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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副統領
Vice President

1. 개요2. 대한민국 부통령3. 미국 부통령
3.1. 역대 미국 부통령3.2. 승계 대통령과 부통령 출신 대통령3.3. 병풍?
3.3.1. 될 놈은 된다
3.4. 승계 단서와 트리비아
3.4.1. 3번째 임기(?)3.4.2. 부통령 궐위 시의 새 부통령 선임3.4.3. 임시 대통령(대통령 권한 대행)
3.5. 기타 트리비아
4. 이미지5. 가상의 부통령

1. 개요[편집]

대통령 중심제를 실시하는 몇몇 국가에서 실행하는 제도다. 미국이 대표적이며, 대만에도 여기에 해당하는 '부총통'이라는 지위가 있다.[1] 대한민국에서도 시행된 적이 있으며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일본에서는 부대통령(副大統領)으로 번역한다. 대통령이란 호칭이 '통령'에서 유래한 것을 생각하면 '부대통령'이라 하는 것이 옳으나 한국에서 더이상 통령 직함을 쓰는 경우가 없다 보니 부통령으로 굳어져 버린 듯 하다. 대통령과 부통령을 함께 부를 때 한국어로는 정·부통령(正·副統領), 일본어로는 정·부대통령(正·副大統領), 중국어로는 정·부총통(正·副總統)이라고 한다.

미국처럼 정·부통령을 모두 선거에서 뽑는 제도 하에서는, 애초에 선거 운동 때부터 2인자인 부통령 후보를 러닝메이트로 지명하여[2] 당선 후까지 같이 운명을 같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책임감을 가지게 된다. 물론 부통령도 교체가 가능하지만 별다른 탈이 없는 한 대통령의 임기 내내 같이 하게 된다. 그러나 필리핀, 제1공화국 시기의 대한민국처럼 러닝메이트제가 아니라 대통령과 부통령의 당이 다를 수도 있다.

2. 대한민국 부통령[편집]

제1공화국 헌법에서 부통령 제도가 존재했다. 대통령과 부통령이 같은 정당이 되기 마련인 미국의 부통령과는 달리[3], 당시 한국의 선거제도에서는 대통령과 부통령 선거는 서로 영향을 주지 않고 독립적으로 실행되었다. 따라서 대통령과 부통령의 정당이 다르게 되는 '뒤틀림' 상태가 나타날 수 있었다.

제1공화국 시절 초대 부통령 이시영, 2대 부통령 김성수, 3대 부통령 함태영, 4대 부통령 장면, 그리고 5대 부통령 이기붕뽑으려다가...4.19 혁명이 터졌고 제2공화국에 들어서면서 내각제로 전환하면서 폐지되었으며, 제3공화국에서 다시 대통령제로 환원되었지만 부통령제는 부활되지 않았다.

그 이후 '권력 승계 및 대리' 같은 부통령의 역할은 현행 헌법상 국무총리가 대신하고 있다.[4] 국무총리와 부통령의 결정적인 차이는 부통령은 대통령의 궐위 시 대통령직을 승계하지만 국무총리는 어디까지나 대행만 할 뿐이다.[5] 만일 대한민국의 현행 헌법에서 대통령이 임기 중 사망하거나 탄핵으로 물러난다면,어째 한 가족이다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하는 가운데 60일 안에 대선을 하도록 헌법에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한국의 총리 제도는 의원내각제의 기괴한 변형으로 인해 선출직이 아니라 대통령 직접 선정인 데다가, 문제가 생기면 몇 번이고 다른 인물로 임명할 수 있는 제도로, 대통령의 잘못을 회피하는 방패 내지는 총알받이 역할을 맡다가 수명이 다하면 갈아치우는 용도로까지 활용이 되는 등 정치학자들 사이에서 악평이 자자하다. 그러나 부통령제로 회귀하려면 개헌이 필요하기 때문에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다 4년 중임제와 정·부통령제로의 개헌이 차츰 논의되고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1987년 6월 항쟁으로 인해 헌법개정이 이루어지게 될 때, 이전처럼 정·부통령제로 되돌리는 것을 검토했지만 당시 여당이었던 민정당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는데, 정·부통령제로 하면 김영삼, 김대중이 러닝메이트로 나올 수 있었기 때문. 세상 참 쉽게 산다.

자세한 내용은 대한민국 부통령 문서 참조.

3. 미국 부통령[편집]

선거인은 각각 자기 주에서 회합하여, 비밀 투표에 의하여 대통령과 부통령을 선거한다. 양인 중 적어도 1인은 선거인과 동일한 주의 주민이 아니어야 한다.[6] 선거인은 투표 용지에 대통령으로 투표되는 사람의 이름을 지정하고, 별개의 투표 용지에 부통령으로 투표되는 사람의 이름을 지정하여야한다. (1804년의 수정헌법 제 12조)

“대통령이 면직되거나 사망하거나 사직하거나 또는 그 권한과 직무를 행하지 못하게 된 경우에는 대통령의 직은 부통령에게 귀속한다.”


대통령과 함께 선거로 선출되며, 이후 수정헌법 제 25조에 의거하여 대통령이 유고나 그 외의 이유로 대통령으로서 정상적인 임무를 수행하기 어렵게 되거나 또한 그렇게 판단될 경우에 부통령이 승계하여 대통령이 된다.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만 35세 이상으로, 14년 이상 미국에 거주하여야 한다. 이는 수정헌법 제 22조로 함께 공식화 되었다.

부통령이 권한을 대행하거나 승계하는 경우는 대통령의 사망, 탄핵 또는 사임. 또 일시적으로 포기할 경우도 가능하다. 예를 들면, 대통령 가족이 납치되어 수색명령을 내려야 하는데 대통령이 자신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로는 올바른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 일시적으로 자기 권한을 포기하면 부통령이 대통령의 일을 대행할 수 있다. 또한 대통령의 직무수행이 불가능하다고 부통령과 다수의 장관이 동의하고 임시 상원의장과 하원의장에게 공한을 송부하면 대통령 권한대행을 할 수 있다. 물론 대통령이 직무수행이 가능하다고 증명하면 권한은 다시 대통령에게 돌아온다.[7] 뒤의 임시 대통령(대통령 권한대행)에서 다시 설명한다.

현재 미국 부통령은 공화당 소속인 48대 마이크 펜스이다.

