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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여러 명칭3. 상세4. 승려가 되기 위한 조건5. 승려의 금기사항
5.1. 결혼 문제
5.1.1. 중국/인도5.1.2. 한국5.1.3. 일본5.1.4. 티베트
6. 승려는 정말 고기를 먹을 수 없는가?
6.1. 개요6.2. 육식의 조건6.3. 비판과 반박6.4. 육식과 살생에 관해서6.5. 금기문화가 생긴 원인6.6. 육식 이외의 금기 음식
7. 군소종단 문제8. 호칭 관련9. 유명한 승려10. 가공의 승려11. 사찰
11.1. 가공의 사찰
12.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불교 승가[1]에 입문한 수행자를 이른다. 우리말로는 중, 존칭으로는 스님이 있다.

다시 승가는 석가의 가르침을 받들며 따라다니던 공동체를 이르는 말이다. 가톨릭/정교회적 개념인 성직자와 단순비교하기에는 어렵다. 불교의 승려는 성직자라기보다 ‘수행자’로 보아야 한다. 이는 초기 불교 경전에서 브라흐마나(brāhmaṇa)와 사마나(samaṇa)의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다. 브라흐마나는 브라만 카스트의 사람을 일컫는 말이며, 브라만교의 성직자로서 제사를 주관하는 자를 말한다. 초기 불교 경전에서 사마나는 사문 또는 수행자로 번역되어 있다. 브라흐마나에 대응하는 또는 대항하는 개념이다. 사마나는 브라흐마나와 달리 젊은 나이에 출가하여 결혼도 하지 않고 가정도 이루지 않고 소유하지도 않는다.

다만 기독교(가톨릭/정교회)와 불교와의 미묘한 종교 관념의 차이를 모르는 대다수 사람들은, '특정 종교에 입문하여 직업/전문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성직자란 단어를 사용하기에, 승려 또한 성직자라고 말하곤 한다. 게다가 동양으로 그리스도교가 들어오는 과정에서 종교적 용어를 불교 쪽 용어에서 많이 차용해 왔기 때문에[2] 이렇게 차용해서 양 계열의 종교가 같이 사용하는 용어의 경우 더욱 특정 종교의 색채 없이 범용적인 용어가 되었다.

일반적인 불교의 승려들은 출가를 해 속세의 인연을 끊고 삭발을 하며, 결혼하지 않고 평생 불교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을 한다. 하지만 한국일본의 태고종에는 특이하게도 대처승 제도가 존재하여 승려도 결혼을 하고 아내와 자식을 가질 수 있으며, 집안이 대를 이어 승려가 되는 경우도 많다.

이 탓에 일본의 서브컬쳐에서는 위독한 아버지를 대신해 주지 자리를 이어받은 무로이 세이신이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승려인 도메키 시즈카[3] 등 다른 나라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설정의 캐릭터가 종종 등장하고는 한다. 세이신의 경우에서처럼 종파에 따라서 삭발을 하지 않는 승려도 있다.

한국에서도 태고종 같은 종파의 승려들은 결혼이 가능하며,[4][5] 일부 종파에서는 결혼 이후 출가자에 한해 출가 전의 배우자/가족간의 인연을 인정하는 종파도 있다.[6] 단, 대한불교진각종에는 거사만이 존재하고 승려 제도가 없어 이 부분에서 비교적 자유로우며, 머리를 깎지도 않는다.

2. 여러 명칭[편집]

우리말로는 '중'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용도가 다소 변해, 표준국어대사전에서마저 비하적 성격이 있는 말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이런 까닭에 현재로서는 승려 일반적인 표현이다.(위키백과에서도 승려로 되어있다.)

불자나 타인이 승려를 높이는 존칭인 스님은, 승려의 '승(僧)+님'에서 받침 ㅇ 발음이 없어지면서 나타난 단어이며 존칭인다[7] 경상도 사투리, 전라도 사투리로는 '시님'이라 부른다. 존칭이 아닐 경우에는 보통 중, 승려[8]. 개신교 목사들 중에는 이런 걸 몰라서 스님을 '스'라고 부르는 인간들도 있다는 듯 하다.

'소승(小僧)'이라는, 주로 승려들이 스스로를 낮출 때 많이 사용하는 말이 있으며 비슷한 말로 '빈도(貧道)'나 '빈승(貧僧)'이란 표현이 있다. 또한 같은 승려들끼리 호칭할때 겸양의 의미로 '함께 도를 닦는 벗'이라는 뜻을 가진 도반이라 부르기도 한다. 비하하는 명칭은 땡중 또는 중.

화상이라는 말도 있으나 현대 한국에서는 이 단어로 승려를 속되게 일컫거나 다른 의미로 사용하기에 별로 쓰이지 않는다.

북한에서 1981년에 발간한 '현대조선말사전'에는, '중'의 사전적 정의가 "부처를 미친 듯이 숭배하는 자로서, 에 속해 있으면서 불교를 퍼뜨려 착취계급에 복무하며, 종교의 탈을 쓰고 인민을 착취해 기생생활을 하는 자"였다. 북한이 그간 얼마나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부르짖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뭐가 알수있는 이유인거지? 비난하는 대목 아닌가? 가치중립적이어야 할 사전에까지 저런 식으로 적어놓을 수 있다는 것부터가 그만큼 뼛속까지 부정하겠다는 의미 아닐까 그러나 1992년 '조선말대사전'에는 "집을 떠나 절에 들어가 불교 교리를 전문적으로 닦고 선전하는 사람" 정도로 그나마 가치중립적인 설명으로 바뀌었다.#

일본에서도 호칭이 여러 가지인데, 보통은 오보우상(お坊さん)이라고 부르는 것이 보통인 편이고, 간혹 가다 보우즈(坊主)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지만 이건 낮추는 것에 더 가까운 뉘앙스라 가급적 안 쓰는게 좋다. 더 높여 부를 때는 오쇼우상(和尚さん)이라고도 부른다. 참고로 보우즈란 단어는 빡빡이 머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남자아이[9]를 지칭하기도 하며, 여기서 파생되어 상대(남자 한정)를 낮출 때 쓰기도 한다. 아이를 지칭할 때는 '보우야'라고 칭하기도 한다.

불교에서 부처가 되기 위하여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정신을 갈고 닦는 사람을 말한다. 남성 승려는 "비구" 여성 승려는 "비구니"라고 한다.

3. 상세[편집]

보통 사람들이 알고 있는 승려들의 모습은 에서 불경을 외며 머리를 박박 깎고 회색 도포와 가사를 입은 모습이라 남녀의 구분이 힘들다. 승려들이 머리를 미는 이유는 2가지가 있는데 '헤어 스타일을 꾸미지 못하게 하기 위함'과 '누가 봐도 승려임을 알아보기 위함'이다. 한국 불교에서는 '속세와의 인연을 끊는다'와 '미망(迷妄), 미혹(迷惑), 번뇌(煩惱)를 자른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사실 석가모니도 그렇고 옛날에는 머리를 안 깎아도 별로 상관없었던 모양이다.

원래 석가모니 시절에 머리를 올리는 것은 귀족들의 헤어 스타일이었다.[10] 그리고 머리를 풀어헤치는 것은 천민들의 헤어 스타일이었다. 승려들은 머리를 올릴 수도, 풀어헤칠 수도 없고 그냥 있자니 보통 사람과 구별이 되지 않는데다 인도 특유의 고온다습한 기후 탓에[11] 청결과 시원함을 위해 머리를 밀었다는 가설이있다. 어찌됐든 머리를 밀면 승려란 것을 숨길 수 없다. 즉 일종의 제복이라 할 수 있겠다.

회색 장삼과 거기에 걸치는 가사 역시 제복. 참고로 가톨릭수도자들도 예전에는 정수리를 박박미는 스타일이 있었다. 자세한 건 캇파 항목으로.

지금이야 규모가 큰 절에서도 편하게 일반 면도기로 깎지만, 과거에는 삭도(削刀)라는 큼직한 칼로 깎았는데 그 특성상 혼자 하기에는 매우 위험했으므로 서로 돌아가면서 깎아줘야 했다. "중이 제 머리 못깎는다"는 속담도 여기서 나온 것. 그리고 매일 하는 게 아니라 삭발일이 정해져 있으며 이는 나라마다 다르다. 한국 불교에서는 보통 보름마다 깎으며, 이 때는 기가 위로 올라간다 하여 보양식으로 찰밥을 먹는다.[12] 일본에서는 4일과 9일로 끝나는 날에 깎는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상좌부 불교, 특히 태국의 경우 눈썹까지(...) 미는 경우도 있다.

추가로 일본 서브컬처 등에서는 간혹 등장하는 허무승(虚無僧)이라는 망태를 쓰고 퉁소를 불면서 걷는 승려들이 나오기도 하는데 일본의 불교 종파 중 하나인 보화종(普化宗)의 승려들이다.

식사와 취침, 기상시간이 고정되어 있는데 취침은 21시, 기상은 익일 03시로 공통되어 있다. 이건 그리스도교 계열의 사제와 남녀 수도자(수사/수녀)들도 마찬가지다. 보통 아침 공양은 06시, 점심 공양은 정오, 저녁 공양은 17시쯤에 하지만 사찰이나 승려의 사정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지나가던 스님지나가던 선비와 함께 옛날이야기의 먼치킨적인 존재로 꼽히는 존재. 하지만 지나가던 승려는 주인공 위치보다는 조력자의 위치로 더 많이 등장한다. 그 힘은 절대적이라 부적이나 경문 한장이면 1000년 묵은 구미호나 이무기나 한많은 귀신이나 도통 힘을 못 쓴다(...). 그러나 워낙에 치졸한 존재들이라 심기를 잘못 건드리면 갑자기 자신의 집에 또다른 내가 생겨 주인 행세를 할 수도 있으니 조심할 것. 용소와 며느리 바위에서 어느 집은 번개를 맞고서 커다란 연못이 되기도 했다.

