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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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주식회사
Sony Corpo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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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명칭

ソニー株式会社

영문 명칭

Sony Corporation

업종명

가전제품, 반도체 제조업, 엔터테인먼트, 게임, 금융

설립일

1946년 5월 7일

주소

일본 도쿄 미나토 구 코난 1가 1번 7호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 이부카 마사루

대표자

히라이 카즈오[1]

임원진

CEO 히라이 카즈오
CFO 요시다 켄이치로

한국 지사 대표

모리모토 오사무

기업 규모

대기업

상장 여부

상장기업

상장 시장

도쿄증권거래소,오사카증권거래소
뉴욕증권거래소,런던증권거래소

자본금

8,588억6,700만엔 (16년 3월 31일 시점)

매출액

8조1,057억엔 (16년 3월 결산기준)

영업이익

3,045억400만엔 (16년 3월 결산기준)

순이익

2,420억8,400만엔 (16년 3월 결산기준)

총자산

16조6,733억엔 (16년 3월 시점)

직원 수

12만 5,300명(16년 3월 기준)

링크

공식 홈페이지


1. 개요
1.1. 지분구조1.2. 슬로건
2. 역사3. 사옥4. 사업분야
4.1. 텔레비전4.2. PC4.3. 음향기기4.4. 로봇4.5. 게임기4.6. 카메라4.7. 캠코더 및 방송장비4.8. 엑스페리아4.9. 2차 전지4.10. 기타 4.11. 전용 규격 집착
5. 근황
5.1. 부활
6. 한국법인
6.1. 소니코리아6.2. 한국소니전자
7. 주요 자회사8. 관련 제품 및 브랜드9. 관련 인물10. 관련 사고11. 관련 항목

1. 개요[편집]

BE MOVED.

감동이 됩니다.

Creating unique new cultures and experiences. Everything we do, is to move you emotionally.
독특한 새로운 문화들과 경험들을 창조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정서적으로 당신을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소니 70주년 기념영상 (Sony's 70th Anniversary "New Story, New Sony.")

정식명칭은 소니주식회사(ソニー株式会社)로 1946년 설립된 일본을 대표하는 다국적기업이자 브랜드다. 현재는 넓은 의미로 지주회사 격인 소니주식회사를 중심으로 한 거대한 소니그룹을 가리키며, 좁은 의미로는 단순하게 일본의 소니주식회사 자체만을 가리키기도 한다.

한때 전세계를 휩쓸던 일본 전기전자 대기업을 대표하는 이름이였고, 현재는 사업분야를 기존의 전자제품 제조업에서 확장시켜서 복합 엔터테인먼트와 금융기업으로 확장시킨 상태다.[2]

1946년 도쿄통신공업주식회사(東京通信工業株式會社)라는 이름으로 패전 이후 설립된 회사이기 때문에 파나소닉(舊 마츠시타전기산업), 미쓰비시전기, 히타치, 도시바 등 동업종의 다른 일본 대기업과 다르게 전범기업 논란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3][4]

참고적인 사항으로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의 공식 후원사이기도 했으며, 근데 소니가 세계적인 스포츠 행사에 스폰서로 참여한 것은 수도 없이 많다. 직영 생산시설(소니가 100% 출자한 현지 법인 포함)은 일본, 중국, 대한민국,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브라질, 멕시코 등지에 분포한다. 프랑스, 미국 등지에도 직영 공장을 둔 적이 있었으나 높은 인건비를 가지는 터라 현지공장을 두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실질적인 소니의 중심은 미국으로 봐도... 당장 소니픽쳐스,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 같은 엔터기업의 본사는 미국에 위치하고 있다.

1.1. 지분구조[편집]

2016년 9월 30일 현재 소유자별 지분율 현황이다. 절반이상의 지분은 일본기업과 일본인이 아닌 외국인이 소유하고 있다.

소유자

지분율

외국인(법인)

56.6%

일본 내 금융기관

21.5%

일본인 개인 외

19.1%

일반법인

2.0%

일본 내 증권회사

0.8%


2016년 9월 30일 현재 대주주는 다음과 같다.

1. Citibank as Depositary Bank for Depositary Receipt Holders(씨티그룹)[5] - 8.2%
2. 일본트러스티서비스신탁은행(日本トラスティ・サービス信託銀行)[6] - 5.9%
3. JPMorgan Chase Bank(JP모건 체이스은행)[7] - 5.1%
4. 일본마스터트러스트신탁은행(日本マスタートラスト信託銀行)[8] - 5.0%

일본의 주요 대기업들이 그렇듯이 특정 대주주가 소유하는게 아닌 일본의 은행, 신탁은행, 기관들이 소수의 지분을 고루 소유하는 형태로 되어있다.

1.2. 슬로건[편집]

소니의 회사 슬로건은 1982년부터 시작되어 여러 광고나 로고 밑에 사용되고 있다. 현재의 슬로건은 BE MOVED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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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 It's a Sony[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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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 Digital Dream Kids[10]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Do_you_dream_in_sony.jpg
1998 - Do you dream in Sony?

2002 - Ubiquitous Value 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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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 like.no.other

파일:external/av.watch.impress.co.jp/sony3.jpg
2005 - Sony United[11]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Sony_make.believe_logo_%28Other%29.svg.png
2009 - make.believe[12]


make.believe 소개 영상

파일:external/ihatetomatoes.net/img_be-moved-sony.jpg
2013 - BE MOVED[13]


BE MOVED 소개 영상

2. 역사[편집]

역대 소니 CEO

타몬 마에다(1946~1951)

이부카 마사루(1951~1976)

모리타 아키오(1976~1994)

오가 노리오(1982~1995)

이데이 노부유키(1995~2005)

하워드 스트링거(2005~2012)

히라이 카즈오(2012~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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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자는 모리타 아키오(盛田昭夫)(1921~1999)와 이부카 마사루(井深大)(1908~1997)이다.

1946년 초 일부가 무너진 도쿄의 니혼바시 백화점에서 라디오 수리점으로 시작한것이 소니 그룹의 시초다.

설립 당시의 직원도 20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40년대 말 최초로 생산한 제품은 전기밥통이었다.

원래 사명은 도쿄통신공업주식회사(東京通信工業株式会社)였는데, '도츠코'(東通工)란 기괴한(?) 브랜드 네임으로는 세계 시장을 두드리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고 1956년에 소니로 바꾼다.[14] 이는 짧고 쉽고 산뜻한 느낌을 줄 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서도 똑같이 읽힌다'는 훌륭한 브랜드 마케팅의 사례로 꼽힌다. 언어학적으로 볼때 CV+CV형이라 어떤 언어에서도 발음 가능한 단어.[15][16] 어원은 sound나 sonic의 어원인 라틴어 ‘sonus’와, ‘sonny’의 합성어라고 한다. 오죽했으면 워크맨으로 전세계를 뒤흔들었을 때에도 미국인들이 토요타는 일본기업[17]이지만 소니는 미국기업이라고 알고 있었을까.[18] 자세한정보.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미국에 수출하기 이전의 극초창기의 주력 사업은 패전 이전에 일제 당국에 의해 봉인당한 단파라디오를 패전 후 정상화시키는 복구수리작업과 방송국 납품용 녹음기 제작이었다고한다.

공동 창업자중 한명인 모리타 아키오는 세게 2차대전후 미국이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될것이라 예측하였다. 따라서 미국에서 먹히면 전 세계에서도 먹힐것이라 예상하고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미국 뉴욕 맨해튼 5번가에 일장기가 없다는 것을 본 모리타는 5번가에 일장기를 걸겠다는 신념으로 열심히 일하였고 결국 1962년 맨해튼 5번가에 소니 쇼룸을 열고 일장기를 걸게 된다. 모리타의 노력으로 소니가 미국을 진출하여 트랜지스터 라디오, 트리니트론, 워크맨등 혁신적인 제품을 연달아 내놓자 전후 저질 제품의 이미지였던 일본전자제품을 고성능이며 독창적인 제품의 이미지로 탈바꿈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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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로고 변천의 역사 1961년부터 변화없구만 해상도가 좋아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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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초 미국 뉴욕 타임 스퀘어의 소니 전광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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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소니와 필립스가 CD 공동개발을 결정할 당시의 모습. (왼쪽부터) 모리타 아키오 소니 회장과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필립스 오디오 부문의 조프 반 튈뷔르흐 필립스 오디오 부문 대표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기사참고.

3. 사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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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의 옛 고텐야마 초대 본사의 모습 (2006년 매각되어 현재 철거됨)

5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초까지 사용됨
이전까지 소니는 조그만 사무소를 빌려서 본사로 사용하고 있었으나 그 이전에는 무너진 백화점에서 시작했다. 이 건물 이후부터 자체적인 본사건물을 가지게 된다. 이는 매우 의미가 깊은데 이 건물을 완공한 이후에 소니의 전성기가 찾아와 일본을 대표하는 전자 대기업으로 발전하게 된다. 거의 소니의 창업 성지와 같은 곳 소니의 골수 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006년 하워드 스트링거 CEO에 의해 매각되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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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완공해 2005년까지 사용된 소니의 시나가와 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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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본사 간판의 모습

소니의 1990년대 한창 전성기때 부터 쇠퇴기 초반까지[19] 사용했던 건물. 소니의 워크맨 디자인이 반영된 건물이다. 당시 소니를 방문한 삼성전자 직원은 이 본사건물과 소니 직원을 보고 사원과 사제들을 보는것만 같았다고 소니 직원들은 NS 빌딩이라고 불렀으며 주변의 건물 10채가 모두 소니 소유로 당시 시나가와 본사 지역은 "소니 타운"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소니가 세계 시장을 주름잡을 때 고텐야마와 시나가와에는 7000명 이상의 임직원이 근무했다. 지금은 의료기기 사업에 종사하는 직원을 중심으로 1000명을 밑돈다. 2014년말까지 ‘소니역사자료관’을 제외하고 모든 건물과 토지가 매각대상에 포함되면서 소니 타운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현재 NS 빌딩과 토지는 자회사 소니 생명보험에게 매각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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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부터 사용하고 있는 미나토구 현재 본사 (소니 시티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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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본사의 간판의 모습

이전의 시나가와 본사가 소니의 기업 규모에 맞지 않게 매우 작았는데 이는 소니의 각 사업부들이 독자적인 본사를 갖고 있었고 서로 분리되어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본 시나가와 본사의 크기보다 소니 아메리카의 뉴욕본사(뉴욕 소니빌딩)의 크기가 더욱 컸다. 따라서 통합적인 기업운영과 노후화된 이전 본사 건물의 대체를 위해서 2006년 현재 미나토구 통합 본사로 이전하고 소니 시티로 이름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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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오사키 테크놀리지 센터 (현재 소니 비주얼 프로덕트 본사)

트리니트론 브라운관을 개발했던 오사키 공장과 연구소가 있던곳으로 현재 건물을 신축하어 테크놀리지 센터가 되었다. 현재 소니 비주얼 프로덕트가 사용하고 있으며 소니 TV 사업의 중심지다. 2013년 경영 악화로 인하여 닛폰빌딩펀드와 한 개인 투자자에게 1천110억엔(1조3천억원)에 매각했다. 향후 소니 비주얼 프로덕트는 이 건물을 임차해 사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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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의 본사(前 소니 아메리카 본사)

2002년 미국 AT&T로부터 사들여 미국 소니의 중심지로 사용되었으나 2013년 체트리트 부동산 컨소시엄에 11억(약 1조1천600억원)달러에 매각했다. 2016년 2월까지 임대하여 사용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다른곳으로 이전했다. 건물 1층에는 소니 스타일 매장과 소니 원더 과학 기술관(Sony Wonder Technology Lab)이 있었다. 2016년 4월 13억달러에 아랍계자본인 올랴얀 그룹의 첼스필드 파트너스에 매각되면서 소니 빌딩이란 명칭도 사라지고, 현재 550 매디슨 애비뉴로 550 Madison Avenue빌딩 명칭이 변경되었다. 1층에 위치했던 소니 원더 과학 기술관은 2016년 1월 29일에 폐관했다. 2017년 현재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만 이곳에 본사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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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샌디에이고에 위치한 북미 소니 전자 본사[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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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토론토에 위치한 소니 캐나다의 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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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 포츠다머 플라츠에 위치한 소니 센터

2000년 7월에 개관한 소니 유럽 본사 및 종합문화센터다. 2008년 매각했지만[21] [22]아직 소니 사무실(일부는 영국등으로 이전)과 소니 매장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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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 컬버시티에 위치한 소니 픽쳐스 엔터테인먼트 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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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 샌머테이오에 위치한 소니 인터렉티브 엔터테인먼트 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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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룬드에 위치한 소니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즈의 연구개발센터

4. 사업분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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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의 소니의 브랜드

소니와 파나소닉간 각축전이 심했던 시절에는 소니는 동일본(간토)을 대표하는 기업, 파나소닉은 서일본(간사이)을 대표하는 기업의 이미지가 강했다. 이는 물론 흑색가전 특히 AV기기 분야에 한정.[23] 또한 기업이념을 보면, 소니의 기업이념은 창의성을 중시하는 서양회사와 비슷하지만, 파나소닉의 기업이념은 집단주의, 책임, 협동 등으로 대표되는 전형적인 일본기업이다.

그리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영화, 애니메이션, 음악, 온라인, 비디오 게임 등의 미디어와 하드웨어를 동시에 생산, 공급, 유통할 수 있는 기업이다.[24] 이것이 현재로서는 다른 기업과는 가장 크게 차이나는 유일한 부분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엑스페리아 X1나, PSP에 번들로 스파이더맨 실사영화 시리즈가 들어있을 수 있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전자제품 부분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참고로 소니가 현재처럼 이런저런 미디어의 제작투자에 관련되어 있는 것은 1987년 한창 전성기때 소니의 CEO였던 오가 노리오가 "이젠 기술력은 다 고만고만하고 하긴 당시에는 내가 제일 잘나가 상태였으니[25] 앞으로는 기계 안에 들어갈 콘텐츠로 승부해야한다"고 생각하여 실제 제품의 기획·생산·마케팅 보다는 콘텐츠 미디어 분야에 대한 투자를 (비교적)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26] 1988년 CBS 레코드를 인수하여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를 만들고 1989년에는 컬럼비아 픽처스를 인수하여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한다. 뭐 21세기 컨텐츠 산업이 중요해진 상황에 비추어 보면 틀린 말은 아니고 오히려 시대를 앞서갔다고 할 수 도 있다. 문제는 정말 그만큼 기술 R&D를 안했다는 거지만... 삼성이 피똥싸며 쫓아온 것도 있고 그러나 무리한 콘텐츠 산업의 투자는 1995년에 심각한 부채로 되돌아오게 된다.[27]

이데이 노부유키 CEO[28] 가 창사 이래 사활을 걸고 베가(WEGA), 바이오(VAIO)등을 성공시키는 했지만 디지털 산업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는 이루어지지 않아 소니의 봄은 짧았고,[29] 결국 이러한 영향은 계속되어 2003년 소니 쇼크 사태[30]가 일어나게 된다. 너무 시대를 앞서서 투자하다 오히려 시대의 흐름을 놓치게 된 사례 소니 쇼크 사태 이후 소니가 과거 전성기 때의 혁신적인 모습과 창의성을 거의 보여주지 못하게 되자 자연스레 전자 산업분야에서의 브랜드 가치도 하락하게 되었다.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 등, 비디오 게임 사업을 펼치고 있는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와 온라인 게임으로 사업을 펼치는 소니 온라인 엔터테인먼트(2014년 매각)와 음반사업을 담당하는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영화사업을 담당하는 소니 픽쳐스 엔터테인먼트가 전부 소니의 자회사다. 참고로 소니 뮤직과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는 인수와 합병으로 만들어졌다.

그 결과 적지 않은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 등에선 제작 스폰서 소개에서 상기 기재된 미디어·콘텐츠 관련 소니 계열사의 이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등, 실제로도 일본의 각종 영상물에 열심히 제작투자/유통하고 있기도 하다. 애니쪽은 애니맥스가 유명하다. 외국 드라마나 영화에도 나름대로 투자하고 있으며, 가장 유명한 사례로 마블 캐릭터의 스파이더맨 영화화 판권은 컬럼비아 픽쳐스의 주인인 소니에 있다. 이 때문에 어벤져스의 핵심 멤버인 스파이더맨이 영화 어벤져스에 출연하지 못하고 대신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 독자 시리즈로 나가고 있다.그러나 2015년 2월 9일, 마블 스튜디오와 공동제작을 발표했다. 이로서 '어벤져스' 같은 마블 작품에도 스파이더맨이 등장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 그리고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처음으로 스파이더맨이 등장하여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단독영화까지 나왔다.

특히 소니 뮤직의 경우 콜롬비아 레코드 등 미국의 뛰어난 레이블들을 공룡처럼 집어먹었기 때문에 마이클 잭슨, 엘비스 프레슬리, 브리트니 스피어스, 비욘세, 조지 윈스턴, 휘트니 휴스턴, 밥 딜런, 셀린 디옹, 산타나, 조지 마이클, 수잔 보일 등이 소속되어 있거나, 음원 유통 저작권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름도 소니뮤직이고 주식도 소니가 꽉 잡고 있는 완전한 소니 계열사지만 어쨌든 사실상 본체가 미국 회사이다보니 본사가 미국으로 되어있다. 현재 세계 3대 레이블이라고.

