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하마드 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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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png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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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무하마드 알리
MUHAMMAD ALI

분야

연극

입성날짜

2002년 1월 11일

위치

6801 Hollywood Blv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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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at like a butterfly, and sting like a bee.
나비처럼 날아 처럼 쏜다.

"...무하마드 알리의 위대함은 그저 훌륭한 선수라는 점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존재감이었습니다. 알리와 함께 링에 들어선다는 것은 그저 '훌륭한 복서', '훌륭한 싸움꾼'을 상대하는게 아니었어요. 이제껏 만난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사람과 경합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정말로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대체 어떻게 해야 '위대한 사람'을 상대할 수 있을까요? 위대한 사람은 잽이니 라이트니 하는 것으로는 상대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가 그에 걸맞는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어야만 상대할 수 있습니다.

가장 훌륭한 복서, 훌륭한 펀쳐를 찾는다면 알리를 찾지 마십시오.


하지만 사상 최고의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휘한 사람이 누구였는가 궁금하다면, 그가 바로 무하마드 알리입니다."


조지 포먼, 알리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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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선정 올해의 스포츠맨

재키 스튜어트

무하마드 알리

피트 로즈

1. 개요2. 선수시절
2.1. 아마추어 시절2.2. 프로 복서 시절
2.2.1. VS 브라이언 런던2.2.2. VS 조지 포먼2.2.3. VS 조 프레이저2.2.4. 해가 지다
3. 평가4. 사회 운동5. 어록6. 가족 관계7. 기타

1. 개요[편집]


권투 황제 (The King Of Boxing)

인종차별에 맞선 위대한 스포츠맨

권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2]이자 권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Muhammad Ali (1942년 1월 17일 ~ 2016년 6월 3일[3]) (향년 74세)

미국 출신의 권투선수. 키 191cm, 윙스팬 198cm,[4] 체중 107kg. 통산 전적은 56승(37KO) 5패.

본명은 '캐시어스 마셀러스 클레이 주니어'(Cassius Marcellus Clay, Jr.)로, 알리로 이름을 개명한 것은 이슬람 신자가 되며 1964년에 '네이션 오브 이슬람'에 가입하면서 부터이다. 때문에 그는 1965년 소니 리스턴과의 리매치에서 무하마드 알리라는 이름으로 출전하였다.

2. 선수시절[편집]

2.1. 아마추어 시절[편집]

12세에 아마추어 복서 생활을 시작, 1960 로마 올림픽 라이트헤비급에서 금메달을 땄고 이 후 프로로 전향했다. 그리고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성화 점화자로 참여해 36년 만에 또다른 금메달을 증정받았다.[5]

2.2. 프로 복서 시절[편집]

근 20년간 활약하며 수많은 권투영웅들과 경기를 벌이며 60년대와 70년대 세계 권투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통산 19차례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2.2.1. VS 브라이언 런던[편집]


▲ 브라이언 런던과 경기 영상. 10분 21초부터, KO를 얻어내는 펀치 소나기를 보면 북두백렬권이 따로 없다. 3초에 11개의 펀치를 꽂아넣는데 이 사람 헤비급이다... 그 외에도 특유의 노 가드 오픈 스탠스와 무빙도 확인 가능.

2.2.2. VS 조지 포먼[편집]

알리의 가장 유명한 경기는 조지 포먼과 맞붙은 "The Rumble in the Jungle" 이다. 당시 조지 포먼은 24세의 압도적인 챔피언이었고 지금까지도 헤비급 역사상 최고의 핵주먹으로 평가받는 강타자였다. 게다가 알리와 싸우기 직전에도 헤비급 역사에 꼽히는 인파이터인 조 프레이저를 상대로, 더킹 상태의 프레이저에게 레프트 어퍼를 쳐서 양 발이 공중에 뜨게 만드는 등 마치 어린애 다루 듯 이긴, 그야말로 인간 괴수였다. 반면에 32세의 알리는 베트남 전쟁 징병 거부로 인해 3년 동안이나 복서 활동을 못했고, 전성기에도 강펀처는 아니었으며 주무기였던 스텝과 순발력, 그리고 반사신경도 잃은 상황이었다.


경기 시작은21분 11초부터.

1974년 10월 30일, 알리는 WBC·WBA 챔피언 조지 포먼과 자이르(현 콩고 민주 공화국) 킨샤샤에서 맞붙었다. 도박사들은 다들 챔피언 포먼의 승리를 점쳤고, 세상 사람들도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사람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오히려 알리가 포먼을 상대로 우세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알리는 첫 3라운드까지 특유의 경쾌한 몸놀림과 빠른 주먹으로 조지 포먼에게 공격을 적중시켰으며, 4라운드에는 살짝 비등한 모습을 보였으나 5라운드에서는 조지 포먼에게 맞으면서도 미소를 짓는 여유를 보였다. 반대로 포먼은 알리에게 딱히 효과적인 타격을 주지 못했으며, 경기 내내 알리의 운영에 말려드는 모습을 보였다. 지켜보던 팬들은 알리의 주먹이 포먼에게 맞을 때마다 환호성을 지르는 상황이었다. 젊고 패기 넘치는 왕을 상대로 백전노장 도전자는 노련한 모습을 보이며 8라운드까지도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6라운드부터 눈에 띄게 지친 모습을 보였던 조지 포먼은 8라운드에 들어와서는 탈진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6] 라운드 종료까지 32초 남은 상황에서 캐스터는 마치 예언과도 같은 한 마디를 남긴다.

