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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 마이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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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WN MICHAELS

1. 프로필2. 소개3. 경기력4. 경력5. 평가6. 트리비아7. 둘러보기

1. 프로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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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본명

Michael Shawn Hickenbottom[1]

별칭

HBK(Heart Break Kid)
Mr. WrestleMania
Sexy Boy
The Showstopper
The Icon
The Main Event
The Best of the Best
The Headliner

출생일

1965년 7월 22일

출생지

미국 애리조나 주 챈들러

거주지

미국 텍사스[2] 샌안토니오

신장

179cm (5 ft 10.5 in)[3]

체중

86kg[4]

피니시 무브

스윗 친 뮤직

경기 스타일

테크니션

테마곡

Sexy Boy(센세이셔널 셰리버전)
(1992~1993)
Sexy Boy(숀 마이클스 버전)
(1993~현재)
Break It Down(DX)
(1997~1998, 2006~2007, 2009~2010)

종교

가톨릭->개신교

주요 커리어

WWF 챔피언 3회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WWF 인터컨티넨탈 챔피언 3회
WWF/E 월드 태그팀 챔피언 5회[5]
WWE 태그팀 챔피언 1회[6]
WWF 유로피언 챔피언 1회
WWF 로얄럼블 2회 우승 (1995, 1996)[7]
WWF 제 1대 그랜드 슬래머
WWF 트리플 크라운
AWA 월드 태그팀 챔피언 2회
NWA 센트럴 스테이츠 태그팀 챔피언 1회
AWA 남부 태그팀 챔피언 2회
TASW 텍사스 태그팀 챔피언 2회
TWA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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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상징하는 HBK 로고

첫 번째 타이탄트론 영상

두 번째 타이탄트론 영상[8]

마지막 타이탄트론 영상[9]

Sexy Boy[10][11]

레슬매니아25에서의 숀의 등장 영상

2. 소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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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이 뽑은 WWE 최고의 슈퍼스타 1위

WWE의 암흑기를 지탱하였고 WWE의 새로운 전성기의 시작을 알린 선수

1984년 프로레슬링을 시작해 1990년대 중반 WWE가 암흑기를 버텨내는데 큰 도움을 준 2명 중 1명이며[12] 플라잉 레슬링이 주류로 올라오게 되는데 많은 공헌을 한 레슬러. 또한 그는 WWE의 첫 래더매치의 주인공이었다.[13] 여기에 브렛 하트와 함께 체구가 작은 테크니션 계열 메인 이벤터의 길을 닦은 인물로 꼽힌다[14].

1998년 등 부상으로 잠시 은퇴했으나 2002년 다시 복귀해 2010년 3월 29일 RAW에서 최종적으로 은퇴할 때까지 많은 팬들에게 수많은 명경기들과 명장면들을 만들어내며 큰 사랑을 받았다.[15]

엄청난 인기와 리스펙트를 받았던 선수답게 닉네임도 굉장히 많은 편인데, 가장 잘 사용되는 HBK(Heart Break Kid, 현재 본명 만큼이나 많이 사용되는 말.)를 비롯해, 헤드 라이너, 아이콘, 메인이벤터, 미스터 레슬매니아, 섹시 보이, 쇼 스타퍼까지 많은 수식어들을 가진 선수다.

2010년 3월 28일 레슬매니아 26에서 언더테이커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은퇴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1년 1월 11일 RAW에서 명예의 전당 헌액자로 등록되어 출연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양손잡이이다.

WWE 선수들이 꼽은 최고의 슈퍼스타 1위다.(2010년 기준) 라이벌인 브렛 하트가 4위, 스티브 오스틴이 3위, 언더테이커가 2위라는 것을 감안하면...이를 반영하듯 WWE 2K14에선 능력치 총합이 존 시나와 함께 최고 수치인 95점이다.

3. 경기력[편집]

요약하자면, 프로레슬링 사상 최고의 워커 중 한명.

하이 플라이어라는 개념이 전무하던 시절에 훨훨 날아다니는 경기로 큰 인기를 끌었으며 관중들을 열광시켰다. 거기에 온갖 오버 접수등 보는 사람을 흥분시키는 재주가 있었으며, 숀 본인이 WWE 기준으로 그다지 큰 덩치가 아니다보니[16] 오히려 관객들이 공감하는 장점도 있었다. 여기에 숀의 미칠듯한 카리스마도 한 몫했다.[17]

특히 부상 복귀 이후로는 정말 갖은 고초 끝에 끝내 경기를 뒤집어내는 언더독형의 경기 운영에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모습을 보였다. 이것은 숀 본인의 프로레슬러로선 작은 체구와 번개같은 일발역전기 스윗 친 뮤직, 그리고 보는 이들을 최고로 몰입시키는게 가능한 숀의 타고난 연기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2000년대 숀의 경기를 보면 링 위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실감나는데, 사실 실제로 고통을 극심하게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숀 마이클스는 오랫동안 등 부상으로 고통받았는데, 링위에서도 고통을 참기 힘들어 심하게 찡그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마디로 온갖 고통을 감수해내며 레슬링을 한 셈인데, 그런 의미에서 진정 철인이라 부를만한 정신력을 보여준다.

