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

최근 수정 시각:

스티븐 스필버그의 주요 수훈 및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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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ennedy Center honors.jpg 케네디 센터 공로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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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매리언 앤더슨, 프레드 아스테어, 조지 발란신,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리처드 로저스

1979년

에런 코플런드, 엘라 피츠제럴드, 헨리 폰다, 마사 그레이엄, 테네시 윌리엄스

1980년

레너드 번스타인, 제임스 캐그니, 애그니스 데밀, 린 폰탠, 리언타인 프라이스

1981년

카운트 베이시, 케리 그랜트, 제롬 로빈스, 헬렌 헤이스, 루돌프 세르킨

1982년

조지 애벗, 릴리안 기쉬, 베니 굿맨, 진 켈리, 유진 오르만디

1983년

캐서린 던햄, 엘리아 카잔, 프랭크 시나트라, 제임스 스튜어트, 버질 톰슨

1984년

레나 혼, 대니 케이, 잔카를로 메노티, 아서 밀러, 아이작 스턴

1985년

머스 커닝햄, 밥 호프, 아이린 던, 앨런 제이 러너, 프레더릭 로, 베벌리 실즈

1986년

루실 볼, 레이 찰스, 제시카 텐디, 흄 크로닌, 예후디 메뉴힌, 앤서니 튜더

1987년

페리 코모,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베티 데이비스, 네이선 밀스타인, 알윈 니콜라이

1988년

앨빈 에일리, 조지 번스, 마이어나 로이, 알렉산더 슈나이더, 로저 L. 스티븐스

1989년

해리 벨라폰테, 클로데트 콜베르, 알렉산드라 다닐로바, 메리 마틴, 윌리엄 슈만

1990년

디지 길레스피, 캐서린 헵번, 라이즈 스티븐스, 줄리 스턴, 빌리 와일더

1991년

베티 콤덴, 로이 아커프, 아돌프 그린, 헤럴드 니콜라스, 로버트 쇼, 그레고리 펙

1992년

라이어널 햄프턴, 폴 뉴먼, 조앤 우드워드, 진저 로저스,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폴 타일러

1993년

조니 카슨, 아서 미첼, 조지 숄티, 스티븐 손드하임, 매리언 윌리엄스

1994년

커크 더글러스, 아레사 프랭클린, 모튼 굴드, 해럴드 프린스, 피트 시거

1995년

자크 당부아즈, 메릴린 혼, 비비 킹, 시드니 포이티어, 닐 사이먼

1996년

에드워드 올비, 베니 카터, 조니 캐쉬, 잭 레먼, 마리아 톨치프

1997년

로런 버콜, 밥 딜런, 찰턴 헤스턴, 제시 노먼, 에드워드 빌렐라

1998년

빌 코스비, 프레드 엡, 존 칸더, 윌리 닐슨, 앙드레 프레빈, 셜리 템플

1999년

빅터 보르게, 숀 코너리, 주디스 재스민, 제이슨 로바즈, 스티비 원더

2000년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척 베리, 플라시도 도밍고, 클린트 이스트우드, 앤절라 랜즈베리

2001년

줄리 앤드루스, 밴 클라이번, 퀸시 존스, 잭 니콜슨, 루치아노 파바로티

2002년

제임스 얼 존스, 제임스 리바인, 치타 리베라, 폴 사이먼, 엘리자베스 테일러

2003년

제임스 브라운, 캐럴 버넷, 마이크 니콜스, 로레타 린, 이작 펄만

2004년

워렌 비티, 오시 데이비스 & 루비 리, 엘튼 존, 조앤 서덜랜드, 존 윌리엄스

2005년

토니 베넷, 수잔 파렐, 줄리 해리스, 로버트 레드포드, 티나 터너

2006년

주빈 메타, 돌리 파튼, 스모키 로빈슨, 스티븐 스필버그, 앤드루 로이드 웨버

2007년

레온 플라이셔, 스티브 마틴, 다이애나 로스, 마틴 스콜세지, 브라이언 윌슨

2008년

모건 프리먼, 조지 존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트와일라 사프, 더 후

2009년

멜 브룩스, 데이브 브루벡, 그레이스 범브리, 로버트 드 니로, 브루스 스프링스틴

2010년

멀 해거드, 제리 허먼, 빌 존스, 폴 매카트니, 오프라 윈프리

2011년

바바라 쿡, 닐 다이아몬드, 요요마, 소니 롤린스, 메릴 스트립

2012년

버디 가이, 더스틴 호프먼, 레드 제플린, 나탈리아 마라코바

2013년

마티나 아로요, 허비 핸콕, 빌리 조엘, 셜리 매클레인, 카를로스 산타나

2014년

앨 그린, 톰 행크스, 퍼트리샤 맥브라이드, 스팅, 릴리 톰린

2015년

캐럴 킹, 조지 루카스, 리타 모레노, 오자와 세이지, 시실리 타이슨

2016년

마르타 아르헤리치, 이글스, 알 파치노, 마비스 스태플스, 제임스 테일러

2017년

카르멘 드 라발라데, 노만 레어, 글로리아 에스테판, LL 쿨 J, 라이오넬 리치

2018년

셰어, 필립 글래스, 리바 매킨타이어, 웨인 쇼터, 해밀턴 팀 (린 마누엘 미란다, 토마스 카일, 알렉스 라카뫄르, 앤디 블렝큰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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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1977년

