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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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문국현(文國現)

출생일

1949년 1월 12일 (만 68세)

출생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성북동
(現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본관

남평 문씨

학력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 MBA

종교

천주교(세례명 : 바오로)

배우자

박수애

자녀

슬하 2녀

현직

뉴 패러다임 인스티튜트 대표이사
한솔섬유 CEO

의원 선수

1

의원 대수

18

약력

제18대 국회의원(서울 은평구 을)
유한킴벌리 대표이사 사장
KT 사외이사
창조한국당 대표최고위원
창조한국당 제17대 대통령 선거 후보
선진과 창조의 모임 원내대표
김광수경제연구소 고문

역대 은평 을 국회의원

15~17대

18대

19대

이재오

문국현
이재오

이재오

문국현(文國現, 1949년 1월 12일 ~ )

1. 소개2. 생애3. 기타4. 선거이력

1. 소개[편집]

대한민국기업인이자 인터넷대통령,국회의원·정치인이다. 서울특별시 출생이며 본관은 남평(南平)이다. 종교가톨릭이며, 세례명은 그레고리오이다.

2. 생애[편집]

1961년 서울 돈암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964년 동성중학교, 1967년 중동고등학교, 1971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를 졸업했다. 1977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95년부터 유한킴벌리 대표이사 사장, 킴벌리 클라크 동아시아 총괄사장직, 그리고 KT 사외이사직으로 있었으나 모두 사임하고 2007년 8월 23일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 선언을 했다. 10월 30일 새로 창조한국당을 창당하고 11월 4일 대선후보로 추대됐고, 유효득표의 5.8%를 득표하여 낙선했다. 하지만 주요 후보들의 소속 정당 및 이름을 가린 Blind Voting에서는 비록 인터넷 이벤트였을지언정 당당하게 1위를 차지, 정책의 경쟁력이 매우 강한 후보라는 평가를 받았다. 기존 정치권의 대안으로 젊은층의 지지를 받았던 점에서 훗날의 안철수가 막 정치권에 진입했을 때와 비슷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안철수는 정치 진입 초창기 문국현과 비교되는 경우가 많았다.#[1]

그러나 참신하고 깨끗한 이미지를 가지고 대선출마를 선언했으나 서울 강남에서 부동산 거래로 약 20억의 시세차익을 거둔 사실이 드러났고, 또한 2004년에 본인의 전원주택을 신축하면서 농지를 영농 목적으로 구입한 후 불과 한 달 만에 용도변경허가를 신청한 것까지 알려지게 되어 도덕성에 의구심을 지니게 했다.

게다가 두 딸이 모두 비정규직[2]이어서 약자의 아픔을 안다는 등의 발언을 했으나, 막상 선관위에 신고한 재산 내역에서 증여세를 납부하지 않은 상태로 두 딸에게 약 6억 가량의 현금과 주식이 분산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는데, 이에 문국현의 선거운동본부[3]에서는 "펀드매니저의 조언에 따라 재산 분할관리를 했을 뿐"이라며 변명에 급급했다. 그러나 이걸 대선 출마 직후에야 본인의 명의로 황급히 환원시킨 사실이 밝혀져 본인의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며칠 후에는 또 "아이들의 혼수를 생각해서 그랬다”며 사실상 증여를 시인하는 등의 말바꾸기가 이어지며 상당한 지지 기반을 상실하게 된다.

사실, 정계진출 이전 시기에 토론에 참여해, 보수논객으로 이름을 얻은 정규재 한국경제 주필의 송곳 질의를 확실하게 논박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제 전문가 이자 광고주의 위엄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미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1위였고, 그 남은 자리를 정동영이 차지한 상황에서, 대중에 비춰지는 기회가 현저하게 적어, 후보 본인을 제대로 알릴 기회가 없는 매우 불리한 싸움을 치러야 했다. 선거 당시 여권에서 후보단일화' 제의를 하며 손을 내밀기도 했지만, 끝까지 제3의 길을 고수했던 것도 주목할만한 요소.

결국 개표 결과 5.8%라는 아쉬운 득표율로 대선을 마무리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있었다면 출구조사 결과 20대에서는 15.9%라는 상당한 득표율로 3위를 기록했다. 이명박도 정동영도 불신하는 당시의 20대들에게 문국현이 대안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당시 인터넷의 진보 네티즌 사이에서는 정동영 대신 문국현을 밀자는 주장이 일기도 했는데 이로 인해 붙은 별명이 바로 인터넷 대통령. 그러나 인터넷 여론은 결국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 수 밖에 없었다.

2008년에 열린 18대 총선에 서울특별시 은평구 을 선거구에 창조한국당의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 48,656표(52.02%)를 득표하여 3선 의원인 한나라당이재오 후보를 약 10,492표차로 이기고 당선됐다.[4]

2009년 9월 1일까지 창조한국당자유선진당의 연합 교섭단체인 '선진과 창조의 모임'의 대표를 지냈다.

2009년 10월 22일, 선관위의 지도를 받아 1%의 이자로 발행한 당사랑채권이 시중 금리(당시 5%)보다 낮다는 이유로 4% 차이만큼 당이 잠재적인 금전적인 이익을 얻은 죄를 물어, 당을 처벌할 수 없으니 자연인인 당 대표를 처벌하였다. 대법원 판결에서도 4인의 대법관들이 합의를 보지 못하자 전원합의체로 돌려 9:4로 대법원 전원 합의체에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의 형이 확정되어 의원직을 상실했다. 그리고 이 틈을 타 이재오가 이듬해 보궐선거를 통해 지역구 복귀에 성공했다. 징역형을 받았으므로 2019년까지 향후 10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돼 사면되지 않는 한 출마할 수 없으므로 사실상 정치에서는 은퇴한 상태다.

정치계를 떠난 후 2009년부터 김광수경제연구소 고문을, 2010년 부터 뉴 패러다임 인스티튜트 대표이사를 지내고있다. 2013년부터는 한솔섬유의 사장을 맡고 있다.

2015년 1월에는 캄보디아에 위치한 한솔섬유의 자회사 현지 공장에서 노조 간부들을 무더기로 해고하는 등의 노동자 탄압이 있었다. #

3. 기타[편집]

4. 선거이력[편집]

연도

선거종류

소속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2007

제17대 대통령 선거

창조한국당

1,375,498 (5.8%)

낙선 (4위)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은평 을)

창조한국당

48,656 (52.0%)

당선 (1위)

2009. 10. 22 의원직 상실
(정치자금법 위반)


[1] 그러나 문국현은 결과적으로 정치인으로서는 실패했기 때문에, 안철수 지지자들은 문국현과의 비교를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2] 큰딸은 유치원에서 비정규직 발레 교사로 일하다 그만뒀고, 작은딸은 외국계 은행에서 인턴사원으로 근무하다 대학에 복학[3]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출신의 장유식(무소속 서영교 의원의 남편) 변호사가 문국현의 대변인으로서 이 내용을 발표했다.[4] 이 선거는 계파 갈등과 공천 문제 때문에 친박계가 친이계 후보들의 낙선을 위해 아예 대놓고 야당 후보를 밀어 버린 선거이기도 했다. 이거 때문에 사천에서 강달프가 몰표를 얻은 희대의 대이변이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