이 정도 설명하면 나름대로 소니가 미디어/콘텐츠 분야에서 나름대로 성공적인 성과를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실은 이래저래 투자한 분야가 워낙 오지랖 넓어서 몇 가지 쩌는 분야가 있는 것이지 전체 경영 실적으로 볼 땐 실제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고 보긴 어려울 듯 싶다. 해외 콘텐츠에도 많이 투자 했지만 그래도 엄연히 소니의 주요 투자대상은 어쨌든 일본 미디어/콘텐츠 상품이라고 보아야 하는데, 실제로 일본 국내 컨텐츠에 대한 유통 지배력을 높이는 것에는 성공했으나, 문제는 일본문화의 유행 자체가 전반적으로 크게 퇴보해버렸다. 심지어 일본 국내에서도 k-pop 아이돌이 오리콘차트 상위를 차지하고 있고, 일부 아줌마들의 전유물이라고 무시했던 한국 드라마도 되려 k-pop 열풍을 타고 저변을 넓히는 중이다[31]. 저패니메이션은 오타쿠의 전유물로 전락하면서 심하게 게토화되어 전체적인 시장규모도 작아졌고, 해외에서의 저패니메이션의 영향력도 자국 내와 마찬가지인 상황이라[32] 해외진출도 생각보다 신통치 않았다.

사실 내심 2000년대 초반 모닝구무스메, 드라마 꽃보다 남자 등 나름 일본 안팎에서 잘나가던 일본 콘텐츠들의 유행, 즉 '일류 열풍'을 기대하고 미디어/컨텐츠에 투자했는데, 생각지 않게 한류 열풍에 발목잡혀 좌초되어 사실상 투자한 만큼 건지지 못한거나 다름없게 되어버렸다. 단 2014년 초부터 일본에서의 한류 열풍이 식어가고 있어서 다시 한류 열풍에 가려졌던 (일본내수용이거나 오타쿠를 겨냥한) 일본 콘텐츠들이 부활하고 있다. 다만 저패니메이션은 알다시피 2007년도부터 오타쿠 위주가 되어서 미국, 한국, 유럽 등의 해외에서도 일본 내에서도 대중적인 성향의 애니메이션 말고는 안보는 것하고, 아동용 애니 상품으로 먹고 사는게 현실이긴 하다.

소니의 대표적인 해외 콘텐츠 사업인 소니가 1989년 인수한 컬럼비아 영화사도 처음에는 헐리우드 시장에서의 무경험으로 인하여 90년대까지는 삽질을 많이 했지만[33] 지속적인 노력과 2000년대 들어서 맨 인 블랙 시리즈와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대흥행으로 헐리우드 메이저 영화사의 하나로 안착하는데 성공한다.[34] 2014년 SBS에서 한 조사에 따르면 이미 유럽과 미국에서는 소니를 전자회사가 아닌 엔터테인먼트나 미디어 회사로 인식한다고 한다.[35] 미디어에 열심히 투자한 만큼 제조업 분야에서는 비교적 소홀해져 삼성과 LG에게 생각보다 정말 빠르게 추월당했다. 소니는 아무래도 '세계 제일의 제품이라는 명성'만 꽉 잡고 있으면 세계시장에서 쉽게 물건이 팔려나갈거라 생각했겠지만, 삼성과 LG의 능동적인 현지마케팅에 빠르게 제3세계 시장들을 뺏겨버렸다.

특히 중국 다음으로 큰 시장인 인도에서 삼성, LG에게 완패를 당한게 소니로서는 가장 뼈아픈 패착 중 하나. 이데이 노부유키 전 소니 회장도 '인도 시장 깔보고 재고품이나 팔았더니 죄다 그걸 알아차려서 자기 나라 깔본다며 소니에 대한 인지도에 큰 악영향을 끼쳤다'며 후회하기도 했다. 실제로 1980년대 초만 해도 인도에선 소니를 가전제품의 대명사로 인식[36]했으나, 후발주자인 삼성과 LG가 인도 진출을 위해 최신 상품들을 적극적으로 내놓고 가정부나 하인들이 냉장고에 있는 음식들을 몰래 빼먹는게 흔한 탓에 막기 위해 냉장고에 열쇠구멍을 달아 잠금장치를 설치하거나, 인기있는 크리켓 선수를 광고모델로 쓰는 등 적극적인 마케팅 덕분에 인지도를 높이는데 성공한다.

반면 인도 시장에 대해 근본적인 대책조차 세우지 않고 '그냥 적당히만 하면 알아서 사줄거란' 안일한 인식을 가졌던 소니는 서서히 밀리기 시작해 이젠 전자제품 양판점에 가보면 소니 TV는 삼성, LG의 TV에 밀려 구석탱이에 쳐박혀 듣보잡 취급을 당할 정도. 2006년 NHK가 직접 인도에 가서 가전제품(세탁기, 에어컨, TV, 오디오 주요 제품 종합) 인지도를 조사하니 LG가 압도적으로 1위(33%)를 차지했고, 소니는 삼성, 비디오콘(인도 가전제품업체), 필립스, 히타치보다 뒤쳐진 6위를 차지했으며, 뭄바이델리 여러 곳에 있는 가전제품 대형마트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인기 제품은 LG와 삼성 제품들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소니는 구석에 처박혀있거나 관련 제품도 적었다. 이러니 노부유키가 평생 후회할만 하지.

그래도 1995년 이데이 CEO가 취임할 당시 소니는 아날로그 시대의 최고의 전자 업체였다. 여전히 소니의 트리니트론과 워크맨은 세계 시장을 제패했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고 있었다. 따라서 이데이 CEO는 다가오는 시대에 디지털 기술이 가전과 오락 산업을 지배할 것이라 생각했다. 1995년 2000여명 소니의 간부들이 모인 앞에서 이데이 CEO는 "디지털 드림 키즈" 전략을 발표한다. 디지털 드림 키즈는 디지털 시대에서 자라고 디지털 기술에 친숙한 신세대를 뜻하며 그들의 꿈을 만족시킬 독창적이고 재치있는 상품을 만들어 나가자고 이데이 CEO는 주장했다. 이데이 CEO는 3단계 전략을 통해 디지털 드림 키즈를 구체화했는데 바로 1단계 "Connect", 2단계 "Synergy", 3단계 "Hub"였다.

1단계 Connect는 콘텐츠, 유통, 기기를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소비자들을 쉽고 편리하게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다는 것이 목표였다. 따라서 1995년 이데이 CEO는 소니의 영화산업과 음반산업의 방대한 콘텐츠를 디지털로 변환시켜 인터넷과 케이블 tv로 연결하였고 별도의 인터넷 접속회사인 소네트도 설립하였다. 또한 위성 TV인 스카이 퍼펙트 서비스도 실시하고 애플아이튠즈 스토어보다 먼저 프레스 플레이라는 온라인 음악 상점도 개설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소니 온라인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여 에버퀘스트등을 개발하고 온라인으로 다운받을수 있도록 했다. 1996년 이데이 CEO는 1단계 계획이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자 디지털 콘텐츠를 더욱 원할하게 연결하는데 컴퓨터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여 VAIO 브랜드로 유명한 컴퓨터 사업을 시작하였고 i.LINK를 개발하여 제품을 더욱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2단계와 3단계 계획도 준비했는데, 2단계 Synergy 계획은 소니의 제품이 서로 연결되면 소비자가 소니의 제품을 사게 되니 자연스럽게 다른 소니의 제품들을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계획이고 3단계 Hub 계획은 전세계 각 가정을 소니 제품으로 하나의 디지털 허브로 만드는 계획이다. 여기까지 계획이 순조롭게만 진행된다면 이데이 CEO는 TV, 각종 전자기기, 컴퓨터 등을 소니의 콘텐츠와 연결하여 하나의 홈네트워크가 되어 다양한 수익 모델이 창출될 것으로 보았고, 이렇게 소니 왕국이 건설되면 다가오는 디지털 시대를 제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이 계획은 1단계에서 끝나게 되는데, 이데이 CEO는 소니 제품을 서로 연결하면 소비자들이 인기있는 소니의 제품을 구매하였을 때 자연스럽게 판매가 취약한 제품의 점유율도 끌어올릴 것으로 생각했으나 결과는 이와 달랐다. 소니는 제품들을 서로 연결할때 하나의 소니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하여 독자적인 포맷을 고집하였다. 예를 들어 소니 TV는 소니의 멀티미디어 기기만 연결할 수 있었고 소니 멀티미디어기기는 소니 제품끼리만 연결될 수 있었다[37]. 독자적인 포맷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소니의 콘텐츠를 이용하려면 소니의 제품을 사야만 했다. 당시 소니는 기술적으로 일등 기업이었고 제품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소니는 혁신적이었던 제품과 다양한 콘텐츠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소니의 둘레 안에서 소비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폐쇄적인 소니의 태도는 전자시장에서 소니를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었고 소비자들은 소니 제품을 외면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미래 기술 변화를 예측하는것이 거의 불가능한데도 이데이 CEO는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계획을 세워가면서 미리 대비하려고 했고 너무 미래를 앞서 나가서 오히려 다가오는 기술 흐름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것이 소니가 디지털 시대의 전자산업에서 실패한 중요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데이의 뒤를 이어 소니의 CEO를 맡게된 하워드 스트링거는 전자산업에 대한 몰상식한 이해와 무리한 컨텐츠 산업의 사업확대로 주력인 전자산업의 위기를 가속화 시켰다. 스트링거는 돈이 되지 않는 사업을 차례로 접으면서 컨텐츠 산업을 강화시키려 했다. 물론 컨텐츠 사업도 중요하긴하다. 하지만 스트링거는 소니가 근본적으로 전자분야가 중심이라는 사실을 무시했다. 로봇사업을 시작으로 소니의 핵심 산업인 전자 부문에서 많은 대규모 인력 감축이 있었는데 이는 과거 혁신적인 제품들을 개발했던 연구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38]

결국 소니의 상징이였던 기술을 저버리고 이데이처럼 콘텐츠를 포함한 네트워크 비즈니스를 성장시키려고 했던 스트링거는 결국 소니가 워크맨과 트리니트론 처럼 혁신적인 제품을 시장에 내놓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스트링거는 소니의 상징이였던 창업지 고텐야마 본사와 공장건물, 유럽본사 건물과 베를린 소니 센터[39]를 차례로 매각시키면서 기업의 정체성을 흐리게 했다고 과거 전 소니의 CEO였던 오가 노리오에게 비판을 받기도 했다.[40]

스트링거는 2009년 CES에서 "소비자는 어느 회사의 제품이라도 같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호환성이 있는 것을 기대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픈 테크놀로지를 지지합니다."라고 말하며 독창적인 제품 개발을 거부한다는 것을 명확히 표명하기도 했다. 스트링거의 체제에서 소니는 전자부분의 명성과 휼륭한 인력,[41] 오랫동안 쌓아온 혁신적인 기술들을 잃게 된다. 여담으로 소니는 자회사끼리 사이가 좋지 않아서 지금적자가 된 것도 크다.

또한 근본적으로 엔고현상 때문에 가격경쟁에서도 그다지 신통치 않았고, 제조업이 세계시장에서 고립되어 국내시장에 의존하기 시작하자 제품들의 갈라파고스화가 심화되었다. 게다가 더욱 최악인 것은, 믿었던 기술력마저 거의 따라잡히거나 심지어 역전당하는 분야까지 생겼다. 스트링거는 기술에 대해 문외한이라 제품보다는 그 안에 들어가는 컨텐츠와 디자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소니의 컨텐츠가 들어갈수 있다면 파나소닉 제품이여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소니의 제품이 가장 좋습니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몇 년 후 삼성 tv에 PSNow 서비스를 시작했다.

특히 주력인 TV시장과 핸드폰시장에서 완전히 고전하면서 정말 큰 손해를 봤다. 그 중에서도 스마트폰 시장에서 세계적 유행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삽질하여 기존에 소니 에릭슨이 갖고 있던 핸드폰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전부 잃고 현재는 사실상 일본을 제외하면 휴대폰 시장에선 점유율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42] 결국 소니 모바일로 통합시켜서 몸부림을 치고 있지만 아직 기대한 만큼의 성과는 아직 안 나온 듯. 일단 기기 품질은 나아지고 있지만 아무래도 마케팅에서 심하게 밀리다 보니 인지도가 바닥을 긴다. 아예 소니가 스마트폰도 만드냐고 되묻는 사람도 있을 정도.

생산하는 제품은 삼성전자보다 더 많지만, 냉장고나 세탁기같은 백색가전은 만들지 않는다. 그래도 이쪽은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하고 PSP가 있고, 방송장비 전반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전자 기기 쪽은 지금 상당히 안 좋은 상황. 그렇다고 쉽게 무너질 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원천 기술을 가진 분야가 꽤 있기 때문. 다만 이런 식으로 제조업 분야가 고전을 면치 못하면 해외 공장 이전이 더욱 가속화되던가 아니면 아예 제조업 분야를 정리해버리고 애플처럼 제품의 실제 제조는 하청으로 돌려버릴 가능성은 있다. 물론, 그럴 경우 일본 국내에선 매국기업이라고 욕을 바가지로 먹겠지만, 어차피 지금도 2ch에서는 삼성에 처발린다는 이유로 충분히 매국노라고 욕 먹고있다.(...) 물론 요즘 소니 제품의 QC(품질마감도)도 해결되어야 한다. 엑스페리아만 봐도 품질마감도가 영 좋지가 않다.

또한 일본에서만 한정으로 소니 파이낸셜 홀딩스를 주축으로 하는 금융업과 보험업을 진행하고 있다. 소니 파이낸셜 홀딩스는 모리타 아키오가 미국 뉴욕에서 사업을 하고 있을때 금융회사들의 마천루 건물을 보고 자극을 받은 계기로, 소니도 금융사업에 손을 뻗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이러한 노력은 1979년 미국 푸르덴셜 생명과 합작으로 소니 생명보험을 설립하면서 이루어지게 된다. 1998년 소니 손해보험, 2001년 소니 은행이 설립되고 2004년 설립된 감독회사 및 지주회사인 소니 파이낸셜 홀딩스로 금융 사업이 재편되면서, 금융부분이 소니 사업의 주요 부분중 하나로 부상하게 된다. 현재 일본 주요 금융업체 중에 하나이며 소니 파이낸셜 인터내셔널을 통하여 전세계로 사업을 확장하려 노력하고 있다.

2003년에는 전 제품라인을 아우르는 프리미엄 브랜드 소니 퀄리아QUALIA(퀄리아)를 발표했으나, 개념을 상실한 가격으로 일반 사용자와 매니아층 양쪽에서 외면을 받으면서 결국 2005년 퀄리아 사업을 접게 되었다. 특히 200만화소짜리 똑딱이디카를 38만엔 받고 팔아먹은 건 두고두고 까일만한 일. 야심찬 사업답게 몇몇 제품, 특히 헤드폰같은 경우 품질면에서는 최상급이었기때문에 지금도 매니아들 사이에서 고가에 거래되고는 한다.

최근 2015년 들어서 올림푸스와 함께 의료산업(소니 올림푸스 메디칼 솔루션)(소니 라이프 케어), 국제 교육 산업 (소니 글로벌 에듀케이션) 부동산 산업 (소니 리얼 에스테이트) , 드론 산업(에어로센스)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의 다각화를 시도하고 있으며 히라이 카즈오 CEO[43]가 이미지센서 기술력을 바탕으로, 전기차 산업 시장도 진출할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한적이 있다.

2016년에 소니가 스마트폰용 게임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한다고 한다.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는 모바일 게임을 개발하고 이를 유통하는 계열사 포워드웍스를 설립한다고 한다. 스마트폰의 발달로 많은 소비자가 TV나 게임용 기기 대신 스마트폰을 통해 게임을 즐기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소니도 모바일 게임 분야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으로 보인다.

4.1. 텔레비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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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공개된 브라비아 (BRAVIA) 소니의 TV 서브 브랜드.
개발과 제조는 2014년 분사된 소니 비주얼프로덕트에서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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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K 브라비아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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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의 트리니트론 TV


브라비아 광고 영상 (2005)[44] 영상에 나오는 도시는 샌프란시스코다.