1978년

잉그리드 버그만

다이애나 로스

앙리 랑글루아

자크 타티

로버트 도프만

1978년

1979년

1980년

르네 고시니

마르셀 카르네

샤를 바넬

월트 디즈니

피에르 브롱베르제

1980년

1981년

1982년

루이 드 퓌네스

커크 더글러스

마르셀 파뇰

알랭 레네

조르주 댄시거즈

1982년

1983년

1984년

알렉산드르 노우츠킨

Jean Nény

안제이 바이다

Raimu

르네 클레망

1984년

1985년

조르쥬 드 보르가르

에드위지 푸이에르

크리스티앙 자크

다니엘 다리외

Christine Gouze-Rénal

1985년

1986년

알렝 프와레

모리스 자르

베티 데이비스

장 들라누와

René Ferracci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클로드 란츠만

장 뤽 고다르

세르지 실버만

베르나르 블리에

폴 그리모

1990년

1991년

1992년

제라르 필리프

장 피에르 오몽

소피아 로렌

미셸 모르강

실베스터 스탤론

1993년

1994년

1995년

장 마레

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

제라드 우리

장 카르메

잔 모로

1995년

1997년

1997년

그레고리 펙

스티븐 스필버그

로렌 바콜

앙리 베르누이

샤를 아즈나부르

1997년

1998년

1999년

앤디 맥다월

마이클 더글라스

클린트 이스트우드

장 뤽 고다르

페드로 알모도바르

1999년

2000년

조니 뎁

장 로슈포르

조지안 발라스코

조르쥬 크라벤느

장피에르 레오

2000년

2001년

2002년

마틴 스콜세지

데리 코울

샬럿 램플링

아녜스 바르다

아누크 에메

2002년

2003년

제러미 아이언스

찰리 리치

베르나데트 라퐁

스파이크 리

메릴 스트립

2004년

2005년

2006년

미셸린 프레슬

자끄 뒤트롱

윌 스미스

휴 그랜트

피에르 리차드

2007년

2008년

진 해크먼

마이클 더글러스

잔 모로

로베르토 베니니

로미 슈나이더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더스틴 호프만

해리슨 포드

쿠엔틴 타란티노

케이트 윈슬렛

케빈 코스트너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스칼렛 요한슨

숀 펜

마이클 더글러스

조지 클루니

페넬로페 크루즈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파일:external/blogs-images.forbes.com/Oscar_icon.png

감독상

제65회
(1993년)

제66회
(1994년)

제67회
(1995년)

클린트 이스트우드
(용서받지 못한 자)

스티븐 스필버그
(쉰들러 리스트)

로버트 저메키스
(포레스트 검프)

제70회
(1998년)

제71회
(1999년)

제72회
(2000년)

제임스 카메론
(타이타닉)

스티븐 스필버그
(라이언 일병 구하기)

샘 멘데스
(아메리칸 뷰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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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1953년

1954년

1955년

1956년

세실 B. 드밀

월트 디즈니

대릴 F. 재넉

진 허숄트

잭 L. 워너

1957년

1958년

1959년

1960년

1961년

머빈 르로이

버디 아들러

모리스 슈발리에

빙 크로스비

프레드 아스테어

1962년

1963년

1964년

1965년

1966년

주디 갈란드

밥 호프

조셉 E. 레빈

제임스 스튜어트

존 웨인

1967년

1968년

1969년

1970년

1971년

찰턴 헤스턴

커크 더글러스

그레고리 펙

조앤 크로퍼드

프랭크 시나트라

1972년

1973년

1974년

1975년

1977년

앨프리드 히치콕

새뮤얼 골드윈

베티 데이비스

핼 B. 월리스

월터 미리쉬

1978년

1979년

1980년

1981년

1982년

레드 스켈톤

루실 볼

헨리 폰다

진 켈리

시드니 포이티어

1983년

1984년

1985년

1986년

1987년

로런스 올리비에

폴 뉴먼

엘리자베스 테일러

바버라 스탠윅

앤서니 퀸

1988년

1989년

1990년

1991년

1992년

클린트 이스트우드

도리스 데이

오드리 헵번

잭 레먼

로버트 미첨

1993년

1994년

1995년

1996년

1997년

로렌 바콜

로버트 레드포드

소피아 로렌

숀 코너리

더스틴 호프먼

1998년

1999년

2000년

2001년

2002년

셜리 맥클레인

잭 니콜슨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알 파치노

해리슨 포드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진 해크먼

마이클 더글러스

로빈 윌리엄스

안소니 홉킨스

워렌 비티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스티븐 스필버그

마틴 스콜세지

로버트 드 니로

모건 프리먼

조디 포스터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우디 앨런

조지 클루니

덴젤 워싱턴

메릴 스트립

오프라 윈프리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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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png

이름

스티븐 스필버그
STEVEN SPIELBERG

분야

영화

입성날짜

2002년 2월 10일

위치

6845 Hollywood Blvd.


Steven Spielberg
KBE, OMRI

파일:스티븐 스필버그02.jpg

본명

스티븐 앨런 스필버그 (Steven Allan Spielberg)

국적

미국 파일:미국 국기.png

출생

1946년 12월 18일 /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

거주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학력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롱비치캠퍼스 영화학, 전자예술학 학사

직업

영화 감독

활동

1959년 – 현재

신체

170cm, A형

종교

유대교

부모님

父 아놀드 스필버그 (1917년 2월 6일생)
母 레아 프란시스 스필버그 (1920년 1월 12일-2017년 2월 21일)

배우자

에미이 어빙 (1985년-1989년)
케이트 캡쇼 (1991년-)

