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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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배재 로고.png 학교법인 배재학당

유치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

배재대학교 부속유치원

배재중학교

배재고등학교

배재대학교

산하기관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배재학당 대천수련원

파일:baejae_history_museum_cc0.jpg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건물.


1. 역사2. 출신인물3. 배재학당 산하 학교
3.1. 배재중학교3.2. 배재고등학교3.3. 배재대학교
4. 학교 노래
4.1. 배재교가4.2. 배재찬가4.3. 배재전송가4.4. 기타 응원가
5. 학교의 이전6. 배재와 이승만7. 일제강점기8. 관련 문서

1. 역사[편집]

감리회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1]가 1885년 서울시 정동에 세운 한국 최초의 근대식 교육 기관.[2] 이런 학교들이 전부 다 그렇듯이, 처음엔 수위의 아들을 받아서 가르치는 등 안습한 시작을 보인다.[3] 1기 입학생은 겨우 2명이었다고.

초기 학생들은 출세를 위해 영어를 배우러 학교에 등록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그래서 교장 아펜젤러는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라는 마태복음 20장을 교훈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후 1895년 배재학당 내에 대학부를 설치하여(지금의 배재대학교의 전신) 대학과정을 운영하였다. 초기 시작은 국한문학과, 영문학과, 신학과로 시작하였지만 이후 의과대학을 신설하고 사범대학도 신설했다. 지금의 배재대학교에는 의과대학과 사범대학이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참 안습하다. 배재대학교는 배재학당 대학부를 직계승한 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세월이 지나면서 정부 위탁 교육생들을 교육시키며 안정화됐고, 배재중학교[4], 배재고등보통학교 등으로 개편해 가면서 제도권 교육의 한축을 이루었다. 당시 서구 학문을 가르치는 학교이다 보니 일제강점기 반일 투쟁의 산실 역할을 하게 된다. 배재중고등학교 연혁에서는, 이걸 일제가 배재학당의 기를 누르기 위해 이리저리 뒤흔든 일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졸업생 중 친일 행적이 있는 사람도 있다.

광복 이후, 배재학당은 배재중학교와 배재고등학교로 그 명맥을 이어나갔지만 배재학당 대학부는 부활하지 못하다가 대전보육학원과 합병하면서 대전시에 배재대학교를 세우게 된다.

재단인수합병이 약점이 되어 배재대학교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나마 마크라도 같은 마크를 쓰고 공식 설립시기가 1885년으로 나오는 배재대는 그나마 양반. 배화학당에서 비롯된 배화여자중학교배화여자고등학교배화여자대학교의 경우, 배화학당은 중등교육전문기관이었고 대학부를 설치했던 역사는 없었기 때문에 배화여대의 설립시기는 1970년대로 나온다. 마크도 다르다. 재단도 같은데[5]. 이거에 비하면 배재대는 취급이 양반인 셈. 한국 최초의 사립학교인 만큼 한국근현대사여러가지 의미로 굵직한 사건에 관여한 무수히 많은 인물들이 이곳을 거쳐갔다.

연세대학교에선 자기들이 한국 최초라고 주장하는데, 그 한국 최초라고 주장하는 연도가 배재학당보다 1년이 늦다. 근데 뭐, 헨리 아펜젤러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는 어차피 같은 팀이었다. 연세대학교에서 밝히는 설립연도는 1885년은 제중원의 설립연도이고, 연희전문학교의 전신 조선기독교연합대학의 설립 연도는 훨씬 후대이다. 그러나 조선기독교연합대학은 감리회장로회의 대표 학교인 배재학당과 경신학교의 대학부를 따로 분리해 세웠다. 어차피 그렇게 주장해도 배재학당, 경신학교 둘 다 가톨릭대학교의 설립년도 1855년보다 30년가량 뒤진다. 최종보스는 따로 존재하지만 여기서 주장하는 최초는 근대사학의 최초니까 그 최종보스는 빼야지

배재고등학교 정문을 올라가면 아펜젤러 동상이 있는데 그 동상의 손가락을 3번 만지면 수능에 합격한다는 전설이 있다. 하지만 반대로 아펜젤러 동상을 감싸고 있는 방패 모양 풀밭에 들어가면 삼수를 하게 된다는 전설도 있는 걸 보면, 진실은...

