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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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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본 정보2. 소개3. 생애4. 논란
4.1. 생도 시절 비행4.2. 마약 투약4.3. 군 인사 영향력 논란
4.3.1. 군 인사 영향력 논란에 대한 반박
4.4. 정윤회 게이트 관련4.5. 5촌 살인사건4.6. 친일인명사전 배포금지 가처분 소송
5. 대중매체

1. 기본 정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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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박지만(朴志晩)

출생

1958년 12월 15일,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 (59세)

학력

중앙고등학교
육군사관학교 37기

본관

고령 박씨

종교

불교개신교

부모

아버지 박정희, 어머니 육영수

가족

이복누나 박재옥, 동복누나 박근혜, 박근령, 당조카 은지원, 이모 육예수, 이종사촌형 홍세표, 이종사촌누나 홍소자
사촌누나 박영옥, 박계옥

아내 및 자식

배우자 서향희, 아들 4명

십이지

개띠

별자리

사수자리

2. 소개[편집]

대한민국의 前 군인, 기업인.

박정희육영수고명아들. 그리고 박재옥, 박근혜, 박근령남동생, 그리고 (주)EG[1]의 회장이다.

논란도 많고 사고도 많이 쳤던 인물이고 최순실과 국정농단을 저지르다 아예 대통령직에서 탄핵당한 큰누나인 박근혜나 한때 독재자였던 아버지 박정희가 저지른 악행들을 전면 부정하고 역사왜곡으로 일관하며 박정희를 일방적으로 찬양하는 극우 행보에 각종 여러 망언들로 논란이 되었던 작은누나 박근령보다는 가장 나은 사람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2] 현재는 고인이 된 포스코 초대 회장이었던 박태준이 박지만의 후견인을 맡았고 지금처럼 갱생(?)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약 중독을 비롯해 아래 하술된 정윤회 게이트나 박근혜 5촌 살인사건과 같은 논란과 의혹들도 적지 않은데다 과거 본인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사과조차 없었기 때문에 논란과 비난이 있다. 그리고 마약을 끊고 서향희와 결혼하여 안정을 찾은 이후에도 이 사람이 보인 여러가지 행보들을 볼 때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반성, 참회하기는 커녕 왜곡과 피해자 코스프레로 독재자에 친일반민족행위자였던 아버지 박정희를 총탄에 잃은 무고한 희생양으로 포장, 정당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3. 생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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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초반 즈음에 찍은 가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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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서의 사진. 왼쪽부터 이복매형 한병기, 이복누나 박재옥, 친누나 박근혜, 박지만, 부인 서향희, 친누나 박근령이다.[3]

1958년 12월 15일, 서울특별시 성동구 신당동[4]에서 당시 육군 제1군 참모장 박정희 소장과 후처 육영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박재옥[5], 박근혜, 박근령 3명의 누나를 두었다. 1974년(고등학교 1학년)에는 어머니 육영수, 1979년(육사 3학년)에는 아버지 박정희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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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육사 입교식에 참석한 뒤 육사 생도 정장복장을 한 지만군을 만나는 누나 근혜(왼쪽), 근령씨. 1977.3.2 [연합뉴스] 출처

1977년 서울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 37기로 입학했다. 1981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6], 방공포병 소위로 임관했다. 소대장을 빌딩 GOP에서 복무하는 등 아버지의 후광에 대한 영향인지 매우 편하게 보냈다. 군복무보다는 직장생활에 훨씬 가까웠다. 육사 생도 시절에는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제법 김남길 닮은[8] 미남이었으나 현재는 얼굴이 다소 뭉그러져 있는데, 그 이유는 전역하기 1년 전에 교통사고를 크게 당한 탓이었다.# 이 교통사고[9] 때문에 의무 복무기한인 5년만 버티고, 1986년에 대위로 전역한다. 전역 후 죽은 어머니가 세운 육영재단에 들어가 이사를 지냈으며, 1991년에는 삼양산업을 인수하였다. 마약 중독 및 의존 증상으로 1989년부터 2002년까지 마약 투약혐의로 여러 차례 구속수감되었다.[10]