또한, 숀은 경기에서 상성을 타지 않는다. 상대 선수가 어떤 체급이든, 어떤 경기 스타일의 선수이든, 베테랑이든 신인이든간에 상관없이 그 누구와 붙어도 재미있는 경기, 명경기들을 뽑아낼 수 있을 정도이다. 프로레슬러들은 자기만의 경기 스타일을 가지고 있고 그 실력도 선수들마다 천차만별로 다르기 때문에 자신과 맞지 않는 상대와 붙게 될 경우에는 평소 보여주던 실력보다 떨어지는 경기를 보여주게 된다. 하지만 숀은 그런걸 따지지 않고 어느 상대와 붙더라도 그 상대에 자기 스타일을 잘 조화시켜 좋은 경기를 만들어 내며, 어느 상대와 붙더라도 그 경기를 보는 사람들에게 몰입감을 선사하고 설득력을 줄 정도의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피니시 무브는 스윗 친 뮤직(Sweet Chin Music)이며[18] 보통 상대방을 다운 시킨뒤 시전한다. 다운된 상대가 몸을 일으키는 동안 링 바닥을 발로 차서 리듬을 타다가 점점 빠르게 발을 차며, 상대방이 몸을 일으켜 이쪽을 돌아보면 턱에 하이앵글 옆차기를 먹이는 것. 기술 자체는 단순하지만 킥이지만 준비동작이 임팩트가 있으며, 예측할 수 없이 기습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등 여러 장점을 가져 인기가 많은 피니셔. 킥을 시전할 때 '짝!' 하고 나는 작렬음은 사실 자신의 허벅지를 치며 내는 소리.[19] 태그 팀 락커스 시절부터 사용해왔지만 이때는 일반 기술로 타점이 안면이 아닌 가슴쪽이었다.

그 외에 해머링, 찹, 크로스라인 등의 기본적인 기술들부터 시작해서 자주 사용하는 기술로는 탑로프에서 시전되는 다이빙 엘보 드롭, 인버티드 아토믹 드롭, 티어드랍 수플렉스[20], 파일 드라이버, 락커 드랍, 러닝 엘보우, DDT, 루테즈 프레스, 크로스 바디, 플라잉 포암, 바디 슬램 등이 있다. 또, 등부상으로 인해 1차 은퇴를 하기 전에 신체 능력이 전성기였을 시절에는 프랑켄 슈타이너, 헤드시저스 휩, 드롭킥, 엔지그리, 수어사이드 다이브 등의 날렵함과 유연함등이 필요한 기술들도 사용했다.

이 외에도 브렛 하트와 대립하던 시절엔 샤프슈터도 자주 썼고, 크리스 벤와 사후엔 크리플러 크로스 페이스도 간간히 사용하는가 하면 레슬매니아 같은 큰 무대에선 문설트[21]도 쓰는 편이었다. 그리고 이를 응용한 스프링보드 문설트도 가끔씩 사용했다.

또한 경기의 분위기를 달아오르게 하는 쇼맨쉽 계열로는 로프 밖으로 떨어지는 척 하면서 로프를 잡고 다시 올라오는 스킨 더 캣[22] 쓰러진 상황에서 극적으로 일어나는 핸드 스프링 등의 기술은 숀의 경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묘미이기도 하다.

거기에 브렛 하트가 말하기를 굉장히 안전하게 경기를 한다고 한다.[23] 세스 롤린스와 비교하면서 숀과는 경기하면서 위험하다고 느낀적이 없었다고.

4. 경력[편집]

5. 평가[편집]

경기력 외모 쇼맨쉽을 모두 갖춘 완전체 레슬러

암흑기였던 뉴 제너레이션 시대를 브렛 하트와 함께 이끌었던 아이콘이었고 복귀 후에는 베테랑으로서 후배들을 이끌었던 레전드.

보통 WWE를 대표하는 4대 아이콘으로 헐크 호건,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 더 락, 존 시나가 거론되지만 숀 역시 브렛 하트와 함께 뉴 제너레이션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였다. 다만 앞의 4명과의 차이점이라면 저 4명은 자신들이 이끌었던 시대를 흥행시키는데 성공했고, WWE가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최고의 위치를 유지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들이다.[24] 하지만 숀과 브렛의 경우에는 비록 자신들이 대표이긴 했지만 뉴 제너레이션 시대 자체가 WWE 역사상 최고의 암흑기였기 때문에 저 4명에 비하면 좀 떨어지는 평가를 받는 편이다. 하지만 알아둬야할 것은 저 둘이 있었기에 그러한 암흑기를 어떻게든 버텨냈다는 점이다.

자신과 주변 사람들만으로 온갖 푸시와 좋은 각본, 승리를 독차지하고 챔피언 욕심이 가득했던 철 없고 인성이 밑바닥 수준이였던 90년대와는 달리, 1차 은퇴를 했다가 종교와 아내의 힘으로 개과천선하고 나서 2002년에 다시 복귀한 뒤에는 욕심을 버린채, 후배들을 위해 잡을 해주고 메인 챔피언 자리도 2002년에 약 한 달간 올라있을 때를 제외하면 2010년에 은퇴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오른 적이 없는 등[25]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수 없이 많은 명경기와 인상적인 활약들을 보여주면서 사람들로부터 리스펙트 받고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서 지지를 받게 됐다.[26]

경기력면에서는 WWE 역사상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준 선수 중 한 명이였다. 숀의 경기력은 90년대와 복귀 이후인 00년대를 나눠서 봐야한다. 90년대의 숀은 타고난 연기력과 뛰어난 경기운영능력, 여기에 다양한 기술들을 적재적소에 사용할 줄 아면서도 경기템포의 완급조절까지 유연하게 해낼 줄 아는 그야말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 완벽한 경기력을 보여줬었다.[27][28] 복귀 이후의 00년대에서 보여 준 경기력은 이와는 조금 차이가 있는데, 아무래도 은퇴를 했을만큼 등부상이 심했던 데다가 4년간 레슬러로서 활동을 하지 않았을 뿐더러 나이도 먹었기 때문에 신체적인 기량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90년대의 숀과 00년대의 숀을 비교해보면 경기 템포의 빠르기라던가 사용하는 기술의 가짓수, 힘 등등 여러가지 면에서 90년대의 숀이 신체능력면에서는 보다 뛰어난 것을 느낄 수 있다.[29] 하지만 그런 신체적인 기량의 하락을 숀은 타고난 경기운영능력과 연기력으로 메꾸면서 복귀 이후에도 여전히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줬다.[30][31]

숀은 엔터테이너적인 면도 굉장히 뛰어난 재능을 보여줬다. 앞서도 말했듯이 타고난 연기력과 쇼맨쉽 덕분에 마이크웤과 기믹수행력을 보여줬고 등장할 때의 화려함도 엄청났다. DX 시절 악역을 맡았을 때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정말로 개X끼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천하의 개X놈같은 모습을 태연하게 보여줬다.[32] 또한 오스틴, 언더테이커같은 레전드들이 숀을 가장 뛰어난 In-ring performer였다고 언급을 했던걸 생각하면 숀은 레슬러와 엔터테이너로서 양 쪽 모두 뛰어난 재능을 갖췄던 선수였다고 볼 수 있다.

