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 실사영화 시리즈

최근 수정 시각: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 최우수 작품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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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회
(2003년)

제76회
(2004년)

제77회
(2005년)

시카고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밀리언 달러 베이비

연도별 월드와이드 박스오피스 1위

2001년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974.8

2002년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
$923.3

2003년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1,119.1

2004년
슈렉 2
$919.8

역대 전 세계 10억 달러 영화

1999
스타워즈: 에피소드 1 - 보이지 않는 위험
(1,027,044,677달러)

2003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1,119,929,521달러)

2006
캐리비안의 해적 - 망자의 함
(1,066,179,725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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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 (2001)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 (2002)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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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판 재개봉 포스터 (2017)

될 것이다 → 된다 → 됐다

1. 개요2. 출연진3. 제작 비화
3.1. 제작진3.2. 3부작의 탄생3.3. 특수 효과3.4. 예산 절감3.5. 캐스팅3.6. 키스씬 비화3.7. 촬영 중 사건사고
4. 평가5. 대흥행6. 수상7. 원작과의 차이8. 엄청난 고증9. 한국 방영10. 기타11. 바깥 고리

2007년 미국 영화 연구소(AFI) 선정 100대 영화 50위 -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

2008년 미국 영화 연구소(AFI) 선정 10대 판타지 영화 2위 -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1]

1. 개요[편집]

역대 영화사에 길이 남을 가장 완벽한 3부작 중 하나[2]

존 로널드 루엘 톨킨이 지은 판타지 소설반지의 제왕》의 영화판. 당초 원작자인 톨킨은 영화화는 절대 불가능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고, 영화 판권도 밀린 세금을 내기 위해서 그냥 헐값에 팔았지만 훗날 피터 잭슨 감독에 의해 3부작 영화로 제작되어 대흥행을 거두었다.

2017년 1월 11일부터 CGV에서 확장판으로 일주일에 한 편씩 재개봉하였다. CGV 단독 재개봉을 위해 국내 기사에서 말한 것처럼 새로이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친 것이 아니라, 2011년도에 출시한 확장판 블루레이의 소스를 그대로 DCP로 변환하여 개봉한 것이다. 따라서 오역도 여전하다

2. 출연진[편집]

3. 제작 비화[편집]

3.1. 제작진[편집]

당시 전 세계 수천만의 톨키니스트들은 과거에 《고무인간의 최후》 같은 B급 호러 영화를 만들던 피터 잭슨이 대체 어떻게 이 에픽 무비를 만들겠냐며 불신과 걱정이 가득한 채 기다리게 되었다. 허나 피터 잭슨 스스로가 엄청난 톨키니스트였으며 공동 각본 담당이자 피터 잭슨의 부인인 톨키니스트 부부 프랜 월시, 필리파 보옌스 역시 반지의 제왕의 팬이었기에 차근차근 영화화가 진행되었다.

또한 톨키니스트들의 조언을 받아들이고, BBC 라디오에서 방송했던 반지의 제왕 라디오 드라마 작가까지 초빙해 가면서 영화 각본을 완성시켰다. DVD에 의하면 소설 내의 사건들을 타임 테이블로 만드는 데만 몇 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이는 소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바로 다음 페이지인데도 며칠 후거나 몇 개월 후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설에선 리븐델에서 반지 원정대가 결성되고 떠나기까지 장장 2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이야기가 시간 순서로 진행되지 않고 여러 인물들의 시선에서 번갈아가면서 진행되기 때문에 더욱 정리를 어렵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

게다가, 프로덕션 디자인을 위해 소설판 삽화가 중 가장 유명했던 존 하우와 앨런 리를 수석 컨셉 아티스트로 초빙함으로서 시각화에도 만전을 기했다. 이때 삽화가 테드 네이스미스도 초청했으나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고사했다고 한다.

3.2. 3부작의 탄생[편집]

사실 피터 잭슨이 이 영화를 만들기 시작할 때 함께하기로 한 제작사는 미라맥스(현 와인스타인 컴퍼니)였다. 본래 2부작으로 제작하기로 이야기가 되어 있었으나,[5] 미라맥스 측은 제작비 초과를 우려해 한 편으로 만들 것을 요구했다. 잭슨은 이 요구를 거부하고 미라맥스와 결별했으며, 뉴 라인 시네마와 접촉해 이 영화를 왜 단편이 아니라 2부작으로 만들어야 하는지를 열심히 설명했다. 그리고 설명을 다 들은 CEO는 웃음기 하나 없이 싸늘하게 대답했다.

피터, 이런 영화를 왜 2부작으로 만들어야 합니까?

잭슨 감독과 제작진은 일이 글렀음을 직감하면서 반쯤 자포자기한 상태였는데,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3부작으로 만듭시다.

혜안이 있는 사람이었다. 전설의 시작 # 이 결정은 당시 뉴 라인 시네마의 작품들 중 연작이 부족했으며, 3부작으로 낼 때 더욱 많은 이익을 볼 수 있다고 예상했기 때문이라는 후문이 있다.

결론적으로 뉴 라인 시네마에게도, 반지의 제왕 팬들에게도 참 다행스런 결정이었다. 이 너무 많은 내용을 억지로 짧은 시간 안에 밀어넣어서 처참하게 망했던 전례를 생각해 보면 말이다. 게다가 이 3부작도 원작에서 상당히 가위질을 많이 한 것이다.

하지만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후엔 2부작 정도로 만들었어야 할 영화를 무리하게 3부작으로 늘려 욕을 쳐먹게 되는데...

3.3. 특수 효과[편집]

당시 최신 특수 효과 기술이 아낌없이 사용되었다. 골룸의 경우는 인간이 아닌 생물의 연기를 전담으로 해온 베테랑 영국 배우 앤디 서키스가 센서가 달린 옷을 입고 모션 캡처를 하여, CG 팀이 이 동작을 바탕으로 골룸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제작했다. 참고로 3편에 등장한, 괴물이 되기 전의 골룸은 앤디 서키스 본인이다.

프로도를 비롯한 호빗들의 작은 키는 CG 노가다보다는 난쟁이 배우와 거인 배우를 대역으로 활용하거나, 세트 자체를 카메라 각도에 맞추어 제작해서 원근법 착시를 통해 호빗 역 배우들의 크기가 작아 보이게 하는 특수 기법을 사용했다. 예를 들자면, 영화 초반 간달프가 프로도와 식탁에 앉아 대화하는 장면에서 프로도 역의 일라이저 우드는 사실 이언 매켈런 경과 얼굴을 마주본 것이 아니라 안쪽으로 더 들어간 곳에 자리잡고 서서 마주보고 있는 것처럼 연기를 했다. 마차 타는 장면도 마찬가지. 그 외에도 호빗들이 사용하거나 하는 소도구들도 전부 인간 사이즈와 호빗 사이즈 2종으로 제작하고, 심지어 빌보의 집 세트장은 간달프와 빌보의 신장에 맞춰서 두 개를 별도로 만들고 각각을 별도로 촬영한 뒤 나중에 합성했다.

디자인을 위해서 웨타 디지털과 피터 잭슨 및 그동안 동고동락해온 디자이너들, 그리고 톨킨의 작품의 삽화를 주로 담당해 온 존 하우와 앨런 리가 전격적으로 투입되었다. 그런데 하우와 리를 찾는 방법은 쉽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스위스에서 하우를 찾아 그에게 허겁지겁 전화를 했는데, 그때가 스위스 시간으로는 새벽 세 시 정도라서 하우는 속으로 '이 미친 뉴질랜드 인간이 이 시간에 웬 개지랄이야?'라고 욕을 퍼부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그는 세 시간 만에 승낙했다.

다음은 앨런 리였는데, 리는 하우보다도 찾기가 어려운 것이 그는 전화번호조차 세간에 알리지 않고 사실상 은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잭슨은 리와의 연줄을 총동원해서 리에게 소포를 보내고 그 택배 회사 차량을 추적하는, 마치 첩보 영화를 방불케 하는 수색 작전 끝에 영국 남부 다트머스에 있는 앨런 리의 자택을 찾아냈다. 그리고 영화 《반지의 제왕》의 제작 취지와 그 동안의 진척 상황을 보내고는 "24시간 내에 대답 좀 해주십시오"라고 전화를 걸었고, 리는 진척 상황에 흡족하여 한 시간도 지나기 전에 승낙했다.

