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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대남 도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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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1940년대3. 1950년대4. 1960년대5. 1970년대6. 1980년대7. 1990년대8. 2000년대9. 2010년대

1. 개요[편집]

북한대한민국을 겨냥해 일으킨 각종 도발 및 교전 목록. 군인의 경우 '정신전력'이라는 이름 하에 각 연도별 굵직한 사건들을 외워야 될 수도 있다.

큰 틀에서 도발의 특징을 살펴보면 80년대까지는 주로 공비나 간첩 침투가 절대적이었다면 90년대 이후로는 핵(核)이나 미사일, NLL(서해북방한계선) 관련 도발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 북한의 대남첩보원 발각횟수 : 5,500여 회 (1953년~1980년) (1.7일당 1회꼴)

  • 한국군·경찰에게 잡히거나 사살된 북한측 공작원 및 무장공비 : 2,973명 (1953년~1980년) (3.3일에 1명꼴)[1]

2. 1940년대[편집]

1945년 해방 후 남과 북에 각기 다른 정권이 들어서면서 혼란한 해방공간의 상황은 곧 남북교전으로 이어졌다. 북한은 북한대로 내부정리가 빠르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이대로 남조선 반동들을 맛깔나게 후려치면 우루루 허물어지겠지?" 라고 생각을 하며 끊임없이 국지전을 감행했다. 훗날 이러한 상황은 한국전쟁 연구가들에게 교전확대설의 떡밥을 제공하게 된다.

이러한 교전확대설은 어느정도 맞는 말이긴 하다. 다만 교전이 확대된 것이 북침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남침으로 확대된 것. 이러한 일련의 교전들은 사실 북한이 신생 조선인민군의 교리와 전투능력을 시험하기 위한 부단한 시도였다고 보여지기도 한다. 교전이 하도 많았기 때문에 신문지상에 안 실린 것도 많았다고 한다. 또한 1948년 이후부터는 남한에 정치적인 침투를 위해 공작원을 보내기 시작한다.


  • 1948년

    • 북한의 일방적인 단전(5. 14): 뭔 사건인가 하겠지만 남한의 총선거에 화가 난 북한이 남한으로의 송전을 끊은 사건이다. 지금이라면 상상할 수 없겠지만 당시엔 북한이 남한으로 가는 전기의 70%를 공급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 영월발전소 폭파기도(11. 26): 남한의 전기를 끊으려고 했다가 국군에 의해 저지된 사건이다.

    • 서부전선 교전(12. 2)


  • 1949년

    • 개성 인근 교전(2. 6): 북한군이 개성 송악산 근처에 군인들을 보내 전투를 벌인 사건이다.이때부터 개성의 수난은 시작됐다(...)

    • 개성 송악산 전투(5. 4): 개성 내습사건이라고도 한다. 북한군이 개성 바로 근처까지 진입해서 박격포 등의 화기로 시내에까지 포격을 자행한 사건이다. 이 때 육탄10용사사건이 일어났다.

    • 포천 전투(6. 12)

    • 옹진 은파산 전투(5. 21 ~ 11. 15)

    • 춘천 682고지 전투(8. 6 ∼ 8. 20)

3. 1950년대[편집]

1950년대 초반에는 6.25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거짓으로 귀순한 간첩들이 정치적인 침투를 시도했으며 6. 25 전쟁이 휴전에 들어간 이후 분단이 고착화되자 정보 수집과 체제 교란을 위해 간첩을 보냈는데 이 과정에서 남파 공작원이 일으킨 납북 사건과 월북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이는 1960년대까지 이어진다.


4. 1960년대[편집]

1960년대 후반은 무장공비에 의한 침투와 교전이 잦았던 시기이다. 7.4남북 공동성명 직전 김일성이후락에게 1.21사건에 관해 이야기하며 언급한 적이 있는데 "그거 우리 군 내부의 극렬분자들이 저지른 짓이다. 나는 진짜 몰랐다. 미안하다"라고 비공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다.[2] 당시 교전의 원인과 남북관계를 알 수 있는 약간의 실마리인 셈.


  • 1966년

    • 진주 덕의마을 무장공비 침투사건(1966. 5. 17.)


  • 1967년

    • 해군 당포함 격침 사건(1. 19)

    • 중부전선 교전(4. 12)

    • 격렬비열도 간첩선 격침 사건(4. 17)

    • 화천군 비무장지대 침투사건(4. 12)
      정전 이후 최초로 포병대응사격을 실시.