3.1. 역대 미국 부통령[편집]

3.2. 승계 대통령과 부통령 출신 대통령[편집]

3.3. 병풍?[편집]

부통령의 가장 큰 권리가 대통령 권한 승계 및 대행이라 대통령이 잘 살아 있을 때는 정말 존재감 없는 자리다. 스티븐 콜베어의 콜베어 르포어에서 조 바이든 부통령이 나라를 위해 희생한 용감한 전사들을 위해 핫도그 셔틀 역할을 하는 것 역시 부통령이 할일이라고 했다.

캘빈 쿨리지가 부통령이었던 시절 이런 일화도 있다.

쿨리지는 부통령 시절 가족과 함께 워싱턴의 뉴윌러드 호텔에서 거주했다. 어느 날 이 호텔에 작은 화재가 발생했는데, 호텔 측은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모든 손님을 대피시켰다. 불이 진화된 후 쿨리지가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계단을 올라갔는데 소방관이 길을 막고 "당신 누구요?"라고 묻자 쿨리지는 "Vice President[9]"라고 답했다. 소방대원은 올라가라고 했는데 잠시 후 소방관이 다시 쿨리지를 붙잡고 "잠깐, 당신 어디의 바이스 프레지던트요?"라고 물었는데 쿨리지는 당연히 "미국의 바이스 프레지던트요"라고 했다. 그러자 소방관 왈, "당장 나오시오! 나는 당신이 이 호텔의 바이스 프레지던트인 줄 알았잖소!"라고 말한 후 쿨리지를 쫓아버렸다. 그리고 하딩이 죽자 쿨리지는 미국 대통령이 되는데……


심지어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밑에서 부통령직을 두 번(1933~1941) 수행한 존 낸스 가너(John Nance Garner)는 이런 말을 남겼다.

부통령이란 직위는 따뜻한 오줌 한 주전자의 가치도 없다.

당시로선 외설적인 말이어서 기자가 침 한주전자라고 고쳤는데, 가너는 '겁쟁이'라면서 비웃었다는 후일담이 있다. 가너는 하원 의장도 지냈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부통령의 가치가 떨어져 보였을 것이다.

존 애덤스는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하찮은 자리다."라고 부통령 자리에 대해 말했다. 이건 뭐 완전 잉여 취급. 잉여 맞잖아 참고로 존 애덤스는 대통령을 역임하기 전까지 워싱턴의 부통령으로 미국 초대 부통령이었다.(...)

그 후 루스벨트의 네 번째이자 최후의 부통령을 지낸 트루먼은 이런말을 했다.

부통령의 업무는 결혼식장과 장례식장에 가는것이다.(The job of the Vice President is to go to weddings and funerals.)


그는 루스벨트가 죽고 승계를 한 그제야 "대통령님, 맨해튼 프로젝트가 성공했습니다. 핵폭탄 한 방 일본에 쓸까요?" 란 보고를 받았다고. 전쟁의 가장 중요한 열쇠였던 것을 부통령임에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심지어 우드로 윌슨 때는 윌슨이 집무 불능 상태였는데 아내 이디스 윌슨이 대행권을 스틸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이건 뭐 부통령을 물로 보는 것도 아니고…. 다만 퇴임 후 이 사실이 드러나고 나서 이를 막기 위해 법이 개정되었기에 지금은 이렇게 뺏길 일은 없다.

드라마 웨스트윙에 나온 조크도 이를 잘 표현하고 있다. "워싱턴에 사는 한 여성이 아들 둘을 잃어버리고 죽을 때까지 찾지 못 했는데 한 명은 원양어선 선원이 됐고, 다른 한 명은 부통령이 됐다" 그리고 이 작품을 보다 보면 대통령에게 치이고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치이는 불쌍한 부통령을 알 수 있다.

3.3.1. 될 놈은 된다[편집]

부통령이 정말 아무런 힘이 없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미국의 부통령은 상원 의회 의장을 겸하는데 상원에서 가부 동수가 된 경우 캐스팅 보트를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상원은 구성이 각 주 당 2명씩 해서 딱 100명이기 때문에 50대 50이 그렇게까지 드문 것은 아니다. 단적으로 클린턴 정부 초기 감세정책을 포기하고 누진세 강화로 가는 세제개편안이 정확하게 50 대 50이 나왔고, 당시 부통령인 엘 고어가 찬성표를 던져서 통과시켰다.

또한 부통령이 없을 경우 하원 의장이 대통령직을 승계하는데, 하원 의장이 대통령과 다른 당이라면 힘 들이지 않고 정권교체가 일어난다. 한마디로 대통령이 소속된 정당의 정권 보호를 위한 일종의 생명 보험같은 존재. 물론 뒤집어 말하면 '보험'이니까 평상시에는 쓸데없는 게 맞다.

더불어 대통령으로 가는 코스나 마찬가지로 취급되기 때문에 부통령이 된다는 것이 정치인의 입장으로서 결코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할 일이 적기에 사고칠 일도 없는데다 어쨌거나 대통령 바로 밑 자리인 부통령직이 후일을 대비한다면 더 안정적일 수도 있다.

실제 사례로 부통령을 역임한 뒤에 대통령에 도전하거나 대통령이 된 사례가 꽤 있다. 조지 H. W. 부시로널드 레이건 정부에서 8년간 부통령을 지낸 다음에야 대통령이 되었다. 당선 될 뻔 했었던 앨 고어나 사임한 리처드 닉슨, 그리고 레이건에게 크게 발린 월터 먼데일도 부통령 출신. 당내 분열만 아니었으면 닉슨을 이겼을 험프리도 부통령 출신.[10] 위에서 부통령직을 씹은 존 애덤스는 미국 최초의 부통령이었고 부통령 경력을 마무리 하고 바로 대통령이 되었다.

공화당 온건파로 20년간이나 정계에 몸담고 1996년에 대통령 후보로도 나왔던 밥 돌 상원의원도 1976년 제럴드 포드의 러닝메이트였고, 프랭클린 D. 루스벨트도 1920년 선거에서 콕스의 러닝메이트였다. 그 해 승리한 워런 하딩도 원래는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러닝 메이트가 될뻔 했다. 1919년 그가 죽어서 대통령 후보가 되었지만. 주지사보다 부통령에 엮인 사람이 더 많을 정도. 심지어는 가상 작품인 웨스트 윙에서도 대권후보로서 두 명의 부통령의 존재감은 은근히 크다.

