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벌부

최근 수정 시각: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53px-Avlat.jpg

(위키미디어 공용 퍼블릭 도메인)

언어별 명칭

라틴어

Indulgentia

영어

(Letter of) Indulgence

독일어

Ablass(Brief)

한국어

면벌부(免罰符), 大赦


1. 개요2. 대사? 면벌부? 면죄부?
2.1. 면벌부가 맞다2.2. 면죄부가 맞다
3. 종교 개혁시기 면벌부 4. 가톨릭 교회의 설명
4.1. 대사란 무엇인가?4.2. 가톨릭 교회의 개혁
5. 비유적 용법

1. 개요[편집]


면벌부(면죄부)란 가톨릭 교회의 대사(大赦, Indulgentia)를 가리키거나, 혹은 중세때 발행되었던 '헌금형 대사'와 그 증서를 일컫는 말이다.

2. 대사? 면벌부? 면죄부?[편집]

원래 라틴어의 인둘겐티아(Indulgentia) 라는 단어는 교회용어와 상관없이 원래 따로 존재하는 단어로 보통 관대함, 관용 정도의 뜻이다.

2.1. 면벌부가 맞다[편집]

가톨릭 교회에서는 면죄부는 일제시대 '대사'에 대한 악의적인 오역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고 '면죄'부를 '면벌부'로 수정하도록 요구해왔다. 현재 교육과정에선 가톨릭 교회의 꾸준한 수정 요구로 2003년 8월 7차 교육과정 개편 때 내놓은 편수자료에는 면벌부로 표현하게 되어있다. 한국 천주교에서는 공식적으로는 대사(大赦) 혹은 대사령으로 번역한다. 그 형태는 초대 교회 당시 속죄의 기간을 단축시켜 주는 것에서 찾아 볼 수 있으나, 지금과 같은 형태의 대사는 십자군 전쟁흑사병 당시의 교황청의 대규모 대사가 발행의 시초로 추정된다.

하지만 대한민국 교육 과정에서 과거에는 면죄부(免罪符)로 쓰였고 현대 16세기 교회사와 관련없이 일상용어에서 면죄부란 용어가 사용된다. 국립국어원은 면벌부와 면죄부 모두 표제어로 인정하고 있느나 실제로는 면죄부란 단어가 압도적으로 더 많이 쓰인다. 예로 네이버에서 신문검색에서 면죄부를 치면 4만 2천건이 검색되나 면벌부의 경우 18건 뿐이다. 개신교에서는 역사성 때문에 면죄부 표현을 고수하고 있고, 당사자인 한국 루터교에서도 당연히 면죄부라고 쓴다.

학술적으로 보자면 근대 국어의 용법에서 '죄'라는 단어가 '벌'이라는 단어와 동일한 의미를 갖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아직도 나이 지긋하신 분들은 너 그러다 죄받는다라는 말을 쓰고, "죄를 준다"라는 표현이 나오는 텍스트도 이따금씩 보이는데 바로 이 경우다. 게다가 근대 국어는 물론이고 현대 국어에서도 '죄를 용서해준다'는 표현은 '벌을 용서해준다'라는 표현과 구분되지 않고 쓰인다. 면죄부라는 용어가 면벌부로 개정되고 나서도, 대부분의 교사들과 학원 강사들은 두 용어에 대해서 '그거나 그거나' 정도로 인식했다. 때문에 서구의 단어에 대한 번역이 필요했던 구한말, 강점기에 이루어진 번역이라면 이 자체를 덜 올바르다고 하기 어렵다. 다만 현대 국어에서는 죄와 벌의 차이가 확연하고, 가톨릭 교회에서는 '죄의 용서'와 '벌의 용서'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으므로 이를 감안하여 번역이 변화한 것이다.

또한 어법에서도 면죄부는 틀린 말이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사면의 정의는 지은 죄를 용서하여 형벌을 면제함이다. 용서의 대상은 죄이고, 면제의 대상은 벌이다. 이미 저지른 죄를 면제해 주는 것이 가능한 가를 생각해 보자.

따라서 가톨릭교회 뿐만 아니라 교육계에서도 면벌부가 맞다고 하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2.2. 면죄부가 맞다[편집]

기독교에는 유죄지만 회개하였으므로 그리스도의 희생으로써 죄사함(죄의 사면, 말소)이 있을 뿐, 유죄인 상태로 돈내고 면벌 및 천국행이란 개념은 없다. 죄의 삯이 사망이라는 것은 성경이 버젓이 기재되어있으며 신의 은총이 없는 한 원죄 이래의 죄 있는 상태로는 영원한 사망을 피할 길이 없다. 하느님께서 죄를 사면하여 주신 죄없는 상태가 되어서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이다. 구원과 용서는 진심으로 회개한 자의 죄과 자체를 말소하는 것이지 죄는 냅두고 형벌만 피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죄가 있으면 당연히 벌이 있어야 하고, 죄 자체를 사함 받아야 그에 따른 벌이 없다는 것이 기독교 세계의 대원칙이자 정의인데 벌만 면하는 면벌부란 개념은 대놓고 이에 반한다.

언어적으로는 면벌부란 말이 더 이치에 맞으나, 기독교 교리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기독교 세계에서 죄와 벌은 한 세트이고 결코 따로 분리 될 수 없기에 면죄부란 말이 틀린게 아니며, 무엇보다도 루터도 지적을 한 사항이지만 참다운 회개를 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죄에 대한 벌이 아무리 지독하게 가혹해도 기꺼이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있어야 함이 당연하다. 죄를 지어놓고 벌만 면피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회개를 한 사람의 자세가 아니고 천국에 갈 사람도 아니며 당연히 그런 자에게는 돈을 주고 산 면벌부 따위가 유효할 수 없다.

보편교회의 고해와 보속은 벌받기 싫어서 면벌받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해 주님이 내리실 벌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참된 회개의 자세를 갖추기 위해 하여야 하는 것이며, 누가 보편교회의 면죄 폐단에 대해 어떤 변명을 늘어놓던 간에 그저 벌받기 싫어서 면벌받으려 하는 일시적인 후회심으로 하는 거짓 고해와 거짓 보속은 그것이 어디서 누구에 의해서 이루어졌든 간에 사람의 진심을 보시는 하느님 앞에서는 무효하다.

또한 '면죄부'는 일본 근대화 시기에 번역되어 일제시대에 한국에 그대로 전수된 단어라서 번역과정에서 어떠한 음모론도 없고 한국에서도 관습적으로 사용된 것일 뿐이다 언어는 언중이 사용하는 단어가 생명이며 이미 사용하지 않는 단어는 죽은 단어이기 때문에 면벌부는 일부 사전과 교과서에서만 볼 수 있는 박제된 말이다.