    • 서부전선 미군막사 폭파사건(4. 22)

    • 강릉 고단지구 무장공비 침투사건(5. 21)

    • 연평도 근해 어선포격사건(5. 27)

    • 대성동 미군트럭 기습사건(8. 7): 침투한 북한군이 판문점 남방 대성동 자유의 마을 앞에서 미군 트럭을 습격해 3명의 미군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당한 사건.

    • 서부전선 군용트럭 기습사건(8. 10)

    • 판문점 미군막사 기습사건(8. 28)

    • 경원선 초성리역 폭탄 테러 사건(9. 5)

    • 경의선 운정역 폭탄 테러 사건(9. 13)



5. 1970년대[편집]

1970년부터는 화전양면전술을 본격적으로 사용해 불리한 상황에서는 대화를 주선하는 한편, 비무장지대를 은밀히 침투할 수 있는 땅굴을 굴착했다. 반대로 유리한 상황에서는 무력을 동원했다.


  • 1970년

    • 해군 방송선 I-2 피랍 사건(6. 5): 연평도 부근의 공해에서 어선단 보호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해군의 120톤급 방송선이 북한 해군 고속정의 공격을 받아, 승무원 20여 명이 대부분 사살당한 후 피랍된 사건. 당시 보도에는 '건국이래 처음' 발생한 사건이라고 했다.

    • 국립서울현충원 현충문 폭파 미수 사건(6. 22)


  • 1971년

    •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사건(1. 23)

    • 소흑산도 근해 간첩선 격침사건(6. 1)


  • 1973년

    • 철원군 비무장지대 총격사건(1973. 3. 7.): 해당 부대는 정전 이후 2번째로 포병대응 사격을 실시했으며 북한군 GP를 105밀리 백린 연막탄으로 파괴하는 전과를 세운다. 이후 1992년 은하계곡 침투 사건과 1998년 철원 GP 교전을 겪고 만다. 이 사건의 여파로 북한군은 전, 후방 사단이 통째로 교체되는 굴욕을 겪어야 했었다. 제3보병사단 참조



  • 1975년

    • 아군 해군경비정에 북한 선박 충돌, 자침사건(2. 26)

    • 북한 전투기 30여대 백령도 상공 침범사건(3. 24)

    • 헨더슨 소령 사건(6. 30)



  • 1978년

    • 광천지구 무장간첩 침투사건(11. 4.) - 예비군들이 야간매복중에 모닥불을 피우는 바람에 공비가 우회해서 도주했다는 대표적인 작전 실패사례로 많이 언급된다

    • 최은희·신상옥 납치사건(1. 14, 7. 19 순차적으로 납치)

6. 1980년대[편집]

1980년대에는 주로 테러를 이용한 도발을 시행했는데, 범위를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고 제3국에서 실행해 테러의 주체를 알지 못하게 위장하려고 했다.


  • 1981년

    • 필승교 무장공비 침투사건(6. 29)

    • SR-71 정찰기 피격 사건(8. 26)


  • 1982년

    • 저진해안 무장공비 침투사건(5. 15)


  • 1983년

    • 임월교 무장공비 침투사건(6. 19)

    • 월성해안 무장공비 침투사건( 8. 4)

    • 독도 근해 간첩선 격침 사건(8. 13)

    •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10. 9)

    • 다대포 침투 무장공비 매복 생포 작전(12. 3)

    • 대구 미국문화원 폭파 사건(폭탄 투척 사건)(9. 22) - 체포된 공비 진충남과 이상규의 증언에 따른 발표.


7. 1990년대[편집]

1990년대에는 사실상 냉전에서 공산권의 패배가 줄줄이 이어졌고, 중국과 소련 등의 국가도 공산주의의 문제점을 이래저래 겪은 후 공산주의를 버리고 새 노선으로 갈아탔다. 한국 내에서도, 해외에서도 수십년 간 이어진 한반도의 체제경쟁은 끝내 대한민국의 승리로 마무리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북한은 순순히 무너지지 않고 이때까지도 치졸하고 비겁한 술수를 계속 부렸다. 국제 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인 지원을 확대하자 북한은 남북관계에서 유연한 자세를 보여 회담을 진행하면서도 화전양면전술을 구사했으며, 오히려 1980년보다도 침투 횟수가 늘어났다고 한다.