"...아마도 이게 알리의 작전인가 봐요. 자기 펀치에 자기가 나가떨어지도록 말이지요!"


라운드 종료 20초 전, 코너에 몰린 듯한 알리의 오른손이 포먼에 적중한다. 이후 몇 번의 잽에 이어 라이트 펀치가 포먼에게 한번 더 적중한 순간 알리는 코너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라운드 종료 15초를 남긴 순간, 포먼이 그로기 상태가 된 것을 확신하자 알리는 재빠르게 포먼을 공격했고 종료 13초 전 눈 깜짝할 사이에 2차례의 펀치를 포먼의 턱에 정확하게 꽂아넣었다. 그리고 포먼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라운드 종료 10초에 카운트에 들어가서 라운드가 끝나는 정확히 00:00초에 KO 선언이 나왔다. 이로서 싸움은 전설이 되었다.

전성기 때 3초에 11번의 펀치를 날린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고, 1초 내에 주먹 두 번은 보통 사람도 할 수 있다. 비록 경기 내내 우세한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이 때 알리는 32세의 나이, 8라운드 24분 가까이 뛴 상태, 그리고 헤비급 사상 손꼽히는 24세의 젊은 돌주먹 챔피언의 펀치를 계속 몸으로 받았다. 아무리 로프를 이용하며 가드로 받아낸다고 해도 누적되는 피해와 피로는 적지 않았을 것이다.[7] 그 상태에서 찰나의 순간에 안면에 그림 같은 크로스 두 방을 모두 적중시켰다.

그야말로 경기가 있기 전 양 선수의 배경과 상황, 서로 간의 치열한 신경전, 경기의 진행, 해설진의 코멘트까지 스포츠 만화보다도 더 만화 같은 극적인 결과를 낳으면서 복싱 역사에 영원히 남을 명경기가 되었다.

2.2.3. VS 조 프레이저[편집]


▲ 프로 권투 역사상 최고의 명경기 중 하나로 꼽히는 조 프레이저와의 경기. 이 경기는 경기 전 신경전도 치열했고 경기 내용도 대단했는데, 경기장 냉방 시설마저 고장나서 선수들 뿐 아니라 보는 사람들마저 지칠 대로 지쳤던 경기다.

조 프레이저와의 세 차례 혈투도 알리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빠지지 않는 경기다. 프레이저는 1975년 10월 1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알리와 경기를 앞두고 이처럼 기도했다. "신이시여, 저 녀석을 때려눕힐 힘과 방법을 알려 주십시오." 알리가 선수 자격을 빼앗기자 조 프레이저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의 면담[8][9]에서 알리의 라이센스를 다시 발급해달라고 직접적으로 요구하며 여러방면으로 그를 도왔지만, 트래쉬 토커였던 알리는 둘의 대결을 앞두고 프레이저를 '엉클 톰(백인에게 굴복한 흑인을 얕잡아 부르던 말)'이라고 비난했다. 이러한 알리의 미디어 공세속에 프레이저는 일방적으로 부당한 비난을 들어야만 했고 프레이저의 아들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 정신과 진료까지 받을 지경이 되었다. 프레이저와 알리의 1차전, 15라운드 까지 가는 혈투 속에서 결과는 프레이저의 판정승. 알리의 생애 첫 패배였다. 하지만 이 후 알리는 프레이저에게 두번의 설욕전을 감행해 모두 성공한다. 2차전은 알리의 판정승이었고, 3차전에선 알리의 14라운드 TKO승. 이들의 혈투는 '마닐라의 전율'(Thrilla in Manila)라는 이름의 다큐멘터리로 제작되기까지 했다. 알리가 프레이저와의 1차전을 앞두고 "이 경기는 마닐라의 전율이 될 것이다"라며 '스릴라' + '마닐라'로 라임을 맞추는 입담을 선보였고, 이것이 사람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켜 경기 이름을 '스릴러 인 마닐라'로 부르게 되었다.

2.2.4. 해가 지다[편집]

그의 권투 신화는 1978년 2월 15일 레온 스핑크스에게 패하면서 저물기 시작했다. 이때 상실한 WBC, WBA 헤비급 타이틀 중 WBA 타이틀은 같은 해 9월 15일 다시 레온 스핑크스와의 설욕전 끝에 탈환했으나[10] WBC 타이틀은 끝내 탈환하지 못했고 1981년 완전히 은퇴했다.

이후 선수 생활을 하며 얻어맞아 생긴 펀치드렁크 증후군[11]으로 말이나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지는 파킨슨병에 걸려 고생했다. 다만 알리의 파킨슨병이 펀치드렁크 증후군의 연장선이 아니라는 설도 있다. 알리는 많이 맞아 본 복서도 아니고 파킨슨병이 펀치드렁크와 밀접한가에 대해서도 상당한 논란의 여지가 있다.

