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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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사례
2.1. 역사적 사례2.2. 전체주의극단주의 2.3. 종교2.4. 미국2.5. 학문2.6. 대중매체
3. 대한민국의 경우4. 위험성5. 어록6. 같이 보기

1. 개요[편집]

Anti-intellectualism. 反知性主義.

제대로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는 것. 교육, 철학, 예술, 과학, 지성, 지식인 등에 대한 적대감과 불신을 갖고 비실용적이라고 비판하며, 사고에 대해 감성의 우위, 논리에 대해 직관의 우위, 비판적 숙고보다 즉각적인 행동의 우위를 주장하고, 수단보다 결과를 우선시하는 사상이다.

반지성주의라는 용어가 널리 퍼지게 된 것은 1963년 미국의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가 <Anti-intellectualism in American Life>를 출판하면서부터다. 호프스태터는 1950년대를 휩쓴 매카시즘의 광풍과 1952년 대통령 선거에서 대중들이 지적인 아들라이 스티븐슨 민주당 후보에게 공공연히 적개심을 표출하던 현상에 주목해서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 책은 미국의 반지성주의라는 제목으로 국내에도 번역 출판되었다.

근본주의, 전체주의, 파시즘 정부가 정치적 반대자를 억압하기 위해 반지성주의를 조작하고 이용한다. 전체주의는 집단의 체제 유지를 우선시하라고 강조하며 세뇌에 가까운 우민화에 의존하므로, 학문에 기반한 소수의 비판을 억누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례에서는 사상적인 이유에서 지식인 계층을 제거하려 드는 것보다는 그저 단순히 지식인 계층이 권력 유지에 장애물이 되기에 적대하는 일이 훨씬 잦다. 하술될 소위 민중의학 같은 경우가 오히려 좀 더 옛스러운 범주에서의 반지성주의라고 할 수 있다.

반지성주의자들은 기존의 지식인들이 다수의 대중과 격리된 엘리트에 지나지 않으며 권력과 여론 등을 독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이러한 지식인들과 대립하며 대중들의 의견을 대변하는 옹호자라고 주장한다. 주간조선 기사에서는 전문가 집단이 갖고 있는 배타성과 일반인 집단이 갖고 있는 반감이 전문성에 대한 불신을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하면서, 이제는 양측 사이에서 소통을 매개할 수 있는 소통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제안한 바 있다. 기사 서두에서 언급되는 집단은 다름아닌 안아키. 믿으려고 해도 못 믿겠네 [그런데]

2. 사례[편집]

2.1. 역사적 사례[편집]

진시황이 후생(侯生)과 노생(虜生)을 비롯하여 자신을 비판하는 학자들을 파묻어 버렸던 분서갱유도 넓게 보자면 반지성주의의 일종. 반지성주의의 엑기스는 2천년이 넘게 지난 뒤 문화대혁명을 통해 아주 제대로 구현되어서, 중국 전체의 지성과 사상과 의식과 미래를 이끌어 갈 동량이 사라지거나 크게 후퇴했다.

서양중세가 반지성주의에 찌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는 사실상 중세의 시대상에 대한 편견 및 고정관념이다. 플랫 에러 같은 경우처럼 이런 주장에는 오히려 사실과는 정반대인 거짓 주장들이 적지 않다. 중세의 시대상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중세 문서를 참고할 것.

2.2. 전체주의극단주의 [편집]

나치 독일나치당 정권이 자신들의 체제에 비판적인 지식인들을 "유대인", "나약한 엘리트" 로 규정하고 정치적 탄압을 가한 것은 훌륭한 반지성주의의 사례이다. 아돌프 히틀러의 저서인 《나의 투쟁》에서도 반지성주의는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고.

폴 포트크메르 루주는 반지성주의의 가장 대표적이면서도 극단적인 사례인데, 예를 들어 국민들에게 무슨 대답을 할 때 1초 이상 대답이 늦어지면 붙잡아서 고문을 한다든지,[2] 안경 쓴 사람이나 양복이 있는 사람이나 이 부드러운 사람은 다 죽이라든지, 어떤 사람을 길에서 영어로 "hey" 라고 불러서 뒤돌아보면 먹물 먹었다는 뜻이니 역시 잡아 죽인다든지... 그야말로 반지성주의의 알파에서 오메가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북한 역시 반지성주의와 굉장히 밀접하다. 김일성은 1인독재 체제를 확립하기 위해서 인텔리(지식인) 계층의 영향력과 기존의 모든 사상을 말살해버렸는데, 이 과정에서 주체사상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모든 문제를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믿는 지식인들이 자유롭게 자신들의 의견을 발표할 수 있다면 독재가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체사상은 반지성주의와 지식인에 대한 적개심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과학적 사실이 A를 가리키고 있어도 아기돼지 꿀꿀이가 B가 사실이라고 말하면 꼼짝없이 B라고 발표해야 하는 곳이라...[3] 결국 얘네도 정상적인 의미에서의 지적 성실성은 사실상 기대할 수 없는 한심한 수준. 이런 현실에서 무슨 발전이 있고, 혁신이 있겠는가? 주체사상과 유일영도체계가 확립된 이후에 북한이 나날이 퇴보하는 이유도 이것이다.