브라비아 OLED TV “Earth Rising” 광고 영상 (2017)

1968년 발매된 트리니트론으로 소니는 70년대부터 90년대 말까지 명실상부한 전 세계 TV 시장의 최고 강자였다. 당시 섀도우 마스크 방식의 한계를 극복한 혁신적인 트리니트론으로 미국의 RCA를 물리치고 TV시장 1위 자리를 차지했다.[45] 트리니트론은 많은 부분에 응용되어 휴대용 TV시장(워치맨), 모니터 시장, 대형 전광판 (점보트론)부문에서도 최고 강자였다. 70년대~90년대에는 디스플레이의 대명사는 소니의 트리니트론이었던 셈. 1998년에는 평면 트리니트론 베가(WEGA)를 공개하며 만년 4위라는 별칭을 얻었던 일본시장에서 1위를 먹은적이 있다.[46] 베가는 최초로 TV자체에서 SD급 방송 신호 화질을 HD급으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DRC[47] 가 탑재되어 전 세계 시장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48] 음극선관(브라운관) 시대의 트리니트론은 소니만의 독자적인 기술이였고 다른 업체들은 소니의 특허가 만료되어 기술공개가 되기 이전까지 이 기술을 따라하지도 못했고(들어가는 부품과 구조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 기술이 공개된 이후에도 소니를 능가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트리니트론과 같은 음극선관 방식의 텔레비전이 PDP나 LCD텔레비전에 점차 밀려나게 된다. 하지만 소니는 절대적인 강자인 음극선관 TV를 한동안 집중하면서 FED디스플레이와 OLED같은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세우고 투자를 진행했다. 시대를 앞서가는 판단이었지만 기술의 벽은 높았기에 FED와 OLED는 상용화에 성공하지 못했다,[49] 또한 1994년 단행했던 음극선관 TV설비 대규모 투자[50]로 인하여 LCD와 PDP의 개발에 투자할 여럭이 부족해지게 되고 시기도 놓치게 되었다. 당시 소니가 트리니트론 음극선관 TV를 포기하지 못했던 이유는 당시 LCD와 PDP는 개발 초기 단계였고 오히려 트리니트론의 화질이 더욱 좋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트리니트론 기술을 발젼시켜오고 세계 1위를 지켜오던 소니로써는 무리하게 LCD나 PDP에 투자하는 것보다 그보다 더욱 신기술로 기술적우위를 점할 수 있는 차세대 디스플레이에 투자하려 했고(과거 트리니트론으로 기술적 우위를 차지했던 것처럼), 이에 따라 FED와 OLED가 소니의 차세대 디스플레이 개발분야로 선정되고 FED 디스플레이는 2006년 필드에미션테크놀러지(FET)를 설립하여 개발을 이어나가게 되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개발이 완전히 중단되게 되며 2009년 FET도 해산되게 된다. 현재 FED 기술은 아예 시장에서 사장되어 기억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OLED TV도 2007년 세계 최초 OLED TV인 11인치 'XEL-1'을 공개하였으나 여러가지 문제점으로 인하여 이후 후속 OLED TV를 출시하지 않고 있있다가 10년이 지난 2017년에 LG 디스플레이 패널을 사용한 OLED TV를 출시했다.[51] 이로써 차세대 디스플레이 개발에 실패하고 기존 음극선관도 빠르게 LCD와 PDP에 따라잡히면서 소니 TV는 몰락의 길을 걷게된다.[53]

소니 TV의 과거와 현재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 만화
소니 TV의 굴욕

전세계 TV 시장에서 입지가 작아지는 상황속에서도 소니의 경영진은 비용절감을 위하여 A³ 기술연구소를 폐쇄하고[54]대대적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하였다. 이는 기술진들의 대규모 이탈을 불러오게 되며 후에 한국의 전자업체의 추월을 허용하는 계기가 된다. 2005년 새로운 액정 텔레비전 브랜드 브라비아의 출시에도 불구하고 소니의 TV점유율은 계속 하락하여 2005년 1분기 점유율 11.6%로 마지막으로 세계 TV시장 1위자리를 차지한 후 2006년부터 삼성전자에게 1위자리를 내주었으며 2010년도 이후부터는 LG전자에도 밀리며 3위권으로 추락하였다,[55] 소니는 삼성과 합작회사인 S-LCD에서 TV패널을 공급받았으나 2011년 지분을 모두 삼성전자에게 매각하였다. 소니는 현재까지 자체적으로 패널을 생산하지 못하고 삼성전자와 샤프에서 LCD패널을 받아서 TV를 생산하고있다. 소니 TV사업부는 2003년 이후로 계속 적자를 내면서 2014년 소니에서 분사되어 소니 비주얼 프로덕트로 출범하는것을 발표하였다. 분사 이후의 계속적인 구조조정과 비용절감, 그리고 UHD TV의 판매 호조 결과 11년만에 흑자에 돌아서게 되었다. 하지만 TV산업은 예전에 비하면 많이 수익이 별로인데다가 저렴한 가격의 모니터로 TV시청이 가능한것도 TV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 몇년전 까지만해도 콘솔게이머나 전문영상업자들은 특유의 색감과 화질으로 소니 TV를 고집하던 것이[56] 최근 삼성, LG, 비지오의 TV가 소니와 비슷해지면서 소니에서 많이 이탈하게 되어 상황이 그렇게 좋다고만 할 수 는 없다고 평가하는 것이 대다수였는데 2017년 2분기 소니는 OLED TV 출시에 성공하면서 TV 매출액은 16.9% 증가했고, 프리미엄 TV 시장에서 2006년 추월당했던 삼성을 따라 잡았다. 2017년 3분기 기준으로 프리미엄 TV 시장 점유율 1위는 LG, 2위는 SONY, 그리고 3위가 삼성이다. 삼성은 다른 조사기관의 자료를 들어가며 이례적으로 반박하는 등 시장의 판도가 변화하고 있으며, 소니가 전자 시장에서 감을 되찾았다는 평이 많다. 프리미엄 TV 시장 12년만에 1위, 스마트폰 흑자 전환

수 년 전에 수익성의 악화로 일본 내 직영 TV공장(소니 EMCS 소유) 생산을 중단하였고,[57] 2010년부터 세계 각지에 있는 TV 생산시설을 중국공장으로 통합을 진행했다. 현재 중국 소니 직영 공장에서 대부분 생산하고 있으며 일부 OEM 제품도 존재한다.

4.2. PC[58][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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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시절 마지막 바이오 Z (2011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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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주식회사에서 발매된 VAIO Z Canvas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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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발매된 바이오 X505의 모습 당시에 혁신적으로 앏아 2008년의 맥북 에어와 두께로 맞짱을 뜰 정도다.


소니 시절 바이오 Z (2011년형) 광고

VAIO(바이오)라고 불리는 소니의 컴퓨터 제품은 1996년에 첫 발매되었다[59]. 이전에 소니는 1980년대부터 NEWS라고 불리우는 워크스테이션을 발매하고 1990년 PTC-500이라는 16비트 Palmtop PC를 만든 전적도 있었고, 애플의 파워북의 개발과 생산에도 깊게 관여 했지만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자체적으로 진입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로의 변화에 따라 당시 이데이 노부유키 CEO의 디지털 드림 키즈 전략에 일환으로 1995년 PC 시장에 진출을 선언했다. 한국에서는 노트북 브랜드로 알려져 있지만 원래 데스크탑 기종도 포괄한다. (단 매각된 이후부터는 데스크탑 부문은 정리되었다.) 노트북 시장에서 후발주자인데도 불구하고 고급화, 특성화 전략으로 일본시장에서 한때 1위를 먹은 적이 있었으며 이후로 전 세계 노트북 시장에서 주요 업체로 부상했다. 소니 바이오 노트북은 오랜 기간 동안 높은 스펙과 세련된 디자인으로 고급 노트북이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60]. 허나 최근 몇 년 사이에 애플 맥북을 위시한 고급 노트북 시장의 트렌드를 쫒아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 덕에 예전의 명성을 잃었고, 결국 일본 생산 시설을 포함한 PC 사업 부분을 다 매각해 버림으로써 소니는 컴퓨터 사업과 연을 끊었지만, 브랜드까지 팔기는 아까웠는지 브랜드는 계속 가지고 있다. 현재 일본 바이오 주식회사의 일본 직영 공장에서 계속 생산 판매하고 있으며 2015년에는 다시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2016년에는 윈도10 스마트폰인 비즈도 공개했다고 한다.

소니 노트북은 가성비가 매우 안 좋기로 유명하지만[61] 고급 모델은 성능 자체는 매우 좋은 편이라고 한다. 그런데 비싸서 문제지... 그리고 AS센터가 각 지방마다 있는데 제주도는 AS센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이오 수리가 안된다. 제주도에 거주하는 주민이라면 이 점 주의.

4.3. 음향기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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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y Walkman TPS-L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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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y NW-ZX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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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y Shake-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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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R-1AD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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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r in wire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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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r go


소니 MDR TVC


소니 h.ear TVC

소니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사업 분야[62] 그러나 분사했다(...)

음향 업계에 상당한 존재감이 있다. 특히 초창기에는 워크맨[63], CDP로 황제의 자리에 등극했다.[64] 자세한 내용은 관련 항목 참조. 특히 CDP 같은 경우 90년대 초반에 나온 모델이 요즘 것에 꿀리지 않는 음향을 자랑할 정도. 이외에 노이즈 캔슬링[65]이라든가 CD 고정 기능[66] 본격 도입 등 음향기기 쪽으로는 네임드. 그밖에도 이른바 찍찍이라고 하는 휴대용 카세트 녹음기[67], 디지털 보이스레코더[68], 휴대용 라디오(단파라디오 포함)[69]도 아직도 꽤 쓸만하다. 다만 미국에서 'boombox'라 부르는 탁상용 카세트 오디오는 요즈음에는 타사 제품보다 질이 떨어지는 듯.

오디오 전성 시대 앰프, 튜너, 턴테이블 데크, CDP 성능도 아주 좋다. 소니 개발진 특유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타사에 비해 소니만의 컨셉을 담아 내어 제작하였고, 당시 잘 나가던 회사의 지원 아래 특주한 부품들을 많이 사용해 물량 투입을 많이 한 아주 훌륭한 소니만의 사운드를 만들어 냈다. 오늘날에 와서는 이러한 물량 투입이 문제가 되어 수리비가 많이 나오거나, 소니 특주품의 호환부품을 구하기 어려운 등의 단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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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의 유명한 이어폰으로는 MDR-E888이 있다. 출시한지는 무려 16년째.
이쯤이면 장수만세... 내구성은 말이 많지만, 소리 하나는 기가 막힌 제품으로 정평이 나있으며, 이어폰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오픈형 이어폰 입문기로 최적이라는 말을 듣는다. 다만 좋은 해상도와 달리 공간감은 그다지 좋지 못하며, 저음역에서 퍼지는 듯한 음색도 호불호가 갈린다. 단단하고 청량감있기보다, 부드럽고 따뜻하여 듣기에 편안하다. 2012년 태국홍수로 인해 e888 생산라인이 위기에 처하면서 드디어 단종되었다. 역시 단종을 밥먹듯이 하는 소니. 이로써 오픈형 이어폰 최장수 떡밥은 끝났다.[70]

편의점에서 파는 몇천 원짜리부터 시작해서 수백만 원대의 고급 리시버까지의 다양한 라인업을 갖추었으며, 2010년 이어폰, 헤드폰 국내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했다. 음향기기 브랜드로서는 Beats와 함께 국내 인지도가 가장 높다. 특히 콩이어폰이란 이름으로 2005년에 출시된 MDR-E10LP은 값이 저렴하여 국민이어폰의 위치에 올라서게 되었다. 예전엔 지하철 같은 데 가보면 그 이어폰 착용한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었다.[71] 그 이어폰의 줄 재질은 처음에는 문제가 있었는데 2010년경부터 개선된 듯. 현재는 MDR-E10LP가 단종되고 소형화, 색상을 보다 다양화한 MDR-E9LP가 판매 중. 2014년부터는 E9는 중국산 대신에 캄보디아산이 나돌기 시작...

실제로 소니 이어폰, 헤드폰은 아무거나 집어들어도 크게 후회하는 일이 없을 정도로 평균 이상의 소리를 내준다. 다만 그만큼 짭이 많으니 정품을 꼭 확인하자.[72] 한편 2010년 이후 소니가 매우 공격적으로 고급 이어폰 시장에 나서고 있다. 2년 사이에 여러 종류의 고급 기종을 내놓은걸 보면... 흠좀무. 근데 시장 1위 탈환은 이미 무리가 된 것 같다. 이쪽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미 오픈형 이어폰 시장은 저물어가고 있는지라 인이어 타입을 노려야 하는데, 소니가 인어어 타입에 신경쓰지 않는 동안 미국쪽 회사들이 강하게 치고 간지라...

2012년 시즌을 맞이하여 소니는 인이어 이어폰과 헤드폰에서 주목할 만한 신 제품군을 발표하였는데, 이어폰에서는 소니가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시장의 대세 유닛인 밸런스드 아마처(BA)를 독자 개발하여 탑재한 XBA 시리즈를, 헤드폰에서는 아래의 소니 뮤직과 전자부문이 협력하에 헤드폰인 MDR-1R을 발표하였다. XBA 시리즈의 경우 고음 트위터의 성능과 음색이 문제시되기도 하였으나 과감한 가격 정책으로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다. 특히 보급형 모델인 XBA-1은 한국 시장에서 BA를 사용한 소니의 최첨단 상품임에도 불구하고 5만원대의 저렴한 가격으로 출시되어 이어폰에 금액을 투자하려는 입문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MDR-1R의 경우 하이파이적인 음색과 편안안 착용감으로 헤드폰 갤러리를 비롯한 많은 게시판 및 리뷰 사이트에서 크게 호평을 받고 있다. MDR-1R의 개발자는 아까 말한 그 전설의 E888를 개발한 그 사람. 1R기반으로 노이즈 캔슬링이 추가된 헤드폰도 있는데 1R보다 좋다.?! 유닛사이즈도 50mm로 1R보다 10mm크다. 2013년에는 중고음 재생에는 BA를, 저음에는 다이내믹 드라이버를 사용한 하이브리드 이어폰(XBA-H1, H2, H3) 제품군을 출시하였으며 가격대도 점점 올라가고 있다. 2014년에는 MDR-1R의 후속 기종인 MDR-1A를 내놓았으며, 동시에 새로운 플래그쉽 2종을 출시하였다.

2015년에는 LDAC 등의 신기술을 적용한 MDR-1A의 블루투스 파생형인 MDR-1ABT를 출시했고, 하반기에는 히어온, 히어인, 히어인 노이즈캔슬링 등의 젊은층을 타겟으로 한 h.ear(일명 아이유 헤드폰/이어폰) 시리즈를 출시했다. 2016년엔 히어온의 무선/노캔 파생형인 히어온 와이어리스 NC와 히어인의 무선형인 히어인 와이어리스를 출시했다.

아예 음향기기가 잘 나가서 그런지 1980년대에 미국 CBS뮤직을 인수해서 소니 뮤직을 설립했다. 그 전에 이미 1960년대에 소니 뮤직 저팬을 설립했지만. 이후, 전 세계적으로 사업 범위를 확장해서 2004년에는 BMG를 먹었다. 콜럼비아/트라이스타 영화사도 팔려서 소니 계열이다.[73] 소니 뮤직이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는 노래가 상당수 있기 때문에 유튜브 등지에서 노래를 듣다보면 소니 뮤직의 요청에 의해 짤린 동영상이 종종 보인다. 문제는 지금은 구하기 힘든 20년 이상 지난 노래들도 저작권 보호로 인해 짤렸다는 것. 이것 때문에 욕을 먹기도 한다. 당장 구글에서 f*ck sony music만 검색해봐도... 모 유저가. 소니 음악인줄 모르고 음악이 담긴 영상을 올렸다가. 국가차단으로 욕을 바가지로 하고 있다고 한다. 해당 국가는 대한민국 / 일본 / 호주 / 멕시코 /미국 / 뉴질랜드 6개국 순이다. AVEX 보다. 더 지독하다면서. 추후에는 유튜브 업로드를 절대 하지 않겠다는 발언까지 나오면 말 다했다. 그만큼 지독하다.

스튜디오용 헤드폰으로도 자주 선택받는다. MDR-V6, MDR-7506과 MDR-CD900ST가 대표 기종이다.

무선/블루투스 스피커 쪽으로도 유명하다. 2015년 기준 28%로 무선 스피커 시장 점유율 1위. 특히 큐브형 스피커인 SRS-X11이 유명하다. 2014년 출시한 SRS-X1, X2, X3, X5, X7, X9에 이어 2015년엔 신기술 LDAC와[74] 상품성을 개선한 SRS-X11, X33, X55, X77, X88, X99를 출시했다. 2016년엔 기존에 있던 헤드폰 라인업인 엑스트라 베이스(XB)의 블루투스 스피커 SRS-XB2, XB3와 h.ear 시리즈의 블루투스 스피커 히어고가 동시에 출시 되었다. 고급형 거치형 모델 SRS-ZR5, ZR7도 출시.

여담으로 애플이 소니에게 음향기술 제휴를 하자고 한적이 있지만 소니가 거절했다는 루머가 있다. 아는 분들이 있다면 추가바람.

2015년 들어 갑자기 멀쩡한 제품 잘만들던 소니가 돌연 황금귀교에 귀의 했다고 한다... 내용을 보면 그야말로 오디오 커뮤니티 내에서 역대급 어그로를 이끌어낼 소식이다... 사실, 황금귀교에 귀의 했다기 보단, SD카드 재고를 비싸게 팔아먹기 위한 상술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 소니가 드디어 음향사업 정리하고 싶어서 환장했나보다 그래서 xba 10을 단종시켜? 황금귀의 민폐는 도대체 어디까지... 사실 소니는 오래전부터 음향분야에서 덕력을 뽐내던 기업으로 알려져온 기업이라...

하이레졸루션 오디오 워크맨인 ZX 시리즈를 출시했는데, 경쟁 기종이라 할 수 있는 아이리버의 아스탤앤컨이 일본 시장에서 선전하자 맞불을 놓을 목적인듯 하다. 다만, 그 광고 내용이 황금귀들이 하던 주장들이랑 맞먹는 것들이 다분하기 때문에...(위에 나온 SD카드 도료드립 등등...), 이 또한 오디오 커뮤니티 내에서 상당한 어그로를 끌 것이라 예상된다. 100NW-ZX100의 공식 제품 설명 제품의 상세설명을 살펴보자. 이게 정말 대기업이 제품 선전할때 쓸 문구인가 싶은 것이 줄줄이 나열되어 있다. 스테인레스 스틸은 고음부가 다소 약하다든가, 강철은 저음이 강렬하고 고음이 구리보다 작다든가, 황동은 저음이 웅장하다든가...

이제는 돈독이 제대로 오른건지 MDR-1A에서 그동안 오디오 회사들 사이에서 터부시 되던 고급케이블을 대놓고 콜라보레이션 까지 하면서 팔고 있다. 아무래도 주제가 주제인 만큼 오디오 커뮤니티 내에서 소니에 대한 악영향이 크리라 예상된다.

이때문에 소니를 소니 교주님으로 부른다 카더라.

네트워크 워크맨 및 일부 헤드폰/이어폰(말레이시아산)은 소니 말레이시아 직영공장에서, 라디오와 보이스레코더 및 일부 MP3P(중국산)는 일본 도와다오디오사의 중국공장에서, 탁상용 카세트와 일부 헤드폰/이어폰(중국산), (액티브) 스피커는 중국 Daidong-Zegna사(참조)에서, 일부 헤드폰/이어폰(태국산)은 소니 태국 직영공장에서 생산된다.

<나무위키에 독자 항목이 작성된 헤드폰>

4.4. 로봇[편집]

파일:external/www.sony-aibo.com/aibo-ers-7-ad-2.jpg
1999년 발표된 소니 아이보[75]


2017년 공개된 새로운 아이보

소니는 당시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타 전자업체보다 로봇 시장에 먼저 진출하여, 1999년 세계최초의 애완견 로봇인 아이보시리즈를 공개하였다. 전 세계에서 큰 호응을 얻었으나 정신나간 가격을 보면 아무래도 기술과시형 상품이 아니었는가 싶고, 그나마도 유사품으로 인하여 실제 판매량은 많지 않았다. 어쨌든 2006년 하워드 스트링거 CEO에 의한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로봇 사업은 중단되었다. 현재 아이보는 소니에서 수리가 불가능하므로 고장=사망 이라는 인식인데, 일본에서는 아이보를 하나의 애완견으로 대우하여 장례식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76] 물론 애니메이션 캐릭터 장례식처럼 팬들이 자주적으로 하는 레벨이 아니라 사찰 등에서 애완동물 장례식과 똑같이 정식으로 장례식을 치뤄준다.

