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탈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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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현황4. 법적 지위5. 탈북 방법6. 탈북 이후7. 30만 탈북자?8. 악용9. 북한의 대응10. 한국 사회에서 적응 문제
10.1. 자유사회에 대한 부적응10.2. 북한식 세뇌에 의한 사고방식의 고착화10.3. 난민 신청을 통한 이민10.4. 일부 탈북자들이 일으키는 사회 문제
10.4.1. 망명 논란
10.5. 탈북 청소년 문제
11. 한국 사회에서 탈북자가 받는 혜택12. 가짜 북한이탈주민13. 트리비아14. 유명 탈북자들15. 탈북자 소재 창작물
15.1. 영화15.2. 방송15.3. 만화
16. 다른 분단국가의 난민17. 기타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북한 국민으로 살다가 이탈하여 대한민국에 들어온 사람.

과거 냉전 시기에는 귀순 용사라는 표현을 쓰다가, 1990년대 이후로는 탈북했다 해서 탈북자가 일반화되었다. 참여정부 시기 새터민이라는 표현을 법제화했으나, 여전히 탈북자가 가장 많이 쓰이는 편이다. 또한 탈북자 당사자들이 새터민이라는 표현 자체에 혼란과 거부감을 느끼고 있어 정부 차원에서도 '북한이탈주민', '탈북자' 등의 호칭을 도로 사용하는 추세다. 그런데 해외 북한 대사관 장난전화 사건을 보면 북한에서도 '탈북자'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 같다.

2. 역사[편집]

탈북자의 역사는 1945년부터 시작됐다. 해방 후 한국전쟁 이전에 존재했던 38선을 지금의 북중국경을 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넘어서 대한민국으로 들어온 사람들도 많다. 탈북에 비해 소수긴 하지만 반대로 공산주의 사상을 쫓아 월북한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 1945년 일본에서 귀국한 남한 출신들이 중국 공산당이 땅을 준다는 소식을 듣고 중국으로 넘어간 경우도 있었다.

거기다 50년대 대약진운동 60~70년대 문화대혁명 같은 마오쩌둥의 삽질로 탈중해서 북한으로 도망치는 조선족 청년들이 많았다.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북중 국경지대의 조선족들이 생필품을 얻으러 북한에 넘어오던 시절이었으니..하지만 79년부터 덩샤오핑이 시작한 개혁개방의 효과가 84년경에는 북중국경에까지 미치면서 처지가 역전되었다.

허나 우리가 알고 있는 탈북의 시작한은 1994년 김일성이 죽고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북한 경제가 붕괴된 때부터 시작되었다.1995~2000년까지는 중국정부가 탈북자들을 사실상 묵인했지만 2000년대 초반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면서 중국에 살던 탈북자들이 북송을 피해 한국으로 매년 1000명이상 들어오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대한민국 귀순에 성공한 사람들을 2005년경부터 새터민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참고로 한국전쟁 휴전 이전에 월남한 북한 사람들은 실향민이라고 부른다.

3. 현황[편집]

2017년 기준으로 대략 3만 명의 탈북자들이 한국에서 거주하고 있다. 이 중 절대다수는 21세기에 입국한 사람들이다. 1998년까지 남한에 입국한 북한이탈주민은 매년 많아야 수십 명 수준에 그쳤으나 1999년에 최초로 한 해 입국자 수가 100명을 돌파하였고 2002년에는 1,142명이 입국하였다. 이후 2008, 2009년 입국자 수가 3,000명 수준까지 육박한 적이 있었으나 북한과 중국의 단속 강화 등으로 2012, 2013년에는 1,500명 대에서 정체 상태에 있다.

급격한 남한 내 북한이탈주민의 증가로 이제 북한에서도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들은 북한 이탈 후에도 여전히 북한에 커넥션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북한의 체제 위협 요인으로 상존하고 있다. 이미 남한에 입국한 북한이탈주민들이 자금을 축적한 후 브로커를 통해 아직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꺼내오는 경우가 많으며 실제 최근의 남한 입국자들 상당수는 이런 케이스이다.

북한은 탈북자가 발생하면 대부분 국가정보원에 의한 '납치'라고 주장한다. 다만 남한과는 별개로 실제로 비자발적인 탈북이 이뤄지는 경우는 상당히 많다. 국경의 젊은 북한 여성에게 접근한 브로커가 "중국에서 몇 달만 일하면 떼돈 벌 수 있다"고 꼬드겨서 압록강을 넘었더니 연변조선족에게 팔려갔다면 양반이고 중국 흑룡강성이나 저멀리 산동성 깡촌에도 팔려가 한족과 강제 결혼을 하는 식이다. 국경 지역에서 멀리 떨어져 단속이 느슨한 한족 마을들의 경우 탈북여성이 팔려오면 온동네 사람들이 구경오고 탈북여성이 도망치면 온동네가 합심해서 잡으러 다닌다.

이런 수요가 많기 때문에 탈북이 절정을 이루던 10~20년 전에는 압록강이나 두만강을 건너는 북한 여자들을 잡아 팔려는 조선족이나 한족들이 주요 길목에 매복하는 경우도 많았고 잡으면 등급에 따라 꽤 큰 돈을 만질 수 있었다. 젊고 키가 크고 예쁘면 양극단으로 판매처가 나뉘는데 좀 경제력이 되는 집으로 팔리거나 최악의 경우 노래방 마시지 음란채팅 등으로 팔려가 성매매를 하게 된다는 주장이 있지만 얼마 못가 북송되는 케이스가 대다수다.아주 어리면 자식이 없는 중국 가정으로 팔리는 경우가 있고, 어정쩡하게 어린 경우나 체격이 왜소한 경우 거의 팔리지 않아서 한국 종교단체에 땡처리되는 경우도 많다. 한국에 자의반 타의반 와서 성매매를 하거나 한국남성과 결혼하 수많은 중국한족여성들과 오버랩되는 부분, 그러나 숫자로 따지면 중국여성쪽이 비교도 안되게 대중적으로 많다.(애당초 이쪽은 체류가 합법)

그러나 종교단체에 팔려도 조선족 전도사 잘못 만나면 구타와 성적학대를 당하기도 한다. 북미지역과 남한 교회의 모금으로 이런 이중생활을 하던 조선족 전도사가 중국 정부의 박해 가능성이 있다며 북미지역 교회들의 도움으로 가족들과 난민으로 이민간 경우까지 있었다.

명백한 인신매매이지만 탈북이기도 하고, 이렇게 납치된 경우와 조금이라도 나은 삶과 가족을 위해 자발적으로 브로커를 찾아가 자신을 판 돈 중 일부를 가족들에게 보내는 여성들은 북한으로 돌아가기도 어렵고 신분이 없어서 항상 불안하게 살다 중국 호적을 구입하거나 위조 여권을 만들어 남한에 오는 경우도 있지만, 호적이나 여권을 만들려면 거액이 필요해서 대부분은 동남아나 몽골 루트를 통해 재차 남한으로 도망친다. 특히 함경북도 회령시, 무산군 ,함경남도(이북5도위원회) 혜산출신들에게 이런 경우가 흔하다. 국내 입국 탈북자들 중 함경북도함경남도 출신 여성이 70%가까이 되는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국정원에 의한 유인랍치"라는 주장이 북한 내부적으로 통하는 이유는 이렇듯 (국정원 개입 여부와는 별개로) 실제 탈북과정에서 인신매매가 활발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배후만 국정원이라고 갖다 붙이면 실체를 파악할 방도가 없으니 말이다.

탈북자 중 위장 탈북자나 간첩이 있을 수도 있기에 감시도 꾸준히 이뤄진다고 한다. 전술한 돈을 바치고 나와 탈북에 성공한 탈북자의 증언에 의하면, 탈북자끼리 모여서 사업을 벌이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확인요망) 한 탈북자가 말하길 "자신은 나이든 남자 탈국자들 중 꽤 드물게 남한에서 자격증도 여러 개 따고 취직하여 성공한 사람이라면서 같은 기수로 남자 하나원을 수료한 10여명의 비슷한 나이대의 친하게 지내던 이들 중 두 사람은 자살하고 나머지는 죄다 실업자에 알콜 중독, 정신 이상으로 인한 치료, 한 사람은 교회에 광적으로 빠져들어서 다른 탈북자에게 강요하다가 그만 싸움이 벌어져 칼에 찔려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특히 나이든 남자 탈북자 동료들 가운데 자신만이 성공했다고 아쉬워하면서, 나이든 남자 탈북자들은 여성이나 젋은 남자 탈북자에 비해 적응을 못해 처지가 힘들다고 증언했다.

더불어 탈북자 중에서도 사기꾼이자 북한에서 범죄를 일으킨 사람도 종종 보여서 문제가 되고 있다. 남한에서도 사기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고 자신이 정치범이라고 허풍을 떨면서 미국이나 해외 언론의 취재 및 정치적 지원금까지 받아 챙겼다가 다른 탈북자들의 증언으로 거짓이 드러나서 수감된 경우까지 있다. 2005년 영국 BBC가 이런 사기꾼에게 속아 엉터리 보도를 한 적도 있는데, 당시 북한에선 정치범 수용소에서 재소자를 쇠를 녹인 물에 빠뜨려 죽인다는 보도를 했고 이 소식에 많은 탈북자들은 어처구니없어했단다. 길거리에 처박힌 녹슨 못 하나도 자원이랍시고 아이들에게 모으게 하는 북한에서, 뭔 쇠가 넘쳐서 저런 짓을 할 수 있냐는 반응. 물론 쇠가 넘쳐나면 저런 짓을 할 수도 있는 나라지만 거기다 철을 녹인다는 것 자체도 전력이나 연료를 어마어마하게 소모하는 행위인지라 당장 군용기 띄울 연료도 없고 평양도 수시로 전력이 끊기는 마당에 그럴 여유가 있을 리가 없다. 게다가 증거라는 그 쇳물 처형 명령서조차도 대충 한글로 갈겨 쓴 구겨진 종이였으며, 나중에 그 증거라는 종이쪽지는 그 탈북자가 대충 갈겨 쓴 가짜라는 게 드러났다. # 결국 이 탈북자를 조사하니, 북한에서도 사기꾼으로 알아주던 엉터리 정치범이었다고... 이 보도 및 북한 정치적 실태에 대하여 안다고 허풍을 떨어 돈을 뜯던 게 드러나서, 구속 수감되었다. # #

흔치 않은 경우지만, 중국 안 에서 중국 위조여권을 제작하는 것이 꽤 쉽기 때문에 남한의 탈북민 정착정책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일부 탈북자들은 중국 여권으로 한국에 들어와 눌러 살다가 불법체류자 단속 때 '적발'되어 한국 국적이 부여되기도 한다. 심지어는 여느 조선족마냥 중국 여권을 들고 한국에서 돈을 벌어서 중국에 있는 가족(중국 현지에서 혼인을 통해 생긴 가족)에게 송금을 하거나 그 상태(위조여권)로 한국과 중국을 넘드나들다 적발되기도 한다. 일단 중국에서 걸리지 않는 이상 별 탈 없이 넘어가기는 하는 듯. 하지만 공작원도 아닌 일개 탈북자가 국내에 '잠입' 할 수 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물론 경제적 여건이 약간 어렵기는 하지만, 이런저런 일을 하며 무난하게 살아가는 탈북자도 많다. 탈북자가 없는 것 같아도 우리 주변에 은근히 많이 있으며, 가게에서 단골 손님인 사람이 친해져서 아무렇지도 않게 탈북자라는 사실을 밝힌 적이 있다. 그 사람의 말에 의하면 이곳은 북한에 비하면 생활 여건이 엄청나게 좋다고. 물론 이는 당연한 이야기다. 특히 남한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대경제 성장을 이루어 70년대 이후 북한 경제와 엄청난 격차가 벌어졌으며, 소득 면에서도 넘사벽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에 반해 북한은 고난의 행군 같은 치명적인 이벤트로 인해 경제가 파탄날 지경... 그리고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탈북자로서 성공하신 분.

김정은 정권 이후에는 불완전한 체제와 나라의 폭망테크가 빨라짐에 따라 사회적지위가 높은 인물들이 탈북하는 일이 잦아졌다.[2] 대표적으로 해외북한식당 종업원와 주영 북한대사 차석으로 지냈던 태영호의 탈북이 대표적인 예다.

현재 남한 정부는 인도주의와 동포애 차원에서 간첩만 아니면 북한이탈주민은 다소 예산에 부담이 되더라도 모두 받아준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에 대한 감시가 인권침해가 되는 수위까지 있어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 정부 입장에서야 수상한 행동이 있나 감시하는 것 뿐이겠지만...[3] 또한 서강대학교 기준으로 새터민에게는 학비가 전액 무료이다. 대학교까지 4년 다니고 나면 어지간해서는 새터민이라는 사실을 눈치채기 힘들 정도로 남한화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탈북자 중에서 국회의원도 배출했다. 2012년에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출마해서 당선된 조명철 의원은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교수를 하다가 1994년에 탈북했다. 개성공단에 국회의원들이 방문할 일이 생겼는데 탈북자 출신이라는 이유로 유일하게 거절당했다.

하지만 자력으로 들어오는 새터민을 받아준다 뿐이지 절대로 정부가 나서서 새터민을 구출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정부는 탈북자를 밀입국자로 규정한 중국 등 다른 나라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어필한 적은 없으며 물 밑에서 조용히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조용한 외교'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헌법상 대부분의 탈북자들이 대한민국 국적으로 간주되지만, 문제는 이들이 대한민국 국적임을 입증할 서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입증이 불가능하면 이들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당사국 마음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타국 정부에 요청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우리한테로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방법뿐이다.

다만 황당한 것은 대한민국 국적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가 존재하는 사람마저 내버려 둔다는 것이다. 1998년에는 국군 포로 장무환, 2002년 납북 어부 이재근이 전화로 영사관에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전화를 받은 대사관 직원이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 "차라리 밀항을 해라" 등의 폭언을 한 전화 녹음이 언론에 공개된 적도 있다. 물론 이때 외교부는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새터민의 현황은 새터민들의 쉼터에서 확인할 수 있다.[4] 아무리 남한에 거주하는 새터민 뿐만 아니라 중국(주로 조선족자치구)에 거주 중인 탈북자들도 꽤 많이 접속하는 듯. 동북3성과 북한을 오가며 장사하는 사람(도강꾼이라고 한다)이 MSN메신저 아이디를 알려주기까지 한다.

