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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찬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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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김경희

출생

1972년 1월 20일, 서울특별시 강동구

본관

경주 김씨

신체

165cm, 55kg, B형

가족

오빠 3명, 언니 1명, 남편 로이[1]

학력

한림여자상업고등학교 (졸업)
경기대학교 다중매체영상학부 (중퇴)
서울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학사)
대경대학교 실용음악과 교수 (재직중)

데뷔

1996년 1집 앨범 <Cherish>
타이틀곡 '헤어지는 기회'

소속사

와이드엔터테인먼트[2]

사이트

공식 사이트
미니홈피


1. 개요2. 데뷔3. 전성기4. 음악적 평가5. 근황6. 앨범 및 대표곡7. 나는 가수다 2 경연곡8. 나는 가수다 3 경연곡9. 같이 보는 가수

1. 개요[편집]

고음 여제.
노래 좀 한다는 모든 대한민국 여자들의 우상. 노래방 가창력 판독기 끝판왕 중 한 명(...)
남자들에게 금지된 사랑, Don't Cry가 있다면 여자들에게는 Tears가 있다.

한국가수대경대학교 실용음악과 전임 교원으로 재직 중이며 당시 엠넷 음반사업부 예하 '크림레코드'의 1호 가수다. 소찬휘라는 이름은 당시 소속사 사장이 천녀유혼의 왕조현을 좋아했는데 극중 이름이 '(섭)소천'이었다고 한다.

거기다 희를 붙일까 휘를 붙일까 하다가 휘를 붙여 '소찬휘'가 되었다고 한다.[3] '노래를 솔찬히('꽤 많다' 라는 전라도 사투리) 잘해서 소찬휘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데뷔 이후에 들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도 꾸준하게 사랑받고 있는 롱런의 아이콘이 되고 있다.

2. 데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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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찬휘'라는 가수로 데뷔한 것은 1996년이지만 이미 그보다 훨씬 전인 1988년에 여성 메탈밴드 'EVE'에서 데뷔했으며, 당시 만 16살의 고등학교 2학년 여고생이었다. 밴드에서는 보컬이 아닌 기타를 맡았다. # 'EVE' 앨범은 비록 학생 신분에 낸 음반이긴 했지만 프로에 버금갈 정도의 사운드를 뽑아내 당대 언더신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음반 연주에는 세션들을 기용했으며 그렇다고 해서 소찬휘가 기타를 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 1997년 '현명한 선택' 활동 당시 각종 예능 프로 및 라디오에 나와 기타는 물론 드럼까지 치며 라이브로 노래를 불렀다. 이후 방송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기 어려웠으나 1998년 SBS의 '정동진 그린콘서트'에서 드럼을 치면서 레드 제플린의 'Rock & Roll'을 대놓고 불렀으며 # 2009년까지도 콘서트에서는 그런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당시에 여자가수 치고는 수준급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당시로서도 무척 희귀한 여성 메탈밴드라는 점 때문에 남자팬들이 꽤 있었다고 한다. 1980년대 한국 락/메탈 신을 거론하면 한두 번씩은 거론되던 밴드 출신이었던 것. 그러니까 대한민국 여성로커 계보로 보자면 제일 위에 위치해 있다는 얘기다. 대한민국 여성록계의 조상님[4] 하지만 'EVE'는 앨범 단 1장만을 내고 해체되었던 터라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후 가수로서 준비를 하려했으나 목소리가 너무 가늘어서 동요나 부르라는 선배 가수들의 말에 부단히 노력해서 지금의 목소리를 얻었다고 한다.[5] 실제로도 말할 때와 노래할 때의 목소리는 많이 다르다. 1992년 SBS 신세대 가요제에서 본인이 작사한 팝발라드곡 '사라지는 모습들'로 은상을 수상하면서 본격적으로 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 또한 KBS 드라마 '사랑을 위하여' 의 OST에 참여하여 '사랑은 힘겨움으로' 라는 노래를 불렀고 # MBC 드라마 '질투' 의 OST에 참여하여 유승범과 '우린 언제나 그 자리에' 라는 듀엣곡도 불렀다. #

과거 예능 프로그램에서 드라마 듀엣곡을 불렀는데 본인의 이름도 넣지 않았고 앨범이 나온 후에도 연락조차 못 받았다고 했던 적이 있는데 이 노래를 두고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무명기간이 제법 길었는데 1993년 첫 소속사에서는 당시 '나현희'를 밀어주는 바람에 소찬휘는 찬밥 신세였고 당시 가요계에는 강수지, 하수빈, 양수경 등 여자가수들이 청순한 컨셉으로 많은 인기를 얻은 데 반하여 락 음악을 고집하던 그녀는 항상 문전박대를 당했다고 한다.[6]

본디 1995년에 '큐브'라는 남녀혼성 댄스 그룹에서 활동할 예정이었으나 타이틀곡이었던 '헤어지는 기회'를 비롯해 앨범 전체를 녹음한 뒤 여러 사정으로 인해 그룹에서 탈퇴했다. 이듬해인 1996년에 '헤어지는 기회' 를 타이틀곡으로 한 솔로 데뷔 앨범을 내놓으면서 주목을 받았는데 이후에 예정보다 늦게 데뷔하게 된 '큐브'[7] 또한 같은 곡을 타이틀곡으로 사용하는 바람에 소찬휘 측이 그룹 '큐브'의 곡에 판매금지가처분 신청을 제기하며 법정 싸움으로 가게 되었다.[8] (관련 기사) 소찬휘 측에서 먼저 소송을 제기한 것이 작곡가 박근태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충 짐작이 된다.