승려들이 입적했을 때는 명복보다는 극락왕생을 빈다.[13]

승려의 명단을 정리한 목록을 승적이라고 하고, 이 승적에 오른 승려임을 증명하는 신분증을 도첩이라고 한다. 본래 도첩은 조선시대 숭유억불 기조에 따라 승려들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증명인데, 현대에도 이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4. 승려가 되기 위한 조건[편집]

4.1. 조계종[편집]

대한불교 조계종의 경우 정식 승려(비구/비구니)가 되려면 조계종 총무원에 행자로서 등록한 뒤 최소 6개월의 수행 및 체류기간[14]을 거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남성 행자는 갈색 옷, 여성 행자는 주황색 옷을 입고, 행건이라고 불리는 각반을 찬다. 행자기간은 속세에 있던 자신의 고정관념과 굳어진 마음을 버리는 과정으로, '하심(下心)'이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불가의 대열에 올라섰다고 대우는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절에 유명한 말 중에 '사람과 짐승 사이에 낀 것이 행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행자기간은 빡빡하고 서럽기 그지 없다. 같은 행자들과 대중생활을 하며 사찰의 잡일을 하는 와중에 사찰의 생활방식과 예절, 염불, 기초 경전, 생활강령을 담은 <초발심자경문> 공부 등 눈코 뜰 새 없는 과정을 밟는다. 가장 낮은 행자 때 사찰의 흐름과 일들, 그리고 아주 기본적인 부분들을 배우고 사미(니)가 되었을 때는 의식집전과 교리공부에 매진한 뒤 비구(니)가 되어 바로 완벽한 승려가 될 수 있도록 짜여진 커리큘럼이기도 하다.

'할 것 없는데 승려나 할까'라는 생각으로 절에 들어온 행자들은 1주일에서 3달 사이에 떨려 나가고(!), 남은 사람들이 5급 승가고시와 보름간의 행자교육원 교육을 거쳐 사미계를 받게 되면 예비승으로 승단의 일원이 된다. 이 제도가 실행되기 전에는 그야말로 아무나 승려가 될 수 있었다.[15]

예비승인 사미(남자)/사미니(여자)는 속명을 버리고 법명을 쓰기 시작하며 가톨릭정교회의 신학생+ 부제의 개념에 가깝다. 엄밀히 말해 가톨릭과 정교회의 신학생이 부제품을 받기 전에는 '신자'면서 '성품 지원자'로서 대우받는다고 한다면 예비승인 사미/사미니는 목과 팔목의 갈색 띠를 제외하고는 생활, 의복이 정식 승려와 똑같고 일정 부분 의례집전의 권한도 있다. 단 교육 의무가 있으며, 승려로서의 권한 행사가 불가능한 것이 일반 승려와 다른 점.

그리스도교신학대학처럼 승가대학, 기본선원, 혹은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중앙승가대학교에서 일정기간 동안 공부와 수행을 거친 후 4급 승가고시를 통과해야 한다. 승려가 되기 전 준비단계인 행자 단계에서 5급 승가고시를 합격한 예비승들이 모여 공부와 수행을 하는 '승가대학(강원)'이 있는 절에서는 이런 승려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5급, 4급 승가고시를 합격하지 못하면 승려가 될 수 없다. 종종 재수를 하시는 승려들도 있을 정도다. 결론적으로 4급 승가고시를 통과하고 구족계수계산림에서 일정 기간의 통합교육을 거친 후 구족계를 수지해야 비구가 된다.

단, 앞서 설명하였듯 예비승인 사미/사미니는 엄밀한 의미에서는 '승려'가 아니지만, 넓은 의미에서 승려로 대우하고 있다. 설사 구족계를 받은 승려라 할지라도, 사미를 '사미'라 부르지 않고 '스님'이라는 존칭을 붙히는 것은 최근까지 사미/사미니와 비구/비구니 사이의 경계가 모호하기도 했지만, 어차피 몇년 후면 같은 비구/비구니가 될 것이고 출가의 길에 들어서서 최소한의 자격을 취득하고, 힘든 수행의 길을 걷고 있는 분들이기에 대부분 '스님'이라는 존칭을 붙여 부르는 편이다. 그러니 팔목이나 목에 갈색 띠가 있더라도 회색 승복을 입고 머리를 삭발한 분은 다 '스님'이라 불러도 틀리지 않다.

사미니의 경우 식차마나니계라는 별도의 계품을 2년 동안 수지한 뒤에 비구니가 될 수 있다. 이는 아주 예전에 사미니라는 품이 필수가 아니었을 시절에 비구니가 되기 전 혹시라도 남자를 만나거나 강간당해 임신했을 경우를 기다려보기 위한 계품이 지금까지 내려오는 것이다. 식차마나니계 2년이 지나면 비구니계를 수지할 수 있게 된다.

일단, 불교에서 주로 사용하는 불경한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술한 승가고시의 난이도가 무시무시하게 어렵다. 최근에는 팔리어/산스크리트어로 쓰인 경전을 배워온 승려들이 직접 한국어로 불경을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지만, 불경이 워낙 양이 방대해서 쉽지 않다. 한 예로 불교계 미션스쿨에 다닌 사람이라면 알만한 262자의 반야심경은 80권짜리 대반야경이 요약된 버전이다. 그리고 이런 몇 십권 짜리 경전이 건물 몇 개를 채울만큼 가득가득한 불경을 다 읽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러기에 가이드라인에 나오는 중요 경전을 기준으로 승려들마다 개개인의 전문분야를 스스로 설정해 공부하는 편이다.

게다가 나온 한국어 불경은 대개 한역불경을 다시 한국어로 중역한 것이 대부분인 역경의 과도기적 기간을 걷고 있다. 이 때문에 대한불교 조계종은 한글 불경의 오역을 최소화하고 대중화시키기 위해 원전어 연구에 꽤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편이다.

4.2. 천태종[편집]

출가 조건으로는 독신으로서, 나이가 13~40세이며, 채무나 범죄가 없어야 한다. 미성년자는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대기 과정이 있는데 농장이나 배식부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수행을 하며, 허가가 있을 때까지 대기한다. 입산할 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막연한 기대감으로 하게되어 실망하고 환속하게 된다. 대기 과정은 절 생활을 체험함과 아울러 결심을 굳히는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어떠한 일에 얼마나 성실하고 심지가 굳은가를 시험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행자 수행은 대개 3년이며, 낮에는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수행을 하고 밤에는 교육을 받는다. 행자 시기는 본격적으로 수행생활을 체험하고 시험받는 기간이다. 입산하려는 사람이 계속 출가생활을 할 것인가 아닌가를 돌아볼 기회이기도 하고, 또 예비 승려로서 교육을 받는 기간이다.

수계는 종정과 면담을 하여 허락을 얻으며 21일간 수계 교육을 받고, 정식으로 승려가 된다.

4.3. 상좌부 불교[편집]

한국 상좌부 불교 교단을 통하여 출가를 원하는 자는 선택한 사원에서 며칠 동안의 소양 교육을 거쳐 사미계를 수여받을 수 있다.

사미계를 받은 사마네라는 당 사원에서 4개월의 사마네라로서의 생활을 거쳐야 하고, 4개월의 사마네라 생활을 하는 동안 출가자로서의 기본 생활을 학습하면서, 1주일에 일 회씩 교단에서 마련되어진 상가 교육을 이수해야만 한다.

4개월의 사마네라 생활과 상가교육을 마친 출가자는 본인이 원한다면 교단에서 선정한 적당한 날짜에 빅쿠계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빅쿠계를 받았다고 끝난게 야니다.

빅쿠계를 받은 출가수행자는 당 사원의 책임 빅쿠의 지도 아래에서 5년 동안 학습 빅쿠로서 당 선원에서 빅쿠로서의 생활을 여법하게 행해야만 하는 의무를 지닌다. 그 이후에야 공식적인 한국 테라와다 교단의 빅쿠 일원으로서의 자격을 부여 받을 수 있다.

5. 승려의 금기사항[편집]

다음과 같은 일을 하면 안 된다고 알려져 있다.

1. 음행하는 것.

  • 남성기와 여성기 사이의 성관계뿐 아니라, 구강성교항문성교 등 일체의 성교는 금지다. 더욱이 이성은 물론이거니와 동성애, 심지어는 귀접이나 수간, 성교가 가능할 정도로 부패된 시체와의 음행 역시 금지되어 있다. 또한 자위행위를 통한 성욕해소 역시 상당히 무거운 죄로, 만약 이를 범하면 20인 이상의 비구에게 죄를 고하고 참회를 해야한다. 여러모로 상당히 엄격하게 규제된다. 태고종의 경우에는 "태고종은 승려가 결혼할 수 있다는데(대처승) 그럼 이 계율 어기는 거 아닌가요?" 식의 오해가 따라붙는 경우가 많은데, 태고종의 아내와 자식이 있는 승려는 어디까지나 전직 가장이 출가해서 승려가 될 때 이미 있는 아내와 자식을 버리지 말고 부양해도 좋다는 태고종의 허락하에 그렇게 됐지, 현직 승려가 결혼해서 자식을 가져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계율에 승려의 동성애를 막는 조항이 별도로 표기되어 있다.


2. 살생을 하는 것.

  • 이 항목은 특히 매우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 장마철에는 벌레가 많이 나온다며 밟아죽일까봐 외출을 금하기도 하는데, 이를 '안거'라고 한다. 본래는 생물들이 번성하는 여름에만 안거를 했으나, 동아시아로 전파된 뒤 겨울에 밖으로 다니는 게 불편한 데서 '동안거'가 생겨나, 기존의 안거는 '하안거'라고도 부른다. 다만 이런 거 없이 대웅전파리채가 당당히 비치되어 있는 절도 가끔 있다. 불교의 법구 중 하나인 불진의 용도 중에는 벌레를 쫓는 것도 있다.