최근 태국주재대사관의 직원들이 탈북자들에게 폭언을 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 기사가 나가자 외교부에서는 탈북자들의 주장이 과장되었음을 주장했으며 해당 언론사에 직접 구두로 항의했다. 관련 기사, 탈북자 기사 나가자 전화 걸어 펄펄 뛴 외교부.

그리고 남한에서도 살기 힘들거나 여타 이유 등등으로 다시 북한으로 되돌아가는 일부 케이스도 있는데 김정은 대 들어서면서 새로운 탈북자를 막기 위한 광고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경우 가족을 인질삼아 협박하는 경우도 있지만 거의 전원 최종적으로는 자신과 가족 모두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관련 기사.

일본에도 탈북자가 있는데 재일교포 북송 당시 일본인 처와 함께 온 재일조선인들의 후예들이 대부분이다. 1000명 정도로 추정한다. 일본으로 간 북한이탈주민 다카야스 고쿄 얘기.[5]

2015년에는 김정은의 공포정치의 대한 부작용으로 인해 간부급까지 탈북 러시를 이루는 중이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해외에 파견된 무역일꾼들을 소환 남한 사람과 접촉했었는지의 여부까지 조사한다고 한다. # 장성택 처형으로부터 시작된 공포정치가 간부급 처형으로까지 확대되자 상당수의 간부급이 신분의 위협을 느껴 탈북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전언이다. 한편 2015년 7월 4일 동해에서 표류 중이던 북한 어민들 5명 중 2명이 귀순의사를 밝히자 북한은 이들 5명 전원의 송환을 주장했다. 정부는 물론 귀순의사를 밝힌 북한 주민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전해 사실상 이들의 귀순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이번엔 귀순의사를 밝힌 어민들의 인적사항을 요구했다고 한다. #

그동안 망명정부 세우는 것에 논의가 있었는데, 고위 탈북자 중심으로 미국에서 세우는 것이 결정되었으며, # 북한 급변 사태를 대비해서 10만 탈북촌을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워싱턴 포스트는 중국 숨어사는 북한 여성 20%가 온라인 성매매 내몰려있다고 보도했다. #

2016년에 탈북자 3만명을 돌파하자 통일부에서 정착 지원 개선책이 발표되었다. #

국내로 들어온 탈북자 중 886명이 소재불명이다. #

통제가 강화되어 하류층 탈북민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오히려 상류층의 탈북이 늘어났는데 이들의 특징은 자신은 안오고 자식만 탈북 시킨다는 점이다. 이렇게 탈북한 북한 상류층 자제는 오히려 북한에서 송금을 받아 남한에서 생활을 하며 상위 명문대를 다닌다. 평양출신의 경우 말투도 남한과 다를께 없어서 본인이 밝히지 않는 이상 잘 들어나지도 않으며 북한에서도 잘나가는 집안 출신이 많은 만큼 생계의 걱정 없이 유복하게 생활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방학중에 중국으로 가서 가족과 만나거나 휴대전화를 연락을 한다고 한다.

4. 법적 지위[편집]

탈북자는 북한의 통치가 미치는 지역에 주소와 가족을 두고 거주하다가 탈출하여 대한민국의 보호를 받으려는 군사분계선 이북지역의 주민으로 정의되어 있다. 그 근거는 대한민국 헌법 제3조[6], 북한이탈주민의보호및정착지원에관한법률[7] 제1조 등에 따른다. 이 문서의 제목도 법률용어를 따라 저렇다.

국내에선 한반도 전역을 대한민국의 영토로 규정하고 있는 헌법상 북한 '주민'도 대한민국 국민이다.[8] 즉 출생과 동시에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다만 반국가단체의 불법 통치하에 있어서 국적을 행사하지 못할 뿐.

과거에 주 캐나다 한국 대사관이 북한이탈주민이라고 해도 자동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이 될 수 없다는 잘못된 정보를 넘기면서 한동안 전세계 법원이 그런 줄 알고 있다가 주 호주 한국 대사관이 올바른 정보를 넘기자 한동안 어느 게 맞는지 몰라 난리가 났었으나 2014년 영국 상급 난민 법원의 판결 이후 전세계적으로 정리가 끝났다. [2014] UKUT 391 (IAC) - All North Korean citizens are also citizens of South Korea. (북한 주민들은 한국 사람이기도 합니다.)

5. 탈북 방법[편집]

자세한 내용은 탈북 문서 참고.

드물게는 북한에서 공군 훈련 중인 파일럿이 전투기를 이끌고 한국으로 탈북한 사례[9][10] 또는 배를 타고 남한으로 내려오기(1987년 김만철 일가족) 사례도 있다. 보통은 중국-북한간 국경을 넘어서 대사관 등의 건물로 넘어오는 루트를 이용한다. 김신조 같이 남한에 내려온 공작원이 자수하고 귀순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 위해서 국경수비대한테 뇌물을 주는 경우가 있다.[11] 정말로 막장이다. 다만 배 타고 내려오는 방법은 아직도 행해지고 있는 탈북 방법이다. 2002년에는 남북 분단으로 인해 실향민이 된 순종식씨가 선박 기관장을 납치해서 본인과 일가족을 포함해 무려 21명이 동시에 탈북한 사례가 있었으며 2009년에는 7명이 조그만 고깃배를 타고 서해로 남하하여 집단 귀순한 사례가 있는가 하면 2010년에는 한 40대 남성이 스티로폼으로 조잡한 뗏목을 만들어서 필사적으로 남하해서 귀순한 사례도 있다. 로빈슨 크루소?

2000년대 이후 중국 국경의 두만강을 이용한 탈북을 막기 위해 국경수비대에게 탈북자를 신고하거나 붙잡으면 지금까지 받은 뇌물을 눈감아 준다든가, 심지어 화선입당이라 하여 현지에서 바로 조선노동당에 입당시키는 경우도 있다. 이 방식은 의외로 성공을 거두어 탈북자들에게 엄청난 재앙을 가져다주고 있는데, 북한에서 김정은의 실질적 추종세력인 조선노동당에 입당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출세를 보장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육로를 통해 휴전선을 직접 넘어오는 경우도 있긴 하다. 민간인은 거의 없고 주로 북한 군인들이 이 경로를 통해서 남으로 내려온다. 그러나 다른 방법에 비해서 실패율이 대단히 높아서 선호되지는 않는 방법.

남북한 병력의 상당수가 휴전선에 집중되어있기 때문에 적발되어 사살당하거나 지뢰를 밟고 폭사당하거나 고압전기 철조망에 걸려서 감전사 당하는 일이 많기 때문. 휴전선을 넘어서 탈북에 성공한 군인들의 수기를 읽어보면 그야말로 미션 임파서블, 목숨을 거는 수준이다. 예를 들어 1997년 경 뗏목도 아니고 스스로 만든 조잡한 구명조끼에 의지해서 임진강으로 떠내려온 사례라던가...

그러나 휴전선도 의외로 구멍이 있는 편이어서 1996년에 민간인 여성이 비무장지대를 맨몸으로 건너 남쪽의 3단 철책선 중 2개를 넘어 마지막 철책선에서 발견된 사례도 있고, 2014년 초에 방영된 탈북 다큐멘터리에서는 술에 취한 상태로 지뢰도 다 피해서 1시간 만에 탈북한 사례도 나왔다. 취권

요즈은 중국의 한국대사관 진입이 어렵다. 그래서 제3국의 한국대사관을 노리는 경우가 있는데, 탈북자를 인도적으로 대우해주는 일부 동남아 국가에 밀입국을 시도하게 된다. 예를 들면 태국, 싱가포르 등이 있으며 최근 홍콩도 새로운 탈북 루트가 되고 있다. 영국령 시절은 경계가 삼엄해 광동 성에서 해관을 넘기 힘들었었기 때문에 사례가 없었고 중국 반환 후에는 더 경계가 강화되어 선호하는 루트는 아니었다. 그러나 최근 태국도 북송 위협이 은근히 생기고, 베트남도 북송은 안해도 특무들이 많이 나가 활동하며 중국 정부의 단속이 강화되어 위험해지고 있기 때문에, 홍콩에 국제대회 등의 자격으로 비자를 받은 후 한국 총영사관에 진입하는 방식이 시도되고 있다. 수학경시대회에 참가하던 고교생 1명[12]이 이렇게 빠져나왔고[13] 홍콩 경찰의 보호를 받다 한국으로 들어왔다.

최근 탈북자들이 남한으로 유입되는 경로는 탈북→중국에서 공안 감시 피하면서 돈을 번다→브로커들에게 돈을 주어 탈북자를 수용하는 동남아 국가로 도피→남한 입국의 경로인데 브로커들이 많은 돈을 요구하여 금전적 비용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기차에서 중국 공안 감시를 피해야 한다거나 밤 중에 강과 밀림을 건너야 하는 등 고생이 심하다. 보통 양심적이거나, 장기적으로 장사하려는 브로커들은 대략 200만원 정도를 수당으로 받는데 탈북 루트에 속한 국가들이 하나같이 북한과 한 패거리인 데다 북한을 위해 그들 자체적으로도 탈북자들을 적극적으로 잡아들이고 있다보니 비용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 게다가 장성택 처형 직후에는 하도 감시가 살벌해서 천만원까지도 올랐었다고 한다. 물론, 북한이나 중국이 싫어서 탈북자 색출에 동조하지 않는 나라도 많다. 대표적인 경우가 몽골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이다.

다만 외몽골은 지리적으로 중국을 거치지 않고서는 다른 아시아 국가로 나가는 것이 힘들어서, 탈북자들에게는 몽골은 그저 탈북용으로 지나가는 루트로만 이용될 뿐이다.

러시아중국과 나름 친하다고는 하지만, 중국에 별로 동조하지 않는 편이었어서[14] 탈북자 색출에도 상당히 미온적인 상황이었으나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 이후에는 러시아도 탈북자를 색출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북한과 러시아가 인접한 지역이 사실상 특수계층만 들어갈 수 있는 나선직할시 뿐이고, 강 폭이 넓은 두만강을 건너는것 역시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처음부터 탈북 루트로 지정하기 어려워서 잘 가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탈북자를 색출하기 위한 북한의 공작원들이 연해주에 많이 잠입한 상황이라서 감시를 피하려고 탈북 루트를 그쪽으로 잡았다가 불귀의 객이 되는 수도 있으므로 이쪽으로는 잘 가지 않는다. 거기다가 러시아는 범죄율이 쩔어주는 수준이라서 탈북자들이 멋모르고 러시아 영토를 거쳐 탈북하려다가는, 북한 공작원들의 추적을 피하려다가 난데없이 레드 마피아들의 범죄의 표적이 되어 죽는 경우도 허다하므로, 러시아 정부가 탈북자를 잡든, 안 잡든 이곳은 원래부터 기피되던 탈북 루트였다.

대신 싱가포르태국은 주권 국가라 북한 특무가 나대지 못 하고 북송도 안해서 많이 고른다. 물론 태국은 특무들이 좀 나가있어 위험하다. 싱가포르도 소국이지만 중국에 큰 소리는 칠 줄 아는 나라라 싱가포르 경찰이 보호하며 북한과는 관계가 나빠져서[15] 북송은 커녕 특무를 발견하면 즉시 경찰들이 체포해 간다. 중국과의 관계도 남중국해 문제로 나빠진 편이라 더욱 안전하다. 거리가 멀다는 문제만 아니면 나름 좋은 루트다.

말레이시아홍콩도 새로운 루트로 떠오르는데, 말레이시아는 중국을 싫어하는데다 김정은자국 수도에서 자기 친형을 죽이는 바람에 말레이시아와 북한 사이의 관계가 급격히 나빠졌다. 그래서 탈북자가 말레이시아 국경을 넘어오면 최대한 보호하다 바로 한국으로 보내 주거나 망명시켜준다. 그리고 홍콩은 소속만 중국 영토이지 1국가 2체제로 홍콩 정부가 통치하며 홍콩과 베이징의 관계도 나쁜 편이라 홍콩 경찰은 탈북자를 보호한다. 이웃 마카오와 달리 북한인은 아예 들어오지도 못 하게 입국을 제한해 특무에게 당할 위험도 없다. 그리고 중국 중앙정부 역시 괜히 홍콩에서까지 시끄럽게는 하기 싫어 싱가포르 등 제3국[16]을 거쳐 한국으로 보내 준다.

6. 탈북 이후[편집]

하나원 설립 이전에는 탈북자를 위한 별도의 교육기관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정보기관에서 심문 과정을 거친 뒤, 그 기관에서 알아서 남한 사회 구경 몇 번 시켜주고 지원금 통장과 임대 아파트 입주권 하나 주고 내보내는 식으로 정착시켰다. 일례로 1987년 김만철 일가족들이 탈북했을 당시에는 롯데백화점이나 남산, 63빌딩 등 서울을 구경하는 정도였다고. 참고로 김만철씨 일가는 꽤 많았던 지원금을 사기당해 싸그리 날려먹고 컨테이너에서 거주하면서 인형 눈 붙이는 부업으로 연명하고 있다. 김만철 씨는 비교적 최근까지 사이비 종교인 영생교에 심취해 있었다. 다만 막내아들 김광호 씨가 서울대학교 천체물리학과[17] 석사학위를 받고 일본여성과 결혼해서 살고 있으며, 유학원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다.김만철의 근황, 현재 1999년 이후에는 하나원으로 보내져서 3개월간 교육을 받은 뒤에 이후 내보내주고 있다.[18]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한 탈북자들은 이내 큰 성공을 거두기도 하지만(서울대를 졸업한 사람도 나왔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그렇게 생활을 하는 편이 쉽지 않은 편이다. 우선 취직하지 않는 이상은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의 북한은 배급도 끊기고 사회주의의 인민생활보장제도도 무너진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명목상으로는 국가가 인민의 삶을 책임지기 때문에 병원, 학교(필기구나 책가방도)는 무료이고 명목상으론(물론 이것저것 뜯어가지만) 세금도 없으며[19] 직장도 (물론 자기의 의사와는 상관없이)국가에서 배정하기 때문에 취업률이 100% 에 가깝다. 물론 급여가 제대로 나올 거라 장담은 못 하지만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본인이 노력해서 돈을 벌고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새터민들은 불안감을 가지고 있고 자신감을 잃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많은 새터민들이 법치주의[20]상거래 등에 익숙하지 않아 결국 하류층으로 전락하고 온갖 종류의 물의를 일으키는 일이 많아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다만 이는 한국의 사회적 약자들이나 다문화가정 출신들도 큰 차이가 없다. 당장 뉴스에 잊을 만하면 나오는 묻지마 범죄자들이 어떤 사회적 배경 속에서 살았는가를 생각해 보자[21].

