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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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원인
2.1. 감독은 승리에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지 않다2.2. 기회가 많은 만큼 실패하는 명선수도 많다2.3. 선수로서 요구받는 기량과 감독으로서 필요한 기량의 교집합과 차집합2.4. 아니 너넨 이 쉬운 걸 왜 못 해?2.5.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2.6. 구단의 재정과 지원 문제2.7. 아무리 명감독을 모아두어도 누군가는 하위팀 감독이 된다2.8.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 법
3. 결론4. 예시
4.1. 야구
4.1.1. 한국4.1.2. 일본4.1.3. 미국
4.2. 축구
4.2.1. 한국4.2.2. 외국
4.3. 농구4.4. 배구4.5. 미식축구4.6. 아이스하키4.7. 탁구4.8. e스포츠4.9. 번외: 명선수는 명해설자도 될 수 없다
5. 예외 : 명선수도 명지도자가 될 수 있다
5.1. 바닥에서부터 시작하는 레전드5.2. 선수 시절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휘어잡는다5.3. 난 사실 전술을 짜는 것도 잘한다5.4. 명장에게 배워서 명지도자가 된다5.5. 번외: 나는 더 큰 그림을 본다
6. 기타

1. 개요[편집]

널리 알려진 스포츠 격언 중 하나로, 선수 시절에는 그렇게 평균 이상의 모습을 보이면서 해당 종목을 평정하던 인물들이 이상하게 감독같은 지도자 자리에만 올랐다 하면 보통이나 그 이하의 성적을 내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여기서 유래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비슷한 경우를 얘기할 때 자주 쓰인다. 연기를 잘 한다고, 그림을 잘 그린다고, 노래를 잘 한다고 해서 가르치는 것도, 그리고 잘 한다는 보장도 없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는 그런 식.

나무위키에서는 프로 스포츠 감독 문서에서 남발되는 경향이 있다. 아무리 좋은 평을 듣고 좋은 성과를 거두던 감독이라도 단 한 번만 실패해도 무조건 상단 요약문에 "명선수는 명감독이 될 수 없다의 적절한 예시" 같은 식으로 붙는다. 심지어 반대의 경우에도 "명선수는 명감독이 될 수 없다의 훌륭한 반례" 따위의 글귀가 붙는다. 어느 감독이든 으레 한번쯤 실패하기 마련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단 한 번만 실패한다고 해서 바로 '구제불능의 실패한 감독'으로 단정하는 건 지나친 면이 있기 때문에 걸러서 봐야 할 필요가 있다.

2. 원인[편집]

2.1. 감독은 승리에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지 않다[편집]

천재 감독 한 명만으로 우승할 수 있다면 서로 그냥 천재 감독 스카우트 경쟁만 벌이지, 선수들의 엄청난 몸값의 FA비용은 다 뭘까? 돈으로 가치가 평가되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톱스타들의 몸값이 감독보다 훨씬 더 높은 것은 그만큼 승리에 차지하는 비중이 더 높다는 의미다.[1]

단적으로 2001년 월드 시리즈를 보자. 한국의 김병현이 마무리 투수로 등장하여 한국에서도 엄청난 화제를 불러 모았던 경기이고 지금도 회자되는 명승부이긴 하나, 감독보다는 메이저리그 사상 최고의 원투펀치커트 실링 - 랜디 존슨으로 이겼다고 다들 회상한다. 둘다 20승 이상에 2점대 방어율이라서 한 팀에 사이영상급 투수가 둘이나 있다보니 반칙이나 다름없었다. 당시 상대는 무려 4년 연속 월드시리즈 우승을 노리는 극강의 절대강자 뉴욕 양키스였고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는 창단한지 몇년안된 신생팀이었으나, 경험부족 등도 원투펀치 하나로 다 씹어버렸다.

1차전은 커트실링의 7이닝 1실점 승리, 2차전은 랜디존슨의 완봉승으로 압살해버렸다. 특히 랜디존슨은 이전까지만 해도 포스트 시즌 성적이 부진하여 심장은 훈련으로 키울 수 없다느니, 키만 멀대같이 크고 심장은 콩알만하다느니 안티들의 비아냥이 넘쳐났고, 실제 정규시즌 성적은 랜디존슨이 더 좋았고 이 해에 사이영상을 수상했음에도 포스트 시즌에 약하다는 이미지로 인해 포스트시즌의 에이스는 커트실링이 맡게 되었다. 당해 사이영상 수상자(리그의 에이스)가 포스트시즌에서 2선발을 맡는 이색적인 시리즈였다. 사이영상 수상자를 2선발로 밀어버리는 위엄. 하지만 이때 랜디존슨이 완전히 물올라서 북치고 장구치는 원맨쇼를 보여줬다. 이들의 완봉역투에 제 아무리 천하의 명장 뉴욕양키즈 감독이라도 별 수 없었다. 엄청난 화력의 강타선이 2경기 동안 단 1득점으로 침묵했으며 당시 뉴욕양키즈 감독의 "나보고 어쩌라고" 항변하는 듯한 넋나간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반면, 3,4,5차전은 내리 패했는데, 사실 애리조나 감독의 미스가 있었다. 4차전에서 역전홈런으로 마무리 실패를 했던 김병현을 5차전에서 다시 올렸는데, 또다시 동점홈런을 맞고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때 김병현도 욕을 많이 먹긴 먹었으나, 감독 또한 욕을 많이 먹었다. 사실 이 부분에서도 감독은 결과로 말한다는 진리를 알 수 있었는데, 만약 5차전에서 김병현이 무난히 세이브했다면 성공적인 승부수였다고 찬사받았을 것이다. 일단 6,7차전 홈에서 승부를 걸어야 하므로 마무리 투수인 김병현은 꼭 필요한데, 마침 2점 정도 리드니까 전날 세이브 실패로 의기소침해진 김병현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줘서 자신감도 살리고 6,7차전에서 김병현을 다시 한번 기용해보려는 복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병현이 동점홈런 맞고 무너지니 감독의 용병술이고 뭐고 다 뒤집어져 버렸다. 보다시피 선수의 기량이 감독의 전술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단 두번이나 무너져 버렸으니 6,7차전에서는 김병현이 봉인돼 버렸기에 감독 입장에서 욕만 먹고 선택지가 대폭 축소되어 버렸다. 하지만 역시 이런 감독을 살린게 바로 최후의 원투펀치였다. 6차전에서는 랜디존슨이 등장하여 7이닝 2실점 호투로 승리투수가 되었고, 대망의 7차전은 불멸의 에이스 커트실링과 뉴욕양키즈의 에이스 로저클레멘스의 맞대결이었다. 7회까지 1:1로 팽팽하게 맞섰으며, 9회엔 마무리로 전날 선발투수였던 랜디존슨을 올려버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강의 마무리투수인 마리아노 리베라[2]와 맞대결을 벌이게 된다. 존슨은 전날 선발투수의 영향으로 다소 구속이 떨어진게 보였으나 압도적인 구위로 씹어버리고 승리투수가 되어 월드시리즈 2,6,7차전 승리투수(3승)라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당시 존슨의 심장이 작다고 놀려대던 안티들이 모두 버로우했었으며, 명장으로 꼽히던 뉴욕 양키즈의 조 토레 감독도 무적의 원투펀치 앞에서 고개를 떨굴 수 밖에 없었다.

2001년 월드 시리즈를 돌아봐도, 생각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감독의 비중이 절대적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감독이 다소 무모해보이는 승부수를 띄웠을 때도 선수들이 성공해주면 최고의 용병술, 실패하면 작전실패로 욕먹는 것처럼 선수들의 기량이 감독을 들었다,놨다 하는 경우를 알 수 있다. 실제 당시 애리조나의 밥 브렌리 감독은 에이스 커트실링을 3일 휴식 후 등판이라는 모험을 감행하여 많은 우려를 자아냈으나, 커트실링이 호투하자 최고의 승부수였다고 칭찬을 받았으나, 5차전 김병현 투입은 마무리 실패하자 브렌리 감독에게 왜 전날 실패한 투수를 또 올렸냐고 욕을 먹었다. 만약 김병현이 세이브를 성공했다면 전날 충격적인 실패로 의기소침해진 팀 분위기를 수습하고 김병현에게 자신감을 줘서 6,7차전 선택지가 훨씬 넓어졌을테니 공격적인 승부수로 칭찬받았을 것이다. 이렇듯 감독의 용병술이 빛을 발하려면 선수들의 기량이 받쳐줘야 함을 알 수 있다.

또한, 감독들의 기량이 상향평준화되면서 변별력이 떨어지게 된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스포츠는 엄연히 룰이 있고, 당연히 그 안에서 나올 수 있는 전략 등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스포츠도 과학인데, 당연히 계속 경기가 열리면서 일종의 승리패턴이 교과서처럼 정형화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선발투수의 5인 로테이션이라든지, 마무리투수의 분업화라든지 이런 것도 다 야구를 계속 치뤄오면서 발전해 온 건데, 지금은 다들 비슷비슷하지 않던가? 2000년대 들어 보스턴의 감독이 뜬금없이 마무리투수를 디스하며 집단 마무리 체제로 한번 돌려봤다가 처절히 실패한 후 다시 마무리투수를 고정한 적도 있다. 한때 무규칙격투기라 불렸던 종합격투기는 초창기에는 비장의 서브미션이라든지 뭔가 비법이나 비기같은게 존재했었으나, 이것도 10년 정도 넘어가면서 전략이 오픈되고 일종의 승리패턴이 교과서처럼 정형화되어서 결국 '사부'의 비기보다는 선수 개인의 기량이 중요해진 것처럼, 다른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당장 독일 역사상 최강의 전력으로 우승했던 미네이랑의 비극과 최악의 전력으로 조별예선 탈락을 선사한 카잔의 기적의 독일팀 감독은 동일인물이었다. 2014 월드컵 준결승에서 '숙적' 브라질에게 미네이랑의 비극을 선사하며 7대1 대승을 이끌고, 메시의 아르헨티나를 꺾고 우승하여 '명장' 소리를 들었던 독일팀 요아힘 뢰프 감독은 2018 월드컵에서는 16강 진출 실패의 수모를 겪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첫 탈락이다. 그것도 마지막 경기에서 조 최약체였던 한국팀에게 2대0 참패를 당하면서 말이다. 지난 월드컵 대회를 우승으로 이끌었고, 4년이나 지났으니 감독의 경험치는 더 쌓였을텐데 말이다. 4년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선수들이 대거 세대교체되어 바뀌었다는 점이며, 그나마 남아있는 선수들조차도 기량이 많이 떨어졌다는 점이다. 특히 우승에 앞장선 뮐러, 케디라 같은 선수들이 러시아에서는 말 그대로 역적이 됐다. 만약 뢰프 감독이 2014 월드컵에서 독일 우승 시켜놓고 딱 은퇴했거나 물러났으면 한국의 히딩크처럼 전설의 명장으로 남았을 것이고, 만약 이번에 다른 감독이 독일팀 맡았다가 참사가 벌어졌다면 뢰프 감독을 그리워하는 목소리가 많았을 것이다.

결국 감독의 전술이나 작전을 실행하는 것은 선수들이기 때문에 선수들의 기량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아무리 전략을 잘 짰어도 선수들이 못 따라주면 폭망하는 거고, 전략엔 다소 문제가 있었어도 선수들의 기량이 뛰어나면 승리를 할 수 있는 것이고 말이다. 메시같은 경우는 수비수들이 뻔히 어떻게 올지 알고도 못막을 정도다. 더군다나 현대에는 인터넷과 정보의 발달로 인해 일반 축구팬들조차도 축구의 전술을 금방 꿰고 있을 정도로 상향 평준화가 이뤄진 상태기에 감독간의 변별력이 떨어지고 선수들의 기량이 더욱 중요해진 상태다. 예를 들어 메시호날두 같은 선수 확보하면 팀의 전력이 대폭 상승하는게 느껴질 것이다. 반면에 팀에서 메시나 호날두가 떨어져 나가면 치명적인 전력 손실이 느껴지고, 실제 메시나 호날두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아르헨티나포르투갈은 이 선수들의 은퇴 뒤를 걱정하고 있는 판국이다. 그만큼 이런 선수들이 팀 전력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의미.

2.2. 기회가 많은 만큼 실패하는 명선수도 많다[편집]

일단 선수 시절 명선수여야만 은퇴 후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

하술된 항목에도 존재하지만, 명선수는 반드시 명감독이 되는 것도 아니듯 명선수가 반드시 명감독이 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명선수는 선수시절 쌓아놓은 유산으로 인해, 그렇지 않은 선수들에 비해 은퇴후 지도자 코스에서 분명한 이익을 얻고 들어간다. 이 지도자 생활 시작점의 차이가 결과 평가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면 현역시절 스타플레이어로 은퇴한 명선수들은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거나 구설수에 휩싸이지 않는한 구단과의 친분이 두터우므로, 무명선수 출신보다 지도자 연수 및 감독 연수 등의 직접적인 지도자 교육 기회도 구단의 지원으로 훨씬 쉽게 받을 수 있다. 그것에 더해 선수 시절 쌓아놓은 돈이 많거나 구단의 지원을 받아 재취업 자체가 더 유리하다. 특히 골품제로 돌아가는 폐쇄적인 구단일 경우 근본적으로 명선수가 아니면 감독 기회를 못 받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또한 구단의 신임이나 선수 시절 쌓았던 인맥과 정치력을 동원하면 다른 코치들보다 빠른 승진가도를 달릴 수도 있다.

또한 팬덤의 지지나, 선수에 대한 구단의 신임은 물론이고, 운동선수라는 특성상 선수 시절의 명성을 앞세워서 팬들과 후배들을 따르게 하는 데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즉 그 스타급 선수가 선수 시절의 생활을 통해 이룩한 권위는 훗날 감독직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분명히 하나의 큰 무형적 자산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현역 시절 스타급 선수는 무명 선수보다 은퇴 후 지도자 과정은 물론, 최종 목표인 감독 선임 기회를 훨씬 많이 받으며 실제로 감독이 많이 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큰 수의 법칙에 따라 1) 실패하는 스타급 선수 출신 감독이 무명 선수 출신 감독보다 숫자가 많고, 2)현역 시절 명성 때문에 그 실패가 반작용으로 두드러져 보이며, 3)그 명성 + 구단 내외적 사정으로 인해 이들이 오래 안짤리고 버틸수 있어서, 애초에 숫자도 적고, 실패해도 그러려니 하는데다, 빨리 잘리면 그만인 듣보잡 감독보다 이들의 실패가 눈에 띌 수 밖에 없다. 즉,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라는 말은, 감독으로 실패한 전직 스타선수의 사례가 상대적으로 많고 그 내용이 부각되기 때문에 생겨나는 선입견이다.

비 스타선수들의 경우 정말 능력이 뛰어나거나 인맥, 정치력을 갖춘 게 아니라면 감독까지 가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우므로, 감독이 되는 것 자체가 이미 한 번의 검증을 통과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스타들보다 실패할 확률은 좀 더 적고, 이름값이 없어서 실패해도 사람들의 기억에 크게 남지 않는다.

그나마 선수 능력과 코치 능력, 매니징 능력을 별개로 보기 시작한 선진 프로 구단들은 이제 명선수라고 무조건 우선권을 주지 않는다. 특히, 팀의 직접 통제나 육성보다는 프런트와의 소통과 관리가 중요한 야구 감독의 경우, 이미 미국은 선수 시절 듣보잡이었어도 코치 연수를 열심히 받고 팀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면 기회가 비교적 쉽게 주어진다. 대표적인 경우가, 현역 선수시절부터 선수로는 가망없다고 판단하고 자비로 GM들 윈터미팅을 따라다니며 감독직 미래를 설계한 휴스턴 애스트로스A.J. 힌치같은 케이스. 그 외에도 주제 무리뉴처럼 일찌감치 구단 밑바닥에서 경력을 쌓고 지도력을 인정받아 명감독이 되는 훌륭한 성장 사례도 있다.

한국, 일본은 아직도 선수 시절 명성이 높을수록 감독직을 하는 데 유리하다. 대놓고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성골 아니면 감독을 못하고, KBO리그 역시 선수 시절 스타가 감독 기회를 먼저 받는 편이다. 특히 지방구단쪽이 이것이 심한 편. 이전의 기준으로 보면 한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는 커녕 절대 감독이 될 수 없는 초라한 선수 시절을 보낸 염경엽의 감독 승진은 넥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인사이며 한국 야구판이 작게나마 변화하고 있다는 사례로 볼 수 있다.[3][4]

상대적으로 미국 스포츠는 현역시절 레전드가 감독이 되는 경우가 흔치 않은 편인데, 아무래도 드래프트로 팀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서 로컬팀과의 일체감을 갖는 것 자체가 엄청난 행운인 수준이고, 대체로 돈관리만 잘하면 은퇴후 진로가 더 넓기도 하고 정말 팀의 레전드인 경우 감독보다 프런트 참여를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아예 구단주가 된 마이클 조던이나 존 엘웨이 같은 경우가 대표적. 워낙 벌어놓은 돈도 많고 유명세를 굳이 감독하면서 깎아먹을 이유가 없으며 미국 프로스포츠 특성상 오너쉽과 프런트가 분리되어있어서 감독이란 자리가 크게 팀을 지휘하는 권력을 쥐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유럽 축구같은 경우는 반대로 명선수의 감독 영전이 매우 당연한 케이스로 취급받는다. 축구는 이론적 전술의 발달이 비교적 미비하며, 실제 축구 경험이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런 이유로 선수들은 실제 경험이 없을 경우 감독을 무시하기 십상이기에, 잘 나갔던 선수라는 권력과 리더쉽이 필요하고 소속팀의 운영에도 많이 관여하기 때문. 반대로, 율리안 나겔스만으로 대표되는 신세대형 지도자들은 무명선수거나 아예 선수 경력이 없는 약점을 엄청난 연구와 노력으로 채워서 보드진에 어필을 하고, 이를 매니징에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결과를 내고 명성을 차근차근 쌓아서 성장한다. 반면 스타급 선수가 2,3부리그에 1,2년 정도 낙하산으로 들어가 경험만 좀 쌓고 하루아침에 최상위리그 지도자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는 편.

