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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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문희준(文熙俊)

출생

1978년 3월 14일 (40세)
서울특별시 강남구 송파동[1]

국적

대한민국파일:대한민국 국기.png

신체

168cm[2], 62kg[3][4], 머리둘레 62cm[5]

혈액형

B형[6]

가족

외할아버지 이향[7], 부모님,
여동생 문혜리,
배우자 소율, 딸

학력

문정초등학교 (1985-1991)
문정중학교 (1991-1994)
중산고등학교 (1994-1997)
서울예술대학 방송연예과 (전문학사)
경기대학교 다중매체영상학과 (학사)
경기대학교 대학원 레저스포츠학과 (석사과정 중퇴)

데뷔

1996년 H.O.T. 1집 앨범 <We Hate All Kinds Of Viclence>

소속사

IOK컴퍼니

소속 그룹

H.O.T.

종교

불교


1. 개요2. H.O.T. 활동3. 무뇌충: 안티의 황제4. 대인배의 탄생5. 문희준의 음악6. 결혼: 반복되는 역사
6.1. 관련기사(공식입장)6.2. 논란
7. 기타8. 음반
8.1. 정규 앨범8.2. EP8.3. 컴필레이션 앨범

1. 개요[편집]

그룹 H.O.T.리더, 서브래퍼, 서브보컬, 안무 담당, 리드댄서를 담당해 인기를 누렸다. 특히 H.O.T. 멤버들 중 예능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해 뛰어난 입담과 개인기를 보여주었다. 장우혁은 만약에 문희준이 없었으면 H.O.T.는 이곳에 올라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1990년대 아이돌은 작곡은 안 하고 립싱크만 한다는 인식을 극복하기 위해 작곡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싱어송라이터 아이돌과 예능돌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H.O.T.가 2001년에 해체하고 솔로로 전향한 후 몇몇 발언들이 와전되며 전국적인 안티를 양산해냈다. 그러나 나중에 모든 오해가 풀리고, 극성 안티들의 무논리 공격에도 의연한 대처를 한 것이 나중에 조명되면서 문보살로 불렸다. 군 복무 후에는 공백기간덕에 안티도 줄었다. 이후 한동안 재치있는 입담과 타고난 끼로 방송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인간승리 하지만 결혼 발표에서의 언론플레이와 예능프로그램에서의 끊임없는 장우혁 뒷담화 때문에 다시 안티가 늘었는데 기존의 안티(백만 안티)들이 아닌, 백만 안티들에 맞서서 문희준을 쉴드치던 잔류했던 기존 코어팬들이 안티로 돌아서 데뷔 이후 최고의 위기를 맞고 있다. 가히 롤러코스터와 같은 인생을 보내고 있다.

2. H.O.T. 활동[편집]


1997년 2월, MBC 예능프로그램에서 방송된 문희준고등학교 졸업식 장면이다.

1978년 3월 14일 서울 출생으로 데뷔 전에는 송파구 일대에서 댄스로 이름을 날리던 학생이었다고 한다. 데뷔 전부터 팬클럽이 있을 정도였으며, 그때 별명이 송파구 노란바지. 그 당시 송파, 강동 일대의 춤 잘추는 10대들을 물색하고 다니던 SM이 노란바지의 소문을 듣고 문희준의 학교까지 찾아와서 캐스팅할 정도였다. H.O.T.가 공중파 데뷔 직전에 문희준네 모교인 중산고등학교 축제(...)에 가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실제 그 공연을 봤던 사람들은 전사의 후예를 들어보고 크게 난감해 했으나(...) 다행히 캔디는 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룹 시절의 문희준 하면 파워 레이서춤, 진공관 춤이 떠오를 정도로 H.O.T.의 재주꾼 이미지가 강했고 별명이 그렘린에 나오는 기즈모일 정도로 둥글고 큰 눈의 귀여운 외모도 인기에 한몫했다. 허나 동그란 눈이 파워풀한 느낌을 너프시킨다고 생각하여 언제나 긴 머리카락으로 한 쪽 눈을 가렸다고 한다. 지금보면 완전 중2병 콘셉

H.O.T. 해체 후 같은 그룹 멤버인 강타와 함께 솔로로 전향하였다. 그러나 솔로 활동 시절의 몇몇 가벼운 발언들[8]로 인하여 온라인상으로 거의 전 국민적으로 까였다. 이른바 100만 안티설(이 역시 언론의 과장이다)까지 흘러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당시 까였던 내용들은 실제로는 사실이 아니었고 나중에 모든 오해가 풀리고 오히려 죄없이 당하기만 했음에도 의연한 모습과 멘탈을 보여서 대인배의 대명사가 되었다.

3. 무뇌충: 안티의 황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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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팬들에게 마르고 닳도록 까이던 시절 온갖 합성 소재가 되었던 전설의 그 이미지. 서세원쇼에서 처키 흉내 한 번 했다가 아햏햏 시절 대표 필수요소로 자리잡게 된다.[9] 그리고 저 표정과 합성해서 문희준으로 인해 만들어진 단 한 글자의 유행어가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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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그가 얼마나 심하게 까였는지를 보여주는 댓글들. 2017년 현재도 특종 뉴스가 아닌 이상 1000플을 넘기 힘든데, 스마트폰이 없던 2004년 기사인데도 댓글이 30만개가 넘어간다. 당시 네티즌들에게 있어서 문희준에 대한 취급은 그야말로 저스틴 비버를 방불케 하는 수준이었다.[10] 저땐 농담 아니고 진짜 전국민이 안티[11][12]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정도로 전국민적으로 까였다고 보면 된다. 그야말로 엄청난 안티를 가진 연예인이었고 한국 연예계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정도였다. 2016년 현재도 '연예인 안티'로 운을 떼면 반드시 거론된다.

참고로 처키 흉내가 합성 필수요소로 자리잡았을 당시의 상황은 인터넷 환경상 지금처럼 영상 합성은 거의 꿈도 못 꾸고 십중팔구는 그냥 이미지 합성이었다. 그나마 음원 합성과 플래시가 소수. 만약 그 당시의 상황이 지금의 환경과 같았더라면 아마도 문희준 안티 합성물은 지금의 심영 이상으로 대폭발했을 것이고 더더욱 심한 마음고생으로 다가왔을 가능성이 높다. 그 당시의 열악한 환경이 문희준에겐 어쩌면 불행 중 다행이었을지도. 물론 심영의 경우는 문희준처럼 '전국민이 안티'여서 합필요소가 된 게 아니라 야인시대가 종영한 지 약 4년만에 내가 고자라니가 발굴되고 컬트적 인기를 끌면서 합필요소가 된 지라 같은 케이스라고 보기는 어렵긴 하지만...

H.O.T. 해체 이후 솔로로 데뷔하면서 로커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이 과정에서 특정 발언들이 논란이 되며, 대한민국 연예계 역사상 전무후무하다시피한 악플 논란이 벌어지게 된다. 이 당시 논란이 된 발언과 이에 관한 사실은 이하와 같다.

  • "저를 연예인이라고 부르지 말아주세요. 전 아티스트의 길을 걷기로 했습니다."[13] 그가 한 말로 널리 퍼져있는 말이긴 한데 출처가 불분명해서 안티들이 지어낸 말이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 "레드 제플린이 누구죠?"
    본인의 발언이 맞지만, 사실 진짜 레드 제플린을 알지 못해서 질문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의 일요일 코너 "닥터 리에게 물어봐"에서 락박사 컨셉의 게스트 이윤석이 락음악과 밴드를 소개하게 하기 위해 했던 진행용 멘트였다. 이 멘트를 받아 이윤석이 '레드 제플린은 말이죠~' 하는 식으로 소개하는 것이었는데[14] 전후의 내용만 제외해 악의적으로 퍼뜨린 것. 이후 문희준이 무릎팍 도사에서 자기가 이런 뉘앙스의 기사를 직접 보고서 내가 봐도 얄미워서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나왔다고 언급한다.

  • "하루에 오이 3개 먹었어요. 락이 원래 배고픈 음악이잖아요"
    간염 이후 식이조절을 하면서 다이어트를 하던 도중 오이를 먹었던 것을, 인터뷰어가 "다이어트는 어떻게 했어요"라고 물어본 후 오이로 다이어트를 했다는 문희준의 대답을 듣곤 "그렇죠, 락이 원래 배고픈 음악이잖아요"라며 농담으로 이야기한 것을 몽땅 문희준이 이야기한 것처럼 짜깁기했다고 문희준이 무릎팍 도사 SNL 등 여러 프로그램에서 적극 해명한 바 있다. 문희준은 원래 오이를 좋아했는데 일종의 트라우마로 현재는 오이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모친도 아예 이후에 반찬에 오이는 꺼내지도 않는다 언급.

  • "경호 형, 함께 한국의 락을 이끌어나갑시다." 함께 명예를 추구합시다!
    라디오 라이브 코너에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김경호에게 농담조로 건낸 말이었다. 현장 분위기는 결코 나쁘지 않았다. 사실 다른 분야면 농담으로조차 하기 힘든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최소한 음악이라면 이런 이야기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게 맞다. 음악이란 경력있는 선배만 이끌어 나가는게 아니라 까마득한 후배들도 함께 이끌어 나가는 곳이고, 아이돌 출신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정도로 발끈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이 왜곡된 부심을 가지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 "우리가 발라드를 이겼죠? 높은 키로 질러버리면 되니까요"
    2002년도에 김종서와 문희준이 함께 활동하던 때 그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인 더블임팩트에서 록이 발라드보다 가요차트의 순위가 높았다고 말하며 선배인 김종서에게 했던 말이다.[15] 본인들은 괜찮았어도 일부 청자들에겐 불편할 수도 있는 발언이었다. 농담이라도 좀 더 순화시켜 이야기했으면 모를까.

  • 자신의 콘서트 라이브에서 "저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자들에게, 더 한번 더 크게!", 진정 라이브가 무엇인지 진정 롹이 무엇인지 들려드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여러분과 저만이 진정 락 매니아!"
    라이브 실황 앨범 수록곡 Heejun With H.I.T. II에 실려 있는 발언으로, 앨범명은 Live Revolution이다. 개인의 무대에서 자신을 찾아준 관객들에게 하는 립서비스류로 볼 것이냐, 공식석상에서 공공의 대중에게 한 말이냐에 따라 호오가 갈릴 수 있는 발언이다. 이 시대 최고의 댄스 가수는 성시경 1절만 했으면 좋았을 것을.


위의 발언들에는 분명 문제시 될만한 발언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인터넷에서는 이 발언에 더해서 그 시기 MBC FM4U에서 진행하던 더블임팩트라는 프로그램에서 진행을 위해 사용했던 미사여구나 농담 등이 얽히고, 그를 악의적으로 왜곡한 자료까지 등장하게 되면서 그것들 모두가 문희준 본인의 생각을 담아 힘줘 이야기한 발언으로 퍼지게 된다. 당시 문희준은 록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르는 인물이 겉 멋만 들어 그를 표방하며 설친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고, 기존 아이돌스러운 방송태도를 유지하는 것으로 인해 그는 더욱 심화되었다.

게다가 문희준이 락에 도전한 2000년대 초반은 미묘한 시기였다. 한국 락의 침체가 오래됐으나, 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홍대 앞 언더 락씬은 약진을 거듭하고 있었고 비슷한 시기 시작한 언더 힙합씬 역시 성장중이었다. 하지만 브라운관은 기성 연예기획사 소속의 연예인들이 점령하고 있었으며, 소위 1세대로 불리는 아이돌들이나 그 이후에 데뷔한 아이돌들로 넘치고 있었다. 주요 음악 프로그램은 댄스음악이 장악하여 대중들은 즐거워하고 있었지만 염증 또한 분명히 느끼고 있었고, 립싱크나 잦은 표절 의혹에 대해 커다란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인터넷은 문화를 향유하기에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고, 채널 수가 적었던 당시 미디어는 아이돌이 범람한데다[16] 주로 나이 어린 학생들이었던 팬들의 광기 어린 추종은 확실히 사회적인 문제 수준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H.O.T.는 그런 아이돌의 대표격이었으니 이에 대한 반감이나 문제의식 또한 분명히, 제법 크게 존재하고 있었다. 많은 팬만큼 안티도 많아 국내 최초로 안티사이트가 개설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문희준은 아이돌에서 록커로 전향했는데, 이는 대중이 보기에는 대단히 뜬금없었다. 특히 H.O.T. 후기로 접어들수록 문희준은 비일상적인 소품이나 헤어스타일 등 지나치게 컨셉을 잡으며 그들만의 세계로 빠지는 경향이 심해졌다. 당시 대중은 문화상품 선택의 자유가 훨씬 제한적이었기 때문에[17] 그들을 지지하지 않는 일부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고 반감을 가질 수 있었다. 문희준에 대한 안티는 당시 일종의 사회현상에 가까울 정도로 광범위했으므로 단순히 장르 팬들의 반발이나 갈등, 혹은 소위 팬이 까를 만든다는 말처럼 문희준 팬들이 자초했다고 정도로만 해석하기에는 당시 문희준 안티에 동참했던 사람들 수가 너무나 많다.
이처럼 H.O.T.와 문희준에 대한 반감이 분명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JTL은 기존의 아이돌 보이그룹 노선을 지향했고, 강타는 리드보컬이었던 포지션의 연장인 발라드로 집중했는데, 문희준은 락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한국 최고의 밴드였던 N.EX.T가 락의 쇠퇴라는 시류를 거스르지 못한 채 해체되었고, 마찬가지로 최고의 밴드였던 시나위는 근근히 맥을 이어갔으며, 김종서, 김경호, 박완규가 그나마 인기를 이어가고 있었지만 미디어 노출은 많지 않았다. 야다나 플라워, k2, 김성면, 이브 등 노래방 인기장르인 락발라드 가수들마저도 미디어에서 보기 힘들었다. 홍대 앞 인디 락커들이 새로운 세력으로 조금씩 조명받고 있었지만 대중이 알기는 힘들었다.

