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아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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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주요 수상 이력


파일:SBS로고.png 가요대전 대상

이효리
10 Minutes
(2003년)

신화
Brand New
(2004년)

김종국
사랑스러워
(2005년)


파일:seoulmusicawards2.png
서울가요대상 대상

이효리
10 minutes
(2003)

신화
Brand New
(2004)

동방신기
"O"-正.反.合.
(2006)[1]



파일:shinhwa_20th_photo.jpg

파일:HEART 180828_01.jpg

왼쪽부터 순서대로 신혜성, 이민우, 전진, 앤디, 에릭, 김동완

파일:shinhwa_20th_logo.jpg

신화 / SHINHWA

그룹명

신화
神話 (한자)
SHINHWA (영어)

데뷔

1998년 3월 24일
데뷔일로부터 +7485일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 (1998 ~ 2003)
GOOD EMG (2003 ~ 2009)
신화컴퍼니 (2011 ~ )

링크

공식 사이트
공식 트위터
공식 페이스북
공식 유튜브
공식 웨이보
공식 인스타그램
V LIVE
공식 팬카페


1. 개요2. 멤버3. 데뷔4. 역사
4.1.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시절 (1998 ~ 2003)4.2. GOOD EMG 소속 시절 (2003 ~ 2011)4.3. 신화컴퍼니 설립 이후 (2011 ~ )
5. 장수6. 우정7. 음악
7.1. 파트7.2. 실력7.3. 자작곡
8. 안무9. 예능10. 음반 목록11. 디스코그래피12. 단독 콘서트13. 미디어 활동14. 수상 경력15. 팬클럽16. 소속사17. 상표권 분쟁18. 트리비아19. 에피소드

1. 개요[편집]

파일:1495784796.gif

혜성처럼 전진하는 우리는 신화입니다!

한국의 6인조 남성 아이돌 그룹. 팀의 이름은 신화(Mythology)에서 유래되었다.

1998년 SM엔터테인먼트에서 데뷔하였고 2004년 굿엔터테인먼트[2]로 이적하였다가 2011년 본인들이 직접 신화컴퍼니를 설립하였다. 데뷔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룹의 해체나 멤버의 탈퇴 및 교체가 없었던 국내 최장수 아이돌 그룹.[3] 2017년 기준으로 13장의 정규앨범과 7장의 비정규앨범을 발표하여 대한민국 댄스 그룹 최다 정규앨범 발매 기록을 수립하였다.[4]

1999년부터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고 전성기로 꼽히는 기간은 2001년부터 2005년까지이다. 1990년대 후반에 전성기를 맞았던 H.O.T.와 젝스키스는 1세대 선발주자로, 2000년대 초반에 전성기를 맞았던 신화와 god는 1세대 후발주자로 구분된다. H.O.T.의 영향으로 신비주의 미소년이 주류이던 1대 아이돌 붐 시장에서 신화는 유일하게 강한 남성미, 탈신비주의, 화려한 댄스 음악 등을 내세우며 차별화에 성공하였다.

1세대 아이돌 그룹의 수명은 3 ~ 5년에 지나지 않았으나, 신화는 2004년 데뷔 7년차에 가요대상을 수상하며 최전성기를 맞았고, 2005년 데뷔 8년차에 서울올림픽주경기장에 입성하였다.[5] 또한 지난 20년 동안 1집을 제외한 15개의 모든 활동곡이 음악방송에서 1위를 거두며, 아이돌 그룹도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따로 또 같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돌 개인 활동의 보편화를 이끈 그룹이다. 그룹 활동과 개인 활동을 병행한 최초의 아이돌 그룹이자 개인활동으로 대박을 친 몇 안되는 아이돌 그룹. 아이돌 그룹 멤버의 개인 활동이 용인되지 않던 시절 일찍이 멤버 개개인이 솔로 음반, 예능, 드라마, 광고 등 다양한 연예 분야에 도전해 성공을 거두었고, 2000년대 중반에는 방송만 틀면 신화 멤버가 나온다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왕성한 미디어 활동을 보였다.

추구하는 장르는 화려한 사운드의 댄스 음악. 댄스를 유독 부각한 1세대 아이돌 그룹 중에서도 퍼포먼스로 가장 유명하다.[6] 퍼포먼스 완성도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왔을 뿐만 아니라 댄스 음악을 하는 그룹도 장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모범적인 사례. 중견 안무가들 또한 신화 덕분에 무대 위에서 오랫동안 현역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되어 고맙다는 말을 하곤 하는데, 신화와 함께 공연을 했거나 하고 있는 댄서들도 이제는 신화 만큼이나 나이도 경력도 많아졌기 때문이다.[7]

2. 멤버[편집]

신화의 멤버 (생일순)

에릭

이민우

김동완

신혜성

전진

앤디


나이는 에릭(1979.02.16), 이민우(1979.07.28), 김동완(1979.11.21), 신혜성(1979.11.27), 전진(1980.08.19), 앤디(1981.01.21) 순이다. 에릭과 앤디는 둘 다 빠른 년생이지만 그룹 내에서는 앤디만 빠른 년생으로 쳐준다. 에릭은 데뷔 전 신화 내 79년생들 한정으로 친구를 맺었고,[8] 앤디는 데뷔 이후 전진의 권유로 그와 친구를 맺었기 때문.

최연장자인 에릭이 팀 내에서 리더를 맡고 있다. 신화컴퍼니 내에서는 에릭과 이민우가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모든 멤버들이 주주로서 똑같은 지분을 가지고 있다. 결정을 내린 후 최종적으로 서류에 사인하는 일은 에릭이, 비지니스를 위한 미팅은 이민우가 맡아서 한다고 한다.[9]

신혜성(메인보컬), 김동완(리드보컬), 이민우(서브보컬)가 보컬을 맡고, 에릭(메인래퍼), 전진(리드래퍼), 앤디(서브래퍼)가 랩을 맡으며, 이민우(메인댄서)와 전진(리드댄서)이 프론트맨을 맡는다. 랩 메이킹은 대부분 에릭이 담당하고 안무 메이킹에는 이민우가 참여해 최종적으로 컨펌한다. 프로듀싱과 디렉팅은 이민우가 주로 맡는다.

3. 데뷔[편집]

1996년 SM엔터테인먼트는 H.O.T.로 뜻밖의 대성공을 거둔 뒤 아이돌 시장의 잠재력을 깨닫게 된다. 이에 이수만은 본격적으로 아이돌 산업에 뛰어들기 앞서 차세대 걸그룹과 보이그룹 멤버들을 찾아 발 벗고 나서는데 이렇게 기획된 그룹이 각각 S.E.S.와 신화였다. 당시 다른 기획사들이 그랬다시피 SM 또한 오늘날처럼 연습생을 대규모로 영입해서 장시간 트레이닝 시킬만한 여건이 되지 않았다. 때문에 처음부터 인기 있고 재능 있는 아이들을 캐스팅 해오는게 중요했는데 그런 점에서 신화는 모범적인 캐스팅 사례였다.

1996년 연말 앤디가 최초의 신화 멤버로 발탁되었다. 앤디는 미국 오렌지카운티 출신으로 어린 시절 이민을 갔고, 중학생 시절 H.O.T.의 토니안과 함께 댄스팀 멤버로 활동하며 인기를 끌었다. 두 사람은 캐스팅 디렉터를 통해 이수만과 연락이 닿았고 그와 공원에서 만나 오디션을 보았다. 이때 합격한 앤디는 토니안을 비롯한 H.O.T. 멤버들과 함께 한국에서 연습생 생활을 했고 최종 데뷔조까지 들었다. 그러나 앤디의 부모님이 앤디가 어린 나이에 데뷔하는 것을 반대했고,[10] 회사는 앤디를 원했지만 H.O.T. 멤버들은 토니안과 함께하길 원했기에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로부터 1 ~ 2년 뒤인 1996년 연말 고등학생이 된 앤디는 LA의 한 식당에서 이수만과 우연히 재회했고 이수만은 이때 앤디를 다시 신화의 멤버로 캐스팅했다.

1997년 연초 에릭과 신혜성이 합류했다. 교포인 앤디와 에릭은 미국에 있을 때부터 형제 같은 사이였으며, 유학생인 신혜성도 그 둘과 접점이 있었다.[11] 에릭은 앤디와 같은 오렌지카운티 출신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이민을 갔다. 에릭 또한 댄스팀에서 활동하며 인기를 끌었는데, 앤디와 토니안의 증언에 따르면 잘생기고 공부도 잘하고 싸움도 잘하는, 그야말로 그 일대에서 미친듯이 잘나가는 인물이었다고 한다. 토니안이 증언하길 에릭과 같이 공연을 하면 무조건 그가 센터였다고. 에릭은 한인 라디오 방송 관계자의 추천으로 이수만과 노래방에서 오디션을 보아 합격했고, 오디션 합격 전 UCLA를 비롯한 3개 대학에 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수의 꿈을 위해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12]

이수만은 앤디를 캐스팅한 후 그를 LA 오디션장에 데리고 갔는데 이때 합격한 참가자가 신혜성이다. 신혜성은 동생과 단둘이 미국 벨리에서 홈스테이 생활을 하던 유학생이었는데, 주위 친구들이 죄다 연예인 지망생인 탓에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하루는 전미한인가요제에 나갔다가 클릭비의 우연석과 만나 친해졌고, 그의 부탁으로 SM 오디션에 함께 참가했으나 신혜성 혼자 합격했다.[13] 앤디가 증언하길 이수만이 신혜성의 노래를 듣고 "너무 좋지 않니?"라고 말하며 기뻐했다고. 본래 가수의 꿈이 없었던 신혜성은 이 오디션 합격을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삼게 되었다.

1997년 상반기에 이민우가 합류했다. 이민우는 전북 남원시 출신으로 데뷔 전부터 전주 전역에서 이름을 날리던 춤꾼이었다. 그 시절부터 쫓아다니는 팬이 있었으며 옷을 협찬받는다는 소문까지 있었을 정도. 집안 사정이 어려웠던 탓에 고등학교 때부터 댄스팀 공연을 하며 직접 생활비를 벌었다고 한다. 상금이 300만원이라는 말을 듣고 서울까지 올라와 전국 댄스경연대회에 참가했다가 고향 친구와 함께 SM으로부터 캐스팅되었다. 연습생 때부터 안무를 하나씩 만들어 이수만에게 검사를 받았다고. 이수만이 유독 예뻐했는지 종종 다른 연습생들 몰래 용돈 하라며 수표를 쥐어줬다고 한다.

1997년 하반기에 전진이 합류했다. 전진은 서울 송파구 출신으로 송파 일대에서 유명한 춤꾼이었다. 배우 최필립과 함께 댄스팀으로 활동했으며, '오금고 쫄바지'라는 별명으로 유명세를 탔다. 불우한 가정에서 자라 춤만이 유일한 삶의 돌파구였으며, 가수가 된 이유는 생모를 찾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학교 선배인 강타의 추천으로 SM 오디션을 보아 합격하였고, 전진이 연습생에 합류하며 이민우의 친구는 연습생에서 퇴출되었다.[14]

1997년 11월 3일 마지막 멤버인 김동완의 합류로 신화가 결성되었다.[15] 학교 록밴드 보컬로 활동했는데, 저 신화 멤버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인사였다. 기획사들이 '김동완 전담반'을 만들고 캐스팅 매니저까지 따라붙었을 정도. # 휘문고 모세라는 별명이 유명한데, 김동완이 나타나면 모세의 기적처럼 길이 쭉 갈라진다 하여 생긴 별명이었다. 김동완은 월드뮤직 엔터테인먼트 연습생으로 있다가 회사가 해산된 후 SM에 캐스팅되었다.[16] SM이 록커가 아닌 아이돌로 데뷔하기를 권하자 처음에는 거부했으나, 나머지 신화 멤버들 5명과의 첫 대면 후 애들이 멋있어서(...)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20년 전 멤버들이 김동완에게 쓴 편지

4. 역사[편집]

4.1.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시절 (1998 ~ 2003)[편집]

1998년 3월 24일 KMTV <쇼 뮤직탱크>에서 데뷔하였다. 1집 <해결사>의 성과가 그다지 좋지 못한 탓에[17] 직전 H.O.T.와 S.E.S.의 메가히트를 맛 본 SM엔터테인먼트는 공 들여서 데뷔시킨 신화의 활동이 썩 만족스럽지 않았고 이 때문에 신화는 데뷔하자마자 해체 위기에 놓이기도 하였다. 보통 1세대 아이돌 그룹은 활동 3~4개월이면 성패가 판가름 났는데 신화는 특이하게도 2집부터 히트를 치기 시작했다. 신화는 1999년 2집 <T.O.P>를 통해 큰 성공을 거두며 당대 정상급 아이돌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리고 2000년 5월 발매된 3집 <Only One>부터는 음악과 컨셉 면에서 기존의 다른 아이돌 댄스 가수들과 차별성을 가지게 되었는데, 바로 그 당시 아이돌치고는 거의 유일하게 남성미를 강하게 어필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대중적이기보다는 매니악하고 코어한 컨셉의 아이돌로 평가받았으며, 당시에는 보기 드문 과격하고 절도 있는 군무와 남성미 넘치는 컨셉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요즘 군무돌짐승돌의 조상님으로 꼽히고 있다.

꾸준히 상승세를 타며 늘어나던 팬덤은 2001년 6월 발매된 4집 <Hey, Come On!>으로 절정을 찍었고 H.O.T. 이후 처음으로 서울올림픽주경기장에서 팬미팅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타이틀곡인 <Hey, Come On!>보다는 후속곡인 <Wild Eyes>와 해당곡의 의자춤 퍼포먼스가 더 유명세를 탄 앨범으로, 이 활동으로 신화는 퍼포먼스 아이돌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다. 신화의 짐승돌 노선은 이 4집부터 더욱 공고해져서 아이돌 최초로 세미누드집을 발매하기도 하였다.[18]

그러나 좋은 성적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4집 활동은 신화에게도 신화창조에게도 많은 아쉬움이 남는 활동이었는데, 이 시기에 앤디가 비자 문제와 어머니의 병세로 4집 활동에 불참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19] 앤디는 잠실 주경기장 팬미팅 막바지에 등장해 재합류하였고, 무대 위에서 멤버들과 포옹을 하며 눈물을 쏟았다.

앤디가 다시 합류한 후 신화는 2002년 3월 발매된 5집 <Perfect Man>에서 스탠딩 마이크 퍼포먼스와 절도 있는 안무를 선보였고, 같은 해 연말 '죽음의 안무'로 악명 높은 6집 <너의 결혼식>을 통해 '퍼포먼스 그룹'으로서의 입지를 다시 한번 공고히 했다. 또한 5집 마무리 후 SMTOWN 앨범에 수록된 <Hero>라는 곡으로 활동하며 일본에 진출했다.

4.2. GOOD EMG 소속 시절 (2003 ~ 2011)[편집]

6집 활동을 마친 후 SM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이 종료되었고 SM엔터테인먼트 출신 매니저들이 설립한 'GOOD엔터테인먼트'로 이적하였다.[20] 당시 아이돌 그룹 최초로 그룹을 유지한 상태에서 멤버 전원이 소속사를 옮겨 여러모로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21] 당시 아이돌의 수명이 짧고 전망이 어두웠던 만큼 SM은 신화 멤버들이 그룹을 해체하고 솔로로 재계약하길 원했으나 멤버들 모두 회사의 제의를 거절하였고 결국 멤버들은 상의 끝에 회사를 이적하기로 결심했다. 이 GOOD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이 끝날 무렵 에릭은 드라마 불새로 톱스타 자리에 오른 후 한 회사로부터 수십억대의 계약금을 제의받았으나 멤버들과 같은 소속사에 있기 위해 단칼에 거절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22]

소속사 이적 후 이수만은 SM엔터테인먼트를 나가서 잘된 사례가 없다며 신화를 간접적으로 디스했지만, 2004년 8월 7집 <Brand New> 발매 후 신화는 데뷔 7년차에 최전성기를 찍으며 그 해 대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다. 2004~2005년은 신화의 해였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가요계 뿐만 아니라 리얼로망스 연애편지, X맨을 찾아라와 같은 각종 예능 프로의 주역으로 종횡무진 활약하였다. 가요프로를 틀어도 신화가 나오고 드라마를 틀어도 신화가 나오고 예능을 틀어도 신화가 나오던 시절이라서 미디어만 틀면 신화가 나와 스케줄조차 확인하지 않았다는 팬들도 있었을 정도. 2005년에는 서울올림픽주경기장에서 콘서트를 개최했다.

또한 '따로 또 같이' 라는 명칭으로, 그룹 활동과 개인 활동의 병행을 시도한 최초의 아이돌 그룹이다. 아이돌이라는 사실이 솔로 가수로서 또한 배우로서 메리트가 없던 시절, 신화는 아이돌과 팀이라는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다른 아이돌 출신 연예인들보다 개인 활동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며 아이돌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이민우와 신혜성을 솔로 앨범으로 골든디스크 시상식SBS 가요대전에서 본상을 수상하였고, 에릭은 드라마 <불새>에서 대박을 거두며 톱스타로 거듭났다.[23] 당시 CF를 휩쓸던 에릭은 멤버들에게 보너스라며 CF수입을 나눠주기도 하였다. 개인 활동으로 멤버들 모두 한번씩은 대박을 터트렸기 때문에 앤디가 시트콤 <논스톱4>로 성공을 거두었을 때는, '드디어 막내까지 다 떴다'라는 기사도 터졌다.