굳이 김일성이 아니더라도, 모든 독재자들은 지식인 계층과 이성을 적대시하고, 항상 감정적 선동을 선호한다. 소위 우민화 정책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나오는 것이다. 대중이 개돼지 상태에 머무를 때 다루기가 쉽기 때문이다. 때문에 모든 독재는 언제나 지적성실성과 사고의 자유를 내세우는 지식인을 탄압한다.

이런 측면에서 모든 종류의 극단주의도 반지성주의적인 측면이 나타난다. 극단주의 사상에 심취한 대중들은 자신들의 신념과 어긋나는 부분을 지적하는 지식인들에 대해서 적개심을 표출하며, 말살하려고 든다. 정치적 극단주의에 빠진 사람들이 과학적 증거를 무시하고 음모론에 열광하던가, 종교극단주의 세력들이 모든 종류의 과학기술을 적대하는 것은 종종 보이는 현상이다.

2.3. 종교[편집]

탈레반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 집단들은 이슬람과 무관한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작태를 부리고 있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이슬람 도래 이전의 수많은 역사 유적폐허로 만들었으며 IS는 서구의 과학기술과 철학에 대한 노골적인 증오를 표출한다. 그 예로 모술 지역을 점령한 후 "무신론과 부도덕한 서적들을 불태우겠다"고 공언하며 공공 도서관에서 6,000여 권의 과학, 기술, 철학, 역사, 종교 관련 서적들을 싹 불태워 버렸다. 그런데 정작 이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혐오해 마지 않는 서구기술의 총아인 트위터 등의 SNS로 열심히 선전선동을 일삼고 있다.

탈레반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적어도 종파를 막론하고 극단주의적인 종교인들이 반지성주의적인 면모를 보이는 것은 흔해 보인다. 미국이나 극우 성향의 한국의 개신교 역시 이런 문제가 종종 제기되어 왔다. 특히 신비주의(charismatic) 계통이나 복음주의 계통에서 유난히 반지성주의적인 측면이 심하다. 또 어떤 이들은 덮어놓고 무조건 "믿을 것" 만을 강요하고 의심을 거부하는 측면이 반지성주의와 상통한다고도 생각한다. 이러한 근본주의 계통에서는 온건파 신학자들을 '믿음이 약한 먹물들'로 폄하하기도 하고, 진보적 성향을 보이는 신학자나 교회는 적그리스도로 간주해버린다.[4] 그런데 창조과학회 같은 단체들이 극우 성향 교회에게 환영받는 것을 보면, 어쩌면 이들은 지식인들을 거부한다기보다는 단순히 열폭하고 있는 것인지도?[5]

현대 기독교가 반지성주의로 타락했다고 분석하는, 한번쯤 읽어볼 만한 글.#ㅍㅍㅅㅅ #뉴스엔조이 근본주의 개신교가 반지성주의로 치닫는 것은 그들 신학에서 인간이성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은 인본주의적 신앙관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신앙에 이성이 개입되는 것을 '인본주의'라는 '잘못된' 신앙관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러니 "신학은 필요없다! 오로지 믿음이 중요한 것이다"라는 식의 태도도 일종의 반지성주의적 신앙관이라 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한국기독교장로회대한성공회 등 후기 자유주의 신학을 받아들이고 있는 개신교 교회나 한신대성공회대진보 성향의 신학교에서는 신앙과 이성의 어울림을 강조한다.

그나마 가톨릭의 경우는 20세기 이후로는 반지성주의와 엮이는 경우가 비교적 덜한데, 실제로 요한 바오로 2세"신앙과 이성"(Fides et Ratio)이라는 제목으로 유화적인 회칙을 천명했던 적도 있고, 신앙과 이성이 양립 가능하며 실제로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1936년교황청에 과학한림원(Pontifical Academy of Sciences)도 설립했고, 중세 시대에는 가톨릭 교회 자체가 당대 유럽학문의 산실이었다.[6][7] 물론 가톨릭도 처음부터 순순히 진화론이나 기타 과학적 성과를 받아들였던 것은 아니다. 사실 21세기만 해도 교황아프리카에서 콘돔 사용이 에이즈를 유발한다고 운운하여 엄청난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미국근본주의 기독교단과 기독교 우파들의 종교적 반지성주의가 전사회적으로 심각한 폐해를 끼치고 있다. 창조설, 성서무오설 등에 기반해서 보편적인 자연과학을 부정하는 행태는 극우 기독교의 보편적인 현상이며 선진국 중에선 유독 미국에서 심각하다. 이 현상은 미국 남부의 바이블벨트와 중서부 지대에 근거를 둔 과격파 남부 침례회, 감리회, 오순절교회 교파 등의 근본주의 교회들의 영향력 때문이다. 소위 개척시대부터 '먹물'들보다 힘쓰고 장사 잘하는 '현실적인' 사람들을 숭상하는 경향이 강했던 미국 남부와 중부의 역사적 문화적 성향이 짙은 현상임을 볼 수 있다.