자녀

아들: 맥스 스필버그(1985년)
아들: 테오 스필버그(1988년)
: 사샤 스필버그(1990년)
아들: 소여 에이버리 스필버그 (1992년)
: 미카엘라 조지 스필버그 (1996년 2월 28일생)
: 데스트리 스필버그(1996년 12월 1일생)


1. 소개2.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명감독
2.1. 왕성한 제작자2.2. 평가
3. 시오니즘?4. 연출 스타일5. 여담6. 필모그래피7. 바깥 고리

1. 소개[편집]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를 대표하는 거장

할리우드의 다른 명감독, 거장들인 제임스 캐머런 감독보다 작품 수가 많으며[1], 리들리 스콧, 토니 스콧 형제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나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보다 흥행면에서 우위에 있고, 조지 루카스 감독보다 작품 수, 흥행 성적 및 작품성이 뛰어난 편이다. 흥행만이 아니라, 문화적 충격과 센세이션을 일으킨 걸작이 한 두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할리우드 하면 스필버그를 떠올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쉰들러 리스트》와 《쥬라기 공원》 등의 작품으로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고 있다.

2018년, 레디 플레이어 원의 흥행으로 지금껏 감독한 영화들의 박스오피스 총수익이 100억 달러(한화로 약 11조원)를 넘긴 최초의 영화감독이 되었다. 이건 본인이 직접 감독한 영화만 집계한 것이므로 감독이 아닌 프로듀서로 참여한 영화들까지 합친다면 케빈 파이기와 더불어 수익면에선 사실상 넘사벽의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2.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명감독[편집]

어릴 적부터 영화를 너무나도 좋아하여 영화를 만들었고 13살 나이에 영화를 감독하여 식구들이 배우로 나온 적도 있다. 16살 때는 500달러를 들여 만든 영화 《불꽃》을 감독, 각본, 촬영까지 하면서 만들어 동네 극장에 개봉한 적도 있는데, 극장주는 이 아이는 커서 영화계를 놀라게 할 것이라고 감탄했다.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딱 1개 동네 극장에서 별다른 홍보도 없이 사흘 동안 상영했던 이 영화는 600달러의 수익을 거두었다고 한다.

첫 영화 연출작은 1971년작 TV 영화 《듀얼(The Duel)》. 도로상에서 아무 이유도 없이 정체불명의 트럭에 쫓기는 운전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무서운 점은 '정체불명의 트럭에 쫓긴다'라는 한 줄로 설명이 가능한 스토리로 74분짜리 스릴러를 만들어냈다는 것으로, 저예산 TV 영화라 지극히 단순한 소재와 배경만 가지고 요즘 봐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긴장감을 이끌어내는 것을 보면 스필버그의 연출력에 정말 감탄하게 된다. 제작자들은 듀얼을 보고 이거라면 극장 영화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고 놀라워하며 추가적으로 장면들을 촬영해 넣어 90분으로 늘린 뒤 해외 극장에서 개봉하였다![2] 참고로 촬영에는 13일, 편집에 10일 걸렸다고 한다. 역시 천재는 뭔가 달라도 다르다.

듀얼의 성공으로 스필버그는 극장판 영화를 만들 기회를 얻게 되고 그렇게 만든 골디 혼 주연의 <슈가랜드 특급>이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아 각본상을 수상하면서 본격적으로 커리어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그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린 영화는 모두가 알다시피 죠스이다. 1975년 당시 불가능하다고 여기던 북미 흥행 1억 달러를 넘어서는 엄청난 흥행을 거두어 본격적인 블록버스터 영화 시장을 개척하였고, 그 이후로도 여러 흥행작을 줄줄이 뽑아내면서 스필버그는 베이비붐 세대의 이상과 현실을 영상으로 옮긴 대표 주자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1993년에는 《쥬라기 공원》으로 본인의 영화였던 《E.T.》의 세계 흥행기록을 경신한데 이어, 그 해 겨울에는 《쉰들러 리스트》로 인생의 숙원이었던 오스카상 트로피까지 거머쥐며 흥행, 작품성 두 가지 토끼를 모두 잡아 최고의 영화감독이라는 이미지를 확고히 다졌다. 어쨌든 《E.T.》,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쥬라기 공원》, 《라이언 일병 구하기》,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 다른 감독 같으면 평생 한번 만들어 보기도 힘든 작품들을 장르와 내용을 넘나들면서 만들어내고 있다.

물론 그에게도 실패작은 있다. 엄청난 제작비에 견주면 기대 이하 흥행을 거둔 첫 흥행 참패작인 《1941》이라든지, 흑인 영화인들의 반발로 말이 많았던 《아미스타드》 같은 영화들은 지독하게 망한 바 있다. 하지만 흥행작을 알아보는 능력이 뛰어난데, 트랜스포머에 제작 및 기획으로 참여하거나 그러나 그의 장점보다 이분의 단점이 더 컸던 탓인지 평가까지 구해내진 못했다파라노말 액티비티》 시리즈를 보고 흥행 대박을 짐작하고 판권을 샀던 경우를 봐도 알 수 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완전판 복원에 결정적인 기여[3]를 한 바도 있다.

스타워즈도 첫 시사회에서 다른 감독들은 모두 망했다고했는데 스티븐 스필버그는 그 가치를 미리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추천해준 사람이 영화 음악의 거장 존 윌리엄스다.

