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계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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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창당 60주년[1] 기념으로 내건 현수막[2]

1. 흐름
1.1. 현 상황
2. 개요
2.1. 당 색깔
3. 역사
3.1. 해방 이후부터 제2공화국 집권까지3.2. 5.16 군사정변 이후 ~ 제4공화국3.3. 제5공화국 ~ 노태우 정부3.4. 문민정부3.5. 국민의 정부 ~ 참여정부3.6. 이명박 정부 ~ 박근혜정부3.7. 문재인 정부3.8. 현재
4. 역대 선거결과
4.1. 대통령 선거4.2. 국회의원 선거4.3. 지방선거
5. 진보정당과의 관계6. 관련 문서

1. 흐름[편집]

민주당계 정당

문재인 정부 ~ 현재 (2017 ~ )

← 박근혜정부 이전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민주평화당

바른미래당으로 신설합당*

*: 합당 이후의 역사는 보수정당 틀에 있지만 해당 정당은 보수가 아닌 중도개혁 정당이라고 주장한다.

1.1. 현 상황[편집]

2. 개요[편집]

민주당계 정당은 한국의 정당 계열 중의 하나로, 지난 60여 년간 이어져 왔다. 다만 이건 역사성을 강조하기 위한 부분이 크고, 사실상 현 민주당계의 직접적 전신으론 1990년대 창당한 민주당이나 새정치국민회의를 많이 꼽는다.[6]

1945년 최초의 민주당인 고려민주당이 설립되었고, 그 후 민주당계 정당의 시초인 한국민주당의 창당과 뒤에 민주국민당을 거쳐 오늘날의 민주당계 정당들이 스스로 뿌리라고 부르는 민주당이 1955년 창당되었다.[7] 민주당은 4.19 혁명 이후 윤보선을 대통령으로, 장면을 내각 총리로 하는 제2공화국을 창출했다. 그러나, 윤보선의 구파와 장면의 신파로 분열된 이후에는 온갖 분열과 이합집산을 거쳐 신민당으로 통합되었다. 신민당은 12.12 군사반란 이후 출범한 제5공화국 정권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가, 1985년 신한민주당으로 다시 부활했다. 이후 또 다시 분열을 거쳐 현 민주당계의 실질적인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새정치국민회의에서는 1998년에 김대중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수평적이고 평화적인 정권 교체를 이룩하였다. 2000년에는 16대 총선을 앞두고 새천년민주당으로 재창당하였고, 2002년에는 노무현이 16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정권 재창출을 이루어냈다. 이후 민주당계 정당은 새천년민주당과 열린우리당으로 분열되었으나, 여러 번의 이합집산 끝에 2008년에 통합민주당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합쳐졌다.

이후 여러 차례 이름을 바꾸며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민주당계 정당이 다시 하나로 뭉쳐지는 듯 했으나, 2015년 재보궐선거의 참패로 인해 2015년, 20대 총선을 기점으로 한 당 내 분열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의 양당으로 다시 나뉘게 되었다. 2016년 10월, 나라를 뒤집어 놓은 초유의 민간인에 의한 국정 농단이 밝혀지며 그해 12월의 국회 탄핵안 가결까지 혼란스러운 정국을 거치며 결국 2017년 3월 10일, 헌재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켰다. 그 결과 궐위상태의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해 2017년 5월, 19대 대선이 치러졌고 결국 문재인이 19대 대통령에 선출되어 참여정부 이후 민주당계 정당의 대표 주자인 더불어민주당이 10년 만에 정권을 잡기에 이른다. 2017년 연말, 민주당계 정당의 양대 축 중 하나인 국민의당은 다시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으로 재분열한다. 두 당 중 하나인 바른미래당은 당의 우경화로[8] 보수 정당의 계열에 편입했다. 현재 민주당계 정당은, 더불어민주당민주평화당이 그 명맥을 잇고 있다.

민주당계 정당의 이념은 대한민국의 보수 정당 만큼이나 보수라고 보기도, 진보라고 보기도 어려운 애매한 위상을 가지고 있다. 다만 언론에선 보수 정당이 보수 우파를 자처하기에 좌파, 진보 진영으로 뭉뚱그려 말하는 경향이 있다. 굳이 정체성을 따지자면 민주당계란 이름에서 보이듯 반군사정부, 반독재정권 정도가 정체성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 한민당 시절엔 도리어 강경 보수 계열로 평가 받기도 했으나, 이후 이승만 독재 정권, 박정희전두환 군사 정권을 거치며 반독재, 반군사정부 투쟁을 벌이면서 민주/중도적인 방향으로 이동하였다.[9] 그리고 민주화가 이뤄진 이후엔 DJ를 필두로 평화민주당, 민주당, 새정치국민회의를 거치며 각계의 재야 인사와 개혁적 인사들이 다수 합류하였다. 이로 인해 좀 더 진보적인 색채를 띠게 되어 오늘날에는 다양한 스탠스가 뒤섞인 중도 개혁 세력 정도로 평가되고 있다.[10] 특히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이후로는 친노계가 진보적 인사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진보적 색채가 이전보다 더 강해졌다.[11] 문재인 대통령 또한 당 대표 시절에 재야 인물들을 대거 영입함에 따라서 은 진보적인 인물부터 당 내의 중도 보수 인사들까지 아우르게 되었다. 현재도 추미애 대표의 더불어민주당이 이러한 기조를 계승하고 있다.

사실 대중적인 표현과 달리 학술적으로 표현할 때나 스스로 칭할 때나 '진보'나 '좌파'라는 지칭은 거의 나오지 않고 "민주개혁" 또는 "중도개혁"이라는 표현이 주로 쓰인다. 굳이 나누면 보수 양당제하 진보 좌파로, 진보 정당들이 장기 집권하기도 하는 유럽 정치 기준으로 보면 중도(자유주의), 혹은 중도~중도좌파(사회자유주의) 정도로 평가 받기도 한다.[12] 참고로 참여정부의 주축이었던 열린우리당 당시 내세운 이념 역시 사회자유주의였다. 반면 같은 시기의 새천년민주당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이었다. 보통 참여정부 시기의 민주당계 정당의 이념을 다룰 때는 주의해야 할 점이 당원 각각의 정치적 스펙트럼이 넓은 편이었기에 당의 노선을 분명하게 가르기 어렵다는 점이다. 현재까지도 그런 기조를 유지하기에 민주당 계열은 온건 보수와 온건 진보 세력이 각각 계파를 이뤄 한솥밥을 먹는 구도라 해석할 수 있다.[13] 박근혜정부 당시의 민주당 계열도 참여정부 때와 유사하게 당시 민주당계의 양대 축인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이 각각 온건 진보와 온건 보수가 주류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본다.[14] 지금은 더불어민주당19대 대선을 거치며 더 당 내부의 스펙트럼이 다양해져서 중도 보수까지 아우르게 되었지만 당의 주축은 이전의 민주당계 정당보다 더 진보화하였다. 박근혜정부 당시의 양대축 이었던 국민의당은 분열하여 보수 세력은 바른미래당으로, 당내의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소위 호남의 온건 보수 세력은 민주평화당으로 나뉘었다.

