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꽁이 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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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구성과 출판 역사3. 2010년대 근황4. 내용5. 등장인물6. 기타7. 패러디

1. 개요[편집]

파일:attachment/맹꽁이 서당/맹꽁이서당.jpg

한국어: 맹꽁이 서당
영어: mang ggong[1]i Seodang Dolsang[2]
한자: 黽黉[3]
윤승운 화백의 역사 학습만화로 만화 형식은 매회 전반부에는 학동들이 말썽부리는 이야기가 나오고, 그 말썽이 수습되면서 훈장이 "선대왕을 공부한다!"라고 외치며 조선왕조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나아갔다. 만화가 연재되던 1980년대 중반에는 이런 형식의 학습만화가 별로 없었기에 꽤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

많은 사람이 잘 모르는 부분이긴 한데 이 서당의 원래 이름은 <공맹서당>[4]이다. 근데 과거 표기가 현대와 달리 역순으로 되어있던 터라(孟孔) 학생들이 맹꽁이라는 이름을 붙였던 것[5]그런데 학동들이 공맹을 뒤집어 장난식으로 맹꽁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훈장님이 초반에는 이에 대해서 크게 화를 냈지만 여러 사람들이 다 그렇게 부르다 보니 결국 포기한 모앙…

의외로 한자가 좀...이 아니라 엄청 많이 나온다. 아예 한자로 한글 표기를 대신한 것도 있는데, 아마 조선 시대기 때문인 것 같다. 다행히 대부분은 한글을 밑이나 그런 데 써놨기 때문에 알아볼 수 없는 건 거의 없다. 설사 한글 표기가 없어도 문맥상 이해할 수 있다.

2. 구성과 출판 역사[편집]

첫 연재 잡지는 보물섬. 비슷한 시기, 월간 소년지에 '서당골 호랑이 훈장님'이라는 제목으로 똑같은 포맷의 작품이 연재된 적이 있다.[6] 물론 원고는 별도 작업. 고려시대 편에는 서당골 호랑이 훈장님의 에피소드 몇 개를 가져다 넣었다. 백곡 이야기라든가.

원래 보물섬 연재와 IMF 파동 이전에 나온 웅진 초판본 때에는 흑백만화였지만, 2000년대 이후 웅진출판사에서 학습만화로 재간되면서 컬러화 작업을 거쳤다. 덕분에 최근 단행본은 모두 컬러다. 보물섬 연재 본에 비해 몇몇 군데 삭제나 수정을 거친 부분이 있는데, 일단 말풍선이 아닌 부분의 글자는 전부 손글씨가 아닌 활자로 들어갔다. 그리고 몇몇 부분의 컷은 삭제 및 수정이 있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임진왜란 편에서 부산성 싸움을 그린 에피소드는, 보물섬 연재 본에서는 전투장면이 4~5컷가량 나오지만, 웅진출판사 단행본은 이 부분이 없다. 또 보물섬 연재 시에 학동들이 말썽부리는 부분으로만 한 회를 채운 에피소드는 모두 삭제되었다. 아무래도 명색이 학습만화라서 삭제된 듯.[7]

보물섬 연재 시에는 가끔가다 말썽 부리는 스토리로만 한 회를 때우기도 했다. 그럴 때면 앞부분에 화백이 손수 나와서 사과를 하는 장면을 삽입하거나, 맨 마지막에 윤 화백의 화실에 쳐들어온 훈장님이 "잘 한다, 이게 역사 만화냐?" 하고 담뱃대로 내리치는 장면을 넣는다. 어떤 화는 탐관오리 사또가 화백에게 "이놈 또 역사 공부 빼먹었구나! 공부 못한 애들이 어떻게 나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겠느냐"라고 일갈하기도 한다. 이 장면은 웅진출판사본 6권에서 쓰였다.

마지막 회 연재 당시까지는 맹훈장의 파직이 풀려 판서로 돌아가고 맹꽁이 서당을 떠나게 될 때 학동들과 작별인사를 한 후(!) 후임 훈장이 오게 된다는 내용이었다.[8]

조선시대 편의 경우 태조 이성계 ~ 효종까지의 이야기를 다룬 편과 숙종, 영조, 정조 편은 어느 정도 시점의 차이가 있다. 1986년 요요코믹스에서 첫 단행본이 나온 이후, 웅진으로 출판사가 바뀐 이후의 1995년, 2005년 판의 단행본이 존재한다.