상업적 영화로 많이 찍어서 잘 알려지지 않지만 뉴 할리우드 끝자락에 등장한 감독이다. 뉴 할리우드 활동했던 감독들이 80년대 들어서 쇠락의 길을 걸었지만[4] 꾸준한 흥행과 평으로 영화의 역사를 쓰는 업적을 만들었다. 또, 배우들과 후배 감독들을 발굴도 힘쓴 점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고 안목도 좋은 편이다.

2.1. 왕성한 제작자[편집]

스필버그는 뛰어난 감독일 뿐만 아니라 영화 제작자로서도 대단히 성공적이다. 이미 20대 초반부터 TV 시리즈 제작에 손을 대기 시작하여 《형사 콜롬보》 같은 드라마 제작에도 참여한 바 있으며, 《구니스》나 《그렘린》 같은 영화들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80년대에 스필버그가 제작에 참여하여 가장 좋은 결과를 거둔 영화는 누가 뭐래도 《백 투 더 퓨처》. 로버트 저메키스를 발굴한 게 젊은 시절의 스필버그다.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도 스필버그 제작. 이런 안목 때문인지 90년대 초반 미국 버라이어티 지가 선정한 각 분야 최고 부자에서 영화감독 및 제작자로 1위가 스필버그였다.[5]

90년대에는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에도 본격적으로 손을 대기 시작했다. 타이니 툰[6]이나 애니매니악스 등의 굵직굵직한 워너브라더스 애니메이션이 전부 스필버그의 투자와 지도로 만들어진 시리즈들이다. 조지 루카스 휘하 루카스 아츠에서 만든 1996년 어드벤처 게임 『디그』도 스필버그가 제작한 게임이었다. 이후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를 이어받은 EA LA 스튜디오가 원래 드림웍스 인터렉티브 스튜디오였다. 이 회사에서 스필버그의 감독 하에 만들어진 대형 프랜차이즈가 다름아닌 『메달 오브 아너』. '얼라이드 어설트'부터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과는 다르게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처음 두 작품이 나왔다. 이후에도 2000년대 후반 들어서 EA LA와 협력해서 몇몇 게임들을 내놓으려고 했는데 이때는 잘 안 됐다고 한다. 그래도 MS의 E3 콘퍼런스에서 키넥트를 밀어주러 나오는 등 여전히 게임에 관심은 많은 모양이라 2013년 엑스박스 원의 독점 콘텐츠인 헤일로 시리즈 TV 드라마를 제작하기도 하었다.

90년대 이후에는 《맨 인 블랙》 시리즈를 성공시켰고, 2000년대 들어와서 《트랜스포머》 영화들을 터트렸다. 제리 브룩하이머와 갈라서고 마이클 베이와 손을 잡고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린 것. 다만 이 작품들을 스필버그의 업적이라 보기에 힘들단 시각도 있다. 트랜스포머 영화에서 스필버그의 직책은 책임 제작자(Executive Producer)다. 이게 드라마에서는 중요한 직책인데 영화에서는 장식으로 걸어놓는 칭호인 경우가 많다. 대부분은 기껏해야 돈을 대 주는 정도고 무슨 영화를 만드는지에 대해서 크게 관여를 하지는 않는다는 뜻.

하지만 스필버그가 제작자로서 직접 관여한 영화들도 있다. 이런 영화들은 스필버그가 정말로 대본에 직접 관여하고 그날 그날의 촬영을 계속해서 지켜보는 등 영화의 모든 부분들에 관여하기 때문에 제작자로서의 그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가 이렇게 만든 영화들은 '구니스'나 '그렘린'같이 준수한 가족영화 및 아동 모험물이 대부분인데, 가장 최근의 이런 경우는 J.J. 에이브럼스의 《슈퍼 에이트》로, 가장 스필버그와 유사한 최근의 상업영화 감독이 진짜로 스필버그하고 손잡고 만든 스필버그 오마주 영화이다. 두 사람은 아주 오래전부터 연이 있는데 스필버그는 젊은 시절에 자기 이름을 걸고 8mm 영화 컨테스트를 한 적이 있고 여기 대상 수상자가 에이브럼스와 그 친구들이었다. 이게 인연이 되어서 한동안 스필버그 영화를 편집하는 걸 도와준 적도 있다.

2015년에 개봉한 그의 명작 중 하나인 쥬라기 공원의 속편 쥬라기 월드에서는 총제작자를 맡았다. 여기서도 위의 슈퍼 에이트처럼 제작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였다.[7]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감독을 맡았어야 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쥬라기 공원인데

할리우드 6대 대형 제작사에서 넘나들지만 그 중에서 유니버설 픽처스와는 1975년 죠스[8]를 통해 40년 이상 유지하고 있다. 스필버그 제작사 앰블린 파트너스의 주주 중에는 유니버설 픽처스가 있을 정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니버설 픽처스의 역사에서도 스티븐 스필버그가 중요한 위상을 차지한다. 그 유명한 드림웍스 픽처스의 창립자로써 단독 배급을 통해 할리우드 6대 대형제작사 독점 형태를 깨트리려는 노력을 하였다.

