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

최근 수정 시각:

1. -方2. -房3. 毛紡4. 模倣/摸倣/摹倣5. 우리 나라에 최초로 들어온 프랑스인 가톨릭 신부

1. -方[편집]

한자 부수의 하나. ‘於’, ‘旁’ 따위에 쓰인 ‘方’을 이른다.

2. -房[편집]

안방의 한 모퉁이에 붙어 있는 작은 방.

3. 毛紡[편집]

모방적과 모방직을 통틀어 이르는 말.

4. 模倣/摸倣/摹倣[편집]

우리가 보통 용어로써 쓰이는 모방은 대개 이쪽일 것이다.

1. 다른 것을 본뜨거나 본받음.

  • 외국 문물에 대한 분별없는 모방

  • 예술 작품에서는 모방보다 창조를 더 소중히 여긴다.

  • 단지 남의 나라를 모방만 하지 말고 우리의 독특한 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


2. 사회 집단의 구성원들 사이에 나타나는 의식적ㆍ무의식적 반복 행위. 어떤 개인ㆍ집단의 행위나 표현이 다른 개인ㆍ집단에 의하여 비슷하게 반복되면서 사회의 결합 관계를 강화하게 되며, 어린이의 학습 과정이나 사회적 유행, 또는 전통의 계승에 있어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 아이들은 모방을 통해 사회 규범을 익혀 나간다.


3. 이미테이션
다른 개인이나 동물의 행동을 관찰하고 이에 자극되어 그와 닮은 행동을 하는 과정.
또는 타인의 존재에서 지각된 행동양식을 적극적으로 재현하는 일.

구체적 내용은 매우 다양해서, 다른 개체의 행동을 보고 이와 닮은 행동을 무의식적,반사적으로 반복하는 경우에서부터 더욱 복잡한 행동과 사상적 내용을 의식적,자성적인 방법으로 흉내내는 경우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를 포함한다.
모방의 문제에 대한 관심은 처음에 사회행동 중에서도 볼 수 있는 현저한 유사성을 이해하고 설명하려고 하는 데서 출발하였다.

5. 우리 나라에 최초로 들어온 프랑스인 가톨릭 신부[편집]

Maubant, Pierre Phillibert

(1803년 ~ 1839년)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에서 조선에 파견한 선교사 중 하나. 중국 청나라에서 사목하여 한자, 중국 말에 능통했고, 조선에 입국한 후에는 한국말을 배우는 등 성직자로서 최선을 다해 일했다. 조선 헌종 1년(1835년) 조선에 몰래 들어와 조선인 가톨릭 신자들을 위해 가톨릭 공동체를 돌아다니며 미사, 성사 집전 등으로써 사목하고 선교하였다. 모방 신부가 부활절 미사를 집전한 이야기를 파리 외방 전교회에 편지로 써서 보내었는데, 자신의 체구보다 작은 조선의 전통가옥에서 가톨릭 미사를 집전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방인 사제 즉 선교 지역의 가톨릭 신자들을 교육하여 성직자가 되도록 하는 파리 외방 전교회의 전통에 따라, 1836년 12월에 김대건 안드레아, 최양업 토마스, 최방제[1] 프란치스코를 신학생으로 선발하여 마카오로 유학보내기도 했다.
물론 모든 공동체에서는 혼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므로, 정하상(바오로)등의 평신도 활동가들의 도움을 받았다. 실제로 김대건 신부의 부친인 김재준(이냐시오)은 교우인 정하상의 집에 머물던 모방 신부를 찾아가 세례를 받았고, 정하상의 권유를 받아 아들이 신학 공부를 하도록 했다.
헌종 5년(1839) 기해박해앵베르 범 라우렌시오[2] 주교, 샤스탕 정 야고보 신부와 함께 순교하였다.

1925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 1984년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한국 103위 순교성인).

[1] 유학 도중 위열병으로 죽었다.[2]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2대 교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