문서를 쭉 보면 알 수 있다시피 여러 사학들 중에서도 문화 정체성이 대단히 선명한 편이고, 때로는 조금 배타적이고 막무가내인 모습까지도 보이는 편이다. 게다가 근처에 객관적으로 더 잘 나가는 한영이 있기 때문에 지역에서 콩라인의 이미지도 좀 있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지역 내에서는 선배 출신 교사들이 주축이 되어 앞으로 끌고 가려는 분위기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 편이고, 근처에 명성교회가 있어 기독교의 영향력이 큰 지역이라 그런지 다수의 학생들이 배재 특유의 미션스쿨 문화를 곧잘 체화화는 편이다. 때문에 사회 전반에서 학교 선후배 문화가 굉장히 약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단결력이 강하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2. 출신인물[편집]

배재중학교&배재고등학교

권영세 - 전 주한중국대사. 전 국회의원.
권인하
김상헌 - (주)네이버 대표이사 사장.
김석수 - 법조인
김성환
김소월 [6] - 시인. 소월은 호이다. 본명은 김정식.
김영기 - 전 농구선수, KBL 3대 & 8대 총재.
김인식 - 작곡가, 음악교사
김종익(1918)
나도향 [7] - 소설가.
노우진 - KBS 공채 20기 개그맨
노주현 - 배우
박문덕 - (주)하이트진로 회장. [8]
박진섭 - 전 축구선수, 현 광주 FC 감독
박찬법 - 금호아시아나 고문.
배용준 [9] - 배우
서재필 - (세계사 교사로서) 구한말 개혁가/사상가. 한국최초의 서양식 의사(MD). 영문명 필립 제이슨.
손동운 - (배재중) 비스트 멤버 강동구 원빈
송락현 - (배재중) 애니메이션 평론가
송종국 - 전 축구선수
안기영 - 음악가
여운형 [10] - 독립운동가
오긍선 - 계몽사상가, 의사, 사회사업가. 호는 해관.
원철희
이길용 - 기자, 일장기 말소사건 항목 참조.
이승만 [11]-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호는 우남.
임호 - 배우
정덕구
정재철
정재형 - KBS 공채 29기 개그맨
조원희 - 축구선수
조인성 [12] - 배우
주시경 [13] - 국어학자. 호는 한힌샘.
지청천 [14] - 한국 광복군 총사령관. 호는 백산.
차두리 - 전 축구선수 방문할 때마다 후배들이 '간 때문이야'를 시도때도 불러달라고 해서 삐졌다나 뭐라나
천호진 - 배우
캐러멜 - 만화가


배재대학교

류근지
박무직
은혁
이민우
이웅희 - 축구선수
정해명 - 물리학과 84학번. 모교에서 석사까지 마친 뒤 맥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교수가 되었다.
청동 - 이 인물의 경우에는 나쁜 의미로 유명하다.
하현우 [15] - 락밴드 동아리인 오선회에서 활동했었다. 같은 국카스텐 멤버 이정길 역시 같은 동아리였고 자퇴도 같이 했다.

배재고등학교부설대학교

3. 배재학당 산하 학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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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배재중학교[편집]

남학생만 재학가능한 남중이다. 교사는 남녀가리지않고 있다. 배재고등학교와 공유하는 시설이 꽤 많다. 교문을 시작으로, 개신교 미션스쿨이기 때문에 매주 1회 대강당에서 예배를 드리므로 대강당을 공유한다. 대강당 안에 있는 각종 운동부 시설과 이발소는 덤. 또한 매점도 같이 쓰고점심시간에 경쟁률이 2배로 올라간다! 연례 행사 중 하나인 배양전[16]의 응원을 연습할 때 고등학교의 대운동장에서 같이 하기 때문에 이 또한 공유된다고 볼 수 있다.