프로축구의 경우 지도자 자격증을 AFC P, A, B, C, D급 5종류로 구분하는데, 상위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현장 지도 경력을 필수로 요구한다. 예를 들어 각급 대표팀을 지도할 수 있는 A급 자격증의 경우 U18까지 통용되는 B급 소유자가 지도 경력 2년을 쌓아야 신청 가능하다. 때문에 유스 팀부터 시작해서 대학 팀까지 광범위하게 거느리고 있는 K리그 클래식 빅 클럽의 스타 선수라면 산하 팀에서 지도자 과정을 밟을 수 있다는 작지만 큰 혜택을 누리게 된다. 포항 스틸러스울산 현대 호랑이 두 팀의 통수를 친 때문에 축구계에서 비빌 언덕이 없어진 설기현이 대학 감독 제의가 오자 시즌 개막 바로 전에 인천 유나이티드 통수를 치고 갑자기 현역에서 은퇴한 것도 이런 속사정이 있다.

2.3. 선수로서 요구받는 기량과 감독으로서 필요한 기량의 교집합과 차집합[편집]

사실 명감독은 명선수였던 경우가 많고 비율이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경우로 따지자면 물론 명선수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률로 보자면, 명선수는 정말로 적은 수의 선수들인데 그 중에서도 꽤나 많은 수의 명감독이 나온다. 헌데 그냥 대충 유명한 정도의 선수들이나 수많은 무명선수들이 초등학교 코치, 감독 등 아주 아래쪽에서부터 쩔쩔 매면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프로 2, 3부리그나 프로 2군으로 올라오며 걸러진 끝에 명감독이 탄생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명선수가 명감독이 되는 확률은 엄청나게 더 높다.

그 이유는 명선수와 명감독의 자질이 많은 부분 겹치기 때문이다. 프로 선수들을 지도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기술적인 자질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국가대표까지 하던 박지성이 맨유에 들어가고 나서야 솔샤르에게 새로운 슈팅 비법을 터득한 것처럼 높은 단계에 있는 명선수일수록 자신만의 특별한 노하우와 팁을 가지고 있다. 2010년대 중반 수원 삼성의 염기훈은 아무리 욕을 먹어도 몇 시즌 연속으로 리그 도움왕을 차지하고 있는데, 고종수가 코치해 주고 있다. 고종수 정도 급의 선수가 아니고서야 누가 염기훈에게 킥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어지간한 선수가 아니면 염기훈이 말을 들을 이유가 없다. 또, 필립 람이 가지고 있는 풀백과 미드필더를 넘나들며 게임을 지휘하는 특별한 감각과 노하우는 현재 필립 람밖에 발휘하지 못하는데, 그런 선수를 육성하고 싶다면 또 누가 있어 지도해 줄 수 있겠는가? 물론 감독은 이것 말고도 할 일이 많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해당 스포츠에 대한 기술적인 권위나 이해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5] 이 부분이 코치가 할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세상일은 그렇게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당장 골키퍼 코치, 피지컬 코치 빼면 감독, 수석코치, 일반 코치 하나로 30명 정도를 지도하는 축구구단도 비일비재하다. 또한 설령 코치진 규모가 많은 구단이라 할지라도 감독의 기술적, 전술적인 감식안이 중요한데, 감독이 선수의 플레이나 컨디션을 미세하게 알아챌 안목이 없으면 감독의 구단이 아니라 코치의 구단이 되는 것이다. 그 안목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명선수일수록 높다고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이고. 즉 명선수의 능력과, 감독의 기술을 지도하고 개선하는 능력과, 감독의 전술적인 안목은 딱 구분해서 얘기할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니다.

이렇듯 명선수가 명선수인 이유는 기본적으로 해당 스포츠에 대해 기술적, 전술적으로도 높은 이해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풍부한 경험을 겸비하고 있어서 그로부터 비롯된 뛰어난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 명선수가 은퇴하고 어떤 팀을 지도하게 된다면, 이를 바탕으로 많은 이점을 지니게 된다. 슥 지나가다가도 어떤 선수가 겪는 기술적인 어려움을 직관적으로 관찰하고 지도해 줄 수도 있고, 한 시즌 동안 어떤 선수의 훈련이나 플레이를 지켜보면서 몸상태가 올라왔는지 아닌지, 이 상황에서 어떤 선수가 들어가야 성과를 올릴 수 있을지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다. 선수 시절에도 명선수가 필드 위에서 미묘한 변화나 기미를 감지하고 그를 바탕으로 승부를 뒤집는 절묘한 센스를 발휘했다면, 당연히 감독이 되어서도 그 선수는 그러한 조화를 부릴 것이다. 그라운드의 여우라 불리는 신태용이 아무 코치 경력 없이 선수 은퇴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성남 일화 감독으로 부임해 1년차에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했을 때, 교체 선수 기용을 기가 막히게 해내기도 했다. 물론 그 다음 해 감이 안 맞아 떨어지면 엄청 헤매는 모습도 많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선수가 실패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선수 능력=감독 능력'이라면, 무명선수는 무명감독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선수로서는 그저 그랬음에도 명감독인 사례는 제법 많다. 한국의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거스 히딩크 감독도 선수시절에는 그다지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으며, 독일 통일 이후 처음으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월드컵 우승을 이뤄낸 요아힘 뢰프 감독이 선수 시절엔 차범근의 백업 선수였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이것은 감독에게 요구되는 재능과 선수에게 요구되는 재능이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종목 차이는 존재한다. 예를 들어 축구같은 경우는 골키퍼를 제외하고는 사실 어느 포지션이든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자질이 비슷하다. 공격수도 상황에 따라서 수비를 하고 수비수도 공격을 하는게 축구다. 또한 선수들 역시 전체 흐름을 보며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기에 이런 점에서 감독에게 요구되는 자질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야구는 다르다. 포지션이 철저히 분업화되어 있다. 즉, 굳이 전체 경기 흐름을 볼 필요없이 타자라면 그냥 한 경기에 4번 정도 돌아오는 자기 타석에서만 잘 치면 그만이다. 또한 축구는 11명이 필드에서 집단으로 뛰고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만큼 골/어시스트 등을 제외하면 정확하게 숫자로 통계내기가 힘들기에 경기의 전체적인 흐름을 읽는 감이 중요하다. 하지만 야구는 세이버메트릭스 문서를 봐도 알 수 있듯, 기본적으로 투수-타자 1대1 대결인만큼 방대한 통계자료가 나온다. 이 타자는 좌투수에게 약하다던지, 체인지업에 약하다던지 철저히 수치화가 가능하며 야구 감독들은 이런 데이터들을 일일이 분석해서 선수 라인업을 짜고 선수교체도 해야 하므로 야구는 선수와 감독에게 요구되는 자질이 많이 다르다.

영화계에서 명배우가 명감독이 될 수 없다는 말이 회자되는 이유는 배우와 감독의 요구되는 자질이 다른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배우야 자기 배역만 잘하면 그만이지만, 감독은 전체적인 조율을 담당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4번타자라면 그냥 다른 것 필요없이 타석에서 홈런 뻥뻥 쳐대면 OK지만, 감독은 전체적인 경기조율과 분석, 선수 컨디션 체크, 선수교체시기 판별 등등 요구되는 자질이 다르다. 물론 찰리 채플린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명배우이면서 명감독이기도 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명배우라고 꼭 명감독이 된다는 법은 없다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6]

말하자면 선수 재능과 감독 재능은 많은 부분에서 겹치고, 선수로서의 재능이 없으면 지도자를 시작하기도 어렵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수와 감독의 재능은 상당 부분에서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우선 가장 큰 이유는 선수 시절의 멘탈로는 감독직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선수 시절에는 자신이 맡은 임무만 충실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많다 보니 팀 동료의 일거수 일투족에 신경쓸 이유나 여유도 없거니와 기술과 심리적인 부분 역시 감독이나 코치들이 맡을 일이지 자신은 자기의 컨디션이나 기량만 신경쓰면 별 문제가 안된다. 설령 경기가 안 풀려 감정적으로 나온다고 해도 "오죽이나 경기가 안 풀려 답답하면 저럴까?"라고 실드는 쳐주는 경우가 있다. 문제는 감독이 된 이후로는 이게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감정적으로 격해있는 경우나 들뜬 선수들을 잘 추스려 이성적으로 안정된 상황에서 경기를 진행하도록 하는 역할이 감독에게 주어진 과제 중 하나다.

슬램덩크(만화)에서도 김수겸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벤치에서의 김수겸은 이성적인 판단력과 심리 상태에서 경기를 운영해 나갔다. 그러나 일단 벤치를 떠나 경기장안으로 들어온 그는 선수로서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감정적인 상태에서 경기를 뛰었다. 그러다 강백호서태웅 두 신인들의 활약을 보고는 경악을 금치못해 그 이후 제대로 선수들을 장악하지 못했다.[7] 여기에 선수단 전체에 대한 거시적인 안목이 요구되기도 한다. 선수 한명, 한명이 각각 다르고 각자가 플레이하는 스타일 역시 다르기 마련이다. 이들의 장단점을 파악해 때와 장소에 알맞게 기용하는 능력 역시 감독에게 요구되는 능력이다. 즉 선수 시절보다 더 넓은 안목이 필요하다는 것.

사실 스포츠행정학이나 스포츠심리학 같은 주제에서도 언급되지만, 이것은 "피터의 원리"(Peter Principle)를 들이대면 쉽게 의문이 풀린다. 선수로서 뛰어난 능력은 감독의 역량을 보장하지 않는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감독에게 필요한 역량이다. 실제로 감독은 선수일 때보다 높은 역량이 필요하다. 감독과 선수는 원래부터 성격이 다른데, 선수로서 이룩한 업적만 보고 감독에 앉혀놔도 제대로 움직일 줄 아는 태도 때문에 더 뼈아프게 실패한 사례다.

2.4. 아니 너넨 이 쉬운 걸 왜 못 해?[편집]

이렇게 가슴 트래핑 후 플립플랩, 마르세유 턴 한 다음에 라보나 킥으로 촥! 어때요? 참 쉽죠?
- 차범근, KDB대우증권 광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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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카렐린, 레슬링 강습 중.

원인으로 지목된 다른 항목들은 '명선수라고 해서 모두 명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닌 이유'에 대한 설명에 가깝지만, 이 항목 만큼은 '명선수이기 때문에 오히려 명지도자가 되기에 불리한 이유'에 해당한다. 즉 항목명에 가장 걸맞는 이유라고도 할 수 있다.

노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타고난 재능이 없으면 성공하기 어려운 분야가 바로 스포츠이다. 물론 프로에 입단한다는 것만 해도 엄청난 재능의 소유자들이다. 허나 입단이 아니라 프로에서 뛰고, 더 나아가 명선수라고 인정되려면 거의 무조건적으로 타고난 재능을 엄청나게 필요로 한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이 죽어라 노력해서 얻은 결과물을 명선수들은 쉽게 얻어내곤 한다. 그 결과 평범한 선수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선수의 노력을 폄하하거나[8] 의아하게 생각하는 등 감독과 선수 사이에 균열이 생기기 쉽다.

또한 팀 운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교체 명단에 들어있는 선수들이다. 물론 선발 선수들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선발 선수들은 사생활 등의 문제가 아니라면 대부분 상승세에 속하거나 안정적인 출전이나 수당 이직 등을 보장받기 때문에 이 선수들의 관리는 비교적 쉽고 또 게임에 내보내 놓으면 비교적 감독이 덜 관여해도 알아서들 잘 하는 측면이 있다.

반면 교체나 대기 명단의 작성 및 활용이야말로 감독의 역량이 가장 뚜렷하고 진하게 발휘되는 부분이다. 헌데 이들이야말로 가장 관리하기 어려운 선수들이다. 교체 선수들은 주전 선수들에 비해 마음의 부담이나 스트레스가 훨씬 더 크다. 왜냐하면 필드에 나가 플레이하는 것은 선수로서의 미래와 수입과 행복 등등 여러 중요한 것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이 여러 복잡하고 어려운 이유로 경기에 뛰지 못하고 있다. 단순히 실력이 크게 차이가 난다면 괜찮다. 헌데 정말 잘 알아볼 수 없는 종이 한 장 정도로 실력차가 나거나, 한가락했었지만 노쇠화로 인해 떨어지는 중이거나, 부상의 여파가 남았거나, 실력은 훨씬 더 낫지만 팀의 전술이나 정신자세, 사회성, 선수들끼리의 궁합 혹은 실력으로는 우위여도 다른 선수의 스타성 때문에 잘 뛰지 못하는 등 수많은 이유가 있다.

교체 선수들의 기량과 경기 감각을 유지해야 팀이 긴장하고 성장하고 활력이 넘치는데, 저런 수많은 스트레스 때문에 그들의 마음은 불안정하다. 이들의 마음을 잘 어루만져서 계속 날카로운 경기력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헌데 명선수들은 타고난 재능으로 성공가로를 달리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 미묘한 처지에 있는 선수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선수 한 명 한 명마다 각자 다른 성격과 사생활과 가정형편 등이 있는데 이를 돌보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다. 이런 교체선수까지는 그렇다 쳐도 완전한 후보 선수들도 잘 돌봐 줘야 뜻하지 않은 기량발전이나 적절한 부상땜빵 등 팀에 호재가 찾아오는 법이다. 이 역시 명선수들에게는 어려움이 있다.[9] 반면 같은 명선수라도 비교적 두뇌회전이나 사회성이 좋거나 노력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사람들은 평범한 선수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편이다.

실제로 차범근이 대한민국 국대 감독으로 재직할 때 선수들의 능력을 헤아리지 못하고 능력 밖의 기술[10]이나 전술을 요구했다. 해설로 전업하면서 꽤나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아~ 저 쉬운 것을...이다. 차범근에게 쉬운 것이지 절대 쉬운 공이 아닌데 말이다. 선수들 및 코칭스태프와 불화를 겪은 사례도 있고, 야구에서는 이만수, 김시진, 선동열 등이 비슷한 사례를 만들어냈다. 알렉산드르 카렐린은 "상대방이 방어 자세를 취한다고 당황할 필요 없습니다. 그저 상대의 허리를 잡고 들어올리세요." (카렐린 리프트) 라고 말하는 강의 비디오가 있는데, 저 허리를 잡고 들어올리라는 상대편 체급이 무게 100kg이 넘는 헤비급 레슬러들이다. 강의를 듣는 레슬링 선수들이 다 먼산만 쳐다보며 답답해하는 표정인 건 .

2.5.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편집]

극히 일부분이긴 하겠지만, 이러한 사고로 감독직에 임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또 어떤 면에서 이것은 사실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스타 플레이어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는 없었을 테니까...

그러나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인간사에서 모든 것은 변하게 되어 있다. 당사자가 선수 시절이었던 때와 감독이었던 지금과는 경기 성향이나 선수들의 기량이 상당한 변화를 겪는다는 점은 부인하지 못한다. 당장 농구만 하더라도 개발된 초창기에는 신체적인 접촉이 금지되었던 스포츠였지만, 지금은 리바운드를 위한 몸싸움이 흔하게 일어나고 전체적인 경기 진행 속도도 빨라지는 등 꽤 격렬한 스포츠가 되었다. 이는 야구도 마찬가지이다.

국내지도자들이 이런쪽으로 가장 악영향을 끼친 종목이라면 바로 배구이다. 1990년대 국제 배구는 스파이크 서브의 등장, 배구공의 공기압 변화, 랠리제 도입, 서브룰의 변화(서브 구역 확대, 서브의 네트터치 인정) 등으로 큰 변화를 겪으면서 2000년대 이후 스피드 배구가 세계적 대세가 되었다. 그러나 국내 배구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선수 생활을 하던 1970 ~ 80년대의 사고방식으로 안정적인 리시브와 패턴공격에만 집착하면서 날개공격수의 오픈공격에만 올인하는 몰빵배구로 퇴화하여 국제경쟁력을 상실하였다. 그리고 최근에 최태웅처럼 2000년대 이후 대표팀으로 국제대회에 출전하면서 직접 선수로 세계적 수준의 스피드 배구를 경험한 젊은 세대도 지도자로 등장하면서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이렇듯 모든 종목이 흥행을 염두에 두고 방송중계에 적합하도록 룰을 개정하면서 더 빠르고 더 박진감 넘치는 진행을 내용을 요구하고 있다.

