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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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lican Rose라고도 불리는 세계 성공회(Anglican communion)의 문양. 그리스어로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1]라고 적혀 있다.

세계성공회공동체 홈페이지

언어별 명칭

영어

Anglican church(잉글랜드 등 대부분의 국가/지역)
Episcopal church(미국[2], 스코틀랜드, 필리핀 등)

중국어

圣公会(shènggōnghuì)

한국어

성공회 (聖公會/Seonggonghoe)

일본어

聖公会(せいこうかい)(Sei Kō Kai)

에스페란토

Anglikana Eklezio
Episkopa Eklezio

1. 개요2. 명칭3. 역사(영국 교회의 역사)
3.1. 성공회의 기원3.2. 종교개혁 이전3.3. 헨리 8세의 종교개혁3.4. 헨리 8세 이후
4. 특징
4.1. 성공회의 세 흐름과 하나 됨4.2. 타 개신교 교파와의 비교4.3. 가톨릭과의 비교
5. 조직6. 세계 성공회
6.1. 영국 및 아일랜드의 성공회
6.1.1. 영국 국교회
6.1.1.1. 캔터베리 대주교 목록
6.1.2. 웨일스 성공회6.1.3. 스코틀랜드 성공회6.1.4. 아일랜드 성공회
6.2. 미국 성공회6.3. 호주의 성공회6.4. 홍콩마카오의 성공회6.5. 일본 성공회6.6. 대한성공회
7. 기타8. 창작물에서의 성공회9. 성공회 성직자 및 평신도
9.1. 가상 인물9.2. 실존 인물
9.2.1. 성직자9.2.2. 일반 신자

1. 개요[편집]

잉글랜드 교회(Church of England)에서 기원한 종교개혁 정신이 반영된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로, 흔히 개신교로 분류된다. 다만 다른 개신교 교파들과 달리 가톨릭과 공유하는 전통이 많다는 특징이 있다.[3] 장로교회/개혁교회가 기존의 가톨릭적인 요소들 가운데 성경에 언급되지 않은 것들을 모두 폐지한 데 반해, 성공회는 성경과 충돌되지 않는 것들은 유지를 시켰기 때문이다.[4] 'Via Media'(중용의 길)로 표현되는 이러한 '다양성에 대한 존중'은 현재까지도 성공회의 중요한 특징이 되고있다.[5][6]

국내에서 교세가 너무 작아서 생소할 수 있으나, 세계적으로는 8천만-1억의 신자가 소속된 주류 교단이다.# 24억 정도 되는 기독교인 가운데 천주교 교인이 12억 정도로 제일 많으며, 정교회 교인이 둘째로 약 3억, 그 다음이 침례회 교인과 성공회 교인으로 1억 정도다. 다시 말해, 성공회는 기독교 가운데 3-4번째로 큰 교파이며, 개신교 내에서는 침례회와 더불어 1-2위를 다투는 규모를 지닌다. 개신교 신자 수가 6억 정도이므로, 성공회의 규모는 개신교 전체 신자 중 약 15%를 차지한다.

영어로는 Anglican Church가 가장 일반적인 명칭이며, 미국이나 스코틀랜드와 같이 역사적으로 잉글랜드에 대해 반감이 있던 지역에서는 Episcopal Church라는 이름을 쓴다. 한자문화권인 대한민국/일본/중국에서는 '聖公會'라는 한자어를 각자의 한자 읽는 방식대로 읽는다.[7] 성-공회(聖-公會)성공-회(成功-會)가 아니다.[8] 성공회(聖公會)는 '거룩하고(聖) 보편적인(公) 교회(會)'라는 뜻으로,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에 나오는 '거룩하고(聖)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공교회(公會)' 및 사도신경에 나오는 '거룩하고(聖) 보편된(公) 교회(會)'[9] / '거룩한(聖) 공교회(公會)'[10]를 한자어로 조합해서 만든 명칭이다.[11]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이 발간한 책자에 따르면, 성공회를 다른 교단과 연관지어 말한다면 가톨릭에서 나간 가톨릭, 주교 있는 개신교, 제7차 세계 공의회에서 벗어난 정교회, 가톨릭 2중대 '개혁된 가톨릭'(reformed catholic), '교황 없는 천주교', '교리에 너그러운 정교회', '가톨릭 전통을 유지하는 개신교' 등으로 간단히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 국외에서는 가톨릭과 개신교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는 의미로 브릿지 교회(Bridge Church)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또한, 정교회와의 관계도 꽤 돈독한 편이다.[12][13]

기독교 내에서 성공회의 포지션은 약간 미묘한 면이 있어서 기독교인들마다 인식이 제각각 조금씩 다르다.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교리상으로 성공회를 개신교의 한 교파/분파로 분류하는 데에 문제가 없다고 본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다른 개신교 교파의 신자들 사이에서도 성공회 교인들을 같은 개신교 신자로 받아들이는 데에 큰 무리가 없다. 전례상 옛 가톨릭식 요소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좀 특이하게 볼 수는 있으나, 성공회를 개신교가 아니라고 말하는 개신교 신자는 드물다.[14][15] 천주교 신자들 중에는 형식적인 면이 닮아있기 때문에 다른 개신교보다 성공회에 친근함을 느껴서 교황이 없는 천주교 정도로 보는 경우도 있다.[16] 반면에 보수적인 천주교 신자들은 성공회를 그저 천주교 흉내내는 개신교(열교)로 본다. 교파 간 교류에 무관심한 기독교인들 중에는 천주교와 개신교 사이에 있는 독립된 종파로 보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가톨릭개신교의 전통을 고루 받아들이는 역사적 배경을 고려해 "다 필요 없고성공회는 성공회다"라고 생각하는 부류 또한 마찬가지. 그리고 성공회 신자들 중에서도 이유가 뭐든 자신들의 종파를 그렇게 정의하는(혹은 그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국내에서는 외형상 성공회와 비슷한 루터교회만 하더라도 개신교의 장자 교파[17]라는 인식이 있지만, 성공회는 뚜렷한 포지션을 갖고 있지 못한 점이 아쉬운 점이다.[18] 국내의 일반인들에게는 성공회가 개신교의 일파라는 인식, 천주교와 개신교가 혼합된 독립된 종파라는 인식, 천주교의 진보적인 한 갈래('이혼이 허용된 천주교' 또는 '사제의 혼인이 허락된 천주교')라는 인식 등이 뒤섞여 있는 듯하다. 반면에 미국에서는 기독교 교단 중 제일 많은 12명의 대통령을 배출했고[19] 워싱턴 D.C.에 국립 성공회 대성당이 있는 등 인지도가 높기 때문에 일반인들도 성공회를 주류(Mainline) 교단으로 확실히 인식하고 있다.

영국에서 시작된 종파답게 과거 대영제국의 일원이었던 영연방 국가들에 가장 널리 퍼진 종교이다. 당연히 영국에서는 주류 종교이고, 뉴질랜드나이지리아[20]에서도 가장 큰 기독교 교단이다. 홍콩에서도 주류 종교로 기독교 신자들 중 절반 이상이 성공회 신자들이어서, 홍콩 사람들은 기독교라고 하면 성공회를 떠올린다고 한다.[21] 호주에서는 가톨릭 다음으로 큰 기독교 종파이고[22], 남아프리카 공화국[23]에서는 세번째로 큰 기독교 종파이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캐나다에서도 많은 신자들이 소속되어 있다.

아래 명칭 항목에도 나오겠지만, 영연방 각국의 성공회는 영국 성공회의 지부가 아니라 '해당 국가 성공회'로 불리며, 서로 완전히 독립적이다. 예를 들어 호주에 있는 성공회 교회는 영국 성공회의 호주 지부가 아닌, '호주 성공회'로 불리는 식. 이 규칙은 비영연방 국가들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한국의 성공회는 한국이라는 지역 단위로 단일 관구를 이루며 대한성공회라 한다.

2. 명칭[편집]

성공회라는 종교 자체를 설명하는 명칭은 Anglicanism(앵글리커니즘)이다.

성공회는 역사적으로 영국 국교회(Church of England)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그러다가 18세기부터 영국 이주민과 선교사들이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기에 단순 영국 국교회라고 더 이상 보기만은 어려워졌고, 역사상 이전 세기 동안의 종교 갈등을 반성하고, 교회 안의 여러 목소리에 관용을 베풀고 성스럽고 공번된 교회로 거듭나기 위해 19세기 중반부터는 성공회라는 명칭으로 변경하게 된다.

성공회 교회와 그 조직을 가리키는 용어는 Anglican Church(앵글리컨 처치)가 일반적으로 쓰이지만 일부 국가/지역에서는 Episcopal Church(이피스코펄 처치)[24]라고 쓰기도 한다. angl(o)- 자체가 잉글랜드를 의미하기 때문에[25], 역사적으로 잉글랜드 혹은 영국과 대립한 적이 있어서 정서적 거부감이 있거나, 그런 역사를 지닌 국가/지역 성공회가 개척한 경우 Episcopal Church[26]를 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스코틀랜드미국의 성공회가 잉글랜드/영국과 대립했던 역사 때문에 Episcopal Church를 사용한다. 필리핀의 성공회는 미국의 식민지였던 시절 미국 성공회의 포교를 받아 설립되었기 때문에 영국과 대립한 적이 없으나 미국을 따라 Episcopal Church를 사용한다. 타이완 성공회도 미국 관구에 속해있고 미국 성공회의 포교를 받아 설립되어 마찬가지로 Episcopal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대한성공회의 영어 명칭에는 Episcopal 대신 Anglican이 들어가는데, 이는 대한성공회는 영국 성공회 선교사에 의해 신앙을 전래받았고, 오랫동안 영국 캔터베리 관구 직할이었던 역사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만 각 나라/지역을 담당하는 성공회 교회 조직의 명칭에 꼭 Anglican이나 Episcopal이 들어가는 건 아니다. 해당 국가/지역의 기독교 교파 중 성공회 신자가 많거나 국교 같은 뭔가 우월한 지위에 놓여 있(었)던 경우 그냥 Church of 나라/지역이나 Church in 나라/지역의 이름을 붙여 놓은 경우가 많다. 성공회의 모체인 잉글랜드 국교회(Church of England)나 한때 법적으로 국교였던 웨일스 성공회(Church in Wales), 아일랜드 성공회(Church of Ireland)[27]나 영국이 지배한 인도 공화국, 파키스탄, 나이지리아 등의 성공회가 그 예. 물론 영국이 식민지로 지배했다고 해서 꼭 성공회 조직이 이런 식의 이름을 붙인 건 아니니 상황에 따라 다르다. 또, 홍콩(Hong Kong Sheng Kung Hui[28])과 일본(Nippon Sei Ko Kai - 일본어 발음)의 성공회처럼 영어로 적을 때에도 현지 언어의 발음을 그대로 로마자로 옮겨 적는 성공회 조직도 있다. 대한성공회는 영어로 Anglican Church of Korea로 표기하지만, 성공회대학교의 표기는 Anglican university 또는 Episcopal university로 쓰지 않고 한국어 발음을 그대로 옮긴 Sungkonghoe University로 적는다.

3. 역사(영국 교회의 역사)[편집]

3.1. 성공회의 기원[편집]

흔히 성공회의 기원이 헨리 8세로마 가톨릭에서 개신교로 개종한 것으로부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히만 보기에는 상당히 복잡한 사정이 있었다. 성공회의 현재모습은 역사적 산물로 헨리 8세 시절의 영국 국교회와는 큰 차이가 있다.

역사적 사실을 단편적으로 서술하면, 16세기 종교개혁 잉글랜드의 종교개혁으로 잉글랜드 내에서는 로마교회와의 단절을 선언하고 잉글랜드 국교회가 출범했다. 잉글랜드의 종교개혁은 대륙의 루터, 칼뱅이 이끈 신앙과 교리의 문제와는 매우 다른 특이한 양상으로 생겨났는데 이는 단선적인 사건은 아니다. 잉글랜드의 종교개혁은 여러 우연과 영국적 상황이 복합적으로 일어난 사건의 결과물이지 왕의 단순 이혼 문제라고 보는건 재미는 있겠지만 그렇다고해서 여러 의문점을 설명할 수준은 되지 못한다.

실제로 성공회의 기원과 역사들을 연구하는 학자들 조차도 세세히 분석함에 어려움을 느낀다. 일반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영국 교회(성공회)의 출발을 결혼같은 우발적 사건, 우연성, 일탈로만으로는 보기에는 현재 성공회의 정체성이 설명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단 영국 국교회 가톨릭에서 분리된 표면적인 계기는 헨리 8세의 이혼 문제이다.[29]

그런데 이 설명은 어디까지나 로마교회의 단절이 일어나기 직전의 사건만을 요인으로 간주하는 방식으로 앞서 간략히 설명한 여러 복합적 요인중 하나일 뿐이다. 왜냐하면, 성공회의 기원을 단순히 '헨리 8세가 이혼하고 싶어서'라고 하는 것은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만화 세계사에나 나올 법한 단편적인 수준이고, 영국 역사나 교회사를 제대로 아는 수준은 아니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했듯, 이혼 문제가 표면적 계기라는 설명이 비록 틀린 설명은 아니지만, 성공회에서는 '헨리 8세가 혼인 무효하고 새로 장가가고 싶어서 만든 종파'라는 식으로만 달랑 설명하지는 않고, 당시 잉글랜드가 처한 상황을 설명한다.[30] 16세기 중반 국왕의 혼인문제 때문에 생긴 개인적이고 우발적인 사건으로만 본다면 잉글랜드 교회가 거의 천년의 역사 동안 로마의 종주권을 인정하다가 갑자기 전통을 부정했음에도 튜더 왕조의 통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하기 어렵다.[31] 또한 순전히 헨리 8세 개인에게서 원인을 찾기도 어려운 것이, 헨리 8세는 루터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였을지언정, 토머스 크랜머 대주교 등 몇몇 중요한 고문들은 확실히 프로테스탄트적이었다.

헨리 8세가 사망하고 메리 1세가 즉위한 후 다시 가톨릭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극심한 반발이 터져나왔고, 16세기 엘리자베스 1세 시기에는 영국국교회의 정체성이 강해지면서 국교회 우위가 이어졌으며, 17세기부터는 거의 완전한 개신교 우위 국가가 되었음이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의문에 대해선 일단 전세계 성공회의 역사는 영국에서 출발한 것으로 영국교회의 역사를 먼저 볼 필요가 있다.

3.2. 종교개혁 이전[편집]

영국 교회의 독자성을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잉글랜드에는 이미 2세기경부터 켈트 교회(Celtic Church)가 있었는데 나중에 가톨릭 휘하로 들어가게 되었고, 헨리 8세의 혼인 무효 문제로 인해서 이 켈트 교회가 다시 분리된 것이 현대의 성공회라고 말한다. 즉, 성공회는 스스로 초대 교회 시기부터 잉글랜드 지역에 있었던 켈트 교회를 잇는다고 본다. 반면 가톨릭 측에서는 성공회의 켈트 교회 후계성을 부정하며, 로마 교황에 의한 켄터베리 주교 파송을 현 잉글랜드 성공회 + 잉글랜드-웨일즈 가톨릭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1세기 이후 로마 제국 내에서 기독교의 전파는 초기 동방과 로마, 아프리카에서 영국이 속하는 유럽 변방지역까지 제국 전역으로 퍼졌고 , 기원후 2세기경 대륙과 브리튼 섬의 켈트인들 일부가 기독교를 자발적으로 받아들인게 사실이다. 켈트인들은 로마인이나 로마화된 곳의 교회와 달리 독자적인 길을 걷고 있었다. 수도생활은 서방교회와 공통점이 거의 없었고, 특히나 부활절 날짜를 독특하게 독자적으로 계산할정도.

켈트교회의 시작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적어도 3세기 이전에 로마 또는 골(Gaul)에서 파견된 선교사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4세기에 들어서 상당한 발전을 보여, 314년의 아를르 교회회의(Synod of Arles)와 359년의 아리미눔 교회회의(Council of Ariminum)에 대표자를 파견하기도 하였다. 특히 켈트교회의 주교들이 314년 아를르 시노드에 참가한 것은 가톨릭의 공식 문헌에 남아있는 기록으로서, 영국교회(Church of England)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기도 하다. 아무튼 가톨릭에서 공식적으로 사제를 보내기 전부터 영국에 자생한 교회가 있었다는 사실은 현재 가톨릭측에서도 인정하는 바이다. 켈트교회에는 심지어 예수께서 죽으신 후 예수의 시신을 거두었던 아리마태아의 요셉의 성배 전승까지 있었다. 예수 사후에 아리마태아의 요셉이 꿈에 나타난 예수의 명령을 따라 성배를 가지고 당시 로마 제국의 서쪽 끝이었던 브리타니아에 와서 성배를 숨겨두었다는 것.[32] 아서왕 이야기를 비롯한 켈트족의 전설들은 이 전승을 기반에 두고있는 경우가 많다. 이 전승에서 한발 더 들어가, 가톨릭이 사도 베드로로 부터 이어내려오는 교회이고, 정교회가 사도 안드레아로부터 내려오는 교회이듯이, 성공회도 아리마태아의 요셉으로부터 내려오는 교회라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가톨릭정교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으며, 역사적으로도 아리마태아의 요셉과 현재 성공회 사이의 약 2000년의 간극을 매우기에는 풀어야할 실마리들이 너무 많다.[33]

로마가 쇠함에 따라 자연스레 브리타니아에 대한 로마의 보호가 약해지자, 게르만(앵글로 색슨)인들의 영국 침략이 거세지기 시작했고, 기독교를 믿는 켈트인들은 점차 산악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그러다가 597년 대교황으로 불리는 그레고리오 1세의 시기[34] 로마 태생인 캔터베리의 아우구스티누스가 주교로 서임되어 잉글랜드로 건너가 당시 켄트 왕국의 왕 에텔베르트(560-616년)에게 잉글랜드 군주 중에 최초로 세례를 주는데 이는 에텔베르트의 왕비 베르타는 프랑크 왕국 계열의 네우스트리아 왕국[35]의 공주로 하리베르트 1세의 딸이며, 앞서 프랑크 왕국은 이미 대륙에서 5세기 클로비스 1세 시절 가톨릭으로 개종했었고, 열렬한 기독교도로 알려진 브륀힐트 여왕의 조카였기 때문에[36] 대륙에서 시집오기 전에 이미 기독교인이었고 로마에서 파견한 선교사들이 켄트 지방 안전하게 상륙하고, 포교할수 있었다. 이를 보아 영국의 지배계층에 기독교인이 상당수 세를 얻고 있었으며, 다른 지배층 또한 선진문물을 받아들일 목적으로 개종에 거리감이 없었다는걸 보여줄 뿐이다.

가톨릭이 서유럽에 퍼지는 과정은 이러한데, 서로마제국이 멸망하고 각지에서 기독교화된 로마인들이 순교자들의 유골이 있는곳에 교회를 세우고 그곳 유력자들을 주교로 삼아 이민족 침략자에게 맞서 재산을 기부하여 보호하였고, 각지의 주교구에서 서유럽 교회의 중심지이며 서로마의 상징적 후계인 로마에 정당성을 인정받으려 수위권을 인정한것이 대략적인 서유럽 교회의 성립사이다. 한편 로마제국은 망했어도 로마 도시는 여전히 부유했기 때문에 각지에 자금을 지원해주면서 영향력을 키워갔고, 서로마 권역을 벗어난 동방 시리아까지 로마교회의 자금지원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12세기 헨리 2세는 교회 재산과 성직자 신분에 대한 이견으로 로마 교회와 대립하였다. 성직자의 범죄를 로마 교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교회 법원뿐만 아니라 세속 법원에서도 재판할 수 있게 하는 클라렌던 헌장을 제정하려 했던 것. 그러던 중에 왕의 기사들이 헨리 2세의 환심을 살 속셈으로 켄터베리 대주교 토마스 베켓을 살해했고, 이로 인하여 헨리 2세는 교회와 세간으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듣게 된다. 이후 일련의 사건에 대해 회개하고 교황에게 용서받는 과정 중에, 교회 재산 관리권과 같은 이권이 어느정도 국왕에게 오는 등 실질적인 권한을 차지하게 되었다.

헨리 3세는 교황청으로부터 십자군 전쟁에 쓸 군자금이 필요하니 잉글랜드에서 세금을 더 걷으라는 요청을 받는다. 교황청은 이런 무리한 과세 요청에 한 술 더 떠서, 잉글랜드에서 세금을 거두었음에도 만족할만한 모금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하여 헨리 3세에게 예비 파문을 내린다.[37] 이를 고깝게 본 영국의 가톨릭 성직자들은 오히려 국왕의 편을 들었다.[38]

14-15세기 백년전쟁 시절에는 가톨릭 교황청이 로마와 아비뇽으로 갈라져있었다. 이 시절 영국 왕실은 로마 교황청 쪽으로 줄을 서서[39], 아비뇽 교황청을 대놓고 무시하였으며, 대포로 위협하여 도리어 교황에게 돈을 뜯어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국 교회는 개신교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를 이미 14세기에 배출했다. 위클리프는 그를 따르는 무리인 롤라드(Lollady) 파와 함께 가톨릭 교회의 전통주의, 중세의 스콜라 철학, 그리고 성인 , 성유물, 성해에 대한 공경을 성경에서 서술을 찾아볼 수 없고 성서상 기독교 교리와도 충돌하는 숭배로 보아 비판하며 성경 중심의 신앙을 주장했고 이를 강조하려 성경을 영어로 번역했고[40] 성체성사의 화체설[41], 교황의 수위권 등 교회제도 등에 대해 강한 비판을 했었다. 이는 후대 얀 후스종교개혁 시기 마르틴 루터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위클리프에 대해 교황청에서는 1378년 당시 잉글랜드 국왕 리처드 2세에게 위클리프를 체포하여 정죄할 것을 요구했으나 무시당했고, 로마에선 다시 옥스포드 대학 부총장에게 위클리프 처벌을 지시했지만 잉글랜드 국왕은 옥스퍼드 부총장을 처벌했다. 30여년 후[42] 위클리프와 위클리프주의자들은 1415년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보헤미아의 얀 후스와 패키지로 이단자로 선언되고, 위클리프의 유해는 부관참시 당했다. 그러나 이들의 움직임은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았을 뿐 잉글랜드 교회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약 20여년 전 1500년대 초반부터 롤라드파의 화체설 교리 비판을 중심으로 가톨릭 교리에 대한 개혁 움직임이 다시 태동했었던 것이다.

이러한 영국 역사의 일련의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다음 항목에서 기술되는 헨리 8세의 가톨릭과의 단절 선언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3.3. 헨리 8세의 종교개혁[편집]

  • 헨리 8세의 아들낳기 염원과 이혼문제는 헨리 8세와 연관 항목을 참조하면 될 것이고, 이하 종교개혁과 관련된 내용을 설명한다.


앞서 여러 오해가 있는데 일단 현재는 완전히 개신교인 성공회와 헨리 8세의 영국 국교회의 모습은 상당히 다르다. 헨리 8세의 종교개혁은 교리나 신앙을 조직을 바꾸는 것이 아니었고 조직의 수장 (잉글랜드 내에서) 국왕으로 재확인 하는 것이었다. 교황청이 명목상으론 서방 교회의 전체를 주관하는 권한이 있긴 하지만 실제로 이탈리아신성로마제국을 제외하면[43] 세속군주에게 교회조직의 운영을 위임했었다. 영국 프랑스[44]와 같은 국가들은 독자적으로 주교를 임명하고 추기경이고 대주교고 간에 멀리 있는 교황청보다 왕의 신하라는 인식이 강했다. 물론 사제계층은 평신도인 왕이 재판할수 없는 신분으로 이론상중세시기 왕이 마음대로 재판할 권한이 없었고, 교회에 조직에 관한, 그리고 교회에서 주관하는 관상제는 성직자들이 왕에게 이견이 있을경우 이론상 로마 교황청에 항소할 수 있었는데, 거의 사문화 되었던 로마교회의 이 성직자 신분에 대한 재판 관할권, 영국교회에 관한 처분을 영국외 다른 조직에 대한 상소권을 반역으로 선언한것... 이것이 곧 수장령 (Acts of Supremacy, 首長令)이다.

헨리 8세에드워드 6세 이후 메리 1세 때 다시 영국교회는 다시 국가 교회에서 로마 교황청의 수위권을 인정하여서 가톨릭으로 회귀한 것을 볼 때, 헨리 8세에 의해 영국국교회가 로마교회에서 독립하고,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들어서면서 영국국교회로 회귀하며 지금의 성공회 토대를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그리하여 성공회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견해로는[45] 헨리 8세 시절은 잉글랜드가 어떤 일관된 '개신교'가 존재했다는 말을 전혀 할 수가 없다.
헨리 8세 시절은 로마교회에서의 독립으로 영국국교회(성공회)의 역사 시작임은 분명하지만 가톨릭교리를 거의 저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헨리 8세는 교리상으로는 종교개혁 초반에 루터주의의 영향으로 하나님이 지상권을 군주에게 위임한 것이라는 주장에 매우 호감을 느끼긴했지만 루터주의나 칼뱅주의 자체는 별 관심이 없었고, 온건한 가톨릭 개혁주의 였던 네덜란드 출신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가 헨리 왕의 성향이었다. 당연히 대체로 가톨릭 신앙을 유지했고, 후반으로 갈수록 이런 경향은 심해졌다. 1543년에 나온 '왕의 책(King's Book)'[46]은 가톨릭 신자들을 안심 시키려는 왕의 견해가 분명히 나타난다. 대륙의 복음주의자 즉 프로테스탄트들이 주장한 대부분의 주장을 배격하는데, 가톨릭 교리인 성체성사의 화체설(성변화), 평신도 양형 영성체 금지, 사제독신, 주교제도, 영어성경 번역 금지[47] 고해성사7성사 제도 옹호, 현실적으로 성당의 주수입원이던 '죽은 자에 대한 미사'(연미사) 등등 기존 가톨릭 교리와 전통을 교황수위권만 제외하면 재확인 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아이러니 하지만 헨리 8세는 가톨릭 교리를 옹호했다.