참고로 발매된 큐브 앨범에는 모든 곡이 소찬휘의 목소리로 녹음이 되어있는 채로 발매가 되었다. 이것이 나중에 큰 문제가 되어 법정 싸움으로 번졌다. 앨범 전체의 수록곡 중 유독 '헤어지는 기회'만 목소리가 다르다. 큐브 버전이나 소찬휘 버전이나 녹음은 '소찬휘' 본인이 했다. 또한 두 노래의 앞부분을 빼고 가사는 동일하다. 예측컨데 소찬휘 버전으로 재녹음 시 보컬을 조금 더 갈고 닦은 다음에 녹음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큐브 앨범 수록곡들 중에서도 유독 헤어지는 기회만 보컬 목소리가 이질적이다. 그리고 큐브 버전이 조금 더 거칠게 녹음되었다. 그리고 큐브는 AR을 다시 제작하여 방송용으로 사용했다.[9] 앨범 속에는 본명인 '김경희'로 멤버 소개가 되어있다.

큐브 앨범을 들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헤어지는 기회' 이외에 동일한 곡이 한 곡 더 있다.[10] 우리나라 가요 역사상 유일무이한 엄청난 사건으로 꼽히며 리메이크도 아닌 같은 곡을 동시에 취입해서 같은 시기에 데뷔한 정말 어마어마한 사건이다. 큐브도 인지도 자체는 낮았지만 가요톱텐에서 15위까지 오를 정도로 노래 자체의 인기는 많았고 일부 중에선 황혜선이 녹음한 버전이 좋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와 관련해서 작곡가 박근태가 그때 당시 상황을 어느 인터뷰에서 말한 게 있는데 애초에 '헤어지는 기회'는 큐브에 맞춰서 곡을 썼다고 한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회사 사정으로 큐브가 데뷔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고 이후 당시 메인보컬이던 소찬휘가 솔로를 하려는데 이 곡을 써도 되겠냐고 물었다 한다. 그래서 소찬휘에 맞게 다시 편곡을 해주었고 [11] 1집 타이틀곡으로 데뷔를 했는데 문제는 데뷔를 못 한다던 큐브가 비슷한 시기에 데뷔를 해버렸다고 한다...(관련 기사) 큐브 해체 이후 1998년 남자 리드보컬 '이성민'은 '사랑해 마지막 그날까지' 라는 발라드 곡으로 데뷔했다. [12]

3. 전성기[편집]



시원시원한 가창력을 소유한 여가수. 분명 장르 구분상 댄스 가수로 구분되지만 어린 시절 메탈을 했던 경험 덕에 록 음악에 기반을 둔 시원시원한 보컬을 보여줘 대중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데뷔 당시 '제2의 박미경'이라는 수식어로 홍보를 했다.[13]

그녀의 대표곡 'Tears'와 '현명한 선택'은 발표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자들의 가창력 증명용으로 애용되고 있다. 혹은 망가지는 개그용이거나 또한 당시 인기를 힘입어 O2MUSIC이라는 인터넷 음반 사이트에서 라이센스곡으로 '덫' 이라는 디지털 싱글 노래를 발매했고 상당 기간 1위를 했다. # 또한 당대 여러 가수들의 음반에 코러스 세션으로 활동했으며 대표적으로 구피의 '비련', '쇼크'가 있고 젝스키스의 '학원별곡'[14], 클릭비의 '잊혀진 사랑' 등에서 소찬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1집 '헤어지는 기회' 앨범 자체는 그다지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노래는 많이 사랑 받은 특이한 경우며 당시 클럽 차트에서 26주 동안 1위를 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이듬해에 발표한 '현명한 선택'도 'tears' 못지않게 인기가 많았고 노래의 난이도가 무지막지해서 'tears'만큼 오랫동안 불리지는 못했으나 당시 '가요톱10'에서 6월부터 7월까지 10위권에 머물렀으며 최고 5위까지 올라가는 인기를 보여주었다. 참고로 그해 여름 10위권 내 곡을 배출한 여자 가수는 혼성 그룹을 제외하면 엄정화와 소찬휘밖에 없다.