스타 선수 출신 감독 역시 나름대로의 이유는 댈 수 있다. 선수 시절 경험했던 것도 있는지라 그것도 무시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것 역시 타당성이 있는 것이 세부적인 것은 변했지만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으므로 당당하게 말할 자격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새로운 경기 환경과 변화에 거부감을 일으키는 요소가 되기도 하며, 영광스러웠던 선수 시절에 대한 자부심으로 점철된 경험이라는 것까지 더하면 이것이 오히려 올바른 지도력을 갖추는데 방해가 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2.6. 구단의 재정과 지원 문제[편집]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요소 중 하나인데, 아무리 스타 선수 출신 감독이라고 해도 감독이 마술사는 아니고 더구나 조물주나 신은 더더욱 아니다. 경영에 빗대 말하자면 제 아무리 뛰어난 경영자라고 해도 회사의 주주들이나 경영진의 전폭적인 지지 없이 정상적인 기업체 운영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과 같은 이치다. 회사의 재정 상태가 오늘 내일 하는 것도 모자라 곧 쪽박 차고 거리에 내몰일 일만 남은 기업체를 단지 이름난 경영인이라고 해서 앉혀놓고 회사 살려내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2015년뉴욕 메츠가 전문가의 예상을 뒤집고 2015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내셔널리그 챔피언이 되었던 것 역시 전임과 현 단장의 양질의 선수 영입과 더불어 제한된 예산 내에서 팀을 운영하는 실력을 가진 샌디 앨더슨과 같은 단장의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것은 그저 이름값에만 의존해 뭔가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진 이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다. 뭐 반대로 구단주가 돈은 꽤 많지만 브렌던 로저스가 영입을 못해 반은 말아먹은 리버풀 FC 같은 사례도 있고, 부산 아이파크처럼 지원도 안 해줘서 망하는 경우도 있다.

클럽팀에서는 얘기가 다르지만, 98 월드컵의 차범근은 이 부류에 속한다. 축구협회 주류와 차범근의 갈등은 많은 사람들이 아는 유명한 얘기다.

LG 트윈스나 최근의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그런 케이스인데, 이 팀들은 선수단의 전체 실력대비 구단 내 야알못 높으신 분들의 관심을 지나치게 받고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 감독이 팀을 제대로 컨트롤 하기도 전에 위에서 이래라저래라 간섭이 지나치게 심해서 팀 통제가 많이 무너진 케이스다.

꼭 위의 두 팀이 아니어도, 이른바 국내 최고의 명문, 빅마켓 혹은 그이상의 세계적인 명문팀이라 불리는 팀들 상당수가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편이다. 워낙 유명세가 크고 팬덤도 넓고 두터운 팀은 그만큼 투자가치도 높고 언론의 관심도도 높아서, 정말 사방 팔방에서 숟가락 얹으려고 달라붙는다. 이때문에 이런 팀은 프런트,투자자들끼리 내부 정치질도 치열하고, 1경기, 1주, 1달만 못해도 팬과 언론이 팀의 부진을 참을성을 가지고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렇게 외풍이 심한 팀은 그래서 현역 명성에 기댄 감독 선임이 많은 편이다. 그래야 외풍을 차단하기 조금이라도 쉽다 보니...

2.7. 아무리 명감독을 모아두어도 누군가는 하위팀 감독이 된다[편집]

스포츠의 세계는 상대평가. 세계 최고 감독을 한 리그에 모아 두면 1위팀 감독은 진정한 명감독 소리를 들을 것이고, 누군가는 최하위를 기록하며 욕이라는 욕을 다 먹는다. MLB 승률 1~10위 감독을 한국의 10개팀에 분배하면 하위팀 감독은 메이저리그에서 아무리 잘했어도 사퇴하라는 소리를 듣는다. 6~10위 감독을 해고하고 다시 MLB 승률 1~5위팀 감독 데려온다고 해도 또 순위가 갈리고 하위팀 감독은 욕먹는게 스포츠다. 홈런 30개를 쳐도 40개, 50개 치는 선수가 많으면 대접 못받는것처럼 실제 감독능력이 뛰어난다고 한들 더 잘하는 팀 감독이 박수를 받고 하위팀 감독은 비난을 받게 된다. 전교 1등들이 모인 서울대에서도 누군가는 꼴등을 한다.

2.8.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 법[편집]

아무리 명장이라고 해도 언젠가는 성적이 부진할 때가 있다. 신이 아닌 이상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쯤은 슬럼프를 겪게 되는데, 이 슬럼프를 겪지 못하면 그 효과는 성적이 점차 하락세를 타게 된다. 비단 감독 뿐만 아니라 잘 나가는 선수들도 성적이 영 좋지 못할 때가 있는데, 이는 감독이라고 해서 사정이 별반 다를 바가 없다.

3. 결론[편집]

데이비드 모예스, 토니 풀리스, 루이 판 할, 아리고 사키, 리누스 미헬스, 그레이엄 테일러, 거스 히딩크, 아르센 벵거, 주제 무리뉴, 위르겐 클롭, 우나이 에메리[11], 조지 칼, 토미 라소다, 톰 랜드리, 돈 슐라, 전창진, 추일승, 위성우, 요아힘 뢰프, 마르첼로 리피, 김학범, 임달식, 이광종, 김철용, 황현주, 라르스 라예르베크, 치치, 카를로스 케이로스, 김판곤, 김태형, 염경엽, 알렉스 퍼거슨, 오스카르 타바레스,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양승호, 김종민, 이정철, 브루스 아레나,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 알레한드로 사베야, 페르난두 산투스, 스벤 예란 에릭손,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 후안 카를로스 오소리오, 조 매든, 로베르토 마르티네스, 즐라트코 달리치, 필립 트루시에 등을 봐도 알 수 있겠지만, 이들은 선수 시절에는 큰 명성을 떨치지는 못했어도 지도자로서는 각자의 종목들에서 길이길이 남았다. 필 잭슨이나 팻 라일리 등도 선수 시절에는 평범했다. 그러나 필 잭슨은 감독으로서 NBA 최다 우승 경력을 거머쥐었다[12]. 심지어 레오 베인하커르그렉 포포비치[13], 잭 램지, 빌 피치, 플립 손더스, 브래드 스티븐스, 에릭 스폴스트라, 김태환, 안드레 빌라스보아스,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파헤이라, 마우리치오 사리[14], 최인철 등처럼 아예 프로 선수 출신[15]도 아니었던 사람들이, 모두 명장들로 이름을 날리는 사례도 꽤 많다.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이 널리 퍼진 탓에 정말로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 일반화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진짜로 명선수가 명지도자가 되지 못한 사례야 매우 많지만, 선수 시절 못지않게 명장이 된 사례도 충분히 있으며, 또한 꼭 명선수가 아닌 선수가 지도자로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격언의 정확한 의미는 '지도자 실력이 선수 시절 명성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일 뿐이며, 따라서 '명선수라고 해서 모두 명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정도가 더 적합한 표현이다.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라는 다소 극단적인 표현이 통용되는 것은 아마도 사람들의 인상과 임팩트 때문이 아닐까 싶다. 명선수 출신이 아닌 지도자들이 크게 성공할 경우 언론은 스토리와 드라마를 예쁘게 포장하기 좋으므로 그들을 집중적으로 취재하며 많은 기사를 생산하곤 한다. 반대로, 선수 시절 참으로 잘 나가던 지도자들이 큰 무대로 화려히 데뷔했다가 맥도 못 추고 실패할 경우, 엄청난 유명세를 바탕으로 시작부터 큰 관심과 기대를 걸던 사람들이 실망하면서 깊은 인상을 받기 쉽다. 또, 언론 역시 이번에는 별볼일 없던 선수와는 반대로 비극적인 드라마와 스토리를 포장하기 좋으므로 많은 기사를 생산하곤 한다.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당연히 감독은 성공보단 실패할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누구나 감독에게는 ‘전력보다 우수한 성적’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꼴찌후보팀 감독에게는 강등권 탈출이, 중위권팀 감독에게는 상위권 진출이, 상위권팀 감독에게는 우승이 요구된다. 애초에 감독은 대다수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어정쩡한 선수생활을 보낸 감독의 실패’는 그냥 묻히지만, ‘화려한 선수생활을 보낸 감독의 실패’는 인구에 회자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렇듯 명선수와 명지도자의 상관관계에 따른 사람들의 인식은 임팩트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처럼 보이므로, 섣불리 일반화해선 안 된다. 여러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지도자로서 선수 시절 명성에 부합하는 활약을 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고, 선수 시절 명성을 훨씬 초월하는 경우도 있다. 즉 선수 역량과 지도자 역량 사이에 절대적인 상관관계는 없고 다양한 양상이 있을 수도 있다. 말하자면 일반적으로 명선수 출신 지도자에 대해 선수 시절 기량에 못지 않은 감독이 될 것을 막연히 기대하지만, 선수와 지도자가 각각 책임질 역량은 다른 까닭에 실제로는 명지도자가 될 수도 있고,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4. 예시[편집]

(★) 초기에는 명지도자의 반열에 올랐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성적 부진을 겪어서 평가가 나빠진 경우.
(☆) 지도자 시절 사건/사고로 물의를 일으킨 경우. 링크는 연관 있는 사건/사고 문서.
(●) 평가가 갈리거나, 초반에는 못하다가 갈수록 성적이 좋아지는 경우.
(○) 선수 생활도 논란이 있는 경우.
(취소선) 제명된 인물.

4.1. 야구[편집]

4.1.1. 한국[편집]

  • 김기태(★●) - 2017년에 KIA 타이거즈를 우승으로 이끌며 명장 반열에 오르내리기도 했지만, 그 외 시즌들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경기 운용과 끝없는 양아들 기용으로 자팀 팬들에게 신뢰를 잃는 일이 빈번하다. 더군다나 LG 트윈스 감독 시절에도 11년만에 비밀번호를 끊고 가을야구로 이끌었으나, 이듬해 성적 부진으로 시즌 초에 갑자기 사퇴한 경력이 있어서 LG 팬들에게도 평가가 썩 좋지는 않다. 당장 우승한 다음해인 2018년에는 무슨 실험이라도 하듯 아무도 이해 못하는 경기 운용을 통해 2017년 우승팀을 시즌 8위로 끌어내리는 다른 의미로 놀라운 기록을 써냈다. 물론 전반적으로 우주의 기운이 싹 빠진데다 선발진이 거진 반토막난 상태라지만, 그래도 5강 정도는 가는 팀이 8위를 했다는 건 정말 심각하게 못 한 거다. 물론 후반기에 꾸역꾸역 5위를 하고 있고, 가까스로 5위를 하면서 겨우 포스트시즌에 턱걸이하기는 했지만, 문제는 그 5위조차도 선수들을 예전 세이콘 뺨칠 정도로 쥐어짜서 겨우 이룬 것이라는 것. 그 때문에 마치 2019년은 야구 안 한다는 기세... 이렇게 2018년 시즌 운용을 보면 명장이라는 것에 의문점이 든다.

  • 김성한() - 해태 마지막 시즌에 감독을 맡아서 2년 연속 6할 승률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문제는 4년 동안 한국시리즈에 한 번도 못 가 봤다는 것이고, 무엇보다 훈련 중 부상자 발생, 포수 김지영 구타 사건 등 사건사고가 있어서 평가가 절하된다. 다만, 통산 감독 승률은 0.548로 매우 높은 편이다.

  • 김시진 - 현대 유니콘스, 넥센 히어로즈, 롯데 자이언츠 3개팀 감독을 맡아 모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면서 사람만 좋고 무능력한 감독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특히 팀이 완성되거나 완엉단계이던 2012, 2013년의 실패는 그야 말로 빼도 박도 못한다. 그래도 두 시즌 빼면 해체하기 직전의 시즌이었거나 선수 다 팔린 상황이거나 프런트의 상태가 다들 영 좋지 않았던 팀만 맡은지라 크게 비난을 받진 않는다. 기본적으로는 인간성이 좋은 편이고, 코치나 전력분석팀장으로서는 호평이 많다.

  • 김용희(★●) - 신사 이미지만 있고 승부사 기질이 없고 입으로만 강조하는 팀 시스템을 찾아볼 수 없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신사 이미지와 승부사 기질이 부족하다는 점에서는 김시진과 꽤 유사하다. 다만, 김시진이 감독 커리어 내내 불펜 혹사로 논란이 된 것과 달리 투수, 야수들의 최대한의 휴식을 보장하는 편이다[16]. 그리고 당대 SK는 5-7위권인데, 순위도 5-6위. 그래도 의외로 전력만큼은 해주는 편으로, 큰 실패는 없었다.

  • 김재박(★) - 현대 유니콘스 에서는 4회의 우승과 1회의 준우승을 이루어냈으나, LG 트윈스 감독으로서는 실패했고,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는 삿포로 참사도하 참사 등의 주역이었다.

  • 김한수(●) - 선수 시절에는 삼성의 소리없는 강자 소리로 들었고 코치 시절까지는 평이 괜찮지만, 감독으로 와서는 성적 부진과 이해할 수 없는 경기 운용, 선수 혹사 등으로 구단 역대 최악의 감독으로 내몰릴 위기에 놓여 있다. 그래도 팀 시스템이 완전히 무너진 채 감독수업 거의 못 받고 감독이 되었고, 나름 신인들에 기회를 주고는 있다는 참작 여지는 있다. 게다가 2018년 하반기 들어서는 의외로 선전했음에도 불구하고 포스트시즌 진출은 끝끝내 실패하였다. 그래도 무능한 감독들이 여러차례 등장함에 따라 비난은 어느 정도 줄어들었다.

  • 류중일(★●) - 삼성 라이온즈 감독 시절에는 진정한 명장 소리를 들었으나, LG 트윈스로 오고 나서는 2018년 여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DTD로 인하여 첫 시즌밖에 안 됐음에도 불구하고 평가가 상당히 나빠졌으며, 일각에서는 삼성 시절에 선수빨로 우승했던 것이 아니냐는 여론이 점점 커지고 있다.

  • 백인천(★) - LG에는 첫 우승 감독이고, 삼성에서는 비록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승엽을 발굴해내고 삼성 타선을 리빌딩한 감독으로 평가 받아 삼성팬들에게도 이미지가 좋게 남아 있지만, 롯데에서는 태업 수준으로 팀을 아예 방치하고 이대호를 망칠 뻔한 장본인이어서 욕을 거하게 먹었다. 지금까지도 KBO 리그 역대 최악의 감독을 뽑으라면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을 정도다.[17]

  • 서정환 - 삼성 라이온즈, KIA 타이거즈 감독 시절 핵심 불펜들을 혹사시켜서 다음 감독이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하게 만들어 버린 장본인으로 현재까지도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다.[18] 삼성의 경우에는 불펜 회복에는 성공했지만 KIA의 경우에는 2009년 우승 시즌을 제외하고는 불펜 덕을 계속해서 보지 못하고 있다. 특히 09년도 불펜의 핵심이었던 유동훈손영민 등이 10년도에 블론왕이 되면서 확인사살.

  • 선동열(★☆) - KIA 감독 한정. 우승을 두차례나 했음에도 불구하고 선수빨, 팀빨 우승이라는 말을 듣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감독 시절이던 2009년에는 21세기 들어 첫 포스트시즌 탈락과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의 무기력한 스윕패배로 까였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괜찮았으나 결국 2012년에 고향팀 KIA 타이거즈로 금의환향 후 불펜 강화 실패와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2연속 8위라는 매우 부족한 성적으로 인해 재계약 1주일만에 팬들의 반발로 사퇴하는 굴욕을 당한다. 게다가 KIA 시절에 신인 드래프트 에서 인성타령 하면서 지나친 대졸 사랑으로 까였다.[19] 그래도 이쪽은 프리미어 12 당시 국가대표팀 투수코치로서는 작두탄 듯한 교체능력을 자랑하며 투수코치 선동열은 여전히 높은 평가를 받으니 그건 다행이겠지만, 정작 후임 감독이 부임 3년차에 팀을 우승시키는 바람에... 그리고 2018 아시안 게임에서 자카르타 참사라는 한국 야구 사상 최악의 결과를 내고 말았다.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팀을 우승까지 이끌기는 했지만, 그 전에 엔트리 선발 선정 때부터 이어진 오지환, 박해민 병역 혜택 논란 때문인지 이미 대회 전부터 매우 나빴던 평가는 우승이라는 성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매우 나빴고, 게다가 아시안 게임 당시 청탁 및 금품 수수를 받고 가뜩이나 여론이 엄청나게 안 좋던 오지환을 선발했다는 의혹에까지 휘말리면서 가뜩이나 최악이 된 평가는 더 최악으로 치닫게 되었다.

  • 양상문(★●) - 이 쪽은 아예 리빌딩이라는 개념까지 없으면서, 감독 시절이나 프런트 시절이나 똑같은 돌소리를 듣고 있다. 결국 LG 단장 자리에서는 단 한 시즌만에 사임하였다.

  • 이만수(★●) - 시카고 화이트삭스 불펜코치 시절과, SK 와이번스 수석코치 시절에는 팀의 우승을 일궈내는 데 공헌을 했지만, SK 와이번스 감독대행부터 감독 취임 이후 연속으로 2년 동안은 한국시리즈에도 2번 진출했지만 모두 콩라인이였고, 이후에는 아예 가을야구에 진출하지도 못했고, 결국 물러났다. 다만, 전임자가 김성근이었다는 점과 후임자인 김용희 역시 큰 성과를 내지 못한 점으로 인해 어느 정도는 재평가를 받고 있는 중이다.

  • 이순철 - 선수 시절은 해태 왕조의 주역 중 하나이자 최강의 테이블 세터 중 하나였으나, 감독으로서는 LG 트윈스의 금지어. 일명 순페이라고 조롱받는다.