3.4. 예산 절감[편집]

세 영화를 연속으로 한 번에 찍고, 할리우드가 아닌 뉴질랜드에서 촬영과 제작을 함으로써 시리즈의 총 제작비가 2억 8000만 달러밖에 들지 않았다는 매우 효율적인 결과를 낳았다. 참고로, 2009년 영화 《아바타》의 경우 한 편의 제작비가 약 2억 3000만 달러였다. 근데 그 한 편과 이 세 편의 최종 흥행 수익은 비슷하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고 경쟁했던 《해리 포터 시리즈》의 경우 1, 2, 3편의 제작비를 합하면 3억 5500만 달러 정도 된다.

이렇게 예산을 절감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동원된 엑스트라 중 지원자, 즉 무보수나 다름 없는 금액으로 일한 이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반지의 제왕》에 출연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서 온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전쟁 장면 때문에 많은 수의 엑스트라가 필요했던 두 개의 탑이나 왕의 귀환은 이를 통해 예산을 아꼈다. 그리고 왕의 귀환의 모란논 전투 장면은 마침 근처에서 훈련을 하던 뉴질랜드 군대의 협력을 받기도 했다.

다만, 이러한 예산 절감 때문에 촬영 환경은 순탄하지 않았다. 아라고른 역의 비고 모텐슨은 2014년 5월 14일 영국 텔레그라프지와의 인터뷰에서 "반지의 제왕 1, 2, 3편을 한 번에 촬영하던 시점에서 1편을 제외한 2, 3편의 분량은 형편 없었고, 1편의 성공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수 차례 추가 촬영을 할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반지의 제왕 2, 3편은 곧바로 비디오 가게로 갈 수도 있는 영화였다"며 당시의 엉성하던 제작 과정을 비판했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찍고 돈 벌고 찍고, 돈 벌고 찍고를 반복했다는 것이다. 생방송 촬영 이렇게 찍으면서도 그 엄청난 완성도가 나왔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 확장판 DVD에 수록된 부가영상 중 메이킹 필름을 보면 애초에 3부작 영화를 동시에 촬영했던 것이 이런 문제가 발생한 큰 이유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단 애초의 본촬영의 처음 계획은 반지 원정대를 시작으로 영화 순서대로 두 개의 탑, 왕의 귀환을 촬영하는 것이었는데 날씨 등의 이유로 반지 원정대 촬영 분량이 다 끝나기도 전에 다음 영화 촬영을 병행한 것이다.

그러나 3부작 영화를 동시에 촬영하느라 휴식일을 빼고도 260일이 넘는, 일반적인 한편의 영화보다 훨씬 긴 촬영기간이 걸렸는데, 이렇게 되니 초반부엔 출연배우나 제작진의 체력에 여유가 있고 촬영 스케줄도 여유가 있어서 당연히 이 시기에 주로 찍었던 반지 원정대 촬영분량은 완성도가 높았으나 촬영이 진행될수록 출연 배우와 제작진 모두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혔고, 여기다 촬영 스케줄도 여유가 없어져서 촬영 스케줄을 맞추기 위해 촬영 막판에는 무려 촬영팀을 8개나 동시에 돌리는 무리수를 두어야 할 정도였다. 결국 이렇게 출연 배우와 제작진의 체력적 한계와 무리한 촬영 스케줄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면서 촬영 중후반부에 몰아서 찍게 된 두 개의 탑과 왕의 귀환 촬영분의 완성도가 부족해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두 개의 탑에서 완성도가 떨어지는 촬영 장면을 제작진은 반지 원정대 개봉 후에 엄청난 분량의 추가 촬영으로 다시 찍어 교체하였고, 두 개의 탑이 개봉한 후엔 또다시 엄청난 분량의 왕의 귀환 추가 촬영을 해서 교체한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처음부터 다시 찍는 수준은 아니었고 영화에서는 본촬영분의 분량이 더 많이 나온다.

여담으로 두 개의 탑의 나팔산성 전투 장면에서 엄청난 추가 촬영이 있게 된 원인 중 하나는 스타워즈: 에피소드 2 - 클론의 습격 때문이었다. 반지 원정대 개봉 후 두 개의 탑 추가 촬영이 있기 전에 피터 잭슨이 클론의 습격을 관람하면서 그 전쟁씬의 완성도에 충격을 먹어, 두 개의 탑에서 가장 중요한 나팔선성 전투를 완전히 뜯어 고치기 위해 대대적인 추가 촬영을 단행했기 때문이다.

이후 추가촬영분과 기존의 촬영분을 합쳐 편집하면서, 피터 잭슨은 결국 영화에서 아르웬으로 나오는 리브 타일러가 본촬영시에 찍었던 상당한 분량의 전투 촬영 장면을 모두 삭제했다. 원작에선 깊은골에 남아있던 아르웬이 나팔산성 전투에 나오는 것에 원작팬의 우려가 컸는데, 엄청난 추가 촬영 덕택에 아르웬 출연 장면이 모두 없어지고도 영화에서 분량이나 장면 연결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이후 호빗을 촬영할 때는 세 편의 총 제작비가 7억 4500만 달러로 3배 가까이 늘어났다.

3.5. 캐스팅[편집]

배역은 오디션으로 결정되었는데, 처음에는 원작에 맞추어서 호빗족을 나이 든 사람들로 캐스팅하다가[6] 비주얼이 안 맞아 몽땅 재캐스팅했다고 한다. 프로도 역에 발탁된 일라이저 우드는 촬영 시작 당시 19세로, 처음에 피터 잭슨은 탐탁지 않아 했으나 호빗처럼 분장하고 나무 사이를 거니는 우드의 테이프를 보고 주역으로 캐스팅하였다.

아라고른의 캐스팅 과정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하기 그지없었는데 맨 처음에는 대니얼 데이루이스였으나 잭슨 감독과 제작사의 간절한 권유에도 거절하고 《갱스 오브 뉴욕》을 찍으러 떠나버렸다. 다음에 내정된 사람이 스튜어트 타운센드였으나, 피터 잭슨 이하 제작진들은 아라고른이 꽤 중후하다는 인상을 갖고 있었는데 타운센드는 너무 젊다 못해 어려보이기까지 해서 안타깝지만 돌려보냈다고 한다. 반지의 제왕 제작 영상을 보면 딱 한번 찍은 장면이 있긴 하다. 그 다음은 짐 커비즐이 낙점되었으나 종교인 가톨릭에 위배되는 이상한 영화에 출연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7] 그 뒤 커비즐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 예수 그리스도 역으로 나왔다.

그리고 놀랍게도 조니 뎁도 후보로 언급되었으나 스케줄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했고 다음 후보는 러셀 크로. 크로는 자신의 조국인 뉴질랜드에서 판타지 대작이 제작된다는 말에 매우 호감을 나타냈으나 3부작이나 된다는 사실에 난색을 표했고, 잭슨은 크로는 뭘 해 놔도 왕처럼 보일 테니 스포일러나 다름 없다고 반대했으며 숀 빈은? 당시 크로가 찍고 있던 《뷰티풀 마인드》의 제작 일정이 겹치면서 결국 무산되었다. 러셀 크로로서는 명작을 위해 다른 명작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셈.

그리고 보로미르 역의 숀 빈파라미르 역의 데이비드 윈햄도 고려되었으나 후보에 그쳤다. 그리고 이 캐스팅 릴레이의 마침표를 찍은 사람은 크리스천 베일이었다. 반지의 제왕의 팬이었던 베일은 아라고른 역에 낙점되기 위해 누구보다도 먼저 오디션을 보았고 지인들에게 연락하는 등 온갖 수를 다 썼지만 어찌된 일인지 후보 명단에서조차 삭제되는 괴이한 일이 벌어졌다. 그렇게 아라고른 배역은 비고 모텐슨에게 돌아갔다. 피터 잭슨은 크리스천 베일에게 레골라스 역은 어떻냐고 제의했지만 크리스천 베일은 아라고른 역이 아니면 나오지 않겠다고 거부했다.