그런데 H.O.T.는 실력이 없고 괴상한 컨셉과 표절로 얼룩진 음악을 작곡가들에게 받아서 앨범이랍시고 내면 팬들의 지지를 받아 백만장씩 팔아치우는 아이돌의 대표주자로[18], 평소 아이돌에 반감을 가졌던 락매니아들이나 음악팬들에게는 눈엣가시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무엇보다 당시 락씬에는 문희준에 대한 지지가 없다시피했다. 가수가 락 장르의 앨범을 냈는데 정작 락 팬들 사이에서는 지지도가 전혀 없었다. 근데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면 그 많은 앨범을 누가 다 샀겠는가? 그리고 문희준이 락을 하겠다고 하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엄청나게 미디어에 노출되었다. 실력으로 압도하는 앨범을 냈다면 모르겠으나 결코 그렇지도 않았으면서 연말 음악프로그램에서 상을 받았다. 문희준이 스키드 로우 운운한 것은 낭설이나 루머라지만 신문 평론에서는 분명히 문희준과 크라잉 넛을 동급으로 취급하기도 했다. 락매니아들이 보기에는 기가 찰 만한 일이었다.

문희준은 경력도 실력도 미숙하면서도 락씬에 대한 접근이 신중하지 못했다. 특히 본인의 위치를 제대로 인식 하지 못했고, 기존 락씬에 대한 인식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로 인해 락씬에 투신하고 싶다는 그의 포부가 가상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생겼다. 락커로 전향한 이후 방송중 공공연하게 락커임을 강조하면서도 록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면서 해당 장르의 팬과 자기 개인의 팬들이 일으키는 충돌을 크게 인식하지 못했다. 이는 비슷한 시기 아이돌 그룹에서 힙합으로 전향했던 은지원이 앨범에서 '나는 힙합을 좋아하는 가수일 뿐, 힙합 가수가 아니다'라며 조심스럽게 데뷔했던 것과는 다소 대비된다. 또한 은지원은 당시 제일가는 힙합그룹 드렁큰 타이거 밑에 들어가는 도제 역할을 수행했는데, 드렁큰 타이거가 봐주지 않고 혹독하게 가르쳤다며 직접적으로 비호했기 때문에 장르 팬이나 대중들은 은지원을 까고자 하면 드렁큰 타이거를 까야 하는 아이러니에 직면하기 때문에 은지원은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었다. 실제로 문희준은 추후 예능 프로그램에서 은지원을 예로 들며 당시의 자신이 밉상으로 보일 수 있었음을 어느 정도 인정하기도 했다.[19] 그런데 ‘락이 뭐길래, 힙합이 뭐길래 이렇게까지 조심하고 기어야하나?’하는 생각이 들수도 있다. 물론 락을하고 힙합을 하는데에 자격이 따로 있는것도 아니고 둘 다 자유를 추구하는 음악이라는 점에서 보면 이런 텃세는 불합리하고 지양해야할 문화이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아이돌에 대한 편견이 강했던 만큼 좀더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숙이고 들어갔더라면 정서적인 거부감을 면했을 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문희준은 통칭 1:100,000의 안티들과의 관계가 형성된다. 남에게 욕먹는 것으로 유명해지려 했던 왕비호의 당초 목표가 바로 '제2의 문희준 선생이 되는 것'이었으니 말 다한 셈. 실제로 2009년 개그콘서트의 게스트로 등장해 달인봉숭아 학당왕비호 까임소재로 등장했다. 그야말로 안티 레전드의 만남...그리고 왕비호가 하는 마무리를 빼앗아가면서 '국민요정은 무슨...'이라며 정경미도 (농담식으로) 깠다. 오오 문희준.

이는 기존의 락씬이 가진 불안정한 입지가 문희준이 가진 표면적인 화려함과 대비되며 생겨난 결과였다. 결정적으로 그가 연말 가요제에서 수상까지 하게 되면서 그간 락이라는 장르에 투신하며 그 발전에 이바지한 이들이 응당 받아야할 음악적 성과를 받지 못했다는 박탈감까지 불러 일으키며 상황은 더욱 심화되었다. 물론 문희준의 음악적 역량은 H.O.T. 활동 중 자작곡을 앨범에 수록하는 등 어느 정도 무르익어 있었고, 본래부터 타고난 미성에 락커 출신 아버지의 영향으로 기반이 잡혀있었다고는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이돌 출신 록커에게 가해지는 잣대는 기존 록 팬층에게는 반감과 함께 도저히 만족시키는 선에 다다르지 못했다.

이처럼 처음에는 아이돌 출신이 락을 한다는 냉소와 비웃음에 그쳤지만, 문희준의 팬들은 이를 굉장히 불쾌해 하면서 팬과 안티의 논쟁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하였고, 이윽고 언젠가부터 인터넷상의 대세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로 2003년 경 한 문희준 팬이 빡친 나머지 인터넷에 '문희준 그만 까라'는 내용을 직접 녹음해서 올렸고, 그에 대해 보이스웨어 프로그램[20]을 이용한 반박이 올라왔을 정도. 이후 오인용의 플래시 “연예인 지옥”에서 군대가서 제일 까이는 연예인의 1탄으로서 문희준이 선정되었다. 문희준이 군대에 가 선임들에게 온갖 육두문자로 까이고 구타를 당하는 내용의 플래시 만화였다. [21]김구라가 시사대담에서 한 원색적인 발언들이[22] 반향을 일으키게 되었다. 이로 인해 얼마 지나지 않아 이윽고 사이트를 마비시킬 정도의 악플들이 달리기 시작했고, 눈을 오린 문희준의 사진과 면도칼이 부쳐지는 상황까지 치닫게 된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 심한 악플을 단 사람들의 신상이 기사상에 공개되었는데,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다수 끼어있어 당시의 상황이 록의 안녕과 발전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기 힘듬이 드러났다. 남들이 까니까 까는 분위기가 되었던 것이다 .[23]

당시 분위기가 어찌나 달아올랐던지 유력지에서도 이를 다루게 된다. 조선일보의 한 인터뷰에서는 "락 자격증이라도 따고 싶어요"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게재하였었는데[24] 이 또한 성지가 되어 네이버 뉴스의 기사에 댓글이 무려 30만 개가 달렸다. 당시에는 딱히 60초 제한 같은 건 없어서 한 사람이 여러 개씩 쓸 수 있었다. 이는 네이버 댓글 최고 기록으로 디시, 웃대 등 온갖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지원요청하며 도배를 해댄 결과였다. 이후 이 기사가 네이버 역대 최다 댓글 1위라는 기사가 실리자 다시 한번 극딜. 얼마나 댓글이 심했느냐면 글을 등록하고 새로고침을 누르고 나면 자신의 댓글이 이미 다음 페이지로 밀려날 정도였다. 특히 30만번째 리플 같은 중요한 순간에는 서로 30만번째를 달성하기 위해 그야말로 미친 듯이 댓글이 올라 왔다. 이후로도 꾸준히 성지순례가 이어져 댓글이 달렸지만, 이후 네이버 리플 시스템이 변경되며 현재는 볼 수 없는 상태. 여하튼 당시 문희준에 대한 조롱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했다. 그리고 기사를 쓴 기자는 11년 뒤...

언어적 조롱도 조롱이지만 문희준 합성도 커다란 유행으로 떠올랐다. 당시 인터넷 이용자들은 문희준을 욕하진 않더라도 몇 번쯤은 문희준의 어록이나 등의 유행어, 사진 합성을 보며 낄낄거리곤 했다. 이 합성 중 대표적인 사례가 '무뇌충'인데, 문희준이 락커가 되기 전 H.O.T.로 활동 중, 한창 개인기 열풍이 불고있던 당시에 서세원 쇼에 나가서 처키(공포 영화 사탄의 인형에 나오는 인형 살인마)의 흉내를 냈었는데 이 때 운 나쁘게 캡처된 이상한 표정이 합성의 재료로 널리 퍼져 '무뇌충'이란 새로운 존재로 재탄생이 되기도 하였다.(한때 디시인사이드필수요소) 당시 댓글들을 시간 순으로 보면 '문희준'-'무늬준'-'무늬중'-'무뇌중'-'무뇌충'의 변화를 알 수 있다.

이 무뇌충이 넷상에서 크게 유행한 나머지 그 사용이 넷 상에서만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까지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가히 인터넷 유행어가 현실에서도 쓰이게 된 용례의 효시라 할 수 있을 정도로, 2002년 국립국어원의 신어 자료집에 수록되기도 했다.(#) 하지만 수많은 욕설과 악플을 견뎌내고 홀연히 군에 입대한 일을 계기로(아래의 '문보살:대인배의 탄생' 문단을 참조 바람) 안티들이 많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이 단어의 쓰임도 줄어들었으며, 단순히 까는 용도로는 이미 '무개념'이나 '잉여' 같은 단어가 비슷한 위치를 대신하고 있는 지금은 사실상 사장된 단어.

2013년 2월 12일에 방영된 달빛프린스에 출연해서 당시의 상황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며, 사실은 아직도 정신적인 상처가 회복되지 않은 단계임을 밝혔다. 그 당시 갑작스럽게 다른 멤버들과 떨어지게 되고 H.O.T.가 해체된 상황에서, 리더인 자신이 자신감을 잃은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는 생각에 억지로 힘을 내고 오버를 했던 것이 다른 사람들에겐 자만으로 비쳤던 것 같다며, 자신에게도 잘못은 있는 듯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제대 이후부터 당시 일에 대해선 그저 장난스럽게만 이야기해오던 것과 달리, 이날 방송에서는 거의 처음으로 "아직도 혼자 있을 때는 가끔씩 정신적으로 불안해진다."라고 밝혔다.[25][26]

"제가 사실은 불안한...그 심리상태예요, 계속.
"1시간을 딱 봤을때, 한 50분은 원래 성격이에요.
"그런데, 10분은...남, 그러니까 주위에 내 사람들이 사라지고 혼자 남는 시간 있잖아요?
"검은 구름처럼...이렇게 누르는 느낌이 있어요."
"...
"아직도."

[27]

여기서 볼수있다. 2분 33초부터.(대한민국에서는 못 봄)

당시 문희준은 록씬과 그 팬덤에 밉보일 만한 포지션이었으며, 그에 어울리는 경솔한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메이저에서 아이돌로 활동했었다는 이유만으로 록이라는 장르에 도전하고자 하는 이에게 무분별한 마녀사냥이 이어질 이유 또한 없었다. 시키는 음악만 하는 아이돌에서 자기의 음악세계를 형성한 뮤지션으로 성장한 이들이 존재하는 한 그의 도전은 어느 정도 존중받을 필요가 있었지만, 그조차 이루어 지지 않았다. 그는 결과적으로 공식석상에서 아예 록과 얽히는 것 자체를 꺼리게 되었다.