3집 타이틀곡 '보낼 수밖에 없는 난'은 당시 27살 소찬휘가 직접 작곡하여 불렀으나 기대 이하의 아쉬운 인기를 얻었으며 1, 2집의 연이은 성공으로 본인이 하고 싶은 장르인 락으로 돌아갔지만 기대 이하의 다소 씁쓸한 결과를 냈고[15] 자신도 아쉬웠는지 훗날 리메이크로 재발매를 했다.[16]

그녀의 대표곡인 tears는 뮤직뱅크에서 5위, 타 방송사에서는 4위까지 올라갔다. 참고로 tears로 3월부터 7월까지 5개월간 활동할 때는 한 달에 1번씩만 가요프로그램에 출연할 정도로 방송 활동이 다른 가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에 비하면 선전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2001년 발표한 5집 'Change'와 'Fine'는 각각 라틴댄스, 락발라드라는 상반된 분위기의 곡이었음에도 나름 인기를 끌면서 16만 장의 판매량을 올렸고 2002년 발표한 6집 'tattoo' 역시 음반시장 불황에도 10만 장 가까운 판매고를 기록하며 선방, 여러 프로그램에 나와 가창력을 뽐낸 바 있다. 'change'나 'tattoo'도 나름대로 활동은 많이 했으나 활동 당시에는 중위권 정도에 머무르는 정도였다. 그래도 활동 당시에는 꾸준히 인기를 유지한 덕분에 준수한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선정했다. 그러한 이유에서인지 5집과 6집 활동 당시에는 전국을 돌며 콘서트 위주로 많은 활동을 했다. 위의 곡들이 활동 이후로는 크게 언급되지 못 했고 그나마 'hold me now'가 중박 정도의 인기를 얻었다.

<나는 가수다>에 등장해서 직접 부른 Tears. 20년이 지나가는 현재에도 가창력은 하나도 녹슬지 않았고 오히려 젊었을 때 라이브를 아예 뛰어넘었다![17]

현재까지도 'tears'만 유독 잊히지 않고 많이 사랑받는 이유는 소찬휘 노래 중 가장 무난한 난이도(!!!)에 곡의 기승전결이 가장 뚜렷하기 때문이다. 중저음에서 무난하게 시작해 지르기 시작하는 후렴구, 폭발하는 애드립이 다른 히트곡보다 유독 물 흐르듯 매끄럽게 이어지는데, 이게 노래방에서 롱런하며 소찬휘의 인지도를 올리는 데 크게 공헌한 것이다. 실제로 현명한 선택, 헤어지는 기회, Change, Hold me now, 보낼 수밖에 없는 난을 노래방에서 시도하는 순간 티얼스를 소화하는 사람도 성대 부여잡고 GG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티얼스를 제외하면 프로 가수들조차 소찬휘의 노래를 커버하지 못할 정도로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한다.[18] 가장 쉬운 노래라서 가창력 뽐내기용으로 많이 사랑받을 수 있었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사실 그녀는 이 곡을 준비할 때 고음은 물론 곡의 난이도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너는 내 안에 있어~' 후렴구를 스무 번 넘게 녹음했다고.. 그리고 소찬휘 노래 중에서 후렴 클라이막스 고음을 그렇게 길게 빼면서 바이브레이션까지 섞어야 되는 노래가 없었다. 실제로, 2000년 당시 활동할 때의 라이브를 들어보면 현재보다 확실히 매끄럽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 활동하는 내내 곡에 대한 스킬과 가창력이 많이 늘었다는 증거다.

'tears'는 소찬휘를 대표하는 최대 히트곡이 되었고 '헤어지는 기회'나 '현명한 선택', 'Change', 'Fine', 'Tattoo', 'hold me now' 등 적지 않은 곡이 히트하면서 당대 여성 댄스 가수로서 입지를 다졌다. 여기서 보면 소찬휘 노래 중에서 마지막 엔딩 부분에 애드립이 있는 노래들만 대중적으로 성공했다. '헤어지는 기회', '현명한 선택', 'tears', 'hold me now' 이상 4곡 정도로 뽑을 수 있다.

많은 발표곡 중에 가장 어려운 노래로 '보낼 수밖에 없는 난'을 꼽는데, 왜 최상이냐고 의문이 든다면 1998년 원곡을 들어보시라. 최고음도 그렇지만 곡의 완급 조절이 거의 예술이다. '헤어지는 기회'도 만만찮은 난이도인데, 춤 추다가 호흡조절 실패하면 망하는 곡이었던 터라 오죽하면 소찬휘 본인도 1996년 활동 당시 이 곡을 라이브로 부른 적이 없었으며 97년부터 '열린음악회' 같은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서 라이브로 불렀다. '현명한 선택' 은 휘몰아치는 후렴구에 정점이 3옥타브 솔#이며 소찬휘 댄스곡 중 유일하게 rock 비스무리하게 편곡된 곡이다.