7집 <Brand New> 활동과 멤버들의 개인 활동이 대박 행진을 치른 후 신화는 일견 승승장구해 가는 듯 보였지만 그 이면에는 내부적인 문제도 있었다. 신화가 한참 전성기를 찍던 2005년 1월, 신화의 소속사 이적을 존중한다고 했던 SM엔터테인먼트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 신화의 상표권을 특허청에 등록한 것. 이후 2006년 SM엔터테인먼트는 오픈월드엔터테인먼트에 신화 상표권을 양도했다. 이에 따라 신화와 굿엔터는 오픈월드와 상표권 협약 체결을 맺었으며, '신화'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대신 신화의 스케줄 조정 및 해외업무가 오픈월드의 관리로 넘어갔다. 이때부터 신화는 해외 투어 위주로 활동하게 되며 신화를 오로지 상품으로 밖에 보지 않는 오픈월드의 횡포 때문에 플랜도 건강도 처참히 망가지게 되었다.[24]

2006년 5월 8집 <State of the Art>를 발매하였으나 전작 7집의 히트에 비해 대중적인 반응은 영 미묘했고, 역시 오픈월드의 횡포로 국내 활동이라고는 음악방송 출연 몇번에 그치고 다시 해외 투어를 돌아야 했다.[25] 그럼에도 이 시기 신화는 데뷔 8년차임이 무색할 정도로 여전히 당대 정상급 아이돌로서의 입지가 굳건했으며, 8집 앨범은 2006년 연간 앨범판매량 3위를 기록했고[26] 타이틀곡 <Once in a Lifetime>은 월드컵 지정 응원곡을 선정되었다.

또한 국내 8집 활동과 거의 동시기인 2006년 6월 첫 일본 싱글 <우리들의 마음에는 태양이 있어>를 발매해 오리콘 차트 9위에 진입했고, 2006년 8월 첫 일본 정규 앨범 <Inspiration #1>를 발매해 오리콘 차트 4위에 진입했다. 신화는 이 음반으로 일본 골든디스크 본상과 베스트 아시아 아티스트상을 받으며 2002년 흐지부지 되었던 일본 진출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한편 굿엔터는 신화가 벌어들인 돈으로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고 신화 뮤직비디오 판권을 사는데[27] 큰 수익을 쓰면서 빚이 늘고 회사가 기울게 되었다. 결국 굿엔터는 자동차 회사에 합병되어 연예부서 'GOOD EMG'로 강등되었고 사실상 신화 같은 대형그룹의 연예 활동을 모두 전담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에 각 멤버들은 신화로서의 활동만 굿이엠지에 맡기고 개별 활동을 전담해줄 각기 다른 기획사를 찾아나서야 했다.

이렇게 개인 소속사가 갈라진 상태에서, 2008년 4월 신화는 데뷔 10주년 앨범인 9집 <RUN>을 발매했으나, 방송 활동을 일체 진행하지 않아 대중들의 관심을 받는 것에 실패했다. 그 이유인 즉슨 당시 굿이엠지는 상장 폐지 위기에 놓여있었고, 굿이엠지와 오픈월드와의 상표권 협약 역시 만료되어 오픈월드의 횡포가 더욱 심해지는 등 당시 신화의 내부적인 상황이 가히 최악이었기 때문. 이후 신화는 아쉬움 가득한 9집 활동을 마치고 군입대로 인해 4년간의 그룹 활동 공백기를 가지게 되었다.

4.3. 신화컴퍼니 설립 이후 (2011 ~ )[편집]

2009년 10월, 신화가 군입대를 한 사이 수입이 없어지자 굿이엠지는 상장 폐지가 되었고, 설마 이대로 해체 수순을 밟는건가 싶었지만 2011년 5월 4일 에릭과 이민우가 공동대표를 맡고 모든 멤버가 똑같은 지분을 투자해, 신화의 독자적 활동을 위한 기획사인 신화컴퍼니를 설립하였다. 현재 신화는 활동 기획, 앨범 제작, 프로듀싱, 디렉팅, 안무 메이킹까지 모두 본인들이 맡고 있는 아이돌계의 자영업자라 할 수 있겠다. 또한 끊임 없는 법정 공방과 협상을 통해, 2015년 5월 본인들의 상표권을 찾아오게 되었다. 이로써 신화는 자기 그룹의 상표권을 자신들이 소유한 유일한 아이돌 그룹이 되었다.

군복무 후 컴백한 최초의 아이돌이다. 군복무와 공백기로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세간의 우려와 달리, 2012년 4년전과 마찬가지로 잠실 체조경기장에서 컴백 콘서트를 개최하였다. 이때 신화는 서울 곳곳에 "신화는 약속을 지킵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었고 신화창조도 이에 맞춰 "신화창조도 약속을 지킵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4년 전 신화와 신화창조가 했던 약속, 즉 신화는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신화창조는 기다리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 신화창조가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는 감동의 순간 중 하나이다.

이처럼 병역 문제로 인해 4년간의 공백기를 가지면서 "병역 문제로 사실상 해체하는 것인데도 말로만 해체가 아니라고 한다."라는 비아냥도 종종 있었지만 그런 말들이 무색하게 2012년 3월 10집 <The Return>으로 컴백하여 최장수 아이돌의 위엄을 보여주었다.[28] 또한 10집 컴백 바로 이전 신화방송이라는 단독 예능을 통해 먼저 방송에 컴백했고, 신화는 이 신화방송을 기점으로 또 다시 어린 팬들을 유입하는데 성공한다.[29]

10집 <The Return>은 4년만의 컴백인 만큼 9집과는 대조적으로 상당한 퀄리티를 자랑한다. 전 멤버가 매주 회의에 참여해 앨범의 방향을 의논하고 300곡이 넘는 후보곡들을 계속 들어가며 수록곡들을 선정하였다고 한다. 이 10집을 기점으로 신화는 활동 기획과 더불어 프로듀싱과 디렉팅까지 전적으로 자신들이 담당하게 된다.

11집을 기점으로 댄스 그룹의 정체성은 유지하면서도 기존의 전통 신화 스타일과는 다른 색다른 컨셉을 계속 시도하고 있다. 2013년 5월 발매한 11집 <The Classic>의 타이틀곡 <This Love>에서는 신화 특유의 군무를 버리고 국내 최초로 보깅댄스를 시도하며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2015년 2월 발매한 12집 <We>의 타이틀곡 <표적> 역시 기존의 뚜렷한 파트별 구획 나눔을 버리고 파트를 세분화시켰고 스토리텔링이 있는 무대 구성을 선보였다. 신화는 이 12집 타이틀곡 <표적>으로 총 10개의 트로피를 휩쓸며 신화의 역대 최고 1위 기록을 갱신하였다.

2017년 1월 발매한 13집 <Unchanging>은 작업 막바지에 타이틀곡을 엎으며 컴백이 늦어졌으며, 신화 앨범 최초로 Part1과 Part2가 나뉜 앨범이었다. 12집 타이틀곡 <표적>과 유사한 스타일의 곡인 <Super Power>를 뒤로 한 채 역시 퓨처베이스라는 생소한 장르의 곡인 <Touch>를 타이틀곡으로 선택했다. 활동을 했던 Part2의 경우 신화만이 할 수 있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스타일의 댄스곡으로 채워져 퀄리티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조악한 기획력 탓에 데뷔초 1집과 활동이 전혀 없었던 9집을 제외하면 신화 역사상 가장 아쉬운 성적을 남겼다.[30] 그럼에도 신화 앨범 최초로 포토카드딱지를 도입하면서 높은 앨범 판매량을 기록했고, 이는 여전히 팬덤이 건재함을 알렸다.

2017년 1월 22일 SBS 인기가요 출연을 끝으로 신화는 13집 활동을 마무리하며 한국식 나이로 '30대 아이돌'로서 마지막 활동을 끝마쳤다.[31] 현실적으로 신화가 2017년 이내에 다시 새 앨범으로 컴백할 가능성은 없기 때문에 이렇게 되면 신화는 14집 앨범부터는 '40대 아이돌'로서 활동하게 될 것이다.하지만 이 최강동안들을 대체 누가 40대로 보겠는가... 2018년이 신화의 20주년 되는 해이기 때문에 현재 팬들은 다음 앨범 활동에 상당한 기대를 품고 있는 중.

5. 장수[편집]

저희가 얼마나 힘들게 신화를 이끌어 왔는지는 저희만 알아요. 신화를 40대까지 계속 유지시킬 수 있다면 거기에서 느끼는 자부심은 대중들이 아는 것보다 훨씬 클거에요. 나이가 들어서도 "어 저 사람 신화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으면 그게 저의, 한 인간으로서의 가장 큰 업적이라고 생각해요.


국내 최장수 아이돌
아이돌계의 살아있는 전설

2018년 기준으로 데뷔 20주년을 맞은 국내 최장수 아이돌 그룹이다. 게다가 데뷔 이후 한 번도 해체나 멤버의 탈퇴 및 교체 없이 끈끈한 의리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주목받고 있다. 1998년에 데뷔한 아이돌이 1998년에 태어난 아이돌과 1위 경쟁을 하고 있는, 그야말로 아이돌계의 살아있는 전설.

신화가 데뷔했을 당시는 아이돌의 평균 수명이 3~5년에 지나지 않았고 덕분에 5년차 징크스라는 말까지 있었다. 때문에 SM엔터테인먼트 역시 신화를 해체시킨 후 솔로로 계약할 생각이었으나, 신화는 함께 일하던 스텝들을 데리고 다 같이 소속사를 이적하며 그룹을 보존했다. 당시는 매너리즘과 불법 음원으로 인해 1세대 아이돌들이 지독한 침체기를 겪던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화는 2004년 7집으로 대상을 수상하며 데뷔 7년차에 제 2의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7년차에 전성기를 맞기는 커녕 7년차인 아이돌 그룹 자체가 극히 드물었다는걸 생각하면 대단한 일.

신화가 데뷔했을 당시는 아이돌 평균 수명이 짧았기 때문에 신화는 10년도 더 전부터 '장수 아이돌', '중견 아이돌'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아이돌계 최고참으로 활동한 기간이 아닌 기간보다 더 많은 셈. 한국 아이돌 최초 정규 6집 활동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던 <너의 결혼식> 활동 시절, 신화는 당시 평균나이가 고작 24.5세에 불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나이 때문에 춤출 때 힘들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 정도로 이 당시 아이돌이란 20대 초반 이하의 어린 친구들이 몇 년 바짝 하고 빠지는 직업이었고 20대 중반도 거의 찾기 힘들었다. 서른이 넘은 현역 아이도 많은 지금으로써는 상상하기 힘든 일. 그렇기에 신화는 더더욱 연예계에서 변종으로 여겨지고 있다.

군복무로 인한 공백기 4년을 제외하면 그룹 활동을 2년 이상 쉬었던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 평균 앨범 발매 텀은 대략 1년 반 정도다. 한창 빡세게 활동하던 1~6집 시기에는 1년에 한장 꼴로 앨범을 발매했고, SM엔터테인먼트를 나온 이후 7집부터는 그룹활동과 개인활동을 병행하며 앨범 발매의 텀이 길어졌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백기가 2년 이상을 넘어간 적이 단 한번도 없다.[32] 심지어 활동이 뜸하다고 원성이 자자했던 시기인 2005년~2008년 조차도 8집은 1년 9개월, 9집은 1년 10개월만에 발매되었기 때문에 평소와 비교해 그다지 긴 텀도 아니었다.[33] 최근 아이돌 그룹들과 가요계의 동향을 보았을 때 굉장히 이례적인 사례로,[34] 이젠 좀 쉬엄쉬엄 할법도 한 데뷔 20년차 베테랑인 신화가 싱글도 미니앨범도 아닌 정규앨범을 1~2년마다 꼬박꼬박 발매한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행보라고 볼 수 있다.[35]

그만큼 멤버들 모두 무조건 개인 활동보다 그룹 활동을 무조건 우선시한다. 활동부터 음반 제작까지 멤버들이 최종적으로 책임을 지다보니 준비 기간이 길고, 이 때문에 정규 앨범 활동 최소 1년 전에 멤버들끼리 모여 플랜을 짜놓는다. 그룹 활동을 우선하여 플랜을 짠 후 남는 시간에 개인활동 플랜을 짠다고 한다. 배우 활동을 병행하고 있는 에릭과 김동완의 경우 신화 활동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될 것 같으면 먼저 들어오는 시나리오는 읽어보지도 않는다고 한다. 다만 <연애의 발견> 시나리오가 들어왔을 때는 에릭이 멤버들에게 '~한 시나리오가 들어왔다'라고 말을 꺼내자 멤버들이 오히려 무조건 하라며 계속 등을 떠밀었고 신화 활동을 예정보다 뒤로 미뤘다고 한다.

신화가 얼마나 오랫동안 활동했는지 설명하자면 H.O.T., 젝스키스 다음으로 데뷔하여 god와 동시기에 활동하였고, 동방신기가 막 데뷔해 신인상을 휩쓸때 가요대상을 받았고, 샤이니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골든디스크 본상을 수상을 하였고, EXO를 2013년 MAMA에서 투표로 이겼다. 심지어 이제는 신화가 데뷔했을 당시 태어난 아이들이 후배들이 되었다. 게다가 이 친구들이 2017년 기준으로 성인이 된다. 신화가 데뷔할 때 태어난 아이들도 어느덧 성인이 된 것이다. 심지어 이제는 신화가 5집을 발표한 해에 태어난 이 현역 아이돌로 데뷔해서 활동 중이다. 신화의 맏형들과는 나이차가 무려 23살 차이

또한 신화가 활동한 시기에만 5개의 정권이 들어섰다[36]. 활동 중 2번째 정권을 맞이하기도 전에 해체하거나, 2번째 정권을 맞이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해체하는 아이돌 그룹들이 많이 있다는걸 생각하면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순서대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1998~2003)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2003~2008) →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이명박 정부(2008~2013) →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박근혜 정부(2013~2017) 이다. 그리고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후보가 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됨으로서 신화는 활동 중 5번째 정권을 맞이하게 되었다. 덤으로 북쪽에서도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정권이 교체되었다. 또 신기록 세울 기세 이미 신기록이다 아이돌룸에서도 이것을 언급하며 이제는 통일을 바라본다는 말까지 나왔다.

더불어 활동 중 월드컵만 6번 개최되었고, 하계 아시안 게임만 6번, 동계 아시안 게임만 5번, 하계 올림픽만 5번, 동계 올림픽만 6번 개최되었다. 이젠 경이로울 지경...

6. 우정[편집]

신화가 20년 동안 그룹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이자, 신화가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는 요인 중 하나가 바로 끈끈한 우정이다. 흔히들 신화가 단순히 '꾸준히 수요가 있었고 상황이 잘 맞아떨어져서' 장수할 수 있었을거라 생각하지만, 사실상 신화는 지금까지 가장 많은 해체 위기를 겪어본 아이돌 그룹이다. 소속사 문제, 상표권 문제, 금전적인 문제, 건강 악화, 주변의 유혹과 이간질부터 사소한 다툼까지, 아이돌 그룹이 겪을 수 있는 해체 위기라는 위기는 전부 다 겪어봤다. 이처럼 멤버들이 위기를 맞았을 때 계속 연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어준 것은 다름 아닌 서로였다고 한다. 멤버들 또한 서로를 만난 것은 운명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 저는 지옥까지 저 XX들 따라갈 거에요.[37]

2003년 SM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이 만료되고 소속사를 나왔을 때, 표면적으로는 특별한 문제 없이 단체로 기획사를 나왔으나, 이는 절대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멤버들의 결속력과 신뢰가 빛을 발한 케이스이다. 처음에는 SM엔터테인먼트에서 몇몇 멤버들에게만 은밀하게 파격적인 조건으로 솔로 계약을 제안했으며,[38] 다른 기획사에서도 솔로로 혹은 특정 멤버를 빼고 계약하자며 파격적인 조건과 금액으로 끊임없이 유혹을 해왔다. 그러던 와중에 멤버들끼리 가진 술자리에서 한 멤버가 '헤어지고 싶지 않다'라고 진심을 토해내자, 멤버들 모두 서로가 같은 마음이라는 걸 깨닫고 똘똘 뭉쳐서 신화라는 팀을 지킬 수 있었다고 한다. 만약 이때 신화 멤버 중 단 한 사람이라도 우정 대신 부와 성공을 택했다면 신화는 예견된 해체 수순을 밟았을 것이다.

흔히들 SM엔터테인먼트가 신화를 곱게 보낸 줄 아는데, 실제로는 굉장히 구질구질했다. 당시 신화는 SM엔터테인먼트에 계속 남아있으면 팀의 존속이 어려워질 수도 있겠다는 판단 하에 소속사를 이적하였고, SM엔터테인먼트도 처음에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으나 결국은 신화의 결정을 존중해주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SM엔터테인먼트는 태도를 바꿔 신화의 상표권을 특허청에 등록하였고, 신화 상표권을 오픈월드 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에 넘겼으며, 신화는 오픈월드의 갖은 횡포에 휘둘려야 했다. 이 당시 신화는 모든 멤버가 개인 활동으로도 충분히 대박을 터트린데다, 당시가 지금과 달리 아이돌의 전망이 어둡고 미래가 불완전한 시기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신화 멤버들이 팀의 존속을 택한 것은 매우 어려운 결정이었다.

