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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武俠小說

1. 개요2. 한국의 무협소설3. 현황4. 기타5. 무협 만화6. 관련 항목

1. 개요[편집]

중국 대륙이나 한반도 또는 일본 등, 동북아시아나 동북아시아와 유사한 가상세계를 배경으로 하여 무림이나 협객 등을 다루는 소설 장르

무협소설은 판타지 소설과는 다르게 역사를 배경으로 까는 경우가 많다(송나라, 명나라 등). 무협물이라 불리는 장르의 시초격으로, 그 시작은 수호지와 같은 연의물로 추정된다.[1] 근대무협의 비조는 이수민의 촉산검협전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장르문학의 일종이라고 여기는 분류도 있다.

근대무협소설계는 수호지와 같은 고전협의소설의 계보를 이으면서 서양에서 유입된 사실주의 문학 등의 영향을 받으며 관념적 서사 중심에서 구체적인 인정의 묘사중심으로 옮겨오게 되고, 이전과는 상당히 이색적인 작품으로 재탄생하였다. 왕도려 등이 대표적인 일례로 꼽히며, 이후 불세출의 거장 김용양우생의 등장으로 무협소설계의 본격적인 재평가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후 계속하여 고룡 등의 뛰어난 신세대 작가들이 활약하며 그동안 통속적인 오락물로 치부되던 전통을 넘어서 새로운 경지로 넘어서고자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이들의 노력은 결실을 맺어 드디어 김용의 천룡팔부녹정기가 중국문학교재로 채택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중국문단에서는 노신으로 대표되던 탈중국적인 사조의 지배권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다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이전까지 무협지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아직도 이쪽이 통용된다. 무협소설이란 표현은 1990년대 후반 들어서 대본소 중심의 장르문학 시장이 무너지면서 '무협지=저질문학'이라 푸대접받는 현실을 타파하기 위한 노력으로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독자층이 기존 무협과 차별화하기 위해 쓰기 시작했다. 아직도 70년대 이전 어른들은 습관적으로 무협지라고 말한다. 대한민국에서는 판타지와 함께 천대받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선 순수문학이 아닌 대중문학은 모조리 문학 취급도 못받고 있긴 하다.

주구독층은 중국, 대만, 화교권, 대한민국 정도다. 일본의 경우에는 찬바라 소설이 하나의 확고한 장르로 받아들여져, 그와 비슷한 장르인 무협은 그다지 취급받지 못한다. 인지도 역시 한없이 제로에 수렴한다.

무협소설의 창작이 많이 이루어진 국가의 공통점 중 하나가, 자유로운 정치적 참여의 길이 막혀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홍콩, 90년대 이전의 대만, 한국의 80년대) 무협소설이 지식인들의 좌절된 정치적 욕구의 발현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근거라고 고려원에서 포장해서 팔아먹었었다. 그러나 정치참여의 길이 막혀 썼다는 이 장르의 흔하디 흔한 클리셰는 강호를 평정한 뒤에 바로 그 조정과 결탁(!)하여 외세를 물리치거나 조정의 뜻에 영합해 관직을 제수받고 부마가 되는 등 전형적인 입신양명(success story)물에 불과하다. 다만 3S정책등 검열과 탄압으로 소설등 문화산업이 제한 받고 그나마 이러한 장르소설이 일종의 배설구 역할을 한 측면도 있다.

김용의 소설 정도는 다른 나라에도 수출되었지만, 무협소설이 완전히 장르로 정착한 것은 한국 정도다. 요즘에는 한국에서 역수출하는 경우도 있다.

무협소설은 같은 용어를 쓰더라도 실제 소설마다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만약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했다 해도 어차피 가상역사물의 범주를 넘지 못한다. 고증을 완전 철저히 살려도 결국 역사소설 범주다. 리얼리즘 항목에도 나와있듯이, 그 이상 가면 이미 그냥 역사 논문이 된다. 또 실제 사건이나 역사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 설정의 경우 대부분 누군가 머리를 짜내 만든 허구이기 때문에 반드시 000를 따라서 작성되어야 한다는 규정 같은 것은 없다. 만약 아래 설명이 당신이 읽은 작품과 다르다면, 그 작품 속에서 통하는 설명을 받아들여 읽기를 권한다. 이는 판타지소설 등지에서도 자주 범하는 실수이다. 작품별 최강자 가리기가 이런 오류의 큰 한 획을 구성한다.