그리고 번역 이전에 중세 기독교 사회의 사람들은 태어나자마자 모두가 세례를 받았고 세례로 구원은 이미 받았다고 여겼기에 실질적으로 교회에서 선전하는 수천 수만년간의 연옥의 보속기간을 가장 두려워 했다. 역사적으로 당시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하여 이해에 문제가 없었고 앞선 주장 '이미 저지른 죄를 면제해 주는 것이 가능한 가를 생각해보자'에서 중세인들은 "죄는 예수 그리스도가 벌은 교회가 면제해준다."로 믿었다. 가톨릭교회에서 주장한대로 교황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인으로 선전했기에 역시 중세인들은 교황과 교회가 그런일이 가능하다고 여겼다.

면죄부 사용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가톨릭측의 면벌부 단어 사용을 그릇되다 지적하거나 사용하지 말것을 주장하는게 아니며 중세시절 판매된 금전대가의 문서와 현대 국어에서 면책의 의미로 포괄적인 개념으로 사용하는 단어가 가톨릭 교회의 대사제도와 같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결국 면죄부는 사용하면 안되고 면벌부만 옳다고 여겨 강제수정 또는 사용 금지 권고는 지나친 행위이며 이미 많이 사용되는 면죄부 단어 사용을 거부하려면 면벌부와 면죄부 문서를 분리하면 된다.

어차피 가톨릭 교회에서 면벌부라는 것은 없으며, 잘못된 표현인 면죄부에 대한 제대로 이해를 위해 굳이 면죄부라는 표현을 버리지 못하겠다면 면벌부가 더 정확한 표현이라는 의미에서 등장한 건데 일부 주장들을 보면 면벌부(가톨릭 교회 표현대로 하면 대사부 남발)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의사가 없이 개신교에서 주장하는 대로 면죄부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면 가톨릭 교회 내에서 쓰는 '대사'를 쓰면 되지 정확한 의미도 담지 못하는 면벌부라는 표현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3. 종교 개혁시기 면벌부 [편집]

대사의 조건으로 헌금을 제시하는 문제는 15~16세기 독일 지방에서 논란이 되었는데, 당시 교황청에서는 15세기초 교회분열을 마감하고, 다시 로마로 교황청이 귀환한 형편에 로마시가 몰락해있었고 따라서 재정상태가 어려운데다가 나머지 로마 재건 사업과 성 베드로 대성당 축조와 교황령의 전쟁 비용 등으로 재정이 어려워지자 교황청에서 15세기경부터 '헌금 받고 대사 주기'에 맛을 들이고 만다.

이러한 조건의 대사는 주로 독일 지역에 많이 선포되었는데 독일지역은 수백여개 영방으로 분리 되어있었고 신성로마제국 내의 성직 제후들은 황제를 제외하면 어느 누구의 봉건적 의무가 면제 되어있었고 성직 임명도 교황청에서 하게 되었다. 다른 나라는 성직 임명권이 국왕에게 귀속된데 반해 신성로마제국은 수세기간 교황-황제의 권력다툼 이후 대공위시기 권력 공백으로 교회 권력이 상당히 강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신성로마제국에서 선출직인 황제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선제후는 7인이었는데 3명이 성직제후인 대주교였다. 신성 로마제국 내에서 성직 제후들은 타국에서 볼수 없는 독특한 위치였는데 일단 대주교나 주교구의 교구의 주교 역할은 당연히하고 해당 대주교령의 세속적 제후직위까지 겸하는 막강한 위치였다. 마인츠 트리어 쾰른 대주교 같은 선제후는 물론이고 리에주 잘츠부르크 마그데부르크 같은 대주교령도 세속제후인 공작이나 백작처럼 영주민을 지배하는 막강한 지역이었고 십일조는 물론이고 세속적인 세금까지 같이 받을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1515년 결정적으로는 당시 신성로마제국 7선제후 중 한명 브란덴부르크 변경백의 동생 알브레히트 폰 브란덴부르크는 20대 젊은 나이에 할버슈타트 주교와 마그데부르크 대주교를 겸임하고 있었다. (교회법의 겸직금지와 나이제한은 교황청에서도 무시하고 있었는데 교황 레오 10세는 가문빽으로 13세에 추기경이 될 정도였다.)

알브레히트는 2개의 교구의 수입에 만족하지 못했고 ,마침 신성로마제국 최고서열 제후인 마인츠 대주교직[1]이 매물로 나왔고 2만 9천 두카트의 고액을 입찰해서 낙찰 받았다.[2]

이 과정에서 알브레히트는 로마에 송금할 현금이 모자랐고, 유럽 최고 사채업자 야코프 푸거에게 2만 1천 두카트를 빌렸다.

교황청에서는 알브레히트를 도와줄 목적으로 1502년 조반니 메디치 추기경 시절부터 레오 10세의 수하였던 도미니코회 수도자 요하네스 테첼을 파견했고[3], 8년치의 대사 선포를 허가하고 수입은 대주교와 교황청이 반땡하기로 합의했고, 알브레히트 대주교는 초입세[4]를 제외한 금액은 푸거에게 갚기로 합의했다.

이런 과정이었으니 대놓고 헌금을 노리는 대사가 선포되게 되었다. 요한 테첼은 초기엔 알브레히트의 영지인 마그데부르크 부근에서만 면죄부를 판매하다가 점점 작센지역 전체로 퍼져나갔는데 어느정도 팔리고나자 판매수입을 극대화 하기 위해 이런 발언까지 서슴치 않았다.

성모 마리아를 강간해도 깨끗이 벌을 용서 받을 수 있다.
현세에서 자손들이 낸 동전이 헌금함에 쨍그렁 하는 순간, 조상의 영혼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직행한다.


그는 신성모독과 살인을 포함한 모든 죄목에 대해서 과거 조상과 현재의 신자들의 죄로 인한 잠벌 뿐만 아니라 미래의 저지를 죄의 잠벌도 대사를 통하여 용서받을 수 있다고 선전했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판매원들의 개드립에 합쳐져서, 탁발수도자와 온갖 추잡한 상인행렬이 성유물(성물)을 전시 판매 하였고 ‘’’1점당 100일씩 ‘’’ 연옥 면제라는 선동으로 돼지 뼈다귀, 쇠스랑, 지푸라기 나무토막 등을 성물이라며 팔아댔다. 물론 이런 성물은 99.999%의 확률로 진품도 아니었다.[5]

마르틴 루터 등장이전에도 면죄부에 판매 자체와 상설적인 판매에 대해선 이미 교회내부에서도 비판적인 인식이 많았다. 15세기 초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현금형 대사에 대한 경계와 자제의견이 나왔었고 , 마르틴 루터의 비판이 처음 공론화 된것으로 알지만 츠빙글리나 에라스무스 또한 루터와 전혀 상관없이 비슷한 시기에 비판하고 나선것이다. 단, 가장 유명하게 알려진 마르틴 루터는 독일 아우구스티노회 소속 수도 사제이고,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신학교수직을 맡고 있었는데 1516년부터 대사에 대한 비판을 동료 사제, 수도자, 신학교수들에게 강하게 비판하고 있었고 지지까지 받고 있었다.