대학교는 물론이고 고등학교에 비해서도 상대적으로 투자를 덜 받는 편이다. 때문에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한 마음으로 재단에 돈도 많으면서 우리한테는 왜 투자를 해 주지 않느냐고 불만이 꽤 많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근처의 모든 학교들이 이미 급식을 시행하고 있었고, 심지어 고등학교도 이미 급식을 시행하고 있었던 데에 반해, 배재중학교는 식당 시설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2004년까지도 학생들이 도시락을 싸서 와야 했다는 과거도 있다. 이후 강당 시설을 확장해서 식당을 만들기는 했지만, 전교생이 다함께 밥을 먹기에는 영 부족한 규모의 시설이다.

이러한 냉대에도 불구하고, 배재중학교를 나왔다고 하면 대학교와는 달리 나름대로 배재 동문으로 인정을 받는 분위기가 강한 편이며,[17] 현역 교사들 중 상당수도 배재학당 출신으로서 제자 및 후배들에게 배재부심을 동문으로서의 긍지를 불어넣는 데에 열심인 편이다.

재학생/졸업생 여러분들이 추가바람.

3.2. 배재고등학교[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배재고등학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3. 배재대학교[편집]

  • 이 문서는 배재학당과 배재대학교의 관계에 대해서 다룬다. 학사행정 등 배재대학교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배재대학교 문서로.


배재대측의 공식적인 입장으로는 배재대학교는 배재학당을 계승한 대학교이며, 배재 재단 및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도 이를 공식적으로는 인정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교사진 및 학생들은 배재대학교를 인정하지 않는다. 배재고등학교에선 우스갯소리로 배재고등학교부속대학교라는 말도 한다.

객관적으로 볼 때 배재학당이 근래에 들어 역사만큼의 명성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배재중 및 배재고는 전통에 대한 자부심으로 뭉쳐 있는 단결력 있는 집단이다. 게다가 교사진의 상당수가 서울 소재 사범대 또는 교육대학원를 졸업한 배재중 또는 배재고 출신이다 보니, 학생 시절의 자부심이 교사가 된 이후까지 그대로 옮겨 가면서 계속해서 순환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런 입장에서 대전권의 전문대학을 사들여서 배재의 이름을 붙인 배재대학교를 굴러온 돌로 보는 동문들이 대부분이다. "정말 대학교를 하려면 배재의 이름에 맞게 좋은 기반을 가지고 제대로 시작했어야지 그게 뭐냐"고 보는 식이다. 자존심의 문제를 둘째치고서라도 현실적인 이유도 있는데, 배재 재단이 사학 재단 중에서는 상당히 돈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투자하는 돈은 그리 많지 않다. 재단이 오래 전부터 대학교에 집착을 해온 만큼 배재대학교에 많은 돈을 쏟아부으면서 좋은 학교가 되도록 투자를 하고 있는데, 이게 그만큼의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서 밑빠진 독에 물붓기처럼 보이기 때문에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상대적으로 반감을 느끼는 것이다.

2000년대 초중반에 배재중 및 배재고에서 잘 돌아다니던 우스갯소리가 하나 있었는데, 배재중 - 배재고 - 배재대 트리를 타면 마티즈를 1대 뽑아 준다는 것이었다. 당시 배재중 학생들은 배재고까지야 괜찮은데 배재대는 외제차를 줘도 안 되는 거 아니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고, 그 이야기가 워낙에 컬트적인 인기를 끈 탓에 자기도 사실인지 정말 궁금하다는 선생님들도 계셨다. 한 선생님께서는 배재초등학교가 있었고, 배재대학교에 부설 유치원이 있기때문에 배재유치원 - 배재초등학교 - 배재중학교 - 배재고등학교 - 배재대학교 트리를 모두 타면 준다는 말씀도 하셨는데 믿거나 말거나.