전성기 때 엄청나게 떠벌이였던 그가 더듬거리며 말도 잘 못하게 되었으니 팬들이 얼마나 안타까워 했을지... 결국 파킨슨병이 합병증을 불러오는 계기가 되어 2016년 6월 3일 앓고있던 파킨슨병의 합병증인 호흡기 질환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 날 조지 포먼 등 그와 동시대에 맞서 싸운 복서들과, 마이크 타이슨 등 그렇지 않은 파이터들도 애도하는 글을 올렸다.

3. 평가[편집]

슈거 레이 로빈슨과 더불어 현대 복싱의 선구자이자 아버지 격인 인물

알리의 커리어는 복서가 어떻게 진화하고 노화에 대처하는지를 잘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이전 세대의 복서들은 자신만의 장기를 극대화하여 난타전에서의 우위를 점하는 전략을 주로 택했다. 현대 복싱의 선구자인 슈거 레이 로빈슨은 이 전략의 정점에 서있었다. 알리는 아웃복싱과 인파이팅을 모두 적절히 구사할 줄 알았고, 본인이 아마추어 복싱부터 다져진 풍부한 경험에 의해 상대의 우위에 있다는 점을 잘 이용했다.

알리의 하이라이트 영상 등에 잘 나오지만 초창기 알리는 빠른 스텝과 레프트를 이용해서 상대를 제압하고 순간적인 컴비네이션으로 다운을 따냈다. 그러나 몇몇 경기에서는 카운터 복서, 스워머 스타일 역시 잘 구사했다. 좀 더 나이가 든 후에는 빠른 스텝을 잃은 대신 위에 나온 'Rope-a-Dope' 전략이나 스핑크스와의 재대결에서 보여준 라이트 퍼스트 전략 등, 고정적인 스타일로는 소화할 수 없는 다양한 전략을 구사했다.

이렇듯 복싱 역사에서 알리의 위치가 높은 이유가 바로 '만능형 복서'의 프로토 타입을 성공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이다. 나이를 먹고 신체 능력이 저하된다고 퇴보하는게 아닌, 경험과 전략을 바탕으로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만화와 달리 현대에는 반쪽짜리 복서[12]가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복싱의 기술적 완성도가 높아졌고, 이 트렌드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것이 바로 알리다.

4. 사회 운동[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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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우월주의 종교단체인 네이션 오브 이슬람에서 함께 활동했던 흑인 인권운동가 말콤 엑스와 함께. 여자아이들은 모두 맬컴 엑스의 딸들이다.

알리는 강경주의의 흑인 인권 운동가였으며, 인종차별인권침해를 일삼는 백인들과 사회적으로 분리되기를 주장하는, '흑인민족주의에 기반한 흑백분리주의자'였다.[13] 이런 강경한 사회적 노선과 알리 본인의 굳센 자존심 때문에 복싱계에서나, 사회적으로나, 심지어 같은 흑인 복서들과도 크고 작은 마찰이 자주 생겼다.

1965년 소니 리스턴과의 2차전에서 1라운드 KO로 승리한 이후, 같은 해 헤비급 챔피언 출신인 플로이드 패터슨이 '알리로부터 챔피언 벨트를 되찾아 미국에 바치는 것이 내 의무다'라며 알리를 비난했다. 심지어 알리를 두고 알리가 개명하기 전 이름인 '캐시어스 클레이'라고 부르며 거세게 비난했다. 결국 이에 화가 난 알리는 '패터슨을 줘패겠다'라고 호언했다. 당시 이슬람 신자, 흑백분리주의자, 강경파였던 알리와 반대로 패터슨은 기독교 신자, 흑백통합주의자, 온건파였다. 그리고 결국 두 선수간의 매치가 성사됐고, 결과는 알리의 TKO승리였다. 하지만 당시 미국 주류 언론들은 온건파이자 기독교신자인 패터슨을 옹호했고, 강경파에 이슬람신자였던 알리를 '고의적으로 경기를 질질 끈 후 잔인하게 징벌했다'고 비난했다. 몇 년 후 알리는 패터슨과 한 번 더 붙게 되는데 그 때도 승자는 알리였다. 흑표당 대변인을 지냈던 엘드리지 클리버는 알리와 패터슨의 이러한 대립을 두고 "이 싸움은 사상적 측면에서 흑인혁명의 정신적 성취를 반영하는 전환점이 됐다. '독립적인 흑인'이 '굴종적인 흑인'을 징벌하는 상징적인 승리였다."고 평한다.[14]