이러한 수난(?)을 거쳐서 아라고른 역을 맡게 된 비고 모텐슨은 촬영 이틀 전에 캐스팅되었다.[8] 집에 전화를 걸어 "하죠?"라고 말하자마자 "반지의 제왕이 뭐죠?"라고 대답했고, 이후 전달된 각본을 보고 "날 보고 요정과 난쟁이들이 나오는 아동용 영화에 출연하라니!!"라는 반응을 보였다.[9] 그러나 우연히 각본을 본 아들이 극렬 톨키니스트여서 아들의 권유로 승낙했다는 비화가 있다.[10] 그리고 모텐슨은 그 해 타임지가 선정한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의 명단에 랭크됐다.[11]

레골라스 역은 처음에 주드 로가 유력했으나 잭슨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물망에 올랐었다고 한다. 레골라스 역으로 확정된 올랜도 블룸은 파라미르 역이 될 뻔했다고...

아르웬은 지금의 리브 타일러가 아닌 클레어 폴라니가 물망에 올랐으나 임신으로 무산되었다.

에오윈 역시 처음에는 미란다 오토가 아니라 우마 서먼이 유력했으나 감독이 거부했고 배우 본인도 마침 임신을 했다고 한다.

간달프 역으로는 숀 코너리가 유력 후보로 꼽혔고 1999년 뉴 라인 시네마는 코너리에게 공식적으로 배역을 제안하며 영화 수입의 10~15%를 주겠다는 통큰 제안을 했지만 코너리는 "원작 소설도 읽고 대본도 읽어봤지만 영화 내용이 뭔 소린지 이해도 못하겠고 날더러 뉴질랜드에서 18개월이나 고생하란 말인가?"라며 거부했다. 흑역사 확정 무엇보다도 반지의 제왕 보고 뭔 소린지도 모르는 이상한 시나리오라 했으니 톨키니스트들의 공적 확정 그 외에 유일하게 톨킨을 만나봤던 관계자인 크리스토퍼 리 경이 간달프 역을 무척이나 탐냈으나 이언 매켈런 경이 자신보다 어울린다는 것을 인정하고 물러났다. 대신 크리스토퍼 리 경은 사루만 역에 캐스팅되면서 엄청난 공헌을 한다.

여담으로 매켈런 경은 인터뷰에서 솔직히 말하면 크리스토퍼 리 경의 출연 영화들만 보고 그를 깔봤는데 그가 사루만 역을 하는 것을 보고 무척이나 놀랐다고 소감을 밝혔다.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최고의 모습만 보여주는 건 아니더군요." 사실 크리스토퍼 리는 우월한 스펙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컬트한 작품에 출연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에[12],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을 거친 내공 깊은 배우인 이안 맥켈런에게는 이상한 작품에서 이상한 배역 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크리스토퍼 리의 산전수전 다 겪은 스펙은 사루만 역에 한 치의 모자람도 없었고, 그 덕에 이안 맥켈런의 오만과 편견 좋지 못한 선입견을 대번에 깨뜨릴 수 있었지만.

3.6. 키스씬 비화[편집]

영화의 본 촬영이 2000년 12월 21일에 끝났는데, 크리스마스 휴가 전에 촬영을 마쳐야 했기 때문에 쉬지 않고 촬영했다. 1~3편 장면들을 같은 날 한꺼번에 촬영했고, 배우들은 이 로케이션 저 로케이션 호출 받고 촬영하러 다니던 상황이었다. 비고 모텐슨은 하루에 8번 의상을 갈아입은 날도 있었다. 왕의 귀환 후반부에 등장하는 대관식 장면은 본 촬영이 거의 끝났을 때 찍었는데, 리브 타일러의 마지막 등장씬 촬영이기도 했다.

비고 모텐슨: 대관식은 아라고른 인생의 정점이다. 이런 씬을 급하게 찍게 되어서 내게는 굉장히 우울한 하루였다.
리브 타일러: 비고랑 키스 씬을 찍었는데 비고가 자기 파트 찍고 나서 다른 곳으로 불려가 버렸다. 쉬는 시간에 촬영팀이 비고 스턴트 대역 배우와 키스하라고 했다. 내 마지막 등장 장면인데 대역과 키스할 수는 없다고 했고, 비고를 도로 불러와서 비고와 키스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왕의 귀환의 클라이맥스이기도 한 이 키스씬은 실제 영화에 쓰이지 않았는데, 그간 길게 이어진 촬영 때문에 체력적인 한계에 다다른 비고 모텐슨이 촬영 스케줄에 쫓겨 급히 찍은 키스씬의 완성도가 좋을 리가 없었다. 결국 피터 잭슨은 본촬영이 끝난지 2년도 더 지나서 2003년 중순에 있었던 왕의 귀환의 대대적인 추가 촬영 때 비고 모텐슨리브 타일러에게 이 키스씬을 다시 찍게 했는데 실제 영화에 나오는 키스씬은 바로 이 추가촬영 때 찍은 장면이다.

본 촬영 때 찍은 키스씬은 확장판 DVD의 부가영상에 있는 메이킹 필름에서 볼 수 있다. 2년 이상 지나서 다시 찍은 추가 촬영 장면이 이어져서 메이킹 필름에 나오기 때문에 두 장면을 비교할 수 있다. 이 키스씬에서는 확실히 비고 모텐슨이 체력적인 한계와 촉박한 스케줄 때문에 완벽히 감정에 몰입해서 찍지 못했다는 게 확연히 느껴질 정도로 키스씬이 좀 엉성한 반면 추가 촬영 때의 키스신은 굉장히 로맨틱한 것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맨 마지막에 샘과 로지가 키스하는 장면에서도 상당히 애를 먹었다고 한다. 샘 역의 숀 오스틴은 이미 결혼한 상태라서 아내가 있는데 키스 씬을 찍는 것에 대해 부담스러워했고, 한 번 만에 찍는다는 조건으로 장면을 촬영했는데 부담 때문인지 만족스러운 장면이 나오지 않아 찍고, 찍고, 또 찍어야 했다.

보다 못한 비고 모텐슨이 옆에 있는 빌리 보이드를 잡아 즉석에서 키스를 하면서 도움을 줬다고. 보이드는 한동안 비고를 쳐다볼 수도 없었다고 했으며 도미닉 모나한은 '호모들'이라고 외쳤다. 촬영 후 오스틴이 피터 잭슨한테 이 사실을 아내에게 꼭 숨겨달라고 해서 잭슨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촬영 다큐멘터리에 이걸 실음으로써 빅엿의 여지를 남겼다.

3.7. 촬영 중 사건사고[편집]

레골라스 역의 올랜도 블룸은 촬영 도중 낙마로 갈비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2편에서 헬름 협곡으로 대피하는 동안 늑대 부대에게 습격당하는 장면에서 앞서 정찰 중이던 레골라스가 뒤에서 달려온 말에 날 듯이 올라타는 장면이 화제가 됐는데, 이는 블룸이 말에서 튕겨나가며 떨어지는 장면을 거꾸로 돌린 것이라고 한다.

비고 모텐슨 역시 마찬가지. 직접 몸으로 부딪히는 전투가 많다 보니 가장 많이 다쳤다. 쓰러져 있는 아라고른의 곁에 이 다가와 고개를 숙이는 장면에서 머리카락을 뜯어먹힐 뻔하기도 했고, 2편에서 오크 시쳇더미 속에서 피핀과 메리의 타버린 검집을 발견하고 분노한 아라고른이 절망 섞인 비명을 내뱉는 장면은 사실 비고 모텐슨이 오크 헬멧 차다가 발가락이 부러져서 내는 고통의 비명이며, 전투씬을 찍다가 검에 맞아 앞니가 부러지기도 했다. 태연히 본드를 붙이고 다시 촬영하면 된다고 했으나 기겁한 스태프들에 의해 병원으로 후송됐다고... 또 두 개의 탑에서 아라고른이 강물에 떠내려가는 장면을 찍을 때 실제로 익사할 뻔했다. 분장하고 있던 옷의 무게와 검 때문에 물에 가라앉은 것. 거기다 승마 장면에서도 낙마할 뻔하는 등, 촬영 내내 목숨을 걸다시피 했다.

4. 평가[편집]

"(영상 말미에) 이제 가장 멋진 《반지의 제왕》의 순간들을 세어보죠. 아 잠깐, 안되겠네요. 왜냐면 너무 많으니까!"