특히 에릭은 '역대 가장 헌신적인 아이돌 리더'라는 찬양을 받을 만큼 리더십을 발휘했는데, 신화 상표권을 되찾기 위해 직접 법공부를 하고 변호사를 만나러 다녔으며 신화 상표권을 찾아오는데 가장 크게 공헌한 인물이다. 드라마 불새로 톱스타 자리에 올랐을 무렵에도 모 소속사에서 제안한 수십억원의 계약금을 거절하고 팀을 택했으며, 빠듯한 개인활동 스케줄과 군복무가 겹쳐져 멤버들 간의 소통이 전보다 부족해졌을 때에도 멤버 6명이 다같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자리를 주선하며 리더 노릇을 톡톡히 했다.[39]

가족도 돈 때문에 싸우고 찢어지는 마당에, 신화는 돈보다 의리를 골라서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김동완에 따르면 멤버들 중 서로에게 도움을 받지 않은 멤버가 없다고 한다. 모두가 곗돈 붓듯이 서로 크게 크게 도와준 적이 있어 멤버들끼리는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앤디네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에도 멤버들이 돈을 모아 수술비를 전부 부담했다고 하며, 이민우가 가족의 부채 때문에 사채를 쓸까 고민할 정도로 큰 금전 부담에 시달렸을 때, 멤버들이 다같이 돈을 모아 거액을 생일선물이라며 건넸다고 한다.[40]

신화는 금전적인 것을 넘어 정신적으로도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전진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생모를 만나러 간다고 했을 때, 모든 멤버들이 함께 전진의 생모에게 편지를 썼으며 전진과 동행해 그의 생모를 만나고 왔다. 또한 신혜성이 물의를 일으켜 자숙하던 시절에는, 전진과 에릭이 매일 같이 신혜성의 집을 찾아가 그를 보살펴줬다고 한다.

각종 위기를 함께 이겨내고 희노애락의 순간을 함께 겪어오며 이제는 서로에게 가족이나 다름 없는 존재가 되었다. 전진은 어버이날에 멤버들 부모님께 카네이션 꽃바구니를 보내기도 했고, 신혜성은 멤버들 부모님의 생신을 일일이 다 챙기고 있다고 한다. 신화 멤버들의 부모님들 역시 신화 멤버들을 '아들'이라고 부르며, 멤버들의 개인 콘서트에도 먹을거리를 싸들고 찾아오신다.

신화 멤버들의 이미지와 나이로 봐서는 정말 의외지만 서로 유난스러울 정도로 애정 표현이 많고 스킨십이 진한 것이 특징이다. 뽀뽀 모음 13분의 위엄[41] 숙소 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팬티를 같이 돌려입었을 정도로 신체 접촉에 관대하다. 일상 생활에서 아무렇지 않게 뽀뽀를 하고 심지어 목이나 입에도 하며, 신화 멤버들과 신화창조 중 아무도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질 않는다. 덕분에 신화 멤버들이 뽀뽀하는 모습에 후배 아이돌들이 깜짝 놀라거나, 신화가 지나가는 말로 꺼낸 스킨쉽 일화에 MC나 패널들이 기겁하기도 한다.[42]

그러면서도 싸울 때는 화끈하게 싸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화끈하게 싸우고 화끈하게 화해하는 것 또한 신화의 우정 비결로, 서운한 감정을 그때 그때 다 말하기 때문에 서로 쌓인 감정이 없다고 한다. 치기 어린 20대 초반에 남들 다 보는 방송국 내에서 자기들끼리 주먹다짐을 한 것은 신화팬들 뿐만 아니라 방송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에피소드.[43] 지금도 신화는 커텐을 치냐 마냐를 두고 싸우고 인형을 망가뜨렸다고 싸우고 또 언제 그랬냐는듯 화해하며 자기들끼리 지지고 볶고 살고 있다. 다만 이제는 나이도 들고 철도 들고 싸울 소재도 고갈돼서 주먹질은 안 한다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신화 멤버들 성격이 많이 유해졌다.

신화의 이러한 행보가 이상적인 이유는 아이돌의 우정과 의리가 대중들에게 장점으로 어필하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서로 스스럼 없이 어울리고 우정을 다지는 모습을 보며 환상을 갖게 되고, 소속사는 대중의 환상을 이용해 아이돌의 우정을 상업화한다. 하나 대중은 멤버들이 팀보다는 개인의 이익과 안위를 더 우선시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자신들의 환상이 깨지면 바로 배반한다.[44] 그렇기에 신화의 비현실적이고 동화같은 우정은, 대중들에게 감동을 주고 그들로 하여금 대리만족을 느끼게 한다.

신화도 불화설에 숱하게 시달린 그룹이다. 당시에는 아이돌이 따로 활동한다는 것이 불화의 징조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아이돌 그룹 최초로 그룹 활동과 개인 활동을 병행한 신화에게는 해체설이 끊이질 않았다. 또한 불가피하게 개인 소속사가 갈라지고, 아이돌 최초로 군입대를 하고, 군복무로 인해 공백기를 겪으며 신화는 10집으로 컴백하기 이전까지 끊임없는 해체설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중들 또한 신화의 불화설에 코웃음치는 수준에 이르렀고, '우정'과 '의리'는 신화의 상징 중 하나가 되었다.

7. 음악[편집]

데뷔 초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신화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은 해외 트랜드를 따르는 화려하고 마니악한 신식 댄스 음악이라는 점이다.[45] 가장 최근 앨범인 혹자는 신화에 대해 연차가 오래된 그룹인 만큼 음악도 올드할 거라는 편견을 가질 수 있으나, 수년 전에 발매된 음악도 전혀 촌스럽지 않을 만큼 해외에서 먼저 유행하는 음악 장르를 발 빠르게 수용해온 그룹이며, 이는 신화가 지금까지도 가요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요인 중 하나이다. 일례로 최근 13집 타이틀곡인 <Touch> 역시 국내에서는 아직 마니악한 장르인 퓨처 베이스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화 음악은 대중성과는 꽤 거리가 멀며 타켓층은 10~30대 여성들로 한정된다. 아이돌 팬을 위해 노래하는 것은 신화의 소신이기도 하다.[46]

SM엔터테인먼트 소속 당시 발매했던 앨범들, 즉 6집까지의 앨범들에는 메인 프로듀서였던 유영진의 손길이 많이 느껴진다. 대표적인 SMP 스타일의 곡으로는 <해결사>, <Yo!> 등이 있다. 다만 신화는 SM을 나온 이후에도 화려한 댄스 음악, 남성미 넘치는 컨셉, 기존의 파트 구성을 그대로 유지했기에,[47] 6집까지의 앨범과 그 이후의 앨범 사이에 생각보다 큰 간극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또한 SM 시절부터 쭉 이민우가 안무 메이킹에, 에릭이 랩 메이킹에 참여해왔기에 퍼포먼스와 랩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발전 외에는 큰 차이를 느낄 수 없다. 다만 신혜성의 경우 SM을 나온 이후 창법이 상당히 바뀌고 보컬이 훨씬 좋아졌다는 평을 받고 있다.[48]

신화컴퍼니를 설립한 후 앨범 제작을 모두 멤버들이 관할하고 있다. 아이돌계의 가내수공업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10곡 짜리 정규 앨범 하나를 낼 때마다 데모곡을 1000곡 이상 받으며, 작곡가를 가리지 않고 받은 다음 멤버들끼리 블라인드 테스트와 다수결 제도를 통해 수록곡과 타이틀곡을 셀렉한다. 그 과정을 통해 신화가 발굴해낸 신인 작곡가들도 꽤 있다.[49] 녹음할 때에는 에릭과 이민우가 프로듀싱을 맡는다. 멤버들의 장단점을 누구보다 가장 잘 알다보니 한계치까지 집요하게 죽음의 디렉팅을 한다고 한다. 신혜성은 녹음 도중 기절한 적도 있다고 하며 '마른 오징어도 쥐어짜면 즙이 나온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처럼 피땀 어린 앨범 제작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공백기가 1년을 넘을 수 밖에 없다. 모든 앨범을 거의 매번 정규앨범으로 발매한다는 것 역시 특징이다.

전 멤버가 좋아하는 음악 스타일이 달라, 현재 신화 앨범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만나볼 수 있다. 이민우와 에릭이 좋아하는 힙합, 김동완과 신혜성이 좋아하는 발라드와 락 등의 다양한 음악적 색이 만나면서 좋은 방향으로 앨범이 풍성해졌다. 특히 이런 현상은 앨범이 나올 때마다 멤버들의 참여도가 높아지면서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7.1. 파트[편집]


보컬라인

  • 신혜성(하이톤) : 메인보컬

  • 김동완(로우톤) : 리드보컬 (6집까지 랩도 병행)

  • 이민우(미들톤) : 메인댄서, 서브보컬 (6집까지 랩도 병행)


래퍼라인

  • 에릭(로우톤) : 메인래퍼

  • 전진(미들톤) : 리드댄서, 리드래퍼, 서브보컬 (3집부터 서브보컬도 병행)

  • 앤디(하이톤) : 서브래퍼 (3집까지 리드댄서도 병행)[50]


댄스라인

  • 민우 : 메인댄서, 서브보컬 (3집까지 랩도 병행)

  • 전진 : 리드댄서, 서브래퍼, 서브보컬 (3집부터 서브보컬도 병행)


파트는 실력과 형평성을 기반으로 분배되며 꽤 합리적인 편이다. 이미 파트 배분이 일정한 형식으로 고착화된지 오래고 본인들이 직접 파트 배분을 하다보니, 팬들 사이에서 파트 배분으로 인한 논쟁이 일어나지 않는 몇 안 되는 그룹. 연차가 적은 아이돌의 경우 회사에서 밀어주는 멤버나 인기 있는 멤버에게 무리하게 파트를 몰아주기도 하는데 신화의 경우 그런 일은 절대 발생하지 않는게 장점이다.

보컬라인의 실력이 굉장히 탄탄하다. 신혜성이 메인보컬로서 허스키한 미성과 높은 옥타브로 신화 음악의 하이라이트를 맡고, 김동완이 리드보컬로서 단단하고 안정적인 목소리로 보컬을 지원해주고, 이민우가 서브보컬로서 곡에 따라 거칠고 관능적인 음색과 부드러운 음색으로 풍성함을 더해준다.

원래 데뷔 전 메인보컬은 김동완이 맡을 예정이었으나, 녹음실 울렁증이 있는 바람에 많은 파트를 무난하게 소화했던 신혜성이 메인보컬 포지션을 맡게 되었다. 시원하게 소리를 뽑아내는 김동완과 대조적으로 허스키한 미성을 가진 신혜성이 메인보컬을 맡게 되면서, 남성적으로만 보일 수 있는 신화의 음악에 균형을 갖추게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래퍼 라인의 경우 에릭을 제외하면 실력이 좋은 편은 아니나, 실력과는 별개로 자기 파트는 안정적으로 소화한다. 메인랩퍼인 에릭을 주축으로 앤디과 전진이 랩을 맡고 있다. 세명의 목소리톤 또한 가지각색이다. 에릭은 낮고 매력적인 톤으로 신화 음악들에서 화려하고 다양한 랩들을 선보이고, 앤디와 전진은 데뷔 초에는 소년같고 앳된 톤이였으며, 둘 다 다른 멤버들에 비해 실력이 부족하고 평범한 음색을 가지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목소리가 많이 굵어지면서 앤디는 신사다운 목소리를 내는데 능해졌고, 전진은 허스키해지고 탁해졌다. 또 각자 어울리는 파트를 맡으며 더욱 더 개성있는 보이스를 갖게됐고, 새로운 앨범이 나올때마다 둘 다 실력이 점점 더 늘고 있다. 리드래퍼인 전진은 신화의 각 정규앨범마다 평균 20~30%는 보컬로 참여한다.

무대 위에서는 메인댄서인 이민우와 리드댄서인 전진이 프론트맨으로서 퍼포먼스를 주도한다. 같은 메인댄서이고 어린시절부터 춤으로 이름을 날렸던 사람들이면서도 춤 추는 스타일이 굉장히 다른데, 이민우의 춤선은 부드럽고 유려한 반면, 전진의 춤선은 절도가 있고 박력이 느껴진다.

앨범 제작 과정에서는 에릭과 이민우가 함께 프로듀싱과 디렉팅을 맡고 있으며, 현재 보컬 파트는 주로 이민우가 랩 파트는 주로 에릭이 디렉팅을 맡고 있다. 대체로 랩 메이킹은 에릭이, 안무 메이킹은 이민우가 맡는다. 공연과 관련해서는 신혜성이 가장 많은 부분을 관할한다.

7.2. 실력[편집]

화려한 퍼포먼스 위주의 댄스 그룹이면서도 라이브에 능하고 또 라이브를 고집하는 그룹.

사실 데뷔 초에는 '립싱크도 장르다'라는 당시 이수만의 독특한 가치관(...)에 따라 립싱크를 주로 하였고, 보컬 트레이닝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던 열약한 환경 때문에 라이브 실력이 그닥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물론 동시대 보이그룹들도 이보다 상황이 더 나쁘면 나빴지 좋지는 못했고, 때문에 아이돌 가수에게는 라이브 실력에 대한 기대조차 없었다.

신화는 2001년 3집 이후 첫번째 콘서트에서부터 라이브를 시작했으며 그 후로도 콘서트는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모두 라이브로 진행되었고 3장의 라이브 콘서트 앨범도 발매하였다. 또한 당시 일본에서는 아이돌에게도 라이브 무대를 요구했기에 신화도 2002년부터 라이브 실력을 늘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6집 <너의 결혼식>에 이르러서는 그 죽음의 안무를 소화하며 라이브를 보여줄 정도로 실력이 향상했다.

2003년 SM을 나온 이후부터 전문적인 보컬 트레이닝을 받기 시작했는데, 당시 신화가 이미 중견 가수 취급을 받았다는 걸 고려하면 어느정도 자존심을 굽힌 셈이다. 7집 <Brand New>부터 실력이 일취월장하더니, 8집에 이르러서는 립싱크 의혹까지 받는다. '립싱크 아니냐', '사전 녹음 아니냐'라는 안티들의 의혹에 보다 못한 팬들이 신화에게 라이브임을 증명해 달라고 하였고, 에릭은 무대에서 신화 Live라고 패기 넘치게 외치고 시작하기도 했다. 아직까지도 신화는 올 밴드 라이브이거나 무대 뒤에 세션이 있지 않은 이상 립싱크나 MR과 AR을 반반 섞었다는 오해를 받는다. 그러나 신화는 음악방송에서 AR이 아닌 순수한 MR을 사용하며, 콘서트는 4시간 동안 아예 올 밴드 라이브로 진행된다. # # #

사실 처음부터 멤버들의 기본 역량이 좋은 편이었다. 연습생 제도가 보편화되지 않았던 90년에는 메인보컬감 멤버가 두 명이나 있는 그룹은 흔치 않았고 랩을 좀 하는 멤버가 있는 그룹은 신화가 유일했다. 신화와 견줄만한 실력의 동세대 아이돌을 꼽으라면 NRG 정도.[51] 이민우는 4집을 기점으로 보컬 실력이 급상승하여 서브보컬을 도맡게 되었다. 한편 보컬 멤버로 영입된 신혜성과 김동완을 제외하면 전 멤버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댄스 공연을 하던 사람들이고 그 중에서도 이민우와 전진은 지역에서 유명한 춤꾼이었다. 또한 에릭을 제외한 전 멤버가 솔로 가수로 활동한 바 있으며, 특히 신혜성은 발라드 가수로서 이민우는 댄스 가수로서 입지를 다진 바 있다.[52][53]

에릭은 힙합계 인사들로부터 '최초의 랩 잘하는 아이돌 랩퍼'라는 평을 받았으며, 조PD, 주석 등으로부터 랩 실력을 인정받았다.[54] 비록 솔로 앨범은 내지 않았지만 힙합에 대한 애정도 크다. 주석, 허인창, 이현도 등 힙합계 유명인사들의 앨범에 피처링으로 참여하기도. 이외에도 신화 멤버들을 비롯해 S, , 이수영, 손담비, 간미연, SMAP 등 다양한 가수들의 앨범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이민우는 데뷔 전부터 지역에서 이름을 떨치던 댄서로, 유명 안무가들 사이에서도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최영준 안무가는 "이민우는 너무 천재적이라 우리 같은 댄서들은 억울해진다"라고 말한 바 있고, 조장혁은 이민우가 복면가왕에 출연했을 때 "우리나라에서 저런 춤이 나올 수 있는 사람은 이민우 밖에 없다"며 이민우임을 추측했다. 신화의 모든 타이틀곡 안무에는 이민우가 꼭 참여해왔는데, 의자 퍼포먼스로 유명한 <Wild Eyes>는 다리를 다친 신혜성을 위해 이민우가 단기간에 고안해낸 안무이고, 죽음의 안무로 유명한 <너의 결혼식>은 신화 안무가 쉽다는 말에 발끈한 이민우가 박자를 쪼개고 쪼개 만든 안무이다.