1997년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대통령 후보이던 김대중을 지지하였다.[11] 2000년, 삼양산업을 코스닥에 상장하면서 상호를 EG로 변경하였다. 2004년 12월 14일에 16세 연하인 서향희 변호사와 결혼했고, 2005년 장남 박세현이 태어난다. 2014년에는 차남 박정현 , 2015년 초에는 쌍둥이 아들인 박수현과 박지현을 얻었다. 그러니까 아들만 넷이다. 게다가 2015년 초반 시점에서 박지만은 58세. 상당한 늦둥이다. 두 누나는 모두 자식이 없기 때문에, 박정희와 육영수의 직계 후손은 박지만의 아들 넷뿐이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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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만의 득남을 열렬히 축하하는 경상북도 구미시의 노인들. 박정희의 고향으로서 그에 대한 지지와 향수가 매우 높은 곳임을 플래카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당시인 1990년에는 노태우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보내고 심지어 직접 찾아가서 "그래도 각하께서 저희 누나에게는 친한 오빠니까, 제발 저희 누나 좀 말려주십시오."라며 부탁을 한 적이 있다.

이렇게 해도 안 되니까 물리적인 방법까지 동원했지만 최태민이 미리 눈치채고 경찰을 동원한 탓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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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수 여사 34주기 추도식장에서. 오른쪽부터 박근혜, 박근령, 박지만, 서향희이다.

박근혜가 대통령직에서 파면당하고 구속영장심사를 받는 지경까지 가자 박지만은 근혜 누나가 최순실 그 식모 나부랭이 따위에게 속은 것이라고 말하면서 누나를 최순실에게서 분리시키지 못한 죄에 대해 큰 죄책감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이제 최순실이랑 떨어져야 되는데 과연 그럴까 걱정된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

박근혜가 구속된 이후 구치소를 방문하며 변호인단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무능함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는지 변호인단 구성을 지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아내인 서향희 씨가 직접 변호인단에 참여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남동생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를 다하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의도로 추정한다. 정작 박근혜 본인은 박지만과의 면회를 거부하는 등 이러한 지원에 대해 반응을 보이지 않고 유영하만을 문고리 삼아 현실도피하고 있다. 참고로 그동안 도와주지 않은 이유는 '또 거부당할 가능성이 높은데, 그러면 누나가 언론에 남동생을 무시하는 매정한 사람으로 비쳐질까봐'라고...

박근혜가 탄핵, 구속당하고 2018년 4월 6일 재판 1심에서 누나 박근혜가 징역 24년형을 선고받자 지금은 언론과의 인터뷰나 언행도 자제하며 몸조심을 하고 있는 상태다(...).

4. 논란[편집]

4.1. 생도 시절 비행[편집]

이미 김재규항소이유 보충서에서 박근혜와 최태민의 부적절한 관계 외에도 박지만의 비행을 항소의 이유로 쓰고 있다. 그에 의하면, 품행의 방정이 요구되는 사관생도로서는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문란한 엽색행각을 서울 시내 호텔에서 벌이고 있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육사2기수 선배였던 노병천 예비역대령[13]에게 먼지나게 쳐맞을 정도였다고....

4.2. 마약 투약[편집]

박지만이 가장 비난 받는 이유중 하나이며 박근혜가 파멸한 현 상황에서도 친박 세력의 새 지도자로 부상하지 못하는 까닭[14][15]

박지만은 1989년부터 2002년까지 마약을 투약한 것이 6차례 적발되었고, 이 중 5번 구속된 전적이 있는 마약사범이다. 여관, 호텔이나 사창가에서 매춘부들과 수백 차례 마약을 투약하고 성관계를 가져 충격을 줬다.

  • 1989년 필로폰 상용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었다.

  • 1991년 필로폰 상습 복용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었다. 구속 이유는 1990년 7월, 11월, 12월 그리고 1991년 1월 4차례에 걸쳐 필로폰을 코로 흡입하거나 정맥주사를 통하여 복용한 혐의이다.

  • 1993년 12월 25일 박지만은 1992년 10월 부터 서울 영등포동, 청량리동의 사창가에서 윤락녀들과 함께 50여회에 걸쳐 필로폰을 상습 투약한 혐의로 검거되었다.

  • 1996년 11월 19일 서울지검 강력부는 박지만을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위반혐의로 구속하였다. 구속 이유는 서울 청량리동의 사창가에서 윤락녀와 함께 필로폰을 투약하는 등 자신의 집, 사창가, 호텔 등에서 50여 차례에 걸쳐 상습 투약을 한 혐의이다.