물론 헨리 8세가 가톨릭 교인은 아니다. 당연히 수장령과 이의 후속 법령인 반역법(Treasons Act)를 근거로 (영국 내에서)교황 수위권을 부인을 거부한 토마스 모어와 존 피셔를 처형하긴 했다.[48] 그나마 토머스 모어[49]는 개인적 친분 때문에 살리려고 회유에 갖은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하여 반역죄를 물어 참수 시켰지만, 이전에 토머스 모어를 대법관으로 기용하여 복음주의 루터파 칼뱅신학에 물든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 신학교수들은 40명을 체포하여 고문하다 6명을 이단으로 화형시킨 예도 있다. 사실 헨리 8세는 대륙신학에 영향을 받은 루터/칼뱅주의 복음주의자들을 가톨릭교도 신하들보다 더 많이 처형했다, 앞서 두 출처를 긁어보면 헨리 8세 시기 가톨릭 신하 처형자는 60명, 개신교 신하 처형자들은 63명인데 가톨릭 교도들은 반역죄로 참수했다면, 개신교 신앙을 가진 대륙신앙의 복음주의자들은 63명을 종교적 이단이라서 더 심하게 화형을 시켰다.[50]

기존 교회세력의 가장 큰 저항인 1536년 요크셔와 링커셔 지방의 '은총의 순례(Pilgrimage of Grace)'가 유명한데 헨리 8세가 종교정책으로 가톨릭만을 탄압했고 극심한 반발이 있었다 주장하는 측도 있지만, 실제 대규모의 반발은 이 경우가 유일했다.

그마저도 이 반정부 봉기는 성직자중심으로 일어나긴 했지만 오히려 경제적 이유가 컸다. 성직자들이 봉기를 일으켰던 주요 이유는 정부의 개혁정책으로 여러 교구들을 소유하지 못하게 되고, 해산당한 수도원수도자들을 고위 성직자들이 먹여 살리게 했으며, '첫 열매와 십일조 법령(Act of First Fruits and Tenths)'을 통해 자신들의 수입이 박탈당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종교정책을 바꾸기 원했던 것이라기보다 경제적 불만을 표출하는 일종의 저항의 표시였다.[51]

앞서 수도원 몰수도 가톨릭 교도들의 반발... 이 있었다곤 하고 동기도 개혁같은 순수한 의도가 아닌, 현실적인 금전적 욕구에서 몰수한것이긴 한데 여론의 지지 없이 한것이 아니다.

이미 중세이후 유럽의 수도원 상태는 영국이라도 예외는 아니었으며 특권집단화 되어 수도원이 잉글랜드 토지의 1/6을 소유하면서 면세혜택과 치외법권 혜택을 누렸고 이에 특권집단화 된 수도원의 수도를 할 수도자들이 있는 수도원도 있지만 많은 수도원에서 경제적 이득을 쫓는 수도자들이 대거 유입되며 범죄자,문맹자들이 대거 유입 그로인하여 수도원에서 이를 악용하여 이자놀이, 범죄자 숨기기, 도박장 운영... , 농민들 상대로한 경제적 수탈, 등등 다양한 막장 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런던등 대도시에서 부르주아들은 물론 독실한 교인들마저 수도원을 갈아엎은건 환영할 정도였다.

또한 잉글랜드의 가톨릭으로부터의 독립은 당시 잉글랜드가 처한 국가적 상황과 연결하여 입체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실제로 아무리 왕권이 강하다고 한들, 왕이 이혼하고 싶다고 해서 영국인 전체가 하루아침에 종교를 갈아엎는다는 건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당시 잉글랜드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캔터베리 대주교 토마스 크란머 등 헨리 8세에게 협력한 성직자들이 상당수였고 이들이 영국 교회를 개신적인 신앙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을 주도했다는 것을 고려하여야 한다. 이들은 이질적인 라틴어 미사를 비롯한 전통이라는 이름에 유지되던 가톨릭적 관습에 깊은 회의를 느꼈고 동시에 섬나라 잉글랜드 교회의 독자적인 특성들에 이해하고 로마 교회로부터 독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특히 당시 왕의 측근이었던 토마스 크랜머는 왕의 이혼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자신의 숙원이던 '공동기도문(The Book of Common Prayer)[52][53]를 발간해 지금의 성공회 예배 형식인 감사성찬례의 원형을 만들었다.

어쨌든 헨리 8세의 원래 의도도 어디까지나 로마로부터 간섭 받지 않는 교회조직을 만드는 것이지 영국 교회 체제 전체를 전복시키려는 것이 아니었고 실제 개혁을 움직인 성직자들도 급진적인 개혁보다는 잉글랜드 교회만의 독자적인 신학을 정립하려는 의도였기에 사실 단순화시켜서 얘기하면 헨리 8세 당시의 영국 국교회는 가톨릭적인 외적 요소들에 루터회장로회의 교리를 조금 첨가해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20세기 이후 현대에 이르며 갈수록 넓어지는 스펙트럼[54]을 가진 성공회 신학을 단순히 정의하기는 힘들어졌다. 그렇기에 "성공회는 어떤 기독교입니까?"에 대해서 어떤 성공회 신학자나 성직자 또는 신자도 간단히 답을 내리지 못한다.

3.4. 헨리 8세 이후[편집]

헨리 8세 사망 이후 영국 교회는 한동안 혼란을 겪게 된다. 유일한 아들 에드워드 6세시절 에드워드의 외가를 비롯한 대륙의 복음주의 성향 신하들이 권력을 잡았기 때문에 다시 헨리 8세시절 가톨릭으로 거의 회귀한 영국교회를 대륙에 영향을 받은 개혁신학의 영향을 깊게 받게 된다. 에드워드가 요절하고 짧게 메리 1세 시대가 되자, 메리는 이혼의 원인이 된 아라곤의 캐서린의 딸이며 이혼으로 신분이 격하 되었다가, 헨리 8세의 변덕과 새어머니의 배려로 다시 적자로 되는등 신앙을 떠나 자신의 정통성과 지지세력이 가톨릭이기 때문에 영국교회는 다시 로마가톨릭으로 돌아간다. 이 과정에서 극심한 반발이 터져나왔다. 골수 가톨릭 교도 펠리페 2세와의 결혼은 모든 신하가 반대했고, 여왕의 결혼에 반대하는 폭동이 런던 시내에서 발생했고, 철저히 무력 진압에 나서면서 반대파 숙청에 나서기 시작했고, 대륙의 개혁 신학을 받아들인 청교도, 뿐만 아니라 기존 영국교회의 독자성을 중시하던 고위 성직자들까지 화형을 시키면서 5년 동안 300여명을 화형시키게 된다. 더불어 종교재판과 마녀사냥으로 다져진 스페인인들이 개신교도 색출에 나서자 가톨릭에 동조적인 잉글랜드 인들조차 여왕에 등을 돌리게 된다.물론 이러한 무리한 조치는 짧은 치세동안 되돌리기 어려웠고, 메리 사후 엘리자베스 1세 시기 거의 자발적으로 복귀한다. 메리시절 영국국교회에서 복음주의 반가톨릭성향 사제들 2천명을 쫓아냈으나, 메리 사후 영국 국교회 사제 8천명중 7천명이 제발로 가톨릭을 버리고 국교회로 복귀할정도로 메리의 종교정책은 거의 지지 받지 못했다.

엘리자베스 1세 시대 초반에는 메리시절 잔혹한 종교탄압과 상반되는 정책을 폈다. 메리 치세 5년간 개신교 복음주의자 화형이 280여건으로[55] 이중 100여명은 당시 사형이 면제되던 여자와 어린이들이었지만 엘리자베스 1세 시기 45년간 가톨릭 순교자는 9명에 불과하다 그것도 1570년 이전에는 아예 0명이다.[56] 엘리자베스 1세 세기 초반 12년 치세에는 귀족들은 종교적 맹세를 면제받고 사실상 종교의 자유를 누렸다. 귀족들이 아니더라도 국교회 예배에 불참시 매달 1실링의 벌금을 내면 그 이상의 제재는 없었고, 엘리자베스 여왕 자체가 메리시절 위장 개종할정도로 그다지 독실한 복음주의 성향도 아닌데다가 가톨릭 성향의 신하들을 통제하기 위해 눈감아줬다는 정치적 배려도 있다.

가톨릭 교도가 탄압받기 시작한것은 엘리자베스 주도가 아니라 1570년 교황청에서 가짜군주 엘리자베스를 살해하는것은 신의 뜻에 부합하는일이라 선포하며 엘리자베스를 파문하고 예수회에서 양성한 암살자들이 엘리자베스 처단하고 메리 스튜어트와 노퍽공작 토머스 하워드를 공동왕으로 모시려는 음모가 드러나고서였다. 이여파로 메리 스튜어트와 노퍽공작은 처형당하자 이에 반발한 교황청과 프랑스 스페인같은 가톨릭국가들과 준전시상황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어서 형부인 펠리페 2세가 잉글랜드 침공을 시도하자 그 전후로 가톨릭 교도는 매국노이며 반역자라며 민족감정이 들끓으면서 사회적으로 탄압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엘리자베스 시기 후반에 가면 요크셔처럼 가톨릭에 미련이 많던 일부 지역마저 영국국교회 우위가 두드러지게 된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시대에 앞서 헨리 8세 시대에는 개신교와 가톨릭 신앙을 왕권의 방해요소가 아니면 묵인했기에 극심한 탄압이랄것은 없었다. 에드워드 6세 시기는 미성년 국왕 대신 섭정들과 유력가들의 권력 다툼으로 배가 산으로 가던 시기고, 가톨릭 신자였던 메리 1세는 가톨릭 교도가 아닌 복음주의자들을 극심하게 탄압했다. 여기서 국교회(성공회)신자들이 탄압받지 않았냐는 소리가 나오는데 국교회는 메리가 교황청에 도로 조공으로 바쳤기에 고위 성직자 주교들은 불만을 품은 자들도 있지만 대부분 종교에 그다지 큰 관심 없는 신도들은 국교회나 평생 볼일 없는 교황청이나 그게 그거..라서 차이점을 못 느꼈다 그리고 중요한것은 이 당시 신도들은 종교적으로 열성적인 복음주의자, 기존 전통적 신앙을 지키려는 가톨릭 신도들은 숫적으로 다수가 아니었다. 도시의 일부만 종교개혁을 지지했다는 무리한 의견이 있는데 당시 서유럽 농촌의 문맹률은 거의 95% 이상이고, 도시마저도 교육받은 계층은 절대 소수였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야 성공회니 개신교니 가톨릭이니 교리가 어떠한지의 논쟁은 대부분의 신자들은 노관심을 넘어선 접근 자체가 어려운 수준이었고, 외형적인 교회 예배는 헨리 8세시절 거의 유지했기 때문에 변화자체를 체감 하지 못 했다.

어쨌든 종교갈등에 대한 교훈을 얻어 성공회는 가톨릭과 대륙 신학의 개신교도(청교도)들의 과격한 행동을 배격하며 'Via Media'(중용의 길)이라는 모토가 성공회에 자리 잡았다.

물론 그 당시 현실에서 제대로 적용된 적은 별로 없었다. 여하튼 이 모토 역시 성공회의 태생과 그 정체성, 현실적 제도와 맞물리면서 그야말로 '개혁하는 보편교회'라는 성공회의 모토를 한 마디로 압축하는 핵심이 되었다. 초대교회의 전통을 보전하면서 신학과 믿음에서는 끊임없는 개혁을 추구하는 점에서 보수와 진보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포용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 것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후임 제임스 1세 때도 유지되어 스코틀랜드 출신의 제임스 1세도 주교제 아래에 움직이며 보편교회와 개신교회를 동시에 추구하는 성공회를 중심으로 국교회 체제를 강화하는 데 일조한다. 다만 제임스 1세 때부터 정치적 견해 차이로 청교도 탄압이 일어났다 애초에 스코틀랜드 국왕 시절 제임스 1세는 칼뱅주의 교육을 받아 교리상 상당한 호의감을 느꼈으나 잉글랜드 국왕 즉위 후 국가 교회와 주교제도에 대단히 만족했는데 청교도들은 이런 제임스 1세에 대해 배신감을 느꼈으며, 신학적으로 가톨릭 전통의 일소를 주장했고, 제임스 1세의 왕권신수설과 주교(감독)제도를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후 찰스 1세시기 고교회파로 자신을 비판하는 청교도들의 코와 귀를 베어서 악명과 원성이 높았던 윌리엄 로드[57] 대주교 같은 인물도 개신교의 정체성을 부인하지 않으며, 찰스 1세조차 처형직전 진정한 개신교 신앙을 가졌으며 자식들에게도 그러하길 주문할 정도로 완전히 개신교의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

올리버 크롬웰 시대에는 청교도가 권력을 잡게 되어[58] 보수적인 장로회 문화로 주교제가 폐지되고 칼뱅주의에 영향받게 된다. 왕정복고이후 독립파 청교도[59] 들이 숙청되고 찰스 2세- 제임스 2세시기 가톨릭 용인정책으로 다시 기존 국교회 성향과와 개혁파 복음주의 성향 신도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고 1688년 명예 혁명으로 제임스 2세가 쫓겨나자 윌리엄 3세의 관용조치로 영국국교회 39개 신조에 위배되지 않는 이상 국교회를 제외한 다른 개신교 교파에 대해서 불이익을 폐지하게 된다.[60] 사실상 청교도들에 대한 조치였으나 이미 청교도들은 왕정복고시기 네덜란드나 신대륙으로 많이 이민을 가서 크게 의미있는것은 아니었다. 가톨릭 교도 차별정책은 19세기까지 지속된다.

이후 한동안 국가교회의 정체성만 간신히 유지하다가 19세기 헨리 뉴먼[61] 등을 중심으로 한 옥스퍼드 운동으로 '보편교회'로서의 정체성과 초대 교회의 전통들을 다시 복원, 확산하게 된다.

이 시기 이후 성공회의 이른바 '고교회파(high churchmanship)'와 '저교회파(low churchmanship)'가 확연히 구분되기 시작한다. 고교회파는 하드웨어는 가톨릭과 상당히 유사하지만, 저교회파는 하드웨어든 소프트웨어든 다른 개신교 종파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62] '고교회(high church)'는 엄말한 의미에서 전례적 성찬례를 매주 예배에서 행하는[63] 교회를 칭한다. 소위 로마보다 더 로마적인 전례를 구사하는 '앵글로-가톨릭(Anglo-Catholic)'은 고교회 안에서의 한 흐름일 뿐이지, 고교회파 전부를 앵글로-가톨릭으로 통칭하기는 어렵다. 반면 '저교회(low church)'는 복음주의(Evangelical)[64]파로 흔히들 알려져 있는데, 전례용 예복이나 향, 그레고리안 찬트 등의 전례적 요소 사용을 일체 거부하는 특징이 있다.[65]

사실 저교회파는 표면상으로는 일반적안 개신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저교회파와 고교회파의 결정적인 차이는 매주 혹은 매 예배가 성찬례로 봉헌되느냐 여부이다. 옥스퍼드 운동 이전까지의 국교회 흐름처럼 저교회파 역시 한 달에 한 두번 혹은 매 주일 새벽 예배 정도에서만 성찬례를 거행한다.[66] 하지만 가톨릭의 전례개혁의 영향으로 시작된 개신교의 예전갱신운동이 1960년대부터 세계 교회의 흐름을 바꿔놓는다. 전례의 개념이 없던 개신교 주류 교파들도 성찬예배의 전통을 복구하고 스톨(영대)등의 전례복식을 입는 등의 전례적 실천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이 영향으로 대부분 지역의 성공회 교회들 역시 고교회, 저교회 가릴 것 없이 비슷한 전례예문을 채택하고 매 주일의 성찬예배가 암묵적으로 일반화된다. 사실 그런 측면에서 오늘날 저교회와 고교회를 나누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과거와 달리 오늘날 대부분의 세계 성공회 교회에서 성직자는 장백의에 제의를 입고 성찬례를 집전하며, 매 주일의 혹은 매일의 성체성사 역시 일반적으로 행해지기 때문이다. 다만 그 안에서의 스펙트럼은 나눠볼 수 있다. 이를테면 개신교식의 찬양이 넘치는 예배도 있고, 루터회 예배처럼 어느정도 엄숙하면서 개혁교회 정신에 충실한(부가적 요소가 없는) 예배가 있다. 반면 가톨릭 교회처럼 향을 피우고, 축성 시에 종을 치고, 화려한 전례복식을 유지하는 예배도 있을 뿐이다. 한국 성공회의 경우 '앵글로-가톨릭'주의 선교사들이 조선으로 파견되었고, 그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가톨릭과 하드웨어만 놓고 보면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국의 모든 성공회 교회가 그런 것은 아니다.

'앵글로-가톨릭'이라 해서 그들을 동질적인 그룹으로 보기엔 곤란한 부분이 있다. 영국이나 북미의 '앵글로-가톨릭'주의자들의 경우 전례에 있어 트리엔트 전례의 형태를 온전히 수용하며 '교황 없는 천주교'라는 별명이 어울릴 정도로 신앙관마저도 천주교에 근접한 부류도 있다.[67] 대부분의 '앵글로-가톨릭'주의자들은 성공회 내부중에서도 보수파[68]를 이룬다. 실제로 SSC[69]나 CBS[70] 같은 영국의 '앵글로-가톨릭'단체들(쉽게 비유하자면 성 비오 10세회의 성공회 버전으로 볼 수 있다)은 여성 성직자를 거부하거나 혹은 그들의 존재는 인정하나 단체 내 목회활동은 금지하는 조항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진보파 역시 적지 않게 있는데(동성애, 여성사제 등의 문제에서). 특히 미국 성공회 등 북미에서 이러한 진보파가 두드러진다.

넓은 신학적 저변을 가지고 있고 중도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점에서 현대의 성공회는 다른 교파에 비해 적극적인 교회일치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보편교회적인 특성에서 교황의 절대적 수위권을 거부하고 지역교회 간의 자율과 권한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정교회와도 대화할 수 있고, 신학이나 교의적인 측면에서는 단연 다른 개신교 교파들와 연대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교회일치운동에 빼놓을 수 없는 교단이 되었다. 물론 교리상, 전례상으로 가톨릭과의 공통점도 많아서, 가톨릭과의 연대도 가능하다. 세계교회협의회의 창립멤버이기도 하다.[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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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교황 바오로 6세(좌측)와 마이클 램지 캔터베리 대주교(우측)의 만남.


16세기 이후 서로 대립해오던 세계성공회와 가톨릭은 1970년대부터 '성공회-가톨릭 국제위원회(ARCIC, the Anglican-Roman Catholic International Commission)'를 설립하고 일치를 위한 공식적인 대화의 길을 열게 되었다.

본래 교회일치운동에 소극적이던 가톨릭은 지난 1965년 폐막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교회일치운동에 관한 교령을 발표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고, 그 일환으로 성공회와 ARCIC를 발족하게 된 것.

이러한 대화의 결과들은 양측의 공동합의문 형태로 발표됐으며 성공회와 가톨릭은 16세기 이후 오랜기간 동안 나눠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학과 교리적인 측면에서 상당히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 후 지난 2000년 캐나다의 미시사가에 모인 양측 대표는 3기 위원회를 구성하고 1기와 2기의 결과 및 새로운 주제들을 선교라는 보다 큰 틀에서 다루기 위해 명칭을 '성공회-가톨릭 일치와 선교를 위한 국제위원회(IARCCUM, the International Anglican-Roman Catholic Commission for Unity and Mission)'로 변경하고 매년 1차례 회의를 개최하며 일치운동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40년에 가까운 일치논의에도 두 교단은 교리와 신앙상의 도덕문제를 극복하지 못해 왔다. 더욱이 성공회에서 여성과 동성애자를 사제와 주교로 임명하는 것을 허용하는 문제가 불거지면서 양측간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대립상태에 놓여있는 모습에서 깊어진 골이 확인됐다.

또한 계속 제기되고 있는 성체성사 문제 역시 두 교단이 일치 될 수 없는 뜨거운 화두로 작용하고 있다. 성공회 주교들은 가톨릭 신자가 아닌 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가톨릭의 영성체를 허용하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영성체 문제는 일치를 이루지 못한 상황이라, 아직도 성공회-가톨릭 공동 예배는 성찬례가 생략된 채로 집전된다.

그럼에도 지금도 양측 간 일치 노력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16년 10월에는 캔터베리 대주교와 교황 프란치스코가 만나 일치를 위한 위원회를 설치하기로 결의했다. 이에 앞서 2016년 2월에는 헨리 8세의 옛 왕실 예배당에서 450년만에 가톨릭 전례가 드려지는 것이 허용되고, 여기에 성공회 런던 주교가 참석함으로서 교회일치를 향한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차이에도 두 교단의 일치문제가 오랫동안 구체적으로 검토된 것은 양측이 다른 개신교보다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개신교 중에서는 가톨릭과 가장 사이가 좋은 편이며[72], 본고장 격인 영국에서는 이미 많은 행사를 연합해서 치르고, 역사적 건물을 공동관리 하는 등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교리적 차이는 인정하되, 한국에서처럼 누가 옳으네 그르네 하면서 치고받는 모습은 드물다.

그리고 2017년 1월 18일에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교회의 분열과 종교개혁 과정에서 빚어진 과도한 폭력에 대해 참회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국내 번역 기사로는 가톨릭 탄압만 나왔는데 영국 교회(Church of England)[73]는 종교개혁 전후로 가톨릭 교도 뿐만아니라 복음주의청교도 재세례파 유니테리언들도 심하게 박해한 역사가 있다.[74]

최근 보편교회들과의 교류는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여성의 서품으로 정교회에서 사도전승을 인정하려던 입장을 바꾼데다가 일부 정교회 주교들이 제대로 격노했다고 한다. 물론 가톨릭도..[75] 게다가 성소수자를 옹호하는 광교회파의 행보는 성공회 내부 분란 외에도 이들 보편교회들과 다수 개신교단에게도 경계 대상이다.

4. 특징[편집]

한마디로 'Via Media'(중용의 길)로 표현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위에 기술한 역사적 배경처럼 영국교회가 종교개혁을 바탕으로 국가교회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모든 국민이 믿어야 하는 국가교회의 탄생을 위해서는 기존의 영국에 있었던 가톨릭, 루터교회, 장로회 등이 모두 수긍할 수 있는 교리와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76][77]

그래서 탄생한 개념이 'Via Media'다. 기존 각 교파들 각각의 극단적인 교리를 좇기 보다는 중용을 통해서 진리를 찾아서, 기독교인이라면 누구에게나 받아들여질 수 있는 교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그리스도 교단보다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타 개신교에서는 교단/개교회에 따라 성만찬 제한이나 출교까지도 고려될 수 있는, 몽소승천/무염시태와 같은 가톨릭만의 특정 성모 교리나 통공 교리, 성체성사의 성변화 교리, 천주교식 묵주 기도, 성모 행진 행사 등이 성공회에서는 관용된다. 여기서 말하는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것은, 성공회가 교단 차원에서 특정 교리에 대한 믿음을 신자 개개인에게 강요하지 않으며, 성공회 주류와 다른 신앙관을 가진다 해서 출교나 영성체 제한과 같은 불이익을 주진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양성을 존중한다고 해서 성공회가 상대주의다원주의적인 관점을 취한다고 보는 건 큰 오산이다. 성공회에서 기독교의 핵심적인 가치를 침해당하면서까지 다양성을 추구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성공회가 추구하는 것은 다양성 그 자체가 아닌, 다양성을 통한 진리의 탐색이기 때문이다.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됨을, 본질적이지 않은 것에는 다양함을 추구하는 것이 성공회의 모토다.

간혹 교리 분야에 있어서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해서만 진보적이지, 성공회도 기독교 내 특정 교파인 이상 배타적 의견을 제시하지 않냐는 의견이 있는데, 성공회는 교회 일치 운동의 시초부터 참가 멤버이고, 교회내외의 의견을 겸허하게 수용하고 그리스도 교회 내 불일치에 대해서 “일치를 위해서 스스로 사라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교회, 기꺼이 사라지길 다짐하는 교회”[78]라는 신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특정 사안에 대해서 확실하고 분명한 정답을 정해놓고 이에 대한 동의 여부에 따라 '성공회 신자냐, 아니냐'로 나누는 경우는 드물다. 기독교의 기본 교리인 삼위일체론, 성육신, 십자가의 고난, 부활 같은 기본적인 것들이 아니면 과거 종교개혁 시기 이래 (성공회 내부에서까지) 갈등을 빚어온 여러 이슈에 대해서는 극단적인 해석 보다는 교회에서도 교리상 이견에 대해서 용인해주고 있다. 복음주의 성향이 강한 교회라 하여 가톨릭 신앙에 가까운 신자들을 차별하지 않고, 그들의 신앙이 잘못되었다고 하지도 않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즉 현대 성공회가 특히 로마 가톨릭교회와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 '그 시대에 따른 개혁과 변화 가능성'이다. 지금 이 시대에 여러 교회 정치제도 중에 최선에 가까운 것이 각 나라 관구별 주교제라고 여겨 선택한 것이지, 개교회 제도 등 다른 정치제도를 주장한다고 해서 성공회 신자로 보지 않는다는 내용은 아니다.