더욱이 2011년부터 입학한 배재고 학생들은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의 학생으로, 자기소개서와 면접을 통해 입학하였으므로 하위권인 학생도 중학교 내신 20~30%인 사람이고 대부분의 학생들도 매번 모의고사에서도 낮아도 3등급 이상의 성적을 보인다. 반면 배재대 학생들은 평균 과성적이 4~5등급이고 그나마 유아교육과간호학과만 2~3등급이어서 성적만 비교해 보면 배재고 학생들이 월등히 높다.

4. 학교 노래[편집]

아래의 3곡 모두 화음이 존재한다. 배양전 연습 땐 정식으로 파트를 나누어 가르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멜로디만 부르고 화음은 넣고 싶은 사람이 넣는다 (...) 이렇게 해도 배재중고등학교 내에 성가대 역할을 하는 동아리가 3개는 있는 데다가 바로 옆 명성교회에서 성가대를 하는 애들까지 해서 합창 경력 있는 애들이 한 반에 한 명이라도 없으면 이상한 수준이기 때문에 화음이 그럭저럭 잘 맞는다. 정작 응원 나가면 그냥 때창이 되어버리곤 한다.

배재고등학교 문서에 더 많은 노래가 소개되어 있다.

4.1. 배재교가[편집]

파일:attachment/baejae.jpg
[18]

롸롸롸롸[19] 씨스뿜빠[20]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가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배재학당 교가는 그 간결함과 강렬함 덕분에 악마의 중독성을 자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다른 교가는 학교를 졸업하면 그런 게 있었는지도 가물가물하지만, 배재학당 교가는 졸업하고 10년, 20년이 지나도 바로 다시 부를 수 있다. 처음에는 뭐 이런 교가가 다 있나 싶지만 2년차 들어가서 숱한 조회와 2번의 배양전을 거치고 나면 이미 입에 착 달라붙어 있다. 때문에 기본적으로 2번 반복하는 교가를 기분 타고 무한 반복하는 경우까지 생길 정도다.

심지어 강동구 지역의 다른 학교 학생들도 자기 학교 교가보다 배재 교가를 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으며, 수능 응원에서 배재고 응원단과 다른 응원단이 같이 응원을 하는 상황이 오면 배재 교가를 다른 학교 응원단도 따라부를 정도다. 그리고 이노래을 부르면서 걸으면 자동적으로 파워워킹이된다 근데 후배 여러분 이거 수능금지곡 제정해야 하는거 아닙니까? 아들 아펜젤러(역시 배재에서 교직을 맡고,교장까지 했다)가 모교인 프린스턴 대학교의 응원가에서 멜로디를 따왔다고 한다. 학교 교표도 묘하게 비슷하다. 당연히 연세대는 배재나 프린스턴 대학교 교표를 따라한 것이고. 연대가 이 글을 싫어합니다

4.2. 배재찬가[편집]

설립 90주년을 기념해서 만든 학교 노래이다. 다른 학교의 교가에서 느껴지는 엄숙함이 느껴지는 노래이다.

빛나라 배재학당 흘러간 저 한세기
신문화 요람터다 근세사의 여명이다
욕위대자 당위인역 배양영재 높으신 뜻
선구자의 모태로다 대한의 자랑이다
맹호의 기백은 배재의 기상
인류의 태양되라 자손 만대로

빛나라 배재학당 흘러간 저 한세기
신교육 발상터다 현대사의 광명이다
기독정신 희생봉사 개척정신 높으신 뜻
애국자의 모태로다 민족의 자랑이다
맹호의 기백은 배재의 기상
인류의 태양돼라 자손 만대로


당연히 최초 녹음시의 가사는 "흘러간 저 90년"이었으나,
개교100주년을 전후하여 위의 가사로 바뀌었다.

4.3. 배재전송가[편집]

Battle Hymn of the Republic의 곡조로 부른다.[21] 개신교 신자라면 영광 영광 할렐루야 라면 알 그 노래.