보통 엘리트 출신이 여기서도 적응을 잘한다고 한다.[22] 1980년대 동구권에서 유학한 엘리트라든지 아님 북한의 유수의 대학 출신들. 아무리 폐쇄적인 나라라고 해도 바깥 세상에 더욱 잘 알고 교육이 뒷받침되기 때문. 사실 최근의 탈북자 사회 부적응 문제는 이런 엘리트층이 아닌 일반 주민들이 대거 탈북하여 한국에 입국한 결과이기도 하다. 또 이들 중 북한에서부터 달러 등 외화를 많이 소지하고 있던 사람들도 많아서 그 돈을 그대로 남한에서 사용하며 경제적으로 풍족한 부유층으로 사는 경우가 많다. 특히 북의 외교관, 무역일꾼 중에 외화벌이 사업으로 벌어들인 거액의 달러를 들고 넘어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사람들은 하나원도 거치지 않고 다른 탈북자들과는 교류도 안하면서 산다고 한다.[23] 심지어 북한의 상류층, 엘리트층에는 자녀의 교육문제 때문에 탈북해서 대한민국으로 오는 사람들도 있다.

수적으론 많지 않지만 북한군 현역 군인, 특히 일정 수준의 교육을 받은 장교의 경우엔 특별임관을 통해 한국군 장교로 복무하는 경우도 있다. 북한군 공군 조종사 출신인 고(故) 이웅평 대령이나 이철수 대령이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아직까지도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의 이질감 문제가 존재한다. 사실 꽤 오래전부터 있던 문제이다. 1990년대에 탈북하여 그럭저럭 한국에서 잘 정착한 김용이 쓴 글을 보면 저녁에 지하철을 탔더니만 술 취한 사람이 바닥에 드러누워 잠 자는 걸 보고 어느 아이가 엄마에게 "저 사람 왜 그래?"라고 물어보자 "북한에서 온 거지일 거야"라는 답변을 하는 바람에 엄청 분노했었다는 글까지 남길 정도이다. 이 일화는 IMF 이전 이야기지만 IMF 이후 '남한 거지'들도 넘쳐나게 됨으로서 남한인들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 많이 사라지게 되었기 때문에 거지를 북한 주민으로 보거나 몰지각한 새터민 거지 운운하는 행위는 많이 사라졌기 때문에 거의 들을 수 없는 얘기이나, 세금만 먹는다든지 언제 배신할지 모른다든지 심하게는 조국통일을 방해하는 민족의 반역자라든지 혐오하거나 비하하는 이들이야 아직도 얼마든지 있다.

실제로 북한이탈주민은 남한보다 중국에 훨씬 많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북한에서 고생하다가 중국이 더 자유롭고 돈 벌기 쉽다는 소리를 듣고 일단 중국에서 돈 벌고 북한으로 다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중국에 가서 북한보다 훨씬 발전한 생활상을 보고 북한으로 안 돌아가고 눌러앉아 산다고 한다[24]. 다만 중국 공안의 감시가 심하기 때문에 더 자유로운 생활을 원하는 탈북자들은 남쪽으로 쭉 내려가 그들을 난민으로 받아주는 동남아 중립국으로 도피한다. 대사관 경로는 최근 들어 중국 공안의 감시가 심해져서 성공이 어렵다고 한다.[25][26]

7. 30만 탈북자?[편집]

결론부터 말하면 중국에 체류하는 탈북자 숫자는 1~3만명 수준이다. 중국 등 제3국에 체류하는 탈북자 숫자에 관한 통계는 제각각이라고 알려졌는데 이에 관해서 어이없는 해프닝이 있다. 법륜스님이 주도하는 '좋은 벗들'이라는 시민단체가 2000년대 초반 자기들 계산방식으로 탈북자를 최대 30만명이라 주장했는데, 여기에 현장에서 활동하는 NGO 활동가들, 러시아 출신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 중국 정부, 로빈슨 존스홉킨스 대학 교수 등은 황당하게 과장된 수치라고 비난하였다.

문제는 한국 및 외국의 많은 언론에서는 여기에 낚여서 (혹은 과장인걸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마치 탈북자가 수십만 명이라도 되는냥 언론기사에 그대로 언급하는 경우가 있고, 당장 이전 나무위키 버전에도 '수십만명이 숨어서 산다' 라는 문구가 있었다. 이는 낭설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최소 1만 명, 최대 5만 명 수준으로 언급하고 있다. 처음 30만 명이라고 주장한 '좋은벗들' 단체 대표조차 2000년대 중반에 '다시 계산해 봤더니 3~5만 명이더라' 라고 번복함으로서 스스로 신빙성에 먹칠을 했다. 직후 이전에 통계를 낸 것보다 감소한 수치라고 말을 바꿨지만 이미 신뢰도는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

앞서 언급한 현지 NGO 전문가들은 인구, 현지공안 통계, 북송규모 등을 이유로 2만명도 넘기 힘들다고 말한다. 가장 과학적인 추산 방법을 사용하는 존스홉킨스 대학 로빈슨 교수팀은 현재 탈북자를 1만명 정도로 보고 있다. 참고로 탈북자중에 여성이 70%라는 기사가 있는데, 탈북자가 상당히 많았다고 주장되는 2000년대 초반에는 성비가 반반이었으며 탈북자가 많이 감소하면서 70%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탈북자 수십만명설을 오랜기간 집요하게 보도하면서 북한 정권의 붕괴가 멀지 않았다고 주장하던 조중동과 주요 보수 매체들이 이 부분에 대해선 제대로 된 정정기사를 단 한번도 낸적이 없다. 다행히 꾸준히 신빙성있는 여러 자료들의 언론보도로 잘못알고 있는 사람은 많이 없다.(아니 대다수 관심이 없다)

8. 악용[편집]

탈북 후 치료받고 북으로 보내달라?

치료목적으로 탈북하는 경우가 나온다고 한다

탈북자 1명당 30만 원…정보 팔아먹은 통일부 직원

2017년 9월에 통일부 소속 6급 공무원이 탈북 브로커에게 탈북자 48명의 이름, 연락처, 주소 등을 1명당 30만 원에 팔아넘기고 1,475만원을 챙긴 혐의로 구속되었다. 당연히 해당 공무원은 직위해제되고 징계위에 회부되었다고. 발각된 경위가 참 아이러니한데 이 사람한테 개인정보를 산 탈북 브로커가 이 정보를 탈북자들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는 데 썼다. 그러다 한 탈북자의 신고로 붙잡혀 조사를 받던 중 실토하여 드러나서 덜미를 잡혔다고 한다. 문제의 공무원은 과거 하나원에서 일한 경력이 있었는데, 이 떄문에 탈북자 정보에 접근하기 쉬웠다는 점을 악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탈북자 정보는 과거 북한에서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국가 보안사항이라는 점. 더구나 개인 착복 등의 비리문제도 얽혀 죄질이 상당히 좋지 않다.

9. 북한의 대응[편집]

북한의 탈북자에 대한 대응은 시기마다 조금씩 다른데 처음에는 북송된 탈북자를 정치범으로 보아 정치범수용소로 보내버렸다. 하지만 워낙 탈북자의 수가 많으니 나중에는 탈북자를 분류하여 한국으로 가려다 혹은 기독교를 접하고 북송된 사람들은 정치범으로 취급하지만 먹을 것을 위한 단순 탈북인 경우에는 약간의 강제노동 후 다시 풀어주었다. 북한의 탈북자는 단순 방면, 노동단련형, 감옥행을 당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그나마 탈북자들에게 관대했던[27] 김정일 시대까지의 이야기로 김정은이 집권한 뒤에는 무조건 사형. 운이 좋아도 정치범수용소 직행 코스를 타게 된다. 따라서 현재 한국에 들어온 탈북자는 2011년 12월 이전 탈북하여 그 이후 중국에서 떠돌다가 국내로 들어온 사람이 절대다수에 속한다.

김정은 집권 이후에는 탈북자를 사살하라는 명령이 떨어져서 탈북에 대한 북한 당국의 단속이 심해졌다고 한다.[28] 이러한 단속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남한에 가족이 있는 탈북자들까지 수십 명이 잡혀 북송될 위기에 처하고 이들에 대한 구명 운동이 확산되면서 탈북자 문제가 국제이슈화 되고 있다. 모 국회의원은 단식투쟁을 하고 있고 '크로싱'에 출연했었던 배우 차인표 등은 적극적으로 가두시위를 벌이는 등 한국에서도 이에 대한 관심이 확산 중. 하지만 북한에 대해 확실한 주도권을 인정받지 못한 현재의 중국 입장에서 북한은 붕괴될 경우 자칫 중국 대륙과 서방 세력간 완충지대의 소멸로 이어질 수도 있는 사안이라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29]그리고 중국 입장에서는 탈북자는 엄연한 밀입국자이다. 밀입국자가 괜히 자국으로 와서 강간, 살인, 절도, 방화 같은 중범죄를 저지를수 있는데[30]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단속하는 것까지는 함부로 비난은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탈북자 자체도 중국 범죄조직에 의해 이용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 중국 입장에서는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중국이 까이고 비판받는 이유는 하필이면 강제북송을 한다는 것이다. 원래 밀입국자들은 본국으로 추방시키거나 혹은 현행법으로 처벌하는데 중국 입장에서도 탈북자들이 북한으로 다시 보내지면 죽을 가능성이 100%에 가깝다는 것을 알면서도 북송을 하는것이다. 차라리 탈북자들 입장에서는 이오시프 스탈린의 한인 강제이주처럼 오히려 몽골 사막 한가운데에 유기되는게 목숨을 부지할 가능성이 높은데도 말이다.[31] 거기다 중국의 국력으로 보나 뭘보나 탈북자들을 한국으로 추방하던지 필리핀 같은 제3국으로 추방하든지 아니면 백번양보해서 최소한 체포한 탈북자들을 한국 대사관에 그냥 알아서 하라면서 던져 놓을 수도 있다. 만약 한국 대사관이 중국 공안이 그냥 무책임하게 던져놓은 탈북자들을 쫓아내면 한국 대사관이 오히려 비난을 피할수가 없어 중국입장에서도 인권문제로 욕을 혼자 바가지로 먹을 일도 없기 때문.

의도는 좋았다고 하더라도 당사자들에게는 도움은커녕 오히려 더 방해만 되었다는 불편한 진실이다. 그리고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의 보도에 따르면 위의 탈북자들은 결국 북송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그들의 탈북을 도와준 사람들의 가족까지 가차없이 잡아가고 있다고 하니 피해 인원은 수백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원래 정치범 본인만 수용되던 악명 높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수성 교화소에 가족까지 모조리 다 잡아넣고 있다고 하니 역시 이놈도 답이 없다. 현재도 라오스까지 탈출한 청소년 9명을 친북 성향의 라오스 정부의 적극적인 협조, 중국의 묵인 속에 평양으로 끌고 갔다가 뒤늦게 들통나는 등 해외로 나간 탈북자들까지 잡아들이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하지만 이렇게 공론화한 시점에서 해당 탈북자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 탈북자 중 최소한 2명은 구할 수 있었음에도 이들의 생명을 무시하고 언플을 벌이다 탈북자 모두를 사실상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다. 특히 외교부의 '그들은 북한 사람인데 어떻게 한국인이라는 신원확인서에 도장을 찍어주느냐'는 발언이 있었다. 이 발언을 두고 우리 외교부의 현실을 보여주는 최고의 명언이라고 비꼬는 사람들도 많다.

1991년 남북한이 동시에 UN에 가입하면서 남과 북이 모두 주장하던 '우리만이 한반도의 유일한 국가'라는 논리는 국제적으로 사실상 효력을 잃었다. 남북 모두와 외교관계를 가지고 있는 동시수교국이 158개국에 달하는 상황에서 대한민국 헌법 제3조에서 규정한 한반도의 모든 지역이 대한민국의 영토라는 개념은 국내에서나 통용되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영토와 국적의 차이다. 국제적으로는 남과 북 모두가 국가로 인정받고 있지만, 누가 한국 국적자인지는 한국의 국내법이 정한다.[32] 한민족계 부모를 둔 북한의 국민은 대한민국 헌법 제3조와 북한이탈주민법에 따라 출생과 동시에 한국 국적을 취득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것에 기반해서 대한민국 정부는 탈북자가 북한 국민이란게 사실만 증명이 되면 받아들이고 있다. 즉 제3국의 시선으로 볼때 탈북자는 북한 국적과 한국 국적을 모두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10. 한국 사회에서 적응 문제[편집]

10.1. 자유사회에 대한 부적응[편집]

일부 탈북자들은 북한에 있던 시절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찬양 습관이 심신에 배이는 바람에 갓 탈북하여 남한에 정착했을 때 그야말로 비난과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특히 남한을 남조선이라고 한다거나 국민을 인민이라고 한다거나[33] 김일성, 김정일어버이 수령님이라고 부르다가 일부 남한 주민들로부터 비난과 곤욕을 당한 적이 있었는데 북한에서 살던 습관이 남아 있고 남한 생활이 익숙하지 못한 것 때문에 일부 남한 주민들로부터 이방인 취급을 받아 사회적응이 쉽지 않는 경우가 있다.

게다가 북한에는 있지도 않았던 표현의 자유, 주거 자유, 선택 자유, 의식의 자유에 익숙하지 않아서 애를 먹기도 하였다. 일부에서는 평안도 사투리, 함경도 사투리, 황해도 사투리를 쓰는 바람에 언어소통에 어려움을 느끼기도 하였다. 일부 탈북자들은 '남한에서는 계급사회 같은 게 없습니까?'[34]라고 남한 주민에게 뜻밖의 질문을 던지기도 하여 당혹감과 혐오감만 낳는 사례도 있었다. 물론 한국도 재산 및 인맥으로 고착화된 계층 차이수저 계급론가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적, 경제적으로 위계화되어 사실상 계급 내 이동이 차단된 북한과 달리, 한국을 비롯한 대다수의 선진사회에서는 경제력, 권력, 명예, 직업 등의 다양한 요인에 의해 사회적 위상이 결정되는 계층개념이다. 거기다 양극화가 심화되고 계층이동이 어려워질 경우 이에 대한 비판여론이 나오고 이를 대변하는 이익단체와 정당이 권력을 가진 자들을 압박하여 문제점을 완화시킬 수 있다. 북한의 계급은 오히려 근대 이전 사회의 신분개념과 유사하다.

