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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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소개3. 기타
3.1. 세계의 문해율 지도
4. 문맹인 인물
4.1. 실제4.2. 가상의 인물
5. 관련 링크

1. 개요[편집]

文盲
배우지 못하여 글을 읽거나 쓸 줄을 모름. 또는 그런 사람. 순우리말로는 까막눈이라고 한다. 반대로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것을 문해(文解, Literacy)라고 한다.

2. 소개[편집]

그 나라의 교육 수준을 판단하는 척도 중 하나이다. 교육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문자 등의 해독이고, 공용어를 읽고 쓸 수 있는 교육은 어느 나라든 초등 교육의 핵심이다. 문맹률이 낮을수록 그 나라에는 최소한의 교육을 받은 사람의 비율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문맹률이 높은 나라는 학교시설과 교사수 등 교육 인프라의 부족, 교육 기회에 있어서 성별, 계층, 지역 등의 차별, 아동 노동이나 조혼 등으로 인해 교육받을 기회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원래부터 한국의 문맹률이 낮은 수준은 아니었다. 조선시대에는 문맹률이 얼마였는지 통계조사가 실시되지 않아서 문맹률이 얼마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인구조사를 실시하기는 했지만, 군역이나 세금을 내는 걸 회피하려고 인구조사를 일부러 안 받으려 하는 가정이 워낙 많았던 때라서, 인구조사도 정례적으로 시행되기는 했지만 철저하게 시행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했기에 문맹 조사도 제대로 이루어지기는 힘들었다.

그리고 조선시대엔 의무교육이 행정력의 미비와 예산 문제로 실시되지 않았다. 서당 교육을 대대적으로 확대하자는 의견이나 의무교육을 시행하자는 의견 자체는 있었지만, 의무교육을 시행하기에는 재정적으로 애로사항이 많았기에 실제로 시행되지는 못했고, 각 고을의 수령유향소유생이 서당 교육을 장려하고 보조하는 선에 그쳤다.

전국적인 의무교육이 제대로 시행되려면 1년에 적어도 수십만 권의 교과서정부 주도로 찍어내야 되는데, 당시에는 세율이 상당히 낮아서 심지어 사초에 쓰인 종이도 빨아서 재활용했을 정도로 재정에 여유가 없었다. 교통사정도 별로 좋지 않아 도로가 잘 닦여 있지 않았을 뿐더러, 기차트럭 같은 건 있을 리가 없고, 당시에 초고속 이동수단(?)이었던 이나 마차는 공무용 정도로나 쓰일 정도로 비싼 물품이었기 때문에 그 만큼의 물품을 옮기려면 품이 많이 들었다.

이렇게 조선 정부의 재정이 늘 풍족하지만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는, 성리학에 근간을 둔 조선의 통치이념상 백성에게 세금을 많이 거두어 나라에 쌓아두는 것을 좋게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신대기근 항목을 보아도 알 수 있듯, 조선 정부는 예산을 지출하고도 남을 정도의 세금을 걷지 않았다. 낭비를 줄일 수 있었지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는 힘들었다. 그런데도 농민들은 항상 세금에 시달렸던 걸 보면 정부가 다른 나라들처럼 많이 걷었다면 이미 진작에 조선은 멸망했을 듯

또 조선시대엔 여자들이 일반적으로 서당이나 향교로 교육 받으러 가는 일은 없었다. 여성을 위한 서당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그 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 최초로 여학교가 설립된 것은 1886년이다(미국인 감리교 선교사 메리 스크랜튼 부인이 세운 이화학당).

