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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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민주당

영문 명칭

Millennium Democratic Party (MDP)

약칭

민주당

창당일

2000년 1월 20일

당명 변경일

2005년 5월 6일 (민주당(2005년))

주소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25-4

대통령

김대중, 노무현

대표최고위원

한화갑

원내대표

김효석

16대 국회 의석수

115석 / 273석

광역단체장

4석 / 17석

당 색

청록색(#00AA7B)

이념

자유주의, 중도개혁주의

정치적 스펙트럼

중도

공식 사이트

홈페이지


1. 개요2. 역사
2.1. 창당2.2. 제16대 대통령 선거2.3. 노 대통령의 민주당 탈당2.4. 분당과 참패2.5. 민주당으로 당명 변경
3. 역대지도부
3.1. 총재3.2. 대표
4. 역대 선거결과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파일:678521501f030d5d5d878b0670e8b0e2_jEDUxGsa9flisls.jpg[1]

민주화 이후 최초의 전성기를 누렸던 민주여당

동교동계의 전성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계복귀를 한 후 1996년에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를 바탕으로, 2000년 1월 20일 16대 총선에 대비해 세력을 확대 개편해 창당한 정당.

2002년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승리로 집권 여당 재집권에 성공하나 2003년 열린우리당과 분열하여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인한 17대 총선에서 크게 패배했다.

이후 2005년 당명을 민주당으로 바꾸었다.

당시 도메인은 'www.minjoo.or.kr'이다.

2. 역사[편집]

2.1. 창당[편집]

새정치국민회의는 16대 총선을 대비해 그간의 세력부족을 해결하고 원내 안정의석을 확보하기 위해 1999년 하반기부터 신당 창당을 선언하였다. 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으로 있던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직접 창당준비위원장을 맡고, 기존의 인물들에 더하여 386세대 민주화운동 인사들, 각계의 전문가 출신 인사들, 지역 정계입문자들, 서영훈 전 KBS 사장과 최영희 전 여성단체협의회장, 김운용 대한체육회장 등의 유명인사들에 장태완 전 수경사령관과 유삼남 전 해군참모총장을 포함한 군인 출신 인사들을 대거 영입했다. 여기에 이미 1998년에 국민신당[2]을 흡수통합하면서 합류해 있던 이인제에게 중앙선거대책위원장을 맡기고 충남 논산-금산 지역구 공천을 주며 충청권 공략을 책임지게 했다. 그만큼 세력 문제에서는 한나라당과 맞먹는 정당이 되었다. 그러나 이는 비극의 씨앗을 품고 있었는데…

우선, 16대 총선에서 석패했다. 김대중이 직접 총재를 맡고[3], 국민신당 세력의 이만섭과 이인제를 전면에 내세우며 기를 몰아주었으나 남북정상회담 내용이 일찍 터지면서 되려 정략적이란 반응으로 야당(보수 한나라당) 표가 결집한 것. 선거 출구조사만 해도 민주당은 제1당이 될 것으로 예측되었으나 봉화-울진 선거구에서 김중권 후보가 19표 차로 낙선하는 등 접전이 벌어진 선거구 11곳 가운데 10곳에서 패하며 115석에 그쳐, 133석의 한나라당에게 제1당을 내줬다. 한나라당은 이로서 여당의 과반을 저지하고 오히려 원내 과반수에서 4석 모자란 거대야당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이회창의 1인 지배 체제를 확고하게 굳혔다. 따지고보면 경북지역에서 당선자를 낼뻔했기도 했고 그 동안 보수텃밭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던 강원도 의석 9석중 5석을 획득하였으며 그때까지 민주당계 정당의 불모지였던 충청권에서 8석을 얻는 등 선전하며 전국정당으로 자리매김하는 첫발을 떼었지만, 자민련과의 선거공조 무산으로 수도권에서만 한나라당에게 20석을 내준것이 패인이었다. 만약 자민련과 선거연대가 성사되었다면, 새천년민주당은 과반에 근접하고, 자민련은 교섭단체를 꾸릴 수 있었다. [4] [5]