Nostalgia Critic, 영화 《반지의 제왕》의 가장 멍청한 순간들 TOP 11[13][14]

판타지 영화계의 기준점을 세운 기념비적인 작품[15]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왕의 귀환》)을 수상한 최초이자 유일한 판타지 영화

《반지의 제왕》 이전에도 판타지 영화는 있었지만, 이처럼 세 편의 영화 모두가 극찬을 받을 정도로 고른 완성도를 가지며[16] 동일 장르의 후대 작품들에까지 영향을 끼친 것은 《반지의 제왕》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이 영화가 명작이라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다. 대신 판타지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기준을 수십 단계나 높여버리는 바람에, 이후로 나온 판타지 영화들이 대부분 망하게 만들어 버리는 양날의 검이 되기도 했다. 너무 잘나도 죄

B급 영화를 주로 만들어 오던 뉴질랜드 감독 피터 잭슨의 대중적 위상[17]을 단번에 끌어올린 작품이기도 하다. 피터 잭슨은 청소년 시절부터 원작의 굉장한 팬이었다고 하며, 20대가 되도록 아무도 이 소설을 영화화하려고 하지 않자 "내가 직접 만들자"는 생각에서 감독을 맡았다고 한다. 한 예로 《반지 원정대》 초반부에 메리와 피핀이 토마토를 서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토마토는 원작 소설 초판본에만 나오는 과일로 톨킨은 토마토가 샤이어의 기후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여 이후 증쇄본부터는 토마토를 삭제하게 된다. 이 사실을 몰랐던 대부분의 평범한 팬들은 오히려 감독에게 "왜 원작에 있지도 않은 토마토를 집어넣어서 설정파괴를 하냐!"라고 했을 정도니 실로 잭슨의 덕력을 알 수 있는 부분.

《반지의 제왕》은 톨킨이 정립한 판타지 장르의 시각적 이미지, 즉 중세풍의 세계관과 요정, 난쟁이 등의 외형 등을 '실사' 매체로 대중화시킨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오늘날 여타 판타지 영화 및 게임에서 나오는 각종 비주얼적 묘사는 이 영화의 공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원작이 그러했듯 영화도 판타지라는 장르에 있어 하나의 레퍼런스를 만든 것이다. 또한 국내의 경우에는 배급사들이 판타지 영화를 광고할 때마다 광고 문구에 "반지의 제왕을 잇는", "반지의 제왕을 뛰어넘는", "반지의 제왕 제작진"이 거의 대다수 문구에 들어간다. 영화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고서 저런 문구를 넣는 것도 문제지만, 그만큼 반지의 제왕의 영향이 엄청나게 크다는 의미도 되는 것이다.

한편, 영화 《반지의 제왕》은 거대한 세계관과 수많은 캐릭터, 그리고 웅장한 전투씬이 등장하는 스펙터클한 에픽 판타지를 성공적으로 실사화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200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왕의 귀환》이 작품상을 수상한 것도 이런 대서사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아카데미의 성향에 딱 맞아떨어진 작품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이 영화 이후 개봉한 대다수의 에픽 판타지 영화들이 줄줄이 실패한 것을 보면 이 장르의 영화화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전까지 실험 수준에 그치던 모션 캡처 기술의 위력을 처음으로 관객들에게 각인시킨 작품이기도 하다. 모션 캡처는 1970년대에 첫 등장하여 학문적으로만 연구되다가 90년대에 들어서야 영화에서 조금씩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골룸이라는 작품의 핵심에 가까운 하나의 캐릭터를 창조하는 데 모션 캡처가 쓰인 것은 《반지의 제왕》이 사실상 최초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까지도 골룸은 모션 캡처 캐릭터의 훌륭한 교본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워드 쇼어의 음악 역시 빼놓을 수 없는데, 사실 쇼어는 한스 짐머, 존 윌리엄스와는 달리 블록버스터 영화 쪽에서 활약하던 음악가가 아니었다. 《플라이》나 《양들의 침묵》 같은 기괴한 분위기의 스릴러, 또는 《》이나 《에드 우드》 같은 코미디 영화의 음악을 주로 맡았던 편. 《반지의 제왕》에서는 그러한 특성들을 합쳐 기묘하고 어두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서정적이고 광활한 음악을 빚어냈다. 영화 제작 당시, 잭슨 이하 제작진과 배우들은 하워드 쇼어의 음악을 듣고 "이거 딱 가운데땅 그 자체네요"라며 극찬하였고, 또한 라이트모티프가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된 영화음악으로 손꼽힌다. 영화의 메인 테마곡이나 다름 없는 'The Bridge of Khazad Dum'은 각종 TV 프로그램에서도 웅장한 상황을 연출할 때 자주 쓰인다.


반지의 제왕 심포니 콘서트. 하워드 쇼어가 직접 지휘했다.

그러나 모든 영화가 그렇듯, 이 작품도 호평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원작 팬들 사이에서는 톨킨의 소설을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블록버스터로 바꾸어 버렸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톨킨은 《반지의 제왕》을 집필할 때, 비록 어둡고 무거운 신화적 이야기를 그리고는 있지만 그 속의 캐릭터들이 가지는 다양한 인간 군상과 절대반지에 관련된 테마를 더욱 중요시했으며, 이에 따라 전쟁 장면의 묘사는 되도록 말을 아꼈다. 그래서 원작 소설은 그 설정에 비해 상당히 낭만적이고 향수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하지만 피터 잭슨은 거대한 전쟁씬의 묘사에만 집중하는 바람에 인물들의 드라마와 작품의 테마를 약화시켰다는 것이 비판의 주요 골자이다.

톨킨의 아들 크리스토퍼 톨킨 역시 영화판에 대해 몹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 해당 링크는 르몽드 지와 크리스토퍼 톨킨의 인터뷰로 크리스토퍼 톨킨은 피터 잭슨의 영화를 아버지의 작품을 액션 영화로 만들기 위해 내장을 빼버린 것과 같은 작품이었다고 비판했다. 《실마릴리온》의 영화화 판권을 팔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도 이런 생각과 관련이 있을 듯.

5. 대흥행[편집]

15개월 간의 촬영, 총 4년의 제작기간 끝에 완성된 결과물은 세계적으로 흥행하며 각종 상을 석권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반지의 제왕과 해리 포터의 영화화가 모두 성공함에 따라 워너 브라더스는 2000년대 초 판타지 장르 분야에서 엄청난 수익을 거머쥐게 되었다. 또한 피터 잭슨웨타 디지털은 세계적인 CG 업체로 성장하게 되었다. 촬영지인 뉴질랜드도 이득을 봤는데, 비록 자연보호에 매우 까다로운 뉴질랜드 정부의 정책에 따라 촬영 종료 후 세트가 모두 철거되었지만[18], 대신 영화에 나온 수많은 자연풍광들이 자연스럽게 홍보되면서 높은 관광수익을 얻게 되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뉴질랜드 인구수에 맞먹는 4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왔다. 현재는 호빗도 추가되어 반지의 제왕과 같이 뉴질랜드 관광수입의 20%를 책임질 정도니 뉴질랜드가 이 작품의 최고 수혜자일 지경.

흥행 수입은 다음과 같다.

2001년 개봉 반지 원정대 : 8억 7153만 달러(당시 세계 역대 흥행순위 5위)

2002년 개봉 두 개의 탑 : 9억 2604만 달러(당시 세계 역대 흥행순위 4위)

2003년 개봉 왕의 귀환 : 11억 1992만 달러(당시 세계 역대 흥행순위 2위)


영화 세 편의 제작비가 총 2억 8000만 달러인데 약 29억 달러라는 엄청난 수입을 벌어들인 셈이다. 해외로 봤을 때는 주로 영국독일에서 흥행에 성공하였다. 호주뉴질랜드에서도 성공했으며 일본에서도 해리 포터 시리즈에 밀렸지만 준수한 흥행을 거뒀다. 광고비를 빼도 20억 달러가 넘게 흑자가 났다. 더불어 왕의 귀환은 중소 영화사였던 뉴 라인 시네마와 B급 슬래셔 영화를 주로 찍던 피터 잭슨의 최고 흥행작이 되었다.