현재 아이보의 공식 사후 지원은 끝났으나 이바라키현 카사마시에 소니의 퇴직한 기술진들이 모여 아이보를 수리해주는 곳이 한군데 있다. 물론 부품 교환이 필요한 수리도 있기 마련인데, 생산이 중단된 제품이라 부품 자체의 수급이 불가능한지라 상기한 아이보 장례식을 실시하는 사찰과 연계해서 장례 의뢰인의 동의하에 부품용으로 제공받는다고 한다. 쉽게 말해서 아이보버전 장기기증이라고 보면 될 듯. 전국에서 딱 한군데 뿐인지라 2015년 12월에 TV에 방송된 바에 의하면 수리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보가 300대가 넘고 수리를 의뢰하면 4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대도시에 수리점을 제대로 차려놓고 하는 것도 아니라 산골마을에 있는 가정집 방에 모여서 수리하는데도 그 정도이니 TV에서 방송을 탄 후에는 이용자가 더욱 늘어날 듯.

2003년에는 발매되지는 않았지만 세계 최초의 달리는 휴머노이드인 큐리오도 공개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17년 10월, 내년 봄쯤에 아이보의 후속작을 시판할 계획이라고 한다.
개발팀은 예전에 아이보를 개발했던 인력들을 중심으로 꾸려진다고 한다. 이전에 AI가 딥러닝을 통해 혼자 곡을 작곡할 만큼의 기술력을 보여준 소니 컴퓨터 사이언스 연구소(Sony CSL)가 소니 자회사로 있는 만큼 12년전의 아이보보다 뛰어난 로봇을 기대해도 좋을 듯 싶다.
추가적으로 소니가 자체 개발한 로봇용 운영체제가 사용된다고 하며, 외부로 개발 문서(API)등을 공개해 외부의 지원을 받으며 기능을 개선할 계획이라고 한다.#참고

4.5. 게임기[편집]

파일:플레이스테이션.jpg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

펼치기/접기

가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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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ps4_pro_logo.jpg

휴대용

VR

파일:플레이스테이션 포터블.png

파일:플레이스테이션 비타.png

파일:플레이스테이션 VR.jpg

파일:external/www.3chfa.com/Sony%20PlayStation%20(1994).jpg
1994년 출시된 첫 플레이스테이션.

파일:external/www.taghobby.com/tt150102.jpgSIXAXIS가 빠진것 같은건 넘어가자
파일:external/files.idg.co.kr/PS4(1).jpg
2014년 20주년을 맞이하여 PS4에 첫 플레이스테이션의 회색색깔를 태마로 한정판으로 출시했다.


1994년PS1부터, 2013년PS4까지, 하나같이 성공한 게임기들이다.(비타는 망했다...)21세기 이후로 소니하면 가장 많이 생각나는 것들 중 하나.

소니의 게임산업의 시작 하드웨어인 PS1의 판매대수가 1억대를 넘겼고 PS2가 2011년 1월을 기점으로 1억 5천만대를 넘었다. 이것은 전체 전자제품 가운데 단일 하드웨어 중에서는 판매량 1위. PS3가 처음에는 망하고 있는 테크트리를 밟아갔으나 나중에는 나름대로의 영역을 구축하면서 엑스박스 360와의 공동 2위 정도의 성적을 거두었다. PS4는 최초 출시부터 동세대의 Wii U엑스박스 원을 한참 따돌리고 단독 1위 체제를 구축하였다. 물론 Wii U구린평범한 성능과 엑스박스 원 출시 전 삽질을 빼놓을 수는 없지만.그러나 요즘은 닌텐도 스위치한테..

자세한 것은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와 자회사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 항목을 참고하길 바란다.

4.6. 카메라[편집]

파일:SONY_white.png
소니 디지털 카메라

알파 마운트

E 마운트

사이버샷

DSLR

SLT

렌즈

바디

렌즈

FE

E

RX

HX


파일:external/www.chip.de/02-bfa1a833caeac650.jpg
Sony Alpha 7 II

파일:external/www.techgoondu.com/image007.jpg



α시리즈와 RX시리즈, QX시리즈, 사이버샷 시리즈가 있다.
렌즈교환형 카메라 시스템인 α시리즈는 2017년 현재 미러리스 카메라 시장 1위를 차지하고있다.

참고로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한 회사는 코닥이지만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상용화시킨 회사는 소니다. 1981년 세계 최초의 상업용 디지털 카메라인 마비카 시리즈를 발매한다. 당시 저장장치는 플로피디스크...

2006년에는 미놀타의 카메라 사업부를 인수했다.

SIPS라는 VIP 케어제도가 있다. 자세한건 항목참고

4.7. 캠코더 및 방송장비[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Video_8_1985.jpg
1985년 발매한 첫 핸디캠 CCD-M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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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의 전문가용 캠코더

소니의 방송장비 사업은 상당히 이른 1958년부터 시작하였다. 1958년 당시의 주력 방송장비는 오픈릴 테이프 녹음기. 방송장비 사업부는 아츠키 테크놀로지 센터(가나가와현 아츠키시)에 있다. 현재 전자제조업에서 몇 안되는 소니가 1위를 차지하는 분야 중에 하나다. 소니의 방송장비는 일본의 고사이 공장(시즈오카현 고사이시 소재)에서 생산된다. 컨슈머 제품과 달리 일본 생산을 고집하는 건 방송장비 특성상 높은 품질과 신뢰성이 요구되기 때문. 1985년 최초의 가정용 캠코더 CCD-V8을 출시했으며 같은해 공개된 CCD-M8이 핸디캠 상표를 단 최초의 캠코더다.

캠코더 및 방송장비는 전통적으로 소니가 앞서나가고 있는 분야로 특히 휴대용 방송 카메라, 소비자용 캠코더 분야는 전세계 1위로 경쟁자가 거의 없을 정도며 [77] 이미지 센서 및 영상장비 기술력도 상당히 높아서 다양한 기업한테 자사의 엑스모어 브랜드의 이미지 센서를 판매, 납품하고 있다. CCD시절 부터 소니의 이미지 센서는 세계 1위였으며 현재 CMOS넘어온 현재에도 강력한 기술력으로 이미지 센서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영화 아바타를 제작할때 소니에게 직접 카메라 제작을 의뢰하여 캐머런 감독 전용 시네알타(CineAlta) F23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다만 영화용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서는 미국의 레드, 독일의 아리 등이 워낙 강세여서 쉽게 기를 펴지는 못하고 있다.[78] 소니는 카메라와 레코더기능을 하나로 통합한 것을 고안하고 캠코더를 만들어냈으며, 캠코더 자체의 용어가 소니의 직원들이 만들어낸 상표라고 한다. 처음에는 캠코더를 상표로 사용했으나 이후 보통명사화되자 소비자용 부분에서는 1985년 핸디캠 브랜드를 소개하였다.

이후에도 계속 이 분야를 선도하여 1995년에는 세계 최초 DV 형식 캠코더 CCD-VX1000를 공개했으며, 1999년에는 최초의 디지털 방식의 캠코더 TRV310을 선보였다. 2004년에는 세계 최초 HDV1080i 호환형 캠코더 HDR-FX1를 출시하며 캠코더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캠코더는 소니가 설계부터 모든 부품생산 그리고 완제품 생산까지 일원화 할 수 있는 유일한 분야다.[79] 최근 스마트폰으로 인하여 캠코더 시장이 축소되자 소니는 프로젝터 기능을 포함한 캠코더를 내놓는 등 제품 혁신에 노력하고 있다.

캠코더 이외에도 비디오 믹서, VCR 나 모니터 제품도 유명하다. 가격은 매우 고가이지만 안정성과 성능이 좋아서 방송국에서 많이 사용한다. VCR로는 아날로그 시절의 베타캠과 디지털 베다캠이 유명하다. 가정용 장비에서는 저화질이지만 가격이 저렴해서 많이 보급되었던 VHS규격에 밀려났지만 고화질을 필요로 하는 방송 분야에서는 많이 사용되었다. 이후 규격으로는 HD급의 녹화가 가능한 HDCAM이 있다.
트리니트론 CRT를 사용한 전문가용 모니터도 유명하다. 특히 BVM시리즈 모니터는 브라운관 디스플레이 최고의 화질로 유명하여서 방송국에서의 퇴역 이후에도 일부 고전게임 동호인 사이에서도 유명한 제품이다. 대부분 LCD로 교체되었지만, CRT모니터 중 HD급 모델 일부는 아직도 방송국에서 사용한다. 최근에는 OLED를 사용한 전문가용 모니터 제품을 주력으로 생산, 홍보하고 있다.

전문가용 음향기기도 제조하지만 이 분야에서는 젠하이저, 슈어, 하만같은 미국이나 유럽 기업들이 넘사벽급으로 유명하다. 음향쪽은 마이크는 젠하이저나 슈어 믹서나 프로세서는 스튜더, DBX, 렉시콘같은 하만계열을 많이 사용한다.

4.8. 엑스페리아[편집]

파일:xperia_2017.jpg

2001년 스웨덴의 에릭슨과 합작으로 만들어진 소니 에릭슨에서 2008년 10월, Windows Mobile을 사용한 엑스페리아 브랜드의 첫 번째 기기인 엑스페리아 X1을 출시하면서 공개되었으며 현재 소니가 에릭슨의 지분을 완전히 인수해 소니의 자회사인 소니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즈의 스마트폰이다. 소니 엑스페리아 항목 참조.

4.9. 2차 전지[편집]

파일:external/www.sonyenergy-devices.co.jp/img_corporation_02.jpg
소니에서 생산하는 리튬이온 배터리

소니의 2차전지(배터리) 사업은 1975년 미국의 Union Carbide Corp사와 합작으로 설립되어 시작되었다. 1986년 소니에서 모두 지분을 인수한후 소니 에너지텍 주식회사가 되었다. 2차 전지 분야에서도 소니는 위에 워크맨, 트리니트론처럼 혁신적인 일을 해내게 되는데. 이는 1990년 리튬이온전지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고 양산했기[80] 때문이다. 이후 2000년대 초 산요가 추월하기 전까지는 세계 최대의 리튬이온전지 생산기업이었으나 2006년 소니 리튬이온 배터리의 중대한 결함(소위 노트북 배터리 폭발 결함)으로 전세계 IT기업으로 납품된 960만개의 제품을 리콜하면서 그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고 세계 4위권으로 추락하였다. 이후 소니 에너지 디바이스 주식회사로 이름을 바꾸고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81] 배터리 폭발과 같은 중대한 결함이 있었으나 당시 소니 배터리의 성능은 매우 좋은 편이였다고 한다. 지금도 애플 등에 납품하는 등 실적은 좋게 나오고 있지만 현재 삼성 SDS, LG화학, 산요를 먹은 파나소닉에게 선두 자리를 내주었고 기존의 점유율은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폭발가능성이 있는 리튬이온전지를 대체할 전고체 2차전지의 개발을 완료해 실용화하는 단계에 있으며 2020년까지 양산을 시작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기존 코발트산 리튬 대신에 소니는 유황 화합물을 양극으로 채택하였고 유황 화합물이 녹아 성능이 떨어지는 문제를 소니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전해질을 참가하여 충방전의 효율성을 극대화하였다고 한다. 이 배터리를 채택하면 애플 아이폰6S는 인터넷 사용시간을 14시간까지 늘릴 수 있고 같은 동작 시간이면 배터리 크기를 30% 정도 줄일 수 있어 모바일기기 소형화에 적합하다고 한다.

2016년 상황이 악화되면서 소니는 소니 에너지 디바이스 주식회사의 리튬이온 전지사업부를 무라타제작소에 매각하기로 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중국과 싱가포르에 있는 배터리 공장 등 관련 자산, 인력을 모두 넘긴다는 조건이다. 거래 금액은 175억엔(1,864억 1175만원 정도).
두 회사는 오는 10월까지 구속력 있는 합의를 하고, 내년 3월까지는 거래를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링크

단 이번 매각은 리튬이온 전지사업부 한정이라고 한다. 소니는 2020년까지 상용화 예정인 전고체 2차전지 개발은 계속한다고 하며 또한 휴대용저장장치(USB)용 배터리와 알칼라인 건전지 등의 소매 판매 사업은 매각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파일:external/techielobang.com/CP-V3-USB-Portable-Charger.jpg

일반 소비자에게는 Cycle Energy라고 불리우는 충전지나 외장 배터리등이 유명하다.

4.10. 기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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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irst Sony 광고 영상

흑역사지만 1980년대 소니 아메리카에서는 북미 지역에 My First Sony라는 소니 제품을 모티브로한 유아용 장난감을 발매하기도 했다.더 많은 차세대 공대생을 배출하도록 돕는 장난감 제품 표면에 아이들이 좋아하도록 색깔을 넣은 플라스틱과 몇 가지 위혐 요소를 제거한 것을 빼고는 실제 제품과 차이가 없었고 작동도 했다. 국내에서도 1990년 인켈에서 수입하려 했으나 여러가지 문제로 없던일이 되어버렸다. 당시 신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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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는 클리에라는 불리우는 팜 OS를 탑재한 PDA를 발매했다. 초반기 기존 팜PDA들이 제공하지 못했던 이미지, 음악, 동영상 재생 등의 멀티미디어 컨셉 기기들로 인기를 끌었고,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주목을 받아 국내에서도 클리앙과 같은 사용자 커뮤니티도 만들어졌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태동으로 2005년 개발과 발매가 중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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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글래스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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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스마트 아이 글래스

창의적인 기술 개발을 중시하는 사내 분위기에 따라 소니 글래스트론으로 불리우는 HMD사업에 1992년부터 진출했다. 글래스트론이란 명칭은 사라졌으나 현재도 발매하고 있으며 2014년에는 스마트 안경인 소니 스마트 아이 글래스라는 제품도 발매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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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리더라는 전자책 브랜드도 있다. 전자 종이 디스플레이를 채택한 전자책 단말기를 최초로 상용화한 것도 소니.
하지만 적자 누적으로 인해 전자책 시장에서는 사실상 철수했다.
A4 종이 사이즈의 전문가용 전자책 단말인 DPT-S1을 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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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드림머신이라는 알람 시계 라디오도 유명하다. 1950년대 부터 발매된 ICF시리즈를 모태로 한 진정한 소니의 역사를 함께한 브랜드.[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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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plōd라고 불리는 소니의 차량용 오디오 브랜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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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ro vault이라는 저장장치 브랜드도 있다. 세련된 디자인으로 영화나 일본애니메이션 등에서도 자주 등장하는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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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부터 2010년까지 마일로(mylo, My Life Online)라고 불리우는 개인용 통신기기 제품을 발매하가도 했다. 지금의 스마트폰과 유사한 기능을 지원했지만 전화나 메세지는 지원하지 않았다.(단 스카이프, 이메일등 인터넷을 사용하는 통신은 가능) 처음에 발매했을때는 나름 주목을 받기도 했으나 이후 아이폰의 등장으로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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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터와 영사기와같은 기업용 테크놀러지를 포함하는 부문에서도 강점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DCP 영사시스템용 4K 이상급 프로젝터는 영사기 전문 브랜드인 크리스티사의 프로젝터와 소니의 프로젝터가 양분하고 있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사가 핵심 부속인 4K 지원 DLP 칩을 생산량의 한계로 이 두업체에 우선적으로 공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형 스크린에서의 선명도, 시스템 안정성과 호환성, 가격적 메리트에서 소니의 강점이 매우 크기 때문. 굳이 단점이 있다면 밝기가 약간 어두운 편이라 초대형 스크린에서는 화면이 희미하게 보이는 문제점이 있다고 한다.

참고로 국내에서 4K DCP로 상영하는 극장은 거의 대부분 소니 프로젝터를 체택하고있으며, 가장 빠르게 4K 전환을 완료한 메가박스는 일부 라이션스관(주인이 따로 있고 이름만 빌려주는 극장)을 제외한 전 상영관을 모조리 소니 프로젝터 시스템으로 깔았다고 한다. 신세계 센텀시티에 위치한 CGV스타리움관도 이것을 사용하는데, 스크린 크기가 크고 아름답다보니 밝기문제로 두개를 구매해 겹쳐서 사용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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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의 4K OLED 의료용 모니터

의료 사업에서도 옛날 트리니트론 시절부터 내려온 명성이 아직도 의료용 모니터 시장에서 남아있다. 현재는 올림푸스와 함께 의료산업에 공식적으로 진출한 상태이며 올림푸스의 내시경기술과 소니의 이미지 센서 기술을 결합하여 내시경 카메라등을 개발 및 발매하고 있다.

4.11. 전용 규격 집착[편집]

이 회사는 특이하게 독자적으로 자기네 전용 규격을 만드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며, 자사 제품에는 무조건 자기네가 만든 규격의 미디어를 주로 탑재하려는 성향이 있다. 이게 잘 풀리면 돈방석에 앉지만 잘 안 풀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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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y MD 레코더 MZ-R55

대표적인 것이 베타맥스하고 UMD, 그리고 MD 플레이어. 베타맥스VHS에게 발리고[83], UMD는 정말 소니만 사용하는 표준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미니 디스크는 1990년대 말 일본에서는 좀 팔리고 샤프, 파나소닉 등 여러 회사에서 만들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뭐 그 외에도 더 있다. i LINK, 메모리스틱이며, 여러가지 등등. 특이하게도 대부분의 전용 표준이나 실패작들은 수확 체증 법칙으로 인한, 시장 선점의 실패 및 그에 걸맞는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빛을 보지 못한 것이 대부분.독자 규격 제품 자체는 성능이 특히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으니, 회사 정책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같다.

