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도동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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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명칭의 유래3. 활동4. 구성5. 동교동계와의 관계6. 주요인사(YS키즈를 제외한 상도동계 직계)7. 여담8. 함께보기9. 둘러보기

1. 개요[편집]

김영삼 전 대통령의 직계 정치세력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2. 명칭의 유래[편집]

김영삼이 살아 생전에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1]에 거주했기 때문에, 1980년대 들어서 언론에서 상도동계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김영삼은 1950년대 정치에 입문해서 1970년대 부터는 민주화를 외치는 야당의 중진의원이자 대통령 후보급으로 성장했지만, 당시에는 김영삼계 혹은 김영삼의 호를 따서 거산(巨山)계라고 했지 상도동계라는 표현은 쓰이지 않았다. 경쟁관계인 동교동계 역시 마찬가지로 1970년대에는 김대중계 혹은 김대중의 호를 따라서 후광계라고 했지 동교동계라는 표현은 없었다.

상도동계 혹은 동교동계라는 표현은 신군부(하나회)가 정권을 장악하면서 김영삼, 김대중과 그 직계 정치인들을 모조리 정치활동규제로 묶어서 제도정치권에서 추방하면서 생겼다. 졸지에 거리로 내몰린 이들은 재야 세력들과 함께 민주화 투쟁에 나섰는데, 독재정권의 언론통제에 묶여서 김영삼, 김대중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쓰기 부담스러워하던 언론사들이 이리저리 돌려서 쓰면서 각자의 거주지에서 따온 상도동계, 동교동계라는 명칭이 등장했다. YS, DJ, JP 등 정치인의 이름이 아니라 이니셜로 보도하는 관행도 역시 정권에 찍혀서 쫒겨난 야당정치인들을 직접적으로 쓰기 힘들어하던 언론사들이 이 시기에 만들어낸 것이다.

3. 활동[편집]

이들은 군사독재 정권 시기에 일치단결해서 김영삼의 집권과 민주화를 위해서 뛰었다. 3당합당으로 집권당으로 변신한 이후에도 변함없이 김영삼에 대한 충성심을 발휘해서, 민주자유당 내에서 소수파의 한계를 딛고 결국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에 성공했다.

김영삼이 1997년 외환 위기를 막판에 맞아 역대 최악의 지지율을 가지고 퇴임을 하자 이들도 대부분 정치일선에서 물러나게 되었다.[2] YS 세력도 이미 한나라당에서 이회창이 당권을 장악한 후라 상도동계 정치인들은 각자의 길을 찾아서 흩어졌다. 정치세력으로선 현재로선 사라졌고, 나이가 들거나 다른 계파에 흡수합병되어 현재 정치권에 상도동계의 기치를 직접 내걸고 활동하는 현역은 거의 없다.

참고로 1990년 3당 합당 당시 상도동계의 막내가 바로 부산에서 더민주 깃발로 당선된 김영춘, 박재호 제 20대 국회의원이고 그 윗세대가 바로 새누리당 전 대표 김무성이다. 즉, 김무성 세대는 대부분 민자당 계열로 흡수됐고 다른 상도동계와 오래 지내지 않은 김영춘 세대[3] 는 민자당 계열로 흡수됐다가 민주당 계열로 이적하거나 바로 민주당 계열로 흡수되었다.

현재 김덕룡과 김영삼의 둘째 아들 김현철 등, 원조 상도동계 인사들 상당수가 공식적으로 문재인 지지선언을 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까지도 김영삼 대통령 및 상도동계가 한나라당의 막후에서 끼치는 영향력은 여전히 강대했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상도동계와 매우 껄끄러운 관계이자 민정·공화계의 후신인 친박이 보수계 정당을 장악해 이질감이 강해졌고, 역으로 민주당계 정당은 김대중 시대까지는 상도동계와 물과 기름처럼 거리가 있었지만 2010년대의 친노, 친문과 상도동계는 노무현이 김영삼에 의해 발탁됐다는 점이나 PK 연고 계파라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상도동계 자체가 정치지형에서 실질적 영향력은 거의 사라진 상태라 유명인사가 한 손 보태는 이상의 의미는 별로 없는 상태다.