  • 은하계곡 무장공비 침투사건(1992. 5. 22.)
    당시 병장 한명이 턱에 총상을 입었으나 치료 후 무공훈장을 받고 전역을 했다고 한다.1973년에 북한군 GP를 57mm 무반동포의 백린연막탄으로 총안구를 명중시켜 폭파시킨 부대가 겪은 사건.

  • 임진강 무장공비 침투사건(1995. 10. 17.)

  • 부여 간첩 사건(1995. 10. 24.)

  •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1996. 9. 18.)

  • 철원 GP 교전(1997. 7. 16.)[3]

  • 망명자 이한영 암살 사건(1997. 2. 15.)
    이한영은 북한에서도 알아주는 고위층이었기 때문에 우리측에서도 더 열심히 경호를 했는데, 자신의 탈북 이야기를 책으로 펴낸 직후 암살되고 말았다. 하지만 암살 당시 상황이 방송에 나온 걸 보면 경호는 커녕 홀로 있다가 암살당했고 제대로 된 목격자도, 용의자 몽타주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오죽하면 뉴라이트계열 책자에서 이 암살이 한국 정부가 그를 죽게 방치했다고 성토했을 지경이다.

  • 최정남·강연정 부부간첩 사건(1997. 10.)

  • 속초 앞바다 무장공비 침투 기도사건(1998. 6. 22.)

  • 동해 무장공비 사체 발견 사건(1998. 7. 12.)

  • 강화도해안 간첩선 침투 기도사건(1998. 11. 19.)

  • 여수해안 간첩선 격침 사건(1998. 12. 17.)

  • 제1연평해전(1999. 6. 15.)

8. 2000년대[편집]

2000년대에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남북정상회담의 화해 분위기 조성을 이용, 핵실험 및 대량살상무기 개발 및 특수부대, 수중전 등 비대칭 전력을 이용한 도발을 지속하고 있다.


  • 2001년

    • 북한군 철원군 DMZ서 MDL 월경(아군 경고사격)(9. 19∼20)

    • 북한군 파주군 장파리 DMZ서 아군 초소에 기관총 2∼3발 발사(11. 27)



  • 2003년

    • 북 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1. 10)

    • 북 미그-29기 1대 연평도 NLL 13㎞ 남하(아군 전투기 대응출격)(2. 20)

    • 북한군, 경기 연천 DMZ서 14.5㎜ 기관총 4발 발사(아군 경고사격)(7. 17)

    • 매미(태풍) 대한민국 내습 (9. 13)[4]

    • 북 경비정 NLL 월선(아군 경고사격)(10. 30)


  • 2004년

    • 북 경비정 NLL 월선(아군 함포사격)(7. 14)

    • 북 잠수함 동해침투 첩보(아군 폭뢰 투하)(10. 10)

    • 연천군 GOP 철책선 2곳 절단(10. 26)

    • 북 경비정 3척, 서해 소청도 동방 6.5 마일 및 연평도 서방 25마일 해상 NLL 월선, 해군 경고사격(11. 1)


  • 2005년

    • 핵무기 보유 선언(2. 10)

    • 영변 5MW 원자로에서 8000개의 폐연료봉 인출 작업 완료 발표(5. 11)


  • 2006년

    • 장거리 미사일 대포동 2호를 포함한 7기 미사일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 발사장서 시험 발사 실시.(7. 5)

    • 북한의 1차 핵실험(2006. 10. 9.)


  • 2008년

    • 박왕자 씨 피살사건(7. 11.): 민간인이 사망한 사건이기 때문에 윗줄의 2006년 미사일이나 핵실험보다도 훨씬 큰 전환점이다. 남북관계 경색의 시작점은 이 사건으로 보는 견해가 정설이며 2016년 현재도 그대로다.


9. 2010년대[편집]

2010년대에는 북한에서 3대 세습 체제가 진행되어 강성국가 건설을 목적으로 가시적인 성과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며, 기습적이고 직접적인 타격을 감행하거나 간접적인 도발을 지속하고 있다.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도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강경 대응하거나 아예 무시 (…)[5] 뭐라고? 전기도 마음대로 못 쓰는 찐따라서 들리지 않는걸? 하기도 한다.



  • 2011년

    • 대북전단 발원지 격파사격 협박(2011~)

    • 연평도 해상 포격: 북한은 발파 작업을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으나, 대다수는 실제로 포를 발사한 것이 맞다는 것이 정설이다.