게다가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속담도 전해져 내려오며, 당시의 기록이나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나 민담 중에서도 글을 배우지 못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상당히 존재하는 걸 보면, 조선시대엔 전반적인 문맹률이 높았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래도 이사벨라 비숍의 <조선과 이웃 나라들>이나 스카스 게일의 <전환기의 조선>에는 하층민이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기록이나 "중국이나 인도는 1,000명에 1명만이 글을 읽을 수 있는데 반해 조선은 읽기가 보편적"이라는 기록을 볼 때, 한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꽤 있었던 것 같다.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에서 의무교육제도가 1885년부터 도입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조선으로 오는 일본인들 대다수는 기본적으로 가나 문자와 한자 수백 자 정도는 쓸 줄 아는 게 다반사였다. 거기에다가 일본의 조선 침탈이 가속화되었던 1909년에 조선에 살고 있는 일본인들에게 의무교육이 적용되었고, 조선 내에서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특권층에 속해 있었기에 조선에 살고 있던 일본인들은 문맹률이 낮을래야 낮을 수가 없었다.

반면 조선인의 문맹률은 높았다. 대다수의 조선인들이 소작농이었던지라, 학교를 가지 못할 만큼 경제력이 열악했다. 경제력이 된다 해도 자녀 전부를 학교에 내보내는 경우는 좀체 드물었다. 설사 학교에 간다 해도 학비가 상당해서 가정에 상당한 부담이 되었기에, 기껏 학교를 다닌다 해도 중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기 때문이었다.

이 시기에는 소학교 교육이 의무교육이 아니었고, 조선총독부에서 조선인들을 위한 교육에 그렇게까지 대대적으로 예산배정을 하는 일을 벌였던 것도 아니었다. 때문에 공립학교도 수업비를 받았는데, 소작농들이나 도시빈민들이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었던 수준이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에는 문맹률이 대체적으로 70%대 후반-80%대 정도에 달했다고 추산되며, 1930년 일본 국세조사에서도 조선인들의 문맹률이 77%, 아동이나 청소년층들도 문맹률이 70%대에 육박했고, 이는 40-50대와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었다. 때문에 당시 근대교육의 보급이 문맹퇴치에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브나로드 운동은 생각보다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1910년대~1920년대까지의 문맹률 조사는 대개 일본어 문맹을 기준으로 조사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흔히 일제 초기 조사에서 문맹률이 99%였다고 나오는 자료들이 일본어 문맹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뢰도가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물론 한글 기준으로 문맹률을 계산한 결과도 거의 80%에 달했다.

의외로 일제가 가장 악랄한 모습을 보이는 1930년대 후반-40년대 전반기에는 문맹률이 조금씩 낮아지기는 했으나, 성인층의 문맹률은 여전히 매우 높았다. 당시 조선인들이 자녀의 출세를 위한 교육에 주목하면서 1920년대부터 학교를 늘려 달라고 했고, 더불어 일제가 황국신민화 교육을 통해 학교를 증설한 영향이 컸다.

물론 1920년 이후의 학교 증설은 일제가 좋은 의미로 시행한건 아니다. 일본에서도 전비로 예산의 대부분을 쓰는 바람에 자국민을 제대로 못 먹였던 시기였기 때문에 예산이 충분치 못하여 교육의 질은 별로 좋지 못했고, 1940년대에 조선어 교육이 완전히 금지되면서 오히려 문맹퇴치가 힘들어지는 결과까지 낳았다.

그 결과로 1945년 해방 직후의 조선인(분단 직전)의 문맹률은 78%에 달해서, 1930년대와 별다를 것이 없는 수치였다. 이는 다른 식민지배를 당했던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베트남에서의 문맹률은 1945년에 80% 후반에 달했으며, 프랑스에게 지배당했던 알제리도 자원배분을 피에누아르와 친불파에게만 배분하여 대다수 아랍인들이 학교에 갈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대다수의 인구가 문맹이었으며, 인도 제국도 인구의 80% 이상이 문맹이었다. 물론 예외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당시에는 드물었다.

광복 직후 문맹률은 같은 시기 말레이시아(62%: 1947년 기준), 짐바브웨(64% 역시 1947년 기준)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이었다.

그리고 해방 직후에 문맹퇴치가 사회적 과제로 떠오르면서, 미군정과 각 민간단체에서 문맹퇴치 작업에 열심히 나섰다. 실제 해방 직후 역사책과 국어독본책이 불티나게 팔렸다고 하고, 각 지역별로 공민학교와 국문강습소가 각 지역별로 속속 들어섰고, 농민단체에서도 농한기 농민들을 대상으로 한글강좌에 나섰다. 그리고 문맹퇴치 운동은 신화적인 대성공을 거두었다.