한국의 정당 특성상, 사분오열과 이합집산이 자주 반복되어 왔는데, 민주당계 정당은 다른 정당계열의 여집합들이 모인 정당이어서 특히 더 심했던 편이다. 굳이 특징을 잡아보면 야당이었던 경우가 많으며, 대체로 정당 이름에 민주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15] 한국의 현대사에서 민주라는 명칭이 붙은 정당의 역사는 아래에 기술한다. 또한 민주라는 명칭은 들어가지만, 실질적으로 민주당계와 관련이 없는 민주공화당, 민주정의당, 민주자유당[16], 민주노동당[17], 자유민주연합[18] 등은 제외한다. 더불어 역사적 의미가 옅은 군소정당들은 제외하고 원내정당이거나 특기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위주로 서술한다.

2.1. 당 색깔[편집]

당 색깔의 경우 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계 복귀를 선언하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면서 고른 초록색[19], 참여정부열린우리당에서 주로 사용한 노란색[20] 위주로 혼용해서 사용했으나, 2013년 민주통합당이 민주당으로 개명하고 난 후, 당 색깔을 파란색으로 바꾸면서 지금까지 더불어민주당이 사용하고 있다.[21][22] 그러나 여전히 초록색과 노란색은 보조적인 색으로 후보자 혹은 개개인별로 사용하고 있다. 2015년, 국민의당은 당시 새누리당의 빨강과 더민주의 파랑이라는 스펙트럼의 중간인 초록색을 선택했다.[23] 주황색을 사용했을 때도 있었는데, 대통합민주신당이 그 예다. 2018년, 국민의당의 분열로 생긴 두 중 민주당계열인 민주평화당은 초록색을 골랐다. 결과적으로 현재는 더불어민주당의 색깔인 파란색민주평화당이 사용중인 초록색, 두 색깔이 쓰이고 있다.

3. 역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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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해방 이후부터 제2공화국 집권까지[편집]

3.1.1. 고려민주당[편집]

항목 참조.

3.1.2. 조선민족당[편집]

항목 참조.

3.1.3. 한국민주당[편집]

8.15 광복 후 1945년 결성된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정당. 약칭은 한민당. 이들은 광복 후 초기에 민중들로부터 지지기반이 매우 약했다. 지주, 자본가, 친일반민족행위자들 위주의 정당이었기 때문이다. 주요 인물들이 일제 말기 친일경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민중들로부터 지지 기반이 약했고 지금도 거의 흑역사 취급을 당하고 있다.

김영삼·김대중의 초기 정치 뒷배가 한민당 출신 인사였고 그에 따라 지금 현재 여야를 막론하고 가끔씩 친일 논란이 일어나는 인물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미국이 보기에도 "엄청 보수적이라 말이 안 통한다"[24]라는 평을 할 정도로 보수정치의 대명사로 인식되었다.

3.1.4. 민주국민당[편집]

항목 참조.

3.1.5. 민주당(1955년)[편집]

민주당계 정당의 뿌리이자 제2공화국의 집권 여당. 오늘날의 민주당계 정당들은 이 정당을 시조격으로 여긴다. 문재인은 당대표이던 2015년에 국민과 함께 민주 60년이라는 슬로건으로 민주당 60년을 기념하면서, 그 이전의 민주당계 정당들을 족보에서 파내버렸다(...).

1955년 자유당사사오입 개헌 사건을 계기로 민주국민당자유당 탈당파[25], 흥사단 등의 범 야권 세력이 모여 호헌동지회를 결성한 뒤, 9월 18일 창당하였다.

그러나, 한민당-민주국민당 출신 구파와 자유당 탈당파, 흥사단계 등 신파의 내부적 갈등이 지속되었다. 1956년 대선 후보 선출 전 곽상훈의 중개로, 대통령 후보에 신익희, 부통령 후보에 장면을 내세워 제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다. 안타깝게도 신익희 당시 후보는 선거 직전 사망했지만, 장면 당시 후보는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제1공화국이 무너진 이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어[26] 윤보선대통령으로 장면국무총리로 하는 제2공화국을 창출하며 집권에 성공했다. 그러나 독재정권 타도에 목표를 두고 뭉쳐버린 탓에, 내부 분열로 혼란이 컸었다. 윤보선의 구파와 장면 신파의 갈등이 심했고, 결국 구파는 신민당으로 분당했다. 이후 남아있던 신파마저 다시 노장파와 소장파로 분열되었고, 5.16 군사정변 직후 군부에 의해 해산되었다.

3.1.6. 통일당[편집]

항목 참조.

3.1.7. 신민당(1960년)[편집]

민주당에서 윤보선 계열의 구파가 탈당하여 창당한 정당이다. 당초 민주당은 독재정권 종식이라는 목표 아래에 뭉쳤으나, 막상 승리가 확실시되자, 오늘날처럼 계파 간의 갈등 양상은 점점 커져갔다.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내각책임제하에서 실권을 가진 총리를 자기 계파 출신으로 선출하기 위해서는 의석수에서 앞서야 했으므로 공천 과정에서부터 계파간의 싸움이 치열했다. 구파의 윤보선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지만, 실권을 가진 총리가 신파의 장면이 되면서, 신파는 내각 구성에서 구파를 소외시켰다. 이에 1960년 8월 31일 구파는 ‘구파동지회’라는 이름으로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여 신파와의 결별을 고했다.

이후, 구파는 1960년 12월 14일 '신민당'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창당했다. 창당 후 반년간 제1야당의 위치에 있었으나 별다른 정치활동을 벌이지도 못하고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해체되었다. 분열을 상징하는 정당이자, 제2공화국이 단명으로 끝난 데 많은 책임이 있는 정당으로 평가되고 있다.

3.2. 5.16 군사정변 이후 ~ 제4공화국[편집]

3.2.1. 민정당[편집]

윤보선이 탈당을 통해 만들었던 수많은 민주당계 (2공화국기의 신정당과 이후의 신한당 포함) 정당 중 하나. 김병로[27] 등이 참여했다. 1963년 제6대 총선 당시 41석으로 제1야당.

3.2.2. 자유민주당(대한민국)[편집]

항목 참조.

3.2.3. 민주당(1963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민주당(1963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군정이 끝난 뒤 민정 체제로 이양되자 잔존한 민주당의 파벌(신파)이 다시 뭉친 이른바 재건민주당이다.

3.2.4. 국민의당(1963년)[편집]

항목 참조.

3.2.5. 민중당[편집]

1965년 창당. 윤보선 + 박순천(민주당(1963년))의 통합 야당이었으나 윤보선이 계파에서 밀리면서 탈당한다.

3.2.6. 신한당[편집]

윤보선이 민중당을 탈당하여 창당한 정당. 항목 참조.

3.2.7. 신민당(1967년)[편집]

항목 참조.

3.2.8. 국민당[편집]

항목 참조.

3.2.9. 민주통일당[편집]

약칭 통일당. 항목 참조.

3.3. 제5공화국 ~ 노태우 정부[편집]

3.3.1. 민주한국당[편집]

1981년 창당된 관제 야당. 약칭은 '민한당'.

3.3.2. 민권당[편집]

1981년 창당된 관제 야당.