정작 문희준이 힘들어한 그 시기 루머로 얽혔던 김종서와 김경호는 사적으로 문희준과 친해졌으며[28], 신해철은 본인이 언급된 루머가 퍼진 후 그가 진행하던 고스트네이션에 문희준을 게스트로 초청한 후 대중의 편협한 태도를 질책하며 그의 음악활동을 응원했었다. 문희준은 고인이 된 신해철의 1주기 불후의 명곡2에서 당시 뒷 이야기를 하기도 했는데, "너 죄졌냐? 왜 집 안에만 박혀있냐?"며 신해철술자리로 불러냈었고, 그 자리에서 "너 나 존경하냐? (문희준이 그렇다고 답하자) 너 음악 잘해. 니가 존경하는 사람이 잘한다고 했으니까 움츠러 들지마."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며 그를 응원했다고 한다.[29]

4. 대인배의 탄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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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몽, 유승준 하는짓 X
김민교 용서 O[30]
유세윤 용서 X

안티여론이 극에 달했을 때, 인터넷에 나돌던 군 면제 연예인 리스트 중에 문희준이 어깨 탈골로 군 면제를 받았다카더라 통신 때문에 같이 끼어 있었다.[31]

그러던 2005년 11월 홀연히 현역으로 입대하여 운전병으로 복무하다가 국방홍보원 홍보지원대차출되어 복무하기 시작한다.[32] 그런데 이 때 마침, 연예인 병역 비리 사건이 터져 아무 편법 없이 현역으로 들어간, 그것도 연예병사가 아닌 일반 병사를 스스로 택해서 입대한 문희준이 유독 각별하게 보였고, 문희준이 정상적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나온 뒤 그의 안티는 거의 소멸했다. 원래 안티 양산의 원인이었던 무개념 팬들도 군 복무 기간 동안 대거 떨어져 나간 상태였으니 안티가 생길 일이 없었던 것.

사실 애초에 '무뇌충 까기'라는 것 자체가 형식상으로는 유행을 빙자한 악플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군 입대로 인해 명분이 사라지고 공백기가 생겨 유행이 지난 시점에서 그 생명력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문희준 본인이 무슨 범죄를 저질러서 안티가 생긴 것도 아니고 자세히 말하자면 사실상 H.O.T.의 리더였던 문희준이 H.O.T.의 안티들을 그대로 떠안은 것이기 때문에 문희준이 모범적인 행동을 하자 안티는 그대로 깡그리 증발했다. 공백기가 생겨 유행이 지난 시점이더라도 계속 주구장창 탄탄함이 극에 달하는 안티를 보유한 인물도 있다. 결국 문희준과 스티브 유, 이 두 사람을 비교함으로써 스스로의 처신에 따라 안티를 불릴수도, 없앨수도 있음이 증명된 셈이다.

오히려 소속사가 고소한 안티들을 고소취하하고[33], 수많은 욕설과 악플을 끝까지 견뎌낸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그에게 '문보살', '문부처'의 칭호를 내렸으며 대인배의 대명사로 불릴 정도로 이미지가 180도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문희준 까면 사살'이라는 여론까지 나오게 되었다. 과거에 문희준을 향한 욕설들은 생각해봤을 때 그가 소송이라도 했다면 여지없이 큰 벌금을 물릴 수 있을 정도였음에도 소송 한 건 없이 넘어갔다는 점도 한 몫 한다. 가장 큰 안티집합체였던 디시에서는 문희준의 대인배적 용모에 스스로 짤을 만들어 바쳤으며, 공식적으로 디시는 문희준 안티가 아니다.

그러나 정작 문희준 본인은 문보살이라는 단어를 옛날에 안티였던 사람들이 비꼬기 위해서 만든 것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절친노트 파일럿 방송에서 사과의 의미로 본인이 착용중이던 땀에 절은 염주목걸이를 문희준에게 걸어 주며 김구라가 "보살같다. 문보살"이라고 하자 같은 이유로 화냈다. 그 말을 김구라가 해서 더 마음놓고 화냈을 것이다. 당시 방송에 대해서는 문희준 본인이 여지껏 했던 방송 중에서 가장 독하게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고작 단무지에 고추냉이 덩어리 얹어줬다. 절친노트가 정규편성이 된 이후 이지혜&서지영 편에서도 한 번 더 문보살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렇게 욕을 먹었는데도 멀쩡하네? 라는 느낌으로 받아들여져서 좋아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말했다. 또 자신의 종교가 불교라는 점 때문에 문보살이라는 별명을 부담스러워 했으나, 지금은 좋은 의미라고 받아들이고 있는 편이다[34].

또 다른 이야기로는 어떠한 사건과 맞물려 문보살로 알려진 계기가 있다. 바로 2007년 고소영 악플러 고소 사건이다. 당시에는 연예인들은 이미지 때문에 고소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었고, 악플도 애정이 있어서 하는 거라는 생각없는 사람도 많았던 때였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악플러도 홍보에 이용한다!! 아마 그때 당시 네티즌 마인드가 미성숙한 나머지[35] 문희준이 희생양으로 그런 악플에 시달린 게 아닌가 싶다. 생각해보면 그 당시의 문희준은 동네북 혹은 인터넷 상의 공공재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사실 이 당시 안티들의 대부분은 문희준을 진심으로 싫어해서 안티가 된게 아니라 다른사람도 유행처럼 까니까 따라 깐 경우가 대다수다. 이게 더 문젠데? 상술되었듯 네티즌이 제대로 된 이성이 있었고 루머나 왜곡된 소문을 객관적으로 알아보고 평가하려는 자세와 악플의 위험성을 알았다면 애초에 문희준에 대한 악플사태가 벌어지지도 않았을 일이다.

그런 상황에서 당시의 연예인의 악플러 고소는 전례없는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고, 연예계에서는 최초였다.본격 닉값 이런 사건이 있자 새로 떠올랐던 인물이 수 년간 욕을 먹고 있던 문희준이였다. 비교적 짧은 시간동안 악플받고 고소한 고소영을 보더라도 악플이 사람을 얼마나 괴롭게하고 상처를 남길지 알 수 있는데, 수 년동안 악플에 시달리고서도 고소한번 하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걷는 문희준은 이 사건에 언급되며 비교될 수 밖에 없었고. 문희준 그 자체의 인물을 재평가 받는 사건이었다. 고소영 악플러 고소 사건으로 생각없이 연예인을 까는 일은 사라졌다. 뭐라고? 여전하지만 나름 큰 파장을 줬던 일인 만큼 생각없이 문희준을 까오던 문까들도 자신을 돌아보며 수 년동안 고행같은 안티를 견뎌온 문희준에게 부처님과 같다 하여 문보살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이 모든 일이 문희준 본인이 군대에 (거의 전역을 앞두고)있었을때 일어난 일이라 군대로 덕을 돌리고 있는것 같지만, 애초에 군 복무하던 당시에도 인터넷에는 문희준 합성 자료가 활발하게 만들어지고 있었던 터라 군대 때문에 까방권을 얻게 되었다는 주장은 아무래도 신빙성이 없다.

코너 자체는 얼마 가지 못했으나 DC와 Y-STAR과 계약돼서 방송에 타는 디시인사이드 쇼의 MC를 맡기도 했다! 오오 희준횽!

실제로 2007년 내한한 린킨 파크에게 전달한 싸인CD가 쓰레기통에 버려진 사건이 생기기도 했지만#[36] 이전과 달리 크게 화제가 되지는 못했다. 애초에 이와 관련한 내용들이 사실상 카더라 수준이기도 했고, 제대 이후 그의 이미지가 이전보다 나아졌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국방부 근지단에서 근무한 병사가 그를 평가하기를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분위기를 이끌어나가는, 그리고 깊게 생각하지 않고 말하다 실수도 자주하는 대한민국 군대 어디에서도 볼 수 있을법한 평범한 병사"라고 하기도 했다. 그만큼 군생활도 특별히 문제 일으키거나 하지 않고 매우 무난하게 해왔던 것으로 생각된다.

김구라도 문희준 안티가 범람할 때 문희준을 엄청 깠었다. 김구라의 흑역사인 한국을 조진 백명의 개새끼들 노래에선 문희준의 눈깔을 파버리겠다는 가사도 있었다. 하지만 문희준이 2008년 7월~9월 SBS와 MBC TV 프로그램들에 출연하여 김구라에 대해 그간 심경을 밝혔는데 김구라가 쩔쩔 매며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기사 링크 둘이 공동으로 SBS 절친노트를 진행하기도 하고, 김구라는 타 프로그램에서 문희준의 이름을 자주 거론하곤 한다. 미운정 잘 들었나 보다. 그리고 이제는 곧잘 김구라의 프로에 게스트로 출연해서 김구라의 과거행적을 들춰서 쩔쩔매게 하는 기믹도 곧잘 사용한다.[37][38]그리고 OBS에서 김구라와 같이 프로그램 MC로 활동하였었다.

제대 이후로도 여러가지 불협화음이 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이미지가 좋게 유지되는 걸 보면 어떤 의미로는 군대 까임방지권의 효과를 온몸으로 보여주었던 산 증인.

거기다 인터뷰 내용 중에서 '다 옛날 얘기일뿐, 신경쓰지 않는다.'라는 말을 하여 대인배적인 면모를 제대로 보여줬다.#

2010년 11월 30일, 강심장에 출연, 1998년 콘서트 도중에 무대에서 떨어져서 6개월 동안 하반신 마비 상태로 지냈으며 재활하였던 것이 밝혀졌다. 당시 언론에는 단순한 허리 디스크(!!!)였다고 했지만 당시 진료결과는 하반신 마비 판정이였다고. 조금만 잘못되었으면 지금의 강원래처럼 될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런 진단을 받았음에도 병역 의무를 훌륭히 수행하고 돌아왔기에 네티즌들은 더욱더 칭송하고 있다. 2013년 1월 22일자에 방송된 두시탈출 컬투쇼에서 당시의 상황을 보다 자세하게 설명했는데, 입소 후 훈련소 내부에서 한 재검에서 귀가조치를 받게 되자, 도저히 다시 나갈수가 없어서 위험할 수 있는 천식만 남기고 나머지 진단을 무시하는 방향으로 합의를 봤다고 한다. 그래서 비만 훈련병들이 주로 모여있는 소대에 배치돼 같이 훈련을 받다 이후 일반소대로 합류하였다고 한다. 입대전 민간인 신분으로 병무청에서 한 징병검사가 아니라, 입소 후 귀가조치 여부를 가리는 재검에서 일어난 상황이므로 문희준 본인 의지로 진단 결과를 거부하고 병역을 지속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했던 것. 당시 문희준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었는지 모를 간부들은 없었을 것이다

SNL코리아에서 본인의 힘들었던 시절을 개그소재로 승화시키기까지 했다.

5. 문희준의 음악[편집]

그의 음악은 세간에는 현악과 락을 접목시켰다고 문희준 본인이 주장하는 "전설"이 가장 유명하나 사실 가장 널리 퍼진 곡은 I(아이)라고 할 수 있다. '저기저기 외기러기', '왜 날 break!'(왜 날 뷁) 등의 주옥같은 명 가사를 남기며 을 전국민의 유행어로 만든 역사적인 곡이지만, 정작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노래의 제목을 모른다. 문희준도 의 유행에 대해 알고 있으며,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유세윤이 "뷁"을 외치는 등의 공격을 하자 "많은 분들이 삐뚤어지게 좋아하시더라고요"라고 담담히 받아치기도.

안티를 향한 분노가 담긴 G선상의 아리아도 잘 알려진 편. 곡 제목과는 달리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의 명곡 'G선상의 아리아'와는 관계가 없다.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는 바이올린의 G선만으로 연주되는 곡이라 하여 'G선상의 아리아'라고 불리지만, 문희준이 부른 문제의 그 곡에서는 G가 Game을 의미한다고. 즉, 인터넷에서의 인신공격을 게임처럼 즐기는 잘못된 문화를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 뮤직비디오를 보면 악플러들에 대한 문희준의 분노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기분나쁜 미소를 지으며 악플을 열심히 달던 누리꾼이 결국 괴물의 모습으로 변해 모니터 속에 갇혀버린다는 내용이니….

그리고 어 타임 포 어스를 샘플링한 아낌없이 주는 나무도 유명한데 여기서 팔을 아래로 꺾고 흐느적거리는 나무춤과 "그리워요 ~그리워요~"가 나온다. 그외에 1집 히든 트랙 단춧구멍 인생도 숨겨진 명곡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실 문희준의 음악은 락보다는 SMP에 가까운 편. H.O.T. 시절에 4집 싱글곡인 '투지'나 5집의 리드싱글인 'Outside Castle', 그리고 솔로 1집의 타이틀곡 'Alone' 등을 작곡했던 걸 보면, SMP계열의 댄스뮤직이나 발라드를 만드는 솜씨는 수준급이다.[39], 하지만 문제는 정작 문희준 본인이 자신이 잘하는 장르를 버리고 좋아하는 자신에게 맞지 않는 락이라는 장르를 택한 것이다. 표절 의혹도 표절 의혹이거니와 표절을 떼고 봐도 곡 자체가 락으로서 내세우기에는 무리인 부분이 있었다. 군 제대 이후에도 2008년 스페셜앨범과 2009년 미니앨범에서 락 장르로 활동하긴 했지만 이 시기부터 자신의 음악을 '락'이 아닌 '밴드음악'으로 지칭하기 시작했다.[40] 그나마도 후술하게 될 2013년에 발매한 두번째 미니앨범에서는 그 밴드음악 조차도 하지않고 댄스음악으로 컴백했다. 미디어의 영향으로 잘못 까인 경향이 크지만 수많은 까임 속에서 본인도 락커의 길을 우선은 접어둔 듯.[41]

문희준의 특징은 단순히 노래를 하는 가수이기도 하지만 본인 명의로 작사나 작곡도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곡이란 것이 문제.[42] 그에 대해서 표절 의혹을 여러번 들었다(판단은 여러분에게 맡긴다.). 본인은 무릎팍도사에서도 다른 것에는 다 해명해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해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짜 락덕후들에겐 여전히 까이고 있는 상태. 실제로 I(아이)의 경우는 (Korn)의 리프가 여과없이 들어가 있다. 게다가 무대 매너는 마릴린 맨슨의 흉내였다. (이에 대한 반박 의견 참조)

2013년 1월 그간 예능과 방송에 전념하던 그가 다시 새 싱글을 출시했다.