너무 극단적이거나 기독교의 핵심적인 개념에 어긋나지만 않는다면, 어떤 주장을 한다고 해서 성공회 신자로 보지 않는다던지 교회에서 강제로 그 신자를 설득한다던지 하지 않는다. 당장은 교회에서 받아들일 수는 없어도 소중한 교우의 의견으로 존중해 준다. 만약 나중에 시대와 그 시대정신이 바뀌어 주교제보다 더 주님의 뜻에 가까운 정치제도가 나타난다면 교회의 모든 교우들의 기도와 토론을 거쳐 바꿀 수도 있는 곳이 성공회의 특징이다. 성공회 교인들은 성공회를 최고의 교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성공회는 세상의 많은 형제 교회들과 함께 수많은 교회들 중 하나일 뿐이다.[79] 다만 주님 보시기에 최선의 교회가 되도록 처해진 상황에서 항상 부단히(그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성공회라는 자기 정체성의 소멸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80]

성공회 신앙관을 이야기하자면 '성서', '전통', '이성'[81]으로 나타낼 수 있다. 성공회는 이 3가지 중에서 그 어느 하나도 덜 중요한 것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 3가지 모두를 동등하게 중요하게 여긴다. 개신교이기에 성서가 더 중요하다고 쉽게 생각할 수 있는데[82] 성서를 해석하는 방식으로 전통과 이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권위가 성서에 있을지언정 3가지 모두 동등하게 중요하다.

또 한 가지 오해하기 쉬운 것이 '이성'인데, 이 이성은 한 개인의 이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이성을 의미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희생은 이성의 희생이 아니다. 성공회에는 전통적으로 존 폴킹혼이나 알리스터 맥그라스와 같은 과학자 출신 성직자들이 존재하여, 과학과 신학의 조화를 꾀했다. 성공회는 기독교가 역사 상 언제나 그러했듯이 지금도 여전히 머리와 가슴을 모두 사로잡는 강력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성공회는 과학을 통해 알려진 자연에 대한 이해와 갈등하지 않는다. 성공회는 모든 진리가 하느님에 대한 진리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어떤 영역에서 어떤 발견을 하든지 이를 중요하게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 이론에 대한 증거가 매우 강력하므로[83], 성공회는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일어난 자연선택이 현재 우리에게 강력한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한다고 생각한다. 성공회 교회인 웨스트민스터 성당누가 묻혀 있는지 확인해보면, 성공회의 과학에 대한 입장이 어떤 지를 쉽게 가늠해볼 수 있다. 심지어 타 교파에서는 거의 배교자로 보는 찰스 다윈에 대해 성공회에서는 성공회가 배출한 위인으로 홍보(서울주교좌성당 홍보 팜플렛 등)할 정도(...) 이렇게 이성을 중시하는 성향은 반지성주의로 치닫는 근본주의 개신교와 반대되는 모습이다.

즉 개신교가 갖는 종교개혁적 정신과 가톨릭 교회가 갖는 전통, 주교제의 안정감 및 사회적 깨끗함, 그리고 성공회 특유의 이성중시 사상이 결합된 교회다. 우리나라 성공회를 봐도 이런 특징이 잘 나타난다.

인권과 진보적인 성향을 추구하는 성공회대학교[84]를 운영하고, 교회의 정치적인 입장을 보면 좌파 일변도의 느낌도 있지만, 정작 성공회 신자들 중에는 조선일보 사주인 방상훈 대표이사,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등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의 신자들도 매우 많다. 중장년, 노년층 성공회 신자들의 정치적인 스탠스가 보수적인 여타 개신교인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교회 분위기상 교회가 신자에게, 신자가 다른 신자에게 '해라, 마라'의 강요가 없는 것도 특징이다. 그러다 보니 교회가 특정한 사항에 확실한 답을 하지 않는 성향도 동시에 갖고 있다. 이는 '교회가 개인의 신앙에 방해가 되면 안 된다'는 성공회의 가치와 이어진다. 그래서 우리나라 주류 개신교단 또는 가톨릭[85]에서 성공회로 교회를 옮긴 신자들은 혼란을 느끼기도 한다. 결국에는 신자 개개인이 스스로 자신의 답을 찾아내기를 기대한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면

  • 헌금에 관하여

    • 다른 개신교처럼 십일조를 하시는 엄청 독실한 분도 있고, 천주교 같이 1/30 수준의 교무금 정도 하시는 분, 주일 헌금만 하시는 분, 헌금은 성경적이지 않다고 하면서 아예 안 하시는 분 등 신자 성향이 매우 다양하다.
      그런데도 교회는 확실한 답을 알려주지 않고 신자의 개인적 성향에 맡긴다.

  • 주일 감사성찬례/미사/예배를 빠지는 경우

    • 개신교: 한두주 빠지는 정도는 그다지 문제삼지 않으나 몇 주 이상 연속해서 빠지면 구역식구, 청년회, 선교회, 나이별 모임 등 교회 인맥들에게 무슨 일 있는 건지 연락이 빗발친다. 구역 목사-전도사가 집에 찾아올 수도 있다.(다만 최근에 젊은 층은 물론 중장년층도 이런 간섭을 싫어해서 신자들에게 자율성이 큰 대형교회로 몰리는 추세)

    • 가톨릭 교회: 교리에서 정한 죄(주일을 거룩히 지내라는 십계명을 어긴 대죄)를 지었으니까, 회개하고 신부님에게 고해성사를 해야 영성체(성찬식 참여)가 가능하다. 만일 고해하지 않고 영성체했다가는 대죄(중죄)인 모령성체가 돼서 또 고해를 해야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 성공회 :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86] 너무 안 나오면 가끔 신부님이 문자 한번 주긴 하는데, 감사성찬례에 나오라고 강요는 안 한다. 그래서 몇 달 몇 년씩 방황(냉담 또는 다른 교단, 타 종교)하다가 다시 오는 신자가 꽤 있다. 그래도 뭐라고 안 한다. 그냥 신자 스스로 고민해서 돌아오길 바란다.

  • 고백예식[87]에 관하여

    • 개신교회: 죄의 고백과 용서는 하나님이 하는 것이기에 개인적으로 타인에게 고해(고백) 할 수는 있으나, 성사는 아니며, 목사는 용서할 권한이 없다.

    • 가톨릭 교회: 하느님이 죄를 사하는 권한을 교회에 주었기에 사제를 통해서 대죄(중죄)를 용서 받아야 한다. 그렇기에 고해성사는 신앙생활에서 필수적이다. 대죄나 중죄가 아닌 소죄는 필수적으로 고해성사 봐야 할 대상은 아니지만 소죄도 고해성사 보는 것은 신앙에 유익하므로 고해가 권장되어 있다.

    • 성공회: 개신교 스타일대로 하나님께 직접 고백해도 되고, 천주교처럼 사제에게 고해해도 되는 하이브리드한 시스템이다. 공식적인 입장으로는 신앙생활에 매우 유익하므로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가톨릭과 다른 점은 가톨릭은 고해성사정기적으로 하도록 의무화 되어 있으나, 성공회는 신자 본인이 진정으로 고해하는 것에 의미가 있지 가톨릭처럼 제도적으로 강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는 것이다.

  • 외경(제2경전)에 관하여

    • 개신교회 : 정경이 아니므로 교리의 기초로 삼을 수 없으며, 특히 보수 교단의 경우 학술적인 목적을 제외하면 외경을 읽는 것 자체를 꺼리기도 한다.

    • 가톨릭 교회 : 제2경전 또한 39권 구약 경전과 동등한 정경이다. 죽은 이를 위한 기도와 연옥 등 많은 교리가 제2경전을 근거로 하고 있다.

    • 성공회 : 외경(제2경전)은 정경으로 삼지 않으며 교리의 기초로 삼을 수 없지만 유익한 책으로 적극 읽기를 권장한다. 가톨릭 외경을 전례용(성경봉독용) 성경에 포함하는 경우가 있다.

  • 성모공경에 관하여

    • 개신교회[88]: 성모 마리아라 하지 않고 마리아라고 하며, 예수님의 어머니이고 굳은 믿음을 가진 신앙의 모범이라는 것은 동의하지만 성경에 나와 있지 않는 전통이기에 인습으로 여기는 경향. 북유럽 루터교회의 경우 국가나 개교회에 따라 성공회처럼 인정하는 경우도 있으나, 원칙적으로는[89] 다른 개신교처럼 인정하지 않는다.[90]

    • 가톨릭 교회: 성모 마리아에 대하여 '하느님의 어머니(테오토코스)', '평생 동정설', '원죄 없으신 잉태(무염시태)', '몽소승천'의 4대 교리를 믿는다. 또한 모든 성인 중에 가장 높으신 분으로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께 간구하시는 분으로 상경지례의 대상이 된다. 저런 교리를 부정하는 것은 파문에 이르는 죄로 여긴다. 또한 가톨릭 신자들은 집에 십자고상과 함께 성모상도 모셔둔다.[91]

    • 성공회: 성모 마리아에 대하여 공식적인 입장은 하느님의 어머니만 천주교와 동일하다. 나머지에 대해서는 개인의 신앙에 맡긴다. 물론 공식적인 입장은 '평생 동정 부정', '무염시태 부정', '성모안식'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강요도 없고 성직자나 평신도 개인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인다. 또한 예수님의 어머님이고 믿음의 모본으로 공경하기에 다른 개신교에 비해서 성모신심이 약간 강한 편이다. 또한 신자 개인이 가톨릭 수준의 매우 강한 성모 신심을 가지고 있다 해도 이를 말리지 않는다. 영미권의 일부 고교회파에서 거행하는 성모상 행렬이 성공회 내에서 용인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한편으로 성당에서 펼치는 성모 축일 행사 등을 거부하지 않는 선에서, 다른 개신교단 신자처럼 개인 신앙생활에서 성모 마리아에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예를 들어 개인 방에 성모상을 안 둔다든지) 신앙생활에 전혀 문제가 없다.

  • 성체성사에 관하여

    • 개신교회: 단지 예수의 희생과 부활을 기념하는 행사일 뿐이라는 입장에서 영적으로 임재하신다는 입장까지 다양하다.[92] 다만 화체설(성변화)을 거부하는 것은 다 동일하다. 성찬식의 경우 1년에 1~2번, 많아 봤자 분기당 1번씩이나 매달 1번씩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매 주일마다 성찬식을 하는 것은 성체에 대한 숭배로 변질 될 가능성이 있어서 이신칭의 신앙을 해칠 우려가 있으므로 자제해야 된다는 종교개혁 시기의 주장도 있었고, 한국의 주류 개신교 목회자나 평신도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포도주, 면병이 아니고도 포도주스, 효모빵, 카스테라 등으로 할 수 있다. 동방정교/가톨릭/성공회와 달리 성체를 영하는 특별한 예절은 없다.

    • 가톨릭: 축성된 면병과 포도주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살이며("성변화"), 성체를 영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매우 중요한 성사이다. 따라서 매일 미사마다 영성체를 실시한다. 대죄를 진 상태라면 반드시 고해성사를 보고 영성체를 해야 한다.[93] 면병과 포도주가 성변화를 일으키는 시점은 사제가 제정문을 낭독할 때이다.[94] 그렇기에 가톨릭의 미사의 절정은 제정문을 낭독할 때이다. 가톨릭 신자만이 적법하게 가톨릭 교회에서 성체를 영할 수 있다.[95]

    • 성공회: 성체를 영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중요한 성사이고 가톨릭 같이 매 주일 감사성찬례마다 영성체를 실시한다. 다만 가톨릭과 달리 축성된 면병과 포도주가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살로 변한다고 믿지는 않는다. 성공회의 주류 입장은 "성사적 임재설"이다.[96] 공식적으로 성공회의 감사성찬례의 절정은 성체 축성시 마침영광송과 대(大)아멘을 하는 시점이다. 즉 사제와 신자가 함께 아멘을 하는 순간이 성체에 영이 임재하는 순간이다. 천주교와 달리 만인사제설이 반영된 것이다. 영성체를 하기 위해 고해예식을 볼 필요는 없고, 성공회 신자가 아니더라도 세례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교파와 상관없이 성공회에서 성체를 영할 수 있다. 모령성체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으로 영성체 참여를 거부하는 태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가 일반적이다.

  • 구원관에 관하여

    • 개신교회 : 교파마다 구원관이 제각기 다르지만 한국의 주류 교단인 장로회를 중점으로 설명하자면, 믿음으로써 의로워진다는 이신칭의 구원관이 강하다. 감리회나 침례회는 약간 유연한 해석이지만 역시 이신칭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천주교 구원관과 유사한 구원관을 취한 개교회나 목회자가 이단으로 정죄되는 경우도 있다.

    • 가톨릭 : 단순히 마음으로 믿을 뿐만 아니라 행위로서 믿음을 증명하며 성화에 이르러야 한다는 구원관을 갖고 있다. 따라서 개신교의 이신칭의 구원관을 수용하지 않는다.

    • 성공회 : 기본적으로는 온건한 예정론 구원관(장로회의 구원관이 온건화된 것)을 취한다고 하지만(39개 신조), 신자 개인이 감리회식(알마니안) 구원관을 취해도 되고[97] 가톨릭식 구원관과 비슷한 것[98]을 취해도 크게 뭐라고 하지 않는다. 즉, 주류 그리스도교 종파(즉, 구원파와 같이 이단스러운 구원관이 아닌 이상)의 구원관이라면 개인의 신앙관으로서 존중해준다는 의미다.

  • 성경 번역본 선택에 관하여 (대한민국 기준을 중심으로 설명)

    • 개신교회 : 한국의 개신교는 주로 예배용으로 개역개정판을 사용한다. 간혹 표준새번역이나 공동번역 혹은 현대어 성경을 사용하는 교회도 있다. 일부 강경보수 교단을 제외하고는 신자 개개인 통독용 성경에 대해서는 전혀 터치하지 않지만 그래도 개역개정판을 권하는 분위기가 있다.[99] 영어 성경으로는 주로 NIV, ESV, KJV 등이 선호된다.

    • 가톨릭 : 전례용(미사용)으로는 교황청이나 주교회의의 인준을 받은 것만 쓰도록 강제되어 있고, 신자 개개인 통독용 성경에 대해서도 교황청이나 주교회의의 인준을 받은 것을 쓰는 것이 강권된다.[100] 영어 성경으로는 NAB, NABSE, RSV-CE, JB 등이 쓰인다.

    • 성공회 : 대한성공회에서는 기본적으로 공동번역성서를 쓰이지만, 신자 개개인 통독용 성경에 대해서는 전혀 간섭하지 않는다. 성공회 신부님들 중에서도 개신교의 개역개정판, 가톨릭 성경 등 다양하게 읽으시는 분들이 많다. 영어권 성공회에서는 전례용으로 쓸 수 있는 성경 종류가 다양하여 일부 보수적 고교회파에서는 KJV, 광교회파와 일부 고교회파에서는 NRSV, 저교회파에서는 ESV, NIV 등이 쓰인다.


성공회에 입교할 때도 기독교의 웬만한 타 교파에서 받은 세례를 인정해 준다.[101] 심지어 군대 훈련소 시절에 받았던 개신교 진중세례도 세례증명서를 제시하면 인정해준다. 군대 시절 진중세례를 받고도 본인 의사에 따라 다시 정식으로 세례를 받는 문제에 대해서는, 당시 신앙심 없이 단지 부식물(초코파이)를 위해 진중세례에 임했던 경우라면 신부님과 이 문제에 대해 상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나[102], 나름 진지하게 진중세례에 임했던 경우라면 다시 세례 받는 것은 신학적인 문제가 크게 걸리므로 다시 세례를 받지 않도록 담당 성직자가 조치한다.[103]

흔히 성공회를 신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교파라고 생각하는데, 성공회 교인들은 이 말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성공회의 특징을 진보 혹은 보수 같은 특정 성향보다는 이들을 모두 감싸는 유연성/포용성에서 찾는 것이 성공회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확실하고 분명한 것을 선호하는 우리나라 주류 정서에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이성적이고 유연한 신앙생활을 좋아하는 신자에게는 이만한 교회도 없다.

현재 성공회는 이런 가치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최고의 교회'보다는 교회가 가지는 단점을 충분히 인정하면서 중용의 길을 통하여 '최선의 교회'를 추구한다. 그래서 모든 교회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교회일치(에큐메니즘)를 위해서 가장 애쓰는 교단이다. 심지어 (성공회를 훼방할 목적으로 타 교파에 양다리를 걸치는 경우가 아닌 이상) 장로회 같은 타 교파의 교회와 성공회 모두 다 교인으로 등록하고 양쪽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시하지 않는다.

키팅 선생님으로 잘 알려진 헐리우드 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말한 성공회 신자의 10가지 장점이 교회의 특징을 잘 말해준다. 조금 재미있게 표현한 것들이 많다. 아래에 나온 특징은 광교회파에서 두드러진다.

Robin Williams - Top Ten Reasons For Being An Episcopalian.
10. No snake handling.
09. You can believe in dinosaurs.
08. Male and female, God created them; male and female, we ordain them.
07. You don't have to check your brains at the door.
06. Pew aerobics.
05. Church year is color coded!
04. Free wine on Sunday.
03. All of the pageantry, none of the guilt.
02. You don't have to know how to swim to get baptized.

And the number one reason for being an Episcopalian:
01. No matter what you believe, there's bound to be at least one other Episcopalian who agrees with you.

10. 뱀을 취급하지 않는다.[104]
09. 공룡의 존재를 믿을 수 있다.[105]
08. 남성이나 여성이나 모두, 하느님께서 창조하셨다. 남성이나 여성이나 모두, 성공회에서는 사제가 될 수 있다.[106]
07. 교회 문 앞에 뇌를 두고 오지 않아도 된다.[107]
06. 신자석에서 일어섰다 앉았다 하면서 에어로빅을 할 수 있다.[108]
05. 교회력에 따라 색깔이 변한다.[109]
04. 주일에는 공짜로 포도주를 즐길 수 있다.[110]
03. 화려한 구경거리가 있다, 하지만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111]
02. 세례를 받기 위해서 수영을 배울 필요가 없다.[112]

그리고 마지막 첫 번째 이유
01. 당신이 무엇을 믿든지 간에, 적어도 한사람의 성공회 신자는 당신을 이해하고 당신의 생각에 동의해 준다.[113]


즉 성공회 교회는 '다양성을 존중하며, 강요를 원치 않고, 이성적인 생각으로 신앙생활을 하길 원하는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교회이다.

4.1. 성공회의 세 흐름과 하나 됨[편집]

성공회 내에는 크게 고교회파(앵글로가톨릭), 저교회파(복음주의), 광교회파(자유주의)라는 세 가지의 흐름(분파)가 있다. 본 문서에 나온 구분은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편의상 나눈 것이며,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분파 구분에서, 전례적 측면 뿐만 아니라 교의적 측면도 살펴보아야 성공회 내의 다양한 신학적 스펙트럼을 이해할 수 있다.

18세기, 경직되었던 영국 성공회에 존 웨슬리 등을 필두로 한 복음주의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 당시 가톨릭적인 형식과 보편교회로서의 전통을 고수하던 부류에서 '우리가 고교회(high church)고 복음주의에 영향을 받은 너희들은 저교회(low church)다.'라며 만든 용어가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당시 존 웨슬리의 신학이나 조지 휫필드 등의 청교도 복음주의의 영향을 받은 성공회 신자들 중에 성공회에 남은 부류가 저교회파가 되었고, 성공회를 나간 부류가 감리회를 세우게 된다. 또한 20세기 들어 성공회 내에서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사회 참여를 강조하는 부류가 생겼는데, 이들을 광교회파(broad church)라 한다.

성공회에서 진리 추구의 세가지 기준으로 제시하는 전통, 성서, 이성 중에 고교회파는 전통을, 저교회파는 성서를, 광교회파는 이성을 조금 더 중요시하는 부류라고 이해하면 크게 무리가 없다.

고교회파/저교회파/광교회파가 딱딱 나누어져 있지 않고 모자이크처럼 서로 중첩되는 경우도 많다. 전례적인 고교회파라 해서 반드시 교의적으로 고교회파라는 법은 없다는 것. 전례적 고교회파 중 일부는 교의적으로는 저교회파 내지는 광교회파 성향을 가진 경우가 드물지 않지만[114], 교의적 고교회파가 전례적 저교회파 성향을 가진 경우는 거의 없다.

낙태, 동성애, 이혼, 여성사제 서품[115] 등과 같은 사회교리에 대해서는 고교회파, 저교회파, 광교회파로 나눠서 볼 문제는 아니다. 이런 주제에 따라 각 분파 내에 보수파, 중도파, 진보파로 또 갈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유주의적 고교회파[116]도 존재할 수 있고, 보수적 저교회파[117]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 교의적 측면

    • 고교회파(앵글로가톨릭) : 신앙관이 가톨릭에 근접하여 신앙생활에서 성모신심, 묵주[118], 고해성사 등의 가톨릭적 모습을 강하게 드러낸다. 일부 고교회파는 7성사에 대해서 가톨릭, 정교회와 비슷한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성공회 내에서 개신교의 정체성이 가장 약한 분파. '교황 없는 천주교'로 불릴만한 부류이기도 하다. 일부 교의적 고교회파와 가톨릭의 차이점은 무염시태, 성모승천과 같은 가톨릭만의 성모교리 인정여부와 교황수위권 인정여부 정도다.[119]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주교, 사제에 대한 순명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대한성공회의 경우 예전에는 이쪽 계파가 꽤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상당수가 이미 천주교로 갈아탄 상태라서 흔치 않다고 한다.

    • 저교회파(복음주의) : 신앙관이 감리회, 루터회 복음주의파, 온건파 장로회에 근접하여 이신칭의 구원관과 성서 중심의 신앙을 중시한다. 거칠게 비유하자면 '캔터베리 대주교의 수위권에 든 감리회 및 온건 장로회'.

    • 광교회파(자유주의) : 특정한 신앙관에 얽매이지 않고, 신앙의 유연성과 에큐메니즘을 중시한다.[121] 굳이 어느 쪽에 속하냐고 묻는다면 산술평균에 가까운 듯. 대한성공회의 경우 현재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이쪽 성향이 강해지는 중. 성공회 이외에도 광교회주의를 표방하는 군소 개신교 교파가 영미권에 존재한다.

  • 전례적 측면

    • 고교회파(앵글로가톨릭) : 고교회파 예배는 가톨릭미사와 흡사하며 예전성 측면에서 현대 가톨릭 미사보다 장엄한 경우도 많다. 성공회 성찬예배에 대한 공식적인 명칭이 이미 감사성찬례로 바뀌었지만, 고교회파에서는 아직도 관례적으로 '미사'라는 용어가 쓰이는 일이 드물지 않다. 한술 떠서, 영미권의 일부 고교회파는 트리엔트 미사와 유사한 형태의 장엄 예배를 드리기도 한다. 예전성이 현대 가톨릭 미사와 유사하더라도 십자고상 입당식, 향 피우기는 항상 한다.

    • 저교회파(복음주의) : 저교회파 예배는 감리회 예배와 유사하다. 예배에서 기타 연주를 즐기며 CCM 풍의 성가를 자주 부른다. 한국 천주교의 일부 청년미사와 분위기가 비슷할지도. 한국의 성공회는 전례적 고교회파가 주류여서 전형적인 저교회파 예배를 보려면 영미권으로 가야 한다.[122]

    • 광교회파(자유주의) : 굳이 얘기하자면 고교회파와 저교회파 사이의 산술평균적인 예전성을 보인다.[123]


이렇듯 성공회는 보편교회(가톨릭)주의, 복음주의, 자유주의를 아우르는 신학의 스펙트럼을 보인다. 성공회 자신의 전통 안에서 이들을 내치지 않고 보듬어 안고 있는 것이다.[124] 다른 어떤 기독교 교파도 가지지 못한 이런 전통은 현재 성공회가 보이는 신학의 유연성과도 직결되며, 교회일치 운동에 앞장설 수 있는 사상적 토대가 된다.

성공회 신학에서 경계하는 것은 (고교회파/저교회파/광교회파 등의) 특정한 신학적 입장이 아니라 신학을 대하는 특정한 자세이다. "나는 성경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으니 다른 불순한 것을 들이대지 말라"는 식의 자세는 지양하고 있다.[125] 상대방 의견의 불순/순수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자신의 성경 해석을 성경 자체와 동일시하는 것은 큰 교만으로 보기 때문에 매우 경계하고 있다. 자신의 성경을 읽는 방식과 신앙 생활의 형태가 잘못되었을 가능성을 항상 겸손하게 돌아보아야 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126]

4.2.개신교 교파와의 비교[편집]

장로회, 루터회, 감리회, 침례회, 오순절파 등의 여타 개신교 교파처럼 종교개혁 정신을 받아 16세기에 생긴 종파이며, 중세 가톨릭에서 갈라져 나왔고, 역사상으로 개신교 세력과 연대를 많이 하였기에 엄연한 전통적인 개신교 교회다. 대한민국에서도 개신교 신문이나 잡지, 방송 중에서는 기독교방송, 기독교TV, CGNTV 등의 교계뉴스에 보도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교리나 교회제도 등을 보자면 다른 개신교와 차이가 꽤 난다.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보편교회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3중 성직제도(주교>사제>부제), 주교감독제의 교회제도, 7성사 또는 성사적 행위[127] 등 보편교회에서 찾을 수 있는 특징들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스스로의 이름과, 표방하는 모토인 '개혁하는 보편교회(reforming catholic church)'라는 말에서도 그 정체성이 짙게 드러난다.

