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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와 최태민의 부적절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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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제4공화국부터 시작되는 사건
2.1. 안기부 최태민 보고서
3. 제6공화국
3.1. 노태우 정부최태민 보고서3.2. 주한미국대사3.3. 박근령박지만의 편지
4. 주변인들의 증언
4.1. 박근령4.2. 박지만4.3. 조순제(최태민 아들)4.4. 전기영 목사4.5. 육영재단 관계자4.6. 정두언 새누리당 전 의원4.7. 김종필 전 국무총리4.8. 김해호4.9. 최씨 일가 운전기사4.10. 강신옥 변호사 4.11. 김경래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 4.12. 정윤회 문건4.13. 전여옥 저서4.14. 신동욱4.15. 조웅 목사 주장

1. 개요[편집]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태민 일가와의 부적절한 관계와 그에 따른 논란을 다룬 문서다.

2. 제4공화국부터 시작되는 사건[편집]


최태민부터 정유라까지 40년 총정리

최태민은 1975년, 박근혜에게 '죽은 육영수 여사가 꿈에 나와 박근혜를 구하라고 했다'고 편지를 보내고 “어머니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 나(최태민)를 통하면 항상 들을 수 있다."[1][2]고 하는 등 박근혜의 환심을 사고, 그 뒤부터 박근혜의 최측근으로 활동하였다.[3] 실제로 최태민은 박근혜에게 "어머니는 돌아가신 게 아니라 박근혜의 시대를 열어주기 위해 길을 비켜준 것일 뿐"이라는 말을 하거나, "아시아의 지도자", "여성 대통령"이라는 단어를 끊임없이 주입시키며 외부 활동을 권했다고 한다.#

하지만 최태민 주위에는 각종 이권 개입과 횡령, 사기 및 융자 알선을 비롯한 권력형 비리, 그리고 온갖 여성과 엮이는 스캔들 의혹이 들끓었다. <월간중앙> 1993년 11월 호는 당시 분위기와 관련해, 박근혜가 지역에서 열리는 구국봉사단이나 새마음봉사단 행사에 참석하면 관내 각급기관장과 그 지역에 연고가 있는 중앙부처 고위공무원, 국회의원들이 총출동했다고 전하고 있다. "측근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최태민 총재의 위상 또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다. 나중에 최태민 씨는 도지사와 경찰국장을 전화로 호출해 호통을 칠 정도까지 되었다."

1977년 중앙정보부 ‘수사자료’엔 "형식상 모든 업무는 박근혜가 관장하였으나 실질적으로 최태민이 전권을 위임받아 행정부, 정계, 경제계, 언론계 등 각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라고 기록되어 있고 "한마디로 미니 청와대였다"고 한다.# 박정희는 최초엔 최태민을 탐탁지 않게 여겼기 때문에 최태민을 몰아내고자 했으나# 박근혜가 눈물을 흘리며 끝까지 최태민을 두둔하자 의견이 변하였고 최태민은 사망할 때까지 박근혜의 옆에 자리하였다.# 10.26 사건김재규1980년 1월 항소이유보충서에서 최태민을 언급한다.

김재규 항소 이유 보충서
본인이 결행한 10·26 혁명의 동기 가운데 간접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 한 가지는 박 대통령이나 유신 체제 자체에 관한 것이 아니라 박 대통령의 가족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공개된 법정에서는 밝힐 수 없는 것이지만 꼭 밝혀둘 필요가 있으므로 이 자리에서 밝히고자 합니다. 구국여성봉사단이라는 단체는 총재에 최태민, 명예총재에 박근혜 양이었는 바, 이 단체가 얼마나 많은 부정을 저질러왔고 따라서 국민, 특히 여성단체들의 원성이 되어왔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아니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영애가 관여하고 있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아무도 문제 삼은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박승규 민정수석비서관조차도 말도 못 꺼내고 중정부장인 본인에게 호소할 정도였읍니다. 본인은 백광현 당시 안전국장을 시켜 상세한 조사를 시킨 뒤 그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던 것이나 박 대통령은 근혜 양의 말과 다른 이 보고를 믿지 않고 직접 친국까지 시행하였고, 그 결과 최태민의 부정행위를 정확하게 파악하였으면서도 근혜 양을 그 단체에서 손 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혜 양을 총재로 하여, 최태민을 명예 총재로 올려 놓은 일이 있었읍니다. 중정본부에서 한 조사 보고서는 현재까지 안전국(6국)에 보관되어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박승규 민정수석이 김재규에게 직접 하소연했다는 부분도 중요하다. 민정수석비서관은 청와대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요직이다. 유신 독재일 때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 박승규도 방책이 없어서, 중앙정보부에게 힘을 빌렸다. 그래서 박정희의 왼팔인 김재규가 직접 움직였지만, 상황은 갈수록 태산이었다. 그만큼 사태는 심각했다.

당시 김재규의 변호를 맡은 안동일 변호사는 10.26 관련 책을 썼는데 신동아와 인터뷰를 했고 그게 2005년 12월 호에 실렸다. 당시 김재규가 최태민을 주목했다는 점을 역시 증언하고 있다.

그는 김재규가 우발범이거나 패륜아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체제 회복에 나선 확신범 내지 양심범일지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고 한다.

"김재규를 몇 번 접견하면서 우발범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 사람의 진정성이 느껴지잖아요. 꾸며서 말하는 것은 느낌으로 알 수 있는데, 전혀 그런 게 없었어요. 김재규는 공개된 법정에서는 밝히지 않았지만, '10·26 혁명을 일으킨 간접적인 동기가 박정희의 문란한 사생활과 가족, 즉 자식들 문제 때문이었다'고 주장했어요."

-구체적인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김재규는 큰 영애인 박근혜가 관련된 구국여성봉사단의 부정과 행패[4]를 보고 분개했다고 해요. 이런 일들이 '대통령이나 박근혜 자신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고 조사를 시켰다는 겁니다. 조사 결과 로비나 이권 개입 등 여러 가지 비행이 드러나자 박 대통령에게 그대로 보고했는데 대통령은 '정보부에서 이런 일까지 하느냐'면서 몹시 불쾌해 했다고 해요. 박정희는 영부인 육 여사가 돌아가신 다음부터 자식들을 애지중지하고 철저히 감싸고 돌았다고 해요. 구국여성봉사단 문제만 해도 그래요. 당시 항간에서 말이 많던 최태민이 총재, 박근혜가 명예 총재를 맡고 있었는데 김재규가 구국여성봉사단의 문제점을 보고한 후 박근혜가 총재, 최태민이 명예총재가 됐습니다. 박정희가 최태민의 실권을 뺏는답시고 두 사람의 자리를 맞바꾼 거지요. 김재규는 자기가 괜히 조사를 해서 오히려 ‘개악(改惡)’이 됐다면서 뒷조사한 걸 후회했대요.

신동아 2005년 12월 #


정보부 수사 파트 K국장의 진술에서도 이런 점이 드러난다.

그는 박근혜 양을 붙잡은 목사 최태민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김재규는 각하에게 최의 비위를 보고했으나 박근혜 양이 비호, 각하 앞에서 대질 친국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천하의 정보부장이 사이비 목사[5]와 나란히 앉아 우김질을 했다는 것은 참으로 굴욕이었다.

79년 11월의 합동수사본부 기록에도 김재규의 증오가 드러난다. 다음은 기록에 나타난 정보부 수사 파트 K국장의 진술이다.

<김 부장은 '최 같은 자는 백해무익하므로 교통사고라도 나서 죽어 없어져야 한다'고 증오를 표시했다. 새마음봉사단의 부총재(총재 박근혜)인 사이비 목사 최가 사기 횡령 등 비위 사실로 퇴임한 후에도 계속 막후에서 실력자로 영향력을 행사하여 각 기업체 사장들을 운영위원으로 선임하고 성금을 뜯어내는 등 새마음운동 취지를 흐리게 해서 계속 동향을 감시하라는 김 부장의 지시를 받았다. 79년 내사 결과 최의 이권 개입, 여자 봉사단원과의 추문 등 비리 사실을 탐지하여 김재규 부장에게 보고한 바 그렇게 말했다.>"
(1991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기획물 '남산의 부장들' 발췌, 김충식 기자 집필)[6]
아시아경제, 2016-09-23 08:16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게재된 '남산의 부장들' 107화 링크



2016년 10월 29일, 최태민의 구국선교단은 박정희의 지시로 창설되었으며, 그 목적은 민주화 세력에 대항하기 위함이라는 새로운 증언이 나왔다.