  • 조원우(★●) - 선수 시절에는 '쌍방울 돌격대'의 일원이었으며, 고향 롯데로 와서는 코치로써는 손아섭 등의 수비를 고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고, 감독으로써는 더블 스틸 등 섬세한 야구를 시도했으나 팀 컬러와는 잘 맞지 않았다. 하지만 신인급 선수들을 발굴해내서 리빌딩 부문에서는 나름 성공한 모습을 보였다. 2017년 시즌에는 전반기를 죽쑤고 있다가 후반기 때의 대활약으로 정규시즌 3위로 가을야구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준플레이오프에서 초보 감독티를 벗어나지 못해 NC 다이노스 김경문 감독에게 패하며 감독 및 팀 최초의 시리즈 업셋을 허용했다[20]. 그리고 2017년의 성과로 인하여 3년 재계약도 성공하였으나, 2018년 들어서는 이해할 수 없는 기용이 늘면서 또 성적은 왕창 하락하면서 또다시 평가가 추락하고 있다. 사실 2017년도 조원우가 잘해서라기보다는 선수들이 잘 해준 것과 LG와 넥센DTD를 시전해준 때문으로, 결과적으로 운빨이 작용한 것이다. 즉, 7월까지는 무의미한 작전과 이해할 수 없는 엔트리를 시전하다가[21] 8월에는 아무것도 안 한 것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는 2018년부터는 다시 안 좋은 고질병이 다시 도져서 추락한 것이라 보아야 한다. 결국 시즌 종료 이후 해고당했다.

  • 한대화(●) - 한화 이글스 감독 시절 8 - 6[22] - 8을 찍었는데, 2010년에는 선수층이 안습한데다가 구단 프런트의 지원도 받지 못한 상태였던지라 아무도 욕하지 않았고, 2011년에는 신들린 대타 성공률 등으로 야왕으로 칭송받았으나, 2012년에는 김태균, 박찬호 등이 돌아왔음에도 작년보다 성적이 더 나빠지자 결국 그 해 8월, 경질되었다. 하지만 후임 감독들도 연달아 부진한 성적을 내자[23] 한화 팬덤 사이에서 재평가를 지속적으로 받기도 했다.

4.1.2. 일본[편집]

  • 가네다 마사이치(★) - 불같은 성격으로 퇴장도 많이 당하며 심판들은 싫어했다. 그러나 인기는 자기 팀 선수들보다도 훨씬 좋았다. 비인기+떠돌이 구단이던 롯데 오리온즈의 슈퍼스타라고 봐도 무방했을 정도.

  • 가네모토 도모아키 - 2016년 첫 시즌 4위, 이듬해 2위를 기록했다. 후술할 다카하시 요시노부보단 일단 높은 줄로 보였으나 3년이 지난 현재는 정반대. 다카하시는 임기동안 최하위 경쟁은 하지 않았다. 이 사람은 임기동안 B클래스만 두번을 찍었고 2018년 시즌에는 17년만에 최하위까지 기록했다. 감독으로 지낸 3년 동안 제대로 키워낸 선수도 없으며 그나마 싹수가 있던 유망주는 모조리 퇴보해서 자칫 잘못하면 노망주로 끝날 위기이다. 특히 후지나미 신타로에게는 무슨 미운털이 박혔는지 정신적으로 압박을 줘서 스스로 무너지게 만들었다. 그래도 오카모토 가즈마라도 참을성 있게 키워낸 다카하시와는 비교가 안 된다. 구단에서 투자를 안 해줬으면 변명거리라도 되는데 임기동안 구단도 나름대로 투자는 꽤 해줬다. 돈을 허튼 데 써서 문제지. 게다가 다카하시는 3년 동안 기대에 못미친 성적에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라도 했는데 이 사람은 고시엔 관중석 절반이 빈자리가 되어가는데 자신의 진퇴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없다. 취임 시에는 3년 계약이라고 발표했으나 실제로는 2년 계약에 2년차가 끝나는 2017년 시즌 종료후 새로 3년 계약을 체결했던 것으로 알려져 한신 팬들이 뒷목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성적 부진으로 사퇴했다.

  • 곤도 사다오(★) - 1982년 주니치 드래곤즈의 우승 당시 감독. 감독생활 내내[24] B클래스를 왕창 찍고(다만 5할 승률을 찍어 보기도 했다) A클래스를 딱 1번 찍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1번이 바로 저 리그 우승이다.

  • 나카니시 후토시(★)

  • 나카하타 키요시 - 희한하게도 성적에 비해서 평가는 좋은 감독이다. 감독 재임기간동안 6-5-5-6을 찍으면서 예전의 감독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성적을 거뒀지만, 경기 외적으론 재임기간 동안 선수, 팬들과 같이 어울려서 웃고 울고 하는 재밌는 모습이 점점 호응을 얻어 팬들의 증가[25]가 뚜렷하게 나타났고, 팬들 사이에서의 여론도 좋은 편이었다. 심지어는 저 성적에도 불구하고 구단측에서는 임기만료 후 재계약까지 추진할 정도였다(!). 감독직을 물러난 것은 성적부진에 따른 구단의 압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인이 코칭스탭 구성에서 구단과 의견이 일치하지 않자 스스로 사임했기 때문.[26]

  • 다니시게 모토노부

  • 다카하시 요시노부(★) - 대선배가 세웠던 팀 최다연패기록을 42년만에 넘어서는 13연패를 기록하였고 결국 선수시절 맛봤던 B클래스를 11년만에 기록하였다. 같은 2년차지만 위의 가네모토 감독과는 정반대의 성적. 하지만 3년 차에는 그래도 가네모토보다는 나은 것으로 보인다. 최소한 부진한 성적에 자진해서 물러나는 염치는 있다.

  • 도바시 마사유키

  • 마나카 미쓰루(★) - 재임 첫해인 2015년 야쿠르트를 14년만의 리그 우승과일본시리즈 진출로 이끌었으나 얼마 안가 2016년 5위, 2017년 최하위로 성적이 곤두박질치고 말았으며 임기 마지막 해에는 96패라는 처참한 성적으로 본인의 스왈로즈맨 커리어까지 마감했다. 현재 해설자로 활동 중인데 해설자로는 상당히 호평 중. 일부 팬들로부터는 구단으로 돌아가지 말고 해설자로 계속 남아있기를 바라는 목소리도 있다.

  • 마유미 아키노부

  • 무라야마 미노루

  • 미무라 토시유키 - 선수 시절에는 카프의 일본시리즈 2연패를 이끈 간판 유격수였으나, 감독으로서는 1996년 11.5게임 차를 뒤집힌 역대급 DTD의 장본인이자 15년 연속 B클래스의 스타트를 끊는 영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 사사키 쿄스케

  • 스기시타 시게루

  • 스기우라 타다시

  • 스즈키 케이시(☆)

  • 아리토 미치요

  • 야마모토 코지(★)

  • 야마우치 카즈히로

  • 오시타 히로시

  • 오오시마 야스노리

  • 오카다 아키노부(★)

  • 와다 유타카(★)

  • 야마다 히사시

  • 야마우치 카즈히로

  • 요시다 요시오(★)

  • 이나오 카즈히사

  • 이시게 히로미치

  • 이토 츠토무(★) - 치바롯데는 2017년 팀타율이 5월 26일이 되서야 2할대에 도달하였고 퍼시픽리그 꼴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27] 다만 이 사람에 대한 평가는 신중해야 하는게 세이부 시절 팀을 12년만에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고, 롯데 감독으로 부임해서도 팀을 2년연속 포함 4년 임기동안 3번의 포스트시즌 진출로 이끌기도 했다. 특히 롯데시절에는 주어진 전력에 비해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그 때문에 재계약에도 성공했고 OB 출신이 아닌 감독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장기집권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1년의 실패로 범용한 감독이라고 평가하기에는 업적이 뚜렷하기에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었는데, 8월 13일 세이부와의 홈경기를 앞두고 시즌이 끝난 후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8시즌 막판 주니치 신임 감독설이 나오는 등 아직 감독으로서 이 사람의 능력에 어느 정도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많다.

  • 타나베 노리오 - 선수시절에는 유격수로서 팀 수비의 핵이었고 25년 연속 A클래스라는 흠좀무한 기록을 남겼던 친정팀의 감독을 맡았으나 재임기간 중 단 한번도 A클래스에 오르지 못했다.

  • 타부치 코이치

  • 타오 야스시 - 라쿠텐 초대 감독이지만... 97패(+2할 승률) 찍고 경질당했다. 다만 창단 첫 해란 점과, 창단 당시 오릭스+킨테츠 선수단 분배 드래프트 과정에서 주전급 선수들을 대거 오릭스에게 빼앗긴 점 때문에 동정의 여지는 있다.

  • 타카기 모리미치

  • 호리우치 츠네오 - 통산 203승을 기록한 명투수였으나 요미무리 감독 2년차이던 2005년 62승 80패로 구단 역사상 최다패를 기록하였다.

  • 후루타 아츠야

  • 후지무라 후미오(☆)

  • 후지타 타이라

  • 히로세 요시노리 - 선수 시절엔 일본프로야구 통산도루 2위, 도루왕 5회, 수위타자 1회 수상 기록을 보유한 난카이 호크스프랜차이즈 스타 리드오프였지만, 감독으로썬 재임기간(1978~1980) 내내 3할 승률, 5위 미만을 찍으며 호크스의 20년짜리 비밀번호의 서막을 열어버렸다. 다만 이쪽도 다카하시 요시노부처럼 전임 감독을 내친 프런트의 강권으로 제대로 된 지도자 경력도 없이 억지로 감독직을 맡았던 것도 있고, 당시 난카이가 재정악화는 물론이요 노무라 카츠야 해임소동 등으로 인해 팀 분위기가 좋지 않았던 데다가 주력선수들의 이적 혹은 부상[28]으로 팀 전력도 심하게 약해졌던 터라 동정의 여지는 있고 실제로 팀 분위기만큼은 잘 되살렸다는 평도 있다. 후일 난카이 호크스의 후신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에서 수비주루 코치(1991~1992)로써 보인 뛰어난 성과[29]를 보면 그냥 감독시절에 운이 없어도 너무 없었던 듯 하다.

4.1.3. 미국[편집]

  • 돈 매팅리

  • 라인 샌드버그

  • 로빈 벤추라

  • 멜 오트 - 현역 시절에는 511홈런을 친 강타자였지만 그의 감독 시절을 대변해 주는 말이 사람 좋으면 꼴찌다.

  • 모리 윌스

  • 토니 페레즈

  • 펠리페 알루

  • 피트 로즈(☆) - 성적 자체는 신시내티 레즈 역대 감독 통산승수 순위권에 들어갈 정도로 좋았지만, 자기 팀 경기의 승패에 돈을 걸고 도박을 해 사실상 승부조작을 한 것이 발각되어 영구제명 크리. 다른 쓰레기 감독들은 농담으로나마 나오는 승부조작, 도박 했다는 소리를 이 사람은 진짜 했다는 점에서 이 항목에 나온 인물들과 비교하기가 미안할 정도다.

  • 19~20세기 초반에 활동한 감독 겸 선수 상당수.

4.2. 축구[편집]

4.2.1. 한국[편집]

  • 고정운(☆●) - 2018 시즌 전부터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렸음과 더불어 FC 안양 팬들이 적대심을 가지고 있는 FC 서울 출신이면서 가정 폭력 혐의가 있는 심우연 영입을 감행하며 비난을 받았고, 2018 시즌 개막 후 11경기동안 3무 8패 7득점 21실점이라는 처참한 성적을 내다가, 이후 11경기에서 6승 2무 3패 20득점 14실점이라는 성적을 거두며 시즌 초반 11경기 무승하던 안양이 맞나 싶을정도로 좋은 경기력과 성적을 거두고 있다. 그리고 11경기가 지나자마자 귀신같이 경기력이 원 상태로 돌아왔다.

  • 고종수(○●) - 애초에 대구 FC 마냥 대전 시티즌도 실질적인 감독의 역할까지 모두 대표 이사인 김호가 상당히 관여하고 있는 만큼 고종수는 사실상의 바지감독이며, 감독으로서의 존재감이나 영향력은 상당히 미미하다고 한다. 특히 시즌 초 상대가 2명이나 퇴장당하며 수적으로 우세한 안산과 서울 이랜드와의 2경기에서 마저도 필드골은 단 한 골도 못 넣고, 경기 내내 무전술로 일관하며 실망스러운 경기를 펼친 것으로 인하여 고종수도 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이 바로 입증된 상태이며,[30] 이 외에도 과거 선수 시절 선수단 무단 이탈 사건을 비롯해서 각종 구설수에 오르고 있고, 이에 대해 반성은 커녕 되레 상당히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는 등 대전 팬들로부터 신임을 전혀 얻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후반기 들어서 11경기 연속 무패 행진 등으로 성적이 점차 좋아지고 있고 두달 연속 이달의 감독으로 선정되는 등 조금씩 옹호의 여론도 생기고 있는 중.

  • 곽경근(☆) - 2014년 드래프트에서 신인선수 선발과 관련해 각종 비리 논란으로 경질되었다.

  • 김대의(★) - 2017시즌 막판 수원 FC의 감독으로 부임해 잔여 2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며 기대를 모았으나, 2018시즌 들어서는 전반기에 5연패를 딩하다는 등의 부진으로 리그 하위권으로 처지며 팬들로부터 강한 퇴진 압박을 받아야만 했다.

  • 김도훈(★●) - 인천 감독 부임 첫 시즌에도 고전하다가 중후반에 살아나면서 8위로 잔류했지만, 그 다음 시즌 성적 부진으로 팀이 강등 위시에까지 몰리면서 시즌 중 사임하게 된다. 그러나 울산 감독을 맡으면서 2017년 팀의 FA컵 우승을 거머쥐었지만, 2018 시즌 알차게 선수들을 영입하고도 개막 4연패를 달리면서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반등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현재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여론이다. 하지만 이마저 ACL에서 16강 탈락으로 도루묵이 된 상황.

  • 김병수(★●) - 영남대학교 감독 부임 이후 패스 축구를 팀에 장착시키면서 대학 무대의 하위권이였던 영남대를 대학 무대의 강자로 성장시키고, 이명주, 김승대 등의 실력 있는 선수들을 배출해내며 지도력을 인정 받았고, 2017년 서울 이랜드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기대를 모았지만, 기대와 달리 부진한 성적을 거두며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입에 실패, 결국 퇴진하였다. 하지만 구단으로부터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며, 특히 퇴진하는 과정에서 구단의 개입과 압박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전반기에는 비록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지만, 후반기 들어서는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으며, 애초에 단기적인 성과가 아닌 서울 이랜드 구단의 장기적인 미래를 바라보는 측면에서 영입한 김병수였기에, 감독 본인만의 팀 컬러가 아직 다 완성되지 않은 시점에서 지나치게 일찍 쫓아냈다는 동정론도 상당하다.

  • 김봉길(★) -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 부임 초에는 봉길 매직으로 불리며 인천에 새 바람을 불어넣으며 지도력을 인정 받았으나, 2014 시즌에는 변함 없는 뻔한 전술로 지도력에 한계를 드러내며 감독직에서 경질되었으며,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 부임한 이후에도 무전술로 팬들의 비난을 받고 있었으며, 결국 2018 AFC U-23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답이 없는 경기력으로 겨우 4강에 올라가 우즈벡에 1-4로 참패했고, 이어 3, 4위전에서도 카타르에 0-1로 패배했다. 이로 인해 결국 U-23 대표팀 감독 자리에서 경질되는 운명을 맞이했다.

  • 김상호 - 2011년 강원 FC의 감독으로 부임해 리그 최하위를 기록하였으며, 2012년에도 최하위를 맴돌자 감독직에서 경질되었고, 2014년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해 좋은 스쿼드를 보유했었음에도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무려 14년만에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치욕을 겪으며 U-20 월드컵 진출에 실패하였으며, 이후 상하이 선신의 감독직에도 부임하였으나 성적 부진으로 금방 물러났다.

  • 김인완(●) - 전남 드래곤즈 유소년 감독 시절 이종호, 지동원 등을 배출하며 유소년 지도자로서 지도력을 인정받았으나, 2013년 대전 시티즌 감독 부임 후 경험 부족의 한계를 드러내며 감독직을 1년도 못채우고 성적 부진으로 인한 스트레스성 정신 질환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2018시즌 중반 성적 부진으로 물러난 유상철을 대신해 전남 드래곤즈의 감독 대행으로 부임해 팀의 분위기를 추스르고 상승세를 이끌어내며 지도자로서 많이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김호(★☆)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 시절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장 반열에 있었고, 대전 시티즌 감독 부임 후 첫 시즌에 대전을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그 다음 해에 구단 역대 최다 예산 가지고 시즌에서 단 3승밖에 거두지 못하였고, 트레이드를 감행하면서까지 팀의 베테랑이나 스타 플레이어들을 다 내보내고 신인 선수들을 데려오면서 선수단을 지나치게 어린 선수들 위주로만 구성하였고, 특히 2009 시즌에는 에이전트 비리 사건을 비롯해 에이전트 K씨와 부적절한 유착 관계를 가지며 실세로서 구단을 장악하려 들었고, 이외에도 각종 불미스러눈 사건 사고에 휘말리면서 대전 구단과의 마찰로 불명예 퇴진하였으며, 이후 용인축구센터 총감독 시절에도 무능한 일처리 능력을 비롯한 각종 사건사고로 논란이 끊이지를 않았었다.

