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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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민주당계 정당

창당

새정치연합

(창당준비위)

새정치민주연합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px-Saejeongchiyeonhap_logo.png

새정치연합

한문 명칭

新政治聯合[1]

영문 명칭

New Political Vision Party

창준위 설치일

2014년 2월 17일

창준위 해산일

2014년 3월 25일 (새정치민주연합 창당)

주소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68길 14
(여의도동, 신동해빌딩)

중앙운영위원장

안철수 / 초선 (19대)

공동위원장

윤여준, 박호군, 김효석, 윤장현,
이계안, 김성식, 안철수, 홍근명

당 색

하늘파랑 (#00A8EC, Sky Blue)

정치적 스펙트럼

중도

이념

중도개혁주의

19대 국회 의석 수

4석 / 300석[2]

공식 사이트

saejeongchi.org[3]

SNS[4]

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 파일:트위터 아이콘.png


1. 개요2. 창당 추진 배경3. 창당 선언과 후폭풍
3.1. 각 정당의 반응3.2. 엇갈리는 전망3.3. 이후3.4. 창당 준비 작업
4. 새정치민주연합 창당5. 두 번째 신당 창당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정당. 안철수 의원이 창당을 추진했던 정당이었다.

2014년 1월 27일 '국민과 함께 하는 새정치추진위원회'(새정추)[5]는 3월 말에 창당할 신당의 임시명칭을 새정치신당으로 정했었다가,[6] 동년 2월 16일 정식 명칭을 새정치연합으로 변경하여 2월 17일 창당준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영문 명칭은 New Political Vision Party(NPVP)로 결정됐다.

하지만 2014년 3월 1일 민주당과의 합당[7]을 통한 신당 창당이 결정되었고, 결국 2014년 3월 25일 창당준비위원회의 해산을 결의, 민주당과 함께 새롭게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하게 된다. 새정치민주연합 창당 이후 새정치연합이라는 명칭은 새정치민주연합의 공식 약칭으로 이용하게 되었다.[8][9] 단, 구 새정치연합이 쓰기로 했던 영문 당명은 영영 쓰이지 않게 되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별도의 영문 당명(New Politics Alliance for Democracy)과 약칭(NPAD)을 정하여 쓰게 됐기 때문.

2. 창당 추진 배경[편집]

안철수는 2011년 초 청춘콘서트라는 이름의 강연을 박경철, 김제동과 다니면서 정치권에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하는 말이 돌았다.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박원순 지지 선언을 하면서 불출마를 밝혀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실제로 이때 청춘콘서트를 도운 청년들을 중심으로 청년당이 결성되었으나, 19대 총선에서 별 소득을 거두지 못하고 사라졌다.

2012년 민주통합당은 안철수와의 연대를 염두에 두고 송호창을 19대 총선 의왕-과천에 공천했는데, 송 의원은 당선 된 뒤 안철수가 대선 캠프를 차린 2012년 10월 탈당했다. 안철수18대 대선이후 본격적인 창당 움직임에 나섰다. 18대 대선에서는 안철수는 안철수로의 단일화가 될 경우 무소속 또는 민주통합당후보로 나설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안철수가 2013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으며 진보정의당 강동원 의원이 탈당, 안철수 신당 참여를 시사했다.

그러나 2013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도 안철수는 불참하였다.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참여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대구광역시 동구의회 이은영 의원이 이미 새정치국민의당이라는 정당을 만들어 '새정치당'을 약칭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새정치라는 이름을 당명에 쓰는 데 큰 제약을 받게 되었다. [10][11]

2013년 10월 말에는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 과정에서 (자신에게 유리한)여론 조사 방식을 제안했다가 그 여론조사로도 자기가 밀린다는 것을 알고 사퇴를 했다는 홍영표 의원[12]의 비망록이 출간되어 잠깐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이 논란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묻혔다.

3. 창당 선언과 후폭풍[편집]

드디어 11월 29일 안철수 의원이 창당을 선언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군. 그는 12월에 '국민과 함께하는 새정치 추진위원회'를 출범시키겠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창당 시기나 인물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창당한다는 이야기 하나로 정당들을 떨게 만들었다. 여야는 모처럼 한 목소리로 안철수 신당을 경계했다.

