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복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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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복스

파일:dAKomHn.jpg

멤버

심은진, 윤은혜, 김이지, 이희진, 간미연

이전멤버(탈퇴순)

차유미, 정현전, 정시운, 이가이

활동기간

1997년 7월 3일 ~ 2006년 2월

소속사

DR뮤직 (1997년~2004년)[1]

팬덤

베이비엔젤스[2]

B.I.

파일:l0FJaAM.png[3]


1. 개요2. 인기/평가3. 프로필4. 활동 역사
4.1. 주요 활동 연혁
5. 팬덤
5.1. 문희준 극성팬들의 영원한 흑역사, 간미연 살해위협 사건
6. 사건사고7. 소속사 비화8. 트리비아
8.1. 음원 사이트에서 베이비복스를 검색할 때 주의점
9. Discography
9.1. 기타 앨범
10. 수상 경력
10.1. 가요 프로그램 1위
11. 광고 모델 경력
11.1. 해외 CF
12. 노래방 수록 목록

1. 개요[편집]

파일:베이비복스_킬러.jpg

가요계의 여전사들.[4][5]

2017년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1집이 실패해서 잘 안 알려졌지만, 사실 S.E.S, 핑클이나 디바보다 먼저 데뷔했던 여성 그룹의 시초.

1997년 1집 앨범 'EQUALIZEHER'로 데뷔한 이들은 2004년까지 한국에서 총 8장의 음반을 발표했고, 1~3집 시절 세번의 멤버 교체가 있었다. 리즈 시절의 구성원은 김이지, 이희진, 심은진, 간미연, 윤은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 S.E.S핑클과 1세대 1군 여성 그룹 부동의 NO.3였다. 또 중국태국 등지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 도 인기를 누린 최초 한류 1세대 여자그룹으로 알려져 있다.[6] NRG[7], 클론과 함께 '한류 1세대'로 회자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서 비롯.

국내 활동과 해외 활동을 활발히 이어가던 2004년, 한국 가요계 최악의 사건으로 회자되는 모종의 구설수로 팀 활동을 일시 중단했으며, 이후 멤버들이 악덕 소속사로 악명이 높던 DR뮤직과의 재계약을 하지 않음에 따라 결국 2006년 잠정 해체된다.[8] 다만 공식적인 해체 선언은 하진 않았고 2006년 2월 "각자의 길"을 선언했다. 이때 베이비복스 멤버들은 각자 활동을 열심히 하고 다시 뭉쳐서 음반을 내기로 약속했다. 여담으로, 멤버 전원이 모두 배우로 전업했다. 2005년 윤은혜, 2006년 심은진, 김이지, 2010년 이희진, 2014년 간미연.[9]

2. 인기/평가[편집]

1세대 걸그룹 중에서 S.E.S.핑클과 유일하게 대적가능한 팬덤과 히트곡을 보유하고 있다. <야야야>, <Change>, <Get Up>, <Killer>, <Missing You>, <Why>, <배신>,<Game Over>, <인형>, <우연>, <Go>, <나 어떡해>, <바램> 등이 있다.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으로 비교하면, 원더걸스소녀시대의 양강 구도 사이에서 전성기를 누린 카라2NE1 정도와 비슷한 위치였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초·중·고 여학생들의 야영, 수련회수학여행 장기자랑 시간에는 베이비복스의 노래는 매우 흥했다.[10]

베이비복스와 같은 시기에 활동한 샤크라디바 등과 비교하면 넘사벽으로 앞서있으며, 팬덤이나 대중성, 음반 판매량 역시 S.E.S.핑클 다음으로 1군 그룹 중 3순위였다. 베이비복스는 사실상 당시 독특한 여전사 컨샙과 라이벌이 없었던 걸그룹계의 독보적인 3인자의 위치였다. 헌류물론, 그 이후로 몇 팀이 한꺼번에 1위를 다투는 춘추전국시대 같은 혼돈양상은 있었지만, 베이비복스처럼 독보적인 3인자 이미지의 걸그룹은 현재까지도 전혀 없다.#

총 음반 판매량이 100만장을 넘는 몇 안되는 걸그룹 중 하나이기도 하다. 역대 걸그룹 총합 판매량 5위를 기록. 1위는 S.E.S., 2위는 소녀시대, 3위는 핑클, 4위는 TWICE다. 베이비복스가 소속되어있던 기획사의 거지같은 역량과 규모를 감안하면, 기적 같은 성과를 거둔 셈이다.[11]

1999년부터는 중국 시장에 진출했는데, 현지에서 크게 성공해 원조 한류 걸그룹으로 불리게 된다. 중화권 인기를 발판으로 다른 아시아 지역에서도 사랑받았었는데, 태국에 진출한 1호 가수 역시 베이비복스였다. 이 외에 일본, 베트남, 대만, 홍콩 등에 진출해서 한류의 불모지였던 2000년대 초반에 상당한 성과를 얻었다.

특히 2003년 외국인 가수로는 최초로 중국의 인민 라디오 방송인 '음악지성 중국유행가요배행방'에서 현지 가수들과 겨루어 중국어로 부른 신곡 'I'm Still Loving You'로 전체 차트 1위에 등극했고, 같은 해 몽골 대통령에게 초청받아 국빈 대접을 받으며 공연한 바 있다. 2014년 걸그룹 달샤벳이 밝힌 일화로, 동남아 지역이나 중국 쪽에 공연을 하러 가면 "베이비복스를 아느냐?"라고 질문 받는다고 말했고, 아직까지도 꽤 해외 팬들에게 기억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베이비복스의 기획사에서 배출된 라니아나 베이비복스 리브(2기) 역시 아시아 지역에선 베이비복스의 활동 재탕 덕택에 나름 수월하게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또 베이비복스하면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안티 세력이었다. 인기도 물론 많았지만, 1999년 당시 10대들의 우상으로 불리던 H.O.T.문희준과 간미연의 열애설로 곤욕을 치루며 안티팬도 팬 수만큼이나 많게 되는 현상을 보였다. 당시 안티들이 했던 행동들은 아직까지도 길이길이 레전드로 남아있는데, 대표적으로 99년 간미연 살해협박 사건이 있다. 당시 안티들의 기행 모음. 대한민국 연예계 역사상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이 정도로 욕을 먹었던 연예인도 사실상 간미연이 유일무이할 듯.[12]

H.O.T.가 은퇴한 2000년대 초반부터는 직접적인 오프 공격 세력은 많이 잦아들었지만, 이들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은 여전했다. 단지 스캔들 뿐만 아니라 소속사에서 과도하게 푸쉬했던 섹시 컨셉과 실력 논란으로 많은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다만 이 두 점 모두 요즘 시점에서 보자면 크게 문제 될 부분이 아니라는 게 대세다. 1990년대 후반 립싱크를 자주 하긴 했지만 라이브 무대에서는 AR 없는 쌩라이브를 선보였고, 라이브 체제로 바뀐 2002년 '우연' 시절엔 안정적인 라이브를 선보였고 여러 사이트에서 다시금 재조명을 받기도 했다.