게다가 북한의 주적인 미국 문화 및 일본 문화가 가득하고 익숙해진 남한의 풍습에도 익숙하지 못하여서 남한에 존재하는 미국 문화나 일본 문화를 처음 접하기만 해도 '어째서 적국의 문화를 접하는 건가요? 북에서는 미국이나 일본은 우리 인민의 주적입니다' 라고 얘기하는 등 남한 주민들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이질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유아기부터 지속적으로 미국일본혐오의 대상으로 인식하도록 세뇌교육을 받아온 영향이 가장 크다. 애초에 김일성 찬양과 우상화의 뿌리는 '위대한 김일성 수령님의 항미 정신과, 항일 정신...' 이런 게 대부분이다. 외교적으로도 아직 북한과 미수교 상태로 있고, 북한에서도 주적 및 적성국가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 원주민이 미국 문화나 일본 문화를 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이유도 있다. 이것도 갓 탈북해서 아직 남한 사회에 익숙하지 못하거나 적응하지 못한 탈북자들 입장에서 나온 것이며 남한 사회에도 익숙해져서 미국 문화나 일본 문화를 접하면서 적대적 성향이 사라졌던 베테랑 탈북자들에게는 해당이 없는 얘기이다.

그러면서도 북한의 친교국인 중국 문화러시아 문화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이고 호감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중국의 경우 오래전부터 북한의 우방이자 우호국이기 때문에 북한에서도 중국 문화는 쉽게 접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러시아 문화의 경우 소련 시절 북한과 우호관계에 있던 시절부터 유입되었기 때문에 익숙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히는 탈북자들은 한국이 잘 살면 중국만큼 잘 살겠거니 한다. 한국이 중국보다 잘 사는 것에 놀란다고. 중국 = 대국, 한국 = 소국이라는 사상 자체는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조선족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점이라면 조선족의 조국은 중국이고, 북한 주민들의 조국은 북한이다.

갓 탈북하여 남한 생활에 정착하게 되었을 때는 북한 사회에 익숙해진 심신 때문에 남한 생활에 미숙하여 사회적인 비난을 받을 수 있지만 그래도 남한 생활에 오래 정착하여 북한 생활의 습관을 잊고 사는 처지에서는 사정이 다른 편이다.

일부 탈북자들은 남한 생활이 북한에 있을 때와 다를 바가 없다거나 아예 생활에도 익숙하지도 못하고 사람들과의 소통도 장애를 겪었다는 이유로 월북재입북을 하게 되었다가 얼마 가지 않아 이용가치가 떨어지자 김정은의 명령으로 관리소행 편도 열차에 강제로 타게 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런 재월북은 매우 드문 편.

10.2. 북한식 세뇌에 의한 사고방식의 고착화[편집]

보통 탈북자들의 이러한 북한식 사고는 남한의 자본주의 문화를 접하면서 빠른 속도로 사라진다. 특히 생계형 탈북자들도 '우리가 그렇게 가난하게 살게 된 건 다 우리가 그토록 찬양했던 김일성 일가 때문이다' 라고 모두 배운 후 남한 사회로 입성하기 때문.

이들의 북한 체제와 김일성에 대한 분노와 혐오는 일반 남한 주민들이 장난스럽게 놀리는 것 이상으로 진지하고 무서울 정도로 높다. 특히 요즘 방송이나 언론에 자주 나오는 탈북자들이 갖고 있는 반북 감정은 대한민국 보수단체만큼 강한 경우도 있고, 이 탈북자들이 종북주의자들과 서로 싸우고 대립하는 것도 자주 볼 수 있다. 대북전단이나 신은미 사건, 황선 사건 등이 일어날 때도 탈북자들은 보수의 입장을 지지했다. 북한의 잔인한 체제를 직접 겪은 데다 그 진실과 원흉을 모두 알게 된 사람들이니... 과거 냉전 시절 탈북했던 귀순용사들 역시 김일성에 대한 배신감을 갖고 대한민국으로 도망 온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다만, 북한 내에서 대학이나 고등전문학교와 같은 곳에서 고등교육까지 받고 북한 사회의 주류에 있었던 이들이 오히려 그렇지 못한 이들보다 남한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어렵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북한에서 대학을 졸업한다는 것은 20년이 넘게 북한 정권이 내세우는 이데올로기를 강제로 주입받고, 북한 내에서 주류 사회에 편입되었다는 것인데, 이들이 완전히 체제가 다른 사회에서 새로운 생활 방식을 익히는 것은 기존에 자신이 갖고 있던 사고 체계를 뜯어 고쳐야 하는 것이라서 오히려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이들보다 어렵다. 또한, 북한 내에서 중산층 이상의 지위에 있던 이들도 북한 내에서 가졌던 사회적 지위를 남한으로 탈북해 온다 해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어서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상당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35][36]

이런 문제들이 북한에서의 학력을 인정하지 않아서 일어나는 문제라는 말도 있는데, 이건 말도 안 되는 것이 합심센터에서 탈북자들의 학력을 검증하고, 등재하는 과정이 있다. 만일, 학력 증명 서류의 원본이 있는 경우에는 즉시 인정[37]되며, 정황적 증거[38]를 제시하는 경우 검증을 통해 학력을 인정한다. 물론, 법조인, 의사, 교원 등과 같은 전문직이나 국가 공인 자격의 경우도 검증을 통해 자격이나 면허를 인정하는 프로그램이 있으며, 실제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의사, 교사, 약사, 안경사, 조리사 등의 자격이 무시험 검정으로 주어진 경우도 있다(법조인은 아직 없음).

대한민국에선 북한의 교육이 김부자 우상화에 집중되어 있다는 편견이 흔히 있으나, 북한의 교과 교육의 강도나 그 수준은 오히려 대한민국 이상인 경우가 많다. 김부자 우상화 교육의 비중이 크다는 것은, 교과 교육이 소홀히 이루어진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라, 한 학생의 학력을 평가하는 데 김부자 관련 요소가 쓸 데 없이 끼어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의 대학에선 편견과는 달리 결코 북한 내부나 사회주의 국가에서만 통용되는 학문, 학설만을 국한해서 가르치지 않으며, 오히려 폭넓은 학문 분야를 접하게 한다. 실제로 북에서 대학까지 졸업한 사람의 경우엔 사고방식이 경직된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실력이나 지적 측면이 절대 뒤떨어지진 않는다. 윗 문단의 문제는 단순한 학력의 인정 여부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북한 내에서 대학 졸업자에게 보장되는 사회적 지위와 그 탈북자가 대한민국 내에서 갖게 되는 한계적 사회적 지위 간의 불일치 문제[39]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탈북자들을 재교육하고 배출할 때 북한 내에서 지녔던 학력에 상응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과 같은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단 수적으로도 탈북자들의 상당수가 생계형 탈북자가 많기 때문에 탈북자 교육 및 지원 정책이 이들 위주로만 맞추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라, 출신 계층별 교육 체제, 지원 체제 등을 확충하는 것이 절실한 상황이다.

여담으로 남한에서 중산층 이상의 지위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직업군 중에서, 탈북자가 제일 많은 분야는 군인과 공무원이지만 군인 출신 중에서는 아직 장성이 없고 공무원은 거의 다 특채로 고시 출신은 없다. 그나마 군인은 인민군 복무 중에 탈북하여 그대로 계급을 인정받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10대에 탈북한 이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군필 탈북자들은 나이 때문에 국군에서 직업군인으로 재복무가 어렵다. 교사는 2016년 최초로 1명이 나왔지만 학부모가 탈북자 출신 교사를 꺼려할 가능성이 높아 신분을 일체 비밀에 부치고 있다. 의외로 경찰은 2016년 현재 아직 한 명도 없다.

10.3. 난민 신청을 통한 이민[편집]

보통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탈북자들은 재월북보다는 한국을 떠나 해외로 다시 이민을 간다. 아니, 정확히는 정치적 난민 비자를 신청해서 영국, 캐나다 등으로 이주를 시도하는 것. 2000년대 중후반 ~2010년대 초반 탈북자들 사이에서 북미, 서유럽 등에 난민신청을 하는 사람이 늘었고 초기에는 영국, 캐나다등이 탈북자를 수백명씩 받아 주었다. 하지만 갑자기 급증하는 탈북자를 이상하게 여긴 각국 정부들이 정밀 심사를 하고 한국 정부에 신원 및 지문 조회를 요청해 한국 국적을 취득했던 탈북자들에 대해선 난민 지위를 거의 인정하지 않게 됐다.

단적인 예로 2014년 캐나다에 난민을 신청한 북한인 617명 중 단 1명을 제외하고 모두 한국으로 강제추방 당했다.도대체 단 1명이 누구였길래 그리고 2017년 현재, 난민 신청이 통과되었거나 이후 영주권 취득을 한 탈북자들도 무더기로 취소되면서 추방 위기에 몰려있는 것이 현실이다.# [40][41]

심지어 같은시기 난민 심사가 허술했던 독일에선 탈북자를 난민으로 받아준다는 걸 알아챈 일부 중국 조선족들이 탈북자 행세를 하면서 북한 애국가와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암기하고 독일 난민심사를 통과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하지만 독일 난민심사 통과후 새로운 신분이 확정되기전 중국 여권을 들고 중국에 드나들던 몇몇 조선족들 때문에 들통이 났고, 이후 심사가 엄격해졌다. 중국 공안의 단속과 북송에 대한 공포로 난민신청을 했다는 사람들이 새 신분이 나오기도 전에 자유롭게 중국을 드나들다 독일당국에 적발된 것이다.

10.4. 일부 탈북자들이 일으키는 사회 문제[편집]


북한이탈주민 출신 인사들이 극우 단체들의 정치적 선전에 이용당해서, 혹은 자발적으로 주동세력이 되어 국내에 정치적 사회문제를 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중도개혁 혹은 진보좌파 인사/단체와 이들의 활동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에 다각도로 이용되고 있다. 북한은 극도로 폐쇄적인 사회이기 때문에 특정 개인의 경험을 증명해 줄 수 있는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탈북자들의 발언은 교차검증을 통해 사실을 규명하기가 상대적으로 곤란하기 때문에 '아니면 말고' 식의 자극적인 선동에 잘 써먹을 수 있다. 이러한 악용의 대표적인 예가 노골적으로 극우성향을 띄는 종편 TV조선채널A로, 해당 방송들의 5.18 광주폭동설에 대한 탈북자들의 증언들이 나왔다. 당시 광주에 투입되었다고 주장하는 탈북자들의 증언을 제시하며 민주화운동을 북한의 선동에 의한 폭동으로 매도하기 위한 것. 하지만 오히려 이게 논란이 되자 오히려 다른 탈북자들이 5.18 때 간첩이 개입하지 않았다며 왜 그런 유언비어가 떠도는지를 증언했다.

극우 사이트 일베저장소를 인증하는 탈북자들이 있고, 특히 탈북자 출신 영화감독 정성산[42]은 일베사이트에서 쓰이고 있는 지역비하로 전라도를 비하하는 '7시', '전라도는 다른 나라' 등등의 발언을 트위터를 통해서 쓰는 등(기사) 극단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사실 탈북자 중에는 정치적 면에서 극단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 많으며, 겉으로 드러나는 자들만 해도 꽤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일부 탈북자들이 남한 내부의 정치적 대립과 연관되는 경우는 2가지 정도의 이유를 들 수 있다.

북한 사회에 대한 회의감, 자유에 대한 갈망 등의 이유로 탈북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비교적 '순수한 동기'라고 할 수 있는데, 자신을 탄압하고 민생을 도탄에 빠뜨린 북한에 대한 증오때문에 사실 안 그러는게 더 이상하지만 북한과의 대화나 유화책 등을 주장하는 한국의 진보·좌파나 대놓고 북한 체제를 떠받드는 (혹은 이득을 위해 그런 척) 하는 종북주의자들에 대한 감정적 반발이 발생하는 경우이다. 이는 시간이 지나면 남한 사회와 민주주의 체제에 동화되어 나가면서 자연적으로 해소될 가능성이 크다.

가장 최악은 자신의 출세나 돈을 목적으로 남한 사회의 갈등을 의도적으로 조장하는 경우다. 이들은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된 남한 사회 내부의 갈등 및 권력관계를 포착하여 그것에 편승함으로써 쉽게 이익을 보고 자신의 불안한 지위를 강화시키려는, 소위 "배신자의 생리"라고 이야기 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43]

첨예한 대립이 오래동안 지속된 두 세력의 중 하나의 진영에서 반대편의 진영으로 옮기게 되면 어떤 경우에도 상당한 리스크를 동반하게 된다. 이전에 몸담았던 곳에서는 용서못할 배신자 취급을 받게 되며, 새로 몸담게 된 곳에서도 불순한 의도로 넘어온 것은 아닌지 의심을 받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한 혐의가 풀린다고 할지라도 "배신자", "자기 주변을 내팽개치고 혼자 도망온 사람"으로 비치는 등 부정적인 시선이 존재할 수도 있으며, 실제로는 주변에서 그리 생각하지 않아도 본인 스스로가 자격지심으로 인해 편집증적인 불안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새로운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에 대한 극도의 불안감을 보인다.

이때문에 한 번 편을 바꾸고 떠나온 사람은 새로 몸담은 곳에서 자신이 "보호받고 대접 받을 가치가 있는 중요한 사람이며, 이곳에 절대 충성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이전에 몸담았던 곳에 대해 (아무래도 과장이라고 볼 수 밖에 없는 정도로까지) 무지막지한 비난을 쏟아내면서, 동시에 새로 넘어온 곳의 권력자층과 그 체제에 대해서는 과잉충성에 가까운 순종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새로 몸담게 된 체제의 권력자들은 그러한 행위를 체제옹호를 위한 프로파간다로 적극활용하면서 결국 그 양자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일치하게 된다. (일부) 탈북자들은 남북관계가 극단으로 치달을 수록, 남한 사회 내부에서 북한을 두고 의견대립이 격렬할 수록 자신들의 사회적 위상이 강화된다고 믿고, 그러한 방향으로 (확인되지 않은 혹은 확인할 수도 없는) 정보들을 쏟아내면서 이러한 대립구도를 강화시킬려고 노력한다.[44]

이런 경향은 단지 체제뿐 아니라 종교와 종교, 정치집단과 정치집단간의 사례에서도 쉽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과거 극좌운동을 하다가 보수우익으로 전향한 뉴라이트 인사들이 진보좌파 진영을 향해서 초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전향자들 일수록 자신들에 씌어진 과거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서 더더욱 오버하는 것이다. 개신교 간증 집회에 종종 등장하는 개종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새로운 민주 사회의 일원으로 정착하여 건전하게 새로운 삶을 영위하기 보다는, 예전에 있던 곳에서 하던 '체제의 충실한 신민' 노릇을 새로 넘어온 곳에서도 똑같이 되풀이하면서 "주인만 바꾼 격이지, 여전히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충실한 개노릇"을 하는 셈이다. 이들은 대한민국 시민들과 달리 탈북 전까지 민주주의를 배우고 체화할 기회가 전혀 없었고, 전체주의/주체사상을 주입/세뇌 당하고 살아 왔기에 남한에서도 민주주의 의식을 받아 들이고 체화하기보다 증오의 방향만 다를 뿐인, 또 다른 전체주의/극우주의에 편입되는 경우가 많다. 주체사상에서 볼 수 있듯이 극과 극은 통한다.

