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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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념
1.1. 민,형사소송
2. 기원3. 보이콧의 예4. 관련 문서

1. 개념[편집]

보이콧(Boycott)은 소비운동의 일종으로 사용하는 단어로, 단순히 불매운동을 '보이콧'이라고도 한다.

보이콧의 어원은 아래에 등장하는 '찰스 보이콧'이란 사람의 성에서 유래한 것이다. 토지 임차인을 보호하는 사회 운동이 확장된 것이 계기였지만, 이렇게 정형화된 단어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보이콧은 불매, 배척, 제재, 절교를 뜻하는 일상어가 됐다"고 문화일보의 김성호 논설위원이 정의했다.

보이콧의 의미는 간단하게 불매운동으로 적용되기도 하지만, 다양한 분야에 확대-해석되며 적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국가 간의 보이콧이 그러한데, 모스크바 올림픽이나 LA 올림픽에서 보여준 것처럼 자본주의 국가와 공산주의 국가들이 각각 상대 진영의 도시에서 열린 올림픽을 보이콧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진영 간의 적대 의사를 표명하는 것을 올림픽에 불참하는 것으로 대신한 것.

1.1. 민,형사소송[편집]

케이스마다 분명 다르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업무방해죄로 민,형사소송에 걸릴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단순히 안사겠다고 선언만 하는 것은 소비자의 권리이기 때문에 업무방해죄에 해당되지 않지만 광고주들에게 지속적으로 항의 전화를 하는 등의 행동은 업무 방해에 해당될 수가 있다.

2. 기원[편집]

산업혁명 후에 영국아일랜드를 노골적으로 지배했다.

그 시기 아일랜드 대기근도 있었는데 이는 해당 문서에도 나타나듯이 사회적으로 큰 후유증을 남긴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1879년의 3차 대기근 이후 당시 '찰스 커닝햄 보이콧(Charles Cunningham Boycott)' 이란 영국인이 아일랜드 북동부 지역의 한 경작지 지배인으로 부임했는데 기근이 점차 심해지자 소작인들은 소작료를 내려줄 것을 요구했으나 영국인 지주는 이를 거부했고, 오히려 지배인 보이콧을 시켜 반드시 소작료를 징수하도록 했다. 분노한 소작인들은 단결하여 지배인을 `왕따`시키는 작전을 펼쳤다. 우편물을 가로채고 특히나 음식을 주지 않아서 그는 아사 직전까지 갔었고 그는 결국 출동한 군대에 의해 구출되었다. 한마디로 보이콧이 보이콧당한 것.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보이콧이란 성이 일반 명사가 되어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참고로 보이콧은 결국 1000명이 넘는 경찰의 도움을 받아서 수확료를 징수하는데 성공했으나 그 해 겨울 결국 아일랜드를 떠나야 했고, 다음해 영국 수상 윌리엄 글래드스턴은 아일랜드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법령을 제정하는 것으로 보이콧의 행동을 완벽한 뻘짓으로 만들어버렸다.


이 기원을 모르는(또는 알면서도) 거의 대부분 여성운동권 인물이나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Girlcott"이란 단어를 같이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1] 역사를 뜻하는 history를 her(s)tory로 바꿔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2][3]

3. 보이콧의 예[편집]

4. 관련 문서[편집]


현재 이 문서에는 시민운동으로써의 보이콧에 대한 사례가 압도적으로 부족하다. 추가 바람.

[1] 다만 걸콧은 뉴질랜드산 상품의 구입을 촉진하자는 여성운동을 뜻하는 고유명사이기도 하다.[2] boycott은 위에 나와있는대로 사람의 성을 어원으로 history는 고대 그리스어를 어원으로 하는 것이기에 남녀차별적 단어라고 생각하면 무식의 방증이 되니 조심하자.[3] 실제로 보이콧을 성차별적 단어라고 주장하는 . 게다가 스펠링을 Boycut이라고 주장하고 있다.[4] 오죽하면 당시 한나라당의 대표인 홍준표오세훈의 이런 작태에 분노하여 자기 집을 방문한 그를 대문 앞에서 내쫓았을 정도였다.[5] http://www.inminds.com/boycott-brands.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