사실상 많은 여자 아이돌들이 핑클이나 S.E.S를 롤모델로 삼지만, 두 그룹은 가창력 담당 각각 1명과 그 외 얼굴마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베이비복스의 경우 메인보컬 2명(이희진, 간미연), 서브보컬 2명(심은진, 윤은혜), 랩 1명(김이지)으로 안정적으로 구성된 현 시대 걸그룹의 시초로 봐도 무방하다.[13] 김이지의 경우 요즘 아이돌 저음랩의 시초였다. S.E.S핑클도 이벤트성으로 아주 잠깐 랩은 했었지만, 요즘 아이돌 랩이랑은 확연히 구분된다. 중국이나 태국 등 해외에 진출해서 대박친 것도 현 아이돌의 해외 진출의 밑거름이 되었다. 베이비복스가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서 가지는 의의. S.E.S.와 핑클이 국내에서의 폭발적인 인기로 걸그룹 시장을 확장시키고 풍요롭게 했다면, 베이비복스는 걸그룹 시장의 새로운 길 틈새 시장 을 성공적으로 제시했다고 보는 게 맞다.

베이비복스가 다른 걸그룹과 달리 컨셉적으로 달랐던 것은 더 파워풀하고 시원시원한 안무를 했었다. 심지어 유일한 요정 이미지를 보여준 2집 타이틀곡 '야야야'에서도 춤만큼은 귀여운 노래에 비해 파워풀한 안무였다. 레이스 달린 치마 입고 락킹과 팝핀을 선보였었다(...) 이러한 안무 실력에 더해 평균 신장이 168cm이라는 당시로선 드문 신체 조건이 맞아 떨어져,서 3집 'Get Up'을 통해 걸그룹으로는 최초로 섹시 컨셉을 도입하여 성과를 이뤘다. 또한 1군 나머지 두 그룹에 비해 압도적인 비율로 최초 군통령 그룹으로 불린다.

현재 K-POP 걸그룹 모습을 보면 베이비복스와 가장 많이 닮아있다는 것인데, 이 점이 베이비복스가 최근 들어 재평가 받는 이유 중 하나. 아기자기한 율동 수준의 안무를 어필했던 당시 걸그룹과는 달리 곡마다 정확한 컨셉을 잡아서 활동했던 게 베이비복스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3. 프로필[편집]

파일:베이비복스_로고.png
Baby V.O.X

멤버

이전 멤버

김이지

이희진

심은진

간미연

윤은혜

차유미

정현전

정시운

이가이

베이비복스

파일:external/66.media.tumblr.com/tumblr_ofi5chUAKc1sq377wo1_1280.png

심은진
1981년 2월 6일
서브보컬, 댄스

이희진
1979년 5월 16일
메인보컬

김이지
1979년 1월 31일
리더, 랩, 보컬

윤은혜
1984년 10월 3일
서브보컬, 막내

간미연
1982년 2월 2일
리드보컬

4. 활동 역사[편집]

내용이 길어져 따로 분리되었다.
항목 참고.

4.1. 주요 활동 연혁[편집]

  • 1999.08. 뉴욕 공연

  • 1999.11. 중국 음반 라이센스 체결

  • 1999. 한일합작 애니메이션 '건드레스' 홍보대사 위촉 및 주제가 'Patron' 녹음

  • 1999.12. 중국 북경 TV의 '밀레니엄쇼'에서 데뷔 무대

  • 2000.04. 중국 계림서 'Why' 뮤직비디오 촬영

  • 2000.06. NRG, 클론 등과 상해 공연

  • 2000.08. 세계 맥주 페스티벌 한국대표 출전

  • 2000.09. 미국 뉴욕, L.A. 등지 공연

  • 2000.10.22~24 일본 프로모션차 방문, 도쿄 ON AIR WEST LIVE HALL 단독 미니 콘서트 (7백석 규모)

  • 2000.10.28. 중국 계림시 관광사절 위촉 및 감사패 수여

  • 2000.11. 한국 걸그룹 최초 중국 베이징 콘서트

  • 2000.12.02. 일본 Korea Super Expo 2000 슈퍼 라이브

  • 2001.01.01. 중국 상하이 TV 주최 '새천년 쇼'에 해외 아티스트 대표 출전

  • 2001.06.02. MBC 일밤 게릴라 콘서트 포항 해맞이 공원에서 9,364명 (비공식 10,000명 이상) 동원

  • 2001. 중국 연예 잡지의 '한국 여성 연예인 가운데 최고 인기 연예인 1위에 간미연

  • 2001.06.04. 5집 앨범 아시아 4개국 동시 발매

  • 2001.07~12 중국 7개 도시 투어

  • 2001.09.23.~28. 중국 3개 도시 '한중수교 9주년 기념공연'

  • 2001.09.27. 중국 베이징 '베이비복스 전산학교' 설립

  • 2001.11. 김이지 한중합작 드라마 '적혈매괴' 캐스팅, 회당 개런티 350만원

  • 2002.04.10. 중국 상하이에서, 라디오 방송국 협회가 뽑은 '최우수 한류가수상'

  • 2002.05. 대만 프로모션

  • 2002.05. 간미연 한중합작 영화 '와와' 캐스팅

  • 2002.07. 중국 베이비복스 가요제 개최 1차전 4000여명 지원

  • 2002.08.15.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서 국내 첫 단독콘서트

  • 2002.08. 베트남 공연

  • 2002.09. 태국 'GMM'과 음반 계약 정식 진출 대한민국 가수 최초

  • 2002.11.17. 일본 NHK 아시아 드림 라이브 한국 대표 출전

  • 2002.12. 일본 도쿄 TV '플라토닉 체인'에 'Go'가 타이업

  • 2002.12. 서울가요대상 한류 공로상 1회 수상자[14]

  • 2003.01.20. 홍콩 프로모션, 곽부성과 만남 및 중국 신곡 뮤직비디오 촬영

  • 2003.02.09. L.A. 단독 미니 콘서트

  • 2003.03.19~22. 태국 파타야 뮤직 페스티벌 한국 대표로 출전

  • 2003.04. 일본 도쿄 시부야 라이브 홀 미니 콘서트

  • 2003.04.03. 6집 앨범 전세계 7개국 동시 발매

  • 2003.05.20. 'I'm Still Loving You'로 외국인 가수 최초 중국 인민 라디오 차트 1위

  • 2003.05.23. 태국 '채널 V' 차트에서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마돈나 등을 제치고 4위 랭크