  • 1998년 해결사 라이브 #

  • 1998년 1집 으쌰으쌰 라이브 으쌰으쌰

  • 1999년 2집 T.O.P. 라이브 #

  • 1999년 2집 T.O.P.+YO! 라이브 T.O.P.+YO

  • 1999년 2집 천일유혼+T.O.P.라이브#[55]

  • 2000년 3집 Only One 라이브 #

  • 2002년 5집 Perfect Man 라이브 #

  • 2003년 6집 너의 결혼식 라이브 #너의결혼식 빗속 라이브 너의결혼식

  • 2004년 너의 결혼식 라이브 #

  • 2004년 7집 Brand New mr 제거#

  • 2004년 7집 열병 라이브 #

  • 8집 Your Man (에릭 라이브 증명 무대)#

  • 2007년 KBS 가요대축제에서는 무려 3곡을 연달아 부르는 데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지막 곡인 T.O.P.는 일명 전설의 물쇼로 기록되었다.#

  • 2012년 콘서트 SHINHWA Grand Tour 2012 The Return in Seoul 中 Jam#1, 흔적, 해결사+Run Jam#1 흔적 해결사+Run [56]

  • 2015년 유희열의 스케치북 출연 MR 제거 표적 Brand new I Pray 4 U+으쌰으쌰

  • 2017년 유희열의 스케치북 출연 Wild Eyes 어쿠스틱 버전 Wild Eyes (Acoustic ver.)

7.3. 자작곡[편집]

지금까지 이민우, 김동완, 에릭이 작사작곡에 참여했으며 신혜성은 작사에만 참여했다. 특히 이민우는 멤버들 중에서도 작곡에 참여하는 비율이 가장 높고 본인의 솔로 앨범에서도 프로듀싱 뿐만 아니라 작사, 작곡, 편곡까지 맡을 만큼 음악적인 역량을 갖추고 있다.

이민우의 작곡 스타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강렬한 비트를 동원한 힙합곡이거나,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발라드 혹은 팝곡이다. 전자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곡은 9집의 타이틀 곡 <Run>과 자신의 솔로 2집 타이틀곡이었던 <Bump>이고, 후자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곡은 4집 수록곡 <Reminiscence>이다. 종종 9집 수록곡 <흔적(Destiny Of Love)>과 같은 정통 발라드도 작곡한다. 작곡 만큼이나 작사도 많이 하는데 특히 댄스곡 가사를 잘 쓴다. 이민우가 작사한 곡 중 가장 유명한 곡으로는 쥬얼리의 <Superstar>와 <One More Time> 등이 있다. 신화 타이틀곡 중에서는 10집 <Venus>를 작사했다(신혜성이 작사를 했다가 야해졌다는...).

김동완은 주로 7집 수록곡 <놓아요>와 같은 스타일의 발라드곡을 만들어왔으나 2집 수록곡 <푸리>와 같이 거친 곡도 종종 만들었다. 특히 4집 수록곡 <Egotism>이라는 곡에서는 색다른 장르를 선보이며 작사작곡 실력의 절정을 보여줬다. 본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곡이며, 많은 평론가들과 음악 관계자들로부터 '김동완의 천재성이 발휘된 곡'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곡의 크레딧도 빠방해서 허인창, 후니훈, 등 이 때만 해도 메이저 시장에서 크게 유명하지 않던 실력파 뮤지션들이 피쳐링으로 대거 참여했다. 또 신혜성이 랩을 구사하기도 한 몇 안되는 희귀 트랙으로 꼽히기도. 2000년 SM타운 겨울앨범의 <기도(Prayer)>도 김동완이 작사작곡했다.

에릭은 신화 1집부터 13집까지 신화 앨범에 수록된 곡 대다수의 랩메이킹을 해왔다. 한때는 영어랩이 트랜드이고 에릭이 교포 출신이다보니 영어 위주로 가사를 썼는데 최근에는 트렌드가 바뀌면서 에릭도 그에 맞춰 한글 위주의 가사를 쓰고 있다고 한다. 20대 때는 영어와 슬랭으로 써진 패기 넘치는 가사들이 많았는데[57], 30대부터는 로코를 많이 찍어서 그런지 로맨틱하고 섹슈얼한 가사들을 많이 쓰고 있다. 에릭이 작곡한 곡으로는 7집 수록곡 <Liar>, 9집 수록곡 <We can get it on> 등이 있다.

신혜성은 주로 작사에 참여하는 편으로, 2집 수록곡 <너의 곁에서>, 6집 수록곡 <노을>, 9집 수록곡 <흔적 (Destiny Of Love)>[58] 등의 가사를 썼다. 신혜성의 감성적인 면이 잘 드러나는 가사가 많다.

10집 이후부터는 에릭이나 이민우가 앨범 프로듀싱을 맡으면서 자작곡을 싣는 빈도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멘탈 소모가 심한 창작보다 프로듀싱에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한다.[59]

8. 안무[편집]

신화라는 그룹에 있어 데뷔 초부터 유명했던 것 중 하나가 퍼포먼스이며, 신화 멤버들 스스로도 자신들을 댄스 그룹으로 규정 짓고 있다.

데뷔 초부터 신화의 안무 메이킹에는 이민우가 항상 참여했으며 지금도 이민우를 중심으로 신화 안무팀이 안무 메이킹을 전적으로 담당하고 있다. 한때 거의 모든 안무를 이민우가 만들던 시절도 있었으나, 현재는 이민우가 앨범 제작 쪽에 투자하는 비중이 커지다보니, 안무가를 발굴해 함께 안무 메이킹을 하고 있다. 이민우가 전체적인 틀과 컨셉을 제시하면 세부적인 디테일은 최영준 안무가가 작업하고 컨펌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음악을 틀어놓고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춤을 춰보기도 하는 등 작업하는 방법은 가지각색이며, 이민우가 애초에 프로듀싱을 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안무가 함께 나오기도 한다.

이민우가 학창시절부터 날리던 댄서였기 때문에 춤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절대 신화 활동을 하면서 춤을 버리지 않을 거라고. 사실 신화 멤버들의 몸상태는 각종 부상, 잦은 교통사고, 소싯적의 무리한 스케줄로 상당히 좋지 않은 상황인데다 곧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들 스스로 댄스 그룹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다. 20대 때에는 파워풀하고 각이 딱딱 맞는 칼군무 위주에 덤블링과 각종 묘기까지 선보였다면, 이제는 30대의 섹시함과 여유로움이 돋보이는 안무로 바뀌었으나, 잘게 쪼갠 박자 때문에 어려운 것은 여전하다.

곡 만큼이나 안무가 유명한 곡이 많아 후배 남자 아이돌들이 가장 자주 곡을 커버하는 아이돌 선배가 바로 신화이다. 퍼포먼스로 유명했던 그룹인 만큼 신화창조 출신 남자 아이돌, 그 중에서도 이민우를 가장 존경한다고 밝힌 남자 아이돌들을 보면 팀 내에서 메인댄서나 리드댄서인 경우가 많다. 신화 안무 중에서도 <T.O.P.>, <Wild Eyes>, <Perfect Man> 등은 쉬우면서도 간지가 나서 후배 아이돌들이 자주 커버한다. <Only One>이나 <너의 결혼식> 커버 무대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언급된 곡들은 신화 안무 중 쉬운 축에 속하고 대부분의 신화 안무는 보기보다 추기 어려운데, 스텝을 잘게 쪼개서 잔동작이 많은 것이 특징인데다, 신화 특유의 느낌을 살리는 것 또한 무척 어렵다. 특히 <너의 결혼식>은 박자를 아주 잘게 쪼갠데다 겹치는 동작도 거의 없어서 가히 '죽음의 안무'라는 칭호까지 붙여진 만하다.

  • 2집 타이틀곡 <T.O.P.(Twinkling Of Paradise)> :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샘플링한 곡답게 백조의 움직임을 연상케하는 안무다. 그리 어렵지 않은 동작임에도 4집 후속곡 <Wild Eyes>와 함께 신화 안무 중 가장 유명하고 커버도 많이 된다.

  • 3집 타이틀곡 <Only One> : 남자 아이돌 최초로 짐승돌, 섹시 컨셉을 최초로 선보였다. 몸을 만들고 상의를 탈의한 채 자켓을 벗어제끼는 안무가 포인트. 상당히 고난이도인 안무로, 엇박자가 특징이라 박자를 맞추는 것 자체가 어렵다.

  • 4집 후속곡 <Wild Eyes> : 신화를 '의자춤의 원조'로 만들어준 안무이나, 이 안무는 처음부터 의자춤은 아니었다. 원래는 다른 안무였는데, 당시 켄트 외국인 학교 논란, 이로 인한 비자 문제, 어머니의 병세로 인해 앤디가 4집 활동에서 잠시 빠지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신혜성마저 무릎 부상을 당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로 인해 신혜성의 무릎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이민우가 급하게 고안해낸 안무가 바로 의자춤. 참고로 20분 만에 탄생했다. 특별히 복잡하거나 고난이도의 안무가 아님에도 굉장히 카리스마있고 멋있어서 아직까지도 안무가들에게 아이돌 안무 중 최고로 꼽힌다. 대체로 쉬우면서 멋있는 안무들이 레전드로 꼽히는 것을 알 수 있다

  • 5집 타이틀곡 <Perfect Man> : 국내 댄스 그룹 최초로 스탠딩 마이크 퍼포먼스를 시도했다.

  • 6집 타이틀곡 <너의 결혼식> : 그야말로 레전설. 일명 '죽음의 안무'. '노래를 잡아먹은 안무'라고도 한다. 발매 당시 극악무도한 난이도에 전국의 수많은 춤꾼들의 도전심을 자극했다. 박자를 쪼개고 쪼개고 쪼개서 무려 반의 반의 반의 반 박자다. 예? 대략 1초에 네 동작이 들어가는 꼴. 심지어 중복되는 부분이라고는 다리를 돌리는 안무가 두 번 나오는게 전부이며, 후렴구조차 매번 안무가 다르다. 스텝이 빠르고 복잡해서 쉴 새없이 발을 잘게 놀리며 뛰어야 한다. 2012년 콘서트에서 이 곡을 부른 직후에 마치 죽을 것처럼 힘들어하던 신혜성의 말로는 하루에 세 번 추면 한 달에 10kg 정도는 빠질 거라고. 동작과 스텝의 난이도를 생각하면 치매 예방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신화는 이 곡으로 활동할 당시 이 안무를 소화해내며 라이브를 했는데, 힘든 기색이 역력하거나 라이브의 질이 떨어져도 비난을 받지 않았다. 그 정도로 어렵고 힘든 안무다. 신혜성이 이 안무를 보고 경악해서 이민우의 멱살을 잡았다는 일화는 이미 유명. 4집과 5집 후 한 방송에서 신화 안무가 쉽다는 소리에 열받은 이민우가 이를 갈며 안무팀과 함께 만들었다. 애초에 어려우라고 만들었으니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신화 안무의 양 날개를 담당하던 신혜성과 김동완이 계속된 이의 제기 끝에 최초로 전면에 세워졌다. 하필 너의 결혼식에서...

  • 7집 타이틀곡 <Brand New> : 신화 안무 중 최초로 뮤지컬 대형의 안무를 시도했다. '멤버 VS 댄서' 구도의 춤으로 여성 댄서들과 호흡을 맞췄다. 비트, 가사, 안무가 모두 강렬하고 자극적인 곡으로 이 당시만 해도 야하고 파격적이라는 평을 많이 받았다.

  • 8집 수록곡 <Your Man> : 이번에는 '보컬 VS 랩퍼'의 구도. 일명 '우리 집에 왜 왔니' 춤.

  • 11집 타이틀곡 <This Love> : 최초로 국내에 보깅댄스를 도입했다. 타이틀곡인 <This Love> 뿐만 아니라 <Scarface>, <Mannequin> 등의 수록곡 안무 역시 보깅댄스에 기반했다. 이 앨범은 데뷔 때부터 고수한 딱딱 맞는 각잡힌 칼군무를 빗겨갔다.

  • 12집 타이틀 곡 <표적> : 일명 '제 2의 <Brand New>'라고 불리는 뮤지컬 대형의 안무. 인터뷰에서 이민우가 밝힌 바에 의하면 멤버마다 '스파이', '첩보원', '스나이퍼' 등의 캐릭터를 부여했다고.# 안무 내에 서사성이 있으며 각각의 멤버가 상대를 유혹하는 것이 컨셉이기 때문에 각 멤버별 안무가 다르다.

  • 12집 수록곡 <Alright> : 일명 '제 2의 <Wild Eyes>'라고 불리는 의자춤. 무려 14년 만에 의자춤을 재현하며, 신화는 의자춤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Wild Eyes>에 비해서는 여자 백댄서 기용 및 등에 기대는 의자[60]와 자켓 등을 필요로 하는 소품의 제약이 많다.


일단 보면 최초가 많다

9. 예능[편집]

예능돌과 비글돌의 원조. 광견돌이라고도 카더라

사실 멤버 개개인의 예능감이 예능인 수준은 아니다. 몇몇 멤버는 예능 울렁증이 있다고 고백하기도... 그럼에도 신화 예능이 반응이 좋은 이유는 멤버들의 폭발적인 케미스트리 때문. 평소에는 얌전하던 멤버도 6명이 뭉치면 예능 울렁증이고 낯가림이고 뭐고 똘끼 넘치는 비글로 변모한다. 베테랑 예능인들도 케미가 안 맞으면 재미를 보장하기 힘든데 신화는 이미 케미에서 반은 먹고 들어가는 것. 단순히 서로 협력하는 것 뿐만 아니라 멤버들끼리 하는 '가식 따위는 개나 준' 수준의 질펀한 입담과 상호 디스, 몸개그 면에선 신화를 따라갈 만한 아이돌 그룹이 거의 없다. 이 때문에 보통 아이돌 그룹의 단체 예능은 팬층을 제외하면 수요가 없어 반년 이상 방영하기 힘든데 신화의 단체 예능들은 늘 장수했다.

특히 2000년대 예능계를 휩쓸었던 아이돌 그룹이자 2000년대 예능의 살아있는 유물들. 때문에 신화와 함께 방송을 했던 중견 예능인들은 종종 신화에 대해 말하며 반농담 삼아 '옛날 예능의 상징들'이라 일컫기도 한다. 또한 체육돌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아이돌로, 몸 쓰는 예능에서 뛰어난 운동신경과 지독한 승부욕을 바탕으로 몸을 사리지 않아 제작진들이 사랑하는 아이돌이었다.

1999년 2집 <T.O.P>로 인기몰이를 한 후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예능에서 러브콜이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데뷔 3년차가 맞나 싶을 정도로 폭발적인 예능감을 선보였다. 2000년도에 방영한 KBS <신화창조2000>은 '신화가 학생들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포맷이었다. 이 프로에서 신화는 몸치 학생들에게 힙합춤도 가르쳐줬는데 지금은 보기 힘든 에릭의 윈드밀, 이민우의 베이비[61], 심지어 신혜성의 베이비도 볼 수 있다.[62] 이후 KBS는 신화를 간판으로 내세운 리얼리티 특집을 잇따라 방영했는데, <신화의 고공침투>는 '신화가 스카이 다이빙을 하는' 포맷이었고, <신화의 X파일>은 '신화가 공포체험을 하는' 포멧이었고, <신화의 드리븐>은 '신화가 카 스턴트를 배우는' 포맷이었다. 정말 별걸 다 했다

2000년 10월부터 2002년 10월까지 김동완은 <김동완의 텐텐클럽>의 DJ를 맡았다. 아이돌 최초 라디오 DJ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사실상 거의 신화방송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신화 멤버들이 자주 출연해 여러 전설적인 순간들을 남기고 갔다. 이후 2002년에는 신혜성이, 2003년에는 이민우가, 줄줄이 라디오 DJ를 맡았다.

2001년 MBC의 '목표달성 토요일'의 한 꼭지인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에 신혜성과 이민우가 레귤러로 출연하였고, 전진은 합숙 4주차부터 레귤러로 합류했다. 이때 유재석은 신화에게 '화동생들'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는데, 십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예능에 출연하면 종종 불리는 별명. 한편 김동완은 2001년 MBC 목표달성 토요일의 꼭지였던 <애정만세>에 출연해 NRG이성진과 함께 '주접 브라더스'로 활약하며 프로그램의 개그를 책임졌다.

전진은 2000년대 초중반까지 인기를 끌었던 예능 프로그램 출발 드림팀의 단골 게스트였으며 종종 1위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왕중왕전에서는 2위를 했는데, 뇌혈종으로 입원해 의사로부터 '내일이 고비입니다'라는 판정을 받고 기적적으로 살아난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이외에도 전진은 신화의 '예능 담당 멤버'로서 다양한 예능 프로에서 활약을 했다.[63]

2001년 9월 23일 게릴라 콘서트에 출연하여 총 11,569명의 관객을 동원하였다. 멤버들이 펑펑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64]

2000년대 초반에 KBS에서 방영한 MC대격돌 여걸파이브,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대단한 도전> 코너의 단골 게스트였다. 이 당시 신화는 예능에서 미식축구, 본국검법, 유도, 탁구 등 운동이라는 운동의 거의 다 마스터하고 다녔다. 같은 방송국 KBS 해피투게더에서도 출연할 때마다 레전드를 찍고 갔는데, 특히 2004년과 2013년에 찍은 회차가 레전드로 꼽힌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방영된 SBS 간판 예능 X맨을 찾아라의 단골 게스트이기도 했다. 완전체 출연은 2회 뿐이지만 멤버 각 개인이 거의 매회당 1명 이상 출연했다. X맨 전 회차 중 신화 멤버가 없는 회차를 세는 편이 더 빠를 정도. 앤디와 전진은 반고정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자주 출연했다.