2. 한국의 무협소설[편집]

한국에선 일제강점기 시절이었던 1931년, 독립운동가 박건병이 맹천 이라는 필명으로 평강불초생의 <강호기협전>을 동아일보에서 번역 연재 한 것이 최초의 무협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국내에서 무협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히기가 전이었고, 또한 <강호기협전>은 중국에서 만큼의 큰 인기를 끌지 못한채 연재가 중단되고 말았고, 연재가 중단되고 나서 불과 2개월 후인 1932년 1월 10일 박건병은 암살을 당한다.[2]

그래서 <강호기협전>이 국내에서 최초로 번역된 중국 무협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고, 일반적으로는 1961년 경향신문에 연재된 <정협지>가 최초의 중국 무협 번역작이자 국내 최초의 무협 소설로 알려져 있다. 원작은 대만 작가 위지문의 《검해고홍》(劍海孤鴻)으로, 소설가 김광주[3]가 번안했다. 하지만 거의 재창작에 가까운 수준이었고, 정협지의 흥행으로 너나 할 거 없이 중국 무협을 번역하기 시작했고, 80년대에 들어설 무렵 창작 무협도 나오기 시작했다.

7~80년대에 대본소(만화방)에서 만화와 함께 무협지가 널리 읽혔다. 1979년 을재상인 의 등장으로 번역무협의 시대가 끝나고 창작무협의 시대가 열린다. 국내 무협지 중 대부분은 무협지 프로덕션에 소속된 작가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생계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갈겨댔던 것. 원래 순수 문학도였으나 돈이 되지 않는 관계로 무협지 프로덕션에 들어가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간간히 그러한 울분이 드러나는 작품도 있었다. 이들 중 일부는 소설가로 대성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착취 속에서 본인의 의도와 상관 없는 창작 아닌 창작생활을 해야 했고, 일부는 자기 프로덕션을 차려서 후배들을 착취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기도 했다. 결국 당시 만화계와 똑같은 상황이었다. 모든 무협지 작가는 필명을 썼는데, 중국 작가처럼 보여야할 필요가 있었고 물론 누가 속겠냐마는, 본인이 이런 작품을 썼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기도 했다. 필명은 유명 작가의 이름에서 한 글자를 바꿔쓰거나 무협지 주인공에 맞먹는 으리으리한 이름들 달기도 했다. 80년대의 유명 작가들은 사마달, 금강, 서효원, 야설록, 검궁인 등이 있다.

또 80년대 무협지에는 야설을 능가하는 성적 묘사가 반드시 등장하는데, 이것은 사실상 프로덕션에서 강제로 넣도록 지시하고 있었다. 이를 거부하면 인격적 모독이나 폭행을 당하거나 쫒겨나기 일쑤였다. 체불임금이 만연한 상황에서 그간의 원고료도 못 받고 쫒겨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간혹 작가 스스로 사회와 본인에 대한 울분을 가학적인 성묘사로 풀어내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모든 작가들이 착취만 당한 것은 아니다. 소위 말하는 유명대학을 다니다가 수익이 많다라는 이유로 전업한 작가들도 존재하는 것이다. 즉, 무협 소설 시대에 자기 필명 내걸고 소설 쓰던 작가들은 출간만 된다면 처녀작이건 뭐건 나름 괜찮게 받았다고 한다[4]. 이때문에 소위 말하는 유명 구무협작가들은 학력이 화려한 편이다. 서효원은 성균관대, 야설록은 연세대, 일주향은 서울대, 야한 무협으로 유명한 와룡강도 고려대, 무림파천황 사건의 박영창도 연세대였다. 용대운이 서울시립대 출신으로 야설록 이름으로 혹은 야설록과 공저라는 형태로 초년을 시작했는데 대충 이정도가 기준선이었던듯 하다.