  • 2003.07.26. 몽골 정부 초청 대규모 콘서트 및 감사패 수여

  • 2003.10.06. 평양 남북 합동 축하공연 남한 대표 출전

  • 2003.11.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아시아 가요제' 출연

  • 2003.11.30. 기네스 북 '국내 엔터테이너로 가장 먼 해외원정기록' 부문에 도전

  • 2004.03. 대한항공 주최 태국 방콕 팬미팅

  • 2004.04.23. 태국의 명문 골프클럽인 방콕CC에 '베이비복스 홀' 등장

  • 2004.05.28. 베이비복스 대한항공 홍보대사 임명

  • 2004.07. 한국전쟁 태국 참전용사 프렌드 쉽 콘서트

  • 2004.08. 일본 진출 공식 발표

  • 2004.11.06. 제1회 중국-동맹 박람회의 폐막식 공연 한국 대표 출전

  • 2004.12.18. 중국 베이징올림픽체육관 베이비복스-비 조인트 콘서트

5. 팬덤[편집]

팬클럽 명칭은 베이비 엔젤스 (Baby Angels)이다. 1기는 1998년 창설되었으며, 첫 창단식은 2000년 1월 5일 잠실 펜싱 경기장에서 열렸다. 기수는 2004년 6기까지. 걸그룹 자체가 팬덤 규모가 약한 게 특성이었지만 당시 S.E.S.의 팬클럽 <친구>나 핑클의 <FINKY> 팬클럽을 이어 가장 규모 있는 걸그룹 팬덤이었다. 애초에 90년대 걸그룹 중 고유 풍선 색깔이 있는 그룹부터가 이 셋 뿐. 첫 창단식에서는 1000여명의 팬들이 모였었고, 가수들이 함께 모여서 공연하는 콘서트에서도 기본적으로 2~300명씩은 모여 베이비복스를 응원했었다. 5집에는 베이비엔젤스를 위해 윤은혜가 작사한 'To. Angel'이라는 곡도 있다. 그 밖에 팬송은 3집 '사랑해요', 'missing you'로 주로 쓰인다.

파일:kRB5Ato.jpg

베이비 엔젤스 응원 도구 펄핑크 풍선[15]


베이비 엔젤스와 베이비복스가 함께 꾸민 행사는 2000년 팬클럽 1-2기 창단식을 시작으로 2002년 3-4기 창단식, 2003년 8월 여름캠프, 2004년 1월 스키캠프 등이 있다. 멤버들의 생일이 1월~2월에 몰려있어 생일파티와 창단식 팬미팅을 한 번에 하는 경우가 있었다. 본격 비용 절감 베이비복스의 음반은 3~4월달에 나오는 경우가 많았어서, 신곡 공개를 팬미팅 자리에서 하기도 했다.[16] 응원 도구는 풍선이며 프론트 색상은 펄핑크. 해당 색깔은 2004년 베이비복스가 활동을 중단한 뒤 2005년 데뷔한 천상지희 The Grace의 팬덤 샤플리가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사용했고, 베이비복스의 2기인 베이비복스 리브도 풍선 색깔을 그대로 이어받아서 사용했다. 하지만 원조 베이비복스 팬덤은 전혀 찬성하지 않은 부분. 심은진과 간미연이 솔로 음반 활동을 할 때도 펄핑크 색상을 그대로 유지했다.

공식 팬카페는 다음에서 운영되던 <예쁜이 베이비복스를 아세요?>였는데, 2006년경 운영자가 회원을 정리한답시고 그 해에 접속 안한 회원들을 모두 탈퇴시키고, 카페 가입에 나이 제한을 걸어두어 이에 불만을 표하는 회원들을 모조리 탈퇴시켰다. 결국 베이비복스의 대표 팬카페로 운영되오던 이곳은 수만 명에 이르던 회원수가 한순간에 3천명으로 줄어들었고, 카페 자체가 한마디로 망해버렸다(...) 결국 현재는 비공개 카페로 전환되어 과거 가입해둔 팬들만 카페에 접속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 후 임시 카페가 운영되었지만 원조 팬카페 규모만큼 성장하지 못했고, 현재 베이비 엔젤스가 집결해 있는 곳은 2013년 개설된 팬사이트였는데 2017년 문을 닫은 듯하다 Play With Baby V.O.XDC 베이비복스 마이너 갤러리 정도.

베이비복스를 욕하는 집단은 머리수로 압도적인 H.O.T 팬클럽 당시 안티짓의 정도는 광기어렸기에 오히려 젝스키스, 조성모등등의 팬들이 도와주는 상황까지 가기도 했다고 한다.

2017년 2월 경, 베이비복스가 활동할 당시 팬이었던 사람이 당시 팬 생활을 하면서 털어놓은 고충글을 올렸는데 그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링크. 글쓴이는 베이비복스의 데뷔 초창기부터 공방을 다니는 등 꽤 열렬한 팬이었다고 하며, 데뷔 연차가 차면서 여성 팬들이 늘어나긴 했지만, 데뷔 초창기에는 현장에 거의 없던 어린 여성 팬이라 베이비복스 멤버들이 알아보고 챙겨주기까지 했던 골수팬이었다고 한다.

이 당시의 충격이 너무 커서 아직까지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으며, 이 글쓴이 뿐만 아니라 약 20년 가량이 지난 지금도 당시 팬들 중에서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글쓴이의 탈덕 이유가 '언니들이 한국 팬들 보면 테러 당하던 시절이 생각나는 게 보여서'라고 하니까 말 다 한 상황이다.

어느 정도 과장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반박보다 공감하는 내용의 댓글이 훨씬 많은 상황인 데다[17] 링크된 글의 내용 중 대부분이 기사나 영상자료 등으로 남아있기에 증거를 함께 첨부하면서 정리해보았다.

1. 공개 방송마다 수백명의 남자 아이돌 팬들이 돌림 노래로 꺼져라, 혹은 입에 담기도 힘든 인신공격성 멘트를 외쳤고 사실이었다.

