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대표 직인 날인 거부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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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황
2.1. 김무성과 친박의 공천 다툼2.2. 직인 날인 거부2.3. 최종 공천 결과
3. 결과4. 여담

1. 개요[편집]

박근혜에게 날린 김무성의 빅엿
역사를 다시 쓸 나비효과에 일조할 작은 날갯짓의 시발점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가 일부 선거구 공천에 대한 공천관리위원회(공관위)의 추천장에 대표 직인 날인을 거부한 사태다.

2. 상황[편집]

2.1. 김무성과 친박의 공천 다툼[편집]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김무성을 위시한 비박계는 상향식 공천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을 줄기차게 이어왔다. 김무성의 처음 목적은 오픈 프라이머리(완전 국민 경선제)였지만 친박계의 견제를 이겨내지 못하고 뜻을 접어야 했다. 대신, 국회의원 후보를 아래에서 위로 공천하는 상향식 공천을 통해 민주적인 공천을 뿌리내려야 한다며 이 부분에 있어서는 양보를 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내비쳤다.

사실 김무성의 이러한 입장은, 총선이 눈앞에 다가오면서 박근혜정부의 연이은 실정 탓에 박근혜 대통령의 인기가 점점 떨어지자 그에 대한 반사 이익으로 유승민 의원으로 대표되는 비박계의 인기가 올라가던 추세였기 때문에, 여론조사의 반영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상향식 공천으로 방침을 정할 경우 친박계가 경선에서 우수수 떨어질 것이라는 계산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를 잘 알고 있었던 친박계는 위에서 내려 꽂는 전략공천과 다를 바 없는 '우선 추천식 공천'을 주장하며 김무성 대표와 강하게 부딪쳤다.

김 대표가 위에서 아래로 가는 전략공천(하향식 공천)을 극도로 꺼리는 이유가 또 있었다. 위에 서술되어 있는 속셈도 있지만 본인 스스로도 이른바 "공천 학살"의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두 번이나 공천 배제 대상이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한나라당의 당권을 잡은 친이계가 대통령 후보 경선을 거치면서 철천지원수 사이가 된 친박계로 분류되었던 정치인들을 공천에서 대거 탈락시켰다.[1]

친이계의 이러한 '공천 학살'에 극렬하게 반발한 친박계는 한나라당을 박차고 나와 친박연대라는 팬클럽 정당을 만들었고 이에 가담하지 않은 나머지 친박계 의원들은 '친박 무소속 연대'를 꾸려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김무성은 이때 '친박 무소속 연대'의 일원으로 출마해 살아남았고 이 시기까지만 해도 김무성 의원은 '원조 친박'이자 친박계의 좌장으로 불렸다.

그리고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박근혜 의원이 새누리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이 되면서 그간 비주류였던 친박계가 당권을 장악하게 됐다. 이때 김무성은 '세종시 수정안 파동'으로 탈박해 친이계 인사로 분류되던 시기였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친박계 공천 학살'에 대한 복수로 친이계를 공천 학살하였고 배신자로 볼 수 있는 김무성도 여기에 타깃이 되어 공천에서 탈락하게 되었다. 이때 김무성은 신당을 차려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려고 했지만 대선 승리를 위해서 뜻을 접고 당에 남아 다음 기회를 엿보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었다고 한다.#

공천권을 쥐게 되는 당대표가 된 다음에도 김무성은 청와대와 친박계의 등쌀에 밀려 공천을 관장하는 공천관리위원장도 자기 마음대로 임명하지 못했다.

이른바 '살생부' 파문을 포함해 새누리당의 공천관리위원장이 된 이한구 의원은 공공연히 김무성과 각을 세우면서 오히려 '당대표도 공천 심사를 받아야 한다'고 하는 등 독설적인 화법으로 김무성과 비박계를 연신 압박했다. 그 때문에 이 시기의 김무성은 엄청난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그래도 당원과 여론의 지지를 받아서 당대표가 됐는데, 공천관리위원회 심사장에 들어와서 공관위장 이한구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면서 심사를 받거나[2], 당대표의 권한 중 하나인 비례대표 선정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거나,[3] 심지어 '박근혜의 황태자'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핵심 친박 인사였던 윤상현 의원에겐 취중이라고 주장하긴 하지만 "김무성 그 새X 죽여버려." 같은 망언까지 들을 정도로 안습한 처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래도 어떻게 자기 세력 지키기에는 성공해서 이재오 의원 등 대표적인 비박계 인사들이 잘려나가는 와중에도 김무성계 의원들은 제3차 공천 학살에서 살아남았다.[4] 그 때문에 친박계와 거래를 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었다. 항간에서는 김무성이 몸을 낮춰서 대업을 이룬 한신이 아니냐는 설도 있다. 대업을 못 이루면 말짱 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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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최종 공천이 완료된 24일 새벽, 새누리당 당사 인근에 있는 감자탕집에서 당 지도부 인사들끼리 회식을 하는 장면을 박종희 공관위 위원이 본인의 SNS에 올린 것이다.