결국 1517년 10월 근처 교구인 브란덴부르크 주교 제롬, 마그데부르크 대주교 알브레히트에게 ‘’’파렴치한 신성모독을 중지’’’ 하라며 항의를 했고 씹히자 비텐베르크 교회 앞문에 95개조 반박문을 게제하기 이른다.[6] 여러주교들에게 보낸 편지는 대부분 묵살 당했는데 당사자 알브레히트는 정당한 신학적 주장을 공개적으로 비웃었고 면죄부 판매꾼 요한 테첼은 루터의 라이벌이었던 프랑크푸르트 데어 오데르 대학 신학교수들에 대필을 부탁하여 이런 항의를 이단이라며 로마에 고소하기 이른다.

일단 마르틴 루터95개조 반박문는 자체는 루터가 교육받은 가톨릭적 세계관과 그를 바탕으로 가톨릭 교회의 개혁을 촉구하는 내용이긴 하였으나 교황의 대사 권한과 효력 자체를 부정하고, 그에 따라 행위로 인한 보속과, 사면이라는 제도에까지 의문을 제기했다.

루터를 비롯한 반대자들은 주장하길 면죄 또는 면벌부가 십자군 전쟁당시 사지로 향하는 병사나 순례객들에게 특수한 상황에만 있던것이 이미 사문화 되었는데 15세기 말부터 다시 부활하여 16세기엔 아주 상설화 되어 판매되는것에 많은 교회 인사들이 불만이 많았다. 그리고 반대측의 핵심주장은 면벌이란 것이 죄는 이미 그리스도가 용서해주었는데 이미 가장 중요한 죄의 용서는 그리스도가 하고 찌꺼기만 남은 잠벌에 대하여 가톨릭에서 인간의 제도로 만들어서 돈내면 몸으로 때우는것 면제요 돈 안내면 고통을 받는다는 협박을 하는것이 과연 옳은가, 일반 신도들은 실질적으로 죄의 대가인 연옥에서의 벌을 두려워 하기 때문에 면벌을 면죄부로 받아들인다는 비판[7]이었고, 마르틴 루터를 비롯한 종교 개혁가들은 이에 더 나가서 가톨릭 교회에서 면죄부의 근거로 주장하는 '선행의 보고' 개념이란 것을 부정했다.[8] 루터의 입장에서 죄는 어디까지나 죄고, 선행은 선행이다 이것을 통합하여 점수로 나눠서 깎아주고 에누리하는 시장상인과 같은 행위를 교회에서 한다는것은 교회의 권한을 넘어선 월권이라고 생각했다.(95개조 반박문 항목 참조.) 이런 입장은 가톨릭 교회의 기존 입장과 섞일 수 없었고, 1518년 카예탄 추기경의 이단심문, 1519년 요하네스 에크와의 논쟁중 루터는 교황의 수위권과 공의회의 무류성을 부정했기 때문에 가톨릭 교회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비판이 되었고, 이는 종교개혁을 통한 교회의 분열로 이어진다.이후 종교개혁마르틴 루터의 행보는 해당항목을 참조.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대사 판매꾼’과 판매자 ‘요하네스 테첼’ 이라는 두 단어는 당시 독일에서 욕 자체가 되었고 교회의 비합리적 비성경적 관습에 실망한 지식인층과 영토의 경제적 수탈에 질린 영주와 제후, 가톨릭 성직자들의 과세와 성사시 과중한 요구로 불만이 많던 농민까지 등을 돌리면서 독일 전역이 종교개혁 열기로 들끓었다.

후일담으로 마그데부르크 대주교 알브레히트는 신성로마제국 최선임 선제후 직위인 마인츠대주교직과 마그데부르크 대주교, 할버슈타트 주교직을 겸직하며 죽을때 까지 유지했고, 마르틴 루터 사건 와중에 1518년 4월 레오 10세에 의해 추기경으로 서임된다.

다만 면죄부 판매꾼 요하네스 테첼은 1518년 교황청 대사 밀티츠 추기경에 의하여 라이프치히 도미니코회 수도원으로 연금되었는데 면죄부 판매 과정에서 '일부' 신성모독성 발언과[9], 면죄부 판매금 착복, 예전에 사생아 둘을 둔 죄가 이유였다. 사생아를 둔 것은 아주 오래 전 일로 별로 문제 삼지 않았고 교회의 비호로 유부녀와 간통죄로 구속되었다가 풀려난 경험이 있었으며 사생아는 루터 잡아오려한 교황청 대사인 알레안더 추기경, 전후임교황인 알렉산드르 6세 율리오 2세 바오로 3세, 알브레히트 추기경도 사생아를 버젓히 두고 살았다. 판매자금 착복도 비록 라이프치히 시장 연봉의 10년치나 떼먹었다곤 하는데 떼돈을 번 알브레히트 추기경이나 레오 10세가 주범인것은 명백했고 콩고물 줏어먹은 이만 처벌한것이다. 가톨릭에서 버림당한 테첼은 분노로 몸져 누워서 죽어갔고 감금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마르틴 루터가 위로 편지를 보낼 정도였다.[10]

1518년 교황 레오 10세는 대사의 판매 권한과 면죄부의 효력에 대해서는 당시 교회에선 토론 자체를 인정치 않고 거론할 경우 파문한다 선언했다.

독일에서 면죄부 사건의 여파가 지속된지 몇년 후 1524년 알브레히트 추기경은 면죄부 판매가 막히지 이를 대신할 목적으로 기가막힌 계획을 세우는데 이번엔 면죄부가 아니라 성유물 판매였다. 역시 성유물을 구입하거나 참배하면 면벌이 있다고 인정하여 다시 돈을 주고 팔아서 몇달만에 마그데부르크 대주교구에서 390만년치 연옥면제권을 팔았다. 이 당시 판매한 성유물에는 최초의 인간 아담을 빚고 남은 흙,........ 빌라도가 손을 씻은 대야....... 이런 식이었고 마르틴 루터가 분노하여 다시 당장 그만두지 않을 경우 모든 비난을 당신에게 돌리는 글을 독일 전역에 뿌리겠다 편지를 보내어 항의하자 가톨릭 교회에서 파문 당한 인물에게 존경하는 박사님께 사과한다며 다시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그만 두었다.