이와 같은 상황은 2년후인 1967년 어니 테럴과의 매치에서도 반복된다. 어니 테럴은 계체량 측정 도중 알리를 '캐시어스 클레이'라는 이름으로 불러 알리를 도발했다. 그리고 이에 따른 알리의 분노는 당연한 것이었다. 알리가 '캐시어스 클레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이슬람 식 이름인 '무하마드 알리'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게 된 이유가 인종차별에 시달리던 도중 흑인 인권 운동의 중심에 서있던 말콤 엑스와 그가 속한 '네이선 오브 이슬람'이란 조직을 접하며 흑인 인권 운동과 이슬람에 경도됐기 때문인데, 인종차별이 극심한 그 당시에, 그것도 자신과 같은 흑인에게, 자신이 살아온 삶과 사회가 직접적으로 연관된 현재의 이름을 무시당하고 개명 전의 이름으로 불리는 모욕을 당한 것이다. 그렇게 분노한 알리는 경기 당일, 링 위에서 테럴에게 펀치를 꽂아 넣으며 "내 이름이 뭐라고? 어!? 내 이름이 뭐라고!?"(What's my name? huh? what's my name?)라고 소리쳤고, 결국 테럴을 상대로 판정승을 거둔다.[15] 어느 복싱 전문가는 알리의 이런 행동을 두고 "정말 놀라운 복싱기술의 과시였고, 정말 야만적인 잔인성의 전시였다"고 평했다.[16]

권투 이외에도 1960년대 말부터 불기 시작한 흑인민권운동에 동참하여 미국 흑인들의 권익 향상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 이유로 일부러 1974년 조지 포먼과의 대결 때는 아프리카 콩고킨샤사에서 경기를 벌이기도 했다. 끝내 그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된 현재는 야구재키 로빈슨 등과 함께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스포츠맨으로 불리기도 한다.[17]

1960년대,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여 징병 거부를 하다가 챔피언 자리를 박탈당하고 무려 3년 5개월 간 경기를 치르지 못했다. 옥살이를 했다는 것은 법정 싸움에 대한 와전. 당시엔 주류 미국 사회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았으나, 법정 공판에서

"내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내 조국에서도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데 남의 자유를 위해서 싸우라고요? 베트콩들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우릴 무시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왜 지구 반대편의 이름 모를 사람에게 총부리를 겨눠야 합니까?"

라고 변론하며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당시 이미 흑인 사회에서는 당연히 '병역을 통해 의무를 다 하면 우리에게도 권리가 오겠지' 같은 순진한 생각은 더 이상 먹히지 않았다. 이는 1965년 2월 18일 앨라배마 주의 흑인 인권 운동가이자 마틴 루터 킹 목사에게 경도되어 있던 26살의 젊은이 지미 리 잭슨이 시위 도중 경찰의 폭행으로부터 모친을 보호하려다 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바로 그 지미 리 잭슨은 육군 참전 용사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리가 징병 거부를 시작한 1967년은 구정 공세 이전이었고 당시까지만 해도 주류 백인 사회에서는 병역 거부는 파렴치한 반국가적 행위로 치부되었다. 이후 미국에서 베트남전 자체에 대한 회의론이 일면서 알리의 징병 거부가 재평가되기 시작한 것이다.

무죄를 선고받긴 했으나 긴 법정싸움 이후 전성기의 나이가 지나 육체적으로 노쇠하였다. 법정싸움 기간 동안 링 위에 서지 못한 그는 자신만의 경쾌한 스텝을 전성기만큼 활용하지 못하며 반사신경만으로 회피하던 노 가드 전술을 버리게 되었다. 그가 전성기를 벗어나 경력 중반기에 대결한 선수들은 조 프레이저, 조지 포먼 등 모두 시대를 초월해 최고로 인정받는 돌주먹들이었다. 하지만 알리는 이른바 'Rope-a-dope' 전술을 고안, 로프의 신축력을 이용해 펀치의 충격을 흡수하는 전술로 프레이저와 포먼을 모조리 쓰러뜨린다.

또한 알리는 흑인 인권 운동가 뿐만이 아닌 평화주의자이자 인문주의자였다. 알리는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세계 헤비급 챔피언의 역할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신의 발가락"이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신을 등에 업고 세계의 모든 어두운 곳을 뛰어야 한다'는 것이 그가 내린 정의의 이유였다. 때로는 저항자로 흑인들의 권리가 법대로 실행되지 않는 것에 항의하여 금메달을 강에 던져버렸으며,[18] 때로는 지식인처럼 부정의한 전쟁을 고발하기 위해 내로라하는 엘리트들 앞에서 미국의 명문대에 강연을 다녔고, 때로는 광대처럼 브로드웨이에서 <백인들의 희망>이라는 연극에 주인공으로 출연해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했고, 때로는 외교관이 되어 사담 후세인을 만나 억류되어 있던 인질들을 석방하도록 설득했으며, 정치 지도자처럼 미국의 공립 학교와 병원을 찾아다니며 교육과 의료 체계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다녔고, 또 파킨슨병을 연구하는 재단을 창립하기도 했다.[19]

5. 어록[편집]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

그게 다냐?[20]

내가 분명히 말했지, 내가 진정한 챔피언이라고! 내가 분명히 말했지, 내가 세계 챔피언이라고![21]

절대로 누가 나를 막아설지에 대해 떠들어 대지 마! 아무도 나를 막지 못해!