숙영조시대는 '맹훈장과 꾸러기들'이란 이름으로 민서 출판사에서 출판되었고 영조 말기와 정조 시대는 송우 출판사에서 "만화 조선시대"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으며 인물들의 야사나 일화들은 '서당골 호랑이 훈장님'이란 만화로 따로 발간되기도 했다.

이것을 웅진사에서 통합하여 보완하고 나니 비로소 7권의 책이 나온 것으로 이때부터 '맹꽁이 서당'이라는 이름으로 발간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건강상의 문제로 작가인 윤승운 씨가 휴재를 하게 되고, 이후 웅진출판사에서 순조 ~ 고종 시절의 이야기를 마저 그려 10부작 조선시대 편을 완결 짓게 되었으며 순조편은 사실상 홍경래의 난이랑 김삿갓에 대한 이야기나 다름 없으며 이전에 쓴 "방랑시인 김삿갓"의 그 시절 판본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맹훈장이 구한말(舊韓末)에서부터 1910년 경술국치, 그리고 간략하게 1945년 해방에 이르기까지 내용을 이어갔으며, 맹훈장도 '이것은 조선사는 끝이다'라는 짤막한 인사말을 전하면서 맹꽁이 서당에 학동들과 잔류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이후 고려시대 이야기를 만화화하여 '고려 맹꽁이 서당'이란 이름으로 전 5권 발간.

3. 2010년대 근황[편집]

전자책 버전으로도 출시되었다. 아이폰아이패드용이고, 전용 뷰어 어플을 받아서 보는 방식이다. 2012년 현재 15권이 모두 나와 있다. 어플 자체는 0.99달러며 어플 내 결제 방식으로 한권씩 다운로드 가능하다. 1권은 기본제공이고 2권부터는 3.99달러씩 내는 방식. 원화로 환산하면 권당 5천원 정도로 종이책의 절반 정도의 가격이다. 단, 32비트 전용앱이라 iOS11로 업그레이드 시 더이상 열람할 수 없다.

구글 플레이 북에도 조선편과 고려편이 유료로 존재한다. 전부 컬러판.

4. 내용[편집]

정사와 야사가 혼합된 역사 이야기책이다. 보물섬 연재 시에도 부제가 조선왕조 500년 야사였다. 하지만 80년대 작품의 한계점인지, 중간마다 오류나 생략된 점, 근거가 불확실한 내용이 상당히 많다. 실제로 윤 화백은 '맹꽁이 서당'의 올 컬러 개정판을 내면서 머리말에 재해석된 역사를 담아내지 못하게 되는 게 아쉽다고 밝혔다. 실제로 선대사 부분은 야사에 가까운 내용이 대부분이니 이걸 읽고 역사 잘 안다고 착각하지는 않는 게 좋다.

일례로 5권의 숙종 편에서 장희빈을 하나의 악녀로 규정하여 배후의 서인과 남인의 세력다툼을 아예 생략해 버리고, 조선 중기 궁궐의 암투를 장희빈의 질투로 인한 세력다툼으로 규정한다든지, 인현왕후는 그냥 착하게만 묘사했다. 광해군에 대해서도 업적에 대한 묘사는 일절 없고 악인을 묘사할 때 쓰이는 돼지코를 달고 나오며,[9] 선조와의 갈등으로 타락해 형제와 가족들과 신하들을 학살한 폭군으로 묘사되어 연산군과 함께 영구까임권을 얻어 자주 등장한다. 반면 선조인조의 잘못에 대해서는 전혀 서술하지 않거나 그나마 서술된 것도 두리뭉실하게 말하며 비판 없이 넘어간다. 심지어 그 막장인 임해군의 악행조차 전혀 없이 그저 왕가에 태어난 죄로 희생된 거로만 그려져 있다. 물론 이 부분은 윤 화백 개인의 사관이라기보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될 1980년대 당시의 주류 사관에 충실했던 듯하다. 전반적으로 서인 중심 사관(정확히는 노론 시파 사관)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노론 음모론이 좋아합니다.