우리나라에선 학습만화 먼나라 이웃나라에서 초기 성공회 교리를 가톨릭에 루터파 양념을 치는 걸로 묘사하긴 했는데, 모든 개신교에서 루터가 주장한 이신칭의와 만인사제설을 받아들이긴 하지만 사실 성공회의 핵심교리는 루터교회보다는 칼뱅주의에 가깝다. 초기 영국 교회는 교회제도에선 로마식을 유지하고 신학적으론 칼뱅파를 받아들인 중용적인 개혁(via media) 성격이었다. 헨리 8세는 후기에 교황 수위권을 제외하면 후기에 거의 가톨릭으로 기울었기 때문에 별로 이 시기엔 이야기할건 없고, 후대 헨리 8세의 아들 에드워드 6세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영향을 받기 시작하는데 에드워드 6세는 개신교식 교육을 받고 자라서 츠빙글리의 사위 하인리히 불링거를 신학자중 가장 존경했으며, 칼뱅의 제자 존 녹스에게 로체스터 주교직을 제안하기도 했다.[128] 캔터베리 대주교 토마스 크래머는 대륙의 여러 개혁가들을 불러 들였는데 알자스의 슈트라스부르크 출신 마틴 부처(Martin Bucer)가 특히 유명했다. 부처는 초기 종교개혁 시기 츠빙글리 진영에서 있었고 장 칼뱅을 교육하기도 했으며 스위스와 남독일 지역의 개혁을 이끈 개혁자 였는데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나란히 흠정교수로 개혁신학을 소개했고 헨리 8세 시절 가톨릭으로 거의 회귀한 영국 교회 신조를 백지화 했다. 이시기 제일, 제이 공동기도문은 엘리자베스 1세시기 약간 수정된 이후 현재까지도 영국 성공회의 예배지침서로 사용되고 있다. 토마스 크래머는 니콜라스 리들리, 존 녹스[129] 와 함께 잉글랜드 교회 신앙고백으로 ≪42개 신조≫를 만들었다. 42개조 신조는 엘리자베스 여왕시절 켄터베리 대주교 매튜 파커에 의해 수정했는데 주로 칼뱅의 가르침에 비추어 ≪39개 신조≫를 구성했고 수정을 거쳐 현재 영국 성공회의 신조이기도 하다.[130]

칼뱅주의 영향으로 구원론에서는 온건한 예정설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는 장로회와 교리를 공유하고 있고, 가톨릭만큼 성모신심을 강조하지 않아[131][132] 국내 주류 개신교 교인들 입장에서는 성공회의 성모신심을 받아드리기 어려운 수준은 아니다.

다만 앞에서는 구원관에서는 칼뱅주의의 영향으로 온건한 예정설을 받아들인다는 내용이 언급되었지만, 루터파나 스위스 칼뱅주의의 인간관과 구원관 외에 알마니안주의적 구원관 역시 감리회가 성공회에서 분리된 교파인 점을 들어서 존중한다. 고교회파 일부에서는 천주교 구원관에 근접한 구원관을 취하기도 한다.

앞서 이야기한 성공회 특유의 정신인 'Via Media'에서 알 수 있듯이 '중용'의 자세를 중시해 가톨릭칼뱅주의 개신교를 포함한 여타 개신교나 동방정교 간 균형점을 추구하고, 모든 기독교 종파에 대한 관용을 추구한다. 그렇기에 핵심적인 가치의 일치 아래에서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종파이고, 어느 특정 교리가 정답이라고 단정짓지 않는 경향이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 한국의 개신교가 근본주의 색깔이 강한 것과 대조적으로 성공회는 성향이 온건하다. 다른 선진국 지역의 성공회도 온건한 성향의 교파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신칭의 신앙관이 강한(그리하여 일각에서는 무교회주의가 일정부분 용인되는) 여타 개신교회와 달리, 성공회는 교회공동체의 일원으로 속하는 것을 신자의 의무로 보기에 가톨릭, 정교회와 마찬가지로 무교회주의를 배격하는 입장에 있다.

4.3. 가톨릭과의 비교[편집]


가톨릭(프란치스코 교황)-성공회(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 공동 기도회[133]

성공회는 가톨릭교회에서의 전통을 공유한다. 가장 특징적인 점으로는 다른 개신교회와는 달리, 가톨릭교회의 7성사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39개조 신앙고백 상으로는 세례와 성찬 2가지 성사만 인정하지만,[134] 나머지 5가지 성사도 성사적 행위 또는 준성사라고 하며, 성경에 없으므로 세례 및 성찬과 동일한 권위를 부여할 수는 없지만 천년 이상 교회의 전통으로 유지된 것이기에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성사적 행위에 대한 신학적 해석은 가톨릭과는 안드로메다 급이지만, 일종의 예식으로 나름의 신학적 해석을 거쳐서 실시하는 것이다. 성경에 나와 있지 않는 예식이라 해서 아예 배척하는 개혁주의 개신교 교단과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또한 가톨릭과 정교회처럼 신자들이 세례명[135]을 가진다. 7성사 가운데 나머지 5개도 성사적 행위 또는 준성사라는 이름으로 살아 있기 때문에 세례에 대해서는 가톨릭, 정교회와 완전히 공유한다.[136][137] 성공회의 경우 타 개신교에 대해서도 인정한다. 물과 삼위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경우 다시 세례를 주지 않는다.[138] 한국에서는 성공회 신자가 되려면 동방정교나 가톨릭에서 견진성사를 받았더라도, 성공회의 교리를 공부하고 다시 견진을 받아야 한다. 물론 이전에 견진을 받은 적이 없는 개신교인들도 마찬가지이다.[139] 사실 견진은 해당 교단에서 이제 정식 일원이 되었음을 확인하는 것이기에 다시 줄 수밖에 없다.


영미권의 일부 성공회 고교회파(성공회 내 전통주의파)[140]에서는 트리엔트 미사와 흡사한 장엄 예배를 드리기도 한다. 현대 가톨릭의 전례가 바오로 6세 미사로 바뀐 동안에 성공회 일부 고교회파에서는 트리엔트 미사[141]가 사실상 박제된 상태로 전래되고 있기 때문. 이러한 앵글리칸 전례는 가톨릭 교회 내에서도 성공회 출신 개종 사제, 평신도들로 이루어진 속인 자치단에서 집전이 가능하도록 교황청의 승인을 받은 상태다.

성공회 예배양식 역시 비록 '성공회 기도서'의 영향으로 로마 형식의 미사와 세세한 측면에서 간소화되고 달라진 점들이 있으나 독자적인 '새럼 양식' 전례와 미사를 연구하여 이를 조화시킨 감사성찬례가 있다. 기본적인 틀과 구조는 미사와 동일하며 장엄 전례(High Mass)로 드릴 경우 가톨릭의 장엄미사 보다 장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142][143] 이 때문에 앵글로-가톨릭 성공회 교회의 장엄 미사와 성모 축일 행진 행사를 보고 일부 천주교 신자들이 부러워하는 눈치를 보이기도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의결 이후로 현대식 미사에서 사라진 트리엔트 미사의 전례적 풍모가 성공회 앵글로-가톨릭에 일부 남아있기 때문. 영어권의 일부 고교회파 교회에서 거행하는 장엄 미사는 그 외형이 가톨릭의 트리엔트 미사와 상당히 비슷하다(유튜브 동영상). 장궤 영성체도 한다! 다만 일반적인 감사성찬례의 구조는 바오로 미사와 더 비슷하다. 외형적인 유사성 때문인지 가톨릭에서 사정상(본당 재건축, 신축 문제) 임시로 성공회 예배당을 빌려서 천주교 미사를 치룬 경우도 있다.

성상을 용인하는 것도 가톨릭과 비슷해 보이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39개조 신조에서부터 성상이나 묵주와 성인 공경 등에 대해 부정하는 조항이 있지만, 앞의 주석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이 39개 신조는 옥스퍼드 운동을 거치면서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이 되었기에 성공회 성당에 가면 성상을 쉽게 볼 수 있다. 물론 저 신조를 철저하게 지켜서 십자가에 촛대만 올려놓는 등의 간단한 인테리어를 가진 교회도 볼 수 있긴 하나[144] 전체적으로 고교회파, 광교회파 성향이 강해진 현대에는 흔하지 않다. 더군다나 천주교에서 성공회로 옮긴 사람이 아니고서는 성상에 대해 그렇게 신경을 많이 쓰는 분위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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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권의 일부 고교회파에서 치루는 성모상 행렬

그러나 앞에서 이야기가 나온 것처럼 성모 마리아와 관련해서는 천주교와 몇 가지 차이가 있는데, 성공회는 천주교와 마찬가지로 성모 신심을 인정하고 정교회처럼 성모 안식 기념 예배를 봉헌하지만, 천주교나 정교회와 다르게 무염시태나 몽소승천, 평생동정 등을 부정한다. 그리고 성체성사에서도 천주교정교회는 성변화[145]를 믿는다면, 성공회는 성사적 임재설을 믿는다. 그렇기에 이런 성체성사에 대한 신학적 문제와 사도계승 문제 때문에 가톨릭에서는 신자가 성공회에서 영성체하는 것과 성공회 신자가 가톨릭에서 영성체를 하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 또한 모령성체, 성체 모독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가톨릭에 비해 약하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지 않은 자가 성체를 영했을때, 가톨릭에서는 '성체 모독'으로 심각하게 바라보지만[146], 성공회에서는 성체모독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데 실패했다'고 본다.

성공회는 보편교회임을 자부한다. 그러나 가톨릭과 정교회는 성공회가 보편교회라는 것을 부정한다.[147][148] 이는 가톨릭이 보기에 성공회가 에드워드 6세 이후 변경된 주교 서품 예식이 원래 서품 형식에서 형상적인 부분이 명확히 표현되어 있지 않다[149]고 생각하여 이로 인한 성공회 사도계승의 단절을 교황 레오 13세가 직접 선언해버렸기 때문.[150] 성공회의 사도전승 단절에 대한 가톨릭의 입장이 정리된 글

한편 여성 사제 서품으로 정교회나 가톨릭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관계가 많이 소원해지기도 했다.[151][152]

가톨릭과 대비되는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정교회처럼 사제성직자들이 혼인 가능하다.[153] 그러나 정교회 주교는 미혼자만 가능하지만[154] 성공회는 혼인한 성직자도 주교가 될 수 있다. 예컨대 2015년 현재 세계성공회의 선임자이며, 영국 성공회의 대표자인 캔터배리 대주교 저스틴 웰비는 결혼했고 아이도 6명이나 있다. # 참조. 물론 수도자는 결혼 못 한다. 수도자사제인 경우에도 마찬가지. 천주교도 성공회나 동방정교 그리고 북유럽 루터교회 성직자가 천주교로 개종을 할 경우, 예외적으로 교황청이 허락한 가정이 있는 가톨릭 사제가 될 수 있다. 단 이는 어디까지나 성공회나 정교회, 북유럽 루터교회 사제가 가톨릭으로 넘어왔을 경우에 한정된 특수한 상황인 것이고, 이걸 가지고 가톨릭에서도 성직자 독신제도가 무너진다는 식으로 보는 것은 정확한 것이 아니다. 여전히 라틴 교회가 주축인 가톨릭에서는 성직자의 독신은 의무사항이지만 그렇다고 이미 있는 가족들을 버리고 떠나라고 할 수는 없으므로 위의 사례에 한해서만 예외로 허가하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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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특이점이라면, 여성 사제를 인정한다는 것.[155]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성모 마리아를 13번째 사도로 인정한다는 것은 아니고 또 그렇다 해서 사제의 직위에 사도를 넣지 않는 것도 아니다. 비슷한 경우로 일부 국가에는 동성애자 사제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커밍아웃한 동성애자 사제에게 사제의 자격을 문제 삼지 않는다.[156][157] 하지만 여성 사제를 인정했을 때 성공회 내부에서도 엄청난 반발이 있었고, 상당수 사제들이 가톨릭으로 옮겨가기도 했다.[158][159][160] 어느 가톨릭 신부의 말처럼, 성공회는 가톨릭(한스 큉과 같은 진보파)이 꿈꾸는 일을 너무 서슴없이 실행하기도 한다. 아무튼 이런 낌새를 눈치챈 교황청에서 가톨릭으로 옮기려는 성공회 사제 및 신자들을 위한 사목적 지침을 마련한 상태다. 사실 교황청에서는 성공회 출신 개종자를 위한 앵글리컨 속인 자치단까지 설치하여 해당 속인 자치단에 속한 성당에서는 앵글리칸 전례에 따른 미사 집전도 가능하게 하였다.[161]

성공회는 가톨릭처럼 성직자 직제를 인정하면서도 만인사제주의를 부정하지 않으므로 평신도-사제, 하급 사제-상급 사제 간 '순명권'의 개념이 가톨릭에 비해 약한 편이다. 또한 성공회 교회법은 가톨릭 교회법[162]에 비해 짧고, 덜 치밀한 편이다.[163]

반면에 가톨릭의 보수적인 교리와 시스템에 실망한 신자들이 성공회로 옮기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동성애, 여성사제, 재혼가정, 낙태 문제에 있어서 사회교리 문제 뿐만 아니라 가정폭력이든지 반강제로 이혼했든지 이혼 사유를 따지지 않고 교회 참여를 거절하거나, 낙태여성을 용서받을수 없는 중죄로 보거나, 산아제한 인공피임에 대해서 강경하게 처분하는 부분에 불만[164]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도 가톨릭식 계급 구조에 실망한 페미니스트 등이 보수적인 가톨릭의 일관된 모습에 반감을 가지며 반대로 이들을 허용하는 성공회로 옮기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반 평신도 외에도 가톨릭 사제가 성공회로 옮기는 경우도 자주 있다.[165] 또한 서구 지역 가톨릭의 아동성추행 문제에 실망하여 성공회로 옮기는 경우도 있다. 성공회의 이러한 풍모는 가톨릭 교회 내부의 급진개혁파(한스 큉 교수, '가톨릭 뉴스 지금여기' 기고진 등)에게 귀감이 되기도 한다.

개신교 목사가 가톨릭으로 옮기면 가톨릭의 사제가 될 수 없고 그저 평신도만 되지만[166], 성공회 신부주교가 가톨릭으로 옮기고 나서 사제서품을 다시 받으면 가톨릭의 사제가 될 수 있다. 성공회의 성직자 중 남성 기혼자, 남성 미혼자가 가톨릭으로 옮겨도 사제직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특례를 받고 있다.[167] 당연하겠지만 여기에는 성공회 여성 성직자 출신 개종자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 이러한 특례는 교황의 사목적 배려와 그동안의 가톨릭-성공회 간 교류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다. 가톨릭으로 옮긴 성공회인 중 가장 유명한 존 헨리 뉴먼(성공회 주교 출신)은 이후 추기경직에 올랐고,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시복되기도 했다.[168]

반대로, 가톨릭이나 정교회 등 사도전승을 계승받았다고 주장하고, 역사적 주교제도를 유지해온 교단 출신 성직자들이 성공회로 옮길때 성공회에서는 그 성직을 인정한다.

사회참여, 정치참여 문제에서 가톨릭과 사뭇 다른 자세를 보이기도 한다. 가톨릭은 성직자가 세속 권력을 얻는 것(의회 진출 등)을 제한하지만(교황의 승인을 요함), 성공회는 딱히 제한을 두지 않는다. 애초에 캔터베리 대주교 등 영국 성공회 내 특정 고위성직자들은 영국 상원의원을 겸직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이재정 신부가 성직자의 세속 정치 참여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물론 정치계에 진출한 성공회 성직자의 성직은 휴직처리 된다.

위와 같이 성공회는 겉으로는 가톨릭과 닮은 점이 꽤 보이면서도 디테일한 부분으로 들어가면 다른 점들이 많아진다. 이는 양날의 검이 되는데, 기존의 구교나 여타 메이저 개신교에 실망한 사람들에겐 성공회가 절충적이고 대안적인 교회로 다가올 수 있지만 양측의 보수적인 입장들에선 그저 돌려 까이는 까야 제맛이 되기 십상이다. 실제로 가톨릭 신자 중 보수적인 신앙관을 가진 사람들은 성공회는 단지 사도전승이 끊긴 개신교(천주교 흉내내는 개신교)로 절하하여 보는 시각이 크며, 가톨릭 신자 중 에큐메니컬 정신이 강한 사람들은 브릿지 교회 내지는 천주교 2중대(교황수위권에 들지 않은 천주교)로 본다고 한다. 심지어는 고교회파 기준으론 외형이 여타 개신교에 비해 가톨릭과 훨씬 더 흡사하므로 오히려 더 기분 나쁜 사이비로 보는 원리주의적 시각도 없잖아 있다. 그리스도교계의 불쾌한 골짜기? 물론 반대로 개신교에서도 보수적인 입장[169]의 신자일수록 성공회를 (부정적인 의미로) 가톨릭에 가깝게 본다.

교도권 차원에서는 성공회의 성체성사, 신품성사를 완전히 무효한 것으로 보지만, 일부 가톨릭 사제, 신학자는 일부 고교회파를 통해(특히 성공회로 넘어간 가톨릭·정교회 성직자 출신으로부터 서품을 받은 이들) 사도전승이 이어졌을 여지가 남아있다고 보기에[170] 그쪽 계열의 사제, 주교에 의해 집전된 성체성사와 신품성사를 완전히 무효한 것으로 보기에는 조심스럽다고 보는 경우가 없진 않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 성공회 영성체를 온전히 인정한다는 의미는 아니고 (그들 입장에서) 일반적인 개신교 성찬식처럼 신학적으로 전혀 의미 없는 성찬으로 치부하기에는 조심스럽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일부 가톨릭 사제/신학자가 존재한다는 것으로 봐야 한다. 물론 가톨릭 주류에서는 이걸 단지 소수의 개인 의견으로 취급할 뿐. 여담으로 현대에도 성공회는 가톨릭, 정교회 출신 성직자의 전입을 받아주기에 이들 사제 한정으로는 사도전승이 부분적으로 이어지고 있지 않냐는[171] 의견도 있다.참고 교도권 차원에서 성공회의 신품성사를 인정하지 않지만, 개신교 목사가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경우와 다르게 성공회 사제가 가톨릭으로 개종할 때 곧바로 다시 사제로 서품받게 할 수 있게 사실상의 특례를 부여하는 것과 개신교 세례를 인정 안 했던(2012년 부터 심사 후 인정) 한국 천주교가 성공회 세례는 온전히 인정하는 것은 이와 무관하다고 보기는 힘들지도. 참고

가톨릭 성당에는 소속 국가의 국기를 게양하지 않지만[172], 성공회 예배당에서는 소속 국가의 국기를 게양하는 경우가 흔하다. 대한성공회만 하더라도 서울주교좌성당 제대 근처에 태극기가 게양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정리하자면, 성공회는 개신교 교단 중에서 가톨릭 교회와 가장 가까운 교단이라고 볼 수 있다.

5. 조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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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에 있는 안경 낀 백인은 로완 윌리엄스 전 캔터베리 대주교이고, 맨 오른쪽의 동양인은 박경조 프란시스 전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장 주교이다.

가톨릭과 비슷한 하드웨어 때문에 '잉글랜드 국교회(Church of England)'[173]가 성공회의 수위권을 지닌 것처럼 오해하기 쉽지만, 성공회끼리는 수위권 타령 같은건 없고 상호병렬적 수평 관계이다. 공동체 내에서 역사적 대표성을 지닌 점을 빼놓고는, 어디까지나 '잉글랜드 국교' 역시 '세계성공회공동체(Anglican Communion)'의 일부이다

간혹 가톨릭 신자들이 세속적 정치체제로는 자국에 충성하나 신앙적으로 바티칸 아래 있는 것처럼 성공회도 잉글랜드 국교회 수장인 영국 왕실에게 영적/신앙적 친교관계에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16세기 헨리 8세 시절 수장령 선포 후 영국 교회를 국가교회화 시켜 영국 내에서의 교황의 지위를 왕에게 귀속시킨 사건 이후 그후의 역사에 대해 잘 알려지지 못했기 때문에 성공회를 믿으면 영국 여왕을 섬기냐라고 의문을 제기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설명은 약간 역사적 지식이 필요한데 일단 영국만의 국가교회라는 영국 국교회라는 명칭도 1846년부터 보편교회를 추구하는 성공회로 바뀌었다. 그리고 앞서 서술하다시피 잉글랜드 성공회는 여타 다른 성공회와 수평 관계이며 수위권 같은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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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국왕은 잉글랜드 성공회의 수장이 아니다. 영국 군주가 교회의 수장을 포기한 것은 비교적 최근도 아니고 16세기 엘리자베스 1세 시절부터이다. 영국 내에서의 교황 수위권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가톨릭 교리[174] 를 지지한 헨리 8세시절 수장령(Acts of Supremacy) 을 내려서 영국 교회의 수장(首長,Supreme Head)임을 선언했는데 이는 영국 외에서 교황의 지위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정치적인 행위였다.[175]헨리 8세 사망 이후 에드워드 6세는 9세에 즉위하여 15세에 사망했기에 사실상 독자통치한 바가 없고, 후임 메리 1세 시절 영국은 다시 가톨릭으로 회귀했다.

그리고 나서 엘리자베스 1세가 다시 영국 교회의 수장이 되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기존 가톨릭 신자들은 이 자리는 당연히 교황의 것이라 여겼고, 개신교도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타협책으로 스스로 수장임을 칭하지 않고 (권한을 위임받은) 최고 통치자(Supreme Governor)라고 칭했고,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현 엘리자베스 2세는 잉글랜드 성공회의 최고통치자(Supreme Governor of the Church of England)이며, 헨리 8세가 교황 레오 10세에게 수여받은 신앙의 수호자(Fidei Defensor. 영어로는 Defender of the Faith) 칭호까지 쓰고 있다.

영국 왕실은 성공회 공동체의 일부인, 영국 전체도 아닌 잉글랜드 성공회의 보호자일 뿐이므로 한국인, 미국인까지 갈 것도 없이 같은 영국 내 웨일스스코틀랜드 성공회 신자와도 관계를 갖지 않는다. 또한, 현재에는 상징적 최고통치자 역할도 행사하지 않는다. 주교 임명권한도 형식적인데 주교회에서 거친 결정을 거스르지 않고 임명장만 국왕 명의로 나갈 뿐이다.[176]

이 '세계 성공회 공동체'는 역사적으로 이어오는 주교에 의해서 치리(治理) 되는 지역/국가별로 독립적인 성공회 관구들이 공통의 신앙을 가지고 연대한 조직으로 이를 통해 성공회는 자신을 보편교회라고 자부할 수 있는 것이다. 성공회의 출발점이자 지금도 영국 성공회의 정신적 수장인 캔터베리의 대주교가 전체 세계성공회공동체의 정신적인 지주로 의장 주교의 역할을 수행하며 전체 성공회 입장을 조정한다. 이런 점 때문에 운영방식은 10개의 독립교회를 중심으로 각 교회의 최고 주교가 각 지역에서만 자치권을 행사하며 집단지도체제를 구성하는 동방정교의 운영과 매우 흡사하다.

캔터베리 대주교는 특별히 세계성공회공동체의 일치를 위한 노력의 의무를 지녀 10년마다 전체 성공회 주교들의 회합인 '램베스 회의'를 주관한다. 어디까지나 의장 주교이며 정신적인 수장을 맡는다는 점에서 수많은 지역 성공회들에 권고와 자문 정도만 할 뿐이지 그 역시 캔터베리 관구를 제외한 다른 성공회들의 신학, 조직, 재정 등의 문제를 치리할 권한은 존재하지 않는다. 각 관구가 하나의 독립교회로 역할하기 때문에, 비록 10개로 나누어져 있다곤 해도 어느 정도 계층적인 시스템을 구축한 동방정교회에 비해 지역 교회에 독립성이 더 크며 이론적으로 같은 나라에 있어도 관구가 다르면, 다른 지역 교회와 별도로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며 나아가 다른 성공회 공동체와 교제를 단절할 수도 있다. 애초에 램베스 회의의 결정사항도 권고사항이지 의무사항이 아니다.

실제로 미국 성공회가 동성애자 사제 진 로빈슨(Gine Robinson)을 주교 서품하자 이에 반발하는 보수적인 교구들이 전부 미국 성공회 관구를 탈퇴하는 일이 벌어지고 새 관구를 독자적으로 만들었다. 또한, 이후 있었던 램버스 회의에서 보수적인 교구들이 전부 불참을 선언하는 일이 빚어졌다. 교구-관구-교황청 순으로 계층적 교계제도를 이루는 가톨릭에서 일개 교구가 공동체를 탈퇴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러한 분권화 경향에 캔터베리 주교도 위기의식을 느꼈는지 '세계성공회공동체 계약서'를 전 관구에 배부하여 이를 승인하여 공통적인 신앙과 보편교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만, 이 성공회 계약서는 성향에 관계없이 많은 관구들의 까임을 받은 바 있다.

6. 세계 성공회[편집]

6.1. 영국 및 아일랜드의 성공회[편집]

6.1.1. 영국 국교회[편집]

Church of England.
홈페이지
잉글랜드 국교회 주교회의 인준 성경 목록

성공회의 모체로 간주되는 교회(모체라고 했지 특별히 더 우월한 지위를 가진다는 뜻은 아니다).

이름대로 잉글랜드를 담당하는데 잉글랜드 이외에도 웨일스 일부 지역[177], 영국 왕실령인 맨 섬채널 제도, 유럽 대륙(터키, 구 소련 국가들 포함)과 모로코를 직접 관할한다. 아무래도 유럽 본토에는 성공회 신자가 적다 보니 이렇게 관할 범위가 넓어진 것.[178]

관구(province)는 캔터베리와 요크 둘이 있다. 캔터베리 관구는 잉글랜드 남부, 웨일스 일부, 채널 제도, 유럽 대륙·모로코(지브롤터 교구 관할)를 커버하며 30개의 교구(diocese)가 있다. 대한성공회의 경우 한국 관구가 독자적으로 설치되기 전까지는 캔터베리 관구 직할 구역이었다. 요크 관구는 잉글랜드 북부와 맨 섬을 담당하며 12개의 교구가 있다. 캔터베리 대주교가 잉글랜드 국교회의 지도자이면서 세계성공회공동체에서 명목상의 지도자로 간주된다. 잉글랜드 내 성공회 교구들은 원래는 가톨릭 산하 교구였지만[179], 잉글랜드 국교회가 형성되면서 가톨릭에서 떨어져나갔고 영국 가톨릭은 교구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 고역을 겪기도 했다. 가톨릭 교구의 복설은 가톨릭 금지가 풀린 19세기에 이루어졌다. 예를 들자면, 종교개혁기에 런던 교구가 성공회로 넘어가면서 가톨릭 측에서는 런던 지역을 관할하는 웨스트민스터 교구를 새로 만들어야 했다는 것.