실제 공개방송 무대에도 있었던 꺼져라 테러

2. 베이비복스 출근길에는 본인이 좋아하는 남자 아이돌의 스케줄이 없어도 찾아와서 음란 사진, 면도칼 등으로 협박. 이 중에는 죽으라는 협박 문서와 혈서는 일상다반사였다. 특히 베이비복스 멤버들한테 악수를 청하다가 면도칼을 집어넣어서 손을 다치게 하는 일도 있었다.
- 당시 신문 보도로도 나왔던 면도칼 테러

3. 베이비복스 숙소에 죽은 시체, 고양이 시체를 보내 매니저나 팬들이 치우는 건 자주 있던 일. 대문에는 각종 인신공격 등의 문구가 써있었다. 칼은 종류별로 배송되었다.
- 심은진이 인증하는 고양이 시체 테러, 커터칼 인증

4. 베이비복스 공연에 모두 몰려와서 꺼져라 테러. 최소 300여명 최대 수천명의 극렬한 안티들 앞에서 공연해야 했음. 베이비복스가 무대 나오면 풍선을 밑으로 숨긴다든지, 고개를 단체로 숙인다든지, 공개 방송이든, 콘서트든 꾸준히 계속되던 엽기적인 행각을 벌였다.
- 당시 뉴스 보도자료에서 베이비복스의 언급

5. 어느 날, 출근길에서 또 안티들이 떼거지로 몰려와서 이들을 조롱하고 위협하자 당시 16살이었던 윤은혜는 차에서 한동안 내려오지 않다가, 결국 매니저한테 거의 질질 끌려나오면서 울분을 터뜨리며 오늘은 무대를 서지 않으면 안되냐고 애걸복걸. 그날도 결국 안티들이 무대 위에서 중지 손가락을 올리고, 침묵했음.
- 윤은혜 "베이비복스 시절, 아픈 기억이다... 추억이 없다" 솔직 고백.[18]

6. H.O.T. 팬들의 황산 테러 위협에 결국 베이비복스 멤버들은 팬들한테도 걱정되니까 공개방송 오지 말라고 당부.

7. 자신의 신상까지 올리며 찾아가서 베이비복스를 죽이겠다는 글을 지속적으로 올렸던 안티 팬.
- 당시 베이비복스 측의 협박범 소재 확인 보도자료
베이비 복스 측이 자신들의 협박범으로 지목한 사람은 경북 울산시에 거주하는 C모양. 그는 최근 베이비 복스 측에 간미연 등을 비방하는 글과 테러 위협 메시지를 담은 디스켓에다 자신의 이름과 주소 등이 적힌 편지까지 전달하는 등 대범하게 이들을 협박하기 시작했다는 것.

베이비 복스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수 차례 테러 위협이 있어도 철 없는 학생의 소행이겠거니 하며 그냥 넘겼는데 최근엔 자신의 소재까지 밝히며 '한 번 해보자'는 식으로 나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며 "이들은 베이비 복스가 다시 활동을 시작하자 '간미연 사건'은 자작극이란 소문을 퍼뜨리며 조직적으로 활동을 방해해와 진실을 밝히는 차원에서 경찰에 알렸다"고 말했다.

8. 결국 베이비복스 멤버들은 이런 격동을 함께 겪은 팬에게, "앞으로는 공부 열심히 하고 좋은 기억 못 줘서 미안하다. 우리보다 더 유명한 사람 좋아해"라고 언급.
- 링크 전문 中.


이 외에도 링크 안의 내용이 너무 많아서 모두 정리하지는 못했지만, 가히 충격적인 내용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있다. 거기다 이 글에 대해 반론은 커녕 당시를 기억하는 더 많은 사람들이 나오고 있어서 더욱 충격적인 상황이다.

최근에 이 먹먹문이 화제가 되고 여기저기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한 문희준의 팬이 베이비복스와 그들의 팬을 일본군 위안부에 빗대어서 표현한 댓글이 큰 논란이 되고 있다. 저런 미친년을 봤나 # 해당 팬은 사이트에서 고정 닉을 사용하는 안티성 어그로가 아니라는 게 더 충격적이다. 출처.나이가 몇인데 아직까지 정신못차렸나

5.1. 문희준 극성팬들의 영원한 흑역사, 간미연 살해위협 사건[편집]

가요계 팬덤 역사상 최악의 병크

항목 참고.

6. 사건사고[편집]

항목 참고.

7. 소속사 비화[편집]

뒤에 숨겨진 베이비복스 해체의 진짜 이유.

베이비복스 해체에 대해서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알려진 바와 같이 이하늘의 폭언을 통한 멤버들의 스트레스도 한 몫 한 건 맞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소속사의 불공정한 횡포였다. 사실상 해체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일단 베이비복스의 소속사였던 'DR뮤직'은 직원 열 명 남짓한 규모에 '베이비복스' 한 팀으로 연명하던 중소 기획사였다. 베이비복스가 활동하는 동안 휘성이 몸 담았던 'A4', 'SNAZZY', 'PLT' 등을 줄줄이 데뷔시켰지만 모두 망했어요가 되었고, 베이비복스는 졸지에 회사를 먹여살리는 존재가 되야 했다. 참고로 2000년대 초반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애즈원도 2004년에 이 회사로 이적했지만, 이적해서 발표한 앨범은 홍보도, 뮤직비디오도 없이 이전 앨범과 비교하면 초라한 성적을 내었고, 이후 DR뮤직에 소속된 기간 동안 앨범도 못 내면서 중화권, 동남아 순회만 했다.

물론 회사의 주 수입원으로 활동하는 건 중소 기획사 특성상 어쩔 수 없다 쳐도, 문제는 회사의 기둥이었던 멤버들에게 행해졌던 가혹한 '정산 현황'이었다. 짧게 말해 회사의 소녀가장 노릇은 다하면서 활동 기간 동안 제대로 된 수익을 받지 못했다는 것. 막내였던 윤은혜는 2011년 TV 방송을 통해 "활동 기간 내내 수익이 0원이었다"라고 밝혔고, 2016년 한 인터뷰에서 심은진은 수입도 수입이지만 아직까지 받지 못한 미수금까지 있음을 밝혔다. 심은진 직접 밝힌 베이비복스 탈퇴 진짜 이유. 베이비복스 공식 음반 판매량만 해도 100만장이 넘어가고, 당시 기사를 통해 밝혀진 중국, 태국 등지에서의 수입에 더해 국내 광고 개런티까지 합하면 수십 억에 달했다. 이러한 막대한 수입에 대해 정산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다는 건 굉장히 충격적인 일이다. 90년대 기획사 사장들이 어쨌다더라~ 식의 카더라 정보가 아니라 멤버들이 직접 밝힌 fact라는 것도 소속사와의 금전적인 문제가 얼마나 컸었는지 알 수 있다.