그러나 독자들의 지지와 인기에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국내의 무협소설계는 대만이나 홍콩 등지에서 일어났던 신무협운동과 같은 질적 비약의 움직임이 너무 약했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무협물은 저질문학이라는 오명만을 남기게 되었다. 보수적인 한국 문단과 지성계의 상황과 맞물려 이런 악평은 너무도 뿌리깊게 박혀서, 국내로 유입된 양우생과 김용, 고룡 등의 뛰어난 작품들도 싸그리 저질로 치부해버리는 안타까운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반발하여 90년대 중반에 뫼 출판사에서 용대운, 금강 같은 작가들이 무협을 그래도 사서 볼 가치가 있게 내보자며 좌백대도오 같은 작품을 발굴해내면서부터 서서히 달라졌다. 좌백 같은 경우엔 처음에 사무실에 들어왔을 때야 다른 무협 작가들이 그렇듯이 위에서 내려주는 스토리를 갖고 글을 썼지만[5] 자신의 재능을 살리지 못해 습작 기간만 계속 가질 뿐 출간은 하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용대운이 사무실 실장이 된 다음에 좌백에게 마음대로 글을 쓸 권한을 주었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대도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무협 소설의 세계에 제시하면서 소위 신무협 작가들의 효시가 되었다. 거기에다 pc통신을 통해 무협지 팬들이 직접 글을 쓰게 되고, 그 중 인기작이 출판되면서부터 무협 소설은 보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창작이 가능하게 됐다. 또 저작권에 대한 법규와 인식이 좋아진 것도 한목을 했다.

다만 작품의 질이 좋아진 것은 아니다. 일부 명작을 제외한 대다수 판박이 무협소설들은 편집자가 감수를 하는 건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다. 글 쓴다는 사람이 이걸 모르나 싶을 정도로 틀린 맞춤법들도 간간히 보이며 오자도 수정이 안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3. 현황[편집]

만화계의 상황과 비슷하게, 도서대여점텍본 등의 폐해[6]를 이기지 못해 기존 작가들도 생활고에 시달려 전업하거나 글쓰기를 중지하는 경우가 많았고 신규 작가들의 등장도 무척 제한적이었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전자책 시장의 활성화에 힘입어 만화계의 웹툰 시스템과 비슷하게 작품을 전자책으로 유로 연재하는 방식이 크게 활성화되어 현재는 웬만한 기존 작가들은 거의 모두 전자책 유료 연재 및 전자책 출간 모델 형식으로 작품활동을 하고있는 중. 저작권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도 많이 나아졌고 스마트폰을 비롯한 개인용 IT 기기의 폭발적인 보급까지 어울려 유료 연재 시장의 파이도 점점 커지는 상태이다.[7]

2000년대 이후 양판소와 함께 도서대여점 소설의 2대축이 되었으나, 21세기 이후로 한중일 막론하고 무협문학의 질적인 하락이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 무협의 본산지라 할 수 있는 중국에서도 2010년대 들어 선협소설(仙俠小說)이라는 인터넷 연재식 인스턴트 양산형 무협 장르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데, 한국과 달리 환협지 같은 퓨전 장르로 엇나가지 않았다는 것만 제외하면 전형적인 양판소 클리셰에 매우 충실하다. 피카레스크 예찬이라는 기본적인 컨셉은 물론이고 노루표 무협지로 변질되기 쉽다는 것까지도.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 선협소설의 인기는 사실상 장르소설의 원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으로,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선협소설을 컨셉으로 한 시리즈 스킨이 따로 출시될 정도다.[8]