영국 법률적으로도 아예 잉글랜드 국교회가 잉글랜드의 국교(established church)로 지정돼 있다. 그래서 국회 귀족원(상원)에 아예 캔터베리 대주교 등 고위 성직자들이 의원으로 임명된다. 이런 성직자들을 성직귀족(Lord(s) Spiritual)이라고 부르며 2015년 현재 총 26명이 있다. 당연히 성직자가 정치인처럼 의석을 갖는 데에 대한 비판 여론은 존재한다. 하지만 귀족원의 의석이 800석이 넘을 정도로 워낙 많아[180] 이들의 의석 비중이 적다. 그리고 현대 영국에서는 귀족원이 평민원(하원)의 보조 기관으로 전락한 지 오래이며[181] 성직귀족들이 정치 현안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피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구조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이 있다는 정도지 여론의 거센 반발이 일어나는 건 아니다. 여론의 격렬한 반발이 있었으면 예전에 이들의 의석이 폐지되었을 것이다. 다만 상원 개혁론이나 폐지론이 계속 있기 때문에 이 의석이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미지수이다. 만약 상원의 모든 의석을 선거로 뽑는 식으로 바꾸거나 아예 폐지한다면 성직귀족 의석 또한 사라질 것이다. 물론 상원 개혁을 하더라도 선거로 뽑지 않는 소수의 의석을 남겨놓는다면 이들의 의석이 남을 수는 있겠다.[182]

여담으로 잉글랜드 국교회에서는 KJV, RSV, NRSV, NIV, REB, NJB, ESV 성경을 전례용으로 인정하고 있다.출처(잉글랜드 국교회 주교회의 2002년도글) 일반적인 전례용으로는 NRSV 영국버전이 많이 쓰이고, 국가적인 의전 행사에는 KJV가 쓰인다.

전체 잉글랜드에서만 2011년 기준 전체 기독교인 인구는 59.4%이다. 세례교인수로만 보면 성공회 교도는 약 2500만 가톨릭 신도는 960만 정도라곤 하는데 잉글랜드-웨일즈[183] 에서 성공회 교도수가 50%정도여야 하나, 둘다 세례만 받고 실제로는 무종교이거나 냉담자 인구가 많아서 실제 신자는 더 적다.가톨릭에선 성공회와 인구가 비슷하다고 주장하나 실제론 영국 전체로나 잉글랜드로만 보나 8% 정도이다. 실제 조사로만 보면 영국 전체의 성공회 교도수는 860만 가톨릭은 400만 정도이다. 전체 영국 전체 센서스 통계를 보면 영국 전체 인구에서 성공회 신자는 2015년 기준으로 17% 정도이다.

참고로 2009년 기록과 비교해 볼 때 영국 전체에서 성공회(19.9→17%)와 가톨릭 인구(8.6%→8%)는 계속 줄어드는 추세이다. 그런데 개신교 타교파(14%→17%)와 이슬람은 늘었는데 특히 이슬람 인구는 두 배 이상 늘어나는 추세고(2.4%→5%) 무종교 인구는 의외로(?) 정체내지 약간 감소 추세.(50.7%→49%)



또한, 영국 성공회에서도 세속화 현상에 대응하기 위해서 영국 내의 새로운 선교적 교회 운동을 '교회의 새로운 표현들'이라고 명하여 젊은층 등을 교회로 끌어들기위한 각종 시도를 하고 있다. 교회의 새로운 표현들은 과거 교회를 다녀본 적이 없는 비신자들의 편의와 변화하는 문화, 지역사회 선교를 고려한 새로운 교회의 형태이다. 여기에는 카페 교회, 청소년회관 교회, 길거리 교회, 숲 교회, 술집 교회 등이 있다.

6.1.1.1. 캔터베리 대주교 목록[편집]
  • 켄터베리의 아우구스티누스[184] (가톨릭)

  • 아엘프라이 : 앵글로색슨 족 지배 당시 캔터베리 대주교. 1012년 바이킹의 침략 때 포로로 잡혔으나, 자신의 몸값을 마련하기 위해 가난한 이들이 세금을 내게 할 수 없다면서 몸값을 내는 것을 거부, 결국 바이킹들에게 소뼈로 돌팔매질을 당한 뒤 도끼자루로 맞아 죽었다.[185] 이후 시성됨.

  • 토마스 베켓 [186](가톨릭)

  • 토머스 브래드워딘 [187]

  • 토머스 크랜머 (영국국교회 - 최초의 프로테스탄트 캔터베리 대주교)

  • 레지널드 폴 추기경[188] (가톨릭 - 최후의 가톨릭 캔터베리 대주교)

  • 매슈 파커

  • 윌리엄 로드

  • 윌리엄 템플

  • 조프리 피셔

  • 마이클 램지

  • 도널드 코건

  • 로버트 런치

  • 조지 캐리

  • 로원 윌리엄스 : 웨일스 출신. 자유주의적 고교회파(liberal Anglo-Catholic)다.

  • 저스틴 웰비 : 런던 출신. 이튼 스쿨, 케임브리지 대학교 졸업. 성직 입문 전에는 정유회사 임원으로 일했다. 현 캔터베리 대주교. 복음주의파다.

6.1.2. 웨일스 성공회[편집]

영어: Church in Wales
웨일스어: Yr Eglwys yng Nghymru
홈페이지

웨일스 대부분을 담당하는 성공회 조직. 웨일스 성공회에서 관할하지 않는 일부 지역은 잉글랜드 국교회의 캔터베리 관구에 속해 있다. 웨일스 성공회 산하의 교구는 6개가 있다.

웨일스가 잉글랜드의 지배를 오래 받았던 탓에 웨일스만의 성공회 조직이 원래는 없었다. 그러다가 1920년에 별도의 교회로 분리되었다. 이때부터 웨일스는 국교로 지정된 종교가 없다.

6.1.3. 스코틀랜드 성공회[편집]

영어: Scottish Episcopal Church
스코틀랜드 게일어: Eaglais Easbaigeach na h-Alba
홈페이지

스코틀랜드를 담당하는 성공회 조직.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동군연합 단계를 넘어서 완전히 한 나라로 합병한 시기의 군주였던 앤 여왕이 공식 설립자로 되어 있다.[189] 산하 교구는 7개가 있다.

참고로 Church of Scotland는 여기가 아니라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신도가 많은 장로회이니 주의.

최근 다양성이 너무 지나쳐서 물의를 빚었다. 스코틀랜드 성공회 교회의 주일 감사성찬례에서 꾸란 낭독을 했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들임을 부인하는 내용이라서 영국 내 보수적인 성공회 인사들이 비판했다. 일단 보도에 의하면 성당 신부의 허락으로 했는지는 확인해주지 않았고 영국 성공회 측은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꾸란을 낭독한 사실을 옹호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선포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스코틀랜드나 잉글랜드 성공회는 물론이고 유럽에서도 난민들이나 이슬람 교인에게 평일에 교회를 빌려주는 경우는 있지만 아무리 상대 종교를 이해하려는 좋은 의도임에도 예배 중에 기독교의 교리를 정면으로 부정하게 내버려 두진 않는다. 만일 저런 사건이 일어난 곳이 가톨릭이나 정교회였다면 주임 신부는 중징계를 면치 못했을 것이고 파문당할 가능성도 충분했을 것이다.

람베스궁 대변인은 스코틀랜드 성 마리아 교회를 고소하겠다고 밝혔으나, 해당 교회는 “우리는 영국 성공회 영역 밖에 있기 때문에 캔터베리 대주교가 사법적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 말대로 잉글랜드 성공회와 스코틀랜드 성공회는 분리되어 있어 실질적인 조치는 할 수 없다.

6.1.4. 아일랜드 성공회[편집]

영어: Chuch of Ireland
아일랜드어: Eaglais na hÉireann
홈페이지

아일랜드 섬 전체, 즉 현재는 독립국인 아일랜드 공화국과, 영국에 남아 있는 북아일랜드 모두를 담당하는 성공회 조직이다.[190] 성공회를 세운 헨리 8세에 의해 설립됐다. 다만 본래 잉글랜드 국교회 산하에 있었다가 1869년에야 완전히 분리되었다.

현재 아일랜드 공화국에서 가톨릭에 이어 2번째로 신자가 많은 종교고 북아일랜드에서 가톨릭, 아일랜드 장로회[191]에 이어 3번째로 신자가 많은 종교이다.[192]

성공회가 오랫동안 영국에 의해 아일랜드의 국교로 지정돼 있었던 탓에 아일랜드 내에서 가톨릭이 우세함에도 불구하고 몇몇 오래된 주요 성당들은 아일랜드 성공회 소속으로 돼 있다. 예를 들어 더블린 시내에 있는 크라이스트 대성당과 성 패트릭 대성당[193]은 아일랜드 성공회 소속이다. 물론 성공회 형성 이전에는 가톨릭 소속이었지만... 이러한 상황 때문에 웃기게도 가톨릭 더블린 대주교는 주교좌성당(대성당)이 존재하지 않고 임시 대성당만 존재한다.

6.2. 미국 성공회[편집]


미국 국립 워싱턴 성당의 부활주일 장엄 예배

Protestant Episcopal Church i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PECUSA 또는 ECUSA)[194]
홈페이지
미국 성공회 공식 인준 성경 목록

미국 성공회[195]의 경우 신자의 수도 많고 주류 교단에 속했다. 미국 독립 혁명 당시엔 미국 개신교 최다 교파였기에 WASP로 불리는 백인 주류 계통이 믿는 종교라는 인식이었고, 상대적으로 기타 교파들보다 지리적으로 남부에 강세를 보였으며 현대와 비교하면 보수적인 성향이 강했다.[196] 그러나 1960년대 민권운동 시기를 전후해서 진보적이고 광교회 성향으로 급격하게 선회했고 이에 대한 반감으로 백인 신자 수가 많이 감소해서 200만명 정도로 줄었으며 동성애, 트랜스젠더 주교 임명 문제로 보수적 성향의 성공회 교회들이 탈퇴함에 따라 미국의 성공회는 온건파(리버럴) 프로테스탄트의 일파로 인식된다.

남부에서 강세를 보이고 보수적이었다는 이야기가 현대 기준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을 텐데, 그 시대의 흔적으로 버지니아 주에 성공회 성당이 많이 남아있다. 건축적으로도 알렉산드리아 시에 위치한 그리스도 성당의 사례처럼 달리 장식적인 요소가 없거나 적고 제단에도 단순한 십자가 틀만 세워놓았다는 것이 특징. 심지어 사우스캐롤라이나 같은 곳에선 성당 안에다 구 연합국 깃발을 걸어놓는, 지금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용자짓까지 있었다.

한때 미국 내 최다 기독교 교파의 위상을 차지했던 역사는, 워싱턴D.C.에 국립[197] 성공회 성당이 있는 것이나 역대 미국 대통령을 기독교 교파 중 제일 많은 12명이나 배출한 사실 등에서 옅볼 수 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람들의 경우 성공회 신자이거나 신자였던 사람[198]들이 대부분이다. 현대 미국 사회의 엘리트들도 성공회 신자였던 경우가 많다.참조 부시 가문도 아버지 부시(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까지는 대대로 성공회였다. 아들 부시도 정치적 평가의 부정적 인식과 달리 종교면에서만 보자면 이슬람을 비롯한 미국 소수 종교에 대해 배타적이지 않았고[199] 성공회였다가 전 영부인을 따라 연합감리회[200]로 개종한 사례이다.참고1, 참고2

현재의 미국에서는 대통령 배출로만 보면 케네디 한명을 빼면 거의 전부 주류 개신교 교단 소속이다. 다만 이탈리아아일랜드 공화국 출신 이민자가 많은 북동부에선 기독교 내 어느 교파보다 가톨릭 교세가 강하며 플로리다멕시코 접경지역 역시 라티노 인구의 증가로 가톨릭이 강세이다.

그러나 미국이라는 나라가 워낙 크니 지역별 편차가 강해서 어디에서나 주류라고 간단하게 일반화할 수 있는 건 아니다.[201] 특히 최근 들어 성공회가 포함된 '주류 교파’[202][203]의 경우 신자 수가 급속하게 감소세를 보이는 편이고, 성공회의 경우 타 교단보다 교세가 이미 많이 줄어든데다가 특히 동성애자 사제 허용, 낙태 문제 등에서 아주 개방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교단내에서도 이탈자가 많아졌기에 200년전 최대 기독교 교파 지위와 대비되게 교세가 줄어들었다. 20여년전 360만의 신도수를 기록했으나 현재는 200만에도 미치지 못 한다. 인구대비로 보면 한국과 다를 게 없다.

물론 좀 나이드신 분들은 성공회 하면 드레스 셔츠넥타이 매고 네이비색 블레이저와 카키색 드레스 팬츠를 입은 WASP 이미지를 강하게 떠올리는 편이다. 그러나 요즘 들어 미국의 젊은 세대는 성공회가 한때 미국에서 거의 국교와도 같은 위상을 가졌다는 것은커녕 성공회가 뭔지도 모르는 경우도 많다. 미국의 경우 75%가 기독교인이라 대답하지만 젊은 세대는 결혼식 또는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 때나 가는 경우가 많은 문화적 전통적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고. 1960년대 이후 미국도 세속화가 이뤄져서 특히 도시지역에선 교회에 안다니더라도 사회적으로 불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아직도 농촌지역에선 교회의 지역 사회 영향력이 크다.

전례/신학의 경우는 인구 대다수를 차지하는 미국 북동부와 서부의 경우 도시에 성공회 소속 성당 5개가 있다면 그중 4개는 앵글로-가톨릭이고 1개는 광교회파[204]라 보면 된다. 이들의 전례는 미국 천주교 신자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전통적인 편이다.[205] 신학 또한 가톨릭에 가까운 경향을 보이는데,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성공회 신학교인 General Theological Seminary의 경우 미국 독립 직후에 설립되었음에도 하드코어한 앵글로-가톨릭이다.[207]

하지만 복음주의 교단이[208] 강세를 보이는 지역인 남부나 중부 등에서는 복음주의파가 다수, 못해도 광교회파가 많은 편이다. 다만 이쪽 지역에도 오히려 아주 전통적인 모습을 보이며, 심지어 예배의식을 Holy Communion, 즉 감사성찬례(Eucharist)가 아니라 미사라 부르는 교구들도 있다. 남부에 속한 신학교의 경우는 광교회파인 경우가 대부분.

이렇게 보면 미국 성공회의 전례/신학 문제가 복잡해 보이지만, 실제 신자들에게는 별로 상관없는 문제이다. 세세한 교리의 경우 신자에게 상당한 믿음의 자유를 주는 편이기 때문. 예를 들어 화체설 관련 믿음 등. 즉 앵글로-가톨릭/복음주의/광교회 문제의 경우 자기 취향에 맞는 교구를 다니면 되기 때문에 큰 상관이 없다. 더 나아가 앵글로-가톨릭 교회 내에서도 예배드릴 때 전통적으로 성호를 그어야 하는 부분에서 가톨릭처럼 성호를 긋는 사람들[209]과 신경도 안 쓰는 사람들로 나뉠 정도.

이는 80년대 이후 미국 성공회의 문화 자체가 아주 기본적인 교리[210]만 믿고 성공회 기도서만 잘 따라 하면 무엇을 믿든, 무엇을 하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아주 개방적인 문화로 바뀌었기 때문.[211] 얼마나 개방적인가 하면 무신론자와 결혼한 신부님도 있을 정도. 신자 구성 자체도 단순한 WASP 상류층 위주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젊은이들과 소수 인종 및 성소수자들 유입으로 조금씩 바뀌어 가는 편. 무엇을 믿든 그를 존중하는 문화로 인해 일반 개신교에서 신자수 증가를 위해 하는 전도보다는 새로운 형태의 교회 공동체를 모색하는데 힘을 쓰고 있다.

북미 지역에는 미국 성공회와 캐나다 성공회에서 갈라져 나온 또 다른 분파인 Anglican Church of North America가 있다. ACNA의 관구장 주교는 2016년 1월 11~15일에 있었던 관구장 회의에는 참석하였으나, 세계 성공회 공동체의 가입여부는 2016년 4월 8~20일에 열리는 세계 성공회 협의회(ACC)에서 결정을 내리기로 하였다.

미국 성공회가 동성결혼에 진보적인 성향을 보인 것이 문제되어 세계 성공회 공동체에 분열을 야기한점을 문제삼아 2016 관구장 회의에서 미국 성공회(EC)의 의결권을 3년간 정지하기로 결정하였다.BBC 기사 동성애 문제를 둘러싼 보수 성향의 아프리카 지역 성공회 관구들의 강력 반발로 인한 성공회 분열 위기를 의식한 결정으로 보인다. 사실 로완 웰리엄스 전임 캔터베리 대주교가 진보파라면, 저스틴 웰비 현임 캔터베리 대주교는 중도보수파[212]이기도 하고... 이 결정에 또다시 동성결혼 지지파인 스코틀랜드 성공회, 잉글랜드 성공회 산하 요크 대교구 등이 반발하면서 언론은 성공회가 최악의 분열 위기를 맞고 있다고 보도하는데 이런 관점은 세계성공회공동체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나온다. 세계성공회공동체는 가톨릭교회와 다르게 '느슨하게' 어떤 고백이나 중앙집권체제로 묶여져 있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사랑과 포용으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 주고 협력한다. 분열보다는 각 관구 성공회가 서로 마음에 안드는 다른 관구에게 휴식기간이나 자숙을 요구하는 걸로 보는 게 낫다. 다투더라도 화해가 이뤄지기 쉬운 조직 체계다.

뉴스앤조이가 미국성공회와 미국연합감리교회와 완전한 상통에 이뤘다는 보도를 했는데 명백한 오보다. 완전한 상통을 하는 합의문을 작성한 걸 잘못 해석했다. 2018년 7월에 열릴 전국교구의회에서 결정된다.

6.3. 호주의 성공회[편집]

영국과의 전통적인 영향으로 호주에서도 세가 크다. 현재 호주 성공회의 대표자는 필립 프레이어 멜버른 대주교[213]이고, 23개 교구가 있다.

호주 인구중 약 53%가 기독교인인데 그중 가톨릭이 22.6% 성공회가 13.3%이다. 20세기 초반까진 성공회 신자가 가톨릭보다 두배정도 더 많았으고 70~80년대까진 비슷했으나 이후 교세가 폭삭 줄어들었다. 더군다나 교인들도 노령화가 상당하다. 다만 이는 성공회 뿐만의 문제는 아니며 가톨릭 교회의 처지도 비슷하다. 두 교회는 나란히 매년 교세가 대폭 줄고 있지만[214] 두 교단에 속하지 않는 개신교나 타종교인 이슬람, 인도계 종교(힌두, 불교, 시크)는 유지내지 늘어나는 추세이다.[215] 이는 신학적 진보와 연관되기도 한다. 호주 성공회는 동성혼을 완전히 인정하는데, 기존신자들은 정작 장년,노년층이 대다수다 더군다나 교회안팍의 다른 중요한 문제는 제쳐놓고 오로지 세속적 인권가치 그것도 동성애 문제하나만 신경쓰냐는 비판과 함께 보수적 신자들이 가톨릭(주로 고교회파 출신)이나 다른 개신교 교파(주로 저교회파 출신)로의 이탈도 상당히 큰 문제다. 인구 구성으로만 본다면 호주 성공회의 미래는 존립 기반이 흔들릴정도로 상당히 암울하다고 볼 수있다. 근래 30여년간 신자 비율은 반토막이 났으며 전술한바와 같이 신도들 노령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그러나 역사적 전통적 영향으로 교회의 영향력이 큰 편이긴 한데 시드니와 멜버른의 유서깊은 교회 건축물들 대다수는 성공회이거나 가톨릭 교회 건물이다. 사회복지나 구호단체도 성공회 소속이 많다. 이들 활동은 정부나 지자체 지원받는 경우가 많아서 거의 공무원급이라 보면된다. 그리고 사립 초등학교~고등학교는 가톨릭과 더불어 성공회 계열 학교들이 많다. 호주 학부모들은 공립학교에 대해 불신이 많은 편인데 가톨릭이나 성공회 계열 사립학교는 엄격한 교칙 때문에 인기가 많다.

6.4. 홍콩마카오의 성공회[편집]

홍콩영국이 식민지배했던 중국 남부의 섬인 홍콩 섬과 본토 쪽에 붙어있는 육지 부분인 구룡반도, 신계 그리고 200개가 넘는 유/무인 도서로 이루어진 도서지방으로 현재는 1국가 2체제에 의해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가 들어선 상태다. 그래서 중국 공산당이 직접 통치하는 중국 대륙과 달리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고 당연히 성공회 교구도 정상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누린다.

홍콩 성공회의 역사는 빅토리아 여왕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홍콩 섬 센트럴에 영국군 장교들이 세운 성 요한 성당이 바로 그때 만든 교회로 현재도 신자 수가 많으며 홍콩인 신자들의 신심도 매우 깊은 편.

홍콩은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성공회 강세인 곳으로 본토 중국의 기독교인들이 대부분 복음주의 개신교인것과 달리[216] 홍콩에선 성공회가 강세이다. 홍콩 개신교 중 대부분이 성공회이다. 나머지는 스코틀랜드 장로회감리회, 침례회 등으로 모두 영국에서 나왔단 공통점이 있으며 기독교=성공회로 통한다. 그리고 영국이 건설한 선교기지 중 하나가 홍콩으로 현재 홍콩 성공회가 전 동아시아를 혼자 담당하는데 다른 동아시아 국가는 성공회 신자가 없다시피해서 그렇다. 개신교인이 15% 이상[217]인 한국조차 성공회는 1%도 안되는 극 소수 교파다. 그리고 북한, 일본은 아예 성공회는 켜녕 그리스도인 자체가 없다시피하다.

게다가 영국 등에서 유학하거나 성공회/가톨릭계 사립학교[218]를 다닌 젊은 층이 서구화되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경우도 많으며 이때 대게 가톨릭감리회, 그리고 성공회를 고른다. 홍콩은 영어로만 수업하는 사립 중고등학교 선호도가 매우 높은 곳이라, 부모 세대는 불교를 믿지만 본인은 성공회나 가톨릭을 믿는 사람도 많다.

참고로 최초의 여성사제가 서품 된 곳이기도 하다

마카오포르투갈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반대로 기독교는 가톨릭을 뜻하고 성공회는 원래 소수였다. 그러나 현재 젊은 층을 중심으로 성공회 교세가 크고 있다.

6.5. 일본 성공회[편집]

교구는 11개, 신자 수는 약 5만 8천명. 성공회가 처음 일본에 들어온 것은 우리나라보다 30년 가량 앞선 막부시대 말기인 1859년이다. 영국 성공회의 고교회파 교회로부터 단일 계통으로 전래를 받은 대한성공회와 달리, 일본 성공회는 도쿄나 요코하마 등 관동지역은 미국 성공회로부터, 나고야 등 중부지역은 캐나다 성공회로부터, 오사카 등 관서지역은 영국 성공회로부터 전래받았다. 현재는 북으로 홋카이도 교구부터 남으로 오키나와 교구까지 11개의 교구가 모두 일본 성공회로 한 관구를 이루고 있다.[219] 현재 일본 성공회 관구장(Primate) 주교는 마카토 우에마쓰(나다니엘) 홋카이도 교구장 주교다.

성직자에 대해서 '사제'보다는 일반적으로 '목사'라 호칭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 성공회는 신자 수가 6만 정도로 크다고 하긴 어려운 규모이지만, 일본은 기독교인이 다 해야 100만 정도밖에 안되기 때문에[220] 일본 기독교계에서 성공회의 입지는 꽤 큰 듯하다. 우리나라는 개신교, 천주교 합해 1500만 중 성공회는 5만이니... 일단 눈물을 좀 닦자. 나라 안에서 기독교세가 작은 가운데 기독교 내 교파의 입지가 큰 일본성공회와, 나라 안에서는 기독교세가 크지만 기독교 내에서 너무 작은 교파인 대한성공회의 상황이 대비가 된다.

일본성공회와 대한성공회는 매우 긴밀히 교류하고 있으며, 양국 간의 우호 증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21][222]

성공회는 사회선교를 중요시하게 생각하는데, 일본성공회에서는 그 일환으로 교회에 보육원을 만들어서 사회복지에 기여하고 있어, 성당에 보육원이 딸려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도쿄 소재 명문 대학 중 하나인 릿쿄대학이 일본성공회 재단이다. 윤동주 시인이 일본 유학 시절 다녔던 대학으로, 릿쿄대학 유학 당시 교목(校牧)이었던 다카마츠 다카하루 교수에게 특별히 많은 가르침과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6.6. 대한성공회[편집]

자세한 사항은 대한성공회 항목으로.

7. 기타[편집]

성향은 크게 3개로 나누어진다. 구교에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성공회 전례를 잘 따르는 앵글로-가톨릭(Anglo-Catholic), 사회구원과 진보신학 성향을 보이며 가장 자유적인 신학을 추구하는 광교회파(Broad Church), 주교제도를 거의 신경 쓰지 않고 개신교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는 복음주의(Evangelical)가 존재한다. 이를 앞에 성공회의 신앙에 대한 관점(성서, 전통, 이성)을 통해서 앵글로-가톨릭은 전통의 눈으로 성서와 이성을 보고, 복음주의는 성서의 눈으로 전통과 이성을 보고, 광교회파는 이성의 눈으로 성서와 전통을 본다고 흔히들 표현한다.[223]

그러나 형태와 무관하게 성공회는 흔히 개신교로 분류된다. 루터교회 역시 형식은 구교와 비슷해 주교가 있는 교단도 있으며[224][225] 감리회의 감독도 원래는 주교직이다.[226] 목사는 감독의 수하로 교회를 아무데나 못 짓는다는 데서 칼뱅주의파인 침례회장로회와는 다르다.

한국의 경우 서울교구의 성공회 교회들은 거의 앵글로-가톨릭이고[227], 부산광역시 등 남부 지방으로 갈수록 복음주의 성향이 진해진다.[228][229] 참고로 복음주의 그룹은 감리회가 처음 생길 때 존 웨슬리를 따랐지만, 선교적 사정으로 별도의 교회로 갈라질 때 나가지 않은 데서 그 유래가 있다.[230] 그러나 쓰는 용어는 동일하다.