심은진은 "그런 감정들 때문에 베이비복스를 관뒀다. 나 혼자 살아남겠다고 한 것보다는, 여러 가지 상황이 있었다. 못 버틸 만한 상황을 멤버들이 아닌, 소속사에서 만들었다. 아직도 미수금이 있다. 사장님도 괴롭게 하고, 매니저들도 힘들고. 버틸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남들은 건물 몇 채 지은 줄 아는데 우린 받은 게 없었다. 삶도 궁핍해져가고, 상황이 안 좋았다. 이런 사람들과 계속 해나갈 수 있을까 싶었다"고 베이비복스 탈퇴 이유를 밝혔다. - 2016년 9월 27일 헤럴드POP 인터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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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문제 뿐만 아니라 이들이 밤업소 행사를 다닌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시됐고[19], 중국 활동 당시에도 나이트 행사 뛰는 장면이 찍혀 일부 사이트에 조롱조로 올라오기도 했었다. 4집 활동 당시에는 중국 공연과 대한해협 횡단을 위한 제주도에서의 수영 연습, 각종 방송 촬영, 안무 연습까지 하루 수면 시간이 30분 남짓되는 혹사를 당했다. 당대 인기 가수들이 대개 베이비복스와 비슷한 살인적인 스케줄을 보냈다고 반론할 수 있지만, 앞서 말했듯이 정산도 제대로 안하면서 이런 가혹한 스케줄을 제시한 것은 아무리 봐도 소속사의 문제다. 2004년에는 신장 개업한 미용실 사인회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소속사에 대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고, 활동 후반기에는(한창 미아리복스 파문이 일었을 당시) 3류 홈쇼핑 광고까지 떠맡아 하면서 이미지 관리는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는 소속사의 방침에 모두 혀를 내둘렀을 정도. 초창기 메인보컬이었던 이희진은 제대로 된 보컬 트레이닝도 받지 못해 활동 내내 무대불안증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 결국 이후 메인보컬로 교체된 간미연도 독학으로 보컬을 공부했다고 한다. 참고로 윤은혜는 베이비복스 활동 내내 원형탈모에 시달렸었다. 이는 간미연도 마찬가지.

거기다 활동 내내 실력보단 비주얼로 어필하는 섹시 가수라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섹시미를 철회시킨다던' 5집 앨범 'Game Over'가 부진한 반응을 얻자 소속사는 수록곡 '가까이'로 정하고[20] 다시 노골적인 섹스 어필을 표방하려 했으며(가사 내용 "널 위해 준비했어 오늘 내 모든 걸 가져가, 조금 더 가까이 가까이..."), 베이비복스 단독 콘서트에서는 물랑루즈 퍼포먼스를 한답시고 선정적인 란제리 의상을 입고 나와 춤을 춰야 했다. 미성년자 윤은혜를 제외했지만 간미연은 당시 겨우 21살이었다. 당시 기자들에 의해 적나라하게 찍혔던 이희진의 노출 사진은 신문 1면에 보도되어 아직까지 구글링에 잡히는 상황이다. 베이비복스 멤버들은 당시 자신의 모습들을 '로봇'에 비유했고, 본인들의 의사는 단 한 번도 수용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정산 문제만으로도 기획사로서의 기본이 갖춰지지 못한 것을 알 수 있지만, 멤버들 사이에도 균열을 일으키게 한 건 이들의 재계약 시기였다. 심은진은 2016년 인터뷰를 통해 당시를 회상하며 아주 직접적으로 "사장님도 괴롭히고 매니저들도 힘들었다"라고 말했으며, 2010년 강심장에 출연해 밝힌 바로는 심은진이 계약을 포기했을 당시 소속사 사장과 직원들이 "심은진이 리더를 하고 싶어서 언니 둘(이희진, 김이지)의 하차를 요구했다"며 이간질해 멤버들의 사이를 갈라놓았다.[21] 당시 탈퇴보도 자료에서 심은진이 배반하는 것처럼 보도한 것은 덤. 심은진 탈퇴 이후 윤은혜가 탈퇴하는데, 2005년 봄 계약 종료 직전까지도 베이비복스 태국 스케줄을 뛰었었다. 당시 윤은혜는 X맨 등에서 소녀 장사 이미지로 주가가 올라가던 상황이었는데, 계약 종료 끝까지 일해준 윤은혜가 재계약을 포기하자 부친까지 끌어들여 '윤은혜와 부친이 독단적으로 매니지먼트를 하고 싶어하는 입장'이라며 대놓고 쌩깐 것처럼 보도했다. 윤은혜 탈퇴 당시 한 팬의 심경글.

이 모든 일을 겪는 동안 베이비복스 멤버들은 겨우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었다.

7~8년을 이런 양심 없는 양아치 짓을 했지만 소속사 대표 윤등룡 사장은 2007년 2월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해 베이비복스의 해체가 이하늘 때문이라며 항변했고, 물론 이하늘이 해체에 일조한 것이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한들 방송 내내 시종일관 본인이 아빠인 양 행세하기에 이른다. 근데 더 소름끼치는 건 그마저도 '베이비복스'를 울궈먹은 '베이비복스 리브' 홍보차 나온 것이었다. 그 전에도 윤은혜가 '' 등으로 스타덤에 오르자, 스페셜 방송에 나와 자신이 윤은혜를 캐스팅했던 당시를 뿌듯해하며 인터뷰까지 했었다. 계약 종료 당시 심은진은 회사의 압력에 못 이겨 뛰쳐 나갔고, 그런 심은진을 끝까지 언론 플레이를 통해 '배신자'로 만들려 했지만, 그 시기 소속사 사장은 홈페이지에 베이비복스 멤버 다섯 명이 모두 딸 같은 존재라며 말 같지도 않은 실언을 했다.

윤등룡 대표는 '베이비복스'라는 이름을 상표권 등록 신청했지만 다행히도 거절당했다. # 그러나 베이비복스 2기로 꾸준히 우려먹었으며, 3기까지 제작하려고 했으니 베이비복스를 해체 후에도 가만 두지 않고 있다. 베이비복스 2기를 처음 데뷔시킬 당시만 해도 팀명 뒤에 '리브' 자를 붙이고 활동했으나, 1집이 망하자 2집에서 '리브'를 떼고 컴백하는 바람에 현재 음원 사이트에서 원조 베이비복스 노래를 들으려면 '베이비복스 1기'라고 검색해서 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거기다 베이비복스 리브는 원조 베이비복스 노래를 하도 많이 리메이크해서, 방송국에서 가끔 베이비복스 BGM을 틀어줄 때마다 리브 노래가 나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멀쩡한 사람들 인생을 본인 돈벌이에 써먹은 것도 모자라 자신의 사무실과의 계약 관계가 끝났음에도 지속적으로 이들을 이용하는 건 도무지 봐줄 수 없는 부분이다.

또한 베이비복스가 가진 해외에서의 입지를 가지고 국내 여러 가수들을 데려다가 중국 진출에 나섰으나, 역량 따윈 없는 콩가루 기획사답게 모두 말아먹었고, 심지어는 이효리까지 꼬드켜 중국 진출 시킨다고 언플질했으나 이효리 측은 단호하게 거절한 일화도 있다. 베이비복스가 이런 거지 같은 기획사에서 그 정도로 성공한 것은 어쩌면 기적 같은 일이 아니었을지.