나는 세상을 뒤흔들었어! [22]

난 몇 회를 하는지 세지 않아. 힘들기 시작할 때부터 세지. 내가 고통을 느끼기 시작할 때, 그때가 내가 숫자를 세기 시작할 때야. 그때부터가 진짜니까. 그게 당신을 챔피언으로 만들어주는 거야.[23]

나는 당신들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챔피언이 되겠다. 베트콩들은 우리를 검둥이라고 욕하지 않는다. 베트콩과 싸우느니 흑인을 억압하는 세상과 싸우겠다.[24]

'캐시어스 클레이'는 백인들이 내 노예주에게 준 이름이다. 지금부터 난 자유롭고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으므로, 난 노예가 아니므로, 백인들의 이름을 반납하고 아름다운 아프리칸의 이름을 선택한다.

나는 미국이다. 나는 당신이 모르는 한 부분이다. 흑인이고, 자신감 넘치고, 건방지다. 내 이름도, 내 신앙도 당신과 다르다. 내 목표는 나만의 것이다. 내게 익숙해져라.

권투란 수많은 백인들이 두 흑인끼리 서로 때리는 걸 지켜보는 것이다.

위험을 감수하지 못할 정도로 용감하지 않은 사람은 인생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람들이 도전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을 믿는다.

그저 직업일 뿐이다. 풀들이 자라나고, 새들이 날아다니고, 파도가 모래를 덮치고, 나는 그들을 때려 눕혔다.

당신이 나만큼 위대하다면 겸손해지기 힘들다.

만약 당신의 꿈이 당신을 두렵게 하지 않는다면, 그 꿈은 충분히 크지 않은 것이다.

상상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날개가 없다.

내 마음이 그것을 상상할 수 있고, 내 마음이 그것을 믿을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을 성취할 수 있다.

나이는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이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나이 먹었다.

챔피언은 체육관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챔피언은 욕망, 꿈, 식견과 같이 그 사람의 내면 깊은 곳에서 만들어진다.

패배하는 것이 어떤 건지 아는 사람만이 영혼의 바닥까지 닿을 수 있으며, 승부에서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여분의 힘을 낼 수 있다.

불가능이란 나약한 자들의 핑계다. 불가능이란 사실이 아니라 의견이다. 불가능이란 잠재력이다. 불가능이란 일시적이다. 불가능이란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당신이 원하는 대로 될 필요가 없다.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될 자유가 있다.

내가 농담하는 방식은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게 세상에서 가장 웃긴 농담이다.

국가의 전쟁은 지도를 바꾸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가난의 전쟁은 변화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우정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러나 우정의 참 뜻을 모른다면 아무것도 안 배운 거나 다름없다.

강, 연못, 호수, 개울. 이름은 다 다르지만 모두 물을 담고 있다. 종교도 똑같다. 모든 종교는 진실을 담고 있다.

나는 훈련의 매 순간을 싫어했지만, 난 되뇌었다. '지금을 열심히 살고, 챔피언으로서 남은 생애를 보내라.'

곰팡이가 핀 빵에서 페니실린이 나올 수 있었다면 당신에게서도 뭔가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불빛 아래서 춤을 추기 전까지, 나는 길을 달린다.

우리에겐 모두 똑같은 신이 있다. 우린 그저 그를 다른 방식으로 대했을 뿐이다.

사람을 지치게 하는 건 눈앞의 산이 아니라 신발에 스며드는 모래알이다.

나의 유일한 실패는 내가 진정으로 얼마나 위대한지 깨닫지 못한 것이다.

나는 가장 위대한 자다. 때려 눕혔을 뿐 아니라, 경기를 선택했다.

나는 가장 위대한 자다. 내가 깨닫기도 전에, 내가 말했다.

가장 위대한 사람도 한 때는 초보였다. 그 첫걸음을 내딛는 걸 두려워하지 마라.

한 마리의 파리가 쇠쟁기를 끌 수 있다고, 그대에게 말하는 나는 좋은 사람. 그게 어떻게 가능하느냐고 내게 묻지 말고, 파리에게 쟁기를 매어줘라.[25]

챔피언이 되면, 나는 낡은 청바지와 낡은 모자를 쓰고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채로 아무도 날 알아보지 못하는 시골로 갈 것이다. 거기서 내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날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작고 귀여운 여우 같은 여자를 한 명 찾아낼 것이다. 난 그녀를 백만 달러가 넘는 대지 위에 세워진 25만 달러 짜리 내 집으로 데려가서 내 캐딜락과 수영장을 보여 줄 것이다. 비 올 경우를 대비해서 만든 실내 수영장까지도. 그런 다음 그녀에게 말하리라. "이건 모두 네 거야. 왜냐면 넌 날 있는 그대로 사랑하니까."

6. 가족 관계[편집]

  • 존 클레이 (증조부)

    • 허먼 H. 클레이 (조부)

      • 故캐시어스 마셀러스 클레이 시니어 (父)

        • 루돌프 발렌티노 '라만 알리' 클레이 (남동생)

      • 네테니얼 클레이

      • 이바 클레이

      • 이외에 이름이 안 알려진 고종 형제들 3명이 있다.

  • 샐리 앤-클레이 (증조모)

  • 에디스 그리츠하우스 (조모)

  • 에이브 오'그레이디 (외증조부)

    • 존 르위스 그레이디 (외조부)

      • 故오데사 그레이디 (母)

      •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남매 5명이 있다.