3.3.3. 신한민주당[편집]

약칭 신민당. 1985년 1월 말 정치활동 금지가 풀리면서 창당된 범 민주정당.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기반으로 김영삼계와 김대중계 및 과거 보수야당계열 인사들이 1985년 1월 창당하였다. 창당 한달 만에 치뤄진 12대 총선에서 정권의 호구였던 2중대 민한당, 3소대 한국국민당을 제치고 단숨에 제1야당으로 급부상하였다.

이후 민주화를 외치면서 제5공화국 정권과 투쟁하였으나, 이민우 구상의 후폭풍으로 당주류였던 김영삼계와 김대중계가 대거 탈당하여 통일민주당을 창당하면서 급격히 추락하였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는 한 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하고 곧바로 정당등록이 취소되서 사라졌다. 그 밖의 자세한 내용은 신한민주당 항목 참조.

3.3.4. 민중민주당[편집]

신한민주당의 (민한당 출신) 의원 내각제주의자들은 1985년 8월 말 '신보수회'라는 서클을 만든 다음 이듬해인 1986년 8월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여 민중민주당(총재 유한열)을 창당하였다. 선관위에 약칭이 등록되어있지 않아 1987년 4월 창당한 통일민주당에 밀렸고, 한 달 뒤인 5월 다시 신한민주당 잔당과 합당하였다. 한편 총재였던 유한열 의원(당시 신민당 부총재)은 다시 11월 통일민주당에 합류했다.

3.3.5. 통일민주당[편집]

  • 통일민주당 항목 참조. 약칭이 "통민당"이 아닌 "민주당"이었다. 1990년 민주정의당, 공화당과의 삼당합당으로 사라졌다.

3.3.6. 평화민주당[편집]

  • 평화민주당 항목 참조. 약칭이 "평민당"이었고, 1991년 지방의회 선거를 맞아 이름을 신민주연합당으로 고쳐서 잠시 신민당이라고 했다.

3.3.7. 민주당(1990년), 통칭 꼬마민주당[편집]

민주자유당으로의 3당 합당을 반대한 이들이 창당한 정당, 통일민주당의 직계라고 자처하며, 반년 버티고 신민주연합당(구 평화민주당)과 통합했다.

일 년도 안 되는 반항시기와 도로 민주당 밑으로 들어간 약력, 활동 당시 꾸준히 통일 민주당의 후예라고 우겨댄 게 꼬마 같다고 해서 꼬마민주당이란 이름으로 비꼬임 당하기도 했다. 노무현, 김정길, 이기택 같은 정치인이 여기 출신이다. 최동원도 이 정당 소속으로 광역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물론 낙선됐지만...

3.3.8. 민주당(1991년)[편집]

항목 참조.

3.3.9. 한겨레민주당[편집]

진보정당으로도 분류되는 정당이다. 양김의 분열로 노태우 정부가 출범하자 민주당계 정치인들이 만든 당이다. 이후 꼬마 민주당으로 개별 합류했다.

3.4. 문민정부[편집]

3.4.1. 새정치국민회의[편집]

민주당을 탈당하고 대선을 재도전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동교동계가 창당한 정당. 항목 참조.

3.4.2. 통합민주당(1995년)[편집]

새정치국민회의에 참여하지 않고 잔류한 민주당계 인원들이 홍성우, 장을병 등 시민운동가들이 주축이 된 개혁신당과 합당하여 1995년에 창당한 정당이다. 16대 총선에서 기대에 못미치는 15명 당선에 그치면서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하고 제4당으로 전락하였다. 이후 15대 대선이 다가오면서 당의 진로를 놓고 내부갈등이 심해졌다. 15대 대선 후보로 영입한 조순 서울시장이 점점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신한국당과의 합당을 결정하자, 노무현, 김원기, 김정길 등은 이에 반발해서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하였다. 반면 이철, 제정구, 이부영, 김부겸 등 대다수 당주류 그룹은 한나라당에 합류한다.

자세한 내용은 통합민주당(1995년) 항목 참조. 2차 "꼬마민주당"으로 보기도 한다.

3.5. 국민의 정부 ~ 참여정부[편집]

3.5.1. 새천년민주당[편집]

2000년 새정치국민회의16대 총선에 대비해 새천년민주당으로 이름을 변경하며 재창당.

이후 새천년민주당 내 개혁파들이 열린우리당을 만들어 나가버린 탓에 17대 총선에서 대패한다. 덕분에 2005년 당의 로고와 당명을 민주당(2005년)으로 갈아 우리가 정통 민주당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 밖의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3.5.2. 개혁국민정당[편집]

항목 참조.

3.5.3. 열린우리당[편집]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 이후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이 분열되면서 정치개혁과 대통령 수호를 내세우며 창당된 정당. 항목 참조.

3.5.4. 민주당(2005년)[편집]

새천년민주당이 이미지 쇄신을 위해 당명을 변경한 것.

3.5.5. 중도개혁통합신당[편집]

김한길계를 중심으로한 열린우리당 중도개혁파가 탈당하여 창당한 당.

3.5.6. 중도통합민주당[편집]

민주당(2005년)중도개혁통합신당이 합당해 창당된 정당. 하지만 2달만에 김한길계의 탈당으로 민주당으로 복구한다.

3.5.7. 대통합민주신당[편집]

열린우리당이 또 탈당쇼, 이른바 제2차 탈당쇼를 벌여 만들어진 정당. 2007년 8월 5일 창당.

하지만 열린우리당과 보름만 공존하고 다시 대통합민주신당에 열린우리당이 흡수 합당되었다.[28][29] 결국 당원의 구성이나 형태가 열린우리당의 후계라고 할수 있는 위치다.

이 정당은 신한국당(2년)보다도 가장 단명한 여당(6개월)[30]으로 끝났다. 17대 대선에서 예상된 참패를 한 이후 1년 만에 새천년민주당과 통합을 선언, 폐당된다.

그런데 이 연속 탈당쇼로 인해 초대 한국 민주당의 계파가 부분적으로 2008년 통합민주당에 들어갔다. 족보상 한국 민주당의 계파를 이어받으려고 벌인 일이란 설이 있을 정도로 기이한 연속된 탈당쇼라고 한다.(꼬마 민주당건은 경우가 다르니 논외)

3.5.8. 창조한국당[편집]

2007년 범여권의 유력 대권주자였던 고건의 불출마로 마땅한 대안이 사라지자, 유한킴벌리 사장을 지낸 기업인 문국현을 새로운 범여권의 대안으로 추대하자는 데에서 창당된 정당. 문국현은 자신의 사장직까지 그만 두면서 창조한국당을 창당하고 범여권의 또다른 대안후보로 나섰으며 이 때 정동영 후보와의 단일화 논의가 있었으나 결국 무산되었다. 그리고 문국현 본인은 5% 정도 뿐인 낮은 득표율로 낙선.

사실상 문국현을 위한 1인 정당이라고 봐도 무관할 정도였고, 이후 2008년 총선에서 2석을 갖고 18석의 보수 정당인 자유선진당과 공조했으나 얼마 못가 파기되었다. 이후 2012년 총선에서는 단 한 명도 당선시키지 못해 당시 정당법에 따라 자동 해산되었고, 당원들과 당직자는 민주통합당에 합류하였다.