종교 관련 사례들만 쭉 언급했는데 반종교 쪽에도 반지성주의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종교에 대한 기본적인 공부도 없이 무작정 종교는 사라져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즐비하다. 모든 기독교 종파들은 진화론에 반대하고, 기계적 영감설을 주장할 것이라고 멋대로 단정하는 경우도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이런 부류의 반기독교인들은 진화론과 유기적 영감설을 주장하는 기독교인들을 보고 "그게 어딜 봐서 기독교냐?", "믿음이 부족하다"(?!) 는 식의 주장을 한다. 기독교 중에서도 근본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내용들을 가지고 기독교 전체를 까는 꼴인데, 이는 근본주의비판하는 내용으로는 적절하지만 기독교 전체를 공격하는 내용으로는 부적절하다.

2.4. 미국[편집]

반지성주의라는 용어가 널리 퍼진 것은 냉전시대 미국, 특히 매카시즘에 대한 분석에서 출발한 것이며, 현대 미국 사회는 반지성주의 풍조가 심각하다.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미국에선 공부 잘하는 사람을 하찮게 본다"는 이야기는 이런 반지성주의 풍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부만 잘 하는 사람을 미국에서 흔히 '너드(nerd)'라고 비하하는데, 이 또한 반지성주의와 깊은 관련이 있다. 미국인들의 지식인에 대한 반감은 반지성주의 이외에도 실질적으로 힘 쓰는 사람을 더 우월하고 남성적이라고 보는 마초이즘은 물론, 미국의 역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상당히 복잡하다.

이것은 종교와도 연결되어, 21세기에도 창조설교과서에 기재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진화론에 대한 반감도 상당하다. 지구온난화기후변화를 부정하는 것은 덤이다.

이런 행태는 바이블벨트푸어 화이트 계층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미국 전역, 모든 계층으로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명확하게 속물 vs 엘리트의 대결구도로 진행됐던 2000년 및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속물티를 노골적으로 풍기는 아들 부시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한 것을 이런 반지성주의 경향으로 보는 해석도 있다.[8]

실제 도널드 트럼프를 비롯한 이른바 대안 우파는 주류 언론, 지식인 집단 등을 기득권 엘리트로 규정하며 공격하는 반지성주의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비판 등 반-반지성주의와도 통하는 점이 있다.
트럼프의 반지성주의 vs 트럼프 반대파의 반지성주의

2.5. 학문[편집]

학문의 영역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이 반지성주의의 요소가 존재한다고 비판받는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근간이 되는 사상들인 상대주의다원주의 또는 회의주의해체주의가 반지성주의를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포스트모더니즘 철학과 연관된 철학자들(그 중에서도 주로 프랑스 철학자들)의 글을 읽으면 반복적으로 이성주의 전반에 대한 비판 혹은 적개심이 드러남을 쉽게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질 들뢰즈가 있다. 이들은 포스트구조주의로 묶이기도 하는데, 원분류야 어쨌든 포스트모더니즘 계통에서 반복적으로 참조하는 철학자들이다.

본격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서뿐만이 아니라, 현대철학 입문서 중 포스트모더니즘을 최종 기착지로 작성되는 대중 철학서들도 반이성주의, 반지성주의적인 관점에서 작성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세계대전의 원인이 이성주의에 있으므로 이성주의를 배격해야한다는 식의 대단히 과격한 내러티브가 자주 등장한다. 또한 과학에 적대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로 인해 발생한 초창기 사건 중 하나가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 사건이다. 그러나 해당 사건 이후에도 포스트모더니즘 진영에서는 반과학적 성향이 더 짙어졌다. 이는 대체로 과학 이론도 사회적 구성물에 불과하다든지, 과학자 사회의 임의적 합의에 불과하다든지, 전문가들이 담당하는 분야에도 민주주의가 적용되야 한다는 식이다. 원론적으로는 이런 입장들은 100프로 그르다고 할 수 없다. 이를 이용해 포스트모더니즘 진영은 일정한 사실과 반지성주의를 섞어내는 방식을 자주 사용한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연구 결과는 적극적으로 사용하다가, 불리한 연구 결과가 나오면 과학 역시 서구 문명의 백인 남성 가부장제의 산물이라고 몰아 붙이는 것이다. 지적 성실성보다는 이념정치가 우선이라는 논리. 미국언론, 인문학계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상당히 받았기 때문에 지식인의 이름으로 반지성주의적 주장을 하는 이들이 많다. 이는 앨런 소칼, 조던 피터슨, 리처드 도킨스 등의 학자들이 지적하는 바이기도 하다.

이렇듯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은 반지성주의적 성향으로 인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근간이 된 사상들인 상대주의다원주의 또는 회의주의해체주의라는 사상들 그 자체를 무조건적으로 반지성주의와 완전히 동일한 사상이라고 간주하는 시각에 대해서는 반론도 존재한다. 철학적으로 상대주의·다원주의나 회의주의·해체주의의 경향을 보인다고 하여 이를 무조건적으로 반지성주의라 간주하는 것은 정당한 비판을 넘어선 부당한 비난이라는 것이다.

