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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세원쇼

최근 수정 시각:

1. 개요2. '서세원의 화요스페셜'로의 시작, 그리고 독립 프로그램으로의 편성3. 서세원쇼
3.1. 역습의 김건모 팬덤과 프로그램의 전성기와 하락기3.2. 김남일 선수 부모님 조롱 논란과 프로그램의 몰락
4. 후폭풍5. 후속 프로그램 진행자들의 불미스러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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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

서세원쇼

장르

토크쇼

방송사

KBS

방송 시간

화요일 10시 50분 ~ 11시 50분

방송 시작

1996년 10월 15일[1]

방송 종료

2002년 8월 6일, 총 343회

기획자

김영선 → 박환욱

담당 PD

이근형, 권영태, 이용준, 김호상

HD 유무

HD 방송된 적 없음[2]

공식 홈페이지

공식홈

1. 개요[편집]

1990년대 한국 연예계 주요 프로그램들이 일본 프로그램을 베껴오는 것이 유행하던[3] 시기, '고키겐요'(ごきげんよう)라는 프로그램의 내용을 옮겨와 국민프로그램으로 성공한 프로그램. 그러니까 흑역사. 하지만 방송 내내 방송내용이 노골적인 상대 비방과 진행자 신격화라는 비판을 들었으며, 업계에선 방송가의 불문율인 '베낀 코너는 뜨더라도 대접해 주면 안된다'를 무시한 사례로 오래동안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다.

게다가 1999년에 SBS에서 방영하던 서세원의 슈퍼스테이션의 한 코너인 현상수배가 일본 후지TV에서 방영하던 달려라 행복건설의 한 프로그램인 도망자를 표절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서세원의 이미지에 심대한 타격을 입었고, 2000년대 초반의 서세원은 메인 MC로 참여한 좋은 예감 즐거운 TV, 쇼 여러분의 토요일 등이 잇달아 조기종영되는 수모를 겪은 뒤 서세원쇼 하나만으로 근근히 버티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래 후술할, 서세원이 마카오에서 도박을 한 사실이 적발되는 바람에 프로그램이 종영되자 이 때부터 그의 연예계 커리어는 몰락하기 시작하더니 2014년 5월에는 당시 아내 폭행으로 인해 연예계 생활은 완전히 끝났다.

2. '서세원의 화요스페셜'로의 시작, 그리고 독립 프로그램으로의 편성[편집]

MBC에서 KBS로 이적한 서세원이 자기 이름을 걸고 '서세원의 화요스페셜'이란 프로그램을 만들 때만 해도, 모두의 기대를 받았지만[4] 1화가 방송되곤 오만 구설수에 올랐다. 무대와 출연자만 다를 뿐, 경쟁사들의 주력 코너에서 베껴와 만든 코너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PD의 문제가 크지만 서세원의 이름을 걸고 방송되는 코너인데다, 서세원은 이미 최양락의 주력 코너였던 네로 25시를 베낀 코너를 낸 전적이 있기 때문에 서세원에게 모든 어그로가 튄 것인데, 토크쇼 파트의 1화 게스트로 나온 김자옥이 서세원이 엉뚱하거나 무례하게 나오면 칼같이 잘라버리고도 감싸주는 관용을 베풀며 프로그램 이미지 메이킹에 크게 이바지해, 토크쇼 부분은 서세원이 괜한 오두방정을 떨다가 역관광당하는 이미지를 안착시키게 되고 후술할 수많은 병크가 용인되는 기현상을 만들어냈다.

구조를 이홍렬이홍렬쇼를 노골적으로 베껴온 서세원쇼는 이홍렬쇼와의 차별점은 주사위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이홍렬쇼는 쿠킹토크라 이걸 베껴올 방법이 없고[5] 주사위는 상술한 일본 프로그램에서 베껴온거라 별다른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결국 서세원의 화요스페셜은 방송 내내 구설수에 올랐고, 종영이 논의되다 국내 코너를 베껴온 혐의가 진한 전반부를 없애고 2부의 토크쇼 부분을 독립 코너로 만드는 것으로 타협을 보게 되어[6] 1998년 2월 17일 독립 코너인 서세원쇼로 개편되었다.