3.5.9. 참주인연합[편집]

2007년 정근모 전 과학기술처 장관이 대선 출마를 위해 창당한 정당으로, 김선미 의원이 대통합민주신당을 탈당하여 합류하였다. 그러나 대선에서 정근모 후보가 0.06%를 얻으며 참패했고, 이후 2008년 한나라당 공천에 대거 탈락한 친박계 정치인들이 당을 사실상 점령하고 친박연대로 당명을 바꾸면서 정근모와 김선미를 비롯한 원래 창당세력은 탈당하고 민주당으로 복당하였다.

3.6. 이명박 정부 ~ 박근혜정부[편집]

3.6.1. 민주당(2008년)[편집]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2005년)이 합당한 정당. 18대 총선은 "통합민주당"이란 이름으로 치렀다. 항목 참조.

3.6.2. 국민참여당[편집]

열린우리당참여정부의 정신을 잇겠다고 유시민등 친노 인사들이 창당한 정당, 후에 진보대통합 과정에서 통합진보당으로 흡수되며 이 과정에서 합류하지 않은 인사들은 시민통합당으로 합류하며 민주통합당으로 흡수된다.항목참조.

3.6.3. 진보신당[편집]

믿기지 않겠지만 "복지국가와진보대통합을위한시민회의"라는 단체 이름으로 진보신당에서 문성근의 야권대통합 노선에 부응하여 합류를 한 세력이 존재했다.

당시 박용진 전 진보신당 부대표를 중심으로 진보신당 출신들 중 야권대통합 노선에 동의하던 세력이 시민통합당을 통해 민주당에 가세한 것이다.[31]

이때를 기점으로 주로 제도권 정치 밖에서 활동하던 PD(정파)가 민주당계 정당에 합류하게 되면서 민주당계 정당에 복지국가 담론과 사회민주주의적 성향을 띈 정책들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대표적인게 당시 손학규 전 대표의 "저녁이 있는 삶" 구호 같은 것이다.

3.6.4. 시민통합당[편집]

문성근과 재야 시민사회세력, 참여정부 출신의 친노 인사들이 야권대통합을 위해 임시로 만든 가설정당, 특이하게도 이 과정에서 진보대통합 논의에서 떨어져나온 진보신당 출신 PD(정파) 인사들도 시민통합당을 통해 민주당에 합류하게 된다. 항목 참조

3.6.5. 민주통합당[편집]

민주당(2008년)과 시민사회세력인 시민통합당, 그리고 한국노총 세력이 만든 정당. 항목 참조.

3.6.6. 평화민주당(2010년)[편집]

2010년 한화갑을 비롯해 호남, 동교동계 인물들이 민주당을 탈당하여 창당한 정당. 항목 참조.

3.6.7. 제3신당[편집]

2012년 3월 13일에 창당되어 정통민주당에 합당된 정당.

3.6.8. 녹색통일당[편집]

장기표가 창당한 정당으로 정통민주당과 합당했다.

3.6.9. 정통민주당[편집]

19대 총선의 민주통합당의 공천과정에서 낙천된[32] 구 동교동계 출신들이 만든 정당. 항목 참조.

3.6.10. 민주당(2013년)[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injoodang_logo.png

18대 대선 패배 이후 민주통합당이 당명을 개정한 정당. 항목 참조.

3.6.11. 새정치민주연합[편집]

파일:npadreverselogo.jpg


민주당안철수새정치연합이 합쳐져 2014년 3월 26일에 창당한 정당이다. 당초 국민공모를 통해 정해진 명칭은 '새정치국민연합'이었다.[33] 야당에 유리한 이슈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방선거에서는 그저 그런 성적표를 받았고, 이후 치뤄진 재보궐에서는 참패를 하고 말았다.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해서 당이 운영되다가 전임 대선후보인 문재인이 대표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15년 하반기 재보궐에서 전패를 하고 말았고, 문재인을 필두로 하는 친노 주류, 박원순, 우상호등의 시민단체, 민주화운동계와 안철수김한길, 박지원 등 구 민주계를 필두로 하는 비노계 비주류 간의 갈등이 커지게 되었다.

결국, 주류와 비주류들의 갈등은 새정치민주연합 분당으로 이어졌다. 여러 비주류들이 독자적 세력화를 꾀했고, 안철수-김한길계의 국민의당, 천정배계의 국민회의, 박주선계의 통합신당, 김민석계의 민주당(2014년) 등으로 갈라졌다. 이에 잔류파들은 2015년 12월, 당명 개정에 착수했고[34] 같은 달 28일, 당무위원회 의결을 거쳐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을 개정했다.

이후 제20대 총선을 거치면서 민주당계 정당은 크게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으로 재편된다.

  • 대표:

    •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 2014년 3월 26일 ~ 2014년 7월 31일)

    •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 2014년 8월 1일 ~ 2014년 9월 17일)

    •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2014년 9월 17일 ~ 2015년 2월 8일)

    • 문재인 (대표, 2015년 2월 8일 ~ 2015년 12월 28일)

3.6.12. 민주당(2014년)[편집]

파일:minjoodang_yellow.png


새정치민주연합이 창당한 이후 '민주당'이라는 당명을 쓰는 당이 없게 된 상태에서 2014년 9월 25일에 창당한 정당. 김민석 전 의원이 합류하여 당대표를 맡았다. 제20대 총선 이후 2016년 9월 더불어민주당과 합당하였다.

  • 대표:

    • 강신성 (대표, 2014년 9월 25일 ~ 2016년 1월 30일)

    • 김민석·박준영 (공동대표, 2016년 1월 30일 ~ 2016년 3월 14일)

    • 김민석 (대표, 2016년 3월 14일 ~ 2016년 10월 31일)

3.6.13. 국민회의(2016년)[편집]

파일:국민회의 로고.png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천정배 의원이 창당을 추진한 정당. 2016년 2월 국민의당과 합당하였다.

  • 대표:

    • 나상기·천정배 (2016년 1월 31일 ~ 2016년 2월 2일)

    • 나상기 (2016년 2월 2일 ~ 2016년 2월 23일)

3.7. 문재인 정부[편집]

3.7.1. 국민의당[편집]

파일:external/df44a2f12bfc8b65531a0a07a5cfa1874fe4b02bdf600199ad2faba9cf889274.jpg


새정치민주연합분당 과정에서 새정연의 비주류던 안철수-김한길계를 주축으로 2016년 2월 2일 창당한 자유주의중도개혁주의를 표방한 정당이다. 2016년 3월 16일, 탈당한 비주류들을 모아 19대 국회에서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였으며 크게는 안철수계와 지역기반을 호남으로 하는 계파들[35]이 양대축을 형성하였다. 이념적 성향은 새누리당[36]더불어민주당의 중간인 것으로 보여진다. 합리적 개혁주의를 내세우고 있으며 성찰적 진보와 합리적 보수를 융합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38석을 확보하며 20년 만에 양당체제가 깨지고, 국민의당이 원내3당으로 자리 잡았다. 국민의당은 논란이 약간 있었지만, 최종적으로는 민주당계 정당으로 분류되었는데, 그 이유는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탈당한 당원들이 주를 이루고 있고, 당에서도 평화민주당 이후 새천년민주당까지 민주당계 정당의 주 이념이었던 중도개혁주의를 표방하였기 때문이다.