  • 2012년

    • 최고존엄 모욕 시위(2012~)[6][7][8]

    • GPS 교란(4.5): 경기지역과 휴전선 근처의 GPS신호가 수신이 잘 되지 않는 일이 자주 있었는데, 처음에는 북한이 억지라고 주장했으나 후에 알고 보니 전자정찰국의 지시로 방해전파를 쏘아올리고 있었던 것. 다만 그들의 의도와 달리 군사, 항공장비 등은 GPS외에 사용하는 것도 많아 자동차의 내비게이션이 잘 작동되지 않았다는 것만 빼고 별 피해도 없었다. 전기낭비 이것을 조사하다 겸사 GPS 교란장비를 팔아먹으려던 2명도 같이 검거되었다.

    • 북한에서 대선조작 시도가 있었다. 동아 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페이스북에 약 100개, 유튜브에 약 100개, 시나 웨이보에 약 80개, 트위터에 약 15개, 플리커에 5개가 판정되었고, 트위터 중에 3개의 계정(우리 민족끼리, 민족 통신, 조선민주주의)만 5690건 게재했다. 북한의 204국으로 추정된다.



  • 2014년

    • 다수의 탄도미사일, 방사포 사격

    • 북한 무인기 추락사건(3.24)

    • 어업 지도선 2척 NLL 침범. 경고사격 후 해당 선박들은 북으로 돌아갔다.

    • 연평도 인근 해상 초계 중이던 유도탄고속함 홍시욱함에 대한 북한 해안포의 협차 사격(5. 22.)

    • 귀순현판 탈취사건(6. 19): 무장한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와 경기도 파주에 있던 귀순벨을 손상시키고 귀순안내 현판을 가져간 사건이다. 도장 깨기 말 그대로 북한군이 우리를 농락한 셈. 게다가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 질타가 쏟아졌었다. 이후 여러가지 이유로 넘어오는 일이 많아졌다. 밑의 대북전단일 이후 넘어오는 대로 경고사격을 하고 있는 중.

    • 연천 대북전단 발원지 격파사격(10. 10)

    • 한국수력원자력 해킹 사건(12. 15): 킴수김 이라는 트위터 닉네임의 해커가 원자력발전소의 도면 등 극비자료를 공개해 엄청난 논란을 낳았다. 킴수김 게시글에는 우리나라에서 안쓰는 북한식 어투가 사용되었고, 정부에서 계정추격 결과 ip가 중국으로 나와 북한의 소행으로 잠정결론났다. 12월 25일에 원자로를 폭파하겠다고 협박을 했지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사라졌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 내 방사능 공포로 내부 분열 시도로 추측된다.



  • 2016년

    • 북한의 4차 핵실험(1. 6): '자칭' 수소폭탄 실험.

    • 북한 무인기 남한 영공 침범, 국군의 경고사격으로 물러남(1. 13)

    • 대남 전단 살포(1. 12): 북한이 대북 확성기 송출 중단과 박근혜 대통령을 비난하는 내용이 담긴 삐라를 수도권에 집중적으로 뿌린 사건. 15일까지 나흘동안 경기도 부근에 떨어진 전단은 수만 장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며 이 중 수거된 전단은 2만 5천여장에 달한다. 북한군 2군단이 살포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전단을 넣은 대형 비닐 풍선에는 타이머와 자동폭발 장치가 부착되어 수도권에 도착하면 자동으로 폭발해 전단이 떨어지도록 설계되었다. 군은 이에 대응해 이동식 확성기를 배치했고, 북한의 도발에 대해 강력히 대응할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1월 14일에는 삐라뭉치가 주차된 차에 떨어져 차의 지붕이 뚫리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2월 2일에는 삐라뭉치가 빌라 옥상에 떨어져 물탱크가 파손되고 테라스의 유리지붕이 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혹자는 그냥 새로운 테러방식이라고

    • 2016년 북한 광명성호 발사 사건(2. 7)[9]

    • 북 경비정 서해 NLL침범(2. 8)기여코 설날까지 큰 일 벌이는 북한

    • 북 정찰총국, 고영환 등 주요 탈북인사 암살 지령(첩보입수에 대해 2016. 2. 19일 경 알려짐)

    • 백령도 북방에서 해안포 수발 발사(2. 20)