DR뮤직은 이후 2011년에 새로운 걸그룹 라니아를 데뷔시키지만, 베이비복스 때와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것은 물론 아예 그보다 더 나쁜 방향으로 가고 있다. 대표적으로 기나긴 공백기와 잦은 멤버 이탈, 멤버 교체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제대로 밝히지 않는 등. 자세한 내용은 라니아 문서로.

8. 트리비아[편집]

  • 원래 팀명은 '베이비복스'가 아니라 '복스'였다. 그래서 1집 초창기 때는 '베이비복스'가 아닌 'V.O.X'로 소개된적이 종종 있었다. 1집 프로모션용 LP를 봐도 팀명이 'V.O.X'로 기재되어 있다.?? 당시 인터뷰를 보면 '베이비'는 1집에서만 쓰는 서브 타이틀이라고 소개했고 '귀엽다, 상큼하다'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었다. 2집 이후에 '베이비'를 떼고 새로운 서브 타이틀을 붙이고 '○○복스'로 컴백할 예정이라는 카더라도 있었다. 하지만 팀명에 대한 계획은 자연스럽게 사라진 듯. 워낙 1, 2집 시절에 사건사고가 많아 팀명 따위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 당시 동료지간이었던 디바와 사이가 실제로 안 좋았다(...) 데뷔 초에는 그럭저럭 별 문제 없이 동료로 지냈던 것으로 보이는데, 99년 디바의 채리나가 탈퇴하고 나서 몇 번 충돌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2002년 KMTV 시상식에서 두 그룹간의 합동 무대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디바의 지니가 베이비복스와 방송을 하고 싶지 않다며 호텔로 잠적하는 일이 벌어져 기사로도 보도됐었다. 이 사건은 기자들의 설레발식 보도로 이 날 두 팀은 충돌이 없었다고 밝혀졌다 이들은 2011년에 되서야 강심장에서 만났는데, 알고 보니 모 방송 녹화 중 간미연이 디바를 보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가 인사를 대충 하는 걸로 오해했고, 비키가 간미연에게 한 소리를 하면서 이후 두 그룹간의 사이가 냉랭해졌던 것이라고. 이 방송에서 비키는 "왜 선배가 리허설하는데 졸아?"라고 말했는데, 알고 보니 베이비복스가 디바보다 2개월 먼저 데뷔한 선배였다는 것이 알려져 모두 멘붕했다. 사실 두 그룹 모두 멤버 교체가 있던 그룹이라 족보가 꼬이는 상황이기도 하고, 데뷔 1-2개월 차이에 선후배를 따지는 것도 애매한 상황이긴 하다. 정황을 볼 때 오해할 만한 상황이었지만, 당시 모 케이블 방송에서 직접적으로 경고까지 했던 디바 쪽이 조금 예민했던 게 아닐지. 어쨌든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준다고 이들은 쿨하게 화해했다(?)[22]

  • 베이비복스는 동생 멤버들이 언니들에게 존댓말을 사용한다. 데뷔 당시 소속사 사장이 여성 그룹끼리는 충돌이 많을 거라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멤버들에게 직접 지시한 사항인데, 이것 때문에 '군대식이다', '언니들이 동생들의 군기를 잡는다'라는 소문이 많았다. 하지만 오히려 멤버들은 존칭을 쓰기 때문에 다툴 일이 없다고 밝혔다. 사실 하도 사람들이 군대식이니 어쩌니 말이 많아서 말을 놓을까도 시도해봤는데, 너무 오랫동안 존칭을 사용해왔기 때문에 어색해져서 포기했다고 한다.[23] 그리고, 1집 때부터 함께 해온 김이지와 이희진은 초창기 때부터 무명 시절부터 고생도 같이 해오고 남다른 사이라 방송에서는 이희진이 김이지한테 존칭을 사용하지만 사석에서는 말을 튼 것으로 보인다.

  • 멤버 전원이 예능감이 그닥이다(...) 물론 이희진이 희자 캐릭터로 팬들 사이에서 반응이 좋았으나, 정작 본인은 방송 울렁증이 있어서 예능은 주로 심은진, 간미연이 출연했다. 하지만 딱히 재미는(...) 후에 윤은혜가 X맨을 계기로 예능과 연기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았다만 그건 해체 후였다.

  • 베이비복스의 준말로 사용되는 '베복'은 팬덤 내에서 금지어다. 사실 그냥 줄임말인데 왜 금지어인지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당장 다음 사이트에서 과거 '베복' 키워드로 검색할 경우 심각한 안티성 글이 90% 이상이었다. 워낙 안티 세력이 많았던 그룹이라 잠깐 검색해봐도 왜 금지어로 지정한 것인지 알 정도. 그래서 멤버 본인들도 '베복'이라고 줄여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과거 방송에서 모 출연자가 '베복'이라고 불렀을 때 안티용 용어라고 정정해준 적도 있었다. 요즘 들어서는 팬덤 내에서도 '베복' 용어에 대해 그닥 개의치 않지만, 여전히 '베복'보다는 차라리 '복스'라고 줄여 부르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팝 계의 비슷한 경우로는 머라이어 캐리 팬들이 '멀캐'로 줄여 부르는 걸 싫어하는 경우와 비슷하다.

8.1. 음원 사이트에서 베이비복스를 검색할 때 주의점[편집]

본 문서의 다른 문단에도 언급된 바와 같이, 소속사 DR뮤직은 베이비복스의 후속 그룹인 '베이비복스 리브'를 데뷔시킨 후 2집에서 베이비복스 리브의 이름을 베이비복스로 바꾸었다. 그와 함께 음원 사이트에서 기존 베이비복스의 가수명을 '베이비복스 1기'로 바꾸어버렸다. 그래서 2017년 현재까지도 베이비복스로 검색하면 베이비복스 리브의 음원이 나오고, 원조 베이비복스의 음반을 찾으려면 베이비복스 1기로 검색해야 한다. 가수명으로 검색할 때는 자동완성 기능이 있으므로 상관 없지만, 곡명으로 검색할 때는 혼동의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일부 방송에서 원조 베이비복스가 나올 때 베이비복스 리브의 리메이크 음원을 내보내는 사고가 있었다.
현재는 원조 (1기) 베이비복스는 "Baby V.O.X"라고 표기 되어 있으니 참고.

9. Discography[편집]

발매일

앨범

활동곡

판매량

방송 차트

1997.7.00

EQUALIZEHER

머리하는 날, 남자에게

50,000장(추정치)

47위[24]

1998.9.15

BABY VOX II

야야야, Change

206,221장

3위[25]

1999.7.21

Come Come Come Baby

Get Up, Killer, Missing You

218,946장

1위[26]

2000.5.15

Why

Why, 배신

155,864장(2000년 전체 음반 판매량 60위)

1위[27]

2001.6.4

Boyish Story

Game Over, 인형

91,014장(2001년 전체 음반 판매량 75위)

4위[28]

2002.4.24

Special Album

우연, Go[29]

240,349장(2002년 전체 음반 판매량 21위)

1위[30]

2003.4.3

DEVOTION

나 어떡해, 바램

84,612장(2003년 전체 음반 판매량 32위)

1위[31]

2004.4.16

Ride West

Xcstasy, Play Remix

32,863장(2004년 전체 음반 판매량 52위)

TAKE 7[32]

9.1. 기타 앨범[편집]

  • 해외에서 발매한 라이센스 형식의 음반은 추가하지 않았음.