전 목사에 따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최태민 씨를 불러 민주화 운동을 하는 진보 기독교 세력이 강하다며, 이를 견제할 세력을 만들라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이 최태민 씨에게 보수 기독교 세력의 결집을 주문한 셈이다.
노컷뉴스, 2016-10-29 20:15



최태민은 1980년대 박근혜가 이사장으로 있는 육영재단에서도 권력 남용으로 안팎에서 거센 비판을 받았다. 1986년부터 육영재단의 어린이회관에선 최태민과 그의 5녀 최순실박근혜와의 친분을 과시하고 전횡을 일삼아 문제가 되었다. 또, 최태민에게 우선 보고해야 이사장(박근혜) 결재를 받을 수 있었다. 그 무렵 재단 잡지사 기자들의 파업과 직원들의 농성도, 모두 ‘외부 세력’이라고 표현된 최태민·최순실 부녀의 인사개입 등 간섭이 원인이 됐다. 분란은 1990년 11월15일 박근혜가 여동생 박근령에게 이사장직을 넘길 때까지 계속됐다. <중앙일보>는 1994년 최태민의 부음을 전하며, “최씨는 최근까지 근혜 씨의 생활비를 대주며 재산관리인 행세를 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여성중앙>이 육영재단의 어린이회관 직원들을 취재했는데, 박근혜 이사장은 1주일에 2차례 결재를 하러 왔지만, 이에 앞서 제대로 된 직함도 없이 ‘최 회장’으로 불리던 최태민이 먼저 본 뒤 ‘오케이’를 해야 결재가 올라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딸인 최순실은 자신이 주도하는 연구소를 통해 육영재단이 간행하는 잡지들의 편집에 관여한다는 비판을 샀고, 잡지 <어깨동무>와 <꿈나라>는 끝내 휴간 처분됐다. 어린이회관 직원 140명과 기자들 16명이 권고사직을 당한 반면, 최순실의 초이종합학원 교사들은 어린이회관에 되레 입사했다. 1987년 9월 보다 못한 직원들이 최태민·최순실 부녀의 개입을 규탄하며 7일간 농성시위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근혜는 1988년 8월 레이디경향과의 인터뷰에서도 "최 목사는 새마음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옆에서 도와줬던 분"이라며,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꽉 차 있을 뿐, 사심이 없는 사람"이라는 등 최태민을 강력히 두둔했다. 이어 "최 목사를 직접 만나본 사람은 누구나 그 점을 인정할 것"이라는 확신도 남겼다.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전여옥 전 의원이 저서 '오만과 무능'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최태민은 92,3년 즉 박근혜가 40세 가량의 나이가 될 때까지도 기업인들에게서 돈을 뜯어내는데 활용하였다고 한다. 기업 여사장들 모임에 박근혜를 데리고 방문해 '박근혜는 미래의 대통령이 될 분이다. 나는 영애(박근혜)를 모시고 이 나라를 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는 이야기를 하며 여사장들에게서 돈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때 박근혜는 이런 최태민의 행동을 보고도 그냥 웃고만 있었다고 한다. 전여옥은 이런 최태민과 박근혜의 관계를 '돈을 거두러 다니는 노인과 방긋방긋 웃는 앵벌이 소녀'로 비유하였다.

하지만 박근혜는 1993년 11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구국선교단이 활발하게 활동을 하니 시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며, "나를 공격하려다가 명분이 없으니 나를 옆에서 도와준 분들을 괴롭힌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최 목사님은 구국선교단 때부터 줄곧 나를 도와주셨고, 책임도 맡아 앞장섰던 분이라 특별히 표적이 된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이어 "아버지의 배려로 온갖 권력과 영화를 누리다가 그 은혜를 저버린 패륜아의 말을 믿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는 등 최태민을 싫어하던 김재규에 대한 악감정을 직접 표현하기도 했다.

한편, 박근혜는 당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한민국건강보험을 놓고 "새마음봉사단이 전국적으로 벌인 무료의료 봉사활동이 계기가 돼 만들어졌다"는 주장도 남겨 눈길을 끈다.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4년 8월12일 박근혜는 MBC 아침 뉴스 프로그램 <뉴스와이드>에 출연해 “최태민은 악선전으로 부정 축재자로 몰렸다"고 말했다. 당시 함께 박정희 전 대통령 부부 묘소를 참배하고 인터뷰를 한 사람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박근혜의 제부인 신동욱(박근령의 남편)은, "육영재단에서 전횡을 휘두르는 최씨 일가를 단속하려고 하니, 박근혜가 최태민을 감싸고 돌면서, "최태민을 언급하면 천벌 받는다" 라고 하였다." 고, 천벌씩이나 운운하면서 싸고 돌았다고 증언하였다.# 또한 "할 말이 있으면 최순실을 통해 하라"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태민 일가의 육영재단 전횡 논란에 대해 2007년 박근혜 후보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청문회에서 “최씨는 재단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 순전히 오해다”라며 적극 보호했다. 2006년과 2007년 청문회에서 최태민과 그 가족들의 비리행위에 대해 박근혜는 최태민이 모함을 받는 것이고 억울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최 목사(최태민)는 내가 어려운 시절 나를 도운 사람”이며 “고맙고 훌륭한 분”이라며 그를 끝까지 두둔했다. 최태민과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질문에서 톤이 높아지고, 최태민과의 자녀 존재 여부를 묻는 질문에 불쾌감을 나타내자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냐고 물으니 "아기가 있다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얘기까지 나온다. DNA 검사라도 해 줄 테니 애를 데려오라"며 언성을 높였다. 이전에도 최태민과의 사이에서 숨겨둔 사생아가 있다는 의혹이 여러 번 제기된 적이 있다.# ##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직후 측근인 김용환 전 새누리당 상임고문이 박근혜 당선인과의 독대회동에서 박근혜에게 최태민의 그림자를 지워야한다고 조언하자 박근혜는 표정이 싸늘하게 바뀌며 "이런 말씀하시려고 저를 지지하셨나요?"라는 말을 하였다고 한다. 그 뒤 박근혜는 김용환과의 접촉을 완전히 끊는다. 대선 전까지만 해도 하루가 멀다하고 조언을 구하던 멘토를 최태민 얘기 한번 꺼냈다고 내친 것이다. # 전여옥 전 의원에 의하면 박근혜는 누군가가 최태민에 대해 안좋은 얘기를 하기만 하면 손을 덜덜 떨면서 목에 파란 힘줄이 솟은 채 '최태민을 욕하면 천벌을 받는다'며 발끈하였다고 한다.#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 따르면 최태민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고 한다. 이는 현몽설부터 시작해 박근혜의 인생이나 발언들[7]과 너무도 잘 맞아떨어져 뒷이야기가 무성하다.

주식 갤러리에서는 혜토미라는 무시무시한 드립이 나왔다. (성희롱 주의). 틀심파괴는 덤


이상호 기자가 최순실의 사촌동생을 단독 인터뷰했다. 그는 “쉽게 얘기해서 권력과 억압으로 인해 호적이 파였다”며 “최순실 씨에 파워를 몰아주기 위해 큰 어머니(임선이)께서 남자는 전부 다 호적을 팠다”고 말했다.#

2.1. 안기부 최태민 보고서[편집]

시중에는 흔히 ‘최태민 보고서’라는 이름이 붙은 그의 비리전력 등을 담은 문서가 돈다. 이 문건은 어떻게 세상에 나오게 되었을까. 문건을 최초 보도한 <신동아> 관계자는 “보도 후 참여정부 말기 여당 고위인사의 개인 홈페이지에 ‘안기부’라는 닉네임으로 이 문건이 잠깐 올라왔다 삭제된 적이 있는데, 그것이 퍼진 것 같다”고 말했다. 흔히 중앙정보부 문서 등으로 알려져 있지만 문서 자체는 안기부 시절인 1988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문서에서 1912년 생인 최태민이 76세로 표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을 불러 최태민 조사를 시켰다. 김재규는 경찰정보, 대인정보, 검찰정보, 보안사 등 일종의 ‘오피셜 인텔리전스 루트’로 최태민 관련 정보를 취합했다. 중정이 박정희의 책상에 올려놓는 보고서는 이런 공식 루트에 기반한 정보였다. 중정이 정리한 보고서는 다시 1980년 전두환 집권 이후 최태민을 재조사할 때 만들어진 합동수사본부 문서, 그리고 이후의 ‘안기부 문서’의 골격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1977년 9월 12일 최태민에 대한 이른바 ‘친국’이 열렸다. 김 전 국장이 전하는 실상은 이렇다. "청와대 집무실에서 김재규를 불러 이야기를 들은 뒤 다시 차지철을 불렀다. 회의를 하고 난 다음 차지철에게 큰 영애(박근혜)가 ‘최태민은 좋은 사람이다. 좋은 사람인데 이상한 사람으로 모략한다’고 매달렸다. 차지철은 왜 박근혜가 최태민에게 그렇게 집착하는지 처음에는 몰랐다."