한편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공천 과정에서 공관위장 이한구는 유승민과 이재오를 공천에서 탈락시키기에는 명분이 부족하여 역풍이 우려되고, 경선을 시키자고 하자니 친박계의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자 공천 마감일이 가까울 때까지 이들 지역구에 대해 공천 결정을 미루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유승민과 이재오가 탈당한 뒤 이 두 사람의 지역구를 포함해 총 5개 지역구에 친박계 후보를 공천한다고 하던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와 친박계의 의지가 실현을 앞둔 상황이었다. 결국 23일 오후 11시경 유승민이 탈당 선언을 하며, 이대로만 가면 자신들이 원하는 계획대로 가게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새누리당의 공천 전쟁은 친박계의 압승으로 굳어지는 듯 했지만...

2.2. 직인 날인 거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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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오후 김무성은 기자회견을 열어, 해당 선거구에 대한 공관위의 추천장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며, 후보자 등록이 마무리되는 3월 25일 저녁까지는 최고위를 열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광역시 영도구로 내려가 버렸다.

이로 인해 새누리당에는 런닝맨: 옥새를 찾아라! 부산 편 헬게이트가 열렸다. 선거법상 후보자 추천장에는 당인과 당대표의 직인 두 개의 날인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국, 전원책 예언 적중 도장이 없어져서 그랬다면 다시 파면 되겠지만, 도장 주인이 날인을 거부하는 상황[5]에서 최고위와 원내대표 멋대로 직인을 함부로 쓰면 법적 고발은 불가피할 것이고(각 당대표의 직인 사본이 전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보관되어 있으니 위조도 못 한다), 그렇게 되면 당선된 후보자들도 당선 무효 처리가 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일어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김무성 대표가 최고위 개최를 하겠다고 선언하고 보란 듯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헌 30조[6]에 해당하는 상황이라고 우길 수조차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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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 이후 김무성은 기자들을 몰고 다니며 영도대교에서 인생샷을 찍는 등, 여유롭게 지역구를 활보했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이를 당과 협의 없는 무책임한 기자회견이고, 부산으로 내려가 최고위 개최를 요구할 것이라는 긴급 브리핑을 내놓았고, 서청원·이인제 등 친박계 최고위원들 역시 김무성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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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야~~소주맛 좋네~

그날 밤 부산에 도착한 원유철과 김무성은 자갈치시장의 한 횟집에서 간신히 회동한 뒤 다음 날 상경하였다. 회동 후 각자의 입장 차이만 유지한 듯, 원유철은 최고위 개최를 수락하였다는 발표를 내놓았고, 김무성 대표는 점심을 먹고 당사에 가서 최고위는 열지 않고 당무만 보겠다고 하였다. 기사 이는 유고라는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당사에 있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2.3. 최종 공천 결과[편집]

그러나 11시 30분에 열린 최고위에 참석해 친박계 최고위원들과 5시간에 걸친 협상 끝에 유승민의 지역구인 대구광역시 동구 을과 이재오의 지역구였던 서울특별시 은평구 을, 그리고 송파구 을에는 공천을 하지 않고, 대신 대구광역시 동구 갑과 수성구 을, 그리고 달성군에는 공천을 하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유승민·이재오의 지역구를 지켜내면서 실질적인 판정승을 거두었다. 특히 유승민계·친이계의 좌장인 두 의원을 지켜냄으로써 향후 정국에서 비박계의 구심점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한 2년 동안 지속되어 왔던 청와대를 상대로 권력 투쟁에서 오랜만에 우세 승을 보인 것도 주목할 만한 성과였다. 그러면서도 핵심 친박 정종섭·추경호를 살려주어 체면치레는 하게 해주는 방법으로 계파 갈등 봉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음과 동시에 이면적으로 실제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유승민을 안전하게 연착륙시켜서 대선 후보로의 급부상을 견제하고 실질적으로 무소속으로 출마했을 때 당선이 아주 위험한 이재오를 구제하여 친이계와 손을 잡는 4가지 토끼를 동시에 잡은, 평소의 곰과 같은 모습이 아닌 여우 같은 행보를 보여줬다.

공천, 무공천 대상자가 정해지자 이재만 전 동구청장은 당 최고위원들을 만나려고 했으나 진입을 거부당하고 "온 몸에 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분하다!!"며 분노를 토해냈으며, 유재길 후보는 법적 대응도 감수할 것이라는 성명을 내놓았다. 유영하 후보는 당의 결정에 승복하겠다며 담담하게 받아들인 것과 대조적이다.