4. 가톨릭 교회의 설명[편집]

대사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톨릭 교회에서의 고해성사에 대한 기본적 가르침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으므로 먼저 이를 설명한다. 가톨릭구원을 하느님의 은총으로 받는다고 가르치며, 신앙과 행동이 일치된 삶으로써 하느님의 은총에 인간의 자유의지로 응답하는 독실한 믿음과 선행의 삶을 살면서 은총을 보존할 것을 요구한다. 즉 신앙을 가진 자라도 믿음을 잃거나 자신의 행동으로 여러 대죄[11]를 지으면 하느님과의 은총을 잃게 되며, 죄로 더럽혀져 세례로 맺어진 하느님과의 관계가 단절된다고 본다.

결국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세례 이후에도 신앙에 걸맞에 올바른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동시에 지상에서 사는 동안 짓는 죄는 꾸준히 하느님의 용서를 받아 화해해야 한다고 가르친다.[12]

죄를 지음은 하느님의 은총을 버린 행위이므로,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멀어진다는 것이 가톨릭의 관점인 것. 그러므로 하느님 앞에서 자기 죄를 뉘우치고,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받음은, 하느님과 화해하고 다시 관계를 가깝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나 큰 죄(대죄)일 경우에는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가톨릭에서는 지상에서는 하느님의 대리자로서 교회가 그러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교회의 이러한 특별한 권한은 사제만이 행사할 수 있다고 유보해두는데, 이 권한 행사가 바로 고해성사이며, 이를 통해 명시적으로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

이 말은 오직 고해성사를 통해서만 죄를 용서받는다는 개념은 아니다. 하느님은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으므로 고해성사라는 '도구'를 통하지 않고서도 용서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론적으로는 자기의 죄를 절실히 뉘우치고, 거기다 자신의 죄악으로 인해 하느님의 사랑을 거부하고 모독한 것까지 슬퍼하는 회개(상등통회) 만으로도 죄를 용서받을 수 있지만 그래도 자신이 지은 죄악이 대죄라면 완전한 마음으로 회개한 후라도 고해성사는 나중에라도 필수적으로 보아야 한다.[13]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통회로는 그 후의 삶이 바뀌지 않을 수도 있지만, 성사를 통해 죄에서 벗어나 변화될 수 있는 은총을 받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만 혼자 속죄를 해도 하느님이 용서했는지 하지 않았는지는 알 길이 없으니, 고해성사를 통하면 확실하게 하느님의 용서를 받았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톨릭에서는 고해성사 때 정말 합당하게 뉘우치고 회개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입으로만 죄를 나불나불대고 용서받을 생각을 하거나, 고백하기가 부끄러워 자기 죄를 상세히 완전하게 고백하지 않고 가려 말하거나 숨기는 등의 죄를 일명 '모고해'라고 해서 하느님의 자비를 우롱한 대죄로 여긴다. 예를 들어 사제에게 이야기하기 부끄러운 죄를 지은 사람이 고해성사거짓말을 하는 경우. 고해소에서 사제는 그저 인간의 오감을 위한 대리자일 뿐이며 그곳에 있는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하느님의 자비로 인간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기 위해 있는데, 이 마지막 순간조차도 모독하는 것은 살인 등과도 같은 대죄라고 여겨 모고해는 절대 하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모고해를 했으면, 미사영성체나 다른 성사에 참여하지 말고, 다시 이에 대해 절실히 회개하는 마음으로 빨리 고해성사를 다시 받아야 한다. 이 점에서 개신교와의 차이점이 드러나는데, 개신교에서는 사제에게 죄를 사해줄 권한이 있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고 죄의 용서는 죄인과 하나님과의 일대일 회개를 통해서 용서받을 수 있다고 보는 반면,[14] 가톨릭에서는 고해성사를 포함한 7성사를 집전할 권리가 사제에게 주어진다.

그러나 그 죄로 인한 은 그대로 남는데, 이 벌을 죽은 후 연옥에서 영혼의 상태로 고통받으며 때워야 한다. 편의상 벌이라고 표현하긴 하지만 단순히 고통을 가함으로써 끝나는 장소는 아니며, 자기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나면 좀 더 하느님을 뵙기에 합당한 상태가 된다고 한다. 죄로 인한 오점을 씻어낸다는 점에서 연옥을 '정화하는 장소(purgatorium)'라고 한다. 물론 성인과 같은 삶으로 현세에서 지극히 고통을 받으면서도 독실히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정의와 선을 위해 노력했다면 연옥에 가지 않거나, 연옥에 아주 조금만 있고 바로 천국에 가서 살며 영원한 행복과 복락을 누리며 기쁨 속에 영생을 얻고, 하느님을 뵐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문제는 신자들 절대다수는 결코 성인이 아니라는 것(…).

그러므로 고해성사를 보면 사제보속(satisfactio)이라는 것을 준다. 이것은 "앞으로는 죄 안 짓고 좀 조심하시며 사셔야죠? 자, 그걸 몸과 마음에 새기고자 이렇게 하도록 합시다" 하는 교육적 의미, 벌을 준다는 의미, 그리고 죄로 인한 상처를 신자의 노력과 믿음으로 갚으라는 의미다. 예를 들어 의 먹을 식량을 훔쳐서 을이 한 끼를 굶주렸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갑은 그 죄를 회개와 고해성사를 통해서 용서받는다고 해도 갑의 죄 때문에 을이 한 끼를 굶어야 했다는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이것이 '죄의 상처'로서 남는 것이다. 이것을 채워야 하는 것이 신자가 받는 잠벌이다. 이는 현세의 기도나 고행으로 채우거나, 사후 연옥에서 고통을 겪으며 치르게 된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흔히 고해성사에서 사제가 정해주는 보속은 그것을 행하더라도 해당 죄에 대한 벌을 다 치러 죽더라도 연옥에도 거치지 않고 천국으로 갈 수 있기에는 부족하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교리다.