소현세자에 대한 묘사도 좋지 않아 포로 시기의 내용도 생략하고, 청 황제가 잔치를 베풀고 소원을 들어줄 때 봉림대군이 백성들을 풀어달라고 하였지만 자기는 벼루 하나 받아와서 처음에는 반갑게 맞았던 인조가 열 받아서 그 벼루를 던져 죽이고, 인조가 자기 실수를 탄식했다는 얘기도 실려있는데 이것도 거짓이다. 벼루 얘기는 야사일뿐더러, 소현세자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실제로 소현세자는 누구보다 백성들을 구해내려고 힘쓴 인물이다. 게다가 인조는 소현세자를 절대 반갑게 맞지 않았고 엄청난 불화를 겪으며 소현세자를 엄청나게 꺼리고 미워했다.[10] 그나마 '겨레의 인걸 100인'에서는 좋게 묘사했다.

또한 도원수 시절 김명원의 인식이 안 좋아지게 만들었다. 그냥 도주하듯이 그려놓고 신각을 벌줄 것을 장계 올리며 체면 차리려는 이미지로 나와 오늘날도 아이들에게 김명원은 대판 까인다.

경종을 임금 대우도 안 해주면서 나대다가, 신축환국으로 개발살난 노론 4대신을 난데없이 경종을 위해 후계 구도를 확고히 해주려던 충신으로 묘사한다. 그런데 사실 노론 4대신은 경종을 임금 대우도 안 해줬다. 자세한 것은 신임옥사 문서 참조.

사도세자와 임오화변에 관련한 묘사도 영조가 세자를 학대하고 질책했다는 묘사는 일절 없고 세자는 모함으로 죽었다는 노론 음모론의 내용이 나오며 세자가 죽은 후에는 영조가 크게 후회하며 시호를 내린 것으로 나온다. 또 화완옹주나 정순왕후가 악의 축으로 묘사되는 것도 여지없다.

고종공짜로 군밤 안 줬다고 군밤장수 죽이려 했던 치사한 놈으로 묘사한다.[11] 고종과 군밤장수 이야기는 원래 남가몽이라는 야사가 출처이다.[12]이게 맹꽁이 서당에 그려지면서 읽어본 사람들은 알게 되었다. 실제 승정원일기의 기록에 따르면 고종시대에 유독 밤을 진상품으로 바치는 것에 대한 기록이 잦은 것으로 볼 때, 고종이 실제로 밤을 좋아했을 거라는 추측까지만 가능하다.

연산군이 세자 때 자기를 햝은 사슴을 발로 찬 것 때문에 아버지 성종에게 꾸중을 듣자 앙심을 품고 나중에 왕이 되자 그 사슴을 죽였다는 등의 사이코 짓을 했다거나, 공부를 싫어하는 노는 것만 좋아하는 불량아였다는 얘기가 있으나, 연산군 항목에서 실제로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는 근거가 불확실하며,세자 때의 연산군은 딱히 불량아도, 그렇다고 모범생도 아닌 평범한 세자였다.