위에 영상은 I'm not ok 뮤직비디오이다. 그런데 락이 아니다?!!! 'I'm not ok'라는 제목의 싱글로 헤어졌지만 난 괜찮다는 내용의 노래로 요즘 흔히 들을 수 있는 일렉트릭 댄스곡이다.그리고 오토튠도 H.O.T.시절 때나 했던 붉은머리와 그만의 각기춤으로 다시 회귀했다.[43] 음악도 가사 빼고 들어보면 왠지 H.O.T. 시절 인기곡 'We are the Future'의 2013년 버전 같다

일단은 문희준의 팬이냐 아니냐를 막론하고 락보다 훨씬 문희준에게 어울린다는 평이 대부분이다. 청중의 시선을 자극하는 퍼포먼스도 댄스 실력이 녹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장우혁에 가린 점이 없진 않지만 문희준도 원래 장우혁과 더불어 H.O.T.의 퍼포먼스의 양대 주축이었다. 애초에 춤 실력으로 H.O.T. 멤버가 되었던 데다, 예능에서 두 사람이 "H.O.T. 안무 대부분은 문희준이 짰다"고 하기도 했다. 전사의 후예와 We Are The Future 안무는 원래 장우혁과 문희준이 각각 안무를 짜오고 그 중에서 제일 좋은 쪽을 택하기로 했고 문희준의 안무가 최종적으로 선택되었다. 장우혁은 자신의 수준에 맞춘 고난이도의 안무를 짜왔고, 문희준은 다른 멤버들의 춤 실력까지 고려해서 안무를 짜왔다고 한다. 춤을 전문적으로 추는 멤버가 아니었던 토니, 강타, 이재원을 생각하면 장우혁의 고난이도 안무보다는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문희준의 안무가 채택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H.O.T. 시절 대부분의 무대를 보면 원래 가장 현란한 퍼포먼스는 두 사람의 몫이었다.

그런 사람이 전성기라 할 수 있는 시기에 자신이 제일 잘하는 춤을 버리고 뜬금없이 춤과 무관한 노래에 열중하다 네티즌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었으니 팬들 입장에서는 원통할 만도 하다. 덕분에 문희준 팬 커뮤니티와 블로그에는 오랜만에 감격의 포스팅이 줄을 잇고 있다. 단순한 외도(?)인지 아예 댄스음악으로 다시 돌아서는건지 모르지만 그간의 행보를 봐왔던 사람들에겐 꽤나 신선한 반응이다. 조금 더 지켜봐야 알듯하다만 이렇게 오랜만에 신곡도 잘 뽑아냈으며 여전히 방송에서 재치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제는 연예계 최고의 대인배를 꼽으라면 당연히 꼽히는 인물 중 하나가 되었을뿐더러 안티들은 어느새 다 떠나가 H.O.T 시절 이후 제 2의 전성기를 맞아 큰 인기를 누리며 영구까방권을 획득하여 다시금 좋은 이미지를 쌓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6. 결혼: 반복되는 역사[편집]

6.1. 관련기사(공식입장)[편집]

  • 문희준 소속사 코엔스타즈는 2016년 11월 24일 밤 "문희준이 팬카페를 통해 직접 쓴 손편지로 결혼 소식을 전했다"며 "상대는 여자 아이돌 그룹의 멤버인 크레용팝의 소율로 2년 전부터 같은 분야에서 좋은 선후배 사이로 지내오다 올해 4월부터 본격적인 만남을 이어왔다"고 알렸다. 소율의 소속사 크롬엔터테인먼트 측 역시 "내년 2월께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며 "속도위반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것은 전혀 아니다"고 강조했다.관련기사

  • [공식입장] 문희준 측 "소율, 이번주 출산예정" - 결혼 3개월만에 임신 및 출산소식 알림 관련기사(문희준측공식입장)

  • [공식입장] 크레용팝 측 "소율, 공황장애로 활동 중단..4인 체제" - 크레용팝 소율 10월부터 공황장애로 활동 중단 관련기사(크레용팝 측 공식입장)

  • [공식입장] 문희준 측 "소율, 오늘 2.6kg 딸 출산..기쁨 속 회복 중" 관련기사

6.2. 논란[편집]

문희준과 소율의 결혼식에 H.O.T. 멤버 중 장우혁을 제외한 3명이 참석했다. 결혼식에 불참한 장우혁은 전날 지인들과 술자리를 가졌던 사진이 SNS에 올라와 받지 않아도 될 오해를 사는 등 논란이 있었다.[44]

한편 팬덤 내부적으로는 아내를 초대했다고 알려진 6월 콘서트부터 시작해서 문희준이 일으킨 온갖 병크와 어그로, 그리고 과거 행적에 대한 재조명 관련으로 현재 팬덤이 거의 와해된 상황에 이르렀다. [45]

이런 행각 때문에 사태가 심각해지자 3번의 사과문을 올리지만 팬들의 마음을 되돌리기엔 이미 역부족이다. 오히려 사과에 진정성이 없다고 더 비난을 받고 있으며 심지어 3번째 사과문은 매우 형식적으로 써져 있는데다 닫혀 있는 공카를 열지 않고 소속사 페이스북에 올린 것이 이상하다며 대필 의혹까지 불붙고 있는 등 상황이 더 안 좋아졌다. 사실 그동안의 사과문 혹은 해명문의 경우 구어체의 반말로 쓰였으며 팬들에게 항변하는 내용 위주였다. 심지어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간혹 틀리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런데 3번째 사과문은 그동안 썼던 형식과는 사뭇 다르게 매우 정중한 문어체로 쓰여진 탓에 의심을 샀다.

더군다나 현재 팬클럽 주니스트 공카의 경우 타 업체의 이미지를 도용하여 예시 사진을 제시한 후 실제로는 조잡한 저질 굿즈를 판매한 것이 발각되고 기사가 뜨면서 일이 커질 조짐이 보이자 굿즈를 구매한 팬들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 없이 그대로 공카를 닫아 버렸다. 정말 진심으로 사과하고 소통할 의향이 있었다면 이 공카부터 오픈했어야 했다. 참고로 문제의 팬클럽 공카는 일방적으로 닫힌 뒤 1년이 넘은 2018년 3월 현재까지도 열리지 않고 있으며 폐쇄 수순을 앞두고 있다.

일부 누리꾼들은 소율의 결혼식 의상을 보고 "신부 결혼식 의상이 임산부들 입는 옷인 거 같다", "부케로 배를 가렸는데 임신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을 하였고, 소속사는 위처럼 "속도위반은 절대 아니다"라며 논란을 일축....하는가 싶더니, 결혼하고 3개월 가량 지난 5월 8일 "이번 주 출산이 맞다"고 밝혀 결국 혼전임신이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 출산 자체는 축복할 일이지만 결혼 직전까지만 해도 속도위반설을 계속 일축해왔기에 비난은 피할 수 없었다. 2017년 5월 12일 득녀했다. 기사

결국 그동안 해 온 말이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났고, "소율을 보호하기 위해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는 해명을 내놓았으나 세간의 시선은 차갑다. 차라리 처음부터, 아니, 결혼식 때라도 밝혔다면 큰 비난을 받지 않고 결혼과 출산을 축하받을 수 있었는데, 굳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음에도 그렇게 했던 것이다.[46] 문희준이나 소율이나 과거 심한 악플[47]로 인한 정신적 상처 (PTSD) 때문에 과잉 반응을 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소속사와의 계약이 끝나지 않은 소율의 입장 하나 때문에 계약 위반 손해를 물어주지 않기 위해서 그런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48] 덕분에 크레용팝은 소율이 빠지고 나서 두둠칫 활동을 4인 체제로 하게 되어 한때 4레용팝이라는 불명예스런 이름을 얻게 되었다.

해당 기사 게시판에는 과거의 강도나 수에는 못 미치지만[49] 거의 10년 만에 악플이 줄을 잇고 있다. 10여 년을 걸려서 쌓아온 좋은 이미지가 거짓말처럼 한순간에 무너지고 있는 중으로 결국 기존 팬들의 여론조차 싸늘하게 바뀌었다.

무엇보다 현재 문희준을 비난하는 주체 세력은 과거 문희준의 백만 안티 시절 그를 쉴드치면서 대신 싸웠던 팬들이다. 철새성 팬들이 혼자 관심이 식어 탈덕하면 모를까, 이런저런 일들에 지친 코어 팬들이 대량으로 탈덕하면서 등을 확 돌리고 침묵해 주었던 지난 날의 비리를 다 까발리는 내부고발자가 되어버렸다. 다시 말해, 최고의 빠가 까가 된 사례.[50] 이 와중에 불리한 내용에 대해서 해명 하나 없이 침묵하는 문희준의 태도가 일을 더 키웠다. 물론 이것은 문희준만의 문제가 아니라, 소율의 문제이기도 했기 때문에, 충성도 높기로 유명하던 크레용팝 팬들인 팝저씨들 중에서 소율 개인팬들이 사실상 안티로 돌아섰다.[51]

결국 H.O.T. 팬클럽 일각에서는 이러한 거짓말에 대해 강한 비판 여론이 일어났다. 디씨 H.O.T. 갤러리는 2017년 5월 20일 문희준 지지 철회 성명서를 발표했다. 원본 기사 이 성명서에서는 팬들이 등을 돌린 이유를 문희준이 팬을 대하는 태도, 명백한 거짓말로 팬과 대중에 대한 기만, 무성의한 콘서트, 멤버 비하와 재결합 관련 경솔한 언행, 불법적 굿즈 판매와 탈세 의혹 등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고 한다.

성명서에서 "문희준의 소속사 '코엔스타즈'는 예능 부분을 제외한 가수 활동과 팬클럽 관리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으며, 공연 및 굿즈, 팬클럽과 관련된 모든 업무는 문희준과 팬클럽 임원진이 직접 관리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한 것으로 볼 때 소속사와의 갈등이 아닌 팬 관리 부분에서 갈등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문희준이 팬을 대하는 태도와 관련해서 참으로 골 때리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문희준은 평소 팬들에게 출퇴근길에도 뜨거운 성원을 보내 달라고 유도했는데 그 중 한 직장인 팬이 "월차를 내기 힘들어서 참여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하자 "월차도 못 내는 회사는 왜 다니냐?"라고 되물었다는 점과,[52] 많이 찾아와 달라고 해 놓고 정작 찾아온 팬들에게 8m 이내 접근금지 및 사진촬영 금지라는 까다로운 규율을 요구하는 등 팬이 아니라 일반인의 입장에서 봐도 빈축을 살 만한 언행을 했다고 한다.관련기사

하지만 일부에서는 "도대체 왜 저러냐?" "뭘 저렇게까지 하는 거냐?"는 반응도 보이고 있다. 연애 및 결혼 문제로 팬 기만 논란에 휩쓸렸었던 연예인들의 사례가 많은 데다가 혼전임신 사실은 민감한 사생활이므로 연예인이 무슨 정치가도 아닌데 사실대로 말하기를 강요할 수도 없는 부분이며, 사실일지라도 무려 '지지철회 성명서'까지 내는 것은 그냥 우습다는 반응이 많다. 애초부터 빠순이질 하다가 이제 와서 터뜨린다는 것도 황당하다는 것. 설령 솔직하지 못한 것이나 옳지 못한 행동들에 실망했더라도 이렇게까지 이슈가 되고 있다는 것에 비웃음을 날리는 사람이 많다.[53]

하지만 지지철회 선언 등의 글을 올린 팬들은 문희준의 지난 행적들 때문에 문희준을 도저히 멤버로 두고 볼 수 없으며, 가수로서 팬질을 할 대상으로도 부적격이라는 판단을 했기에 내린 결론이라고 한다.

