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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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안양 2018 시즌 스쿼드

단장 공석 · 감독 고정운 · 코치 김상록 · 골키퍼 코치 신의손

1 전수현(C) · 2 채광훈 · 3 최호정 · 4 유연승 · 5 김영찬 · 6 최재훈 · 7 은성수 · 8 김대욱
· 10 마르코스 11 정재희(VC) · 13 김태호 · 14 최승호 · 15 김형진 · 16 주현재 · 17 김신철 · 18 김희원
· 19 문준호 · 20 이상용 · 21 양동원 · 22 홍승현 23 김태수 · 25 홍길동 · 26 김현규 · 27 김경준 28 김진래
· 29 정민기 · 30 알렉스 · 31 최필수 · 32 김원민 33 정희웅 · 34 김영도 · 35 박성진 36 이동경

* 이 표는 간소화된 버전입니다. 스쿼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해주세요.
* 감독과 주장은 볼드체로 처리하였고, 주장은 (C), 부주장은 (VC)로 표기하였습니다.
* 타 팀으로 임대 간 선수는 제외되었습니다.
* FC 안양 스쿼드에 변동이 있으면 두 틀 모두를 수정해주세요.

파일:FC안양신의손.jpg

FC 안양 골키퍼 코치

발레리 콘스탄치노비치 사리체프
(Bалерий Константинович Сарычев / Valeriy Konstatinovich Sarychev)
신의손 (申宜孫/Shin Eui-son)

생년월일

1960년 1월 12일

국적

파일:소련 국기.png 소련파일:타지키스탄 국기.png 타지키스탄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1]

출신지

소련 타지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두샨베

신체 조건

192cm, 87kg

포지션

골키퍼

소속 클럽

SKA-파미르 두샨베 (1978~1981)
PFC CSKA 모스크바 (1981)
FC 토르페도 모스크바 (1982~1991)
일화 천마/천안 일화 천마 (1992~1998)
안양 LG 치타스/FC 서울 (2000~2004)

국가대표

타지키스탄 대표팀 1경기 0골

지도자 경력

안양 LG 치타스 GK코치 (1999)
FC 서울 코치 (2005)
경남 FC GK코치 (2006~2007)
경남 대교 캥거루스 수석코치·GK코치 (2008~2011)
대한민국 U-20 대표팀/대한민국 U-23 대표팀 GK코치 (2009~2010)
부산 아이파크 GK코치 (2012~2015)
이천 대교 GK코치 (2016~2017)
FC 안양 GK코치 (2018~)

K리그 30주년 레전드 베스트 XI

FW
황선홍

FW
최순호

MF
김주성

MF
신태용

MF
유상철

MF
서정원

DF
최강희

DF
김태영

DF
홍명보

DF
박경훈

GK
신의손




1. 소개2. 클럽 경력3. 지도자 경력4. 골키퍼의 중요성을 알리다5. 여담6. 수상 기록
6.1. 표로 보기

1. 소개[편집]

발레리 콘스탄티노비치 사리체프(Валерий Константинович Сарычев)는 대한민국 K리그에서 맹활약했던 타지키스탄의 前 축구 선수로, 지금은 한국에 귀화하여 신의손(申宜孫)으로 개명했다고 하는데, 실제 주민등록증 상의 이름은 '사리체프'로 되어 있으며 '신의손'은 선수등록명으로 된 듯 하다. 별명으로 '神의 손'이라고 불리었던걸 아예 그쪽으로 (한자는 바꿔서) 개명한 것. 구리 신(申)씨의 시조다.[2].

2. 클럽 경력[편집]

K리그 역대 최고의 골키퍼 hand of god

신의손 - 권찬수 - 김용대 - 정성룡(전상욱) - 박준혁 - 김동준으로 이어지는 성남 FC 골키퍼 계보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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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시절


선수 데뷔는 SKA-파미르 두샨베에서 했지만 소련에서 주로 활약했던 팀은 FC 토르페도 모스크바 시절이며 161게임 출장에 153실점을 기록했다. 10년의 커리어 통산으로 1게임 1실점 이하를 기록한 것. 토르페도 모스크바는 지금은 비록 2부 리그지만 사리체프가 뛰던 1981-1991년 구 소련 시절에는 1부 리그의 탄탄한 중위권 팀으로 주로 3위에서 6위를 기록한 팀이었다.[3] 1986년과 1991년에는 소련 최우수 골키퍼상을 받는 등 한 마디로 당대 소련 축구 리그의 최고 골키퍼였던 것.