물론 딱히 부통령에게 어디까지 위임을 해줘야 한다는 규정은 없기 때문에 영향력은 대통령과 부통령의 사정에 따라 다르다. 일반적으로 대통령과 정치적 사상/지향점을 공유하면서 대통령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위치에 있는 부통령의 경우는 많은 권한을 위임받지만,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관계인데 정당 내의 밸런스 논리에 의해서 부통령 후보가 된 경우는 완전히 뒷전 신세가 된다.

위에서 나온 존 가너와 해리 트루먼 사이에 부통령이였던 월리스는 핵무기 개발의 가능성을 검토하는 회의의 의장이 되는 등 미국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실세 부통령이였다. 월리스 개인은 48년 대통령 선거에서 진보당으로 독자 출마하여 2.6%를 득표해 4등이 될 정도로 상당한 능력을 가진 정치인이었다. (3등은 남부 출신 주권민주당 후보였다.) 2만 표만 더 얻었어도 트루먼의 낙선에 충분히 기여할 수 있었다. 관료로서는 정말 독보적인 인물로, 특히 미국의 막대한 농업 생산력 증진에 큰 업적을 남겼다. 월리스는 FDR의 제4기 임기의 부통령 경선에서 출마를 제지받지 않았지만, 당내 중진들은 "FDR의 의중은 트루먼에게 있다"라는 흑색선전으로 그를 저지시켰다. 훗날 중진 중 하나는 "여기 월리스를 대통령이 되지 못하게 한 자가 누워있다"라는 말을 남겼다.[11] 반면 트루먼은 "가 없다"라는 이유로 당내 경선에서 1위였던 월리스와 2위까지 제치고 부통령이 된 인물이었다. 여하간 사람마다 다른거다.

1980년대 이후 미국정치에서는 특정한 의제를 대통령이 부통령에게 위임하여 처리토록 하는 방식으로 재량권을 주기도 한다. 미국이 초강대국이 되면서 미국의 역할과 비중도 덩달아 커지고, 대통령의 업무 부담도 개인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자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미흡한 분야를 뒷받침하면서 국정운영 전반의 안정감을 부여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다. 부통령을 공짜밥이나 축내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 시민들의 눈총을 사기도 하고

1988년 레이건 하에서 부통령을 지내면서 유약한 이미지에 시달리던 조지 H. W. 부시 대통령 후보는 젊은 댄 퀘일 상원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반면 매사추세츠 주지사로 진보적 입장이 뚜렷했던 마이클 듀카키스는 보수적이고 경제 경험이 풍부한 로이드 벤슨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96년 밥 돌은 미식축구 쿼터백 출신으로 전국적으로 지명도가 높은 잭 켐프를 선택했다.

클린턴은 앨 고어에게 당시 미국경제 최대의 화두였던 신경제(New Economy)의 핵심인 정보기술산업(IT)와 관련된 업무결정권을 상당부분 위임하였다. 앨 고어의 경우는 2000년 대선에서 당내 보수파이자 후에 무소속으로 등장하는 유태계의 리버만을 러닝 메이트로 선정했다. 2004년, 부인이 대기업 오너 집안이었던 동부 지역 부자 출신 존 케리 대통령 후보는 노동자들과 친한 서민 이미지의 존 에드워즈에게 손을 내밀었다.

조지 W. 부시 시대의 딕 체니 부통령은 실세 부통령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미 당선 이전에 국방장관을 지내기도 했던 그는 부시로 부터 대테러전쟁 수행의 광범위한 분야를 위임받아 활동하였다. 아니 사실 솔직히 말해서 부시 2세 재임 시절에는 대통령은 그냥 얼굴마담이고 딕 체니가 실권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체니의 권한은 매우 컸다. 그 결과가 좋다고는 말 못하지만. 특히 딕 체니는 아버지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때부터 함께 했던 인물인 만큼, 아들 부시로서는 그를 거스를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비슷한 예로는 럼즈펠드나 파월 등.

오바마 때는 경선 2위였던 힐러리 클린턴이 부통령으로 고려되었으나 대신 국무장관 자리를 주었고, 존 매케인 진영에서는 세라 페일린 알래스카 주지사를 히든 카드로 내세웠고, 효과를 보는 듯 했으나 그녀의 망언과 멍청한 삽질/병크들로 지지도를 더 깎아 먹었다.[12] 버락 오바마의 부통령인 조 바이든도 국제관계 및 외교 분야를 전담하는 방식으로 대통령과 업무를 분담하였다. 이후 클린턴이 국무장관으로 들어오면서 영향력이 많이 약화되었지만 아직도 외교문제를 결정할 때는 오바마에 비해서도 적지 않은 권한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이든은 미국 역사상 5번째로 어린 만 29세의 나이에 정계에 진출하고 핵무기 감축 협상단에 끼어 브레즈네프 서기장을 만나는 등(1942년생, 1972년 당선)의 포스를 보이면서 기대를 제법 받았으나 "Fucking great"존나좋군?[13]코소보 내전 당시 "세르비아를 점령하고 독일이나 일본식으로 점령군 사령부를 세우자."는 등의 엽기적 발언으로 이미지가 좀 망가졌다. 그래도 실무 능력은 최상급이다보니 이제는 '역시 바이든...'이라고 넘겨주는 분위기. 하지만 정가에선 오바마의 이미지 상승을 위해 2012년 선거에서는 그를 교체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란 떡밥도 나돈 적이 있었다. 어찌되었던 간에 오바마는 재선 성공.

2017년 현재 부통령인 마이크 펜스의 경우 2인자+조언자형[14] 부통령으로 볼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아웃사이더라 당내 사정에 매우 어둡기 때문에 백악관의 비서진과 부통령, 각료들이 대통령의 추구하는 가치, 노선, 정책과 의중을 잘 파악하면서도 당내 사정에 밝고 당의 가치, 노선, 정책을 잘 이해하고 실천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부통령은 상원의장을 겸하기 때문에 의회에도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 대통령과 야당 또는 대통령과 집권당 내부의 불화로 정국이 꼬일 때 경륜이 풍부하거나 당의 가치와 노선, 정책을 잘 이해하고 있는 인사가 부통령이면 그가 막후에서 조정하여 정국을 풀어내는 사례도 종종 있다. 펜스 부통령의 경우 공화당의 전통적인 가치와 노선, 정책을 신봉하고 인디애나주 연방 하원 6선에 해당 주의 주지사를 지내 당내 사정에도 밝을 뿐만 아니라 당내에서도 인망이 높아 트럼프를 보좌하는 부통령으로는 최고의 적임자였다. 심지어 트럼프에게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폴 라이언 하원의장[15]도 선거 당시 펜스가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고 하자 트럼프와 펜스에게 큰 신뢰를 보였다. 당선 직후에 정권인수위원회 위원장이 되어 새정부 출범을 주도하여 실세로 군림했으며 드럼프와 의회의 중간다리 역할을 하면서 그에게 많은 조언을 하고 있다. 때때로 트럼프를 대신해 외교 분야에서의 업무를 위임받아 이를 수행하기도 한다. 2017년 3~4월에 한반도에서의 긴장이 높을 때 한국과 일본을 방문하여 북한의 도발을 억제한 점이 그 사례다.