서영훈 - 김중권 - 한광옥 - 한화갑으로 대표가 돌려 막아질 때는 그나마 김대중이라는 막강한 힘이 있었으므로 괜찮았다. 그러나 2002년 3월 대선 경선에서 계파 갈등이 극심해지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로 결정되자 피닉제이인제 세력들을 위시로 한 당내 갈등이 심각해졌다.[6] 이 당시 2002년 제3회 지방선거에서 수도권에서 참패를 하면서 노무현의 입지는 흔들리고 이에 따라 당내 비주류는 정몽준과 연합, 단일화를 하려고 한 것.[7] 자세한 것은 후보 단일화 협의회 참조.

2.2. 제16대 대통령 선거[편집]

2002년 4월 27일 서울 경선에서 노무현이 새천년민주당 최종후보로 선출된 후 8개월간 민주당은 갈등의 극치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노무현이 한나라당이회창에게 앞서나가는 듯 했으나, 2002년 6월 열린 제3회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하면서 노무현의 지지율이 떨어지게 되고 이 시기부터 후보 교체의 움직임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노무현은 당의 움직임에 대해 후보 재신임을 물었고 민주당은 만장일치로 노무현을 후보로 유지시킨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일단락됐다.

하지만 위기는 계속되었다. 월드컵 4강 신화의 열풍을 타고 대선 유력 후보로 떠오른 정몽준 때문에 노무현은 정몽준에게도 밀리며 3위로 주저앉고, 민주당에서는 다시 후보 교체와 노 후보 반대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거기에 8.8 재보선까지 민주당이 참패하며 노무현과 민주당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가 바닥을 기어가게 된다.

9월 정몽준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국민통합21를 창당한 뒤 민주당은 본격적으로 단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11월에는 후보 단일화를 요구하는 후보 단일화 협의회, 일명 후단협으로 불리는 의원들이 민주당을 집단 탈당하기에 이르렀고 노무현 후보 흔들기가 계속된다. 그러자 노무현은 여론조사를 통해 단일화 작업을 진행하기로 하고 국민참여운동본부라는 이름의 대선 캠프를 만들었으며, 11월 25일 여론조사를 통해 노무현이 정몽준을 1.5%차로 이기고 최종 대선 후보로 확정되었다.

이 후 노무현은 단일화 효과에 따라 이회창과 2% 이상의 격차를 벌리며 대선 직전까지 선두를 유지했다. 비록 대선 하루 전 정몽준이 노무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면서 위기가 찾아오기는 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역풍을 일으켜서 결국 노무현은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48.9%의 득표율로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에 극적으로 당선된다.

2.3. 노 대통령의 민주당 탈당[편집]

2002년 16대 대선에서 노무현이 당선되자 갈등은 극에 달했다. 처음에는 비주류가 대통령에게 불만이 있다, 소외 받는다 수준이었으나 이후 계속적인 당내 개혁파와 대통령의 드라이브로 당내 쇄신을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계파 갈등이 심해졌던 것. 엎친데 덮친 격으로 김대중 정권과 관련된 대북송금 특검이 터지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지세력 중 일부까지 지지철회를 하는 상황까지 생겼다. 대표적인 경우가 추미애 의원과 조순형 의원.

2003년 9월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새천년민주당을 공식 탈당했다. 명분은 국정 운영 전념이었지만, 사실상 대북송금사건 이후 당내 호남파들에게 큰 비판을 받고 있던 실정이어서 그의 위치는 좁아져 있는 상황이었다. 또한 그를 따르는 친노 인사들은 이미 열린우리당을 창당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고... 결과적으로 등 떠밀리듯 탈당한 것이 다름이 없었다.

새천년민주당은 노 대통령이 희대의 배신을 했다며 강력하게 비난 성명을 냈고, 한나라당은 신당으로 빨리 가라며 합류를 재촉했다.