거기다 신작인 고려시대 이야기에서는 원래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의 시조는 사실 우리 민족이 만주로 도망가서 낳은 자식이다(아골타)란 내용이 실려 있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라고 쓰긴 했는데,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연령층이 책에 써진 내용을 그대로 믿는 소아 층이 대부분이라는 게 문제. 사실 비거 이야기를 할 때 라이트 형제 언급이 나오는데, 대사에서 지금은 조선시대인데 라이트 형제가 나오니 이 만화도 엉터리다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애초에 이 만화 레퍼토리 자체가 옛날 전래동화 마냥 군주는 성군이나 암군뿐이고 신하는 청렴하고 의로운 충신과 남을 모함하고 영화를 누리는 간신뿐인 등 세상에는 선인과 악인 두 종류의 사람밖에 없다는 식으로만 그려지는 경우가 많아 누구는 지나치게 띄워주고 누구는 지나치게 깎아내린다. 또 착하게 살면 복을 받거나 간신배가 나라를 망치거나 선인을 궁지에 몰거나 한다는 일화도 작중에서 수십 번은 넘게 클리셰로서 반복된다. 만화의 성향 자체부터가 다소 평면적이고 주관적이다.
그리고 윤승운 화백이 치켜세웠던 인물들은 뒤가 구리거나 치명적인 실책을 범한 인물들이 있다. 그가 치켜 세운 조광조는 이상주의자이며 군자라 하지만 정치가나 행정가로썬 낙제점인 인물로 흑백논리가 심하고 그의 동료인 김식 또한 형조 판서로 있을때 죄인을 가혹하게 심문하여 옥사자가 많이 나왔다. 송익필 또 한 천출 출신이며 훌룡한 군자라 칭하지만 송익필도 뒤가 구린면이 있던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 송사련은 조광조를 두둔한 안당을 역모죄로 무고한 배은망덕한 인물이고 나중에 후손 안처겸이 그 보복으로 동인들이 지원하여 그를 노비로 환원시키자 이에 앙심을 품고 서인의 보호를 받고 기축옥사에서 자신에 원한이 많은 동인들을 엮어서 탄압한 전례가 있던 인물이였다. 인조 또 한 호란에 당한 비운의 군주라 하였지만 인조는 군 통솔도 제대로 못해 정묘호란을 반면교사 삼아 제대로 개혁하지도 못하여 병자호란으로 두번이나 전란을 펼쳐 백성들에게 재앙을 준 사악한 암군이였다. 자기 아들인 소현세자와 며느리 강빈과 손자들을 핍박하여 억울하게 죽게만든 패륜면에선 광해군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던 군주이다. 양녕대군 또 한 세종에게 양위를 할려고 미친척을 한 우애 깊은 형이라 하지만 실제로 형이라고 은혜를 베풀어준 세종을 곤란하게 만들고 말썽만 피우고 조카인 세조와 연합하여 종손인 단종을 몰아 낼려고한 배은망덕한 왕족이였다. 노론 4대신이 억울하다하여 김일경, 목호룡같은 간신에게 억울하게 죽었지만 이들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 케이스이다. 경종이 즉위 1년도 안돼 연잉군에게 대리청정하라는 날치기적인 짓을 하였고 이러한 행동이 왕에 대한 무례였고 김일경이나 목호룡이 한 고변을 보면 그들의 말도 다 일리가 있었고 조작한 것도 아니였다. 이 정도면 다른 왕이였다면 목이 달아났을거고 일족이 멸족될 판인데 4대신을 사사하고 일족을 멸족시키지 않은 것이 경종이 대인배적 행동이다. 남이 또 한 실록에 보면 오만방자하고 병조판서에서 체직되자 불만을 품고 유자광에게 역모에 가까운 언변을 내뱉어 스스로 자초한 화를 유자광이 모함했다고 실은 것이다. 그리고 간신배 소인배라고 대차게까던 인물도 실록이나 정사에서 보면 그럴만한 사정이 있거나 납득이 가는면이 있는데 야사를 인용하여 소인배라 악당이라 불리는게 너무하지 않나 싶다.

남곤이 대차게 깠는데 기묘사화 항목을 보면 조광조가 도를 넘게 자신 위엄과 권위을 위협하자 중종이 그를 숙청하려 주도하였다. 오히려 남곤은 조광조의 목숨만은 살려주려고 노력하였고 청렴하고 검소하였고 현실주의적인 정치가였다.

이극돈 또 한 무오사화 항목을 보면 알다시피 그가 김일손에 앙심을 품고 조의제문으로 김일손일파를 몰아낼려 하였지만 이극돈은 김일손이 경망스럽게 사초에 왕실을 능멸하고 모욕하는 글을 직필로 쓰지 않고 유언비어를 사초에다 적고 스승의 조의제문은 그 시대에 왕실을 능멸한 아주 초폭탄 같은 잡글로 사초에 함부로 실어선 안되는 행위로 오히려 이 파바람을 어느 정도 무마시키려 노력했던 사람이다 이런 준역모급인 행위는 연산군이 아니라 어떤 왕이래도 용납해 줄 수 없는 중대한 사안으로 왕에게 보고를 안하면 책임자인 자신에게 문책당할께 뻔한데 그렇다고 피바람부는 것을 덮어줄 수없고 하여 유자광과 상의한 끝에 연산군에게 보고하였지만 연산군이 분노하여 사초가져오라 하자 이극돈이 반대하여 사초는 임금이 볼 수 없는 것이라 반대하였는데 연산군이 중대한 역모사항이라 문제되는 부분만 절충된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 후에 이극돈은 늦게 보고한 죄로 파직되었고 알고 보면 이 사건의 피해자였다. 이극돈이 불공 들여서 아첨부린다는 건 억측이다 그는 실록에 보면 일처리가 뛰어난 실무형 관료였다.