3. 서세원쇼[편집]

3.1. 역습의 김건모 팬덤과 프로그램의 전성기와 하락기[편집]

토크쇼 파트만 남은 서세원쇼는 서세원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는 구조를 가지게 된다. 토크쇼의 모든 권한은 서세원에 있었고, 토크쇼를 통해 이미지를 올리려 나온 배우나 가수들은 우선권 혹은 서세원이 좋게 말해주는 진행을 위해 온갖 눈치를 봐야 했다. 이 시기는 아직 고가치를 가진 기획사가 드물어서 회사의 입김이 약했던 시기였던 터라 결국 신작이나 신보의 홍보, 이미지 업을 위해 나온 어린 연예인들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선 서세원의 마음에 들어야 했고 오만 갑질을 겪어야 했다.

게다가, 서세원은 자기보다 연배가 높거나 기수가 높은 사람의 관계자에겐 비굴할 정도로 편의를 봐주는 모습을 동시에 보여[7] 서세원의 편파 진행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것으로 여겨졌고 코너가 분리된 지 두 달 뒤인 1998년 4월 7일, 신곡을 홍보하기 위해 출연한 김건모를 막 굴리다가 문제가 제대로 터진다. 1995년 잘못된 만남으로 엄청난 성공을 한 김건모[8]가 2년 만에 신곡을 들고 나온 상황이라 팬덤부왘했는데 막상 방송을 보니 웬 말대가리가 노골적인 갑질과 피부색, 작은 키 등으로 김건모의 콤플렉스를 자극하곤 남성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식의 발언을 내놓아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한 팬들의 집단 항의가 이어지게 된다.

물론 여기까지면 평범한 팬들의 항의로 볼 수 있는데 김건모 팬들은 그저 항의를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KBS가 시청자 의견을 듣는 모든 창구를 통해[9] 항의했고, 타 방송사의 옴부즈맨 프로그램에서 일부러 이를 언급하며 '이 방송은 저런 막장 방송과 달라서 좋다'라는 내용을 남겨 상대 평가를 받게 하는 등, 지금 봐도 참신한 항의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이러한 항의들 중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은 1998년 4월에 한 김건모 팬이 막 KBS 사장에 부임한 박권상에게 4월 7일 방영된 서세원쇼 내용에 대해 항의하는 편지를 보낸 것이었다. 결국 사장 집에까지 투서가 날아들만큼 여론에 크게 데인 KBS는 몇 달간 출연 게스트를 서세원보다 나이와 짬이 되는 사람들로 쓸 수밖에 없었고, 그 후에도 과거 게스트로 출연한 사람 중 반응이 좋았던 사람들을 다시 부르며 김건모가 앨범 활동을 그만할 때까지 카드 돌려 막기 하듯 게스트를 돌려썼다.

신기하게도 연령대가 어느 정도 높은 스타들이 꾸준히 나오는 점이 중장년층에 어필해 게스트 돌려 막기가 정점에 다다랐던 6월 시청률은 오히려 상승했고, 여세를 몰아 서머 스페셜이라는 4주 연속 기획을 시도해 성공하며 1999년부턴 국민 토크쇼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대다수의 토크쇼가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방송사 측의 공영성 강화 차원에서 줄줄이 종영되는 와중에도 혼자 남아 어부지리로 국민 토크쇼의 자리에 올랐지만, 인기를 얻기 위해 그 동안 지적되었던 게스트 비하 등의 각종 폐단이 점점 더 커지기도 했다.

그 결과 당시 막 태동하던 초고속 인터넷 상에서 폐지 운동이 벌어지거나 안티 카페가 생겨나는 등 서세원쇼에 대한 비판 의견은 날이 갈수록 커져 갔고, 비판이 정점에 달했던 2001년엔 최악의 프로그램 1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하지만 까려고 보는 사람들과 게스트의 과거사 폭로를 이용하려는 게스트의 안티 팬들 덕에 시청률은 어느 정도 유지되었다. 그러다 2002년 6월 서세원쇼의 명줄을 끊어 버린 사건이 벌어졌다.