2016년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인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에서 국민의당은 제 2야당으로서의 정치력을 보여줬으나, 19대 대선의 참패[37]이후 대표가 된 안철수[38]는 2017년 말엽, 예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정에서 생겨난 보수 정당인 바른정당과의 합당을 추진하였고, 그 과정에서 합당과정에 극렬히 반대한 이른바 통합 반대파가 민주평화당으로 분당하고, 일부는 합당과정에 반발해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가는등의 혼란스러운 과정끝에, 2018년 2월 13일 국민의당-바른정당 합당으로, 바른미래당으로 신설합당하며 소멸되었다.[39]

  • 대표:

    • 안철수(상임)·천정배 (공동대표, 2016년 2월 2일 ~ 2016년 7월 6일)

    •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2016년 7월 6일 ~ 2016년 12월 5일)

    • 김동철 (비상대책위원장, 2016년 12월 5일 ~ 2017년 1월 15일)

    • 박지원 (대표, 2017년 1월 15일 ~ 2017년 5월 10일)

    • 주승용 (대표권한대행, 2017년 5월 11일 ~ 2017년 5월 16일)

    • 김동철 (대표권한대행, 2017년 5월 16일 ~ 2017년 5월 25일)

    • 박주선 (비상대책위원장, 2017년 5월 25일 ~ 2017년 8월 27일)

    • 안철수 (대표, 2017년 8월 27일 ~ 2018년 2월 13일 )


3.8. 현재[편집]

3.8.1. 더불어민주당[편집]

파일:minjoo.png


새정치민주연합이 2015년 12월 28일 재창당한 정당이다. 약칭은 처음에는 더민주로 하다가, 원외 민주당을 흡수한 뒤로는 주로 민주당을 쓰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비주류들이 떠난 뒤에 당명을 개정했기 때문에 새정치민주연합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초기에는 여당인 새누리당의 강세와 비주류등의 탈당으로 흉흉한 당 내외적인 상황으로 인해 당에 위기감이 조성되었다. 그리하여 당에서는 인재영입 등 나름대로 쇄신작업을 진행하였지만, 야권의 분열, 전통적인 텃밭 호남권에서의 당 지지율 저조, 당시 대통령의 지지강세로 인해 총선에서 참패가 예상됐었으나...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역전을 이뤄내며 전국 정당으로 도약했다. 수도권 압승과 영남권 약진이 선거 승리에 주효했다. 총 123석을 확보하여 제20대 국회 원내 제1당으로 등극[40]하여 정세균국회의장으로 선출시키기도 했다. 다만, 국민의당에게 민주당계의 텃밭이라고 불리는 호남권 대부분의 의석을 내줘야 했다. 비록 전통적인 텃밭을 빼앗기기는 했지만, 이것이 되려 호남 지역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는 데에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 호남 의석 대부분을 다른 당에 내주고도 수도권에서의 압승으로 원내 제1당으로 등극했기에 더 이상 호남에 연연하지 않아도 충분히 당이 건제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2016년 9월 18일 "민주당"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던 원외 민주당과 합당했다. 따라서 약칭도 민주당으로 바뀌었다.

사상 초유의 사태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겪으면서 중도층과 중도보수층 일부를 지지층으로 끌어올리는데에 성공하였다. 그 덕분에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가 압승하면서 9년만에 다시 집권 여당의 자리를 되찾고 정권 교체를 이뤄냈다. 선거 기간 정당 지지율이 고공 행진을 했고, 지금까지도 전국에서 고루 과반을 넘으며 민주당계 역사상 가장 높은 지지율을 갱신하고 있다. 야4당 합산 지지율의 2배에 육박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전국 정당화에 성공했다는 분위기다.

  • 대표:

    • 문재인 (대표, 2015년 12월 28일 ~ 2016년 1월 27일)

    •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2016년 1월 27일 ~ 2016년 8월 27일)

    • 추미애 (대표, 2016년 8월 27일 ~ 현재)

3.8.2. 민주평화당[편집]

파일:minpyeong.jpg


국민의당·바른정당 합당에서 이어질 보수 통합을 저지하고 국민의당의 중도개혁 정체성을 수호하기 위한다라는 목적으로 국민의당 내 통합 반대파가 만든 정당. 당명 확정 이전 가칭은 개혁신당이었으며 정식 당명은 국민 공모를 통해 민주평화당으로 확정되었다. 이전에 국민의당에서도 표방하였던 자유주의중도개혁주의를 표방한 정당이다. 동교동계 등이 주류를 이루는 정당답게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화민주당에서 모티브를 삼은 이름이다.

  • 대표: 조배숙 (대표, 2018년 2월 6일~)

4. 역대 선거결과[편집]

4.1. 대통령 선거[편집]

후보자

연도

대수

정당

득표수

득표율

결과

이시영

1952년

2대

민주국민당

764,715

10.9%

3위

신익희

1956년

3대

민주당

유세기간 중 사망[41][42]

조병옥

1960년

4대[43]

유세기간 중 사망[44]

김창숙

1960년[45]

4대

29

11.5%

2위

백낙준

3

1.2%

3위

변영태

3

1.2%

3위

김도연

2

0.8%

5위

허정

2

0.8%

5위

김병로

1

0.4%

7위

김시현

1

0.4%

7위

나용균

1

0.4%

7위

박순천

1

0.4%

7위

유옥우

1

0.4%

7위

이철승

1

0.4%

7위

윤보선

208표

82.2%

당선

1963년

5대

민정당

4,546,614표

45.1%

2위

1967년

6대

신민당

4,526,541표

40.9%

2위

김준연

민중당

248,369표

2.2%

4위

김대중

1971년

7대

신민당

5,395,900표

45.2%

2위

유치송

1981년[46]

12대

민주한국당

404

7.7%

2위

김의택

민권당

26

0.5%

4위

김영삼

1987년

13대

통일민주당

6,337,581표

28.0%

2위

김대중

평화민주당

6,113,375표

27.0%

3위

1992년

14대

민주당

8,041,284표

33.8%

2위

1997년

15대

새정치국민회의

10,326,275표

40.3%

당선

노무현

2002년

16대

새천년민주당

12,014,277표

48.9%

당선

정동영

2007년

17대

대통합민주신당

6,174,681표

26.1%

2위

문국현

창조한국당

1,375,498표

5.8%

4위

이인제

민주당

160,708표

0.7%

6위

정근모

참주인연합

15,380표

0.06%

9위

문재인

2012년

18대

민주통합당

14,692,632표

48.0%

2위

2017년

19대

더불어민주당

13,423,800표

41.1%

당선

안철수

국민의당

6,998,342표

21.4%

3위

4.2. 국회의원 선거[편집]

연도

국회

정당

전체 의석수

지역구

비례

결과

1948년

1대

한국민주당

29 / 200

29 / 200

-[47]