3.4. 승계 단서와 트리비아[편집]

3.4.1. 3번째 임기(?)[편집]

일반적인 경우에는 3선이 불가능하지만, 전임 대통령이 임기의 반(2년) 이상 재직한 후에 부통령이 승계를 하면, 그 나머지 임기는 대통령을 승계한 부통령의 임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렇게 승계받고 대통령이 된 경우에는 전임 대통령의 남은 임기를 다 채워도 재선에 두 번 출마하는 게 가능하다. 재수 좋으면 8년 이상(전임자의 잔여임기+초선 4년+재선 4년)까지 재임할 수 있는 셈. 이게 가능했던 대표적인 예가 워런 하딩을 승계한 캘빈 쿨리지,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승계한 해리 트루먼, 존 F. 케네디를 승계한 린든 존슨. 그러나 셋 모두 두 번째 재선에는 출마하지 않았다. 특히 쿨리지는 타의가 아닌 스스로 3선을 하지 않겠다고 밝혀 자의에 해당된다.

  • 쿨리지의 경우엔 그의 재임 당시에 연임 제한이 없어서 큰 의미는 없었다. 아무튼 재선에 출마하지 않은 덕분에 대공황의 쪽박을 7개월 차이로 모면했다. 프렌드 실드

  •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4차례 연임 후 1951년 헌법 개정으로 재임까지만 가능하도록 개정되었으나, 현직 대통령이었던 해리 트루먼은 수정헌법에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1952년 선거에 출마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 전쟁의 장기화로 본인의 지지율이 급하락하자 트루먼은 출마를 포기했다. [16]

  • 존슨의 경우에도 베트남 전쟁에 따른 여론 악화로 당선가능성이 별로 없어 2번째 임기 이후 불출마를 선언했다. 게다가 유력후보인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당하고 민주당이 분열되어 결국 닉슨이 승리했다.근데 존슨은 했으면 사실상 죽기 바로 직전에 임기를 마쳤을듯. 물론 만약은 없다.


22조 수정헌법에 따라 2회 이상 임명될 수는 없다. 재밌는건, 이게 대통령에게도 적용이 되기에 원칙적으로는 재선 대통령이 아닌 단임 대통령이나 2년 이하의 2번째 임기를 역임한 대통령의 경우 다시 부통령이 될 수도 있다(!).

3.4.2. 부통령 궐위 시의 새 부통령 선임[편집]

존 타일러가 아니었으면 부통령의 대통령 승계 원리는 "권한대행" 등으로 축소되었을지도 모른다(본래는 이게 원칙이었다). 여하간 그로 인해 부통령은 유고시 대통령을 승계하는 자리가 되었다.

재임 중 사직하거나 사망할 경우 혹은 대통령직을 승계할 경우 부통령을 새로 선임하는 제도는 꽤나 훗날에나 이루어졌다. 첫 임기에 사망하면 재선에서 러닝메이트를 새로 뽑아 그를 대통령으로 뽑는 식. 그래서 의외로 미국 역사상 부통령이 없던 시기도 꽤 된다(...) (약 44~45년 간 없었다.)

제1절. 대통령과 부통령의 임기는 본 조가 비준되지 아니하였더라면 임기가 만료했을 해의 1월 20일 정오에 종료하고 상원의원과 하원의원의 임기는 동일한 해의 1월 3일 정오에 종료한다. 그 후임자의 임기는 그 때부터 시작된다.
제2절. 연방 의회는 매년 적어도 1회 집회한다. 그 집회는 의회가 법률로 다른 날을 정하지 아니하는 한 1월 3일 정오부터 시작된다(이하 생략).
(대공황 시절인 1932년 3월, 년초 레임덕을 막는 목적으로 발의되어 다음해 1933년 3월에 비준, 제5절에 따라 그해 1933년 10월 15일부터 발효된 수정헌법 제 20조)


부통령을 공석으로 비워두지 않은 최초의 대통령은 경이로운 4선을 달성한 프랭클린 루스벨트이다[17]. 1940년 존 낸스 가너가 2번의 임기를 치른 후 (재선 상황이기도 했고) 당내 경선에서 루스벨트에게 밀리자 위의 수정헌법 20조에 따라 1월 20일에 미리 임기를 만료 했는데, 3선 당선이 결정된 상태였기에 러닝메이트였던 헨리 A. 월리스가 부통령의 임기를 이어받았다. 그런데 이 윌리스도 러닝메이트에서 떨어지자 4년 임기를 끝으로 45년 1월 20일에 임기 만료. 그를 이어받은 트루먼은 또 루스벨트가 죽자 승계하고 재선하였으며, 트루먼은 수정헌법 20조를 적용받는 첫 대통령이 되므로 역시 1월 20일에 물러나면서 대통령의 취임식은 이후 3월 4일에서 1월 20일로 당겨지게 되었다. 원래 목적대로 1월 2일에 하는건 실패 어차피 미국 대선은 언제나 11월 첫째 주 수요일이었으니 취임식이 당겨진다고 다를 건 없었고...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당선이 예정된 상황에서 미리 부통령직을 수행하게 하는 것이다. 이후로도 승계된 대통령은 부통령을 선임하지 않았는데, 이것이 고쳐진 건 1967년의 수정헌법 25조였다.