해방 3년 뒤인 1948년 문맹률은 광복 직후에 비해 거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고(41.3%), 이후 6.25 전쟁으로 문맹퇴치작업이 지지부진해진다. 그리고 전쟁 이후에 다시 문맹퇴치작업이 농한기 농민들과 군입대한 병사들을 대상으로 활발히 진행되면서 1958년 문맹률은 4.1%까지 떨어졌다.

물론 이는 이름 석 자 정도를 쓸 줄 알거나 하는 정도를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실제 문맹률은 훨씬 높았다. 글을 아예 못 읽어서 사회생활에 지장이 있는 정도의 단순 문맹은 대부분이 퇴치되었기는 했지만, 이름만 자신 있게 쓸 수 있거나 읽을 수는 있는데 쓰지는 못하는 부분적인 문맹자는 10-20%대 정도로 여전히 상당했기 때문에, 1960년대 초중반까지도 문맹 퇴치 교육이 이루어졌다.

이후로는 국민학교 진학률이 100%에 육박하게 되고, 중등교육도 점차 확산되어서 1970년대에 대중화되었기에, 정부 차원에서의 문맹 퇴치 교육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게 되었다. 1950년대생 이후의 문맹은 거의 없다시피했지만 글을 못 읽는 할머니들이 여전히 있는 이유가, 이러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한편, 북한에선 1945년 말에 문맹퇴치 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불과 4년만인 1949년에 문맹이 전부 퇴치되었다고 주장한다. 물론 1949년에 문맹이 완전히 퇴치되었다는 주장 자체는 의심이 가지만 남한과 마찬가지로 문맹퇴치가 빨리 이루어진 것 자체는 사실이고, 탈북자들의 증언에서도 북한에서 글을 모르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어쨌든 북한 정권은 최소한 문맹 퇴치에는 성공했다고 봐야 한다.#

광복 직후부터 1960년대까지 남이든 북이든 문맹 퇴치작업이 굉장히 활발하게 진행되어 문맹인 사람이 희귀해졌기 때문에, 이제는 피부로 와 닿지는 않는 문제긴 하다.

물론 문맹인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보통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일수록 문맹일 확률이 높다. 특히 할머니들이 그렇다. 남존여비가 매우 강해 여자가 공부하는 것, 글을 배우는 것조차 몹시 나쁘게 여기던 시절에 성장하였기 때문. 일제강점기를 경험하신 어르신들 중, 가난하거나 배울 시간이 없어서 한글교육을 받지 못하다가 이제서야 배우는 이도 있다.

당대의 문맹퇴치 교육이 몇 개월 단기과정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기에, 배우기는 했는데 진도가 안 나간다거나 글을 잘 쓰지 않는다거나 하는 이유로 까먹은 경우도 존재한다. 성인들도 일을 해도 겨우 먹고 사는 수준이었고, 학교로 보낸다 해도 학생 수가 매년 폭증하여 학교 자체가 터져나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성인이 꾸준하게 교육받긴 힘들었다. 그래서 농한기나 일요일, 혹은 근무시간이 끝난 뒤에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또 희귀한 경우이긴 하지만, 부모와 학교가 전부 관심이 없어서 중학생인데도 한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례가 TV에 나온 적이 있다.

한국의 문맹률에 대해 통계청이 공식적으로 잡은 통계는 1966년이 마지막이라고 한다. 1960년도에 이미 의무교육 취학률이 96%에 달하면서 문맹률을 조사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져, 더 이상 기초 조사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서는 문맹률을 약 1% 이내 정도로 보고 있으며, 유네스코에서 그걸 그대로 가져다 썼다. OECD에 들어가는 국가 정도 되면 대부분 문맹률은 1% 미만, 높아봐야 5%를 안 넘는 정도다.