3.2. 김남일 선수 부모님 조롱 논란과 프로그램의 몰락[편집]

프로그램의 만행이 밝혀짐과 동시에 정통 토크쇼 프로그램을 퇴물로 만든 것은 물론 서세원의 연예계 생활에 경종을 울린 최대의 원인

2002년 6월 25일 방송분에서 서세원이 서세원쇼에 게스트로 출연한 김남일의 학창시절을 공개적으로 디스[10]하고 같이 출연한 김남일의 부모님을 싸잡아 조롱하는 내용이 방송되며 국민적 공분을 사게 된다.[11]당시 방송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한 글

문제의 발단이 된 것은 당시 실시간으로 보던 시청자들이 김남일에 대한 비난이 나오자 "월드컵 영웅[12]도 서세원쇼에 나오면 오만 트집을 잡히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서세원쇼 특유의 폐단인 출연자 과거사에 대한 폭로와 "너 같은 과거를 가진 놈이 나올 수 있는 것도 나(서세원)이 대인배라 가능한 거다"란 식의 깔보기가 나올 것이라 예상했지만 갑자기 선수 개인을 떠나 부모님까지 건드리고 낄낄거리는 모습에 그나마 있던 실드도 날아갔다. 이로 인하여 지난 6년간 참았던 시청자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김남일의 부모를 조롱한 일에 대해 서세원은 여론이 월드컵 대표팀이라 특별 취급한다는 투의 언론플레이를 시도했지만 방송이 나간 25일은 하필 월드컵 4강전에서 독일에 1:0으로 패한 날로 김남일이 오열하는 장면이 크게 잡힌 지라 소용없었다.

결국 일주일 만에 서세원은 공식 사과 발표를 서세원쇼에서 한 다음 가만히 있었으면 중간이라도 갔을 텐데, 정신을 못차리고 바로 게스트의 과거사 폭로와 갑질을 이어서 했다. 꼴이 이러니 해당 방송분으로 인해 폐지 서명운동에 많은 사람들이 동참했다. 결국 위와 같은 사태에는 본인의 책임이 크다.

사과문이 나간 후 그동안 나이와 기수에 눌렸던 게스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쇼의 만행에 대해 라디오나 타 프로그램에서 실언을 빙자해 폭로했으며[13][14], 홍보를 위해 굽어주던 음반사나 기획사들도 크게 성장하는 회사들이 많아지자 굳이 숙여야 할 필요성이 사라진 상황을 이제야 이해한 것인지 출연 예정 게스트들의 일정이 변경되었다며 보이콧하는[15] 사례가 많아지면서 결국 2002년 8월 6일 종영이 확실시되었고, 2주 후 완전히 종영되었다.

이 프로그램의 종영으로 방송에서는 출연한 유명인을 희화화하거나 과거사 폭로, 갑질을 하면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가 되었으며 당시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예인들은 이 사건 이후로 서세원쇼에 대한 언급을 피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4. 후폭풍[편집]

<서세원쇼>가 좋지 않게 끝난 뒤 KBS 2TV의 화요일 오후 11시대는 상상플러스 이전까지 한동안 침체기를 겪었으며 <서세원쇼> 종영 후 한동안 파일럿-특집 프로그램으로 꾸며오다가 2002년 10월 29일 시작한 <김용만 박수홍의 특별한 선물>로 정규 프로그램이 편성됐는데 이 프로그램은 두 MC(김용만 박수홍)의 소속사였던 매니지먼트 업체 (주)감자골에서 연출을 맡아 화제가 됐고 시청자들의 사연으로 꾸며졌으나 진부한 화면 일색, 가학적 벌칙, 자사 드라마 장희빈 홍보 등으로 물의를 샀으며 결국 22회(2003년 4월 1일) 만에 단명했다.[16]

아울러, <김용만 박수홍의 특별한 선물> 후속 프로그램인 <논쟁 버라이어티 당신의 결정>은 ‘평범한 사람들의 고민을 토론을 통해 함께 고민해보겠다.’는 기획의도로 출발했으나 '연예인 떼거지 출연’이란 전형적인 오락적 틀로 고민을 희화화시켰다는 혹평을 받았고 결국 11회(2003년 6월 17일) 만에 조기종영되는 수모를 당했다.[17] 이렇게 되자 KBS는 일요일 오후 10시에 방영되어 온 단막극 드라마시티를 2003년 6월 24일부터 이동 편성했지만 "화요일 밤 시간에 드라마를 2편 이상 방송하는 건 무리다"라는 지적을 받아오자 그 해 11월 9일부터 일요일 오전 9시 40분으로 변경됐고[18] 이 프로그램 자리에는 <대한민국 1교시>[19]가 신설되었는데 <논쟁 버라이어티 당신의 결정>의 조기종영 이후 5개월 만에 KBS 2TV의 화요일 심야 예능-오락 프로그램이 부활된 셈.