대통령이 면직, 사망 또는 사임한 경우에는 부통령이 대통령이 된다. 부통령의 직에 궐위가 있을 시에는 언제나 대통령은 부통령을 지명하고 그는 의회 양원의 다수결에 의한 추인에 따라 취임한다.(이하 생략)


이 조항이 최초로 적용된 사례가 바로 다음 해인 1968년에 당선된 리처드 닉슨이란 게 충격적이다. 그의 러닝메이트인 스피로 애그뉴 부통령은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1973년 10월 10일 비리로 사직을 했다. 2달여 뒤 의회의 추인을 받아 12월 6일 취임한 부통령이 제럴드 포드. 그런데 알다시피 리처드 닉슨 역시 1974년 8월 9일 워터게이트로 사임을 하면서(...) 포드가 승계하고 부통령은 다시 공석. 결국 4개월하고 10일 뒤인 그해 12월 19일 넬슨 록펠러가 추인받아 부통령직을 맡았다[18]. 결국 거의 1년 사이에 부통령이 두 번이나 갈려나갔는데(...), 이 두 사례만이 수정헌법 25조가 적용된 사례로, 이로서 제럴드 포드는 대통령 선거로 당선되지 않은 유일한 대통령이라는 앞으로도 쉽게 깨지지 않을 기록을 얻게 되었다. 닉슨이 잘못했네 미례예측 갑

3.4.3. 임시 대통령(대통령 권한 대행)[편집]

대통령의 건강이 위태로운 순간에도 유고시를 대비해 임시적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긴 경우가 있다. 미국에서 그런 경우는 역사상 이틀이 채 되지 않는다.


드라마 《웨스트 윙》에서 나타났는데, 문제는 당시 부통령이 사퇴한 직후여서 대통령 권한대행은 계승 순위 2위인 하원의장이 맡았다.

3.5. 기타 트리비아[편집]

  • 조지 클린턴은 서로 다른 대통령(토마스 제퍼슨제임스 매디슨) 하에서 임기를 지낸 최초의 부통령이며, 역시 재직 중에 사망한 최초의 부통령이다. 그는 뉴욕 주의 초대 주지사였으며 건국의 아버지 세대에 들어가는 유명한 정치가이자 군인. 제퍼슨의 두번째 임기인 1805년 3월 4일부터 매디슨의 첫 임기 세번째 해인 1812년 4월 20일까지 재직했다. 이후 부통령은 11개월 여간 공석이었다. 제임스 매디슨은 두번째 러닝메이트인 엘브리지 게리[19]도 1년 8개월 만에 사망하는 비보가 있었는데, 역시 남은 2년 4개월간 부통령이 공석이었다.

  • 존 C. 컬훈은 1825년부터 1832년까지 존 퀸시 애덤스앤드루 잭슨 두 대통령 하에서 임기를 지냈다. 조지 클린턴에 이은 역사상 두 번째이자, 마지막 케이스. 심지어 두 대통령은 서로 정적이었으며, 첫 대선인 1824년의 경우 애덤스와 잭슨 모두 컬훈을 러닝메이트로 골랐다. 애초에 잭슨은 당 선거에서 과반을 채우지 못하고 이겼으나 하원과 헨리 클레이의 애덤스 지지로 졌다. 1828년 잭슨은 다시 현직 대통령인 애덤스에 맞서 재출마했고, 컬훈은 잭슨의 러닝메이트로[20] 선거에서 승리했다. 스윙 보터 돋네 그러나 잭슨이 대통령이 된 후에는 주의 권리를 강조하던 컬훈과 잭슨은 불화를 일으켰으며, 결국 러닝메이트는 교체되었고 잭슨은 마틴 밴 뷰런을 선임하여 재선했다. 컬훈은 임기를 3개월 남겨놓은 1832년 12월 28일 사임했다. 컬훈은 클레이, 웹스터와 함께 "불멸의 삼각동맹"으로 불리며 스윙 보터 역할을 수행했다.

  • 최단임 부통령은 최단임 대통령으로 1개월 만에 사망한 윌리엄 해리슨을 승계한 최초의 부통령 승계 대통령인 존 타일러다(1841년 3월 4일 ~ 4월 4일). 앤드루 존슨에이브러햄 링컨의 사망으로 재임 한달 열흘 만인 1865년 4월 15일로 임기를 마쳤다. 그러나 이런 승계 케이스가 아닌 최단명 부통령은 프랭클린 피어스의 러닝메이트 윌리엄 R. 킹이다. 그는 부통령이 되었을 때 심한 병을 앓았는데, 미국 의회의 특별 법령에 의하여 그가 요양 중인 쿠바 아바나 미국 영사관 앞에서 취임식을 가졌다. 그러나 차도가 없어 부통령을 지낸지 1달 보름만에 1853년 4월 18일 앨라배마 주 셀마에서 사망하였다. 이미 만 67세에 가까운 늙은 나이였다. (당대 2번째 최고령, 역대 4번째 최고령.)

  • 사임한 최장임기 부통령은 위의 존 C. 컬훈[21]이고, 사망한 최장임기 부통령은 4년 임기 만료를 5개월 앞두고 죽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의 부통령 제임스 S. 셔먼이다. 그는 선거를 일주일 앞둔 10월 30일 사망했는데, 그의 사망으로 공화당 부통령 후보는 니컬러스 머리 버틀러[22]로 급히 교체되었으나 당내 분열로 선거에서 압도적인 차이로 패했다. 승계한 경우 최장 임기 부통령은 2년 10개월의 린든 B. 존슨이다.

  • 존슨이란 부통령은 지금까지 세 명(마틴 밴 뷰런의 러닝메이트 리처드 멘터 존슨, 앤드루 존슨, 린든 B. 존슨) 뿐인데, 그 가운데 두 명은 대통령의 암살로 그 자리를 승계했다. 링컨과 케네디의 공통점 드립 돋네

  • 의외로 이렇게 다이나믹한 사건들로 8년 임기를 무사히 마친 운 좋은 부통령은 역사에 8명 뿐이다. 존 애덤스, (먼로의 부통령이었던) 다니엘 D. 톰프킨스[23] , 우드로 윌슨의 부통령이었던 토마스 R. 마셜[24], 존 낸스 가너, 리처드 닉슨, 조지 H. W. 부시(아버지 부시), 앨 고어, 딕 체니. 조만간 조 바이든이 추가 될 것 같다 8명 가운데 4명이 80년대 이후인데, 이는 과거 미국 대통령과 부통령이 할 만한 직업이 아니었다 대다수 재선에 실패(혹은 포기)하거나, 암살, 질병 등에 많이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80년대 이후 미국 정치가 양당이 8년씩 교대하는 식으로 상당히 안정되고 있다는 의미일 수도. 사실 존 애덤스와 존 낸스 가너의 경우, 위에서 보듯 8년 임기를 꽉 채운 건 아니다. 둘다 존이네

