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불복종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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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배경3. 특징과 비교4. 사례
4.1. 국내4.2. 국외

1. 개요[편집]

"사람 하나라도 부당하게 잡아 가두는 정부 밑에서, 정의로운 사람이 진정 있어야 할 곳은 감옥이다. 소수가 무력한 것은 다수에게 다소곳이 순응하고 있을 때이다. 그러나 소수가 전력을 다하여 막을 때에 그들은 거역할 수 없는 힘을 갖게 된다. 정의로운 사람들을 모두 감옥에 잡아 가두든가, 아니면 전쟁노예제도를 포기하든가의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면, 주 정부는 어떤 쪽을 택할지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1], 『시민의 불복종』 中

"인간은 부당한 법에 불복종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


마틴 루터 킹


/ civil disobedience

미국의 작가이자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그의 수필 『시민의 불복종』에서 제안한 개념.

민중 대다수가 국가(정부)와 지배권력층의 정책, 법률이 부당하거나 도덕적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고 판단하여, 자신의 양심에 따라 이를 거부하거나 위반하는 행동을 시민 불복종이라고 한다. 또한 후술하다시피 비폭력이 전제되기에 연장이나 무기를 들고 일어나 정부를 엎어버리는 혁명에 비하면 온건한 방식인 셈.

그리고 흔히 무정부주의로 오해되기도 하지만 소로 본인부터가 사실이 아니라고 못박아 두었다. 즉 "더욱 정의로운 정부, 도덕과 양심에 따라 지배되는 정부"가 소로가 원하는 정부인 것. 또한 소로는 모든 종류의 세금에 반대한 적이 없다. 그는 인두세만 거부했으며, 사회간접자본이나 교육에 대한 세금은 투자 및 후원으로 보고 마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적극 찬성했다.

2. 배경[편집]

당시 미국은 노예제도가 시행중이었고, 제임스 포크 대통령의 강경한 팽창정책은 미국을 멕시코와의 전쟁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이때 여론은 이와 같은 미국 정부의 입장에 동조하는 다수파와 우려를 표하는 소수파로 구성되어 있었고, 소로는 소수파에 속해 있었다. 소로와 의견을 같이 하는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한 사람으로서의 다수"(majority of one)라는 표현이 유행처럼 떠돌았는데, 이는 비록 소수파라고 하더라도 다수파보다 도덕적 정당성에서 우위에 있다면 소수파가 다수파를 이길 수 있다는 뜻이었다. 즉 도덕적 정당성이 다수결보다 우위에 있다는 입장인 것.

당시 소로 등의 소수파들에게 다수파는 흔히 "그럼 당신들이 주 의원들이랑 정부 관료들에게 탄원서를 쓰라, 당신의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라, 우리 미국민주주의 국가니까" 등등으로 대답하곤 했다. 따라서 소로의 비판도 바로 이 부분에서 가장 격렬해졌다. 소로는 "개인의 양심보다 다수가 우선이라면 대체 우리에게 양심은 무엇에 쓰라고 있는 것인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단 한 사람의 양심적인 사람이다."라고 응수했다.

한편, 의외로 당시 매사추세츠 주에서는 소로의 의견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소로는 날선 비판을 멈추지 않았는데, "현재의 불의가 당신들로 하여금 악한 일을 은연중에 돕도록 하고 있다. 왜 저항하지 않는가? 왜 행동하지 않는가? 지금 당장 불의한 국가에 대한 충성을 거부하라"고 요구했다.

아무튼 소로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부당한 권력인 매사추세츠 주에 6년간 인두세를 내기를 거부했고, 이 때문에 하룻밤을 수감되는 경험을 했다. 원래는 바로 풀려나는 것이 아니지만, 그의 낼 세금을 고모인 마리아 소로가 대납해 주었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다.

3. 특징과 비교[편집]

상기 이유로 인해, 시민 불복종 운동은 몇몇 특징들을 지니고 있다. 먼저 개인의 양심과 도덕적 정당성이 다수결보다 우위라는 관점을 바탕으로 하므로, 소수파가 다수파의 정의 관념에 호소한다.[2] 또한 이를 통해 여론의 극적인 전환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더불어, 부당한 다수의 정부권력에 대한 투쟁의 성격을 갖는 만큼, 준법시위에 연연하지 않고 불법 행위들까지도 불사한다. 그리고 이들이 존중하는 가치는 헌법과 같은 것이 아닌,[3] 보다 근본적이고 절대적인 보편적 가치에 해당한다.

시민 불복종의 조건

  1. 목적의 정당성

  2. 처벌의 감수

  3. 비폭력

  4.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

  5.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닌 공공을 위한 것으로.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이 불복종권을 저항권과 동일하게 취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양쪽은 상당히 다른 개념이다. 이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앞서서 저항권에 대해 잠깐 설명하자면, 저항권은 그 내적인 모순점으로 인해 현대 법학에 있어서 지속성을 갖는 비판적 복종을 통한 권력통제로 이해되고 있는 추세이다. 그래서 이러한 저항권은 헌정질서의 회복이라는 소극적 목적을 갖는 반면, 불복종권은 특정 법령이나 정책의 개혁을 주장하는 적극적 목적을 갖는다. 저항권은 민주적 절차가 부인되는 상황을 요건으로 하나, 불복종권은 정의롭지 못한 개별 법령의 존재를 그 요건으로 한다. 권리행사 방법에서도 저항권은 계속성과 수시성, 보충성을 갖지만, 불복종권은 일회적 권력행사로 끝난다는 차이점이 있다.

다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아무리 불법 행위들까지도 불사한다 할 지라도 비폭력에서 넘어서지 않는 것이 요건이다. 폭력을 수반할 수 밖에 없는 저항권과 결정적인 차이다.

4. 사례[편집]

역사 속 시민 불복종 운동의 실제 사례로는 인도 공화국에서 간디가 진행한 비폭력 무저항[4] 불복종 운동이 있다. 간디는 실제로 소로의 시민불복종 개념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졌다.

단순히 정부에 불복종한다 해도 시민이 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 시민 불복종 운동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시민들이 주도하였다 하여도 도덕적으로 정당하지 않다면 시민 불복종 운동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이하는 흔히 시민 불복종 운동이라고 불리는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목록이다. 정확하지 않을 수 있으니 여러 위키니트들의 많은 편집 환영.

4.1. 국내[편집]

4.2. 국외[편집]


[1] 국립국어원 확인결과 Thoreau는 "소로"라고 표기하는 것이 옳은 것으로 나와 있다.[2] "호소한다"는 대목이 특히 중요하다. 불법행위가 동원될 수는 있지만, 그 본질은 구경하는 대중에게 자신들이 도덕적으로 더 올바른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것이라고 호소하는 것이다.[3] 동시대의 정치가 대니얼 웹스터가 바로 헌법의 옹호자였는데, 소로는 이를 두고 일부 긍정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4] 거의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알지만, 동시에 아무 생각없이 사용하는 단어중 하나가 '무저항'일 것이다. 비폭력주의문서에도 있지만, 무저항은 말 그대로 저항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비폭력일 지라도, 비타협 불복종은 저항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