  • 1998년 2월 2일 서울지검 강력부는 필로폰 투약 혐의로 긴급 체포한 박지만을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위반으로 구속하였다. 구속 이유는 1997년 12월 자신의 집에서 주사기를 이용하여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이다.

  • 2002년 7월 25일 서울지검 마약수사부는 박지만에게 필로폰 투약 혐의 등으로 징역 2년 6월 및 치료감호 그리고 추징금 260만원을 구형하였다. 기소 이유는 2001년 8월 부터 2002년 4월까지 서울시내의 사창가와 여관 등에서 12차례에 걸쳐 필로폰을 투약하고 윤락녀와 성관계를 가진 혐의이며, 2002년 5월 구속기소되었다.


고교 시절에 어머니를 잃고, 육사 시절에 아버지마저 잃자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이 박지만의 후견인을 자청[16]했는데, 만일 박태준이 박지만을 다잡아 주지 않았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4.3. 군 인사 영향력 논란[편집]

그와 동기인 육사 37기가 육사 한 기수당 평균 6~7명 정도 배출하던 중장을 8명이나 배출하는 바람에 그가 군 인사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었으나, 대장 3명 배출한 32기, 34기도 있는 마당에 중장을 다른 기수보다 1명 더 배출한 것을 두고 인사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는 힘들어 보인다.

오히려 그와 절친한 이재수 중장이 기무사령관 취임한 지 1년만에 밀려나 전역 대기직인 3야전군 부사령관으로 좌천된 것을 볼 때, 영향을 끼친 건 맞는데 그게 영향이었던 걸로 보인다.

또한 2015년 9월 대장 진급 발표심사에서 박지만 라인은 전원 광탈했다. 박지만과 동기였지만, 그와 접점이 적었던 김영식 항공작전사령관, 엄기학 합참 작전본부장, 박찬주 육군참모차장을 비롯한 셋이 대장으로 진급했다. 더구나 김영식 중장은 한직을 받고 박찬주 중장은 병과가 기갑인데도 보병이 독식하고 가뭄에 콩 나듯 포병이 나온다는 대장에 진급했다. 더군다나 박찬주의 경우 건군 이래 최초의 기갑 대장이다. 근데 박찬주는...

4.3.1. 군 인사 영향력 논란에 대한 반박[편집]

32기, 34기를 제외한다 하더라도 2000년 이후 육사 24기, 26기, 28기, 29기, 30기에서 대장을 3명 배출했다. 보통 대장은 기수당 2-3명 정도 배출인데 그게 무슨 특이사항인가. 그리고 육사 37기에서 중장 8명이 나온 것은 이례적인 일이 맞다.

애초에 이재수 중장은 인사참모부 인사기획과장, 2작사 인사참모처장, 육본 인사참모부장을 거쳐 인사사령관까지 오른, 전형적인 인사 직능의 장군이다. 때문에 군단장 보직조차 거치지 않았고 대신 인사 직능으로선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인사사령관을 거쳐 기무사령관에 오른 거다. 작전 직능이 아니고 군단장 보직도 거치지 않은 사람이 대장으로 진급할 가능성은 없었으니 전형적인 옷 벗기 자리인 제3야전군 부사령관[17]으로 갔다. 악영향이랄 것도 없이 당연한 거다.

전인범 중장의 경우는 정말 승승장구하던 군인이었다. 하지만 특전사령관 시절 제13공수특전여단 훈련사망사고가 나버렸다. 이 사고로 하사 2명이 사망했다.[18] 이것 때문에 되려 여기저기서 전인범을 보직해임 시켜라라는 말이 상당히 많았음에도 서면경고로 끝나고 특전사령관 보직을 유지한 것은 되려 특혜다.

그리고, 이 문제 하나 때문에 전인범은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과 불구대천이다. 과사실이 있는 사람이 대장으로 진급할 가능성은 없었으니, 누가 봐도 한직인 제1야전군 부사령관[19]으로 갔다. 악영향도 아니다. 과사실이 있으면, 진급에서 아예 배제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위 16호봉[20]으로 전역한 사람이 생긴다.

