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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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쓰마 국2. 사쓰마 번
2.1. 개요2.2. 역사2.3. 트리비아2.4. 출신 인물
3. 현재의 지명
3.1. 사쓰마 군3.2. 사쓰마 정
4. 사쓰마 반도5. 전함

1. 사쓰마 국[편집]

일본의 옛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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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쿠리쿠도
北陸道

토산도
東山道

토카이도
東海道

키나이
畿內

산요도
山陽道

산인도
山陰道

난카이도
南海道

사이카이도
西海道

에치젠국
越前国

무츠국
陸奥国

히타치국
常陸国

야마시로국
山城国

하리마국
播磨国

탄바국
丹波国

키이국
紀伊国

치쿠젠국
筑前国

에치고국
越後国

데와국
出羽国

카즈사국
上総国

야마토국
大和国

미마사카국
美作国

탄고국
丹後国

아와지국
淡路国

치쿠고국
筑後国

엣추국
越中国

코즈케국
上野国

시모사국
下総国

카와치국
河内国

비젠국
備前国

타지마국
但馬国

아와국
阿波国

부젠국
豊前国

사도국
佐渡国

시모츠케국
下野国

아와국
安房国

이즈미국
和泉国

빗추국
備中国

이나바국
因幡国

사누키국
讃岐国

분고국
豊後国

노토국
能登国

시나노국
信濃国

무사시국
武蔵国

셋츠국
摂津国

빙고국
備後国

호키국
伯耆国

이요국
伊予国

히젠국
肥前国

카가국
加賀国

히다국
飛騨国

사가미국
相模国

아키국
安芸国

이즈모국
出雲国

도사국
土佐国

히고국
肥後国

와카사국
若狭国

미노국
美濃国

카이국
甲斐国

스오국
周防国

이와미국
石見国

휴우가국
日向国

오미국
近江国

스루가국
駿河国

나가토국
長門国

오키국
隱岐国

사쓰마국
薩摩国

토토미국
遠江国

오스미국
大隅国

미카와국
三河国

이키국
壱岐国

오와리국
尾張国

쓰시마국
対馬国

이세국
伊勢国

이가국
伊賀国

시마국
志摩国

이즈국
伊豆国

†무츠국에서 이와키국(磐城国), 이와시로국(岩代国), 리쿠젠국(陸前国), 리쿠추국(陸中国), 리쿠오국(陸奧国)이 추가로 분리 신설되었다.
#데와국에서 우젠국(羽前国), 우고국(羽後国)이 추가로 분리 신설되었다.



薩摩[1]国(살마국). 오늘날 가고시마 현 서부 일대로 삿슈(薩州)라고도 불렸으며, 5기 7도 구분에 따르면 사이카이도(西海道, 서해도)[2]에 속한다.

2. 사쓰마 번[편집]

사쓰마 번(薩摩藩)
파일:external/pds26.egloos.com/b0061568_55ac83e1a56df.jpg

2.1. 개요[편집]

에도 시대 규슈 남부의 사쓰마 국, 오스미 국, 휴가 일부분(모로카타코오리[3]), 아마미 제도를 다스리던 중세 일본의 행정 구역.

사쓰마(혹은 사츠마)란 이름은 판적봉환 이후 가고시마 현이 됐다. 그러나 지금도 사쓰마라고 통칭 불린다. 약 600백 년간 시마즈 가문의 다스림을 받았다.

2.2. 역사[편집]

가마쿠라 막부미나모토 씨를 뿌리로 하는 시마즈 가문이 사쓰마(薩摩), 오스미(大隅), 휴가(日向) 3국의 슈고 다이묘로 임명돼 교토에서 옮겨왔다. 무로마치 막부 때는 물론 전국 시대에도 세력을 유지하면서 일본 유수의 센코쿠 다이묘로 성장해 한 때 규슈 통일을 노렸다. 그들은 1580년대 중반 규슈 통일의 꿈을 이루는 듯 했으나 158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규슈 정벌로 물거품이 된다. 다만 히데요시는 시마즈 가문을 남겨 사쓰마, 오스미 두 개 국의 영지는 인정해 줬다.