아무래도 다른 개신교 교파[231]와는 달리 루터회처럼[232] 가톨릭과 크게 다른 점이 없기에, 옛날부터 가톨릭과 다시 하나로 합치자는 얘기가 일부 신자들 사이에 있었고, 몇 차례 긍정적 합의를 보기도 했으나, 앞에서 말한 대로 정교회와 일치하지 못하게 된 이유와 비슷하게 여성 사제 인정 등 여러 가지 문제로 무산되고 말았다. 그러나 다시 이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가톨릭 측에서 일단 '결혼한 성공회 남성 사제를 조건부 인정한다'는 전제를 파격적으로 내세운지라[233] 다시 적극적인 논의가 되고 있지만, 대한성공회는 이러한 의사를 부인하고 있고 거의 나라별로 분권화가 이루어져 있으며[234] 영국 감리회의 경우 현재 성공회와 일치를 이루었다.[235] 앞서 말했듯 가톨릭 사제(주로 진보주의자)가 성공회로 가거나, 거꾸로 성공회의 보수적 사제들이 가톨릭으로 가는 외국 사례는 매우 많았고 국내에서도 전혀 없는 일은 아니다. 현재 의화 부분에서 루터교회와 가톨릭, 성공회, 감리회가 합의를 보았다.[236]

한국에서는 신학/사회과학 분야에서 나타나는 성공회대학교의 학풍이나, 장로회 등 대형 개신교 교단과 대형교회의 배타적인 기복신앙과 기득권 지향적 면모와 대비되는 모습 등의 영향으로 성공회가 진보적이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하는 종교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성공회 자체는 위에서 서술되었듯 신학적 입장이든 세상에 대한 입장이든 진보도 보수도 모두 존재하며, 세계적인 관점에서 딱히 진보적인 종파는 아니다. 한국의 신자들 역시 대개 선교 초기부터 몇 대째 신앙을 이어온 신자들이 많으며, 이들의 성향이 대외적 이미지에 딱히 부합하는 것도 아니며 평범한 한국사회 구성원의 모습에 더 가깝다 할 수 있다. 물론 가톨릭이나 근본주의 개신교에서는 용납하기 힘든 여성 사제, 동성애자 사제 인정 등 성공회 자체에도 혁신적인 면이 있으며, 젊은 신학생들 중심으로 사회운동 등을 거치면서 교리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진보적인 기독교 종파 중 하나로 꼽히는 편이다.

이렇기에 가톨릭과 합치자거나 유사성을 강조하는 입장은 국내 성공회 신자(성직자 및 평신도)들에게는 크게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편이다. 가톨릭에서 결혼한 남성 사제는 인정한다해도 여성사제를 인정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한 데다가, 국내 성공회 신자 중에는 진보적 관점의 신학을 지지하거나, 적어도 사회 참여를 강조하는 신앙을 가진 사람이 많은데, 이것도 역시 가톨릭 주류와 잘 맞지 않는다.

대한성공회 내에서 우스개로라도 가톨릭과의 통합 이야기가 나오면, 감리회[237]기독교장로회[238]로 가면 갔지, 가톨릭으로 왜 가느냐는 반응이 주로 나온다. 특히 자신이 가톨릭의 경직성과 보수성에 동의하지 않아서 가톨릭에서 성공회로 옮긴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국내 성공회의 분위기로는 현실화될 가능성은 없지만 가톨릭과 통합이 된다면, 성공회 성직자와 평신도들이 온전히 가톨릭으로 흡수되기 보다는 감리회/기장/루터회/예장통합 같은 NCCK 소속 교단들로 흩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형식적인 면에서 가톨릭의 전례와 유사하기는 하지만 형식은 형식일 뿐. 그러나 어찌됬든 에큐메니컬을 지향하기 때문에 에큐메니컬 성향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가입되어 있다.

여담으로 나이지리아 성공회는 영국 성공회 다음으로 가장 큰 교회다. 사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투투 주교도 여기에 속하고, 자메이카에서도 위상이 큰 듯이 대영제국에 속했던 식민지 중 힌두교이슬람이 이미 토착 종교로 깊이 뿌리 박혀 선교가 잘 안 된 곳들, 즉 인도 공화국이나 이집트 같은 곳을 제외하면 옛날 영국이 있었던 곳에는 성공회 또한 상당한 발자취가 있는 편이다.

그런 대표적인 예가 동아시아에서 최대 규모인 홍콩동남아시아 유일의 성공회 최대관구인 싱가포르가 있다. 싱가포르는 아예 개신교=성공회로 인식할 정도로 불교 및 이슬람과 함께 최대 종교로 뿌리 박혀있으며 홍콩 성공회도 마찬가지다. 애초 홍콩의 개신교는 미국 개신교의 영향을 받아온 한국과 달리 영국 개신교의 영향으로 복음주의이지 근본주의는 아니고 상당히 유연하다.[239]

반대로 다른 동아시아, 특히 중국 대륙일본, 대만은 성공회 신자가 거의 없다.[240] 기독교인이 신/구교 공히 많다는 한국조차 성공회 및 루터회는 극소수. 물론 루터회, 성공회를 이단시하지는 않는다. 이미 가톨릭 등에 대해 공격하는 건 이제는 식은 떡밥이다.

대한성공회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기독교대한감리회와 함께 1957년 이래 연세대학교 이사회의 일부를 구성하는 파송 교단 가운데 하나였다.[241] 그러던 것이 2011년 방우영[242] 이사장에 의해 대한성공회기장과 함께 파송 교단에서 제외되었다. 언더우드 가문의 후손들과 성공회 교단 차원에서 항의할 정도로 당사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으나, 여론의 주목은 받지 못하였다. 국내의 보수 교단측에서는 연세대 내에서 진보 교단의 세력이 줄어드는 모양새를 내심 반기는 면도 있어 크게 문제삼지 않고 있으나, 이사장 개인에 의해 기독교대학으로서의 정체성이 허물어져가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만약 방우영 이사장이 연세대 사유화를 마음 먹었다면, 만만한 기독교 교단들 먼저 정리하는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를 곰곰히 읽어보자. 현재 연세대 이사회에서 참여하는 기독교 교단은 대한예수교장로회와 기독교대한감리회, 이렇게 둘 뿐이다. 이들이 공식적인 교단의 파송이사인지, 교단을 대표한 개인 자격의 참여인지는 추가바람.

영어권 성공회에서는 일부 보수적 고교회파에서는 KJV, 광교회파와 일부 고교회파에서는 NRSV, 저교회파에서는 ESV, NIV 등이 쓰인다. 다만 국가적인 의전 행사인 경우에는 거의 KJV가 쓰이는 편이다.

가톨릭(특히 한국 천주교[243])에 비해서 사회인 출신으로 성공회 성직자로 입문하여 활동하는 경우가 더 눈에 띈다.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도 법학 등을 전공한 명문대 출신으로 대기업(정유회사)에서 일하다가, 막내딸의 교통사고가 계기가 되어 성직에 입문하였다.[244]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가톨릭과 달리 청소년 예비신학생 과정을 따로 두지 않는다. 성공회 신부님 중에 본래 장로회(예장합동) 출신으로 연세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나서 성공회 신대원을 졸업한 출신도 있다. 성공회는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이 성직에 입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245] 현임 서울교구장인 이경호 주교도 한신대 신학과 출신이다.기사[246] 민김종훈 자캐오 신부도 어린시절 예장통합에서 신앙생활해오다가 청년 시절에 순복음교단으로 옮겨 전도사까지 되었다가 성공회로 옮겼다.기사

한국에도 가톨릭 사제였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교파를 옮겨 성공회 사제가 된 사람이 있다. 구균하, 황인찬, 최석진, 정지원 신부 등이 그런 사람들이다. 반대로 성공회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성공회 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하다가 교파를 옮겨 가톨릭 신학생이 된 사람도 있다.[247][248]

대한민국의 그리스도교 교파/교단 중 재세례 문제에 대해 실질적으로 가장 민감한 교단이기도 하다.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물로써 세례를 받았다는 최소한의 조건이 충족(도유 여부 등은 따지지도 않는다)되었으면 재세례는 절대 없다는 입장. 천주교도 재세례는 원칙적으로는 부정하는 입장이지만, 한국 천주교의 경우 개신교의 세례를 받은 뒤에 천주교로 옮긴 이들이 천주교에서 세례를 다시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8. 창작물에서의 성공회[편집]

  • 한국에서는 대중적인 그리스도교 종파가 아니라서, 대부분의 사람은 이 종파의 존재를 유럽사 서적에서나 처음 접한다. 그러다 보니 존재감이 미약하여 창작물에서 다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특정 나라에서는 국교의 레벨이라는 점, 그 나라가 꽤 잘나가는 서구 국가 중 하나인 영국이라는 점 등으로 인하여 "앗! 저 사람은 영국 직속의 A 신부!!" 같은 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간혹 창작물에 등장하기도 한다. 이쪽 방면의 작품으로는 헬싱,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249]이 있다.

  • 영국 문학, 특히 추리소설에서는 무지하게 자주 나온다. 특히 존 딕슨 카의 작품에서는 반드시 나온다.

  • 늑대와 양피지에서는 성공회라는 명칭은 등장하지 않지만, 영국처럼 섬나라인 윈필왕국과, 막강한 권력을 가진 정교의 교황과의 다툼으로 새로운 교회를 만들기로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250] 늑대와 양피지/고증 항목 참조.

    그대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
    그 말을 하기 시작했을 때는, 이쪽의 눈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었다. 귀족으로써의 긍지 때문인 걸까, 아니면 하이랜드의 성격 때문인 걸까.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새로운 교회를 설립하는 것이다.』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은 잠깐이었다. 윈필 왕국은 지난 3년간 성무가 중지되었다.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했는가.
    (중략)
    『음. 우리의 손으로 새로운 교회를 만들 수 있다. 속어로 번역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경전을 들고 있는 성직자가 다스리는 교회말이다. 비리나 악폐습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그동안 알면서도 모른 체 해온 것,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를 한 번에 쓸어버릴 수 있다는 말이지. 내가 그 온천장에서, 무의미한 삶을 보내는 고위 성직자가 아닌, 그대에게 말을 건 것은 바로 그 이유인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 것이다. 기만도, 거짓도 없는 세계를.』


    늑대와 양피지 1권 中

9. 성공회 성직자 및 평신도[편집]

9.1. 가상 인물[편집]

9.2. 실존 인물[편집]

9.2.1. 성직자[252][편집]

9.2.2. 일반 신자[편집]

  • 기네스 아서 - 기네스맥주와 기네스북을 만드는 그 기네스의 창업주. 아일랜드 토박이였고, 아일랜드 수도인 더블린에서 사업을 하면서도 가톨릭이 아닌 성공회 신자이기를 끝까지 고수했다. 기네스 아서의 먼 조상이 잉글랜드에서 아일랜드로 온 이민자였다고 한다. 그래서 아일랜드에서 기네스 가문은 성공회 교회를 다니는 성공한 아일랜드 토박이 정도로 통한다고 한다.

  • 김승연 - 한화그룹 회장.[253]

  • 데이비드 베컴

  • 데이비드 캐머런을 비롯한 영국 전현직 총리 대부분

  • 마가렛 대처 - 원래는 감리회 신자였으나 1951년에 성공회로 옮겼다.

  • 마크 리퍼트 - 주한 미국 대사 #

  • 보노 - 아일랜드 성공회 소속. 가톨릭이었던 아버지와 성공회 신자였던 어머니의 혼전 합의에 의해 가톨릭 세례를 받을 계획이었지만 그냥 형과 함께 성공회 신자로 키워졌다고 한다. 아내인 앨리슨 휴슨도 독실한 성공회 신자.

  • 방상훈 - 조선일보 대표이사.

  • 사미자 - 배우, 성우.

  • 한수림 - 성우

  • 시몬 마사토 - 일본의 애니메이션 주제가 가수.

  • 아이작 뉴턴 - 사실 뉴턴을 성공회 신자라고 하기에는 삼위일체같은 기독교 핵심 교리를 부정해서 애매하기는 하다. 뉴턴이 이걸로 트러블을 만들고싶어하지 않았고, 성공회도 뉴턴이 국가적 위인이라 적당히 넘어간거지, 저 정도면 이단으로 찍혀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어쨌든 뉴턴이 신앙을 가지고 있던 건 사실이고 공식적으로 성공회 교인이었으니 성공회 신자로 분류.

  • 알리 - 가수. 세례명은 세실리아.

  • 존 뉴턴 -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작사가. 노예상인이었다가 회심하고 성공회 사제가 되었다.

  • 윈스턴 처칠

  • 은수미 - 대한민국정치인. 성남시

  • 조지 부시 - 미국 대통령을 둘이나 배출했던 부시 가문도 아버지 부시(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까지는 대대로 성공회였다. 아들 부시도 대외적인 근본주의 기믹과 다르게 의외로 성공회였다가 전 영부인 따라 감리회로 개종한 사례이다.

  • 조지 오웰

  • 조지 워싱턴 - 미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이신론자 겸 성공회 신자였다. 이외에도 제임스 매디슨, 존 타일러 등의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인물들은 대부분 이신론자이거나 이신론자 겸 성공회 신자였다.

  • 찰스 로버트 다윈 - 한때 성공회 성직자가 되기 위한 과정을 걷기도 하였으나, <종의 기원>을 쓴 이후 당시 기독교계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았다. 다윈이 자신의 종교적 견해에 대해서 많은 언급을 하지 않아 자세하게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자신의 종교적 견해를 가장 잘 나타내는것이 불가지론이라는 식으로 말한걸 보면 젊은 시절보다 신앙심이 약해진것은 분명해보인다. 2008년 영국 성공회에서는 '당시 우리가 오해했으며, 지나치게 감정적이었다'고 공식 사과하였다.

  • 클라이브 스테이플스 루이스 - 영문학자이자 나니아 연대기의 저자.

  • 프랭클린 D. 루즈벨트

  • 피트 도허티 - 영국가수.

  • 테레사 메이 - 현 영국 총리. 영국 성공회 신부의 딸이기도 하다.

  • 토니 탄(陳慶炎) - 싱가포르의 현 대통령.