2004년 10월부터 2005년 4월까지 방영된 SBS 리얼로망스 연애편지 시즌 1은 신화방송의 원류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신화가 한 명의 여자연예인을 두고 사랑싸움을 하는' 포맷이었다. 당시 주말 프라임타임 시간대를 차지하고 시청률 20% 이상을 안정적으로 확보했던 인기 예능이었으며, 한가인, 하지원, 김민정, 김정은 등 당대 내노라하는 여배우들이 게스트로 출연하곤 했다. 말이 사랑싸움이지 신화 멤버들끼리 승부욕을 불태우는 모습이 인기를 끌었던 프로.[65]

2005년 3월부터 11월까지 Mnet <배틀신화>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다. '제 2의 신화가 될 아이돌 그룹을 만들겠다'라는 포맷으로, 신화 멤버들의 멤버 선정을 통해 배틀이라는 보이그룹이 탄생했다. 이 프로에 출연했던 현역 아이돌로는 승리, 전효성, 가인, G.NA 등이 있다.[66]

2007년 김동완은 이경규의 몰래카메라 마지막회에 출연해 신화 멤버들에게 몰래카메라를 시도했다. 주제는 '김동완의 프로포즈 대작전'으로 김동완이 문지애 전 아나운서에게 결혼 프로포즈를 하는 내용이었다. 김동완의 지극이 어설픈 몰래카메라와, 신화 멤버들의 지극히 인간미 넘치는 모습 덕분에 지금도 인터넷 상에서 종종 회자된다.

전진은 2006년 무한도전 신화특집에서 '무한도전 멤버로 데려가고 싶은 신화 멤버 1위'를 차지했고, 2008년 아이돌 중 최초로 무한도전 멤버로 합류했다. 초기에는 잔스틴 기믹으로 추격전을 비롯해 힘 쓰는 특집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여러 명장면들을 남겼으나... 당시 전진에게 닥친 최악의 상황과 맞물려 전진에게는 물론 팬들에게도 아픈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당시 전진은 신화 상표권을 가지고 있었던 오픈월드에 의해 살인적인 스케줄을 돌며 건강 상태가 한계치에 다다랐고,[67] 소속사 문제에 더해 개인적인 악재들이 잇따라 일어나며 공황장애와 불면증을 앓았다. 전진도 무한도전을 그만두려고 할 지경에 이르렀지만 회사 때문에 그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무한도전 제작진 역시 초반에는 열정적이었던 전진이 갈수록 의욕을 잃어가자 불만이 많았다. 전진 팬이 설명한 상황 설명 글

2012년 3월부터 2014년 1월까지[68] JTBC에서 신화를 간판으로 한 예능 프로그램 신화방송을 진행했다. 종편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았던 시절 JTBC 예능에 인공호흡기를 달아준 개국공신이었다. 시청률로 보나 화제성으로 보나 드디어 JTBC에도 예능다운 예능이 탄생한 것. 포맷만 놓고보면 사실상 아이돌 리얼리티 예능이라고 봐야 하지만, 팬층을 넘어 대중적인 히트를 치고 1년 이상 장수했기 때문에 아이돌 리얼리티라는 편견에서 자유로운 편. 자세한 내용은 신화방송 문서를 참조.

원래 신화방송리얼로망스 연애편지를 함께 했던 SBS에서 방영할 예정이었으나[69] 당시 신화 상표권 및 신화 관련 업무의 전권을 소유하고 있던 오픈월드에 의해 엎어지고 JTBC에서 방영하게 되었다. 이 일 때문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신화는 신화방송을 시작한 후부터 2013년 9월 런닝맨에 출연하기까지 약 1년 6개월간 SBS로부터 암묵적인 출연정지를 당한 바 있다.[70][71]

2013년 5월 4일 SNL 코리아 시즌4 11화에 출연했다. 원조 예능돌의 모습을 보여 줄수 있을지 기대를 모았는데, 기대 이상의 역대급 레전드편을 만들어버렸다. 19금이 109금이 되는 충공깽 수준. 자세한 내용은 SNL 코리아 문서를 참조.

2013년 9월 1일 SBS 런닝맨에 단체[72]로 출연하였다. 오프닝에서 유재석은 신화를 보고 기겁하며 '얘네는 상대팀을 제압하고 자기들끼리 경쟁하는 애들이다'라고 신화와의 팀 대결을 걱정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날 신화는 런닝맨 방송 사상 최초로 전게임 전승, '게스트 올킬'의 신화를 이뤄냈다. 이후 신화는 2015년 3월 1일 제국의 아이들과 공동 게스트로 다시 한번 런닝맨에 출연하였다. 당시 인간탑 쌓기 게임에서도 신화의 팀워크와 우정을 확인할 수 있는데, 다른 팀들은 게임을 끝났다는 걸 알자마자 탑이 무너진 것과 달리 신화는 위에 있는 멤버들이 다치지 않도록 끝까지 버틴 뒤 차례대로 내려왔다.

V LIVE의 유료 방송 서비스 V앱 플러스를 통해, '신화 만 18세'라는 자체 제작 리얼리티 예능을 방송했다. '신화 만 18세'는 방송통신위원회에서 15세 관람 등급 판정을 받았으나 신화 측은 편집할 의도가 없다고 밝혔고 V LINE은 이 때문에 연령별 인증 시스템을 개발하게 된 것. 신화 멤버들끼리 여행을 가는 것이 방송의 포맷이며 공중파 방송에서는 볼 수 없는 신화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들과 음주가무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

2018년 8월 5일에는 1박 2일에 단체로 출연했는데, 점심 승부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뒀지만 이후부터는 이상하리만치 1박 2일 멤버들에게 밀리면서 몽땅 패배하는 바람에 졸지에 산행까지 하게 되었다.

10. 음반 목록[편집]

11. 디스코그래피[편집]

  • Face Zoom in Shinhwa first photo album (2000년 6월 26일)

  • 2001 First Mythology (VCD) (2001년 4월)

  • Shinhwa Photo Collection Wild (2001년 8월 22일)

  • 3rd Photo Album SHINHWA visual essay : ADDICT (2003년 3월)

  • SBS 6th Shinhwa Story (2003년 5월 07일)

  • The Everlasting Mythology (2004년 6월 09일)

  • ShinHwa Live in Seoul : Winter Story 2004-05 우리는 신화입니다. (2005년 4월 15일)

  • SHINHWA BRAND NEW STORY (2005년 8월 17일)

  • COLOR SET : COLOR : PHOTO BOOK + SHINHWA PERSONAL HISTORIES DVD (2006년 3월 9일)

  • Tropical SUMMER STORY FESTIVAL 2005 (2006년 5월 19일)

  • SHINHWA 2006 Summer Package : Photobook + 쇼핑백 (2006년 8월)

  • 신화 2006 Tour State Of The Art In Seoul (2006년 11월 21일)

  • 2006 Japan Tour Inspiration #1 In 부도칸 (2007년 3월 27일)

  • 신화 2003-2007 뮤직비디오 컬렉션 (2007년 11월 13일)

  • MBC Greatest Artist SHINHWA IN 1998-2007 (2008년 6월 27일)

  • SHINHWA MUST GO ON 10th ANNIVERSARY LIVE IN SEOUL (2008년 11월 7일)

  • ALL ABOUT SHINHWA (2009년 10월 15일)

  • SHINHWA 14th ANNIVERSARY SPECIAL DVD (2012년 10월 30일)

  • 14주년 기념 서울 콘서트 DVD : The Return (2012년 12월 26일)

  • SHINHWA 2012 14TH THE RETURN STORY BOOK (2013년 3월 29일)

  • 15주년 콘서트 DVD : The Legend Continues (2013년 12월 13일)

  • 2013 SHINHWA's THE CLASSIC MAKING STORY BOOK (2014년 1월 22일)

  • 2013 GRAND FINALE THE CLASSIC IN SEOUL DVD (2014년 9월 23일)

  • 2015 SHINHWA XII 'WE' Production DVD (2015년 5월 27일)

  • 2015 SHINHWA 17th ANNIVERSARY CONCERT WE DVD (2015년 11월 27일)

  • 2015 SHINHWA 17TH ANNIVERSARY FINALE CONCERT 'WE_SHINHWA' DVD (2016년 3월 24일)

  • 2016 SHINHWA 18TH ANNIVERSARY CONCERT HERO DVD (2016년 12월 19일)

  • SHINHWA Special Storybook 'Unchanging Story' (2017년 04월 06일)

  • 2016 SHINHWA LIVE CONCERT : UNCHANGING CONCERT DVD (2017년 06월 23일)

  • 2016 SHINHWA LIVE UNCHANGING BLU-RAY (2017년 8월 1일)

12. 단독 콘서트[편집]

  • 2001 First Mythology 1st Live Concert (2001)

    •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 (2001년 1월 13일 ~ 1월 14일)

  • The Everlasting Mythlolgy (2003)

    • 서울 올림픽펜싱경기장 (2003년 4월 18일 ~ 4월 20일)

  • Winter Story Tour (2003-04)

    •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 (2003년 12월 30일 ~ 12월 31일)

    • 부산 KBS홀 (2004년 1월 4일)

    • 대전 무역전시관 (2004년 1월 10일)

    • 부천 실내체육관 (2004년 1월 31일)

    • 대구전시관 컨벤션센터 (2004년 2월 7일)

    • 광주 동강대체육관 (2004년 2월 14일)

    •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 (2004년 2월 21일, 1일 2회)

  • Winter Story 2004 '우리는 신화입니다' (2004)

    • 서울 코엑스 대서양홀 (2004년 12월 19일)

  • Live in Japan 2005 (2005)

    • 일본 오사카 그랜드 큐브 (2005년 1월 21일)

    • 일본 도쿄 국제 포럼 (2005년 1월 23일)

  • TROPICAL SUMMER STORY FESTIVAL (2005)

    • 서울올림픽주경기장 (2005년 6월 5일)

  • SHINHWA 2006 TOUR STATE OF THE ART (2006)

    •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 (2006년 5월 13일 ~ 5월 14일)

    • 중국 상해 대무대 (2006년 7월 8일)

    • 부산 BEXCO 제 1전시장 (2006년 7월 15일)

    • 타이 임팩트 아레나 무앙 통 타니 (2006년 8월 19일)

    • 싱가포르 인도어 스타디움 (2006년 9월 19일)

  • SHINHWA 2006 JAPAN TOUR 'Inspiration #1' (2006)

    • 일본 도쿄 무도관 (2006년 9월 24일)

    • 일본 오사카 성 홀 (2006년 9월 26일)

  • 2007 JAPAN TOUR 'SHINHWA FOREVER' (2007)

    • 일본 나고야 니혼 가이시 홀 (2007년 12월 6일)

    • 일본 기옥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 (2007년 12월 8일 ~ 12월 9일)

    • 중국 상해 홍구 경기장 (2007년 12월 15일)

  • 2008 SHINHWA MUST GO ON 10TH ANNIVERSARY LIVE IN SEOUL (2008)

    •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 (2008년 3월 29일 ~ 3월 30일)

  • 2012 SHINHWA GRAND TOUR 'The Return' (2012)

    •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 (2012년 3월 24일 ~ 3월 25일)

    • 중국 상해 대무대 (2012년 4월 30일)

    • 타이완 대북 남항 전람관 (2012년 5월 12일)

    • 일본 횡빈 요코하마 아레나 (2012년 5월 29일)

    • 일본 신호 고베 월드 기념홀 (2012년 6월 2일)

    • 싱가포르 레조트 월드 센토사 (2012년 6월 16일)

    • 중국 광주 광저우 체육관 (2012년 6월 30일)

    • 중국 북경 완스다 중신 (2012년 7월 7일)

  • 2013 SHINHWA 15TH ANNIVERSARY CONCERT 'THE LEGEND CONTINUES' (2013)

    •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 (2013년 3월 16일 ~ 3월 17일)

  • 2013 SHINHWA GRAND TOUR 'The Classic' (2013)

    • 홍콩 아시아 월드 아레나 (2013년 6월 8일)

    • 중국 상해 메르세데스 벤츠 아레나 (2013년 6월 22일)

    • 타이완 대북 NK 101 (2013년 7월 6일 ~ 7월 7일)

    • 일본 동경 마쿠하리 멧세 (2013년 7월 13일 ~ 7월 15일)

    • 중국 북경 마스터 카드 센터 (2013년 7월 20일)

    •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 (2013년 8월 3일 ~ 8월 4일)

  • 2014 SHINHWA 16TH ANNIVERSARY CONCERT 'HERE' (2014)

    •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 (2014년 3월 22일 ~ 3월 23일)

  • 2015 SHINHWA 17th ANNIVERSARY CONCERT 'WE' (2015)

    •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 (2015년 3월 21일 ~ 3월 22일)

    • 중국 상해 메르세데스-벤츠 아레나 (2015년 5월 9일)

    • 타이완 대북 남강전람관 (2015년 5월 16일)

    • 중국 남경 올림픽 중심 체육관 (2015년 6월 20일)

    • 중국 북경 마스터 카드 센터 (2015년 6월 27일)

    • 중국 대련 중승 문화 중심 센터 (2015년 7월 11일)

  • 2015 SHINHWA 17th ANNIVERSARY FINALE CONCERT 'WE SHINHWA' (2015)

    •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 (2015년 8월 22일 ~ 8월 23일)

  • 2016 SHINHWA 18th ANNIVERSARY CONCERT 'HERO' (2016)

    •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 (2016년 3월 26일 ~ 3월 27일)

  • 2016-2017 SHINHWA LIVE TOUR 'UNCHANGING' (2016 ~ 2017)

    • 고양시 KINTEX 제 1전시장 5홀 (2016년 12월 17일 ~ 12월 18일)

    • 타이완 대북 남강 전람관 (2017년 2월 4일)

    • 부산 BEXCO 제 1전시장 (2017년 2월 11일)

    • 대구 EXCO 1층 (2017년 2월 25일)

    • 일본 동경 마쿠하리 멧세 이벤트 홀 (2017년 5월 30일 ~ 31일)[73]

  • 2017 SHINHWA SUMMER LIVE 'MOVE' (2017)

    •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 (2017년 6월 17일 ~ 6월 18일)

  • 2018 SHINHWA 20th ANNIVERSARY CONCERT TOUR 'HEART' (2018)

    •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 (2018년 10월 6일 ~ 10월 7일)

    • 타이완 타이베이 아레나 (2018년 10월 13일)

13. 미디어 활동[편집]

14. 수상 경력[편집]

15. 팬클럽[편집]

팬클럽명은 신화창조, 공식색은 주황색.[74] 자세한 내용은 신화창조 문서 참조.

16. 소속사[편집]

신화컴퍼니 문서 참조.

17. 상표권 분쟁[편집]


신화는 제작사와 상표권 분쟁을 겪은 최초의 아이돌이자, 현재 자신들의 상표권을 소유하고 있는 유일한 아이돌이다. 신화는 현역 아이돌로 20년간 활동하면서도 사실 SM엔터테인먼트를 나온 2003년부터 신화 상표권을 양도받은 2015년까지 장장 12년간 '신화(SHINHWA)'라는 이름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했다. 썰전에서는 신화의 상표권 분쟁을 상표권 분쟁계의 대하서사시, 그리스 로마 신화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길고 복잡한 싸움이었다.

SM엔터테인먼트와 계약 만료 당시, SM에서는 몇몇 멤버들에게만 은밀하게 솔로 계약 제의를 해오나, 신화 멤버들 전원이 SM과의 재계약을 거절한다. 마지막으로 SM은 멤버 전원에게 재계약을 제의하나, 신화는 SM에 남아있으면 그룹의 존속이 어려울 거라는 판단 하에 SM의 재계약 제의를 거절하고, SM에서 함께 일하던 스텝들이 차린 신생기획사, 굿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맺는다. 이후 신화는 SM엔터테인먼트와 '신화'라는 이름을 놓고 사사건건 갈등하나,[75] 결국 SM엔터테인먼트가 '신화의 결정을 존중하고 응원한다'라고 밝히며 신화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허락한다.[76] 이때까지만 해도 이수만은 공식 석상에서 신화가 잘되서 기쁘다고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신화가 7집 활동을 통해 대상을 수상하며 승승장구하던 2005년 1월, SM엔터테인먼트는 신화라는 이름을 특허청에 등록한다.[77] 이후 SM엔터테인먼트는 어떤 값을 치르든 상관 없으니 자신들이 신화 상표권을 구입하겠다는 신화 대신 오픈월드 엔터테인먼트에 신화 상표권을 대여해준다.[78]뒷통수 똭! 당시 신화의 소속사였던 굿엔터테인먼트는 오픈월드와 상표권 협약 체결을 맺고, 신화의 스케줄 조정과 같은 활동 결정권은 모두 오픈월드로 넘어가게 된다.[79] 당시 신화를 사람이 아닌 상품으로 보았던 오픈월드의 횡포에 의해 신화는 플랜도 건강도 처참히 망가지게 된다.[80]

이후 2009년 10월, 신화의 소속사인 굿이엠지(전 굿엔터테인먼트)가 경영 악화로 인해 상장폐지되어 해체 수순을 밟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당시 멤버들은 대부분 군복무 중이었고 상표권은 오픈월드에게 있었기에 향후 신화 활동 자체에 큰 제동은 없었다. 군복무로 인한 4년의 공백기 이후, 신화는 향후 독자적인 활동을 위해 신화컴퍼니라는 회사를 설립하게 되는데, 이 때에도 오픈월드와 상표권 협약 체결을 맺음으로서 신화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화가 10집으로 컴백하고 활발하게 활동하던 2012년 5월, 오픈월드의 장석우 대표가 연습생 상습 성폭행이라는 불미스런 사건으로 징역 6년을 선고받고 구속되면서 오픈월드는 파산 위기를 맞게 되는데, 신화는 이를 계기로 신화라는 이름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본격적인 행동에 돌입한다.