  • 노상래 - 2016 시즌에는 전남 드래곤즈를 사상 처음으로 상위 스플릿 A에 진입시키며 명장의 반열에 오르는 듯 했지만, 2017 시즌에는 14경기 무승을 비롯한 심각한 부진을 이어가며 강등권을 맴돌았고, 결국 2017 시즌을 끝으로 감독직에서 사의를 표명했다.

  • 박경훈(★●) -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 시절 방울뱀 축구와 오케스트라 축구를 앞세워 좋은 성과를 거두면서 명장 반열에 있었지만, 성남 FC 감독 부임 이후 K리그 챌린지 내에서는 가장 좋은 스쿼드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자신이 내세웠던 헤비메탈 축구가 리그에서 통하지 않으면서 시즌 초중반까지 리그 최하위에 머물렀으며, 이후 헤비메탈 축구를 버리고 기적처럼 순위를 4위까지 끌어올리며 플레이오프에 진입했으나 아산 무궁화 FC에 패하며 승격이 좌절되었고, 결국 부임 1년만에 경질되었다. 다만 후반에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음에도 지나치게 일찍 경질했다는 동정론도 상당하다.

  • 박성화(★☆●) - 포항 스틸러스와 청소년 대표팀 감독을 맡으면서 지도력을 인정받았으며, 2007년에 부산 아이파크의 감독으로 부임하였으나, 감독 부임 2주만에 감독직에서 물러나 청소년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크게 까였고,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실망스러운 성적을 거두었으며, 2015년 경남 FC 감독으로 부임한 후 2부리그에서 하위권을 기록하며 자존심을 구겼다. 하지만 경남이 부진한 것이 무조건 박성화의 탓이라기보다는 구단주로부터 지원을 제대로 못 받았다는 이유도 크다.

  • 백종철

  • 변병주(☆)

  • 서정원(●) - 2016 시즌 때는 구단 프런트에게 제대로 지원을 받지 못한 점도 있었지만, 2017년 들어서 지도력에 문제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특히 아무리 성적이 좋아도 수원의 우승 경쟁상대인 전북과 서울에게 고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31] 결국 2018 시즌 도중 사퇴하고 말았다.

  • 손현준(★) - 2016 시즌 중반 사임한 이영진 감독을 대신해 감독 대행으로 대구 FC를 이끌며 대구의 1부리그 승격을 이끌어내며 대구 FC의 정식 감독으로 승진하고 K리그 챌린지 최우수 지도자상을 수상하는 등 지도력을 인정받았으나, 2017시즌 K리그 클래식에서는 지도력의 한계를 드러내며 시즌 중반 성적 부진을 이유로 사퇴하였다. 애초에 대구 구단에서 단장인 조광래의 영향력이 워낙 막강한 탓에 바지감독이 아니냐는 말도 나왔을 정도로 감독으로서의 존재감이 미미했다고 한다.

  • 신진원 - 신진원은 정식 감독 경력은 없고, 감독 대행 신분으로 대전 시티즌을 단 2경기 이끌었지만, 2경기에서 각각 7골씩 총 14골을 실점하는 치욕을 겪었다.

  • 신태용(★●) - 성남 일화 감독 시절 지도력을 인정받은 신태용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직을 역임하다가 이광종 감독의 건강 문제로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2016 AFC U-23 축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해 준우승을 거두며 올림픽 진출을 성공시켰으나, 문제는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2:0으로 앞서가다가 3골을 내리 먹히면서 2:3로 패배했다는 것이며, 이어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는 조별리그에서 독일, 멕시코 같은 강호들을 상대로는 선전하며 조 1위로 8강에 진출했으나, 정작 손쉬운 한참 약체인 온두라스를 상대로는 실망스러운 경기를 펼치면서 1:0으로 패하며 대회에서 탈락했다. 올림픽 이후 안익수 감독의 후임으로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에 긴급 소방수로 투입되어 자국에서 개최된 2017년 FIFA U-20 월드컵에 출전해 조별리그를 무난히 통과하며 16강에 진출했으나, 16강에서 포르투갈을 상대로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펼치며 1:3 패배, 개최국에 어울리지 않는 성적으로 대회에서 조기 탈락했다. 대회 직후 울리 슈틸리케의 후임으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에 또다시 소방수로 투입되었으나, 이란우즈베키스탄 등과의 월드컵 최종예선 경기에서 졸전 끝에 0:0으로 가까스로 비기며 힘겹게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였고, 이후 러시아모로코와의 평가전에서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펼치면서 패배하면서 팬들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경질 여론이 조성되었는데, 이후 콜롬비아전 승리를 시작으로 해서 동아시안컵에서 한일전 통쾌한 4:1 승리를 앞세워 대회 우승을 거두면서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여론이었으나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1~2차전까지는 여론이 매우 좋지 않은 편이었지만 3차전에서 비록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어도 독일을 2:0으로 격파하면서 기사회생하는 분위기이다.

  • 안익수(★) - 부산 아이파크 감독 시절 특유의 질식 축구로 찬사를 받았지만, 이후 성남 일화에서 아쉬운 결과를 기록하였고, 이후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2016년 AFC U-19 챔피언십 조별예선 탈락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거두며 경질되었다.

  • 여범규

  • 유상철(★●) - 대전 시티즌에서는 성공했다고 보긴 어렵지만, 울산대학교 축구부 감독을 맞고 나서부터는 성공하였다. 이후 전남 드래곤즈 감독에 선임되었는데, 개막전에서부터 승리하면서 좋은 출발을 보이는가 싶더니만, 그 이후로는 제대로 성적을 내지 못하면서 팬들의 비난의 목소리가 크지만, 아직은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반응도 있다... 만 2018년 여름 이후로는 이런 것도 거의 사라지다시피 할 정도로, 평가가 상당히 악화되었다. 결국 2018년 8월 16일, 한시즌도 다 채우지도 못하고 시즌 중에 사퇴하였다. 하지만 막상 사퇴하고 나니까 아쉽다는 의견이 많아졌다. 그리고 팬들도 유상철을 까기보다는 무능한 구단과 모기업을 까는 목소리가 더 높다.

  • 윤성효(●☆) - 다만, 이 사람은 2017년을 기점으로 김해시청에서 상당히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며 이 반열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조금씩 보이고 있다만 김해시청 감독 부임 중 갑질 문제로 구설수에 오르고 있기도 하다.

  • 윤정환(★●) - K리그 한정. 1부리그 문턱도 못간 사간 도스를 승격시키면서 명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울산 현대 감독에 선임된 첫시즌에는 무승의 늪에 빠진 끝에 하위스플릿으로 추락했고 다음 시즌에는 살아나는듯 했지만 FA컵에서는 4강에서 수원 삼성에 패하며 탈락했고 리그에서는 4위에 그치며 AFC 챔스 진출에 실패해 구단과의 계약 연장에 실패하며 사실상 우승하지 못한 윤할이 되었다.[32] 하지만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서 2부에서 1부에서 승격한 세레소 오사카 사령탑으로 부임 후 첫 시즌에 1위를 기록하면서 이 반열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조금씩 보이고 있다. 그냥 K리그가 안 맞는 거 아닌가?[33]

  • 이기범(☆) - 신갈고등학교 감독 재직 시절 각종 사건 사고로 논란이 일면서 김호 총감독과 함께 도덕적 해이가 문제로 지적되면서 시의원으로부터 퇴진 압박을 받기도 하였으며, 2017년 대전 시티즌의 감독으로 내정됬으나 앞선 문제 등을 이유로 팬들이 크게 반발하고 여론이 좋지 못한 관계로 끝내 대전 시티즌 감독 취임이 무산되면서 2군팀 감독으로 좌천되었다. 이후 자신의 아들이 대전 시티즌에 선수로 입단하면서 또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애초에 대전 시티즌은 실질적인 감독의 역할까지 모두 대표 이사인 김호가 상당히 관여하고 있는 만큼 이기범 역시 대전 시티즌의 1군 감독인 고종수와 마찬가지로 사실상의 바지감독이며, 감독으로서의 존재감이나 영향력은 상당히 미미하다고 한다.

  • 이기형(★●) - 2016시즌 막판 인천 유나이티드의 감독 대행을 맡아 팀의 상승세를 이끌며 팀의 K리그 클래식 잔류를 이끌며 팬들로부터 '이기는 형'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지도력을 인정받아 2017시즌을 앞두고 정식 감독으로 승진해 2017시즌도 팀을 K리그 클래식에 잔류시켰지만, 잔류한 것을 제외한 단순히 성적과 결과만을 가지고 봤을 때는 상당히 실망스러운 성과를 거두었으며, 또한 선수단 운영에 있어 대표 이사가 개입을 했었고, 임중용 코치와 불화가 있었다는 구설수까지 오르면서 시즌 종료 후 인천 서포터즈들이 이기형 감독과 팀의 대표이사의 퇴진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 이상윤 - 해설가로나 오래 활동했을 뿐, 정식 감독 경력은 없고, 감독 대행 신분으로 성남에서 사실상 감독으로서 팀을 이끌었는데, 자신이 감독 대행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현실을 외면하고 지나치게 자신이 원하는 축구 철학만을 추구하다가 끝내 경질되었다. 바로 아래의 최문식과 흡사하다고 볼 수가 있다.

  • 이영무(☆) - K리그 챌린지가 출범하기 이전부터 고양 자이크로 FC의 감독을 역임했는데, 2014년 후반기에 실세로서 구단을 사유화하고 구단 내 종교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신고가 접수되면서 감독직에서 사임하였지만, 구단의 기술고문으로 어김없이 구단 내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했고, 2015년 2월 무혐의 판정을 받으며 고양 감독으로 재선임되었으며, 이후에도 구단의 실세로서 고양 구단을 장악했었다.

  • 이영익(☆) - 대전 시티즌 코치 시절 최윤겸 감독을 잘 보좌해내며 대전 시티즌의 전성기를 이끌었지만 이후 최윤겸 감독과의 폭행 파문에 휘말리며 구단의 명예를 실추시킨 채 불명예 퇴진하였고, 2017년 대전 시티즌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과거 코치로서 전성기를 이끌었던 만큼 감독으로서도 과거와 같은 성적을 거두리라 기대를 모았지만, 감독으로서의 지도력의 한계를 드러내며 부진을 면치 못하며 대전을 K리그 챌린지 최하위로 떨어뜨리면서 코치와 감독은 엄연히 다른 직책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 이영진 - 애초에 대구 구단에서 단장인 조광래의 영향력이 워낙 막강한 탓에 바지감독이 아니냐는 말도 나왔을 정도로 감독으로서의 존재감이 미미했다고 한다.

  • 이차만(★) - 과거 대우 로얄즈 등을 이끌고 명성을 떨치던 베테랑 감독으로서 명장의 반열에 있었지만, 2014년 경남 FC 감독직 역임 당시에는 현대 축구의 흐름과 지도방식에 서툰 구시대 지도자라는 점과 지도자로서 현장을 너무 오랜 시간 떠나 있었다는 점 등의 한계를 드러냈고, 경남은 강등됬다.

  • 이태호(●) - 2001년 대전 시티즌을 이끌고 FA컵 우승이라는 성과를 거두기는 했지만, 정작 리그에는 2년 연속으로 리그 최하위를 기록하였으며, 특히 2002시즌에는 리그에서 단 1승만을 기록하는 최악의 부진을 기록했으나 FA컵 우승이라는 빛에 의해 크게 가려졌다.

  • 이흥실(●) - 비록 정식 감독이 아닌 감독 대행이였지만 국가대표 감독으로 부임한 최강희 감독을 대신해 사실상 감독으로서 2012시즌 전북 현대 모터스를 이끌었으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대량 실점을 기록하며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굴욕을 겪으며 흥겹게 실점이라는 치욕적인 별명을 얻었으며, 이외에도 지도자로서 능력치가 전술에만 몰빵되어있고, 필요한 선수 관리 및 조합, 안목 등 모든 부분에서 무능력하다는 평가를 들었고, 2012시즌 전북팬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며 전북을 떠났으며, 2015년 안산 무궁화 FC의 감독으로 부임하였으나 K리그 챌린지 최강 스쿼드를 보유하고도 리그 하위권에 그쳤다. 하지만 2016년 안산 무궁화를 이끌고 K리그 챌린지 우승을 거두었으며, 2017년 신생팀 안산 그리너스 FC 감독을 맡아 신생팀 치고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었다. 하지만 2018시즌에는 극심한 부진을 이어가면서 끝내 감독직에서 사퇴했다.

  • 이회택(★) - 대한민국 대표팀을 이끌고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압도적인 성적으로 월드컵 진출을 성공시키며 기대를 모았지만, 본선에서는 3전 전패라는 실망스러운 성적으로 조별리그에 탈락하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였다. 애초에 이회택 본인이 자신은 별로 지도자는 적성에 맞지 않지만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냥 했다고 말한다.[34]

  • 정해성

  • 조광래(★) - FC 서울경남 FC 감독 시절까지는 명장의 반열에 있었지만,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 부임 이후에는 한일전 0:3 패배 및 레바논 원정 1:2 패배 등의 많은 치욕들을 겪으며 경질되었다.

  • 조성환(★)

  • 조영증

  • 차범근(★●) - 선수 시절의 활약은 참으로 대단했지만, 감독으로서의 성과는 선수 시절의 그것을 따라가지 못한다. 특히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의 대표팀 감독 시기는 가장 끔찍한 흑역사. 물론 당시의 처참한 결과는 단순히 차범근의 능력만이 문제가 아니긴 했지만, 이는 복잡한 내용이므로 해당 문서에서 확인할 것. 그래도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으로써는 성공하였다.

  • 최문식 - 2015시즌 중반 대전 감독직에 취임한 이후 팀의 사정을 생각하지 않고 지나치게 자신만의 축구 철학만을 추구하다가 대전은 2015시즌 단 4승만을 기록하는 심각한 부진 속에서 리그 최하위로 강등되었으며, 2016년에도 김동찬, 황인범 등의 K리그 챌린지 내에서는 최고의 스쿼드를 가지고도 승격은 고사하고 승강 플레이오프에도 진출하지 못했다. 특히 인터뷰에서 잦은 선수탓 및 책임 회피 발언 등을 이유로 팬들과 선수들로부터 신뢰를 잃어 감독 역임 기간 내내 팬들의 강한 사퇴 압박을 받아야만 했다.

  • 최순호(●)

  • 최영준

  • 최용수(★) - FC 서울 감독 시절에는 리그 우승과 FA컵 우승을 하면서 명장 반열에 올랐지만, 중국으로 간 후에는 부진을 면치 못하며 비슷한 시기에 사임한 홍명보와 같이 사임했다.

  • 최윤겸(☆●) - 감독으로서의 지도력이나 성과만을 봤을 때는 이 사람 자체가 명장이라는 것에는 크게 이견이 없지만, 과거 대전 시티즌 감독 시절에 맥주캔으로 이영익 코치를 폭행하면서 대전 구단의 명예를 실추시켰고, 결국 이영익과 같이 불명예스럽게 구단에서 동반 퇴출됬었다. 단순히 결과와 능력만 있다고해서 명장이라고 할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이후 강원 FC의 감독을 맡아 좋은 성과를 거두며 강원을 K리그1 무대에도 경쟁력 있는 팀으로 만들었지만 2018년 부산 아이파크 감독직에 부임하고나서는 기대테 못미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최진철(★) - 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2015년 FIFA U-17 월드컵에서 브라질을 비롯한 강호들을 연달아 꺾고 16강에 진출하며 명장 반열에 오르는 듯 했지만[35], 이후 포항 스틸러스에서 최악의 부진을 거듭한 뒤에 한시즌만에 사퇴하면서 차근차근 코치, 감독 경력도 쌓지 않고 단기간의 성과와 명성만을 보고 그냥 감독으로 임명할 경우 보여줄 수 있는 최악의 결과의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한참 아래의 선배 홍명보와 비슷하다고 볼 수가 있다.

  • 최진한(★) - 경남 FC 감독시절에는 팀을 2시즌 연속 8위로 이끌고 2012년에는 기적의 상위스플릿 진출 및 FA컵 준우승을 기록했지만 2013년 들어서 안종복 단장의 개입으로 성적이 추락하며 자진사퇴하기에 이른다. 2014년에 부천 FC 1995 감독을 맡았지만 리그 최하위에 머물렀고, 2015년도 성적이 썩 좋지 못하자 경질되었다.

  • 허정무(★●) - 남아공 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을 거두며 명장 반열에 오르는 듯 했지만, 선수빨로 16강에 갔다는 소리도 약간 들었으며[36], 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후 인천 유나이티드에서는 별 성과를 내지 못하고 금방 사임하였다[39].

  • 홍명보(★) - 런던 올림픽 때만 해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동메달을 안겨주면서 명감독의 반열에 올랐고, 2013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였으나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을 박주영을 비롯해서 현재의 활약상을 보기 보다는 자신과 친분 있는 선수들로만 구성하며 엔트으리로 불리며 비난을 받았고, 월드컵에서 단 1승도 못거두고 조별리그 탈락을 기록하며 감독직에서 퇴진하였다. 2015년에는 중국 항저우 뤼청 감독으로 부임하였지만 감독 2년차였던 2016년에 팀이 강등당하자 결국 퇴진하였다.