    • KN-09 신형 방사포 시험사격(3. 3 ~ 4. 1)[10]

    • 사이버 테러 시도 관련기사 (3. 8)

    • 청와대 타격 위협(3. 26) #

    • 원산 단거리 발사체 발사(3. 29) #

    • GPS 교란(3. ~ 현재) #

    • 신형 지대공미사일 시험 발사(4. 2)

    • 신포급 잠수함 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4. 24)[11]

    • 화성 10호(무수단) 중거리 탄도 미사일 발사

      • 1차(4. 15)

      • 2차, 3차(4. 28.)#: 4월 15일에 발사한데 이어 2차 발사를 시도 했지만, 수초간 비행하다가 공중폭발. 오후에도 발사를 시도하였으나 다시 한 번 실패했다.

      • 4차(5. 31): 2차, 3차 발사에 연달아 실패한 이후 약 한 달여 만에 4차 발사시도를 했지만 또 실패로 돌아갔다.

      • 5차(6. 22): 결국 북한이 성공했다. 실사거리는 3500km로 추정되며 북한이 의도적으로 고각으로 쏘아올려 400km를 비행하는 동안 최고고도가 1000km에 달한 것으로 보아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평가된다.

    • 신포급 잠수함에서 북극성(SLBM) 발사(8. 24): 500여 km를 날아갔는데 이는 고각으로 날렸기 때문이고 정상 탄도로 발사할 경우 1,000km 이상의 사거리를 가질 것으로 추정된다.

    • 동해상 미사일 발사(9. 5): 미사일 3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했으며 일본의 방공식별구역으로 떨어졌다.#

    • 북한의 5차 핵실험(9. 9) 북한의 추석선물


  • 2017년

    • (1월초) 신년사 때 ICBM 개발을 완료했다고 위협했다.#

    • (01.08) 최근 1만톤급 잠수함 건조대를 새로 건설했다고 한다.[12] # 그 전에 미국의 주도로 자금이 유입될 만한 루트는 죄다 틀어막았는데도 꾸준히 개발하고 유지할 수 있는 자금이 어디서 들어가고 있는지부터가 궁금한데? 진짜 중국이랑 러시아가 뒷돈 넣어주나?

    • (02.12) 북한이 북극성 2형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발표했으며 새로운 고체엔진을 장착했다 한다.# 아마도 화성 10호 미사일에다 SLBMKN-11(북극성 1호) 미사일 기술을 접목시킨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화성10호보다 탄두가 더커진거로 볼때 개량형이 가능성이 크다.

    • (03.06) 4일 태영호 전 영국 북한대사관 공사는 4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김일성 생일(4월15일)을 앞두고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시험발사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 후 이틀 후 새벽 7시 36분에 북한이 ICBM으로 의심되는 미사일을 4발을 발사했다. 미사일은 1천㎞ 이상 비행했고, 이 가운데 3발은 일본의 EEZ에 떨어졌다. 군에서는 미사일 궤적 등으로 미뤄 대륙간 탄도 미사일일 가능성은 적다.발표했다.

      • (03.07) 북한은 이 발사가 주일미군기지 타격 훈련이었다고 밝혔다. "이번 탄도로켓 발사 훈련은 전략군 화성포병들의 핵전투부 취급 질서와 신속한 작전 수행 능력을 판정 검열하기 위하여 진행되였다", "유사시 일본 주둔 미제침략군 기지들을 타격할 임무를 맡고 있는 조선인민군 전략군 화성포병부대들이 참가했다."전했다. 북한이 핵전투부 취급 훈련을 했다고 밝힌 것은 이번에 시험발사한 탄도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다는 점을 과시할 의도로 보인다는 해석이 있다. '"수중과 지상의 임의의 공간에서 덤벼드는 원수들을 무자비한 핵강타로 가장 정확하고 가장 신속하게 (중략) 죽탕쳐버릴 수 있는 군사적 위력이 과시됐다.''' 주장하기도 했다.

    • (04.15) 김일성 생일에 맞춰 발사한 자칭 ICBM 이 발사 실패했다 관련자는 모두 아오지행이라우


주일미군기지 타격 훈련 중 병사들은 김정은에게 '우리 공화국을 핵무기로 선제타격하기 위한 합동군사연습을 강행하여 조선반도(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파괴하고 정세를 핵전쟁 접경에로 몰아가고있는 전쟁 미치광이들에 대한 보복의지를 다졌다', '미제와 남조선 괴뢰들이 우리 공화국의 자주권이 행사되는 영역에 단 한 점의 불꽃이라도 날린다면 핵탄두를 만장약한 무적의 화성포로 침략과 도발의 본거지들을 생존 불가능하게 초토화할 각오를 다졌다.'는 말을 건냈다 한다.