2013년 2월 신화컴퍼니는 상표권리자인 SM엔터테인먼트로부터 상표권 등록을 취소해달라는 심판을 청구하지만, 같은 해 3월 상표권의 소유가 오픈월드의 후속인 준미디어로 넘어가게 된다. 상표권 소유를 두고 갈등할 상대가 준미디어가 된 것.[81] 이 사태의 여파로 신화는 법적 갈등 진행 중에 신화라는 이름이 상표권 사용 처리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신화 11집을 비롯한 신화 관련 디스코그라피에서 '신화'라는 이름을 삭제한 채 발매하였다.[82]

이후 신화컴퍼니는 2014년 7월 준미디어에 "상표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를 달라"라고 요청했지만 이에 응하지 않자 "2012년 콘서트 수익과 일본 팬클럽 운영수익 중 일부를 당초 약정에 따라 돌려달라"라며 법원에 소송을 내고 준미디어 측도 "상표권은 우리가 갖고 있으니 2013년 콘서트 수익 중 일부를 계약에 따라 돌려달라"라고 맞소송을 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양측 모두에게 "각각의 수익을 정산해 돌려줘라"라고 판결을 내렸고 "상표권은 준미디어 측에 있어 신화의 계약 해지 주장은 이유가 없다"고 판결을 내리며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83]

이에 신화 측은 해당 판결의 취소를 요구하는 항소를 신청하였고, 이러한 소송 과정에서 상표권 이용으로 인정 될 수 있는 여지를 아예 없애기 위해 신화컴퍼니의 명칭마저 '신컴엔터테인먼트'로 변경한다. 신화를 위한 회사가 '신화'라는 이름을 아예 쓰지 못하게 된 아이러니한 상황. 거기에 준미디어가 신화 상표권을 2025년까지 갱신한 것으로 알려져 '신화'라는 이름은 더욱 아득하게 느껴지는 듯 했다.

2015년 5월 20일 재판부는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하자 강제조정 결정을 내리게 되고, 신컴엔터테인먼트와 준미디어는 2015년 5월 27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조정기일에 참석해, 상표권 양도 합의에 대한 재판부의 조정안을 끝내 받아들이게 된다. 이로서 신화라는 이름을 둘러싼 12년 간의 기나긴 싸움을 끝내고 마침내 신화가 '신화'라는 이름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게 된 것이다. 그리고 2015년 5월 29일 신컴엔터테인먼트는 상표권 명의 이전 절차에 들어가게 되고, 2015년 6월 11일 상표권 명의 이전을 완료하며 다시 자신들의 회사명을 '신화컴퍼니’로 변경하였다.

팬들은 신화의 상표권을 양도받은 2015년 5월 29일을 '싢복절'이라 칭하고 있다. 같은 해 8월 22일 ~ 23일에 열렸던 앙코르 콘서트의 홍보 영상에서도 신화가 드디어 신화가 되었다라는 자막을 통해 비장미를 한껏 살렸다.

이로써 신화는 상표권을 본인들이 직접 소유하게 된 최초이자 유일한 아이돌이 되었다. 오늘날에 와서는 제작자와 가수 간의 상표권 소유를 두고 판가름하기가 상당히 애매한 부분이 많아 갈등을 빚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비록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신화가 자신들의 상표권을 온전히 소유하게 된 사례는 아이돌사에 있어서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적어도 아이돌 그룹에게도 상표권이라는 게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으니, 다른 아이돌들은 조금만 알아보면 뜬금없이 뒷통수 맞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자료1 자료2

18. 트리비아[편집]

  • 정규 앨범, 비정규 앨범, 싱글을 모두 합쳐 총 347곡의 음원을 발매했으며, 멤버들의 솔로 활동까지 다 합치면 1050곡을 발매하였다.[84][85] # 음원부터 시작해 단체활동과 개인활동 정보량이 너무 방대한데다 10년, 20년 전 정보는 찾기도 어렵다. 이쯤되니 신화 멤버들도 자기 노래를 헷갈리고 자기들 에피소드를 헷갈리는 상태.[86] 너희 노래인데 왜 알지를 못하니?

  • '신화 화이팅'이라는 의미로 신화산이라는 구호를 사용한다. 신화는 이라고 간략하게 외칠 때가 많다. '왜 신화산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이 난무했으나 현재 그 유래는 팬들은 물론 신화 본인들조차 알지 못한다. 가장 유명한 설로는 세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신화 멤버들이 모노노케 히메의 여주인공 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설, 둘째는 김동완이 데뷔 전인 1997년 MBC 드라마 <산>에 아역배우로 출연했기 때문이라는 설, 셋째는 단순히 '신화(神話)' + '화산(火山)'이라는 설 등이 있다.

  • 손을 앞으로 쭉 뻗으며 "우리는 ~ 신화입니다!"라고 외치는 캐치프라이즈를 가지고 있다. 풀 멘트는 "혜성처럼 전진하는 우리는 ~ 신화입니다!"이다. 아이돌 캐치프라이즈 중에서는 가장 오래되었다.

  • 콘서트 밴드 세션 및 댄서 라인업이 무진장 화려하고[87] 돈을 꽤나 바르는 대신 티켓값은 다른 아이돌에 비해 다소 비싸다. 콘서트 세트리스트가 수록곡보다는 타이틀곡 위주로 구성되는데다 <Brand New>, <Hey, Come On!> 같은 단골곡들이 빠지지 않아 오랜 팬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좀 식상하다는 평. 대신 같은 곡이더라도 매 콘서트마다 밴드 편곡을 다르게 하고 있다.

  • 2003년 참여정부북한 평양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다. 영상 원래는 <너의 결혼식>을 부르려다가 가사가 그렇고 그런 관계로 <Perfect Man>을 불렀다. 반응은 당연히 문화충격 그 자체. 여담으로 에릭은 이날 태어나서 가장 열심히 춤을 췄다고 했는데, 에릭 아버지의 고향이 다름 아닌 평양이다. 이때 신화는 북한 공연 관계자들과 같이 술도 마시고 형동생할 만큼 친해졌는데 서로 헤어지면서 마음이 짠했다는 슬픈 일화가 있다.

  • 4집 활동곡 <Hey, Come On!>과 <Wild Eyes>의 경우 앤디가 불가피하게 활동에 불참했던 탓에[88] 앤디의 파트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데, 이후 콘서트에서 <Hey, Come On!>과 <Wild Eyes>를 부를 때에는 전진 파트의 일부를 앤디가 나누어 부르게 되었다. 이런 사정으로 앤디의 재합류 이후 발표된 5집 역시 앤디의 파트가 안습한데, <Perfect Man>과 <I Pray 4 U> 모두 마지막 후렴 사이에 앤디의 랩 파트를 뒤늦게 끼워놓은 티가 팍팍 난다. 차라리 처음과 마지막의 영어 나레이션 파트가 전부인 <First Love>가 낫다...

  • 신화 본인들이 의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유독 노래 속에 몬데그린이 많기로 유명하다. 대표적으로 <Perfect Man> 간주 부분의 '박경림'이라던가(...),[89] <너의 결혼식> 때 당시에 있지도 않았던 코그모를 언급한다든가[90], <Brand New> 전진 랩 부분의 '시간은 많아 But 참치는 안 와'라던가(...),[91] <Brand New> 신혜성 하이라이트 부분의 '저 손에 애벌레 죽어'라던가(...),[92] <This Love> 후반부 에릭의 영어랩에서 들려오는 '시스템에릭'이라던가 '끝말잇기'라던가... 어느샌가 이게 인터넷상에 퍼져서 선술한 내용을 비롯한 몬데그린을 정리해둔 동영상까지 존재한다. # 계속 듣다보면 정말 원래 가사로 더 이상 들리지 않을 수 있다(...).

  • 체육돌계 아이돌의 레전드. 멤버들 모두 수준급의 운동신경을 지닌데다 승부욕도 엄청나고 몸도 사리지 않아, 2000년대 예능에서 말 그대로 날라다녔다. 전진은 동시대 연예인들 중 운동신경 좋기로 손에 꼽히는 만큼 더 말해봤자 입만 아플 정도. 무려 뇌혈종으로 퇴원한지 사흘만에 출발 드림팀 1기 왕중왕전에서 2위를 거머쥐었다.[93] 신혜성은 태권도 공인 4단 유단자에 공중제비를 돌며 번지점프를 하고 다녔고, 앤디는 연예인 천하장사 출신에 도약 없이 주먹 힘만으로 기왓장 11장을 깨고 다녔으며, 이민우는 강호동과 몸싸움을 해서 그를 뒤집어 던졌다. 런닝맨에 신화가 출연했을 때 유재석이 괜히 기겁한 게 아니다. 농구, 피구 등 구기 종목도 굉장히 잘한다. 다만 유일하게 못하는 운동이 족구인데 해본 적이 없어서라고. 지금 신화가 20대였으면 아육대 출연금지를 당했을 거라는 농담도 있다

  • 그러나 운동신경이 좋은 것과는 별개로 멤버들의 몸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 멤버들의 각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다들 한번 이상 사고나 부상으로 뉴스를 탔다. 김동완은 교통사고로 그야말로 죽을 고비를 넘겼으며 같이 타고 있던 코디네이터가 사망하고 한동안 실어증을 앓았다. 에릭은 드라마 촬영 중 교통사고를 당해 드라마가 3화만에 종영되었다. 전진은 공연 중 부상으로 인한 뇌종혈로 의사로부터 오늘 밤이 고비라는 진단을 받은 적이 있으며, 오픈월드의 횡포로 부상 입은 꼬리뼈 수술조차 받지 못하고 군입대를 했다. 만약 더 방치해뒀으면 하반신이 마비되었을 수도 있다고. 신혜성은 양쪽 십자인대가 3번이나 파열되었으며 공연을 중단하고 병원으로 이송된 적도 있고 한동안 목발을 짚고 활동하기도 했다. 또한 신혜성을 제외한 모든 멤버가 허리 디스크를 앓은 전적이 있다. 앤디는 복대를 차고 음악방송에 출연한게 목격되기도. 이민우의 경우 어린 시절 사고 때문에 원래 허리가 좋지 않았는데[94] 춤을 전공으로 삼다보니 상태가 악화되었다.

  • 그런 관계로 신혜성은 아예 군면제 판정을 받았고 앤디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공익 판정을 받았다. 앤디는 검정고시까지 보며 무리해서 현역으로 입대했지만 한동안 옷 속에 복대를 차고 활동해야 했을 정도로 허리디스크가 심하다.

  • 역대급으로 스킨십이 많은 보이그룹. 스킨십이 워낙 자연스럽고 가족처럼 보이다보니 RPS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편이다. 숙소 생활 시절 다같이 샤워하면서 친해졌고 속옷도 내꺼 네꺼 구분 없이 돌려입었었을 정도로 서로 신체 접촉에 관대하다. 포옹, 백허그, 볼뽀뽀 같은 단순 애정표현은 기본이고 가끔 목이나 입에 키스하나 몸을 만지는 등 수위 높은 장난도 웃으면서 한다. 팬들이 만든 뽀뽀 영상이 기본 10분을 초과할 정도. 1 2

  • 멤버 전원이 흡연자인 사실상 유일한 아이돌 그룹이었으나, 2000년대 후반경 김동완은 금연에 성공했다. 에릭도 금연을 시도했지만 '신화 만 18세' 방송을 보아선 실패한 것 같다. 특이하게도 다른 아이돌들과 달리 흡연 사실을 숨기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멤버들이 피는 담배 브랜드까지 팬들이 다 꿰고 있다. 그런데 이 애연 그룹은 2004년 금연송을 불렀으며, 애연 가수 윤종신이 그 금연송의 작사작곡을 맡은 바 있다... 다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

  • 연예계에서 의리로 유명하며 같은 스텝들과 오래 가는 편이다. 전진은 백댄서에게 차를 뽑아주었고, 에릭은 매니저들에게 스포츠카와 오토바이를 선물해줬으며, 이외에도 전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엄청 잘 챙겨준다. 김동완은 같이 일했던 매니저가 생활고를 겪었을 때 3천만원을 지원해준 바 있다. # 꿈의 직장

  • 지금은 신화가 국내 수많은 아이돌들의 롤모델로 꼽히고 있지만 롤모델 의자왕 신화도 롤모델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일본의 SMAP이다. 신화가 SM엔터테인먼트를 나올 때 에릭이 벤치마킹했다고 밝힌 그룹. 최근에는 예전만큼 교류가 없으나 개인적으로도 신화와 친하다. 쿠사나기 츠요시가 엠넷에서 한국 데뷔 무대를 가졌을 때 신혜성이 츠요시에게 먼저 다가온 것을 계기로 친해졌다고. 신혜성의 일본 데뷔를 다룬 다큐멘터리에 츠요시가 나레이션을 맡았으며, SMAP이 리메이크한 사와다 켄지의 <Tokio>에 에릭이 피처링을 해주었다.

  • 하하에 따르면, VJ 시절 그를 챙겨준 유일한 아이돌이 바로 신화였다고 한다. # KBS <투명인간>에 신화가 출연했을 때 하하가 이 이야기를 하며 울컥하자 강호동과 전진도 덩달아 눈물이 고였다. 하하는 이 시절이 정말 마음에 사무쳤는지 이전부터 신화에게 자주 고마움을 표하곤 했다.

  • PSY에게 처음으로 곡을 받은 가수였다. 1999년 작곡가 지망생이었던 싸이는 신화 2집 앨범에 첫 작품을 싣게 되었으나 SM에서 아무 통보 없이 곡을 삭제했다고 한다. '내가 유명 작곡가나 가수였다면 그럴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에 이때부터 가수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싸이의 곡이 실제로 신화 앨범에 실리게 된 것은 신화가 SM을 나오고 나서이다.[95]

  • 이수만을 '이수만 아저씨', '이수만씨', '수만이'(...)라고 칭했던 역대 유일한 SM 소속 아이돌. 이수만이 탈세 혐의로 해외 도피를 했을 때는, 음악방송 1위 소감으로 "이수만 아저씨, 어디 계세요?"라는 드립을 쳤는데, 이때 신화는 아직 SM 소속이었다(...). 상표권을 두고 갈등하던 시절에는 서로 공개 디스도 서슴치 않았는데, 이수만은 신화가 있는 시상식에서 "우리 회사 나가서 잘된 사람 없다."라며 신화를 저격했고, 신화도 라디오에서 (신혜성이) "SM의 약자는 Small Mind다"라며 이수만을 저격했다. 그러나 시간이 한참 흐른 현재는 공식적으로 화해한 상태. 2012년경에는 명절에 안부인사도 주고받는다고 발언했다.

  • 인터뷰를 하면 꼭 받는 3대 질문이 '장수, 나이, 결혼'이다. 무려 20대 중반부터 빠지지 않고 들어온 질문인데, 이는 신화가 20대 중반부터 이미 국내 최장수 아이돌이었기 때문. 너무 자주 받는데다 나이나 결혼은 인터뷰 질문으로써 썩 유쾌한 소재가 아니다보니, 신화창조는 물론이거니와 신화 또한 가장 꺼리는 질문이다.

19. 에피소드[편집]

비글돌의 시발점이자 정점을 보여주는 신화의 유명한 에피소드 모음.

  • 연습생 시절 어지간히도 말을 안 들어서 관리자가 기를 꺾을 셈으로, "너네 이 따위로 하면 데뷔고 뭐고 다 짤라버린다"라고 엄포를 놨더니 멤버 전원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진짜 집에 가려고 하길래, 소속사에서 두손 두발 들고 자신들이 졌다며 다시 붙잡았다는 전설 같은 일화가 있다. 시간이 흘러 신화가 신화라는 그룹을 지키기 위해 했던 개고생을 생각하면 웃프기도 하다.

  • 연습생 시절 소속사에서 노래 연습을 하고 운동을 하라며 새벽마다 약수터에 보냈는데, 약수터에서 못 잔 잠을 자고 만화책을 보며 노닥거리다가 온몸에 물을 묻힌 채(...) 숙소로 돌아왔다고 한다. 당시 뒤늦게 연습생으로 합류한 이민우는 애들이 약수터에서 바로 잘 자리를 찾길래 당황했으나 그냥 바로 옆에 누워서 같이 잤다고. 멤버들은 자신들도 처음에는 진짜로 운동도 하고 노래 연습도 했다며 항변했다. 나중에는 걸려서 죽도록 맞았다고.

