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희 실종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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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행적3. 수사4. 5년 후5. 현재

1. 개요[편집]

1999년 2월 13일 밤 10시경 경기도 평택시 도일동 하리마을에서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던[1] 송혜희양이 실종되었다. 송 양은 친구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시내버스를 타고 버스정류장에서 내린 뒤 그대로 행방불명되었다. 사실 이 사건은 하술하겠지만 실종이라기보다는 납치되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

2. 행적[편집]

당일 송 양은 3학년 반 편성이 있어서 오전에 학교에 갔다가 하교 후 오후 5시 30분경 남자 친구를 만나러 남친 집이 있는 송탄동 서정리에 갔다. 정신없이 남친 집에서 친구들과 놀다보니 이윽고 밤 10시가 되었고 막차 시간이 되자 송 양은 막차를 타고 집에 갔다. 막차를 타고 가는 모습을 친구들이 배웅했으며 남친이 살던 송탄동과 송 양의 집이 있던 도일동은 불과 5k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갈 경우 10~20분 거리에 불과했지만 도일동 하리 지역이 원래 주민이 적은 지역이었고 막차 시간이라 당시 버스 안에는 송 양과 30대로 보이는 남자 한 명만 있었다.

당시 막차를 운행하던 버스 기사는 밤 10시 15분경 송 양이 도일동 하리 입구 도일주유소 앞에서 내리는 것을 기억했다. 좀 신경이 쓰였던 점은 냄새가 나는 이 남자가 송 양과 같이 내렸다고 말했다. 당시 송 양이 내린 버스 정류장은 집에서 약 1k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었고 야간이었다. 거기다 집으로 가는 길은 논밭, 야산뿐인 어두운 골목길이라 항상 우범지대였다. 송 양은 앞에서 걸어가고 남자는 송 양의 조금 뒤따라 같이 걸어갔다. 이것이 송 양의 마지막 모습이었고 그 후로 송 양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3. 수사[편집]

송 양이 집에 돌아오지 않자 밤 11시경 아버지는 송 양의 친구들에게 전화했지만 버스타고 집에 갔다는 말 뿐이었다. 마침내 다음 날 새벽 6시경 가족은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단순 가출로 처리했다가 사건 발생 3일 후에야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송 양이 일대 탐문조사, 우범자 조사 등을 통해 단서를 잡으려고 했으나 별 성과가 없었다.
송 양이 버스에서 내릴 때 같이 내렸다는 남자가 사건과 관련된 용의자 또는 최후의 목격자일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그 남자를 찾기 위해 버스 기사를 불러 조사했다.

이 때 버스 기사는 그 남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 30대 정도 되는 남자였다.

  • 오리털 파카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으며 등산화를 신고 있었다. 하지만 얼굴은 확인하지 못했다.

  • 평택 시내에서 버스를 탔다.

  • 이 동네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에[2]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더니 '도일동 하리부락' 이라고 대답했다.

  • 몸에서 술냄새가 났다.

  • 버스에서 내린 후 도로를 건너지 않고 지하도로 향했다.


그 밖에 송 양은 도로를 건너 하리 마을로 향했지만 남자는 지하도로 들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도로를 건너든, 지하도로 들어가든 하리 마을 방향인건 마찬가지이다.

경찰은 이 남자를 찾기 위해 주변 마을까지 샅샅이 찾고 일대 성매매 업소까지 수색했으나, 끝내 남자를 찾을 수 없었고 송 양도 찾지 못했다. 만약 당시 버스에 CCTV가 있었으면 희망이 있었겠지만 당시에는 버스에 CCTV가 없었다. 당시 송 양이 내린 버스 정류장에서 집으로 가는 길목은 한밤중인데다 인적도 드물고 가로등이 없어 어두운 좁은 골목길이었다. 따라서 경찰은 인원을 투입해 논밭, 갈대숲, 하수구, 산 등 인근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송양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수사에 진전이 없자 경찰은 때마침 사건발생일이 설날 사흘 전이었다는 사실에서 착안해 설을 보내기 위해 귀성한 전입자일 수 있다는 것에 가능성을 두고 도일동 일대, 평택 일대를 샅샅이 조사했으나 별다른 단서를 찾을 수는 없었다.

4. 5년 후[편집]

2004년 경찰은 수사에 별 진전이 없자 송 양이 스스로 잠적했을 가능성이 무게를 뒀다. 가족은 그럴 리가 없다고 극구 부인했으나, 경찰은 여기에 희망을 걸었다. 동년 2월, 부산광역시에서 송 양의 명의로 인터넷에 접속한 것을 포착한 경찰은 급히 부산으로 내려가 잠복수사를 했다. 다시 접속 흔적이 나타나자 경찰은 해당 피시방을 급습해 확인했다. 그러나 접속자는 송 양이 아니고 엉뚱하게도 어느 젊은 남녀였다. 조사 결과 이들은 송 양의 아버지가 딸을 찾기 위해 붙여둔 전단지에 있던 송양의 주민등록번호 등 신상정보를 도용해 접속한 것으로 밝혀졌다.

5. 현재[편집]

수사에 계속 진전이 없으면서 경찰은 수사를 잠정 중단했으며 납치 사건이었던 이 사건은 결국 2014년 2월 공소시효가 마감되었다.