12월 8일, 새정치 추진위원회의 공동위원장들이 발표되었다. 민주당을 탈당한 이계안 전 의원과 김효석 전 의원, 박호군 전 과학기술부 장관, 윤장현 광주전남 비전21 이사장이 선임되었다.

여론조사 결과는 더 충격이었다. 한국갤럽이 25일부터 28일까지 안철수 신당을 포함해 조사한 정당지지율 여론조사에서는 안철수 신당이 26%를 차지했다. 덕분에 민주당은 11%로 3위로 떨어졌고, 새누리당도 35%로 단숨에 40% 지지율 선이 무너졌다. 안철수 신당은 새누리당, 민주당, 무당파 지지율을 골고루 흡수했고, 20~30대 지지가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지역별로는 호남과 수도권의 지지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안철수 의원이 광주를 방문해 지지를 호소한 것도 이런 흐름과 연관이 높아보인다.

3.1. 각 정당의 반응[편집]

여당과 야당 모두 부정적이다. 여당에서는 자신들의 지지기반을 흔들고 있어서 안철수 신당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야당에서는 야권분열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안철수 신당에 대해 지극히 부정적이다.# 특히 민주통합당 선병렬 전 의원이 안철수 신당에 합류하는 등 민주당의 전력 중 일부가 안철수 신당으로 유입되어 민주당에서는 안철수의 창당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 지지율에서도 민주당을 압도하고 제1야당으로 우뚝 섰다.

이리되자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간의 신경전도 가열되었다. 26일 광주를 찾은 안철수 의원이 민주당을 낡은 세력이라고 비난하자 민주당 측에서도 즉각 반격에 나섰다. 같은 날 광주에서 출판기념회를 연 추미애 의원이 이를 반박했으며 광주가 지역구인 박혜자 의원도 비판하는 등 상호 간에 난타전이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민주당 박기춘 사무총장은 안철수 신당과의 선거연대는 없다라는 극단적인 발언까지 한 상황.

3.2. 엇갈리는 전망[편집]

일단 안철수 의원이 신당창당의 액션을 내보이면서 잠잠하던 안철수 바람이 다시 불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안철수 신당에 대해서 우려스러운 시각을 보내고 있다.

우선 안철수 신당의 지지층이 견고하지 못하다는 점이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안철수 신당의 지지층을 분석해보면 민주당 지지층과 무당파 성향의 지지층이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세대별로는 40대 이하의 젊은층들의 지지가 높은 상황이다. 그러나 이들은 선거때에는 높은 투표율을 기대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는 지적이다. 2-30대의 젊은층들의 투표율은 5-60대 장년층에 비해서 저조한 경향이 있다. 또한 무당파 성향의 유권자들은 결속력이 그리 강하지 못하고 얼마든지 지지를 철회할 수 있는 지지층이란 걸 감안한다면 이들만을 믿는건 너무 무모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한 5-60대 이상에서 안철수 신당의 지지세가 크지 않다는 부분도 심각한 숙제가 될 개연성이 높다.

또한 지역의 측면에서 보면 호남과 서울에서 안철수 신당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반면, 영남권과 충청권은 상대적으로 저조한 분위기라는 부분도 걸리는 대목이다. 이는 새정치 추진위원회의 공동위원장들의 지역출신만 봐도 드러난다. 이계안 전 의원은 서울, 박호군 전 과기부 장관은 인천, 윤장현 전 YMCA 이사장은 광주, 김효석 전 의원은 전남 출신이다. 딱 안철수 신당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지역 출신들로만 안배가 되어 있는 것.

18대 대선 결과 세대별로 20-40대는 5-60대의 작심투표에 밀렸고, 지역별로는 영남과 충청이 결합하면 아무리 호남과 서울이 결합해도 밀린다는 결과가 나온 이상 안철수 신당도 5-60대 이상의 중장년층과 영남,충청권에 대한 대책이 나와야 되는데 현재까지 드러난 상황으로 보면 딱히 이들에 대한 대책은 없어보인다.