6. 트리비아[편집]

  • WWE에서 숀 마이클스와 함께 일했던 스타일리스트의 말에 의하면 핸섬한 외모와 옷걸이에 비해 옷은 참 못 입는 편이라고 한다. 2002년에 처음 복귀한 이래 입은 경기복들도 대부분이 1990년대에 입었던 옷들을 그대로 입은 것. 은퇴한 이후 2013년에 들어선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있어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전혀 몰라볼 정도.점점 텍사스에 사는 평범한 아재가 되어가는 HBK 어느 정도냐 하면 제자인 대니얼 브라이언과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을 정도.

  • 파일:external/hbknet.files.wordpress.com/mra-hunting-shawn-michaels-2013-003-carbon-express-01.jpg
    은퇴 이후에 사냥꾼으로 전업한 HBK?? 은퇴 후에는 사냥 장비 쪽 일을 했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NXT의 프로듀서로 있다.[33]

  • 2013년 하반기에 들어선 트리플 H와 대니얼 브라이언에 관련된 스토리 라인에 참여하기로 결정되었는데, 얼마 전까지 덥수룩하게 기르고 있던 수염을 깔끔하게 밀어버린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 사실 대니얼 브라이언WWE의 대세가 되는데 큰 도움을 줬다는 소문이 있다. 2010년 대니얼 브라이언이 링 아나운서의 목을 조르는 세그먼트가 PG 등급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데뷔하자마자 방출당하는 불운을 겪었는데 이에 숀이 어느 인터뷰에서 브라이언이 WWE에 복귀하지 않는다면 WWE가 가장 싫어하는 단체에 출연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사실이 아닌 걸로 드러났지만, 어쨌든 WWE는 브라이언을 WWE에 복직시켰다. 그의 발언이 없었다면 WWE 레슬매니아 30 메인이벤트 경기가 정말로 에볼루션 3인의 대결이 되어 망 PPV가 될 뻔했다.

  • 브렛 하트와는 앙숙겸 라이벌이었지만 그들이 대두되기 시작한 무렵에는 의외로 비슷한 처지에 있었다. 당시엔 메인 이벤터는 오직 호건이나 워리어 같은 근육질 선수들만이 설 수 있는 자리라는 생각이 만연했는데, 브렛이나 숀이나 둘 다 이런 편견을 타파하려고 고생했기 때문이다.
    짐 로스 진행을 맡았던 브렛과 숀의 대담을 보면 브렛이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이 된 것이 희망을 줬느냐는 짐의 질문에 숀은 인터콘티넨탈로는 안 된다. 브렛이 WWE 챔피언 정도는 돼야 우리가 인정받는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고 대답했다. 브렛은 이 대담에서 호건이나 워리어는 근육만 많고 로프 흔드는 것밖에 못하는 지루한 인물들이라고 깠다. 한 마디로 같은 배를 탄 입장이었다가 나중에 사이가 갈라진 것.
    아예 2015년 11월의 인터뷰에서 브렛은 헐크 호건 등의 덩치들이 빠져나간 뒤엔 당시엔 자신과 숀만이 회사를 지탱하고 있었다고 얘기했다. 1992년 둘이 처음 붙었을 땐 숀이 싱글 경험이 적을 때라 브렛에게 캐리해 달라고 부탁하는등 선후배로서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 종교의 긍정적인 역할을 잘 보여주는 인물로, 90년대의 숀 마이클스는 가장 같이 일하기 힘든 인물로 꼽힐 만큼 사고뭉치에 망나니였다. 하지만 지금의 아내를 만나 개신교[34][35] 에 귀의하면서 그동안 자신의 처신에 대해 뉘우치고 개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몬트리올 스크류잡 사건 때문에 숀에게 가장 원한이 깊었던 브렛 하트가 결국 그를 용서하고 화해하기도 했으며 그 누구에게도 잡을 하지 않겠다고 우기던 90년대의 숀과는 달리 후배들을 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챔피언 각본을 거부하는 등 성숙한 인격을 보여주어 더욱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인성의 발전 뿐 아니라 경기력도 변함없이 대단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괜히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것이 아니다. 숀의 데뷔부터 첫 번째 은퇴 시절과 복귀 후 두 번째 은퇴 때의 별점들을 비교해서 어느 시절이 더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나 비교한 사람이 있었는데 데뷔 직후부터 첫 은퇴까지가 불과 0.05점 높아서, 어느 시절이든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었다는 것을 알수있다. 그래도 두 번째 시절이 더 대단한 건 당시의 숀은 등 부상 등으로 몸이 전 같지 않았는데도 같은 수준의 기량을 보여주었다는 것. 거기다가 WWE에서 선정한 꼭 봐야 되는 명경기 리스트를 보면 복귀 이후 시절 경기가 상위권에 더 많다.

  • 사실 2001년도 쯤에 빈스에게 "브렛이 보고 싶다"며 그와 다시 만나고 싶어하는 등 몬트리올 사건에 대해 후회하는 모습을 보여줬었기에 2010년도에 브렛과 화해한 것은 숀에게도 큰 안도감을 주었다. 브렛이 말하기를 자신과 화해하고 난 뒤에는 숀도 큰 짐을 덜어놓은 것 같은 모습이어서 자신도 편해졌다고 할 정도.