2.2. 평가[편집]

예술적 성취와 상업적 성공을 모두 거머쥔 현시대 최고의 영화감독 중 한 명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쥬라기 공원》, 《A.I.》, 《라이언 일병 구하기》,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을 찍으며 잘 나가다가 《터미널[9] , 《우주전쟁[10] 등의 반응이 주춤하면서 한물 간 감독인 줄로 아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19년 만에 속편이 등장한 《인디아나 존스와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에선 엉뚱한 각본가 선정과 기대에 못 미치는 연출력을 보여줘 간혹 스필버그 지못미 등의 소리를 들었다. 심한 경우 《미이라: 황제의 부활》과 동격이거나 재미면에서는 되레 못하다고 혹평을 당했다. 결국 그 해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에서 최악의 속편영화로 선정되었다. 미국에서는 차라리 고전 루카스아츠 게임을 영화화하는 게 나았을 거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왔을 정도... 그런데 스필버그는 루카스아츠에서 만든 게임인 『디그』에 제작 겸 줄거리에 참여하던 경력이 있다. 덕분에 나중에 영화로 나온 《아마겟돈》이나 《딥 임팩트》를 두고 『디그』를 표절한 거 아니냐는 논란에 스필버그도 거론된 적도 있다.[11]

그러나 이러니 저러니 말이 많다 하더라도, 여전히 잘 나가고 있다. 1993년에 개봉한 《쉰들러 리스트》 이후 영화관이 크게 바뀐데다 비(非)블록버스터물의 비중이 늘어나서 "스필버그 영화는 이제 별로 재미없다"는 분위기가 생긴 경향이 있지만, 80년대~90년대 초에 만들던 밝은 분위기의 오락 영화에서 손을 뗐을 뿐[12] 21세기가 된 지금도 계속 훌륭한 작품들을 제작하고 있다. 오히려 《쉰들러 리스트》이후 만든 작품들로 인해 단순 오락 영화 감독을 벗어나 작가주의적 영화감독으로서 재조명되면서 비평계에서의 평가는 점점 높아졌다. 어쨌든 스필버그가 현행 감독들 중에서 가장 많은 개런티를 요구하는 감독 축에 들어간다고 한다. 뭘 만들어도 기본적으로 돈은 벌어들이니 말이다. 그리고 2015년에 개봉한 최근작 《스파이 브릿지》 또한 흥행 성공을 기록한 영화는 아니지만 기본 이상은 해냈으며, 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해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 6개 부문에 후보로 오르는 저력을 보여주어 거장으로서의 스필버그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단, 이 작품으로 스필버그 본인은 감독상에는 후보에 오르지 못했으나 작중 루돌프 아벨을 연기한 마크 라일런스가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아무튼 크리스토퍼 놀란이나 J.J. 에이브럼스처럼 새로운 아이콘들이 등장하면서 예전만큼 자주 언급되는 인물은 아니지만, 현재 활동 중인 감독들 중에서 스필버그만큼 상업적으로 꾸준히 성공하면서도 거의 모든 영화에 대해 비평적으로 훌륭한 성과를 거둔 좋은 감독은 없다. 영화사 전체를 봐도 이 정도의 커리어를 자랑할 수 있는 인물을 거론하려면 앨프레드 히치콕이나 존 포드 정도는 나와야 할 것이다. 커리어 전체를 통틀어 오늘날까지도 엄청난 생산력을 자랑하면서도, 동시에 70이 넘는 나이에도 그 능력이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는 점 또한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3. 시오니즘?[편집]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잊을 만하면 가해지는 비난이 바로 '시오니스트'이다. 그렇지 않아도 영화를 비롯한 미국 예술계에서 유대인들의 영향력은 매우 큰데다, 그 중에서도 특히 스필버그의 영향력은 막강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필버그의 작품 중 홀로코스트를 직접 다룬 쉰들러 리스트가 있다 보니 그의 시오니즘 성향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반유대주의자들의 미국 문화계에 대한 음모론에서 첫번째로 등장하는 명단이 스티븐 스필버그일 지경.

일단 스필버그가 유대계와 이스라엘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무작정 이스라엘과 유대인을 찬양하고 팔레스타인이나 독일 등을 비하하려 든다는 것은 편견에 가깝다. 쉰들러 리스트에서도 영화의 중점은 쉰들러의 선행과 나치의 악행에 촛점을 맞추었지, 유대인들의 피해의식을 과장해서 나타내지 않고 있다.

특히 뮌헨 참사 이후 이스라엘의 보복 작전을 다룬 뮌헨을 보면 보복 작전을 사실상 '뻘짓'으로 표현하는 등 전혀 시오니즘 성향이 있다고 할 수가 없다. 오히려 스필버그는 이스라엘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며 이스라엘인들에게 혹평을 받았다. 반대로 팔레스타인에서도 혹평을 받았는데 그만큼 중립적이라는 이야기도 된다. 또한 시오니즘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편이고, 자신이 유태인이라는 자각도 없다고 하며 평소에 그리 좋아하지도 않던 선배 스탠리 큐브릭이 미국 내 유태인 단체들에게 비난받을 때 스필버그가 그를 열심히 옹호해 준 적이 있다.

여담으로 스티븐 스필버그는 유대인이면서도 쉰들러 리스트를 제작하기 전까지는 홀로코스트에 대해선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쉰들러 리스트를 제작하면서 이게 장난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심각한 멘탈붕괴에 시달렸다. 멘붕을 넘어서 정신붕괴 직전까지 가서 날마다 친구인 로빈 윌리엄스에게 전화로 '날 즐겁게 해줘 제발!'라고 말하며 하소연하고, 촬영장에는 스필버그의 가족과 유대교 랍비까지 와서 그를 달래줘야 했단다.