이는 상대주의·다원주의회의주의·해체주의 자체도 이성에 의존하여 비판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기인하는 지적이다. 어떤 사상을 반지성주의라고 칭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학문이나 이성에 회의적일 뿐만 아니라 이성에 의한 것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이성보다 더 우선시해야 할 것이며,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반지성주의적 성향에 대한 비판도 바로 그렇게 이성보다 다른 무언가를 우선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인하고 있다. 하지만 또한 그렇기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반지성주의를 이유로 상대주의·다원주의나 회의주의·해체주의라는 사상들 자체를 무조건적으로 반지성주의와 완전하게 동일시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 역시 나오는 것이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등장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던 회의주의와 같은 사례의 경우에는 그것을 반지성주의라고 볼 수 있는 지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다. 한 가지 예시를 들자면 회의주의를 무조건적으로 반지성주의로 간주하게 되면 그 회의주의의 일부인 과학적 회의주의 역시 반지성주의로 간주할 수 있게 되는데, 이렇게 과학적 회의주의를 근원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반과학적 성향과 별로 다를 바가 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회의주의 중에서도 과학적 회의주의는 포스트모더니즘이나 반지성주의와는 가장 상극인 사상인데, 이를 회의주의의 일부라는 이유로 반지성주의라고 싸잡아서 비판하는 것은 그다지 올바른 비판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2.6. 대중매체[편집]

대중매체의 일부 창작물도 반지성주의의 사례로 꼽힌다. 사이코거나 콧대 높은 예술가/지식인 캐릭터가 노력-우정-승리주인공 일행에게 관광타는 경우.

3. 대한민국의 경우[편집]

유독 과학 관련 이슈에서 그런 경향이 두드러지는데, 기초 과학 교육의 부족[9]으로 인해 답정너식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의 말이 자신이 생각한 결론과 다르면 전문가를 무조건 의심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에서는 대학 진학률이 높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대중들 사이에서 반과학적 정서가 꽤 팽배해 있다.

물론, 대중의 무지를 이용하여 혹세무민하는 기사가 나올 가능성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과학 문제 전반에 대해서는 언론에 나오는 전문가 집단과 동등한 수준의 일반인을 찾아보기 어려우며, 있다고 하더라도 일반 대중들과는 다른 소신 의견을 내었다가는 배척을 받기 쉽기 때문에 인터넷 상에서 쉽게 자기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 경우, 대학에서 관련 전공을 한 사람이 배척의 대상이 된다. 과학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이른바 전문가를 육성하고 배출하는 시스템에서 관료주의배금주의등 전문가 자체를 관료나 원청이 소모품처럼 쓰고 버리는 요인으로 인해 진짜 사태를 정확히 분석하는 전문가보다 돈 주는 사람의 입맛에 맞는 분석을 적당히 짜집기해 내주는 적정한 가격에 내놓는 전문가를 더 찾게 되고, 이것이 전문가의 신뢰성을 떨어뜨려 대중들의 반지성주의를 부추긴다.

이러한 반지성주의 경향이 처음 대규모로 표출된 것은 2007년디워 논쟁이다. 당시 미학 전공자인 진중권, 그리고 수많은 영화인들의 문제제기에 대해서 소위 디워빠들은 무능한 충무로와 먹물들의 질투와 시샘이라는 식의 감정적인 반발을 보였다.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때도 "촛불시위는 지지하지만, 지금 인터넷에 퍼진 광우병에 관한 속설은 지나치게 과장되었다"고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차분한 토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지식인들은 인터넷상에서 MB의 충견이니, 한나라당의 하수인이니 하는 식의 조리돌림을 당했다.

그리고 2015년송유근 논문 표절 사건에서도 송유근의 학자적 역량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문은 모두 "천재를 시기하는 주류기득권 학자들의 질투" 식의 대중들의 감정적인 반발에 직면했다.

그외에도 2005년 황우석 논문 조작사건이나, 2016년 태극기 시위 등에서 대중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는 지식인/전문가들에게 극단적인 적개심을 표출하는 현상은 계속 목격되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살벌한 입시경쟁과 학벌 숭배풍조는 극소수의 승리자와 다수의 패배자를 만들어 내는데, 패배자로 내몰린 대중들의 의식 속에 엘리트 계층에 대한 적개심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양극화로 대중들의 삶이 점점 피폐해져 가자, 2000년대 중반 이후 온라인 공간의 확대를 타고 이런 불만이 공공연히 터져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힘들게 사는데, 공자님 말씀이나 하고 있고, 애초에 너네 먹물들이 나라를 이렇게 만든거 아니냐"는 식의 불만이다. 문제는 대중들이 진짜로 사회를 이렇게 만든 주범인 정치, 경제 엘리트 기득권층에 대한 비판에 그치지 않고 [10], 박봉과 고된 업무로 힘들게 살기는 마찬가지인 인문학순수과학 쪽의 지식인들을 공격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특히 일부 주류언론, 기득권 세력들은 이런 경향을 이용해서 대중들을 선동해서 비난의 화살이 지식인들에게 향하게 하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할려는 행태를 보이고 있기도 한다.