이러한 무협소설의 전체적인 질적 저하는 고룡이 생전에 가장 염려했던 상황으로, 무협소설을 쓰는 작가들의 역량과 학문적 깊이가 계속해서 일천해지는 경향과 맞물려 있다. 잘 알려졌다시피 신파무협의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김용, 양우생, 고룡 등은 전통문화와 서양고전문학에 대해 방대한 지식을 쌓았고, 그를 통해 얻은 지식들을 계속해서 다양한 작품활동을 통해 실험을 한 사람들이었다. 무협소설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은 협의라는 주제를 둘러싼 인간군상들의 인정의 묘사에 있기 때문에, 어설프게 쓰면 어지간한 양판소만도 못한 것으로 떨어지기 십상인 것이 무협소설이다. 그래서 김용은 대만의 한 대학에서 대학생들에게 무협소설을 쓰려면 역사와 철학 등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가 어느정도 생겨나고, 인간세상의 희비애환의 과정들을 어느정도 깨닫게 된 경지가 되어야만 그나마 제대로 된 작품을 쓸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21세기의 상당히 많은 신세대 작가들도 이를 잘 깨닫거나, 중요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2010년대를 기준으로 정통적인 의미를 가진 무협은 사실상 전멸했다. 한때 무협의 본산이었던 문피아에서는 연일 현대 판타지가 순위권을 점령하고 있다. 네이버 웹소설등에서 무협이 강세라지만 여성 독자층을 겨냥한 로맨스와 합쳐진 물건들이 대부분이다. 이러니 남성적이고 굵직한 정통파 무협을 좋아하는 아재 무협팬들 입장에서는 눈물이 날 지경. 게다가 좌백, 용대운, 설봉, 이재일로 대표되는 유명 작가들의 작품 활동이 뜸해졌고 새로운 작가들도 유입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부극이나 RTS 장르처럼 사양세라고 보면 된다.

4. 기타[편집]

  • 무협소설스러운 헛소리에 낚여 국가의 운명과 전세계를 뒤흔든 사건이 있었다. 바로 의화단 운동. 의화단은 의화권이라는 권법을 수련하던 집단이었는데, 이들은 자신들의 권법을 100일간 수련하면 '도창불입(刀槍不入)'의 몸이 되어 칼과 창에도 상처를 입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19세기 내내 산둥과 즈리를 중심으로 세력을 넓혀가더니 급기야 서태후까지 이들의 시범을 본 후 완전히 믿게 되었다. 그래서 서태후는 외세를 몰아내기 위해 이들에게 의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

  • 기연이나, 복수극이나, 피카레스크성장물이긴 해도 너무 막장스럽고 파워 인플레이가 심할 경우 무협지같다고 표현한다.

  • 실존인물 중에서도 무력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인 사람을 두고 역사에서 혼자 무협지 쓰고 있는 사람이라 표현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고려의 무장 소드마스터 척준경. 사실 그 외에도 관우이성계그리고 이순신, 리처드 1세 등 역사서에 홀로 무협지를 쓰는(...) 인간흉기들이 의외로 많다.

5. 무협 만화[편집]

6. 관련 항목[편집]

[1] 그리고 이는 군담소설로 계승되며 전기적 요소(쉽게 말하면 판타지적인 요소)를 띄게 된다.[2] 현재 인터넷에서 박건병으로 검색을 해보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두산백과사전에 박건병을 설명하는 문서가 있다. 그러나 1932년 1월 10일에 박건병이 암살을 당했다는 동아일보의 보도가 분명히 있음에도 그들은 박건병의 사망년도를 미상으로 적어놓고 있다. 집필자들이 얼마나 성의가 없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3] 소설가 김훈의 아버지[4] 검궁인은 처녀작의 원고료로 66만원을 받았다고 증언했는데, 당시 대졸신입사원 월급이 25만원대였다고 했으니 적은 돈은 절대로 아니다.[5] 좌백의 경우도 숭실대 철학과 수석으로, 대학원 학비 벌려고 무협판에 뛰어들었다.[6] 도서대여점 같은 경우는, 대여가 얼마나 많이 되건 작가에게 돌아가는 이득은 없다. 불법 복사는 그 폐해를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고...[7] 군림천하천마군림, 쟁선계같이 몇 년씩 연재가 장기간 중단되었던 작품들도 거진 다 유료 연재식으로 연재가 재개되었고. 일반적인 케이스는 아니지만 초인기작의 경우에는 유료 연재 수입만으로 전업 작가가 가능한 작가까지 나오는 수준.[8] 한국어 번역으로 '불멸의 영웅' 시리즈 스킨이며, 마스터 이/잔나/피오라 3명에게 배정되었다. 이들 3명의 스킨 컨셉을 보는 것만으로 선협소설의 기본적인 주인공 일행 캐릭터 메이킹은 다 봤다고 생각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