  • 버디 B. 모어헤드 (외조모)

  • 손지 로이 (1처)

  • 벨린다 '칼릴라 알리' 보이드 (2처)

    • 메리윰 알리 (장녀)

    • 자밀라 알리 & 라셰다 알리 (차녀 쌍둥이)

    • 무하마드 주니어 (장남)

  • ??

    • 미야 알리 (3녀)

    • 칼릴라 알리 (4녀)

  • 베로니카 포르쉐 (3처)

    • 하나 알리 (5녀)

    • 레일라 알리 (6녀)

      • 커티스 무하마드 콘웨이 주니어 (외손)

      • 시드니 주르딘 콘웨이 (외손녀)

  • 욜란다 윌리엄스 (4처)

    • 아사드 아민 알리 (차남. 양자다)

  • 밥 월시 (2사위)

    • 비아지오 알리 월시 (외손. 라셰다의 장남)

    • 니코 알리 월시 (외손. 라셰다의 차남)

  • 커티스 콘웨이 (4사위)

    • 카메론 콘웨이 & 켈튼 콘웨이

    • 레일라니 콘웨이

7. 기타[편집]

  • 상대를 교묘하게 비웃고 도발하는 트래시 토크와 거침없고 화려한 언변으로도 유명했으며, 단순히 거칠고 조롱적인 발언 뿐만이 아니라 언변속에 녹아있는 뛰어난 라임 구성과 적인 문장 구성이 탁월했고 대중들이 자신을 지지하게끔 하는 '정치적인 시'(Political poetry)에 가까운 발언을 잘 구사했다. 이를 바탕으로 경기전 선수간의 언쟁을 일으켜 대중들에게 흥미를 유발시키는걸 즐겼다. 무하마드 알리의 언변은 단순히 마케팅에 국한되는 흥미 유발과 상대방에 대한 도발만이 아니라 이외의 영역에서도 잘 나타난다. 위의 어록 문단만 봐도 그렇다. 상기한 베트남 전쟁 징집 반대로 인한 법정 공판에서의 항변과,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말도 그의 언변 능력을 잘 나타내는 사례. 또한 알리는 '스포큰 워드'[26]의 달인이었다. 혹자는 무하마드 알리의 이런 언어 구사가 힙합에 영향을 줬다고도 한다.#

  • 그 유명한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 가 그의 명언이다. 원래 경기 전의 두려움을 없애기 위한 일종의 허세였지만 나중에는 하나의 전술이 되었다. 마케팅과 캐릭터를 일치시킨 모범적인 사례로 유명하며 특히 빠른 스텝과 특유의 디펜스는 후배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 현란한 스텝으로도 유명한데 아예 '알리 스텝'이란 풋워크도 따로 있다. 다른 스텝에 비해 빠른 속도를 자랑하여 복싱은 물론이고 종합격투기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기술이다.'알리 스텝'에 대한 설명 조 루이스에 의하면 이소룡도 알리를 존경하여 격투기 트레이닝의 90% 이상을 이 풋워크 연습에 투자하였다고 한다. 슈거 레이 로빈슨이 스텝의 중요성을 일깨운 이후, 스텝의 활용도를 확장 시킨 것이 알리라고 할 수 있다.

  • 은퇴 후 토크쇼에서 마이크 타이슨, 슈거 레이 레너드와 함께 출연한 바 있다. 토크쇼 진행 중 최근 주목하는 복서가 누구냐는 질문에 알리는 타이슨을 뽑았는데, 이 후 타이슨과 레너드가 깜짝 게스트로 등장한다. 이 당시 알리는 파킨슨병을 앓아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도 이 두명이 스테이지로 걸어오자 예상 외의 등장에 깜짝 놀랐는지 벌떡 일어난다. 진행자가 알리에게 "당신의 전성기 때 이 친구(타이슨)과 싸우면 누가 이길 것 같나요?"라고 하자 알리가 말대신 손으로 타이슨을 가리키며 "난 주먹이 세진 않았지만 빨랐어요. 만약 저 친구가 날 쳤다면..."이라고 말하며 뒤로 넘어지는 액션을 취해 웃음을 주기도 했다. 그러자 타이슨이 손사래를 치며 "전 알리의 말을 안믿어요. 왜냐하면 저분은 저보다도 강한 펀쳐인 조지 포먼, 어니 세이버스[27]에게 맞고도 이겨낸 위대한 챔피언이에요. 저도 제가 대단한 걸 알지만, 모두의 머리가 고개 숙이고, 모두의 혀가 진실되게 말해야하는 가장 위대한 사람은 여기 이 분입니다."라고 답했고, 방청객들은 환호했다.#

  • 1980년대 WWF에 출연하며 락 앤 레슬링 커넥션의 주축으로 WWE 전설의 시작을 알리는데 큰 공헌을 했으며 무려 WWF 레슬매니아 I의 호스트로 초대받았다.

  •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때는 최종 성화 점화자로 등장하여 손을 떨면서 성화대에 불을 붙였다. 당시 파킨슨병으로 투병중이던 알리가 쉽게 불을 붙이게 하기 위해 이미 완성되어있던 성화대의 설계를 변경했다고 한다.