4. 구성[편집]

상도동계의 보스는 당연히 김영삼이고, "좌동영 우형우"라고 김동영(1936년생, 1991년 작고)과 최형우(1935년생)가 중간보스급이었다. 그외에 서석재(1935년생, 2009년 작고), 김덕룡(1941년생), 강삼재(1952년생)[4]그리고 비교적 늦게 가담한 서청원(1943년생) 등이 중진급이었다. 김무성(1951년생), 정병국(1958년생)의 경우 상도동계에서 연령이 적은 세대에 속하고, 막내는 김영춘(1961년생), 박재호(1959년생)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상도동계의 대다수는 호남 출신 김덕룡, 경북 출신 유성환, 충청 출신 서청원, 이신범, 경기 출신 최기선등 일부를 제외하면 김영삼과 같은 부산, 경남 지역출신들이 많았다. 당장 위에 언급된 중진급을 보면 김동영-경남 거창, 최형우-울산, 서석재-경남 창원, 강삼재-경남 마산 등으로 군사정권시기부터 부산 경남 지역을 근거로 활발히 활동했고, 1980년 5공화국 시기에 가면 상도동계가 야당내에서 부산, 경남 지역을 사실상 독점하게 된다.[5] 문제는 3당합당으로 이들이 통채로 보수세력에 편입되면서 영남에는 개혁야당 세력이 사실상 사라지는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6][7]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서 김영삼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한 김덕룡이 유일한 호남출신이다.

상도동계는 3당합당 이후 거의 대부분이 민주자유당으로 들어가는데, 여기서 김영삼과 친분이 생겨 14대 대선의 민자당 경선 때 김영삼을 지지한 일부 민정계 정치인들을 상도동계의 별칭인 민주계에서 따와[8] 신민주계라고 하기도 한다. 신박과 비슷한 개념이다. 대표적으로 강재섭, 김형오, 이상득[9], 박희태, 김기춘, 김윤환 등이 있다.[10]

그 외에, 상도동계로 분류되진 않지만 김영삼이 정계로 끌어들이며 그의 밑으로 들어와 정치인으로 입문한 사람들은 'YS키즈' 라고 불리며, 손학규, 김문수, 이재오, 이회창, 노무현, 이명박, 홍준표, 정의화, 박형준, 안희정[11]등이 대표적이다.[12] 김영삼의 당에 그대로 남았던 사람이 대부분이라 대다수는 신한국당~한나라당 당적을 가졌고(손학규는 후에 탈당해서 민주당 계열로 갔으나 바른미래 소속이 돼면서 다시 범 보수정당 소속이 되었다.), 노무현과 안희정은 민주자유당 합류 거부 후, 김대중의 세력으로 들어가게 되었다.(본 문단에 있는 인물들은 YS키즈로는 분류되나, 상도동계로는 분류되지 않는다.) 문재인의 경우는 김영삼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으나, 그가 친노의 직계로 분류되고 특히 김영삼과 동향인 거제도 출신이라는 점에서 완전히 연관성이 없다고도 할 수는 없다. YS키즈의 키즈? YS그랜키즈

5. 동교동계와의 관계[편집]

군사독재 정권 시절부터 민주화 이후까지 정말 오랜 기간동안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끌던 동교동계와는 그야말로 애증(愛憎)의 관계였다. 두 세력은 독재정권 시기 때론 경쟁하고 때론 협력하면서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이끌었으나, 1987년 13대 대선을 앞두고 양김씨가 야권후보단일화에 실패하면서 영원히 갈라서게 되었다. 이후로는 십수여년간 서로 철천지 원수마냥 처절하게 싸웠다.

그러나 이제는 양쪽 다 서로 모시던 보스가 각자 대통령도 한 번씩 한 다음에 세상을 떠났고, 이제는 다들 늙어서 대부분이 정계에서 물러났기 때문인지 그냥저냥 모여서 친목회도 하는 등 무난하게 지내는 듯 하다. 정치세력으로선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고, 잔존 세력도 김영삼 세력은 한나라당 당권을 이회창, 이명박이 차례로 장악하며 뺏기고[13][14][15], 이명박 이후로는 강삼재, 김덕룡과 둘째 아들 김현철이 문재인 지지를 선언하면서, 원로들을 제외하면 상당수가 친이계열이나 민주계열정당으로 들어가게 되었다.[16] 동교동계 역시 열린우리당 분당, 노무현 탄핵사건 등 이후 야당 내 주도권을 점차 상실하였고, 대부분 고령으로 인해 정계를 은퇴했거나 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일부 자유한국당 등으로 분산되기에 이른다.

6. 주요인사(YS키즈를 제외한 상도동계 직계)[편집]

  • 김동영(정치인) : 김영삼의 왼팔 아래의 최형우와 함께 좌동영우형우로 불렸다. 1991년 간암으로 작고.

  • 최형우(정치인) : 상도동계의 좌장. 김영삼의 오른팔.

