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트 판마르베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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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트 판마르베이크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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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코스민 올러로이우
(2014~2015)

베르트 판마르베이크
(2015~2017 )

에드가르도 바우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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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엔제 포스테코글루
(2013~2017)

베르트 판마르베이크
(2018)

그레이엄 아놀드
(2018~)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역대 감독

마티아스 잠머
(2000~2004)

베르트 판마르베이크
(2004~2006)

위르겐 뢰버
(2006~2007)



네덜란드의 축구감독

파일:attachment/Marwijk02.jpg

이름

베르트 판마르베이크
Bert van Marwijk

본명

람베르튀스 판마르베이크[1]
Lambertus van Marwijk

출생

1952년 5월 19일 (66세) /
네덜란드 오버레이셜주 데벤터르시

국적

네덜란드 파일:네덜란드 국기.png

신체

181cm

직업

축구선수(미드필더 / 은퇴)
축구감독

소속

선수

고 어헤드 이글스(1969~1975)
AZ 알크마르(1975~1978)
MVV 마스트리흐트(1978~1986)
포르튀나 시타르트(1986~1987)
어센트(1987~1988)

감독

포르튀나 시타르트(1998~2000)
페예노르트 로테르담(2000~2004)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2004~2006)
페예노르트 로테르담(2007~2008)
네덜란드 대표팀(2008~2012)
함부르크 SV(2013~2014)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2015~2017)
호주 대표팀(2018)

국가대표

1경기(네덜란드 / 1975)

FIFA 월드컵 준우승 감독

도메네크(2006)(2010)사베야(2014)

1. 개요2. 선수 시절3. 지도자
3.1.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후보3.2.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3.3.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4. 전술5. 여담

1. 개요[편집]

네덜란드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8년호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감독 시절 송종국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가,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자국 네덜란드 대표팀을 맡아서 준우승으로 이끌며 스타가 되었다. 이후 2014년 대한민국 대표팀 차기 감독 1순위자로 대한축구협회와 협상을 했으나, 여러가지 조건 차이로 인해 결렬되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예선 때는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 감독을 맡아서 사우디 대표팀을 본선으로 진출시켰고, 계약이 끝나자 바로 호주 대표팀 감독을 맡아서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 나섰지만 투지 넘치는 경기 끝에 1무 2패를 기록하여 아쉽게 16강행이 좌절되며 감독직을 마쳤다.

2. 선수 시절[편집]

파일:attachment/베르트 판 마르베이크/K-20140807-069226.jpg
1971년 고향팀 고어헤드 이글스에서 뛸 당시의 판마르베이크

1969년 고향팀 고 어헤드 이글스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6시즌 동안 146경기 16골을 기록한 후 1975년 AZ 알크마르로 이적하였으며 3시즌 동안 69경기 20골을 기록했다. 이후 MVV 마스트리흐트에서 8시즌 동안 225경기 11골, 포르튀나 시타르트에서 1시즌을 뛰며 11경기 1골을 기록했다. 마지막 시즌은 벨기에 어센트에서 17경기를 소화했고 이후 축구 선수에서 은퇴하였다.

국가대표로는 1975년 유고슬라비아와의 친선 경기에 출전해 네덜란드 국가대표 선수로는 딱 1경기에 출장하였다.

선수로서는 그다지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명장의 반열에 올랐다. 참고로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을 했었던 조 본프레레와도 인연이 있는데 MVV 시절 선배였고 이 팀의 감독을 하기도 하면서 사제지간이기도 하다.

3. 지도자[편집]

MVV 마스트리흐트에 소속되어 있던 1982년 현역 선수이면서 같은 팀의 유소년팀 코치를 맡아 플레잉 코치로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 1986년 포르튀나 시타르트로 이적한 뒤에도 현역 선수 생활을 계속하면서 아마추어 클럽인 SV 메일센의 유소년 팀 감독을 겸임했다. 감독 업무에 전념하기 위해 1988년에 선수 생활을 은퇴한 뒤 국내 아마추어 클럽의 감독으로 3개 팀을 떠돌아 다녔다.

1998년 포르튀나 시타르트의 감독에 취임하여 마르크 판 봄멜 등 장래 네덜란드 국가대표 선수를 길러냈고, 1999년 KNVB컵 결승전까지 팀을 이끈 지도력을 인정받아 2000년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의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리그에서는 우승을 하지 못했으나, 2002년 욘 달 토마손, 피에르 반 호이동크 등을 이끌고 UEFA컵(UEFA 유로파 리그의 전신) 우승을 차지하였다.

2004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나 2006년 중반에 사퇴하였다. 2007년 다시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의 감독을 맡아 KNVB컵을 차지하였다. 이 점을 인정받아 2008년 8월부터 마르코 판 바스턴의 후임으로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다. 이 과정에서 컵 대회 외에는 딱히 성적이 없고, 상위 수준의 감독 경험이 없는 판마르베이크를 국대 감독으로 선임하는 것이 불안하다는 반응도 있었으나 토너먼트에 강하다는 점이 크게 어필되었다고 한다.

