칸으로, 그의 아버지인 워드지워브는 기존의 유령춤을 크게 유행시킨 사람이었다. 그는 청소년기에 데이비드 윌슨이라는 백인이 운영하는 농장에서 일을 해서 윌슨이라는 이름과 기독교적인 내세 사상을 받아들이게 된 배경이 있다. 워보카는 태양춤 의식에서 극도로 심한 환각을 보게 된 후 며칠만에 깨어나, 죽은 자들이 부활하고 백인들은 자신들의 영역으로 쫓겨나며 죽은 들소들이 다시 떼를 지을 것이라는 종교적 의미가 다분한 예언을 발표한다. 그는 유령춤을 추어 내세의 구원자(메시아)가 강림할 것을 빌어야 한다고 말하였고, 이는 원주민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미국은 이 춤의 유행에 마치 악마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대하였으며, 춤 추기를 그만두지 않는 원주민들을 대량 학살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운디드니 학살사건이 있다.

아메리카의 여러 원주민들은 특유의 자연철학적 사상을 깊이 있게 발달시켰는데 이미 근대 유럽의 깨어있는 지식인들, 장 자크 루소에라스무스 등은 원주민들의 세상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아메리칸 원주민 사상-철학 관련 저서들이 많이 유명하며, '시튼 동물기' 로 유명한 어니스트 톰슨 시튼 역시 원주민 사상에 관련된 저서를 남겼고, 자신 역시 원주민들과 많은 교류를 하였다. 그는 아예 원주민들 이름을 짓고 지냈으며, 그들에 대한 보호책과 헐리우드 영화에 대한 왜곡을 성토했다. 1939년작인 존 웨인 주연 영화 '역마차'를 본 시튼은 자서전에서 "백인들이 (지나가는 백인들을 가차없이 마구 죽인다며) 구역질 나는 왜곡으로 학살을 정당화하는 것이 계속 생길 텐데 우려스럽다"고 했을 정도이다.

만악의 근원 중 하나인 담배를 재배했다. 그걸 퍼뜨린 건 유럽인들이지만... 원주민들은 담배를 오로지 종교적, 의식적인 용도에서 부족 샤먼이나 성인 남성 위주로 사용하는 정도였으며, 현재 담배처럼 사용하지 않았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겐 담배가 몸을 정화하는 용도로 많이 사용되었는데, 담뱃잎에 약재를 싼 후 그것을 태워 그 연기를 마셨다고 한다. 결국 그것은 무분별하게 퍼뜨린 악의 근원은 침략인들이었고, 오히려 현대 미국 약사들이 사용하는 아스피린 등의 대부분 의약품은 원주민들이 익히 사용하던 허브와 자연치료법에서 나온 것이다.

7. 남미 원주민의 사회와 문화[편집]

반면 마야아즈텍 같이 농경이 고도로 발달했던 지역에선 봉건제와 흡사한 피라미드식 계급제도 형태를 보이기도 했다.

잉카에서는 황제를 위시로 한 중앙집권 정치가 이루어졌는데, 당시 황제의 권위는 말 그대로 살아있는 신이었다. 중국에서 황제가 받은 대우보다 훨씬 더 높았고, 대충 이집트파라오와 비슷한 수준의 권력을 누렸다. 그러다보니 잉카는 사실상 신정국가였다. 그러나, 자연 환경이 척박하고 험악했던 파타고니아 지방에서는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처럼 민주주의 체제와 비슷한 정치체제가 구축되어 있기도 했다. 특히 마푸체족은 각 가구 별로 떨어져 살다가 필요할 때만 단체로 활동하는 식이어서 세습군주제가 출범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8. 농경[편집]

북미에서는 대부분의 지방에서 수렵 생활을 했으며, 농경도 일부긴 했지만 이루어졌다. 그러나 농경 기술은 그리 발전하지 못했으며, 설령 발전했다고 하더라도 널리 전파될 수가 없었다.

대규모 농경에 의존하기 위해선 노동력이 필수적인데, 아메리카 대륙의 길들일 수 있는 대형 가축류는 북미에는 아예 없었고, 중남미라마알파카 2종 뿐이었다. 그러므로 , , 돼지 등등 유라시아 대륙의 13종과는 차이가 심하다. 이런 점으로 봐서 학계에선 아메리카 대륙의 농경 민족이 농경으로 식량을 충족시키게 된 건, 길어도 유라시아 대륙보다 4천년 이상 늦었다고 추정한다. 들소(버팔로)는 너무 사나워서 사냥이라면 몰라도 길들여서 농사에 쓰기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원주민들이 병으로 떼몰살 당한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고도 한다. 구대륙의 사람들은 다양한 동물들을 길들여서 함께 살아온 수천 년의 세월을 통해 동물들의 전염질병(조류의 인플루엔자, 우제류의 두창 등)에 대한 면역을 획득하여 보균 상태에서도 문제 없이 살아갈 수 있었으나, 원주민들은 그러지 못 했다는 것.