발매일

형태

앨범명

비고

1999.1.29

한정판 앨범

Net CD

[33]

2000.3.22

VCD

Show Me Lovable Girls

[34]

2000.10.1

VCD

2000 Collection

[35]

2001.1.17

DVD

2000 Collection

[36]

2002

CD

부산 아시안 게임 주제가

[37]

2002.12.14

헌정앨범

전영록 30주년 헌정 앨범 <전설>

[38]

2003.3.12

EP

Go - 1st Mini Album in Japan

[39]

2002.9.16

VCD

Baby V.O.X Concert in Seoul

[40]

2007.4.15

베스트

BEST ALBUM

[41]

10. 수상 경력[편집]

  • 1998년 SBS 가요대전 여자 신인상

  • 1998년 SBS 하이원 서울가요대상 인기 가수상

  • 1999년 SBS 서울가요대상 본상

  • 1999년 SBS 가요대전 10대 가수상

  • 1999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 30세 미만의 국민이 뽑은 10대 가수상

  • 1999년 KMTV 가요대전 본상

  • 1999년 KBS 가요대상 본상

  • 2000년 SBS 가요대전 프로듀서상

  • 2000년 SBS 서울가요대상 인기상

  • 2000년 KBS 가요대상 본상

  • 2000년 제7회 대한민국 연예예술대상 신세대중창가요부문 수상

  • 2000년 itv 한국최고인기연예대상 10대가수부문 본상

  • 2001년 KBS 가요대상 본상

  • 2001년 (주) 모델라인 주최 가수부문 '베스트 드레서' 수상

  • 2001년 제1회 애견문화인의 상

  • 2001년 itv 가요대상 청소년 부문 인기상

  • 2002년 SBS 가요대전 본상

  • 2002년 KBS 가요대상 본상

  • 2002년 MBC 골든디스크 인기 가수상

  • 2002년 SBS 서울가요대상 한류 공로상

  • 2002년 KMTV 코리안 뮤직 어워드 공로상

  • 2003년 SBS 가요대전 본상

  • 2003년 KBS 가요대상 본상

  • 2003년 SBS 서울가요대상 본상

  • 2003년 KMTV 코리안 뮤직 어워드 올해의 가수상

  • 2004년 태국 채널 V 어워드 '아시아 특별상'

  • 2004년 SBS 서울가요대상 한류공로상

10.1. 가요 프로그램 1위[편집]

연도

곡명

수상

비고

1999년

Get Up

8월 3일 KBS 뮤직뱅크 MVP

-

8월 29일 SBS 인기가요 1위

-

1999년

Killer

10월 5일 KBS 뮤직뱅크 MVP

-

10월 31일 SBS 인기가요 1위

-

2000년

Why

6월 20일 KBS 뮤직뱅크 MVP

-

2002년

우연

6월 9일 SBS 인기가요 1위

-

6월 16일 SBS 인기가요 1위

2주 연속

2003년

나 어떡해

6월 1일 SBS 인기가요 뮤티즌송

-

11. 광고 모델 경력[편집]

  • 1999년 앞서가는 패션신도시 '르네시떼'

  • 1999년 햄버거 '하디스'

  • 2000년 롯데 아이스크림 '와'

  • 2000년 거짓말 탐지기 '트러스터'

  • 2000년 LG Logix

  • 2000년 인터넷 쇼핑몰 (한국 쇼핑 관광대사)

  • 2002년 유닉스 이온 헤어드라이기 (1년, 2억)

  • 2002년 그리에이트 셀렉티브 염모제 전속 모델 (1년)

  • 2002년 엘지 텔레콤 (윤은혜 & 은지원) (2억)

  • 2002년 점프밀라노 (6개월 단발 1억)

  • 2002년 적십자 헌혈 홍보

  • 2002년 전국 동시 지방선거 광고

  • 2002년 에드원 청바지 (6개월 단발 1억)

  • 2003년 Plus Minus (심은진 단독)

  • 2003년 산도물산 A.S.A.P (계약금 2억)

  • 2003년 파이온텍 (3년, 2억 5천만원)

  • 2004년 디카 따우니 (Ddouni) 지면

  • 2004년 FOX ZONE

  • 2004년 안산 스타맥스 타워

11.1. 해외 CF[편집]

  • 2000년 중국 기업 北京背背佳科技發展有限公司

  • 2000년 중국 스포츠웨어 업체 뻬뻬지아 CF

  • 2000년 중국 국영기업체 CF

  • 2002년 간미연 과일나라 중국 지면 모델 (1년, 2억 5천만원)

  • 2003년 중국 핸드폰 INNO 90 CF

  • 2003년 김이지 중국 SAMSUNG V4 Camera CF (3억 5천만원)


이외 추가바람.

12. 노래방 수록 목록[편집]

항목 참고.