  • 그의 딸 라일라 알리도 여자 프로 권투선수로 활약했고 세계 챔피언 자리를 오랫동안 지키며 그 아버지에 그 딸임을 보여주었으며 라일라는 2007년 이후 은퇴한 상태. 방송 진행자 등의 일을 하는 듯하다. 여담으로 라일라는 무하마드 알리의 세번째 부인이었던 베로니카 포셔 알리와의 사이에서 얻은 딸이며, 어머니의 외모를 이어받아서 아름답게 생겼다.라일라 알리의 최근 모습, 무하마드 알리와 베로니카. 또한 아디다스 광고에 아버지와 함께 출연해서 카리스마를 뽐내기도 했다.

  •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 때는 딸과 함께 휠체어를 타고 등장. 원래는 올림픽 오륜기 게양식에 같이 참가하려고 했지만 건강상 문제로 오륜기를 만져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 마이클 만 감독의 영화 <알리>에서 윌 스미스가 맡아서 알리의 일대기를 다루었다. 작품성은 좋았으나 흥행은 실패했고 이 영화는 한국에서 개봉 당시 상영시간이 길다고 30분 가까이 삭제하고 개봉했다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더더욱 극장에서 외면당했다. 극장 수익으론 해외 수익까지 다 합쳐도 제작비도 못 건졌고 그나마 DVD 같은 2차 판권 시장은 꽤 괜찮게 팔려 수익을 거둬들였다.

  • 위 영화의 주제곡인 R. Kelly - The World's Greatest 또한 무하마드 알리로부터 영감을 받은 곡이다.

  • 이 사람을 바탕으로 만든 캐릭터가 바로 록키의 라이벌 아폴로 크리드다. 당시 영화를 찍을 때 스타 중의 스타였던 알리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는데 실제 그는 록키를 보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으며 심지어 스탤론에게 헌정하는 시를 써서 바치기까지 했다. 또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내가 진짜 아폴로 크리드다!!" 라면서 뛰쳐나와 스탤론과 스파링을 벌이기까지 했다고. 보러 가기 시침 뚝 떼고 도망가는 록키 여담으로 록키에는 그의 라이벌 조프레이져도 까메오로 잠깐 출연한다. 생각해보면 록키에서 아폴로 크리드는 챔피언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무명 복서였던 록키에게 도전할 기회를 준 대인배에 록키와 명승부를 펼친 훌륭한 복서였으니 무하마드 알리의 신경을 크게 거슬리게 할 것도 없었다. 딱히 있다면 영화 초반에 록키와의 경기를 계획하면서 엄청 거만한 모습을 보였다던가, 록키와의 경기에서 초반에 방심했다가 훅 갈 뻔한 장면 정도?

  • ebs 지식채널 e에서 무하마드 알리를 주제로 해 방영한 적이 있으며 5분 짜리 영상에 무하마드 알리의 생애를 감동적으로 요약해 놓았으니 한번 쯤 보자.

  • 이탈리아의 기자 오리아나 팔라치와 인터뷰를 가진 적이 있었는데 무함마드 알리는 수박을 파먹으면서 연신 트림을 하는 등 매우 무례한 태도로 팔라치를 맞았다고 한다. 팔라치는 두번째 트림을 하는 것까진 참았으나 알리가 세번째 트림을 하자 그의 얼굴에 마이크를 집어 던지면서 "이런 무식한 촌놈이 챔피언이라니!"라고 욕을 퍼부었다고 한다. 간이 부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팔라치는 호메이니 면전에서 차도르를 짓밟고 덩샤오핑 앞에서도 어디 때릴테면 때려보라고 했고 키신저에게 까지 퍼부었던 사람이다.

  • 박정희도 그의 열렬한 팬이어서 한국에도 방문한 바 있다. 당시 정규 방송에서 특집 쇼를 방송하면서 무용수들이 권투 글러브를 끼고 권투 동작을 하며 알리! 를 연호하는 등 법석을 떠는 바람에 결국 당시 방송심의위원회의 경고를 받아서 그 다음 주에 경고받은 내용을 방송 전에 내보냈다.

  • 많은 1세대 미국 무슬림이 그랬듯이 흑인우월주의를 지향하는 신흥종교였던 네이션 오브 이슬람에 입교하였고 후에 교단과 함께 정통 수니 이슬람으로 전향하였다. 이후 알리 개인은 이슬람 신비주의인 수피즘에 깊게 심취했다.

  • 2015년 12월에 미국 공화당의 대선주자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무슬림들을 입국금지 시킬 것이라는 발언으로 논란이 되자, 알리는 즉각 성명을 내고 "나는 무슬림이다."라고 말문을 열며 "우리 무슬림들은 이슬람을 자신의 개인적인 이해를 위해 쓰는 사람에 맞서 싸워야 한다" 라고 강조하는 동시에 "파리나 샌 버나디노, 그밖의 세계 어디에서도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결코 이슬람이 아니다." 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알리가 언어능력을 잃기 전 공식석상에서 행해 마지막 발언으로 알려지며 주목을 받았다. 과연 그답게 마지막 말 역시 피부색과 종교, 성별, 빈부 할 것 없이 차별로 점철된 이 세상에 철권을 날린 셈이다.