초창기 세곡 중 하나만 불러봐도 왜 유독 Tears만 롱런하는지 그 이유를 똑똑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프로 가수들조차 티얼스 외에는 소찬휘 노래를 커버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음을 상기하시라! [19]tears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많아도 소찬휘처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Hold Me Now는 초반에 쉽게 여기고 키 높게 잡는 사람이 있는데 이러면 진짜 성대 결절 올 정도로 정말 무리하는 거다. 'Hold Me Now'라는 음절이 나오자마자 고음이 시작되고 '널 위해'라는 음절이 나오자마자 높은 고음이 나온다. [20] 그나마 4곡 중에 그나마 쉽게 들린다. 물론, 이 곡이 불가능하다는 말은 아니다.

한편 매 앨범마다 후속곡은 싸그리 망하는 현상을 보였다. 1집 '상처', 2집 '내가 배운 사랑'[21], 3집은 아예 없고 4집 '용서', 5집 'fine'[22], 6집 'friend', 7집 '바래', 8집 '사랑했을까...' 이들 후속곡 중에서 그나마 당시에 활발하게 활동하고 대중적으로 많이 노출된 것이 '내가 배운 사랑'과 '피네' 정도다. '피네'는 공중파 음악 프로엔 딱 한 번 나왔으나 되려 케이블 방송이나 여타 인터넷으로 널리 알려진 곡이다.

워낙 타이틀곡들로 서너 달 활동하다보니 후속곡까지 그 인기가 이어지지 않을 뿐더러 '앨범에 수록된 많은 곡들 중에서 왜 굳이 이 노래를?' 하고 생각되는 곡들도 많다. 그 예로 'tears'로 초대박 치고 '용서'로 진짜 용서 받지 못할 정도의 수준으로 하락했다. 그리고 2009년 디지털 싱글도 발표했지만 대중적으로는 완전히 바닥을 쳤으며 그해 KBS 뮤직뱅크에 출연한 것이 마지막 가요 순위 프로그램 활동이 되었다. 소찬휘 본인 역시 이렇다 할 히트곡을 내지 못하고 있어 갈수록 한 곡 가수로 보이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1998년에는 KBS에서 방영한 애니메이션 황금용자 골드란의 주제가를 불렀는데 오프닝에서는 특유의 시원시원한 가창력이 폭발하며 엔딩곡은 앳된 목소리를 이용한 창법을 선보였다. 당시 KBS 방영판에서 사용한 오프닝, 엔딩 모두 소찬휘가 직접 작사를 담당하기도. 가사 내용도 애니 내용과 잘 맞는 명곡이지만 소찬휘 노래답게 둘 다 굉장히 어려운 노래다. 만화 주제가라고 쉽게 봤다가 피보는 노래 중 하나.[23] 게임 쪽으로는 Ez2Dancer 시리즈에서 'Everybody Dance' 를, DJMAX 시리즈에서 'Luv Yourself' 라는 곡을 불렀다.

1997년부터 2007년 활동기간 중에는 매년 콘서트를 열었으며 전국투어도 병행했다. 특히나 1999년까지는 MR없이 밴드로만 콘서트를 진행하였으며 이후 2000년 부터는 댄스곡은 MR로, 나머지는 밴드로 진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금/토/일 3일 동안 5회 공연을 열 정도로 콘서트에 열정적이었으며 한 번 공연 때마다 2~3시간 정도였으니 정말 대단한 것이다. 거기에 소찬휘 노래의 난이도와 음높이를 생각한다면..ㄷㄷㄷ 매 콘서트에 댄스, 발라드, 락 모든 장르가 적절하게 분배되어 있어서 나름대로 볼거리, 들을거리가 많았고 관객수도 많았다. 또한 팬클럽도 어느 정도 체계적이고 규모가 있어서 지금 아이돌들과 같이 생일파티나 팬미팅도 자주 열었으며 콘서트에서도 팬클럽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녀의 가창력을 알 수 있는 또 다른 영상으로는 티삼스매일매일 기다려를 커버해서 부른 영상이 있다.

4. 음악적 평가[편집]

많은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tears 때문에 대표적인 원 히트 원더로 보는 경우가 있는데 활동 당시에는 여기저기서 소찬휘의 노래가 들렸을 정도로 상당수의 히트곡을 많이 뽑아냈으므로 원 히트 원더와는 거리가 멀다. 그중에서 현재까지도 인기를 얻고 있는 'Tears'는 오히려 당시에는 10위권 순위에서도 그다지 높지 않았지만, 그래도 10위 권 안에 든 것만으로도 어떻게 보면 정말 대단한 기록이다.