하늘같이 높고 푸른 우리 배재 젊은이
바다같이 넓고 깊은 우리들의 이마음
우리들은 주의 자녀 부름받은 한 형제
주 뜻만 따르리
영광 영광 할렐루야 영광 영광 할렐루야
영광 영광 할렐루야 승리의 우리 주
Glory Glory Hallelujah Glory Glory Hallelujah
Glory Glory Hallelujah Glory Glory Hallelujah
His truth is marching on

화산같이 타오르자 우리 배재 젊은이
폭포같이 줄기차자 우리들의 이마음
할 일 많은 이 나라에 우리 태어났으니
힘차게 일하자
영광 영광 할렐루야 영광 영광 할렐루야
영광 영광 할렐루야 승리의 우리 주
Glory Glory Hallelujah Glory Glory Hallelujah
Glory Glory Hallelujah Glory Glory Hallelujah
His truth is marching on


4.4. 기타 응원가[편집]

에이맨, 달려간다, 성난 독수리[22], 나가신다, 배재 자이언트, 화이팅, 새야 등 배양전 때 나눠주는 유인물엔 양측 교가까지 합쳐 대략 20곡 가량이 수록되어 있다.

배재고-양정고 간 정기 럭비전인 배양전 때문에 학교 응원가가 체계적으로 전수되고 있다. 이는 졸업 후 동문회에 가면 나이 많은 선배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좋은 연결고리가 되준다. 유투브에 찾아보면,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들과 중년들이 함께 모여 교가를 열창하는 동영상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배양전 응원연습 때마다 운동장에 끌려나와 주구장창 연습해야 하는 괴로움이 있다. 적어도 중학교 때에는 즐거웠다고 한다.

한편 상대편 학교에 대한 존중의 의미에서 두 학교 모두 상대편 학교의 교가를 연습하는데, 배재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여기서 양정중고등학교의 교가에서 "양정! 양정! 양저엉 양정!" 하는 부분을 "양정! 양정! 양저엉 양정!" 라는 기괴한 코러스를 넣는 전통이 있다. 원래는 "우우~" 하는 야유의 의미라지만[23]2016년에는 전모선생님이 우를 넣기를 추천하셨다억양이 매우 적절하기 때문에 사정을 모르면 기합 넣어주는 걸로 들리며 양정중고등학교 학생 및 양정 측 선수들도 기합인 줄 알고 따라 한다. 다만 양정에서도 다들 그렇게 속아넘어가는 건 아니라서 양정에서 배재중고 교가의 "우리 배재학당 배재학당 노래합시다" 부분을 " 배재학당 배재학당 노래합시다"로 돌려주기도 한다. 이 전통(?)의 유래는 재학생들이 학교를 다닌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모든 이야기가 크게는 양정욱 또는 양정우라는 배재중학교 재학생을 놀리려고 시작된 것이라는 틀을 따른다. DC 강동구 갤러리의 글에 따르면 1995년에 시작된 일이라고 하는데, 이후 전승되는 이야기에서 연도 표기는 다 다른 걸 보면 아무래도 이 이름을 가진 사람이 한둘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게 워낙에 찰져서 그런지는 몰라도, 적어도 2012년 이후로는 양정고에서도 응원가 목적으로 교가를 제창할 때에는 "양정! 양정! 양저엉 양정!" 대신 "양정허이! 양정허이! 양저엉 양정''으로 불러 코러스가 완전히 편입된 상황이다3차 창작. 사실 이렇게 부르는 게 원래 교가보다 훨씬 힘차다. 그런데 이건 외부행사 한정이다. 다른 행사(Ex. 입학식, 졸업식...)에서 이렇게 불렀다가는 음악 선생님한테 뒤지게 혼난다.