  •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반지성주의의 전 단계라고 볼 수 있는 것은 입시위주 교육취업 문제에 매몰되어 돈 되는 실용적인 학문 이외의 것을 배격하거나 쓸모없다며 천시하는 태도. 게다가 실업, 그 중에서도 청년실업 문제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다보니 당사자들도 어쩔 수 없이 돈 되는 학문 이외의 것은 진로에 방해된다며 멀리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 최순실 게이트 이후 엘리트주의가 쇠퇴하고 대중주의가 득세하는 과정에서 대중주의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는 반지성주의가 함께 득세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대중주의와 반지성주의의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 결과,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는 지식인이나 전문가에게도 대중이 극단적인 적개심을 표출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상기한 대로 입시경쟁과 학벌 숭배풍조 속에서 패배자로 내몰린 대중들의 의식 속에 엘리트에 대한 적개심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엘리트에 대한 적개심이 엘리트주의의 쇠퇴와 대중주의의 득세로 연결되었고, 이것이 곧 반지성주의의 확산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 국내의 반지성주의의 득세에 대해 기성의 엘리트들도 크게 반성하고 스스로 큰 혁신을 해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무엇보다도 자신들이 지식과 명망을 개인의 이득이나 목적을 위해 곡학아세하여 엘리트들에 대한 신뢰성을 스스로 깎아먹었던 것을 인정하고 이에 대하여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 따져보면 지식인들 스스로의 잘못들도 상당히 크기에 반지성주의는 단순한 엘리트들에 대한 적개감이라고만 인식하는 것은 반지성주의의 극히 일부만을 보여주는 것이다.[11]

  • 1980년대 운동권에서 주체사상이 떠오르기 시작했을 때, 이에 동의하지 않는 학생운동가들이 가장 혹독하게 비판한 게 주체사상이 사실상 반지성주의라는 것이었다. 이런 주장을 종합한 게 이진경[12], 조국, 진중권 등이 공동집필한 《주체사상비판》이다.

  • 국내 의료계에서는 지난 2009년 9월경에 《FTA를 대비한 전통 민중의술 활용을 위한 입법 정책 방안》이라는 보고서(?)가 나오면서 소위 민중의학이라는 개념이 나타나서 논란이 되었다. 해당 문건은 "입법정책연구회"라는 사단법인에서 국가 예산을 들여 심도있는 연구를 통해서 국회의원들에게 전달된 적이 있는 보고서라고들 하지만... 내용을 보면 유사과학 + 오컬트 + 신비주의의 결정체라고 해도 될 수준이다.[13] 당장 현대의학계의 반응은 둘째치더라도 한의사에게도 황당하다 못해 실소가 나올 지경이라며 대차게 까였다. #[14] 그 내용 중에는 "의료행위는 면허가 있는 일부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민중 모두의 소유이며, 이제는 의술을 국민의 품으로 돌려줄 때이다" 같은 요지의 표현들이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아주 빼도박도 못하고 완벽하게 반지성주의의 사례에 해당한다.

  • 역사학계에선, 주류 역사학들을 지성의 기준으로 놓았을 때 유사역사학자들이 반지성주의의 사례가 된다. 이들은 '강단 사학[15]/재야사학'이란 용어를 주장한다. 기존의 정식 역사학계를 친일 식민사관에 찌든 집단으로 치부하고, 정식 학자가 아닌 '재야의 사학자'인 자신들이 '진정한' 역사학을 연구한다고 주장하기 위해서이다. 강단사학이니 식민사학이니 하는 극단적 수준까진 가지 않더라도 비주류적인 주장을 하는 재야사학자들이나 대중적으로 인기는 얻지만 주류 학계에선 비판을 면치 못하는 이덕일, 설민석 등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면서 학계는 '지들끼리만 돌려보는 논문이나 만드는 무가치한 집단'이라고 비난해대는 네티즌들도 의외로 꽤 많다.[16][17]

  • 위의 경우와 반대로 친일 극우적 성향을 가진 뉴라이트는 역사학계를 반일, 좌편향 되었다고 비난하는데, 대부분의 구성원이 역사학자가 아닌 경제학자나 헌법학자들이다. 물론 역사학이 반드시 역사학자들의 전유물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고, 또한 뉴라이트의 주장 전체를 반지성주의라 보기는 어렵지만, 이들의 주장들이 주류 역사학자들이나 다른 누군가에게 반박된 경우, 모 정치인의 말처럼 "대한민국의 역사학계가 좌편향되어 있다" 라는 주장만 반복한다. 이렇게 주류 학계 전체를 근거 없이 비난하는 모습은 전형적인 반지성주의적 태도이다.

  • 2017년 문재인 정부탈원전을 선언한 이후 원자력학계와 에너지학계에 대한 정부 및 대중들의 태도 역시 반지성주의의 예시 중 하나이다. 물론 원자력 문서에도 나오듯이 원전의 위험성은 무시할 수 없으므로 장기적으로는 원전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이를 위해 대안 에너지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18] 그러나 탈원전 정책의 진행 과정에서 일어난 무분별한 반지성주의적 움직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부 범죄자들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모든 원자력 전문가들을 싸잡아서 원피아라고 부르며 그들의 의견은 들어볼 필요도 없다고 주장하는 여론이 폭발적으로 득세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지목되는 범죄자들은 전관예우, 특정 회사들에 일감 몰아주기, 파벌 형성, 일부 규격에 맞지 않는 불량 제품 사용등을 저질렀는데 당연히 이들은 원피아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모든 원자력 전문가들이 이러한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애초부터 이러한 원자력 관련해서 비리들과 전관예우, 일감 몰아주기, 특정 파벌 밀어주기는 원자력 전문가들중 일부 양심있는 사람들에 의한 공익을 위한 내부폭로를 통해 세상에 폭로될 수 있었던 것이다. 국가의 에너지 정책 추진 및 수립에 대해서 전문가를 빼놓는다는 것 또한 전문가들에 대한 막연하고 맹목적인 반감에 휘둘린 것이라 볼 수 있다.