  • 2010년 브렛 하트와 공식적으로 화해하기 전까진, 숀은 브렛의 모국인 캐나다에만 오면 선역으로 왔든 악역으로 왔든 "넌 존재 자체만으로도 어그로다"라는 취급을 받으며 집중 야유의 대상이 됐다. 위에서 적은 종교 덕분에 개심하게 된 이후에도 캐나다에서 만큼은 첫 번째 은퇴 시점까지 보여줬던 악역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1, #2 #3

  • 작은 덩치로 챔피언이 되었다는 것 때문에 상당한 부담감을 느꼈다고 자서전에 회고했다. 문제는 이 부담감 때문에 백스테이지에서 온갖 사고를 쳤다는 것. 스트레스 받는 것은 이해해 줄 만 하나 그 행동이 문제였다. WWF 레슬매니아 14 직전의 세그먼트를 보면 프로모하다가 날아온 배터리에 맞았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서 링을 떠나는 행각을 보였으며 당시 그와 대립하던 스티브 오스틴이 "나에게 챔피언 자리 주고 도와준 건 좋은데 이룰 거 다 이룬 양반이 너무 이기적이다"라고 꼬집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망나니적인 행동이 본성보단 스트레스로 인해 성격이 꼬인 덕분이었기 때문인지 종교로 그런 부분이 해소되고 나선 평판이 좋아졌다.
    다만 그레고리 헴즈 등은 숀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며 비판적이기도 하다. 그레고리가 숀이 변하지 않았다고 한 이유는 2008년경 숀 마이클스가 크리스 제리코에게 욕을 한 바가지 날린 것 때문인데, 정작 크리스는 그 일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숀이 욕할 만 했던 일인데, 그레고리가 왜 그 일을 들추는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자서전에서도 이 일에 대해서 써져있는데 WWE 섬머슬램(2008) 경 제리코가 숀의 부인인 레베카를 때리는 시늉만 하라는 각본을 받았는데 실수로 진짜 때려버렸다고(...)
    해당 세그먼트가 끝난 후 제리코는 숀과 아내에게 사과했고 레베카는 '뭐, 솜주먹이네요 ㅎㅎ'라며 농담까지 하면서 좋게 넘어갔으나 숀은 가족을 각본에 끌어들인 것에 대해 자책을 했다고 한다. 아마 이 자책감이 이상한 방향으로 변질되서 욕을 한 것으로 보인다.

  • 랍 밴 댐 같은 경우에는 로얄럼블에서 복귀했을 때, 숀에게 "꾸준히 나오는 사람만 봐야지, 어디 갔다가 컴백하는 사람은 보고 싶지 않음. ㅇㅇ"라는 식의 말을 들었는데 2007년 WWE 명예의 전당에서 쉬크를 헌액하고 난 이후로는 "넌 참 말도 잘 하고 매력있음"이라고 하는 걸 보고 위선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숀이 달라졌다고 하는 건 아닌 모양이지만, 일단 링 위에서 보인 행보만 봐도 전보다 훨씬 나아졌음을 알 수 있다. 이미 여러 번 언급하였듯 90년대 당시 멘탈이 안 좋을 때의 숀은 그 누구에게도 잡을 해주지 않겠다고 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러나 복귀 후의 숀은 레슬매니아에서 커트 앵글의 앵클 락에 탭아웃을 한다거나 후배들에게 패배하고, 챔피언이 되는 각본을 거부하는 등 이미 TV에서 보여준 것 만으로도 인성의 발전을 보였으니 그리 깔 건덕지가 없었다.
    레슬러로서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고 왕년의 숀처럼 멘탈도 뭣 같다는 소리를 듣고 있브록 레스너WWE로부터 빵빵한 푸쉬를 일관성 있게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WWE의 그 악명 높은 빡빡한 스케줄에 부담을 느껴 결국 스스로 제 발로 걸어 나간 것을 생각해 보자. 80년대부터 지금까지 WWE를 책임지며 꾸준한 경기력을 보여줬다는 것만으로도 엄청 성실한 인물이란 것이다. 특히 90년대 후반 WCW가 급부상하며 헐크 호건, 워리어, 마초맨 등 간판 스타들이 대거 WCW로 이적하고 WWE가 2위 단체로 전락하며 큰 위기를 보였을 때에도 숀은 WWE를 책임지며 당시 DX라는 악역으로 경기력은 물론 쇼맨십 등 최고의 퍼포먼스로 WWE가 다시 1위를 탈환하는데 일등 공신인 셈이었으니 팩트만 놓고 봐도 원래 성실한 인물이었다.[36][37]

  • WWE에서 활동했던 일본인 레슬러 후나키와 의외로 친한 사이라고 한다. 원래 후나키는 숀 마이클스를 우상으로 삼고 있었고, 쇼가 끝난 무대 뒤에서는 개인적으로 숀과 친분을 쌓았다. 후나키는 후에 NXT를 통해 WWE에 데뷔한 이타미 히데오에게 트위터로 "숀 마이클스의 경기를 꼭 챙겨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아예 후나키는 자신의 우상과 가까운 곳에 살기 위해서 일부러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숀 마이클스의 고향인 텍사스에 레슬링 도장을 차려 운영 중에 있을 정도다.