또한 새정치라는 것을 구현하는 것을 보여주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 참신한 인물인데 정작 새정추에 참여한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대부분이 민주당 출신들이란 것도 우려스럽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지어 과격하게 비난하는 측에서는 민주당에서 공천받지 못하는 비주류들이 안철수 의원 쪽에 가서 붙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올정도. 이런저런 부분들을 모두 합쳐서 생각해보면 결국 참신한 인물을 찾는 데 실패한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일련의 우려에 대해서 반박하는 시각도 많다. 안철수 신당의 지지세가 호남과 수도권이라는 야권 지지성향이 강한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것은 맞지만 과연 그것을 나쁘게만 볼 필요가 있냐는 것. 아무것도 없는 영남에서 맨땅에 헤딩하는 것보다는 일단 신당의 기반을 구축하고 나서 영남과 충청권을 공략하는 게 정석이라는 것이다. 또한 호남과 수도권에서 안철수 돌풍이 거세지면 얼마든지 영남과 충청권등으로도 확산될 수 있기 때문에 아직 신당의 확장성을 평가하는 것은 이르다는 지적이 있다.

그런데 안철수 신당의 지지도가 기존에 등록된 원내정당의 지지도를 조사한 뒤, '안철수 의원이 신당을 창당하면 어느 정당을 지지하겠습니까' 형태의 질문을 했기 때문에 나타난 거품이라고 드러나 안철수로서는 큰 위기가 되었다. 실제로 안철수 신당을 원내정당중 맨 뒤의 정당으로 놓고 조사한 결과 민주당과 지지율이 비슷한 것이 내일신문중앙일보의 여론조사에서 드러났다. 안철수 신당으로서는 새정치에 대한 기대심리를 어떻게 창당 후에도 유지할지가 과제가 되었다. 이 조사에서 호남사람은 민주당을 두 배 정도로 더 지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새정치라는 이름에 사용하는 당명에 제약이 생기고, 기호의 경우 신당보다 의석이 많은 정의당이 통일기호 대상이 아니어서 정의당이 나오는 곳은 5번, 안 나오는 곳은 4번이 되는 것도 악재이다.

반면 안철수 신당의 등장으로 구 야권의 중심인 민주당이 혁신의 길에 들어서면 오히려 두 정당의 건설적인 경쟁이 야권 전체의 확장성을 높일 수도 있다는 낙관적인 분석도 나온다. 안철수 신당과 민주당이 시너지를 내는 경쟁을 하게 되면 되려 야권 바람이 강하게 일어나 2014년의 지방선거에도 긍정적인 결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

결국 이런 엇갈린 전망은 2014년 지방선거의 전개과정과 결과가 판가름해줄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3.3. 이후[편집]

11월 말 창당선언을 하긴 했지만 구체적인 창당 일정이 나오지 않아 이런저런 말을 낳던 가운데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을 영입하면서 신당의 구체적인 모양새가 갖춰지기 시작했다. 이후 안철수 의원보다는 윤여준 대표가 나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

결국 2014년 3월에 공식적으로 당을 만들기로 하고 6월 지방선거에 17개 광역자치단체 전부에 후보를 내기로 했다. 당초 지방선거 이후에 창당이 이뤄질것으로 보였지만 인재영입도 지지부진하고 지방선거의 기호문제도 달려있는 터라 일단 깃발을 꽂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듯.

안철수 신당의 구체적 창당 움직임에 민주당은 강력하게 반발하는 중이다. 심지어 윤여준 대표는 공개적으로 박원순 시장에게 지난번에 양보했으니 이번에는 양보하라라는 노골적인 발언까지 서슴치 않고 내놓는 상황. 박원순 시장은 시민을 위한다면 100번이라도 양보할 수 있다고 반응해 안철수 신당이 자신보다 나은 후보를 낼 경우에는 양보한다는 입장을 밝혔다.[13] 이 입장 표명은 박원순 시장이 상당수의 유권자들에게 튼튼한 지지를 받고 있고, 박원순 본인도 자신의 시정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양보 거부"의 완곡한 표현이라는 평가도 있다.

3.4. 창당 준비 작업[편집]

1월 27일 '새정치신당'이라는 창당준비위원회에 사용할 임시 당명을 정하고 당명은 공모하기로 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새정치신당이 새정치국민의당(새정치당)과 유사할 수 있다는 공문을 보냈다. 새정추 측은 2월 14일까지 공모를 진행했다. 2월 17일 창당을 선포하고 당명을 정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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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당명은 '새정치연합'으로 결정.