그 <대한민국 1교시>는 <서세원쇼> 이후 이어진 화요일 심야 시간대 징크스에서 벗어날 것으로 기대를 모았는데 첫 회부터 잘 나갔으나 '세계의 1교시' 코너에서 중국어는 물론, 기본 영어도 못하는 연예인을 보내는 바람에 세계 각국의 교육 현실을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는 기획 취지를 전혀 살리지 못했으며 급기야 2004년 5월 4일 시작한 SBS <김용만 신동엽의 즐겨찾기> 때문에 시청률이 갈수록 떨어지자[20] 상상플러스에게 자리를 내주고 2004년 11월 6일부터 토요일 오후 5시 50분으로 이동했지만 결국 다음 해 봄 개편으로 막을 내렸다.[21]

5. 후속 프로그램 진행자들의 불미스러운 일[편집]

<서세원쇼> 이후 화요일 심야 시간에 방영된 예능-오락 프로그램들의 MC들은 그 뒤 대거 불미스러운 일들을 겪었는데, 그것을 일명 "'서세원쇼'의 저주"라 했으며, 그 대표적인 진행자들은 다음과 같다.

  • 김용만('김용만 박수홍의 특별한 선물'): 불법도박 사건 때문에 KBS에서 한동안 출연이 금지되었으나 2016년 8월 4일, 해제됐다. 하지만 이후 1개월후에 출연료 미지급 소송에서 패소했다.

  • 이휘재('논쟁 버라이어티 당신의 결정', '상상플러스'): 2006년, <상상플러스> 방송 중 함께 출연 중이었던 정형돈에게 '손가락 욕'을 건내는 장면이 포착되어 당시 시청자 게시판에 비난의 글들이 쏟아졌다.

  • 유재석('논쟁 버라이어티 당신의 결정'): 신동엽이 만든 회사이자 본인이 속해 있었던 소속사와 방송 3사끼리 출연료 지급 소송을 벌였다. DY 엔터테인먼트 사건 참조.

  • 이훈('대한민국 1교시'): 헬스클럽 관련 사업을 시작했다가 큰 실패를 봤다[22].

  • 탁재훈('상상플러스', '김승우의 승승장구', '달빛프린스'): 김용만이 그랬던 것처럼 2013년 연예인 불법도박 사건에 연루되어 퇴출당했으며, 2016년, 연예계에 복귀했으나, 아직도 KBS 출연금지는 풀리지 않고 있는데 2018년 해금됐다. 그리고 복귀 프로그램들도 하나같이 오래가지 못하고 있다.

  • 신정환('상상플러스'): 상습 불법 도박 때문에 KBS와 MBC 출연이 금지됐다[23].

  • 이수근('상상플러스', '승승장구', '우리동네 예체능', '하숙집 딸들'): 불법도박 때문에 KBS 출연이 금지되었으나 2016년 3월 4일, 해제됐지만, 출연 프로그램들의 열에 아홉은 예전[24]보다는 오래 못가고 금방 폐지되고 있다.