2003년 한국일보가 단독으로 보도 한 김재규의 옥중 수양록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79년 음력 12월 11일
대통령 일가의 횡포
1. 구국여성봉사단과 큰 영애(여러 차례 건의했으나 관여치 말라는 노여움만 삼).
2. 육군사관학교의 명예제도와 박지만 생도
백광현 고검검사가 조사를 담당함(당시 6국장)
김근수 중정제6국장이 사실 전모를 파악하고 있음.
참고. 최의민의 전화도청으로 최가 일일이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사실(기록을 국장 소지 보관중)
*상기 내용은 혁명과 직접, 간접으로 관계가 있으나 일절 언급치 않았다. 그 이유는 아이들의 일이라서. 돕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간단히 여기에 기록하고 자세한 것은 후일 백 검사와 김근수 국장이 조사결과.”



당시 김재규가 “아이들 일”이라고 치부했던, 하지만 대통령 저격의 직·간접적 계기가 됐던 그 인연은 37년이 지나 대한민국을 무기력의 격랑에 휘말리게 하는 씨앗이 되고 말았다.

김경래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88·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 상임이사)은 김재규가 박정희를 쏜 것에는 최태민 문제가 ‘먼 원인(遠因)’으로 작용했다고 봤다.

"최태민 친국을 기점으로 차지철은 김재규를 박정희로부터 차단했다. 김재규뿐만 아니라 장관 등 국무회의 임원들도 박정희를 만나려면 차지철을 경유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김경래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



그는 “박근혜최순실 건을 빨리 털고 가지 않으면 큰일난다”고 우려했다.

3. 제6공화국[편집]

3.1. 노태우 정부최태민 보고서[편집]

파일:external/c.huv.kr/92ec9a130d11847f51de97cbcf262982c399749b.png

최근(最近) 박근혜(朴槿惠)는 최태민(崔太敏)으로부터 "신(神)의 계시(啓示)로 몇 년만 참고 기다리면 여왕(女王)이 될 것이므로 친인척(親姻戚)등 외부인(外部人)을 만나면 부정(不淨)을 타게 되니 접촉(接觸)을 피하라"는 말을 듣고, 친동생(親同生)인 박지만(朴志晩)에 대해서까지 접촉(接觸)을 제한(制限)하고 있어(있는 중)

박지만(朴志晩)이 "큰 누나는 최태민(崔太敏)의 꾀임에 빠져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으며 두 사람이 같이 있는 장면(場面)을 볼까 봐 사전(事前) 약속(約束) 없이는 집에서도 만날 수 없다"고 불만(不滿)을 토로하고 있는 실정(實情)으로 항간(港間)의 악성(惡性) 유언비어(流言蜚語) 확산(擴散) 우려(憂慮)
- "박근혜(朴槿惠)에게 최면(催眠)을 걸어 육 여사(陸女史)의 환상(幻想)이 나타나게 해 주어 환심(歡心)을 사고 있다"
- "최태민(崔太敏)과 내연(內緣)의 관계(關係)로 동거(同居)하고 있다"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0년대 말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최순실의 부친 최태민과 관련된 의혹을 집중 조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선일보>가 입수한 노태우 정부의 최태민 관련 조사 보고서에 나타난 최태민의 행태는 최근 제기된 최순실 국정 농단의 그것과 상당히 비슷하다.

보고서는 최태민이 박정희가 숨진 1979년 이후에도 박근혜 곁에 머물며 각종 육영·추모 사업에서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과 당시 시중 유언비어 등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1989년 10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고됐다고 한다.

보고서는 최씨가 박 대통령이 이사장으로 있던 육영재단과 한국문화재단에 따로 사무실을 두고 박 대통령과 수시로 접촉하며 재단 운영에 개입했다고 했다. 최씨가 측근을 재단 간부와 비서·경호원 등으로 근무하도록 해 박 대통령의 활동을 일일이 수집하는 식으로 재단 운영을 배후 조종했다는 것이다. 민정수석실은 당시 최씨가 박 대통령 이동 시에 경호차까지 붙였다며 박 대통령이 탄 차를 뒤에서 따라가며 경호하는 차량 사진까지 첨부했다. 보고서는 또 "최씨는 재단 내부에서 '최 회장'으로 불리고 있으며 외부에는 '박근혜 씨의 후견인'이라 소개하고, (최씨의) 처(妻)로 하여금 박근혜 씨의 생필품을 제공하게 하는 식으로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고 했다. 최순실 씨가 박 대통령의 의상과 액세서리 등을 챙기며 국정에까지 개입한 것과 흡사하다.

상단 사진에서도 나와있듯이 보고서에는 남동생 박지만과 "누나가 최태민의 꾐에 빠져 다른 사람 말을 듣지 않아 사전 약속 없이는 집에서도 만날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최씨가 박 대통령과 지만 씨의 접촉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2013년 취임 후 근령·지만 씨 두 동생을 청와대에 부르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동생들과 거의 접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고서에는 "최씨가 박근혜 씨에게 '신의 계시로 몇 년만 참고 기다리면 여왕이 될 것이므로 친·인척 등 외부인을 만나면 부정을 타게 되니 접촉을 피하라'라고 했다거나 '세계 정세가 여성 총리가 동쪽으로 이동하게 되어 영국마가렛 대처 총리, 파키스탄의 베나지르 부토 총리가 탄생했는데 1990년대 초에는 우리나라에도 여성 총리가 나오게 되는데 그 인물이 박근혜'라고 예언했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민정수석실은 또 "박근혜 씨는 최태민 씨가 신의 계시로 자신을 위해 헌신해 (최씨를)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다고 확신하고 모든 일을 그의 조언에만 의존하는 실정"이라며 "최씨가 '박근혜 씨에게 최면을 걸어 육영수 여사의 환상이 나타나게 해 환심을 사고 있다'는 유언비어와 '박근혜 씨가 근화봉사단 조직이 완료되면 차기 대통령에 출마할 꿈을 꾸고 있다'는 등의 설(說)이 시중에 유포되고 있다"고 전했다.

민정수석실은 보고서에서 "최씨가 각종 재단 운영에 관여하면서 물의를 일으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박 대통령의 동생인 근령·지만 씨는 1990년 8월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낸 호소문에서 "최씨가 육영 사업(육영재단), 문화재단(한국문화재단) 등의 회계장부를 조작하는 식으로 재산을 축적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1990년 여동생 박근령과 벌인 육영재단 분쟁 당시 "내가 누구한테 조종받는다는 것은 내 인격에 대한 모독"이라고 했고, 최태민 씨의 비리 의혹에 대해선 "반대 세력의 악선전"이라고 반박했다.

전두환·노태우 정부에 참여한 한 인사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경호실 작전차장보를 연이어 맡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박 대통령이 영애(令愛) 시절이었을 때부터 최태민 씨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고, 두 사람 모두 집권 직후 전직 대통령 유족 보호 차원에서 최씨를 박 대통령에게서 떼어놓으려 했지만 잘 안 된 것으로 안다"고 했다. #

3.2. 주한미국대사[편집]

2007년 대선 당시 버시바우 주한미국대사가 쓴 박근혜 후보 관련 외교전문은 2011년 위키리크스에 해킹됐다. 버시바우 대사에 의하면 한국의 '그리고리 라스푸틴’인 최태민이 박근혜의 '몸과 마음'을 지배해왔다는 소문이 무성하고 그 결과 최태민의 자녀들이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

3.3. 박근령박지만의 편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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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저희 언니에게 교묘히 접근해 언니를 격리시키고 고립시킨다

최씨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언니인 박근혜의 청원[8]을 단호히 거절해 주시는 방법 외에는 뾰족한 묘안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 주셔야만 최씨도 다스릴 수 있다고 사료되며, 우리 언니도 최씨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환상에서 깨어날 수 있을 것이옵니다.