지지철회를 선언한 팬들의 입장은 처음부터 별첨을 포함한 성명서 내용이 전부이며 딱히 안티여론 조성에 목적이 있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성명서를 통해 그저 자신들과 문희준과의 관계에 선을 그었을 뿐이며 정말 안티여론 조성에 목적이 있었다면 성명서를 쓰자마자 기자들에게 뿌리는 등의 행동에 들어갔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주장들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모든 사람들의 눈과 귀가 되어주는 인터넷의 특성상 이런 글을 올리면, 굳이 기자에게 알리지 않아도 타 커뮤니티와 언론에 퍼지는 것은 순식간이고[54] 이런 글이 이미 병크를 여럿 터뜨려서 여론이 많이 악화된 문희준에게 더 큰 악재와 대중들의 차가운 시선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기에 설령 진짜 안티 여론을 조성할 목적은 없었을지라도 문희준에 대한 여론과 대중들의 시선이 더 악화되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 리는 없다. 이런 변명은 한마디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짓이라는 불편한 시선도 존재한다.

다만 실제 상황을 들여다 보면 지지 철회 성명서에 참여한 팬들 입장에서는 오픈된 공간이라고 해 봤자 어차피 마이너 갤러리인데 굳이 이 곳에 게시된 내용까지 퍼다 기사로 나를 거라는 생각을 딱히 하지 않았던 것은 확실하다. 갤러리 내부 분위기는 이미 반 년을 넘어가는 동안 계속되는 병크와 문희준의 태도에 지쳐 암묵적으로 문희준에 대한 언급 금지를 걸고 4인 지지 입장을 고수하고 있던 상태였기 때문이다.[55][56] 즉, 자신들은 그룹 갤이지만 이미 4인 지지를 표명한 갤이며, 지지 철회 선언문 역시 그 부분을 공개적으로 표명한 데 지나지 않음이 해당 마이너 갤러리의 글들을 찬찬히 확인해 보면 알 수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문희준과 팬클럽 주니스트 임원진에게 수도 없는 피드백을 요구했던 사안들에 대해 아무런 제대로 된 회신을 받지 못한 상태로 시간만 흐르고 있는 것이 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문희준을 여전히 옹호하는 측에서 이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해명글을 올리고 지하철 광고도 하였으나 비난여론이 워낙 강해 묻혔다.

2017년 5월 26일 KBS라디오 쿨FM '정재형 문희준의 즐거운 생활'에서 사연을 소개하던 도중에 소율을 밀쳤다고 언급했다. 문제는 소율이 임신기간이었던 것. 큰 충격 없이 살살 밀쳤다고 해도 일단 임신기간이라는 것 때문에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소율이 설거지를 하는 모습에 눈물이 핑돌았다고(...) 발언했는데 만삭인 아내에게 일을 시키고 보고만 있었다며 비난하는 의견도 나오는 중.

이후 자신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에 소율이 뜬다고 왜 아내까지 검색하냐며 발끈하는 모습을 보여 대중의 어이를 날리고 있다. ##

아무래도 이미지 회복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할 듯 하지만... 갑작스레 마지막 기회가 굴러들어와 좀 더 지켜봐야 할 부분. 토토가 3이 나간 이후에 돌아온 H.O.T.팬들의 수가 기존 디씨 H.O.T.갤 갤러들의 수를 압도하게 되면서 지지철회 성명서는 현재 사실상 효력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후 여론이 많이 풀렸으나 여전히 비판의 목소리는 다소 남아 있다. 여하튼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고 다시 극복해낼지가 관건이 되었다.

7. 기타[편집]

  • 국내 방송 출연에 한해 H.O.T. 멤버 중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강타SM엔터테인먼트의 이사인데다가 중국 등 해외에서 H.O.T. 시절 이상으로 잘 나가고 있고 토니 안도 사업이 잘 돼서 방송출연을 상대적으로 많이 안 한다. 장우혁도 그 동안 번 돈으로 강남에 빌딩을 소유하고 있다. 막내이자 가장 마지막으로 제대한 이재원도 주로 중국에서 활동 중. H.O.T. 시절에도 미칠 듯한 예능감을 자랑했고 활발한 활동에 힘입어 마침내 어느 방송에서 아이돌 최초로 호감가는 개그맨 2위에 랭크되었다. 문희준은 1등을 못 해서 상당히 아쉬워했다고. 예능 방송에서 과거 H.O.T. 시절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과거 얘기를 영웅담마냥 꺼낸다며 비판받기도 하지만 문희준이 현재 활동하는 아이돌과 함께 예능에 출연하면 '아이돌의 조상님' 컨셉으로 캐스팅될 때가 많아서 어쩔 수 없다.

  • 예전에는 확실히 장우혁과 막상막하의 춤 실력을 가졌지만 지금은 나이도 들고 건강상의 문제도 있어서 예전처럼 격한 춤은 잘추지 못한다. 하지만 캔디춤이라던가 H.O.T 시절에 췄던 춤들은 아직까지 잘춘다. 다만 그놈의 체력이 문제라서...

  • 반 농담으로 후배들 보는 선구안이 좋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가 프로듀서로써 첫 활동 할때 밀크는 당시에는 망한 그룹 취급당했으나, 박희본서현진의 활약으로 재발견된 케이스. 게다가 불후의 명곡에서 호평했던 신인들은 방송 후에도 호평을 받았는데 대표적인 게 육성재,니엘. 크레용팝의 팬이라고 했는데 크레용팝은 빠빠빠 이후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정도면 초강력 버프 그리고 그 이후에는 여자친구의 팬이 되었다. 그 이후 문희준이 극찬한 여자친구는 그야말로...

  • 김경호, 신동, 윤도현, 크라잉넛 등과 함께 크레용팝의 팬(팝저씨)이다. 은지원과 공동 진행하는 대담 프로그램 "은희상담소"의 첫 손님으로 크레용팝을 불렀으며, 본인 진행 프로그램 "순결한 15"에 크레용팝의 유닛 딸기우유를 초정하여 또다시 인증하였다. 멤버 소율과도 다른 프로그램에서 허니버터칩을 얻기 위해 연락했다.[57] 그리고 마침내 2016년 11월 24일 소율과 결혼 발표를 했다. 결혼식은 2017년 2월 12일에 개최했다. 2017년 5월 12일에는 드디어 새로운 생명(딸)을 얻었다.

  • 운명의 손에 나온 배우 이향이 문희준의 외할아버지다.

  • 강타와는 어렸을 때부터 같이 지내온 매우 친한 사이이다. 문희준이 형이긴 하지만 나이는 단 1살밖에 차이나지 않아서 반쯤 친구로 지냈다. 결국 이렇게 항상 붙어다니던 둘이 H.O.T.도 같이 데뷔했다. 강타가 4차원스러운 면모가 있어서 고생한 적이 있다. 예를 들면 머리카락을 정가운데에 있는 딱 1가닥만 남기고 모두 삭발하려 한다던가...

  • H.O.T. 데뷔를 준비하던 시절, 매니저들이 매일 멤버들을 아침 6시에 강제로 기상시킨 다음 1집 곡들을 무작위로 뽑아서 전날 연습했던 춤이나 노래를 기억하고 있나 시험을 봤는데 이 때 틀리면 나머지 멤버들이 쉬고 있을 때 혼자 연습하거나 벌칙을 당했다고 한다. 아침에 약한 문희준을 깨우기 위해 H.O.T.의 남자 매니저 중 1명이 장난으로 문희준에게 키스하는 시늉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것이 문희준의 첫키스였다고...이 외에도 멤버들은 데뷔 직전까지 숙소에 틀여박혀서 계속 기계처럼 춤과 노래 연습만 하는 생활을 했는데 언제는 주말이라면서 매니저들이 숙소에 오지 않았고 그때를 틈타서 취사가 금지되어있던 숙소에서 멤버들과 해먹은 김치볶음밥이 그렇게 맛있었다고 한다. 안습. 근데 이런 H.O.T. 데뷔 전의 힘든 시절을 예능에서 더 말하고 싶어도 god 멤버들의 고생담을 들으면 자기네들은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얘기하기가 미안해진다고 한다. 특히 박준형이 30살 넘는 나이에 그 고생을 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 2010년 11월 30일, 강심장에 출연, 1998년 H.O.T 콘서트 때 공연을 하다가 무대 밑으로 추락해서 부상을 입었고[58] 6개월 동안 하반신 마비 상태로 지내며 재활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조금만 잘못되었으면 지금의 강원래처럼 될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당시 언론에는 단순한 허리 디스크였다고 했지만 당시 진료결과는 하반신 마비 판정이었다고...[59] 또한 어려서부터 춤을 춰서 무릎과 어깨 연골이 닳아서 없다고 한다.#

  • 이 밖에도 H.O.T. 시절에는 꽤나 마른 체형이었는데 H.O.T.가 해체하던 2000년대 초반 무렵부터 간염을 앓게 되면서 살이 상당히 잘 찌는 체질로 변했다고 한다. 조금만 많이 먹거나 몸관리를 느슨하게만 해도 팍팍 살이 찐다고 한다. 그래서 방송에서도 몸매의 기복이 상당히 심한 편. 그나마 20대에는 괜찮았는데 나이를 먹자 살이 더더욱 잘 안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밝혀진 바로는 술주정으로 폭식한다고 한다. 냉장고에 들어있던 자장면소스...다메요... 차라리 요요가 낫다고 절규해서, 문요요라는 별칭을 획득했다. 그 회차 런닝맨에서 그간의 예능감을 쏟아부으며 엄청난 존재감을 뽐냈다. 캐릭터도 문요요, 드라이문이 생겼다.

  • 위 트러블을 소재로 하여 SNL 극한직업에서 유병재가 노래방에서 마음을 담는다며 홍경민의 "돼지에게(마지막 편지를...)"을 부르려고하자 엄청 굵은 오이를 들고 죽일 기세로 유병재를 쫒아가는 연기를 했었다. 그리고 그 뒤에 족발집에서 쥐어터진 몰골이 된유병재와 다시 술잔을 기울이던 중 취한 유병재가 문희준의 별명이 왜 문보살인가 하는 설명을 하다가 개자식 문희준~♩ 돼지새끼 문희준~♪ 하고 노래를 부르자 이번에는 오이에다 족발까지 들고 쫓아갔다. 유병재! 일로 안 와? 하지만 그 때까지 실제로 유병재가 맞지 않은 유일한 회차라 카더라 이 예민한 행동 2014년 8월 런닝맨에서도 등장했다. 게임에서 지자 분노한 김종국뚱땡이라고 부르자 문희준이 분노하며 김종국에게 몸짱 아줌마라고 절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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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희준의 여동생인 문혜리는 팬들 사이에서 나름대로 악명이 높았다. HOT 활동시절에는 강타가 데뷔하기 직전에 그녀와 잠시 교제한 적이 있었고, 그녀는 젝스키스 팬이었다는 이유였다. 그 이후에는 문희준이 라디오 스타에 나와서 아이돌 생활로 번 돈의 대부분을 그녀의 일본유학 비용에 썼건만 정작 유학에서 돌아오자마자 취집했다는 내용을 말해서 까인것. [60] 2011년 문혜리와 함께 나온 '꽃다발'이라는 방송에서 위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본인은 강타와 사귄 적도 없으며 오빠가 속해있는 H.O.T.의 팬이었다고 한다. 강타와 열애설이 나자 방송에서 문희준이 농담으로 '제 동생은 저희를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고 강타가 나름대로 감싸준답시고 '저한테 관심이 없다'는 말을 했다가 그만... 문혜리는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이 일로 인해 열성팬들이 괴롭혀서 정상적으로 학교생활을 하기 힘들었고 이로 인한 스트레스로 유학에 가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자세한 내용과 함께 날씬한 문희준을 볼 수 있다. 해당 방송에서 유학 후 바로 결혼을 한 이유도 이야기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만날 수 없다.

  • 열애설이 없기로 소문난 연예인이었다.나 혼자 산다에서 드러난 사실로는 팬들과 80세에 결혼하기로 약속했다 카더라. 와중에 강타는 팬들과 40세에 가면 안 되냐고 흥정했다 카더라 2016년 11월 24일, 결혼한다고 팬카페에 올렸다.팬과의 약속이니 깰 때는 팬에게 상대는 크레용팝의 소율이라고 한다. 아이돌 시절에 본의 아니게 간미연에게 민폐를 끼친적이 있는데, 문희준 본인은 아무것도 안 했지만 문희준과 간미연의 열애설이 퍼지자 문희준 빠순이들이 간미연에게 테러 행각을 벌였던 것. 혈서, 커터칼날, 눈알 판 사진 등의 협박까지 그 정도가 상당히 심했다. 세월이 많이 흐른 후에도 종종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언급이 되는데 이 부분의 발단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간미연강심장베이비복스 멤버들과 출연해서 그룹 활동 당시 사귀던 남자 아이돌이 본인에게 집착하던 이야기를 꺼냈고 함께 출연중이던 심은진이 (이야기의 대상이 누구인지)"거의 다 알지 않아요?"라는 말을 했다. 방송이 나간 이후, 간미연스캔들 난 사람 하면 아무래도 문희준이 떠오르다보니 한동안 연관 검색어 상위에 문희준 간미연이 머물렀다. 그 후 해피투게더 1세대 아이돌 특집에 출연한 문희준은 열애설 관련 질문을 받고 '큰 거 딱 한 방이 있었다.'고 말을 했는데 함께 출연한 김태우가 부채질을 하자 이성을 놓고 '그만 좀 얘기해'라고 외친다. 이후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간미연이 '차라리 함께 불러달라'고 하기도 했다. 그래서 절친노트에 같이 불렀잖아... 간미연과의 열애설 이후, 문희준이 유일하게 열애설이 난 일은 SBS 미스터리 특공대라는 프로그램을 같이 진행했던 그룹 캣츠 출신의 가수 김지혜와 사귄다는 기사가 딱 1번 뜬 것.