2월 24일기초자치단체장, 기초의원 무공천을 약속하였다.

4. 새정치민주연합 창당[편집]

갑자기 3월 2일 민주당과 통합 후 신당 창당을 발표했다.

안철수의 독자 신당 창당을 포기한 것이다. 그동안 신당 창당을 위해 함께 했던 사람들과 논의한 후 결정한 것이 아니라 안철수 혼자 결정했다. 그래서 일부 안철수 지지자들이 배신감을 느끼고 등을 돌리기도 했다.

통합방식은 제3지대에서 민주당 선도탈당파와 함께 신당을 우선 창당한 이후 민주당이 당 그대로 흡수되어 통합되는 형식을 취하게 되었다. 안철수 의원이 제3지대 신당의 대표를 우선적으로 맡게 되었고, 이후 잔여 민주당이 합당을 하면 김한길 현 민주당 대표가 공동대표를 맡기로 하였다. 즉 통합방식은 과거 김한길 대표가 주도했었던 대통합민주신당의 방식과 거의 비슷하다고 보면 될 듯 싶다.

신당의 이름은 새정치민주연합으로 결정 되었고, 2014년 3월 25일 새정치연합의 창당준비위원회는 정식 해산하였다.

5. 두 번째 신당 창당[편집]

  • 새정치민주연합 분당, 안철수/정치 항목 참고

  • 2015년 12월 13일, 새정치연합의 창당 주역인 안철수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 탈당을 선언하고 정권교체를 위해 독자세력화 노력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앙일보 기사에서 나온 내용에 따르면 이계안 의원(서울), 송호창 의원(경기)[14], 정연호[15] 변호사(경남)가 안철수 신당 재건 추진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하며, 옛 안철수 신당(새정치 연합)의 전국 17개 시·도당 조직도 지난해 3월 민주당과 합당 당시 공동 위원장·사무처장 등으로 남아있다가 최근 ‘새정치네트워크’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

  • 기사 내용을 종합해보면 새정치네트워크와 안철수 의원이 거의 복원했다는 18대 대선 당시 대선 조직(진심캠프 등), 현재 활동 중인 정책네트워크 내일 등의 조직을 함께 이용하여 '새정치연합'의 이름은 아닐지라도 새정치연합을 계승한 제3당 창당에 공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

  • 다만 안철수의원 입장에선 당명을 무엇으로 해야할지 곤란할 것으로 보인다. 새정치연합은 2015년 12월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의 약칭으로 사용되고 있으며[16] 차별화가 필요하기에 고심이 깊어질 듯. 새정치를 당명에서 사용하지 않았다간 본인의 브랜드가 나타나지 않고 새정치를 당명에서 사용했다가는 당명 작명의 선택지가 줄어들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새정치민주연합과 구분이 안 되는 만큼(새정치민주연합이 당명을 이미 바꿨다고 하더라도) 좀 더 상황을 지켜봐야하는 것으로 보인다.

    • 마지막에 언급한 당명 문제는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나름 심각한 문제이다.