히데요시의 사후 세키가하라 전투(1600년)에서 시마즈 가문은 서군에 동참해 다시 패하지만, 승리한 도쿠가와 가문은 시마즈 이에히사에게 도자마 다이묘로서 가문을 잇게하고 영지를 그대로 인정했다. 이 시점이 본격적으로 사츠마, 즉 오늘날의 가고시마 현의 성립이라고 본다.

1609년 시마즈 가문은 류큐 왕국을 복속하고 원래 산출량에다가 류큐 12만석을 더했다. 한편 오키나와에 이웃한 아마미 군도를 류큐에서 분리해 사쓰마가 직할했다. 오늘날에도 아마미 제도는 가고시마 현으로 오키나와 현이 아니다. 사쓰마 번은 류큐를 대중 무역 창구로 이용하는 한편 아마미 군도 산 설탕을 일본 전국으로 유통시켜 번의 재정을 늘렸다.

사쓰마는 토양 자체가 시라스(화산재) 대지[4]로 물이 잘빠지고 토질이 벼농사에 적합치 않다. 에도 막부가 파악한 초기 사쓰마 번의 총 수확 규모는 90만 석인데, 그 중 곡물 소출은 절반 정도이고 나머지는 다른 작물이나 어획량, 대외 무역 등을 환산한 것이라고 한다. 대대로 농업은 소규모의 논 및 밭농사가 대부분이던 그들은 고구마, 담배 등 상품 작물을 들여와 재배에 성공한다. 오늘날에도 고구마의 일본 이름엔 사쓰마가 들어간다. 조엄이 통신사로 일본에서 들여온 고구마도 사쓰마 산이었다. 에도 막부의 쇄국 정책 속에서도 밀무역으로 번의 재정을 튼튼하게 했으며 그런 기반이 메이지 유신의 토대가 된다.

밀무역과 반도쿠가와 등 이런저런 이유로, 에도 막부로부터 역사적으로 찍혔던 지역이었다. 당시 중세 일본 영주들 모두 겪던 참근 교대는 물론 각종 공사에 과중하게 동원되기 일쑤여서, 그 피로감과 불만은 고조되었다. 이런 상황은 8대 당주 시마즈 시게히데가 쇼군 도쿠가와 이에나리에게 세 딸을 시집보냄으로써 약간 해소되었고 막부 정치에 제 목소리를 내게 되고 정치적 영향력이 커졌다.

1827년, 가로(家老) 즈쇼 히로사토(調所広郷)를 중심으로 번정 개혁을 단행해 채무 정리, 설탕특허 제도강화, 류큐 무역의 확대[5] 등로 재정이 크게 나아졌다. 오유라 소동을 극복하고 1851년 제11대 번주가 된 시마즈 나리아키라가 서양의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서양식 공장 시설을 설립하고 증기선 군함을 구입하는 등 군비를 확충했다. 양녀(篤姬,아츠히메)를 쇼군에게 시집보내 외척이 되는 한편, 공무합체 운동을 벌여 지방 도자마 다이묘들이 중앙 정치에 진출하게 했다. 막부의 중신들은 시마즈 가문을 우대했다. 이 때를 그린 NHK 대하드라마아츠히메(드라마).

시마즈 나리아키라가 병사한 후, 이복동생인 시마즈 히사미쓰가 실권을 잡아 공무합체파로 번을 다스린다. 공무합체파란 막부의 편을 말하는 것으로 시마즈는 막부의 외척 집안이었다. 그러나 당시 막부가 권위를 잃으면서 전국적인 선풍을 끌었던 존왕양이파들이 사쓰마 번내에도 우후죽순으로 생겨난다. 존왕양이란 오랑캐 서양인들을 축출하고 나라를 막부에게서 빼앗아 천황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운동이었다. 아무리 영주가 공무합체를 주창한들, 번내 하급 사무라이들이나 우국지사들의 존왕 바람을 막을 수는 없었다.