3. 도둑질을 하는 것.

4. 큰 거짓말을 하는 것.

  • 대망어. 본인이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 깨달음을 얻지 못했으면서 본인이 깨달았다고 하는 것. 다만 본인이 깨달았다고 착각했거나, 이후에 진짜로 깨달아 버린 사람이라면 괜찮다고 한다.[16]


5. 고기 등을 먹고 마시는 것.

  • 상황이나 종파마다 다르다. 애초에 이거 가지고 파계하지도 않는데다가, 도의상 후대에 금지한 것이기 때문이다. 옛 승려들은 다 시주로 먹고 살았는데 고기는 못 먹는다며 따로 가릴 만한 형편이었을 리가 없다. 일단 대한민국 불교의 경우 대승불교가 주류인 불교권에 속하므로 대승보살계(大乘菩薩戒)에서 금지된 식육은 하면 안 되는게 기본이다. 하지만 동자승의 경우에는 성장 문제도 있기 때문에 계란 등 약간의 육식은 묵인(허용이 아니다) [17]하고 있으며, 몸이 아픈 승려들의 경우 치료 목적으로 육식을 허용하기도 한다. 또한 절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고단한 농사 울력 때 막걸리 한 잔 정도는 봐준다고. 거기다 지역에 따라 묵인하는 사찰도 있다. 한국의 경우도 섬이나 바닷가에 있는 사찰은 곡식을 시주받기 어렵고 해초만 먹기는 힘들었기에, 어민들이 시주로 바치는 해물도 종종 먹었다고 한다. 소림사의 경우 시범승과 무술승은 되려 일반인보다 고기를 많이 먹는다. 왜냐 하면 이들은 엄청난 육체노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승려들에게도 만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는데 음주를 금하는건 식육보다 큰 십중대계(十重大戒)에 속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일본은 종파에 따라 다르지만 음주가 허용된 경우가 많고 아예 승려가 직접 바텐더를 하면서 곡차를 파는 '스님바'(坊主バー)'까지 있다.


육류와는 별도로 우유, 치즈 같은 유제품은 대부분의 종파에서 허용된다. 동물을 죽여서 얻는 것이 아니니까.

이 정도가 유명하고, 이 중 5번을 제외한 계율들은 석가모니 부처님 시절, '출가한 사람들이 무조건 지켜야 하며 어길 시에 파계당하는 4개의 계율(4바라이)'이다.

그 외에도 비구 250계, 비구니 348계에 달하는 수없이 많은 제약이 있다. 다만, 이 계율들은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를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 진게 아니라, 모두 사건이 터지고 난 이후에 "헐... 님들 다시는 이러면 안됨;;" 하는 식으로 만들어 진 계율들이다. 범하는 순간 승려 자격을 잃게 되는 4바라이죄 역시, 처음부터 있던 게 아니라 누군가 범하고 난 이후에 제정된 것들이다. 율장을 보면 각 계율마다 제정된 이유가 달려 있는데, 잘 읽어보면 신도들이 "부처님! 스님들이 저러니깐 꼴보기 싫어요!"하고 건의 한 내용들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수많은 제약 중에는 어기면 반성해야 하는 것에서부터, 당장 절에서 내쫓기는 것까지 다양하다. 특히 승려의 자격을 잃는 제약을 어긴 경우에는 파계승이 된다.

5.1. 결혼 문제[편집]

5.1.1. 중국/인도[편집]

중국인도 공화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승려의 결혼은 금지되어 있었다. 현대 중화인민공화국의 경우 종파에 따라서는 결혼이 허가되기도 한다.

타이완의 경우는 청대까지는 중국불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에 육식 금지 및 결혼 금지의 계율을 철저하게 잘 지켰으나, 1890년대 이후부터 일본불교의 영향을 받아 육식과 결혼이 널리 퍼졌다가 국민당이 타이완으로 옮겨온 후, 중국불교회에서 1953년부터 계율을 엄격히 적용하면서 지금은 다시 옛날 중국불교의 계율을 철저히 지키게 되면서 사라졌다.링크 명청대부터 불교 탄압 및 타 종교 우대 정책으로 중국은 승려보다 재가자 중심의 불교 문화가 발달했는데, 지금도 이러한 문화가 많이 남아 타이완에선 승려의 범계(계율위반) 행위를 불자들이 강하게 단속하며, 본토에서도 승려와 재가자간 관계가 상대적으로 수평적인 편이다.

5.1.2. 한국[편집]

한국에도 대처승이 존재한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일본이 한국 승려들에게 일본식 대처승이 되라고 강요한 탓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지 얼마 안 되었을 때까지 한국의 승려들도 대부분 대처승이었다. 그러나 조계종을 중심으로 불교 정화 운동이 벌어져서 대처승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18]

이와 별개로 함경도 변경 지역에 재가승이라는 독특한 승려집단들이 존재했는데, 이들은 일본의 영향과 무관하게 독자적인 대처승 문화를 갖고 있었다. 한때 이들이 여진족의 후예라는 헛소리가 있었지만 연구가 더 진척되면서 혈통적, 언어적으로 그냥 한국인이며 단순히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한 문화적 개념에 더 가깝다고 결론났다. 이들은 1945년 이후 북한의 종교 탄압으로 인해 맥이 끊겼다.

세월이 흐를수록 대처승은 소수가 되었기 때문에 현재는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한 예로 대구광역시의 어느 절에는 아주 잘생긴 승려가 있어서 출입하는 여신도들이 늘 흠모하는 눈길로 보았으나, 상대가 승려라서 아무도 넘보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승려가 어느 미인을 데려오길래 누구냐고 물었더니 "제 아내입니다."라고 대답해서 주위를 충공깽으로 만들었다.

여담으로 만해 한용운 스님은 대처승 제도에 매우 호의적이라서 불교 유신론을 주장하며 승려도 결혼하고 육식할 수 있어도 된다고 주장한 바가 있다.[19] 다만 만해가 친일반민족행위자라고 오해하면 매우 골룸하다. 자세한 것은 한용운 항목으로. 또한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의 부친이 대처승이었다. 조정래의 아버지 철운은 대처승을 인정하는 태고종 계열의 선암사 부주지 출신의 진보적 관점을 지닌 승려로, 해방 후 절 사유지를 소작인들에게 무상분배 하자고 주장했다가 좌익으로 몰려 사형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 가수 이선희의 아버지도 대처승이었는데, 이선희 본인은 이것 때문에 어릴 때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고...

현재 한국에서는 주류 종단 기준으로 조계종천태종은 대처승을 허용하지 않으며, 태고종의 경우에는 출가 전 결혼에 한해 대처승이 허용된다. 그 외 몇몇 군소 종단의 경우 출가 전 결혼자에 한해 대처를 허용하기도 한다.

군종장교 군승의 경우 2010년 이전까지는 타 조계종 승려들과 다르게 결혼을 할 수 있는(!) 예외 조항이 종헌에 있었다. 기술적으로 설명하자면, 복무가 종료될 때까지 파계를 인정하는 것을 "유예시켜 준 것"인데, 1960년대 후반, 인프라 부족으로 처음 군종사관을 파송할 때도 전원 일반인이었으나 특별단기승려과정(!)까지 만들어 며칠 만에 승려로 입적해 보냈던 역사가 있었고, 이를 바로잡지 못한 채 2009년까지 오다가, 승려 출신 예비역 군종법사[20]들이 종헌 개정운동을 펼쳤고 2009년 4월 21일에 열린 대한불교조계종 종회에서 이 조항이 개정되어, 2010년부터 임관하는 모든 군종 법사들은 결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때 몇몇 동국대학교의 몇몇 군종사관후보생들이 눈물을 흘렸다 카더라. 다만, 개정되기 이전 결혼한 군종장교의 신분은 그대로 유지. 다만 2018년 4월 26일 서울행정법원에서는 결혼했다는 이유로 조계종 승적이 박탈되어 태고종[21] 승적을 취득한 해군 군종장교에 대한 해군측의 현역복무 부적합자 전역처분을 취소해 줄 것을 청구하는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해당 청구를 낸 원고 김씨는 1998년 대한불교조계종 승적 취득 후 2005년 해군 군종장교에 임관했다가 2014년 만난 여성과 사실혼 관계에 들어 갔고, 결국 이듬해 조계종 승적이 제적되었다. 김씨는 다시금 한국불교태고종 승적을 취득했는데 해군본부 현역복무부적합 조사위원회에서는 조계종 승적이 박탈된 김씨가 군종장교로써의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서 전역하게 된다. 이에 김씨는 국방부 중앙군인사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심사를 청구했지만 심사결과가 나오지 않자 행정법원에 소송을 냈고, 재판부는 조계종만이 군종 분야 병적편입 대상 종교로 군내 태고종 승적을 가진 군종장교는 없지만, 병적편입 대상 종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태고종 관련 종교활동이 군내에서 금지된다고 단정할 수 없고, 조계종 승적을 박탈당했다는 이유만으로 직무를 수행할 능력이 부족하다고 볼 근거는 없으며, 태고종 관련행사를 군에서 허용하지는 않는다 해도 다른 활동을 통해 군종장교 본연의 업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다며 원고 김씨의 손을 들어 준 것.##[22]

5.1.3. 일본[편집]

일본 불교에서는 종파에 따라 승려들은 가정을 가질 수 있고 배우자에 한해 자녀를 둘 수 있다.[23] 조선통신사 일행이 관련 일화를 듣고 매우 놀란 기록도 있다. 아들을 낳아서 절을 물려주는 것도 흔하다. 한국인들이 이런 일본의 이색적인 불교 문화를 쉽고 자주 접할 수 있는 매체는 코믹스와 애니메이션이다.[24] 이런 승려를 '대처승'이라고 하며, 일본에선 꽤 흔하다.[25] 실존 인물로는 성우 히로하시 료가 승려 집안의 자녀로 본래 가업(절)을 이어야 했지만 부모님께서 히로하시 료의 오라버니에게 전가했다고 한다. 물론 학교는 불교 계열과 전공수업을 들었다. 용사 요시히코와 마왕의 성에 부처로 등장한 일본 배우 사토 지로의 전 장인이 승려다.[26] 꾸러기 닌자 토리 등으로 알려진 후지코 후지오 A는 아버지가 선종 승려였기 때문에 본인도 고기를 잘 먹지 못했다는 일화가 있다.