하지만 중남미의 경우 일찍부터 옥수수감자들을 작물화하는 데 성공했으며 인구 수백만의 국가들을 세웠다. 이걸 가지고 남아메리카 인디언이 북아메리카 인디언보다 우월하다는 일종의 우생학적 지식을 들먹이는 사람들도 있는데, 당연하지만 미친 소리(...)[15]

또한 유라시아 대륙은 비교적 동서로 긴 형태를 가지고 있어, 온대 지방과 아열대 지방의 농경민족이 수가 많고 종류가 다양해 서로의 문물 교류가 간편했다. 또한 세계 4대 문명 발상지들 중 나일강 유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왕래하기 편한 개방적인 지형이어서(=수비가 어려워서) 수많은 침략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농경이 쉽게 전파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기본적으로 농경으로 쓸 작물도 부족했을 뿐더러 농경이 가능한 지역이 지나치게 협소했다. 이는 남북으로 긴 탓에 농경에 적합한 위도군이 한정될 수 밖에 없던 아메리카 대륙의 지리적 문제도 있을 것이다.

폐쇄성에 대해 간단한 예로 금속냉병기를 보자. 구대륙에선 농경과 같은 이유로 청동기, 철기 역시 빨리 퍼졌고, 유라시아 대륙에서 최초로 철기가 도입된 것은 기원전 2000년 경의 히타이트이다. 히타이트가 후에 멸망하기까지 철기는 빠른 시간 내에 유라시아 대륙 전역으로 퍼졌고, 250년 안에 대부분의 '문명화'된 지역에서는 철기문물을 접할 수 있었다.

반면 아메리카에서 철기를 언제 사용하게 되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나, 사용하게 된 후 대륙 전역으로 퍼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일부 지역에선 17세기 후반까지 철보다는 석기를 사용하는 모습도 보였는데, 상당히 가공되었고 철과 비슷한 경도와 강도를 유지하기 위한 기술과 원자재를 사용했다. 대표적으로 흑요석 무기가 있다.

학자에 따라 다른 견해도 있다. 이들의 주요 작물인 옥수수는 그 자체로는 영양 결핍이 심각할 수 있었다. 적절한 동물성 단백질 섭취 없이 옥수수만 먹고 살면 펠라그라병을 유발한다.[16]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육류를 섭취해야만 했다. 문제는 앞에도 나오듯이 아메리카 대륙에는 고기를 얻을 수 있는 대형 가축류가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라마와 알파카는 운송을 책임지고 옷을 만드는 데 쓰는 을 얻는 귀한 동물이었고 번식도 쉽지 않았기에 대규모로 사육해서 잡아먹는 것은 어려웠으며, 게다가 안데스 산맥 일대에만 살았기 때문에 남미의 잉카 제국만이 알파카와 라마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 외에 멕시코 일대에서는 칠면조를 기른 기록이 있다. 물론 먹기 위해 길렀는데, 개는 사육 효율이 그리 좋지 못해 식용으로 다량 생산하기엔 배보다 배꼽이 크다. 일단 개 자체가 고기를 먹을 때 제일 잘 자란다. 따라서 수렵을 어쩔 수 없이 병행하거나, 혹은 수렵을 주로 하고 농경을 보조로 하는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8.1. 아즈텍의 식문화[편집]

그런데 정작 옥수수를 재배하던 아즈텍, 마야인들은 옥수수를 하룻밤 동안 석회수에 불려 화학적으로 나이아신이 생성되는 방법을 사용한다. 이 옥수수를 갈아 만든 반죽을 마사(masa)라고 한다. 타코에 쓰이는 토르티야의 원료. 이렇게 하면 나이아신 결핍증인 펠라그라에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옥수수만 주워가고 조리법은 주워가지 않은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에서 펠라그라가 발생하는 사태가 터졌다.

아즈텍 같은 경우는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사냥만으로는 도시의 육류 소요량을 감당해내지 못하자 국가적인 규모로 식인을 장려했다고 하는 주장도 있는데, 이에 반대하는 견해 또한 존재한다. 전쟁은 살육전이라기보단 제물로 바칠 포로를 확보하기 위한 힘싸움 정도였고, 제국이 커지게 되더라도 일부러 적대부족을 남겨놓아 전쟁 상태를 유지하기도 했다지만 그럴 정도로 고기가 부족하지 않았다는 연구도 있다. 당장에 그 지역 역사 전공자들이 쓴 연구서에선 모두 반박되는 주장들이다. 먹을 게 모자라서 전쟁을 한다면 왜 그런 전쟁은 대체로 수확기에 터지겠는가. 거기다 식인은 기껏해야 멕시코 시 지역의 부자들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위에 나온 옥수수로 단백질을 얻는 법에 나온 이야기와도 맞지 않는다.

하지만 식생활은 영양소만으로 구성되지 않고, 즐거움이 되기도 한다는 점을 보면 위의 주장에도 헛점은 생긴다. 극렬 채식주의자 등의 일부 예외도 있지만 매우 소수이며, 사람은 육류의 맛을 즐긴다. 아메리카는 아니지만, 몇몇 원주민 사회에서는 '굶주렸다'와 '굶주리진 않았지만 고기가 먹고 싶다'라는 다른 의미의 '배고프다'라는 말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이 부분에 대해 우려할 만한 점은, 아즈텍인들만 특출나게 유희를 위해 잔인함을 일삼던 이들이라는 오해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대규모 식인의 장려라 해서 현대인의 시각으로 무조건 혐오감만을 가질 게 아니라, 역사를 보는 바른 시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17]