김영식 대장은 5군단장과 항공작전사령관 자리를 거쳤다. 5군단장은 김현집 연합사 부사령관, 조정환 육군참모총장, 이성출 연합사 부사령관이 거쳐간 자리다. 항공작전사령관도 1대 사령관 김판규 중장은 1군사령관을 거쳐 참모총장에 올랐고, 9대 사령관 이희원 중장도 연합사 부사령관에 올랐으며 가장 최근엔 이순진 중장이 2작사령관을 거쳐 합참의장에 올랐다. 그게 한직이면 대한민국에 장교 보직은 죄다 별의 무덤이다. 대장이라는 계급의 특수성 때문에, 대장은 계급 자체만으로도 국군 최고의 영광이다. 대장 8명은 하나같이 요직이다. 한직에서 맴돌 사람이었으면, 아예 대장이 되지 못한다.

4.4. 정윤회 게이트 관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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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회 동향’ 문건을 둘러싼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과 정윤회씨의 진실공방 이면에는 조 전 비서관과 가까운 박지만 EG 회장의 인맥과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 ‘문고리 권력’의 파워 게임이 자리잡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지배적 시각이다.

이번 파문을 계기로 막후의 양대 파워 그룹이 그간 곳곳에서 충돌을 빚으며 치열한 암투를 벌인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4.5. 5촌 살인사건[편집]

박근혜 5촌 살인사건 문서 참고.

2017년 1월 1일 박지만의 비서실 직원인 주 모씨의 변사체가 발견되었다.# 2016년 12월 SBS 그것이 알고싶다 1057회 'VIP 5촌 살인사건의 진실'이 방영되어 여론의 관심이 높아진 시기에 갑자기 사망한 것이어서, 일각에서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숨겨진 내용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입막음용으로 살해당했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시신의 외상은 없다고 경찰이 밝혔다. 유가족은 부검을 요청.

4.6. 친일인명사전 배포금지 가처분 소송[편집]

추가바람

5. 대중매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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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아들로서 영상물에서는 제4공화국제5공화국에 등장했다. 제4공화국에서는 장나라의 오빠인 장성원이 연기했으며, 제5공화국에서는 김남길이 연기했다.[21] 특히 김남길 같은 경우 박지만의 육사 생도 시절 사진과 비교해보면 알겠지만 진짜 젊은 시절 박지만과 굉장히 흡사한 외모로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주었다.