머리까지 기르는 니시혼간지파 계통처럼 한국인이 생각하는 대처승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도 있고, 선종계통은 좀 보수적이라 조동종일본임제종은 대처는 가능하지만, 육식은 연수기간 동안에는 불허되며[27][28], 한국이나 중국의 종파들처럼 삭발을 해야 한다.[29] 나머지 다른 종파(진언종, 일련종 등)도 마찬가지.

이는 일본의 정토진종[30] 계통은 우리나라의 원효대사처럼 일찍부터 불교의 개혁/대중화를 주장하며 결혼까지 했던 신란대사[31]가 있었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은 것이다. 반면에 선종이나 밀교 계통은 일본 승려들이 직접 중국유학하면서 들어왔기 때문에[33] 자연히 우리나라나 중국 불교계처럼 보수적인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일단 일본에서 공식적으로 전 불교 종파가 대처/육식이 완전히 가능해진 것은 1872년 선포된 '육식처대승수령' 이후이며, 1940년대부터는 완전히 전 종파에 대처문화가 일반화되었다.기사 이 육식처대승수령으로 기존의 승려의 신분적 의미가 퇴색되고 직업의 성격[34]이 강해지는데, 이는 당시 메이지 정부의 신불분리령과 더불어 신토 우월주의 정책과도 관련이 있다.

5.1.4. 티베트[편집]

티베트 불교에서는 닝마빠와 카규빠, 샤카빠에서 대처를 허용한다. 닝마빠의 경우 비구승은 붉은 가사, 대처승은 흰색 가사를 입어 구분하나 이에 따른 차별은 없다. 현 카규빠의 종정인 2대 까루(깔루)린포체는 대처승이다. 사캬빠의 경우 종정이 특별한 조건을 갖춘 배우자와 결혼해 그 직위를 세습한다.

제도와 계율, 규칙에 엄격한 겔룩빠는 결혼을 허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의외로, 겔룩빠는 닝마빠와 친밀한 관계이다.[35]

6. 승려는 정말 고기를 먹을 수 없는가?[편집]

6.1. 개요[편집]

남방불교에서는 승려들이 고기를 스스럼없이 먹는다. 부처님 재세시에 부처님 스스로 고기를 들고 제자들에게도 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석가모니의 사촌이자 나중에 석가모니를 죽이려고 난리를 쳤던 데바닷타가 "모름지기 수도하는 사람이 고기나 생선 먹어서 쓰겠어요? 채식만 하는 거 어떻습니까?"라고 건의하자 "그러고 싶으면 그래도 되는데 누구에게나 권할 일은 아닌 것 같구나"라고 부처님이 대답하신 바가 있다.

부처님은 오전에 1번만, 7집을 탁발하며 먹으라고 하였으며 무엇보다 "시주해주는 대로 먹으라"했다. 고기든 뭐든 주는 대로 먹으라는 말[36]도 되지만, 7집을 탁발했는데 제대로 시주하지 않아 양이 부족하다면 그냥 그대로 굶고 있어야 한다. 이래서 제자들 중 몸이 약한 사람이 제대로 먹지 못하여 병이 생기자, 그런 사람들은 저녁에도 조금 먹을 수 있게 했지만 원칙적으로는 금하였다. 그 외에도 밤중에 자는데 배가 고픈 승려들은 돌을 덥혀서 배 위에 얹었다고 한다.

다만 부처님은 육식을 근본적으로 금하지는 않되, 탐육하지 않도록 몇 가지 제한을 걸었는데, 이 중에는 자신을 위해 잡은 고기는 먹을 수 없다는 것도 있다(이미 죽어 정육점에 걸린 고기라면 모를까 자기가 먹기 위해서 일부러 멀쩡한 생명을 상하게 하지 말라는 소리). 몸이 아픈 사람들은 먹는 것에 제한받지 않는다고 문을 열어두었다.

사실 동북아에서 육식을 완전히 금하게 된 것은 양무제가 단주육문(斷酒肉文)을 발표하면서부터로,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던 당시 불교계에서 이를 그대로 따르면서부터였다. 불교의 규범을 모아놓은 율장인 <사분율(四分律)>에는 승려의 음식으로 오종식(五種食)을 규정해 놓았는데, 반(飯)/건반(乾飯)/초(麨)/육(肉)/어(魚)가 바로 그것이다.(문서) 이 오종식을 해석하면 밥, 말린 (인도식 ), 보릿가루(미숫가루), 고기, 물고기다.

불교에서 점차적으로나마 육식과 오신채를 금하기 시작한 것은 대승불교가 형성되면서 모든 생명에 자비심을 가지는 보살 사상의 확산과 더불어, 아래에 링크된 마성스님의 글에 나오듯이 대승불교가 흥기할 당시 인도 수행자들의 문화에 영향을 받아 후대에 생긴 것이다.

굳이 승려의 육식 금지 기록을 집어내자면 초기불교 시기의 문화가 남은 율장 중에 비구니의 경우에 한해 육식을 금하는 구벌이 있긴 하지만, 이 조항은 이미 당시부터 시주로 받은 음식을 가리지 말라는 계율과 상충된다며 사문화된 조항이었다.

금육을 포함한 불교의 많은 계율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탐욕을 피하기 위해 탁발이 원인중 하나인데 탁발이 금지된 조계종을 포함해서 현대의 불교는 탁발을 통한 수행을 잘 하지 않으므로 생기는 괴리라고 볼수 있다. 당대의 가르침의 배경이나 현대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오랜기간 지켜져온 계율인데다가 종교라는 특성때문에 현실적이지 않아도 따를수밖에 없는 것으로 이슬람교나 기독교등 다른 종교들도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런 교리적인 부분을 수정하려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처럼 종교적 합의가 필요하지만 이건 철저한 중앙집권제인 가톨릭이니 가능한 일이었지 주류 종단은 있어도 강력한 영향력을 강요할수 없는 불교의 특성상 쉽지 않은 문제라고 할수 있다.

티베트 닝마빠 대처승들의 생활을 담은 영상 18분 20초를 보면 일가족이 다같이 고기만두를 빚어 먹는다.
[37]

조선일보에서 이에 관한 기사를 쓰기도 했다.<디테일추적>'스님이 치킨 먹어도 된다' 이론적 배경있다 스님 눈팅하시는 갤 상태가

6.2. 육식의 조건[편집]

불교에서 먹어도 된다고 허용한 고기(삼정육, 오정육, 구정육)와 조건은 다음과 같다.

  • 삼정육

    1. 나를 위해 죽이는 현장을 목격하지 않은 고기

    2. 나를 위하여 죽인 것이란 말을 듣지 않은 고기

    3. 나를 위하여 죽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되지 않는 고기

  • 오정육

    1. 나를 위해 죽이는 현장을 목격하지 않은 고기

    2. 나를 위하여 죽인 것이란 말을 듣지 않은 고기

    3. 나를 위하여 죽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되지 않는 고기

    4. 수명이 다하여 죽은 동물의 고기

    5. 맹수나 까마귀가 먹다 남긴 고기

  • 구정육

    1. 나를 위해 죽이는 현장을 목격하지 않은 고기

    2. 나를 위하여 죽인 것이란 말을 듣지 않은 고기

    3. 나를 위하여 죽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되지 않는 고기

    4. 수명이 다하여 죽은 동물의 고기

    5. 맹수나 까마귀가 먹다 남긴 고기

    6. 나를 위하여 죽이지 않은 고기

    7. 자연사하여 죽은지 여러 날이 지나 말라붙은 고기

    8. 미리 약속함이 없이 우연히 먹게 된 고기

    9. 당시 일부러 죽인 것이 아니라 이미 죽인 고기

이 외에 팔리 율장에 따르면, 불교에서는 절대적으로 식용해서는 안 되는 고기들이 있는데 그건 바로 호랑이고기, 사자고기, 코끼리고기, 표범고기, 말고기, 곰고기, 하이에나고기,[38] 사람고기(인육), 개고기, 뱀고기가 있다. 다만 육식을 철저히 금지하는 불교에서조차 일반적으로 가축으로 기르는 쇠고기, 돼지고기, 염소고기, 닭고기, 거위고기, 오리고기는 제한적으로 허용한다.[39]

먹지 못하도록 정한 고기들을 보면 사람고기의 경우 인륜적인 문제로 금하는 것이고,[40] 코끼리나 말은 당시 인도에서 왕의 상징인 동물들이라 함부로 해치는 것이 금기시되었던 것의 영향이며[41], 다른 고기들은 위생적인 문제나 산속에서 수행할 때 특정 동물의 고기냄새를 맡고 다른 맹수가 공격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상의 10가지 고기들은 먹으면 '돌길라'라고 하는 허물에 해당하는데, 돌길라는 잘못을 지은 승려가 혼자서 가만히 참회해도 되는 가벼운 허물에 속한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육식진언이라 하여 '옴 아비라 케짜라 훔'을 7번 읊은 뒤 고기에 숨결을 한번 불고 먹으면 육식의 허물이 없어지고 그 축생은 좋은 곳에 태어난다고 한다. 혹은 문수사리문경의 육식진언[42]를 3번 외우고 먹으면 된다고 한다.