여담으로 탈북자들이 하나원에서 남한 정착 교육을 받을 때는 종교 교육도 함께 받게 되는데, 대부분이 가톨릭 아니면 개신교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불교신문 보도에서 인용한 <2016 북한종교자유백서>에 따르면 이들이 종교적 영향을 받는 주된 요인은 북한에서부터 비밀리에 시작된 종교적 접근과 탈북과정에서 도움을 받은 종교인 및 단체로부터 받는 지원에 있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특히 중국과 제3국에서 북한주민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고 지하교회를 운영하며 종교 교육과 신앙생활을 하도록 이끄는 목사들로부터 종교를 접하다 보니 이미 하나원에서 종교 교육을 받기도 전에 개신교에 심취해 있는 경우가 많고 기독교 단체의 도움을 받아 탈북해 남한으로 건너오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자신들의 목숨을 살렸다고 여기는 경우도 많다고.# 탈북자 출신의 기자인 주성하는 탈북자들 대부분이 개신교를 믿게 되는 이러한 경향에 대해 우선적으로 탈북자들의 탈북 지원은 물론 탈북 이후 남한 정착까지 돕는 단체들 대부분이 개신교와 닿아있는 데다 하나원에서 교육 받으면서 남한의 훈련소에서 그러하듯 개신교가 퍼붓는 막대한 물량 공세(...)에 개신교에 대해 돈 많은 종교라는 인식을 갖게 되면서 개신교를 택하는 탈북자들이 늘어난다고 해석했고, "기독교는 평양을 제2의 예루살렘으로 만들려는 꿈을 꾸고 벼르고 있는 듯 하다"고 평했다.#[45] 어떻게 생각하면 후술하듯 일부 탈북자 및 탈북 단체들이 기독교 우파와 결탁해 친정부 성향의 집회에 참여하거나 북한에서 하던 것처럼 종교와 국가를 지나치게 동일시하면서 극우화된 나머지 극단적인 쇼비니즘에까지 빠지는 악순환을 초래하는 한 원인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한국의 경우, 일부 탈북자 및 탈북단체는 기독교 우파 및 과거의 냉전 논리에 찌들어 있는 극단적인 반공세력 및 극우집단과 유착하여 마녀사냥을 일삼고 있다. 이들은 전라도, 노동운동, 시민운동, 진보좌파, 심지어는 중도적인 자유주의자들 조차도 종북으로 몰아가며 냉전우파세력의 이익을 위해 노골적으로 봉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냉전 논리가 이 사회를 지배할 수록 자신들의 돈줄 또한 보장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탈북자들의 활동은 이른바 '북풍'의 아주 좋은 도구가 되고 있다. 특히 2016년~2017년에 이루어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때 탈북자 단체가 박근혜를 옹호하는 집회에 구성원들을 동원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한국 국민들에게 어그로를 끌었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우리나라 발전에 방해만 하는 탈북자들을 왜 우리가 세금으로 먹여살려야 하느냐는 냉소적인 시각도 늘어나는 실정이다.

한국 사회에 적응하여 건전하게 정착한 많은 탈북자들의 경우 이런 움직임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 탈북자 출신 동아일보 기자 주성하5.18 광주민주화운동 왜곡사태 등을 빗대어 "아마 이런 일이 몇 번만 더 계속된다면 정말 한국 사회가 탈북자들을 '거짓말쟁이에 쓰레기'라고 낙인 찍을 것 같다. 그렇다면 대책은 무엇인가. 다름 아닌 탈북자 사회 스스로가 자정을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탈북자 개개인의 책임이 아닐까 생각한다."라며 크게 우려하고 있다. # 그리고 새코리아청년네트워크 대표 강룡 씨도 극우화되는 탈북자들과 함께, 방송에서 탈북자들이 북한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기도 했다. 첨부된 인터뷰 링크에 따르면, 북한에는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기 때문에, 개개인이 얻은 타 지역에 대한 정보가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한다. 즉 팩트 체크가 필요하다고. #

탈북의 이유 또한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다. 어떤 이유에서이든 하나의 체제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기 때문에 탈출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정해져 있다. 자유를 갈망하는 사상범이거나, 체제의 부조리로 인하여 희생될 위기에 처한 숙청의 피해자, 혹은 권력 투쟁의 패배자, 생존의 위기에 처한 경제적 난민[46] 그리고 어느 사회에서나 처벌될만한 범죄자. 불편한 진실이지만 탈북자들 중에도 북에서 살인, 강절도, 횡령 등 범죄를 저지른 후에 처벌을 피하기 위해 탈북한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47][48] 그리고 이런 범죄자들은 제 버릇 개 못준다고, 남한에서도 같은 탈북자를 등쳐먹는 식의 범죄를 저지르다가 처벌되곤 한다. 실제로 탈북자들에게서 거액의 투자금을 받아서 도망친 뒤 재입북한 인간도 있을 정도다.

예를 들어 이정연은 자신의 북한군 장교 근무 시절의 이야기를 모아서 <북한군에는 건빵이 없다>를 출판해서 큰 돈을 벌고 매우 유명해졌는데, 이후 40억 가까운 돈을 사기쳐서 중국으로 달아났다. 이정연은 한동안 반공보수 집회에서 고정적으로 나와서 연설도 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던지라, 반공보수단체들이나 책을 낸 출판사 플래닛미디어는 피해자들에게 항의와 욕설에 한동안 시달리기도 했다.

또한 의도가 어찌되었든 이미 탈북한 이후에도 북한에서 쓰던 용어를 그대로 써서 김씨 왕조 마인드에서 못 벗어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사는 경우가 있다. 임수경에게 막말을 들었다는 탈북자 출신 대학생 백요셉은 막말사건 1주일 전인 2012년 5월 30일에 남조선 국민여러분은 지금부터 인공기를 준비하지 않으면 이 땅에서 편하게 살기 어려울 수 있다.고 주장했고, 임수경 의원에게 막말을 들은 이유가 임수경의 보좌관이 사진을 지운일을 두고 이럴 때 우리 북한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아시죠? 바로 총살입니다. 어디 수령님이 명하지 않은 것을 마음대로 합니까라고 발언한게 욕을 먹은 이유 였다. 이는 정치권에 종북이 도사리고 있음을 경고하는 의도였다고는 하지만, 이미 대한민국 국민이 된 상황에서 대한민국남조선이라 칭했기에, 사람에 따라서는 발언의 진짜 의도를 의심할 수도 있는 문제고, 본인의 sns 계정에 올린 글이므로 애초에 저런 실수를 할 가능성이 낮으며, 실수로 글을 올렸더라도 금세 수정할 수 있다. 후자는 백씨 본인은 농담이라고 말했지만 본인부터가 그 수령님한태 총살을 당할뻔한 사람인데 진짜 농담이었는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결국, 대립하는 양쪽 정부 각자의 이해관계로 인해 프로파간다의 도구가 되어가는 탈북자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니편 내편 진영논리에 빠져 "우리 편 넘어오면 무조건 좋은 놈, 여기 와서 하는 말은 모두 진실"이라는 단순한 발상에서 떠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탈북자라는 집단을 바라 보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남한에 왔다는 것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에, 일부 탈북자들은 "남한이 생각보다 살기 힘들다." 또는 "드라마와 다르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다. 남한에 오라고 한 사람도 없고,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탈북을 해서 온 것이므로 그 선택에 대한 결과도 본인이 짊어져야 한다. 게다가 탈북자들은 한국에 태어나서 살고 있는 일부 계층보다 많은 혜택(그 대부분은 남한 국민들이 낸 세금이다!)을 누리고 있으니 "남한이 무릉도원이 아니"라는 불평은 한국에서 공감을 얻기 힘들다.
한국에는 탈북자들보다 더 힘들게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단순히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많은 혜택을 누리면서도 더 많은 것을 받기를 노골적으로 주장한다면 그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함께 생리적 혐오감을 자극할 뿐이다. 세계 어딜 가든 '더 받으려는 사람'은 환영받기 어렵지만, 동아시아는 특히나 소위 '분에 넘치는 욕심'을 부리는 사람을 혐오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사실을 탈북자들 스스로가 알아두어야 할 것이다. 탈북자들이 이 페이지를 볼 것 같지는 않다만.

10.4.1. 망명 논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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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단체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 탈북자들이 집단으로 해외 망명하겠다"고 했다. 탈북자집단망명추진위원회는 5월 3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문 후보가 당선될 시 탈북자 3000명이 집단 망명을 신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 위원회 측은 “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미국보다 북한을 먼저 방문하겠다’, ‘보수를 촛불로 불태우겠다’고 발언한 것과, 이해찬 민주당 의원이 ‘보수를 궤멸시키겠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

이들은 “노무현 정부 당시 고무보트를 타고 탈북한 22명의 북한 주민을 정부가 강제로 북송시켜 처형당하게 했다”며 “노무현 정부가 중국 공안과 북한 보위부가 중국에서 활동하던 탈북자들을 대거 검거해 북송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49][50]

그러나 정작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에는 아무런 소식이 없다. 이 기자회견을 주도한 탈북자 출신 박사 1호 이애란(요리연구가)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도 정규재TV 같은 보수우익 매체에 출연하면서 대한민국에서 잘살고 있다. 이애란의 그것이 알고 싶다일개 요리연구가가 대남사이버전략에 대해서 꿰뚫고 있다는게 함정

10.5. 탈북 청소년 문제[편집]

탈북자의 한국 사회 부적응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탈북 청소년의 학교 부적응 문제는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다. 2012년 기준으로 일반 청소년에 비해 탈북 청소년의 학업중단, 자퇴 비율이 7배나 높다. 그동안 성인 탈북자의 정착과 지원 그 자체에만 초점을 맞춰왔고, 그 가족의 자녀들은 어리니까 성장하면서 잘 적응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부터[51] 탈북자의 규모가 늘어남에 따라 교육부를 중심으로 탈북 청소년에 대한 교육지원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다. [52] 이러한 정책적 지원에 결과, 2015년 기준 학업중단율은 많이 낮아져서 한국 학생에 비해 2배 정도 수준까지 낮아졌다.탈북 청소년의 학업 중단율 낮아짐 최근에는 학생들의 학업 적응 뿐만 아니라, 진로 탐색이나 사회 적응을 위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려는 시도들이 존재한다.

탈북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학교라는 환경에서 다양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일단은 신변안전상의 이유로 탈북자 출신이라는 사실은 숨기는데, 한번 어떤 이유로든 탈북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주변 학우들이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사실 숨긴다고 오래 숨길 수도 없다. 북한 특유의 말투와 또래 문화를 쉽게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학생들은 중국에서 왔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즉. 중국보다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이 일반 학생들에게는 보다 더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특히, 북한에서 보이는 도발이나 사회, 정치적 문제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 애꿎게 '너희 나라는 맨날 왜 그러냐?' 는 부당한 비난을 받고 심지어 '너 간첩이지'에서 '빨갱이'라는 욕까지 듣는다. '너희 나라'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이 그냥 한국어 쓰는 외국인 취급이다. 참고로 한국 정부는 헌법으로 한반도에서 유일한 정부임을 자처하며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다. 나라가 아니다.[53] 집단 폭력까지 당한다.

애들한테 죄가 있다면 휴전선 위쪽에서 태어났다는 죄 밖에 없지만 애시당초 집단괴롭힘에 합당한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뭔가 트집거리 잡을 게 하나라도 생기면 즉시 그 대상이 된다. 결국 탈북 청소년도 엄연히 감수성이 있는데 이런 차별은 성인보다 더 뼈아프게 느껴질 것은 자명한 일. 게다가 지속적으로 계속 감정적인 차별에 시달리며 성장할 경우 이들이 갖게 될 대한민국 체제에 대한 반감도 고려해야 한다. 이렇게 일반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경우에는 탈북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대안학교인 한겨레중고등학교에 진학하기도 하고, 검정고시를 통해서 정규 교육과정을 이수하기도 한다. 다만, 어린 시절에 한국 일반 학교 경험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지속적으로 탈북청소년들의 사회적응이라는 측면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이들의 적응에 국가와 민간 양측이 별도로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탈북 청소년을 다문화 가정 범주에 넣어서 다루는 것이 전부이다. 다문화 가정의 자녀를 지원하는 단체에서 탈북 청소년까지 지원해주고 있는 상황이다. 혼혈도 아니고, 타 문화권 출신도 아닌데 다문화 취급하는 것 자체가 개판이지만, 정말 현실은 시궁창인 것은 탈북 청소년한테 그나마 이 정도 관심이라도 보여주는 단체는 이들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 이후 교육부를 중심으로 탈북 학생들의 경우 다문화 학생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큰 규모의 교육 지원 및 학비지원, 대학(정원 외)특례 입학 등의 지원들이 존재한다. 탈북 청소년이 받는 혜택 여기서, 한국 사회에 적응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탈북자임을 숨겨야 하는데, 국가의 교육지원 정책의 수혜를 받기 위해서는 탈북자 출신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공개해야 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특히 탈북 청소년들은 남한의 학교 수업을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고 절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북한의 수업 내용은 수학, 과학 과목 정도를 제외하면[54] 대부분이 김일성 찬양에 맞춰진, 즉 거의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세뇌뿐이기 때문이다. 외국어 공부는 평양의 선택받은 학생들이 아니면 북한 당국에서 의도적으로 못하게 하는 경우도 많고.[55] '따지지 말고 그냥 믿어야 하는' 환경에서 가치관이 형성된 채 평생을 살던 이들이 갑자기 이성논리로 따지며 탐구하는 남한의 수업을 따라갈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56]

2012년 말에서 2013년으로 이어지는 북한의 막 나가는 위협이 계속되자 상술된 "니네 나라는 맨날 왜 그러냐"는 분위기는 점점 강해지고 탈북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상황. 북한에 대한 반감과 혐오감을 죄 없는 탈북 청소년들에게 푸는 것. 이렇다 보니 탈북 청소년의 37% 부적응 감정적인 고립이 실제로 어떤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지 보여주는 예.