그리고, 소니가 내세운 표준매체 관리 전략에 있어서 상당히 보수적인 것도 중요하게 지적받는 실패 요인이다. 대표적인 것이 전용 플레이어 독점 정책이기도 했지만... 정책 중에 성인용 컨텐츠 진입 불가 정책이 있었다. 이 때문에 수많은 야동 제작자들이 베타맥스를 포기하고 VHS로 야동을 생산해 전세계로 팔아먹었다. 베타맥스VHS에 밀린 것은 사실상 이것이 가장 큰 원인. 소니는 뉴미디어의 가장 위력적인 전파 수단은 성인용 컨텐츠라는 것을 간과했다.[84] 이것을 교훈삼아 훗날 소니가 앞장선 규격 중에 표준으로 선정된 블루레이 역시 성인용으로는 출시할 수 없다고 공개적인 입장을 취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성인물 제작에 대해서 아무 행동을 취하지는 않는 유연성을 보여주어 보급을 망치는 일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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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스틱의 경우는 플래시 메모리류 제품이 시장에 퍼지기 시작한 초기에 비싼 가격으로 시장을 선점하지 못한 것이 큰 이유였는데, 사실 소니는 시장 선점의 기회가 있었다. PS2의 저장 매체로 메모리스틱이 검토된 적이 있었는데, 결국 그보다 훨씬 크고 비싸고 용량 적고 게임 데이터 저장 이외에는 쓸 수 없는 PS2 전용 메모리 카드가 채택되었다. 이는 SCE와 다른 계열사간의 관계가 안 좋아서 그랬다고...[85] 만약 PS2의 저장매체로 메모리스틱이 사용됐다면 아마 지금 모든 디카는 SD카드가 아니라 메모리스틱을 사용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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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 대표적이라곤 할 수 없지만 PS Vita의 경우 UMD의 실패를 교훈삼아 표준규격을 도입하는가...했는데, 또다시 비타만의 독자규격을 무려 두가지(!)나 탑재하고 돌아왔다(...).마이크로 SD카드보다 아주 약간 더 작은 비타 전용 메모리카드와, UMD 슬롯을 제거하고 도입한 SD카드만한 비타 전용 카트리지다. 상기 이미지의 맨 왼쪽부터 비타용 게임 카트리지, SD카드, 비타 전용 메모리카드가 아니라스틱, MicroSD다. 문제는 이 전용 메모리카드 가격이 무지막지하게 비싸다. 다만 이 독자규격 덕분에 불법복제를 막는데 성공한 면도 있는지라 '독자규격은 짜증나지만 복돌이는 더 짜증나'라는 논리로 얼추 넘어가 주는 사람이 꽤 된다.

반면 이러한 표준매체 관리 전략을 쓰지 않은 매체는 대부분 성공했다. 대표적인 것이 3.5인치 플로피디스크이며, CD, DVD 매체 역시 성공사례. 이후 플레이스테이션의 힘으로 블루레이HD-DVD를 제치고 업계 표준이 되어 버렸다.[87][88] 하지만 안타깝게도 2010년대의 현대인들은 1테라(1,000기가) 하드가 6만원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어서[89] CD나 DVD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일단 1테라짜리 내장/외장 하드 하나블루레이의 고용량 규격 중 하나인 BDXL 표준형 100GB 미디어 한 장보다 가격이 저렴하거나 비슷하다.

5. 근황[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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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포, 4차원 마케팅으로 유명하다.#

콘솔 게임은 물론이고 온라인 게임에도 비교적 일찍 진출하여 에버퀘스트 같은 걸작을 내기도 했다. 플래닛사이드 같은 실험성 강한 작품도 냈고 MMO 계열에선 대부분의 장르를 만든 베테랑 제작사. 지금이야 WOW에 밀리지만 해외에선 여전히 MMO 온라인 게임에 관한 한 최고의 제작사로 꼽는다. 특히 언차티드 2의 경우는 플레이스테이션 퍼스트 파티의 대열에 참가하면서 입지가 대폭 올라갔다.

80년대에는 마그네틱 비디오 카메라의 약칭인 마비카라는 브랜드로, 90년대부터는 사이버샷이란 서브 브랜드로 디지털 카메라를 만들고 있고, 제품 대부분에 유명한 독일 칼 자이스 렌즈를 쓰는데도 불구하고 가전 회사란 이미지가 강해 전문가들에겐 같은 일본의 니콘, 캐논, 올림푸스 같은 필름 카메라 시절부터 이어져 온 광학 기기 전문 회사 제품에 인지도에서 한참 밀리고 있었다. 그러나 탄탄한 설계기술로 이름이 높던 미놀타의 카메라 사업부문을 고스란히 인수하고 기존의 칼 자이스 렌즈를 이용한 마케팅으로 DSLR에 도전했으나 큰 재미를 보지 못했고, 이후 기존 DSLR의 단점인 움직이는 거울을 고정식의 반투명 거울로 대체한 DSLT 시리즈를 내놓아 니콘과 캐논의 파이를 조금씩 뺏기 시작해 어느 정도의 인지도를 가지게 됐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카메라의 양대산맥인 캐논니콘의 아성을 넘보기엔 역부족일 것이라 예상했으나, 2010년 이후 미러리스 방식의 NEX시리즈와 DSLT방식의 히트로 인해 마이크로 포서드 시스템의 파나소닉과 올림푸스를 제치고 니콘마저 넘어서고, 미러리스 덕분에 판매가 줄어든 DSLR을 살리고자 카메라시장의 선두라는 위치를 이용하여 최악의 성능을 보여준 미리러스(EOS-M)를 출시해 소비자들의 마음을 다시 DSLR로 돌리려는 물타기를 시도했으나 실패한 캐논마저 넘보더니, 2014년 1/4분기 이후 렌즈교환식 디지털카메라 시장에서 선두를 차지하였다. 특히 2013에 출시된 첫 풀프레임 미러리스는 2016년 현재에도 어느 회사에서도 만들지 않았거니와[90] 고급렌즈들도 서서히 늘려가고 있다. 한마디로 마이너에서 메이저로 거듭나고 있다.[91] 물론 전체적인 시스템을 따지면 여전히 밀리지만 미러리스가 차세대 카메라이고 기술발전에 따라 미러리스도 많이 발전되는 반면 DSLR은 여전히 이젠 발전할 만한 부분이 없거니와 오히려 미러리스가 앞서가는 만큼 미러리스를 선두하고 있는 소니의 미래는 밝은편이다.

마이크로 포서드 진영은 APS-C 타입의 센서를 장착한 소니의 제품들과 충성고객이 많아 그럭저럭 판매량이 나오는 삼성의 미러리스 제품들에 밀려 도태되는 중이며[92], 컴팩트 카메라 부문에서는 소니의 RX-100 시리즈가 연달아 히트하며 하이엔드 디카 중의 왕좌를 차지해 캐논과 니콘의 도전을 받는 챔피언의 위치에 고수하고 있다. 또한, 소니의 이면조사 방식의 센서는 디지털카메라를 넘어 고급형 차량용 블랙박스와 프리미엄 스마트폰에 앞다투어 채택되고 있다. 2016년 기준으로 전 세계의 스마트폰의 대부분은 소니의 센서를 사용한다고 봐도 된다. 유명한 애플 아이폰도 소니의 센서를 사용하고. 삼성전자갤럭시 시리즈도 자사의 센서와 소니의 센서를 혼용하고 있다.

방송용 캠코더, 가정용 비디오 캠코더(핸디캠, Handycam)에선 전통적인 강호. 방송용, 특히 휴대용 방송 캠코더는 그냥 알아주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독점에 가까운 상태고, 테이프 포맷으로서 소니 베타캠 라인이 사실상 표준이며 제품으로도 업계 1위며, 방송용 카메라 중에서 3D에 꽤 빨리 열을 내고 있다. 스튜디오용 방송 카메라도 소니가 거의 독점적인 지위를 누렸으나 캐논 등 다른 회사의 점유율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상황. UCC를 겨냥한 블로기 브랜드도 런칭 중이다. 다만, 방송장비 시장은 원래 큰 이익을 남기지 못하는 분야이니 소니에게 엄청난 이득을 가져다 준다고 보기는 어렵다. 최근에는 액션캠에도 뛰어들고 있는데 이미 선점하고 있는 고프로에 비해서는 콩라인이다....인줄 알았는데 한국에서 고프로를 뛰어넘는 시장 과반수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2015년 CES에서 세계 최초의 4K(...) 액션캠을 발표하며 입지를 굳히는중. 과거 액션캠 업계를 독점하고 있던 고프로에게 소니답지 않게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후발주자인 소니는 액션캠 업계에 늦게 뛰어든 것에 비해 소비자에게 크게 어필하여 선두주자인 고프로의 점유율을 야금야금 깎아먹고, 그 동안 쌓아온 카메라 이미지 센서 기술력을 바탕으로 샤오미 등의 후발주자를 따돌리는 중이다. 소니의 액션캠에 관한것은 소니 액션캠 항목 참고

샤오미의 액션캠은 출시 당시에는 엄청난 가성비로 주목을 끌었지만 샤오미의 카메라 기술력과 노하우 부족으로 인한 문제점이 적지 않게 발견되어 지금은 그냥 돈 더 주고 소니 액션캠을 구매하라는 분위기다. 샤오미의 액션캠에 관한 것은 샤오미 Yi 액션캠 항목 참고.


디자인으로 먹고 사는 브랜드로 디자인에 상당히 정평 나있는데, 왠지 회색삘이 나는 은색을 자주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이 색을 매우 사랑하는 듯하다.[93]근데 엑스페리아 퍼플이 넘사벽급으로 잘 나와서 보라색이 소니의 색이라고 기정사실화 되고있다. 애초에 소니가 여러 색을 잘 뽑아내서 소니의 색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은색 지못미 대표적으로 Z1C의 옐로우, Z3의 실버그린, Z3C의 민트, Z4의 아쿠아그린 소니의 제품 중 최고의 디자인으로 평가 받는 제품은 로봇 강아지 아이보. 물론 미친 가격으로 흑역사화 되었다.# 요즘은 애플의 디자인사실 스티븐 잡스가 소니 디자인을 좋아했다. 복귀 후에는 OS X를 소니에는 공급하겠다는 의견까지 피력했던 과거가 있으니까. 그 쪽 인력도 애플로 많이 이적했고이 워낙 전세계적인 인지도를 자랑하다보니 디자인이 좋다는 이미지는 주춤하는 상태. 오히려 디자인 측면으로 뻘짓을 하는 경향도 심심찮게 있다. PSP GO라든지 하지만 항상 내놓는 제품들을 보면 디자인이 평균 이상이다. 업계에선 디자인이라하면 소니는 절대 빼놓지 않는다.

여담으로 "소니 쪽에서 나오는 루머는 항상 진실이다"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미묘하게 비밀 관리가 잘 안 되는 모양이다.

도호쿠 대지진으로 인해 공장이 침수되어 가동을 중단했다고 한다. 자신들이 어려워진 상황에서도 지진 피해자들을 위해 3억엔과 라디오 3만대를 기부한다는 모양.

엔고와 가격, 기술 경쟁력 저하로 인하여 여느 일본 가전업체와 마찬가지로, 소니도 2012년 1월 기준으로 2천억엔 규모의 적자를 기록했다.관련기사

최근 실적 악화로 인하여 2005년부터 연임해오던 하워드 스트링거 회장은 해임되고 주주총회에서 신임된 하라이 사장이 소니 회장(CEO)로 취임할 것이라고 한다.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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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사진의 원본은 가슴 만지게 해주세요. 여기에서 히지리 뱌쿠렌은 소니, 시노는 삼성전자. 이랬던 3,40년 전을 생각하면 정말 안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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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역전된 걸 넘어 TV부문에서 삼성전자가 세계 1위다.[94] 특히나 UHD TV 시장의 경우 유럽과 북미지역 1위를 고수하고 있었으나, 삼성이 본격적으로 시동을 건 2013년 7월 이후 4개월만에 시장점유율을 왕창 뺏기고 말았다. #

파나소닉과 샤프와 다르게 소니는 나름대의 매니아층(충성스러운 고객 집단)이 존재하고 현재에도 방송장비 분야에서 독보적인 입지(방송용 카메라와 스튜디오용 헤드폰)를 지니고 있으며, 디카용 CMOS 이미지 센서와 스마트폰용 카메라 모듈의 주요 공급업체이자 다양한 분야에서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또한 이미 전성기때 영화, 음악, 엔터테인먼트, 금융 분야로 사업분야를 다각화하여 생각보다 그리 쉽게 도산하지 않으리라는 전망도 있다.

여담으로,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소니는 한국에 공장이 있다. 마산 자유무역지역에 "한국소니전자"라는 소니코리아와는 별도의 법인으로 공장이 있으며, 완제품을 생산하지는 않고 픽업 같은 주요 부품을 생산하여 공급하고 있다고 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소니 이어폰을 생산한 적이 있는데, 만일 구형 소니 이어폰이 한국산이라면 그 공장 생산품이다.

2012년 11월 말, 국제 신용평사가 피치가 신용등급을 투자부적격으로 강등하며 주가와 가치가 동반폭락했다. 문제는 더 심각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는 것. 소니가 과거에 안주하는 동안 삼성과 LG가 추월한게 결정적인 문제. 2014년 1월 27일에는 무디스도 신용등급을 투자부적격으로 강등했다.

현재 중고 게임 사용을 막는 기술 특허를 준비하여 많은 게이머에게 충격을 주었지만 다행히 적용하지는 않을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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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2013년도 회계자료를 보면 소니가 처한 상황을 알 수 있는데 매출 기준으로는 모바일, 디스플레이 등의 전자 부문이 70% 가까이 차지하나 영업이익에서 전자 부분은 줄줄이 적자를 보고 소니를 먹여 살리는 것은 금융 부문의 수익이며 그 외 영화, 음악 부문에서도 약간의 수익을 얻고 있다. 그나마도 2013년도 2분기에 영화사업 부문이 적자나서 실적이 악화되고 있다.

2013년 1월 17일, 미국 맨해튼에 있는 미국 법인 건물을 11억 달러에 매각했다. 이게 미국 법인 폐쇄는 아니고 세들어 있는 형식으로 남게 된다고 한다. 또한 2013년 2월 28일, 도쿄의 사옥 중 하나인 '소니 시티 오사키' 빌딩을 1천 110억엔(1조 3천억원)에 매각했다. 소니 시티 오사키 빌딩은 2011년 3월에 완공된 25층짜리 건물로서, 소니 도쿄 본사 건물과도 가까운 도쿄 시나가와구에 있다. 이 빌딩에는 소니의 TV 및 오디오 사업부 임직원 5천여 명이 근무 중인데, 이들은 앞으로 세들어 사는 형태로 근무하게 된다. 기사

이렇게 기업이 소유한 본사 건물을 매각하고 세들어 사는 경영 방법이 있는데, 이건 정말 눈물이 흐를 정도로 가난해진 기업들이 쓰는 방법이다. 즉 일시적으로 빌딩을 매각하여 현금유동성을 올린 다음 재정 상태가 나아지면 다시 인수하는 것. 그러나 이정도 상황까지 온 회사가 다시 그 건물 인수하는거 본 적이 없다 당연히 이는 일시적인 스팀팩 수준의 대처법이며 세를 계속 내야 하므로 재정 상태가 확 나아지지 않는 이상 기업에 부담이 점점 커지게 된다. 방사능 나오는 스팀팩이다.

2013년 10월 17일 현재 카메라 부분을 위주로 개발해 나가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러리스 풀프레임. 바디 가격만 1499달러와 1999달러라서 충격과 공포를 안기고 있다. 다만 화소가 기본 풀프레임에서 D800E급과 비슷한 화소를 자랑하고 있다. 굳이 DSLR처럼 큰걸 쓸필요가 없어진다. 특히 캐논의 6D와 70D에 갈 유저들을 끌어모을 수 있다는 점.[95] 하이브리드 카메라는 무려 고정 2.8조리개 줌렌즈로 나왔다.

엑스박스 원과 경쟁구도인 플레이스테이션 4가 발매 첫날에 100만대 판매를 달성하며 PS3과 달리 순항 중이다. 발매 2주만에 판매량 210만 대를 돌파했다. 1대를 팔 때마다 300달러의 손해가 났던 PS3와 달리 이번 PS4는 18달러가 남는다고 한다. 기사

소니 본사에 있는 세계지도에서 한국을 아예 지워버리는짓을 해서 이걸 아는 사람들에게는 까이고 있다. # 링크에 있는 소니의 지도는 2008년에 한국을 지웠고 한국은 2011년에 일본을 지웠으니 소니가 먼저 도발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걸로 소니가 극우익 기업이라고 하는건 좀 뭣한 일이다. 애초에 소니가 그런 단체들 후원해줬단 사실도 없으므로... 한국 시장이 꿀빠는 시장인데 과연 무덤을 파려고 할까?[96]

2014년 1월 27일 국제신용평가기관 무디스에서 투자적격등급 최하위의 Baa3에서 투자주의등급인 Ba1으로 한 단계 강등했다. 숫자 높아졌다고 좋아할거 아니다. a가 줄었으니 나빠진거다. 주력 분야인 TV, PC 등의 가전제품 분야의 하락세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어 타격이 크다. 기사

2014년 들어 PC 부분 사업을 전부 매각했다.

2009~2011년 회계연도에서 줄줄이 적자를 보다가 2012년 회계연도에서 430억엔의 흑자를 보았으나 다시 2013년 회계연도(2013년 4월~2014년 3월)에서 연결 손익이 1300억엔 적자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2년만에 한국에 공식 출시한 2014년 상반기 플래그쉽 스마트폰인 엑스페리아 Z2가 좋은 반응을 얻으며 순항 중이다. 예약 판매는 1차 까지만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예상보다 반응이 뜨거워서 2차까지도 진행 됐으며 SKT도 KT에서 진행한 예약 판매가 잘되는 것을 보고 지기 싫어서 예약 판매를 진행했다. 물론 모두 완판. 현재 예약 판매가 끝나고 일반 판매가 진행 중인데, 일부 문서를 보면 4~5월 생산분에서 유격 문제가 많다는 정보가 있으므로 구입시 확인하고 유의할 것. 결국 인생은 운이다. 방수폰인데 유격때문에 침수되는 경우도 생긴다. 그리고 그로부터 2세대 후에 나온 엑스페리아 Z3 Plus는 스냅드래곤 810을 탑재해 발열로 욕을 먹고 있다.