2.4. 분당과 참패[편집]

새천년민주당은 반수에 달하는 탈당파[8]가 창당한 열린우리당과 기존의 새천년민주당으로 쪼개졌고, 양 세력은 서로 극단적으로 대립했다. 결국 한때 여당이었던 새천년민주당은 한나라당, 자유민주연합과 손을 잡아 탄핵이라는 극단적인 수를 둔 대가[9]로 2004년 17대 총선때는 겨우 9석 의석을 갖는데 그쳤다. 탄핵도 탄핵이지만, 탄핵 이후 공천권을 갖고 구주류와 신주류가 선관위까지 가서 서로 싸우며 자기가 공천권 행사하는 게 맞다고 징징거리는 등 난리도 아니었으니 9석이나 가진게 용할 지경(…). 결정적으로, 새천년민주당 세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자신들을 지지해주리라 믿었지만 김 대통령은 탄핵을 저지른 그들에게 크게 실망하여 오히려 열린우리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였고, 결국 호남에서도 박살이 났던 것이다. 이때의 전설 같이 회자된 이야기가 손석희 아나운서와 연관된 "그러면 (탄핵을) 안 하면 될 것 아닙니까?". 문서 참조.

2.5. 민주당으로 당명 변경[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민주당(2005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DP_2000[1].jpg

제17대 총선 이후 전남권(광주+전남) 지역정당으로 전락해 별볼일 없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정통성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2005년 5월 6일, 당명을 '민주당'으로 바꿨다. 꼬마민주당 시즌 3 # 당시 사진

이후 역사는 민주당(2005년) 항목 참조.

3. 역대지도부[편집]

3.1. 총재[편집]

3.2. 대표[편집]


저 중에서 한화갑, 한광옥은 그들이 그렇게도 싫어하던 한나라당의 후신인 새누리당의 대선후보 박근혜쪽으로 간다.(페이크다 이 병신들아). 한광옥은 한 술 더 떠서 친박계로 변했고, 박근혜의 마지막 대통령 비서실장이 된다. 그리고 조순형한나라당의 총재였던 이회창과 손을 잡고 자유선진당 소속으로 18대 의원[21]을 지냈으며, 자유선진당이 새누리당에 합당될 무렵에 탈당했다. 한광옥, 한화갑, 조순형이 민주당 대표로서 한나라당과 대적했던 과거를 생각하면 심히 괴리감이 느껴진다.

4. 역대 선거결과[편집]

5. 관련 문서[편집]

[1] 2000년 1월 20일 열린 창당발기인대회에서 깃발을 흔들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 당시 새천년민주당 총재를 겸임했다.[2] 이만섭 의장은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국민신당으로 가서 이인제 계파와 같이 행동했다.[3] 이 당시엔 대통령이 총재를 맡는 것이 결코 문제가 되지 않았다.[4] (충청은 자민련이, 나머지는 새천년민주당이 담당함을 가정) (단순 득표율 합산)[5] 다만 1998년 지방선거에서 당선자를 낼뻔했다가 선거공조 무산으로 한나라당에게 당선자를 내준곳임을 감안해야하기는 한다.[6] 이 시기에 권노갑을 위시로 한 동교동계는 이인제를 밀었는데 김근태가 권노갑에게 정치자금 받은 것을 고백하면서 대세가 노무현에게로 넘어왔다.[7] 물론 어느정도는 정몽준과 연대하여 정권을 재창출하려는 청와대의 의지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전무후무하게 드라마틱한 과정에서 감정적 앙금이 더더욱 커진 것이다.[8] 분당 시점(2003년 11월)에는 새천년민주당이 의석수가 더 많았다.[9] 실제로 탄핵 법안 발의 자체는 민주당 측(조순형이 주도했다)에서 했고 이에 한나라당과 자민련 측이 동조하는 모양새였다.[10] 당시 대통령직과 겸임[11] 2001년 재보궐선거 패배로 사퇴[12] 총재직 폐지[13] 총재가 임명[14] 대한적십자사 총재로 가면서 정계에서 은퇴했다.[15]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사퇴[16] 한화갑 사퇴로 승계, 열린우리당 합류를 위해 사퇴[17] 정대철 사퇴로 승계[18] 17대 총선 패배로 사퇴[19] 대표로 추대[20] 2005년 5월 6일, 민주당(2005년)으로 당명 변경[21] 비례대표, 당시 7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