아즈텍의 대규모 식인의 역사는 그렇게 길지 않다. 분명 그 이전에도 식인이 있었지만 제의적이거나 종교적인 의미가 더 강했다고 하고, 아즈텍이 그 지역의 패자가 된 것도 스페인 침공 시기 이전에서 아주 오래되지도 않았다. 그들은 북쪽에서 이주한 이들로 구성되었는데, 무엇보다 처음 지금의 멕시코에 도착한 것도 1200년대의 일이며, 제국을 형성하기 시작한 것은 그 후로도 시기가 지난 후이다. 또한 인육으로 공급되는 단백질의 양은 개인이 필요한 양에 못 미치는 적은 양이었지만, '고기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는 로마 시대에 부유한 이들이 서민들을 회유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잔인한 공연, 음식을 배분한 것과 비슷하게 볼 수 있다. 로마 제국의 서민들도 공연이나 무상으로 주는 음식 없이 모두 굶어죽는 수준은 아니었다. 뛰어난 문화 수준을 가진 '문명인'에게도 동물로서 인간의 잔인한 면모가 존재한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콜로세움을 예로 들어 로마인들에게 무조건적인 혐오만 가지고 문화적 수준을 깎아내리는 이들은 거의 없다. 아즈텍인들도 지적이고 문화적이었지만, 동시에 인간이라는 동물이었을 뿐이다.

허나 아즈텍인들의 대규모 식인은 주변의 다른 아메리카 원주민들(즉 그 식인의 대상)에게도 혐오스럽고 증오스러운 일이었다는 점 역시 고려해야 한다. 똑같이 단백질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다른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아즈텍과 같은 대규모의 식인을 선택하지 않았다.

사실 여기 나온 사회와 문화 설명은 북아메리카 몇몇 원주민을 중심으로 써놓은 이야기다. 아메리카는 대륙이고 당연히 다양한 민족과 문화를 포함하고 있다. 예컨대 유럽인들의 관점에서는 아즈텍인들이 메소아메리카 지역 원주민의 대표처럼 보이지만, 다른 원주민들 입장에서 보면 이들은 외부에서 와서 톨텍 등의 발달한 도시문명을 이룬 민족들을 지배한 폭력적인 이민족이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동아시아에서 잘 나가던 때의 몽골족과 비슷한 위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외부인들로서는 '야만적인' 아즈텍에게 지배당한 '문화적 민족'들의 자부심과 분노를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다음의 사항들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인신공양은 종교적 제의의 일부로 아메리카 지역에서 오랫동안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아즈텍처럼 대규모로 이루어진 경우는 없었다. 또한 아즈텍의 문자는 한자와 같은 표의문자이면서도 훨씬 그림에 가깝고 어휘의 숫자가 적어서 몇 가지 정형화된 의미만을 나타낼 수 있었던 반면, 그보다 이전 시대의 마야 문명에서는 이미 완성된 형태의 표음문자를 사용하고 있었다. 게다가 0의 개념을 최초로 사용한 것도 마야인들. 또한 아즈텍 이전의 고대 도시국가인 테오티우아칸은 전성기 때 인구가 12~20만으로 추정되며, 그 폐허를 발견한 아즈텍인들에게 '신들의 도시'라는 뜻의 테오티우아칸이라 불리며 숭배 받았다.

9. 원주민의 현재[편집]

9.1. 미국[편집]

미국에서 아메리카 원주민은 1928년에서야 시민권을 얻었다. 21세기 초 아메리카 원주민은 미국에 567개 부족을 이루며 약 300만 명이 거주하고 있고, 혼혈을 포함하면 500만 명 정도 거주하고 있어 인구의 1%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 중 100만 명 이상이 원주민 보호구역에 거주한다. 언어는 영어를 쓰지만 원주민들끼리의 언어도 쓰이는데 그 종류가 176가지나 된다. 원주민 보호구역 내의 사회 문제는 상당히 심각한 편인데, 가령 사우스다코타 주의 파인 리지 원주민 보호구역의 경우 인구의 절반이 빈곤층이며 80%가 실업자고 1인당 소득도 $6,000 정도에 불과하며, 평균 수명도 50세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범죄 문제도 심각한데 범죄율이 백인의 3배나 되며 교도소 수감률도 9.4%나 되어 미국 평균 수감률(7.6%)보다 더 높다. 가령 알래스카의 원주민 여성 성폭행 피해율은 미국 평균의 12배에 달한다고 한다. 종족 보존이라는 명분이 원주민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억누르기에 생겨나는 비극으로[18], 그러다보니 자살률도 굉장히 높은데 미국 평균 자살률의 12배나 된다.

이런 원주민 보호구역들은 자치구역으로 인정받아 주와 별개로 원주민들만의 행정부와 사법부, 의회가 있다. 그래서 연방 정부에 세금을 납부하지 않으며, 어느 정도 연방법에서 자유롭고, 자기들만의 법을 유지할 수 있다. 의료 부문도 일반적인 미국 시민들과는 달리 연방정부 소속 준군사조직연방공공보건서비스부대의 공공의료 서비스를 받고 있다.

그러나 보호구역에 사는 원주민 개개인은 연방 정부에 대해 투표할 자격이 없고, 만약 하려면 자치 권리를 포기해야 한다. 또한 미국 연방정부와 주 정부는 이외의 다른 혜택은 제공하지 않아, 원주민들은 미국 국민들이 누리는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처지다. 전기와 식수 혜택도 누리지 못하는 원주민들이 흔하다. 연방법이나 주법으로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마약 거래가 다른 지역들보다 쉬워서 법망을 피하기도 좋다.