5. 학교의 이전[편집]

원래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었으나, 80년대 정부의 강남개발 정책으로 배재중학교와 배재고등학교는 서울시 강동구로 이사하게 되었다. 80년대에도 학교부지가 팔리지 않아, 운동장만 팔아서 중고등학교 부지를 구입/신축 경비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대학교는 대전광역시로 내려와 버렸다 일부에서는 그때 남은 돈으로 배재대학교를 세웠다고 한다.

6. 배재와 이승만[편집]

배재학당을 나온 유명한 사람이 어디 한둘이 아닐 텐데, 학교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그 중에서도 이승만 제1대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집착을 한다. 뉴라이트 운동 같은 게 생기기도 전부터 학교에서는 이승만의 일대기를 미화한 그린 책을 학생들에게 전부 배포하기도 했으며, 배재고등학교의 기숙사 이름도 그의 호를 따서 우남학사라고 지었고, 이승만 동상이 배재중고등학교 내의 배재동산 한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는가 하면, 이승만과 배재의 연결 관계에 대해서 나이 든 선생님들 뿐만이 아니라 꽤 젊은 선생님들도 많은 이야기를 한다. 사실 배재고 학생들은 이승만이 자신의 동문이라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배재를 나와서 배재에서 선생을 하고 있는 고등학교 국사/한국근현대사 선생의 증언에 따르면, 배재에서 수학하고 졸업한 이승만이 배재대학교를 서울에 세우려다가 4.19로 하야하며 무산되었다고 한다. 중학교에 있는 역사 선생님들도 비슷한 말을 꺼낸 적이 있다. 구체적으로는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 건립할 계획이었다고.

100년이 넘는 배재 역사에 훨씬 흠결이 적고 모범적인 사람들이 많겠지만, 단순히 제일 유명하다는 이유로 논란 속에서도 계속 이승만 띄위기를 밀어붙이는 듯 하다. 악명도 유명이다

7. 일제강점기[편집]

일제강점기 당시 배재학당 출신 학생들이 독립운동을 너무 열심히 했기 때문에[24](...) 조선총독부에서 배재학당을 강력히 규제하며 대학설립을 방해했다고 한다. 다른 사립학교인 연희전문학교이화여자전문학교는 교장을 지낸 윤치호김활란이 친일행위로 인해 일제에 의한 학교규제가 비교적 느슨했던 편이었다.[25]

8. 관련 문서[편집]