그래서 위의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인진 몰라도 남한에서 나름대로 성공한 북한이탈주민들 중에서도 남한이 아닌 다른 나라로 이주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발견된다.

요즘은 탈북 여성들이 팔려가 가정을 이루고 살던 중국에서 출생한 혼혈 청소년들이 한국에 먼저 정착한 탈북자 출신 어머니들에 의해 한국으로 대량유입 되면서 순수 혈통의 탈북 청소년의 수를 넘어서고 있다.

11. 한국 사회에서 탈북자가 받는 혜택[편집]

다음은 2017년을 기준으로 대한민국에서 북한이탈주민이 받고 있는 혜택이다.남북하나재단의 북한이탈주민 지원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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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기준으로 탈북자가 추가로 받는 혜택은 다음과 같다.2015년 추가된 탈북자 혜택

  • 경제 혜택: 미래행복통장은 근로소득의 30%, 최저 10만원부터 최고 50만원까지, 최고 2400만원, 취업 장려금 지급조건이 거주지 보호기간 5년인데 출산여성인 경우 2년 연장.

  • 교육 혜택: 하나둘 학교의 입학연령을 19세에서 24세로 상향.


2016년 기준으로 탈북자가 추가로 받는 혜택은 다음과 같다.2016년 추가된 탈북자 혜택

  • 경제 혜택: 영농정착 지원, 세무 이용료 지원.

  • 주거 혜택: 주택미배정자 쉼터 지원.

  • 의료 혜택: 보청기 지원.

  • 교육 혜택: 법률구조공단의 법문화 교육, 탈북아동청소년 학습 지원, 탈북아동청소년 화상영어교육 지원.

  • 기타 혜택: 정착지원 전문관리사 교육생 모집, 북한이탈주민 자활사업단 운영기관 모집, 늘푸른 착한엄마센터 공동운영기관 모집.


2017년 기준으로 탈북자가 추가로 받는 혜택은 다음과 같다.2017년 추가된 탈북자 혜택

  • 채용 혜택: 남북하나재단의 임직원들 20%를 북한이탈주민 출신으로 채용.

  • 의료 혜택: 병원 입원 시 3일 이상 입원, 본인 부담금이 30만 원, 260달러 이상일 때 지원, 치과 틀니 구입 시 100만원, 854달러까지 지원, 북한이탈주민의 출산 시 본인이 부담한 금액의 30% 지원에서 50% 지원, 불임여성의 경우 1인 1회 본인부담금의 50%, 최대 200만원, 1700달러까지 지원, 국립중앙의료원이나 서울의료원 등에서 북한이탈주민들의 입원해서 치료받을 때 본인부담금의 80%를 지원.

12. 가짜 북한이탈주민[편집]

이걸 북한에서는 되려 역이용해서 공작원을 북한이탈주민으로 위장해서 남한으로 내려보내기도 한다. 이는 체제선전용으로 활용하는 것인데 몰래 남조선에 내려갔더니 거긴 더한 헬게이트라서 지난날의 과오(...)를 뉘우치고 다시 따뜻한 수령동지의 품 안으로 돌아왔다는 거짓 시나리오로 엄선된 인원들이 탈북과 비슷한 방법으로 실제로는 남파공작원의 형태로 내려왔다가 재월북의 형태로 복귀하는 것이다.

때문에 뉴스에 탈북 후 재월북 기사가 나면 거의 대부분 공작원 짓이며 진짜 북한이탈주민이 재월북을 하면 100퍼센트 여기로 끌려간다.

각종 종교 또는 테러리스트들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인간은 물질보다 신념을 우선시할 수 있는 동물이므로 이러한 공작원의 활동은 충분히 존재 가능한 사건이다. 그러나 '따뜻한 남쪽 나라의 문물을 보면 독재에 세뇌된 동포의 가슴이 녹아내려 자연스럽게 자유대한에 귀의할 것이다.'라는 과거 반공주의 시대 논리에 알게 모르게 익숙해 있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이러한 월북사태는 배신감과 함께 모종의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다.[57]

웃기는 건, 그런 생각이 꼭 틀린 건 아닌지 이렇게 위장 탈북한 공작원이 돌아오질 않아서(...) 진짜로 탈북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물론 국정원도 바보가 아닌지라 거의 대부분은 걸러진다. 다만 돌려보내지는 않고, 그렇다고 어디 감금하지도 않고 그냥 간첩죄로 몇년 때려서 교도소에 보내버린다.[58]

한국과 중국간 임금 격차가 현재보다 휠씬 더 벌어지던 10~20년전 지금은 너무 쉽게 발급돼서 한국 노동시장을 교란하는 f4나 h2비자가 조선족들에게 적용이 사실상 안돼던 2012년 이전과 정착금을 몇천씩 일시금으로 주던 2004년 이전부터 중국 조선족들이 말투가 전혀 차이가 없다보니 탈북자에게 지원되는 정착금이나 한국 국적 등을 노리고 탈북자로 위장하여 입국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

13. 트리비아[편집]

2000년대 중후반~2010년대 초반 한국에 들어와 정착했던 탈북자들 사이에서 미국 캐나다호주 유럽으로 가려는 바람이 불었고 이로인해 연간10명도 안되던 탈북자들이 갑자기 폭증하자 이들 국가에선 탈북자들에 대한 엄격한 조사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한국을 거치지 않고 입국한 탈북자들은 난민 허가가 잘나지만 한국정부에 신원 및 지문 조회를 요청해 한국 국적을 취득했던 이들에 대해선 이미 체류허가가 난 탈북자들은 어 쩔수 없이 받았지만 심사가 엄격해진 이후 난민 신청자들은 대부분 거부됐다.

무엇보다 조선족이나 중국인들이 탈북자로 속여 유럽으로 들어오던 게 드러났기 때문이다.[59] 브렉시트와 시리아 난민 문제로 반 외국인 정서가 팽배해서 골치아팠는데 잘됐다 싶었는지 걸리는 족족 추방조치. 이런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자 화가 난 영국과 캐나다는 자국 의회와 인권단체의 권고를 무력화하기 위해 한국을 안전 국가로 지정했다.

미국에 가면 더 돈 많이 벌고 좋아진다고 여기는 탈북자도 많아졌다. 물론 탈북 상태에서 미국으로 가는 것은 가능은 한데 대부분의 정보가 카더라 통신. 미국이 이민자들의 후손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나라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을 환영할 리는 없고 한국과 달리 정착연금도 거의 없기 때문에 극단적인 최후를 겪는 일도 있다. 이러려고 탈북한 게 아닐 텐데...

게다가 이런 사람들은 외국에서도 적응 못 한다. 한국인이 외국 가서 그나마 좀 기댈 수 있는 게 같은 한국인인데 한국에서 적응을 못할 정도면 외국 내 한국 커뮤니티에서도 적응을 할 수가 없다.

자기 의사와 상관 없이 탈북(...)이 된 사례도 있다. 김련희 문서 참고. 생일날 밥 사먹으려고 국경을 넘었는데 그날 김정일이 열차 타고 중국 오는 바람에 경계가 삼엄해져 돌아갈 수 없게 된 나머지 탈북하게 된 북한군 이야기라던가. 그래도 이런 해프닝성 탈북이야 별로 주목을 받지 않는 편.[60][61] 이와 다른 케이스로, 중국의 탈북 브로커들이 돈 벌 수 있다고 사람을 속여 강제로 데려온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는 있다. 해당 보도를 다룬 언론사와 기자의 경력을 보면 가려들을 필요는 있겠지만. 일부 종북주의자들은 이런 사례를 과장하면서 사기 혹은 강제로 이뤄진 탈북이 일반적이고, 이게 기획 탈북이라는 개소리를 늘어놓기도 한다. 기획탈북 자체가 언론에 탈북과정 등을 노출시켜 후원을 더 받으려고 하는 짓이기 때문에 오히려 강제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욕먹긴 하는데 탈북 루트 및 탈북 과정을 적나라하게 묘사해서 다른 탈북자들을 탈북을 못하게 하니까 문제가 되는 거지, 탈북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유럽 난민 사태에서 대한민국이 꽤 자유로운 이유 중 하나가 매년 상당한 숫자의 탈북자를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구 서독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은 북한 주민 2,500만 명을 갑자기 떠맡을 수 있기 때문에 인프라를 구축하느라 더 먼 곳의 난민을 수용할 여유도 없다. 웬만한 나라들은 통일 후 낙후된 동독 때문에 크게 경제적으로 후퇴하고 아직도 고통받고 있는 독일의 사례를 잘 알고 있는 바, 비슷한 사정인 한국을 보고 제3세계 난민 인정 및 수용에 인색하다던가 뭐 그런 비난을 못 퍼붓는다. 미국이야 유럽 난민 사태가 자국의 일도 아닌데다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한국과 일본의 안정적 상태를 유지할 필요성이 있으니 괜히 한국에 '난민 받아라'라고 할 이유가 없고, 실질적 요구를 할 만한 EU의 경우에도 EU의 사실상 원톱인 독일부터 위에 언급한 동서독 문제 때문에 걸리는 편. 정 독일을 비롯한 EU 측에서 태클을 건다고 해도 대한민국에서 '우리도 매년 탈북자들을 수백, 수천명씩 난민으로 수용하고 있고, 유사시에는 수천만명의 북한 주민들을 한꺼번에 수용해야 한다. 당신들도 동독과 통일할 때 비슷한 일을 겪어보지 않았는가? 탈북자들만으로도 벅찬 상황인데 우리 한국이 직접적인 책임도 없는 중동 난민들을 더 수용한다는 건 무리이다.'라는 논리를 펴면 EU 측에서는 마땅히 반박할 명분이 없게 된다.

텀블벅에서 탈북자들을 주제로 한 국산 게임이 펀딩 중이다. # 평가는 좋지 않은 편. 운빨좆망겜이란 평가다.

그런데 탈북자 중에 방송에도 참여하는 등 인지도가 높았던 여성인 임지현이 돌연 다시 재입북을 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는데, 그 바람에 탈북자에 대한 국내의 시각이 무척 부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14. 유명 탈북자들[편집]

  • 고영환 - 북한의 전 외교관. 프랑스어 능통자로 김일성의 프랑스어 통역을 맡기도 했고, 1980년대 내내 아프리카 프랑스어권 국가에서 근무하였다. 콩고 대사관 참사관으로 근무하던 도중, 기관원들과의 마찰로 반동으로 몰릴 위기에 처하자 1991년 5월 탈북해서 한국에 입국하였다.[62] 최초의 외교관 탈북자로, 구 공산권이 무너지고 소련이 흔들리던 시점이라 언론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후 정부에서 북한문제전문가로 활동해왔으며, 2016년 현재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으로 재직중이다. 아무래도 정보기관 소속이라 최초 입국 때의 주목에 비해서 언론 노출은 거의 없는 편이다. 하지만 경력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진짜배기 북한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이 사람의 탈북 스토리를 알고 싶다면 본인의 저서인 '평양25시'를 참고하자

  • 강명도 - 김일성의 10촌 친척으로 강성산 전 정무원 총리의 사위이자, 김정일 유모이던 강보비의 조카. 1994년 탈북하였다. 현재 직함은 경민대학교 효충인성교육원 교수.[63] 북한 내 최고위층 출신이라는 거 하나로 2010년 이후로 보수종편에 단골 출연인사가 된 인물이다.

  • 강철환 - 북한전략센터 대표, 전 조선일보 기자, 최초의 탈북자 출신 기자

  • 김련희 - 현재 북송을 주장하는 몇 안되는 탈북자

  • 김만철씨와 그 가족들

  • 김용(1960)

  • 김주성(탈북자) - 재일 한국인 3세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며, 북한에 있을 때, 소설가, 배구선수, 대학교 교양체육 강사, 국가과학원[64] 소속 연구원[65] 겸 번역가[66], 가로등 소등 용역[67] 등의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다가, 고난의 행군과 일본인 납치자문제로 일본의 대북제재에 따른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2007년과 2008년에 두 번에 걸쳐서 탈북하여 남한에 정착했다.

  • 김혜영(1972)

  • 김현식 - 김형직사범대학 러시아어과 교수 출신으로, 김일성, 김평일, 김정일, 황장엽 등 이름만 대도 알 만한 북한의 주요 인사들에 대한 러시아어 전속 통역을 했던 인물이며, 김평일, 김정일 등에게 직접 러시아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특히 김평일을 비롯한 김경애 계열의 러시아어 공부를 돌보아줬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어 실력이 너무 뛰어나 그대로 두는 것이 마땅하다는 김정일의 평을 받을 만큼 북한의 러시아어 최고 권위자였다[68]. 1990년대 초 소련에서 한국어ㆍ조선어 열풍이 불게 되자 많은 러시아인들이 한국과 북한으로 유학을 오게 되었는데, 김현식은 소련에서 연수를 온 한국어 교수진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때 많은 소련 교수진이 조선노동당에 김현식 교수를 소련으로 파견해줄 것으로 요청했고, 김정일이 이를 받아들여 모스크바대학 교환교수로 파견되게 되었다. 여기서 한 브로커를 통해 미국에 거주 중이던 흥남 철수 때 헤어진 누나를 만나게 되었고, 이것을 계기로 서유럽권 대한민국 대사관을 통해 탈북하게 된다. 대한민국에서는 국가정보대학원 연구원,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하였고, 현재는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여 예일대학교 교수로 있다.

  • 박상학

  • 박성진 - 2006년 몽골을 통해 탈북한 소해금 연주가. 남한에서 장윤정 앨범에 참여하는 등 소해금 연주로 유명한 탈북자. 서양 명곡을 편곡해 소해금으로 연주한 음반도 발매되어 있다.

  • 박연미 TED talk에 나서서 탈북 스토리를 얘기해서 유명해졌다.