또한 국내 렌즈교환식 카메라 점유율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여 이벤트도 진행중. ### 올림푸스 지못미

2014년 7월 28일, 실적 악화로 도쿄 미나토구에 위치한 본사 건물의 토지를 자회사인 소니생명보험에 528억엔에 매각하기로 결정되었다. 2014년 9월 17일 소니는 2014년 회계연도(2014년 4월~2015년 3월)의 실적 전망을 기존의 500억엔 순손실에서 2300억엔 순손실로 수정하면서 상장 56년 만에 처음으로 배당을 하지 않으며 1000명 규모의 감원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2014년 9월 17일 소니 상장 56년 만에 처음으로 주식 배당을 하지 않았고 18일 소니의 주가는 13% 폭락해 도쿄 증권거래소가 일시적으로 거래를 중지 시켰다.

2014년 10월 21일 해지펀드 써드포인트의 대니얼 로브가 소니 주식 7%를 전량 매각했다. 소니 계열사중에 그럭저럭 이익이 나는 소니 엔터테인먼트를 분리시켜 가전사업에 투자를 늘리고 회생해야 한다는 압박을 넣어와서 분사보다는 경영 정상화를 꾀하는 현 경영진(히라이 CEO)의 의견충돌이 있었고 결국 포기하고 매각.

2014년 11월, 추수감사절 기간에 소니 픽처스는 디 인터뷰 관련 해킹을 당해 약 5억달러 (5천억원) 수준의 피해를 보았다. 망했어요.

2015년 2월 19일, 소니의 일등공신 브랜드인 워크맨도 분사시키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기사에 따르면 소니의 유일한 하드웨어 생산품은 플레이스테이션과 이미지 솔루션 관련 제품 위주가 될 것이며 그 외에는 음악과 영화같은 미디어 관련 사업에 집중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실제로는 One Sony 정책의 실패 이후 히라이 소니가 추구하는 새 정책의 일환이다. 이때 시점까지도 분사되었던 소니 비주얼 프로덕트의 실적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2017년까지 여러 분야에 걸쳐 분사화를 추진한다고 한다.

2015년 4월 30일의 연결실적발표에서, 2014년도의 매상고는 8조 2,159억엔, 영업이익은 685억엔, 순손실은 1,260억엔의 적자로. 전년도의 1,284억엔의 손실에서 약간 개선되었음을 발표했다. 최초 예상했던 500억엔의 적자보다는 크지만, 예상치로 수정했던 2,000억엔의 적자보다는 월등한 수치여서 주가가 크게 상승했다.

특히 TV의 실적이 크게 회복되었고, 이미징 센서, 플레이스테이션 4와 환율의 영향을 크게 받았지만, 히라이가 직접 '소니 비지니스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밝힌 모바일 분야에서 무려 2,204억 엔의 적자를 기록했다. 소니로서는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가 될듯. 그냥 애플, 삼성, 화웨이처럼 자체 AP를 개발하는게 답이다. 소니 모바일 매각설을 소니는 부정하고 있지만 이것도 언제까지 갈지 의문이다.

5.1. 부활[편집]

2015년 10월 29일 발표한 회계연도 2분기 (2015년 7~9월) 발표에서 순이익 336억엔, 영업이익 880억엔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회계연도 상반기 (4월~9월)로 잡으면 순이익이 1159억엔으로, 전년 동기(1091억엔 적자) 대비 흑자로 돌아선 것은 물론, 상반기 기준으로 무려 5년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또한 매출액은 전년 동기대비 소폭 감소한 3조7007억엔, 영업이익은 1849억엔 흑자를 기록했다. 이는 파나소닉(1113억엔)이나 히타치(975억엔)의 상반기 이익보다 많은것으로, 이대로라면 2015년에는 3년 만에 연간 기준 흑자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되는 등 서서히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소니의 이러한 흑자 전환은 드론에까지 사용되며 수요가 급증한 영상센서(259억엔)와 게임기(239억엔) 분야에서 대대적인 흑자를 달성했기 때문이며, 카메라 부문 수익도 전년 동기 대비 29%나 늘어나는 등 주요 수익원에서 짭짤한 수익을 낸 것이 크다. 즉 기존의 특화 산업에서 더욱 큰 이익을 낸 것이며, 이는 지속적 수요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고부가가치 산업에 치중된 일본 기업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반면 모바일은 스마트폰 시장의 경쟁 심화로 여전히 2분기 기준 206억엔 적자를 기록하여, 적자의 폭은 줄었으나 여전히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모습이다. 다만 소니 모바일의 토토키 사장이 2017년 회계분기 (2016년) 에서의 흑자 전환을 자신했고, 신형 엑스페리아 Z5 패밀리의 평가도 좋은 편이어서, 마냥 전망이 어둡지만은 않다. 특히 소니는 타사와는 달리, PC 부문을 매각하여 전망이 어두운 손실보는 부문을 정리했고, 차후 모바일 시장의 성장가능성을 소니도 잘 알기 때문에 쉽사리 철수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던 와중 4월 28일 소니는 2015년 회계 연도(2015년 4월~2016년 3월)의 연결 당기순이익을 발표했는데, 1,477억엔(한화로 1조 5737억)을 기록해 5년 만에 흑자가 났다. 디지털카메라와 TV 사업부, 플레이스테이션(PS)등 고부가가치 제품 판매 호조에 힘입어 전자부문이 5년 만에 흑자를 기록한 것이다. 매출은 8조1,057억엔로 직전 회계연도 대비 1% 줄어들었는데, 이는 스마트폰 등 모바일 사업부의 매출 20%가 쪼그라든 게 매출 하락의 원인이 됐다. 또한 모바일 사업부는 614억엔 적자를 냈지만, 작년에 비해서 영업손실이 1561억엔(1조 6,632억)이나 줄어들었다. 장기적으로 모바일에서 이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으며, 단기적 손실을 그룹 차원에서 안고 갈 여유가 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인 것.

2016년 6월 분기 실적이 발표 되었는데, 구마모토 지진으로 인해 영업이익은 지난해 7.8억 달러에 비해서 크게 하락하였지만 MC 사업부가 흑자로 돌아서면서 최종적으로 2.05억 달러를 기록하였다. 전체 매출은 지진으로 인한 영향으로 지난해에 비해 11% 하락한 156억 달러를 기록하였으며, 소니의 MC 사업부 역시 매출이 33% 하락한 18억 달러를 기록했으나, 플래그쉽 시장에 집중한 결과 400만 달러의 영업이익을 기록하였다. 이미징 센서 부문은 11.8억 달러의 매출과 7300만 달러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으며, 게임과 네트워크 부문은 4.26억 달러의 영업이익과 32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그리고 홈 엔터테인먼트 부분에서는 소니가 플래그쉽 TV 라인업에 집중하고 영업비용을 절감한 결과 매출은 하락하였지만, 영업이익은 1년 전보다 85.3% 상승한 1.97억 달러를 기록했다.

2017년 소니의 2분기 매출은 2조6천억엔으로 당초 예상했던 1조8천억엔을 크게 넘어섰으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1% 늘었다. 영업이익은 2천40억엔으로 예상치 1천356억엔보다 앞섰고 전년대비 346% 증가했다. 이는 1998년 이래 사상최대 규모다. 소니는 2017 회계연도 전체 영업이익을 6천300억엔으로 예상했다. 이 예측대로 소니 영업이익이 6천300억엔을 기록한다면 이는 소니가 1998년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기의 성공적인 첫출시로 세웠던 영업이익 최고치 5천260억엔을 경신한 것이다. 이번 실적호조는 이미지 센서 사업과 게임기 사업의 약진과 TV및 모바일 사업의 이익률 증가 때문이다. 소니는 2분기 게임과 네트워크 서비스 사업의 영업매출을 4천332억엔 올려 전년대비 35.4% 성장했다. 영업이익은 548억엔으로 188.3% 증가했다. 소니 반도체 사업은 2분기 영업이익이 494억엔으로 1년전 영업손실 19억엔에서 크게 성장했다. 이에 소니 주가는 이날 2.7% 가량 상승했다.# 특히 부진했던 TV 부문 사업은 초고화질 TV 등 가격대가 높은 프리미엄 제품에 주력해 이익률을 빠르게 높이고 있으며 OLED TV 판매에서 성과를 거두면서 지난 2분기 매출은 16.9% 증가했고, 대당 1500달러 이상의 프리미엄 TV 부문 세계 시장 점유율 36.1%로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또한 반도체와 게임 부문에서는. 플레이스테이션 4가 2분기에만 420만대가 판매되는등 호조를 보이고 있다. 덕분에 게임·네트워크 서비스 부문 매출은 4332억엔(약 4조2600억원), 영업이익은 548억엔(약 5390억원)에 달했다. 이미지 센서를 포함한 반도체 부문 매출은 2284억엔(약 2조2460억원)를 기록하였고, TV를 포함한 홈 엔터테인먼트와 사운드 부문 매출은 3009억엔(약 2조9560억원), 영업이익은 244억엔(약 2400억원)를 기록했다. 이미지 센서 게임기 그리고 프리미엄급 TV의 판매 호조가 이익 증가에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보험 및 영화, 음악부문에서도 수익을 거두는 등 빠르게 회복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6. 한국법인[편집]

6.1. 소니코리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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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단은 소니코리아(으)로 검색해서 들어올 수 있습니다.

파일:소니 아이유.png

소니의 한국 현지법인으로 컨슈머 제품 및 비즈니스 제품 판매에 주력하고 있다. 또한 부품 및 소재 판매에서도 적지 않게 매출을 올리는 모양. 1990년에[97] 소니 인터내셔널 코리아로 설립되었고 1992년에 남대문 시장 앞에 있던 어느 빌딩 맨 위 간판으로 소니라고 영어로 큼직하게 달아서 홍보하기도 했으나 일본 기업이 그렇게 숭례문 근처에 이름 내세우는 건 별로 안 좋다는 여론이 있어서 두달도 안가 급히 내렸던 일화가 있다. 그러다가 2000년 4월에 사명(社名)을 소니코리아로 바꾸었다. 컨슈머 제품(일반 소비자용 전자제품)은 물론이고 비즈니스 제품(특히 방송장비) 매출이 상당하다고 한다.기사

하지만 A/S쪽은 별로 좋지 않은 소리가 나온다고... 소니코리아 A/S센터에 맡기면 십중팔구 부품이 없어서 일본에서 공수해와야 수리가 가능하다고 한다. 이게 기본 2주 이상 걸린다. 특히 일본 내수모델이나 라디오 등 소형 음향기기(특히 단파라디오나 일본내수용 포켓탑 라디오)는 거의 100%다. 그래도 국내 도입 기종이 아니면 부품 수입도 안하려는 파나소닉 코리아에 비해서는 나은 편이다. 국내에 정발된적이 없는 소니 단파라디오를 수리해줬다는 얘기가 여럿 있다. 하지만 엑스페리아 제품의 경우 한국에서 나오지 않았거나 한국에서 출시되었지만 해외에서 구매한 모바일은 수리는 커녕 접수조차 되지가 않는다. 그리고 블루투스 이어폰도 영수증이 없으면 수리는 커녕 접수조차 되지가 않는다.(!)

그리고 무상AS기간이 끝나면 충공깽한 수리비가 청구된다. 예를 들어, 16만원짜리 블루투스 헤드셋의 나사 하나가 빠졌는데 9만원이 청구된다거나, 19만원짜리 보이스레코더의 내장배터리 교체비용이 9만원이 나온다거나, 분해 수리가 불가능하고 무조건 교환만 가능한 20만원짜리 스마트밴드 톡의 코어모듈 교체비가 18만원이라던지, 타사의 경우 20만원대 초반이 나오는 스마트폰 메인보드 수리비가 혼자서 30만원대 중반인 등 사소한 고장의 경우, 기사가 해당 제품을 점검한 뒤 "그냥 쓰시든지 아니면 차라리 새것을 사시든지 하라"고 충고를 해줄 정도. 타사의 경우 기사가 이런 말을 하는 경우는 대개 부품 수급이 원활치 못한 경우 말고는 거의 없다.

단, 이어폰 쪽은 상황이 좀 다르다. 타사는 초기 불량을 제외하면 무상 A/S 라는 걸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지만, 소니는 대부분 제품에서 2년 보증을 실시하고 있다.[98] 정품 스티커와 영수증을 보관한 상태로 외관에 문제만 없으면 단선 등의 문제는 택배비까지 내지 않고 새 제품으로 교환해준다. 단순하게 이어폰만 신품으로 딸랑 보내주는게 아닌 새 이어폰 박스채로 보내준다. 결정적으로 소비자가 느끼기에 좌우 밸런스가 불균형 하다 라고 느낀 경우에도 교환이 가능하다. 만약 재고가 없거나 단종된 경우 동급의 신형 제품 혹은 약간 상위기종을 선택하게 해주거나, 환불해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만약 색이 두가지 이상인 경우 색상의 변경까지도 가능하다. 타회사들은 대부분 동일 모델 동일 색상으로만 교환해주지만 소니는 색상도 바꿀 수 있다. 초기 불량이 아니라 몇 달을 쓴 제품일지라도 아니 1년 11개월 28일을 쓴 제품일지라도 문제가 생기면 미개봉 신품을 박스나 포장 그대로 보내준다. 참고로 고가형 해드폰은 부품교환이 가능해 수리비 폭탄을 맞거나 무상수리 받거나 둘중 하나이니 주의할것.

메모리카드나 USB 시리즈의 경우 5년,2년 이런식으로 보증기간이 잡혀져 있으며, 이어폰 수리처럼 영수증이 있다면 새 제품으로 교환해준다.(다만 일부제품은 영수증 없이도 되기야 한다.) 다만 메모리 같은 경우에는 수리가 아닌 교환 방식이기 때문에 데이터가 날라간다. 그래서 수리 접수시, 데이터 포맷 관련하여 동의를 얻고 진행한다.

휴대전화 A/S는 심각하다. 메인 모델인 Z 시리즈, X 시리즈를 A/S 할 수 있도록 방수폰 수리 장비를 갖춘 곳이 압구정 단 한 곳뿐이며, 그나마 용산점[99]이 있던 당시에도 그 지역 이름과 비슷한 정신을 심히 계승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압구정 지점은 용산 지점에 비해 친절하긴 하나, 그 대신 사람이 미어터진다. 또한 용산점의 엑스페리아 수리 지원이 종료되면서, 전국에 수리 인력이 단 2명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즉, 전국의 모든 엑스페리아를 단 2명이서 책임지는 구조다! 소니코리아의 홈페이지에서는 전국 AS가 가능한 것으로 표시되지만, 이는 다 훼이크로, 실제로 압구정점을 제외한 타지 소니코리아 서비스센터나 TG서비스에 제품을 접수하면, 해외 수리공장으로 보내서 수리해준다. 홈페이지에서는 SK텔레콤 A/S 센터도 이용 가능하다고 안내하고 있지만, 자급제폰 특성상 TG서비스 센터를 이용하는 것이 더 낫다. 다만 전국 A/S가 불가능한 문제는 순전히 방수폰 수리 장비가 없기 때문이기에, 방수가 되지 않는 기종[100]은 타지에서도 수리가 가능하다. 다만 부품 재고를 항시 준비해두고 있는 곳은 압구정이 유일하기 때문에, 타지에서는 접수 즉시 부품을 주문하게 되며, 수리 기간은 최소 1주일이 소요된다. 그래서 보통 현장수리가 아닌 해외 공장 접수대행을 권유받는다. 단순 접수대행점인 셈. 접수를 타지 센터에서 맡기고 수령은 자택으로 할 수 있는지는 추가바람.

또한 보통 다른 휴대폰 제조사는 보통 무상으로 처리해주는 사항이 유상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매우 잦으며, 단말기 가격은 국내 폰에 비해 싸지만, A/S 비용과 소요 기간은 하늘을 찌른다. 상술했다시피 부품 수급 사정이 열악해서, 메인보드와 액정 동시 교체에 최대 2주가 소요된다. 거의 한국 엑스페리아 사용자들은 소니라서, 디자인이 좋아서, 작아서 산 사람들이 많은데, A/S를 받은 후 득도하여 다음에는 삼성이나 애플로 다시 넘어가거나, 아예 A/S는 포기하고 고장나면 새로 산다는 정신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술 더 떠서 엑스페리아를 쓰다가 가지고 있는 다른 삼성 기기의 A/S를 받는 경험을 한다면...[101]

요즘은 콘솔게임기[102] 음향기기(이어폰, 스피커, 헤드폰), 카메라의 A/S는 많이 개선되었다고 한다.

2013년 1월 1일, 소니 모바일의 한국 법인이었던 소니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를 흡수 통합했다.
2013년 7월 31일, 물류를 담당하는 소니 서플라이 체인 솔루션즈의 한국 법인인 소니 서플라이 체인 솔루션즈 코리아를 흡수 통합한다는 소식이 떴다.# 소니 서플라이체인 솔루션즈 코리아는 원래 삼성전자와 소니가 2004년 합작한 LCD 생산법인인 'S-LCD'의 물량을 전담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인인데, 두 회사가 2011년말 합작사업을 청산하게 되자 소니 본사 측에서도 경영 효율화를 위해 굳이 별도 법인을 둘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여담으로, 최근들어 스타마케팅에 상당히 열을 올리는 추세다. 제일 성공한 사례가 바로 아이유의 MDR라인업 모델기용. 광고에 출연시키고 발표회에 출연시키는데[103] 그치지 않고 드라마와 차기 앨범 티저에까지 제품을 PPL하여 젋은 층에서 인지도를 향상시키는데 제법 성공했다. 그때문에 고마웠던 것인지 2016년 현재까지도 아이유를 모델로 유지하고 있으며 종종 아이유 유명 팬블로그등을 통해 자사 제품과 아이유의 사진이 들어간 다이어리를 비롯한 각종 답례품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니까 엑스페리아도 스타마케팅 좀 팍팍해줘봐

소니스토어 오프라인 매장은 원래는 명동점, 압구정점, 코엑스점이 있었으나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명동점과 코엑스점이 정리되면서 한 동안은 압구정점만 남아 있었으나 2017년에 강남역 근처에 강남점을 개장했다. 다만 수리는 강남점에서는 접수대행조차 해주지 않으니 주의. 압구정점이 멀지 않으니 직접 가는 것이 좋다.