  • 황보관(★)

  • 황선홍(★●) - 포항 스틸러스 감독 시절까지 명장의 반열에 있었고, 2016년 FC 서울 감독에 부임한 이후에도 2016시즌 리그 우승을 달성하였지만, 2017년에는 영입한 외국인 선수들의 잇따른 실패와 더불어 부진하면서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실패하며 팬들로부터 '참새'라는 별명을 들었으며, 2018 시즌을 앞두고는 팀의 레전드인 데얀을 라이벌 수원 삼성으로 이적시키고, 팀의 주축 선수인 오스마르마저 J리그로 보내면서 팬들로부터 한국판 로날드 쿠만으로 불리는 등 강하게 까이고 있었다. 그래도 2017 시즌부터 FC 서울이 짠돌이 모드로 들어간 탓에 황선홍보다 FC 서울 프런트 자체에 더 책임을 크게 묻는 사람도 적지 않아서 아직까지는 평가가 갈리는 축에도 속하는 편이었으나, 2018 시즌 초반에 심각한 부진을 이어가자 팬들로부터 본격적으로 강한 사퇴 압박을 받기 시작했고, 팀의 간판 스타인 박주영과 마찰을 빚기도 하였다. 결국 2018년 4월 30일, 자진사퇴하였다.

4.2.2. 외국[편집]

4.3. 농구[편집]

  • 강동희()

  • 김상식(●) - 오리온스 정식 감독 시절, 한 시즌을 다 채우지 못하고 성적부진으로 사임한 적이 있었다. 다만, 심용섭 전 단장이 저질러 둔 게 하도 많아서 어느 정도의 쉴드는 있다.

  • 김진(★●) - 오리온스 감독 때는 팀을 1시즌만에 꼴찌에서 우승으로 이끌며 6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중흥기를 만들었고, SK 감독을 맡은 이후로는 첫 시즌에 만년 하위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끌었지만, 다음 시즌에는 성적이 추락하게 되었고, 결국 2009~2010 시즌 중 사임하게 된다. 그리고 2011년 LG의 감독을 맡으며 고의패배라는 비난을 듣고, 김종규를 영입하면서 팀을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까지 이끌었지만, 가장 중요한 챔피언결정전 우승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2년 후 LG는 김종규의 부상, 김시래의 입대, 유병훈의 불법토토 도박으로 인한 출장정지, 용병들의 부상 때문에 성적은 다시 망했고, 그 결과 2017년을 끝으로 재계약에 실패하면서 팀을 떠났다. 그런데, 후임자가 감독 데뷔 시즌에서부터 크게 삽질을 하고 있어서 뜻밖에 김진이 졸지에 재평가를 받기도 한다.

  • 대니 에인지 - 대신 에인지는 프런트가 되더니 그 분야에서는 두각을 나타낸 것도 모자라 2018년 현재 보스턴 셀틱스의 중흥기를 이끌고 있다.

  • 댄 아이슬(☆★) - 덴버 너기츠의 레전드 선수 출신으로 1992~1995, 1999~2001년까지 감독을 역임하면서 1994년 플옵 1라운드에서 8번 시드의 기적으로 지도력을 인정받았으나, 팀은 더욱 부진에 시달리고 아이슬 감독 본인이 고집불통인 탓인지 선수들과의 불화도 잦은 데다 설상가상으로 2001년 12월 11일에 열린 샬럿 호네츠전 패배 이후 그에게 야유를 날린 히스패닉계 관중에게 “야, 넌 좀 짜져서 맥주 한잔이나 더 마셔 이 멕시코 X꺄.”라고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는 바람에 구단으로부터 보름 만에 해임 조치를 받았다.

  • 데릭 피셔(☆) - 뉴욕 닉스 감독으로 지내면서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하고 경질된데다가 2017년 음주운전 혐의로 체포되었다.

  • 매직 존슨

  • 모리스 칙스 - 1980년대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레전드급 선수. 은퇴 이후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등지에서 감독을 맡았으나 성적은 선수 시절에 못 미쳤다.

  • 문경은(★●) - 서울 SK 나이츠 감독으로 부임한지 3년차 시즌까지는 애런 헤인즈를 앞세워 괜찮은 성적을 내긴 했지만 헤인즈가 빠진 이후부터는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하위권으로 떨어진데다 전술적인 면에서도 혹평을 받으면서 SK 팬들에게 거센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다만, 헤인즈가 돌아온 2017-18 시즌에는 오히려 성적이 대폭 오르고 우승까지 하면서 팬들을 다소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 바이런 스캇 - 선수 시절에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으나 정작 감독으로서는 선수 시절에 한참 못 미친다. 특히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무려 두 팀에서 팬들에게 돌캇으로 까이며 금지어로 등극되었다.

  • 박수교 - 모비스 시절도 흑역사였지만, 가장 압권전자랜드 감독 및 단장으로 있던 시절로, 일명 전자랜드를 개그랜드로 만든 장본인. 특히, 그가 단장으로 있던 2005-06 시즌은 한 시즌 역대 최다 46패(8승)라는 신기록을 수립하며 전자랜드 역사상 빼도 박도 못할 최악의 흑역사로 남았다.

  • 박종천(★☆) - KBL에서는 심하게 무능한 모습만 보여줬지만, WKBL에서는 현대 하이페리온의 첫 우승을 이끌었고, 만년 꼴찌였던 부천 KEB하나은행을 2위로 끌어올리는 등 약팀을 강팀으로 끌어올리는 수완을 발휘하여 농구팬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결론은 KBL 한정. 하지만 첼시 리 신분세탁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었던 것이 탄로나면서 다시금 비난을 받고 있다. 여기에 하나은행에서의 업적도 모두 무효 처리된 것은 .

  • 밥 쿠지

  • 밥 페티트

  • 빌 핸즐릭 - 1980년대덴버 너기츠의 주전 슈팅가드/스몰포워드로 활약. 그는 팀이 암흑기에 빠지던 1997년부터 친정팀의 감독을 지냈으나 11승 71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거두고 한 시즌만에 해임되었다.

  • 시드니 몽클리프

  • 신기성(★●) - 16-17 시즌과는 달리 17-18 시즌에는 7연패를 했을 때는 이 시즌 후 100% 물러날 가능성이 높았지만, 그 이후 7연승으로 반전하며 삼성생명을 밀어내고 3위로 올라섰다. 14-15 시즌 이후 3년만의 플레이오프 진출이 유력해지면서 다시 평가가 좋아지고 있다.

  • 신선우(★●)

  • 아딜잔 - 1980 ~ 90년대 중국 농구를 대표하는 대머리 포인트 가드. 은퇴 후 빠이의 감독을 맡았으나 2016-2017 시즌, 7승 31패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최하위까지 추락하고 말았다. 이게 다른 팀들의 강력한 외국인 선수 탓이지.

  • 아이재아 토마스(★) - 토론토 시절까지만 해도 괜찮았으니 뉴욕에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얼 왓슨

  • 엘진 베일러

  • 웨스 언셀드

  • 윌리스 리드

  • 이상민(●) - 다만, 15~16 시즌에 팀을 정규리그 5위로 포스트시즌에 올려놓으며 어느 정도 나아진 평가를 받고 있다. 외국인 몰빵이라는 이야기가 좀 있는 편이긴 해도 이후 2016~2017 시즌 들어 준우승도 하면서 준수한 모습을 보이는 중. 그도 그럴 것이 무엇보다도 이 인간이 저질러 둔 것들이 너무 많아 이걸 수습하기 바쁜 상황에서 감독으로 부임했던 사정도 있었던지라...

  • 이옥자 - 배구조혜정과 비슷하다.

  • 이충희(★)

  • 임정명

  • 정덕화(☆) - 청주 KB 스타즈 감독 시절, 김영옥에게 음주를 강요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 정인교(★)

  • 정재근(☆) - 2014년 연세대학교 감독 당시, 선수들에게 욕설을 퍼부어 큰 논란을 일으키다가 결국 감정을 제어하지 못했는지 나중에는 심판 판정에 항의하며 가격하려하다가 밀치고 박치기하는 병크를 터뜨렸다. 이 사건의 여파로 연세대 감독직에서 사임하였고 연세대 측에서도 그에게 자체적으로 직무 정치 처분을 내렸다.

  • 제이 험프리스

  • 조동현(●) - 현역 시절은 뛰어난 수비로 유명했으나, 감독으로서의 능력은 . 하지만 2017년 들어서 상위팀들을 닥치는 대로 때려잡고 타짜 기질도 발휘하는 등 비교적 선전하고 있어서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얘기도 있었으나 17-18 시즌에는 전시즌보다도 더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서 자팀팬들에게 당장 사퇴하라고 무지막지하게 까이고 있었다만 18년도 들어서 점차 전술 공부도 하고 있고,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있어서 예전에 비하면 무작정 졸장으로 몰아가기엔 무리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대체 평가가 몇번이나 바뀌는거야? 하지만 결국 시즌이 끝나고 서동철의 부임과 함께 물러나고 말았으며 현대모비스의 수석코치로 돌아오면서 다시 코치부터 시작을 하게 되었다.

  • 조성원 - 트리오를 이루며 현대 왕조의 주역으로 이끌었던 현역 시절과는 달리 지도자로서의 경력은 초라하다. 특히 2008년 KB국민은행 감독 시절에는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한 시즌도 다 채우지 못하고 성적 부진으로 사임해버린 흑역사도 있었을 정도다.

  • 조지 마이칸

  • 진효준

  • 추승균(★●) - 정식 감독으로 부임한 첫 해에 정규리그 우승을 했지만 선수빨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고, 2년차에 주전 선수들이 부상으로 결장하자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3년차에는 웬일로 호성적을 내었지만, 호성적에도 불구하고 여론은 영 좋지 않았고, 심지어 일부는 추승균식 농구가 노잼이라고 까기까지 하였다. 게다가 역시나 1위를 해야만 되는 선수진으로 3위를 찍어 버렸고, 그것도 모자라서 그래 4강 PO에서 탈락하기까지 하면서 무능함을 제대로 입증하고 말았다.

  • 커트 램비스

  • 케빈 맥헤일(●) - 명감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망쳤다고 보기에도 애매하다. 초반에는 망했지만 휴스턴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고 마지막 해에 경질당했다.

  • 클라이드 드렉슬러

  • 폴 웨스트팔(★)

  • 프랭크 존슨

  • 허재(☆★●) - 그동안의 성적들만 놓고 보면 명장처럼 보이겠지만, 2018년 아시안 게임아들에 대한 무한 사랑 논란과 라건아 몰빵 등의 비판을 받으며 동메달을 얻는 데 그쳤을 뿐이다. 비판 여론이 가세지자 결국 아시안게임 종료 후 사퇴하고 말았다.

  • 현주엽 - 2018년 기준으로 감독 1년차이긴 하지만, 워낙 농구계를 떠난 지 오래된 데다가 차근차근 코치 경력조차도 쌓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하게 프로팀 감독으로 나가는 실수로 인해 전반적으로 경기 운용면에서 미숙함을 보이며 전임 감독 시절보다도 발전된 성적을 내지 못하며 고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임자가 졸지에 재평가를 받는 사태까지 벌어지기도... 그래도 조동현과는 달리 아직은 처음이므로 더 지켜보자는 의견도 간간히 있었지만, 2018년 2월, 조동현과의 17~18 시즌 마지막 대결에서 32점차라는 처참한 결과로 대패하는 굴욕을 남겼고, 이로써 사실상 1년차고 뭐고도 없이 자팀 팬들에게 있어서는 사실상 완벽한 금지어로 취급받고 있는 상황이다.

  • 1950 ~ 60년대에 NBA에서 활동했던 플레잉 감독 상당수.

4.4. 배구[편집]

  • 강만수(★)

  • 김상우(★) - LIG 감독 당시엔 유일한 봄배구를 했던 감독이고, 우리카드 구단 역사상 감독으로선 최고의 성적을 기록한 감독이지만, LIG 시절엔 곽승석을 거르고 정성민을 지명하는 병크를 저질른 적이 있고, 우리카드에서도 개인 성적만 좋았지, 정작 가장 중요한 팀 성적은 지금도 시궁창이다.

  • 김세진(★) - 신생 팀이던 OK저축은행을 창단 두 시즌만에 리그 2연패로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았지만, 용병 제도가 트라이아웃제로 바뀌어 로버트랜디 시몬을 내보낸 3년차 이후에는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는데다 2016-17 시즌에는 전년도 우승팀이 순식간에 꼴지로 주저앉아 버리자 일부 배구팬들 사이에서는 시몬빨이라며 까이고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다수의 배구팬들 사이에서 팀 선수 구성의 문제다 vs 감독 본인 역량의 문제다에 대한 대립이 좀 있었기에 김세진 감독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평도 적지 않았으나, 송명근을 비롯한 부상 선수들이 복귀한 2017-18 시즌에도 꼴지에 머물러 있고 성적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자 팬덤 사이에서는 시몬빨로 완전히 낙인된 신세로 전락했다. 여기에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었던 외국인 브람마저 이유도 없이 돌연 교체하면서 본격적으로 비판 여론이 매우 많아졌다[44].

  • 박미희(★) - 14-15 시즌에는 556을 찍던 팀을 4위로 올렸지만 초반 상위권에서 2014년 12월 17일, 비디오 판독 오독 논란 이후 6연패에 빠지며 내팀내를 시전하며 4위로 추락했지만 충분히 가능성은 보였다. 15-16 시즌에는 4년만에 봄배구에 성공했고, 16-17 시즌엔 여성 감독 최초 프로스포츠 정규시즌 우승을 달성했지만... 시즌 종료 후 오프시즌에 주전 센터를 내주고, 뺐긴 팀 주전 리베로를 보상선수로 빼왔지만... 문제는 남지연을 트레이드를 할 생각이었는데 어느 팀도 트레이드를 거부하며 사실상 뻘짓이 되었다는 거고, 결국 부상 전력이 있는 선수들도 무지막지하게 굴려대며 프로야구에서 혹사로 악명 날린 어느 감독양반일 정도로 보이게 하는 무지막지한 혹사[45]를 하고 있어 팬들의 비판까지 서서히 늘어나고 있다. 팀의 봄배구 진출 실패+꼴찌 확정+남녀부 다 통틀어서 유일하게 10승 못 넘김은 이다.

  • 박삼용(★)

  • 박희상(☆) - 드림식스 감독 시절 너무 강압적인 작전타임과 훈련 방식, 특정 정당 가입 유도 등의 사고를 쳤던 탓에 선수단이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불명예 사임하고 말았다.

  • 신영철(☆●★) - 프로 원년 시즌이던 2005년, LG화재 감독 당시 하현용을 비롯한 소속 팀 선수를 폭행하여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배구팬들 사이에서는 사커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얻었다[46]. 그러나 대한항공 감독 시절엔 10-11 시즌 대한항공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정규시즌 우승으로 챔피언결정전에 진출 시킨 감독으로 평가가 다시 바뀌긴 했지만, 한국전력 감독 시절에는 노장 선수 위주의 기용으로 세대교체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 이경석(☆) - 경기대학교 감독 시절 선수 폭행 의혹이 있었으며, LIG손해보험 감독 시절에도 뚜렷한 성적를 내지 못하고 경질되었다. LIG에서 경질된 이후로는 KOVO 경기감독관으로 지냈다.

  • 이도희(☆) - 부임 첫 해인 17-18 시즌에 현대건설을 봄배구에 진출시키긴 했지만, 시즌 개막 전에 염혜선을 내보내는 과정 및 김주하 방출 과정 잡음 및 정미선 등록 누락 사건으로 팬들의 엄청난 비난을 받았으며, 특히 양효진, 김세영, 황연주 등까지 있는데다 FA에서 황민경까지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3위라는 기대 이하의 성과에 흥국생명 1팀을 제외하고는 상대전적에서 열세 혹은 동률에 불과했다. 이것도 그나마 기업은행에게만 전 시즌 열세에서 동률일 뿐 흥국 제외한 나머지 팀들은 우세에서 동률 혹은 열세로 뒤바뀐 것도 모자라 6라운드 전패 포함 정규시즌을 6연패로 끝냈으며, 플레이오프에서도 경기력이 영 좋지 못하였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주전 세터가 문제가 있음에도 오히려 다른 엄한 선수들이 문책을 당한다는 것이다. 사실 성적은 둘째 치고 부임하자마자 벌어진 팀내 오만 병크들만으로도 이미 등재 조건은 충분했다. 초반 반짝 성적으로 묻혔을 뿐... 또 흥국생명 코치 시절에도 06 코보컵 도중 선수단과 충돌하며 무단 이탈 사건을 유발하여 구단에서 해임된 전력이 있다.

  • 이성희(★) - GS칼텍스 시절에는 정규리그 우승과 챔피언결정전 우승도 하는 등 지도력을 인정받았으나, 인삼공사에서는 용병의 어깨를 아작낼 정도의 심각한 몰빵배구 자행에 성적도 심하게 곤두박질하면서 인삼공사, 나아가 V리그 여자부 다 통틀어서 역대 최악의 감독으로 단단히 낙인이 찍혔다.

  • 이호 - 이 쪽은 감독은 물론이고 코치로서도 평가가 좋은 편이 전혀 못 된다. 월드 리베로 출신이었지만, 그가 거쳐갔던 팀들은 이상하게 리시브 성공률이 크게 떨어지는 모습만 보였다.

  • 임도헌(●) - 감독 2년차가 되던 2016 - 2017 시즌, 팀 역사상 최초로 플레이오프조차 가지 못했다. 하지만 단장인 신치용의 간섭도 삼성의 몰락에 한몫했다는 평도 있어서 평가하기 이르다라는 의견도 있었는데, 결국 자진 사퇴하고 말았다.