6.3. 비판과 반박[편집]

아무튼 이런 식으로 음식 금기를 많이 풀었기 때문에 동시대에 일어난 자이나교에서는 불교도들을 두고 '먹보가 무슨 수행자란 말이냐' 하고 공격하기도 했고[43], 다른 수행자들도 이에 대해 많이 비판하였다. 한 수행자는 석가모니를 찾아와 이에 대해 논쟁하자, 석가모니는 과거불인 가섭불의 설법을 빌려 답변하는 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산 것을 죽이는 일(다른 번역에는 거칠고 잔혹한 일*), 때리고 자르고 묶는 일, 훔치고 거짓말하는 일, 사기와 속이는 일, 그릇된 것을 배우는 일, 남의 아내와 가까이 하는 일, 이것이 비린내나는 일이지 육식이 비린내 나는 일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욕망을 억제하지 않고, 맛있는 것을 탐내고, 부정한 생활에 어울리며, 허무론(虛無論)을 가지고 바르지 못한 행을 하는 완고하고 어리석은 사람들, 이것이 비린 것이지 육식이 비린 것은 아니다. 난폭하고 잔혹하며 험담을 하고 친구를 배신하고 무자비하며, 몹시 오만하고 인색해서 아무 것도 남에게 주지 않는 사람들, 이것이 비린 것이지 육식이 비린 것은 아니다. 생선이나 고기를 먹지 않는 것도, 단식·나체·삭발·결발(結髮)·먼지, 거친 사슴 가죽을 입는 것도, 화신(火神)을 섬기는 것도, 또는 불사(不死)를 얻기 위한 고행도, 베다의 주문·공양·제사나 계절에 따른 고행도 모두 의혹을 넘어서지 않으면 그 사람을 청정하게 할 수 없다.


이런 논쟁이 일어난 것은 당시 고행주의자들은 비린 음식(어류, 육류)를 먹어 사람이 부정해진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즉 중요한 것은 사람의 행실과 생각이지 먹는 게 아니란 것.(이는 업에 대한 불교와 자이나교의 가장 큰 관점 차이이기도 하다.)[44]

파일제법 제39조 색미색계를 들어 육식을 하면 안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 계율에서 말하는 것은 육식을 말하는 게 아니라 비구가 병이 나지 않았음에도 자기 한 몸을 위해 미식[45]만 골라먹지 말라는 계율이다. 미식의 범주 안에는 고기 외에 우유(乳), 우유 가공품인 숙소(熟蘇)와 생소(生蘇), 기름(油), 당(蜜, 엿이나 설탕 등), 밀(蜜, 꿀)도 포함되는 것으로 육식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애초에 색미색계에서 저렇게 정해진 이유가, 탁발받은 음식은 다 먹어야 하건만 당시 비구들 중 자기 입에 맞는 것만 골라먹는 편식쟁이들이 있어 교단이 비난을 받아 생긴 것이다. 결론은 편식하지 말자 불교에서는 탁발받아 얻은 음식을 주는대로 먹는 것도 분별심을 없애는 하나의 수행방법이다.

사실 석가모니도 과거 극한에 달하는 금식 수행을 해본 경험이 있다. 당시에는 금식을 하다가 차라리 굶어죽는 것이 올바른 수행이었다! 하지만 석가모니는 금식을 하다가 이러한 자학적 수행이 옳지 않다고 판단하고 우유로 만든 죽을 먹었다고 한다. 같이 고행하던 다섯 고행자가 "ㅉㅉ 타락죽이나 먹고 타락했구만"라고 비웃으며 떠나가 버리기까지... 그러나 나중에 이 5명은 석가모니의 첫번째 제자가 된다.

하지만 승려에게 먹을 수 있다고 고기를 권하고 거절하면 오히려 교리를 제대로 모른다고 비웃는 경우도 있는데나무위키 꺼라, 그러지 말자. 현재 기독교가 교파에 따라 자체적으로 금식/금육일을 지정해 지킨다든지 주일 외에 추가로 예배를 하듯이, 현대의 불교는 당시의 불교와 상황도 다르고 변화도 많았으며, 종교인으로서 계율은 단순한 시대적인 문제 이상의 종교적/수양적인 의미가 있어 제정된 경우도 많다. 승려도 소속되어 있는 종파의 규율을 따라야 하는 게 당연하니, 이런 행동은 몰상식한 짓임을 인지하고 지양해야 한다.

6.4. 육식과 살생에 관해서[편집]

사실 초기 불교, 그것도 석가모니가 교화에 나선 최초 단계에서는[46] "씨앗과 식물들을 파괴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초기 불교 율장에서는 파일제법[47] 가운데 제10조 땅을 파지 말라(堀地戒), 제11조 초목을 베지 말라(壞生種戒), 제20조 벌레 있는 물을 사용하지 말라(用蟲水戒)는 규정이 있다.

즉, 불교의 교리를 내세우는 교조적 채식주의자들의 주장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무식하게 교리를 따지고 들어가면, 승려는 과일이나 채소를 먹을 때 정인[48]이나 사미가 먼저 과일이나 채소를 불에 닿게 하거나 손톱/칼로 상채기를 내고 먹든지 저절로 땅에 떨어져 상한 것이나 새가 쪼아먹은 것만 먹어야 하고[49], 절에서 나무로 만든 발우를 써서도 안 되고,[50] 절의 승려들이 울력 중 하나로 스스로 농사짓는 것도 규율 위반이요, 더 나아가 농업 자체가 잘못된 것이 된다.

자칭 불자 채식주의자라는 이들 중에는 "동물은 유정(有情)이고 식물은 무정(貿情)이니 채식은 상관없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불교에서는 일체 유정무정의 모든 중생들이 모두 불성을 갖고 있으며, 불교의 성불은 이들 모두가 성불할 것을 말한다.(사전링크)] 불교의 기본 사상은 배타적인 이분법적 논리가 아니라 중도라는 에서도 교조적 채식주의자들의 주장은 불교사상의 기본부터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정작 불교 내에서는 비현실적인 계율에 필요 이상으로 얽매이지 말고 현실적인 계율을 새로 만드는 게 낫다는 주장이 나오는 중이고, 이건 석가모니 본인부터가 강조하던 부분이다.
(참고 링크: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불교학과 강사 겸 팔리문헌연구소 소장 마성스님 저, <불교는 육식을 금하는 종교인가>, 불교평론 기고.)

6.5. 금기문화가 생긴 원인[편집]

한국 불교에서 고기를 일상적으로 금하는 것은, 중국에 불교가 전해지면서 육식 금지 문화가 생겨나 고정된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중국 양나라 무제 때 승려가 육식을 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고, 이것이 그대로 굳어지면서 승려가 육식을 하지 않게 된 것이다. 한국의 일부 승려들은 이런 걸 아는지 모르는지, 남방불교티베트 불교 승려들 보고 육식을 한다고 비판하는 일이 있다.

근데 실은 안 먹는 동아시아 쪽이 특수한 거다. 인도 본토에서 상좌부 불교와 대승불교가 갈라지고 논쟁이 벌어질 때 대승불교의 경전인 열반경, 능가경, 범망경, 승만경에서 육식을 절대적으로 금하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이는 당시 인도의 일반적인 수행 풍토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무엇보다 양무제의 육식금지령 이전에는 중국 불교에서도 육식을 금하지 않았다. 다시말해 한국 불교가 육식을 하지 않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중국 불교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자료 중에는 "불교도교 수행전통을 일부 받아들이면서 그 영향으로 중국불교에서 육식을 금하게 되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도교에 대한 지식 부족에서 오는 것이다. 원래 도교는 불교만큼 강하게 교리적으로 섭취하는 음식에 제한이 있지 않았다. 오두미교의 경우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무료 숙박시설인 의사(義舍)에서 쌀과 고기를 제공했다. 고기를 금하는 사찰에서 고기를 다루지 않는 것과는 대비된다.

도교의 수행법인 벽곡법은 육류만 먹지 않는게 아니라 이나 보리 등 사람이 주식으로 먹는 곡식 전체와 불로 익힌 음식을 일체 먹지 않는 수행법이다. 이를 흔히 곡기를 끊는다고 한다. 이는 사람 몸 안에 살면서 수명을 줄이는 삼시충이 곡기를 끊으면 굶어죽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불교중국에 들어온 이후 도교가 영향을 받아, 도교 내에서도 불교처럼 술과 고기, 오신채를 금하는 종파가 생겼다. 대표적인 도교 종파가 바로 태일교다. 12세기 화북에서 성립되어 13세기 말에 법계가 끊어져 사라졌다.

불교의 육식과 관련된 현직 승려의 글 링크

6.6. 육식 이외의 금기 음식[편집]

승려들에게는 고기 외에도 오신채가 금지된다. 이는 '5가지의 매운 야채'인 마늘, 부추, , 달래, 흥거를 뜻한다. 다만 한국에서는 흥거가 없으므로 현대 한국에 와서는 흥거 대신 생강이나 양파를 넣기도 하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매우 영양가 있고 항암 작용도 하는 식품들이지만, 수행하는 데 탐욕과 잡념이 생긴다는 이유로 금하고 있다.

오신채가 본격적으로 금지된 건 대승불교 성립 이후이나, 석가모니 당대에도 오신채 금지령이 2차례 내린 적이 있다. 첫 번째 사건은 평소 부처님 가까이 앉아 설법을 듣던 비구가 자신이 마늘을 먹어 몸에서 마늘 냄새가 나서 석가모니 부처님 근처를 피하자 마늘을 금지하셨고, 2번째 사건은 한 거사가 마늘을 공양하기 위해 한 비구마다 5뿌리씩 가져가시라고 비구들을 밭에 들어오게 하자 몰염치한 비구승들이 밭의 마늘을 다 가져가 버리는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다.(...)