4. 연출 스타일[편집]

대다수의 관객들은 워낙에 전설적인 블록버스터들을 많이 만들어 오락영화, 돈 때려붓는 블록버스터의 거장으로들 알고 있지만 종합적으로 평가하자면 영화를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능력이 뛰어난 올라운더 먼치킨이다. 스토리텔링, 시각화, 리듬감, 대중들을 휘어잡는 코드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능력까지 다 갖춘 사기캐. 물론 더 파고 들어가자면 그의 가장 뛰어난 능력은 무엇보다도 서스펜스를 창조하는 능력으로, 초기 커리어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간단한 상황과 인물 설정, 그리고 적절한 편집으로 극한의 긴장감을 뽑아내는데 세계 최고의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의 예술가적 자의식이 드러나는 소규모 작품들에서조차 블록버스터 뺨치는 압도적인 긴장감을 확인할 수 있다. 대중 친화적 이미지 때문에 정의롭고 보수적인 영화를 많이 뽑아낸다는 편견이 많지만 폭력과 공포를 다루는데에도 일가견이 있다. 대중적 블록버스터와 작가적 커리어를 번갈아가며 꾸준히 연출해오고 있는데, 상업 블록버스터 한편을 마치고 나면 자신의 연출력을 확인하기 위해 콘티 없이(....) 게릴라 촬영으로 자주 촬영하곤 한다.

5. 여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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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필버그와 루카스. 두 털복숭이(...)

  • 위의 친구들의 우정을 보여주는 일화. 07년에 스콜세지가 《디파티드》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탔을 때의 일인데, 시상자로 스필버그, 루카스, 코폴라가 올라왔다. 이 정도면 이미 스콜세지 수상 확인사살 수준. 올라와서 이들이 서로 만담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전에 아카데미 감독상 받아봐서 아는데 정말 대단한 겁니다.' '감독상을 탄다는 건 정말 엄청난 영예죠.' '...야, 난 못 받았잖아.' 코폴라: 그럼 왜 여깄는 거야.

  • 최근에는 2013년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링컨》으로 7년만에 감독상 후보로 오르면서 3번째 수상을 노렸지만 이안이 2번째 감독상을 수상했다.

  •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스필버그가 현장감각을 살리기 위해 스토리보드 없이 촬영한 영화다. 전문감독이더라도 어려운 일이다.

  • 해리 포터 시리즈 감독 후보로서 떠올려진 적이 있었으나, 스필버그는 영국 배우를 고집하던 원작자 조앤 롤링 여사에게 미국 배우와 미국영어를 써야 한다고 하여 반목했다.[15] 게다가 스필버그는 지나치게 영국 중심적인 점을 껄끄럽게 여겨 다국적 인물들을 새로 넣자고 했으나 영국이 모델이고 영국풍 분위기가 큰 소설에서 안 맞다는 원작팬들의 반발도 있다보니 결국 이 시리즈에서 물러났다.

  • 의외로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전통적인 영화 시장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여 왔다. 텔레비전핸드폰을 비롯한 작은 스크린이 영화관의 큰 스크린을 대체할 것이라든지, 기존의 블록버스터 중심의 영화시장이 한계에 다다를 것이라든지, 여러가지 측면에서 영화 산업의 종말을 고하는 발언을 꽤 많이 해 왔다. 다만 그런 발언을 언제나 함께 해 왔던 조지 루카스와 비교했을 때 실제 표현과 행동의 방향은 다행히도 상당히 다르다. 루카스의 경우 이러한 태도가 옛 영화에 대한 강박적인 기술 업데이트라는 영 좋지 않은 방향으로 드러난 것과 달리, 스필버그는 최신 유행과 새 미디어에 대한 적극적인 수용으로 영화에 종말에 대처해 왔다. 특히 그가 오래 된 하드코어 게이머이며 80년대 후반부터 게임 개발에 관심을 보여왔다는 건 알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 E3에선 미야모토 시게루와 게임을 하기도 했다.

  • 슈퍼히어로 영화에 대해 서부극처럼 몰락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발언에 대해 여러가지 논란이 많았는데, 원문을 읽어보면 스필버그는 슈퍼히어로 영화 자체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장르든 시간이 흘러 유행이 지나면 쇠퇴하기 마련이고, 슈퍼히어로 장르 또한 그것을 피할 수 없다는 지극히 일반론적인 말을 한 것이다.
    전통 서부극이 주류이던 시절이 짧아도 30년부터 50년은 갔고, 스파게티 웨스턴과 수정주의 서부극이 70년대까지 버티다가 80년대 이후 액션 영화에 밀렸다. 그 와중에도 양산형은 시대를 불문하고 항상 나왔고, 웨스턴의 최후를 장식했다는 용서받지 못한 자가 93년에 나왔다.
    이와는 별개로 리처드 도너슈퍼맨다크 나이트, 아이언맨, 그리고 특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좋아한다고[16] .[17] 게다가 DC 코믹스의 히어로 영화인 “블랙호크"를 스필버그가 감독하게 되었다는 것을 워너브라더스 측에서 공식 발표했다..[18] 여담으로 그가 DC 히어로물을 맡게되면서 DC에서 다크 나이트를 감독한 크리스토퍼 놀란과 비교는 이제 피할 수 없게 되었다.

  • 많은 유명인이 그렇듯 스필버그도 스토커들에게 시달렸다. 1998년에는 동성애자 성향의 보디빌더였던 조나던 노먼(Jonathan Norman)이 스필버그를 집요하게 스토킹하다가 결국 체포당했는데, 그는 스티븐 스필버그를 잡아서 그의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강간하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 일로 징역 25년형에 처해졌다.