  • 헨리 8세 및 그 이후 대부분의 영국 왕


[1] 요한 복음서 8장 32절 중[2] 미국 독립 후 Anglican이라는 말이 영국 왕당파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Anglican 대신 Episcopal로 바꿔 쓴다. 미국 독립 전쟁 당시 대부분의 성공회 성직자는 중립을 지켰지만, 일부 왕당파 성공회 성직자들은 박해를 당하기도 했다.[3] 교의적(교리적) 측면에서 일부 고교회파 때문에 약간 애매한 부분은 있지만, 교회론 측면에서 본다면 일단은 교황(가톨릭 교회)의 수위권에 대항하여 빠져나간 서방교회의 일파라는 측면에서 영락없는 개신교다.[4] 일부 고교회파는 전례적인 면 뿐 아니라 교리적인 면에서도 가톨릭적인 요소를 일부 간직하고 있다.[5] 교단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는 않는 특정 가톨릭 교리(무염시태, 평생동정, 연옥설, 화체설 등)를 신자 개개인의 신앙으로 삼는 것을 교단이 이단으로 규정하거나 배척(영성체 제한, 파문 등)하지는 않는다.[6] 기독교의 핵심적인 교리(삼위일체라던지, 예수의 부활이라던지...)를 벗어나는 것만 아니라면, 어떤 주장을 한다고 해서 교회에서 그 신자를 설득해서 의견을 교정하려하지 않는다. 당장은 교회에서 받아들일 수는 없어도 소중한 교우의 의견으로 존중해 준다.[7] 우리나라에서는 '성공회', 일본에서는 '세이꼬카이', 중국에서는 '셩공훼이'[8] 표준발음법상 '성'을 장음으로 발음한다. '성스럽다'는 의미의 한자 '성(聖)'은 장음으로 발음하는 것이 원칙. 즉, 4대 성인의 '성인(聖人)'은 장음으로 [성ː인]으로 발음하는 것이 옳으며, '어른'이라는 의미의 '성인(成人)'은 단음으로 [성인]으로 발음한다. 물론 현실적으로 장단음의 구별이 많이 사라졌지만…[9] 가톨릭 번역판[10] 개신교 번역판[11] 성공회라는 한자 단어를 영어로 직역하면 Holy Catholic Church가 되어버린다.[12] 한때 정교회측에서 성공회를 자신과 같은 보편교회로 인정하려 하기도 했다. 그러나 성공회가 여성에게도 사제 서품을 주기로 결정을 하면서, 결국 없었던 일로 되어버렸다. 정교회는 가톨릭에서도 인정하는 보편교회로, 만약 계획대로 정교회에서 성공회를 보편교회로 인정했다면, 성공회의 보편교회로서의 입지가 매우 단단해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다. 당시 성공회는 정교회에서 여성 사제 서품에 절대 반대하는 입장이며, 여성에게 사제 서품을 줄 경우 보편교회로 인정을 못 받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강행했던 것을 달리 생각해보면, 성공회가 그만큼 여성 사제 서품에 대해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13] 이전 항목에서는 동방과 서방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적혀있었는데 엄연히 사실과 다르다. 어떻게 서방전례만 집전하는 성공회가, 그리고 신학적으로도 엄연히 서방전통에만 속하는 성공회가 가교 역할을 한다는 말인가? 차라리 서방전례를 집전하는 정교회 안티오키아 총대주교 관구나 동방 가톨릭이 그런 역할이라고 한다면 어느정도 동의를 할만한 부분이라도 있겠다.[14] 반(反) 가톨릭 성향이 강한 일부 개신교인은 성공회를 천주교에 물든 '천주교 2중대' 비슷하게 보는 시선이 있다. 그들은 천주교를 이단으로 보기 때문에 성공회를 보는 눈도 고울 리가 없다.[15] (교의적)고교회파의 경우 얘기가 달라지는데, 성공회 (교의적) 고교회파의 경우 스스로도 개신교라고 여기지 않는 경우도 많으며, 학술적으로도 개신교와는 다르게 분류되는 경우도 있다. 이쪽의 경우 성인 공경·성화상 등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형식적으로나 신학적으로나 개신교보다는 가톨릭에 훨씬 가까우니 당연한 일이다. 이쪽 분파의 경우 스스로도 개신교로 보지 않으며, 가톨릭과 여러 모로 훨씬 친연성을 띈다. 심지어 성공회 소속이면서 교황수위권까지도 인정하는 소수도 있다. 이쯤 되면 스스로의 인식이나 타 개신교 교파 모두 개신교의 일원으로 인정하기는 매우 어렵다.[16] 어떤 천주교 일반 신자들은 성공회 = 영국 가톨릭(영국의 천주교)으로 착각하기도 한다.[17] 엄밀히 말하면 종교개혁 자체를 루터가 시작했다고 보기 어렵다. 루터보다 150여년 전에 영국의 위클리프가 종교개혁을 주장했고, 체코의 후스가 그 뒤를 이었다. 흔히 루터 전의 종교개혁가들의 업적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들이 없었더라면 루터가 종교개혁을 부르짖었을 때 북유럽/동유럽의 루터파와 영국의 성공회가 그렇게 빠르게 정착되어 세력화될 수 없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루터 전에도 그 지역들에서는 종교개혁의 분위기가 수면 아래서 조성되고 있었던 것. 위클리프와 후스 이후에도 그들의 주장을 계승하는 발도파나 후스파가 있긴 했으나, 일반 대중들에게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했다는 이미지가 널리 퍼져있는 것이 사실이다.[18] 그러나 루터회와 성공회가 외형상 유사점이 많은 건 사실이나 세부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 꽤나 다르기 때문에 이런 인식이 생긴 것이기도 하다. 우선 유래부터가 신학적, 신앙적으로 가톨릭에 반발해 분리되었고, 종교개혁의 시발점인 루터회와 신학적 노선 차이라기 보다는 정치적인 이유로 가톨릭과 분리된 측면이 강한 성공회는 차이점이 있으며, 루터회의 경우 모든 개신교 교파가 동의하는 개신교 기본 원칙인 '다섯 솔라'를 특히 강조하고 개역한글이나 개역개정 등을 주로 사용하며, 목회자의 명칭도 '목사'인 점 등 프로테스탄트적 정체성이 상당히 강한 반면, 보편교회론을 인정하고 국내의 경우 앵글로-가톨릭의 영향력이 매우 강해 가톨릭적 양식이 두드러지는 성공회의 차이는 무시 못할 정도로 크다.[19]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을 비롯한 건국의 아버지들 중에 성공회 교인이 많았다. 우리에게도 인지도가 꽤 높은 루즈벨트나 아버지 부시도 성공회 교인이었다.[20] 대략 1800만명으로, 세계 성공회에서 잉글랜드 성공회 다음으로 크다.[21] 우리나라의 장로회와 비슷한 위치라고 생각하면 쉬울 것 같다.[22] 20년 전만 해도 제일 컸으나 최근 들어 가톨릭에게 추월당했다.[23] 이쪽은 주로 영국계와 영국계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원주민과 컬러드들이 믿고 있다. 그리고 아파르트 헤이트 저항 운동에 남아프리카 성공회가 나름 활발히 참여했기 때문에 명망이 높다. 아파르트 헤이트 저항 운동의 업적을 인정받아, 남아프리카 성공회 데즈먼드 투투 주교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24] episcopal은 '주교(들)의, 감독 교회의'라는 뜻을 가진 형용사다. 그래서 간혹 '감독 교회'로 번역하기도 하지만, 이쪽은 감리회와 헷갈릴 수가 있어서 자주 쓰진 않는다. 한국/일본/중국 등 한자문화권에서는 모두 '聖公會'라는 명칭을 공유해서 쓰고 있으며, 다른 이름을 쓰는 경우는 매우 예외적인 상황으로 보면 된다.[25] 다른 용례로는, 남아메리카를 뜻하는 라틴아메리카에 대칭되는 단어로, 북아메리카를 뜻하는 앵글로아메리카를 들 수 있다.[26] 이 Episcopal church라는 표현은 보통은 '성공회'를 가리키지만 가톨릭, 성공회, 정교회 등을 아우르는 주교제 교회 전반을 가리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27] 아일랜드 공화국과 영국의 북아일랜드를 담당하는 성공회[28] 사실 홍콩은 광동어가 사실상의 공용어지만 표준중국어 발음을 웨이드-자일스 표기법(성조 표기는 삭제)대로 적은 Sheng Kung Hui로 적었다. 참고로 한어병음식이라면 Shenggonghui로 적어야 하며, 광동어 발음대로 적을 거면 Sing Gong Wui(발음을 로마자로 정확히 옮기고자 할 경우)나 Sing Kong Wui(관행적인 로마자 표기) 정도가 돼야 한다.[29] 헨리 8세는 죽은 형 아서 튜더의 아내인 아라곤의 캐서린과 결혼했고, 교황 율리오 2세에게 면책을 받았다. 혼인무효이니 이혼이니 하는 용어는 별로 중요치 않다. 혼인 무효는 이혼급으로 자주 이용이 되었기 때문...애를 못 낳는다던가 동맹이 풀린다던가...새 장가 가고 싶거나 하면 유럽 군주들은 교회법학자들을 동원하여 무효 사유를 열심히 잘 찾아냈고 교회에선 거의 대부분 들어주었다. 대부분의 사유는 근친혼인데 앞서 헨리 8세의 경우처럼 근친혼으로 결혼하며 면책받았다가(유럽 왕족들은 신분에 맞춰 근친혼이 성행했기에 교회에선 기독교 군주의 결합을 대의로 인정하여 허용하는 추세였다.) 이혼하고 싶으면 근친혼...이라며 무효를 주장...[30] 물론 표면적인 이유가 헨리 8세의 혼인 무효 문제였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대다수 사람들은 복잡한 사정보다 그 시기의 스캔들에 더 관심이 많기 때문.[31] 다만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1세의 국교회 정책이 과연 민중의 반발이 적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Peter Marshall에 의하면 "잉글랜드인의 종교적 DNA가 아니라 여왕(메리)의 때 이른 죽음 때문(Peter Marshall,「The Reformation」) "으로 설명되고, Ronald Hutton는 메리 1세는 그 치세 중 종교를 정면에 내건 민중봉기가 일어나지 않았던 유일한 튜더 군주였음을 지적한다. 당대 잉글랜드의 상황이 교황청과 어떤 갈등을 일으키게 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으나, 성공회의 출발이 영국인들이 가진 어떤 필연성 때문이라는 견해는 학계에서 부정되어가는 추세다. 메리와 엘리자베스 중 누구의 박해가 심했는지에 대해서도, Marshall이 지적하듯 엘리자베스는 도덕적 우위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단죄보다는 반역죄로 가톨릭 신자들을 처형했기에'구체적 수치를 계산하기 어렵다.[32] 스톤헨지가 위치한 솔즈베리 지역 인근에 묻었다는 떡밥이 자주 등장한다.[33] 대한성공회를 한정해서 말하자면, 성공회 내에서도 아리마태아의 요셉에 의한 사도전승은 전설이나 옛날이야기 수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애정이 가는 흥미로운 이야기 정도로 여기지, 교회 밖에서 자랑스럽게 언급할 소재로는 생각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신앙에 핵심적이지도 않은 곁가지 이야기에 너무 심취하여 하느님 사랑이나 이웃 사랑과 같이 정작 중요한 것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것. 아리마태아의 요셉에 의한 사도전승을 강하게 주장하며 시시비비를 가리자고 말하는 성공회 교인은 아마 (적어도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해외 성공회의 분위기는 추가 바람.[34] 이전의 로마 교황과 8세기까지 후임 교황들은 세속적으론 동로마제국의 봉신이며, 황제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에게 수위권을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교회전승에서 내려오듯 온전한 교회수위권 같은 것은 누리지 못했다. 이탈리아 반도에선 침략자들의 방어하고 협상하는데 급급했기 때문에 잉글랜드에 신경 쓸 겨를이 더 없었다. 그레고리오 1세 시절엔 동로마제국서 파견한 라벤나 총독에게도 무시당할 정도.[35] 프랑크 왕국의 메로빙거 왕조 시절은 왕이 죽을때마다 분할상속으로 나뉘어졌다 서로 싸우고 죽고 병림픽으로 합쳐졌다의 반복이었다. 네우스트리아는 파리와 북 프랑스지역[36] 서고트족 출신임에도 프랑크계통 왕국에 시집와서 아리우스파에서 가톨릭으로 자발적으로 개종함.[37] 세금을 확실히 잘 걷으라는 협박의 의미가 컸었다.[38] 앞서 언급했듯이 전근대 서유럽에서는 의외로 세속군주가 교황에게 엿을 먹이고 해당 국가 성직자들이 군주 편을 드는 사례가 많다. 당장 아비뇽 유수도 그런 사례라 할 수 있다. 중세는 교황이 세속 정치에 영향을 끼치던 시대이기도 하지만, 통신과 교통 수단의 미발달로 인해 의외로 가톨릭 교회가 각국 주교들의 느슨한 연합체 같은 느낌으로 결합되어 있기도 했다. 그래서 통일된 미사 경본이 나온건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에서나 가능했다 기존 신성로마제국, 프랑스 왕국 의 세속 군주는 교황청을 왕의 권한아래나 보조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실용적인 목적으로 교회권력을 이용했다면, 헨리 8세는 영국 교회 자체를 로마에서 분리 시켰다는 점에 있다.[39] 아비뇽 교황청을 프랑스왕의 꼭두각시로 여겼다.[40] 마르틴 루터보다 200년 앞서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한 것이지만, 번역의 수준은 라틴어를 영어로 단순히 직역해놓은 정도였다. 이로부터 2세기 후에 번역된 킹 제임스 성경(KJV)이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에 견줄 정도로 영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것과는 대비되는 점이다.[41] 성공회를 비롯한 개신교에선 가톨릭 교회에서 교리로 주장하는 변화설(화체설)을 공식적으로 부인한다.[42] 1380년부터 교황청이 분열되어 2~3명의 대립교황이 난립했기 때문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1415년에야 해결된다.[43] 사실 제국내에서 독자적인 권한보다는 세속군주와 협조적인 관계였고, 강력한 황제가 출현할 때마다 실제적인 힘이 없는 교황청은 세속권력 공백시기가 아니면 거의 항상 '신앙심이 약한 군주들'에게 무너졌다.[44] 프랑스의 경우 프랑수아 1세 시절 볼로냐 조약으로 9개 대주교를 비롯한 주교,수도원, 수녀원장 직위 600여개 임명권은 프랑스왕이 교황청 대신 직접 행사하고, 수입도 프랑스왕이 차지하기로 교황청과 합의 했다. 대신 교회 분열기 공의회에서 프랑스측이 인정하지 않던 교리를 사후 추인하는 소소한 양보정도로 답례[45] 옥스퍼드대 위클리프홀을 거쳐 킹스칼리지에서 재임하다 현재 다시 옥스퍼드 대학 '과학과 종교'강좌 석좌교수[46] 정식 명칭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교리와 학식(the necessary Doctrine Erudition for Any Christian Man)' 라는 장문의 제목이다. 혼자 공의회, 교황 노릇을 하며 교리를 정해준다는 교조적인 서적이다.[47] 아예 금지는 아닌데 불가타를 직역한 것만 허용하고, 헬라어(고전 그리스어)를 배워서 에라스무스의 헬라어-라틴어 비교 성경을 보는건 허용했다. 당연히 불가타 직역본은 번역상태가 거의 사망수준이고, 헬라어 원전 신약성서는 학자급이나 학식이 아니면 접근 불가능. 왕께서 친히 펴낸 교리 설명용 소책자를 보는건 적극 권장했다. 당연히 아부꾼들이 비위 맞추려 몇부 본거 빼곤 가톨릭이고 개신교 신앙 가진 양측에선 거의 무시했다.[48] 헨리 8세는 교황은 '로마의 주교일뿐'이라며 국내 간섭을 거부 한것이지 교황청의 모든 권위에 대해서 적극 부인한것이 아니다.[49] 토머스 모어는 헨리 8세가 요구한 혼인의 적법성, 후계자의 계승 순위 수도원을 작살낸것 같은 소소한 이유는 마지 못해 찬성했고, 로마교회 수위권만 거부하지 않았다.[50] 드라마 <튜더스>에서도 당시 모습이 나오는데, 당시 사형이 면제된 여성까지도 이단이라서 화형시키는 모습이 나온다.[51] 《기독교의 역사》p508, 폴 존슨[52] 공도문이라고도 하고 영어로 축약 표현 할 때는 BCP라고 적는다. 이 책자도 영국 내에서는 킹 제임스 성경과 함께 Crown Copyright을 적용받는 저작물이다.[53] 한국의 ‘성공회 기도서’도 ‘공동기도문’이라고 하기도 했었는데, 개정하면서 ‘성공회 기도서’라는 명칭으로 바꾸었다.[54] 사실상 감리회나 온건파 장로회나 다름 없는 극단적 저교회파(복음주의파)부터 '교황 없는 천주교' 수준의 극단적 고교회파(앵글로가톨릭)까지. + 거기에 후기 자유주의 신학을 따르는 광교회파 추가.[55]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의 편향된 묘사 때문에 반작용으로 메리 옹호론이 주장되기도 하나, 원균옹호론 못지 않은 헛소리에 불과하다.[56] 참고로 메리 이전의 에드워드 6세시절 종교 관련 처형자는 2명인데 가톨릭이 아니라 재세례파 신도 2명이었다.[57] 왕당파라서 청교도 혁명으로 처형된다.[58] 이 시기에 웨스트민스터 성당에서 한국과 미국 장로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신조 중 하나인 ‘웨스트민스터 신조’가 생겨났다. 이 당시 청교도는 영국 국교회 안에 포함되어 있었기에 성공회가 웨스트민스터 신조를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다.[59] 청교도 중에서도 국교회에서 내부 개혁에 회의적 입장으로 다수인 장로파와 대립. 신학적으로 회중교회를 선호하기 때문에 회중파로도 불린다.[60] 당연히 39개 신조에 위배되는 가톨릭과 유니테리언은 제외였다.[61] 훗날 가톨릭으로 회심하여 추기경의 지위에까지 오르게 된다. 사후에는 베네딕토 16세 교황 시기에 복자로 시복되었다.[62] 다만 이들 모두 공동기도문을 사용한다는 것은 동일하다.[63] 옥스포드 운동 이전까지 영국 성공회에서 매 주일예배가 성찬예배인 경우는 드물었다.[64] 존 스토트 사제, 톰 라이트 주교, 앨리스터 맥그래스 등 성공회가 배출한 걸출한 복음주의자들은 이쪽 계열이다.[65] 이들른 전례적 요소를 채택하지 않는 것을 넘어 이것들을 중세교회 시절의 잔재로 규정하여 부정했다.[66] 일반적인 주일 낮 예배는 성무일과의 조도(아침기도)를 바치는 것으로, 저녁 예배는 노래로 만도(저녁기도. 영어로 evening vespers)를 바치는 형태였다. 이런 교회는 오늘날에도 영국이나 북미 지역에서 간혹 찾아볼 수 있다.[67] 심지어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며 로마 중심의 일치를 추구하는 교황주의자들 역시 공개적으로 존재한다.[68] 이들 중 상당수는 성공회 내 동성애자 사제, 동성결혼 인정 문제, 여성사제 문제에 반발하여 가톨릭으로 개종했다.[69] 성 십자가회. 막대한 규모를 가진 '앵글로 가톨릭'주의 사제들의 단체다.[70] 복되신 성체성사 형제회. 성체성사에 대한 전통적인 가르침(예수님의 몸으로 변화함)을 따르며 신심행위를 하는 신자단체[71] 어떤 성공회 신자는 진정으로 교회일치가 이루어져 성공회가 사라진다 해도 크게 아쉬울 것 없다는 말을 했다 카더라. 그 정도로 에큐메니즘이 강한 종파라는 의미.[72] 가톨릭과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면 가톨릭이 성공회 신자들에게 가톨릭 영성체 참여를 허용안한 것에 대해 성공회 측에서 서운한 감정을 표출하지 않았을 것이다. 반가톨릭 성향의 보수 개신교 같았으면 가톨릭 영성체 개방문제는 아오안이었을테니.[73] 헨리 8세 수장령 이전, 메리1세 시절 가톨릭 산하의 영국교회, 종교개혁이후 영국국교회 포함[74] 칼뱅주의에 충실한 섭정들이 다스린 에드워드 6세 시절만 하더라도 재세례파들을 처형했고 사실 처형자로만 보면 메리 1세때 5년간 개신교 화형자가 17세기 까지 가톨릭 순교자보다 많다. 헨리 8세만 하더라도 가톨릭 교도보다 대륙신학에 영향받은 개신교도들을 더 많이 처형한건 함정... 그게 사실은 영국 국교회 입장에서 가톨릭은 반역자, 복음주의 개신교는 이단 취급이었기 때문.[75] 구 가톨릭교회도 여성의 서품으로 가톨릭이 아니라는 비판을 들었다.[76]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수 있으나, 영국에서 성공회의 탄생과 정착으로 인해 이후 대륙에서 겪게 되는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이나 30년 전쟁같은 끔찍한 종교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77] 또한 중세부터 간간히 있어오던 마녀사냥이 16-17세기에 이르러 일종의 종교재판 같이 되어 광기를 띄며 절정을 이루게 되었는데, 가톨릭이 강했던 프랑스, 장로회가 강했던 스코틀랜드, 루터회가 강했던 독일에서 매우 심했다. 이는 마녀사냥이 단순히 마녀를 제거하는 작업에서 그치지 않고 당시 각 사회의 권력층 입장에서 골치거리들을 처리하는 일종의 해결사 역할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들에게 반기를 들던 상대 교파에 대한 박해를 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성공회가 정착된 잉글랜드에서는 마녀로 고발되는 수 자체도 제일 적었을 뿐 아니라 조사 후에 마녀가 아니라고 판정되어 풀려나는 경우가 앞서 언급한 다른 지역들보다 훨씬 많았다. 기독교 내 다른 교파들에 대해 너그러웠던 성공회로서는 이런 마녀사냥 광풍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이다.[78] 너무 이상적인 목표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실제로 몇몇 지역에서 기독교회들의 일치를 위해 성공회가 주도하여 교회를 통합한 곳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교회가 인도 남부의 감리회, 장로회와 함께 만든 남인도 교회. 인도 성공회에서 남인도 교회로 바뀐 이후 성공회 관구로서의 세계 성공회의 일원은 아니게 되었지만 세계 성공회와 온전한 상통을 이루며 지속적으로 협력하고 있다.[79] 성공회 교인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성공회가 부족함이 많은 교회임을 솔직히 고백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면서 그러기에 더욱 주님의 도우심을 더 간절히 바래야 하는 교회라고 말하곤 한다.[80] 다만 이러한 성공회 특유의 유연함은 교회 일치(특히 가톨릭, 정교회 등의 보편교회와의 일치 문제)에 오히려 장애요소가 되고 있다는 외부의 일부 비판이 존재하기도 한다.[81] 개신교는 '성서'를 강조하고, 가톨릭은 '성서'와 '전통'을 강조한다.[82] 이것과 비슷하게 보는 입장이 복음주의파(저교회파)이다.[83] 자연과학을 공부하는 사람들 중에 자연선택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학자는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84] 엄밀히 말하면 성공회대학교 내에 진보적, 좌파 인사가 많고, 대학교에서 이들의 언행에 별로 제제를 가하지 않아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지, 성공회대학교 자체가 진보적이거나 좌파적 성향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85] 가톨릭의 경우 성경이나 교리 해석을 교황청이 독점하며 시시콜콜한 것(예: 자위행위 문제)까지 교리서로 정리해주지만, 성공회는 큰 틀에서만 교리로 정리해두고 나머지는 신자의 개인 의사에 맡긴다.[86]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대한성공회 교회법에 주일 성수의 의무가 규정되어 있긴 하다. 다만 가톨릭 교회법과 달리 단지 사실상 선언적/원론적인 규정일 뿐이라. 사실 성공회 교회법 자체가 가톨릭 교회법을 계수한 것이기도 하고.[87] 고해성사, 고백성사 등의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나, 준성사 또는 성사적 예식이라고 해서 성공회 기도서에는 고백예식이라고 표현한다.[88] 여기서는 장로회, 한국 감리회, 성결교회, 침례회, 오순절교회(순복음교회). 성공회보다 개신교의 정체성이 강한 교단들을 일컫는다.[89] 루터 본인부터가 마리아나 성인 공경을 가톨릭처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바가 있다.[90] 다만 사실상 가톨릭 수준의 성모 신심을 가지고 있는 것도 묵인하는 성공회와 달리, 루터교회에서는 가톨릭식 성모 공경과는 확실하게 선을 긋는 경향이 강하며, 특히 보수적인 교단일수록 더욱 확실하게 선을 긋는다. 다만 루터교회 역시 에큐메니컬 운동을 상당히 중시하는 교단들 일각에서는 상당히 가톨릭에 가까운 관점을 취하는 경우도 꽤 있다.[91] 또한 십자고상, 성모상과 같은 성물은 사제에 의한 축복식을 받아야 한다.[92] 다만 교단 차원에서 전자의 입장을 취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목사나 평신도 중에서는 전자 입장도 꽤 있는 듯하긴 하다.[93] 소죄의 경우 성체를 영하는 것으로 사해진다.[94]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모든 거룩함의 샘이시옵니다. 간구하오니, 성령의 힘으로 이 예물을 기록하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95] 단 위급한 상황의 동방정교 신자도 영할 수 있다.[96] 역시 자유를 바라기에 개인적으로 빵이 성체로 변화한다는 믿음을 말리지 않는다. 일부 고교회파 사제, 평신도들이 화체설을 따르는 경우도 있다.[97] 특히 감리회가 성공회에서 분리되어 나온 교파인 점을 들어서 감리회식 구원관도 성공회의 전통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98] 세례로써 모든 죄가 씻겨짐을 믿고, 고해로써 죄의 사함을 받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행하여야 구원받는다는 관념. 그러나 성공회 일부 고교회파의 구원관과 천주교 구원관은 상당히 유사할 수 있어도 동일할 수는 없다. 천주교는 천주교회 안에 들어와야 구원 받는다는 교회관과 결부시키는데, 천주교를 제외한 나머지 교파들은 그 구원관은 거부하기 때문.[99] 이건 루터교회도 마찬가지다.[100] 가톨릭 신자, 사제라 해도 열린 신앙관을 가진 사람들은 개신교 성경 활용(어디까지나 보조적 용도에 한하여)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 경우도 있지만, 극단적인 신앙관을 가진 사람들은 금지에 가까운 권면을 하기도 한다.[101] 이는 다른 개신교단도 마찬가지다. 종교개혁 시기 때부터 가톨릭 세례도 인정하고 재세례는 부정한다.[102] 서울주교좌성당 소속 사제와의 이메일 문답[103] 개신교 세례는 무시하는 경향이 강한 한국 천주교의 모습을 고려한다면, 한국 그리스도교 교단 중 재세례 문제에 가장 민감한 교단이라 할 수 있다.[104] 미국의 근본주의 교회중에 뱀을 잡는 의식을 치르는 곳이 있다.[105] 과학과 이성을 존중[106] 남녀 평등 추구. 다만 이는 로반 윌리엄스가 미국 성공회 신자였기 때문에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세계성공회공동체 소속 관구 중에는 여성 사제를 반대하는 관구도 많다. 그리고 여성 사제를 허용한 곳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의 의식은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이 아니라서, 여성 사제를 좋아하지 않는 신자들도 있다.[107] 이성적이고 비판적인 생각을 해도 된다는 얘기[108] 전례적 교회[109] 전례적 교회[110] 성사적 교회. 매 감사성찬례마다 성체성사를 한다.[111] 죄의식을 가지는 것보다 하느님의 은총을 강조한다. 화려한 구경거리라고 한 것은 전례력에 따라 절기에 맞추어 시행하는 예식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112] 침례가 아님. 물론 이 역시도 관구나 교회(주임신부 개인성향)에 따라서 침례를 주는 경우가 있다. 또한, 침례를 안주는 경우에도 침례가 더 성서에 부합한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113] 여러 성향의 신자 구성 및 다양성 존중[114] '겉은 가톨릭, 속은 개신교'로 비유될만한 부류들[115] 여성 사제 서품은 고교회파 내 보수파가 가장 반발한 주제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2000년대에 고교회파 내 보수파 상당수가 가톨릭으로 개종하거나 독자적인 교단으로 떨어져나가는 등의 대분열이 일어나기도 했다. 저교회파의 경우 보수 복음주의 개신교 교파에도 여성 목회자가 더러 있는 것으로 보면 고교회파 내 보수파만큼의 반발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116] 가톨릭 내 일부 진보파와 유사점을 공유한다고 볼 수도 있다.[117] 우리나라식으로 얘기하면 예장통합과 비슷한 신앙관을 가진 부류.[118] 일부 고교회파는 가톨릭 묵주를 성공회식으로 변형한 성공회 묵주가 아닌 가톨릭 묵주를 그대로 쓰기도 한다.[119] 자유주의적 고교회파는 낙태, 이혼, 동성애 등에서 가톨릭[120]과 사회교리를 달리하기도 한다.[120] 진보파나 극보수파의 해석이 아닌 교도권 해석 기준[121] 이는 성공회 전반의 경향이긴 하지만, 특히 광교회파가 이러한 특징을 강하게 보인다.[122] 우리나라 성공회 내 저교회파 예배당에 가더라도 예전성은 영미권의 광교회파 예배에 가깝다.[123] 한국 천주교의 주일 저녁 청년미사의 예전성과 비슷하다. 한국에서 성공회 광교회파 예배를 접하려면 서울주교좌성당 영어예배에 가보면 된다.[124] 일반적으로 기독교에서는 특정 교파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그 교파의 사제 또는 목사가 된다는 의미가 해당 교파에서 주장하는 신학적 의견에 세세한 부분까지 동의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성공회의 경우는 약간 달라서, 신학적 사조/흐름이 다르더라도 다 하느님 안에서 한 형제/자매로 제한 없이 받아들인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의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사항(예를 들면, 삼위일체라든지 예수의 부활이라든지...)에만 일치가 된다면, 그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성공회 부제/사제/주교가 될 수 있다.[125] 쉽게 예를 들자면, 한국의 보수 개신교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진보적 신학이나 의견을 '자유주의'로 매도하는 것.[126] 이런 분위기로 인해, 어떤 교인의 의견이 선을 너무 넘어 가지만 않는다면 왠만하면 교회 안에서 수용해준다. 수용해준다는 의미는 그것을 당장 교회의 주요(main) 의견으로 삼는다는 뜻이 아니라,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의견이며, 더 나아가 시대가 바뀌고 상황이 그에 따라 변하면서 (고교회파/저교회파/광교회파의 의견들이 그랬듯이) 언젠가는 그 의견이 우리 교회의 주요 의견이 될 수도 있음을 인정해준다는 의미다.[127] 성공회는 신앙고백 상으로는 세례와 성찬 2개만을 성사로 인정하며, 나머지 5개는 성사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5개를 완전히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성사적 행위 또는 준성사로 보고 있다. 