보호구역에서는 카지노를 합법적으로 운영할 수 있기에 이 지역들에서는 카지노가 많이 보인다. 사실 미국에서 도박업에 대한 법률은 주 정부의 소관이지만, 도박에 대한 인식이 한국처럼 매우 나쁘기 때문에 대부분의 주들은 도박업을 허용하지 않는다. 원주민 보호구역이 카지노 운영이 가능한 것은 이곳이 법 효력 정지지구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면세와 카지노 등으로 모은 부로 그들의 학교 및 장학금, 복지기금 같은 것을 조성해서 잘 살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이런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삼류 직종에 종사하며 하루하루 근근히 먹고 사는 신세다. 왜냐면 카지노로 돈을 많이 벌어봤자 변호사 단체 같은 곳에 수익의 일정 부분을 바쳐야 해서 실제 원주민이 가지는 순수익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원주민 부족들은 보호구역 안에 카지노를 들이는 데 열심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먹고 살 길이 없기 때문에... 한 예로 카지노를 유치하기 전 원주민 보호구역의 성인 남자들 대부분은 술과 마약에 쩔었고, 가족들에게 수시로 폭력을 휘두르고 범죄를 저질러 경찰에게 수없이 체포당해서 감옥에 눌러붙어사는 신세가 될 만큼 만큼 삶이 어려웠다. 그러나 카지노를 유치하고 나자 실업률이 50%에서 4%로 떨어졌다고 한다. 원주민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기를 쓰고 카지노를 유치하려 혈안이 되어있을 만도 하다. 심슨 가족에서도 이러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카지노를 작품이 작품이니만큼 개그로 묘사한 편이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미국 내에서 원주민 보호구역에 대한 시선이 굉장히 나쁘며, 많은 원주민들이 도박에 빠져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상황이다.

캘리포니아 경제가 침체기를 맞이했을 때, 전직 주지사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세금 좀 내주면 안 되냐는 말을 했으나 당연히 콧방귀를 꼈다. 지난 2세기 동안 당했던 수모에 대한 약간의 보상으로 받은 게 자치구인데 줄 리가 만무하다. 그게 아니라도 세금은 원래 내기 싫다

이외에 큰 보호구역은 관광 상품화하여 거기서 나오는 관광수입으로 연명하는 곳도 있다.

미국의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아직까지도 거의 독자적인 보호구역 공동체에 사는데, 원주민 사회가 워낙 막장이라서 결코 좋다고 할 수는 없으며 오히려 관련 법 때문에 무지막지한 욕을 얻어 먹는 경우가 있다. #[19] 몇백 년이 지났다지만 계속해서 분리되어 살 수 없는 지경이다. 분리되어서 살자니 사회 및 경제가 이미 막장인 데다가 마약 및 술, 도박에 중독된 사람들이 많거니와 돈을 대부분 카지노에 의존하기 때문에 결코 나아질 수가 없다.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원주민에 대한 예산을 삭감하기 시작하자 원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딱 한 곳, 문제가 되지 않는 곳이 있긴 하다. 아메리카 원주민이라고 하기엔 좀 이상하지만 이곳은 백인 지주들이 몰락하면서 그들이 착취하던 하와이 원주민과 아시아계, 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이 기득권을 쥐고 있고, 백인이 인종차별당하는 곳이다.

9.2. 캐나다[편집]

캐나다에서 원주민들은 First Nations 또는 Aboriginal Peoples라고 부르며, 100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춥고 인구가 희박한 북부 지방에서는 인구의 다수를 점하고 있다. 1956년에 시민권을 받고 4년 뒤인 1960년에서야 투표권이 주어졌다.

이들도 미국과 중남미의 원주민들과 처지가 다를 게 없어 높은 실업률과 알코올 중독, 높은 강간률, 자살률, 범죄, 질병 등의 사회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원주민들의 인구도 캐나다 인구의 4%밖에 안 될 정도로 크게 감소한 상황이다.

캐나다는 원주민들이 많이 사는 북부 지역이 워낙 춥고 척박하기 때문에 대놓고 강제이주하지 않았고 학살도 미국에 비하면 적었지만, 그 대신 원주민들을 "근대화"하는 작업을 했는데 어린 아이들을 부모들에게서 강제로 데려와 교회가 관리하던 원주민 기숙학교(레지덴셜 스쿨)에서 키웠다. 그로 인해 많은 부족들의 언어가 오지에서나 쓰이는 수준으로 전락해버렸고, 부모 밑에서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하고 교회에서 "사육"되던 아이들은 가족애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어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수많은 원주민들의 불우한 가정사를 낳게 되었다. 더욱이 성직자들에 의한 성폭행이 아주 흔하게 이루어졌고, 그로 인해 현재 절대 다수의 캐나다 원주민들은 백인들을 혐오하고, 특히 기독교를 믿는 백인 성직자들이라면 치를 떤다. 그런 이유로 백인 교회가 주도하는 원주민 선교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원주민 자치구에서 백인들이 방문하는 걸 허락할 리 없을 뿐더러 방문에 성공한다 쳐도 인사 대신 죽빵 정도가 아닌 다굴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20] 또한 호주처럼 원주민 아이를 강제입양한 흑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정부는 아직도 사과를 안 하고 있다. #