[1] 심은진을 제외한 4명은 이미 2004년 10월에 계약이 종료된 상태였지만, 2005년까지 DR뮤직 측에서 매니지먼트를 했다.[2] 1998년 창설되었다. 기수는 6기까지.[3] 이 로고는 2002년에 열린 공모전에서 뽑힌 작품이다.[4] 방송에서 흔히 부른 베이비복스의 소개 멘트. 가요계의 요정들은 많았지만, 여전사는 베이비복스가 유일무이했다. 그러나 본인들은 썩 달갑지만은 않았다고[5] 사실 이들이 활동기간에 겪었던 풍파를 생각해보면 여전사가 되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들 투성이였다. 아래 항목 참조.[6] 매 앨범마다 상위권에 오르며 꾸준한 인기를 누렸고, 총 5곡의 1위곡과 1위 후보에만 머물렀던 곡들 예) why, gameover[7] 국내에서는 1군급 그룹들(보이그룹: H.O.T.·젝스키스, 걸그룹: S.E.S.·핑클)과 함께 1군 그룹이었다는 점과, 한류의 중심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실제로 두 그룹은 초창기 중국 활동을 같이 했으며, 멤버들간의 친분도 상당히 두텁다. 두 그룹의 상징색(풍선색)이 분홍색인 것도 공통점.[8] 자세한 이유는 아래 소속사 비화 항목을 참고.[9] 이 중 간미연은 가수 활동과 병행하고 있지만, 최근 드라마 배우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10] 사실 베이비복스 곡들이 안무도 잘 구성되어 있고, 춤 대형도 가장 보기 좋다는 5인조 그룹이라서 유독 여학생들 장기자랑 시간에 인기가 많았었다. 심지어 간미연이 안티로 고생했던 시기에도 장기자랑 때는 서로 간미연 파트를 하겠다고 싸움판을 벌이는 것이 일상다반사였다고 한다. 욕할 땐 언제고?[11] 중소기업 기적의 첫 시작으로 볼 수도 있다. 90년대 후반, SM과 DSP, YG등 메이저 급 기획사들이 생겨나고 1세대 아이돌 판이 생겨나면서부터 베이비복스같은 경우처럼 영세한 작은 기획사에서 대중적으로 성공한 그룹을 만들어낸 경우가 거의 처음이다. 비슷한 경우로는 NRG가 있었으나 이들도 DR뮤직만큼 작은 규모는 아니었다.[12] 물론, 조금 거슬러 올라가보면 '바람아 멈추어다오'를 불렀던 이지연이 있긴 하다.[13] 베이비복스의 리즈 시절인 3~5집 앨범 프로듀서를 김형석이 맡았으며, 이 때문에 김형석과 친분이 있는 김조한과 힙합 그룹 엑스틴 등이 앨범 작업에 참여했다. 이 때문에 보컬은 물론 랩 퀄리티도 좋았다.[14] 2002년 첫 신설된 '한류 공로상' 부문의 첫 수상자가 베이비복스고,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2004년에도 베이비복스가 수상했다.[15] 비슷한 색상인 NRG 팬덤과의 구분을 위해 5.5집부터는 공식 로고가 담긴 풍선을 사용.[16] '우연'의 첫 무대 역시 팬미팅 현장에서 선보였다.[17] 심지어 조금의 반박성 댓글이라도 보이면 (EX. 나도 그 당시 살았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 당장 실드로 몰리고 있다.[18] 다만 가운데 손가락을 올린 안티 짓은 핑클도 당한 적이 있었다고 옥주현이 직접 방송에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19] 당시에는 인기 연예인이 진짜 출연하는 것처럼 배포되는 가짜 찌라시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들이 밤업소 행사를 돌았다는 게 100% 확실한 건 아니지만, 베이비복스 팬들 사이에서가 아닌 일반 대중들(타 팬들) 사이에서 꾸준히 증언이 나왔다는 점이 밤업소 행사설에 힘을 가했다. 밤업소 특성상 무대 자료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홍보 포스터 하나만 보고 단정지을 순 없지만, 설령 무대에 서지 않았다 해도 아이돌 걸그룹의 상표가 무단 도용되는 걸 꾸준히 방치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문제의 소지가 있다.[20] 팬클럽의 공개 성명으로 후속곡은 '인형'이 되었다.[21] 심은진은 그래도 더 잘 될 수 있는 이들을 괜히 선동하고 싶지 않아서 탈퇴 고민 당시에 동생들에게만 의견을 잠시 내비췄을 뿐, 멤버들에게도 탈퇴를 결정한 당일날 직접 만나 얘기했는데, 이 점을 이용해서 소속사는 이간질을 한 것이다.[22] 2003년 초 한 방송에서 베이비복스의 이름을 내걸고 복스 멤버들이 서빙을 하는 기부금 마련 자선행사(일일주점)를 열었는데 당시 참석한 많은 연예인 중에 채리나도 있었다.[23] 사실 군대식인 것도 말이 안 되는데, 군대에서는 원래 서열이 있기 때문에 아랫사람에게는 말을 놓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냥 트집잡기나 다름없다.[24] 1997년 11월 마지막 주 SBS TV가요 20.[25] 1998년 11월 첫째주 SBS 인기가요[26] 뮤직뱅크(8월 첫주, 10월 첫주), 인기가요 1위(8월 마지막주, 10월 마지막 주) 수상.[27] 6월 첫주 뮤직뱅크 1위.[28] 2001년 6월 셋째주 뮤직뱅크.[29] 정식 활동곡은 아니다. 그리고 간미연이 솔로 1집에 솔로 버전으로 다시 수록했다.[30] 2002년 6월 2~3주 SBS 인기가요 1위.[31] 2003년 6월 첫주 SBS 인기가요 뮤티즌송.[32] 2004년 5월 둘째주 SBS 인기가요, MBC에서는 20~30위권을 유지.[33] 2집 'BABY VOXⅡ' 발매 당시 보너스 영상으로 수록되려던 게 무산되고 그 영상들을 따로 추려서 발매한 보너스 형식의 앨범이다. 1집, 2집 수록곡도 반반씩 수록.[34] 2~3집 뮤직비디오와 CF 촬영 현장, 활동 영상 등을 담은 VCD.[35] 4집 활동 위주로 제작된 VCD. 스킨스쿠버 하는 모습도 들어가있다. 'Show Me Lovable Girls'와 비슷한 형태의 영상집.[36] 동명의 VCD를 DVD로 발매.[37] 부산 아시안 게임 주제가로 녹음한 박근태 작곡의 'We Are'이 수록된 프로모션 앨범. 이 음원은 정식 발매된 적 없지만 프로모션 앨범으로만 배포되었다. 정식 발매 음반도 아니고 프로모션반이 있다는 존재만 알려졌다.[38] 4번 트랙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를 커버.[39] 일본 만화 '플라토닉 체인'에 타이업 됐던 2002년 스페셜 앨범 수록곡 'Go'를 일본어로 번안하여 발매한 일본 미니앨범. 일본에서 정식으로 발매한 유일한 앨범이다. AVEX 레이블에서 발매되었다고 하는데 확인불가.[40] 8월 15일에 있었던 단독 콘서트를 영상화해서 발매. 2CD.[41] 태국, 일본 등지에서만 발매된 베스트 앨범. 원래 한국에서도 발매될 예정이었는데, 예약 주문까지 다 받아놓은 상태에서 발매가 취소되며 한국 팬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겼다. 2012년에는 이 베스트 앨범을 다시 내달라는 팬들의 서명 운동도 있었다. 이 베스트 앨범은 CD+DVD+포토북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데, CD 수록곡은 히트곡 순이 아니고 소속사측에서 정한 엉뚱한 트랙리스트라 딱히 베스트라는 느낌은 안 든다. 그러나 2004년에 녹음된 미발표 곡 'FIRE'(심은진&플로스피 듀엣곡)가 수록되어 있고, DVD에는 뮤직비디오 전곡이 고화질로 수록되어 있어 팬이라면 만족할 만한 구성. 포토북도 미공개 사진이 다수 수록되어있다고. 다만 해외에서만 나온 거기도 하고 물량도 없어 국내에도 소장한 팬이 몇 없다. 자세한 사양은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