  • 파일:external/orig12.deviantart.net/shawn_michaels_playgirl_16_by_trinforthewin-d5f5z6l.jpg 파일:external/static3.thesportsterimages.com/Shawn-Michaels-bedsheets-photobucket.jpg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77db380ba80d1a67cb1a5b3ff4456282.jpg
    인기가 한창 높았던 시기에 플레이걸에 이런 사진이 실리기도 했다. 이 사진은 숀의 은퇴 이후 잊혀지는가 싶더니 DX와 Rated RKO와의 세그먼트에서 다시 공개되었는데, 숀은 이때 일을 철없던 시절의 치기로 생각하고 있는듯. 사진이 공개되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당장 저 사진 치우지 못해! 내가 미쳤지, 저런걸 왜 찍어가지고 ㅠㅠ" 라며 절규했다(...)
    후에 RAW 1000회 특집에서 DX 1,2 멤버들이 다시 뭉칠 때 저 사진이 다시 언급되었다. 이때도 숀은 멍청한 짓이었다고 자조하면서도 "그래도 돈은 짭짤하게 받았지. ㅎㅎ" 라고 해 큰 웃음을 주었다. 하지만, WWE가 암흑기 시절 버틸 수 있던 원동력 중 하나가 저것이기도 했다. 숀은 저걸로 어마어마한 여성 팬들을 끌어모았고 거칠고 땀내 나던 프로레슬링 판에 꽃미남 레슬러도 있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한 원조격 인물이다. 말하자면 프로레슬링계의 데이비드 베컴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 나이가 들면서 정수리와 M자형 탈모가 좀 심하게 진행되었는데 중간 앞머리를 길러서 묶거나, 모자 또는 두건을 쓰는 방식으로 가리고 다녔다. 한 번은 WWE의 공식 사진에 비어 버린 앞머리가 드러나자 WWE 측에서 합성 사진으로 숀의 정수리를 수정한 일도 있었으며 자신의 탈모에 대해 질문한 팬을 트위터에서 비난했다가 사과한 적도 있다(...) ##

  • 2017년 초에 개봉한 WWE 스튜디오의 기독교 영화인 '개빈 스톤의 부활'(The Resurrection Of Gavin Stone)에 조연으로 출연하면서 정식 연기에도 도전한 적이 있다. 어린 시절 스타였던 개빈 스톤이 고향으로 돌아와 교회에서 봉사를 하며 겪는 에피소드를 다룬 영화라고 한다.

  • 파일:external/blogs-images.forbes.com/CvPHXO0UAAEpePm.jpg-large.jpg
    2016년 10월에 숀 마이클스 vs AJ 스타일스라는 드림 매치의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위 사진은 AJ 스타일스가 본인의 트위터에 올린 사진으로 AJ는 '이 사진, 흥미롭지 않아?(interesting photo..... is it not?)'라는 멘트를 덧붙였다. 이는 내년 WWE 로얄럼블(2017)이 펼쳐지는 곳이 숀의 고향인 샌 안토니오 텍사스인데다가 최대 7만 명의 관객까지 수용이 가능한 알라모 돔[38]에서 열리기 때문에 WWE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흥행을 위해 열을 올릴 것이고, 그렇기에 숀을 어떤 방식으로든 출연시키지 않겠냐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오가는 도중에 이 드림 매치의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더군다나 2017년 로얄 럼블이 개최 30주년이기 때문에 WWE 입장에서는 더더욱 흥행에 박차를 가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실제로 WWE가 숀에게 접촉을 했다는 식의 루머가 이미 나온 상황이다. 다만 숀 본인은 은퇴식 때 이미 자신은 더 이상 경기를 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고,[39] 이후에도 WWE가 몇 번씩 숀에게 경기를 뛰어줄 것을 요청한 적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숀은 손사래를 치며 소신을 지키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사실 이 경기가 성사될 확률은 매우 낮다. 게다가 숀은 이미 은퇴한 지 6년을 넘어서 7년이 다 되어가는데다가 나이도 쉰이 넘었기 때문에 숀의 몸 상태가 이 경기의 성사 여부에 또 다른 변수가 될 수 있어서 경기가 펼쳐지기는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경기력과 수 없이 많은 명경기를 보여줬던 숀과 경이로운 자라고 불릴만큼 뛰어나고 화려한 기술들과 경기들을 보여주는 AJ 스타일스가 경기를 하게 된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프로레슬링 팬들은 열광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AJ 스타일스는 예전에 했던 인터뷰에서 자신의 드림 매치 상대로 숀을 뽑기도 했다. 번역 과연 이 경기가 정말로 펼쳐질지는 앞으로의 상황을 지켜봐야 될 듯 싶다.

  • 이적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선수이기도 하다. 2차 선수 활동을 시작했던 2002년도 부터 2010년까지 단 한 번도 타 브랜드로 이적하지 않고 계속 WWE RAW 소속 선수로서 활동했다. 가끔씩 스맥다운이나 ECW에서 일회성 출현을 한 적은 있긴 하지만, 타 브랜드 소속이 된 적은 한번도 없다.

  • 자칭하는 별명 중 '미스터 레슬매니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레슬매니아 전적은 17전 6승 11패에 불과해 2017년 친구 트리플 H가 해당 기록을 갱신하기 전까지 레슬매니아 최다패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 2017년 8월 20일 WWE 섬머슬램(2017)에서 쉬는 시간 중간에 KFC 광고가 나왔다. 광고가 끝나고 나서 익숙한 BGM이 나오면서 KFC 분장을 하며 등장한 사람이 있다. 그게 바로 숀 마이클스였다. 형이 왜 거기서 나와? 갑작스럽게 KFC 할아버지 분장을 하며 등장한 숀 마이클스를 보고 팬들은 주식 다 말아드셨나?, 사냥감이 요즘 안 잡히나?, KFC 할아버지의 정체가 숀 마이클스였다. 등 걱정과 재미가 섞인 반응들이었다.[40]

  • 현역 시절에 비해서 신장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과거 사진과 비교하면 육안으로도 구별될 정도. 사이코 시드와의 경기 중 시드의 파워밤이 너무 세게 들어가는 바람에 척추에 큰 부상을 당했고 이걸로 인해서 커리어 말기까지 고통에 시달린 원인이 되기도 했다. 덕분에 수술을 여러 차례 거쳐서 키가 꽤 줄어들었다. 안습(...) 헐크 호건과 비슷한 케이스인데, 이 부상의 원인을 제공한 사이코 시드는 지금도 숀 마이클스의 팬들에게 까이고 있지만 고의는 아니었다고 볼 수 있는게 숀과 시드는 아주 친한 사이다.

  • 2010년에 현역에서 은퇴하였지만, 매년 꾸준히 WWE에 출연하는 레전드들 중 한 명이다. 2011, 2012년에는 트리플 H와 언더테이커의 대립을 위해 출연했고, 2013년에는 어소리티 VS 대니얼 브라이언의 각본을 위해 출연 [41] 2014년 이후로도 계속 일회성 출연으로라도 WWE에 출연했고 2018년에는 WWE RAW 25주년 특집을 위해 출연했다.