1970년대 이후에는 북부 지역에서 자치권을 보장하는 법안이 성립되었고, 이누이트들은 자체적으로 문자를 쓰고 있을 정도이기는 하나[21], 현재도 예전에 시행되었던 억압적 정책들의 후유증과 잔재는 남아있다. 게다가 캐나다 북부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이 지나치게 높은 식품값 때문에 소득의 절반 이상을 식비에 지출하고 있는 등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다. #

2014년에 캐나다 연방경찰이 보고서를 통해 밝힌 캐나다 원주민 여성의 실종, 살인된 수가 1,200명으로 알려져 있지만, 캐나다원주민여성협회(NWAC)의 보고서는 약 4,000명을 이른다고 보고 있다. 저스틴 트뤼도 정권 시대에 와서야 진상조사가 이루어졌다. #

2008년 6월 11일, 당시 스티븐 하퍼 정부가 처음으로 이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이후 쥐스탱 트뤼도 현 수상도 공식 사과했다. 원주민들에게 지우지 못할 끔찍한 상처를 남긴 캐나다지만, 과오를 인정하고 정부적 차원에서 공식 사과를 한 것은 바람직하며 미국과 대조적인 모습이라 할 만 하겠다. 실제 캐나다에서는 중고등학교에서 원주민 탄압의 역사를 빠짐 없이 가르치며 선조들이 벌인 잘못을 잊지 말자고 강조한다. 또한 스티븐 하퍼와 쥐스탱 트뤼도의 사과 연설을 들으면 알 수 있듯 캐나다의 치부인 레지덴셜 스쿨에서 행해진 모든 악행들[22]을 일일히 거론하며 사과하였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미국이나 많은 유럽 국가, 일본처럼 단순히 유감을 표한 것이 아닌 진실성이 담긴 사과[23]이기에 캐나다와 원주민들의 관계는 앞을 향해 달려나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여전히 원주민들의 삶은 어렵기만 하고 많은 원주민들이 빈곤에 시달리고 사회적인 차별을 받다보니 자살이 끊이지 않아 캐나다의 골칫거리다.#

9.3. 멕시코[편집]

멕시코는 일단 인구 대다수가 원주민 조상이 있는 혼혈 메스티소거나 그냥 원주민이고, 스페인에서 독립하기 위해 아즈텍이나 마야에서 정통성을 찾았던 연유 때문에 원주민들에 대한 공적인 대우는 미국이나 캐나다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현재까지도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원주민 출신 대통령이나 총리가 나오지 않던 것에 비해그 대신 미국은 흑인 대통령이 나왔다. 멕시코는 베니토 후아레스의 예처럼 원주민이 대통령에 재임하기도 했다.

그러나 공식적인 대우만 이렇고 실상 원주민들이 소외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후의 포르파리오 디아스 정권하에서 원주민들의 권리 향상 주장은 소외되었으며, 새로운 토지법으로 인해 소작농들의 상당수를 차지하였던 원주민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 그래서 여전히 하층민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교육에 있어서도 식민 지배국의 언어인 스페인어가 교육 언어로 쓰이고 나우아틀어나 마야어 같은 원주민들의 언어는 소외되었다. 1920년대 제도혁명당이 집권하기 시작하면서 원주민 언어도 학교에서 가르치게 되었고, 원주민에 대한 교육적인 지원 또한 이루어졌지만 인력과 예산부족, 인구급증 등의 문제로 빈번히 실패하기 일쑤였으며, 1980년대 이후 들어 경제적인 불평등도 악화되기 일쑤라 현재도 다수의 원주민들은 멕시코에서 하층민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원주민들은 멕시코 내에서 '콩쟁이'라는 멸시까지 받고 산다.[24]

9.4. 남아메리카 국가들[편집]

남미에서도 차별은 심각했으며, 원주민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볼리비아도 1952년이 되어서야 원주민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졌을 지경이었다. 남미에서도 가장 심각한 케이스는 칠레아르헨티나, 우루과이였는데, 특히 우루과이는 아예 독립을 도운 원주민들의 뒤통수를 쳐서 학살하고 노예화했으며, 칠레와 아르헨티나는 19세기 당시에는 잉카 제국의 후예를 자처하면서도 원주민들의 땅을 빼앗고 오지로 내몰았으며, 심지어 원주민들을 박물관에 전시하기까지 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특히 남아메리카 중에서도 남부에 있었던 이들 국가에는 원주민 인구가 원래부터 많지 않아 원주민들이 더 소외되고 억압받거나, 극단적으로는 학살되기도 쉬웠다. 오늘날에도 칠레와 아르헨티나에서는 원주민 민족인 마푸체에 대한 억압이 자행되고 있다.

타 남미 국가에서도 큰 학살이 없었을 뿐, 경제적으로나 언어적으로나 소외되어왔다는 점에서는 차별이 존재했다. 현재까지도 원주민 언어가 활발히 쓰이고 있는 파라과이에서조차 자국의 전통 언어인 과라니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탄압할 지경이었고 남미에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비율이 굉장히 높은 페루에서도 1970년대에 가서야 원주민의 언어인 케추아어가 공용어로 지정되었을 정도였었다(...)

20세기 중후반 들어서면서부터는 전통 문화에 대한 재조명 등으로 인식이 이전보다는 괜찮아졌고, 21세기에는 경제적으로 나아진 경우가 많지만 현재도 원주민들의 상당수는 여전히 빈곤층으로 살고 있다.