박근혜의 여동생 박근령과 남동생 박지만은, 1990년 8월 14일 노태우 당시 대통령에게 A4용지 12장 분량인 편지를 썼다. 박근령이 직접 쓴 이 편지에는 최태민의 전횡·비위를 주장하는 내용과 "(최태민은) 순수한 저희 언니에게 교묘히 접근해 언니를 격리시키고 고립시킨다"며 "이번 기회에 언니가 구출되지 못하면, 언니와 저희들은 영원히 최씨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의 장난에 희생되고 말 것"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각하 내외분께서 언니인 박근혜를 만나 주신다면, 이 점을 최씨가 교묘히 이용해 우리 언니를 자기의 손아귀에 넣고 그 막강한 힘을 오히려 저희 유족 탄압에 역이용할 것"이라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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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이제는 도저히 참을 수 없고 참아서도 안될 일이 눈앞에 닥쳤다"며 최태민과의 비위와 전횡을 장황하게 서술했는데, 그 분량이 A4용지 5장이다. 특히 최태민의 금전 편취는 언니 박근혜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적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자신의 축재 행위가 폭로될까봐 계속해 저희 언니를 자신의 방패막이로 삼아 왔다"라며 "(최태민은) 유족이 핵심이 된 각종 육영사업, 장학재단, 문화재단 등 추모사업체에 깊숙이 관여해 회계장부를 교묘한 수단으로 조작하여 많은 재산을 착취했다"며 "지금은 서울 강남 및 전국에 걸쳐 많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적었다.

또 유가족에 대한 인격 모욕을 서술한 부분이 있는데,"(최태민은) 경비원을 언니에게 붙여 우리 형제들과 완전히 차단시키고 있다"며 "이로 인해 우리 형제들은 서로가 지척에 있으면서도 만나지도 못하고, 소식도 들을 수 없으며, 전화 대화마저도 못하는 실정"이라고 적었다.

부모님 명예 훼손과 관련, "최씨는 부모님의 유덕을 기리는 기념사업회를 형식적으로 만들어 놓고 이름만 '박정희 대통령 육영수 여사 기념사업회'이고 실제 내용은 최태민 기념사업회로 전락되어 가고 있다"며 "언니 박근혜가 대표 이사권이 있다는 것을 최대한 이용해 그 배후에서 모든 것을 관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편지가 작성된 시기는 최태민이 육영재단 고문을 맡고 있을 때며, 박근령과 숭모회라는 단체는 "최태민이 박근혜 이사장을 배후에서 조정한다"며 최태민의 퇴진을 주장했다. ###

4. 주변인들의 증언[편집]

4.1. 박근령[편집]

박근령씨는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이상한 예감 같은 것은 전혀 없었느냐’는 질문에 “당시 언니에게 어떤 분이 ‘한 번 뵐 거면 두 번 뵙고, 두 번 뵐 거면 세 번 봐라,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분’이 바로 최태민이었다고 밝혔다.

Q: 박 이사장이 최태민 목사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언제인가.
A: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최태민 목사라는 사람이 언니에게 좋은 이야기들을 들려주겠다고 하면서 만나기를 원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그 분을 만나지 못하도록 하셨다.

Q: ‘만나지 못하도록 했다’면 이미 그 전에 박 전 대표와 최 목사가 만났다는 말인가.
A: 한두 번 행사장에서 마주친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Q: 그때가 정확히 언제인가.
A: 언니의 대학 재학 시절로 알고 있다. 프랑스 유학을 가기 전이다.

Q: 박 이사장은 대학 졸업 후 언니의 개인비서 역할을 했다고 했는데 그때 최태민 목사의 실체를 전혀 몰랐나.
A: 당시만 해도 저는 언니를 도와주시는 훌륭한 분으로 알고 고맙게 생각했다. 제가 청와대 있을 때는 그 분을 만난 적이 없고 사진만 봤다. 그 후에는 여러 번 뵌 적이 있다. 최 목사가 그 당시 아현동에 위치한 새마음병원을 언니와 같이 운영하면서 오랫동안 관여했다.

Q: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자식 문제와 관련해 친국(親鞫)을 했다. 그 사실을 박 이사장은 언제 알았나.
A: 그 무렵 알게 됐다. 언니도 그 일로 굉장히 괴로워했다. 새마음봉사단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많은 잡음과 투서가 정보기관이나 청와대로 들어왔다고 한다. 곳곳에서 잡음이 많이 일어나니까 아버지까지 확인하려고 나서신 거다.”

Q: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근혜, 근령 두 자매는 신당동 사저에 잠시 거주하다 기업인들이 마련해준 성북동으로 거처를 옮겼다. 성북동 생활은 신당동보다는 편했나.
A: 성북동으로 이사를 가면서 할 일이 태산 같았다. 신당동 사저는 워낙 좁아서 짐도 못 풀었지만 성북동에서는 짐을 정리할 공간이 생기다 보니 본격적으로 서류를 분류하는 작업을 했다. 총무처와 대학교 도서관학과에서 사람들이 나와서 같이 작업을 했다.

Q: 성북동 시절에도 최태민 목사가 박근혜 전 대표의 일에 관여했나.
A: 새마음봉사단 일과 관련해 거의 매일 의논을 한 걸로 안다. 그런데 육영재단 사건 때문에 후에 들은 구호를 보면 최태민 목사가 오해 받을 일들을 했다는 것이다. 전횡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Q: 1990년 8월14일 박지만씨와 함께 최태민 목사 비리를 폭로하는 탄원서를 노태우 대통령 앞으로 쓴 걸로 알려졌다. 그 탄원서가 박근령 이사장 자필인지 여부가 논란이 있었다.
A: 당시 탄원서는 제가 자필로 직접 썼다. 동생도 최 목사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속상해 했다. 동생이 제 아파트에 와서 ‘최 목사 때문에 큰 일’이라면서 걱정을 많이 했다.

Q: 탄원서 내용을 보면 최태민 목사 일가가 금전편취, 유가족에 대한 인격모독, 부모님에 대한 명예훼손 등 18가지 항목을 지적한 걸로 돼 있다.
A: 오래 전에 써서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정보기관이나 수사기관에서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당시 육영재단의 비리를 잘 알고 있던 직원들은 ‘희대의 사기꾼 최태민은 물러가라’고 피켓을 들고 성토를 했다. 육영재단과 기념사업회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이 ‘이건 아니다. 큰일 났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하루 속히 언니가 그 사람들(최태민 일가)과 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우리는 탄원서로 바로잡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4.2. 박지만[편집]

박지만 회장의 한 측근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박 회장이 예전부터 많이 (최태민·최순실 일가를 우려하는) 말했고 지금도 어떤 마음인지 (지인의 말을 인용한 일부 보도를 통해) 계속 나오잖아요"라며 "그 양반이 이제 할 말이 뭐가 더 있겠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동아일보> 28일 기사. 박지만 EG 회장과 친분이 있는 인사에 의하면, '이미 박 회장은 할 말 있으면 최순실을 통해 하라는 말을 들어왔다고 한다. 나설 상황이 아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전했다. 친동생인 박 회장조차 최순실 씨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것이다.

채널A에 따르면 '정윤회 국정 개입 문건 유출' 사건으로 구속 기소됐던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 박관천 전 경정은 "박 회장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최순실 정윤회"라며 이같이 말했다. 박 전 경정은 "박지만 회장이 '누나가 최순실 정윤회 이야기만 나오면 최면이 걸린다'고 토로했다"면서 "박 회장이 많이 외로워했다"고 밝혔다.

4.3. 조순제(최태민 아들)[편집]

  • 조순제는 최태민의 의붓아들로 최태민의 마지막 부인이 데려온 아들이다. 최태민은 공식적으로 아들이 하나도 없었다. 다 딸이었다. 데리고 있는 아들이라고는 의붓아들 조순제 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구국봉사단부터 시작해서 영남대, 육영재단까지 사실상 도맡아 한 사람이 조순제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조씨는 박 대통령이 이사장을 지낸 영남대 재단 운영에 깊이 관여했고, 역시 박 대통령이 이사장을 맡았던 한국문화재단에서 이사를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이하 '스포트라이트')에서는 최태민의 의붓아들 조순제와의 대화 녹취록을 공개했다. 이 비밀 녹취록을 확보한 '스포트라이트' 제작진은 검증을 통해 녹취록이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 작성된 것을 확인했다.

녹취록에는 1970년대 초중반 최태민의 생계가 "아주 어려웠다. 생활 자체가 어려웠다"고 기록돼 있다. 그런데 1975년 구국선교단을 조직하고 박근혜 대통령을 명예총재에 앉힌 뒤엔 "돈 천지였다. 우리나라 재벌들이 돈 다 냈다. 돈은 최태민이 관리했다"고 조 씨는 증언했다.