즉 고해성사를 꾸준히하고 사제가 말해주는 보속을 모두 제대로 행한다면 연옥에서의 잠벌을 받지 않고 바로 천국으로 가게 되어야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러한 (저지른 죄의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보속행위만으로 벌을 온전히 다하고 연옥을 피해 천국에 가기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15] 이 부분은 가톨릭 위키러들 사이에서도 헷갈리는지 수정이 잦았었고 한동안 사제가 명령한 보속을 실천하는 것만으로 고해성사 때 고백한 죄의 모든 잠벌을 용서받는다는 잘못된 정보가 적혀있기도 했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생각해보면, 저지른 죄의 크고작은 심각성에 비해 기도 몇번이나 고행 정도로 벌을 다 치른다는 것은 지나치게 가볍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흔히 보속으로 잘못 생각되는 남에게 손해끼친 것에 대한 보상은 보속과는 별개로 고해성사 이전에 가급적 당연히 해야 하며 이는 보속보다는 고해 전에 분명히 있어야 하는 회개에 가깝다. 남에 피해에 대한 갚아줄 의지도 없이 고해성사를 본다는 것 자체가 죄의식의 결여로 인해 모고해의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또한 가벼운 보속조차도 실질적으로는 완벽히 행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를테면 '성모송 세 번' 급의 매우 가벼운 보속을 사제가 말했다고 하더라도, 신자 자신이 그 보속을 진심으로 행했다고 확신하기는 매우 어려운 법이다. 과연 자신은 성호경을 긋고 성모송을 외는 1~2분의 시간 사이에 잡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확언할 수 있을까? 진심으로 하느님께 마음을 의탁하며 죄 보속을 위해 열심히 기도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가톨릭 신자들은 이 부분을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즉 신자 자신도 자신이 보속을 제대로 했는지 장담이 어렵고, 그걸 제대로 아는건 하느님뿐이다.또한 신자에 따라서 보속을 행하는게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사제가 신자에게 "201X년 성탄절에 묵주기도 5단을 바치세요"라고 보속을 주었는데, 신자가 실수로 보속을 까먹었고 사제마저도 까먹었다면 해당 신자는 나중에라도 그 보속을 바치는게 매우 어려워진다. 즉 이론상으로는 매우 간단하고 쉽지만, 죽을때까지 보속을 하나하나 모두 성실하게 행하는건 의외로 매우 어렵다.

이 문제는 과거에는 더 심각했다. 요즘이야 "성경 로마서 몇 장 읽고 묵상하세요" 혹은 "묵주기도 몇 단 바치세요" 또는 "참회하는 경건한 마음으로 주님의 기도성모송 몇번 하세요!" 등으로 끝나는 게 보속이지만[16], 과거에는 "몇개월 ~ 수년동안 성당 입구에서 나는 죄인이오 하는 식으로 고행하며 보속하세요"라거나 "당장 멀리 떨어진 성지로 순례 다녀오세요" 식의 무지막지한 보속이 대부분이었다. 서유럽에서 전해지는 옛 이야기에 따르면, 양말에 을 넣고 순례 갔다 오라고 했다는 이야기마저 있을 정도니, 이야기가 과장되었다 해도 대충 분위기를 알 수 있다. "모래알이든 바위든 가라앉는 건 마찬가지"라는 식의 논리로, 모든 죄는 그에 무거운 대가를 치러야 다시는 안 짓는다는 논리였다. 물론 맞긴 하지만..당연히 이러한 보속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였다. 영주기사 계급도 아닌 일반 평민이나 농노성지까지 갈 재력이 어딨으며, 어디 감히 영주에게 "성지순례해야 하니까 영지를 잠깐 나가게 해 주세요"라고 요청할 수 있었을까?

이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별 거 아닌 죄에 대해서도 혹독한 보속을 내리는 풍조는 점점 줄어들다가[17]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이르러서야 완전히 사라진다. 실제로 19세기 말에 태어난 카푸친 프란치스코회 수사 신부 성 '레오폴도 만딕(Saint Leopold Bogdan Mandić, 축일 7월 30일)'[18]은, "어릴 때 별 거 아닌 죄를 동네 성당의 신부에게 고해했더니, 보속으로 성당에서 몇 시간 동안이고 서 있게 했다"고 회고했다. 성 레오폴도 만딕은 당시 어린 마음에도 "이건 부조리하다!!"고 생각했다 하며, 훗날 카푸친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해 수도사제가 된 후, 수도회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고해성사를 줄 때 늘 온화하고 따뜻하게 대했다고 한다. 원래 카푸친 프란치스코회는 분위기가 엄격한 곳이기 때문에, 성 레오폴도 만딕의 행동이 잘못이라고 비판한 같은 수도회 회원들도 제법 있었다고 한다.[19]

이 보속은 고해성사의 유효성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지만[20] 고해성사의 본 목적 중 하나인 '죄를 짓지 않게끔 경각심을 주고자 하는 교정적 행동'인 만큼, 이를 하지 않는다면 고해성사를 온전히 본 것이 아니다. 반대로 자기가 지은 죄를 끊고자 한다는 의지가 결여되었다는 뜻도 될 수 있다. 안 그래도 가볍게 주는 보속도 제대로 안 하는 사람이 현세에서 지극한 용기와 덕행으로 성인처럼 살 리도 만무하고.

4.1. 대사란 무엇인가?[편집]

그런데 위와 같은 상황들이 누적되면 신자들은 점차 고해성사도 보지 않게 되고 신앙에도 멀어진다. 그래서 "지금 대사를 받으면 잠벌(보속)도 면제 된다능!" 하면서 신자들을 독려하게 되었다.[21][22]

“대사란, 이미 그 죄과에 대해서는 용서받았지만, 그 죄 때문에 받아야 할 잠시적인 벌[暫罰]을 하느님 앞에서 면제해 주는 것인데, 선한 지향을 가진 신자가 일정한 조건을 충족시켰을 때, 교회의 행위를 통해 얻는다. 교회는 구원의 분배자로서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보속의 보물을 자신의 권한으로 나누어 주고 활용한다.”
가톨릭 교리서 1471항 中

죄를 지은 사람이 진정으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에게 교회는 고백성사를 통하여 죄는 사면되었다 할지라도 그 죄에 따른 벌, 즉 잠벌(暫罰)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 잠벌은 자신의 죄를 속죄하는 보속(補贖)을 통하여 사면될 수 있는데, 현세에서 보속을 하지 못한 경우 연옥에서 보속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교회는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이 보속을 면제해 주는 것을 대사라고 한다.
가톨릭 대사전 <대사> 항목 中


이에 교회는 성경에 의거,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천국문의 열쇠를 받았다고 전해지는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인 교황의 권한으로 천국의 곳간을 열어 성인들의 공로를 나누어 베풂으로써 일정한 전체 보속을 바치면 연옥의 잠벌을 면제받을 수 있다고 선포하기에 이른다. 이는 연옥 벌을 모두 면제받을 수 있는 전대사와 일부를 면제받을 수 있는 한대사로 나누어진다. 쉽게 말하자면, 특정한 퀘스트 조건의 만족 여하에 따라서 보속을 일부 혹은 전부 면제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전대사도 실제로 누군가가 실제로 전대사를 받았는지는 오직 하느님만이, 혹은 해당인물이 사망한 뒤에 본인의 영혼만이 알 수 있다. 가톨릭 교회가 정한 '전대사를 받는 조건'을 모두 채웠다고 해도, 하느님께서 그 사람을 평가하여 불합격하면 한대사만 허락하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대사가 얼마나 효력이 있을지에 대한 평가도 역시 하느님만이 하시므로, 전대사를 받는 조건을 채웠다고 자기가 연옥에서 받을 벌이 모두 사라졌다고 장담할 수가 없다. 따라서 대사를 받았다고 안심하지 말고, 삶 속에서 올바른 신앙생활을 유지함이 중요하다.