정순왕후 또 한 정조의 반동 정치를 피고 천주교를 탄압한 악녀라 하지만 정순왕후의 이러한 평은 노론 음모론에 기만된 억측이다. 실제로 정순왕후는 정조의 유지를 받들고 원리원칙에 따라 절제를 중요시한 여인이고 신유박해 또 한 정치적인 이유로 파직이나 유배로 끝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천주교인이 무부무군이라 낙서하고 황사영백서 사건으로 일이 커지자 정순왕후는 사건이 번지는 것을 막기위해 이미 분 놈을 처형하고 나머지는 파직이나 귀양으로 끝을 맺을려 하였다. 사실 황사영 백서의 내용을 보면 외국을 끌여다가 자국을 침략을 유도하는 행위는 조선시대으로 보면 빼도박도 못하는 대역죄나 다름 없었다. 천주교에 관대한 정조라도 이러한 짓은 용납 할 수가 없었고 오히려 더 큰 박해가 일어났을 것이다. 노론벽파들이 원칙대로라면 대역죄인 황사영의 일족을 멸하라하자 정순왕후는 피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 황사형의 모친과 아내를 목숨을 살려주어 귀양보내고 처삼촌인 정약전정약용을 국문하지 않고 유배를 보내버리는 등 황사영의 대역죄에 비하면 관대한 처분을 내렸다.

임사홍 또 한 간신배나 소인배라 하였는데 임사홍은 훈구대신과 거리가 먼 외척이였고 성종시절 바른말을 사림보다 잘 하였다. 사림들이 성종을 협박하듯이 사소한 것까지 대들자 사림들이 너무 시시콜콜한 것까지 물고 늘어지지 않냐라고 직언했는데 사림들이 밉보였는지 그를 소인배 간신 프레임을 뒤집어 쓴 것으로 사림의 흑백논리가 심하다는 것을 보여 준 거나 다름 없었다. 갑자사화는 연산군이 훈구파를 싹쓸이 하고 절대권력을 얻을려고 벌인 숙청사건이다. 임사홍은 저 사건이 일어난 후에 등용된 것이지 저 사건에 관여한 적도 없었다.

물론 정사를 충실하게 반영한 부분도 적지 않으며, 지금 시각에서 봐도 상당히 정확하게 당시 사회상을 묘사하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면 세종대왕 시절은 여러가지로 국가 기틀을 잡고 하느라 백성들 살기에는 마냥 태평성대는 아니었고 성종 시절이 백성 살기 딱 좋은 태평성대였다고 묘사하는데, 상당히 정확한 묘사다. 당시 위인전이나 역사만화 등에서는 세종대왕시절 = 딱 요순시대였다는 식의 서술도 흔했다는 걸 감안하면...

영조 때를 '백 년 전'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대략 1800년대가 시대적 배경으로 추측되었고 14권에서 재작년에 놨던 동전이 당백전 이였다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이것을 봐서 대략 1868년 혹은 1860~1870년도로 추측되고 있다. 그런데 나중에 나온 판에서는 일제강점기 관련 서술이 그대로 나온다. [13] 또 1988 서울올림픽 때를 200년 후 세상이라 하는 것으로 보아, 19세기는 맞는 듯 하다.

그리고 수박, 참외를 몇 개씩 서리한 대가로 두 냥을 지불하기도 하는데, 다른 화에서는 한 냥에 엿 하나도 못 사먹는다고 나온다고 나오고 엿 1목판이 3냥이라는 에피소드까지 나온다.

그래도 역사적인 내용을 떠나서 상당히 재미있는 작품. 서당 내의 학동들의 재치 발랄한 해악 장난과 에피소드가 저절로 웃음을 주게 한다. 그런데 이놈들 하는 짓이 이미 학동들의 장난수준을 한참 넘은 대재앙급이다. 인간 폭풍이 한명도 아니고 수십 명

들어올 때는 맘대로지만 나갈 땐 맘대로 못 나간다(...)와 비스무리한 대사가 2번 나오기도 했다. 사실 말할 필요도 없이 당연히 시기적으로 이쪽이 먼저이기에, 당시로서는 그냥 평범한 대사이다.[14]

보통 이 만화의 줄거리는 처음에는 맹꽁이 학동과 훈장의 에피소드를 다루다가 조선 역사를 들려주는 형태로 진행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훈장과 학동 간의 이야기로 끝내는 경우도 있다. 조선 말기나 고려시대 편에서는 조선시대 인물의 야사나 옛날 이야기를 삽입한다.[15]