원내 2당

1950년

2대

민주국민당

24 / 210

24 / 210

원내 1당

1954년

3대

15 / 203

15 / 203

원내 2당

1958년

4대

통일당

1 / 233

1 / 233

원내 3당

민주당

80 / 233

80 / 233

원내 2당

1960년

초대 참의원

31 / 58

31 / 58

원내 1당

5대

175 / 233

175 / 233

원내 1당

통일당

1 / 233

1 / 233

원내 5당

1963년

6대

민정당

40 / 175

26 / 131

14 / 44 (20.1%)

원내 2당

민주당

14 / 175

9 / 131

5 / 44 (13.5%)

원내 3당

자유민주당

9 / 175

6 / 131

3 / 44 (8.1%)

원내 4당

국민의당

2 / 175

2 / 131

0 / 44 (8.8%)

원내 4당

1967년

7대

신민당

45 / 175

28 / 131

17 / 44 (32.7%)

원내 2당

1971년

8대

89 / 204

65 / 153

24 / 51 (44.4%)

원내 2당

국민당

1 / 204

1 / 153

0 / 51 (4.1%)

원내 3당

민중당

1 / 204

1 / 153

0 / 51 (1.4%)

원내 4당

1973년

9대

신민당

52 / 219

52 / 146

-[48]

원내 2당

민주통일당

2 / 219

2 / 146

원내 2당

1978년

10대

신민당

61 / 231

61 / 154

원내 2당

민주통일당

3 / 231

3 / 154

원내 3당

1981년

11대

민권당

2 / 276

2 / 184

0 / 92 (6.7%)

원내 4당

민주한국당

81 / 276

57 / 184

24 / 92 (21.6%)

원내 2당

1985년

12대

35 / 276

26 / 184

9 / 92 (19.7%)

원내 3당

신한민주당

67 / 276

50 / 184

17 / 92 (29.3%)

원내 2당

신민주당

1 / 276

1 / 184

0 / 92 (0.6%)

원내 6당

1988년

13대

평화민주당

70 / 299

54 / 244

16 / 75 (19.3%)

원내 2당

통일민주당

59 / 299

46 / 244

13 / 75 (23.8%)

원내 3당

한겨레민주당

1 / 299

1 / 244

0 / 75 (1.3%)

원내 5당

1992년

14대

민주당

97 / 299

75 / 237

22 / 62 (29.2%)

원내 2당

1996년

15대

새정치국민회의

79 / 299

66 / 253

13 / 46 (25.3%)

원내 2당

통합민주당

15 / 299

9 / 253

6 / 46 (11.2%)

원내 4당

2000년

16대

새천년민주당

115 / 273

96 / 227

19 / 46 (35.9%)

원내 2당

2004년

17대

9 / 299

5 / 243

4 / 56 (7.1%)

원내 4당

열린우리당

152 / 299

129 / 243

23 / 56 (38.3%)

원내 1당

2008년

18대

통합민주당

81 / 299

66 / 245

15 / 54 (25.2%)

원내 2당

창조한국당

3 / 299

1 / 245

2 / 54 (3.8%)

원내 6당

2012년

19대

민주통합당

127 / 300

106 / 246

21 / 54 (36.5%)

원내 2당

2016년

20대

더불어민주당

123 / 300

110 / 253

13 / 47 (25.5%)

원내 1당

국민의당

38 / 300

25 / 253

13 / 47 (26.7%)

원내 3당

4.3. 지방선거[편집]

연도

횟수

정당

광역자치단체

기초자치단체

광역자치단체의회의원

기초자치단체의회의원

1991년

1991년

신민주연합당

-[49]

165 / 866

-[50]

꼬마민주당

21 / 866

1995년

1회

민주당

4 / 15

84 / 230

353 / 875

-[51]

1998년

2회

새정치국민회의

6 / 16

84 / 232

271 / 616

2002년

3회

새천년민주당

4 / 16

44 / 232

143 / 682

2006년

4회

민주당

2 / 16

20 / 230

80 / 733

276 / 2888

열린우리당

1 / 16

19 / 230

52 / 733

630 / 2888

2010년

5회

민주당

7 / 16

92 / 228

360 / 761

1025 / 2888

국민참여당

0 / 16

0 / 228

5 / 761

24 / 2888

창조한국당

0 / 16

0 / 228

0 / 761

1 / 2888

2014년

6회

새정치민주연합

9 / 17

80 / 226

349 / 789

1157 / 2898

2018년

7회

더불어민주당

14 / 17

151 / 226

652 / 824

1639 / 2927

민주평화당

0 / 17

5 / 226

3 / 824

49 / 2927

5. 진보정당과의 관계[편집]

다중 관점이 적용되는 문서입니다.

이 토론에서 다수 의견을 병기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본 문서에서는 다중 관점 따르기가 인정됩니다. 이 방침에 이의를 가지신 분은 먼저 해당하는 토론란에서 의견을 작성하시기 바랍니다.

이 문단은 토론을 통해 진보적 민주당계 정당이 진보정당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한 측에게 해당 측 서술 권리를 부여하는 것(으)로 합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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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단락에서 말하는 '진보정당'과 '민주당계 정당'은, 정당의 이념이 아닌 대한민국 정치사에서의 계보에 따라 구분해 지칭한다.


"진보적인 민주당계 정당을 진보정당의 일부로 봐야 하는가?"의 문제는 "대한민국의 정당을 이념으로 나누는 것이 합리적인가, 아니면 계보로 나누는 것이 합리적인가?"라는 문제의 해답을 찾는 것과도 같다.

일부 민주당계 정당 역시 진보 성향이다. 만약 대한민국의 정당을 진보 성향과 보수 성향으로 이분한다면 민주당계 정당 역시 진보 성향에 귀속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당의 분류를 단순히 진보-보수의 성향만으로 구분하는 것은 대한민국 정당의 계보를 극단적으로 단순히 해야만 가능하다. 민주당계 정당은 창당 이래 지금까지 여러 차례의 이념 변화와 분당 등의 사건을 겪었고, 이 과정에서 일부 민주당계 정당은 진보가 아닌 중도보수의 색채를 가진 적도 많이 있었다. 게다가 '민주당계 정당'이라는 용어는 각 메이저 언론사[52]나 논문, 학술 목적의 연구에서도 사용될 만큼[53] '민주당계 정당'이라는 계파는 진보정당과는 별도의 계파로 공인되어 있다. 게다가 민주당계 정당 본인들 역시 '진보정당'이나 '보수정당'이 아닌, '민주당계 정당' 그 자체를 자신들의 이념 정체성으로 삼고 있다. 게다가 민주당계 정당의 경우, 자신들의 현 입장이나 정치적 사건 등으로 인해 중도보수 쪽으로 기울어진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통합진보당 해산 당시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은 통합진보당이 해산하게 된 결정적 계기였던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수사 사건의 엄정 수사를 촉구하는 등 민심이 바닥으로 떨어졌던 진보정당과 거리를 두기 위해 우클릭을 하기도 했다.