  • 2017년 농촌진흥청이 시민단체의 요구를 받아들여 GMO 개발을 사실상 포기하게 되었는데, 시민단체의 말만 듣고 과학기술 정책을 결정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이 역시 제대로 된 이해와 합의보다는 맹목적 공포감과 반감에 크게 휘둘린 결과이므로 반지성주의로 볼 수 있다.

  • 일제의 잔재를 뿌리뽑고 우리 을 복원하자는 명분으로 진행된 아까시나무 제거 작업도 여기에 해당될 수 있다. 원래는 민둥산을 빨리 회복시키기 위해 뿌리가 강하고 빨리 자라는 아까시나무를 심었던 것인데, 강한 생명력 덕분에 아까시나무가 산림의 주요 수종으로 자리잡자, 일제가 우리 산을 망치려 외래 식물을 심었다, 다른 나무를 몰아내어 주류를 차지했다는 오해를 부른 것이다. 기사 아까시나무가 기존 나무를 몰아낸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도 나무를 많이 베어내어 다른 나무가 없었던 것뿐이다.
    숲 전문가의 견해에 따르면 아까시 나무가 해롭다는 것은 지극히 인간 위주의 관점일 뿐이라고 한다. 벌과 새의 관점에서는 밀원 식물[19]인 아까시나무가 오히려 생태적이라는 것이다. 링크 다행히도 이러한 지적이 많이 알려져 현재 농가에서는 양봉 활성화 차원에서 다시 아까시나무를 심고 있다고 한다.

  • 중국미세먼지 대책 기사에 대한 반응. 미세먼지 발생의 원인 규명은 복잡한 기상학적 지식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인데, 일반 대중들 중에 그러한 지식을 가진 사람은 부족하다. 그런데 언론에서 전문가의 의견을 바탕으로 대중의 통념과 다른 내용을 보도하면 이를 무조건 중국을 두둔하는 것으로 오해하거나 확대해석하는 반응이 많다.

    • 미세먼지 문제에 관한 KBS의 기획 기사에서 기자가 이러한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 중국에 세워진 공장 중에는 자국의 환경 규제를 피하기 위해 외국 자본이 세운 공장도 있다. 그러한 문제까지 고려한다면 문제의 양상이 더욱 복잡해진다. CNBC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세계의 쓰레기장이라 불릴 정도로 80년대부터 전 세계의 쓰레기를 수입하여 공업 발전의 자산으로 활용해 왔지만,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면서 선진국으로서 '깨끗한 환경 유지'라는 의무를 갖게 되었고, 이에 따라 시진핑은 오염물질 배출 공장의 문을 닫게 하는 등 특단의 조치를 취했지만, 아직 만족스런 결과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 2018년 국내에서 벌어진 쓰레기 대란은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따라서 중국발 미세 먼지를 원천 차단하려면 메이드 인 차이나 없이 살아보기를 실천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는 당장 불가능하다.

    • 자국 내 오염원을 줄이려는 대책은 이런 사정도 고려해서 나오는 것이지만, 언론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런 복잡한 맥락은 무시한다. 이러한 반응이 나오는 주 원인은 국내에서 미세먼지 절감 대책을 강화할 경우 우리나라 산업이 위축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이 자국 이기주의가 심한 것은 사실이고, 중국 사회의 특성상 갑자기 변화할 가능성도 낮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의 변화만 기다리는 것은 현실성이 부족하고, KBS의 기사도 그런 점을 지적하고 있다.

    • 그나마 일상 생활에서 가능한 것이 1회 용품 사용 줄이기이다. 실제로 비닐 사용량만 보면 우리나라가 핀란드의 100배 수준이라는 보도도 있다. 링크 그러나 환경 오염 저감을 위한 생산량 축소, 쓰레기 줄이기를 주장하면 미국은 더한데 왜 우리나라만 희생해야 하느냐는 반응이 나온다.

4. 위험성[편집]

역사적으로 반지성주의는 파시즘의 성장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나치즘, 스탈린주의, 주체사상, 좌와 우를 떠나서 극단적인 배타성을 유지하는 정치운동에서 건전한 비판이 허용되지 않았으며 비판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지식인/전문가 계층은 언제나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단기적으로 자신들의 권력을 더 공고하게 만들 수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국가와 민중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심지어는 반지성주의자의 행보에 불만을 품은 지식인 계층들이 반지성주의 권력자들과 이를 옹호하는 집단을 혁명을 통해 갈아엎기도 했다.

이오시프 스탈린이 사기꾼 트로핌 리센코농업에 관심을 기울여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리센코는 그런 스탈린의 권력과 비호를 등에 업고 자신을 비방하는 소련과학자들을 모함하여 숙청하였고, 그의 이론에 기반한 농업 정책은 수많은 소련의 인민들을 굶겨 죽였을 뿐 아니라 소련의 농법과 생물과학 발전을 저해했다. 니키타 흐루쇼프는 비록 스탈린을 격하했지만 리센코의 농법을 그대로 지지하였고 이는 흐루쇼프가 실각하는데 결정적인 명분을 제공하였다. 이후 소련은 세계에서 가장 기름진 땅인 우크라이나를 끼고도 적국인 미국에게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지경에 이르렀기에 어찌보면 소련의 패망에 한 몫을 한 셈이다.