5. 등장인물[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맹꽁이 서당/등장인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1. 이들이 끼친 피해목록[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맹꽁이 서당/피해목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따로 분리됐을 정도면... ㅎㄷㄷ

6. 기타[편집]

황당하게도 YWCA 서울모니터회에서 80년대 유해 만화도서에 뽑힌 황당한 일이 있는데 역사만화인 이 작품이 유해도서에 뽑힌 이유는 딱 하나! 그림체가 너무 이상해서 아이들 정서에 나쁘다는 점. 그야말로 마음 내키는 대로 유해도서에 올리던 YWCA 서울모니터회의 병크가 돋보이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더 웃긴 건 1994년에는 추천도서 만화로 뽑아준 사실로 병주고 약주고 덕분에 박무직도 이런 사실을 가지고 여길 깠다. 사실 만화 내에 술, 담배하는 장면은 예사로 나오며[16] 학동들이 옷을 훔쳐가는 에피소드에는 훈장님의 올 누드가, 학동들이 놀다가 옷이 없어지는 에피소드에는 학동들의 그곳이 그려져 있다. 극화체로 그린다면 19금과 먹칠을 함께 먹을 장면들이긴 한데,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술, 담배하는 만화는 이두호 작품이나 예전 만화에선 아무렇지 않았으며 흡연 장면은 과거 만화검열이 엄격하던 시절에도 어른들이 피는 것은 전혀 문제시되지 않았다. 한 예로 1980년대에 월간 보물섬에 연재한 신문수 화백의 신통방통이를 보면 아빠가 안방에서 대낮에 담배를 피우고 아이들 둘이 그 곁에서 티브이 보고 있는 걸 아무렇지 않게 나온 바 있다.

인물의 생김새를 보면 그 인물의 성격을 알 수 있는데 간신이라든가 야비한 인물은 째진 눈에 간신수염, 포악하거나 악한 인물은 돼지코에 대두로 그려진다.

웅진계열 학습잡지인 생각쟁이에 1998년부터 2006년까지 무려 8년 동안 연재된 적이 있었다. 2013년 4월부터 다시 새로 연재가 되고 있으니 관심 있으면 찾아보도록. 논어에 대해서 다룬다는데 6장씩 부록으로 연재되고 있다.

2013년 서울 남산에 있는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 열렸던 '서울 국제 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SICAF) 2013'에서 윤승운 작가 특별전 을 통해서 전시 주인공으로 출품된 적이 있었다. 동 작가가 그렸던 만화인 '발명왕 요철이[17]' 와 함께 전시하게 되어서 제목도 '발명왕 요철이, 맹꽁이 서당에 가다' 였다.

맹꽁이 서당을 보고 자라온 부모 세대들 입장에서는 반갑고 예전 생각난다는 반응이 많았다. 반면 요즘 아이들은 맹꽁이 서당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그냥 처음 보는 만화 캐릭터라는 것밖에는 모르는 것 같다.

2013년 10월 14일 한국만화거장전이라는 특집 만화에서 오랜만에 조선사와 관련된 맹꽁이 서당이 나왔다. 링크

2009년 KBS에서 방영되었던 어린이 프로그램인 맹꽁 서당은 제목만 비슷할 뿐, 맹꽁이 서당 줄거리와는 무관하다.

백괴사전에서는 로고가 맹꽁사전, 정말 무식한 백과사전으로 바뀌며 온갖 드립으로 작성되어있다.

그 뒤 2015년에는 맹꽁이 서당 논어 편으로 다시 컴백한다.

맹꽁이서당의 시대를 알 수가 없는데 그 이유가 선대왕을 공부한다면서 일제강점기까지 나온다.

그리고 작중 학동들이 거짓말을 할때 꼭 나오는 말이 '냉수에 이 빠질 거짓말' 인데 사전에도 안 나오는 이 문장에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아는 분이 있다면 추가 바란다.

7. 패러디[편집]

어찌됐건 상당히 인기 많은 만화인데다가, 은근히 따라 그리기 쉬운 특유의 그림체 덕분에 패러디가 많다. 하나같이 쓸데없이 고퀄리티

  • 개화기 조선을 배경으로 갱스 오브 뉴욕을 패러디한 '갱스 오브 한양'이라는 느와르 활극이 있다.