월드컵 유럽 예선을 전승으로 돌파한 판마르베이크는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네덜란드를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당시 결승 상대가 세계 최강 스페인이었다는 점이 불운이라면 불운이었다.[2] 그러나 유로 2012에서는 사위인 마르크 판 봄멜을 중용한다는 비판을 받는 등 선수단 장악에 실패, 조별 리그를 3패로 마쳐 계약 기간은 2016년까지 남아 있었으나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6월 27일 사임하였다. 사위인 판 봄멜도 이 대회를 마지막으로 국가대표팀을 떠났다.

2013년 9월 함부르크 SV의 감독으로 취임하였으나 7연패를 당하는 등 부진하여 순위가 강등권으로 추락하기까지 했고, 성적 부진으로 2014년 2월 15일 해임되었다. 함부르크 SV의 경우 토르스텐 핑크 감독이 2013-2014시즌 초반 1승 1무 3패로 부진하여 경질당했고 이로 인해 시즌 도중 부임한 것이었는데 프리 시즌에 자기만의 팀을 만들 시간을 갖지 못하고 시즌 도중에 갑작스레 부임했기 때문에 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경기를 치뤄야했고, 당연히 자신의 전술을 팀에 제대로 녹여 낼 수가 없었다는 점에서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

함부르크는 아르네센 단장의 잘못된 선수 영입으로 이미 2011-2012 시즌에도 강등권에서 기웃거릴 정도였고 시즌 막판 손흥민의 맹활약으로 아슬아슬하게 강등권을 탈출했었다. 2012-2013 시즌에는 손흥민의 포텐이 폭발하면서 잠시 성적이 상승하기는 했지만 손흥민이 이적하자마자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함부르크는 판마르베이크가 상황을 반전시켜주길 기대했겠지만 그 또한 속수무책이었다.

다만 유로 2012의 부진과 함부르크의 실패가 연속적이다보니 실패가 더 크게 부각된 점이 있는 듯하다.

3.1.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후보[편집]

2014년 8월 당시에 무직으로, 홍명보 감독이 사퇴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차기 1순위 감독으로 낙점하여 협상을 진행했었다. 마르베이크 감독은 대한민국행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가 국대 감독이 된다면 거스 히딩크 이후로 움베르투 코엘류(포르투갈인)을 제외하고 모두 네덜란드인 감독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될 터였다.

당시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았으나, 결국 협상이 완전히 결렬되었다. 추측되는 사유로는 연봉 문제와 계약기간, 거주 문제라고 한다. 계약기간에 있어서 판마르베이크는 2+2 계약을 원했지만 축구협회에서는 4년 계약을 요구했다. 사실 계약기간이나 연봉 문제야 충분히 협상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거주 문제는 축협입장에선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었다. 재택근무 알바하면서 36억이나 받아가면 그게 도둑놈이지, 뭐여? 판마르베이크는 사실상 일부기간은 대한민국에 머물지 않을 것이라 밝혔는데, 대한민국에 머물지 않는다면 유럽파 선수들의 점검은 몰라도 그 기간 동안 K리그 출신 국내파는 전혀 관리할 수가 없다. 이런 부분은 당연히 있을 수 없는 일. 이로 인해 판마르베이크에게는 재택근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2015년 9월, 협상을 맡았던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협상 결렬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일부 공개했다. 당시 판마르베이크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요 선수들이 유럽에서 활동 중이므로 자신의 주 활동 무대는 유럽이라고 생각했으며, '대한민국에서 활동하지 않기 때문에 세금을 낼 수 없다.'라면서 '네덜란드에서의 소득세대한축구협회에서 부담하라.'는 요구를 했다고 한다.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대한민국에 오지도 않고, 세금 조차도 내지 않겠다는 판마르베이크의 심보에 의문을 품었고,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협상을 바로 결렬시켰다고 한다. 기사내용.

3.2.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편집]

2015년 8월 26일에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게 되었다. 1년 단기 계약인 점을 생각하면 베르트 판마르베이크나 사우디나 서로 길게 갈 생각은 없는 듯 했으나 2016년 말에 들어서도 여전히 사우디 감독으로 계약을 연장했다. 이후 상위권에 랭크하며 순항하다가 예선 막바지에 아랍에미리트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일격을 맞으며 위기가 찾아왔으나 홈에서 열린 최종전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 1-0으로 승리, 10전 6승 1무 3패 승점 19점으로 B조 2위를 달성하며 12년만에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본선 무대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2017년 9월, 사우디아라비아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애초에 2015년 여름에 처음 사우디와 계약을 할 때 맺은 계약은 1년짜리였는데 계약이 끝날 때쯤 되자 (최종예선 시작하기 직전) 1년 재계약을 맺었고, 또 1년이 지났지만 이번에는 재계약 협상에서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물러났다. 사우디가 감당 못할 정도면 연봉을 어지간히 세게 불렀나보다. 후임으로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에드하르도 바우사 감독이 선임되었다. 그리고 사우디는 멸망했다