[1] 2009.01.11에 배재 고등학교 교내에 헨리 아펜젤러를 기념하는 동상이 세워졌다.이승만 동상과 매일밤 가위바위보 해서 이긴다는 학교전설이 생겨났다 동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한 쪽은 왼손을 펴고 있고 다른 한 쪽은 가위모양을 하고 있다.[2] ...이라고는 하지만 그보다 30년정도 앞서서 현 가톨릭대학교의 전신인 성요셉신학교를 세웠다. 자세한 건 가톨릭대학교 문서 참조.[3] 이화학당의 설립자 메리 스크랜튼 부인도 초기에는 좀처럼 학생을 모으지 못해, 학교 일을 하던 일꾼 김씨의 딸을 학생으로 삼기도 했다. 그 학생이 바로 한국 최초의 근대 여의사인 박에스더.[4]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의 배재중학교와는 다르다. 이 때 당시엔 5년제 중학교로, 현재의 중학교고등학교를 합친 교육기관이었다.[5] 반면 같은 감리회 계열의 선교사인 메리 스크랜튼 여사가 세운 이화학당일제강점기이던 1943년에 이미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의 재단(이화학원)과 이화여자전문학교의 재단(이화학당)을 분리하여, 이화여고보는 중구 정동, 이화여전은 서대문구 대현동에서 각자의 길을 갔다. 때문에 이화여자고등학교이화여자대학교는 현재 각각 100년이 넘는 역사를 내세운다. 즉, 중ㆍ고등부와 대학부가 하나이던 공통의 설립초기시기를 각자가 모두 자기네 역사에 포함시킨 것이다.[6] 다만, 김소월 본인은 배재학당보다 중간에 중퇴하게 되었던 오산고등보통학교에 더 많은 애착을 두었다고 한다. 오산에서 스승 김억을 만났던 점이나 활발한 작품 활동을 진행하였던 점, 결정적으로 배재학당은 거의 졸업 직전의 학년에 들어와서 조금 거치듯이 지나갔다는 점 때문인 듯. 배재고에서는 내신, 모의고사, 학력경시대회의 성적들을 반영하여 상위 30명 정도를 모아 소월반이라는 방과 후 학급을 편성해 운영하고 있다.[7] 배재고등학교 1층의 소강의실을 나도향실이라고 한다.[8] 매년 모교인 배재고등학교에 수억을 전달하면서 하이트진로 장학금도 수여하고 있다.[9] 배재중학교 출신이고, 고등학교는 한영고등학교를 나왔다. 대학교는 성균관대학교를 다니다 중간에 자퇴. 배재중 고참 선생님들의 평가는...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하는 선생님들이 반 정도 있고, 나머지의 반은 자기는 잘 모른다고 함구하고, 나머지는 도시전설에 가까운 이야기를 가끔 흘린다. 판단은 알아서.[10] 중간에 자퇴했다[11] 배재대학교에 우남관이 있다.[12] 여긴 배용준과는 달리 한없이 수수한 에피소드들밖엔 없다. 선생님들은 별 기억이 없는듯 하고, 지역에서 나오는 소문도 명일동 모처에서 목욕하고 나오는데 앞에 조인성이 지나가고 있었다 정도(...)[13]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에서 현대 우리가 쓰는 한글로 언어를 체계적으로 다듬고 통일한 대단한 사람이다. 국어만 가르쳤을 거 같지만 의외로 지리, 주산교사이기도 했다. 배재고등학교에 주시경관이라는 건물이 있다.[14] 배재고등학교에서는 하위권 학생들의 성적향상반으로 백산반을 운영 중이다.[15] 중간에 자퇴했다[16] 배재고&양정고의 럭비 경기. 기나긴 친선경기 역사상 배재가 이긴 건 겨우 3번. 양정고에서는 당연히 "양배전"이라 부른다.[17] 실제로 중학교에 있다가 고등학교로 발령이 난 선생님들도 계실 정도로 양 쪽의 인력 교환이 어느 정도 있다. 함께 운영되는 학교라는 인식이 동문 및 교직원들 사이에서 강한 편[18] 현재는 6/8박자 버전이 아니라 2/4박자 버전을 쓰긴 하지만 노래 자체는 똑같다.[19] "라라라라"는 남성미(?)가 없어서 바꿨다고 한다(...).[20] 아닐 것 같지만 영어단어다! sisboombah. 미식 축구 등을 보면서 외치는 '이겨라!'는 뜻의 응원 구호라고 한다. 경기장에서 폭죽이 날아가 터지는 장면을 묘사했다고 한다.[21] 롯데 자이언츠 응원가 '승리의 롯데(롯데 롯데 롯데 롯데~)'의 근간이 된 곡.[22] 이 노래를 부를 때는, 중학교에 근무하시는 김모 선생님의 이름을 구령으로 넣기도 한다. 이 관습이 정착된 건 2007년으로, 당시 지도부장이셨던 김 선생님이 응원연습 참여율이 저조하자 열심히 부르면 빨리끝내주겠다고 해서 감사에 의미로 넣어졌다고 전해진다. 고등학교에서는 '슛돌이'란 별명이 있는 박모선생님의 별명을 구령으로 넣는다.[23] 그래서 연습할 때 선생님들이 를 넣는 사람들을 잡아내는 경우도 있다.[24] 위에서 배재중고등학교가 일제 시절의 잦은 학사제도 변경을 "항일운동을 하는 배재학당을 일제가 훼방을 놓기 위해서"라고 해석했다는 것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25] 윤치호와 김활란의 친일 행위는 달리 논의되어야겠지만, 최소한 항일 운동에 기여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