당시에는 H.O.T, 젝스키스, S.E.S, 핑클을 비롯한 1세대 아이돌의 전성시대[24]였으며, 남자 솔로가수에는 스티브 유, 임창정, 김경호, 조성모같은 당대 최고의 기량을 가진 가수들이 버텼던 시대였던데다, 여자 싱글 가수는 1990년대의 신데렐라로 공중파 방송에서 32회 최다기록의 1위 트로피를 차지한 롱다리 디바 김현정, 자타가 공인하는 당대 최고의 섹시 퀸이자 한국의 마돈나 엄정화, 1990년대 후반에는 테크노의 여왕 이정현과 무서운 여고생 가수 박지윤이 있었고 아시아의 별 보아와 양강구도를 만들었던 2000년대의 스윗하트 장나라가 있었던 데다 아이돌이라고 불리지만 않았던 10대들의 우상 양파도 있었다. 그리고, 룰라, , 스페이스 에이, , 코요태와 같이 수많은 히트곡을 남긴 강력한 혼성 그룹들도 존재했던 시대였기 때문에 이런 죽음의 조들을 뚫고 1위 트로피를 단 한 번이라도 차지한 적이 있거나, 10위권 안에 들어가면서도 역사에 길이남을 히트곡을 남긴 가수들은 그야말로 대단한 기록을 세운 것이다.

그녀의 대표곡 'tears'는 그해 3월부터 7월까지 순위권 내에서 정말 오랫동안 사랑받은 곡으로 각 방송사에서 10위 권까지 들었으며 '인기가요'에서 4위까지 든 게 최고 기록이다. 6~7월을 정점으로 천천히 하락했다.

여담으로 데뷔 이후부터 지금까지 웬만한 히트곡들은 거의 댄스곡이다. 3집과 7집을 제외하고는 모든 정규앨범 타이틀곡은 댄스였지만 그럼에도 'rocker'로 소개된 적이 있다. 아무리 록에 기반을 둔 음악성과 보컬이라도 하고 있는 음악이 댄스였기 때문에 활동기간 보컬의 정체성에 대해 어느정도 잡음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3집과 7집을 제외한 소찬휘 앨범 수록곡마다 rock 장르의 비중은 절반 정도로 굉장히 높은 편이었으나 방송에서 보여진 노래는 5집의 'fine'과 7집의 'hold me now'밖에 없다. 2009년에 발표한 '가슴에 못박혀'부터 성공한 노래는 없지만 rock 장르를 고집하면서 자신의 음악적 색깔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하여 지금은 rocker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게 들리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대중들은 '댄스가수'로 기억하고 있다. 3집이 대중적으로 성공을 했다면 이후로 아예 rock음악을 했을 수도 있었으나 그렇지 못했고, 다시 rock을 하기로 결심하고 발표한 7집도 어느 정도의 인기는 거두었으나 그동안의 댄스곡들에 많이 못미치는 성적이었다. 이후 8집 앨범에서 다시 댄스로 전향했으나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1996년부터 2009년까지는 꾸준하게 앨범도 내고 가요 순위 프로그램도 출연했을 만큼 적지 않은 활동을 했지만 대중의 기억 속에는 'tears'와 희미하게 기억되는 '현명한 선택'만이 소찬휘를 기억하게 한다. 그나마 오락실에서 '펌프'를 좀 했던 사람들이 '헤어지는 기회'를 기억한다.

5. 근황[편집]

2011년 말부터 나는 가수다 출연설이 돌았지만 본인이 부인했고 2012년 1월부터 나는 가수다에 신효범과 함께 투입될 것으로 알려졌었지만 그것도 사실이 아니었다. 출연설만 꾸준히 돌다가 2012년 나는 가수다 2 9월 경연부터 투입되어 참여하다가 10월 후순에 탈락자로 선정돼 하차했다. 가창력은 검증받았지만 난해한 편곡과 특유의 꺾는 창법 때문에 혹평을 받은 게 광탈의 원인으로 볼 수 있다.

폭소클럽이라는 프로에서 가성으로 4옥타브 파 (정확히 말하면 F6)을 낸 전례가 있다. #[25] 데뷔 전 이미 성대결절을 심하게 겪고 나서 만들어진 목소리라[26] 지금까지 음역을 낮추거나 후달리는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방송에서 노래로 최고음역을 찍은 노래는 가성음역 대로는 2001년 주영훈의 메모리즈에서 부른 '매일매일 기다려'며[27] 진성은 2015년 나는 가수다에서 부른 'Tears'와 '보고 싶다'다.[28] 아무리 예전만 못하다 하더라도 레전드는 레전드다.