1862년 나마무기 사건(生麦事件)이 벌어진다. 요코하마 항구 근처 나마무기 마을을 지나가던 시마즈 히사미쓰와 700명의 병력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다. 때마침 말에 탄 영국상인 윌리엄 마샬이 실수로 시마즈 군 앞에 난입하면서 벌어진다. 당황한 수행원들이 영국인을 칼로 베자 영국과 외교 문제가 일어나 이듬해 8월 영국과 전쟁이 벌어진다. 영국은 7척의 전함을 앞세워 자그마치 10만 파운드의 배상금을 요구해왔다. 사쓰마는 막부의 외척이었음에도 공무합체파가 힘을 잃고 번내 여론이 존왕 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그들은 집안의 체면도 있어 15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에게 요코하마 개항 철회를 요구하나 일언지하에 거절되면서 막부 타도 쪽으로 방향을 잡게 된다.

가로(家老) 코마츠 타테와키 밑으로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 등의 도막파 하급 무사들이 실권을 쥐고 에도 막부의 제2차 조슈정벌 명령에 따르면 번의 재정이 거덜날 것이 뻔하니 방관하자는 쪽으로 돌아서, 이때까지 견원지간이었던 조슈 번과 삿초 동맹을 맺는다. 덕분에 조슈 번은 막부군을 물리치고, 대정봉환을 거쳐 메이지 유신의 주역이 된다.

가고시마현의 현재(2016년 12월) 현지사 이토 유이치로 씨의 조상들은 옛 시마즈 가문의 사무라이라고.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근대식 해군을 육성할 때 이 사쓰마 지역 인사들이 주축이 되었으며[6], 위의 조슈 번(육군)과의 라이벌 의식과 맞물려서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이 생겨난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다. 사쓰마 번(해군)은 조슈 번(육군)과 황태자비 자리를 놓고도 다툼을 벌였는데, 화족 이치죠 도키코(一條朝子)를 지지하는 조슈 번에 맞서, 방계 황족이자 사쓰마 번 제12대 영주 시마즈 다다요시(島津忠義)의 외손녀인 구니노미야 나가코 여왕을 지지했다. 일명 '궁중모중대사건'이라고도 불린 치열한 싸움 끝에, 결국 나가코 여왕히로히토 황태자의 비(妃)가 되었다.

이후의 역사 및 사회 등은 가고시마 문서를 참고하기 바란다.

2.3. 트리비아[편집]

  • 예로부터 일본 중앙 지역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고 밀무역으로 먹고 사는 지역이라, 반골 기질과 상무 정신으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심심치 않게 중앙정부에게 대든 적이 많다. 근대에 들어서는 에도 막부에 저항한 메이지 유신지사인 오쿠보 도시미치사이고 다카모리가 배출된 지역이다. 고대에는 아예 일본 야마토 조정이랑 달른 별개의 이민족 거주지대로 구마소, 하야토 등이 있었다. 사쓰마의 주민들은 스스로를 사쓰마하야토(薩摩隼人)라 부르며 여전히 본토에 대한 대항심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지역감정에 가깝다. 본토인들은 규슈인들을 남만(南蠻)이라 불렀다. 이 말은 가고시마 사람들을 사쓰마하야토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다분히 지역을 차별하는 뉘앙스가 깐린 단어이다. 고대의 지역드립

  • 우리나라와는 악연이 많은 지역인데, 일찍이 임진왜란 때 비록 출병한 병력 수는 적었다 해도 조선을 침공하여 많은 도공들을 끌고 간 시마즈 가문이 이 지역을 기반으로 하였고, 고려말 왜구의 세력기반 또한 이 동네 호족들로 추정된다.