7. 둘러보기[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WWE_HOF_logo.png

2011년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RoyalRumbleWWElogo_2017.png

1995, 1996년 WWF 로얄럼블 우승자

렉스 루거
브렛 하트

숀 마이클스

스티브 오스틴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90px-Wrestlemania_Neutral_Logo.svg.png

역대 레슬매니아 메인이벤트[★]

1996.3.31
레슬매니아 12

WWF 챔피언십
브렛 하트 vs 숀 마이클스

1998.3.29
레슬매니아 14

WWF 챔피언십
숀 마이클스 vs 스티브 오스틴

2004.3.14
레슬매니아 20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트리플 H vs 숀 마이클스 vs 크리스 벤와[왜]

2007.4.1
레슬매니아 23

WWE 챔피언십
존 시나 vs 숀 마이클스

2010.3.28
레슬매니아 26

연승 vs 경력 매치
언더테이커 vs 숀 마이클스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2003년 레슬링 옵저버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PWI 로고.png PWI 500인 선정 올해의 레슬러

디젤
(1995)

숀 마이클스
(1996)

딘 말렝코
(1997)

파일:PWI 로고.png PWI 선정 가장 인기 있는 레슬러

스팅
(1994)

숀 마이클스
(1995, 1996)

스팅
(1997)

파일:PWI 로고.png PWI 선정 올해의 감명깊은 레슬러

리키 스팀보트
(2009)

숀 마이클스
(2010)

로지타
(2011)

파일:PWI 로고.png PWI 선정 올해의 대립

커트 앵글 vs 사모아 조
(2007)

크리스 제리코 vs 숀 마이클스
(2008)

랜디 오턴 vs 트리플 H
(2009)

파일:PWI 로고.png PWI 선정 올해의 경기[44]

1993년

5월 17일
RAW

WWF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십
숀 마이클스 vs 마티 제네티

1994년

3월 20일
레슬매니아 10

WWF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십
숀 마이클스 vs 레이저 라몬

1995년

4월 2일
레슬매니아 11

WWF 챔피언십
숀 마이클스 vs 디젤

1996년

3월 31일
레슬매니아 12

WWF 챔피언십 60분 철인 경기
숀 마이클스 vs 브렛 하트

2004년

3월 14일
WWE 레슬매니아 20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3자간 경기
숀 마이클스 vs 트리플 H vs 크리스 벤와

2005년

4월 3일
레슬매니아 21

싱글 경기
숀 마이클스 vs 커트 앵글

2006년

4월 2일
레슬매니아 22

노 홀즈 바드 경기
숀 마이클스 vs 빈스 맥마흔

2007년

4월 23일
RAW

싱글 경기
숀 마이클스 vs 존 시나

2008년

3월 30일
레슬매니아 24

싱글 경기
숀 마이클스 vs 릭 플레어[45]

2009년

4월 5일
레슬매니아 25

싱글 경기
숀 마이클스 vs 언더테이커

2010년

3월 28일
WWE 레슬매니아 26

연승 vs 경력
언더테이커 vs 숀 마이클스[46][47]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태그팀

더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바비 이튼 & 데니스 콘드레이)
(1988)

더 락커스
(숀 마이클스 & 마티 제네티)

(1989)

스타이너 브라더스
(릭 스타이너 & 스캇 스타이너)
(1990)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

크리스 벤와
(1997)

숀 마이클스
(1998)

크리스 제리코
(1999)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가장 카리스마 있는 레슬러

오니타 아츠시
(1994)

숀 마이클스
(1995, 1996)

스티브 오스틴
(1997)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최고의 선역

페로 아과요
(1995)

숀 마이클스
(1996)

폐지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대립

커트 앵글 vs 브록 레스너
(2003)

숀 마이클스 vs 트리플 H vs 크리스 벤와
(2004)

바티스타 vs 트리플 H
(2005)

바티스타 vs 언더테이커
(2007)

숀 마이클스 vs 크리스 제리코
(2008)

제프 하디 vs CM 펑크
(2009)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경기 1위[48][49][50]

1994년

3월 20일
레슬매니아 10

WWF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십
숀 마이클스 vs 레이저 라몬

2008년

10월 5일
노 머시 2008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사다리 경기
숀 마이클스 vs 크리스 제리코

2009년

4월 5일
WWE 레슬매니아 25

싱글 경기
숀 마이클스 vs 언더테이커

2010년

3월 28일
WWE 레슬매니아 26

연승 vs 경력
언더테이커 vs 숀 마이클스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5성 경기

1994년

3월 20일
WWF 레슬매니아 10

WWF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십
숀 마이클스 vs 레이저 라몬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5성 경기