  • 서석재

  • 김명윤

  • 김수한

  • 김덕룡

  • 김영춘 : 지속적으로 상도동계의 막내로 언급되었고, 김영삼도 실제로 상당히 김영춘을 총애하고 아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당시의 상도동계 직계로써는 드물게 한나라당을 탈당하고[17] 열린우리당으로 이적하면서 친노계로 편입되었다. 현재도 더불어민주당 소속이고, 2017년 6월 문재인 정부 초대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 박재호 : 김영춘과 함께 상도동계 직계의 막내로 통하며, 김영춘 및 타 상도동계 직계 인사들과 마찬가지로 통일민주당-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 소속이었다가 열린우리당으로 이적했고, 현재도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 최기선 : 김영춘, 박재호와 마찬가지로 한나라당 탈당 이후 잠시 자유민주연합(...)에서 머물다가 탈당하고 열린우리당으로 입당했다. 이 직후에는 민주당계 정당에 계속 잔류했으며, 이후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이 바뀌고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에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을 역임하다 2018년 2월 지병으로 별세하였다.

  • 서청원 : 상도동계 출신 친박 좌장인데, 현재는 상도동계 후배들인 김무성, 정병국, 김영춘 등의 인물들이 모두 서청원을 상도동계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사실상 상도동계에서 제명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 김영삼 대통령 서거 2주기 때 김무성 등의 현역 상도동계 인물들은 행사내내 모두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서청원은 행사 30분 전에 미리 가서 짤막하게 인사하고 바로 갔다.

  • 강삼재

  • 김정수(정치인)

  • 황낙주

  • 박관용

  • 박종웅

  • 문정수

  • 김무성 : 한때 새누리당 당대표이자 옥새런 사건을 일으킨 그 김무성이 맞다. 당시에는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정치인 비슷한 이미지였고 김영삼을 꽤나 가까이서 보좌했다.

  • 정병국 : 나중에 이명박 정부 시절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친이계 중진이기도 하며, 이후 바른정당 초대 대표를 지냈다. 이후 유승민과 함께 바른정당의 공동 대주주 역할을 맡았으며, 바른미래당이 창당할 때 동교동계박주선, 이동섭과 합류했다.

  • 이성헌

7. 여담[편집]

추가바람

8. 함께보기[편집]

  • 김영삼

  • 동교동계 - 라이벌로 매우 유명했으나 양쪽이 이제 은퇴한 지금은 서로 화해한 상태로 알려져있다. 일부는 더불어민주당 혹은 바른미래당으로 들어가서 다시 하나가 되었다.

  • 친노 - 김영삼이 노무현을 정치인으로 만들어준 장본인이라, 노무현의 정치행적은 동교동계와 관련있지만 뿌리는 이쪽과 매우 연관이 깊다. 실제로 고향 또한 김영삼, 노무현, 심지어는 노무현의 후계자라 평가받는 문재인도 모두 PK 출신이며 3당 합당 이전에 김영삼에게 정계 입문을 권유받은 적이 있지만 거절했었다. 안희정의 경우에도 정계 입문은 김영삼 밑에서 했다. 이후 더불어민주당과도 연결된다.

  • 친이 - 김영삼이 이명박을 정치인으로 만들어준 장본인이며, 이명박을 밀어준 사람이기도 한데다 김덕룡[18], 정병국, 김현철 등의 이명박을 지지했던 인사들은 김영삼 세력이기도 했으며, 17대 대선 당시에는 대부분의 상도동계 직계들이 이명박을 지지했다..[19][20]

  • 친박 - 서청원이 대표적으로 친박에 편입되었으며, YS 키드를 통틀어서 이완구, 이인제, 김문수 등의 일부 인물들도 박근혜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는 중이다. 다만 한나라당으로 계승된 상도동계에서도 김영삼이 박근혜를 싫어했기 때문인지 이쪽으로 간 경우는 적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탈한 인물도 나타나고 있다. 김무성은 친박에서 금방 이탈한지라 탈박도 아닌 비박으로 불린다.[21]

  • 더불어민주당 內 일부 계파 및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지지선언을 한 상도동계 직계 인물들 - 김현철, 김덕룡, 강삼재 등이 대선에서 문재인을 지지했으며, 김영춘, 박재호 등도 현재 더불어민주당 현역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22] 일부는 친문으로 편입되었다.

  • 바른미래당 -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이 합당한 정당으로 정병국 등의 상도동계[23]가 존재한다.

  • 자유한국당 - 상도동계 정치인 중 한 명인 김무성의 계파인 친무가 전부 자유한국당 소속이다.

9. 둘러보기[편집]