판타지 영화의 흥행을 장담할 수 없는 예측 불가의 시장이었던 한국에서도 대박을 쳐서 반지 원정대가 387만 관객을, 두 개의 탑이 518만 관객을, 왕의 귀환이 596만 관객을 기록하였다. 당시 대기업 자본의 멀티플렉스 영화관 체인이 이제서야 막 전국적으로 확장하던 시기의 환경과 흥행 영화 관객수를 생각했을 때 이는 상당한 수치이다. (감상전)영화가 세시간이래! 미친! 그걸 누가봐? (감상후)우와!! 다음편 언제 나와? 또한 방송에서도 소재를 이용한 자막이나 개그가 자주 나올 만큼 비관람객에게도 보편적으로 알려졌는데, 이 영화 이후 골룸, 호빗, 엘프, 드워프, ~의 제왕, ~의 귀환과 같은 표현들이 공중파에까지 등장하며 자주 사용되는 등 한국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6. 수상[편집]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3년 연속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그러나 작품상은 왕의 귀환만 받게 되었는데(2004년 아카데미), 1~2편은 영화가 최종 완결된 형태가 아니라서 시각 부분이나 의상 부분만 상을 줬고, 마지막 3편에 상을 몰아주기 위한 의도가 아니었는가 하는 추측이 있다.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의견이다. 아카데미가 원래 그렇게 하기도 했고. 실제로 2004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왕의 귀환은 무려 11개 부문[19][20]을 싹쓸이했다. 그 전까지는 2년간 19개 부문 후보로 선정되었지만 6개만 수상했다. 대부분 시각, 음향편집 부문으로. 당시 왕의 귀환이 아카데미를 휩쓸 때 스티븐 스필버그가 특별히 나타나 작품상을 발표하면서 한 마디 했다. "이건 뭐 오늘은 이 영화가 그냥 다 쓸어버리는군요." 이로서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가 받은 누적 아카데미 상은 총 17개가 되었다. 시상식 후 제작진과 배우들이 모여 축하를 하면서 모든 트로피를 하나의 테이블에 올려놓았는데 테이블이 좁을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판타지 장르는 오랫동안 아카데미에서 찬밥 신세를 받아 왔으나, 반지의 제왕은 아카데미로부터 처음이자 유일하게 인정받은 판타지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21]

7. 원작과의 차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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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작에서는 엄청난 인내력과 자비심, 통찰력을 발휘하며 완성된 인격을 선보였던 프로도가 영화에서는 보호를 필요로 하는 어린아이처럼 바뀌었다. 이 때문에 주인공이 왜 이리 찌질하냐며 불평하는 관객들이 많았다. 원작에서는 나즈굴이나 쉴로브 등에게 나름 적극적으로 대항하고, 아군일지라도 반지 원정대가 아닌 사람에게는 말을 가려하며 절대반지에 대해서는 적절히 숨긴다거나, 필요할 땐 골룸을 협박하기도 하지만 영화에서는 골룸에 말에 속아넘어가 모르도르에서 을 쫓아보내는 등 다소 유약하게 묘사된 편이다. 사실 원작에서 호빗 기준으로도 중~장년기에 접어든 원숙한 프로도에 비하면, 일라이저 우드의 프로도는 그야말로 꽃다운 젊은이에 불과한지라 어쩔 수 없는 변화일지도. 반면 좀 생각이 얕고 충성심만 가득한 캐릭터였던 샘은 훨씬 어른스러워지고 비중도 높아졌다. 영화화의 최대 수혜자?

  • 원작에서는 보로미르의 죽음이 두 개의 탑 초반부에 나오고, 프로도와 샘이 떠나는 모습을 다른 일행은 보지 못하지만 영화에서는 반지 원정대 후반부에 보로미르가 사망하며, 아라고른이 프로도가 내민 절대반지의 시험을 받지만 결국 이겨내고 프로도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장면이 추가되었다.

  • 메리피핀은 샘과 함께 처음부터 프로도와 샤이어를 떠나지만, 영화에선 도중에 우연히 만나게되어 같이 가게 되는것으로 변경되었다. 그와 함께 샤이어에 남아 프로도의 뒷수습을 맡은 또다른 절친 프레데릭은 그냥 삭제되버렸다.

  • 톰 봄바딜이 프로도를 도와주는 장면은 영화에서 삭제되었다. 일단 원작에서도 정체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인물이고, 톰 봄바딜이 나오는 장면은 호빗 4인방이 아무 도움없이 처음 길을 떠나 위협을 받고 있던 시기인데 이때 절대반지의 영향을 받기는커녕 반지를 이리저리 가지고 노는 톰 봄바딜이 등장했다면 긴장이 한번에 깨지고 전개마저 꼬였을 것이다. 나즈굴에게 부상을 입은 프로도를 깊은골로 옮기는 글로르핀델 또한 그의 역할이 아르웬에게 넘어갔기 때문에 영화에서는 출연하지 않게 됐다.

  • 원작에서 엔트들이 아이센가드를 공격하는 장면은 메리와 피핀의 회상으로 어물쩍 넘어가는 대목이고, 엔트들은 이미 사루만의 만행을 견디지 못해 메리와 피핀이 오거나 말거나 사루만을 혼내줄 작정이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건 우리들의 전쟁이 아냐"라고 우기며 전쟁에 관여하지 않으려 했다가, 나무수염사루만에게 학살된 나무들을 보고 경악한 후에야 참전한다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회상으로만 잠깐 나왔던 엔트들의 아이센가드 공격 장면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 사루만의 최후가 원작과 사뭇 다르다. 원작에서는 사루만이 아이센가드를 탈출한 후 반지전쟁이 끝난 거의 최후반부 즈음 샤이어에 다시 나타나 반란을 일으키다가 최종적으로 죽음을 맞이하는데[22], 영화에서는 샤이어 전투가 빠졌으므로 그의 최후도 불가피하게 수정해야 했다.[23]
    영화에서 각색된 사루만의 최후는 이러하다. 왕의 귀환 초반부에 사루만이 오르상크 꼭대기에 버티고 서서 반지 원정대 일행과 서로 신경전을 벌이는데(여기까지는 원작과 동일), 세오덴이 그리마를 다시 로한인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말에 동요하는 그리마를 보고 "네놈에게 자유 따윈 없다!"라고 일갈하면서 때리자 빡돈 그리마한테 칼을 맞아 추락, 밑에 있던 기어 모양의 장치에 찔려 사망한다. 그런데 이 장면은 확장판에만 들어갔고 극장판에선 삭제되는 바람에 영화 진행 중 갑자기 증발해버린 꼴이 되었다.[24] 참고로 원작에서는 간달프와의 설전에서 완벽히 지고 힘을 잃어 오르상크에 갇힌 채 엔트의 감시를 받았으나, 그가 이미 힘을 잃어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나무수염이 도망가는 걸 방관했다. 사실 그건 뻥이고 트롤링하다가 죽었다 카더라

  • 원작에서는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곤도르였지만 영화에선 그 이미지가 급하락했다. 파라미르가 원작과는 달리 형 보로미르처럼 절대반지의 유혹에 휩쓸리며[25], 섭정 데네소르 역시 원작에서는 나라를 걱정하는 군주의 고뇌가 생생히 표현됐지만 영화에서는 현실도피를 일삼으며 기마대를 점령된 요새도시에 돌격시켜 소모하질 않나, 결국엔 멀쩡히 살아있던 아들을 태워죽이려고 하다가 간달프에게 지팡이로 얻어맞는다. 게다가 남부 영지에 있던 곤도르군의 북진과 백조 기사단, 그리고 원작에선 꽤나 비중있게 나오던 백조 기사단장 임라힐은 아예 삭제되고 죽은 자들의 군대미나스 티리스를 구원하는데다 곤도르 대왕국이 아니라 미나스 티리스 도시국가가 되었다. 이실두르, 아라고른의 영웅적인 면모가 깎여나가는 등 영화에선 전반적으로 곤도르 쪽 인물들의 너프가 심하게 이루어진 감이 있다. 그리고 원작에는 미나스 티리스 전투 직전, 곤도르를 돕기 위해 각지에서 수많은 원군이 오는 장면이 있지만 영화에서는 결국 잘려나갔다.