  • 가장 오래 산 부통령은 만 99세 생일 보름 전에 사망한 존 낸스 가너다(1868년 11월 22일~1967년 11월 7일). 한동안 1위를 했던 인물은 2위인 리바이 P. 모턴(1824년 5월 16일~1920년 5월 16일, 벤저민 해리슨의 러닝메이트, 만 96세 생일에 사망). 대통령을 지낸 부통령의 경우 가장 장수한 인물은 만 93세 6개월을 생존한 조지 H. W. 부시(전체 3위)이다. 뒤이은 기록 역시 역시 대통령을 지낸 인물로 4위는 93년 5개월 보름에 사망한 제럴드 포드(1913년~2006년), 5위는 존 애덤스(만 90세 8개월)이다. 6위는 1928년 1월 생의 월터 먼데일.

  • 역대 46명의 부통령 가운데 22명이 대통령보다 나이가 많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임기를 마친 후에 대통령으로 당선된 케이스는 없다. 예외가 린든 B. 존슨인데, 그는 승계 후 재선에 성공한 케이스.

  • 취임 당시 가장 나이가 많았던 만 71세 57일이었던 해리 트루먼의 러닝메이트였던 앨번 W. 바클리(트루먼과 일곱살 차이). 대통령과 나이차가 가장 많았던 연장자 부통령은 버락 오바마의 부통령 조 바이든(오바마와 18년 8개월 보름 차이. 만 66세에 취임.)이다.[25] 대통령이 연장자일 경우, 제임스 뷰캐넌(만 66세에 취임)과 그 부통령 존 C. 브레킨리지(만 36세에 취임)는 나이차가 가장 많다(29년 9개월).[26] 그런데 뷰캐넌이 윌리엄 킹과 게이 드립이 나오고 있으니 안습

  • 반면 나이차가 가장 적은 대통령은 에이브러햄 링컨과 앤드루 존슨. 존슨이 45일 먼저 태어났다. 먼저 태어났을 뿐 평가는 하늘과 땅 차이

  • 최연소 대통령은 대통령과 나이차가 가장 많았던 존 C. 브레킨리지이다. 2위는 리처드 닉슨(당시 만 40세), 아버지 부시의 러닝메이트였던 댄 퀘일(당시 만 42세에서 보름 부족), 테디 루즈벨트(만 42세 4개월)가 3,4위다.

  • 리처드 닉슨은 최연소 부통령 2위를 포함한 여러 기록이 있다(...) 유일하게 임기중 사임한 대통령, 부통령이 사임한 대통령(미국 역사상 두 번 뿐이다), 최초로 부통령을 선임한 대통령, 유일하게 대통령에 당선된 전직 부통령 등... 그리고 무엇보다 2014년 4월까지는 부통령 퇴임 이후 가장 오래 생존한 인물이었다. (현재는 2위) 닉슨은 퇴임 이후 12145일(만 33년 3개월)을 살았다. 역시 장수한 포드는 11827(만 32년 4개월)일로 이 기록에서 3위.

  • 퇴임 이후 가장 오래 살고 있는 부통령은 카터 대통령의 러닝메이트였던 월터 먼데일(1928년생)인데, 2013년 6월 제럴드 포드의 기록을 깨고, 2014년 4월에는 리처드 닉슨을 깼다. 1981년 1월 20일에 퇴임했으니 2021년이 되면 퇴임 후 40주년을 달성하는 셈이 된다. 레이건, 부시 부자, 클린턴, 오바마, 트럼프까지 살아있는 역사

  • 20세기 출생자들인 이 세 명을 제외하고 가장 퇴임 이후 오래 산 대통령은 1756년 생인 에런 버이다. 그는 만 45세에 취임한 후 4년을 재임했으며, 퇴임 후 11517일(만 31년 7개월)을 더 생존하고 만 80세 8개월에 죽었다. 해밀턴을 쏘아죽이고 그만큼 오래 산 모양이다

  • 임기 중 다른 사람을 총으로 쏜 부통령이 두 명 있다(...) 에런 버는 1804년 7월 11일 알렉산더 해밀턴그 유명한 결투를 하여 총으로 쏴 결국 그 상처로 죽게 만들었다. 딕 체니는 2006년 2월 11일 사냥하던 중 친구인 해리 휘팅톤에게 오발로 상처를 입혔다(...) 딕 체니 놀리려고 만든 항목인 듯

  • 선거로 선출되지 않은 부통령은 제럴드 포드와 넬슨 록펠러 단 두 명이다. 25차 개정헌법에 따라 부통령이 공석이 될 시 대통령이 부통령을 지명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 그 이전 승계 대통령은 승계 임기 동안은 부통령이 없었다. 포드는 스피로 애그뉴의 사퇴로 리처드 닉슨에 의해 지명되었고, 록펠러는 닉슨의 사퇴로 포드가 대통령직을 승계하면서 지명되었다. 애그뉴, 포드, 록펠러 세 사람은 한 임기(4년)에 부통령 세 명이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4. 이미지[편집]

음모론이나 픽션에서는 가뜩이나 존재감 없는 것도 서러운데 실은 부통령이 외계인이라거나, 대통령 죽이고 자기가 대통령 자리를 해먹으려 든다던지(미국 소설 아버지의 날, 게임 히트맨: 블러드 머니 등등) 아니면 대통령도 모르는 자신만의 이상한 짓(아이언맨3)을 벌인다던지 하는 식으로 취급이 안 좋다. 아마도 3대 대통령 제퍼슨의 부통령이였던 에런 버와 알렉산더 해밀턴의 결투 때문인거 같다. 아니면 부통령(Vice president)의 Vice가 사악한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거나...

톰 클랜시의 소설 주인공 잭 라이언이 잠시 이 자리에 오른 적이 있다. <Debt of Honor> 말미에 성추문으로 사표를 내게 된 부통령을 대신해 부통령 자리에 오르기로 승낙하고, 의회에서 취임 선서를 기다리던 중, 빡친 일본 비행사가 점보 제트기를 몰고 그대로 의사당을 들이받아 대통령 이하 수많은 의원들이 전부 사망한다. 결국 길어야 몇 분 만에 대통령이 되는 지경에 이른다. 그리고 다음 작품 <Executive Orders>에서는 성추문으로 사직했던 전 부통령이 "잭 라이언은 부통령으로 의회 인준은 받았지만 취임 선서를 하지 않았으므로 적법한 부통령이 아니고, 따라서 적법한 대통령도 아니다. 대통령 선거를 다시 해야 한다."고 소송을 거는 상황이 나온다.