현대에 와서는 한국에서 많은 승려들이 더 이상 탁발을 하지 않고[51] 성장기인 동자승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매우 규칙적인 생활과 절제된 식사법의 반복, 다른 식품을 통한 단백질 보충을 하므로,[52] 비록 채식을 하긴 하지만 승려들의 건강상에 큰 문제는 없는 편이다. 다만 일반인들이 따라하기는 좀 무리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기존의 정진요리에서 벗어나, 승려들이 먹을 수 있는 채식라면 등의 존재가 텔레비전에 방영되기도 하였다. 또는 사찰식 피자를 만드는 분도 있는 모양이다. 사실 승려들도 채식 피자는 꽤 많이 먹는다. 특히 음식을 장만할 시간이 나지 않는 김장철에는, 절간에 피자박스가 산더미처럼 배달된다.(...) 승려들이 먹는 식물성 재료로 만든 짜장면도 있다. 그리고 실제로 남원 선원사 주지스님인 운천스님은 짜장스님으로 유명한데[54] 군부대 교도소 학교 등 불러주는곳에 직접만든 특제 짜장면으로 대중들에게 공양한다.

7. 군소종단 문제[편집]

흔히 길거리에서 목탁 두들기거나 가게들을 돌아다니며 시주를 핑계삼은 구걸을 하는 자들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가짜다. 한국 불교총단들은 거리에서 시주를 받는 행위를 절대로 금하고 있으며, 이런 자들은 죄다 가짜임을 밝히고 있다.[55]

문제는 개신교에 군소교단이 있고 속성으로 먹사가 나올 수 있듯이, 불교도 마찬가지로 종단협에 가입되지 않은 소위 군소종단이란 개념이 존재하고 속성 과정으로 저런 가짜 승려가 될 수 있는(...) 과정이 있다는 것. 이러한 듣보잡 군소종단들은 대부분 무당들이 승려를 겸하려고 가입하거나[56] 모 땡추처럼 범죄 이력을 세탁하려고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런 불량(?) 군소 종단들은 규모가 큰 주류 종단에 묻어가기 위해 종단의 이름을 비슷하게 하거나[57] 이름만 불교지 사실은 사이비 종교, 더 나아가선 종교 탈을 쓴 장례업체(...)나 다름없는 경우도 있다.[59]

물론 개신교도 군소교단이 다 비정상이 아닌 것처럼, 불교도 군소교단이라고 다 이상한 건 아니다. 군소 종단이든 대형 종단이든 중요한 것은 그 종교집단이 건전한 곳인지 아닌지의 여부지, 크기가 아니다.

참고로, 승려가 아닌 자가 승려로 가장해 탁발을 가장한 구걸을 하는 것은 불교에서는 매우 큰 계율 위반에 속하며, 정식 승려로 출가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죄목/상황 중 하나다.[60] 만일 승려로 출가한 이후 이러한 행위를 한 사실이 밝혀지면 바로 승려 자격이 박탈된다.[61]

8. 호칭 관련[편집]

기독교 근본주의계에서 유독 자주 이 호칭 문제를 제기한다. 말인즉슨 승(僧)은 스님, 신부는 신부님으로 "~님" 자를 붙여주는 관습이 있는데, 어째서 목사들은 이 관습을 붙여서 먹사님"목사님" 이라고 호칭하지 않느냐는 것. 실제로 여러 언론사들의 문화부, 종교부 기자들이 종종 접하게 되는 질문이라고.

일단 모 신문사의 기자가 해명하기를, 목사의 경우 스승 사(師) 자가 들어가고, 신부의 경우 아비 부(父) 자가 들어가지만, 승려들은 그렇지 못하니 양해를 구한다고 언급하기도. 이 문제를 거꾸로 뒤집어 보자면 그만큼 "스님"이라는 표현은 대중적으로 잘 정착된 표현이며, 그들의 성직자로서의 권위가 오래 전부터 사회적으로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용인받고 있다는 간접적인 의미일 수도 있겠다.

정말 중립적인 호칭이 필요할 땐 승려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으며, 군대에서는 불교 군종장교를 법사라고 한다.

승려의 신분(?)별 호칭은 다음과 같다.

  1. 사미/사미니: 막 출가하여 10계를 받은 사람. 남자는 사미, 여자는 사미니라고 한다. 여기서 10계는 살생 금지, 도둑질 금지, 음란한 행위 금지, 거짓말 금지, 제 때에만 식사할 것, 춤과 노래를 보고 듣는 것, 향수를 바르고 몸을 단장하는 것, 귀금속/보물을 지니지 않는 것이다.

  2. 비구/비구니: 비구는 남자 출가자인 사미가 20세가 넘어 구족계를 받는 것으로, 이때부터 정식 승려가 된다. 비구니는 비구와 달리 사미니 생활 이후 18세가 넘으면 2년간의 식차마나(정학녀) 생활을 하고 비구니가 된다. 역이 이때부터 정식 승려가 된다. 비구가 받는 계의 수는 250계, 비구니는 384계를 받는다.

  3. 이판승/사판승: 조선 시대 이판승은 수행에만 전념하던 승려를, 사판승은 에서 절의 운영과 관리, 행정업을 중심으로 하던 승려를 말한다. '이판사판'이라는 말의 어원이 바로 이 이판승과 사판승의 구분에서 나온 말. 현재는 서류상으로 승려의 직별을 이판/사판으로 구분하지는 않지만 실제로 승려들 사이에서는 그 영향이 남아 있어, 수행처에서 오래 참선을 하거나 기도를 한 승려들은 이판승, (아래에 설명할) 주지스님을 오랫동안 맡거나, 사람들을 만나고 포교를 하는 일을 많이 한 승려들을 사판승이라고 부르는 편이다. 다만, 타인을 '이판승'이라고 하는 것은 광범위하게 용납이 가능하지만, 다른 승려를 '사판승'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굉장한 실례이다. 이는 90년대 초, 불교계의 혼란들이 '사판승'들의 부패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지금도 '사판승'은 좋은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영향으로 대한민국에 있는 대부분의 불교 종단의 대표자는 2명인 이원적 구조다. 한 예로 대한불교 조계종인 경우 종헌상의 종단의 대표자는 이판승의 대표인 종정이지만, 실제 종단 행정을 책임지는 사람은 총무원장이다.

  4. 주지: 사전적 의미로는 절의 관리권을 갖고 절을 총관하는 승려. 그러나 한국 불교에서는 조선시대 이판승/사판승을 두던 영향으로 행정직의 성격이 강하며, 때문에 절에 주지보다 명망 있고 더 높은 대우와 영향력을 갖는 고승은 조실이나 회주, 총림이 설치된 사찰의 경우 방장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며, 주지와 같은 절에 기거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러한 이판승/사판승의 영향으로 율원, 선원, 강원이 모두 설치된 '총림'에서의 승려들의 교육과 수행에 대한 책임은 방장이 맡는다.

  5. 방장: 주지 위에 있는 그 절의 정신적 지주이자 최고 어른이다. 한국에서는 앞서 말한대로 조선시대 이원적 구분의 영향으로 승려들의 교육과 수행 관리 등 승려 본연의 종교적인 업무를 전담한다. 때문에 총림[62]같은 경우 방장이 이를 총괄한다.

  6. 종정/총무원장: 종정과 총무원장은 둘 다 한국 불교 종단에서 지도자라 할 수 있는 승려들이 맡는 직책이다. 대한불교 조계종을 예로 들면, 종헌(종단의 법률)상으로는 종정이 가장 위에 있고 이 아래 원로회의(원로원) 그 아래에 총무원, 교육원, 포교원 그리고 호계원(사법부), 중앙종회(입법부)가 같은 등급으로 배치되어 있다. 대한민국 정부로 예로 들면, 대통령(종정) 아래에 원로회의가 있고, 원로회의 밑에 국무총리(교육원과 포교원의 업무를 제외한 제반업무), 교육총리(교육원), 문화관광총리(포교원), 대법원장(호계원) 국회의장(중앙종회)가 주루룩 있는 독특한 구조이다. 굳이 말하면 이원집정부제에 가까운 구조. 기구표대로 엄밀히 설명하자면 원로회의 의장이 총무원장보다는 의전서열이 더 높다! 하지만, 행정부의 힘이 비대칭적으로 강한 대한민국의 심장 서울에 총본산을 둔 한국의 불교종단답게(...) 행정부 수반인 총무원장이 실질적인 대한불교 조계종의 행정적 지도자이다. 종정은 수행을 오래하고 깨달음을 이루었다고 대체적으로 인정되는 '이판승'이 추대되고, 총무원장은 불교계 행정에서 잔뼈가 굵은 '사판승'이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암묵적으로 종정과 총무원장은 서로의 노선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룰이다. 다만, 이것이 한번 깨진 적이 있었다.