다만 동방정교와 가톨릭과는 달리 신앙생활의 필수요소로 보지는 않는다. 이 부분에서 개혁주의 개신교와 다른 점은 개혁주의 개신교는 이 5개를 비성경적이라 하여 배척하는 반면에 성공회는 교회의 전통으로서 존중해준다는 것이다.[128] 존 녹스는 감독제(주교제) 제도 자체를 반대해서 사양했다.[129] 스코틀랜드 개혁교회를 수립하여 스코틀랜드에서 종교개혁을 완성한 사람으로 장 칼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130] 39개 신조가 사문화 되었다는 의견이 있는데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시대에 흐름에 따라 사문화 된 조항도 있기도 하고, 영국 외의 성공회에 구속력이 없지만, 램베스 회의등에서 새로운 판단을 내릴 때 주요 참고 대상이다. 다른 곳의 성공회에나 역사신학을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역사적으로 그 시절엔 이런 신앙이 있었고, 가톨릭이나 여타 대륙 신학과의 갈등에서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에 대한 좋은 연구 자료로 보고 있다.[131] 이전 버전의 문서 등을 보면 오해하는 것이 천주교의 4대교리를 성공회가 부정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서분열 이전의 공의회에 있었던 테오토코스는 분명히 4대 교리 중 하나이나 성공회의 교리 중 하나이기도 하다.[132] 그렇다고 성모신심이 없는 것도 아니다. 주류 개신교에 비해서 성모신심이 강하다. 애초에 성공회 기도서의 예식을 보면 성모송도 있는 것도 있고, 묵주기도를 하는 경우도 있다.[133] 성찬전례가 생략되어 있다. 따라서 공동 기도회, 공동 예배는 될 수 있으나 공동 미사, 공동 성찬례가 될 수 없다.[134] 현대의 세계성공회공동체에서 39개조 신앙고백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는다. 그 시대에 저런 교리가 필요했다고 볼 뿐이다. 다만, 성공회의 신앙에 대해서 어느 정도 방향은 잡을 수 있는 문서이다. 애초에 성공회는 진리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찾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시기나 대상에 따라 교회가 진리라고 믿는 것이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135] 다만 가톨릭, 정교회와는 다르게 본명(本名)이라고 하지 않고, 신명(信名)이라고 한다.[136] 이런 이유로 한국 천주교 한정으로 가톨릭에서는 성공회 사제가 베푼 세례는 아무 이의 없이 인정한다고 공칙된 바가 있다. 다만 가톨릭으로 옮기는 그 성공회 신자가 당초 성공회에서 세례를 받은 경우가 아닌, 성공회 입교 이전에 타 개신교 교단 출신이어서 성공회 입교 당시에 세례를 생략한 경우라면 그 사람이 가톨릭으로 옮길 때 천주교에서 세례를 받게 되어 있다. 또한, 세례는 다시 주지 않더라도 다른 예비신자들과 같이 6개월 이상의 예비신자 교리를 받은 다음 일치예식은 받아야 한다. 참고로 영미권 천주교는 한국 천주교와 다르게 개신교 세례는 웬만하면 인정해 준다.[137] 참고로 가톨릭에서는, 선의를 가진 정교회 교인은 누구든 가톨릭에서 성사를 받는 것을 허용한다. 단지 정교 측이나 가톨릭 측이나 정말 급한 상황이 아닌 이상 하지 않을 뿐이다. 더군다나 가톨릭 교회법에는 정말 급한 사정이 아니면 가톨릭 신자가, 정교나 성공회에서 영성체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근데 신자들은 공공연히 다 한다[138] 이건 정교나 가톨릭이 개신교에서 옮긴 사람을 세례 받았는지 판단할 때도 동일하게 사용되는 기준이다. 진중세례도 적법한 세례라 하면서 재세례를 거부한다.[139] 다만 적법하게 세례를 받은 자라면, 개신교, 동방정교, 가톨릭 어느 곳의 신자라도 성공회의 감사성찬례에서 영성체를 할 수 있다. 이게 감리회장로회와 공동예배할 수 있는 이유.[140] 캔터베리 대주교와 일치하는 각 국가 성공회와 일치하지 않은 분파 포함[141] 혹은 트리엔트 미사가 제정되기 이전의 중세 전례[142] 장엄전례로 감사성찬례를 드리지 않더라도, 일반적인 앵글로-가톨릭 성공회 교회에서 드리는 감사성찬례는 일반적인 가톨릭 미사에 비해서 장엄하다는 평을 받는다.[143] 현대 가톨릭 미사(특별 장엄미사, 대축일미사가 아닌 일반 연중미사 기준)의 전례성은 성공회 고교회파 예배보다는 성공회 광교회파 예배에 가깝다는 지적도 있다.[144] 과거 미국 성공회가 지금보다 보수적이었을 때는 이런 인테리어가 흔했다.[145] 성체가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라는 교리[146] 다만 성체를 물리적으로 훼손하거나 악의를 품고 영한 경우가 아니면 파문에 이르는 죄 정도까지는 아니다.[147] 가톨릭과 정교회는 서로를 '교회'로 인정한다. 정통, 보편이란 개념은 정교회 가톨릭 모두 사용하는데 분열 이후 스스로 혼자 보편 정통임을 공표하기 위해서다.[148] 다만 성공회가 보편교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정교회에서도 가톨릭처럼 성공회가 교회가 아니라고는 이야기하지 않는다.[149] 1552년의 성공회 서품 예식서에서 성찬례 집전권에 대한 부분이 명시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다만, 1662년 예식서에서는 이 부분이 개정되었으나, 이미 1552년 예식서대로 서품을 주었기에 이후에 바르게 고쳐졌다고 해도 교황 레오 13세는 그전에 사도계승이 단절되었다고 보았다.[150] 이 부분에 대해선 복잡한 사정이 있는데 존 헨리 뉴먼 등 고교회파가 가톨릭으로 개종하자 영국내에서 가톨릭 교회가 확산되고 있고 흡수가 가능하다고 오판한 보고 덕에[151] 실제로 정교회와는 사도 전승 인정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꽤 순조롭게 진행되어 정교회측에서 성공회를 보편교회로 인정한다는 것을 선포하기 직전까지 갔었다고 전해진다. 정교회는 가톨릭측에서도 보편교회로 인정으로 하는 교회이기 때문에 정교회에서 성공회를 보편교회로 인정하게 되면, 성공회 입장에서는 보편교회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다지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성공회측에서 여성 사제 서품을 인정함으로서 정교회 측에서 크게 반발하면서 흐지부지되었다. 이후 성소수자 사제 서품 문제로 성공회에서 내홍이 크게 일자 성공회의 보편교회 인정 가능성은 더욱 더 멀리 사라지게 되었다.[152] 이를 다른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성공회에서 많은 것을 포기하면서 여성 사제 서품을 인정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만큼 여성이 성직에서 배제되는 것에 대한 문제 의식이 강했던 것. 성공회 내부에서는, 가톨릭이나 정교회 같은 형제 교회와 사이를 돈독히 하는 거야 당연히 바람직하지만 꼭 보편교회로 인정받는 문제에 매달려 많은 걸 희생하면서까지 노력할 필요가 있냐는 분위기가 일반적이다. 보편교회로의 입지보다는 여성 사제 인정을 택했던 교회의 선택에 대부분 수긍하는 분위기이다.[153] 이거 때문에 가톨릭 성직자와 성공회 성직자가 친할 경우에는, 그런 소재로 농담도 한다고 한다.[154] 기혼자도 정교회에서 주교가 될 수 있지만, 이는 미혼 사제가 없는 경우에 한하고 주교가 되면 별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155] 물론 세계 성공회 공동체는 여러 관구로 이루어져 있고, 관구별로 자율성을 존중하기에 관구에 따라서 여성 사제를 인정하지 않거나, 여성 사제는 인정하나 여성 주교는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156] 이 역시도 관구별로 자율성을 존중하기에 관구에 따라 입장이 다르다.[157] 동성애자라는 점보다 동성애에 관한 성경적 관점을 따를 것인가가 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근데 애초에 성서에는 '동성애'란 단어가 없다. 성서에서 죄악시하는 것은 성직자와 소년 간 남색이라든지 남성 간 성매매나 이교도 의식으로서의 남성 간 성교뿐(취소선 처리한 부분은 일부 진보파에서나 주장할 뿐, 주류파에서는 인정 안 된 해석이며 전통적인 해석도 아닌 주장이다. 가톨릭과 개신교라는 서방교회, 정교회라는 동방교회, 비칼케돈파 합성론 교회(야코부스파), 네스토리우스파,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모두 동성애가 죄라는 구약에서부터의 해석을 따라왔다. 개신교 일부 신학 교파들만이 동성애의 일부 사례로 죄의 범위를 좁힐 뿐.).[158] 개혁주의나 침례회 등에서는 디모데전서 2장 11-12절 등의 성경 구절들에 합당한가 여부를 두고 보수적인 교단과 진보적인 교단의 입장이 엇갈리나, 성공회의 경우 주로 교회의 사도성에 대한 문제 때문이다. 여담으로 수정 전에는 개혁주의 보수 교단이 무슨 마초이즘에 근거한 여성 차별 때문에 여성 목사를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기술되어 있었으나, 왜곡이거나 과장에 가깝고, 실제로는 얼마나 성경에 부합하는가를 기준으로 입장차이가 나는 것이다. 참고로 고교회파 중 강경보수파는 전통 가톨릭 뺨 칠 정도로 보수적인 경우도 있고, 교의적인 면에서도 가톨릭과 큰 차이가 없기에 가톨릭 개종이 비교적 용이했을 듯.[159] 실제로 세계 성공회 공동체 내부에서 여성 사제 문제와 동성애자 사제 문제로 지속적으로 논란이 일고 있고, 나아가 분열의 기미도 보이기도 한다.[160] 보수파의 성공회 탈퇴에 대해 일부 진보파 사제, 평신도들은 오히려 잘됐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성공회가 진보적인 교회로 거듭나는 데 방해가 되는 보수파들이 알아서 가톨릭으로 떠나갔기 때문.[161] 사실 교황청이 이러한 특례(?)를 준 데는 성공회 탈퇴파 대다수가 고교회파 내 보수파인 것과 연관 있다. 만일 성공회 탈퇴파의 대부분이 저교회파 내 보수파였으면 바티칸이 이러한 특전을 주었을까?[162] 사실 이쪽이 교회법의 끝판왕이긴 하다.[163] 가톨릭 교회법과 비교할때는 그렇다 치지지만, 대한성공회 교회법과 장로회 교회법(예: 예장통합 교회법 - 장로회에서는 '헌법'이라 부름)을 비교해보면 성공회 쪽이 대략 안습. 참고로 장로회 교회법에는 웨스트민스터 요리문답이 통째로 들어가있다.[164] 역시 이전 버전에 보수적인 카톨릭이 낙태, 인공피임, 여성 문제에 대해 시대에 뒤떨어지는 처분을 한다는 식의 편향적인 서술이 있었으나 낙태, 인공피임 같은 것은 세계적으로 무종교인, 무신론자들 사이에서도 엄청난 논란을 야기하는 주제이며 무엇이 시대에 부합하는가를 정의하는 기준은 상당히 주관적이다.[165] 그것이 가톨릭의 교리나 제도에 대한 회의이든[166] 가톨릭 개종 1~2년만에 가톨릭 사제로 서품받을 수 있는 성공회 사제 출신과 달리 개신교 목사 출신은 가톨릭 사제가 되려면 처음부터 수년 간의 사제 양성 과정을 거쳐야 한다.[167] 다만 기혼 주교는 주교품을 받을 수 없게 되어 있어서, 현재 영국 성공회 출신 신자들을 관할하는 월싱엄의 성모 속인적 자치단의 장상인 전 성공회 주교는 가톨릭으로 옮긴 뒤에는 주교품을 받지 못한 대신 몬시뇰의 칭호를 받고 자치단을 다스리고 있다.[168] 옥스포드 운동의 주도자 중 하나로서, 성공회의 가톨릭화에 기여했기에 시복되었다. 만약에 성공회가 가톨릭에 흡수 통합되는 식으로 일치를 이룬다면 가톨릭 측에서 뉴먼 추기경을 시성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169] 즉 개신교를 강경하게 대변하는 입장[170] 예를 들자면, 성공회 성체성사에서, 그 집전 사제가 사도전승이 어떻게든 이어져 온 일부 고교회파 쪽이라면 그 축성된 면병이 성변화가 되었을 여지가 있다는 얘기.[171] 서품성사의 유효성은 세례성사와 마찬가지로 본질적으로는 취소될 수 없는 성사이기 때문.[172] 가톨릭에서는 성당 내 국기 게양 자체가 보편교회성을 해치는 일로 보아 금기시한다.[173] 엄밀히 말해서 영국UK이 아닌 잉글랜드 국교이다.[174] 7성사, 사제독신, 성변화, 루터신학에 영향받은 윌리엄 틴틀 판 영어번역성경 소지 및 구입 금지 등[175] 반대자들에겐 충분히 교리적인 이의제기였지만 일단 법적으로 헨리 왕의 수위권을 부인한 토머스 모어는 반역죄로 목이 잘렸다. 가톨릭 교리를 부인한 복음주의자들은 이단이라서 화형시킨다.[176] 사실 스튜어트 왕조시절 주교들을 성직귀족에 해당하여 임명하고 의회에 꽂아넣어서 거수기 노릇을 시켜서 의회세력에 큰 비판을 받았기에 권리장전 이후로는 국왕의 임명권한은 형식적이다.[177] 전통적으로 잉글랜드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일부 접경 지역에 한정. 웨일스 대부분은 잉글랜드 국교회 산하에 있다가 분리된 웨일스 성공회(Church in Wales)가 관할한다.[178] 미국 성공회도 유럽 일부 지역을 관할한다.[179] 캔터베리 대주교(직책)도 성공회 형성 이전에는 가톨릭 소속이었다. 애초에 종교개혁 이전 시기의 잉글랜드 국교회의 역사는 잉글랜드 가톨릭의 역사이기도 하다.[180] 세계에서 유일하게 하원보다 의석이 많은 상원이다. 2015년 11월 현재 하원인 평민원은 650석인 데 반해 귀족원은 자그마치 822석이다. 참고로 귀족원은 의원의 정수를 따로 정해 놓지 않는다.[181] 귀족원은 국민들의 선거로 뽑히는 조직이 아니다 보니 민주주의가 성숙하면서 자연스레 권한이 크게 축소되었다. 그리고 현대의 다른 민주 국가들을 보아도 상원과 하원의 실권이 대등한 경우는 있어도(예: 미국) 상원이 하원을 압도하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하원이 상원을 압도하고 상원은 단지 하원을 보조하거나 가끔씩 견제하는 정도인 경우가 더 많다.[182] 실제로 보수당·자민당 연립 정권(2010년 5월~2015년 5월)하에서 자민당 주도로 추진했던 상원 개혁안에서도 이들의 의석은 남겨놓게 되어 있었다. 자민당의 개혁안은 귀족원 의석의 정수를 지금의 절반으로 축소하고, 대부분의 의석을 선거로 뽑게 하였다. 그리고 선거로 뽑히지 않는 의석은 의원 정수의 20%를 넘지 못하도록 했다. 여기서 선거로 뽑히지 않는 20% 중에 성직귀족 의석을 포함시켜서 존속시키게 했다. 사실 자민당의 자유주의 취향대로라면 성직귀족의 의석도 없애는 게 맞다. 하지만 보수당과의 연립정부를 꾸린 상황이므로 타협을 위해 성직귀족의 의석을 남기기로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수당 내에는 상원 개혁 자체에 반발하는 의원들이 많아 개혁안 자체가 폐기돼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183] 영국 센서스에서 북아일랜드, 스코틀랜드는 따로 집계하나 웨일즈는 잉글랜드와 통합. 그런데 웨일즈 인구가 적어서 별 차이 안난다.[184] 일반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라 알려진 교부시대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와 다른 인물이다. 로마출신으로 서기 597년 영국에 파송되어 초대 켄터베리 대주교[185] 성스러운 이의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은 불길하다고 바이킹들이 여겼기 때문이다.[186] 헨리 2세시절 국왕에게 살해당한 순교자.[187] 근대 아우구스티누스 학파 신학자로 대주교에 재임한건 겨우 38일에 불과하나(흑사병으로 사망) 사실 가톨릭 시대라곤 하나 존 위클리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마르틴 루터 신학에도 영향을 주었다.[188] 메리 1세 시절 가톨릭 복귀 시대[189] 설립 당시 스코틀랜드 일각에서 한 나라로 합병되는 것에 반발하는 분위기가 있는 상황이었는데(물론 지지한 사람들도 있었음) 만약 스코틀랜드에서 Anglican Church라는 용어를 쓰면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에 종교적으로까지 침투하려 한다는 적대적인 반응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이런 사태를 우려한 탓인지 스코틀랜드 성공회 이름에는 Episcopal을 집어 넣었다. 다만 현재 홈페이지 주소는 scotland.anglican.org 식이라 도메인에 anglican이 들어가 있다.[190] 아일랜드 섬에서 활동하는 많은 조직들이 섬 전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오히려 아일랜드 공화국과 북아일랜드를 따로 관할하는 조직을 찾는 게 더 힘들 정도.[191] 북아일랜드 신교도 중 적지 않은 수가 스코틀랜드 이주민의 후손이다. 따라서 이들의 후손들 중에 장로회 신자가 많다.[192] 다만 북아일랜드에서 개신교를 다 합치면 가톨릭 신자보다 수가 많다. 성공회와 장로회 신자가 북아일랜드 신교도 대부분을 반분하고 거기에 소수의 감리회 신자가 존재하는 식이다.[193] 참고로 두 성공회 성당은 마주보고 있다고 해도 될 정도로 서로 거리가 가깝다. 도보로 3-4분 거리.[194] 보통 The Episcopal Church(TEC/EC)로만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195] 미국 성공회 관구의 관할 지역은 미국을 비롯해서 유럽, 나아가 대만까지 포함된다. 여기서는 주로 미국 내의 성공회에 대해서 다룬다.[196] 정치적으로도 Paul Kleppener(1979)에 따르면 19세기 말 성공회 교도들이 민주당을 지지하던 비율은 전체 인구의 45%였으며 공화당을 지지하던 비율은 55%였다.(이 당시에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포지션이 정반대였다.)[197] 정확히 얘기하자면 워싱턴 국립 성공회 성당 건립을 미 연방 의회가 의결한 것.[198] 이들 중 상당수가 이신론자이긴 했다. 이 시기 지식인들은 기독교식 세계관에는 동의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반종교 성향은 아니었다. 당시 이신론자들은 독실한 기독교인은 아니었으나 칼뱅주의 윤리관과 정치론에 공감했다. 그래서 이신론 성향임에도 성공회 신자를 자처했으며, 성공회 신자로서 큰 무리 없는 신앙생활을 했던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이신론자로 알려진 조지 워싱턴의 경우도 대통령 취임식 마치고 바로 성공회 성당에서 열린 추수감사절 감사성찬례에 참여했을 정도. 이들이 정말 기독교인이냐 아니냐에 대한 말들이 많긴 하지만, 그들에 의해 정립된 천부인권 등의 건국이념이 기독교에 근거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199] 트럼프 이후에 재평가 받았다.[200] 그런데 연합감리교(UMC)도 후술할 주류교파(Mainline Protestant 계통에 속한다.[201] 일단 단일 종파이자 조직력으로는 미국 내에서도 가톨릭이 가장 크고, 남부와 중부로 내려가면 남부 침례회로 대표되는 보수적 복음주의 개신교의 영향력이 훨씬 더 강하다.[202] 보통 Mainline 대신 Old Line 으로도 불리는데 역사적으론 18~19세기 당시 백인 주류 WASP가 믿는 개신교 주류 교파이다. 그런데 신흥교단들 대표적으로 오순절교회나 기존 교단에서 분리된 흑인 교회 등에서 교세가 확장되었기에 숫적으론 많이 줄어들어서 숫자상 메인라인이라고 하긴 무색하다. 대체로 메인라인 교파들이 중심인 동북부 중서부의 경우 남부와 정반대로 미국에서 교회 출석률이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203] 주의할 점은 장로회 침례회 감리회 같은 기존 교파에서도 주류교파, 복음주의로 나뉜다는 것이다. 성향이라는 것이지 특정 교파가 복음주의니 주류니 하는건 옳지 않은 분류다. 그예로 '복음주의 루터교단'은 복음주의 성향이 아니라 주류 교파로 분류한다. 사실 주류 교파, 신자들 사이에서도 복음주의, 복음주의자임을 자처한다. 또한 복음주의로 분류되는 교단이 18~19세기에 없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렇게 분류 기준이 명확한 편이 아니다. 주류 백인들이 믿는 역사성인지, 현재의 정치적 신학적 입장인지, 가톨릭-정교회와 대비하여 개신교 교파 전체를 복음주의라고 할때도 있어서 주의가 요구된다. 신학적 차이를 강조할땐 보통 진보적(Progressive Christianity)이라 하여 전통적, 보수적 성향과 구분하며 미국 성공회는 주류 교파이면서, 진보적 성향이다.[204] 쉽게 말해 앵글로-가톨릭과 복음주의 사이의 중도파. 광교회파를 자유주의를 따른다고 보기도 한다.[205] 특히 따로 명시되어 있지 않는 분야에서 성공회가 더 전통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데, 한 예로 현대에 들어오면서 많은 천주교 성당에서는 비용과 면적 등의 문제로 반주가 필요한 부분에 풍금[206]을 사용하는 게 상당히 흔해졌지만, 성공회의 경우 작은 교회라도 어떻게든 파이프오르간을 마련해 사용하는 게 대부분이다.[206] 리드 오르간이라고도 부르며, 파이프 오르간과는 달리 파이프를 사용하지 않고 프리 리드를 사용[207] 그러나 한국의 성공회가 미국의 성공회보다 가톨릭과 더 비슷하다.[208] 남부 침례회나 흑인 복음주의 교단 등, 의외로 남부 침례회는 미국 개신교의 10% 미만 정도를 차지한다.[209] 실은 이렇게 성호를 그리는 경우 가톨릭의 현대 미사형식인 바오로 미사보다 전통적인 미사 형식인 트리엔트 미사와 비슷한 경우가 많다. 즉, 현대 가톨릭보다 더 많이 긋는다.[210] 삼위일체성체성사세례성사 관련 믿음 등. 쉽게 말하자면, 주류 기독교 종파들의 공통분모들.[211] 이는 미국 성공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성공회의 문화 자체가 그렇다.[212] 성공회 내 복음주의파. 동성결혼과 동성커플에 관한 혼인성사에는 반대하지만 호모포비아적 태도를 배격하고 여성 사제 문제에는 호의적인 입장. 그러나 2016년 후반기 이후에는 동성결혼에 대해 사실상 찬성입장으로 돌아선 듯하다.[213] 이는 가톨릭도 마찬가지로 멜버른 대주교가 호주 교회를 대표한다. 현직 가톨릭 멜버른 대주교는 데니스 하트. 최근 전직 멜버른 대주교이자 교황청 재무원장인 조지 펠 추기경이 소아 성폭행혐의와 은폐혐의로 잡혀갔다...[214] 가톨릭 신자도 2011년 조사(25.3%)에서 5년만 22.6%로 거의 3%나 폭락했다. 사실 이전의 가톨릭 교회의 선방(?)도 가톨릭 교회세가 강한 아일랜드나 남미 이민자의 효과 덕이었다.[215] 이슬람은 레바논을 비롯한 중동이민자, 인도계종교도 인도계 이민자의 영향이며 동남아 화교 출신 이민자나 한국계 이민자는 개신교가 많은편.[216] 공식 통계로는 가톨릭이 0.3%, 개신교가 2.0% 정도이나 둘 다 최소 두배에서 네배정도로 추산된다. 왜냐하면 공산당 산하의 어용 단체만이 정식 교회로만 인정받기 때문.[217] 강원도, 경상도, 제주도는 이보다 더 낮고 서울, 경기도, 전라도는 이보다 더 높다. 특히 경상남도는 제주도 못지않게 개신교 신자가 적은 동네이다.[218] 홍콩 사립학교의 70%는 기독교 재단이다. 특히 성공회가 제일 비중이 크다. 그 이유는 성공회가 사회참여를 중요시해서이다.[219] 신도 수가 비슷한 대한성공회가 (서울교구/대전교구/부산교구) 3개의 교구로 한 관구를 이루는 것에 비하면 매우 많이 나눠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잘게 나눠진 데에는 여러 섬으로 나눠져 있는 지리적 상황과 여러 계통으로 부터 전래를 받은 역사적 상황이 관여했다.[220] 천주교가 약 50만명, 정교회는 약 1만명, 개신교가 약 50만명으로 집계된다.[221] 한일 성공회, 한일합방 사죄 성명서 발표키로[222] 참회로 日 성공회 거듭나…화해는 이벤트 아닌 영원한 과정[223] 단, 여기서 자유주의(liberal)와 광교회파를 다르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자유주의가 이성의 눈으로 성서와 전통을 보는 것이고, 광교회파의 경우 성서와 전통과 이성의 균형을 중시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물론 일반적으로는 광교회파와 자유주의를 동일하게 본다.[224] 수정 전에는 모든 루터회 교단이 주교제를 실시하는 것처럼 기술되어 있었으나, 오히려 장로회와 유사한 구조의 교단도 있고, 심지어 몆몆 교단은 회중제를 실시하는 곳도 있어서 성공회와 구조가 크게 다른 교단도 존재한다. 또한, 중앙집권적인 성격이 강한 교단이라도 전부 다 주교제를 실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지역교회(Landeskirche)라는 개념을 중시하기 때문에 교회 구조가 크게 중시되는 분위기는 아니다. 당장 한국 루터교회만 해도 주교제가 아니다. 장로회침례회보단 중앙집권적 성격이 많이 강하긴 해도.[225] 그리고 심지어 주교제가 실시되는 경우에도 개교회의 자치와 개성을 존중하는 경향이 상당히 강하며, 이건 주교제를 실시하고 있는 북유럽 루터교회 교단들 역시 마찬가지라 교회별로 예배 양식이나 인테리어 등이 꽤나 차이가 있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더불어 주교제를 실시하더라도 회중교회적 요소도 같이 받아들이는 교단들도 있어서, 개교회의 권한이 성공회보다 더 강한 경우가 일반적이다.[226]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감리회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는 주교제를 그닥 좋게 보지 않았다. 이는 존 웨슬리가 부흥 운동을 하면서 영국 국교회 주교들에게 많이 시달린 탓이다. 웨슬리는 감독제의 폐해를 알고, 미국 감리회를 형성하면서 절대 감독 호칭을 쓰지 못하게 하였다. 물론 나중에 은근슬쩍 감독 호칭을 쓰게 되긴 했지만. 그리고 감리회 역시 성공회보다 개교회의 권한이 강하다.[227] 물론 수도권 지역에도 복음주의 성향의 성당이 몇몇 있다.[228] 그렇다고 해도 한국 관구 전체로 따지면, 앵글로-가톨릭의 성향이 강하다.[229] 한국의 경우 복음주의 성공회 교회를 찾으려면 선교형 교회를 가야 된다.[230] 존 웨슬리도 계속 성공회 신부로 남아 있었다.[231] 특히 칼뱅주의파. 개신교라고 해도 루터파와 칼뱅파는 완전히 다르다. 근본주의는 아예 루터교회를 이단시하는 사람도 있다.[232] 그러나 일반적으로 루터교회는 개신교의 원조라는 정체성 때문인지 개신교적 정체성이 성공회보다 더 강하며,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가톨릭이나 성공회랑 차이가 큰 부분도 있다. 일단 보편교회론을 부정한다는 점부터가 차이가 있다[233] 가톨릭은 성공회 출신으로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사제와 평신도들을 적극적으로 포용하기 위한 사목적 지침까지 마련한 상태이며, 별도의 관구까지 마련한 경우도 있다. 또한 그 해당 특별 관구 내에서는 성공회의 전례를 유지할 수 있는 특례도 적용되고 있다고 한다. 다만 이는 가톨릭과 성공회의 일치가 아니라, 가톨릭의 성공회 흡수이기에 반발하는 성공회 인사들도 꽤 많다.[234] 천주교의 바티칸과 달리 캔터베리로 대표되는 영국 성공회가 전 세계 성공회를 통제하지 못하고 대개 국가별로 설정되는 관구의 자율성이 보장된다는 특성이 가장 근본적 장애가 될 확률도 높다. 그래서 10년마다 전세계의 주교들이 모이는 람베스 회의에 불참한다는 식의 행동이 가능하다.[235] 감리회는 성공회에서 갈라져 나왔다.[236] 그러나 루터회의 경우 인정하지 않는 교단도 결코 적지 않다[237] 감리회와 성공회 저교회파는 탄생부터 쌍둥이 같은 관계였다. 함께 태어나 다른 환경에서 자라게 된 것. 감리회 문서 참조. 한국의 감리회는 장로회의 영향을 많이 받아 약간 다르긴 하지만, 세계적으로는 현재도 둘 사이에 교리나 분위기가 대동소이한 편이다.[238] 진보적인 신학을 중요시하는 신자들의 경우에는 감리회보다 기장에 더 동질감을 느낀다.[239] 홍콩 개신교는 루터회, 감리회, 성공회가 제일 많고 그 다음이 침례회이다. 한국이 거의 장로회, 그것도 미국 장로회이고 루터회나 침례회는 거의 없는 것과 다르다.라고 기술되어 있었으나 진짜로 존재감이 없는 루터회와 비교하면 침례회는 없다고 보기는 굉장히 무리가 있다. 당장 침례회 대형교회도 몆군데 있다. 침례회는 구원파성경침례교 등의 이단사이비 교들이 이름을 참칭해서 피를 보기도 한다...[240] 일본 대학 랭킹 5위권인 릿쿄대학을 일본 성공회에서 설립운영하고 있고, 사제도 이 대학에서 배출된다. 그러나 신자는 이 학교 학생 중에서도 극소수다.[241] 연세대학교 이사회를 구성하는 12명의 이사 가운데 4명이 이렇게 기독교 교단들에게서 각각 파송을 받아 임명되었었다.[242] 조선일보 일가로 알려진 그 방우영이다. 아래 사건을 계기로 사실 상 주인 없는 연세대 이사회를 사유화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카인 방상훈 조선일보 대표이사와 그 가족은 성공회 신자이다. 서울주교좌성당 1996년 증축 완료 당시에는 조선일보 사주 일가에서 성당에 증축 기념비까지 세워줬다. 우연의 일치인지 조선일보 사옥이 서울주교좌성당에서 꽤 가까운 거리에 있다.[243] 한국 천주교의 성직자들은 거의 전부가 학창시절에 예비 신학생 활동을 거쳐 7년짜리 신학 교육 과정이라는 풀코스를 거쳐 사제서품을 받은 경우다. 다만 공대를 졸업하고 성직의 길로 들어서고 나서 주교 서품까지 받은 케이스도 존재한다.(수원교구 이성효 리노 주교, 서울대교구 정순택 베드로 주교 등)[244] 한국식으로 비유하자면, 명문대 출신으로서 변호사 활동하다가, 행시 합격한 관료로 일하다가, 대기업에서 일하다가 직장 때려치우고 성공회 성직자의 길로 들어선 격으로 볼 수 있다.[245] 김근상 전 서울교구 주교는 대대로 성공회 성직자 집안 출신이지만, 학부는 서강대 화학과 입학, 가톨릭대 신학과 졸업이다. 김근상 주교의 딸(현재 사제)도 학부는 고려대 정외과 출신이다[246] 그러나 학부만 한신대 출신이지, 어린 시절부터 성공회에서 신앙생활 했다고 한다.[247] http://holynet.kr/drive/thread/C0501/130325/admin_1364194318_0.pdf[248] https://www.youtube.com/watch?v=qm2p1vmvZo0 이 동영상에 나오는 통역하는 복사[249] 금서목록에서는 '영국 청교'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어서 나온다. 이름은 실제 역사상의 청교를 연상시키지만, 작중 묘사는 영락없이 성공회이다.[250] 단,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토트 콜의 모델이 마르틴 루터라는 점에서 루터교회가 연상될 수도 있다.[251] 팬들이 가톨릭이나 성공회 신자로 추정하고 있다.[252] 성공회는 흔히 개신교로 분류되지만, '주교, 사제, 부제'라는 3성직을 인정하는 교파다.[253] 김종철, 김종희, 김종식 등 일가가 신앙을 공유하며 특히 어머니와 아내가 독실한 신자로 유명하다. 김승연 본인도 소년 시절에 성공회 성당에서 복사활동을 한 적이 있다. 참고기사 성공회대 대학본부 건물 '승연관'은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