또 "10.26 이후 뭉텅이 돈이 왔는데 관리하는 사람이 있고, 심부름하는 사람이 있었다. 최순실이 심부름을 꽤나 했다"고 기록돼 있다.#

  • <TV조선>이 조순제 녹취록을 공개했다. 최태민씨는 1970년대 박근혜 대통령과 구국선교단 활동을 같이 했다. 그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여성 대통령'이자 '아시아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정치적 야망을 자극했다고 한다.# 조순제는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할 것을 우려해 결정적인 증언을 계속 자제했다고 한다. 당시 녹음 자리에 참석했던 인물에 따르면, 녹음기를 끈 상태에서는 더욱 놀라운 증언도 많이 했다고 하지만 워낙 충격적인 내용이고, 정작 증언자가 이미 사망한 상태이기 때문에 보도하지 않았다고 <TV조선>은 밝혔다.#

"앞으로 계속 성장하면, 이걸 기초로 해서 성장하면 여성 대통령이 가능하고. 그 때 바람을 다 넣은 겁니다."

박 대통령이 1998년 정치를 시작한 것도 최태민의 영향이 컸다는 것이다. 구국선교단이 이름을 바꾼 새마음봉사단 시절에는 박 대통령이 '새마음교주'로 불렸다고 조씨는 전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새마음, 새마음 교주라고 그랬지."

조씨는 초기부터 최태민과 박 대통령은 '완전히 하나'였다고 말한다.

"아이고. 그 전에부터도 둘은 아주 불가분의 관계라고 봐야지."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 이후 박 대통령은 최태민 씨의 역삼동 집에 사흘에 한번꼴로 찾아갔다고 한다.

"하여튼 자주 왔어요. 사람들 다 피하게 하고 눈에 안 띄게. 온다고 연락이 오면 다 피하고."
"둘이 들어갔다 하면 밥은 문간에 갖다놓으면 영감(최태민)이 갖고 들어가고."

최태민은 박 대통령 동생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자기 가족들도 박 대통령과 가까이 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차단했다. 구국선교단을 실질적으로 운영한 조순제씨도 예외가 아니었다.

"내가 혹시 근혜 잡을까 싶어서 (최태민이 경계한 거예요?) 그럼."

박 대통령이 친동생인 근령, 지만 씨와 멀어진 것도 최태민의 이간질 때문이라고 조씨는 말했다.

"거의 맞을 거예요. 그 동생들이 컴플레인하니까 그래서 자기들끼리 거리가 멀어진 거예요."

  • 조순제는 녹취록 작성 후, 1년 뒤에 사망했다. 2007년 12월 20일, 17대 대선 바로 다음날이었다.

4.4. 전기영 목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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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조선 인터뷰

고 최태민(1994년 사망)씨와 20여 년간 교류한 충남 서산 충성교회 전기영(76·사진) 목사가 <국민일보>에 증언했다.#

예장 종합총회 총회장 전기영 목사는 영세교 교주 최태민씨에 대해 “주술가이고 무당”이라고 평했다. 최순실씨의 부친이자 사교인 영세교 교주였던 최태민(1994년 사망)씨가 “박근혜와 나는 영적 세계의 부부”라고 말하고 다녔던 것으로 드러났다. 최씨는 또 “내가 육영수 여사로 빙의(憑依)한 몸이 되어 박근혜 앞에서 말하자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가 깨어나는 입신을 했다”고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빙의 입신’ 대면은 박근혜 대통령과 최태민씨의 첫 대면 내용이 담겨 있는 중앙정보부 보고 자료를 기준으로 볼 때 1975년 3월로 추정된다.

Q: 태민이 박근혜를 알게 된 동기는.
A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난 뒤다. 그 무렵 박근혜에게 최씨가 위로의 편지를 보냈다. 편지 내용은 죽은 육영수가 나타나 ‘내 딸 근혜가 우매하니 당신이 그녀를 도우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에 박근혜가 최씨를 청와대로 초청했다. 까만 승용차들이 최씨가 도를 닦는 곳에 왔다.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엄청난 심리적 고통에 시달리는 박근혜 앞에서 최씨가 육영수의 영혼에 빙의(憑依, 영혼이 옮겨 붙음)됐다면서 그녀의 표정과 음성을 그대로 재연했다. 이것을 보고 놀란 박근혜가 기절하고 입신(入神·신들림)을 했다."

Q: 입신이라면….
A: "입신이란 말은 최씨에게 직접 들은 얘기다. 입신은 교계용어다. 예컨대 환상을 본다거나, 천국이나 지옥을 본다던가, 뜨거운 성령 체험, 신들렸다는 등. 놀란 박근혜가 그때부터 최씨를 신령스런 존재로 보게 됐다고 한다.
최씨는 박근혜가 대통령에 나올 것인데, (자신이 관리하는 자금이)서울 안국동 조흥은행에 13억원, 그리고 이자 9000만원이 있으니 그것으로 도와주라고 부탁했다. 최씨가 하나님은 언급하지 않고 ‘우리 신이’라는 표현을 써 이상함을 느꼈다. 목회자인 내가 보기에 그건 성령의 은사가 아니고, 귀신의 역사였다."

Q: 한때 최태민·박근혜 연인설이 돌았는데.
A: "물은 적이 있다. 최씨가 ‘내가 나이가 있는데…’라고 반문하더라. 나이도 많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말인 것 같았다.
‘박근혜와 나는 영의 세계 부부이지, 육신의 부부는 아니다’라는 말을 했다. 추문이 끊이지 않자,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조사를 지시해 직접 이른바 ‘친국’(예전에 임금이 직접 중죄를 지은 자에게 일일이 따져 묻는 일을 이르던 말)을 했다. 그럼에도 박근혜는 끝까지 최태민을 변호했다. 이후 재판에서 김재규는 대통령 시해이유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최태민을 처벌하지 않는 실망감을 들었다."

Q: 최씨는 목사가 아니라는 얘기도 있다.
A: "최씨는 1975년 우리 교단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하지만 신학교육은 받지 않았다. 당시 돈 몇 푼주고 목사안수를 받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최씨도 그런 인물 중 하나다. 지금도 적지 않은 신학교는 몇 개월이나 1년만에 목사자격을 주는 경우가 많다. 안타까운 일이다."

Q: 최씨가 신학을 하지 않았다고 했나.
A: "그렇다. 한번은 예배 때 축도를 못해 옆에 있는 목사가 축도 문구를 적어주었다. 최씨가 ‘축도’라고 크게 외치는 모습을 보고 웃은 적이 있다. 하지만 최씨의 말을 듣다보면 종교에 대해 아는 것도 많았다. 천주교 얘기도 많이 했고…. 특히 글을 잘 쓰고 붓글씨를 잘 썼던 기억이 난다."

Q: 그럼 최씨는 왜 목사안수를 받았을까.
A: "기독교를 이용하려 했던 것 같다.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반(反) 정부 투쟁을 했던 기독교 세력을 견제했다. 그래서 최씨가 박 대통령의 명을 받든 것이다. 최씨는 어용단체인 대한구국선교단을 만들었고 총재에 취임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명예총재를 맡았다. 자금을 계속 지원받은 것으로 안다."

Q: 최씨는 교단에서 스스로 나갔는가.
A: "쫓겨났다. 최씨는 당시 아파트 한 채 값을 주면서 지금 최순실이나 정윤회가 하는(박근혜 대통령을 돕는)일을 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거절했다. 최씨는 병을 고치고 점을 치는 등 주술적인 내용이 많았다. 특히 기독교 신학에 벗어나는 짓을 계속해 교단에서 쫓겨난 것이다."

Q: 최씨의 교계 활동을 증언해 달라.
A: "최씨는 영(靈)이 다른 사람이다. 산에서 도를 닦는 사람이었다. 목사가 되고 서울 강남에 ‘만남의교회’라는 200평(660㎡)쯤 되는 교회를 세웠다. 신학교도 설립했다. 그의 딸 최순실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몬테소리 유치원 큰 것을 차렸다. 나를 끌어들이려 했지만 귀신들린 이야기를 하도 많이 해 거절했다. 하나님이 아닌 신을 찾고 주술적인 말을 하도 많이 하길래 ‘이놈아, 네 정체가 무엇이냐. 누구 앞에서 재주를 부려’라고 소리쳤더니 얼굴이 찌그러지면서 저리 도망가더라."