  • H.O.T. 활동으로 번 돈을 모아서 팬들에게 '레모나'라고 불리는 차를 샀었다. 여담이지만 은지원의 차에 청테이프가 붙어있는 걸 본 팬들이 문희준이 은지원 차를 빌려갔다가 사고내놓고 청테이프 붙여서 돌려줬다 라는 루머가 있었는데 당연하지만 헛소문. 20세기 미소년에서 은지원이 매우 재미있어 하며 그런 소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지 문희준에게 물어봤다. 당연히 알고 있었고 오히려 은지원이 당시 자기 차에 청테이프가 붙어있었던 이유를 설명해줬다. 간단히 말하면 수리 중 접착제가 덜 붙었는데 급하게 차를 써야 할 일이 있어서 그대로 가지고 나온 거라고. 나중에 자기 팬들에게 그 소문을 듣고 은지원도 황당했다고 한다.

  • 파일:attachment/문희준/vkwnrnd.gif
    집 중 하나가 파주시에 있는데 이 집도 H.O.T. 시절에 번 돈으로 샀다.[61] 그동안 "구매당시 1억 2,000만원이었는데 현재는 15억원을 호가한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130529일자 라디오스타에서 문희준은 그 파주 집이 아니라 다른 집이 그렇게 오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그동안 2011.02.28 '밤이면 밤마다' 방송때문에, H.O.T.의 1집 정산 금액이 1억2천만원이라고 잘못 알려졌다. 해당 방송을 정확히 보면, H.O.T.가 15억짜리 광고를 찍었을 당시(2000년으로 추정됨) 문희준이 1억2천만원을 주고 어떤 집을 샀다고 했을 뿐, 1집 정산 금액이 1억2천만원이라는 내용은 그 어디에도 없다.[62]

  • 강심장에 중학교 때 무협지를 쓴 경험이 있는 강소라가 문희준을 가장 주인공 역할에 맞는 사람이라고 뽑았다. 인생에 우여곡절이 많아 주인공 역할에 딱이라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때 문희준의 표정은 참으로 복잡미묘...

  • 오한별 때문에 무뇌충이라는 단어가 또 다시 재조명하게 생겼다(...)

  • 생간이나 천엽 같은 내장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었는데 조카뻘인 나현이 너무 맛나게 먹어대자 거의 기절초풍했다. 하도 해괴해서 나현에게 생간과 천엽의 맛과 식감을 물어봤다.

  • 파일:external/imgnews.naver.net/W143860446208439241_99_20150804061602.jpg

게임카트라이더를 즐겨한다고 비정상회담에서 언급된 적이 있었는데, 방송이 끝나고 오래 지나지 않아 카트라이더 11주년 행사(2015년 8월)에 문희준이 참석한다(!)는 티저 영상이 카트 홈페이지에서 공개되었다. 당일 참석하여 프로게이머 과 대결까지 했었다. #[63]

카드명

문희준

파일:6ge6gR2.jpg

카드 종류

하수인

등급

영웅

종족

-

비용

4

공격력

2

생명력

5

효과

이 하수인은 공격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플레이버 텍스트

평생을 상처로 살아가

플래시 게임 하스피탈스톤에도 등장한다. 하필이면 왜 저 사진을... 까방권때문인지 효과는 공격의 대상이 되지 않는것. 공격의 대상이 되지 않을뿐 피해를 무효화 시키는건 아니기 때문에 하수인 교환이 아닌 명치 공격에 특화된 카드로 도발 하수인에 취약하다. 근데 또 명치 공격에 특화된거 치고는 공격력이 형편 없어서...

  • 2018년40세가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18세의 어린나이로 데뷔했던 1세대 아이돌이 벌써 40대라니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같은 팀의 동갑내기 멤버 토니안장우혁도 함께 40세가 되었다.

  • 녹색지대 오디션에 참여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 때문에 좌절됐다.

  • 결혼전 토니 안의 집에서 총각파티를 했다. 미우새에서 해당 파티가 방송되었는데 이때 쓰레기장 같은 토니의 집을 보고 어이가 탈출해서 대청소를 실시했다. 먼지가 너무 날리자 코피 막듯 휴지로 코를 틀어막은 모습이 코미디.

  • 아이러니하게도 행보가 서로 대비되는 스티브 유와는 초등학교 선후배 사이다. 그래서인지 애증 관계인 오인용연예인 지옥에서도 이 부분이 묘사되었다. 여담으로 오인용 멤버들과도 1978년생 동갑이다.

8. 음반[편집]

8.1. 정규 앨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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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집

ALONE

발매일

2001.10.05

타이틀곡

- 우리이야기(Our Story)
- ALONE
- Red & White
- 내 마음은
- 단추구멍 인생

H.O.T. 해체 8개월만에 발매된 문희준의 첫 정규 솔로 앨범.
당초 ALONE이라는 이름의 얼굴없는 가수로 첫 등장했었다. 드라마버전의 우리 이야기 뮤직비디오만을 공개하며 컨셉을 이어나갔으나 눈치빠른 팬들의 집념을 통한 과학수사(..)를 통해서 뮤직비디오에 단 0.3초 스쳐지나가는 문희준을 심지어 정면도 아닌 뒷모습 발견해내며 뮤직비디오를 공개한지 고작 이틀만에 뽀록 ALONE이 문희준인걸 동네방네 다 들켜버린다(..)[64] 하여 2주 이상 진행할 예정이었던 ALONE이라는 가수의 얼굴없는 가수 프로모션 계획은 전면 백지화되고 SM은 결국 당초 계획과는 달리 뮤직비디오 공개 1주일도 채 되지 않아 ALONE이 문희준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공개적으로 문희준의 첫 솔로앨범 활동을 진행시킨다. 당시 H.O.T.가 해체한 후 고작 반년여만에 발매된 앨범이기에 팬들뿐만 아니라 H.O.T. 리더의 첫 솔로앨범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기대 역시 엄청났고 이로 인해 1집 음반은 33만장에 육박하는 판매고를 올리며 성공을 거둔다.[65] 그리고 현재의 문희준의 이미지로는 상상하기 힘든일이겠지만 KBS에서는 당시 솔로로 데뷔하는 문희준 단 한명의 아티스트를 위해서 추석연휴 황금시간대에 1시간이 넘는 문희준만의 컴백 스페셜 방송을 편성해주기도 하였다. 그만큼 당시 댄스가수로서의 문희준의 입지는 지금 예능나와서 까불거리기만 하는 이미지와는 차원이 다른 최정상의 위치였다. 왜냐면 이때만 해도 타이틀곡이 댄스곡이었거든.. 하지만 그는 그 후로 락을 하게 되었고..
그래도 이 때까지는 아직 H.O.T.의 긍정적인 후광이 크게 작용하던 시기라 이미지가 좋은 편이었다. 후술하겠지만 문희준이 역대급으로 까이기 시작한 시점은 이 때가 아니라 바로 아래의 2집이 나온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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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집

Messiah

발매일

2002.07

타이틀곡

- 아낌없이 주는 나무 (Generous)
- I (Human Individual Cloning)

타이틀곡은 댄스곡으로 진행하고 후반 활동을 락으로 진행하며 기존 자신의 이미지와 어느정도 완충작용을 진행했던 1집과는 달리 2집부터는 처음으로 타이틀곡부터 락으로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락커로써의 길을 추구하기 시작한 앨범.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그 결과는 처참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인터넷상에서[66] 문희준에 대한 비하가 겉잡을수 없이 퍼져나가기 시작. 그 유명한 '왜 날 뷁', '무뇌충' 등의 문희준을 비하하는 대표적인 용어들이 모두 이 시기에 탄생했다. 강명석의 트리플 크라운에서 정말 신랄하게 깠던 앨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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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집

LEGEND

발매일

2003.07.28

타이틀곡

- G.선상의 아리아 (Silent Confict)
- 전설

문희준이 가장 가열차게 네티즌들의 비난과 조롱을 받았던 시기에 나온 3집.
당초 앨범 타이틀인 LEGEND와 동명의 곡인 전설을 타이틀곡으로 발표한 앨범이었으나 앨범 발매 3일전에 돌연 후속곡으로 활동할 예정이던 G.선상의 아리아로 타이틀곡을 변경하고 3집 앨범의 활동을 진행한다. 당시 인터뷰에서 문희준은 현재 세상 돌아가는 상황에서는 전설 보다는 G.선상의 아리아[67]가 타이틀 곡으로 더 적합하다고 생각해서 변경했다고 한다. 당연하지 본인이 인터넷상에서 대한민국 역사상 전무후무하게 가루가 되도록 까이던 시절인데 당시 우연찮게 문희준의 활동 시기가 H.O.T.의 전 멤버들인 jtL의 2집 활동과 겹치며 당시 SBS 인기가요에서는 H.O.T. 해체 이후 최초로 H.O.T.의 모든 멤버 5명이 한무대에 서는 이례적인 무대가 펼쳐지기도 하였다.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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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집

Triple X

발매일

2005.09.21

타이틀곡

- 기억이란 작은 마을
- Easy 罵
- MayFly

SM엔터테인먼트를 떠나 개인 소속사인 PS엔터테인먼트로 이적한 후 발매한 정규앨범. 록보다는 댄스/일렉트로니카의 비중이 높아졌다. 당초 예정되었던 타이틀곡은 Easy 罵였으나 앨범 작업 도중 군입대 영장을 받고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새로 작업한 기억이란 작은 마을을 타이틀곡으로 발표. 이 앨범을 마지막으로 군에 입대.

8.2. EP[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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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

Winter Letter

발매일

2004.12.22

타이틀곡

Love Letter

SM엔터테인먼트를 떠난 이후 처음으로 발매한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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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앨범

Last Cry

발매일

2009.06.18

타이틀곡

Toy (New Ver.)

2008년 발매된 스페셜앨범 이후 1년 3개월만에 발표한 앨범. 앨범명을 보면 알 수 있듯 록 넘버로서는 이게 마지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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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앨범

BEGINS

발매일

2013.01.18

타이틀곡

- 스캔들 (SCANDAL)
- I`m not OK

2009년 발매된 미니앨범 Last Cry 이후 무려 3년 7개월만에 발표한 앨범. 앞서 언급한 뮤직비디오를 통해 댄스 넘버로 복귀한 앨범이다.

8.3. 컴필레이션 앨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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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앨범

A Soaring For Dream

발매일

2004.04.28

타이틀곡

- 종이 비행기 (A Soaring For Dream)
- To Live Is To Fight
- Puppy
- Virus

솔로 1집부터 3집까지를 총망라한 베스트 앨범. 2CD로 구성되어있으며 신곡 4곡을 새로이 수록하여 타이틀곡으로 활동하였다. SM과의 계약이 끝나기전 마지막으로 나온 앨범으로 이 앨범을 끝으로 1995년부터 이어져온 문희준과 SM의 10년간의 인연도 종지부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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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앨범

Special Album

발매일

2008.03.18

타이틀곡

- Obsession
- WISH
- SOUL
- Git It Up

2007년 말 군에서 전역한 이후 처음 발매된 앨범으로 싸이더스HQ와 계약한 이후 처음으로 발매된 앨범. 군 전역 직후 열렸던 콘서트 Returns1996의 공연실황 음원 일부들이 함께 수록되어있다. 수록곡 중 WISH, SOUL, Git It Up은 H.O.T. 시절 발표했던 본인의 자작곡을 솔로곡으로 재편곡한 곡.[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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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앨범

20TH ANNIVERSARY

발매일

2016.11.12

타이틀곡

우리들의 노래는 끝나지 않았다

1996년 H.O.T.로 데뷔한 문희준의 20주년 기념앨범.본격 결혼자금마련 앨범
신곡이자 타이틀곡은 '우리들의 노래는 끝나지 않았다'이며 20년을 함께해준 팬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함께 H.O.T.로 다시 모이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팬들에게 전하는 발라드곡이다.[70] 나머지 수록곡 7곡은 H.O.T.의 앨범에 수록되었던 본인의 자작곡을 본인의 솔로곡으로 재편곡하거나 본인의 솔로앨범에서 발표했던 기존 곡들의 오리지날 버전 혹은 재편곡 버전. 이미 공연에서는 수차례 공개가 되었으나 앨범에는 수록이 되지 않았던 곡들을 정식으로 녹음해서 앨범에 실어달라는 팬들의 요청에 따라 그동안 쌓였던 미수록 재편곡 곡들을 한꺼번에 수록하였다.[71] 얄팍한 재탕이 아니다 엄연한 팬들의 요청 안타깝게도 이 앨범으로는 방송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했다. 본인이 직접 밝힌 바로는 이 곡은 보는 용도보다는 듣는 용도로써 훨씬 더 적합하다는 판단을 했다고. 타이틀곡의 주제가 주제인만큼 이번 앨범 발매를 계기로 H.O.T.의 재결합을 더욱 기대하는 반응이 커졌다. 하지만 당시 문희준 본인이 밝히기로는 재결합 논의는 올스톱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1년3개월 뒤, 무한도전 토토가를 통해 재결합 공연이 성사되었다! 이후 계속해서 활동을 이어갈지 향후 계획여부는 미지수다.