  • 일본문화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7인의 사무라이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자신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쳤으며 스시와 장어구이를 좋아하고 자기 집에 문에는 일본어로 자기 이름이 새겨진 나무 문패가 걸려있다고 한다.

  • 한국에선 흥행의 마술사로 통하긴 하지만, 명성과는 달리 2008년 인디아나 존스 4가 전국 410만이 넘는 관객을 거둔 흥행 이후로는 개봉작들이 전국 100만을 넘기지 못했다. 2018년 딱 10년만에 레디 플레이어 원이 개봉 1주동안 전국 170만을 넘기는 흥행을 거뒀지만 10년만에 예매 1위를 거둔 영화치곤 흥행이 좀 기대에 못 미쳤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 게임 매니아로 유명한 그이지만 레디 플레이어 원일본 내 홍보차 이뤄진 한 인터뷰에서 VR 게임을 해본 적 있는지 묻는 인터뷰에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마리오를 해봤어요. 처음 플레이했을 때 정말 고글을 벗고 싶지 않았어요."라는 다소 겜알못스러운황당한 대답(...)을 한 적이 있다. 이 인터뷰 자체가 스필버그가 말한 말을 일본어로 번역한 것이기 그 과정에서 오역이 되었을 가능성도 존재하지만 단순히 게임시장의 구조에 대한 무지가 이유일 가능성도 충분하다. 플랫폼 홀더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 하면 저 위의 대답이 왜 말이 안 되는지 설명할 수 없기 때문. 그런데 Wii 스포츠도 같이 즐겼던 사람이 저걸 모른다고?

6. 필모그래피[편집]

연도

제목

역할

비고

연출

각본

제작

기타

1964

Fire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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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작곡

[19]

1968

Amb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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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

듀얼 D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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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1973

Ace Eli and Rodger of the Sk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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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

슈가랜드 특급 The Sugarland Ex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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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1975

죠스 Ja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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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1977

미지와의 조우 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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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1979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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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

컨티넨틀 디바이드 Continental Div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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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더스 Raiders of the Lost 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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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E.T. E.T. the Extra-Terrestr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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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폴터가이스트 Polterge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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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환상특급 Twilight Zone: The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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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그렘린 Greml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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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아나 존스와 마궁의 사원
Indiana Jones and the Temple of D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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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

백 투 더 퓨처 Back to the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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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 퍼플 The Color Pur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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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니스 The Goon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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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의 공포 Young Sherlock Hol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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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피블의 모험 An American T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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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머니 핏 The Money P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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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8번가의 기적 Batteries Not Inclu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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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제국 Empire of the 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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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너스페이스 Inners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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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1988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
Who Framed Roger Rab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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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시대 The Land Befor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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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영혼은 그대 곁에 Alw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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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투 더 퓨처 2 Back to the Future Part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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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mmy Trou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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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황혼 D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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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
Indiana Jones and the Last Crus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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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아라크네의 비밀 Arachnophob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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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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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투 더 퓨처 3 Back to the Future Part III

O

Roller Coaster Rab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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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렘린 2 - 뉴욕 대소동 Gremlins 2: The New Ba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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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케이노 Joe Versus the Volc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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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피블의 모험 2 An American Tail: Fievel Goes W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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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크 H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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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

트레일 믹스-업 Trail Mix-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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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라기 공원 Jurassic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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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대행진 We're Back! A Dinosaur's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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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들러 리스트 Schindler's 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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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1997

쥬라기 공원: 잃어버린 세계
The Lost World: Jurassic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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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인 블랙 Men in Bl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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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스타드 Amist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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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1998

라이언 일병 구하기 Saving Private Ry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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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The Last 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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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오브 조로 The Mask of Zor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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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임팩트 Deep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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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Shooting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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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A.I. A.I. Artificial Intellig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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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쥬라기 공원 3 Jurassic Park 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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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마이너리티 리포트 Minority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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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인 블랙 2 Men in Black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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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치 미 이프 유 캔 Catch Me If You 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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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2004

터미널 The Termi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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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2005

우주전쟁 War of the Worlds

O

레전드 오브 조로 The Legend of Zor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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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샤의 추억 Memoirs of a Geis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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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 Mun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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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아버지의 깃발 Flags of Our Fa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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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Letters from Iwo J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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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하우스 Monster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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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트랜스포머 Transform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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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인디아나 존스와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
Indiana Jones and the Kingdom of the Crystal Sk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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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 아이 Eagle E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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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
Transformers: Revenge of the Fal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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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리 본즈 The Lovely B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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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히어애프터 Hereaf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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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브레이브 True G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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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슈퍼 에이트 Super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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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포머 3 Transformers: Dark of the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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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보이 & 에이리언 Cowboys & Ali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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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스틸 Real Ste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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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 유니콘호의 비밀 The Adventures of Tin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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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호스 War Ho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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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맨 인 블랙 3 Men in Black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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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Lincol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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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
Transformers: Age of Extin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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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레시피 The Hundred-Foot 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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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쥬라기 월드 Jurassic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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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브릿지 Bridge of Sp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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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마이 리틀 자이언트 The BF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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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
Transformers: The Last 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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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포스트 The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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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레디 플레이어 원 Ready Player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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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
Jurassic World: Fallen King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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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맨
First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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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디아나 존스 5 (2021)

  • 린지 아다리오 - 전기 영화 (미정)

  • 월터 크롱카이트 - 전기 영화 (미정)

  • 몬테주마 - 사극 (미정)

  •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리메이크 (미정)