톰 클랜시 시리즈의 스플린터 셀: 컨빅션에서는 아예 흑막 편에 들어가서 쿠데타에 협력해 대통령 암살 뒤 자동적으로 대통령을 물려받으려고 하나, 샘 피셔에게 확보차원에서 양쪽 무릎에 총 맞고 말 그대로 데꿀멍.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3에서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있을 러시아와의 평화협상에 참여하려다가 블라디미르 마카로프의 전 유럽의 화학가스 테러를 시작으로 국수파들의 유럽 어택땅으로 인해 함부르크에서 러시아군에게 납치당해서 2장 1미션이자 통칭 'Goalpost'란 코드명으로 주인공 델타 포스에게 최우선 구출대상으로 선정되어 결국 구출된다. 러시아는 대통령이 참여하는데 이쪽은 부통령이 참석하다니 진짜 버림패 수준인가

히트맨: 블러드 머니에서는 클로닝 기술 불법화를 이끌어내어 클로닝 기술을 독점하려는 암흑정부 산하 조직 프랜차이즈의 음모로 클로닝 합법화를 이끌어내려던 대통령이 사고를 가장한 암살을 당하고 부통령이 대통령으로 승계된다. 하지만 새 대통령마저도 클로닝 합법화를 추진하자 신임 부통령을 조종하여 다시 한번 대통령을 암살하고 협력한 부통령을 대통령 자리에 앉혀서 클로닝 불법화를 이끌어내려 한다. 하지만 의뢰를 받은 코드네임 47백악관에 잠입하여 대통령을 암살하려 한 자신의 알비노 열성 클론 '마크 파르체찌 3세'와 부통령을 암살하는 데 성공하면서 상황 종료. 미션의 제목 자체가 'Amendment XXV(수정헌법 25조)'이다. 여담이지만 해당 부통령이 프랜차이즈에 협조한 까닭은 현재의 본인 상황이 매우 안습해서. 실제로도 잠입해서 부통령의 '업무' 행위를 보면 업무라고 하는게 대통령 영부인의 개를 데리고 같이 놀아주거나 개의 식사, 대소변등을 관리하고 있고, 대통령 애들 숙제를 대신 풀고 앉아 있다. 거기에 이 영부인은 부통령을 직함도 아니고 무슨 집사 부르듯이 이름으로 불러댄다. 더군다나 이 영부인이란 작자는 상기한대로 자기 일들을 부통령에게 떠맡기고는 남는 시간동안 몰래 백악관 직원과 바람을 피우기까지……이 때문인지 부통령이란 작자는 생긴것도 스트레스 때문인지 축 처져있다. 제거해야 할 타겟이지만 정말 불쌍하다.

미국 스릴러 소설 아버지의 날에서는 미국 대통령이 우울증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자진 입원하면서 부통령이 권한대행이 된 후 대통령직에 욕심을 내다가, 대통령이 우울증 치료가 끝나 퇴원하고 권한을 되돌려받으려 하자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한다. 결말은 대통령 암살에는 성공하지만 자신도 대통령 파벌의 반격으로 암살당해 아무것도 모르던 하원의장이 대통령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미국 스릴러 소설 붉은 대통령에서는 KGB에 포섭당한 진보 정치인이 부통령으로 당선된 후, 연로한 대통령 당선자가 취임 전에 병사하는 바람에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자신은 세계 평화를 위해 소련과 협조한다고 스스로 믿고 KGB가 요구한 대로 미국의 핵공격 능력을 일시적으로 봉인하는 등 미국의 군사력을 약화시키나, KGB에서 모월 모일 소련에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고 그렇지 않으면 소련이 선제 핵공격을 가해 미국을 불바다로 만들 것이다는 협박을 받고 KGB에 속았음을 알고 저항하다가 KGB 요원에게 암살당한다. 하지만 소설 주인공들이 부통령에게 사실을 알려, 부통령이 핫라인을 통해 KGB 의장에게 "사실 대통령의 조치는 내가 중간에 깔아뭉개서 미국의 핵공격 능력은 살아있음"이라고 뻥카를 쳐서 KGB는 데꿀멍하는 결말.

5. 가상의 부통령[편집]

미국 창작물에서는 대통령이 등장할 때엔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편. 다만 별 비중은 없이 찌질하게 묘사되거나, 대통령 자리를 노리는 악역(...)으로 나오기도 한다. 특히 대통령 캐릭터들은 이런저런 수난을 많이 겪고 사임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후임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후임 대통령으로 이임되는 경우는 ★ 표시.

등장 작품

부통령

국가

골판지 전기 W

알페르도 가다인

A국

길티기어 시리즈

버넌 칼라 (76대)