몇몇 국가에선 의외로 문맹의 비중이 높아서, 연예인들 중에도 대본을 읽을 줄 몰라서 녹음한 것을 듣고 외웠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심각한 나라도 있다. 단순 문맹이 아니라 난독증 때문에 대본을 읽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톰 크루즈. 혹은 공용언어가 여러 개인 나라인 경우도 있고, 방언의 차이로 인해서 대본을 읽을 수 없는 나라도 있다. 보통은 집이 가난해서 교육을 못 받은 아이일수록 문맹이 되며, 성룡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신생 소련은 문맹 퇴치에 성공하였다. 러시아 제국의 문해율은 24%였다. 1938년 소련의 문해율은 남성 90.8%, 여성 72.5%였다. 1950년대 소련의 문해율은 100%가 되었다.

과거 이탈리아에서는 문맹인 사람들에게는 선거권을 부여하지 않았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선거권은 '21세 이상인 남성으로서 글을 아는 자'에게만 부여했기 때문.

3. 기타[편집]

문맹 퇴치, 즉 문맹이 많은 지역에 글을 가르치는데 큰 공헌을 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유네스코에서 세종대왕 상(King Sejong Prize)를 수여한다. 이 상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유네스코가 한글을 높이 평가해서 이런 상을 만들었다는 오해가 있는데, 그런 것과는 관련이 없다. 사실 세종대왕 상은 1989년에 한국에서 만들어진 상이다. 유네스코의 세종대왕 상 사이트 그래서 상금도 한국 정부가 출연한 기금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문맹율과는 별개로 국제 연합 개발 계획에서 리포터로 전세계 문해율을 발표하고 있다. 2009년 보고에 따르면 문해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조지아다. 한국은 공동 21위. 이 순위에서 한국을 포함해 중상위권 국가들은 모두 문해율이 99%에서 소수점 단위의 차이만 보이고 있으니 큰 의미는 없다 하겠다.

문서해독률은 단순히 글을 읽는 수준이 아니라 문서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다. 즉, 문맹률은 '글자'를 읽는 능력이고 문서해독률은 '글'을 읽는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OECD에서는 IALS(국제성인문해조사)이후 국가간 문서해독률이나 컴퓨터 활용능력, 수리처리 능력 등 성인들의 능력을 측정하고자 하는 사업을 확대해서 PIAAC라는 것을 시작했고 여기에는 한국이 공식적으로 참여했다. 그 결과 한국은 그 순위가 전체적으로는 중위권, 젊은 세대(16-24세)만 보자면 최상위 그룹에 속한다고 한다.(긴 보고서 다 읽기 귀찮은 사람은 Figure 2.2랑 2.3참조). 즉 세대 격차가 가장 크게 나는 국가들 중 하나이다. 수십년 후 현재 노인층들이 세상을 떠나 빠지고 나면 전체 평균도 비약적으로 상승할 전망.

2010년대에 들어 문해률을 실질 문맹으로 부르기도 한다. 한글은 쉬운데 중장년 ‘실질 문맹’은 왜 많나? 글은 읽는데 뜻을 파악하지 못하는 실질 문맹을 아시나요? ‘난독증’이 아니라 ‘실질 문맹’

국립국어원에서 2008년 발행한국민의 기초 문해력 조사 pdf 자료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문맹률은 1.7% 로 대다수 60~70대였지만, 그 인구를 포함한 전 국민의 7%, 약 260만명의 사람들이 국어 생활에 기초적으로 필요한 문해력을 갖고 있지 못했다고 한다.(p116-117)