  • 에드가르도 모르타라의 유괴 (미정)[24]

  • 블랙 호크 (미정)[25]

7. 바깥 고리[편집]

[1] 다만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경우 다작으로 승부를 보는 감독이 아니어서 작품 수에 대한 비교는 의미가 없긴 하다.[2]죠죠의 기묘한 모험》 3부의 휠 오브 포츈전은 이 영화를 거의 그대로 베껴만든 내용.[3] 1989년 27년전 개봉당시 삭제된 35분 분량을 복원하면서 화질 보정까지 하도록 했다. 마틴 스코세이지와 같이 컬럼비아 영화사에 반협박까지 하면서(이 영화 복원과 보정을 하지 않으면 앞으론 이 영화사에서 영화 안 만든다고) 이뤄냈다.[4] 예외적으로 그의 친구로 알려진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는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1992)를 통해 부활할 듯 했으나 다시 쇠락의 길에 빠진다.[5] 1992년 영화지 로드쇼 참고. 참고로 만화가 1위는 바로 《피너츠》로 유명한 찰스 M. 슐츠였으며 방송인 1위는 오프라 윈프리였었다. 다만 여기서 선정한 영화 감독 및 제작자 1위는 그 영화 수익으로 선정했으며 영화 캐릭터 및 2차 판권 수익으로 1위는 바로 조지 루카스.[6] 우리나라에선 90년 초반에 MBC에서 《말괄량이 뱁스》란 제목으로 방영했고 투니버스카툰네트워크에서 원제로 방영했다. 이 애니메이션에선 스필버그가 애니메이션으로 아주 잠깐 나오기도 한다.[7] 한 예로 작중 나오는 구체 탑승물 자이로스피어는 스필버그가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8] 이미 듀얼을 통해 유니버설 텔레비전이 배급한 바있다.[9] 이 영화도 스필버그와 행크스의 이름값에 비하면 아주 살짝 기대 이하지만 흥행이나 평가 면에서 나름 평작과 수작을 오가는 괜찮은 영화다.[10] 그런데 사실 이 영화는 여기 끼기에는 조금 억울한 면이 있다. 해외나 국내나 평가가 다양하게 갈리는 작품이기 때문. 전 세계적으로도 흥행 대박을 냈다. 심지어 권위있는 비평매체인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는 이 영화를 2000년대 영화 10편안에 선정하기도 했다. 국내에서 이 영화를 높게 평가하는 허문영 평론가의 평론이 매우 유명하다.[11] 《딥 임팩트》는 스필버그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된 게 맞다. 아서 클라크의 《신의 망치》의 판권 구입부터 시작해서 기획에만 20년 가량이 걸렸다고.[12] 위에서 언급한 《인디아나 존스와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의 반응이 좋지 않았던 것도, 신나고 밝아야 할 인디아나 존스 영화가 어둡고 시니컬해진 21세기 스필버그 영화관의 영향을 받은 탓이 아니냐는 의견도 꽤 있었다.[13] 오드리 헵번이 생애 마지막으로 출연한 영화이다.[14] 둘 다 겨울에 나와서 별 의미는 없지만 정작 수입은 워 호스가 더 잘 벌었다(...)[15] 결국 해리 포터 시리즈에는 대부분 영국배우들이 출연했고 극히 예외를 꼽자고 해봐야 아일랜드 배우 정도다.[16]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감독인 제임스 건은 이 소식을 듣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17] 블랙 팬서의 경우 지난 10년간 가장 문화적 영향력이 거대한 영화라고 평하기도 하였다.[18] 본래 블랙호크라는 히어로는 스필버그가 슈퍼히어로 영화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내놓기 이전부터 관심깊게 보던 캐릭터이기도 하다. 즉, 그가 말한 히어로물의 몰락은 그저 시간이 지나며 점점 쇠퇴할 것이라는 의미일 뿐, 자신이 싫어한다는 뜻이 절대 아닌 거다.[19] 만 16세 때 만든 140분 상영시간의 8mm 독립영화로 400~500달러 예산으로 제작해서 극장상영으로 약간의 수익을 남겼다.[20] 낡은 승용차 한대와 트럭 한대로 쫄깃한 90분을 만든 신기한 TV영화. 스필버그의 첫 상업 영화이다. [21] 그 해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22] 세계 최초의 블록버스터 영화. 당시 2억 달러 흥행을 넘기며 스필버그의 명성을 널리 알린 출세작이다.[23] 인플레이션 적용기준 스필버그 최고 흥행작(2위는 죠스, 3위는 쥬라기 공원)[24] 1997년 데이빗 커쳐가 발표해 퓰리처상을 받은 동명의 논픽션을 원작으로 1858년 이탈리아의 유태인 소년인 에드가르도 모르타라가 종교 재판소의 명령에 의해 부모와 격리돼 크리스천으로 길러지게 되는 이야기를 담는다. 영화는 소년의 부모가 자식을 구출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출연은 페르소나로 떠오른 마크 라일런스가 비오 9세 역을 맡으며 오스카 아이작이 출연할려고 했는데 하차했다. 레디 플레이어 원 촬영을 마친 이후 내년 1/4분기 중 촬영을 진행할려고 했는데 와인스틴 컴퍼니가 배급에 들어갈려고 했지만, 협상이 제대로 안 되서, 스필버그와 와인스틴 컴퍼니는 같은 내용으로 서로 다른 영화를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 하비 와인스틴의 성추행 때문에...[25] DC의 히어로 영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