4.5. 육영재단 관계자[편집]

국민일보 보도에 의하면 1980년대 육영재단에 근무했던 한 직원은 최태민이 직원들 50-60명 앞에서 여성 속옷이 든 봉지를 들어 올리면서, "박근혜 이사장은 내가 속옷까지 직접 사다 줄 정도로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한 적 있다." 고 증언했다고 한다. 기사

4.6. 정두언 새누리당 전 의원[편집]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때 MB측에서 박 대통령 검증을 책임 맡았던 정두언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검증을 책임지다 보니까 많이 알게 됐잖나"라며 박근혜 대통령과 최태민의 관계에 대해 "그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고 또 아이들이 듣기에는 불편한 부분들이 많기 때문에 그걸 공개한다는 것 자체가… 그런데 그것을 결국 방관했다는 것은 (나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2007년 8월에 언론 인터뷰에서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를 낱낱이 밝히면 박근혜 좋아하는 사람들은 밥도 못 먹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과 관련해 추가로 밝힐 내용이 있는지에 대해선 "얼마나 더 밝혀질지는 모르지만 이제 더 밝혀질 필요도 없죠. 이 정도면 뭐…" 라면서 "뭐한 말로 ‘야동’까지 나와야 됩니까? 정말…정말 충분하죠"라고 답했다.#

2017년 맘마이스에 출연하여 최태민과 박근혜의 사이는 남녀관계였다고 증언하였다.#

4.7. 김종필 전 국무총리[편집]

Q: 옛날부터 총재님 이야기를 전혀 안 들었나요.
A: 전혀 안 듣는 친구야.

Q: 이러니저러니 해도 박 대통령에게 바른말 할 수 있는 사람은 김 총재밖에 없지 않습니까.
A: 없어. 내 말 듣지도 않아. 옛날부터 그랬어요. 저희 아버지 어머니 말도 안 들었어. 최태민이란 반 미친놈, 그놈하고 친해 가지고 자기 방에 들어가면 밖에 나오지도 않았어.

Q: 그러니까 최태민과 관련해 별의별 소문이 다 돈 것 같습니다.
A: 하루 이틀도 아니고 아침부터 깜깜할 때까지 뭔 얘기를 하고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지만 들어앉았으니 그렇지. 오죽하면 박정희 대통령이 정보부장 김재규에게 ‘그 최태민이란 놈 조사 좀 해 봐. 뭐하는 놈인지’ 그랬을까. 김재규가 ‘아버지가 조사를 지시한 것’이라고 했더니 ‘근혜’는 ‘맘대로 해 보라’며 고함을 지르고 야단을 쳤어요. 아버지한테 찾아가서 울고불고 난리를 부렸지. 그랬던 사람이 지금 대통령이다. 우습지 뭔가.

4.8. 김해호[편집]

박근혜 전 대표는 최태민이라고 하는 사람과 그의 딸 최순실이라는 사람의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자신이 가진 재단조차 소신껏 꾸리지 못하고 농락당하는 사람이 어떻게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겠는가 -2007년 6월 17일 기자회견-

박근혜 전 대표는 최태민과 최순실의 꼭두각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2014년 12월 ‘정윤회 국정농단 의혹사건’ 당시 구속되었던 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의 “우리나라의 권력서열 1위는 최순실, 2위는 정윤회, 3위는 박근혜다”라는 말에 앞서 7년 전인 2007년에는 김해호 씨가 남긴 “박근혜 전 대표는 최태민과 최순실의 꼭두각시”라는 말이 화제를 모았다. 2007년 최태민 파일은 김씨가 취합한 자료를 기초로 만들어진 파일이다. "그제 광화문 앞을 지나는데 한 20여명 대학생들이 꼭두각시 박근혜를 최순실이 조종하는 그림을 그려놨더라." 속으로 쓴 웃음이 나왔다. 나더러 대예언가라고 하는 인터넷 게시글도 봤다. 자신이 9년 전 주장한 내용이 사실로 드러나는 것과 관련 그는 “국가적 비극이 된게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국민들로서는 어이없는 고통이겠지만 나에게는 머리가 쭈뼛서는 고통이었다. 6개월 트라우마가 6년이 갔다. 지금도 좁은 공간에 가서 밥을 먹으면 한 여름이라도 문을 열어놔야 한다."

4.9. 최씨 일가 운전기사[편집]

최순실 17년 운전기사가 <세계일보>에 증언했다.

Q. 1994년에 최태민 씨가 죽었다는데.
A. 모 기사(박 대통령 옛 운전기사로 1998년 사망)가 그러더라고요. 한번은 대통령이 ‘최 회장(최태민 씨)이 전화가 안 된다’고 하더라. (모 기사가) 아무 소리 안 하고 있으니까 (박 대통령이) ‘2달째인지 3달째인지 연락이 안 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얼마 후 다시 모 기사한테 또 물었다고 하더라. ‘3달째 최 회장 연락이 안 돼요, 집에 가서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모 기사가) 알아보니 (최 회장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Q. 박 대통령이 최태민 씨 죽음을 한동안 몰랐다는 것인가.
A. (최씨 일가가) 안 알려줘서 몰랐던 것이다.”

Q. 왜 최태민 씨 죽음을 박 대통령에게 알리지 않았던 걸까.
A. 최태민 씨의 아들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다고 하더라. 아들들도 신문에서 부고 기사를 보고 찾아왔다.

Q. 모친인 임선이 씨도 있었는데 어떻게 최씨가 대장이었는가.
A. 순실이는 (박 대통령에게 어려운) 이야기를 못하니까 (임씨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세요’라고 전화를 한다. 왜냐하면 할매가 이야기하면 (박 대통령도) 들으니까. 순실이가 보스야(웃음). 순실이가 다 해서 하는 것이다. 할매가 어떻게 하겠느냐. 할매 머리에서 그게 나오느냐? 당연히 순실이가 다하는 거야.

Q. 박 대통령은 최씨 일가의 ‘허수아비’ 비슷한 존재라는 것인가.
A. 공주라고 보면 된다. 공주는 뭘 모르잖아요? 저 양반(박 대통령)이 참 뭘 모른다. 내가 봤을 때 (박 대통령은) 영혼까지 (최순실 씨나 최씨 일가에) 뺏긴 사람이야. 거기서 헤어나올 수가 없다. 상징적인 인물이다.

Q. 도대체 최씨가 박 대통령의 일상을 어떻게 장악했다는 말인가. 이해가 안 된다.
A. (박 대통령 사저의) 경비원부터 전부 이쪽(최씨)에서 보냈다. 옷을 찾아오거나 돈을 (찾아)주는 것도 모두 마찬가지다. 순실이가 시켜서 (박 대통령이 사용하는) 화장품을 사오기도 했다. 저 사람(박 대통령)은 영원한 공주야. 아무것도 (스스로) 못한다.

Q. 최씨가 박 대통령에 이렇게 영향을 미치도록 박지만 박근령 남매는 뭘 했는가. 일각에서는 최씨가 박씨 남매의 접근을 막았다는데 사실인가.
A. 이 사람들은 철저히 그 남매를 배제했다. 자기가 아니고 다른 사람들은 (박 대통령에 대한) 전화이건 접근 자체를 교묘하게 못하게 한다. 오죽하면 근령이도 마찬가지로 집(박 대통령의 삼성동 사저)에 들어오지 못한다. 선거할 때도 못 들어온다. 기사(박 대통령 운전기사)에게 들은 바로는 (최씨가 박 대통령에게) ‘○○○ 과장(박지만 씨 측과 교류가 있는 인사)이 나쁘다’고 줄기차게 전화를 했다고 하더라. 박 대통령도 (박지만 씨 쪽 사람 중에) 유일하게 그 사람과 통화했는데, 결국 안 하게 되더라. 최씨가 계속 ‘좋은 사람이 아니어서 믿으면 안 된다, 이용한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하더라. 나쁜 이미지를 심어 자기네 이외에는 (박 대통령과) 통화고 뭐고 못하게 했다.

Q. 최씨가 박 대통령 친동생들을 철저하게 박 대통령과 분리시켰다는 얘기인데.
A. 접촉 자체를 못하게 했다.

Q. 박지만 남매는 이런 상황을 다 알고 있는가.
A. 알고 있을 것이다. 박지만 씨가 왜 몰랐겠느냐. (최씨가 박 대통령과 그 친동생들의) 접촉을 철저히 못하게 했다.

Q. ‘문고리 3인방’이 박 대통령이 아닌 ‘최씨의 종’이란 말이냐.
A. 그 사람들은 (박) 대통령 사람이 아니다. 순실이의 사람이다. 순실이가 뽑았는데 모두 순실이 사람이다. 그 사람들 모두 순실이하고 정 실장이 뽑았던 사람이야. 그 사람들의 종으로 보면 된다. 이 사람들이 (최씨가) 뭐 시키는데 토를 달면 그날로 그만둬야 된다. 순실이 말을 무조건 들어야 해.