10. 북미 원주민 복권과 대중문화[편집]

미국의 원주민 학살과 문화 파괴가 그야말로 주도면밀해서 원주민들이 철저하게 박살났다.[25] 게다가 미국의 원주민 학살은 백여 년이 넘도록 철저히 외면당했다. 미국 정부는 2010년 5월 20일 통과된 아메리칸 원주민에 대한 폭력 행위(전쟁 포함)와 잘못된 정책에 대해 처음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였고, 원주민 자치구가 빈곤과 질병, 법의 보호로부터 방치된 부분들에 대해서 바로 잡겠다고 약속했다. 원주민 자치주는 미국 법 효력이 발생하지 않아 마약, 폭력 문제가 많이 발생했는데, 오래동안 방치되다 보니 많은 문제점이 도출되었다. 새로운 결의안에 따라 원주민 부족들은 자체적으로 치안대를 조직해 치안을 잡으며 범죄와 싸울 수 있는 권한이 확대되었다고 한다. 또한 교과서 개정 작업 등을 통해 자신들의 과거를 올바르게 반영하기 위한 움직임에 나섰다.

헐리우드도 오랫동안 그들을 죄 없는 백인을 죽여 머리가죽을 벗기는 것으로 왜곡시켜 왔으며, 처음으로 진실을 그려냈던 영화 '솔저 블루'에 대하여 외면하였던 바 있다. 이 영화는 1970년 영화로, 백인들이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팔다리를 잘라내고 머리가죽을 벗기며 좋아하는 끔찍한 영화. 당시 미국에선 무수히 삭제되었고 일부 에서는 상영이 금지되었으며 왜곡이라고 버럭거렸으나, 감독인 랄프 넬슨은 "이게 바로 미국의 진실이다!" 하면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1960년대 이후 할리우드에서 서부개척시대서부극에 대한 자기 반성의 일환으로 수정주의 서부극이란 개념이 나타났고, 이로 인해 한동안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매우 평화롭고 이상적인 부족 사회로 묘사된 바 있다. 그 정점이 바로 케빈 코스트너늑대와 춤을. 1990년대 이후엔 수정주의 서부극이 원주민들을 지나치게 비현실적으로 묘사했다는 비판을 받게 되고, 이후의 영화에선 더 현실적인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의 경우도 비록 직접 대놓고 인디언 문제를 다루지는 못했으나, 우주라는 조건으로 비유해서 우주보안관 장고로 인디언과 서부개척자 간의 갈등을 다루기도 했다. 외계에서 온 종족을 백인, 뉴 텍사스 토착민들을 아메리카 원주민에 비유했다.[26]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그나마 다시 살아가는 중인 정도지만, 웨스 스투디 등 그나마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카지노나 연예계 쪽으로 진출한다. 드물게는 의사나 교사, 공무원도 있다는 듯.

11. 북미 원주민- 창작물에서[편집]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과거 서부극에서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악당 캐릭터. 툭하면 말 타고 달려와 특유의 아바바바 소리를 내며 라이플을 들고 백인들의 열차나 짐마차를 습격하는 떼강도 이미지였다. 악하게 나오지 않더라도 백인 개척민, 장사꾼들과 거래를 하는 모습이거나 마을에서 일하면서 사는 단역 수준으로나 나왔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과연 '아메리카 개척'이 옳은 일이었는가에 대한 논의가 여러번 나오면서 이런 종류의 '서부극에서 등장하는 악당' 인디언 캐릭터는 보기 힘들게 되었다.

주인공이거나 아군일 경우에도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전사형, 다른 하나는 주술사형. 전사형 캐릭터의 경우 보통 북미 원주민일 때가 많으며, 무슨무슨 부족의 용사라는 설정으로 용맹무쌍한 전사 캐릭터. 무기를 쓴다면 도끼(토마호크)일 때가 많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주술사형 캐릭터가 좀 더 비중이 높은 편. 주술사 캐릭터일 경우에는 뭔가 신비한 부족 전통 주술을 사용하며, 매우 이지적이고 통찰력 있는 말을 하는 자연친화적인 캐릭터로 등장한다. 특히 자연을 파괴하는 악당들에 대해서는 자비심이 없는데, 이건 전사형, 주술사형 양쪽 모두 해당. 배경이 현대인 경우 격투가(특히 레슬러)로 등장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주술사 클리셰와 연관해서 더 적자면 미국 창작물이나 밈에서 오컬트 아이템이나 샤머니즘을 묘사할 때는 100% 아메리카 원주민이 등장한다. '이 지역엔 아메리카 원주민이 살았는데/관련된 전설이 있는데', '이건 아메리카 원주민이 쓰던 주술 아이템인데~' 이런 식으로. 한마디로 한국의 무당 역할을 미국에선 아메리카 원주민이 담당하고 있다고 보면 좋다.[27]

그리고 미개하다는 편견이 적용되는 탓에 적을 처치할 때 잔인한 방법을 쓴다는 클리셰도 있다. 예를 들어 가죽을 벗기려 한다거나 심장을 씹으려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직접 하지 않더라도 상대를 위협할 때 이런 문구를 쓰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리고 토마호크 때문인지 대부분 도끼를 무기로 드는 경우가 많다.