[1] 김대중은 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동에 거주하였다.[2] 당시 지지율은 5%로, 이는 훗날 박근혜가 국민의 손에 의해 끌어내려지기 전까진 역대 최악의 지지율이었다.[3] 사실 김무성의 바로 밑 세대는 정병국이다. 정확히 말하면, 정병국의 세대까지가 민자당으로 간 것이다.[4] 강삼재는 연령대에 비해서 상도동계 내에서 서열은 높았는데 1981년에 국회에 입성해 정치를 시작했기 때문이다.[5] 반대로 호남지역은 동교동계가 완전 독점한다.[6] 부산, 경남 지역에서 3당합당에 반대하면서 김영삼과 갈라진 이기택, 노무현, 김정길(1945) 등은 애초에 상도동계가 아니다. 이기택은 1960년대부터 야당에서 활동한 중진급으로 친김영삼이긴 해도 김영삼의 부하는 아니었고(수평적 관계), 노무현은 김영삼의 추천과 상도동계의 조직력으로 국회의원이 되긴 했지만 상도동계보다는 재야진보세력에 가까웠다. 김정길도 야당 시절부터 상도동계 주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7]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부산,경남 지역에서 야당 후보들의 득표력은 잘해야 10%수준이었다. 최근 3~40%까지 올라온 것은 바로 부산지역 486들과 시민운동가들이 친노 간판을 쓴 것과 민주노총과 진보정당 운동으로 노동자계급표가 결집하면서부터다. [8] 상도동계의 당이 통일민주당이기 때문이다.[9] 이명박의 둘째 형 이상득이 맞다.[10] 여기서 경남 거제 출신의 김기춘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전부 TK 출신들로, 이들은 김영삼을 지지하면서 "우리가 남이가"식의 영남지역주의, 영남패권주의 의식을 대놓고 보여주었다.[11] 보통 노무현의 동지 겸 친노계의 대표 인사로 많이 알려져 있으나, 정계 입문은 김영삼 밑에서(정확히는 김덕룡의 비서관으로) 시작했다. 3당 합당 이후 노무현 등과 반발하면서 민주자유당을 탈퇴하고, 이후 노무현과 행적을 같이 하는 친노계가 된다.[12] 다만, 이회창은 이후 한나라당에서 김영삼을 내쫓아서 그런지 사이는 나쁘다.[13] 일부는 새로운 당권을 가진 세력으로 그대로 들어가서 중책을 맡았다. 친이계로 들어간 정병국, 홍준표나, 친박계로 들어간 김무성, 서청원이 대표적인 예이다. 근데 김무성이 친박으로 간 것은 자의반 타의반이고 그 기간도 얼마 되지 않는데다가 범친이로 분류되기도 하니 상당히 애매하다.[14] 다만, 박근혜한테는 상도동계 핵심 세력을 뺏겼다고 볼 수는 없다. 실제로 강삼재와 김덕룡, 차남 김현철은 문재인을 지지했고 이명박 이후로는 더불어민주당으로의 이탈도 상당하며, 일부는 바른정당으로 흡수되었다.[15] 김영춘과 박재호는 이회창이 당권을 잡고 있던 시절에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으로 이적했다.[16] 이것은 더불어민주당 핵심인재 중 문재인과 상도동계 핵심인사들의 문재인 지지선언 뿐만 아니라 박원순PK출신인 것 또한 한몫했다.[17] 당시 김영춘이 탈당하던 시기는 말할 것도 없고, 이명박 정부 시절까지도 한나라당은 김영삼과 상도동계의 영향력이 상당히 강했다.(상도동계의 세가 약해진 것은 새누리당으로 변하고 19대 총선 이후 친박의 세가 강해지고 친이계의 세도 약해졌을 때부터이다.) 그래서 김영삼이 그 당시 김영춘을 불러서 여기서 정치하지 뭣하러 힘들게 열린우리당으로 이적하냐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김영춘은 김영삼에게 "이 당민주정의당처럼 변하는데 제가 여기 남아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라고 대답하고 열린우리당으로 이적했다.[18] 특히 김덕룡의 경우, 이재오, 이상득, 박희태, 최시중과 더불어 친이 6인회의 구성원이기도 하다.[19] 다만, 김덕룡과 김현철은 18대 대선에서 문재인과 박근혜가 나왔을 때는 문재인을 지지했다.[20] 김영삼, 김덕룡과 대부분의 상도동계들은 이명박을 지지했으나, 강삼재는 예외적으로 이회창을 지지했다.[21] 허나, 김무성은 박근혜의 요청에 의해 당 대표였던 시절 박근혜를 보좌했지만, 이후 2009년경, 박근혜와 전혀 안 맞는다고 생각해서 박근혜를 멀리하기 시작했고, 이 때부터 친박이 아닌 범 친이계 비박으로 분류된다. 즉, 김무성의 경우는 친박에서 금방 이탈한 셈이다.[22] 김영춘의 경우 상도동계 직계로, 타 상도동계 직계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통일민주당-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 당적을 가지고 있었으나, 훗날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민주당계 정당(열린우리당)으로 입당한다. 이후 현재까지도 더불어민주당에서 활동하는 중이다.[23] 정병국은 친이계로도 동시에 분류된다.[24] 김영춘, 김덕룡, 김현철, 강삼재, 박재호, 최기선, 안희정, 문정수 등 범YS키즈나 상도동계 직계 또한 민주당계 정당에 소속되어 있어 틀을 삽입한다. (손학규는 현재 바른미래당 내의 YS키즈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