소련의 해체로 대한민국과 연을 맺게 되면서 일화 천마에 입단하게 된다. 1992년 일화 천마에서 뛸 당시부터 경기당 실점율이 소수점 이하라는 괴물 같은 성적[4]을 내면서 전년도 리그 최다 실점 팀이, 골키퍼가 바뀌더니 리그 최소 실점 팀으로 변모되었다. 이 때 뒷날 그의 이름이 되는 신의 손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전대미문의 K리그 3년 연속 우승 신화는 덤이다.

사리체프에 이어 부천 유공에서 영입한 샤샤(알렉산드르 포드쉬발로프, Александр Подшивалов) 또한 무지막지한 실력을 보이면서 프로축구의 모든 팀들이 외국인 골키퍼를 영입하는 붐이 일었다. 결국 대한민국 축구 팀들이 토종 골키퍼들을 외면하면서 그의 등장이 1997년 이후 K리그에서는 외국인 골키퍼를 불허[5][6]하는 규정을 만들었을 정도.(이 때 김병지가 군계일학의 실력을 보인다.) 때문에 본의 아니게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지만, 2000년에 귀화 자격을 갖춰서 귀화 시험을 통과, 이름을 자신의 별명인 신의손으로 짓고[7] 구리 신씨의 시조가 되었다. 이후 안양 LG로 복귀했는데 언론에서 대서특필할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동계훈련에는 10일밖에 참가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녹슬지 않은 실력을 과시하면서 안양 LG에 우승을 안겨 주고 2005년 5월에 정식으로 은퇴했다.

1992년부터 1998년까지 뛴 일화 시절에는 157경기에 출장하여 179실점을 기록했고, 2000년부터 2004년까지 뛴 안양 LG 시절에는 95경기 출장 99실점을 기록했다. 현재까지도 K리그에서 이 기록에 비견될 선수는 오직 김병지뿐이다.

3. 지도자 경력[편집]

이후 WK리그의 고양 대교의 코치를 지내다가 홍명보의 스카웃으로 대한민국 U-20 청소년 국가대표팀의 골키퍼 코치를 역임했고 이후 2012년 런던 올림픽 국가대표 골키퍼 코치를 맡았다. 그와 동시에 2011년부터 올림픽 국가대표팀 주전 골키퍼인 이범영이 소속된 부산 아이파크의 골키퍼 코치를 맡고 있다. AFC U-19 챔피언십 우승의 주역 중 하나인 이창근 또한 신의손 코치의 가르침을 받았다.

2018년부터 FC 안양의 골키퍼 코치를 맡게 되었다.

4. 골키퍼의 중요성을 알리다[편집]

무엇보다도 골키퍼를 천대하던 대한민국 축구계에서 골키퍼의 중요성을 일깨운 장본인이다. 신의손 등장 이전까지는 대한민국 축구계에서 골키퍼는 그야말로 필드 플레이어에서 밀려난 키 큰 선수들이 보는 포지션이었고, 골키퍼 전담 코치 따위는 사치였다.

하지만 소련에서 정규 골키퍼 코치에게 배워 온 신의손이 차원이 다른 선방을 선보이면서 일화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자, 1994년에 일어난 대한민국 골키퍼의 양대 비극 중 하나인 미국 월드컵 독일최인영의 실수[8],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의 주전 골키퍼 차상광의 알까기[9][10]가 맞물려서 골키퍼의 중요성과 체계적인 양성이 대한민국 축구의 과제로 떠올랐다. 게다가 신의손 등장 이후 너도나도 다른 팀에서도 외국인 골키퍼를 영입하니까 연맹에서 외국인 골키퍼의 영입 금지까지 만들 정도니.... 이 때부터 최소한 프로 팀들은 전담 골키퍼 코치를 두기 시작했고 학원 팀에도 필드 플레이어와는 전혀 다른 골키퍼 양성이 과제로 주어졌다.

특히 월드컵 독일전 때문에 최인영에 대한 실망감이 극에 달했을 때는 "한국인 골키퍼로는 희망이 없으니 사리체프를 귀화시켜서 대표팀에 발탁하자"는 여론도 있었다. 이후 김병지, 이운재가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면서 그런 이야기는 쑥 들어갔지만, 대표팀과는 관계없더라도 결과적으로 귀화를 하기는 한 셈이다.

5. 여담[편집]

  • 여담으로 '야신 클럽'의 멤버라고 알려져 있는데 일단 야신 클럽이라는 호칭 자체는 비공식이기 때문에 선수 커리어에 중요하진 않으나, 가입 요건으로는 소련러시아 국적으로 러시아 리그, 컵대회, 유럽컵 대항전, 국가대표 4개 항목에서 100경기 이상의 클린시트를 기록해야 인정해 준다. 신의손의 경우는 아예 국가대표 경기가 소련 붕괴 후 1997년 타지키스탄에서 1경기 나온게 전부[11]라서 야신 클럽의 대상자가 아니다.