전반적으로 남자 캐릭터는 거한에 마초스러운 이미지가 강한 편이고, 여성 캐릭터인 경우 신비로운 면이 강조된다. 그나마 백인이 주인공일 경우에는 사정 없이 털린다. 여자는 발정나서 백인에게 엉겨붙어(...) 하프 백인을 양산하는 역할. 물론 Prey처럼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 제법 현실적인 묘사가 나오기도 한다. 주인공은 술집을 운영하면서 답답한 현실에 지긋지긋해 하는 평범한 원주민 청년으로 나온다. 뭐 내용이 내용이다 보니 도입부를 지나면 위에 열거한 스테레오 타입들이 튀어나오긴 하지만, 그래도 상당히 잘 된 편이다. 주인공 성우가 아메리카 원주민이여서 제작진이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12.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목록[편집]

12.1. 북극권[편집]

12.2. 북아메리카[편집]

12.3. 중앙아메리카[편집]

12.4. 남아메리카[편집]

13. 아메리카 원주민 출신 실존 인물[편집]

14. 아메리카 원주민 캐릭터[편집]

파일:external/fc04.deviantart.net/native_fighters_sketch_by_sandikarakhim-d66f9mi.jpg

왼쪽부터 콘도르 헤즈, 릭 스트라우드, 화이트 버펄로, 울프 호크필드, 미셸 창, 줄리아 창, T.호크, 나이트울프, 블랙 호크(잊혀진 게임 사무라이 스피리츠 섬에 나왔던 캐릭터) , 치프 썬더. 모두 대전액션게임의 캐릭터들이다. 사실 엄밀하게 따지면 줄리아 창은 입양된 사람이므로 인종 자체가 불명이다. 썬더가 토마호크 말고 쿠크리를 들고 있는 것은 무시하자

14.1. 아메리카 원주민을 모티브로 한 부족/인종[편집]

기준은 주관적일 수 있습니다.

15. 관련 문서[편집]