이후 중앙일보에서 기사를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이 공천 협상 결과는 원유철이 주도했다고 한다. 당인도 김무성이 밝힌 대로 당사에 있었다고 한다. 이 사건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은 김무성이 '30시간의 법칙'[13]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고, 유승민의 지역구 같은 경우는 청와대에서 동의를 해준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왜냐하면 현재 유승민 지역구의 여론은 무소속 유승민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은데, 이 경우 청와대에서 사실상 직접 공천한 이재만 후보가 패배하게 되면, 청와대의 입지가 좁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와대에서 합의를 해줬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새누리당에서는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이 사태를 선거 홍보에 써먹는 비범함을 선보였다.

3. 결과[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정당별 결과/새누리당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그러나,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우리나라 선거 역사상 손에 꼽힐만한 대반전이 일어나는 바람에 사실이든 아니든 이러한 예측들은 죄다 물거품이 되고 말았고 새누리당은 선거에서 참패하고 말았다.

4. 여담[편집]

옥새 투쟁으로 김무성이 지원하려고 한 무소속 후보들은 결말이 좋지 못했다. 새누리당 후보 공천을 추인했지만 속마음으론 무소속 후보를 밀었을 대구광역시 수성구 을에선 컷오프(공천 탈락)에 반발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주호영 의원만 생존, 새누리당 무공천 지역에서는 유승민만 생존, 이재오와 김영순 전 송파구청장은 낙선했다.

김영순은 새누리당 출신 군소 후보가 1명 있는데도 새누리당 후보가 없는 틈을 타서 '유일 보수 후보'라는, 사실과 다른 발언을 하다가 허위사실공표죄 선거법 위반 논란까지 휩싸여 버렸고, 선거법 문제를 빼놓더라도 새누리당 우세 지역이었던 곳에서 참패를 당해 재기가 어려워졌다. 만약 김무성 대표가 '진실한 친박'(진박)으로 알려진 유영하를 공천했다면 김영순 후보이 그런 발언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떨어졌더라도 재기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야당이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의 분열로 인해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원내 제1당 자리를 지킬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였고,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도 슬슬 끝나가는 레임덕이나 다름없으니까 김무성 자신이 유력한 차기 대권 후보로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승리로 이끈 뒤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 "김무성이 박근혜보다 존재감이 더 강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일부러 옥새런을 일으키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결국 옥새런을 단행한 진짜 이유도 새누리당이 늘 하던 대로 TK, PK의 유권자를 등에 업고 다수 당을 차지할 수 있다는 자만심에 공천 과정에서 어떤 추태를 부려도 "야이~ㅎㅎ 그래서 새누리당 안 찍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저지른 일이었다. 정치인의 모든 행위는 곧 정치적인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정치인 김무성이 왜 영도대교에서 사진을 찍었는지 생각해보자.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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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과정에서 김기춘, 홍사덕, 서청원, 이규택, 박종근, 이해봉, 한선교, 김무성, 김세연 등이 공천에서 탈락했다.[2] 이에 대해 전원책 변호사는 도대체 투표로 뽑히지도 않은 공관위장이 무슨 자격으로 당원들의 투표로 뽑힌 당대표를 심사하냐며 당 내부의 민주주의를 철저히 기만하는 행위라고 노발대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군말 없이 심사 받은 김무성까지 같이 디스했다.[3] 이는 썰전 특별편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의 발언을 통해 밝혀지는데, 이준석은 당시 후보 지원 유세 중 동석했던 비례대표 후보들의 얼굴과 이름조차 몰라볼 정도였다고 한다.[4] 여기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김성태, 하태경, 정미경, 서용교, 박민식, 김을동 등이다.[5] 도장 채로 갖고 내려갔다고 흔히 알려졌지만, 다음 날 김무성이 당시 도장은 안 가지고 내려갔다며 인터뷰에서 밝혔다. 도장이 아니라 도장을 찍는 권한이 관건이었기 때문.[6] 당대표가 사고나 해외 출장 등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원내대표 등의 순서로 직무를 대행한다.[7] 유재길은 국민의당 유성엽 의원의 친동생이다.[8] 박근혜를 변호했던 그 변호사다.[9] 문고리 3인방 일원과 동명이인이고 자유한국당 최고위원 중 한 명이다.[10] 박근혜 정부의 행정자치부 장관 경력이 있다.[11]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으로 인해 추천장이 필요한 상황이었다.[12] 공천파동에 반대에서 탈당한 주호영와 겨루었고, 주호영이 당선되었다. 나머지 둘은 최종 당선되었다.[13] 김무성 대표가 자신이 한 말을 30시간 이내에 철회한다는 데에서 나온 법칙[14] '지역 발전 예산 김무성이 책임지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이 대문짝만하게 기사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