[1] 현재의 송파구 문정동. 송파구는 1979년 강동구를 거쳐 1988년에 분구되었으며, 1983년 이전에는 법정동 송파동이 행정동 문정동을 관할하는 형태였다. 나무위키는 법정동 기준으로 작성한다.[2] 육군훈련소에서 168cm이라 측정.[3] 데뷔 시절 프로필이므로 적어도 거짓말은 아니다(...). 한창 말랐을 때는 58kg까지도 나갔었다고 한다. 그러나 H.O.T.가 해체하던 시점 즈음해서 간염을 앓게 되면서 현재는 체중이 많이 증가한 상황. 제일 많이 나갔을 땐 90kg에 육박했다고.[4] 현역 복무 시절 다이어트로 전역 직후 2008년에 컴백했을 때에 과거의 프로필처럼 62kg으로 회귀했다. #[5] 군대 시절 군모 사이즈 대X장군. 62cm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올 수 있는데, 평균적인 군인들의 모자 사이즈는 58~59다. 머리가 정말 작으면 54~56 정도까지도 쓰지만 매우 드물고, 61을 넘어가면 상당히 큰 크기다. 게다가 문희준은 체구가 작은 편이라 큰 머리가 더욱 두드러졌다(...).[6] RH- B형이라는 설도 있다. 확인 바람.[7] 60~70년대의 전설의 영화배우다.[8] 하지만 이 발언들 거의 대부분은 와전된 것이었다.[9] 당시 문희준의 상황을 대략적으로 설명해주는 합성 사진. 단 해당 이미지는 문희준 외의 대상까지도 비하, 조롱, 모욕하는 인상이 강해 링크로 처리하도록 합의되었다.[10] 물론 이건 당연히 터무니없는 과장이다. 저스틴 비버가 미국과 그 외 나라들에서 저지른 악행과 막말은 안티가 많았던 시절의 문희준의 그것들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악질이었기 때문에 저시절의 문희준은 지금의 저스틴 비버에게는 명함도 못내민다.[11] 후술하겠지만, 이러한 안티는 일정한 세대와 층으로 특정되어 있었다. 인터넷 문화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시점에서의 전무후무하다시피하면서도 노골적인 움직임이었기 때문에 2016년 시점에서도 전국민 운운하곤 하지만, 실제론 국민 운운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문희준 본인도 안티가 몇백 만이니 운운하는 말에 대해 정색하며 반박하는 편. 어쨌든 이런 말이 나올 정도로 안티가 많았고 뭘 하던 후드러 까이기 바빴던 건 맞다.[12] 안티가 국민 운운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는 주장에 대해 반박하자면 그 당시를 겪어본 바로는 그 어느 커뮤니티 사이트를 가도 문희준 안티글과 무뇌충이란 단어가 유행하고 있었고, 문희준을 변호하는 일반인이 레드체플린 모를수도 있지 왜 문희준 욕을 하냐는 글에 '문희준씨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란 드립과 각종 비아냥과 쌍욕이 도배되던 시절이었다. 그때의 문희준은 최소한 인터넷 상에서는 전국민적인 수준의 안티라고 말해도 관언이 아닐 정도인 것은 맞다. 그중 다수가 군중심리에 휩쓸린 사람들이었다고 해도 인터넷에 문희준 비안티보다 안티가 더 많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자신의 인터넷 활동이 어렴풋이 기억나는 사람이라면 공감하겠지만 그 당시 인터넷에서 문희준을 비난하는 건 집단광기의 일종이라고 불러도 될 수준이었다. 관련된 심리학이나 정신학적인 논문이 작성되도 이상할게 없던 수준. 물론 인터넷 상에서의 이야기이니 진지 빨고 전국민이라고 이야기하면 틀린 이야기겠지만.[13] 연예인이 가수로 대치되거나 아티스트가 아니라 뮤지션으로 바뀌기도 한다.[14] 이윤석은 락을 엄청 좋아하는 개그맨이기도 하다.[15] 물론 더블임팩트 시절 문희준은 김경호와 김종서와 친해졌던 시기다. 되려 저들이 락커 후배라면서 문희준을 놀리기도 했었다. 이후 절친노트에서도 김경호가 당시의 놀림을 재현하기도.[16] 요즘에 비하면 아이돌 수도 많지 않고 장르도 다양해 보이지만 그당시엔 아이돌 문화가 처음이어서 낯설음과 거부감이 더 컸을 수도 있다.[17] 인터넷을 통해 고화질 영상을 실시간으로 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영화, 해외드라마와 애니메이션, 해외 스포츠와 국내 스포츠 시청이 여의치 않았다. 온라인 게임도 요즘처럼 다양하지 않았고,인터넷 커뮤니티 또한 수가 적었기에 현재와 비교하면 값싼 방구석 문화상품의 가짓수가 너무나도 적었다.[18] 그러나 이런 이미지는 편견이다. 물론 데뷔초기에는 아이돌의 한계를 보였던게 사실이다. 댄스 위주에 노래는 립싱크를 자주하는 것으로 까였으나 이전의 많은 가수들, 심지어 춤이 별로 없는 발라드 가수들도 립싱크를 많이 하던 시절이었다. 결국 이런 논란을 불식시키기위해 2집때는 코러스와 비트박스까지 해가며 라이브를 하기도 하고 콘서트에서도 준수한 라이브 실력을 보여주었으나 이수만이 ‘립싱크도 장르다’라는 무리수 발언을 하는 바람에 논란에 기름을 붓고 대중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만 각인시켰다. 작곡 또한 3집부터 모든멤버가 자작곡을 발표하였고 5집은 전곡을 올 프로듀싱하였으나 대중들은 이러한 부분에는 관심이 없었고 초반의 아이돌 이미지만 기억했다. 1998년 연말 가요대상을 휩쓴 ‘빛’이 강타의 자작곡인 것도 팬들 외엔 모르거나 알고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안티들은 다른 작곡가가 써준거 아니냐고 우기기까지 했다. 애초에 모든 가수가 반드시 싱어송라이터가 되어야한다는 법도 없다. 가수의 본분은 노래를 하고 퍼포먼스를 하는것인데 유독 H.O.T.에게는 과도한 기준과 높은 잣대로 비난과 평가질이 행해졌다. 이는 아마도 엄청난 인기만큼 그에 대한 의문이나 거부감을 가진 사람도 많았고 90년대 후반을 대표하는 댄스그룹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만큼 더 엄격한 잣대가 드리워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보면 그만큼 사람들이 H.O.T.에 관심이 많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19] 정작 은지원 역시 아주 힘든 초반부를 보냈다며 훗날 털어놓는다. 그러다가 문희준에게 주의가 확 쏠리면서 본인은 그냥 묻혔던 것 뿐이라고 농담삼아 이야기했을 정도.[20] 당시 문희준 안티들이 가진 성향과 한계가 드러나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진심이 아니라 유흥에 가깝다는 인상마저 줬다.[21] 2003년경 sm이 이를 고소하였고, 오인용측이 직접 전화를 걸어 사과하려 했으나 매니저 선에서 저지되었다. 이후 문희준은 sm을 나가고 ps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를 설립하던 시기라 고소는 취하되었다.15년이 지난 2018년에 이를 사과하는 플래시 영상을 오인용측에서 올렸다.[22] “문희준이 락커로서 상을 받았다는 점에 대해 내가 자기 소개할 때 ‘인기개그맨 노숙자’라고 소개하는 것, 연기대상을 호명하는데 ‘경찰청 사람들! 이씨!’ 하고 호명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 진짜 락하는 사람들은 음지에서 고생하는데 어떻게 하면 여자 꼬시고 카메라에 잘생기게 잡힐까 하고 고민하는 주제에 가소롭다. 대마나 약검사는 무조건 문희준부터 불러야됩니다. 이런 개XXX랄방송이있나 . 이X끼가 롹가수라는거는 이 X끼는 날이면 날마다 XX생각만하고 이런 X같은 X끼가 롹가수상을 받고 이 문희준 이 개XX끼는”라고 했다.[23] 무릎팍도사 출연 당시 문희준의 말에 따르면 제일 나이가 많은 사람이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고 한다.[24] 왜곡보도다. 만약 락 자격증이 있다면 따고 싶지 않느냐고 조선일보 기자가 먼저 유도질문을 한 것. 기자의 낚시임을 직감한 문희준은 피해가려고 했으나 '락 자격증' 기사 꼭지를 뽑으려고 작정하고 왔던 기자는 화까지 내면서 문희준을 도발했다. 그리고 결국 문희준이 지쳐서 대충 '네' 한 것을 그대로 메인 타이틀로 삼은 것이다. 문희준은 제대 이후 무릎팍 도사, SNL코리아 등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이를 밝혔다. 그리고 결국 유희열에게 받았다 해당 기자는 2015년 11월, 사설에서 간장 두 종지라는 희대의 글을 쓴 사람이다.[25] 해당 프로그램은 책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이었으며 이날 주제는 만화 슬램덩크였다. '포기'와 관련된 명대사 이야기를 하던 중 강호동이 "견디는 맷집이 중요하다."라는 요지의 토크 정리를 했는데, 이어서 문희준이 "그런데 저는 맞아도 너~무 맞았어요."라며 서두를 꺼낸 것. 처음 시작은 김구라와 있을 때처럼 장난스럽게 시작하는 듯했으나 마무리는 숙연한 분위기로 끝이 났다. 문희준 본인 스스로 '연예인 입장 발표'를 하듯이 토크를 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토크가 흘러가다보니 진지한 분위기로 흐른 것.[26] 슬램덩크 테마 자체도 그렇고, 어린 선수시절 교통사고로 팔기형이 됐던 우지원, 출신이 출신인 용감한 형제, 잠정은퇴 소동의 강호동, 그리고 문희준이라는 조합이었다 보니 그전까지의 방영분들에 비해 의외로 진지하고 깊은 이야기가 많이 나온 회차였다. 레귤러인 탁재훈 조차도 인생에 관한 진지한 이야기를 했을 정도. 참고로 문희준과 같이 나온 다른 게스트는 우지원, 정용화, 하하.[27]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대사 전문을 그대로 (어떠한 윤색도 없이) 녹취해 기록한다. 말줄임표 부분은 말을 잠깐 쉰 부분이며, 쉼표 역시 잠깐 문장을 끊은 부분이다.[28] 김경호의 경우 헤어스타일도 바꾸지 못하게 하는 락부심에 갑갑함을 느끼며 육체적, 정신적, 자본적으로 몰려 있을 때였다. 그런 그에게 문희준은 남같지 않아 보였을 것이다.[29] 이후 신해철은 자신의 데뷔곡이자 대표곡 그대에게리메이크를 문희준이 할 수 있게 허락해주기도 했다.[30] 생방송이 끝나고 팬들에게 김민교씨 너무 미워하지 말라고 성난 팬심을 진정시킨 일이 있다. 실제로는 문희준 분장을 하자는 요구가 훨씬 더 자주 있었음에도 문희준이 기분 나빠할까 봐 거절하고 거절하다 어쩔 수 없이 몇 번만 한거라고 한다.[31] 하지만 정작 그가 아픈 부위는 어깨가 아니라 허리였다. 1999년 H.O.T. 4집 콘서트 당시 무대에서 추락하며 허리를 심하게 다쳤었다. 재검을 받으면 최소 공익, 어쩌면 면제도 나올 수 있을 정도로 심한 부상이었던 상황에서도 재검을 받지 않고 입대했다. 오오오...그리고 당시 군 면제 리스트 중에는 정상적으로 입대를 하고 전역을 했거나 정당한 사유로 면제를 받은 연예인도 많았으며 면제 사유가 전혀 다른 경우도 있어서 신빙성이 매우 낮았다. 그러나 아직도 이를 사실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 외로 많다.[32] 정확히는 같은 내무반에 지내던 이가 문희준이라는 사실을 안 같은 내무반의 사람들이 너무 괴롭힌 덕에 간부들과의 상담을 통해 어쩔 수 없이 옮긴 것. 다시 안 올 놈이라고 개인물품 다 털렸다고.[33] 본인이 하지 않았으므로 고소가 아니라 고발이다.(행위무능력자가 당한 범죄에 대해서 그의 법정대리인이 고소하는 것을 제외하면 제3자가 당한 범죄 사실을 신고하는 것은 고발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모욕죄고소가 아닌 고발은 애초에 불가능한 친고죄이며, 악플러들이 소속사에 의해 고발을 당했다면 그들은 진실 혹은 허위의 '사실'을 공중에 게시해야 성립되는 명예훼손죄를 저지른 것. 