1997년

10월 5일
WWF 인 유어 하우스 18: 배드 블러드

WWF 챔피언십 #1 도전자 결정전 헬 인 어 셀 경기
숀 마이클스 vs 언더테이커


[1] 자서전에 의하면 어렸을 적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2] 재밌게도 애티튜드 시절을 함께 한 스티브 오스틴언더테이커도 텍사스 주 출신이다. 오스틴은 빅토리아, 언더테이커는 휴스턴 출신.[3] 본인의 트위터에서 밝힌 키. 5ft 10 Twitter[4] 역시 본인의 트위터에서 밝힌 체중.[5] 이 중 1회는 통합 태그팀 챔피언 때의 기록이다.[6] 참고로 통합 태그팀 챔피언 때의 기록이다.[7] 2년 연속 우승이다.[8] 2002년에 복귀한 후에 2003년경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영상[9] 2010년부터 은퇴이후 현재까지 사용중인 영상[10] 숀이 직접 부르고 계속 써왔던 타이탄트론.[11] 원래 이 곡의 노래는 솔로 독립때의 매니저인 센세이셔널 셰리가 불렀던 것이지만, 정말 못 불러서(...) 숀 마이클스가 직접 다시 불러 제작하였다. 센세이셔널 세리 버전의 원곡보다 훨씬 낫다 는 평을 받고 있다.궁금한 사람은 센세이셔널 셰리의 원곡 노래를 들어보자. 그리고 후에 커트앵글이 숀 마이클스와 대립했을때 셰리가 직접나와 다시 한번 불렀다..영상[12] 또 다른 한 명은 브렛 하트. 이후, 스티브 오스틴의 가세로 WWE는 암흑기를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13] 공식적으로는 레슬매니아 10에서의 래더 매치로 상대는 레이저 라몬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스캇 홀. 비공식적으로도 브렛 하트와의 래더 매치였기에 이러나 저러나 숀이 최초의 래더 매치 주인공인건 변하지 않는다.[14] 숀 마이클스의 명예의 전당 헌액때 트리플 H는 "숀이 날아가지 않도록 차고 문을 닫아둬야했다"고 조크를 했었다. 실제로 숀과 브렛이 초창기 친해진건 덩치 큰 레슬러들에게 맞서는 동병상련 때문이었다.[15] 멜쳐가 선정한 WWE에서 나온 별 5개 경기는 총 8개인데, 그 중 2개를 만들어냈다. 또다른 별 5개 경기 두개를 만든 WWE의 선수가 라이벌인 브렛 하트. 나머지 세 개는 존 시나CM 펑크의 머니 인 더 뱅크 2011에서의 경기, 2018 NXT 테이크오버: 필라델피아에서의 열린 자니 가르가노와 안드라데 시엔 알마스의 NXT 챔피언십, 그리고 2018 NXT 테이크오버: 뉴 올리언스에서 열린 6자간 NXT 노스 아메리카 챔피언십 사다리 매치, 자니 가르가노와 토마소 치암파의 논생션드 매치가 있다.[16] 오죽하면 트리플 H가 문을 차서 열면 숀이 날아간다고 농담을 할 정도[17] 프로레슬링 경기는 화려한 기술이 많이 나오거나 높은 데서 뛰어내리는 등 기술적인 측면 하나만으로 경기의 재미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물론 기술적인 측면도 필요하지만 재밌는 경기를 위해선 여러 가지 요인들이 필요한 것인데 숀 마이클스의 등부상 전 경기를 보면 정말 기술이 오고 가지 않는 그 순간들마저도 관중들이 숀에게 야유를 하거나 환호를 보내고 이를 숀이 더 유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95년 제프 제럿과 인 유어 하우스에서 가졌던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십은 숀 마이클스의 이러한 장점들이 가장 뚜렷하게 잘 드러난 경기 중 하나로 꼽히는데, 경기 내내 상대방과 관중을 휘어잡는 동시에 휘어잡는 숀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18] 숀 마이클스의 조카인 맷 벤틀리 역시 '마이클 셰인'이란 링 네임으로 활동할 때 '스윗 셰인 뮤직'이라고 이름 붙인 슈퍼킥을 피니쉬 무브로 사용했다.[19] 러닝 빅 붓이라는 평범한 기술을 피니쉬로 사용하던 故테스트 역시 허벅지를 치는 소리로 임팩트를 더한 적이 있다.[20] 사실 싱글 커리어 초기에는 이 기술을 피니쉬로 썼었다. 다만 별 임팩이 없는 기본기스런 기술이라 그런지 오래 못가 대신 준 피니쉬였던 슈퍼킥을 피니셔로 쓰기 시작했다.[21] 숀 마이클스가 신인이던 시절엔 아직 문설트가 많이 보급화 되기 전이다 보니 구사 가능한 레슬러가 많지 않았는데 덕분에 신인시절의 숀은 문설트를 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선배 레슬러들에게 귀여움을 받았었다고 한다(...).[22] 리키 스팀보트가 처음 선보인 무브이다. 이전 버전 문서에서는 움짤이 링크되어 있었는데, 거기 링크된 움짤은 스킨 더 캣이 아니라 릭 플레어의 전매특허 무브인 플레어 플립(아이리시 윕 당할때 반대편 코너로 한바퀴 돌면서 처박히는 거)이다.[23] 사실 숀은 경기를 보면 알겠지만 항상 자신을 제일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한다. 상대에게 위험한 고난도 기술을 구사하기보다는 자기가 위험한 고난도 기술을 맞거나 접수하면서 동작을 크게하고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스팟을 도맡으면서 경기를재밌게 만드는 스타일이다.[24] 특히 그 중에서도 호건, 오스틴, 시나의 공로는 WWE의 역사에 영향을 주고 바꿔 버렸을 수준.[25] 빈스는 중간 중간에 숀에게 메인 챔피언 자리에 오르는 각본을 주려고 했지만 이 때마다 숀이 거절했다. 본인이 욕심을 버린 것도 있지만 메인 챔피언에 오르게 되면 온갖 행사와 하우스 쇼 일정들을 전부 소화해야하기 때문에 이러한 빡빡한 스케줄을 피하고자 거절한 것이라고 추측된다.[26] 1차 은퇴 후에 2002년에 다시 복귀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평가를 받기는 어려웠을 거란게 대부분의 사람들의 의견이다. 그만큼 복귀한 뒤에 2010년에 은퇴하기까지의 경력이 숀에게 있어서나 팬들에게 있어서나 너무나 귀중하고 소중한 것이였던 셈이다.[27] 돌프 지글러의 경기 스타일에 대해 말하면서 '자신이 젊은 시절에 너무 오버하는 접수를 했었는데 돌프를 보면 그런 자신의 옛 모습을 보는 것 같으니 고쳤으면 한다'고 평가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숀 마이클스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90년대의 자신은 다소 오버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보는 듯 하다.[28] 다만 숀의 경기력을 한 마디로 평가할 때 보통 브렛 하트의 '정말 안전하게 경기하는 선수'라는 평이 많이 인용되는데, 이건 숀과 브렛이 화해하기 이전 한창 견원지간이었던 시절에 나온 평가이다. 