  • 박인숙 - 2006년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탈북. 이후 기초생활수급자로 지내다 재입북하여 김정은 정권 유지수단 밎 탈북자를 막기 위한 선전에 출연 중. 사실 그 전에도 일부 탈북자들이 다시 북한으로 되돌아갔는데, 되돌아왔다고 대놓고 광고하는 건 2번째라고. 재입북한 이유는 아들이 평양음악학교 교사였는데 그녀의 탈북으로 불이익을 받는다는 소식과[69] 남한 생활의 어려움 때문이라고 한다. 그녀의 인생 역경에 대해서는 기사 참조. 그녀를 아는 북한 주민들의 반응은 '남조선 바람이 좋으니 칠십 넘은 노인이 당 간부들보다 살이 찌고 혈색도 좋아져서 온 것에 깜짝 놀라고 있다'고 한다. 이후 소식이 없다가 2013년 12월 21일에 다른 재입북자인 최계순(2011년 12월 탈북)과 함께 다시 출현하여 남한의 사회가 냉혹하다며 비판했다. 일단 자신은 평양에서 잘 지내고 있다곤 밝혔지만 여생을 마칠 때까지 안전할지는 보장이 없다. 한국의 탈북자들도 이 노인이 재입북하게 된 원인에 대해서만큼은 동정해주는 편이다.

  • 박진희[70] - KBS 북한 전문 기자. 탈북자 출신의 최초 방송기자이다.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2008년 탈북하였다. 일본에서 회계쪽 일을 하다가 2014년 KBS에 입사하였다.관련기사

  • 손봄향 - 아프리카TV의 탈북자 출신 BJ

  • 신동혁 - 요덕 수용소출신 탈북자.

  • 안명철 - 정치범 수용소 경비대원이었으나 탈북하여 정치범 수용소의 존재를 알림.

  • 유우성 -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 중국명(유가강;리우찌아강)북한에 거주하던 화교출신의 인물이다. 위장탈북자. 탈북자라고 하면 북한국적을 소유하였던 자가 북한을 탈출한 사람을 말하지만, 유우성은 재북당시 중화인민공화국국적을 가졌다.

  • 이경희 - 前 리듬체조 선수, 현직 국가대표 상비군 감독.

  • 이소율 - 2007년 탈북. 중국에 있다가 태국을 거쳐서 2010년 한국에 입국. 아프리카BJ로 활동하며 쇼핑몰도 운영하고 있다.

  • 이애란(요리연구가) - 요리 연구가. 탈북자 1호 박사로 잘 알려져 있다.

  • 이용운씨와 그 가족들 - 1996년 SBS가 탈북의 전과정을 취재보도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 이웅평

  • 이철수 - 1996년 이웅평과 마찬가지로 미그기를 몰고 귀순하여 그해 12월 1일부로 공군 소령으로 특별임관후 공군본부에서 교관으로 지냈으며, 현재 공군 대령으로 지내고 있다.

  • 이철호 - 2008년 노크귀순으로 유명했던 인물. 2015년 살인미수 혐의로 2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 이평 - 아프리카TV의 탈북자 출신 BJ

  • 이한영 - 김정일의 전처 성혜림의 조카로 본명은 리일남이며 남한에 귀순한 후 개명하였다. 1997년 북한의 공작원에게 암살되었다. 어머니인 성혜랑과 동생인 이남옥은 1996년 서방으로 망명하였다. 참고로 이한영이 탈북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김일성의 서자인 김현의 존재를 전 세계에 알린 것. 이한영은 1997년 북한 공작원에게 피살되었으며 현재는 이 공작원을 잡는다고 해도 공소시효가 지나[71] 처벌이 불가능하다.

  • 이현서 "7개 이름을 가진 여자애(The girl with seven names)"(영문판)의 저자로 TED talk 에 출연해서 유명해졌다.

  • 장정혁 - 격투기 선수

  • 장진성 - 탈북 시인. 시집인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를 발표하여 많은 화제가 되었다.

  • 전철우 - 김책공대 출신으로 1990년에 동독 드레스덴대 유학생으로 있다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현장 분위기를 잘 타서 탈북에 성공했다. ㅎㄷㄷ. 탈북 후에 한양대학교에서 학업을 계속하여 탈북대학생으로 유명했다. 1990년대에는 코미디, 버라이어티 등 방송에 많이 출연. 중간에 사기를 당하여 정착금을 잃기도 하였으나, 평양냉면으로 시작한 음식점 프랜차이즈 사업에 성공하였다. 현재는 음식점은 접고 인터넷 판매만 하는데, 품질 관리를 잘 해서 맛이 괜찮은 편이라 상당히 잘 된다. #

  • 전혜성 - 2014년 1월 탈북. 대한민국에서 사용한 이름은 임지현. 대한민국에서 방송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으나 2017년 6월 돌연 재입북했다. 사실상 국내에서 탈북자에 대한 이미지를 망치고 만 여성.

  • 정성산 - 탈북 영화감독. 북한에서 악명이 높은 정치범수용소요덕 수용소의 실상을 다룬 뮤지컬 요덕스토리를 제작하였다. 일관되게 반주체사상 성향을 보여온 진중권종북이라 주장했다가 트위터에서 털리는 해프닝도 있었다. 진중권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진중권은 초극렬 반북주의자다(...). 사람을 잘못 골라도 한참 잘못 고른 것이다. 위에 나온 진중권의 일부 탈북자들에 대한 비판도 이때 나온 말.

  • 정수일 - 아랍연구에 있어서 권위자.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워낙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

  • 조명철 - 탈북자 출신 첫 국회의원. 재북당시 김일성 대학 교원.

  • 주성하 - 탈북자 출신 동아일보 기자.

  • 최광혁 - 패럴림픽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 최성국 - 탈북자 출신 최초의 웹툰 작가. 북한의 조선426만화영화촬영소에서 외화벌이 애니메이션 제작 경력을 살려 네이버 웹툰 <로동심문>으로 등단했다. 인터넷방송 배나TV에서 <몰랐수다 북한수다> <최성국의 북한그림판>에서 방송활동을 했었고 특히 탈북자출신 웹툰 작가로서 해외언론에서도 주목하여 UN 총회에도 참석/발표하였다. 최근에는 유튜브의 TNJ TV(The gate of truth and justice)라는 친박계열 채널에 패널로 출연하고 있다.

  • 최승철(1970) - 탈북자 출신 오마이뉴스 기자. 영국의 탈북민 사회에서 강한 비난을 받고 있는 논란의 인물이다.

  • 최현미 - 탈북자 출신 여자 권투선수. 무한도전 권투 특집에서 출연했던 적이 있었다.[72][73]

  • 태영호 - 주 영국 북한대사관 1등공사. 대사관내 모든 직원들의 당생활을 책임지는 당비서를 겸하였으므로, 행정서열보다 당서열을 우선하는 북한식으로 생각하면 대사보다 더 높은 권력자였다.

  • 한송이(탈북자) - 방송인, 스트리머

  • 황장엽 - 주체사상의 창시자이자, 1997년 탈북당시 권력 서열 24위로 역대 최고위급 탈북자.

15. 탈북자 소재 창작물[편집]

15.1. 영화[편집]

15.2. 방송[편집]

15.3. 만화[편집]

16. 다른 분단국가의 난민[편집]

독일이 분단되던 시절에는 대부분이 공산주의 체제인 동독에서 자본주의 체제인 서독으로 넘어갔다. 게다가 동독의 주변국들이 사실상 우회 탈동을 묵인하여 탈동이 너무나도 쉬웠다. 어느 정도인고 하니 그 규모가 탈북자에 비해 무려 75배였다고 한다.[74] 물론 베를린 장벽이 생기기 전에는 우회하지 않고 직접 넘어갔다.

대만에서는 중국 대륙에서 넘어온 사람들에게 한동안 반공의사라고 대접하기도 했지만 지금 중국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괄목한 성장을 했기 때문에 굳이 중국 대륙인들이 탈북하듯이 대만으로 올 필요가 없어졌다. 지금은 그냥 대만으로 여행오는 중국 대륙인들이 많고 이들은 물론 다시 본국으로 돌아간다. 또한 대만 정부는 귀순자에 대한 정착 지원이나 혜택 등을 일절 베풀지 않고 있다. 다만 현재는 분단국가로서 서로의 국적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중국 대륙인이 대만에 호적을 개설하면 대만 국적을 얻을 수 있는데 대만의 정치 상황에 따라 쉽게 개설될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다.

1992년 양안 컨센서스 이후 중국 → 대만으로 이민 온 사람이 2015년 기준으로는 거의 50만 명에 달한다.[75] 일반적인 중국 → 대만 이민은 경제적 목적(취업) 등을 위해 대만에 왔다가 눌러살게 된 경우(의외로 상당하다), 대만으로 시집 가는 케이스(이것도 많다) 등이 있다. 대만에서는 이들을 신세대 외성인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탈북처럼 중국 → 대만으로 망명가는 케이스는 아직 가끔씩 볼 수 있는데, 중국의 민주화 인사, 파룬궁 등 반체제 난민[76]들이 있다. 홍콩중국에 반환되기 이전까지는 같은 이유로 홍콩으로 망명가는 중국인들도 좀 있었다.

예멘의 분단 시절의 경우 추가바람.

17. 기타 관련 문서[편집]