신제품 발표회 때마다 식사 대접을 후하게 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보통 카메라 발표회의 경우 카메라 테스트 겸 식사를 제공해주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간식거리가 아닌 고급 요리가 항상 나오는 것이 특징. 항간에는 "외식사업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말이 나올 정도.

6.2. 한국소니전자[편집]

역시 소니의 한국법인으로써 한국소니전자는 소니코리아와는 별도로 설립된 법인이다. 일본 소니가 1972년 한국에 설립한 제조공장인 한국동양통신공업이라는 이름의 회사가 시초. 1992년에 10월에 한국동양통신공업과 1973년 설립된 한국SOWA가 합병되면서 한국소니전자로 사명을 변경한다. 본사 및 사업장은 마산자유무역에 위치해 있다.
소니코리아가 수입, 유통을 담당한다면 한국소니전자는 생산 및 제조를 담당하고 있다. 주로 생산하는 제품은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부품. CD와DVD의 디지털 신호를 재생하는 장치인 광픽업(Optical Pick-up) 등 광학장치와 반도체 부품 등을 주로 생산한다. 단, 한국소니전자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소니코리아가 유통하는 것은 아니다. 2002년경까지는 소니 이어폰을 생산하기도 했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까지 생산된 소니이어폰 중에서 한국제는 여기서 생산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영어로는 Sony Electronics of Korea라고 표기한다. 소니그룹내에서는 한국소니전자라는 말 보다는 'SEK'라는 말을 더 자주 쓴다. 소니코리아를 부를 때는 'SOK'.

7. 주요 자회사[편집]

주요 자회사 목록은 http://www.sony.co.jp/grouplink/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소니 주식회사(지주회사)

    • 소니 EMCS(제품 개발 및 일본내 생산 총괄, 일본 내 A/S 담당)

    • 소니 서플라이 체인 솔루션즈(물류)

    • 소니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즈(휴대폰)

    • 소니 아메리카

      • 소니전자(전자제품)

      •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음악) - 1987년 인수한 CBS레코드를 전신으로 한다. 이후 독일 BMG의 음반사업부분을 합병 후 베텔스만쪽 지분 전체를 인수해서 완전자회사가 되었다.

        • 콜롬비아 레코드

        • 에픽 레코드

        • RCA 레코드

        • 좀바 레이블 그룹

          • 아리스타 레코드

          • 라페이스 레코드

          • 자이브 레코드

        • Legacy Recordings

        • Sony Music Nashville

        • Provident Music Group

        • RED Distribution

        • Syco Music

        • Sony Music International Companies

        • Sony Masterworks

        • 소니 뮤직 마케팅(SMM, Sony Music Marketing)

        • 소니 뮤직 한국(SMEK, Sony Music Entertainment Korea)

      •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SPE)(영화, TV) - 음반 부문과 마찬가지로 소니 미국 법인 소유.

    •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SIE, 게임)

    • 소니 뮤직 일본(SMEJ, Sony Music Entertainment Japan) - 미국 소니 뮤직 본사의 일본 지사 역할을 하고 있으나 별개의 회사며 이쪽은 소니 일본 본사가 소유한다. 회사 자체는 소니가 미국 콜럼비아 레코즈를 인수하기 이전에, 미국 CBS 레코즈와 소니의 합작으로 세워졌다. 덤으로 소니 뮤직 본사가 음반 레이블로써 보유한 콜럼비아 상표를 일본에서는 (예전의 특수한 사정때문에) 닛폰 콜롬비아라는 다른 회사가 보유하고 있어서 못 쓰고있다.

      • 소니 뮤직 레이블즈(SML, Sony Music Labels)

        • 소니 뮤직 레코드(SR, Sonic Music Records)

        • 소니 뮤직 엔타테인먼트 레코드(SER, Sony Music Entertainment Records)

        • 소니 뮤직 어소시에이티드 레코드(ASR, Sonic Music Associated Records

        • 에픽 레코드 재팬(ES, EPIC Records Japan) - 에픽 레코드의 일본 회사

        • DefSTAR Records(DEF)

        • Ariola Japan(AOJ) - 舊 BMG Japan

        • 오거스타 레코드 - 오피스 오거스타 소속 아티스트 전용 레이블

        • Little Tokyo - 오다 카즈마사 개인 레이블

        • 큔 뮤직(Ki/oon Music)(KS)

        • 비일상 레코드 - 히토리에 자체 레이블

        • Sony Music Artists(SMA)

        • 뉴컴

        • 스티즈라보 뮤직

        • 뮤직 레인 (Music Ray'n)

        • 뮤직 타블로이드

        • 빌리지 뮤직

      • 애니플렉스 그룹 - 소니 픽처스 일본과 소니 뮤직 일본이 반반씩 출자해 세워졌으나 나중에 소니 뮤직 일본의 완전한 자회사가 된다. 지분의 100%가 소니 뮤직 일본소유.

    • 소니 픽처스 일본(SPEJ) - 소니 뮤직의 예와 마찬가지로, 미국 소니 픽처스의 일본 지사 역할을 하지만 회사는 따로이며 소니 일본 본사가 소유한다.

  • 소니 파이낸셜 홀딩스(금융) - 소니의 밥줄.(...), 창립자 모리타 아키오가 뉴욕에서 금융회사의 마천루 건물을 보고 자극을 받은 계기로 설립된 회사다. 현재까지 일본에서만 사업을 하는 회사로 보험상품 및 금융 상품등을 판매하고 있는데 알다시피 이런 회사가 현금동원에 강하다...이 자회사가 있어서 소니가 적자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버티고 다시 재기할수 있었다.

    • 소니 생명

    • 소니 손해보험(노기자카46의 칸무리 프로그램, 노기자카 공사중에 자주 나오는 스폰서다. 하긴.... 노기자카46를 만든 것도 소니 손해보험과 같은 소니 그룹의 소니 뮤직이 만든 거니까......)

    • 소니 은행

    • 소니 라이프 에이코 생명

    • 소니 라이프 케어

  • 소니 글로벌 에듀케이션 (교육) - 2014년 설립된 소니의 신생 자회사. 새로운 교육 인프라를 선도한다고는 하는데...

  • 소넷트 (투자) - 알게 모르게 소니의 자금 동원에 도움이 되는 회사. 최근에는 통신사업도 시작했다.

  • 소니 올림푸스 메디컬 솔루션즈 (의료) - 소니의 전자기술과 올림푸스의 광학기술이 합쳐지면 시너지를 발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된 회사. 의료 시장에서 나쁘지 않은 실적을 올리고 있으며, 소니가 올림푸스의 주식 상당수를 취득해 대주주에 등극하는 단계까지 갔지만, 최근 주식을 전량 JP모건에 매각했다. 다만 이것이 합작회사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듯.

  • 소니 비주얼 프로덕트 (구 소니 주식회사 TV 사업부) - 11년째 적자만 보던 TV 사업부를 분사하여 설립한 신회사. 아베노믹스와 UHD TV 판매 호조에 힘입어 2014년 회계연도에서 드디어 흑자를 냈다!!

  • 소니 컴퓨터 사이언스 연구소

  • 소니 디지털 오디오 디스크 코퍼레이션 - 소니 뮤직의 음반 제조 회사

  • 소니 옵티악 - 외장 ODD를 제조하는 회사 2013년에 사업 종료

  • 소니 세미컨덕터 (반도체)

  • 소니 에너지 디바이스 코퍼레이션 (2차 전지) - 1991년 세계 최초로 상용 리튬 이온 배터리를 개발한 회사이다.

  • 소니 크리에이티브 소프트웨어 (소프트웨어 제작) - 소니 베가스와 사운드 포지 등 편집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자회사다.

  • 소니 온라인 엔터테인먼트 → 데이브레이크 게임즈 - 에베퀘스트 개발사로 유명한 회사 2015년 미국 기업 콜럼버스 노바에 매각 후 사명 변경.

  • 소니 오디오&사운드 프로덕트 (구 소니 주식회사 오디오 사업부) - 워크맨과 MDR 등 소니의 주력 제품 중 하나인 오디오 사업부도, 히라이 CEO의 분사화 정책으로 신회사가 설립되었다.

  • 소니 이미징 프로덕트&솔루션즈 (구 소니 주식회사 이미징 프로덕트 사업부) - 2017년 4월부터 업무를 개시할 예정인 신회사. 소니의 컨슈머&프로페셔널 이미징 사업부가 분사된것으로, 소니 이미징 프로덕트&솔루션즈의 출범과 함께 소니 그룹의 주요 사업은 모두 분사화된다.

8. 관련 제품 및 브랜드[편집]

9. 관련 인물[편집]

10. 관련 사고[편집]

11. 관련 항목[편집]