  • 현재 그의 이름을 딴 카시우스라는 바다악어가 있다.

  • 미국 뿐만 아니라 1960,70년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흑인 스포츠 스타여서 가끔씩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로부터 초청을 받거나 방문하기도 했었다.

  • 콜드플레이의 7집 앨범 수록곡중 Everglow의 Single버전에서 노래 후반부에 알리의 연설이 나온다.


[1] 1965년 소니 리스턴과의 2차전에서 1라운드 KO 승리를 거두며 흥분하는 모습. 1차전에서도 승자는 알리였다. 알리와 리스턴의 2차전이 끝난 후 이 사진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으며 오버워치둠피스트의 스프레이로 나오기도 했다. 스프레이 이름은 '위대한 자'.[2] 다른 한명은 슈거 레이 로빈슨.[3] 현지 시각으로는 6월 3일, 한국 시간으로는 6월 4일 1시 40분 경에 세상을 떴다.[4] #[5] 떠도는 이야기 중에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인종차별을 당해 로마 올림픽 때 받은 금메달을 오하이오 강에 던졌다는 이야기는 거짓이다. 요악하자면 강에 금메달을 던졌다는건 책과 영화를 통해 허구가 가미된 이야기라는 것이다. 다음은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의 무하마드 알리 센터의 설명. "His resentment was dramatized in the 1970s book and movie, The Greatest. In this symbolic tale, Cassius Clay and his buddy sat down at a restaurant counter and heard a man's voice boom, "I done told you, we don't serve no niggers." Hurt and humiliated, Clay was described as passionately flinging his gold medal into the depths of the Ohio River. The story was fiction, but the pain is fact."[6] 포먼은 이 경기 직전 3년간 치른 12경기 중 11경기를 2회 이내에 KO로 끝냈고, 다른 한경기조차 5회 KO로 끝냈다. 즉 6라운드 이상의 장기전은 거의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7] 실제로 경기가 끝난 후 알리는 자신의 승리를 축하해주는 사람들에 둘러쌓인 채 잠시 바닥에 주저앉았다.[8] 당시 복싱 헤비급 세계챔피언의 위상은 엄청났기 때문에 대통령과의 일대일 면담도 그렇게 크게 어려운일이 아니었다고 한다.[9] 닉슨도 프레이저의 요청에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하는 일이며, 곧 알리가 복귀할 수 있을거라고 긍정적인 대답을 줬다.[10] WBC 타이틀은 레온 스핑크스가 챔피언 타이틀 획득 이후 다음 경기를 지명 도전자인 켄 노턴이 아니라 무하마드 알리와 다시 붙겠다고 선언하면서 규정위반으로 박탈되었다.[11] 직역하면 '펀치(punch)에 취하다(drunk)' 란 뜻으로 지속적으로 머리에 강한 충격을 받아 뇌세포가 차츰 손상되면서 일어나는 후유증이며 복싱선수나 미식축구 선수들과 같이 머리에 지속적인 충격을 받는 운동선수들의 대표적인 직업병이다.[12] 인파이팅만 한다거나 아웃복싱만 한다거나 철저하게 카운터 전략만을 쓴다거나 하는, 고정적인 전략에 매몰되는 복서 타입.[13] 말콤 엑스의 영향이 크다.[14] #[15] 알리와 테럴의 경기[16] #[17] 안타깝게도 두 선수의 또다른 공통점이 있다면 희소질환을 앓았다는 점이다. 로빈슨의 경우 1형 당뇨병을 앓았다.[18] 상술했듯 알리 재단에서는 금메달을 버렸다는 얘기를 부인하고 있다.[19] '어쩌면 무하마드 알리는 천사였다'[20] 조지 포먼을 상대로 6라운드 진행 중에 클린치 상태에서 포먼의 귀에 대고 한 말. 포먼은 이 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말을 한 알리는 포먼을 8라운드 KO로 꺾고 챔피언 타이틀을 되찾는다.[21] 조지 포먼을 상대로 8라운드 KO 승리를 거둔 후 인터뷰에서 한 말.[22] 소니 리스턴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후 인터뷰에서 한 말. 당시에 알리가 이긴 것 자체가 엄청난 센세이션이었다. 도박사들 사이에서도 배당율이 리스턴 7, 알리 1 수준이었고 알리는 데뷔한 지 얼마 안된 신인에다가 리스턴은 당대 최고의 하드펀처로 손꼽히는 강자였다.[23] 윗몸 일으키기를 몇 개나 하느냐는 질문에 답하며.[24] 베트남 전쟁 징병을 거부하며.[25] 소니 리스턴과의 1차 타이틀 매치를 하루 앞두고 알리가 질 것이라고 말하는 대중들 앞에서 낭송한 시라고 한다.[26] 한문으로는 '口語'. 말로 하는 시, 혹은 글을 뜻한다. 즉석에서 워드 플레이와 운율 구성에 초점을 맞춰 재치있게 언변을 구사하는 일종의 언어 예술이다.[27] 조지 포먼 못지 않은 권투 역사상 최고의 핵주먹 중 한 명으로, 이 토크쇼에서 알리가 자신이 겪어봤던 가장 강했던 펀처라고 말한 선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