아돌프 히틀러는 지구상의 모든 고귀한 예술작품과 과학적 성과는 아리안 인종으로 나와야 한다는 편협한 가치관에 따라 유대인 혈통의 과학자예술가들이 해외로의 망명을 부채질했고, 이는 히틀러와 나치의 패배와 몰락으로 이어졌다.

반지성주의는 대량살상무기가 대거 만들어지고 있는 21세기에 들어선 반대쪽의 극단인 경직된 엘리트 위주 우월주의 기조와 함께 인류멸망 혹은 우발적 절멸전을 초래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사상으로 취급된다. 멀쩡한 지식인들은 나라에 문제가 있을 때 토론과 정책으로서 해결하려고 하지만, 이들은 나라에 문제가 있다면 권력이나 폭력(전쟁 등)으로 해결하려 들기 때문이다. 특히나 영적 투쟁 내지 단체의 영광이라는 허황된 단어로 포장되어 있다는 전쟁이 예전보다 수많은 사람들, 특히 정치와 관계없는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으며, 최악의 사태에서는 핵무기 혹은 그에 맞먹는 것으로 그들이 정당하다고 말하는 인류의 미래마저 지워버릴 위험성이 있다는 점을 들어 더 진지하게 경계해야 할만한 사상인 것이다.

또한 무작정 반대하는 태도 때문에, 진짜로 기술을 갖고 나쁜 짓을 벌이려는 자들이 오히려 옹호받기 쉬워지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5. 어록[편집]

"진정한 천재가 이 세상에 태어났음은 바보들이 단결해서 그와 맞서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우리에게 지각과 이성, 그리고 사고력을 부여하신 하느님께서 우리가 그것들을 사용하는 행위를 금하시리라고는 믿기 어렵다."


"신들조차도 어리석음을 무찌를 수 없다."


- 프리드리히 폰 실러[22]

"인간의 멍청함이 가진 힘을 과소평가하지 마라."


로버트 A. 하인라인

모세는 학문적으로 훈련이나 교육을 받지 않은, 평범한 상식을 지닌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방식으로 설명했다. 반면 천문학자들은 인간 지성의 예리함이 파헤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 큰 노력을 들여 연구한다. 그러한 연구에 반감을 가져선 안 되며, 과학은 자신들이 모르는 것이라면 생각 없이 거부하는 광신도들의 오만으로 비난받을 존재가 아니다.


장 칼뱅

"무지는 지식보다 더 확신을 가지게 한다."


찰스 다윈

"이 시대의 아픔 중 하나는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무지한데, 상상력과 이해력이 있는 사람은 의심하고 주저한다는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

6. 같이 보기[편집]