  • 조혜정 - 대한민국 4대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 여성 사령탑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성적 부진으로 단 한 시즌만에 자진사퇴하고 말았다. 국내 4대 프로스포츠 여성 감독으로서 사상 최초로 정규시즌 우승을 달성한 박미희와 매우 대조적이다. 그러나 17-18 시즌 이후의 박미희도 부진하면서 여기에 이름이 올라왔다는 것은 함정.

  • 하종화(☆) - 성적 부진에다가 동명고 감독 시절 입시비리가 적발되어 기소, 벌금 1500만원을 선고받았다.

4.5. 미식축구[편집]

  • 바트 스타 - 1975년부터 1983년까지 8년간 친정팀 그린베이 패커스의 감독[47]으로 활동했으나, 포스트시즌은 고작 1번밖에 못갔다.

  • 포레스트 그렉(★) - 빈스 롬바르디 시대 그린베이 패커스의 주전으로 활약했던 레전드급 선수. 1980년에 신시내티 벵갈스의 감독으로 부임한 뒤 1981년에 팀을 슈퍼볼에 진출시켜 지도력을 인정받은 뒤 1984년부터 친정팀 패커스의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감독생활 내내 총 75승 85패로 팀을 말아먹고 4시즌만에 쫓겨났다.

4.6. 아이스하키[편집]

4.7. 탁구[편집]

4.8. e스포츠[편집]

  • 강도경(★○) - 아래의 박정석과 유사한 사례로, kt에서 스타 2 팀으로 처음 감독을 지냈던 한 해는 팀 우승도 시켜주고, 선수들 개인리그 우승도 몇 번 시켜주는 등 나쁘지만은 않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팀 배틀코믹스 감독을 하면서부터 밑천이 다 드러나고 말았다.

  • 김요한(★) - 퀘이크 3 프로게이머로 이름을 날렸었지만, 서울 다이너스티의 출범 시즌을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로 마감하게 한 코치진으로 평판이 추락했고, 결국계약 종료로 사실상 잘렸다.

  • 박정석(★) - 선수 시절에는 영웅토스로 불리며 스타크래프트의 레전드로 불리는 선수 중 하나였으나, 선수 은퇴 이후 LoL 감독직을 맡게 되면서부터 평가가 급전직하했다. 정확히는 2팀 체제 시절의 나진 소드/나진 실드까진 평가가 꽤 좋았다. 그도 그럴 게 양 팀이 전부 결승에 올라가 본 경험이 있는 데다 각 팀간 전력도 꽤 좋은 편이었으니... 그러나 다진 퍼펙트 실드부터 평이 슬슬 안 좋아지더니, 이후 나진 스폰서가 사라진 e-mfire부터 악평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이후 CJ 엔투스의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그 악평은 정점에 달하게 되었다.

  • 장민철 - 아래에 기재된 해설자에도 해당되어 있다. 선수 시절에는 손꼽히는 프로토스 유저로 불리는 선수 중 하나였지만, 은퇴 이후 콩두 몬스터의 코치진을 맡게 되었으나, 롤챌스 강등 2회로 인해 2018 스프링 이후로 팀을 나갔다. 이어진 스포티비 게임즈 해설에서도 엄청난 혹평을 받고 있다.

  • 최연성(★☆●) - 현역 시절엔 스타크래프트의 레전드로 불리는 선수 중 하나였고, 선수 은퇴 후로도 코치로써의 역량을 인정받은 것은 물론, 감독으로써도 스타크래프트는 물론 리그 오브 레전드에 이르기까지 두 종목의 공식 리그에서 자신이 맡은 팀을 모두 결승에 올려놓는 기염을 토한 명장이지만, 스타크래프트 감독 시절에는 무차별적인 도발로 구설수에 오른 적이 많으며, 리그 오브 레전드 팀 감독으로써는 선수 관리 능력의 부족을 보여주며 팀의 평판을 알아서 깎아먹고 있다. 그래도 팀을 롤드컵에 진출시키며 평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4.9. 번외: 명선수는 명해설자도 될 수 없다[편집]

유명 선수들의 은퇴 후 2번째로 많이 하는 업종이 해설 업종이다. 하지만 해설을 하면서도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드러나는 경우도 많이 있다.

  • 강민(★●) - 스타크래프트 리그의 해설자로써는 선출답게 빼어난 분석력과 노력하는 면모가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리그 오브 레전드의 해설자로 전업한 후로는 평가가 급격히 추락했다.

  • 고인규(★●) - 스타크래프트 2 해설을 하던 시절에는 명품 해설자였으나, 리그 오브 레전드 롤챔스에서는 선수 생활을 아예 한 적이 없어서인지, 해설자로서의 평판이 상당히 나빠졌다. 다만, 2018 스프링 시즌 말미에 들어서면서 성장한 모습을 보였고, 서머 시즌엔 스스로 편파해설 이미지 등의 문제를 자각하고 이를 개선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변호의 여지가 있는 것이, 롤로 종목을 전환한 첫 시즌에 비해 분명 성장하고 있기 때문. 물론 이는 파트너 해설인 장민철에 의한 반사이익도 있어 좀 더 지켜봐야 할 듯.

  • 고정운

  • 김동수(★●)

  • 김병지

  • 김상훈

  • 김승현

  • 김일두

  • 김태형(★☆) - 선수 시절에는 1998년 레더 챔피언에 올랐고, 스타리그 해설 후에도 김캐리, 엄전김 등으로 유명세를 떨쳤으나, 날이 갈수록 해설에 대한 평가가 떨어지면서 질타를 받았다. 그리고 해설직을 떠난 후 팬들이 지어준 김캐리와 본인의 전 직장인 게임 해설가를 내걸고 유흥업소를 운영하여 물의를 일으켰고, 현재는 e스포츠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 마이클 오언

  • 마해영

  • 박수교(●)

  • 박용욱(●)

  • 박종천

  • 박지성

  • 백인천

  • 서용빈

  • 송종국(★)

  • 송진우

  • 우지원

  • 유상철

  • 이도희

  • 이순철

  • 장민철() - 위에 기재된 e스포츠 문단에도 해당. 거기에 리프트 라이벌즈 중계에서까지 논란을 일으키며 평가가 바닥을 치고 있다.

  • 장윤희

  • 최희섭

  • 정은순

  • 허정무

5. 예외 : 명선수도 명지도자가 될 수 있다[편집]

물론 예외는 언제나 존재한다. 프란츠 베켄바워요한 크루이프, 래리 버드 등처럼 전설적인 선수 시절 경력에 못지 않게 감독으로서도 훌륭한 업적을 쌓은 이들 대표적이다. 바닥, 카리스마, 전술, 명감독 사사 등의 케이스로 분류해놨지만 사실 하나로만 그런 건 아니고 겹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명감독에게 사사받지 않은 경우는, 선수시절의 그들이 유수의 명감독들과 만나며 그들의 지식과 재능 전술 등을 흡수하기 때문에 없다고 생각할 수 있으며, 특별히 모시고 다니거나 하는 등의 경우 등에 속한다.

5.1. 바닥에서부터 시작하는 레전드[편집]

말 그대로 선수 시절엔 전설이었지만 지도자 때는 바닥부터 다진다는 마음으로 어시스턴트 코치, 하부 리그, 마이너리그, 유스 팀과 2군 팀 감독을 하고 차근차근 올라가서 1군 감독이 된 경우다.

오기 아키라, 안토니오 콘테, 팻 라일리, 루디 톰자노비치, 제리 슬로언, 안준호, 지네딘 지단, 김동광, 김종부, 서남원, 신진식, 이지훈, 박동혁, 박항서, 조덕제, 조진호, 하석주, 체사레 말디니, 조반니 트라파토니, 한용덕[48] 등이 여기에 속한다.

5.2. 선수 시절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휘어잡는다[편집]

많은 기회를 잡는다는 위의 설명대로, 레전드 출신의 선수가 감독이 될 때 선수 시절의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휘어잡아 단합을 일으키는 유형의 지도자들이다. 휘어잡는다기보다 부드럽게 아우르는 유형도 포함된다.

유프 하인케스, 돈 넬슨, 김응용, 조 토레, 루이스 아라고네스, 비센테 델 보스케, 빌 러셀, 래리 버드[49], 디에고 시메오네, 오 사다하루, 노무라 카츠야, 호시노 센이치, 유재학, 지네딘 지단, 시니사 미하일로비치[50], 김호철, 신진식, 김가을, 제이슨 키드[51], 최강희, 박항서, 젠나로 가투소, 한용덕, 디디에 데샹, 박진섭 등이 여기에 속한다.

5.3. 난 사실 전술을 짜는 것도 잘한다[편집]

선수 시절로도 날리고, 감독으로도 뛰어난 전술을 구사한 이른바 사기 캐릭터들.

카를로 안첼로티, 펩 과르디올라, 남기일, 요한 크루이프, 카와카미 테츠하루, 히로오카 타츠로, 모리 마사아키, 오치아이 히로미츠, 쿠도 키미야스, 프란츠 베켄바워, 제이슨 키드, 레니 윌킨스, 닥 리버스, 빌 레임비어, 최태웅[52], 박주봉, 이상범,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에메 자케, 체사레 말디니,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디디에 데샹, 송선호 등 감독으로도 커리어가 화려한 유형이다. 대체로 선수 시절에 '경기를 보는 시야가 넒다', '지능적인 플레이를 한다', '동료를 활용할 줄 안다' 등과 같은 아주 좋은 평가들을 받았고, 이러한 좋은 특징들 덕분에 위대한 선수가 된 경우이다.

5.4. 명장에게 배워서 명지도자가 된다[편집]

선수 시절을 성공적으로 보낸 뒤에 명장 밑에서 보좌를 하면서 전술을 배우기 시작해서 본격적으로 지도자로도 성공하는 사례들.

체사레 말디니, 지네딘 지단, 박항서[53], 김영만, 김승기 등이 이에 해당한다.

5.5. 번외: 나는 더 큰 그림을 본다[편집]

선수 시절에 날렸지만 감독으로서 실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뜻밖에 프런트로 취임해서 팀을 강팀으로 이끄는 케이스도 있다. 물론 레드 아워백, 팻 라일리, 조지 할라스나 오 사다하루, 프란츠 베켄바워 등처럼 선수 → 감독 → 프런트의 테크를 타면서 모든 단계에서 성공을 거두는 케이스도 있지만, 감독으로서는 실패하거나 감독기간을 거치지 않고 프런트로서는 성공을 하는 경우도 있다. 미식축구 NFL 볼티모어 레이븐스의 GM 아지 뉴섬이나 덴버 브롱코스존 엘웨이처럼 감독테크를 타지 않고 프런트로 성공하는 경우도 있고 세이부 라이온즈,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네모토 리쿠오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제리 웨스트, 보스턴 셀틱스의 대니 에인지처럼 감독으로서의 성적은 아주 특출나지 않았지만 프런트에 취임해서 왕조를 구축하는 경우도 있다. 더 나아가 미셸 플라티니, 펠레 등처럼 감독 경력이 전무하거나 미흡함에도 축구나 체육 행정계로 진출하여 이름을 날리기도 한다. 대구 FC 사장인 조광래도 대한민국 국대에서는 실패했지만 대구 FC 사장으로 부임한 후 2016년 K리그 챌린지에서 대구를 3년만에 승격시키는데에 일조하였다.

프런트로서 팀의 전력을 구축하여 강팀으로 이끄는 것은 현장에서 감독으로서 팀을 지휘하는 것과는 또 다른 일이라 종종 명감독 출신이 구단의 단장이나 사장자리에 앉았는데 팀을 말아먹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일본프로야구히로오카 타츠로. 히로오카는 선수 시절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주전 유격수로서 팀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감독이 되어서도 야쿠르트세이부의 두 구단을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끄는 수완을 발휘했지만 90년대 중반 치바 롯데 마린즈의 단장 자리에 취임해서는 팀을 완전히 말아먹었다. 특히 1995년 시즌 바비 발렌타인이 MLB식 팀 운영을 도입하면서 선풍을 일으키고 85년 이후 10년 만에 팀을 리그 2위로 10년만의 A클래스로 이끄는 성과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발렌타인의 MLB식 팀 운영이 맘에 들지 않았던 히로오카는 시즌 내내 발렌타인과 충돌과 갈등을 거듭하다가 결국 1년만에 해임하고 대학 후배였던 에지리 아키라를 감독으로 앉혔는데 결국 롯데는 이듬해 5위로 추락해버렸고, 선수들과도 심한 갈등을 일으켜 히로오카는 결국 해임당했다. 그리고 롯데가 다시 리그 A클래스로 복귀한건 발렌타인이 팀에 복귀한 10년 후였다.

주니치 드래곤즈오치아이 히로미츠는 선수로써 88년 리그 우승을 이끌면서 팀의 4번타자로 맹활약했고, 감독 시절에는 재임 기간 동안 팀을 상위권으로 이끌며 4번의 리그 우승, 그리고 결정적으로 팀을 2007년 53년만의 일본시리즈 우승 으로 이끈 명장이지만, 프런트로써는 팀을 대차게 말아먹으면서 그동안 쌓아둔 자신의 명성을 말아처먹고 있다(...)

명감독이 프런트가 되고 나서 무능하다고 비판받는 경우는 MLB에도 있는데, 토니 라루사가 그 주인공이다. 시카고 화이트삭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등을 거치면서 현대 야구의 투수운용의 기본을 정립했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명장으로 이름을 날린 라루사이지만,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사장으로 취임해서는 처참한 실패를 맛보는 중이다. 현지의 평가도 감독으로서의 업적은 인정하지만 프런트로서는 영 아니올시다에 가깝다.

특히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것 중에 하나가 명선수가 명감독은 되기는 힘들어도 명감독이 명프런트가 되는 것은 쉽지 않을까 하는 것인데 이는 감독의 소위 '용병술 및 경기 운영'과 GM으로서의 '(선수 선발 등을 포함한) 팀 구성과 구단 운영'을 비슷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이 구단을 이끌기 때문에 구단주나 사장이 낙하산인 경우가 많고, 자연스에 감독이 전권을 틀어쥔 경우가 많았기에 생겨난 인식이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나라도 단장이나 사장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앉히는 것이 점점 상식이 되어가는 중. 현장에서 선수를 투입하고 경기를 승리로 이끄는 것과 구단 경영진의 입장에서 팀에 도움이 될 선수를 뽑고 주어진 예산 내에서 경영을 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이다. 이는 최근 MLB에서 비경기인 출신 단장들의 성공 사례가 늘어나는 것으로도 잘 나타난다. 명감독이 프런트에 취임해서 실패하는 이유 또한 명선수가 명감독이 되기 어려운 이유와 매우 비슷한데 가장 큰 이유는 '경기 운영과 구단 운영'을 동일선상에서 놓고 보는 시각과 "이거 내가 옛날 감독할 때 해봐서 잘 아는데..."라면서 감독의 경기 운영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거기에 개입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는 경우에 있다. 이것이 경기인 출신 프런트가 빠지기 쉬운 가장 큰 함정이다. 또한 용병술 및 선수 선발과 관련해서도 팀에 주어진 선수들을 잘 활용하는 것과 아직 포텐셜밖에 없는 신인들을 드래프트에서 선발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임에도 감독 시절의 소위 '선수보는 눈'을 그대로 투영하여 자기 입맛에 맞는 선수 위주로 선발하는 과정에서 로스터에 불균형이 오고 팀이 수렁으로 빠지게 되는 경우도 있다.

결국 사람마다 각자 적성에 맞는 포지션이 있고 적재적소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면 팀도 잘되고 개인도 잘된다는 얘기.

물론 아이재아 토마스박수교, 엘진 베일러 등처럼 감독으로서도 프런트로서도 모두 실패한 케이스도 얼마든지 있고, 감독을 하지는 않았지만 맨시티의 레전드 선수 출신으로 1994년에 친정팀의 회장을 맡아 팀 운영에서 무능함을 보여 1996년과 1998년에 각각 2부 - 3부 리그로 떨어뜨리는 바람에 회장직에서 쫓겨난 프랜시스 리 같은 사례도 있다.

6. 기타[편집]

사실 이는 비단 스포츠뿐만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든 통용되는 말이다. 대표적으로 정치 쪽에서는 독재자가 된 영웅들이 북한김일성영웅이 아니다. 있다. 한국 대통령 중엔 최규하, 미국 대통령 중에서도 율리시스 그랜트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등과 같이 타 분야에선 유능했지만 대통령으로써는 실패한 경우도 있다. 군사 쪽에서는 초급 장교일 땐 괜찮은 평가를 받았지만 승진한 이후 온갖 삽질을 거듭한 츠지 마사노부 같은 경우도 있다. 명연주자가 명강사는 되지 못하는 경우나, 대학에선 연구 실적과 교육 실적이 따로 노는 교수들도 볼 수 있다. 역사에 등장하는 뛰어난 학자들이 정작 훌륭한 스승(인성 뿐만이 아닌 교육 실력 면에서)은 되지 못한 사례도 적지 않다.