만약 90년대 숀이 정말로 접수할때 오버하는 경향이 있었다면 브렛의 깐깐한 성격과 독설가 기질그리고 개인적인 원한이 어디 안 가는만큼 당연히 심심하면 이걸 가지고 가루가 되도록 깠어야 정상인데(...) 한창 사이 나쁘던 시절에도 그런 적은 없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적어도 당시 동료들의 기준으로는 딱히 오버하지 않는 안전한 접수로 여겨졌을 가능성이 높다.[29] 여담이지만 겉모습도 00년대의 숀이 90년대보다 근육이 빠지고 슬림해진 편이기 때문에 레슬러로서 쎄보이는 외향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에겐 00년대 숀은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30] 특히 고난을 극복하고 반격하고 저항한 끝에 마지막에(혹은 기습적으로) 터지는 스윗 친 뮤직은 정말이지 일품이다. 숀 본인의 타고난 연기력과 언더독으로서의 운영 능력이 보는 이들에게 최고의 몰입감을 선사하기 때문에 숀의 경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재미와 감동을 안겨줬다.[31] 다만 몇몇 이들(특히 요즘의 빠른 템포와 화려한 무브들과 범프로 이루어진 경기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느린 템포와 올드 스쿨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진 이러한 00년대 숀의 경기 스타일이 취향에 맞지 않아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32] 물론 그 때 그 시절은 본인 스스로가 실제로도 막장이였긴 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수 많은 관중들이 보는 무대에서 리얼 개객끼같은 모습을 관중들과 시비가 붙어가면서까지 보여줄 수 있다는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33] 출처는 이 곳. 훈훈한 미담은 덤이다.[34] 종교도 아내의 권유로 접한 것이다. 결혼 하나는 진짜 잘 한 셈. 워낙 불안정한 생활 패턴에 전국을 떠돌면서 활동하는 WWE 레슬러들 중 많은 수가 가정의 불화, 이혼 등을 겪지만 숀은 지금까지도 아내와 잘 지내고 있다. 구글에서 검색만 해도 가족들과 화목하게 찍은 사진들이 많이 나온다.[35] 참고로 숀의 아내는 WCW 나이트로 걸 출신으로 당시 링네임은 위스퍼(Whisper), 본명은 레베카다. 잠정 은퇴를 해야 했던 등 부상 이후 집에서 재활 중이던 숀은 어느 날 친구인 케빈 내쉬와 홀을 보기 위해 WCW 나이트로를 시청하고 있었는데, 이때 무대에서 춤을 추는 레베카를 보고 반해서 친구들에게 연락하여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이후 둘 사이에서 2000년에 아들, 2004년에 딸이 태어났다.[36] 다만 친구들이 있는 WCW로 가고 싶다고 몇 번이나 빈스에게 보내달라고 애원한 적은 있다. 'WCW? 그거 먹는 건가요?'라는 자세로 흔들리는 모습 자체를 보여준 적 없었던 언더테이커와는 대조적이다. 한때 WCW로 가려는 의지가 분명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때 빈스가 'WCW는 너 같은 선수들을 활용할 줄 모른다'고 인내심 있게 설득해서 이적의 위기를 넘겼다. 실제로 WCW에서 크리스 제리코와 브렛 하트가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돌이켜 보면 빈스의 말이 맞았다. 본인의 은퇴식에서도 이 점을 강조하며 '날 잡아준 빈스에게 너무나 감사하다'라고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37] 그리고 2000년대 이후 트리플 H와의 관계가 부각되어서 그렇지, 실제로 초창기 마이클스와 가장 친했던 동료는 케빈 내쉬였으니 이런 요구를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트리플 H는 이들의 사조직인 '클릭'에 가장 늦게 합류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 위에도 나와있듯 아내를 이어주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도 케빈 내쉬다.[38] WWF 로얄럼블(1997)이 열린 이후로 20년 만이다.[39] 실제로 은퇴를 선언했다가 다시 링으로 돌아오는 선수는 업계에서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다. 당장 릭 플레어만 해도 WWE에서 그렇게 감동적이고 성대한 은퇴식을 치뤄줬는데도, TNA에서 링 복귀를 한 예가 있다.[40] 원래는 릭 플레어가 할 예정이었는데 릭 플레어가 건강상에 위기가 닥쳐서 대신했다고 한다.[41] 이때 잠시 악역 같은 모습을 선보이기도 했다.[★] 오른쪽이 도전자, 밑줄이 승리자[왜] 그런지는 항목참조[44] 1992년부터 싱글 커리어를 시작한 이래로 부상으로 인해 1차 은퇴를 했던 1998년 4월~2002년 상반기까지를 제외한 기간중 1993년~1996년 4년 연속, 2004년~2010년 7년 연속이라는 독보적인 기록을 세웠다. 숀 마이클스가 왜 명경기 제조자인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부분[45] 이 경기에서 숀이 승리함으로서 릭 플레어는 WWE의 선수로서의 은퇴를 하게 된다.(릭 플레어가 질 경우 은퇴하게 되는 조건이 있었다.)[46] 레슬매니아 26의 메인 이벤트 경기였다.[47]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다음날 RAW에서 숀 마이클스는 선수로서의 공식적인 은퇴를 선언한다.[48] 참고로 올해의 경기 2위는 레슬매니아 24에서 펼쳐졌던 숀 마이클스 vs 릭 플레어의 경기로 숀은 2008년 올해의 경기 1, 2위를 모두 차지했다.[49]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경기 10위권안에 랭크된 경기들까지 포함시키면 커리어 전부를 합쳐서 총계 18개의 경기가 올해의 경기 Top10에 들어갔다. 올해의 경기 Top 10안에 한 번이라도 랭크되는 것조차 한 해동안 펼쳐지는 수 없이 많은 경기들 중에서 10위 안에 들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힘든 일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50] 코바시 켄타와 더불어 유이하게 3년 연속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경기 1위를 차지하는 기록을 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