  • 이처럼 상무적이고 이질적인 지역답게, 지방색을 반영한 듯한 특유의 검술 유파인 지겐류가 있다. 부드럽고 세밀한 검풍의 본토 유파들과 달리 박력넘치고 야생적인 검풍을 자랑한다.

  • 현재 해당 지역은 여느 규슈 지방과 마찬가지로 보수색이 강하며 자민당이 강세를 보인다.

  • 사극에서 사쓰마 관련 인물들이 나오면 100% 사쓰마 사투리를 구사하는데 사쓰마 사투리는 난이도가 너무 높고 억양도 특이해서 알아듣기 힘들다. 듣다보면 어느나라 말인지 헷갈린다. NHK 대하드라마 신센구미!를 보면 사쓰마 사투리가 평안도 사투리와 억양이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도 일본군의 암호보다 이 사투리를 더 알아먹지 못했다.

2.4. 출신 인물[편집]

에도 막부 성립 이전, 메이지 유신 이후 출생의 인물들에 대해서는 여기를 참조하자.

3. 현재의 지명[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80px-Flag_of_Kagoshima_Prefecture.svg.png 가고시마현 시·정·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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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시마 시
鹿兒島市

아이라 시
姶良市

아쿠네 시
阿久根市

아마미 시
奄美市

이사 시
伊佐市

이즈미 시
出水市

이치키쿠시키노 시
いちき串木野市

이부스키 시
指宿市

카노야 시
鹿屋市

기리시마 시
霧島市

사츠마센다이 시
薩摩川内市

시부시 시
志布志市

소오 시
曽於市

타루미즈 시
垂水市

니시노오모테 시
西之表市

히오키 시
日置市

마쿠라자키 시
枕崎市

미나미큐슈 시
南九州市

미나미사츠마 시
南さつま市

사쓰마 군
薩摩郡

소오 군
曽於郡

아이라 군
姶良郡

오시마 군
大島郡

사쓰마 정
さつま町

오사키 정
大崎町

유스이 정
湧水町

아마기 정
天城町

오시마 군
大島郡

이센 정
伊仙町

키카이 정
喜界町

세토우치 정
瀬戸内町

타츠고 정
龍郷町

오시마 군
大島郡

치나 정
知名町

토쿠노시마 정
徳之島町

요론 정
与論町

와도마리 정
和泊町

이즈미 군
出水郡

쿠마게 군
熊毛郡

나가시마 정
長島町

나카타네 정
中種子町

미나미타네 정
南種子町

야쿠시마 정
屋久島町

키모츠키 군
肝属郡

키모츠키 정
肝付町

킨코 정
錦江町

히가시쿠시라 정
東串良町

미나미오스미 정
南大隅町

가고시마 군
鹿児島郡

오시마 군
大島郡

도시마 촌
十島村

미시마 촌
三島村

우켄 촌
宇検村

야마토 촌
大和村


1. 볼드체는 현청소재지이며, 밑줄은 최대 도시이다.
2. 하늘색 배경은 특례시, 연두색 배경은 중핵시이다.

3.1. 사쓰마 군[편집]

가고시마현에 있는 군으로, 동명의 정을 관할한다.

3.2. 사쓰마 정[편집]

사쓰마 정 (가고시마현)

가고시마현에 있는 정으로, 동명의 군에 속해 있다.

4. 사쓰마 반도[편집]

규슈 남서부에 위치한 반도.

5. 전함[편집]

위의 일본의 옛 지명을 이름으로 한 일본의 세미 드레드노트급 전함인 사쓰마급 전함이 있다. 자세한 것은 문서 참고.

[1] 속일본기에는 살마(薩麻)라고도 기록되어 있다.[2] 오늘날 규슈 지방.[3] 현재 모로카타 군은 미야자키 현 소속이다.[4] 규슈 남쪽 반도 지역에 널리 분포하는 화산재와 속돌의 층[5] 덤으로 밀무역, 위조화폐 제조[6] 중국, 류큐와의 해상 무역을 했던 지역이라 해상업이 발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