2014년에는 무한도전 토토가에 출연하며 나가수 이후 오랜만에 예능에 출연했다. 소찬휘란 가명보다 김경희란 본명으로 더 많이 불렸다 토토가의 특성상 노래방에서 자신들의 노래로 95점 이상을 받아야 참가가 가능하다는 조건에 경악을 했는데 노래방에서 자신의 노래로 고득점을 받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부른 노래는 명실상부 그녀의 최고 히트곡인 'Tears'.[29] 여전히 녹슬지 않은 가창력을 선보였다. 점수도 95점이 넘어 토토가에 출연하게 되었다. 무대 의상으로 'Tears' M/V 속의 의상과 비슷한 옷을 '무도'에서 제작해 주어 입었는데 어깨에 뿔을 달았다고 놀림 받았다. 과거 의상은 살이 많이 붙으셔서 입지 못하신다고.... 본인은 그 의상이 땀이 안 빠져서 팔이 안 움직인다고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5년 1월 3일 무한도전 방송분에서 명불허전의 가창력을 뽐냈다. 1997년 2집 대표곡인 <현명한 선택>과 [30] 2000년 4집 대표곡인 <Tears>를 한 키라도 낮춰서 부르면 혼날 것 같으니까 원키로 음이탈이나 불안정 한 번 없이 시원하게 뽑아냈으며 3일 뒤에 새로운 곡인 '글래스 하트'로 컴백했다. 또한 토토가 출연 이후로 동아출판유튜브 초등 참고서 광고 섭외가 들어왔으며 '현명한 선택'을 개사해서 CM송으로 불렀다

2015년 1월 30일부로 나는 가수다 3에 출연해서 토토가 이후에 소찬휘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으며 많은 네티즌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렸다. 과거보다 답답해진 음색과 창법에서 풍기는 올드함, 그리고 명쾌하지 않은 편곡 등이 주된 이유인데 이러한 이유로 나가수 시즌2에서도 광탈하였다. 과거의 라이브 무대들과 비교를 해본다면 확실이 음색이 굵직해졌고 고음부분에 있어서 예전보다 날카로운 맛이 없어지기는 하였다. # [31] 또한 연륜 때문인지 과거보다 창법에서 약간의 트로트삘이 나는 특유의 꺾는 창법이 두드러지게 보이면서 디시인사이드 '나는가수다 갤러리' 에서는 '뽕찬휘', '싼찬휘'[32] 라는 말도 생기게 되었다. [33] 거기에 순번까지 자주 후번대를 받음과 동시에 곡 선정 또한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곡이 아닌, 경연에 적합한 널리 알려진 대중적인 곡을 선곡하여 뭇매를 맞았다. 거기에 발라드 곡들마다 보여지는 비슷한 패턴의 편곡 [34] 은 한계에 다했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2016년 기준으로 '소찬휘'로 데뷔한 지 무려 20년이나 되었고 노래를 시작한 지 24년이 된 가수로서 그 정도의 성량과 음역대를 유지하면서 과거의 히트곡들을 무리없이 부른다는 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다. [35] 경력이 오래 될수록 목관리도 힘들고, 시간의 흐름 속에 신체노화도 오는데, 성량 음색 이걸 다 유지하고 창법까지 그 시대에 맞게 변화하는 대중가수가 과연 몇이나 될까 하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 락보컬 같은 내일이 없이 질러대는 유형이라면 그런 점이 더 한데,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가수들중 현재는 성대결절로 인해 더이상 전성기만큼의 라이브를 뽑아내지 못하는 가수가 많다.대표적으로 락계의 끝판왕이였다가 성대결절이 와서 한번 크게 몰락한 적이 있는 박완규와 김경호.물론 이들은 성대결절을 극복하는 엄청난 일을 해내고 다시 활동중이지만 이들은 전성기가 확실히 넘사벽이라 현재와는 비교 할수가 없다. 민경훈마저도 버즈 노래는 원키로 부르는 일이 없을 정도이다. 나가수 활동으로 대중의 호불호가 갈린다고 해도 뛰어난 실력과 몸관리는 박수 받을 만 하다.

또한, 토토가에 출연할 때 1990년대 가수 중 유일하게 1위는커녕 10위권 내에 진입한 곡이 두 개뿐인 가수가 섭외 되었다는 것에 일부 네티즌들이 거품이라고 인터넷상에서 깎아내린다. 하지만 그 시대 많은 가수들이 립싱크로 때울 실력 밖에 안되었거나, 인기 하락으로 대중가요에서 멀어져서 참석을 스스로 원치 않거나, 남아있는 현역들이 그때의 기량을 유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인데, 시간이 지나도 옛날 그대로의 자기 노래를 들려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특히나 소찬휘 노래의 난이도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과거보다 더 안정적으로 자신의 노래를 소화한다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토토가에서 당시 자기들 노래를 이렇게 잘 부르는 가수팀이 있었는가? 지금의 대중들이 당시 수많은 가수들 중에서 '소찬휘'를 기억하는 것은 화려한 비디오형 가수가 아닌 대단한 오디오형 가수였기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것이 가능했다고 본다.