  • 왕의 귀환에서 앙그마르의 마술사왕간달프를 제압한다. 정확히는 간달프의 지팡이를 마법으로 깨부숴 버리고 그를 협박한다. 그야말로 엄청난 버프인 셈. 간달프는 본래 신적 존재인 마이아이므로 원본이 인간인 마술사왕은 죽었다 깨어나도 간달프를 이길 수 없다. 일단 곤도르가 절망적으로 밀리고 있던 스토리의 흐름을 깨지 않기 위한 선택인 듯한데, 이 부분에 대해 팬들 사이에서 굉장히 큰 논란이 있었다. 극장판에서는 삭제되고 확장판에만 들어있는 내용이다. 원작에서는 두 인물이 만나 대치하는 장면이 상당히 위엄있고 긴장감있게 그려지지만 전투는 벌이지 않고 잠깐 마주칠 뿐이다.

  • 원작에선 반지 원정대의 분열 이후로 프로도 파트와 아라고른 파트가 동시에 진행되지 않고 한쪽이 한참 진행된 이후에 다른 쪽으로 넘어가서 진행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도가 모르도르에 도착했는지 안 했는지 모란논 전투까지는 알 수가 없었고, 따라서 사우론의 입이 아라고른한테 프로도를 잡았다고 허풍을 치는 것이 진실인지 여부를 알 수 없어 이후에 샘과 프로도가 탈출하여 반지를 파괴하는 여정은 일종의 반전 같은 작용을 했다. 하지만 영화를 그런 식으로는 만들 수 없는지라 원작의 사건의 시간선을 전부 해체해서 두 파트가 동시에 진행되도록 재편성했다. 이 때문에 원작에서 쉴로브는 두 개의 탑 후반부에 나오지만 영화에서는 왕의 귀환 중반부에 나온다. 동일 시간대로 진행을 맞추기 위한 선택이었던 것.

  • 왕의 귀환 미나스 티리스 공성전에서 오크 투석기에 의해 성벽이 파괴되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실제로 말이 안된다. 미나스 티리스의 성벽은 누메노르의 기술로 제작된 관계로 성이 위치한 지반 자체를 엎는게 아닌 이상 절대로 파괴할 수 없다. 원작에서는 미나스 티리스 수비군들이 오크의 투석기를 보면서 비웃기까지 한다.[26] 마술사왕 또한 성벽에 헛수고를 할 생각은 없다고 말할 정도로 그나마 취약점인 성문을 제외하면 극강의 방어요새다. 또한 성문도 그론드만으로 윗부분이 부서지는 연출이 나왔지만 원작에서는 마술사왕의 주문의 도움을 받았다.

  • 원작과의 차이라기 보단 단순한 고증 오류에 가깝지만, 곤도르 수비군의 갑옷이 무용지물이다. 수비군은 주요 부위는 통짜 철판에 틈새는 사슬갑옷으로 막는 트랜지셔널 아머 형식인데, 이런 갑옷의 철판은 웨일스 롱보우의 영거리 사격도 막아내고 틈새가 아니면 검은 아예 들어가지도 않는 물건이며, 따라서 오크가 쏘는 조잡한 단궁과 무뎌빠진 글레이브 따위엔 죽었다 깨어나도 뚫리지 않는다. 빠따처럼 휘두른 글레이브에 배 맞고 쓰러지는 장면이나, 오스길리아스로 돌격하던 기마대가 단궁에 흉갑이 뚫려 쓰러지는 장면은 연출에 있어선 고증오류인 셈. 수비군 하나하나가 좋은 장비와 높은 숙련도를 바탕으로 압도적인 교환비를 가져오나, 물량을 이기지 못해 하나하나 쓰러지는 식으로 전투씬을 연출했다면 더 훌륭했을 것이다.

8. 엄청난 고증[편집]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건물과 복식은 실제 고대, 중세의 역사 속 건축과 복장 양식을 바탕으로 재창작되었다. 아르웬의 의상을 비롯한 드레스 등은 삽화를 참조한 복식 위에 의상 제작팀의 노가다가 아낌없이 발휘되었으며, 작중 등장하는 갑옷 역시 전부 수제작으로 만들어졌다. 엘프의 뾰족귀는 처음에 좀 더 길게 하려 했으나 특수분장의 라텍스 고무가 무게를 견디지 못해 지금의 길이로 변경되고, 여기에 예비 스페어를 잔뜩 준비한 채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특히 의상 에피소드 중 왕의 귀환 편에서 아라고른을 만나는 아르웬의 장면은 클라이막스에 맞도록 연두색부터 노란색까지 화사하면서도 엄청난 수고가 들어간 그라데이션 의상이었는데, 막상 편집 과정에서는 아르웬의 클로즈업 씬으로 처리되어버려 잘 드러나지 않은 턱에 의상팀이 마음 아파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200점이 넘는 아름다운 검과 갑옷 등이 실물 소품으로 제작되었다. 검은 문 앞의 전투를 촬영할 때는 뉴질랜드군 사격 훈련장을 촬영 장소로 섭외해서 뉴질랜드군 병사들이 엑스트라로 출연했는데, 이들이 재밌다고 그 근사한 소품들을 가지고 진짜로 치고받고 싸우는 바람에 대부분 작살이 나 버렸다.

그리고 제작팀 중 금속 공예 전문 두 사람은 영화가 제작되는 기간 내내 사슬 갑옷 소품을 만들기 위해 사슬을 꿰는 일만 했는데, 결국 두 사람 다 지문이 싹 닳아 없어졌다는 일화가 있다. 엘프 의상과 갑옷, 무기를 제작한 팀의 한 사람은 스스로도 입고 싶어서 엘프 엑스트라로 참여했는데, 잘 보이려고 일부러 가운데 자리에 섰지만 카메라가 돌아가자 자기 바로 앞으로 비고 모텐슨이 걸어나오는 바람에 얼굴은 안 나왔다고 한다. 이 외에도 아라고른의 의상을 제작하고 입혀주는 팀이 곤도르 병사로서 아라고른의 옷을 입혀주는 까메오 장면을 촬영했지만 러닝타임 문제로 편집되었다. 또한 오크 병사들의 갑옷은 일일히 다른 디자인으로 만들었고 각자의 갑옷마다 뒷설정이 다 붙어있었다고 한다. #[27][28]

앙그마르의 마술사왕이 휘두른 철퇴도 실제로 만든 것으로, 에오윈이 영화에서 철퇴를 보고 식겁하는 건 연기가 아니라 진짜였다.[29]

영화 소품, 건축물, 구도 등은 톨킨 전문 삽화가(알란 리, 존 호우)가 먼저 자신이 상상하는 대로 그려내면, 그걸 기반으로 제작팀이 현실적인 면을 고려하여 수정 후 제작에 돌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미나스 모르굴 앞에 만들어진 두 개의 괴물 석상 역시 알란 리가 상상하여 그린 가고일을 참고하여 만든 것이다. 이 경우에는 특별히 수정한 것 없이, 제작팀이 그림 그대로 실물 크기로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자신이 그렸던 것이 실제로 만들어져 있는 것에 큰 감명을 받은 알란 리는 그것을 하나 가져가 자신의 정원에 장식해놓았다.

이 영화의 검을 제작하기 위해 초청받은 이는 해외에서 이름난 중세 검 마니아인데, 촬영에 협력하는 조건으로 배우들 전원이 아침마다 검술 훈련을 하도록 요청했다. 영화 속에서 중세의 실제 검투술이 살아나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아라고른 역의 비고 모텐슨은 이를 위해 매일 검을 가지고 다녔으며, 낚시를 할 때도 어깨에 검을 기대고 있었다. 이것 때문에 촬영장 인근에서 뉴질랜드 경찰에게 체포당했다. 웬 남자가 밤중에 칼을 들고 어슬렁대니 주민들이 신고한 것. 경찰에게는 저 너머에서 사극을 찍는 배우인데 배역에 몰입하느라 갖고 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이후 비고 모텐슨은 3부작을 찍는 동안 자신과 동고동락한 검이 마음에 들어 영화 촬영이 끝날 무렵 피터 잭슨 감독 앞에 찾아가서 왕 앞에서 하는 것처럼 한 쪽 무릎을 꿇고 '이 검을 제가 가져도 되겠습니까?'라고 정중히 물었고 피터 잭슨 감독은 '물론이지요.'라고 대답하고서 칼을 선물로 주었다.