[1] 산화철 전문제조업체, 복합재료, 염산화수, 설비 엔지니어링, 대기수처리방지시설, 무역 등을 취급하는 회사라고 한다. 본사 서울특별시 강남구 소재. 금산군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금산은 명목상의 본사일 뿐 향토기없 회장 집무실을 포함한 오피스 빌딩은 강남에 'EG빌딩'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한다. 포스코의 명목상의 본사는 포항제철소지만 대치동 포스코센터가 실질적 본사인 거랑 같은 이치. 참고로, EG the 1으로 유명했던 EG건설(현 동양건설산업)과는 관련 없는 별개의 회사이다. 실제로 탄핵정국 당시 엉뚱한 동양건설산업이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2] 헌데 주진우 기자를 비롯한 소수의 언론인, 국내 정치 학자들은 논란이 있음에도 박정희와 육영수의 자식 삼남매들 중에서 박근령이 가장 상식적인 사람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아예 사이비종교와 부정부패, 현실부정, 정신승리로 일관하며 딴 세상에 가있는 박근혜나 마약 전과에 박근혜 5촌 살인 사건 개입 의혹 등 지저분한 범죄 논란에 연루되어 있는 박지만과는 다르게 사고방식이 일반인에 가깝다는 뜻으로 해석된다.[3] 당시 박근령은 현 남편 신동욱과 재혼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혼자 식장에 등장했다.[4] 1975년 10월 1일 중구로 편입되었다.[5] 박정희가 육영수와 결혼하기 전, 첫 번째 부인 김호남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6] 매부 신동욱의 주장에 따르면 졸업 직후인 당시 누나 박근혜, 박근령과 함께 성북동에 살면서 잠시 우애있게 지냈다고 한다. 박근령이 신동욱에게 말하기로, 박근혜가 국을 잘 끓였다고 하는데, 박지만을 위해 북어국을 자주 끓여주기도 했다고 한다. 신동욱은 당시 박지만이 술을 많이 마셨던 것으로 추측한다. 남매끼리 멀어지기 시작한 건 1982년 박근령의 결혼 이후에 박근령이 아주 가까운 곳에 있던 박근혜의 집에 찾아갈 때마다, 역시 당시 그 집에 자주 오던 최태민을 만나면서 이혼의 부추김을 받던 시점[7]부터라고 한다. 박근령은 실제로 1년도 못 가 이혼했고, 당시 사회분위기상 한국에서 손가락질 받는 게 두려워 미국에 갔다고 하는데, 출국한 부분 역시 최태민의 권유가 있었다고 한다. 당연히 박근혜와의 교류가 잠깐 멈추었다.[7] 물론 박근령과 시가의 갈등도 있었다.[8] 김남길은 이 드라마에서 이 배역으로 뜨기 이전 신인 시절에 제5공화국에서 박지만 역을 맡은 적 있다. 대사도 거의 없는 단역이였다.[9] 1985년 3월 23일 0시 5분에 피아트 승용차를 운전하다가 제3한강교 교각을 들이받아 전치3주의 부상을 입어 수도통합병원으로 이송되었다.[10] 1989년 처음 마약을 사용하여 구속되었다.[11] 이로 인해 동교동계의 대표적인 인사인 한화갑, 한광옥, 김경재박근혜 지지를 선언하면서 새누리당에 입당하게 된다.[12] 박정희 쪽으로만 따지면 장녀 박재옥의 자녀들이 있다. 이 쪽은 박정희에게는 외손자, 외손녀들이 된다.[13] 인터뷰에서 입을 털은거다. 여담으로 동기가 박선우,신현돈,황인무,박남수,류제승 등이 있다.[14] 심지어 과거 본인의 마약 전력에 대해서 사죄나 사실인정조차 한 적이 없다.[15] 당장에 마약 문제도 문제이지만 현재 박지만의 나이가 60대 노령기여서 정치하기도 쉽지 않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박지만과 박근혜 등 박정희와 육영수의 자녀들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인식이 죄의식 없고 거짓말에 신뢰할 수 없는 인간들이란 부정적 이미지가 굉장히 강력하기 때문에 박지만이 TV 방송이나 언론 등에 나와서 마약 범죄 전력에 대해 직접적으로 사과, 인정하는 발언을 한다 해도 대한민국 여론과 국민들의 정서가 박지만을 용서할 가능성은 굉장히 희박하다.[16] 참고로 박정희가 만일 쿠데타가 실패하면 (당연히 자신은 총살될테니까) 자기 가족을 맡길려고 했던 인물이 박태준이다. 그래서 박정희의 측근임에도 쿠데타 계획에서 박태준을 일부러 빼놨을 정도. 박태준이 박지만의 후견인을 자청한 것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17] 이 보직을 역임하고도 대장진급한 대표적인 인물이 무려 3사출신의 박종진 현 1군사령관(대장)이다.[18] 구타 가혹행위나 비무장 단순 군무이탈 행위도 지휘관에게는 진급에 치명적인 과사실이 된다. 그런데 이 사고는 그런것들과는 비교도 안되는 큰 과사실인 사망사고, 그것도 2명이나 사망한 사고이다. 그것도 훈련 중에 일어난 인명사고다. 빼도 박도 못할 사고인 것이다.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구타사고야 가해자를 보직해임 시키고 다른 보직을 준 뒤 피해자를 잘 어루고 달래면 끝이고 군무이탈이야 피해가 없다면 걍 사고자를 다른 부대로 전출시키면 그만이지만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건 불가능한 일인지라 어쩔 수가 없다.[19] 이 보직을 역임하고도 대장진급한 대표적인 인물이 무려 갑종출신의 정수성 전 1군사령관(대장)과 장준규 전 육군참모총장(대장)이다. 여담으로 장준규는 1군사령관시절 전인범의 직속상관이었고 전인범의 전임 특전사령관이었다.[20] 동기가 중령인데 본인이 대위[21] 알다시피 김남길이 2016년 시점에서는 인기가 많지만, 2005년에는 새내기였다. 김남길이 스타덤에 오른 작품이 다름아닌 2009년에 방송된 바 있는 선덕여왕이다. 김남길은 2008년까지 무명이었다가, <선덕여왕> 덕분에 인기가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