Q. 이해를 할 수 없다. 그 사람들은 모두 박 대통령의 보좌관 아닌가. 월급도 받고.
A. 월급은 거기(박 대통령 측)서 나오더라도 말은 이 사람(최씨) 말을 들어야 돼. 박 대통령은 무슨 이야기를 안 하니까. 자기들이 다 시키고, 연설문도 그렇다. 좋은 건 다 해 자기들이 보고하지. 야들(박 대통령 측근 인사들)은 거기에 일체 간섭을 못해. 그저 순실이가 시켜서 하고. ‘순실이 종’이라고 보면 돼.

Q. 최씨가 박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친 게 밝혀졌는데, 박 대통령의 의원 시절에도 연설문을 고쳤나.
A. 순실이가 백 번 그러고도 남는다. 정호성, 이재만 등이 이것(연설문)을 쓸 때 보면 밤새도록 하는지 다음날 못 나온다. 나중에 나를 보내 데리고 나오라고 한다. 그러면 (연설문을) 정 실장이 보고 그다음에 순실이가 보고 고칠 것 다 고쳤다.

Q. 그때도 최씨가 연설문을 다시 고쳤다는 얘기인가.
A. 그렇죠. 가(박 대통령 측근 인사들)들 말마따나 ‘(박) 의원님 위에 정 실장이고, 정 실장 위에 순실이’야. 순실이가 대장이고 의원님이 꼴등이야. (최씨가) 하라면 하라는 대로.

Q. 박관천 전 경정이 말한 ‘권력서열 1위 최순실, 2위 정윤회, 3위 박 대통령’이라는 이야기와 같다.
A. 맞지. 그때부터 계속 그랬어. 순실이가 대장, 그다음은 정 실장, 박 의원은 꼴등.

Q.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간다.
A. 이해가 안 가죠? 정 실장이 고치면 순실이가 ‘그건 안돼’ 하고 고쳐서 갖다주면 (박 대통령이) 그거 그대로 갖다가 앵무새로(처럼) 이야기하는 거지.

4.10. 강신옥 변호사 [편집]

김재규 부장 변론을 맡은 강신옥 변호사가 <시사 in>에 증언했다.

Q. 김재규 부장이 조사했던 내용은?
A. 김재규 부장은 당시 검사로 중정에 파견 나와 특명수사를 담당하는 6국장(안전국) 백광현에게 구국여성봉사단 조사를 지시했다. 백 검사는 최태민을 불러다 철저히 조사했다. 조사 결과 최태민은 자칭 ‘태자마마’ ‘도사’라고 하면서 꿈에 육영수 여사가 나타나 큰딸 박근혜를 잘 지켜달라고 당부해 박근혜에게 편지를 썼다고 했다. 최태민의 편지를 받은 박근혜도 어머니가 꿈에 나타나 도움을 주려는 사람이 찾아올 테니 도움 받으라고 했다고 화답하면서 비슷한 꿈을 꾸었다는 인연으로 두 사람이 가까워졌다. 그 뒤 박근혜는 최태민이 여성단체인 구국여성봉사단 총재가 되는 데도 개입하고, 최태민이 기업들로부터 양로병원을 짓는다는 명목으로 수억원대 돈을 뜯어내는 데도 관여했다. 박승규 청와대 민정수석도 별도로 최태민을 조사하니 영애를 등에 업고 기업체로부터 수십억원을 갈취한 사실이 적발돼 김재규 부장에게 어쩌면 좋겠느냐고 하소연했다고 하더라. 김재규 부장은 최태민이 여성 정치 지망생 6명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내용까지 조사되어 있다고 했다. 그는 이 정보를 취합해 박정희 대통령에게 최태민과 구국여성봉사단을 정리하고 영애를 떼어놓아야 한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박근혜 말만 듣고 보고를 묵살했다.

4.11. 김경래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 [편집]

김경래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이 <국민일보>에 증언했다.

그는 “당시 박근혜는 만나지 말라는 아버지 하명에도 최태민을 몰래 만났다. 박 전 대통령이 주색에 빠진 틈을 타고 기어들어와 박근혜를 앞세워 각종 이권에 개입한 게 바로 최태민·최순실 부녀”라고 말했다.

김 전 국장이 최태민을 알게 된 것은 1977년 초.

“구국봉사단 여성국장 김모씨와 송모 전 건국대 교수가 수십장의 문서를 들고 저를 찾아왔어요. 피해사실을 조목조목 밝히는데, 김씨는 ‘최태민이 영등포 여관에서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했습니다. 새벽 2시에 도망쳤고, 자신과 같은 여성이 한둘이 아니라며 10여명의 이름을 거론했지요

후배기자 2명과 함께 확인해보니 대부분 사실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 박 전 대통령 앞으로 친필 편지를 작성했다. 최 목사와 관련한 정보와 비리를 정리해 의전비서관을 통해 박 전 대통령에 전달했다.

“편지에 최태민이 진실한 크리스천이 아니고 성직자도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10여개 주요 교단과 신학교에 졸업여부를 문의했으나 최태민 이름은 없었다고 말이죠. 영애 박근혜가 비윤리적인 사기꾼 목사에게 놀아나고 있으니 관계를 끊어야한다고 충고했죠.”

그는 박 대통령이 ‘사이비 종교에 빠지지 않았다’고 밝힌 것에 대해 “맹신자, 광신자가 아니라면 어떻게 40년간 최씨 일가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박 대통령이 혼을 빼앗기지 않고서는 중앙정보부 보고서를 무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김 전 국장은 “박 대통령은 최태민·최순실 부녀의 정신과 사상을 인정하기 때문에 그동안 그들의 행사에 참석하고 도움을 준 것”이라며 “최순실은 최근까지도 수시로 점집을 드나들고 점괴를 받아 박 대통령에게 전해줬다”고 했다.

4.12. 정윤회 문건[편집]

세계일보가 공개한 정윤회 문건에도 관련 내용이 나와있다.#

십상시들과 정윤회의 모임에서는 공공연하게 ‘이 나라 권력서열 1위는 최순실, 2위는 정윤회, 3위는 박근혜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대통령이더라도 자신의 옛애인이 나은(‘낳은’의 오타로 추정) 어떻게 배척할 수 있겠느냐?’라는 극치의 말이 서로간에 오가고 있다 함

4.13. 전여옥 저서[편집]

전여옥 한나라당 전 의원이 저서 <오만과 무능>에 밝힌 바에 의하면, 박정희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했다는 사람이 전여옥을 찾아와 박근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박근혜는) 최태민에게서 전화가 오면 밤 12시가 넘는 시간에도 만나러 갔습니다. 그때는 통금이 있었지요. 갑자기 밤에 영애가 움직이니까 경호실이 발칵 뒤집히는 거지요. 그런데, 그런 일이 수도 없이 있었습니다. 제가 모시던 박정희 대통령께서 영애와 최태민의 관계를 매우 걱정하셨어요. 그래서 영애의 모든 전화를 도청했습니다. 내용은 정말이지, 도저히 말씀드리기가…"

4.14. 신동욱[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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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령의 남편인 신동욱은 "육영수 여사 서거 이후에 최태민이 등장한 것이 아니라 육 여사가 살아계실 때 최태민이 등장했다."며 "1973년 박근혜 영애가 공식·비공식 행사들에 참석했는데 최태민도 그런 행사에 등장했다."고 밝혔다.# 쉽게 말해서 자기 장모가 살았을 때부터, 처형이 최태민을 만났다는 얘기. 실제로도 육영수가 살았을 때부터, 최태민이 박근혜를 만났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최태민이 청와대에 접촉한 기록은, 육영수가 살았을 때에도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최면술에 호기심을 품었던 육영수가 직접 시범을 보려고, 비공식 행사에 최태민을 불렀다.#

일설에는 박근혜가 사춘기에 접어들어 공부를 멀리하자, 장충식 전 단국대 총장 부인의 소개로 최태민이 청와대에 들어와 박 대통령을 최면술로 치료했다고 한다. 최태민이 청와대 요로로 청탁을 넣어 큰 영애를 만났는데 박근혜는 방에서 최태민을 만난 지 20분만에 활짝 웃는 얼굴로 나왔다고 한다.