복면가왕 42차 경연에서 북바라북바북밥바 북치는 소녀라는 이름으로 참가해 예선전 상대인 맑은 소리 고운 소리 실로폰을 이겼으며 준결승 상대인 나 돌아갈래 오르골에게 밀렸다. 출연 목적은 공백이 좀 있다 보니 "목소리가 안 나와서 안 나오는 거 같다"는 게 아님을 보여 주기 위해 나왔다고 언급했다.[36]

2017년 1월 1일, 밴드 스트릿 건즈의 베이스 연주자인 6살 연하 로이와 상반기에 결혼식을 할 예정이라고 하며 두 사람은 이미 혼인신고를 마친 상태라고 한다. #

2017년 8월 31일 해피 투게더의 코너 '내 노래를 불러줘'에 출연했는데, 일반인이 노래방에서 'Tears'를 선곡하여 20분도 안 되어 퇴근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37].

6. 앨범 및 대표곡[편집]

앨범

연도

대표곡

1집

1996

헤어지는 기회, 상처

2집

1997

현명한 선택, 내가배운사랑

3집

1998

보낼 수밖에 없는 난, 못된송아지

4집

2000

Tears, 용서

5집

2001

change, fine

6집

2002

tattoo, friend

7집

2005

hold me now, 바래

8집

2006

beautiful night, 사랑했을까

싱글

2009

가슴에 못박혀

싱글

2012

come on

싱글

2013

보낼 수밖에 없는 난

미니앨범

2014

사랑해서 그런다

싱글

2015

glass heart

싱글

2015

바보야[38]

7. 나는 가수다 2 경연곡[편집]

경연

노래

순위

새가수 초대전

불티 - 전영록

9월의 새가수

9월 B조

고래사냥 - 송창식

상위권

9월의 가수전

어떤가요 - 이정봉

6위

10월 B조

성인식 - 박지윤

하위권

10월 고별가수전

가지마오 - 산울림

고별가수

8. 나는 가수다 3 경연곡[편집]

경연

노래

순위

1라운드 1차경연

넌 그렇게 살지 마 - 박미경

5위

1라운드 2차경연

님은 먼 곳에 - 김추자

4위

2라운드 1차경연

사랑이 지나가면 - 이문세

5위

2라운드 2차경연

가질 수 없는 너 - 뱅크

2

3라운드 1차경연

어떤 이의 꿈 - 봄여름가을겨울

3위

3라운드 2차경연

금지된 사랑 - 김경호

1위

4라운드 1차경연

Tears - 소찬휘

1위

4라운드 2차경연

보고 싶다 - 김범수

3위

5라운드 1차경연

잘못된 만남 - 김건모

1위

5라운드 2차경연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께요 - 장혜리

5위

6라운드 1차경연

- 김현정

9. 같이 보는 가수[편집]