위에 예를 든 국내 예 중 야구, 농구, 축구 등은 국내에서는 인기 스포츠인데, 전세계를 따져 보면 약한 쪽에 든다. 선수나 감독이나 차범근, 박지성 같은 한두명 정도를 빼면 선수나 지도자나 기량은 국제 수준에 비해 전반적으로 낮다. 단체 운동이라도 수준 높은 지역 출신이면 좋은 결과를 낸다. 예를 들어 평창올림픽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선수단은 남자는 최정상인 NHL 선수 출신의 백지선 감독, 여자는 캐나다 출신 지도자 새라 머리 등이 이끌고 있는데, 기용 이전과 다른 발전을 보여주고 있다.

위에 든 국내에서 유명한 예는 대부분 단체 운동이다. 즉 단체 운동의 경우에는 팀 전체 운영, 작전 능력이 중요하지 선수 때 기량이 지도자가 되는 데 큰 비중이 아니므로 유능한 선수=유능한 지도자 등식이 성립하기 어렵다, 반면에 양궁, 당구, 사격 같은 개인 종목들은 당연히 좋은 선수 출신이 잘 가르치고 좋은 결과를 낸다. 프로 스포츠가 없는 엘리트 스포츠이기에 대중적인 인기는 한없이 제로에 수렴하나 전세계 최강으로 꼽는 양궁 같은 경우에는 선수 출신 우리 나라 감독들이 전 세계 양궁 팀 감독을 많이 맡고 있으며, 팀 성적도 맡기 전과 후가 확 차이날 만큼 달라지고 있어서 올림픽 등 국제 대회 때는 한국 출신 감독 동창회가 된다. 실업 선수, 심지어 고교 선수가 타 국가대표를 능가하고, 국가대표 되기가 올림픽 메달 따기보다 어려운 게 양궁이니, 감독이 되어서도 좋은 결과를 내고 있는 것.

[1] 다만 이는 어떤 스포츠이냐에 따라, 리그의 성향이 어떠냐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월클 두명이랑 동급이라는 말도 들었으며 재계약으로 루니의 연봉이 자기보다 많아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던 알렉스 퍼거슨 같은 명장의 사례도 있다.[2] 리베라의 통산 포스트시즌 성적이 8승 1패 42세이브 평균자책 0.70인데, 유일한 1패가 이 경기였다. 포스트 시즌에 약하기로 소문난 랜디 존슨이 승리투수였단게 재미있다. 물론 이때 월드시리즈 3승만 놓고 보면 랜디 존슨이 킹왕짱같으나, 커트 실링이 더 공헌을 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으며 월드시리즈 MVP도 실링과 공동수상이었다. 일단 실링은 1,4,7차전 3번 등판했는데 4차전도 7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다. 다만 4차전은 김병현이 승리를 날려먹은 것인데, 여하튼 월드시리즈에서 무려 3일 휴식 후 등판이라는 모험을 감행했음에도 호투를 했을 뿐더러, 가장 중요하고 부담이 큰 1차전과 7차전 선발투수란 점에서 실질적으로는 실링이 가장 잘했다고 보는 의견도 많다. 물론 둘 다 MVP감인 것은 다들 동의한다.[3] 염경엽 본인도 스스로 자신은 잘해봐야 어느 팀을 가도 수석코치로 끝날 것이라고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다.[4] 두산의 現 감독인 김태형은 숫자가 다소 떨어지는 수비형 포수라는 약점 외에는 주장도 했었고 라커룸 리더 역할도 하는 등 두산의 나름 프랜차이즈 선수라고 볼 수 있기에 염경엽만큼 특이한 사례는 아니다. 다만 완전 성골이 아닌 이유는 김경문(김경문은 타 팀에서 뛴 적도 있다)과 같이 다른 팀(SK)에서의 코치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5] 2017년 2부리그인 케이리그 챌린지를 맹폭하고 있는 브라질 공격수 말컹의 경우 본래 브라질에서 그저 그렇게 기회를 못 받고 있는 선수였지만 국가대표 공격수 출신의 감독 김종부가 발목 각도, 몸의 자세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상세하게 지도해준 탓에 경남에서 날아올랐고 이런 김종부 감독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임대생 신분으로 중국과 1부 리그에서 쏟아지던 이적제의를 거절하고 경남에 완전이적했다.[6] 이전에는 '명배우는 명감독이 되기 어렵다'라고 했지만 위의 찰리 채플린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두 가지 재능이 모두 수준높은 사람이라면 쉽게 명배우 겸 명감독이 될 수 있으므로 엄밀히 말하면 틀린 말이다.[7] 사실 이건 김수겸이 성인이 아닌 감정적인 18세 소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선수겸 감독으로 뛰었던 라이언 긱스나, 선수겸 감독으로 뛰면서 팀내 최고수비수/리바운더로 아예 우승까지 빌 러셀같은 경우 스스로 뛰면서도 냉정한 판단력을 유지했다. 반대로 말하면 선수로 뛰지 않더라도 지나치게 감정적이거나 승부욕이 과한 사람은 감독을 하기 무리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마이클 조던인데, 그는 당연히 농구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지만 그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누구도 그가 감독을 절대 못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고 본인도 시도해본 적도 없다. 현역시절 그는 거의 병적으로 강한 승부욕으로 끊임없이 스스로와 동료들을 몰아세웠다. 그러나 그는 이 과정에서 동료들을 때론 잔인하다시피 까고 자극했다. 이때는 필 잭슨이란 사람관리하는 달인이 있었고, 조던이 아무래도 어쨌거나 그는 선수단의 관리자가 아닌 선수단의 일원이었기에 감독과 코치진이 이를 조율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선수단을 총괄해야할 감독이 못한다고 마구 욕하고 비꼬고 괴롭히는데 선수들이 버텨날 수 있을까? 또한 구단주로서 경기를 보다가도 선수들이 못하면 흥분해 마구 욕하는 사람이 자기가 감독하는 선수들이 삽질하는걸 침착하게 보고 대응책을 생각해낼 수 있을까? 결국 조던을 역대 최고로 만든 무시무시한 승부욕이 감독으로서는 그의 발목을 잡게 되는 것이다.[8] 자기가 조금만 노력했으면 쉽게 되는 것에 쩔쩔 매고 있으니까.[9] 지단이나 안첼로티 등 명선수가 주전을 계속 굴리는 경우가 있다.[10] 차범근 항목에도 있는 예로, 상대 수비를 크루이프 턴으로 제치고 다이렉트 크로스 올리는 것을 요구했고, 본인이 시범(...)을 보여줬다고 한다.[11] 이쪽은 선수 시절이 더욱 암울했다. 적어도 벵거나 퍼거슨 등은 1군 선수였던 시절도 있었고, 선수 시절 평은 그저 그랬다. 하지만 우나이 에메리는 레알 소시에다드 2군 팀에서 1군 팀으로 올라온 적이라고는 아예 몇 번 없는 선수였다.[12] 시카고 불스에서 6번, LA 레이커스에서 5번 우승을 차지한다. 참고로 선수 시절에는 뉴욕 닉스에서 2번 우승했다.[13] 심지어 이쪽은 아예 공군사관학교 생도 출신이다. 물론 미국의 각군 사관학교들은 4대 스포츠의 스포츠 명문으로서 유명하지만 북미에서 다른 종목과는 달리 미식축구는 대학과 프로와의 차이 역시 극심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렉 포포비치는 미식축구가 아닌 NBA 감독이다.[14] 이 쪽은 프로 선수 경력 없이 아마추어 무대에서만 활동하다가 은퇴 후 은행원으로 전직한 특이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15] 프로 선수 출신이 아니라고 한 것은 이들 역시 대부분이 유소년 시절에 해당 종목의 선수로 뛰었던 경력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저들 중 김태환의 경우에는 중학교 때까지는 야구선수로 활동하다가 고등학교 때 뒤늦게 농구선수로 전향했는데, 프로는 커녕 대학교조차도 진학하지 못한 경우이고, 최인철은 대학 졸업 후 대전 시티즌의 입단 테스트를 받을 예정이였으나, 테스트 전날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목과 허리를 크게 다쳐 이른 나이에 선수 생활을 끝내야만 했던 경우이다.[16] 물론 서진용처럼 혹사가 아예 없던 건 또 아니었다.[17] 요즘은 백인천을 실시간으로 못 본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런지 백인천을 LG비밀번호를 연장한 이순철, 한화에서 그동안의 좋던 이미지 다 망치고경질당한 김성근 등 별의별 잡다한(...) 졸장들과 묶어서 KBO 최악의 감독 몇 대천왕 운운하는 경우가 많은데, 백인천은 단순히 성적이 바닥이고 팀 운용이 개판이라서 역대 최악의 감독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다. KBO 역사에 수많은 졸장들이 이름을 남겼으나 그들 대다수는 방법이 틀렸거나 능력이 부족했을 뿐이지 어쨌든 고의로 팀을 망치려고 하지는 않았는데, 대놓고 팀을 망가뜨리는 것에 전념한 감독은 이 백인천만이 유일하기 때문이다.[18] 다만, 삼성은 후임 감독이 전권위임을 제대로 행사 하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KIA는 2010년대 2번의 우승에도 불구하고 감독들이 이렇게 생고생을 다 하는 걸 보면 그야말로 빼도 박도 못한다.[19] 물론 대졸 선수들이 나이를 이유로 검증도 없이 배제되는 추세를 생각하면 아주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20] 사실 17 시즌은 이대호가 돌아왔을 뿐 갑자기 팀이 달라진 건 아니었고, 해외파 에이스들이 아무리 고군분투해도 안 되는 팀이 있었다는 점 등으로 인해 여전히 시즌 전 가을야구 후보군으로 롯데를 뽑는 야구인은 정우영 해설위원 이외엔 거의 없었다.[21] 대표적으로 노타니 사건.[22] LG 트윈스와 공동 6위.[23] 특히 김응용 전 감독은 2년 연속 최하위를 경험하며 감독 말년에 큰 오점을 남겼다. 김성근 역시 임기 초반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 마리한화 돌풍을 일으키며 재기를 노리나 싶었으나 128경기 체제가 아닌 144경기 체제에서의 그의 투수운용으로 인한 부작용, 프런트와의 지속적인 대립 등으로 잦은 구설수에 오르다 2년 연속 PS 진출 실패 후 시즌 중 경질로 임기가 끝나버려 야신 이미지마저 완전히 망가진 채 KBO에서 사실상 은퇴해 버렸다.[24] 주니치 1981~1983, 타이요 1985~1986, 닛폰햄 1989~1991[25] 첫해와 사임 직전 관중 수를 비교하면 경기 당 9000명이나 증가했다.[26] 사실 2015년 6위도 올스타전 전까진 1위를 했으나... 그 뒤 DTD 시전으로... 마치 왕정치의 은퇴연도인 2008년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떠오른다.[27] 개막 후 4월까지 1할8푼6리[28] 말할 필요도 없이 팀의 주포였던 노무라 카츠야가 구단과의 불화로 난카이를 떠났고, 에나츠 유타카 등도 프런트의 이런 태도에 분노해 다른 팀으로 이적했다. 노무라를 잇는 또다른 주포 카도타 히로미츠는 1979년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주루능력 상실과 동시에 시즌을 망쳐버렸다.[29] 1991년엔 팀 도루 1위에 3명의 30도루 타자를 배출했고 1992년에도 1개 차로 팀 도루 2위를 기록했다. 이 기간 중 2년 연속 도루왕이 나왔고 특히 1992년 도루왕 사사키 마코토는 수위타자까지 획득하며 사상 2번째(1번째가 바로 히로세) 수위타자+도루왕 타이틀 동시석권 기록을 가져갔다. 다만 옥에 티로 1992년엔 팀 실책 1위를 기록하기도(...)[30] 안산 그리너스 FC와의 리그 2라운드 경기와 서울 이랜드와의 리그 3라운드 경기에서는 상대가 두명이나 퇴장당했는데도 필드골을 단 한골도 넣지 못하였으며, 그래도 서울 이랜드전은 이기기라도 했지 안산전은 후반 추가시간에 극장골까지 먹히면서 3:2로 졌다.[31] 2015년 4월 5:1 승리 이후로 리그 한정 슈퍼매치에서 1승도 못 거두고 있고(넓게 보면 FA컵에서 이겨서 우승한 적은 있었다.) 전북에게는 둘의 사이가 틀어진 2016년부터는 단 1승밖에 챙기지 못하고 있다.[32] 이 후 리그 2위 전북 현대 모터스가 매수 사건으로 자격이 박탈되면서 어부지리로 플레이오프에 들어가긴 했다.[33] 윤정환의 경우 원인 항목의 2-4 케이스다. 더구나 사간 도스나 세레소 오사카 등의 경우에는 딱히 내세울 성적이 없는 팀이였지만, 울산 같은 경우에는 김정남 감독 시절 아시아의 깡패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으로 불렸고, 마침내 김호곤 감독 시절 아챔 무패 우승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남겼다. 자연히 선수들의 눈높이와 콧대 등이 높을 수밖에 없다.[34] 이회택 본인 역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에 있어서 부족함이 있었고, 프로팀 감독의 경우 1년마다 리빌딩이라는 명목으로 일부 선수들을 정리해야 하는데 정든 제자들을 그렇게 팀에 내보는 일을 하는 게 적성에 안 맞았다는 것이 큰 이유라고 한다.[35] 사실 16강이라는 성적에도 불구하고 (16강에서) 탈락한 이후에 이승우디스하는 듯한 발언을 해서 그때도 그렇게 평가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36] 사실 이건 그냥 개소리. 당장 월드컵 우승후보급이라 불리는 8강급 국가들[37]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밑에 한국 제외 나머지 23개 팀만 봐도 선수빨로는 한국보다 더 나은 팀이 더 많다. 그나마 못한 팀이래봤자 같은 조에 편성될 일 없는 같은 아시아 팀들이나 아프리카 일부 팀들[38], 그리고 운도 좀 좋게 올라온 슬로베니아뉴질랜드 정도? 그리스도 빅리그 선수들이 좀 있고, 그리스 리그의 명문팀 파나시나이코스 FC의 선수들이 다수 편성된 마당에 선수빨로 정말로 대한민국에 비해 떨어진다고 장담 못한다. 여유있게 이긴 덕에 결과론적으로 얕보는 거지.[37] 독일, 브라질, 네덜란드, 포르투갈,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잉글랜드, 프랑스.[38] 그조차도 같은 조였던 나이지리아는 한국보다 선수 네임밸류는 더 좋은 편이었다.[39] 허정무의 경우는 선수 보는 눈이나 유망주 기용 능력만큼은 허카우터라는 별명답게 엄청나지만, 훈련 방식이 구시대적이라는 문제가 있었다. 이 때문에 선수 육성 능력보다 운영 능력이 중시되는 국가대표에서는 성적이 괜찮은 편이었지만, 클럽에서는.....[40] 사실 결과적으로 보면 푈러가 감독이던 시기가 그 이전보다 더 암흑기라고 불리던 시기였다.[41] 당시 안드레 고메스는 대부분의 경기에서 거하게 똥을 싸지르던 중이었지만, 그럼에도 데니스 수아레스와 같은 선수를 기용하지 않고 고집을 부렸다.[42] 만약 그가 슈틸리케를 대신하여 한국으로 오고, 월드컵에서 16강 정도의 성과만이라도 거두었다 치면 거스 히딩크 감독과 유사한 행보를 걸으면서 성공한 감독이라고 재평가되었을 것이다. 히딩크 감독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을 5:0으로 대파한 다음 한국으로 왔기 때문.[43] "카타르소리아 같은 공격수가 없어서 졌다"는 말도 안 되는 인터뷰를 했다. 참고로, 이때 손흥민은 'EPL 이달의 선수상'을 타고 올 정도로 물이 올라 있었다.[44] 김세진 감독 본인의 말에 의하면 분위기 반전을 위해 용병을 교체했다고는 하는데, 오히려 역효과만 났으니 문제라는 것이다.[45] 특히 신연경, 이재영 혹사가 가장 심하다.[46]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해 대한항공 감독으로 있던 문용관도 비슷한 사건을 일으켰다.[47] 1980년까지 단장 겸임.[48] 아예 연습생으로 입단해서 감독까지 올라갔다. 이는 KBO 역사상 최초다.[49] 이 양반은 선수 시절 역대 톱10급 레전드, 감독시절엔 부임 첫해에 전 시즌 플옵 실패한 팀을 동부 2위로 이끌며 올해의 감독상, 3년차에 결승행, 페이서스 사장으로서 올해의 경영자상까지 타는 등 뭔가 손을 댔다하면 탁월한 성과를 내는 걸로 유명하다. 안타깝게도 선수시절 등부상 때문에 건강문제가 심해 감독으로는 불과 세 시즌밖에 재임하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그가 감독했던 페이서스는 2000시즌에 56승을 거두며 파이널에 올랐지만, 그가 떠난 직후엔 41승으로 추락했다. 물론 버드 뿐 아니라 인디애나의 베테랑 데일 데이비스, 릭 스미츠, 마크 잭슨 등도 같이 떠난 탓이 크지만...[50] 이분은 군기보다도 자신이 더...[51] 야니스 아데토쿤보 항목에 일화가 있다.[52] 사실 스피드 배구는 오래 전부터 세계 주류였지만, 한국에서는 15-16 시즌이 되어서야 현대캐피탈이 제대로 된 스피드 배구를 구사했다.[53] 이쪽의 경우 명선수가 아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박항서 감독 문서에도 서술되어 있듯이 1985년 K리그 베스트일레븐에 뽑힌 적도 있었고, 1986년에는 주장으로써 팀의 준우승도 이끈 적도 있는 엄연한 명선수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