  7. 부전스님: 한국 불교의 독특한 직책/호칭으로, 평소에는 절에서 기도/염불을 하고 불전을 관리하다 불사[63] 시 불공, 염불, 범패, 시다림[64] 등을 하면서 행사를 진행하는 승려. 대부분은 한 사찰에 한 분씩 존재하는데, 여러 부전스님들이 있는 경우 그 중, 가장 중심되는 법당의 기도를 담당하는 승려를 '노전스님' 이라고 따로 구분하기도 하나 보통 하는 일은 비슷하다. 하는 일이 일이다보니 무당 취급하며 대우가 좋지 않은 곳도 있다. 그러나 실제 사찰의 운영은 불공을 통해 유지되기에 부전으로서의 소임은 승려로서의 기본이자 끝이기도 하다, 실제 승가교육에서 가장 먼저 시작해서 오랫동안 가르치는 것이 염불을 어떻게 집전하는지를 배우고 경험을 쌓는 것이다. 불공의 기준이 되는 사시불공[65]은 반복되는 부분과 축원[66]을 제외한 40여 분에 해당하는 의식을 '하나도 틀림없이' 외워야 한다. 만약 못 외우면? 신도들이 무시한다. 승려로서 살기가 정말 고달파진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예불을 집전할 수 없을 경우 다른 후배 승려에게 '대타'를 부탁하고, 이것이 불가능할 경우 다른 선배 승려에게 부탁하고, 이 마저도 안 될 경우? 차라리 그날의 예불을 폐할지언정 일반인에게 예불의 집전을 맡기지는 않는다. 최근에는 대한불교 조계종이 인정한 시험을 통과해 법사자격을 가진 일반인이 예불을 집전하는 경우가 있지만 정말 극소수다.
    단, 그대로의 화려한 재법을 유지하며 이러한 전통 재법을 유지 발전시키는 것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는 한국불교태고종 승려들의 염불은, 대처승이라고 가끔 디스하는 대한불교 조계종 승려들도 몇 수는 접어준다고 한다. 반대로 밀교 성격이 강한 편인 대한불교천태종의 경우 부전스님들은 전부 천태종 총무원 교무부 휘하 의전국에 정식으로 소속되어 있으며 파견의 형식으로 소임을 보고 있다.[67]

  8. 매골승: 한자로는 埋骨僧. 전근대시기인 고려, 조선시대 기근이나 역병 등으로 죽어간 가엾은 사람들의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뤄주고 극락왕생을 빌어주던 승려. 지방에선 환자의 치료를 맡기도 했다. 불교에 비우호적인 경향이 강하던 조선시대에도 이들에 대해서는 유직승[68]으로 분류하여 나라에서 각종 혜택과 생계수단을 지급하는 등 대우가 남달랐다. 타국의 경우 일본에는 삼매히지리(三味聖)나 시종(時宗)[69]의 승려들이 같은 역할을 했다.

  9. 간사승: 幹事僧. 여러 사람이 동원되는 대규모 행사 때 진행 소임을 맡아 일을 진행하는 실무를 맏은 승려. 조선조에는 활인원 소속으로 구휼자의 환난 극복을 비는 일을 하기도 했다.

  10. 한증승: 汗蒸僧. 조선시대 활인원에는 병자 치료를 위한 한증소[70]에서 환자들을 돌보던 승려. 다만 대우가 좋은 편이었던 매골승이나 간사승과 달리, 한증승들은 환자들이 생기면 대놓고 일단 한증부터 시켜서 종종 죽는 사람이 나와 조선 정부에서 제제를 좀 가했다고(...)

  11. 대신승: 代身僧. 조선시대에 공납을 대신 납부하고 그 대가를 받는 승려.

9. 유명한 승려[편집]

범례

땡추파계승의 범주에 포함되는 인물(★)

아예 종단 소속도 아니고, 승려를 사칭한 사기꾼인 경우(취소선)

10. 가공의 승려[편집]

11. 사찰[편집]

11.1. 가공의 사찰[편집]

12. 관련 문서[편집]