[1] 스트릿 건즈의 베이시스트[2] 대표자가 '김경희' 본인으로 되어있다..ㄷㄷ[3] 한자로 깨일 소(蘇), 빛날 찬(燦), 빛날 휘(輝)인데 어려워서 본인도 아직까지 제대로 못 쓴다고 한다. 당연하지. 획이 많으니까.[4] 참고로, EVE 출신은 아니지만 소찬휘의 절친인 '미스 미스터'의 김민정(기타)과 박경서(보컬)도 소찬휘와 같은 위치에 있던 인물들이다.[5] 소찬휘에게 동요를 권했던(?) 선배는 다름아닌 ‘다줄거야’의 가수 조규만과 그룹 ‘리플레이’의 김우디였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웃고 넘길 수 있는 이야기다. 소찬휘는 당시 그 말에 자극 받아서 2년 동안 무작정 음악에 매달렸고 발성법도 잘 모르면서 피토할 때까지 소리질렀다고.. 그때 고음 부분을 터득했고, 지금도 고음에서는 약간 탁성 비슷한 소리가 난다고 말했다.[6] 토토가 이후의 인터뷰에서는 당시 비쥬얼 적으로 너무나 많은 혹평을 받아 노래 아니면 안 되겠다 라는 심정으로 그렇게 고난이도의 노래들을 불러왔다고 얘기했다.[7] 소찬휘는 3월에 mbc에서 첫 방송을 했고 큐브는 5월에 kbs에서 첫 방송을 했다.[8] 이 때문에 가요톱텐에서는 '헤어지는 기회'가 소찬휘 곡인지 큐브 곡인지를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9] 멤버중 '황혜선'이 재녹음을 했다.[10] 큐브 앨범에는 '잊혀진 너'라는 곡, 소찬휘의 앨범에는 '흩어진 기억'이라는 노래인데 중간에 남자의 랩을 빼면 아예 똑같다. 그런데 큐브 앨범에는 '김세희' 라는 이름으로 작사, 작곡이 되어있고 소찬휘 앨범에는 '소찬휘' 본인 이름으로 되어있다. 이 노래는 큐브 버전과 소찬휘 버전 둘 다 목소리가 동일하다.[11] 두 노래가 똑같지만 소찬휘의 '헤어지는 기회'가 좀 더 매끄럽게 편곡되어 있다. 두 노래의 녹음 기간차는 약 5~6개월 정도가 난다.[12] 이성민은 데뷔 후 인터뷰나 경력사항에 큐브 얘기는 아예 기록하지도 않았다.[13] 당시의 박미경이라면, 가창력의 끝판왕급이었다고 봐도 되었다.[14] 마지막에 샤우팅도 소찬휘가 직접 했다.[15] 2집 앨범에 비하면 판매량이 1/3 수준 정도밖에 미치지 못하였지만 앨범에 자작곡 및 자신의 확고한 음악색깔을 보여주며 나름대로 매니아를 중심으로 소찬휘가 락을 하는 가수라는 인식을 심어준 계기가 된 앨범이었다.[16] 이 곡의 난이도는 지금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참고로 코요태 신지가 노래 대회에서 이 노래를 부르고 입상하여 가수로 캐스팅되었다.[17] 유투브의 배댓에 "존나 이거 내 노래니까 이 정도 못 하면 부르지마!! 하는 거 같다"라는 반응이 있다.[18] 히든싱어 당시 오디션 곡이 '현명한 선택'이었다.[19] 서문탁이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현명한 선택을 원키로 불렀다가 제대로 굴욕을 당했다. (서문탁이..ㄷㄷㄷ) 소찬휘 노래는 노래방에서 남자키로 바꿔도 후덜덜한 노래들이다.[20] 근데 솔직히 이건 고음이 아니라 비명 수준으로 높아서 그렇다.[21] 참고로 이 곡은 타이틀곡으로 활동하려다가 반응이 안 좋아서 '현명한 선택'으로 바꾸었다고 한다.[22] 파인이라고 많이들 우기는데 피네라고 읽는 것이 맞는다. 이 단어는 이탈리아어로 끝이라는 뜻을 지닌 음악 용어다.[23] OP도 ED도 원판보다 분위기가 잘 맞는다는 평. 골드런의 국내판 오프닝곡과 엔딩곡은 예외적으로 호평을 받은 것을 넘어 원판 초월곡으로 인정받고 있다.[24] 소찬휘는 1세대 아이돌의 대표주자 H.O.T와 똑같이 1996년에 데뷔했으며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25] 진성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가성이 맞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 라고 말할 때 내는 3옥타브 라#까지는 흉성과 두성을 섞어내는 진성, 믹스보이스 발성이고 그 이후부터는 진성을 섞지 않고 오로지 두성만을 이용해 내는 가성이다.[26] 과거 인터뷰에서 발성법도 제대로 모르고 오로지 굵은 목소리를 위해 무작정 노래 연습을 하여 지금의 목소리를 얻었다고 했는데 그때 피도 심하게 나왔다고 했다. 목이 쉬어도 '현명한 선택'과 'tears'를 원키로 찍어대는 성대다...ㄷㄷㄷ[27] 4옥타브 레.[28] 4옥타브 도.....[29] 대한민국에서 10대부터 4~50대까지 고르게 사랑받는 대표적인 노래다.[30] 방송에서 부른 것은 2007년 리메이크 버전. 무슨 이유인지 2006년 이후로 원곡버전 MR을 쓰지않았다.[31] 2000년 9월 열린음악회의 '현명한 선택 + tears'와 올해 토토가의 '현명한 선택 + tears'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32] '헤어지는 기회'와 '넌 그렇게 살지마'로 굳혀버렸다.[33] 소찬휘 본인도 많은 댓글들을 보며 이 부분을 인지하였으나 본인의 나이가 적지 않은 것에 대해 어쩌겠냐며 내려놓는 모습을 보였다.[34] 가질수 없는 너, 금지된 사랑, 보고싶다... 금.사와 보고싶다 는 후반부 에드립도 비슷하다. '님은 먼곳에' 같은 편곡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것도 문제였다[35] 현재 '이은미'도 1992년 데뷔곡인 '기억속으로'는 원키로 힘들 뿐더러 디바 '박미경'도 '이유같지 않은 이유'는 1994년 발표 당시의 원키로 부르기가 힘들다.[36] 참고로 이 경연은 마지막 대결이 삼파전이어서 총 득표수가 199표였고, 마지막 대결에서 94표를 받았다. 이는 이 경연 패배자 중에서 최고 득표다.[37] 사실 다른 방에서 'Tears'를 선곡하여 더 빨리 퇴근할 수도 있었지만 그 방에서 취소버튼을 누르고 오렌지캬라멜까탈레나를 선곡하여 조금 늦어졌다.[38] 박명수와의 콜라보레이션. 박명수가 작사, 작곡, 랩 파트를 맡았다.[39] 항목 참조. 작사도 직접 했다.[40] 데뷔 계기가 한 오디션에서 '보낼 수밖에 없는 난'을 부르면서였다. 대결 노래가 좋다에서 시청자에게 'Tears'로 쳐발린 것은 잊자 다만 성대결절이 여러 번 오면서 신지의 목상태가 좋지 않았던 점을 감안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