  • 2016년 1월 8일, 안철수가 창당한 당의 이름은 국민의당이다. 예상했던 바와 다르게 기존 새정치라는 이름이 빠졌다. 기사

6.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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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른 한자 문화권 국가에서는 '새' 부분을 新으로 옮겨 번역했다. 그래서 중국어에서는 정체자로 新政治聯合, 간화자로 新政治联合이 된다. 일본어의 경우 신자체 도입 이후 한자 제한에 따라 聯이 連으로 바뀌어 新政治連合으로 적고(굳이 구자체로 쓰자면 중국어의 정체자 표기와 동일함).[2] 실제로 창당되지 않았지만 창당됐을 경우 안철수, 송호창, 박주선, 강동원 의원의 4석이 됐을 것이다. 다만 박주선 의원은 나중에 참여했고, 강동원 의원은 임의로 참여를 선언한 것에 가까워 보인다. 실제로 이 새정치연합 창당을 취소하고 민주당과 합쳐 새정치민주연합을 만든 뒤로 안철수 의원 등과 강동원 의원이 특별히 함께 활동한 적은 없다. 실제 창당 과정에 깊이 관여했던 국회의원은 안철수, 송호창 의원뿐. 그 송호창 의원도 안철수 의원 탈당을 따라 나서지 않은 건 함정 대신 민주당에 있던 다른 의원들이 안철수 의원을 따라서 탈당했다[3] 현재는 폐쇄. 본래 주소는 '국민과 함께 하는 새정치추진위원회'(새정추) 시절에는 goingtogether.net였다가 당명을 정하고 창준위를 발족하면서 saejeongchi.org로 옮겼다(아카이브된 스냅샷). 참고로 안철수 의원이 2015년 12월에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해 신당 창당 구상을 밝힌 뒤 개설한 홈페이지는 saejeongchi.com이었고, 이 주소는 신당의 당명이 국민의당으로 당명이 확정된 뒤 새 홈페이지 주소로 리다이렉트 조치하게 되었다.[4] 트위터 계정과 페이스북 커뮤니티는 새정치민주연합 창당 직후까지 잠시 운영되다가 방치 중이다.[5] 안철수 의원이 창당에 앞서 만들었던 조직. 언론사에서는 그냥 '새정치추진위원회'만 적는 경우도 있으나 '국민과 함께 하는 새정치추진위원회'가 정식 명칭이었다. 로고는 위 표에 보이듯이 '국민과 함께 새정치'로만 적었는데 이게 그대로 창당을 취소했던 새정치연합의 임시 로고로도 쓰였다.[6] 이 모두 '새로운'(new)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new가 두 번 들어간다는 비판이 있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새정치국민의당이 약칭을 새정치당으로 등록해 놨기 때문에, 유사당명 금지에 위배될 수 있었다. 그래서 새정치신당 대신 새정치연합을 사용하기로 결정하였다.[7] 안철수 의원이 독자적으로 추진했던 새정치연합은 완전히 창당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적으로 보자면 '민주당+새정치연합→새정치민주연합으로 신설 합당'이 아니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창준위가 발족됐을 땐 새정치연합 창준위는 그대로 유지하였다가 새정치민주연합이 정식 창당되기 직전에 해산되었다. 그리고 새정치민주연합에 합류할 사람들은 새로 창당된 새정치민주연합에 개별 입당하였으니 정치적으로는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안철수 독자 신당)의 합당으로 볼 수 있어도 법적으로 보자면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합당이 아닌 셈이다. 단, 새정치민주연합 창당 과정에서 다른 형태의 합당은 있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창당되자마자 기존 민주당을 흡수 합당했기 때문.[8] 다만 새정치민주연합 창당준비위원회가 발족했을 당시에는 선관위에 새정치연합을 약칭으로 등록하지 못했었다. 기존에 안철수 의원이 단독으로 만든 새정치연합 창준위가 아직 존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애초에 새정치연합을 새정치민주연합의 약칭으로 등록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미 기존 새정치연합 창준위측과 민주당이 새정치민주연합의 약칭으로 새정치연합을 쓰기로 합의는 해놓은 상태였다. 그래서 새정치연합 창준위가 해산되고 새정치민주연합이 정식 창당될 때 선관위에 새정치민주연합의 약칭으로 새정치연합을 추가했다.[9] 참고로 새정치연합 창준위와 새정치민주연합 창준위가 공존했던 시기에는 안철수 의원이 두 창준위 모두에 대표자로 이름을 올렸고(새정치연합 창준위에서는 단독 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창준위에서는 공동 대표), 기존 정당인 민주당의 대표자로 등록돼 있던 김한길 대표 역시 새정치민주연합 창준위의 공동 대표로 이름을 올리는 희한한 상태였다.[10] 물론 '새정치'와 '안철수'를 당명에 같이 넣으면 유사당명에 저촉되지 않겠지만 안철수를 당명에 넣는 것은 2014년 1월에 신당 측에서 안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11] 결국 당명을 -당이 아닌 -연합 으로 정하는 방법으로 해결했다.[12] 문재인 캠프에 참여했었다.[13] 안철수 의원이 직접 서울시장에 출마한다는 얘기도 있었으나 이는 본인이 직접 부정했다.[14] 잔류를 선언했다.[15] 안철수 의원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현재 소장이다.[16] 물론 현재 진행 중인 당명개정으로 바뀔 가능성이 99%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