미나스 티리스의 문 역시 실제로 만든 것으로, 제작진 모두가 "그 문 진짜 엄청나게 컸음"이라면서 회상할 때 혀부터 내둘렀다. 영화에 나오는 모든 장소들은 삽화가 앨런 리의 도움을 얻어 실제로 만들었고 영화 촬영에도 매우 유용하게 써먹었다. 앨런 리는 촬영용 미니어처들만 보고도 이 영화 대박날 거라며 기대했다고 한다. 또한 3편 펠렌노르 평원의 전투에서 투석기의 돌에 맞아 파괴되는 장면은 진짜로 세트를 부숴가며 찍었는데, 이 장면을 잘못 찍으면 3개월에 걸쳐 지은 미나스 티리스를 두 번 다시 복구할 수 없었으므로 다들 잔뜩 긴장해서 촬영했다고 한다. 무척 아름다운 세트였던지라 남겨서 관광자원으로 써 달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촬영 이후 깨끗이 철거했다. 다른 세트들도 촬영 뒤 전부 해체하였다.

참고로, 감독 피터 잭슨은 키가 작고 통통해서 호빗족과 사이즈가 크게 다르지 않아 프로도가 살던 집 세트장에서 사는 것이 어떠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거기다 촬영 중에 김리의 도끼를 들기도 했는데, 빼도박도 못하게 드워프 포스였다.

9. 한국 방영[편집]

1편인 반지 원정대는 2003년 9월에 KBS에서 추석특선영화로 첫 방영되었고 2004년 2월에 설특선영화로 재방, 2005년 1월에는 토요명화로 삼방하였고 2006년 6월에는 독일 월드컵 특선영화로 사방하였다. 2편인 두 개의 탑은 2004년 9월에 추석특선영화로 첫 방영되었지만 이때부터 방영권이 KBS에서 SBS로 넘어갔으며 1년 후에 다시 추석특선영화로 재방하였고 2년후에 추석특선영화로 삼방하였다. 3편인 왕의 귀환은 2005년 9월에 추석특선영화로 첫 방영하였고 2년 후에 다시 추석특선영화로 재방하였으며, 2008년 연말에 신년 특선영화로 삼방하였고 2009년 9월에는 영화특급 코너에서 사방하였다.

10. 기타[편집]

해외 로케를 포함한 긴 시간 동안 동고동락하면서, 촬영팀은 거의 가족처럼 친해져 이후에도 종종 교류하고 있다고 한다.[30][31] 중세와 비슷한 세계를 다루고 있던지라 각 배우들이 자기들의 말과 정이 들어서, 대부분이 영화가 끝난 후 구입했다고 한다. 에오윈 역의 미란다 오토는 아라고른 역의 배우 비고 모텐슨의 도움으로 돈과 목장을 빌릴 수 있었다. 참고로 가장 마지막에 촬영된 장면은 <왕의 귀환>의 끝부분에서 프로도가 레드 북을 완성하는 장면이다. #[32]

DVD 확장판이 개념차기로 유명하다. 1편은 30분, 2편은 43분, 3편은 50분의 분량이 추가된 점도 있지만, 코멘터리가 각각의 영화에 총 4종류나 된다. 무엇보다 메이킹 영상의 질이나 양이 압도적인데, 각각의 영화 메이킹 영상이 5시간, 총 15시간은 된다! 메이킹 영상에는 단순한 배우들 인터뷰 같은 것뿐만이 아니라 톨킨에 관한 다큐멘터리, 대본에 관한 이야기, 실제 촬영 방식이나 디지털 관련 자료, 음악, 편집 과정 등이 들어있다. 즉, 이 메이킹 영상 전체를 보고 나면 영화 한 장면 한 장면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촬영 비하인드 스토리도 굉장히 많은데, 이 문서 대부분의 내용이 확장판 메이킹 영상에서 나온 것이다. 비단 영상만이 아니라 사진이나 스케치 등도 수백 장이 있다. 덕분에 트릴로지 확장판을 사면 영화 디스크 6장, 메이킹 디스크 6장으로 구성이 된다. 블루레이 확장판은 아예 메이킹 디스크를 3장 더 추가해 총 디스크가 15장. 그야말로 양과 질이 괴물 같은 수준이다. 반지의 제왕과 맞먹는 명작은 있어도 반지의 제왕과 맞먹는 디스크 패키지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이 확장판에 대한 의견은 다소 엇갈린다. 일부 취향을 제외하고 극장판의 경우는 1<2<3 순으로 높은 평을 받지만, 확장판은 추가된 분량이 오히려 템포를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2편 확장판에서 나무수염이 엔트들과 기나긴 회의를 하는 장면, 그리고 3편 확장판에서 몇 분도 채 안 나오는 파라미르와 에오윈의 멜로 씬은 차라리 안 넣느니만 못했다는 평가가 있다. 특히 파라미르와 에오윈이 사랑에 빠져드는 이야기는 원작에서도 나름 공을 들여 묘사한 부분이기에 더욱 아쉬움이 크다.

여담이지만 DVD 확장판에는 이스터 에그가 하나 있는데, 장면 선택(Select a Scene) 메뉴에 들어가 보면 하단에 "* 새로 추가된 장면 ** 길어진 장면"이라는 글귀가 있다. 이 글귀는 사실 숨겨진 버튼이며 누르면 특전 영상이 재생된다. 1편 1부엔 잭 블랙이 출연하는 코미디 영상[33], 1편 2부엔 <두 개의 탑>의 예고편, 2편 1부엔 MTV 시상식에서 골룸이 상을 받는 장면[34], 3편 1부엔 도미닉 모나한[35]이 정체를 숨기고 일라이저 우드를 인터뷰하는 코미디 영상, 3편 2부엔 감독 피터 잭슨이 반지의 제왕의 이상한 속편 제작을 의뢰받는 코미디 영상이 있다.

여담으로 영국의 록밴드 비틀즈도 이 소설에 반하여, 영화화를 만들자고 제안했지만, 원작자인 톨킨에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들의 열정은 책을 읽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존 레논은 멤버들에게 '반지의 제왕'을 영화로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했다. 다른 멤버들은 제안에 동의했고, 폴 매카트니는 프로도, 링고스타는 샘, 조지 해리슨은 간달프, 존 레논은 골룸을 맡겠다고 선언한다. 비틀즈는 반지의 제왕을 함께 만들 감독을 찾았고, 그들 앞에 나타난 감독은 스탠리 큐브릭이었다. 스탠리 큐브릭은 '샤이닝',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등 영화 역사상 창의적인 작품을 만드는 거장으로 꼽혔다. 당시 스탠리 큐브릭은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등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비틀즈는 스탠리 큐브릭에게 감독을 제안했고, 스탠리 큐브릭은 감독직을 흔쾌히 수락해 '반지의 제왕'의 영화화가 진행됐다. 하지만 한 달 뒤, 영화 제작은 무산됐고 여기서 비틀즈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비틀즈는 직접 원작자인 톨킨에게 연락을 취했고, 톨킨은 편지로 답을 보냈다. 돌킨은 "'반지의 제왕'을 영화로 만드는 것을 허락할 수 없습니다. 이해 바랍니다"라며 거절의 의사를 밝혀왔다. 비틀즈는 계속해서 톨킨을 설득했으나 결국 비틀즈가 만드는 '반지의 제왕'은 무산됐다.