새로운 사건이 발생하면 추가바람. 또 과거의 사건에 대해서 자세히 아시는 분은 항목 작성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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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에 발생한 사건들의 여파로 북한 관련 뉴스를 정리한 문서가 생겼다. 북한 관련 뉴스/2016년 참조.

[1] 이 시기의 무장공작원 및 무장공비의 숫자는 대부분 잔존 빨치산이나 휴전선 교전 중 사살된 북한군도 포함되어 있다. 일종의 통계의 함정.[2] 1.21 사태가 일어난 1968년은 김일성이 갑산파, 연안파, 소련파 등의 정적들을 8월 종파사건 등의 조작을 통해 꾸준히 대량 제거해 나가던 작업의 후반부이다. 이 시기에는 간부들이 많이 숙청당했기 때문에 간부공황 문제가 제기되고도 있었던 시점과 가깝기 때문에 김일성은 이를 타개하고자 군부에 약간의 자율권을 주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이렇게 지들끼리 알아서 청와대까지 쳐들어가놓고 김일성한테 "저 잘했죠?"라고 말하는 결과가 발생했다고 한다. 내부의 안티 하지만 김일성도 1.21사태를 제외한 다른 사건은 칭찬한 사례가 있는 것으로 봐서 잘 되면 제 탓, 못 되면 극렬분자 탓이었던 것이 확실한 듯.[3] 1973년하고 1992년에 이어서 같은 부대가 겪은 사건이었다. [4] 태풍 이름을 북한에서 제출했다(...)[5] 2013년 북한의 전쟁 위협 당시 한국 정부에서 낸 공식 발표 중 하나가 "품격 있는 언어 써라".[6] 사실 이전에도 여러번 이런 사건이 있었다. 대부분의 이유는 자기들을 모욕하는 언동을 군부대 부호로 쓴다는 것에 국가의 모욕이라면서 도발하는 식이다. 자기들은 매일 그러면서[7] 이번 2012년에는 15만명을 동원한 궐기 대회도 있었는데 김정은 체제가 아직 정립이 되지 않아 내부결속용으로 쓰려는 목적이 강하다는 듯하다.[8] 이후 조·중·동을 비롯한 국내 주요 언론사의 이름과 지도좌표를 언급하며 조준 격파하기 전에 사과하라고 요구했는데 특이하게도 성명서에서 언급한 좌표는 국제적으로 널리 쓰이는 60진법(1도=60분, 1분=60초)이 아닌 10진법 좌표(1도=100분, 1분=100초)였다. 몇몇 언론과 네티즌들은 이 10진법 좌표를 60진법으로 해석하여 '북한이 엉터리 좌표를 가지고 있다'며 비웃었으나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구글 어스만 있어도 딸 수 있는 좌표를 틀릴 리가 없잖아[9] 참고로 이 날은 설 전날이다. 설 전에 큰거 하나 터트려줬다. 한국군: 아놔 내 설 휴가![10] 3월 3일 단거리 6발, 3월 10일 단거리 2발, 3월 19일 중거리 2발, 3월 21일 단거리 5발, 3월 29일 단거리 1발, 4월 1일 단거리 3발(2발 실패)[11] 2015년에 발사한거랑 비교하면 수직발사가 안정적으로 된 걸로 봐서 성공했다고 보지만 구소련제 잠수함탄도미사일 R-27을 대형화한것 치고는 예상 사정거리가 300km이상이 되어야할 것이 고작 30km밖에 다다르지 못했던 점을 보면 실패한 것으로 추측이 된다. 국방부는 3~4년내에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기술을 제대로 확보할 것이라고 경고를 했다.[12] 1만톤급 잠수함을 만든다고 쳐도 아직 신포급으로 그친점에서 잠수함 개발 중에 바로 대형함으로 넘어간다는 자체가 크게 문제가 있고 무작정 만든다 해도 기술문제 소음문제 등 결함이 생길 것으로 추측된다. 자세한 건 중국의 한급잠수함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