오늘날은 과도한 어법 파괴를 범인으로 본다. 우리는 원래 우리말에는 거의 안 쓰는 피동, 사역형을 남발하거나, 영어를 흉내낸 수동태 문장을 쓰고 틀린 한자어를 함부로 만들어낸다. 이런 조건에 맞춰 글을 작성하면, 그 누가 읽어도 아리송한 문장을 만들 수 있으며 실제 우리 주변에서 그러한 문장을 남발한 서적, 기사, 논문 등을 아주 쉽게 찾을 수 있다. 피동형이나 사역형이 외래 언어의 문법임을 생각해보면 얼토당토않는 번역체가 이 문제에 기여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서브컬쳐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속성이다. 이고깽만 하더라도 언어나 문자 장벽으로 고생하는 일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초반에 언어장벽에 부딪히더라도 나중엔 말을 할 수 있을 때 쯤이면 글도 다 깨우치는 경우가 많으니... 코난 더 바바리안 같은 경우처럼 컨셉 자체가 야만인인 경우 빼면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파일:OECD2013-2016.jpg
OECD 2013-2016 에 소개된 각국의 문해 점수평가이다. 어째 이 표에는 한국보다 문해 점수가 높은 국가들의 리스트가 빠져 있는데, 조사 국가 중에서 한국보다 문해 점수가 높은 국가는 총 14개국이며, 점수가 높은 순서대로 일본(296), 핀란드(288), 네덜란드(284), 뉴질랜드(281), 호주(280) 등이 있다.

3.1. 세계의 문해율 지도[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024px-Literacy_rate_world.png

지도설명

파랑

문해율이 매우 높음 (97% 이상)

하늘

문해율이 높음 (90~97%)

연두

문해율이 다소 높음 (80~90%)

노랑

문해율이 보통임 (70~80%)

주황

문해율이 다소 낮음 (60~70%)

빨강

문해율이 낮음 (50~60%)

암적

문해율이 매우 낮음 (50% 이하)

회색

자료가 부족하여 알 수 없음

4. 문맹인 인물[편집]

4.1. 실제[편집]

생존 당시 문자가 없던 사회속에 있던 인물과 전근대사회에서 굳이 글 쓸일이 없었던 서민들은 제외

  • 동탁 : 평소에 그에게 은혜를 입은 어떤 노인이 아예 대놓고 동탁이 죽는다는 글귀를 써붙여 놓았는데도 문맹이라서 그걸 읽지 못해 죽었다. 옆의 부하(연의에서는 이숙(李肅))에게 물어봤지만 그 역시 동탁 암살계획의 인물이라 거짓으로 둘러댔다.

  • 무함마드

  • 석륵

  • 성룡 : 뜨기 전까지만. 실제로 대본을 못 읽어 동료들이 대본을 읽어주면 그것을 외워 연기를 했으며, 지금의 부인도 대본을 읽어주다가 맺어졌다는 일화가 있다. 물론 스타가 되고 나서는 문맹에서 벗어났다.

  • 왕평

  • 이디 아민

  • 잔 다르크

  • 칭기즈 칸 : 당시 몽골지방에서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한족이나 거란족, 여진족에 비해서 상당히 적었다. 몽골의 각 부족들은 문서를 교환하는 게 아니라, 사신이 직접 전달사항을 외워서 구전으로 전달했다. 이는 허영만 화백의 만화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에서도 묘사됐다. 몽골의 역사서인 원조비사도 구전으로 전해지던 걸 중원에 입성한 뒤에야 위구르 문자로 썼다. 하지만 칭기즈 칸은 주변 다른 사람들이 글자를 익히는 와중에도 결국 글을 익히는 데 실패했다(…)

  • 카롤루스 대제

  • 티무르

4.2. 가상의 인물[편집]

문자라는 개념 자체가 희박한 작품에 출연하는 인물은 제외.

5. 관련 링크[편집]

  • 컴맹

  • 국립국어원기초 문해력 테스트. 자신이 글을 실제로 이해하는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대략적으로 가늠하게 해 주는 테스트이다. 관심 있는 사람은 한번 해보자.[3] 위키를 보고 있는 시점에서 이미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

[1] 영화판 한정. 맥베인과 똑같이 생긴 캐릭터(아놀드 슈왈제네거 패러디)인데 나왔는데 여기서 그 유명한 "나는 지도를 하지 독서는 하지 않아(I lead, not read!)"라는 말이 나온다.[2] 문맹이라는 사실이 작품의 핵심을 담당한다.[3] 현재 사이트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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