2016년 말부터 슈틸리케호가 부진하자 차라리 판마르베이크 감독을 조건을 협상해서라도 데려왔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었다. 그리고 판 마르바이크가 이끄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아시아 최종예선 B조 2위를 차지하여 12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다만, 애초에 소득세 문제가 마르베이크를 포기한 가장 큰 이유였던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계약 기간에서의 의견차와 재택근무는 그렇다 쳐도 세금 납부에 관련해서 민감한 현 시국상 납세의 의무까지도 못 하겠다는 사람을 데려왔으면 협회가 호구다. 대한민국 내 활동에 대한 소득세는 협회에서 함께 부담해 주는 것이 일종의 관례이지만, 현지에서 재택근무로 활동하는 것에 대해선 소득세를 협회가 납부해 줄 의무가 없고 본인이 내야하는 것이 맞기 때문이다. 문제는 판마르베이크 외에 다른 감독도 많은데 왜 카타르 리그에서도 실패울리 슈틸리케를 선택했느냐는 것이다.

3.3.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편집]

월드컵까지 단기계약으로 하게 되었다. 대회 이후 그레이엄 아놀드체제로 전환한다고 한다. 3월 23일 노르웨이전에서는 4:1로 역전패했다. 3월 27일 콜롬비아전에서는 0:0으로 무재배를 기록했다. 월드컵 직전 6월 1일오스트리아에서 킥오프한 체코전은 예상을 깨고 4:0으로 승리했다. 이후 6월 10일 그라파마 아레나에서 열린 헝가리전은 자책골을 한개씩 먹으면서 2:1로 이겼다.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서 프랑스라는 우승후보와 첫 경기를 벌였는데, 아쉽게 1:2로 석패했다. 경기 내용이 매우 좋았으며, 허용한 두 골도 한 골은 VAR에 의해 판정이 뒤집히며 PK를 허용하고 한 골은 폴 포그바의 슈팅이 골라인을 정말 아슬아슬하게 넘어간 것이 골라인 판독기에 잡히며 골로 인정된 것. [3] 즉, 새로 도입된 이 기술들만 아니었으면 어떻게든 행운의 승점을 가져갈 수도 있었으나 정확한 판정이 내려지면서 패배로 귀결되었다. 하지만 호주의 경기력에는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보냈다. 덴마크전에서도 선전하면서 1:1로 비겼는데 이길 수도 있다는 평도 있어서 아쉬운 경기였다. 페루전에서는 0:2로 패배해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4. 전술[편집]

4-2-3-1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있으며, 2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수비적인 성향의 선수들로 세우고 공격형 미드필더에게 공격의 창조성을 부여하는 축구를 선호한다. 따라서 이와 같은 성향상 "선 수비-후 역습"의 수비 축구를 지향한다.

1선 공격수부터 적극적인 압박을 주문하는등 활동량과 체력을 중요시한다는 점도 특징. 팀의 조직력을 중요시하며, 선수의 이름값보다 실력을 더 중요하게 보는 편이라고 한다.

"승리를 위해 '추한' 축구도 마다하지 않겠다" 라는 그의 발언에서도 알 수 있듯 네덜란드 축구 특유의 토탈 사커에 집착하기 보다는 '재미없더라도 일단 이기고 보는' 실리 축구를 지향한다. 네덜란드의 축구 영웅 요한 크루이프는 "판 마르바이크 감독의 축구는 지루하고 따분하다" 라고 비판하는 등 네덜란드 내에서는 판 마르바이크식 축구를 비판하는 여론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 때문에 단기전인 토너먼트에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나, 기복이 심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기본적으로 덕장으로서 선수단 장악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심지어 유로 2012에서 참담한 실적을 낸 이후 로번 등의 선수들과 빚은 마찰이 3패로 조별예선 탈락이란 결과를 낳았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 여기에 더해 전술적 차원에서의 임기응변 및 대처 능력이 상당히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남아공 월드컵 당시에는 프랑크 데 부어 수석코치의 전술적 역량/선수단 장악 능력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알려져 있는데, 프랑크 데 부어AFC 아약스의 감독으로 옮긴 후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이 보여준 모습을 고려하면 이런 평가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5. 여담[편집]

전 문단에서 언급했다시피 축구 선수 마르크 판 보멀의 장인이다. 과거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의 감독 시절에 송종국이천수를 영입하기도 했으며, 출전 기회도 많이 주며 중용하는 등 상당히 아꼈다고 한다.

가족을 아주 중요시 여긴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을 할 때 대한민국에서만 감독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직 협상이 결렬되는 원인이 되었다.

[1] 한편 영어를 제외한 로망어게르만어권 인명의 전치사나 관사는, 발음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은 채 뒤 요소와 붙여 적는다.[2] 그러나 네덜란드전승준의 성적을 거두는 등 호성적을 거두었으며 결승전에서도 0-0으로 연장까지 가는 등 잘 싸웠으나 석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3] 이 골은 이후 아지즈 베히즈의 자책골로 정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