최순실과 이복 남매인 최태민의 아들은 “육영수 여사님 살아계실 때 아버님이 청와대를 들락거렸다. 알던 사이였다. 그러니까 자기 딸을 맡기지 그냥 딸을 맡기겠느냐?”라며 육영수가 살았을 때부터, 최태민과 박정희는 아는 사이라고 주장했다.#

4.15. 조웅 목사 주장 [편집]

박근혜의 집권을 필히 막아야 한다. 목숨 걸고 하는 말이다. 아직까지도 신변의 위협을 받는다. 박근혜는 도덕성, 이념에도 문제가 있고 절대 대통령이 되서는 안되는 인물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기에 답답하고 원통해서 말한다. 박근혜가 안보 안보 하는것은 다 쑈다. 북한첩보라인(장자크구로아)과 이미 깊숙히 연관되어 있다. 또 이 사실을 아는 분은 이항 목사님 및 고발장 쓴 것을 본 사람들이다.
- 조웅 목사


2013년 2월 조웅 목사는 아프리카TV와의 인터뷰에서 차마 믿기 어려울 정도의 내용을 주장했다. 영상 조웅 목사는 인터뷰하는 중간에 검찰 수사관에 의해 체포되었는데 당시 체포되는 장면이 방송으로 중계되었다. 체포영상

다만 그는 이전에도 모 기업 관련하여 의혹을 제기했다가 처벌받은 전력이 있다. 그의 주장은 워낙 파격적이여서 사람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으나 2016년 발생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상당 부분이 사실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조웅 목사는 박정희와 함께 5.16 군사정변을 주도, 중앙정보부 창설멤버로 황태성 사건을 CIA에 제보했다는 이유로 박정희로 부터 암살 위협을 당한 적이 있다고 주장하였으나 근거는 없다.

  • 현재 상공회의소 소장인 '장자크구로아(EU 코리아 이사장)'는 북한에 7년 거주했으며 김정일의 첩보라인이고 박근혜는 EU코리아 이사이며 현재 박근혜와 밀접한 관계라 주장

  • 박근혜, 정윤회(최태민 딸의 남편), 장자크구로아, 수행비서 총 4명이 김정일 전용기 편으로 평양 도착

  • 박근혜는 김정일과 4시간 30분간 독대했고, 만찬에서 박근혜는 마약이 섞인 '백두산삼독주'를 마심, 3박4일 동안 김정일을 만났고. '김정일과 동침(잠자리)'했다 주장 (출처가 美 CIA 정보라 주장)

  • 박근혜가 평양 방문시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은 '한화 500억을 북측에 건냈다'는 주장 (美 CIA 정보로 조웅 목사가 외환관리법위반으로 고발)

  • 박근혜가 '김일성의 묘소에 참배'했고 고려연방제를 창설 하겠다고 선서했다 주장 (조웅 목사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

  • 박근혜가 '최태민과 15년을 동거'를 했고, '최태민의 아이를 2번 낙태' (조웅 목사는 검찰에 박근혜 생식기 조사<임신 경력 유무>를 하자고 했지만 당연히 거절, 그는 이 사실을 최태민의 아들이자 최순실의 이복 오빠인 최재석에게 들었다고 주장하였다.)

  • 박근혜는 '최태민 사망 후 정윤회(최태민 딸의 남편)와 불륜관계'를 가지며 16년간 동거했다 주장 (현재 정윤회는 최태민이 박근혜에게 준 재산관리를 하며 인수위원 안에서 모든 키를 쥐고있다.)

  • '박근혜 뒤에는 정윤회'가 있다. 돈, 인사권 등 정윤회가 킹메이커고 박근혜는 허수아비라 주장. 정윤회와의 불륜관계는 '최태민 본처의 첫째 아들 최재석이 폭로'한 것이라 주장

  • 박지만 뿐만 아니라 '장자크구로아'의 마약 제공으로 '박정희 집안 전체가 마약'을 하며 현재도 박근혜는 정윤회와 마약을 할 것이라 추정.

  • 박근혜 배후에는 '북한첩보라인 장자크구로아'가 있음.

  • 정윤회는 현재 박근혜의 통치자금을 관리하고 모든 인사권을 가지고 밀실정치를 하며, 현재 인수위 및 공직 임명자들도 모두 정윤회의 작품이라 주장.

  • 증거는 책과 수백장의 고발장이다. 책 '황태성 박정희 김종필 커넥션' 은 조웅 목사가 직접 집필했으며 단지 1만부 발행만 허가를 받았고 현재는 품절상태다.

  • 조웅 목사는 불륜 및 국가보안법위반, 외환관리법위반 사건으로 대검찰청에 고발 했으나 모두 혐의 없음 판결


[1] 박근혜의 최측근이었던 전여옥 전 의원이 저서 『오만과 무능』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최태민은 박근혜에게 육영수가 꿈에 나타나 '박근혜가 아시아의 지도자가 될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런 내용으로 박근혜에게 세 차례나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이것은 전여옥 당시 대변인이 박근혜에게 직접 들은 내용이다.[2] 전여옥의 신동아 인터뷰 링크[3] 그런데 최태민의 아들인 최재석이 2017년 1월 김어준의 파파이스에서 주장한 바에 의하면, 이 스토리는 언론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며 최태민과 박정희일제강점기부터 아는 친구 사이였다고 한다. 당시 각각 일제 순사와 장교였던 두 사람은 일본에 유학을 갔는데 이때 서로를 알게 되었고(일본에 관련 기록이 있는지 후지TV에서 이러한 사실을 먼저 알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최태민은 공화당에서 중앙 위원, 서대문 지구위원장 등을 지내며 정치 활동도 좀 하지만 김종필에게 공천을 못 받아서 종교인으로 변신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박근혜가 아닌 박정희가 이때부터 무상 지원 등의 혜택을 주었다고 한다. 이런 최재석의 주장은 육영수가 생전부터 3남매에게 최태민을 조심하라고 경고했다는 증언과도 제법 맞아 떨어진다.# 다만 박정희와 최태민이 지인이었으면, 육영수가 최태민을 견제한 까닭, 나중에 박정희가 최태민을 직접 문초한 이유 등이 복잡해지긴 하는데, 사실 인연과 무관하게 최태민이 의심스러우면 할수도 있긴 하다. 다만 박근혜와 최태민과의 만남 과정부터 불확실하고 미스터리인 부분이 너무 많은 것은 사실. 일단 여러 인물들의 말을 조합해 보면 최태민과 박근혜는 1974년에 육영수가 사망하기 전부터 최소한 안면은 트인 상태였던 것으로 보이고, 이후 육영수가 사망하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진 것 같다. 물론 이 부분은 훗날 국내를 뒤집어 놓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거대한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좀 더 명확해질 필요는 있다. 다만, 최태민이 사망한 이 시점에 가장 확실한 해명은 박근혜의 자백이겠으나, 이미 최태민 관련해선 입을 다물기로 맹세한 것처럼 보이는 박근혜가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답변할 리도 없어보인다. 한편, 육영수 꿈에 대한 내용은 전여옥 전 의원이 박근혜에게서 직접 들었다며 자신의 저서에서 밝힌 바 있다.[4] 청와대에 최태민과 재벌들이 구국여성봉사단을 이유로 드나들며 집회를 가졌다. 이를 눈 감아 준 것이 경호실장 차지철이다. 잠깐, 사이비 종교인이 청와대를 들락거리며 이권에 개입하고 부정 축재한 사건?[5] 최태민은 정통 개신교 어느 곳으로부터도 안수받은 목사가 아니라고 김계원 씨(당시 대통령 비서실장)가 증언했다.[6] 아시아경제가 날짜를 잘못 표기했다. 해당 내용이 연재된 '남산의 부장들' 107화는 1992년 8월 29일 연재됐다.[7] '거부할 수 없는 예언이 있었다'라던가, 대국민담화에서 나온 '모든 인연을 끊고 살겠다' 등의 발언이 너무도 종교적이다.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육영수의 현몽을 예언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상식적으로 수석비서들이 대면을 못하는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동생들 뿐 아니라 모든 공직자들과의 관계를 꺼린 것도 종교적 수행의 과정으로 이해하면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박근혜 본인이 가족, 친구, 참모들과 떨어져 방에 틀어박혀 지내거나, 국정에 대해 사심(이라고 본인은 이해하고 있지만 실상은 자기생각)을 넣지 않고 최순실의 의견(본인은 신탁이나 예언으로 이해하고 있을 수 있다)을 구하는 것 등을 신의 뜻을 받드는 종교적 수행의 과정으로 이해한다면 이에서 손을 뗄 것이고, 그 부분을 파고들어 최태민 부녀가 전횡을 일삼을 수 있었을 것이다. 종교팔이 사기꾼들이 사기 치는 수법도 이와 같다.[8] 최태민을 옹호하는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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