그로부터 37년 후인 2002년, 비틀즈의 사연은 피터 잭슨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알려졌다. 반대 이유는 톨킨이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의하면 1964년 아내인 이디스와 함께 조용한 샌드필드가로 이사를 갔다. 옆집에서 시끄러운 록밴드 소리는 밤낯없이 계속되었고, 옆집 록밴드를 비틀즈로 비유하였는데, 따라서 평소 톨킨은 비틀즈를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일부에선 편지를 확대 해석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톨킨은 영화화할 경우 의도치 않은 해석이 이루어지는 것을 경계한 것이라는 의견도 분분했다. 실제로 톨킨은 1957년의 애니메이션 제작도 반대를 했다고 한다. 이후 톨킨은 1973년 사망해 그의 아들 크리스토퍼 톨킨에 의해 영화화가 허락되었다. 그는 결국 반지의 제왕이 소설로만 남기를 원했던게 아닐까 싶다. #

11. 바깥 고리[편집]

[1] # 가장 많은 관객 지지를 얻었지만 2위. 1위는 오즈의 마법사.[2] 2010년 엠파이어지, 2016년 Screenrant지 모두 반지의 제왕 실사영화 시리즈를 최고로 손꼽았다. 그 뒤로 꼽히는 3부작들은 대부 시리즈, 토이 스토리 시리즈, 스타워즈 시리즈, 다크 나이트 시리즈...모두 어마어마한 영화들이다.[3] 나무수염의 목소리 역할도 맡았다.[4] 국내 영화팬들에겐 타이타닉의 선장 역으로 잘 알려진 배우.[5] 과거 반지의 제왕 애니메이션도 2부작으로 나온 바 있다.[6] 원작에서 프로도는 반지를 갖고 몇십년간 호비튼에 머물렀으며 여행을 떠났을 때는 50세였다.[7] 그런데 원작자 톨킨은 매우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8] 캐스팅 후 뉴질랜드로 날아가자마자 찍은 첫 촬영이 나즈굴로부터 호빗들을 구하는 전투씬이었다. 뒤늦은 캐스팅 때문에 검술 연습을 하지 못한 채 촬영에 들어가야 했지만 우려와 달리 멋지게 촬영을 소화해냈다.[9] 각본을 집구석에 던져놨다고 표현했을 정도였다.[10] 이후 그는 아라고른 역에 푹 빠져 촬영이 아닐때도 아라고른의 검을 차고 다녔다. 어느날 이를 수상히 여긴 주민의 신고로 경찰서로 연행된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11] 그는 이 결과를 보고 "내가 아라고른을 맡지 않았다면 이런 평가를 듣지 못했을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선정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라고 대답했다. 오오 쿨가이 오오[12] 젊은 시절 제일 잘 알려진 배역이 다름아닌 드라큘라다..[13] 노스텔지어 크리틱은 이런 자잘한 단점이 있음에도 본 3부작이 역대 최고의 트릴로지 중 하나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한다고 언급했다.[14] 여담으로 크리틱의 "~의 멍청한 순간들" 시리즈에는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이나 크리스토퍼 리브 주연의 《슈퍼맨》,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 2》, 스티븐 스필버그의 《쥬라기 공원》 등이 포함되어 있다. 대차게 깠던 《벼랑 위의 포뇨》를 제외하면 대부분 크리틱 본인이 좋아하는 영화들이란 게 아이러니.[15] 그래서 세계관을 공유하는 《호빗 실사영화 시리즈》도 그 전에 나온 반지의 제왕의 비교대상이 되어야만 했다. 《반지의 제왕》에 비해 못 미친다는 게 중론.[16] 반지의 제왕 시리즈는 세 편 모두 피터 잭슨이 감독을 맡아서 시리즈 전체의 예술적 일관성이 매우 뚜렷하다. 반면 해리 포터 시리즈의 경우 각 편마다 감독이 달라 영화의 색깔이 조금씩 차이가 난다.[17] 사실 피터 잭슨은 이전에도 베니스 은사자 상을 탈 정도로 명망있는 감독이었다.[18] 반지의 제왕 당시 촬영지에는 여기서 촬영했습니다 하는 자료사진과 팻말 정도만 남아있다. 하지만 이후 호빗을 찍으면서 새롭게 지은 호비튼은 영구적으로 건설되었다! 2013년엔 호빗의 인기에 힘입어 벌어들인 관광수입이 4조원에 달한다.그도 그럴것이, 입장로가 졸라게 비싸다. 기념품은 한국 관광객들을 거품물게 한다.[19] 미술상, 의상상, 감독상, 편집상, 분장상, 음악상, 주제가상, 작품상, 음향상, 시각효과상, 각색상.[20] 이는 《벤허》, 《타이타닉》과 함께 역대 최다관왕 기록이자 후보에 오른 부문을 모두 수상한 유일한 영화이기도 하며, 아쉽게도 노미네이트가 되지 못한 음향효과상과 촬영상까지 노미네이트가 되었다면 배우,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외국어영화 부문을 제외한 스태프 부문(전체 13개)에서 전부 수상할 수도 있었다.[21] 반면 놀랍게도 영화계에서 더 높게 평가받던 SF 장르는 반백년이 넘는 아카데미 작품상 도전에도 불구하고 다른 분야의 상은 있지만 아직 작품상은 하나도 없다. 안습[22] 인간 불량배들을 거느려 샤이어를 정복하고 꼭두각시 호빗 지도자를 내세워 학정을 벌여 샤이어를 아이센가드처럼 숲을 갈아엎고 기계장치로 채워넣다가 저항군 호빗들에 의해 진압당했다. 사실 이 반란의 끝에서도 프로도의 관용으로 목숨을 부지하고 그대로 떠날 수 있었으나, 프로도가 그리마를 용서하려는 걸 보고 배가 아팠는지 끼어들어 그리마가 한 짓(꼭두각시 호빗 지도자를 살해한 것이 그리마다. 근데 그건 어디까지나 사루만의 명령에 의한 일이었다.)을 까발리고, 항의하는 그리마를 지팡이로 때리다가 분노한 그리마에게 칼을 맞아 죽는다.[23] 절대반지의 파괴와 사우론의 파멸이 전체 극의 클라이맥스이므로, 이 대목까지 다루다간 너무 질질 끈다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실제로 샤이어 전투가 빠진 내용만 가지고도 극장판은 3시간 20분, 심지어 확장판은 4시간 분량이다.[24] 크리스토퍼 리는 사루만이 자신이 직접 설계한 장치 위에 추락해서 꿰뚫려 죽는 이 각색을 굉장히 좋아했다고 한다. 그런데 극장판에서 짤려버려서 꽤 낙심했고 잭슨은 이 대배우를 달래느라 고생 좀 했다. NC는 "이런 완벽한 장면을 자르다니 피터 잭슨이 미쳤다!"라며 가장 멍청한 반지의 제왕의 장면들 톱 11에서 길길이 날뛰었다.[25] 다만 원작에선 파라미르가 너무 가볍게 반지의 유혹을 이겨내버렸다...절대반지의 힘을 생각한다면 조금 석연치않던 부분이 오히려 영화상 각색을 거치며 자연스러워진 부분[26] 다만 성벽 자체에는 전혀 손상이 없었고 성벽 위의 난간이 부서진게 다라는 점을 참작할만하다.[27] 가죽 갑옷은 하위계층의 오크가 입고 길쭉하면서 뭉게진 이상한 갑옷은 못생긴 오크에게, 가벼운 복장은 정찰병 오크에게, 단단하고 무거워 보이는 갑옷과 무기는 버서커 오크에게 지급되었다고 한다.[28] 참고로 오크족 복장 중에 벨트는 2만 개가 넘게 제작되었으나, 오크들이 갑옷을 벗는 장면이 없어 영화 내내 오크의 벨트를 볼 일이 없다.[29] 다만 여기에는 슬픈(?) 사연이 있는데, 처음에는 철퇴를 적당히 휘두를 수 있는 크기로 제작했지만 크고 아름다운 철퇴를 원했던 잭슨이 계속 크기를 불리도록 부탁했고,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잭슨의 마음에 드는 크기로 만들었는데 배우는 물론이고 스턴트맨을 포함한 그 누구도 들지를 못해서 결국 CG 처리했다.[30] 9명의 반지 원정대 중 김리를 제외한 8명은 요정어로 9를 나타내는 작은 문신을 실제로 했다. 레골라스 역의 올랜도 블룸캐리비안의 해적: 블랙 펄의 저주를 보면 팔뚝에 있는 문신을 확인할 수 있다.[31] 제작진 일가족들이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 피터 잭슨 본인도 3번 가량 나왔다고 하니 찾아보자.[32] 이 때 잭슨은 촬영이 끝나는 것이 아쉬워 완벽했는데도 여러 번 다시 찍었고, 결국 촬영이 끝나자 프로도 역의 일라이저 우드를 끌어 안고 그동안 잘해줘서 고맙다고 엉엉 울었다.[33] 잭 블랙이 리븐델 회의 전날밤에 술을 먹고 그곳에다가 절대반지를 꼈는데 도통 빠지질 않는단 설정으로 리븐델 회의를 각색했다. 잭 블랙의 중요부위를 쳐다보면서 "You have my sword"라고 하는 아라고른과 "And my axe"라며 도끼를 들어올리는 김리가 압권. 유일하게 자막이 없으므로 주의. 블루레이 확장판에는 자막이 있다.[34] 2편 2부엔 특전 영상이 없다.[35] 메리아독 역의 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