[1] defect는 명사로서 쓰일 때는 '결점'이라는 뜻이 있지만 동사로서 쓰일 때는 (정당, 국가 등을) '버리다, 떠나다'라는 뜻이 있다.[2] 특히 일부 특권층 가운데 한국의 실상을 알고 눈을 뜬 사람들은 자기 자녀들이라도 탈북시키려는 일도 있다한다.[3] 실제로 북한은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이후 남한에 대한 직접적인 무장병력 투입을 자제하고 대신 탈북자 사이에 간첩을 끼워넣어 보내는 수법을 쓰고 있다.[4] 다만 유의해야 할것이 이곳은 중국 조선족과 새터민들 그리고 남한 사람들이 섞여있고 글 쓰는 사람들 중 남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으므로 자기네들 마음에 안들면 집단 린치를 가하고 운영자에게 말해도 오히려 운영자가 나서서 린치를 가하는 경우가 있다. 한국인 운영자가 있긴하지만 별 영향력은 없는 모양이다. 눈팅이나 하고 새터민 관련 사이트가 이곳만 있는것도 아니니 이곳저곳 찾아보자.[5] 이 사람은 할머니가 일본인이었고 할아버지가 재일 조선인으로 함경북도에서 나고 자랐다고 한다. 운동을 잘 했지만 일본계 한국인이란 혈통 때문에 차별을 받았고 19세 때 탈북하여 일본으로 갔고 현재는 일본인으로 귀화했다.[6]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7] 약칭 북한이탈주민법[8] 당연히 북한의 김정은도 법률상으로 대한민국 국민이다. 물론 갑자기 통일된다면 검찰소환 되겠지만.[9] 1950년 4월 이건순 중위, 1953년 노금석 상위, 1955년 이운용 상위, 이인선 소위, 1960년 정낙현 소좌, 1983년 이웅평 상위, 1996년 이철수 대위. 아무래도 민방위 사이렌이 울렸던 이웅평 상위의 사례가 가장 유명하다.[10] 또한 실수로 넘어와서 돌아가지 못한 사례도 있는데, 최근에야 이런 경우엔 돌려보내주지만 과거의 경우 자국 체제 선전을 하기 위해 써먹는 경우가 많았기에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북한의 박순국 소좌의 경우 실수로 인해 남측으로 넘어왔지만 귀순으로 선전당시 선전 뉴스하였고 본인은 고향에 남은 가족들이 겪을 고초 생각에 우울증에 빠져 과음으로 인한 건강 악화로 1976년 사망했다.[11] 대한민국 돈으로 500만원 상당이다. 북한 돈은 휴지조각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12] 홍콩과기대에서 개최되었던 시험으로, 많은 한국 학생들이 북한 학생들을 목격하였고, 북한 학생을 못 찾았다는 말에 '탈북이냐 ㅋㅋㅋ' 하고 웃다가 이 사실이 알려지고 꽤 놀라워했다. 보복성 납치라도 있을까봐 걱정했다고[13] 학교를 빠져나와서 주거비가 가장 싼 곳에 며칠 있다가 바로 한국 대사관으로 갔다고 알려져 있다. 이것 때문에 센트럴 근처를 지나던 보통 사람들/한국인들이 불시에 경찰의 질문을 받기도 했다[14] 애초에 러시아미국이 싫어서 중국의 편을 드는 것일 뿐이다. 그나마도 북한연해주 문제로 인해 앞으로의 관계가 어찌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물론 현재로서는 연해주를 굳이 중국이 요구할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그리고 현재 중러 관계는 더 강화되고 있다.[15] 2016년 무비자협정을 일방 파기하고 북한인 입국을 정식 금지했다.[16] 타이완 섬은 자기 영토로 보기 때문에 경유하지 못한다.[17] 現 물리천문학부 천문전공[18] 다만 하나원으로 보내지기 전 회사로 보내져서 이력을 검사한다.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간첩을 색출하는 것. 북한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탈북 루트, 남한 귀순 이유를 물어본다고 한다. 특히 탈북자로 위장한 간첩들이 많아서 동향 사람과 대질 신문같은 것도 있다. 가령 '누구 집 개가 몇 마리인지' 같은 동네 사람들만 아는 정보를 추궁. 여성의 경우 나긋나긋한 국정원 남직원으로 인해 컬쳐 쇼크를 느낀다고도 한다.(...) 1980년대 남영동, 남산, 서빙고를 떠올려본다면 그야말로 상전벽해.[19] 이것도 참 웃기는 게, 어린 초등학생들한테서도 학교에서 온갖 것들을 다 집에서 마련해 와서 헌납하라고 닦달하는 바람에 학교를 못 가는 아이들도 부지기수로, 절대 세금이 없다고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20] 고난의 행군 시기 북한의 사회보장 시스템이 붕괴되고 치안도 급속히 나빠지면서 일부 지역(평양, 개성)을 제외하면 말 그대로 헬게이트가 된지라 남한에 와서도 칼을 휴대하는 탈북자가 많다. 당연히 툭하면 칼부림 난다(...)[21] 최근 들어 유럽 각국의 사회 문제로 떠오른 유럽 난민 사태도 이런 경우이다. 시리아이라크, 에리트레아내전으로 엉망이 되었거나, 치안이 막장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자기나라 경험을 잊지 못해서 망명지에서도 무기를 휴대하거나, 폭력을 휘두르다가 범죄자로 전락하는 일이 잦은 편이다. 일종의 PTSD를 겪고 있는 것이다.[22] 그런데 이건 탈북이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이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물론 상대적이긴 하겠지만...[23] 이들은 해외에서 우리 정보기관에 접촉해서 정보를 넘겨주는 대가로, 보통 자신이 관리하던 달러에 대해서 일체의 조사를 하지 말것을 요구한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부연하자면 북한의 해외 비자금중 일부는 마약, 위조지폐, 밀수 등 범죄행위로 벌어들인 것이다. 이들은 이런 출처가 불분명한 돈을 들고 올테니 묵인해달라는 것이다. 놔두면 어차피 북한 정권으로 들어갈 돈이니 그냥 넘어가는 듯하다.[24] 물론 북한으로 돌아가려고 해도, 이미 북한 내에서 자신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진 바람에 못 돌아가게 된 경우도 있다.[25] 심지어 중국 공안은 대사관에 진입한 탈북자를 끌어내기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대사관은 국제법에 따르면 대사관이 대표하는 나라의 영토로 취급되지는 않으나 그에 준해 영토 소유국의 사법권을 적용하지 않는 치외법권 지역이다. 한마디로 원래는 중국 공안이 대사관의 양해 없이 절대로 들어오면 안되는 곳인데 이런 곳을 마음대로 들어와서 사람까지 끌어낸 것. 최근에는 국제적 비난이 심해지면서 이런 짓까지는 안 하고 대신 대사관이나 영사관에 진입 자체를 못하게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26] 당장 베이징 시내를 돌아보면 막말로 거진 100m 간격으로 공안이 배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최근에는 테러 등의 여러 가지 문제로 비단 대사관 뿐만 아니라 시내 전체가 공안 감시가 심하다.[27] 정확히 말하면 관대했다기보다는 현실을 인정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28] 탈북자 사살은 공포정치를 위한 초석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직접 죽이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단순히 위협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며, 하물며 생존 요건이 부족한 탈북자는 죽이기에 가장 적합한 대상이라고 볼 수 있다.[29] 물론 중국에 북한을 넘긴다는 시나리오도 있긴 하나 별로 현실성은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더군다나 한국 근처에는 미제7함대가 주둔하고 있기도 하고..물론 사실 북중병합이 이루어진다는 건 사실상 미국의 영향력이 동아시아에서 거의 소멸했다는 걸 뜻하기는 하지만..[30] 정작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짓들을 안저지르는 죄없는 탈북자들의 북송비율이 더 높다는 것이다.[31] 북송된 탈북자들 대부분이 많이 끌려가는 정치범수용소는 자살도 못하게 철저히 감시하며 지옥과 같은 고통을 주는 진짜 생지옥이고 사형은 뭐... 어찌보면 정치범수용소보다는 오히려 나을수도 있으나 과정조차도 폭력과 고문이 따르는 등 곱지 않다.[32] 이것은 모든 나라가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미국은 혈통에 상관없이 미국 영토에서 태어난 모든 이들에게 미국 국적을 부여한다.(속지주의) 원정출산은 이런 미국 국내법을 노린 것.[33] 그러나 국민이 보통 뜻하는 People은 한국에서 원래 인민이 맞다. 국민은 National 정도인데, People하고 어감이 약간 다르다. 하지만 북한이 하도 저 단어를 써대며 침공해왔고, 한국에 무력 도발과 공격 행위를 일삼았기 때문에 솔직히 선전 의미는 둘째치고, 북한에게 계속 도발을 겪어온 한국의 국민 감정상으로도 저 단어가 좋게 느껴지기 힘들다. 그 점을 감안할 것.[34] 북한에서 존재하는 동요계층, 적대계층 등을 말한다.[35] 실제로 북한에서 이공계 분야 최고의 대학인 김책공업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정부 기관에서 기술관료로 근무하다 남한으로 탈북하여 민간 건물에서 설비기사를 하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서 자살한 사례도 있다. 이외에도 북한에서 교원대학을 졸업하고 중등교원으로 근무하다 탈북하였는데, 식당 종업원이나 건물 청소부 등을 전전하다 범죄를 저지른 사례도 있다. 박인숙과 같은 대부분의 재입북 사례가 이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36] 실제로 북한의 중앙은행 조직부장(남한의 한국은행 국장급) 탈북자가 모 대형 할인 마트에서 계산원을 하는 안습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37] 이 사실이 현재는 북한 내의 탈북 고려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어, 탈북 시 학력 증빙 서류를 철저히 챙겨서 탈북을 한다고 한다.[38] 국정원 DB에는 북한의 소학교 단위까지 상세한 정보가 있다.[39] 일각에서는 탈북자도 대학까지 졸업했으면 떳떳하게 경쟁해서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면 되는 것 아니겠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탈북자는 이미 탈북자라는 딱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상황에선 사회적 소외 계층에 속하게 될 수밖에 없다.[40] 탈북 후 남한을 거치지 않고 바로 캐나다로 가는 경우는 제외하고, 대부분 남한으로 왔다가 적응 실패로 캐나다로 가서 탈북을 사유로 난민 신청을 한 경우에 해당되는 사람은 전원 취소 예정이다.[41] 쟁점은 탈북 후 남한을 거쳤는지 여부인데, 캐나다는 대한민국을 난민 발생 가능성이 없는 안전국가로 분류, 해당 국적 보유자의 난민 신청은 절대로 받아주지 않는다. 북한 국적 보유시에는 통과 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심사는 거칠 수 있는 것이 차이점. 탈북 후 남한을 거쳤다면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하게 된 것으로 보고, 난민 신청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캐나다의 입장인데, 문제는 이 취소된 탈북자들 99%가 탈북 후 남한을 거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허위사실로 자격을 얻었기에 전원 취소 후 강제 추방. 물론 북한이 아닌 남한으로의 추방이다.[42] 요덕 스토리 제작자로, 2013년 기준으로 땡큐 코리아 모노콘서트를 관공서, 군부대를 돌며 순회공연하고 있다.[43] 사실 이것은 분야와 진영과 상관없이 자주 발생하는 문제이다.[44] 쉽게 이야기해서 대북정책이 주요 이슈로 떠오를때마다 탈북자들의 방송출연, 언론인터뷰 기회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반면에 북한문제가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날 수록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떨어진다. 또 남북관계가 화해무드로 접어들면 역시 탈북자들에 대한 관심도 줄어든다. 언론사 입장에선 직접 북한에 가서 취재하면 되지, 뭐하러 탈북자들을 상대하겠는가? 남북관계가 경색되서 대북접촉이 힘드니까 대체재로 탈북자들이 쓰이는 것이다.[45] 물론 이것과는 별개로 개신교/대한민국 항목에서 볼 수 있듯 한국 개신교 역사는 평양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고 1907 평양 대부흥등의 표현이 자주 돌아다니긴 한다.[46] 고난의 행군으로 북한의 배급경제가 사실상 붕괴하면서 그 이후 탈북자의 절대 다수는 이 부류들이다.[47] 수지 김 간첩 조작 사건을 보면 범인 윤태식은 자기 아내를 죽인 후에, 북한 대사관을 찾아가서 월북을 시도했었다. 실제 최근까지도 범죄를 저지르고 나서 월북을 시도한 사례가 종종 있었다. 남쪽에서도 이런데, 헬게이트 북한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당연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물론 탈북자를 전부 범죄자로 모는 행태는 삼가해야 할 것이다.[48] 2000년대 이후론 북한에서도 귀찮은지, 월북자들은 다시 남한으로 송환해버린다. 심지어 두만강을 건너서 넘어간 월북자한테 북한 보위부 간부가 차비하라면서 100달러 줘서 다시 중국으로 보냈다는 일화도 있다.[49] 참고로 이 기사에서 언급하고 있는 탈북자들에게 안성 하나원을 거주지로 해서 일괄적으로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하기 때문에 신분이 들어날 수도 있다는 문제는 주성하 기자가 계속 지적하면서 나중에 개선되었다. 탈북자들에게 1회에 한하여 주민번호를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걸로 해결.[50] 그외에 탈북자 1000여명이 북한 보위부에 납치됬다는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51] 1990년대 후반 매년 탈북자의 규모가 100여명에 불과했으나, 2000년대 초반 이후 매년 1000여명을 넘어서고 있는 수준[52] 담당 부처는 통일부, 교육부가 있으며 실무 기관으로는 남북하나재단과 한국교육개발원에 탈북 청소년 교육지원센터가 존재한다.[53] 현실적이지 않고, 북한 국가로 인정하는 듯한 이중면을 보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태도는 이러하다.[54] 실제로 탈북자 중에는 북한에서 수학교사로 일하다가 남한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아 학원 강사로 일하는 사람도 있다(실제로 수학 과목의 경우에는 북한의 초등학교 수학이 한국의 초등학교 수학보다 더 높은 수준까지 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55] 특히 영어중국어는 개인이 공부하다가 걸리면 탈북하려는 걸로 간주하고 심문한다.[56] 물론 장기간의 탈북과정을 거치면서 장시간 교육 단절로 인한 것도 있다. 짧게 걸리면 한두달 내로 남한으로 들어오기도 하지만 1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허다. 그 기간에 공부가 불가능한 것은 당연하다.[57] 그래서 탈북자들을 받지 말자는 일부의 주장도 있으나 무죄추정의 원칙에 위배된다.하지만 아예 받지 않으면 더 이상의 무죄추정의 원칙을 받을 탈북자는 존재하지 않는다.[58] 이 정도 간첩죄는 그냥 쇼하는 거지, 기밀유출의 의도가 거의 없기 때문에 형량이 엄하게 떨어질 가능성도 낮다.[59] 오죽하면 유럽호주나 여러 나라에선 한국인이거나 탈북자라면 역사 시험 및 지리 및 사회 문제로 입국 검사까지 하고 있다. 중국인들이나 조선족이 가짜로 들어오는 게 많아서. 적발된 중국인들은 "유럽이 근대에 중국을 털어먹었으니 이 정도는 당연하다"고 주장했지만, 그게 먹힐 리 없으니. 물론 유럽 나라들은 정착연금으로 써먹은 돈을 다 토해내게 만든 다음 강제추방했다. 돈 없다고 하면 교도소로 보내 일하게 만들고 중국은 이에 대하여 입을 다물었다.[60] 본의 아닌 탈북으로 인해 고통받는 처지가 된 북한인을 다룬 영화가 그물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평범한 어부였다가 배가 남한 영해로 떠내려가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탈북자 신세가 되어 개고생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현실에서도 이런 이들이 북한에 가족이라도 있으면, 가족들에게 불똥이 튈까봐서 귀순을 한사코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61] 심히 안습한 사례로, 북한 해군의 장교 한 사람이 배고파서 고기를 잡으러(...) 어선을 타고 먼 바다로 나갔다가 풍랑에 휩쓸려서 대한민국 해군에 구조된 경우가 있는데, 이 장교는 탈북할 의사가 없었으므로 비무장지대를 통해 북한으로 돌아갔다. 조선인민군/열악한 현실/빈곤함 문서에도 나와있는 사례이다. 문서를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이쪽도 심히 비참하다.[62] 이전 서술에 가족을 데리고 탈출하였다고 되어 있으나, 고영환 본인이 직접 저술한 평양25시에 의하면 가족 분리정책, 즉 해외에 출입하는 주민들의 탈북을 막기 위해 가족 전부가 같이 해외로 가는 것을 제한하는 정책에 의해 자녀들은 평양에 있었으며 아내에게 말하지 못하고 급박하게 탈출하였기에 아내도 결국 북송되었을 거라고 되어 있다.[63] 효충인성교육원은 다른 학교의 평생교육원/산업교육원 정도에 해당하는 기관으로 정식교수라고 보긴 힘들다.[64] 북한에 있는 국립 과학 연구소.[65] 여담으로 이때 당시에 연구소 컴퓨터실을 불법으로 개조해서 PC방 사장 노릇도 했다고 한다(...).[66] 주로 학술서적을 번역했다고.[67] 북한은 가로등을 자동적으로 껐다켰다 할 수 있는 기술이 없어서, 수동으로 일일이 끄는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남한 사람들이 보기엔 이런 황당무계한 직업도 있다(...).[68] 저서 '나는 21세기 이념의 유목민'을 보면, 자신의 출신 성분이 상당히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의 배려로 김형직사범대학의 교수가 되었다고 한다. 러시아어 통역을 잘 했다고 김정일이 직접 선물을 보내줄 정도였다고 한다. 해당 도서에는 김정일종합대학 설립 계획 등과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실려있으니 참고 바람.[69] 북한 측에서 "당장 안 돌아오면 당신 아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는 소문이 있다.[70] 배우 박진희와는 동명이인이다.[71] 살인죄는 공소시효가 2007년 개정 이전까지 15년이었고 1997년에 사건이 벌어졌으니 2012년 기준으로 공작원이 잡히지 않았다면 나중에 잡아들인다고 해도 이제는 이한영 살인 혐의로는 처벌할 수 없게 되었다.[72] 당시의 사연을 보면 최현미 선수나, 그 상대나 보면 안타까움 그 자체였다. 최현미 선수의 상대인 일본 권투 선수인 츠바사 덴쿠는 아버지를 위해서 권투 챔피언을 따내겠다고 했는데, 정작 아버지는 자기 딸이 권투 선수로 뛰면서 몸을 다치는 것이 싫어서 딸의 경기를 관람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모처럼 딸의 경기를 보겠다고 결심한 날에 급작스럽게 지병으로 쓰러져서 끝내 눈을 감고 말았다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어서 그녀도 챔피언 타이틀이 절실했다고 한다. 게다가 생활고로 인해 제대로 된 훈련이 힘들었던 최현미 선수 못지 않게, 츠바사 선수도 돈이 없어서 일반 가정집에 링 하나만 설치해서 훈련을 하는 열악한 상황이었던지라, 방송이 끝나고 나서 두 선수를 응원하는 분위기가 주를 이루었다.[73] 최현미 선수는 남한의 사정을 몰라서 자기도 모르는 채로 승부조작에 가담한 적도 있었다. 물론 영문도 모르고 승부조작에 동원된 최현미 선수를 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탈북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보여주는 안타까운 사례이다.[74] 북한에서 보통 사람들이 공식적인 방법으로 중국으로 가기 힘든데 반해 동독에서는 그냥 휴가를 간다고 하면 별 어려움 없이 체코슬로바키아로 갈 수 있었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국경을 맞대고 있는 서독으로 넘어가면 OK.[75] 대만 인구의 1%를 넘으며 대만 원주민보다도 숫자가 많다.(...)[76] 중국 민주화 인사나 파룬궁은 대한민국에도 꽤 많은 수가 난민법에 따른 난민으로 인정되어 들어와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