현대 가톨릭 교회에서 대사의 조건은 보통 기도와 성지순례 등이 가장 흔하다. 그러나 과거에는 십자군에 참여, 헌금(봉헌) 등의 형태로도 선포되곤 하였다. 그리고 여기서 강조한 헌금이 종교개혁의 불씨가 되었다. 16세기 판매 된 면벌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1. 지은 죄를 회개하고 다시 죄짓지 않기로 마음먹은 뒤 사제에게 가서 고해성사를 보아야 한다.

  2. 적어도 지정된 7개 성당을 순례하여야 하며, 순례할 때마다 우리 죄를 대신 속죄하여 주신 주 예수의 오상(양손, 양발, 옆구리)을 기념하고 공경하는 뜻으로 주의 기도와 성모송을 5번씩 열심으로 바치거나 또는 "하느님, 자비하시니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시편 50)을 바쳐야 한다.

  3.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비로 응분의 헌금을 바치는 것이 좋다. 그러나 하늘 나라는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다 같이 갈 수 있도록 열려 있으므로, 돈이 없는 사람들은 헌금 대신 기도와 대재로 대사를 받을 수 있다.

[23]

여기서 3번 항목을 먼저 이행한 자는, 어느 사제에게나 고해성사를 볼 수 있다는 증명문구가 라틴어로 씐 증서를 나누어 주었다. 이 증서가 속칭 면벌부이다. 이는 옛 사람들은 흔히 자기 사는 동네를 벗어나기 어려운 현실 때문인데, 신부들과 계속 얼굴을 맞대다 보면 사이가 나빠질 수도 있고, 아무리 신부가 비밀을 지킨다고 해도 고해성사를 하기 싫어진다. 게다가 다른 신부가 자기 동네에 온다고 해도 주교에게 허락을 받지 않으면 합법적으로 고해성사를 줄 수 없다. 또한 아주 심각한 대죄(낙태를 공공연히 행한다거나)일 경우 일반 사제에게 고해성사할 권한이 없었다. 이런 죄들은 고등 성직자에게만 권한이 있었다. 하지만 이 증서가 있으면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아무 사제에게나 가서 고해성사를 볼 수 있는 것이다.[24]

하지만 바로 이 3번이 동시에 논란의 핵심이었다. 분명히 돈이 없는 사람은 헌금 대신 기도와 대재[25]로 대체가 가능하다고 명시했고, 교황의 교서에도 "헌납자는 각자의 형편에 따라 헌납해야한다."고 언급했다. 또한, 고해성사를 통해서 진정으로 죄를 참회하고 뉘우치지 않으면 전대사는 받을 수 없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부패는 커녕 훈훈하기 짝이 없는 조건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FM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당연히 자신이 헌금을 냈다고 목에 힘을 주는 신자와, 대사의 조건에 개인 의견을 붙여서 선동하는 판매원이 등장한 것이다. 또한 헌금은 종교적 관점에서는 그렇다쳐도[26], 종교적 관점을 배제한다면 자칫 유전무벌 무전유벌로 보일 수가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가장 큰 문제는 '개인 의견을 붙여서 선동하는 판매원'의 대표주자가 바로 위에서 언급한 요하네스 테첼이라는 점이다 테첼은 대사를 판매하면서 이 항목에 언급된 주옥 같은 개드립들을 펼쳤다.[27]

4.2. 가톨릭 교회의 개혁[편집]

가톨릭 교회에서는 트렌토[28] 공의회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함으로써 가톨릭 내부적으로는 헌금형 대사의 폐단을 근절한다.

대사를 수여하는 권한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주신 것이고, 이렇게 신적으로 수여된 권한은 교회의 시초부터 행사되어왔다. 본 거룩한 공의회는 그리스도 백성에게 매우 유익하고 거룩한 공의회들에서 승인된 이 관행을 교회 내에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명하는 바이다. 또한 대사가 무용하다고 규정하거나 교회에 대사를 베풀 권한이 없다고 부인하는 자들을 파문에 처한다. 하지만 대사를 수여함에 있어서 너무 쉽게 베풀어서 교회의 규율이 약화되지 않도록 교회가 인정한 오랜 관행에 따라 절제하기를 바란다. 아울러 대사라는 아름다운 단어가 이단들에 의해서 모욕당하게 하는 남용 행위를 교정하고 개선하기를 원하면서, 본 교령을 통해 총체적으로 규정하는 바, 대사를 얻기 위해 자행되었고 그리스도 백성에게 끝없는 남용의 원인이 되었던 모든 부적절한 금전의 유통을 완전히 완전히 폐지한다. 미신과 무지와 존경심 부족과 여타 이유에서 기인하였고 여러 관구들과 지역들에서 그 형태가 다양하기 때문에 특정한 방법으로 쉽게 금지시킬 수 없는 여타의 남용들에 대해서, 본 거룩한 공의회는 모든 주교에게 자기 교구에서 이런 남용들의 소식을 부지런히 수집하고 그에 대해서 먼저 관구 시노드에 보고하며, 다른 주교들의 의견도 청취한 다음 즉시 로마 교황에게 보고하라고 명령하는 바이다. 교황은 거룩한 대사의 은총이 모든 신자들에게 자비와 거룩함과 순수함과 함께 나누어지도록 자신의 권위와 지혜로 전체 교회에 유익이 되는 결정을 내릴 것이다.

트렌토 공의회 제25차 회기 中

제9조 (자선 기부금 모집 제도의 폐지)
예전의 여러 공의회들, 즉 라테란 공의회, 리옹과 비엔 공의회를 통해서 자선 기부금 모집자들의 사악한 직분 남용에 반대하는 많은 대책이 동원되었지만, 나중에는 소용이 없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악의가 날로 증가하여서 모든 신자들에게 큰 추문과 불만이 되고, 개선에 대한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므로 본 공의회는 앞으로 모든 그리스도교 지역에서 자선 기부금 모집자란 명칭과 실천을 완전히 폐지하고, 이런 식의 직무 수행을 앞으로는 허용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바이다. 그 어떤 교회나 수도원, 구호소, 성지 그리고 계층, 신분, 품위를 불문하고 개인들에게 주어진 특전이나 관습도, 비록 그것이 아무리 오래된 것이라도, 이를 거스르지 못한다. 그러나 이로 인해서 대사나 여타 영적인 은전이 그리스도교 신자들로부터 박탈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본 거룩한 공의회는 앞으로 교구 직권자가 참사회의 구성원 두 명을 참여시켜서 적절한 시간에 백성들에게 대사나 은전에 관해 공지하도록 결정하는데, 이 두사람에게는 무보수로 자선 기부금과 이웃 사랑을 위한 봉헌물을 충실하게 거두는 권한이 주어진다. 마침내 모든 사람들이 교회의 천상적 보하는 돈벌이가 아니라 신심을 위하여 집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듣기를 바라는 바이다.