[1] 산스크리트어를 한자로 음역한 단어, 한글로 음역하면 '상가'이다.[2] 이전 항목에는 한국에 크리스트교가 들어오는 과정이라고만 했는데, 동아시아에서 크리스트교를 한국보다 먼저 접한 곳은 중국으로 본국에서는 '이단'으로 단죄된 네스토리우스의 예수의 신성과 인성의 관계를 설명하는 크리스트교 이론이 사산 조 페르시아를 거쳐서 당대에 처음으로 중국에 알려져 경교라는 이름으로 전해졌는데, 경교의 경전들을 한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불교의 용어를 정말 많이 차용해 왔다. 예를 들어 크리스트교의 여호와가 불교의 천존(天尊)이라는 용어로 지칭되거나 음차표기로 야화화(耶和華)로 표현되기도 했으며, 불교의 인과응보설을 가지고 크리스트교의 원죄설을 설명하기도 했다.(출처: 이경규 <경교의 토착화에 대한 일고> 대구사학 제70집, 2003년)[3] 단, 도메키 본인은 승려가 아닌 듯 하다.[4] 그러나 한국에서는 불교 승려는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강해, 태고종의 경우에도 실제 대처승은 많이 줄었다고.[5] 물론 대를 이어 승려가 되는 경우도 드물지는 않다.[6] 반면에 일반적으로 결혼이 안된다고 하는 종파인 조계종에서도 일부 개인 사찰을 인수하면서 결혼한 승려도 간혹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 가끔 부부 간에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고.[7] 스승님이란 말에서 발음이 탈락하여 스님이 됐다고 주장하는 설, 사(師)의 중국식 발음에 님이 붙었다는 설도 있다. 한편 사승(師僧)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으나, 충북대 국문과 조항범 교수는 이 설을 믿을 수 없다고 단정하였다. 조 교수의 글[8] 영어의 Monk에 대응.[9] 일본에서 비가 오지 않을 것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사용하는 주술 인형인 테루테루보우즈(照る照る坊主)의 보우즈가 이런 의미로 쓰인다.[10] 석가모니는 왕자 출신이므로 올린 머리[11] 실제로도 힌두교의 브라만이나 자이나교 승려도 머리털을 제거하거나 변발 비스무리한 스타일을 한다. 불교가 퍼진 다른 나라들도 티베트 등 일부를 제외하면 모두 여름이 길고 고온다습하다.[12] 절에 따라 두부를 갈비처럼 양념에 재운 특식이 나오기도 하며, 이 때문에 은근히 머리 깎는 날을 좋아하는 승려들도 많다.[13] 헌데 명복이란 말이 불교 용어라고 주장하던 서재생이라는 이가 쓴 책이 있는데, 이 작자는 자신이 승려였다가 죄악함을 떨치고 목사가 되었다고 홀로 주장하는 인물이다. 문제는 이 인간의 승려 인증은 어느 불교 종파에서도 찾아볼 수 없어 사기라고 비난당하고 있다.[14] 출가할 거라면 이 등록마감일을 잘 알아보고 가자. 이 등록기간이 마감되고 며칠 뒤에 가면 행자생활을 1년 해야 된다.[15] 당연하지만 아무나 승려가 될 수 있던 시절에는 현대 기준으로 별의별 부적격자들이 다 들어와서 문제가 심각했다.[16] 영화 달마야 놀자에서 청명으로 분한 정진영이 재규(박신양)의 부하 불곰(박상면)에게 밉보여 린치를 당해 부상을 입는다. 어찌된 일이냐고 묻는 박신양의 질문에 정진영은 난폭한 곰이 덮쳤다고 대답한다. 나중에 진상을 알아챈 박신양이 부하들을 손수 손봐주고, 승려가 거짓말해서 계율 어긴 것 아니냐고 따진다. 그러자 청명의 대답이 일품이다. "거짓말 아니다. 니 부하 별명 불곰이라며?"[17] 대승불교쪽에선 묵인수준에 그치지만, 상좌부불교 계통에선 역사적으로 동자승이 많았단 이유때문인지 동자승의 육식이 흔하다.[18] 다만 이에 대해서는 한국 불교 내의 교권 쟁탈이 더 큰 요인이기도 했다. 모든 대처승이 일본식의 영향을 받은 것도 아니고, 이후 이러한 정화운동을 주도한 조계종은 더 나아가 불교 내 민간신앙에까지 손을 대다 대중의 반발을 산 적도 있다. 불교근본주의 항목으로.[19] 만해선사 본인도 생애 후반부에는 대처승이 되어서, 외동딸 하나를 두었다.[20] 쉽게 말해, 법사가 되기 위해 출가한 게 아니라, 승려생활 중 군종사관 생활을 하고 복무를 마친 후 다시 승려생활로 돌아온 승려들.[21] 조계종과는 달리 승려의 혼인을 허용하고 있다.[22] 이 경우에는 또 조계종이 2009년 종헌(宗憲) 개정 전까지 군종장교로 복무하는 승려에 한해서만 예외적으로 혼인(재판부는 “혼인에는 법률혼뿐만 아니라 사실혼도 포함된다"고 판단했다)을 허용했고 원고 김씨는 종헌 개정 전인 2008년에 이미 현재의 배우자와 사실혼관계를 형성했다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했다.[23] 배우자 이외의 남/여와 간통을 저질렀을 경우 당연히 파계당한다.[24] 테니스의 왕자의 주인공 에치젠 료마는 승려의 친아들로, 아버지 난지로는 부인까지 둔 절의 주지이다. 맛의 달인에도 관련 에피소드가 있고,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류도 잇세이도 절의 후계자라서 자라면 절을 물려받는다. 아이실드 21쿠리타 료칸도 승려의 아들로 자택인 절의 모습이 작중에 몇 번 나온다. 이니셜 D 에피소드 중 최강 지역 카나가와의 3라인 드라이버 중 한 명도 승려의 자식이다. 절 집 아들이라 돈이 많아서 튜닝 자금이 넉넉하다고...[25] 드물게 아내쪽이 비구니이거나 부부가 모두 승려인 사례도 있다.[26] 그래서 처가에서 알면 장인이 화낼 거라고 걱정했다. 그런데 사토 지로는 2기 찍었을 즈음 이혼했다.(...)[27] 대형사찰 등에서 수행하는 동안에는 "쇼진료리"(정진요리)라는 일본식 사찰음식만을 먹게 된다.[28] 자기 절에 있을 때는 본인 마음대로다. 일본 승려생활에 대해 다룬 '坊主DAYS'라는 만화를 보면, 주지승이 치맥을 하는 장면이 대놓고 나온다.[29] 한국불교와 달리 숫자가 4와 9로 끝나는 날에 깎는다.[30] 정토종과 정토종은 좀 다르다. 일본에서도 일반적인 정토종은 다른 종파처럼 삭발을 하며 집단으로 수행하는 기간이 존재한다.[31] 귀족 중심이 아닌 평민/하층민 중심의 진언불교를 널리 포교했고, 파계까지 했다는 점에서 먼저 태어난 우리나라의 원효대사와 행적이 비슷하다. 그러나 원효와는 달리 국가의 탄압에 시달렸고, 말년에 큰아들이 이단적인 가르침[32]을 펴면서 교권장악을 시도해 의절하는 등 불우한 말년을 보냈다.[32] 신란 본인은 기존에 일본 불교계의 주류를 차지하던 밀교를 배격하였으나, 아들은 그 반대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합리화를 위해 신란이 떨어져 있던 걸 악용해 "아버지가 이렇게 하라고 하셨다!!"라고 주장했다.[33] 도겐, 게이잔, 구카이 등.[34] 일본에서 승려는 현실적으로 장례식 도와주러 오시는 분정도의 이미지가 강하다. 덕분에 '장례식 불교(葬式仏教)'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이는 에도 시대의 키리시탄(크리스천) 탄압과도 관련이 있는데, 키리시탄들을 색출해내기 위한 방법으로 모든 마을의 주민들은 인근의 사찰에 자신이 그 절의 신도임을 증명하는 증명서를 발급하고, 그 절의 승려들은 해당 신도들의 장례식을 불교식으로 집전하고 묘지를 관리해주는 식이었다. 사찰에서 발급한 이 신도 증명서는 다른 마을에 이주할 때에도 꼭 챙겨가서 그 절에 다시 신도로써 신고하는 절차를 거쳤다.[35] 물론 과거에는 서로 충돌한 경력이 있다.[36] 심지어는 승려를 조롱하기 위해 발우(승려의 식기)안에 뱉은 가래침이나, 정말 가난해서 부자집 하수도에서 흘러나오는 쌀뜨물로 연명하는 거지가 나눠준 쌀뜨물까지 시주받은 음식으로 생각하고 먹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석가모니는 진흙장난을 하던 어린아이들이 발우에 진흙경단을 시주하자 먹었던(!) 실제 역사도 있다.[37] 본문 작성 시 참고 서적: <불자로 산다는 것>, 도일 스님 저, 불광출판사[38]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사실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 공화국에도 하이에나가 서식한다. 다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종과는 다른 줄무늬하이에나. 고대 이집트에서 줄무늬하이에나를 잡아먹었다는 기록이 있고, 아랍어로 구글링을 한 결과 현지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줄무늬하이에나를 잡아먹는 스샷이 심심찮게 뜨는 걸 생각하면 의미심장하다(...).[39] 어린 승려들은 고기를 먹는다. 2003년경 인간극장 <꾸러기 동자승>에서도 어른 승려가 어린 승려들에게 식사 시간에 쇠고기(간장불고기)를 나눠주어 먹게 하는 장면이 나왔다.[40] 애초에 사람고기는 식인종 사회를 제외하면 어느 곳에서나 먹어서는 안되는 음식으로 취급한다.[41] 인도에서 말을 제물로 바치는 것은 인도에서 최고의 주권을 선포하는 왕들의 제사였다. 굽타 왕조 때 이 마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42] 다냐타 아나마아나마 아시다바아시다바 나사나사 타아타아 바불바불 싱가율다미 사바하[43] 당시 수행자들의 고행 중에서 특히 금식을 통한 고행이 많이 유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44] 자이나교에서는 업을 따질 때 불교와 달리 철저하게 결과론적으로 본다. 과정과 이유가 어찌되었든 간에 결과만 따져서 악업을 짓는 일이면 악업을 받는 것이라고 보기에 자이나교의 수도승들이 극단적일 정도로 불살생에 철저한 것이다.[45] 맛있고 영양가 높은 음식[46] 얼마나 최초 단계인고 하면 이때는 비구와 재가의 구분도 없었다.[47] 빨리 율장/波逸提法, 위나야삐따까(Vinayapiṭaka)[48] 한자로 淨人. 절에서 승려들의 시중을 드는 사람을 말한다. 남방불교계에서는 지금도 흔하게 볼 수 있다.[49] 지나치게 복잡한 거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석가모니 부처님 당대에는 이렇게 먹었다. 왜냐고? 외도들이 불교는 생명이 있는 식물을 그냥 막 먹는다고 꼬투리잡아 비난하자 그 비난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석가모니께서 정하셨다. 그런 걸로 계율을 정하냐 할지 모르지만, 당시 불교는 그랬다.[50] 참고로 목발우 사용은 엄연한 계율 위반이다! 과거 인도 비사리에 살던 귀족들이 귀한 전단향나무로 발우를 만들어 장대 위에 걸어놓고 '신통력이 있는 자는 신통력으로 가져가라'고 했는데, 이를 빈두로존자가 신통력을 발휘해 하늘을 날아서 가져와 이 발우를 어떻게 할지 다른 승려들과 논의하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그걸 보시고는 "쪼개서 으로나 써라"고 하시면서 그 자리에서 나무발우를 금지하셨다.[51] 엄밀히 말해 불교가 중국으로 전래될 때부터 탁발문화는 변하기 시작했다. 인도에서는 불교 탄생 이전부터 "걸식하는 수행자들에게 공양하면 복을 짓는다"는 문화가 있어 탁발로 생계를 유지하는 게 가능했지만, 중국에는 이런 문화가 없어 탁발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 이런 이유로 중국 불교는 생계를 위해 지배층과 결합하는 경향이 두드러졌고, 이는 필연적으로 부의 쏠림으로 인한 불교의 부패를 가져와 도교/유교의 불교에 대한 비판과 아울러 백장청규를 비롯한 불교의 자정운동이 나타나는 원인이 되었다.[52] 전통적인 사찰 요리를 살펴보면 김치에 젓갈을 안 넣는 대신 간장이나 된장을 넣고, 장떡[53]과 부각(튀김), 버섯요리 등 단백질을 보충해주는 식품들이 존재한다.[53] 쌀가루나 밀가루에 된장, 혹은 된장과 고추장을 섞어 부친 것.[54] 짜장스님이라는 이름으로 홍보를 하신다. 최근 조계종에서 나오셨다.[55] 예전에 팔공산 갓바위 올라가는 길 중턱에 시주함 놓고 탁발하는 승려가 있었는데 가짜 승려였다. 이 승려는 새벽에 벤츠 타고 출근하셨다.(...)[56] 대체로 슬럼가 무당촌같은 데에서 불교의 상징 '卍'자 마크를 부착하거나 깃발을 꽂는 등 흔히 볼 수 있다.[57] 한 예로는 대한불교 조계종[58]에 묻어가기 위해 한국불교조계종이나 선불교조계종, 심지어 대한불교선조계종(....) 식으로 종단 이름을 정하는 것. 전자의 경우 대한불교 조계종과 한국불교조계종 간에 마찰도 있었다.[58] 일반적으로 조계종 하면 여기를 말한다[59] 가령 절인데 절의 반 가량이 납골당+장례시설이라든지...[60] 다른 것으로는 생활에 보조가 필요하거나 전염이 가능한 질병 등의 중병에 걸린 자, 채무자, 불교를 파괴하려는 목적으로 출가하려는 자, 동성애자와 양성인, 공직자(공무원), 주인에게 출가 허락을 받지 못한 노예, 비인(非人, 인간의 외모를 한 초자연적 존재)과 축생이다. 마지막이 좀 아리까리한데, 전승에 따르면 나가(인도 신화)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출가했다가 잠자던 중 용의 본성이 드러나 피해를 줘서 금지되었다고 전한다. 또한 동성애자와 양성인의 경우에도 초기율장에는 출가자 중 성소수자를 암시하는 ‘빤다까’가 다양한 유형으로 등장해 초기 승단이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차별 없이 출가자를 받아들였음을 의미하고, 어떤 사람의 성(性)은 생(生) 사이에서뿐 아니라 한 생 안에서도 변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비구에게 여성성징이 나타나고 비구니에게 남성성징이 나타난 경우도 언급돼 있는데, 이 때 부처님은 여성성징이 나타난 비구에게는 비구니의 계를 따르도록 조치하고, 남성성징이 나타난 비구니에게는 비구의 계를 따르도록 하여 유연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성소수자가 때때로 파계된 것은 출가 이후에도 성교를 끊지 못하고 다른 이들을 유혹해서지, 출가 전의 성적 지향 때문이 아니었다.[61] 참고 자료: 계율과 불교윤리,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62] 승려들의 참선수행 전문도량인 선원(禪院)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 계율 전문교육기관인 율원(律院) 등을 모두 갖춘 사찰,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가 대표적인 총림이다, 이런 절들은 승려들의 교육과 수행을 담당하기에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 다른 사찰보다 많다. 제발 들어가지 말라면 들어가지 말자.[63] 절에서 하는 행사[64] 절에서 망자를 위해 설법하는 것. 시다림법문이라고도 한다.[65] 10시 쯤에 드리는 불공[66] 사찰에 공양을 올리고 기부한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며 이들이 복을 받기를 기도해 주는 일[67] 링크에 보면 '교무부 의전국 부전'으로 되어 있다.[68] 특정한 소임이 있는 승려. 한자로는 有職僧. 매골승이나 주자소에서 활자 제작에 참여하는 승려 등을 말한다. 이들은 공무원으로 분류되어 군역과 부역이 면제되고 나라에서 재산과 식량, 땅을 주었다.[69] 일본 발음으로는 지슈. 정토종의 일파다.[70] 쉽게 말해 의료용 찜질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