다만, 21세기 들어 대체적으로는 민주당계 정당도 진보적인 성향으로 선회하고 있으며[54],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진보 또는 좌파적 경향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진보 성향이지만 민주당계 정당과 진보정당은 입장차이가 상당히 크다. 한 가지 예를 들면, 현존하는 진보정당들은 기존의 보수정당-민주당계 정당의 양강 구도를 깨려는 의지가 강하다. 그래서 민주당계 정당에서는 선거 때마다 진보정당과의 후보 단일화 문제를 두고 '진보 성향의 표를 모으느냐 아니면 진보 성향의 표를 포기하고 중도보수 외연을 넓히느냐'라는 이슈 때문에 당 내부에서도 늘 시끄러웠다. 그래서 민주당계 정당 일부에서는 '진보정당과 연정을 하느니 차라리 보수정당과 연정하는 것이 속 편하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진보정당의 시각에서 봐도 민주당계 정당이 추구하는 사회자유주의가 자신들의 마음에 들 리가 없다. 특히 진보정당의 주요한 지분을 차지하는 NL 계열의 입장에서 봤을 때 민주당계 정당과 노선을 함께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민주당계 정당이 점차 진보적으로 되더라도, 매일경제신문 정치부, MBN 정치부 기자 20명이 기사를 작성하는 레이더P의 조사에 따르면(법안 표결로 본 국회의원 300명의 이념성향), 정의당이 진보 쪽으로 -0.83만큼 치우쳐 있을 때(-1~1범위 내에서) 더불어민주당은 -0.13만큼만 진보 쪽으로 가 있는 등, 같은 진보적 노선이라 하더라도 민주당계 정당은 다른 진보정당들만큼 강경하게 좌파 쪽으로 이행하고 있지는 않다. 국민의당은 오히려 보수 쪽으로 0.15만큼 가 있다. 민주당계 정당은, 손학규, 김종인, 진영같이 보수정당 출신의 인물이 넘어오기도 하고, 민주당계 자생적인 인물들 중에서도 박영선, 이종걸 같은 보수적 인사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한때 일부 인사들은 제19대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중도~중도보수 쪽으로 외연을 확장하기도 하였다.

다만, 민주당계와 진보계 정당이라는 두 당사자가 이러한 입장 차이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 바깥에 있는 강경 보수나 극우 세력들은 두 계열의 정당들을 싸잡아 좌파라고 하거나 빨갱이, 종북주의자로 매도하기도 한다. 이러한 인식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19대 대선에서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의 발언이다.(한국일보의 보도, SBS의 보도).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출범 이후 약 10년 동안의 보수정권 시대가 개막하고 한나라당 - 새누리당 정권 동안 보수적인 정책이 이어지면서, 이에 반대하는 야당이었던 민주당계 정당과, 진보정당들은 공동의 적에 맞서서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18대 대선에서 이정희 당시 통합진보당 후보가 대선 후보 토론회에 나와 "자신은 대통령이 되러 나온 것이 아니라 단지 박근혜를 떨어트리기 위해 나왔을 뿐이다"라는 식으로 당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사이에 사실상의 '반 박근혜' 공동전선이 형성된 적도 있고,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 당시에는 더불어민주당정의당이 총력전 태세로 필리버스터에 참여하기도 했다.[55],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는 정부의 인선 및 정책 등에 가장 협조적으로 나오는 야당이 정의당이기도 한 만큼[56]현재는 민주당계 정당과 진보정당이 상당히 친밀해진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최근 10차 개헌을 가지고 진보정당이 보수정당들과 같이 국회중심의 개헌 스탠스를 취함에 따라 갈등이 생긴 상황.

유권자의 입장에서는 개인의 사상이 진보정당을 지지하고 그들의 이념에 더욱 가깝더라도 진보정당 계열의 세력이 미약한 것을 감안하여 투표에서는 민주당계 정당에 표를 행사하는 전략적 투표를 보여주기도 한다. 지방선거국회의원 선거에서 진보정당이 전국 모든 지역구에 후보를 내지 못하는 만큼, 선거에서 진보정당 지지자들이 지역구에서는 민주당계 정당에서 출마한 후보에 투표하고, 비례대표 투표는 진보정당에 투표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6. 관련 문서[편집]