  • 숙소 생활 시절 정말 미친 사람들처럼 장난을 치며 놀았는데, 특히나 케찹은 신화 숙소의 잇 아이템이었다. 샤워 중인 멤버를 욕실 문 앞에서 기다렸다가 혹은 아예 멤버가 샤워하고 있는 도중에 욕실로 처들어가 다같이 온몸에 케찹을 뿌려주며 놀았다. 케찹 테러 가끔 밤 늦게까지 숙소 앞을 떠나지 않는 사생팬들에게도 빨리 집에 들어가라며 창문 밖으로 케찹을 뿌리곤 했다.

  • 숙소 생활 시절 샤워에 관해 여러 일화가 있다. 당시 신화는 다 같이 샤워하면서 친목을 다졌는데 신혜성은 유독 같이 샤워하는 걸 싫어해 문을 잠그고 샤워했다. 근데 멤버들이 문을 따고 들어와서(...) 포기했다고. 또 샤워를 하고 나오는 멤버에게 다같이 달려들어 케찹을 뿌리곤 했는데 전진이 말하길 짜증내면 멤버들이 더 즐거워하니까 일부러 기분 좋은 척 온몸에 케찹을 발랐다고 한다(...). 케찹을 조금 뿌려주면 서운했다고(...).

  • 숙소 생활 시절 팬티를 다 같이 돌려입었다고 한다(...). 당시 이민우는 전주에서 올라와 삼각팬티 밖에 모르던 시기였는데, 해외파인 에릭, 신혜성, 앤디의 사각팬티를 보고 컬쳐쇼크를 받았다고. 특히 에릭의 미제 속옷이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하루는 이민우가 에릭에게 허락도 안 받고 그의 속옷을 입자 에릭이 따로 불러서 뭐라고 했고 이민우는 기분이 나빠져서 싸웠다고 한다. 근데 에릭이 얼마 뒤 새 팬티 2개를 이민우에게 선물해주면서 화해했다고. 팬티 때문에 싸운 아이돌

  • 숙소 생활 시절 김동완은 두시간짜리 폭풍 잔소리로 사생들을 쫓아내곤 했는데, 덕분에 다른 멤버들도 숙소 앞에 사생들이 몰려있으면 '동완오빠 오니까 빨리 가라'라며 겁을 주곤 했다. 여름이면 숙소 앞에서 죽치고 있는 사생들에게 더운데 어서 집에 가라며 호스로 찬물을 뿌렸다고. 그래도 안가는 사생들에게는 메로나도 사주고 숨박꼭질까지 해줘가며 기어이 그들을 집에 다 들여보냈다고 한다. 추운 날 밤에도 숙소 앞을 죽치고 있는 팬들에게 신화 멤버들이 이불을 던져주곤 했다는 훈훈한 일화도 있다. 케찹에 물에 이불까지 정말 별걸 다 던져줬다

  • 숙소 생활 시절 다같이 알몸으로 댄스 배틀을 하며 놀았다고 한다. 그 중 한 멤버[96] 다 벗은 상태에서 헬멧만 쓰고 헤드 스핀을 했는데 신혜성은 아직도 그 광경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 숙소 생활 시절 신화에게는 '충동'이라는 룰이 있었다. 멤버 한 명이 충동적으로 하고 싶은 게 생겨, '충동!'을 외치면 모든 멤버들이 그게 뭐가 되었든 동조해주어야 했다고. 이런 쓰잘데 없는 룰을 만든 이유는 이걸 안 해주면 에릭이 거의 미쳐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에릭이 '남자와 키스하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하다'라고 해서 이민우는 울며 겨자먹기로 에릭과 약 3초간 진짜로 키스했다고.

  • 숙소 생활 시절 신혜성은 방을 자꾸 어지르는 에릭에게 출입금지 처분을 내렸는데, 이에 에릭은 신혜성의 반응이 궁금해(...) 신혜성이 늦게 들어온 날 일부러 신혜성의 침대에서 잤다고 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이 광경을 보고 빡친 신혜성은 에릭 얼굴에 돈다발을 던지며 "꺼져!"라고 외쳤다고. 참고로 그 돈다발은 그냥 지갑 속에 들어있던 천원 짜리.

  • 숙소 생활 시절 신혜성이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온 날, 에릭은 또 신혜성을 놀리기 위해 신혜성의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평소라면 성질을 내며 에릭을 쫓아냈을 신혜성이, 그날은 에릭이 깊이 잠든 줄 알고 "네가 싫어서 그런게 아니야. 그럴려고 그런건 아닌데 나도 너를 좋아해."라는 이상한 고해성사(?)를 30분 넘게 읊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에릭에게 이불을 다시 덮어주고는 자신은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잤다고. 그런데 이 이야기를 자는 척 하면서 다 듣고 있던 에릭이 다음 날 아침 신혜성에게 "나도 너 좋아해, 혜성아."라고 말해 그 뒤로 사이가 더 나빠졌다고 한다(...).

  • 숙소 생활 시절 화장실에 들어갔더니 바닥, 벽, 천장까지 온통 오바이트로 테러가 되있었다고 한다(...). 아직도 범인을 못 찾았다고. 한편 볼일을 보고 유독 물을 안 내리는 멤버도 있었다고 한다(...). 이민우는 에릭이 멤버들을 괴롭히기 위해 일부러 안 내린 거라고 확신했으나, 최근 전진이 화장실에서 나왔는데 물을 안 내려져 있었다고 한다. 진실은 저 너머에

  • 숙소 생활 시절 신혜성은 아침마다 이불 속에서 꾸물대는 멤버들 때문에 '다이밥송'을 만들었다.[97] 가사는 '다들 이불 개고 밥 먹걸쓰 다들 이불 개고 치즈버걸쓰' 정도의 내용이다. # 이게 인터넷상에 유행하면서 신화는 이 노래를 배경음으로 롯데리아 라이스버거 CF까지 찍었다. 역시 될 놈은 뭘 해도 된다

  • 과거 신화팬들과 라이벌이였던 god팬들과 싸움이 일어나는데 신화 팬들은 몸으로 싸우려는 편이였고 god팬들은 법을 따지면서 말로 싸우는 편이라 god팬들이 이겼다. 팬들끼리 싸웠다는 소식을 들으면 god는 싸우지 말라고 했지만 신화는 졌는지 이겼는지부터 묻고 졌다고 하면 왜 졌냐면서 다음에 이기라고 팬들을 혼냈다(...). 팬들은 강하게 키우는 신화. 덕분에 신화창조는 신화에 지지 않을 정도로 강해졌다.

  • 1998년 신화창조 1기 팬미팅 당시 김동완은 뜬금없이 "신화는 여러분의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당시 1세대 아이돌의 팬덤 분위기를 상상하면 굉장히 파격적인(...) 발언. 그 순간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찬물을 끼얹은 듯 쎄해졌다고. 당시만 해도 팬덤 문화가 성숙하지 못했기에 팬들로부터 커다란 비난을 받았으나, 오늘날에는 아이돌 팬덤 문화를 관통하는 명언(?)으로 꼽히고 있다. 2015년에 이르러서는 저 말 뒤에 "그렇지만 우리는 여러분을 무너지지 않게 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너지지 않아야 하는데, 거기에는 여러분이 필요하다"라는 말을 덧붙여 많은 팬들의 심금을 울렸다.

  • 음악 방송 대기실에서 벽을 타고 노는 신화에게 매니저가 씁쓸한 목소리로, "가자...이제 우리 밖에 안 남았어..."라고 말하는 모습과, 역시 음악 방송 대기실에서 한 멤버를 큰 가방에 통째로 넣고 들고 다니는 모습이 방송을 탄 적이 있다. 그 좁은 음악방송 대기실에 대형 브라운관 TV를 가지고 와 풀세팅을 하고 게임을 해서 엄청나게 놀랐다는 이승기의 증언도 있다. 대기실 통로에서 벽 타는 신화

  • 시상식 도중 김동완은 신혜성에게 "열어봐. 진이 선물이 저 안에 들어있을꺼야."라며 열쇠를 건넨 적이 있었다. 그리고 신혜성이 그 열쇠로 방송국 캐비넷을 열어보니 그 좁은 캐비넷 안에 에릭이 꾸깃 꾸깃 들어가 있었다고. 신혜성은 그걸 보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재빨리 다시 문을 잠근 후 끝까지 열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에릭은 캐비넷을 부수고 나왔고 돈은 어째서인지 죄 없는 김동완이 물어줬다. 이 사건을 바로 옆에서 목격한 강타는 매우 충격적이었다고 증언했다. #

  • 에릭과 김동완은 20대 초반 KBS 공개방송 리허설 현장에서, 그것도 다른 가수들이 다 모여있는 현장에서 주먹다짐을 한 적이 있다. 이유도 굉장히 유치한데, 김동완이 트림을 하고서 에릭에게 뒤집어 씌우자 열받은 에릭이 선빵을 날렸고, 맞고만 있을 사람이 아닌 김동완 또한 죽빵을 날렸다. 신화 멤버들은 이 광경을 옆에서 가만히 구경했으며, 심지어 전진은 '액션영화 같았다', '우리 형들 참 멋있다고 생각했다'라는 후기를 남겼다(...). 아무도 안 말려서 결국에는 카메라 감독님이 말렸다고. 이후 매니저들이 사태를 파악하고 "너희 이럴거면 때려쳐! 내 앞에서도 싸워봐!"라고 으름장을 놓자, 에릭과 김동완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네! 때려치겠습니다!"라고 외치며 다시 치고박고 싸웠다고 한다. 이쯤되니 멤버들마저 둘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정작 김동완과 에릭은 같이 화장실로 들어가더니 나란히 볼일을 보면서(...) 화해하고 나왔다고.[98]

  • 앤디의 유명한 흑역사 중 하나로 키위왕자 x끼 사건이 있다. 앤디는 2005년경 알로에바 CF를 찍은 적이 있는데,[99] 이게 참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의 유치한 내용이었다. # 여기서 끝났으면 몇번 놀려먹고 끝났겠지만 유명해진 이유가 있었으니... <배틀신화> 촬영 중 앤디가 신혜성에게 전화연결을 했는데, 신혜성이 전화를 받자마자 대뜸 "어 키위 새x다! 키위! 키위왕자 xx다! 키위 왕자 xx 썰어 먹어"라고 쌍욕을 한 것이 그대로 방송을 탄 것. 결국 끊고 다시 전화했으나 출연자가 신화라 그런지 케이블이라 그런지 편집 그딴 거 없었다. #

  • 신화의 비글스러움을 보여주는 끝판왕 영상에는 미친 인터뷰가 있다. 당시 리포터는 김나영이었는데 인터뷰가 끝난 후 너무 힘들어서 울었다고...(심지어 신입일 때 첫 인터뷰였다는데...)

  • 라디오에서도 전설적인 순간을 여럿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미친 여고생이 가장 유명하다.???:야아앍↗!!! 이유는 그냥 직접 들어보면 안다... 김동완이 텐텐클럽 라디오 DJ를 하던 시절 멤버들이 일반인인 척 전화연결을 하여 여자 목소리를 연기한 적도 있었다.

  • 한 네티즌이 밝히길, 포장마차에서 에릭과 전진이 싸우는 것을 봤다며, 신화는 나이가 들어서도 엄청 싸운다고 제보했다. 감정이 격해져서 욕도 엄청 하고 멱살까지 잡으며 싸우더니 갑자기 전화를 걸어 김동완을 불러냈다고 한다. 에릭은 전진에게 형한테 개기는 버릇 좀 고치라고 하고, 전진은 형이 되서 유치하게 구는 것 좀 고치라고 하고, 김동완은 그런 둘을 중재하면서 제발 싸우고 자기 불러내지 좀 말라고 했다고. 김동완이 이 글에 남긴 댓글에 따르면 논현역 포장마차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 하루는 에릭과 김동완이 함께 술을 마시다가 에릭이 만취하자 김동완이 에릭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왔는데, 김동완이 씻고 있는 사이 에릭이 알몸으로 김동완네 아파트 복도를 질주했다고 한다(...). 이에 김동완은 놀라서 에릭을 쫓아 추격전을 펼쳤다고. 에릭은 그렇게 미친 사람처럼 뛰어다니다가 발을 다쳤고 김동완은 핏자국을 통해 에릭을 찾아냈다고 한다(...).

  • 에릭과 신혜성은 숙소에서 독립한 이후 줄곧 같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데, 주로 신혜성이 이사갈 때마다 에릭이 따라가고 있다.[100] 이유는 웃기려고. 장난 스케일 ㄷㄷ 둘은 몇년 전까지만 해도 바로 옆동에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에릭이 계약까지 다 마친 상태에서 신혜성에게 "나 너희집 윗집으로 이사가."라며 일방적인 통보를 해왔다고 한다. 결국 지금은 기어이 위아랫집에 거주 중.

  • 13집 활동 직전 에릭은 문득 멤버들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새벽 4시에 멤버 전원을 호출했다고 한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일찍 스케줄이 있는 신혜성을 제외하고 멤버 전원이 진짜로 에릭 집까지 찾아왔다고. 신혜성이 아침에 일어나 에릭 집에 올라가보니, 멤버들이 술에 취해 팬티만 입고 널부러져 있었다고 한다. 신혜성의 표현에 따르면 멍청이들처럼 눈이 다 풀려있었다고.

  •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1세대, 2세대 아이돌 시대 때는 신비주의와는 거리가 먼, 털털해도 너무 털털한 아이돌 그룹으로서 아주 독보적이었다. 당시 방송 컨셉 및 몰래 카메라 및 영상 유출 등 다양한 이유로 인해 술, 담배, 욕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영상으로 남아있는건 기본이거니와 방송에서도 그런 일화들을 아무렇지 않게 풀었다. 모 클럽에서 댄스경연대회를 열었는데 전진, 에릭, 이민우가 나란히 1,2,3등을 거머쥐었다는 전설 같은 일화도 있다. 전진은 1등상으로 고급 오디오 세트를 받아 아버지께 칭찬 받았다고.

  • 20대 신화의 비글스러움은 아직까지도 방송계에서 유명하며, 특히 SM 내에선 아직도 종종 신화의 전설 같은(?) 일화들이 회자된다고. 슈퍼주니어 신동이 밝히길, 슈퍼주니어가 매니저 말을 안 듣고 제멋대로 굴자, 화가 난 매니저가 슈주에게 "니네들이 신화냐!"라고 외쳤다고 한다. 레드벨벳에 따르면 신화는 지금도 SM의 전설이라고.