트렌토 공의회 제21차 회기 개혁교령 中



현대 가톨릭 교회법에서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 992 조 대사는 죄과에 대하여는 이미 용서받은 죄에 따른 잠시적 벌에 대한 하느님 앞에서의 사면이다. 합당한 마음 자세로 규정된 일정한 조건들을 채우는 그리스도교 신자는 구원의 교역자로서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보속 공로의 보고를 권위 있게 분배하며 적용하는 교회의 도움으로 대사를 얻는다.

제 993 조 죄에 따른 응분의 잠시적 벌에서 일부만 풀리는가 또는 전부 풀리는가에 따라서 부분 대사이거나 전면 대사이다.

제 994 조 어느 신자든지 부분 대사거나 전면 대사거나 자기 자신을 위하여 얻을 수도 있고 또는 죽은 이들을 위하여 대리 기도의 방식으로 얻어 줄 수도 있다.

제 995 조 ① 교회의 최고 권위 이외에는, 대사 수여권을 법률로 인정받거나 교황에게서 부여받은 이들만이 대사를 줄 수 있다.
② 교황 이하의 권위는 대사 수여권을 타인들에게 위탁할 수 없다. 다만 사도좌가 그에게 이를 명시적으로 윤허하였으면 그러하지 아니하다.

제 996 조 ① 대사를 얻을 능력이 있기 위하여는 영세자로서 파문 처벌자가 아니며 적어도 규정도 선행이 끝나는 때 은총의 상태에 있어야 한다.
② 대사를 얻을 능력이 있는 사람이 실제로 대사를 얻기 위하여는 적어도 대사를 얻겠다는 의사가 있어야 하고 또한 대사 수여의 취지에 따라 지정된 선행을 정해진 시기에 합당한 방식으로 이행하여야 한다.

제 997 조 대사의 수여 및 그 사용에 관하여는 이외에도 교회의 특별법에 들어 있는 그 밖의 규정들도 지켜야 한다.

가톨릭교회법 中


당연하지만, 이제는 루터 시기에 문제가 되었던 헌금형 대사는 선포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 자체적인 개혁이 어느정도 성공을 거두어서, 현대에는 대사를 가지고 신자들이 불만을 가지지는 않는다. 21세기 들어 교황청 차원에서 선포되었던 전대사로는 2008년 사도 바오로 탄생 2000주년 전대사와 2009년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 선종 150주년을 맞이해 선포한 사제의 해 전대사, 2012년 신앙의 해 전대사 등이 있다. 매년 부활 · 성탄 때 교황의 담화를 발표하거나 교황 선출 후 첫인사를 하는 행사 '우르비 에트 오르비(Urbi et Orbi, 로마 시와 전 세계에)' 때 교황의 장엄 강복을 직접, 혹은 라디오나 TV 생중계로 받아도 전대사를 얻는다. 2013년에는 새 교황의 첫 강복#, 부활, 성탄 대축일 총 3번이 있었다. 이 전대사들은 대략 참회하는 마음으로 고해성사를 보고 영성체를 하며, 모든 죄악들을 아무리 작은 죄라도 끊어버릴 심정을 굳히고, 교황의 지향[29]에 따라 기도목표를 두고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을 기도하면(이 세 조건을 전대사 통상 조건이라 함) 받을 수 있는 것들이다. 일단 헌금봉헌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 2014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과 시복식을 맞아 한국의 16개 교구(군종교구 포함)에서 교구별로 전대사를 주고 있다. 성지순례를 포함하여 교구별로 조건이 조금씩 다르니 미리 알아볼 것.

위에서 말한 대사 통상조건을 이행하며, 미사 중 거양 성체 · 성혈 중 성체께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Dominus meus et Deus meus)'[30]이라고 진심으로 고백해도 일정한 기간의 대사를 얻을 수 있다. 옛 신자들 중 성체신심이 과해서 성체를 쳐다볼 수도 없다고 생각한 이들이 많아서 생긴 규정이라고 한다.

5. 비유적 용법[편집]

'헌금형 대사'라는 삽질의 여파는 여전히 남아있어서, 21세기에도 면죄부라는 말은 매우 부정적인 뉘앙스로 쓰인다. 이를테면 TV프로 중에서도 이미지가 안 좋거나 무언가 잘못을 저지른 연예인토크쇼 TV프로에 출연하여 자신이 받는 오해나 사연이라든가 상황을 구구절절 말 하고 난 뒤 까임이 평소보다 확실히 줄고, 몇몇 연예인은 이것을 발판으로 다시 연예계 활동을 시작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현상을 보고 이 프로는 잘못이 있는 연예인에게 면죄부를 준다고 일부 네티즌들이 표현한다. 이때 TV프로 이름을 면죄부도사, 면죄부캠프, 병심장이라고 비꼬기도 한다. 또한 돈 많고 빽좋은 누군가의 악행 및 비행들을 미화하려고 하거나, 혹은 가벼운 송방망이식 처벌만 내리려고 하면 면죄부를 준다고 한다.