[1] 1955년에 창당한 민주당을 기점으로 한다.[2] 당초 아래 사진으로 걸렸으나, (민주 투사이긴 하지만 어쨌든 보수정당으로 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중앙에,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구석에 가 있다는 일부 논란 때문에 위 사진처럼 바뀌어 걸렸다. 이에 대한 해명으로 당시 현수막 제작을 담당한 손혜원 의원은 기자들 사진 촬영 당시 두 대통령의 얼굴이 더 많이 찍히라고 아래에 배치한 것 뿐인데, 자신에게 개인적으로 말만 했어도 조용히 바꿀 수 있는 문제를 괜히 언론에 일을 키워 시끄럽게 만들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3] 후기에는 보수정당으로 돌아섰고 그곳에서 대통령까지 되었지만, 그가 민주당계 출신 인사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4] 97년 한나라당으로 가기 전까지 양김 다음 민주당계의 대표적 정치인 중 한 사람으로 꼽혔다.[5] 1988년 정계 은퇴 후 보수 전향 이전에는 민주당계의 대표적 정치인 중 한 사람이었다.[6] 이는 보수 정당 연혁이 과거 독재 계열 정당부터 이어져 오지만, 실질적 뿌리는 1990년 3당합당으로 창당한 민주자유당으로 보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물론 더 정확히는 민주당계 정당이었던 통합민주당(1995년)신한국당과 합당해 1997년 보수 정당 한나라당이 되는 분기점이 있지만, 통합민주당의 규모가 1996년 15대 총선이 끝난 당시 이미 새정치국민회의에 밀려 당의 존속 자체가 위태했던 지경이었으므로 사실상 신한국당에 흡수된 셈이 되었다.[7] 이 때문에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이 창당 60주년 행사를 하기도 했다.[8] 김영삼통일민주당3당합당으로 보수 정당 계열로 분류되게 된 과정과 흡사하다.[9] 다만 이승만과 박정희 시절에는 민주당 계열의 야당들도 보수 성향이 강했다.[10] 그러한 이유로 학계에서는 민주당계의 뿌리를 사실상 새정치국민회의로 보기도 한다.[11] 물론 이 시절에도 진보 성향의 언론이나 지지자들에겐 '좌회전 깜빡이 넣고 우회전한다'고 욕 먹긴 했다.[12] 보수적 자유주의와 진보적 자유주의(사회자유주의)의 차이는 자유주의 항목 참고.[13] 다만, 미국 민주당처럼 빅텐트 정당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더 왼쪽에 자리 잡은 진보들이 미약하나마 제3세력으로 그동안 자리매김하고 있었기 때문. 하지만 이 말도 약간 어폐가 있는 게 미국도 제3세력은 많다.존재감이 없을 뿐.[14] 물론 사안에 따라 달랐다. 예를 들어, 박근혜 정부 후반에 추진했던 THAAD 배치는 초기엔 국민의당이 배치 반대를 당론으로 취한 반면, 오히려 더민주는 전략적 모호성이란 말로 중립적 태도를 보였었다.[15] 사실 알고 보면 한국의 보수 정당들도 민주라는 용어를 꾸준히 사용했다. 민주공화당, 민주정의당, 민주자유당, 자유민주연합이 있다. 독특한 이름 근래에 들어서 사용한 이름들이다.[16] 이 정당들은 보수정당들이다. 대한민국의 보수정당 참고.[17] 참고로 민노당은 진보정당이다. 대한민국의 진보정당 문서 참고.[18] 사실 여기는 1990년~2000년대 잠깐 민주당과 연대도 했었다. 하지만 사실 자민련은 군부출신인 김종필 전 총리 계통으로 이념상 정통적 정치성향에서 민주당과 거리가 멀었고, 결국엔 갈라섰다.[19] 이 때문에 동교동계에선 초록색을 즐겨 사용한다.[20]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래서 친노에서 즐겨 사용한다.[21] 과거 한나라당이 사용하던 색깔이라 파격적인 편이었다. 빨간색으로 바꾼 새누리당-자유한국당에 대응하는 의미도 있다.[22] 이로써, 민주당(미국)과 깔맞춤을 이루게 되었다. 현 공화당(미국)-자유한국당도 마찬가지.[23] 국민의당이 초록색을 선택했을 때, 호남을 타겟팅했다고 해석한 이들도 있었다. 왜냐면 새정치국민회의의 색깔인 초록색을 사용하여 김대중정신과 호남정신을 당에 결부지으려는 의도로도 읽혔기 때문이다.[24] 미국 민주당도 잭슨시절에는 개혁적인 성향이 강했다가 노예제가 사회적인 이슈로 떠올랐을 때 남부세력의 지지를 받으며 보수적으로 변모해오다가 우드로 윌슨프랭클린 루스벨트 시절을 거쳐서 진보적으로 변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왔다.[25] 대표적인 인물이 김영삼 전 대통령.[26] 의원정수의 75.1%에 해당하는 175명이 당선되었다.[27] 초대 대법원장이자 김종인 전 대표의 조부.[28]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였던 김한길파(23명)가 07년 2월 탈당, 이후 중도개혁통합신당추진모임(원내 교섭단체)을 구성했다가, 4월 국민중심당 일파와 중도개혁통합신당 창당 후, 이인제를 받아들인 후 민주당과 함께 6월 말 합당하여 중도통합민주당을 만들었으나, 7월 말 김홍업 등이 탈당하고, 다시 8월 초에는 김한길파가 도로 탈당하면서 중도통합민주당은 도로 민주당으로 돌아갔다(...) 그 직후, 즉 탈당 이틀 후인 8월 5일 열린우리당과 중도통합민주당의 탈당파, 손학규 세력 등이 결합한 것이 대통합민주신당이며 보름 후에 다시 열린우리당과 합당했다.[29] 다만 이들도 돌고돌아 결국 다시 모이게 될 걸 알고 이런 거다. 가만히 있는다고 뭐가 바뀔 상황이 아니었기에...[30] 사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공식 당적은 없었지만 경선 과정에는 명부가 넘어가면서 있다는 게 드러났다. 당적 신상 퍼가요[31] #[32] 정확하게 말하면 공천탈락.[33] 그러나 새정치국민의당이 먼저 창당해서 선관위로부터 당명이 유사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때문에 새정치민주연합으로 결정하기로 했다고. 당초 안철수 측은 '민주'라는 명칭을 빼기를 원했다고 한다.[34] 안철수의 새정치연합에서 넘어온 "새정치"라는 이름을 계속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었을 뿐더러, 이름이 길다고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안 전 대표 탈당 이전부터) 줄곧 있어왔다.[35] 주로 동교동계.[36] 현재 자유한국당.[37]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인 홍준표 후보가 보수파 일부의 결집에 성공하며 2위를 차지하였다.[38] 안철수는 19대 대선 당시 국민의당의 대선후보였다.[39] 바른미래당은 보수정당 계열에 속하게 되었다.[40] 이후 새누리당 탈당파들의 복당으로 2당이 되었다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보수 정당의 분당으로 다시 원내 1당이 됐다.[41] 선거를 열흘 남기고 전주로 가기 위해 전라선 열차를 타던 중 호남선 구간인 함열역 부근에서 뇌일혈로 졸도했고 이리역에 급히 내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42] 전체 투표수의 20.5%인 1,856,818표의 무효표를 이승만을 반대하지만 조봉암을 지지하지 않는 민주당 지지층의 표라는 해석이 있다.[43] 3.15 부정선거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고.[44] 후보등록을 하고 나서 위병이 심해져서 미국 월터리드 육군병원으로 가서 복부수술을 받았는데 수술후유증으로 인한 심장발병증으로 사망했다. 이쪽은 상태가 회복되다가 일어난 상태라 암살설이 퍼졌다.[45] 간선제로 실시되어 민·참의원 합동투표로 이뤄졌다.[46] 대통령 선거인단으로 뽑는 간선제였다.[47] 비례대표제 없음[48] 비례대표제 없음[49] 광역자치단체장와 기초자치단체장은 그 당시 임명직이다.[50] 기초의원직에 정당공천제가 실시되지 않아 정당 소속이 없었다[51] 기초자치단체의회 없음[52] 조선일보, 연합뉴스, 한국일보, |중앙일보 등의 언론에서 '민주당계' 또는 '민주당계 정당'이라는 하나의 정당 분류나 계보를 사용하고 있다.[53] 한 사례로, 영남대학교 정치학과 김학노 교수가 21세기 대한민국의 통일 정책에 대해 분석한 논문(해당 논문, 링크 클릭 시 pdf 파일이 자동 다운로드되니 주의에서는 대한민국의 양대 정치 세력을 '보수계 정당'과 '민주당계 정당'으로 구분하기도 하였다.[54] 박윤희 ( Yun-hee Park ) , 김민수 ( Min-su Kim ) , 박원호 ( Won-ho Park ) , 강신구 ( Shin-goo Kang ) , 구본상 ( Bon Sang Koo ), 한국의회발전연구회, <의정연구> 49권0호 (2016), pp.117-157[55] 당시 국민의당은 일부 의원들이 개별적으로 필리버스터에 참여하기만 하였다.[56] 오히려 국민의당정의당보다 여당(더불어민주당)의 정책에 관해 반대가 심했다. 애초에 새정치민주연합이 당내 갈등으로 분열했던 것을 보면 이러한 국민의당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국민의당이 분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반 여당(더불어민주당) 기조는 국민의당을 계승한 양당에게 이어지는 형태를 보였다.[57] 반독재 투쟁 당시 동교동계와 함께 민주당계 정당의 양대 산맥이었다. 그러나 당수였던 김영삼 총재가 1990년 3당합당으로 인해 보수정당인 민주자유당으로 이동하면서 상도동계 다수 역시 보수 정당으로 이동한다. 반면 소장파 일부는 민주당계 정당으로 다시 이동하여 활동하였는데, 이 중엔 노무현 의원도 있었다. 다만 노무현 의원의 경우 YS가 발탁하긴 했으나, 상도동 직계는 아니었다.[58] 90년대 3당합당으로 끝내 결별하긴 했으나, YS를 제외하고는 (특히 DJ와 함께 70~80년대 민주 항쟁을 주도했던 당시) 민주당계 정당의 역사를 설명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보수정당으로 가긴 했지만 거기서도 군부독재의 잔재 척결엔 오히려 DJ보다도 더 앞장섰기에 고인이 되고나선 민주당계 정당에서도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