[1] 여담이지만 터키어로는 황인을 뜻하는 단어도 없다. 그냥 아시아인(Asyalı)이라고 부르거나, 동아시아인으로 한정할 경우 çekik gözlü '눈이 째진 사람'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그 '눈이 째진 사람' 당사자는 인종차별적인 표현이라고 화날 수 있는 일이지만, 터키인들은 인종차별적인 의도로 쓰는 표현이 아니라 진짜로 동아시아인을 뜻하는 단어가 터키어에 없다.[2] 전자는 이누이트 같은 북극권 원주민들이, 후자는 남북아메리카 내륙과 해안지대에 사는 원주민들과 유사하다.[3] 해외에서 그렇게 인디언이라고 말하면 인종 차별주의자로 몰릴수 있다. 특히 진짜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소수민족 들에게 그렇게 말하면 정말 큰일난다. 영어로는 Native Americans[4] 멕시코가 이때의 인구를 회복하게 된 건 19세기 후반이 되어서였다.[5] 테렌스 맬릭영화 뉴 월드에서 잘 나타나있다.[6] 이렇게 이민 시초부터 있던 문화적 차이가 후일 노예제에 대한 찬/반, 나아가서는 남북전쟁까지 이어지게 된다.[7] 헌데 면역력이라는 게 특정 바이러스/세균을 대상으로 생기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설령 아메리카 대륙에 가축이 많았더라도 개척자들이 가져온 구대륙 질병들로 인한 제노사이드는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신대륙에서 질병을 겪고 면역력이 생긴 사람들이 유럽으로 돌아가서 이를 퍼뜨림으로서 양측이 폭망하는 사태가 벌어졌을지도...[8] 물론 이건 스페인인들이 남미 일대를 식민지화 하면서 잉카 제국 주민들을 광부로 혹독하게 착취한 영향도 컸다. 그러니 인구가 격감할 수밖에...[9] 왜냐면 술 자체가 없으니까 술을 모를 수밖에.[10] 하워드 진 지음, 유강진 옮김, 《미국 민중사 1》(시울, 2006), 19-20쪽.[11] 혼혈 원주민의 경우는 아직도 존재한다.[12] 다만, 이로쿼이 연맹의 경우는 연맹을 구성하는 각 부족의 추장은 특정 가문에서 세습했다. 이런 점에서 정치체제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말레이시아같은 선거군주제나 다를 바 없었다. 또한, 이로쿼이 연맹 이외에도 오늘날의 미국 북동부 지역에 거주하던 부족들은 처음에는 세습군주제를 하고 있어서, 17세기에 이곳에 식민지를 건설했던 잉글랜드는 당시에 가장 강대한 세력을 자랑했던 포우하탄 족의 추장을 '왕'이라고 기록한 바가 있었다.[13] 참고로, 이로쿼이 연맹은 철저한 모계중심 사회여서, 부족장의 지위를 여성이 세습했다고 한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3: 대전사의 첫번째 캠페인에서 보면, 주인공 나다니엘 블랙이 자신의 소속 부족인 모호크족미국 독립 전쟁에서 미군의 편을 들어야 함을 외삼촌인 카넨케에게 역설하지만, 어머니인 노나키가 이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뒷날 부족 내 친영파 세력의 공격과 헤센군의 침공으로 인해 삼촌과 어머니를 모시고 이웃한 친미 성향의 부족인 오네이다족의 영토로 망명하기 전까지 미군으로의 입대를 잠정 보류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런 장면이 그냥 들어간 게 아니라, 이로쿼이인 사회 내에서 여성들이 막강한 발언권을 가졌음을 잘 고증한 것이다.[14] 오히려 몇몇 부족들이 미국의 정치체제를 모방하여 부족 내의 권력구도를 개편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가령, 개중에서 가장 진보된 체제를 갖췄던 체로키족은 부족민들의 직접 선거를 통해 부족의 추장을 선출했고, 지방 법원-고등 법원-대법원으로 이어지는 3심제도는 물론, 이를 통한 사법부의 독립과 그것을 기반으로 한 삼권분립 체제까지 갖추고 있었고, 이렇게 구성되는 부족 정부의 효율적인 견제를 위해 부족민들에게 민간 언론사 창립을 허용하고 언론의 자유까지 제공했다. 덕분에 체로키족은 이른바 눈물의 길로 대변되는 백인들의 가혹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부족 전체가 무사히 생존했음은 물론, 심지어 현존하는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들 중에선 가장 부유한 부족이 되기도 했다.[15] 지중해 이북 유럽인들이 세계에 내놓을 만큼 육종한 곡물이 뭐가 있는지 생각해보면...[16] 다만 원주민들이 이를 보완하는 요리법을 개발했다는 말이 있다.[17] 다만 후술하듯이, 아즈텍인들의 대규모 식인은 주변의 다른 아메리카 원주민들(즉 그 식인의 대상)에게도 혐오스럽고 증오스러운 일이었다는 점 역시 고려해야 한다. 똑같이 단백질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다른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아즈텍과 같은 대규모의 식인을 선택하지 않았다. 혹은 못했거나.[18] 원주민들 사이에선 조혼이 흔한데, 10대에 결혼해서 자식을 가지고 30대면 손자, 손녀까지 본다.[19] 입양된 아이가 북미 원주민인데 입양한 가족이 잘 기르다가 그 아이의 친척이 승소하여 강제로 다시 데려간 사례다. Indian Child Welfare Act라는 법으로 말이 안되는 애기지만 법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북미 원주민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지만 현대에 와선 아예 가족을 파탄내는 법이 되었다. 대부분 북미 원주민 구역이 얼마나 막장인지 안다면 그 아이를 다시 보낸다는 거 자체가 미친 짓이다. 더욱이 아이가 입양된 이유가 가족의 마약 중독 때문이다. 특히 이 아이들은 원주민 사회에 적응을 못하다 보니 원주민 마을을 뛰쳐나오는 사례도 많다.[20] 현재도 미국 및 캐나다에 있는 한국 교회에서 문화 교류한다면서 실제로는 전도를 하러 매년 여름방학마다 팀을 만들어서 보내는 행사가 있다. 캐나다에서는 원주민들이 알아채버려서 아예 소송까지 난 상태로, 한국인 접근 자체를 금지해버릴 정도. 미국의 경우 뉴욕 쪽 교회 중심으로 미네소타위스콘신으로 대규모 인원들을 행사 명목으로 보내면서 실제로는 전도하는 등 아주 막장 그 자체다. 뉴욕 쪽 교회를 다니지 않는 이상 이 행사 자체를 모를 정도니...[21] 캐나다 원주민 문자라 하여 원래는 영국인 선교사가 캐나다 원주민 언어를 표기하기 위해 만든 것인데, 이누이트들이 많이 쓰는 편이라 이누이트 문자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누이트어 참조.[22] 납치, 폭행, 강간, 학대 등등.[23] 유감과 사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특히 북미에서는 사소한 일에도 sorry라는 말을 달고 살지만, 정말로 자신이 잘못해서 불리해진 입장에는 apologize를 끝까지 안 하고 넘어가려는, 어떻게 보면 살짝 음흉하다 할 수 있는 문화이기에 총리들의 공식 사과가 가지는 의미는 크다.[24] 이는 멕시코 원주민의 주식이 콩이라서 그렇다.[25] 이는 미국 백인이 계속되는 이민 유입으로 인구가 증가하여 원주민을 인구에서 압도했기 때문이다.[26] 퍼즈와 동족 프레리인들은 지구인에 맞서고자 모여 전쟁을 벌일 준비를 한다. 이를 막으려던 장고 앞에서 퍼즈가 하던 대사가 이렇다. "보안관님! 우리도 지구 역사를 듣고 좀 아는데, 지구 어느 나라는 인디언이라는 신대륙 사람들을 마구 괴롭히면서 기어코 그 땅을 빼앗은 적 있었다죠 ? 지금 우리들이 그 인디언처럼 될 듯 싶은데 우린 그렇게 순순히 우리 별을 빼앗기지 않을 겁니다." 개그 캐릭터인 퍼즈도 이때만은 전혀 안 웃기게 나왔었다.[27] 부두교도 있지만 이건 루이지애나 한정.[28] Métis. 주로 프랑스계 백인들. 한국에서는 프랑스어식으로 '메티'라고도 불리는데, 영어식으로는 '메이티'에 가깝게 발음한다.[29] 지금의 캐나다 뉴펀들랜드 섬에 거주하던 민족이었지만, 현재는 전멸했다.[30] 미친 소는 고조부 때부터 백인과 혼혈이다.[31] 외모도 백인이라기보다는 수우족에 더 가깝게 생겼다. 그래서 자신의 친구이자, 뒷날 적으로 돌아서게 되는 빌리 홈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한 눈에 백인이 아닌 걸 알아봤을 정도다.[32] 그 중에서도 특히 숲트롤들. 얼음 트롤은 동남아시아, 정글 트롤은 아프리카를 베이스로 혼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