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푸어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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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17년의 밸푸어 선언
1.1. 개요1.2. 배경1.3. 진행1.4. 반응1.5. 문제1.6. 기타
2. 1926년의 밸푸어 선언

1. 1917년의 밸푸어 선언[편집]

1.1. 개요[편집]

Balfour Declaration. 1917년 영국의 외무 장관 아서 밸푸어가 발표한 외교 선언이다. 팔레스타인 지방에 유대인의 국가 수립을 약속한 이 선언은 근현대 중동의 역사를 뒤흔든다.

1.2. 배경[편집]


프랑스 혁명 이후 유대인들에게도 시민으로의 권리가 부여됨에 따라,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고 점차 유럽 시민 사회에 동화되고 있었다. 하지만 1890년대 프랑스를 혼돈으로 몰아넣은 드레퓌스 사건 당시 유럽 사회가 보여준 반유대주의는 많은 유대인들에게 충격을 안겨준다. 빈 출신의 유대계 오스트리아 언론인 테오도르 헤르츨 역시 그 중 한 사람으로 1896년 그는 <유대 국가>(Der Judenstaat)라는 저서에서 팔레스타인 지방에 유대인들의 민족 국가를 재건할 것을 역설한다. 그의 주장은 이듬해인 1897년 시온주의자 세계대회(ZO)의 수립으로 점차 구체적인 모양새를 갖추어 나간다.

유대인들의 영향력이 힘을 발휘해 1903년 헤르츨은 영국으로부터 '팔레스타인 대신 우간다에 유대인들의 독립 국가를 세우는 것은 어떻느냐'라는 제안을 받고 헤르츨 본인도 비교적 긍정적으로 검토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 1904년 헤르츨은 심장병으로 사망한다. 그의 뒤를 이어 ZO의 수장이 된 인물은 저명한 화학자이기도 했던 하임 바이츠만. 하임 바이츠만은 '오로지 조상들이 살았던 팔레스타인만이 우리들의 터전이 될 수 있다.'라며 영국의 제안을 거절한다.[1]

1.3. 진행[편집]

이러한 와중이었던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영국은 팔레스타인을 지배하고 있던 오스만 제국과 적성국이 되면서 바이츠만의 주장이 탄력을 받았고 여기에 힘을 보탠 것은 열성 시온주의자였던 당시 영국 내무 장관 허버트 새뮤얼 경.[2] 이어서 1916년 영국은 동맹국이었던 프랑스, 러시아 제국과 '전쟁 이후 오스만 제국의 영토를 분할한다'는 내용의 비밀 협정을 체결한다. 전선에서 독일한테 밀리고 있었으면서 김치국부터 마시네요 이 비밀 협정에 의거하여 팔레스타인 일대는 영국의 관할로 들어오는 것이 계획되면서 밸푸어 선언은 점차 현실화되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당시 영국의 수상을 역임하고 있던 로이드 조지는 팔레스타인 내 유대인들의 국가 수립을 지지하는 선언을 세계에 발표하는 것에 대해 계속해서 망설였는데, 이유는 크게 다음과 같았다.

1. 1917년 당시에도 전선은 여전히 고착화된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유대인들의 국가 수립을 지지한다고 군사적으로 빠른 상황 반전이 있을 것인가?
2. 팔레스타인은 영국의 목숨줄이었던 수에즈 운하와 지척이다. 팔레스타인에 유대인들의 국가가 세워진다면 수에즈 운하에 대한 영국의 지배력이 떨어지지는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식민지 인도에 대한 지배권 역시 흔들린다.


이에 대한 시온주의자들에 반박은 다음과 같았다.

1. 영국의 유대인 국가 수립 지지는 러시아[3], 독일, 미국 내에서 유대인들을 결집하는 효과를 불러올 것이고, 이는 전쟁 수행에 무시할 수 없는 이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2. 어차피 지금 팔레스타인을 오스만 제국이 지배하고 있는데, 오스만 제국에서 유대인으로 바뀐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여기에 외무장관 아서 밸푸어가 총대를 매고 적극적으로 시온주의자들을 지지하면서 밸푸어 선언은 급진전을 타고, 마침내 1917년 11월 2일 아서 밸푸어의 명의로 당시 영국 내 유대인들의 대표자 격이었던 월터 로스차일드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가 공식적으로 발표된다.

로스차일드 경에게 (Dear Lord Rothschild),

국왕 폐하의 정부를 대신하여, 시온주의자들의 염원이 담긴 다음 지지 선언문이 내각에 제출되고 승인을 받았다는 사실을 당신께 전하게 되어 기쁩니다. (I have much pleasure in conveying to you, on behalf of His Majesty's Government, the following declaration of sympathy with Jewish Zionist aspirations which has been submitted to, and approved by, the Cabinet.)

본 정부는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민족적 고향을 세우는 것에 대하여 지지를 표하며 이를 성취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팔레스타인에 거하는 비 유대인의 시민적 그리고 종교적인 권한에 대해, 또는 타국에 거하는 유대인의 정치적인 상태에 대해 아무런 편견을 갖지 않을 것입니다. (His Majesty's Government view with favour the establishment in Palestine of a national home for the Jewish people, and will use their best endeavours to facilitate the achievement of this object, it being clearly understood that nothing shall be done which may prejudice the civil and religious rights of existing non-Jewish communities in Palestine, or the rights and political status enjoyed by Jews in any other country".

(...하략....)

1.4. 반응[편집]

바이츠만을 비롯한 시온주의 지도자들 사이에서는 선언문에 팔레스타인에 대한 유대인들의 종주권이 명확히 인정받지 못했다는 점[4]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있었다. 어쨌든 전반적으로는 숙원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유대인 사이에서는 환호성이 터져나왔고,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는 유대인들의 수 역시 급증한다.