[1] 現 소니 CEO[2] 잘나갈 때 막대한 돈으로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인수, 확장시켰고 그 후 플레이스테이션 사업등으로 현재는 미국, 유럽에서는 기존의 워크맨, 트리니트론으로 대표되는 전자회사가 아닌 플레이스테이션-소니픽쳐스-뮤직으로 대표되는 엔터테인먼트나 미디어 회사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소니가 금융사업을 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GE가 잭 월치 회장시절 GE캐피털로 사업분야를 확장시킨 예를 보고서 금융사업에 뛰어들었고 여기서 얻는 이익은 한때 소니의 전자분야가 어려웠을 때 지탱해준 힘이기도 했다.[3] 창업 자금은 집안 대대로 양조업을 하던 모리타가 조달했다고 한다. 소니는 도쿄의 조그마한 단파라디오 수리점(정확히는 통신연구소)으로 시작된 기업이다.[4] 일반적으로 일본의 대기업들 중 1945년 이전에 설립된 기업들은 전범기업으로 볼만한 여지가 좀 있는 편이다. 반면 소니, 카시오 같이 1945년 이후 설립된 기업들은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연합국에게 항복한 이후의 시기이기 때문에 전범기업이라고 볼 수가 없다.[5] Citibank 명의의 ADR(미국주식예탁증서)형태의 주권이다.[6] 신탁계좌이다.[7] 해외기관투자가의 소유주식을 해당 은행명으로 보관하는것이다.[8] 신탁계좌이다.[9] 소니의 황금기때 내건 슬로건. 소니 제품에 대한 세계 제일의 자부심이 있던 80년대~90년대 중반 광고들의 마지막 부분에 항상 이 슬로건을 사용했다. 이 슬로건과 마크도 함께 사용되었는데 창업자인 모리타가 직접 디자인 했다고 한다. 그 시기에 출시되어 2015년 현재에도 발매중인 일부 스테디셀러들의 종이박스에 It's a Sony 마크가 붙어있다. 1997년까지 첫 발매된 소니 제품의 박스에는 이 마크가 붙어있었다.[10] 당시 이데이 노부유키 소니 CEO가 디지털 시대로의 사업체제 전환을 목표로 내건 슬로건.[11] 하워드 스트링거 소니 CEO가 전자와 엔터테인먼트가 하나의 연합과도 같은 소니를 구상하면서 내건 슬로건.[12] make"와 "believe"사이에 마침표(".")가 없으면 "make believe"가 되는데, 이 뜻은 ~인 체 하다라는 의미다.[13] One Sony 전략이후 바뀌었다. 미국 소니 캠페인은 스크롤 애니메이션으로 소개 하고 있다. 클릭시 국가를 미국으로 설정. [14] 비슷한 이유로 마쓰시타전기(松下電氣)가 7, 80년대에 수출용 제품에 파나소닉(Panasonic)이라는 상표를 달았으며, 2008년에는 회사이름을 아예 파나소닉으로 바꾸기도 했다. 물론 후지쯔(富士通 Fujitsu)같이 뜻과 발음이 어렵건 말건 그냥 밀고 나가는 기업도 있다. 그나마 후지쯔는 후지 라는 구미에서 잘 알려진 이름이 들어있어 나은 편이다. 더 복잡하면서 2차대전 전범기업 이미지까지 있는 MITSUBISHI도 구미한정 이름변경 없이 그대로 MITSUBISHI(三菱)이다. [15] 발상이 비슷한 사례가 코닥필름. 설립자인 조지 이스트먼은 코닥이라는 이름이 어떤 언어에서도 발음하기 쉽다고 하여 이 이름으로 회사를 냈다. 그런데 일본어로는 힘들다. 코다쿠? 코닷크? [16] 한국 대기업 중에도 럭키금성이 'LG'로, 선경그룹이 SK로 사명을 바꾼 것 역시 이러한 효과를 노린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는데 일본, 중국과 달리 한국 기업의 명칭은 언어적 특성상 타국인이 발음하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당장 삼성전자도 '쌤썽', '삼숭' 등 나라마다 제각각이고 현대자동차도 철자 때문에 한동안 '현다이', '휸다이' ,'윤다이'등으로 불리다가 마케팅으로 외국인들이 겨우 '현데이'라 발음하는 걸 알았을 정도.(근거기사: 조선비즈 2010-09-18, 홍성태 교수의 마케팅 레슨 - 브랜드는 눈이 아니라 귀로 먼저 기억시켜라) [17] 덕분에 당시 일본 제품의 대중적인 이미지를 벗어버리기 위해 렉서스라는 고품격 브랜드를 새로 만들었다. 렉서스가 토요타의 브랜드인지 모르는 사람은 아직도 많다. 참고로 토요타에는 경차위주의 저가형 브랜드 'Scion'이란 것도 있다. LG전자의 휴대전화와는 무관.[18] 90년대 중순부터 "소니는 일본 기업입니다." 라고 홍보를 했더니만 해외에서 반응은 그랬냐? 였었다고... 그래서 소니도 이젠 일본 기업으로 알든지 말든지 포기했다.[19] 이 문서에서는 소니 쇠퇴기의 시작을 '2003년 소니 쇼크 사태'를 기준으로 한다.[20] 북미 지역 소니 생산시설의 관리 및 제품 품질 관리등을 담당하는 소니 아메리카의 자회사이다.[21] 현 빌딩 소유주는 대한민국 국민연금공단, 그래서 소니센터 표지판에는 한글로 소니센터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하면서 밑에 국민연금이라고 써있다. [22] 인근에는 한국 문화원과 한국 문화원에서 설치한 통일정이란 정자가 있다.[23] 후술하겠지만 소니는 백색가전은 취급하지 않는다. 일본에서 전통적인 백색가전의 강자라면 나쇼날(파나소닉) 외에 도시바, 산요, 샤프 등을 꼽았다.[24] 2011년 현재 애플이 비슷한 전략으로 커가고 있다. 다만 애플은 컨텐츠를 직접 생산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 차이점. 똑같은 전략인데 10여년 전부터 먼저 해온 소니의 실적은 지지부진하고, 똑같은 전략을 10년 후에 구사하는 애플은 욕을 먹을지언정 잘 나가고 있다. 이는 소니가 관료주의에 찌든 데다 그래도 일본기업중에서는 서구적인 경영체제를 도입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계열사끼리 따로 놀기에 바빠서 애플처럼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컨텐츠의 조화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25] 이 당시만 하더라도 가전제품의 대명사라고 하면 소니가 대표적인 트레이드마크였다. 전 세계 가정에 소니 제품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었을 정도였으며, 당시에 제작된 헐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가전제품의 대부분은 소니였다.[26] 오가 노리오 항목에서도 서술한 바와 같이 오가 노리오는 음악가였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가전기기들의 제작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더구나 그가 은퇴 후 벌인 일이 자신이 와병 중에 요양했던 가루이자와에 음악회당을 건립한 것이었다.[27] 1991년 8000억엔에 가깝던 잉여금이 1994년 말 2400억엔까지 줄어들었으며, 소니의 부채 규모는 1조 500억엔까지 증가했다. 1995년 이데이 CEO는 취임하자마자 자회사에서 뛰어난 회계능력을 발휘하던 이바 타모츠를 CFO(최고 재무책임자)로 임명하면서 "앞에 도산이라는 거대한 폭포가 있다"라고 위기감을 주었으며 이바 타모츠의 노력으로 2000년 부채 규모를 현저히 줄이고 재무구조를 개선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부채 상환률은 높였지만 상대적으로 연구개발에 투자는 줄어들었다.[28] 당시 일본에서 이례적으로 혁신적인 CEO로 평가받던 인물로 포춘지의 올해의 기업인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1995년 당시에는 혁신적으로 평가 받았던 디지털 개혁안을 내놓고 아이보와 OLED등과 같은 신기술과 콘텐츠 산업에 많이 투자했다. 하지만 구체성이 결여되어 결과적으로 보았을때 현재 소니에게 악영향을 준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디지털 개혁안은 이데이 노부유키 항목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29] 이데이 CEO는 1996년 바이오 사업을 준비하면서 디지털 콘텐츠를 강화하기 위하여 자체적인 컴퓨터 OS를 가지고 있던 스티브 잡스가 오기 직전 몰락하고 있던 애플을 인수하려고 하기도 했다. 당시 이사진들의 반응이 "쓰러져가는 회사 인수해서 뭐하려고"라고 였다고. 만약 애플이 소니로 인수되었으면 현재 IT시장의 판도가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소니가 자회사끼리 서로 사이가 좋지않은걸 보면 오히려 손해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여담으로 최근 애플이 소니를 인수한다는 루머도 있었다.# [30] 도쿄증시의 소니 주가가 3만엔 선에서 5백엔 대로 폭락한 사태. 소니의 주가는 2003년 4월 25일부터 같은 해 4월 27일까지의 이틀 사이에 모두 27%가 빠지면서 시가총액중 8,950억엔(약 10조원)이 공중으로 사라졌다. 이는 소니에서만 그치지 않고 자국의 다른 전자업체에게까지 도미노로 영향을 주었다. 이때 이후로 소니의 주가는 7천엔 이상으로 올라본 적이 없으며 2008년 세계금융위기 사태 이후로는 4천엔 이상을 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이때를 기점으로 일본 전자산업이 시대흐름에 따라가지 못하고 쇠퇴하기 시작한다.[31] 게다가 이젠 연령층도 제법 젊어지고 있는 편이다. 일본 여중고생들 가운데 k-pop 붐이 일어나면서 이들이 댄스 동아리에 들어가 k-pop 댄스를 추는 일도 많아지고 있을 정도이다.[32] 일반적으로 매니악한 팬층과 일부 오덕화한 해외팬들에게만 한정된 것이고 대중적인 인기는 그다지 많지 않다.[33] 다행히도 당시에 소니의 전자산업이 전성기 시기에 있었기 때문에 몇 번의 위기에도 영화산업을 매각하지 않고 지금까지 유지할 수 있었다.[34] 이제는 전자산업보다 컨텐츠 산업이 더 잘나가고 있다. 그래도 매출의 대부분은 전자산업에서 나온다.[35] 소니 픽쳐스와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인한 영향이 크다. 게다가 워크맨으로 대표되던 가전제품을 즐겨 사용하던 세대가 이제는 중년으로 넘어가고 있으니 뭐.[36] 시골 마을에서도 라디오, 카세트, TV, 심지어 소니가 생산하지 않았던 다른 회사의 세탁기까지 죄다 소니라고 불릴 정도로 가전제품에 대한 상징은 곧 소니였다.[37] 이와 대조되는게 삼성 스마트폰 충전기이다. 삼성것이 아니어도 왠만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는 다 연결 가능하다.[38] 이중에서 소니의 TV 및 액정 연구소였던 A3 연구소를 폐쇄한 것은 지금까지도 소니의 발목을 잡고있다.[39] 여기를 현재 대한민국의 국민연금공단이 가지고 있다. 연금주는 거기 맞다.[40] 오가 사장은 옛 소니의 본사건물인 고텐야마의 오래된 건물이 철거되는 것을 보고 소니의 정신이 깃든 곳이 사라져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한때 소니 샐러리맨들의 상징이었던 시나가와구 고텐야마 지역에는 소니의 60년대 본사건물, 공장건물, 90년대 본사건물과 테크놀로지 센터가 있었으나 현재는 모두 매각되어 소니 역사 홍보관만 남아있다. 소니라는 브랜드의 정체성과 가치를 누구보다도 소중히 여긴 오가 노리오 전 CEO가 2011년 사망하면서 창업자로부터 내려온 소니의 기업 정체성이 종말을 맞이했다고 보는 시각이 일본에 존재한다.[41] 이때 인력의 상당수가 삼성으로 이직했다는 말이 있다. 사실이라면 삼성의 기술이 급속하게 발전한데는 소니의 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한 셈. 실제로 스트링거 체제 말기인 2011년 삼성과 합작한 S-LCD의 지분을 삼성에게 전부 매각하면서 많은 수는 아니지만 핵심 기술을 알고 있는 일부 연구원들이 삼성으로 이직을 했고 이후 삼성 TV의 화질이 급격히 상승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삼성에 다니는 사람들이 일본인들이 삼성 쪽으로 많이 이직을 했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삼성 이직 루머는 사실같다. 그리고 소니 모바일 쪽 출신 직원들이 삼성에 이직을 해서 갤럭시s6를 만들었다는 루머가 있다.[42] 근데 사실 LG전자, 모토로라, 노키아 등 기존 피처폰 메이커들 대다수가 공유하고 있는 문제다. 휴대폰 시장에서의 몰락을 피해간 회사는 선구자인 애플을 제외하면 오로지 삼성전자뿐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소니 모바일은 그나마 존재감이라도 있지 다른 일본 단말기 메이커들은 세계시장에서 아예 존재감이 없고, 일본 국내시장에서도 계속 죽을 쑤면서 회사들끼리 합병에 합병을 거듭하며 겨우 연명하는 실정이다. 통신사가 사 주니까 그나마 망하지는 않는 듯.[43] 히라이 사장은 일본의 샐러리맨 신화를 쓴 사람이다. 소니 뮤직의 샐러리맨에서 시작해, 지금의 소니 그룹을 총괄하는 자리에 올랐기 때문. 뿐만 아니라 가전에 대한 애착이 깊어, 스트링거 체제에서 손실된 기술력을 재건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44] 2006년, 칸 광고제(Cannes Lions International Advertising Festival)에서 가전 부분(Home Electronics&Audion-Visual)과 최고 음악 부분(Best Use of Music)에서 황금 사자상(Gold Lion)을 수상, 2006년 6월에 런던에서 열리는 Midsummer Awards에서 그 해 가장 우수한 작품에게 주어지는 Grand Prix 상 수상[45] RCA사는 소니에게 주도권을 내준 이후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되고 결국 1986년 부도를 맞고 64억 달러에 GE에 인수되었다. 현재 북미 지역에만 사업을 진행하는 브랜드로 전락했다.[46] 일본 TV 시장에서 소니가 1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로는 일본의 타 전자회사간의 경쟁이 너무 심하고 파나소닉의 막강한 유통력으로 콩라인이다. 다른 일본업체들은 1960년대 이전부터 컬러 TV를 공개했으나 소니는 그보다도 늦은 68년이 되어서야 트리니트론을 공개하여 시장진입이 늦기도 했다. 하지만 전 세계 사장에서는 위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트리니트론의 성능이 입증되어 TV수상기 최초로 1973년 에미상을 타기도 했다. 최근에 일본시장에서 샤프가 위기에빠지고 파나소닉이 PDP에서 철수하고 TV사업을 축소하면서 소니가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고 한다.[47] 2004년에 소니와 삼성이 크로스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하였을때 삼성측에서 가장 원하던 소니의 특허 중에 하나가 DRC였다. 소니측에서 차별화 특허로 계약 대상에서 제외시키느라 엄청 고생했다는 후문[48] 베가는 사실 소니가 인수한 독일의 전자회사 이름이다.[49] 한동안 무소식이다가 최근에 다시 파나소닉과 공동으로 OLED 개발을 시작하였다고 한다.[50] 미국 및 멕시코 제 2 공장 신축 및 폴란드 공장 설비 증대와 같은 전세계 지역의 투자[51] 시제품은 이후에도 계속 공개하였다. 하지만 정식으로 출시된건 이 모델 뿐이다. OLED의 기술의 난이도가 워낙 높고 정상제품을 생산하려면 불량품도 정상제품만큼 나와서 상용화하기 어렵다. 또한 대형화도 매우 어려웠으나 LG전자에서 일본업체들이 넘지못한 OLED 대형화에 성공했다. 소니에게 대형화할 수 있는 기회는 먼저 있었으나[52]안타깝게도 2008년 소니에게 위기가 찾아오고 하워드 스트링거 CEO가 대규모 연구 인력을 감축하고 개발중단을 선언하는 바람에 놓치게된다. 소니는 2013년이 되어서야 대만의 AUO와 함께 대형 OLED TV를 공개했다.[52] 거의 대형화 단계까지 개발이 진행되었었다.[53] 소니TV가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여 새로운 기술 개발에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 추락하게 되었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어느 회사보다도 먼저 신기술에 관심을 보이고 90년대부터 다른 기업은 LCD, PDP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에 한단계 높은 기술을 추구하며 FED, OLED개발을 추진했기 때문이다.[54] DRC와 액정기술을 연구하던 소니의 최첨단 기술 연구소중 하나다. 연구소장인 곤도 테츠지로는 소니를 퇴사하면서 "더이상 소니는 기술회사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곤도 테츠지로는 당시 쿠다라기 켄과 함께 소니의 제 2의 이단아로 불리던 인물로 소니에서 가장 많은 특허수를 보유한 뛰어난 연구자였다. 곤도는 20여명의 부하직원과 함께 퇴사해서 아이큐브드라는 새로운 연구소를 만들었고 DRC를 뛰어넘는 ICC기술을 만들어서 도시바나 샤프등에게 판매하고 있다.[55] 2010년 일본 시장에서는 다시 만년 4위로 돌아갔다.[56] 방송카메라가 대부분 소니라는것에 착안하여 소니코리아에서는 소니만의 화질을 강조해서 브라비아를 광고하기도 하였다.[57] 2009년 일본내 4개 공장을 폐쇄했지만 아직 모두 폐쇄한것은 아니고 아이치 현 이나자와시의 공장이 남아있다. 2015년부터 엔화 약세로 다시 소량 생산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58] 사실은 매각되었다. 바이오주식회사에서 개발 및 생산을 담당하고 있으며, 소니는 상표권 소유과 일본판매에서만 협력해주고있다. 소니는 바이오주식회사의 5%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59] 일본에서는 1997년 발매[60] 사실 중국 생산품도 웬만한 국산 노트북보다 스펙 대비 속도가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 (물론 2011년에 마지막으로 출시된 플래그십 모델인 Z시리즈는 일본 생산이었다). 문제는 그 넘사벽이 성능/디자인 뿐만 아니라 가격도 넘사벽이었다는 것이지만...[61] 하지만 2011년 이후로는 삼성 노트북보다 가성비가 오히려 좋은 경우가 생겨나고 있다...[62] 소니의 출발은 단파라디오 수리업이었고, 초창기 주력 상품들이 음향기기(오픈릴 테이프 녹음기, 라디오)였다.[63] 세계 10대 발명품 중 하나로 알아주었으나 독일 발명가의 제품을 표절했다고 알려지면서 소니가 백기를 들며 합의한 일로 망신당해야 했다. 워크맨참고.[64] 초반기의 주력 상품은 트랜지스터 라디오였다. 이 소니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인기상품으로 등극하기까지는 영업사원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는데, 서류가방을 끼고 명함을 뿌리며 공손히 인사하는 일본 영업맨의 전설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후일, 트랜지스터 라디오의 성공을 발판으로 뉴욕 한복판에 전시관을 내는 소니를 보고 미국의 현지 일본 영업사원들이 모두 모여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물론 우리로서는 심히 좋지 않은 노래인 기미가요를 틀고. 이때가 60년대. 대한민국에서 일본으로부터 가까스로 기술제휴를 얻어 조악한 품질의 라디오를 막 개발, 양산했던 시기였다. 그리고 40년 후, 삼성과 LG가 미국 전자시장을 휩쓸게 된다. 해외 전자시장을 석권하려는 한, 일 전자메이커의 싸움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귀결되고 있다.[65] 그나마 2011년에 출시된 MP3에서 죄다 빠졌다(...).[66] CD놓는 곳에 작은 갈퀴를 달아 CD를 고정시켜 CDP를 흔들어도 튀는 현상이 없다.[67] 한국에서는 2000년대 후반까지 어학용으로 꽤 많이 쓰였다. 지금은 아예 단종된 상태.[68] 이중에 후덜덜한 가격의 고급 기종이 있다! 다만 저음이 아쉽게 부족하다는 평도 있다.[69] 사실 휴대용 라디오를 제대로 만드는 회사는 거의 소니밖에 없다. 값싼 중국제 단파라디오가 넘쳐나는 속에도 상대적으로 비싼 소니 단파라디오를 아직도 찾는 사람이 있다. 한국에서는 은색의 저가형 일반라디오인 ICF-S10MK2가 가장 많이 팔리는데 특히 등산용으로 인기가 많다고. 자세한 건 관련 항목 참조.[70] 다만, 어느 오픈형 제품이 16년 역사를 깰지 궁금하지만... 참고로 이어폰 중 최장수 모델은 1991년에 출시된 에티모틱 리서치의 ER4.[71] 요즘은 삼성전자, LG전자, 애플 등의 스마트폰 번들 이어폰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다.[72] 소니코리아 정품은 가장 저가형인 MDR-E9LP를 제외하면 이어폰/헤드폰 전 라인업에 정품 스티커가 붙어있다.[73] 그래서 콜럼비아 계열의 영화에 나오는 가전 제품은 몽땅 소니다.[74] LDAC 때문에 2015년 이후 출시된 소니의 무선 스피커는 대부분 aptX를 지원하지 않는다(...).[75] 사진의 모델은 2003년 11월 발표된 ERS-7이다.[76] 로봇에게 웬 장례식이라고 하겠지만 아이보를 키우는 입장에서는 아이보가 점점 고장나는데 AS가 종료되어 고칠 수도 없어서 점점 고장나는 것을 보는 게 마치 진짜 애완견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한다.[77] 방송장비 및 캠코더 시장에서 경쟁자는 JVC, 파나소닉, 캐논, 히타치 정도가 있다. 방송영상장비 시장은 일본 기업들의 영향력이 강하다.[78] 그러나 독일의 아리는 영화촬영용 디지털 카메라의 이미지센서를 소니의 것을 사용한다.[79] 단 카메라 렌즈는 제외. 영화 쪽에서는 아리의 렌즈를 사용하고 있으며 전문가용 스튜디오 카메라의 렌즈는 캐논, 소비자용 캠코더의 렌즈는 독일의 칼 자이즈와 소니의 G렌즈를 사용하고 있다.[80] 양산은 일본의 화학회사 아사히 카세이와 함께 했다.[81] 2011년에는 소니가 배터리 사업을 접을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긴 했지만 루머에 그쳤다.[82] 시계 라디오의 경우 과거에 파나소닉이 플립식 시계를 장착한 기종도 만들었었다.[83] 베타맥스VHS는 그 유명한 사회학 이론 '경로 의존법칙'의 대표적인 예로 인용된다.[84] 한 예로, 인터넷이 대중적으로 보급되었을 때 구글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단어는 다름아닌 검열삭제였다. 이와 비슷한 예로 우리나라의 IT보급에 큰 영향을 준 3대 요소로 스타크래프트, PC방, 이 사람의 동영상이라는 말이 종종 나오기도 했다.[85] 초기 SCE는 다른 소니 계열사들에게 굉장히 무시당했다고 한다. 애들 게임기나 만든다고. 물론 플레이스테이션은 대히트를 치고 그외 나머지 사업들은 죄 말아먹은 후에는 상황 역전.[86] 소니 계열사들끼리는 서로 경쟁하도록 되어 있다. 경쟁을 통한 성장을 기대한 것 같은데 현재는 이것이 독이 되어 서로 자폭하는 모양새(...).[87] 물론 CD, DVD, 블루레이 모두 소니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은 아니지만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88] HD-DVD가 경쟁에서 밀려난 것은 이미 CD류의 저장매체의 시대가 지나버린 것을 안 도시바 진영에서 스스로 물러났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긴하다.[89] 2011 태국 홍수로 하드 값이 두 배 이상 폭등했지만, 반사이익은 블루레이가 아닌 SSD가 먹었다.[90] 예외로 라이카가 있지만 가격이나 구조나 전혀 다르므로...[91] 캐니콘외엔 어느 회사에서도 마이너에서 메이저로 올라간 회사가 없다.[92] 더이상 삼성에서 카메라를 생산안한다[93] 이러한 경향은 1990년대 중후반 이후의 일. 그 이전에 나온 제품은 검정색 계통으로 중후한 느낌을 준다.[94] 2위는 LG. 사실 많이 앞선 삼성과는 달리 소니랑 콩라인을 두고 엎치락뒤치락 하는 중이다. 흠좀무한 사실은 그 외 파나소닉, 샤프 등 한일기업을 다 합치면 전세계 TV점유율의 70%이상을 양국기업이 판매하고 있다는것. 가전제품의 꽃이라는 TV분야를...[95] 물론 큰 이유가 따로 있긴 하다. 여러 옵션과 그로 인해 좋은 인터페이스.[96] 소니코리아는 적자가 거의 나지않는 몇 안되는 금광 해외법인중 하나다.[97] 소니 이외의 다른 일본 가전업체의 한국 지사는 수입 다변화 정책이 폐지된 1999년 이후에나 설립되었으니 소니쪽이 좀 이른 편. 그 이전에는 국내 총판이 공식 수입업체 역할을 했었다. 소니코리아 설립 이전에는 인켈이 소니 워크맨 공식 수입업체였다.[98] 다만 2차전지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1년 보증이다.[99] 소니코리아 용산센터가 아닌, TG서비스 용산센터에서 서비스를 받아야 했다.[100] 엑스페리아 C3, 엑스페리아 E1엑스페리아 레이 이전 기종.[101] 다만 이 부분은 개인차가 존재할 수 있다. 실제로 괜찮게 서비스를 받았다는 사람도 많이 있는 편. 사실 우리나라에서 전반적으로 외국계 제조사의 서비스 퀄리티는 좋지 않다.[102] 이 쪽은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코리아 에서 담당한다.[103] 소니 코리아에 있는 직원이 말하길 아이유 자신이 직접 와서 했다고. 아이유는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매우 중요시해서 굳이 꼭 자신이 참석할 필요 없는 행사라도 곧잘 가주곤 한다고. 아이유와 같이 일했던 많은 유명인사들의 증언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104] 세계 최초의 상용 디지털 카메라. 초기에는 플로피 디스켓 !? 을 사용했지만, CD 마비카도 출시되었다. 사이버샷에 시장을 내주며 단종.[105] 소니가 개발한 세계 최초의 달리는 휴머노이드. 2005년 사업부 매각과 함께 단종된다[106] 예전에 미국의 기업가였는데, 당시 그의 남동생 로브 스트링거가 소니 뮤직 레이블 그룹의 의장이 되면서 소니쪽에서 관심이 생겨서 일했는데, 지금은 이사회 의장으로 일하고 있다.[107] 스티브 잡스는 소니의 열렬한 추종자였다[108] 1970년대에 '화신쏘니'라는 계열사가 한국내 판매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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