[1] 2005년 시상식 미개최[2] SM엔터테인먼트에서 신화와 함께 일하던 스텝들이 차린 신생 연예 기획사.[3] 다만 앤디는 비자 문제와 어머니의 병세로 4집 활동에 불참한 적이 있다. 앤디의 고교 학력이 인정받지 못하면서 유학생 신분을 상실해버렸기 때문. 하지만 당시에도 개인 사정으로 인한 앨범 활동 불참으로 못박았기 때문에 언론에서도 탈퇴를 공식화하지는 않았다.[4] 종전 기록은 혼성그룹 의 11집이었다.[5] 2003 ~ 2004년은 음반시장의 쇠퇴와 함께 신화의 동기 혹은 후배인 1세대 보이그룹들이 지독한 침체기에 빠졌던 시기이다. 그야말로 시대의 흐름을 역행한 셈.[6] 신화의 타이틀곡 안무 메이킹에는 이민우가 항상 참여해왔다. 일례로 의자 퍼포먼스로 유명한 그 <Wild Eyes>는 다리를 다친 신혜성을 위해 이민우가 단기간에 고안해낸 안무. 국내 아이돌 최초로 의자춤, 스탠딩 마이크 퍼포먼스, 보깅 댄스를 시도했다.[7] 다른 아이돌 그룹의 안무 선생님을 하거나 교수로 재직하면서도 여전히 신화 공연에 서는 댄서들이 많다.[8] 신화 밖에서는 78년생들과 친구이고 79년생들은 에릭 입장에서 동생이 된다. 신화 멤버들의 인맥이 많이 겹칠 수 밖에 없다보니 족보가 상당히 꼬여있다.[9] 김동완이 자신의 포토 에세이에서 언급했다.[10] 당시 부모님은 미국에 계셨고 앤디는 중학생이었다. 더군다나 이 당시 SM은 중소기획사였고 1세대 아이돌 시장도 열리기 전이었기에 위험 부담도 컸다.[11] 신혜성에 따르면 앤디와는 오디션 합격 전 클럽에서 이미 마주쳤고 에릭과는 한국에 오기 전 노래방에서 딱 한번 어울렸다고 한다. 반면 에릭은 오디션 합격 전인 vally k festival 노래 대회에서 이미 신혜성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12] 출저는 이수만 자서전. 에릭은 빠른 년생이라 미국에서도 한 학년 일찍 입학했다. 때문에 같은 1979년생인 신혜성보다 학년상 선배였고 대학 진학을 앞둔 시기였다.[13] 다행히 우연석은 훗날 클릭비로 데뷔하게 된다.[14] 이 친구의 이름은 박상준으로 20년이 지난 2017년, 신화 13집 수록곡 <별>의 작곡과 편곡을 맡게 된다.[15] 결성 날짜를 알 수 있는 건 신화가 김동완이 합류한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16] 월드뮤직은 SM엔터테인먼트의 음반 유통 대행을 맡고 있는 회사였기 때문에 SM과 친분이 있었는데 S#ARP, 이브, 업타운, 컨츄리꼬꼬 등 당대 인기 그룹을 다소 보유하고 있던 회사였지만 결국 회사가 해산되었다. 훗날 와서 보면 김동완에게는 신의 한 수였던 셈.[17] 타이틀곡 <해결사>는 무려 2개월 간 활동한 덕에 차트 10위 안에는 꾸준히 랭크되었으나 IMF 여파로 그 이상의 성과는 내지 못했고, 후속곡 <으쌰으쌰>는 가요 프로그램 순위 제도가 폐지되었던 때에 뮤직뱅크 MVP 후보에 한 번 오른 적이 있으나 뚜렷한 성과는 전무했다. 또 하필이면 데뷔 무대가 케이블TV였는데, 90년대와 2000년대 초에는 케이블TV 가입대수가 많지 않았다.[18] 본인들은 물론 팬들도 흑역사 취급하지만 당시 잘 나가던 사진작가 김중만이 참여해서 나름대로의 미(美)를 추구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전진은 나름대로 만족했는지 결혼 후 아내와 함께 누드집을 찍어 개인소장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하였다.[19] 자세한 내용은 앤디 문서 참조.[20] '신화가 원활하게 이적했던 이유는 이적 회사가 SM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였기에 가능했다'라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굿엔터는 SM 출신 매니저들이 제작자로 나서면서 독립한 회사였고, 이 때문에 이적시 SM에서 쥐고 있는 신화의 이름을 계속 쓸 수 있을지 없을지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21] 당시 굿엔터로부터 받은 계약금이 멤버당 7억씩 총 42억원이었는데, 이 액수 또한 화제가 되기도 했다.[22] 에릭은 언급한 적이 없는데 멤버들이 자랑하듯 자주 이야기했다. 우리는 리더가 에릭이다[23] 에릭은 수지와 더불어 연기 최우수상을 수상한 둘 밖에 없는 현역 아이돌이자, 연기 대상 후보에 올랐던 유일한 현역 아이돌이다.[24] 한번은 팬들이 아픈 전진을 제발 쉬게 해달라며 난리를 치자, '전진은 우리의 상품이니 우리 마음대로 하겠다'라는 답변을 내놓았다.[25] SBS 인기가요는 첫 무대를 포함하여 3주, 쇼 음악중심뮤직뱅크는 1주, 엠카운트다운 2주.[26] 1위는 동방신기, 2위는 SG워너비, 4위는 이수영이었다.[27] 이유인 즉슨 팬들이 신화의 뮤직비디오에 더 이상 SM엔터테인먼트의 로고가 찍히지 않기를 바랬기 때문.[28] 또한 신화 공백기 당시 A급 배우로 최고의 주가를 올렸던 에릭은 항상 "신화의 에릭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29] 참고로 1화 프롤로그에 컴백 관련 기자회견 현장이 잠시 공개되었다.[30] 연말 가요축제에서의 선공개 후 음원과 뮤직비디오 공개의 간극이 길었으며, 뮤비 공개 후에야 음악방송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설연휴와 겹치게 되면서 활동기간도 8집보다 짧았다.[31] 신화의 맏형들인 에릭, 민우, 동완, 혜성은 2018년부터 40대에 돌입한다.[32] 7집(1년 8개월) 8집(1년 9개월) 9집(1년 10개월) 10집(군입대 공백기 4년) 11집(1년 2개월) 12집(1년 9개월) 13집(1년 9개월)[33] 다만 8집은 방송활동이 많이 미미했고 9집은 앨범만 내고 방송활동을 아예 하지 않았던 전례가 있어 체감상 공백기를 많이 가졌던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34] 데뷔 10년차만 넘겨도 신화보다 텀이 길어진다.[35] 게다가 공백기 동안의 윈터스토리 앨범 및 콘서트까지 포함하면 군백기를 가진 2008년 이전까지의 신화 그룹 활동은 활발하지는 못했을지언정 꼬박꼬박 이어갔다고 할 수 있다.[36] 1개월만 더 일찍 데뷔했다면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1993~1998) 까지 거쳤을 아이돌이 됬을 것이다. 참고로 문민정부는 1998년 2월 24일까지 존속했다. 즉 신화가 데뷔하기 1달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와 정권이 교체된 것.[37] 2008년 10주년 콘서트에서 이민우가 했던 멘트.[38] 처음 재계약 제의를 받은 멤버는 신혜성과 이민우로 이민우에게 '한국의 어셔로 만들어주겠다'라고 말했다고 한다.[39] 이 이유에 대해 에릭은 "초심으로 돌아가 생각하면, 우리는 배우를 하러 혹은 솔로 가수를 하러 모인게 아니지 않느냐. 우리는 신화를 하러 뭉친 것이고 신화이기 때문에 팬들이 우리를 응원해준 것인데, 개인 활동이 더 벌이가 좋다고 해서 그룹을 놓는 것은 비굴하고 치사하게 느껴졌다."라고 답했다.[40] 이민우는 승승장구 신화 편에서 그때 그 감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며, 자신은 정말 행운아라며 눈물을 보였다.[41] 데뷔 초부터 예능에서 멤버끼리 가래떡 먹기 게임이나 빼빼로 게임을 시키면 신화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기들끼리 닥돌을 해버렸다. 덜덜[42] 2017년 주간 아이돌에 출연했을 당시 목에서 목으로 오렌지를 옮기는 릴레이 게임을 했을때, 첫 주자였던 전진과 전진 다음 주자였던 신혜성이 오렌지를 옮기는 모습이 심히(...) 오해를 살 만한 구도가 나왔는데도 다른 멤버들은 놀라거나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지극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오히려 MC인 정형돈이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했다. 어서 와, 이런 아이돌은 처음이지?[43] 유재석은 이 일화를 두고 '방송가의 전설'이라고 언급했고, 문희준은 '(자기들끼리) 주먹질하면 저희말고 신화가...'라고 언급했다.[44] 그렇다고 저게 나쁘다는 소리는 아니다.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서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도 있고, 무엇보다 자기 인생에 있어서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냐는 개인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영속을 원하는 팬들에게는 무엇보다도 가슴 아픈 일.[45] 가장 최근인 13집의 타이틀곡 <TOUCH>만 하더라도 국내 가요 메이저씬 최초의 퓨처베이스 타이틀곡이다.[46] 참고 자료[47] 예를 들면 신혜성의 지르기 타임과 에릭, 앤디의 영어랩 타임.[48] 신혜성이 SM 특유의 창법을 의도적으로 바꾸었기 때문도 있지만, 당시 1세대 아이돌들은 보컬 트레이닝조차 제대로 못 받았기 때문도 있다.[49] 그중 앤드류 잭슨은 SM과 일하기도.[50] 신화 무대에서 댄스 브레이킹 타이밍에는 물론 늘 이민우와 전진이 투톱으로 나섰지만 간혹 3명이 동시에 댄스 브레이킹을 해야하는 파트가 생기면 세번째 멤버로는 늘 앤디가 추가되곤 했다. 예를 들면 <Only One>의 댄스 브레이킹 부분.[51] NRG 또한 문성훈의 타이트한 랩, 당시 아이돌 중앞서서 작사ㆍ작곡을 한 천명훈의 천재적인 프로듀싱감각과 이성진의 미성 보컬, 노유민김환성의 댄스 실력과 비주얼 등이 조화를 이루었으나, 그보다 비주얼이 주목을 받아 신화에 비해서는 이러한 능력이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다.[52] 다만 신화가 예능에서 활약하던 모습과 퍼포먼스에 실력이 가려져 저평가 받는다는 의견도 있다. 일례로 서브보컬이자 메인댄서인 이민우의 경우, 나쁘지 않은 가창력을 가졌음에도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정열의 산초맨 까르보나라로 출연했을 당시 패널이였던 조장혁은 그의 정체가 이민우라는 것을 추리해냈음에도 '이민우라 하기에는 노래를 너무 잘한다.'라는 이유로 갈팡질팡하다가 춤을 보고서야 이민우라는 확신을 내리게 되었다. 즉 '이민우는 춤만 전문이지 노래는 잘하지 못한다'라는 편견이 있었던 것.[53] 물론 이민우야 메인댄서이기에 이런 오해를 많이 받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메인보컬인 신혜성도 '외모가 별로인 가수는 실력이 좋고, 외모가 뛰어난 가수는 실력이 별로다.'라는 편견 탓에 오해를 자주 받았다. 그를 메인보컬이 아니라 그냥 비주얼을 담당하는 멤버쯤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는 것이다. 메인보컬마저도 이런 오해를 받는데 다른 멤버들이라고 오해 받지 않을리가...[54] 에릭의 영향으로 신화의 친목 중에는 힙합계 인사들도 많았다.[55] 천일유혼은 1집 후속곡이다.[56] 보다시피 반주를 즉석에서 연주하는 올 밴드 라이브다.[57] 대표적으로 신화 7집의 Shooting Star나 신화 2집 타이틀 곡인 T.O.P.[58] 곡은 이민우가 썼다. 다작하는 전영록의 후예.[59] 이민우는 12집을 위해 자작곡 6곡 정도를 가이드라인과 믹싱까지 했지만 프로듀싱에 집중하기 위해 포기했다고 한다.[60] 자켓을 의자에 걸고 자켓의 팔 부위를 잡는 동작이 있기 때문.[61] 브레이크 댄스 중 앉은 상태에서 오른발을 위로 높이 띄운 후 반대반향으로 한 바퀴 돌아 착지하는 기술.[62] 사실 이 테크닉의 이름은 베이비가 아니라 스와입스다. 그나마 이름이 비슷한 베이비 스와입스도 서술된 테크닉과는 다른 풋웤의 종류중 하나이며 윈드밀과 베이비는 비보잉의 테크닉중 초급에 속하는 파워무브로 아주 몸치가 아닌 성인남자가 연습한다면, 윈드밀은 일주일, 베이비는 하루면 익힐수 있다.[63] 그러나 팬들은 '이때 방송에서 전진은 조금만 덜 굴렸더라면, 지금보다는 전진의 몸 상태가 양호하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도 가지고 있다.[64] 에릭은 9집의 토크 트랙 '기억나니?'에서 게릴라 콘서트 당시 먼저 안대를 올리는 바람에 앞 자리 팬들이 웃음을 터뜨렸다고 밝혔다. 다른 멤버들이 안대를 풀고 펑펑 우는 동안 웃음 참느라 고생했다고.[65] 시즌1은 신화의 신화에 의한 신화를 위한 예능으로 시작했으나, 시즌2부터 포맷이 바뀌면서 다양한 남자 연예인들이 출연하였고, 강호동의 천생연분과 유사한 짝짓기 프로그램으로 변질되었다.[66] 이 때문에 음악방송에서 가인이 '저를 떨어뜨리셨던 신화 선배님들'이라고 농담한 적이 있다.[67] 전진은 끝내 허리 수술도 받지 못하고 입대했다. 한때 의사로부터 거의 사망선고를 받고도 하루만에 회복했던 전진이 툭하면 쓰러져서 링거를 맞았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68] 더 정확히는 시즌1은 2012년 3월부터 2013년 6월까지 1년 3개월간 방영하였고, 5개월의 휴식기를 가진 후 시즌 2는 2013년 11월부터 2014년 1월까지 3개월간 방영하였다.[69] 신화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신화의 단체 예능이라는 점은 신화방송과 같으나 포맷은 다르다고 한다.[70] 10집 <Venus> 활동 당시에는 연애편지 제작진들과의 친분을 통해 SBS <이효리 정재형의 유앤아이>에만 겨우 출연할 수 있었는데 이후 유앤아이가 폐지되면서 11집 활동 중에는 SBS에 전혀 출연하지 못해 11집 <This Love>의 SBS 음악방송 자료는 전무하다. 올어바웃신화 시즌2를 기대할 수 없는 이유...[71] 그리고 신화가 런닝맨에 출연한 시기는 11집 활동이 끝난지 이미 4개월이 지난 시점인데다 급하게 잡힌 스케줄이라는 점 때문에 여러 궁예들이 난무하고 있다.[72] 런닝맨 녹화가 상당히 급하게 잡힌 스케줄이었던 관계로 이미 예비군 훈련 일정이 있었던 김동완은 불참.[73] 현지 기획업체 문제로 공연이 취소되었었다. 이후 유튜브에 별도의 입장표명문을 통해 나중에 돌아오겠다고 멤버들이 메세지를 남겼다.[74] 사실 1집만 내고 사라진 3인조 그룹 '우노'의 풍선색이었는데 금방 해체되어서 신화창조가 바로 가져다 썼다.[75] 물론 당시에는 SM도 상표권에 대한 인식이 없었는지 상표 등록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76] 아마 당시 대중의 여론이 압도적으로 신화의 편이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있다.[77] 신화가 SM엔터테인먼트를 이미 나온 상황에서 상표 등록을 했다는 점 때문에 SM에게 분노를 표하는 팬들이 상당히 많다. 신화가 만약 SM보다 먼저 상표권에 대한 개념을 인지하고 상표 등록을 하였다면 뒤에 후술할 내용보다 훨씬 복잡한 분쟁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크다.[78] 그나마 운이 좋았던 부분은 훗날 신화와 같은 곤경을 겪게 된 하이라이트 (구 비스트)와는 달리 당시 기준 상표권법에 따라 음반, 음원, DVD 등의 음악 활동에 한해서만 발목이 잡혀 방송 활동, 관련 영상, 콘서트 굿즈에는 신화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데 지장이 없었다는 점이다.[79] 신화 8집 활동 기간이 한 달이 채 되지 못했던 것도 방송 활동보다 공연 수익이 더욱 득이 될 것이라는 오픈월드의 판단 하에 짜여진 해외 투어 스케줄 때문으로 추측된다.[80] 전진은 오픈월드에 의해 살인적인 스케줄을 돌며 체력으로 유명한 사람이 툭 하면 쓰러지기 일쑤였고 당시 꼭 받아야했던 허리 수술도 받지 못한 채 입대했다.[81] 사실 신화의 상표권은 SM엔터테인먼트가 대여를 시작한 이듬해인 2006년에 오픈월드 엔터테인먼트에 양도되어 있었으나, 오픈월드가 상표권 이전 시 등록이 필요하다는 것을 몰랐다고 한다. 신화의 소송을 계기로 뒤늦게 이전 등록에 대해 인지하고, 준미디어로 변경한 것.# 하지만 SM이 법적 분쟁으로 인한 이미지 실추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뒤늦게 오픈월드에게 상표권을 양도해준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진실은 저 너머에...[82] 2012년 신화컴퍼니 설립 이후부터 사용하고 있는 신화의 엠블렘만으로 신화관련 디스코그래피임을 어필했다.[83] 신화가 준미디어 측에 지급한 금액은 3억 2755만원.[84] 신혜성이 269곡, 이민우가 186곡, 전진이 135곡, 김동완이 75곡, 앤디가 47곡[85] 다만 라이브ver 음원과 리메이크 음원도 포함되어 있기에 신화 노래가 1000곡을 돌파한 것은 아니다.[86] 한번은 김동완이 2014년 3월 개최된 16주년 콘서트에서 2집 수록곡 <소망>을 3집 수록곡이라 잘못 설명하기도 했다.[87] 팀장급, 단장급, 대학교수급의 경력자들이 즐비하다.[88] 어머니의 병세와 비자 문제로 잠시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89] 원래 가사는 'Rescue Me'. 참고로 신화는 박경림과 친분이 깊다.[90] 원 가사는 '보고 말았어'[91] 원래 가사는 '참지는 않아'이다.[92] 원래 가사는 'Just one never let you go'다. 저 몬데그린은 당연하게도 신화창조들 사이에서도 유명한데, 심지어 저 가사를 부를 때에도 원래 가사가 아닌 저 몬데그린으로 말하는 경우가 있다(...).[93] 머리 부상으로 의식불명 상태인 전진을 두고 의사가 '오늘 밤이 고비'라고 하는 바람에 신화 멤버들이 오열했다고 한다. 이렇게 죽을 고비를 넘기고 며칠 지나지 않아 왕중왕전에서 2위를 했다.[94] 20대 초반 방송에서 의사로부터 이미 허리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진단을 받았다.[95] 2004년에 발매된 정규 7집 <Brand New>의 수록곡 '위하여 (Cheers!)'.[96] 팬미팅에서 본인이 맞다고 인정했다(...).[97] <Boney M>의 <River of Babylon>을 개사했다.[98] 이 일화는 토토가2 - 젝스키스에서 은지원이 "여기 신화 애들 싸워서 카메라 감독님이 말렸던 곳"라고 말해 확인사살. 다만 자막에서는 신화 팬과 젝스키스 팬이 싸운 곳이라 작성했다. 아마 편집자가 설마 멤버끼리 싸웠을 거라고 생각을 안 한 모양이다. 유재석은 해피투게더에서 방송가의 전설 같은 일화라고 언급한 적 있다.[99] 정확히는 키위맛+알로에맛 아이스크림[100] 신혜성이 부모님과 살았던 기간은 제외. 다행히 거기까진 안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