[그런데] 이게 정말로 큰 문제인게 대중은 들리는 그대로, 비판적 수용이 없이 믿는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xx에 좋다'는 개소문이나 실제로 심지어 팔리기까지 하는 수소수처럼 대다수의 사람들은 참•거짓을 구분할 비판적 사고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런 반지성주의마저 결합되면 답이 없다.[2] 즉 건전한 의심이나 회의를 아예 생략하고 윗사람의 지시를 무비판적으로 맹종하라는 뜻이다. 짤없이 반지성주의.[3] 북한논문은 "김일성/김정일 수령님께서 일찍이 이렇게 교시하시었다..." 로 시작해서 "따라서 김일성/김정일 수령님께서 교시하신 바가 옳음이 증명되었다..." 로 끝난다고.[4] 실제로 근본주의 교단의 대표격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교단은 에큐메니컬 교회들과 그 어떤 교류도 금지하고 있고, 진보교단의 세례 역시 인정하지 않는다.[5] 사실 뭐 박사학위를 땄다고 교적에서 파인다거나 천국에 갈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례는 없다. 오히려 현장에서는 소위 신학적 자유주의에의 경도를 걱정하는 수준. 다만 공부 많이 하는 사람은 믿음이 약하다고 대놓고 말하는 경우는 종종 눈에 띈다. 적지 않은 기독교인 지식인들이 한국 기독교근본주의적 태도를 문제삼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6] 물론 당대 학문이란게 신학을 중심으로, 그와 충돌할 일이 없는 법학의학, 예술 같은 것들이었긴 하다.[7] 중세대학교가 생기기 전에 고등교육을 담당하던 곳도 신학교 같은 교회와 관련된 교육시설들이었다.[8] 2000년 선거에서 아들 부시와 대결했던 앨 고어하버드대 졸업 학력에 무엇을 물어봐도 막힘없이 자신의 식견을 술술 풀어내는 달변까지 전형적인 엘리트 이미지를 가진 인물이다. 입만 열면 말실수로 사람들을 웃기던 아들 부시와는 차원이 다르다.[9] 과학을 실험으로 아닌 글로만 배우는 경우가 많은데, 중고등학교로 갈수록 문제집 풀기 위주로 가므로 더욱 심해진다.[10]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자신의 사회에 대한 한 치의 비판, 의심도 없이 그대로 살아오고 그 피해를 입고 나서야 화풀이하는 생활을 반복한 대중이 사회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대중은 개, 돼지라는 것이 실제로 일어나더라도 대중은 모른다는 것이다.[11]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적폐논란이다. 물론 최순실이나 양승태같이 진짜 한국 사회를 좀먹는 적폐들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주류 여론에 대해서 '현실적으로 보면 이런 점은 문제가 있다.' 라는 식으로 전문가가 문제를 제기하면 바로 적폐로 낙인찍어버린다. 이것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가 바로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와 박근혜 구속 시기로 이 당시에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 근거를 들며 문제점을 제기해도 바로 '이 나라를 말아먹은 보수의 적폐' 라며 그야말로 마녀사냥에 가깝게 전문가들을 까내렸다. 그리고 이는 문재인 정부 2년차에 들어서도 나아지지 않는 경제 문제 등으로 인해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타 분야에서는 잠잠해졌으나, 아직도 페미니즘 쪽에서는 '임신하면 여자들의 가 망가진다.' 는 말도 안 되는 개소리가 트위터에 당당하게 올라오는 등 반지성주의가 아직까지도 팽배한 상황이다.[12] 박태호 현 서울과학기술대 철학 교수. 이진경은 과거군사정권 시절 사용하던 가명으로 1987년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약칭 사사방)으로 사구체 논쟁에 불을 지른 인물이기도 하다. 1990년 일명 "노동계급" 사건으로 안기부에 체포되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생활을 하였다. 출소 뒤에 서울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2003년부터 서울과기대 교수로 재직중.[13] 무슨 삿된 기운이니 깨달음의 경지니 영혼 치료니 우주초염력이니 자연요법이니 하는 단어들이 목차에서부터 당당하게 난무하고 있다. 가만보면 비과학적인 내용들도 문제지만 이나 부항 같은 기존의 대체의학 범주의 주제에서까지 아주 충실하게(?) 십중팔구 뻘소리만 늘어놓는다. 여기에다 전문용어의 자의적 정의는 덤.[14] 해당 시리즈물의 전체 내용을 보려면 이 사이트의 칼럼란으로 가면 된다. 블로그에는 일부만 업로드되어 있다.[15] 일반적으로 정식으로 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강단에 올라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사회과학적 방법과 원칙에 따라 역사를 연구하고 서로 검증비판하는 사학자들을 일컽는다. [16] 웃긴 건, 정작 재야사학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조차도 자신들의 주장을 펼 때 근거로서 가져오는 자료들이 전부 그들이 말하는 강단사학에서 연구한 자료들이라는 것이다. 거기다가 띄어쓰기가 없고, 한문으로 쓰여져 있는데다가, 수백년, 수천년 전의 고문서들이라 현대어로 해석하는 과정이 난해하다는 점을 이용하여 수식어를 슬쩍 바꿔서 해석하는 식으로 기존의 정설을 아예 왜곡하여 환빠식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대중들은 역덕들을 제외하면 역사학에 대한 관심이 적은데다가 이런 유사역사학자들의 해석이 역사왜곡이든 뭐든 '결론은 대한민국이 가장 위대하다.' 는 식으로 결론이 나기 때문에 유사역사학자들의 역사왜곡을 바로잡으려는 학자들을 식민사관이라 매도하며 유사역사학자들을 칭송한다. 거기다 교수, 학자라는 신분으로 인해 대중에게 자주 노출되기가 어려운 주류 역사학자들에 비해, 유사역사학자들은 작가, 교사, 인터넷 강사 등 일반인들에게 비교적 자주 노출되기 쉬운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많기에 이들이 끼치는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다.[17] 특히 이들은 대부분 학자로서의 행보보다는 교사나 학원강사 등 타인을 가르치는 것을 메인으로 하는 직업들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대중들에게 쉽고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도가 튼 사람들이다. 거기다, 논문을 기고하는 것이 주인 교수들에 비해 유사역사학자들은 강의나 수업을 통해 끊임없이 말을 하기 때문에 언변또한 주류 학자들보다 뛰어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거기다 이들이 내놓는 주장들 역시 '대한민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고 위대한 나라이고 한민족이 가장 위대하다.' 라는 대중의 입맛에 딱 맞는 주장들 뿐이다보니 역사학을 모르는 대중들은 유사역사학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정통 역사학자들을 적폐로 몰아세운다.[18] 원자력계조차도 대안에너지 개발에 뛰어들고 있으니까 이 부분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단지 공백을 어떻게 메꿀건지, 시기는 언제가 적절한지가 문제일 뿐.[19] 蜜源植物, 을 빨아 오는 원천이 되는 식물. 꽃이 많이 피고 꿀이 많은 식물을 뜻한다. 아까시나무 외에도 메밀, 꿀풀, 자운영 등이 있다.[20]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한 말로도 알려져 있으나, 원조는 이쪽이다.[21] 역설적이게도, 이 말을 한 조너선 스위프트 본인은 당대의 천재적인 과학자였던 아이작 뉴턴을 매우 싫어했으며, 뉴턴 역학에 대한 깊은 불신을 드러냈다. 그의 저서 걸리버 여행기의 3편에서 등장하는 라퓨타는, 뉴턴과 당시의 과학계를 신랄하게 비꼬는 내용이다. 이분도 자기자신과 싸운다[22] 독일의 문호이자 극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