  • 참고로 발레리 사리체프로는 1981~1991년까지 소비에트 슈프림 리그 (Soviet Supreme League - 지금의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의 전신)[12]에서 도합 165경기를 뛰었다.

  • 1992년부터 25년 넘게 대한민국 생활을 하고 있는데, 본인만 한국에 귀화하고 나머지 가족들은 전부 뿔뿔이 흩어졌다고 한다. 부인은 러시아 국적, 딸은 러시아 국적을 가진 채 캐나다 사람과 결혼하여 캐나다 영주권을 가지고 있으며, 아들은 미국 국적을 얻고 귀화한 뒤 미군에 복무중이며 독일 여자와 결혼했다고 한다.

  • 전설의 골키퍼 레프 야신과 안면이 있었다고 한다. 그가 토르페토 모스크바에서 뛰던 시절, 디나모 모스크바원 클럽 맨인 야신은 여러 행정직을 전전하며 은퇴후에도 계속 남아 있었고 두 팀이 같은 리그(Soviet Supreme League) 소속이었기 때문에 자주 마주쳤을 것이다.

  • LP판 모으는 게 취미라고 한다.

6. 수상 기록[편집]

6.1. 표로 보기[편집]

1992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박창현

FW
임근재

MF
신홍기

MF
김현석

MF
신태용

MF
박태하

MF
신동철

DF
홍명보

DF
이종화

DF
박정배

GK
사리체프

1993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차상해

FW
윤상철

MF
김판근

MF
신태용

MF
김동해

MF
이상윤

MF
김봉길

DF
최영일

DF
이종화

DF
유동관

GK
사리체프

1994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윤상철

FW
라데

FW
김경래

MF
신태용

MF
고정운

MF
황보관

DF
안익수

DF
유상철

DF
홍명보

DF
허기태

GK
사리체프

1995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황선홍

FW
노상래

MF
신태용

MF
고정운

MF
김현석

MF
김판근

MF
아미르

DF
최영일

DF
홍명보

DF
허기태

GK
사리체프

2000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최용수

FW
김도훈

MF
안드레

MF
신태용

MF
전경준

MF
데니스

DF
강철

DF
이임생

DF
김현수

DF
마시엘

GK
신의손

2001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우성용

FW
산드로

MF
신태용

MF
서정원

MF
송종국

MF
남기일

DF
우르모브

DF
김현수

DF
김용희

DF
이영표

GK
신의손

[1] 2000년 귀화[2] 그러나 본인만 귀화하고 가족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리 신씨는 1대로 끝나게 생겼다.[3] 또한 소련 시절 5번째로 많은 우승을 한 팀이기도 하다.[4] 한 경기당 실점이 한 골 이하[5] 1997년 전체 경기 2/3 출전, 1998년 전체 경기 1/3 출전, 1999년 완전 출전금지로 바뀌어 갔다.[6] 단, 필드 플레이어가 경기 중에 골키퍼의 퇴장, 부상 등으로 포지션을 대신 맡아야 하는 경우에는 허용된다. 사실상 영입 금지.[7] '사리첩', '구체포' 등 생소한 한자어도 후보에 올랐었다.[8] 결국 후반전에 이운재로 교체된다.[9] 이 때문에 대한민국 아시안게임 대표팀은 우즈베키스탄과 맞붙은 4강전에서 0:1로 패해 3,4위전으로 밀리고 만다. 그리고 쿠웨이트에게 패해 4위에 그쳤다. 그것도 그 알까기가 우즈베키스탄의 유일한 슈팅. 오죽하면 구글 검색어에도 '차상광 알까기'가 거의 20년이 가까이 된 지난 지금도 있으며, 최인영은 한때 국대 No.1 골리라 이름이라도 남았지 차상광은 존재 자체가 부정당한 수준의 흑역사 취급이다.그래봤자 조병득을 대신해 멕시코 월드컵에 나섰던 고 오연교만큼 심할까?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중국을 결승전에서 만나 꺾고 축구 금메달을 차지했다.[10] 여담으로 당시 우즈베키스탄 국가대표팀에서 뛴 선수이자 간판 선수였던 미르잘랄 카시모프우즈베키스탄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 2015 아시안컵 8강전에서 대한민국과 맞붙었다. 히로시마 대회까지 아시안 게임 축구가 A매치로 취급되기 때문에, 히로시마의 패전은 우즈베키스탄을 상대로 현재까지 유일한 A매치 1패(역대성적 9승 3무 1패)다.[11] 이 경기도 평가전 상대가 대한민국이었다. 여담으로 신의손은 이 경기에서 무려 4골이나 허용하며 팀은 4:1로 졌다.[12] CSKA, 토르페도 모스크바 두 팀이다. CSKA는 1981년 한 해만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