[1] 초기엔 '서세원의 화요스페셜'이라는 토크쇼의 2부 파트로 나오다 1998년 2월 16일, 독립코너로 편성되었다.[2] 최종회가 HD란 설이 있으나 당시 KBS는 예능 프로그램에 HD 장비를 도입하지 않았다.[3] 사실 이때만 유행했던 건 아니고, 1960년대부터 존재했던 꽤나 뿌리깊은 악습이다. 부산에서 일본TV방송이 잡혔기 때문에 검열과 시간에 쫓기거나 귀차니즘에 찌든 방송사 PD들이 프로그램 개편철이 될 때마다 부산으로 가서 일본 TV프로그램을 베낀게 시초로 한창 표절이 심했을 때는 단순히 포맷을 베끼는 수준을 넘어 내용도 베끼는 경우도 많았으며, 90년대 들어서도 크게 변하지는 않아서 이때까지도 포맷을 베끼는 것이 관례화되었을 지경이었다. 물론 표절인 것이 드러나면 언론이나 여론으로부터 까이는 것이 다반사이기는 했지만 어차피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초고속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부산에 살고 있지 않은 이상은 표절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표절이 횡행했다.나름의 흑역사. 사실 서세원의 코미디 스타일조차 아카시야 산마가 구사하던 오와라이 스타일의 마이너 카피라는 지적이 있었다.[4] 서세원은 1980년대 애드립 상황극과 깐죽 개그를 독식하다시피한 최양락의 대항마로 기용될 정도로 호들갑을 떠는데 능했고 순간순간 내는 애드립 개그에 능했다.[5] 뭔가 만들거나 요리를 해야 하는데 이 경우 진행자의 기본 능력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베껴와도 진행을 할 방법이 없는 것이 태반이다.[6] 97년 5월 27일 방송분에서는 같은 달 20일부터 화요일 밤 11시로 이동한 동시간대 SBS 코미디 전망대 공동 MC로 투입된 개그우먼 조혜련을 2부 게스트로 출연시켜 따끔한 눈초리를 샀고(조혜련은 '코미디 전망대'로 SBS 진출을 했는데, 이 프로그램은 조혜련을 공동 MC로 투입시키는 과정에서 95년 봄개편부터 전년도 가을개편 전까지의 상황(3인 체제)으로 되돌아갔다) 결국 <코미디 전망대>는 시간대를 변경한 지 1달 만에 부분개편(6월 24일)으로 간판이 내려졌으며 이런 충격 탓인지 SBS는 2000년 가을개편 전까지 한동안 화요일 심야 시간에 예능-오락 프로그램을 편성하지 않았다.[7] 일대일 토크 외에 일대 다수 토크가 진행되는 빈도도 많았다.[8] 무한도전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에서 유재석은 이 시기 김건모는 헬기를 타고 다니고, 리허설 없이 바로 생방송에 투입되는 등 격이 다른 대접을 받았다고 말했다.[9] '시청자 의견을 듣습니다' 같은 옴부즈맨 프로그램. 참고로 지상파 3사 옴부즈맨 프로그램은 1993년에 첫 방송되었다.[10] 김남일은 고등학생 시절 반년간 방황하며 가출한 적이 있었던 과거사가 있었는데 서세원이 이 점을 이용했다.[11] 날짜를 잘 보자. 2002년이다. 당시 김남일의 사인 1장은 잘 나가는 연예인 사인 10장과 바꾼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12] 김남일은 2002년 월드컵 대표팀으로 당시 한국팀 중요 저술인 3-4-3의 미드필더로 적극적으로 활동해 큰 인기와 지지를 얻었다.[13] 당시 문화연대 측이 밝힌 주장으로는 토크쇼 본래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빈곤한 정체성을 대변, 원치 않는 개인기를 강요해서 출연자를 희화화, 사회자 서세원의 도 넘은 인신공격, 다른 연예산업의 홍보 창구 역할, 잘못된 연예권력 양산 등 5가지였다.[14] 이로 인해 당시 VOD홈페이지에서 문제의 대사들을 무음처리하기도 하였다.[15] 서세원쇼에 나오라고 하면 타 프로그램 나갈 것도 빼 버린다고 윽박질렀단 설도 있다.[16] 김용만은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친정인 KBS 복귀를 했으며 박수홍은 2001년 가을개편 때 신설되었으나 다음 해 봄 개편 때 폐지된 파워쇼 한중일 삼국지에 이어 본인이 KBS에서 진행한 신설 프로그램의 두 번째 조기종영 굴욕을 맛봐야 했다.[17] 공동 진행자였던 유재석은 '대한민국 1교시' 남자 진행자로 한때 물망에 올랐지만 고사했으며 난항 끝에 남자 MC는 이훈으로 낙점됐다.[18] 그 이후 시간대는 자주 변경됐다.[19] SBS '헤이 헤이 헤이' 폐지와 함께 옮겨 온 김원희가 메인 MC였다.[20] 메인 MC였던 김용만은 '대한민국 1교시' 남자 진행자 물망에 한때 거론됐다.[21] '대한민국 1교시'의 시간대 이동에 따라 성장드라마 '반올림'은 2004년 11월 7일부터 일요일 오전 8시로 변경되었는데(2005년 2월 27일 끝) 시즌 2는 2005년 3월 6일 첫 방영되었으며 그 해 11월 6일부터 오전 8시 50분으로 변경되었고(2006년 2월 26일 마지막) 시즌 3는 시즌 2 후반부 때 그랬던 것처럼 일요일 오전 8시 50분에 방송됐다.[22] '대한민국 1교시'에는 이훈에 앞서 김용만, 유재석, 남희석, 이휘재, 박수홍, 강호동 등이 남자 MC 물망에 올랐다.[23] 그 이후에는 SBS에서도 출연금지 명단에 올랐다[24] 불법도박 걸리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