사이버 모욕죄는 문희준이 안티를 몰고 다닌지 10년이 지나서도 제정되지 않았다. 수많은 안티를 먹고 있던 연예인에게 '명예훼손죄'가 성립될 수 있는 악플을 달았다면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정도로 악랄하게 허위사실을 지어내서 뿌렸을 것이다. 그런 짓을 행한 악플러들을 직접 고소취하했으니 정말로 문보살 인증.[34] 사실 불교에서 승려가 아닌 재가신도를 지칭할때 남성의 경우 거사, 여성의 경우 보살이라는 호칭을 쓴다. 남성에게도 보살이라는 칭호를 써도 되지만 요즘의 경우에는 거의 거사라고 부른다. 문거사[35] 악플, 까, 빠, 패드립, 지역드립 등등 네티즌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미성숙하고 앞으로도 성숙할 일은 없을 것이다. 인간이 멸종하지 않는 이상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36] 지금은 삭제되었다. 린킨파크 공연에 알바로 참여했다 스스로 밝힌 이가 쓰레기통에서 문희준의 싸인 CD를 발견했다는 내용이었다.[37] 대표적으로 문희준과 김구라가 막 콤비를 결성했을 당시 연예대상 시상식에 함께 출연해서 스스로 피해자 문희준, 가해자 김구라라고 소개하기도 하였다.(...)[38] SNL에서 김민교가 분한 문희준에게 악플러를 용서하라고 하면서 김구라가 나오자, "나도 그 새ㄲ..."까지 나왔었다.(...)[39] 심지어 문희준이 한창 안티에 까이던 시절 몇몇 네티즌이 Outside Castle을 듣고 곡 좋다고 감탄하다가 작사작곡이 문희준인걸 알고 당황한 에피소드를 고백하기도..그럴리가 없어!!근데 그 노래 안무 짠것도 문희준인건 알고들 있었나몰라[40] 논란에 휩싸일 여지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변경한 단어선택 같지만 어쩌면 '락'이라는 단어 자체에 대한 트라우마마저 생겨버리기도 한 듯. 안타까운 부분이다.[41] 2013년 댄스로 컴백하던 당시 인터뷰에서 락은 더이상 하지 않을 예정이냐는 리포터의 질문에 본인은 '킵'을 해뒀다고 표현했다. 다시 할 수도 있다는 여지는 남겨둔듯.[42] 본격적인 락 활동 때부터 나타났다.[43] 문희준은 이에 대해 엠넷 와이드 연예뉴스 인터뷰에서 "'댄싱 위드 더 스타'에서 춤을 추면서 12년 만에 대중들의 사랑을 다시 받게 되자 무대에서 춤을 추는 데 대한 용기와 애정이 되살아났다"고 고백했다. '12년 만'이라는 표현에서 그의 마음고생이 느껴질 만한 대목. 게다가 이 인터뷰는 같은 H.O.T. 멤버였던 토니가 진행했다.#[44] 일각에서는 지난날의 문희준의 유난스러웠던 저격행적을 근거로 문희준이 청첩장이나 주긴 했겠냐는 비아냥이 있다.[45] 사실 수많은 사건들 중 가장 결정타를 먹인 게 결혼 발표 후 첫번째 라디오 생방송이었던 2016년 11월 28일 문희준. 정재형의 즐거운 생활 방송 중 문희준이 팬을 일컬어 소율의 시누이라고 칭한 발언과 문희준의 모친이 팬들이 (아들) 욕할까봐 걱정되어 라디오 생방에 쫓아왔다.고 한 발언이 고스란히 전파를 타고 나간 것이었다. 이미 여러 일들로 인해 결혼발표 이후 연속으로 마음이 다쳐 있던 팬들이 이날을 계기로 대량탈덕하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다.[46] 타블로 & 강혜정 부부의 경우도 결혼 발표와 동시에 강혜정이 임신 중이라는 걸 밝혔으나 욕을 먹지 않고 오히려 축하를 받은 것은 이미 공개를 했기 때문이였다. 그땐 혼전임신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많았으나 지금은 대한민국의 인식이 꽤나 바뀐 상태다.[47] 소율은 개인에 대한 악플은 아니고 그룹과 회사에 대한 악플이었지만, 논란 당시 심하게 상처받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소율 개인적으로는 활동도 못 하고 해체된 식스머스캣이란 흑역사로 인한 괴로움까지 있었고.[48] 크레용팝의 소속사 크롬 엔터테인먼트는 과거 일베 논란, 선물 논란 등 잘못된 대응으로 바닥까지 추락했다가, 질병이나 실적부진으로 활동을 못 하게 된 소속 가수에 대해 그룹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게 하거나(짠짠) 조건 없이 계약 해지를 해 주는(단발머리) 너그러운 입장을 보여가며 겨우 되살려놓은 좋은 이미지를 깨지 않기 위해서라도 고소하거나 할 상황은 아니었으며, 계약기간도 반 년 남짓밖에 남은 상황이라 소율과 문희준이 크롬에 솔직히 얘기하고 협상하면 충분히 무마될 만할 일이었다.[49] 당시의 그 강도와 그 수가 어느 정도냐 하면, 역대 정치인 욕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된다. 대량 고소를 해도 이상할 게 없었으니... 그때처럼 못 까는 이유는 연예인들이 악플러들을 고소한 사례가 점점 늘어가기도 하는 것도 있으나, 온라인 관련법이 강화되어서 그렇다.[50] 이런 사례가 하나 더 있다. 바로 티아라 화영 트위터 사건. 현재의 류화영 네이버 팬카페는 원래 티아라 팬카페 미스틱(Mystic)이였다. 사건 이후 티아라 안티카페로 돌아서더니 류화영 팬카페로 바뀌어 버리고,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51] 나머지 네 멤버의 팬들은 소율 사태, 사실상 해체 발표 이후까지도 가끔 멤버와 같이 모임을 가지고 있고 각자의 sns에 응원을 하며 소통하고 있는데, 소율 팬카페만은 전혀 글이 올라오지 않고 스팸 글로 뒤덮힌 휴면 상태. 무엇보다 결혼 발표 이후에 소율 쪽에서도 단 한 번도 팬에게 접촉 시도를 하지 않고 있어서, 국내외 열성 개인 팬마저 크레용팝 팬으로 남을지언정 소율에 대해서는 완전히 포기한 상태다.[52] 이 발언은 문희준의 평소 성격상 농담으로 한 소리였을 것으로 보이지만, 듣는 팬의 입장에서는 모멸감이 느껴질 발언이다.[53] 다만 사실관계에는 관심이 없고 과거 악질 문희준 빠들이 간미연에게 했던 극렬안티짓 전적을 두고 고작 자기네들 오빠랑 열애설 났다는 이유로 사람 하나 매장시키더니 정작 자기네들이 그 오빠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코미디가 따로 없다. 배신을 당했든 안 당했든 문희준 빠들은 불쌍한거 하나도 없다.는 의견들도 일부 있다. 아니, 오히려 이 의견이야말로 문희준의 팬에서 돌아선 이들을 비웃는 주류다. 베이비복스 항목만 봐도 저들이 얼마나 비인간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심지어 무뇌충이라 비아냥받던 시절의 문희준도 전혀 불쌍하지 않으며 문보살이라 불린 것조차 역겹다는 이들도 있다.[54] 실제로 이 글이 오르자 자연스럽게 대중들에게 알려지고 각종 뉴스에도 글이 실렸다.[55] 인물을 주제로 한 갤, 더군다나 연예인 갤에서 해당 게시판을 이용하는 팬덤이 해당 인물에 대해 언급 금지를 걸어 버렸다는 것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할 수 있다.[56] 덤으로 이 성명서에는 끼지 않았지만 문희준 개인 갤러리의 경우에는 이미 진작에 탈덕한 팬들의 푸념 공간으로 변해 버렸다. 십여 년 전 백만 안티 시절의 디시인사이드와 팬들과의 악연을 떠올려보면 격세지감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다.[57] 녹화 시기 쯤에 소율이 자기 SNS에 "허니버터칩을 팬에게서 받았다."는 포스팅을 한 적이 있는데 평소 SNS도 보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58] 이 때 200여 명의 팬들이 실신했다.[59] 당시 한 열성 팬이 문희준의 부상을 비관하여 자살하였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는데 실제로는 가정불화가 원인이었다. 유서가 2장 분량이었는데 유서 중 H.O.T. 관련 내용은 단 두 줄 뿐이었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그 두 줄만 집중적으로 보도하는 바람에 문희준의 부상이 자살을 결심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는 오해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60] 지금 문혜리 씨는 결혼을 했고 딸이 있다.[61] 엄연히는 지어져있는 집을 산 게 아니라 당시 땅만 매입해서 건물을 올린거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불분명하다. 확인바람.[62] 방송 자막을 잘못 써서, 문희준이 파주집을 15년전(즉 1996년)에 1억 2천만원을 주고 사서 10억원으로 인상됐다고 방송 자막이 나갔다. 이 점을 들어 H.O.T.의 1집 정산 금액을 1억 2천이라고 주장하게 됐다. 그러나 해당 방송을 정확히 보면 문희준은 1996년에 샀다고 말한 적이 없는데, 방송 자막이 15년전이라고 잘못 쓰여있었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H.O.T. 시절 15억 짜리 광고를 찍었는데 지금 시가로 치면 40억 정도 할거라면서, 왜냐하면 그때 내가 1억2천 짜리 집을 샀는데 그것이 10억이 됐다고 말하고 있다. 즉. 그 집은 H.O.T. 시절 15억짜리 광고를 찍었을때 산 집이지, 96년에 산 집이 아니다. 또한 2013.05.29 라디오스타에서 해명하길, 그 파주 집이 1억2천에서 10억 오른 것이 아니라, 다른 집이 그렇게 오른 것이라고 밝혔다. 아무튼 정확한 사실관계는 H.O.T.가 15억짜리 광고를 찍었을 당시 문희준이 1억2천을 주고 어떤 집을 샀다는 것이다. 1집 활동하고 1억2천을 받았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참고로 15억짜리 광고를 찍었을 시기는 2000년 이후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2000년에 서태지가 15억짜리 광고를 찍을 것이라는 소문에 역대 최고가라는 기사가 있기 때문이다. # [63] 1:1 대결은 아니고, 아이템 팀전[64] 근데 사실 문희준의 목소리 자체가 워낙 흔치않은 목소리라서 목소리만 듣고도 문희준인거 바로 알아챘다는 팬들도 수두룩했었다.[65] 하지만 해체 후 발매된 다른 멤버들의 성적과 비교하면 가장 저조한 편이었다. 판매량 자체는 준수한 편이었지만 성적 외적인 논란에 휩싸여 성공했다는 평가는 받지 못한다. 10만장도 힘든 요즘 시대에는 상상도 하기 힘든 일[66] 대표적으로 DC인사이드[67] 인터넷 악플러를 비판하는 곡[68] 정말 운명적이게도 당시 인기가요 MC가 강타였다.[69] WISH는 H.O.T. 5집 수록곡 파랑새의 소원, SOUL은 H.O.T. 4집 수록곡 영혼, Git It Up은 H.O.T. 4집 후속곡이었던 투지[70] 자꾸 여러 언론사에서 문희준 최초의 발라드 타이틀곡이라고 기사가 나오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2005년 발매된 정규 4집 앨범 타이틀곡인 '기억이란 작은 마을'이 이미 발라드곡이었다.[71] 8.15는 H.O.T. 4집 수록곡, OP.T는 평화의 시대 OST 타이틀곡, In I는 H.O.T. 3집 수록곡, Media는 문희준 2집에 수록된 동명의 곡의 오리지날 버전, 널 잃어버린 후에야는 문희준 1집에 수록된 동명의 곡의 라이브 버전, I'm Not OK는 문희준 미니앨범 2집에 수록된 동명의 타이틀곡의 재편곡 라이브 버전. 당연한 얘기지만 모두 문희준의 자작곡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