미국

배틀스타 갤럭티카

가이우스 발타
톰 자렉
리 아다마

콜로니얼 연방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작품

로드리게스

미국

데이브

게리 낸스

미국

메탈 울프 카오스

리처드 호크

미국

백악관 최후의 날

찰리 로드리게스

미국

세인츠 로우 시리즈

키스 데이비드

미국

소꿉친구는 대통령

혼도 준이치로

합중국 신본

에어 포스 원

캐스린 베넷

미국

스캔들

샐리 랭스턴

미국

웨스트 윙

존 호인스
밥 러셀

미국

엘리먼트 헌터

제로

지구

잭 라이언 시리즈

잭 라이언

미국

프리즌 브레이크

캐럴라인 레이놀즈

미국

하우스 오브 카드

짐 매슈스
프랭크 언더우드

미국

화이트 하우스 다운

앨빈 해먼드

미국

히트맨: 블러드 머니

대니얼 모리스

미국

DC 코믹스 슈퍼맨 레드 선

지미 올슨

미국

24

제임스 프레스콧
찰스 로건
핼 가드너
노아 대니얼스
미첼 헤이워스

미국

Veep

설리나 마이어

미국

에이전트X

나탈리 맥커비

미국


[1] 이 명칭은 대만 뿐만 아니라 중화권에서 vice president에 대응되는 번역어로 쓰인다.[2] 사실은 선거인단이 뽑힌 후 그들이 대통령 선거와 부통령 선거를 따로 한다. 다만 특정 당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선거인이 다른 당 부통령 후보를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다.[3] 초기에는 대통령 선거에서 2등이 된 후보가 부통령이 되기도 하여 대통령과 부통령의 당이 다를 수 있었다. 2대 대통령 존 애덤스 때의 부통령 토마스 제퍼슨이 그 예이다. 아울러 남북전쟁 중이었던 1864년 대선에서 공화당 대표였던 링컨은 민주당의 존슨을 부통령 후보로 지목했는데, 사실 이 때 공화당은 국가연합당(National Union Party)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민주당 출신 중 북부에 남은 극소수 의원 중 하나였던 존슨은 명목상 국가연합당에 속해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다른 당은 아니었던 것. 존슨은 링컨 암살 이후 민주당으로 돌아간다.[4] 대한민국 헌법 제 71조 -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한다.[5] 부통령은 선출직이며, 국무총리는 임명직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가원수는 무조건 선출직이 맡게 되어있다. [6] 즉 러닝메이트는 주가 달라야한다! 예컨대 제45대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뉴욕주, 부통령 마이크 펜스인디애나주 출신이다.[7] 아래의 이미지나 가상의 부통령 같은 매체 속 부통령 사례에서도 바로 이 규정을 이용해 부통령이 대통령 직무를 중지시키려 하는 묘사가 종종 등장한다.[8] 유일한 전직 부통령 출신 미국 대통령이다. 나머지는 현직 부통령으로 선거에서 승리.[9] 부통령이라는 뜻도 있지만 '부회장'이라는 의미도 있다, 원래는 of the US라도 붙여야 하는데 말 길게 하기 귀찮아 하는 쿨리지에게 그걸 바라기는...[10] 흥미롭게도 고어, 닉슨, 먼데일, 험프리는 모두 "실세 부통령"에 속하는 축이었다는 점이다. 전 정권과 그 이미지가 동일시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11] 그는 미국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있었던 인물 중에는 가장 진보적인 인물이었고, 만약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냉전기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을 가능성도 높다. 아니, 냉전과 매카시즘 자체가 없었을지도. 하지만 소련에 대단히 우호적이었기에 대한민국이 없어졌을 가능성도 크다.[12] 24년 전 월터 먼데일이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면서 제럴딘 페라로를 여성 러닝메이트로 삼았을 때도 역사적인 참패를 겪었다. 지명도가 낮았기 때문이기도 하다.[13] 그러니까, 씨발 운운을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회에서 국무총리가 했다고 생각하면 된다.[14] 지미 카터의 부통령이었던 먼데일이 이 유형이다. 카터가 워싱턴 중앙 정계와는 연결고리가 그다지 없었기 때문에 그가 많은 조언을 했다고 한다.[15] 2012년 대선 당시 미트 롬니 공화당 대선후보의 부통령 러닝메이트였고 지명 당시는 미 연방 하원의 예산위원장이었다.[16] 현직 대통령은 임기 관련 개헌이나 수정 헌법에 적용을 받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마찬가지로 만약에 대한민국 헌법 개정으로 5년 단임제에서 4년 중임제로 임기를 바꾼다 해도, 개헌시 현직 대통령은 재출마를 할 수 없다. 한국 전직 대통령들은 이걸 개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악용한 사례조차 존재한다[17] 정작 루스벨트의 경우엔 1932년 당선되어 위의 조기 임기 종료에 해당되지 않았다. 이는 비준이 3월으로 늦어진 탓.[18] 록펠러는 성이 짐작하듯 그 유명한 스탠더드 오일록펠러 가문 출신. 그는 그 유명한 존 데이비슨 록펠러의 손자다. 뉴욕 주지사 (58년부터 무려 4선) 출신으로 온건한 공화당 정치인으로 큰 성공을 달렸지만, 60년, 64년과 68년 대선 경선에서 모두 2등을 하면서 콩라인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부통령직은 그의 대통령으로 나아가는 마지막 기회였는데, 되려 그 와중에 집안 재산에 대한 비리와 그 자신의 스캔들이 더욱 부각되면서 오히려 그의 정치적 입지는 약화되었고, 결국 76년 대선에서 러닝메이트로 나서지 않고 정계은퇴 후 3년만에 사망했다. 물론 포드도 낙선했고, 나이도 레이건보다도 세살이 위였기 때문에 쉽진 않았을 테지만.[19] 게리맨더링의 장본인[20] 그래서 존 퀸시 에덤스는 다른 러닝메이트를 내세웠다.[21] 애초에 사임한 부통령은 역사상 두 명밖에 없다. 리처드 닉슨의의 러닝메이트였던 스피로 애그뉴와 존 C. 컬훈이 끝.(존 낸스 가너의 경우 수정헌법에 따른 것이므로 제외. 그의 임기가 컬훈보다 조금 더 길다.)[22] 컬럼비아 대학 총장을 40살부터 43년간 맡은 먼치킨. 국제 평화재단 등의 공로로 1931년 노벨평화상 공동 수상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치 운은 그야말로 안습..[23] 그런데 정작 퇴임 후 99일만에 사망하여 만 51세에서 열흘 모자란 생애로 역대 최단명 부통령이 되었다(...) 뒤를 이어 최연소 부통령인 브레킨리지가 만 54세에 죽어서 2위. 가필드를 승계한 체스터 아서 대통령(만 57세), 메킨리를 승계한 테디 루즈벨트(만 60세, 의외로 일찍 사망한 편이다), 하딩을 승계한 캘빈 쿨리지(만 60세 6개월)도 일찍 죽은 순으로 5, 6, 7위를 차지한다.[24] 하지만 윌슨 항목에 보듯이 아내가 권한을 스틸하는 바람에 유고시에 권한대행 역할을 하지 못했다.[25] 바이든 이전에 오랫동안 1위를 했던 짝은 18년 7개월 차이나는 위의 최단임 부통령 윌리엄 킹과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다. 그로버 클리블랜드의 첫 임기 부통령인 토머스 핸드릭스도 클리블랜드와 17년 반년 차이로, 재임 7개월만에 사망. 그래서 그런지 다음에는 어린 사람을 러닝메이트 시켰다더라 허버트 후버와 제임스 메디슨도 부통령이 10년 이상 연상이었던 경우.[26] 아이젠하워와 닉슨, 덴 퀘일과 아버지 부시도 23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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