한편 동맹국들 역시 '질 수 없다'는 듯이 이 선언의 발표 직후 우리도 팔레스타인 내에 유대계 공동체의 건설을 허락하겠다는 선심성 공약을 독일계 유대인 단체들에게 제시한다.

1.5. 문제[편집]

문제는..영국이 1915년 아랍인들과도 똑같은 내용의 약속을 맺었다는 것이었다. 이중계약

맥마흔-후세인 각서라고도 불리는 이 약조를 통해 영국은 오스만 제국의 붕괴 이후 아랍 지역에 아랍인들의 국가를 세워주는 것을 약속했고, 아랍인들은 이것을 믿고 1916년 반란을 일으킨다. 사실 영국 입장에서 아예 할 말이 없던 것은 아닌게 맥마흔-후세인 각서에 따르면 '전후 아랍인들의 국가에서 시리아 일대는 제외한다.'라고 적혀 있기는 했다. 문제는 시리아 일대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랍인들이 봉기를 일으키고 있던 그 상황에서 프랑스랑 호박씨 까면서 아랍을 자기들끼리 분할해 먹기로 밀약을 맺었던거지 그리고 시리아 일대[5] 를 어디까지 봐야 할지는 애매모호했지만 팔레스타인 일대 역시 시리아 일대로 보자면 볼 수 있는 범주였던 것.

심지어 영국은 아랍인들과의 약속도 지킬 마음이 없었다. 영국은 1916년 프랑스와 러시아 제국과 함께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면 어떻게 땅을 나눠먹을 지에 대해 사이크스 피코 협정을 비밀리에 맺어 놓았던 것이다. 이 협정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즉 현재의 이스라엘 지역 정도를 공유하고 모든 지역을 영국과 프랑스가 직접 지배 해버리기로 했다.삼중계약

자연스럽게 '시리아 일대'가 어디까지인지를 놓고 입씨름이 벌어졌으며, 아랍인들은 영국의 배신을 규탄하면서 유대인 국가의 건설을 승인할 수 없다는 의지를 단호히 표출한다. 그리고 여기서 일이 대차게 꼬여버리는데, 벨푸어 선언 20일 뒤인 11월 23일, 러시아 제국을 뒤엎은 볼셰비키들이 프라우다에 위의 사이크스 피코 협정을 공개해버린 것이다. 20일 동안 그래도 영국이 괜찮은 놈이겠지라며 협상을 생각하던 아랍인들은 경악해버렸고, 일은 대차게 꼬여버리기 시작했다. 사태가 이지경에 이르게 되자 영국은 이젠 아예 튀르크 제국에게 연합국으로 전환한다면 팔레스타인을 튀르크 제국에게 보전할 것임을 타전하기까지 한다.사중계약. 답이 없다

결국 밸푸어 선언과 맥마흔 서한은 종전 후 서서히 흐지부지되어 갔으며, 전간기 팔레스타인에서 아랍인과 유대인 사이의 긴장감은 시간이 갈수록 커져간다. 그리고 2차대전 당시 벌어진 홀로코스트는 국제사회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수립을 승인하게 만들었고 이후 70년이 넘는 지금까지 중동에는 피가 마르지 않게 된다.

1.6. 기타[편집]

그로부터 99년만에 팔레스타인이 벨푸어 선언의 당사국 영국에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2017년 벨푸어 선언 100주년 앞두고 영국 정부를 압박하려는 시도로 보고 있다. 다행인건 영국 정부의 사과에 대해 호응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2017년에 전 세계에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단체, 정당들이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규탄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2. 1926년의 밸푸어 선언[편집]

1926년에 위 1917년의 그것과 같은 사람인 아서 밸푸어(당시 추밀원 원장)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영국 정부의 선언. 역시 Balfour Declaration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선언이 아닌 보고서에 가깝다.

이 선언은 영국과 대영제국자치령의 관계를 재정의하여, 영국 본국이 군사권과 외교권을 가지고 나머지 내정은 각 자치령 정부에 위임하던 체제에서 벗어나 각 자치령을 영국 본국과 동등한 주체로 승격시켜 군사권과 외교권을 위임하도록 제안하는 것이 그 골자였다. 1차대전에서 큰 희생을 치른 대영제국의 식민지와 자치령은 그 보답으로 자치권 확대를 요구했는데 이 보고서는 그 요구를 영국 정부 차원에서 공식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선언은 1931년의 웨스트민스터 헌장으로 실현되었으며, 각 자치령 정부는 군사권과 외교권도 가져 사실상 독립국이 되어갔다.

[1] 나중에 바이츠만의 회고에 따르면 바이츠만은 밸푸어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밸푸어 씨, 만약 내가 런던 대신 파리를 제안한다면 당신은 그걸 수용할 겁니까?(Mr. Balfour, supposing I was to offer you Paris instead of London, would you take it?)" 나쁘지 않은 딜 같은데? 개꿀[2] 다만 이 사람은 혈통적으로만 유대인이었을 뿐 (유대인의 핵심 정체성 중 하나인) 종교로는 무신론자여서 주류 유대계로부터 왕따였다. 불신자면 어떠냐 나라만 세우면 그만이지[3] 당시 러시아는 혁명이 한창 진행되는 중이었고, 제정 러시아 사회에서 아웃사이더였던 유대인들은 대부분이 혁명과 전쟁 중단을 지지하는 상황이었다.[4] 선언문에 보면 '유대인들의 민족적 고향'에 대한 영문 표기가 a jewish national home이라고 써 있다. 자세한 것은 the 항목을 참고하자.[5] 일례로 대시리아는 현재의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팔레스타인, 이집트 시나이 반도에 이라크까지 포함된 크고 아름다운 지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