송 양의 아버지는 도일동에서 아내와 두 명의 딸과 함께 살고 있던 평범한 자영업자였다. 특히 차녀 송 양은 학교에서 전교 1~2등을 다툴 정도로 영특한 아이였고 국회의원으로부터 장학금을 받기도 했던 아버지의 유일한 자랑거리였다. 무엇보다 송 양은 밝고 성실한 성격으로 주변에서 인기가 많았다.

이에 송 양의 부모님은 생업을 포기하고 송 양을 찾아나섰다. 그러나 송 양의 어머니는 딸을 찾지 못한 절망감에 우울증알콜 중독으로 괴로워하다 결국 농약 자살을 선택하고 말았다. 송 양의 언니는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지만 송양의 아버지는 딸의 방을 당시 그대로 해놓고 집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트럭을 송 양의 사진으로 도배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10년 넘게 딸을 찾아 다니고 있다.

그동안 송 양의 아버지는 딸을 봤다는 제보를 받으면 전국 어디든지 갔으나, 수백 번 모두 송양과 비슷한 사람이거나 장난전화, 허위제보였다. 그래도 송 양의 아버지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전단지와 현수막을 거는등 혼자서 개인 조사를 계속 실시했다. 하지만 생계업을 그만두고 많은양의 전단지와 현수막을 배부하느라 상당한 금액의 빚이 쌓여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현재 송양의 고등학교와 집 일대는 개발이 되어 당시 모습과 상당히 달라졌으며 송양의 집도 개발 지역에 포함되어 곧 이주해야 할 운명에 놓였다. 송양의 사연은 그 후 2004년 KBS 공개수사 실종과 2011년 채널뷰 사라진 가족에도 나왔지만 지금껏 별 진전도 없고 찾지 못했다. 2018년 현재까지도 송양의 행방은 알 수 없으며 안타깝게도 송 양의 아버지는 지금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현수막을 걸어두고 딸을 찾고 있다. 2013년까지만 해도 평택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 송양의 사진을 걸은 실종된 송혜희좀 찾아 주세요!!!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볼수 있었는데 2014년 들어 많이 없어진 듯 하다. 관련 기사 하지만 2017년에도 평택 일대에서 현수막을 볼 수 있다. 또한 여전히 서울 시내 주요부에서도 여전히 이 현수막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특히 010 번호통합 정책에 반대하는 주요 사례로 송 양의 아버지가 자주 오르내리곤 한다. 실종된 딸이 전화를 걸어올까 봐 016 번호를 바꾸지 못한다는 것이 주된 이유이다.

2015년 5월 7일, 조선일보가 송혜희 양의 아버지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시간이 흘러 60세가 넘었지만, 14년간 실종된 딸을 찾기 위해 사용한 차를 폐차한 뒤 새로 산 차의 주행거리가 20만km에 달한다고 한다. 또한 4년 전 현수막을 교체하던 중 사다리에서 떨어져 허리를 크게 다쳤다고 한다. 그래도 기초생활수급 60만원 중 40만원을 현수막 및 전단지 제작에 쓰는 등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조선일보

사건발생 3년후 송혜희양이 실종된 버스종점에서 부녀자가 실종됐다가 시신으로 발견된 사건이 있었다. 프로파일러들은 현재 이 사건과 송혜희양의 사건의 범인을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고있고 또한 2004년에 발생한 화성 여대생 사건 역시 이 두 건과 수법이 비슷해 이 3사건을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고있다. 사실 이사건역시 장기실종사건중 전주 여대생 실종 사건과 더불어 쉽게 해결할 수 있었던 사건이다. 전주 여대생 실종 사건은 언니와 친구가 현장을 훼손하는 바람에 미제가 되었지만 이 사건은 납치가 명확한데도 경찰이 단순가출로 처리해버려 3일이나 방치하다가 부랴부랴 수사를 하질않나, 목격자를 상대로 용의자의 몽타주 작성과 탐문수사 또한 하질 않았다. 또 스스로 잠적했다고 단정짓는 등 경찰 스스로가 이사건을 미제사건으로 만들어버렸다. 안타까운 것은 송양이 실종된 동네는 작은 동네였고 용의자를 목격한 목격자도 있었기 때문에 몽타주 작성과 탐문수사만 제대로 했다면 많은 증거를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인지 송양의 아버지는 경찰을 불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2015년 대한민국 메르스 유행에서 송양의 아버지가 메르스에 감염되었으나 완치되었다고 한다. 송양의 아버지는 딸을 찾기 위한 일념으로 메르스를 이겨냈다고 한다.#

서울동부지방법원문유석 판사가 그의 책 ‘개인주의자 선언’ 초반부에 짧게 4줄 정도 언급했다. 사건의 자초지종을 말한 건 아니고 한남대교를 지나며 마주치는 송 양 현수막에 대한 안타깝고 슬픈 감정을 서술했는데, 이 책이 2018년 현재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사건에 대해 잊고 있거나 모르던 사람들에게 다시금 송양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송혜희 양은 1981년 생인데 만일 현재까지 살아있다면 현재 나이는 한국 나이로 37세이다.

[1] 정확히 말하자면 2학년에서 3학년으로 넘어가던 겨울.[2] 보통 인적이 드문 곳을 자주 운행하는 버스 기사들은 자주 타는 승객들의 얼굴을 잘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