[1] 신성로마제국 최선임 제후로 황제선거시 마지막 투표로 동수시 결정권한이 있으며 독일왕국 재상직이란 명예와 알프스 이북의 교황의 대리인이라는 수식을 들을정도의 권력자였다.[2] 교황 레오 10세는 유력가에서 선제후직을 차지하여 합스부르크 가문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있었다.한편 마인츠 뿐만 아니라 쾰른이나 잘츠부르크 대주교직도 수입이 많고 영지가 넓어서 시가가 2만두카트가 넘었다.[3] 폴란드에서 이단심문관을 지냈고 오스트리아 티롤 지방에서 간음등의 엽색행각으로 막시밀리안 1세에게 사형을 선고 받았으나 교회빽으로 석방된 전적이 있는 문제가 심각한 인물이었다.[4] 십자군 시기 전비 마련을 목적으로 성직제후에게 부과된 세금으로 첫해 수입을 몽땅 바친다. 이후 십자군 전쟁이 없어졌어도 관례적으로 계속 부과 됨.[5] 알브레히트 대주교는 2만여점의 성물과 40여구의 성유물을 보유했고, 종교개혁을 지지한 작센 선제후 조차 2만9천여점의 성물을 보유했다.[6] 반박문을 게시한게 아니란 주장은 1960년대 가톨릭 교회사가의 주장으로 통설이 아니다. 기존 통설은 1548년 루터의 제자이며 동료 필리프 멜란히톤의 책에서 1517년 10월 31일 직접 교회 문짝에 박았다였고, 현재 개신교회쪽 교회사가들 중에서도 항의편지를 쓴 게 10월 31일이고 교회 문짝에 붙인건 11월 중순이라는 의견도 있다.[7] 16세기 초반 독일지역 농촌의 문맹률은 95%였고, 도시지역은 7~80%였다. 테첼이 과장선전을 하지 않고 문서대로만 팔았어도 대부분은 이해할 만한 지성이 없었다.[8] 여기서 일부 학자들은 루터와 북유럽의 언어적 죄의 개념과 로망스어 사용권의 언어적 개념을 들기도 하는데 북구어에선 죄는 나눌수 없는 개념이 강하다는것[9] 교황청 인장의 위력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동일하다는 발언[10] 루터는 과격한 자신의 추종자들이 테첼을 암살하려는 시도를 여러번 말렸고 테첼은 그저 가톨릭의 하수인으로 봤기 때문에 위로한 것이다. [11] 보통 죄를 분명히 알고있으면서, 악한 자유의지로 지으며, 십계명을 거스르기 때문에 짓고 회개하지 않고 죽을 시 지옥에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죄를 대죄라고 한다. 즉, 살인, 도둑질, 지나친 탐욕, 강도질, 간음이나 혼전성관계 및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일체의 동성애 행위, 수음 및 자위행위, 냉담 및 주일미사를 소홀히하고 참여 안 함, 신성모독과 배교 등등.[12] 이런 관점에서 고해성사를 '화해의 성사'라고도 부르는데, 죄인인 자신이 고해성사를 통해 하느님과 화해한다는 의미이다.[13] 자신이 모르고 지은 죄, 그리고 대죄보다는 가벼운 일상에서의 여러 잘못들인 소죄는 고해성사로도 용서받을 수 있지만 고해성사 없이 하나하나 진실로 뉘우치는 마음으로 미사에서 고백기도를 같이 바치고, 영성체를 해도 용서받긴 한다. 물론 보속은 알아서 열심히 기도와 선행으로 해야겠지만.[14] 정확히는 성공회루터교는 면죄의 권한, 즉 고해성사는 인정한다. 하지만 그외의 대다수 개신교 종파는 부정.[15] 과거의 천주교 교리서 역할을 하던 천주교 교리문답 273번을 보면, '고해성사에서 신부가 주는 보속만으로 그 고해성사에서 용서받은 죄의 모든 잠벌들도 사해지는가?' 라는 질문에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스스로 다른 보속 될만한 신심(기도, 선행, 삶의 고통을 참아받음 등등)을 찾아 행하던지, 대사를 얻어 잠벌의 부족함을 채우라고 분명히 명기하고 있다.[16] 물론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이렇게 보속이 가벼워졌다고 해서 죄악에 따른 벌을 적게 치러도 된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보속이 가벼워진건 신자들에게 더 자비를 베풀어 죄의 고백과 회개를 자주, 많이 할 수 있게 이끄는 목적이 있으므로 만일 신자 본인이 절실히 회개하고 고해성사로 죄를 용서받았다면, 사제가 주는 보속만 하고 땡 이라고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되며, 이후의 삶에서 자기가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죄를 다시 짓지말고 끊임없는 기도와 믿음과 선행으로 자신의 악행의 상처를 기워갚는 생활을 해야 마땅할 것이다.[17] 우리나라에 가톨릭 교회가 처음 생겨났을 무렵만 보더라도. 종아리 몇대 하는 식으로 위의 말도 안 되는 보속까지는 가지 않았다.[18] 이 성인의 이름은 한국어로 여러 가지로 음역된다. 보통은 '레오폴도 만딕', 혹은 '레오폴드 만딕'이라고 한다. 그러나 카푸친 프란치스코 수도회 한국관구는 이를 '레오폴도 만디츠'라고 음역한다. 하지만 이 성인의 모국어인 세르보-크로아티아어 표기법에 따라 음역하면 만디치라고 해야 옳다. 세르보-크로아트어에서 'ć'는 치경구개음으로 발음되기 때문.[19] 별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카푸친(Cappucin)은 이들이 쓰고 다니던 망토의 일종이었는데, 이 단어는 훗날 카푸치노(Cappucino)라는 단어로 바뀐다.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그거 맞다. 카푸치노 커피의 색깔과 카푸친 망토의 색깔이 비슷하기 때문에.[20] 사제가 사죄경을 내리면 고해성사는 유효하다.[21] 실제로 효과가 있다. 2008년에도 베네딕토 16세가 내린 전대사 기간 중에 미국유럽 등지에서 여러 냉담자들이 용기를 얻고 다시 성당에 돌아온 사례가 보고되었다.[22] 2000년대 들어서는 대사가 자주 주어지는 편이다. 2000년에 대희년을 맞아 전대사가 수여된 이후로는 거의 2~3년 주기로 대사가 계속 주어지고 있다.[23] 출처는 제임스 기본스 추기경의 저서인 <교부들의 신앙>이다.[24] 이 증서의 라틴어 원문은 다음과 같다. Potestatem habet eligendi sibi confessorem presbyterum idoneum religiosum vel saecularem, qui audita diligenter eius confessione, absolvere eum possit auctoritate predicta (Papa) ab omnibus peccatis ac semel in vita et in mortis articulo plenariam omnium peccatorum suorum indulgentiam et remissionem impendere. 해석은 이러하다. 즉 이(증서를 가진 자)는 뜻에 맞는 죄의 고백을 들어줄 사제를 선택할 특전이 있으니, 이 사제는 수도 사제이거나 세속 사제이거나 그 고백을 유심히 들은 뒤, 위에서 말한 (교황의) 권능으로 모든 죄를 사할 수 있다. 또 일생에 한 번과 임종의 위험이 있을 때 그의 모든 죄를 완전히 사하여 주고, 또 전대사를 베풀 수 있다. 출처는 H.C. Lea의 <고해와 대사>[25] Jejunium. 재의 수요일과 성금요일에 금육, 금식을 하는 것. 소재는 금요일에 금육을 하는 것이다.[26] 모세도 성소를 짓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헌금을 요구했다[27] 당시의 대사 조건은 라틴어로 선포되었기에, 테첼과 같은 자들이 선동을 하면 얄짤 없이 왜곡되는 취약함이 있었다.[28] 독일어로 트리엔트라고도 한다. 현재는 이탈리아령이며, 가톨릭출판사에서 펴낸 <보편 공의회 문헌집>에서는 이탈리아어 '트렌토'를 쓰고 있다. [29] 전통적인 지향은 가톨릭 교회의 번성과 이단의 소멸, 현대의 지향들은 가톨릭 미사책인 <매일미사> 앞쪽에 월마다 갱신되어 올라온다.[30] 예수부활을 의심하던 사도 토마스가, 예수의 손과 발과 옆구리의 상처를 직접 보고 만져본 후 했던 신앙고백. 자세한 이야기는 사도 토마스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