  • 사이퍼즈 버전도 나왔다.# 큰 의미는 없지만, 게임적인 측면에서 내용에 약간 오류가 있다. 애초에 도일이 그렇게 공성담당을 맡는 이유는 그걸로 번 돈으로 탱킹하려고 그러는 거고 아군이 4원인데 다이무스가 탱 서는 건 기겁할만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 당시 이글 뇌안도는 스킬 쓰다 원거리 공격 툭 치면 쓰던 스킬이 캔슬 당하는 안습의 결정체였다. 만화 자체가 사이퍼즈 오픈 직후 때 나온 거라서 현재와 같은 인식이 없었던 탓.

  • 리그 오브 레전드 버전. 마이쨩의 일상 만갤이나 고갤 등에서 성인만화 제목을 묻는 사람에게 낚시용 답변으로 주로 쓰이는 끔찍한 고어 성인만화 제목이다. 팀에 마이충이 있는 상황보다 나을 게 없지 뭐

  • 속칭 조선 포뮬러로 유명한 패러디 이니셜 C


[1] 논어 편에서 맹꽁이들이 우는 소리 중 '맹꽁 'mang ggong'이라고 나왔다.[2] 네이버 번역기에서 이렇게 나온다.[3] 역시 논어 편에서 黽黉라고 나온다.[4] 공자맹자의 이름 첫 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라고 나와있다.[5] 5권 금강산 유람편 표지에 보면 도사 두 분이 "고얀지고... 공자, 맹자를 합쳐 맹꽁이라 부르다니..."라며 훈장님을 꾸짖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1권에서도 훈장님이 직접 언급했기도 하다.[6] 얄개서당, 자고로 훈장이란 판본도 있었다. 별개의 작품으로 둘을 합쳐 단행본으로 나왔었다. 얄개서당 훈장님은 맹꽁이 서당 훈장님과 닮았고(차이점이라면 유건을 썼다.) 자고로 훈장님은 수염 허연 노인이다.[7] 단, 6권 영조편의 "찾아온 옛날 제자" 편이 남아 있긴 하다.[8] 웅진출판사본 4권의 마지막이 궁서체로 쓰인 "4권 끝"으로 부자연스럽게 끝나는 이유가 이것의 흔적. 그런데 이 앞에 장면이 송시열이 사약을 먹고 죽는 장면이고, 끝이라 쓰인 칸에 송시열과 하인이 나귀타고 어딘가로 떠나는 장면이라 이런 사정을 모르는 독자들에게는 아리송한 기분이 들게 한다. 사망 플래그?[9] 하지만 왕이 된 직후의 장면에서는 '본래 총명했던'이라는 설명이 붙어있기는 하다.[10] 이건 임경업전에서 나온 일화로 추정되는데, 임경업전을 보면 청의 황제가 두 대군을 조선으로 돌려보낼 때 봉림대군은 납치된 조선 사람들을, 소현세자는 금은을 원한다고 말해 봉림대군을 더 아끼며 인조도 돌아온 소현세자를 욕한다. 하지만 실제로 청의 비위를 맞춰가며 대규모 인삼 농장을 통해 조선 사람들을 끌고 온 것은 소현세자 부부였다.[11] 하지만 이 때 당시 고종은 12살. 즉, 초딩이다. 왕이지만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어린 애인 데다가,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어떤 시기를 지냈는지 감안해 보자면 어린 시절 넉넉지 않은 형편에 더불어 괄시받았다는 생각으로 서러워 했을 수도 있고 저런 소리는 나올 법 하다. 그런데 대원군이 핍박받고 궁핍하게 살았다는 얘기도 대부분 소설이나 야사에서 따온거고, 실제로는 존경받는 왕족으로 그럭저럭 입에 풀칠할 정도는 됐다. 단지 품위유지하기에는 부족했을뿐.[12] 고종과 순종을 최측근에서 모셨던 시종원 부경(현재 대통령 비서실 차장의 지위) 정환덕이 1863년부터 1910년까지의 기록을 직접 쓴 책이다. 계속되는 흉년 속에서 8개월 동안 월급을 받지 못한 병사들이 있었음에도 궁중에서 풍악잔치를 벌였던 명성황후, 순종을 폐위시키고 영친왕을 황태자로 옹립시키려다 고종에게 들켜 엄비와 고종이 큰 부부싸움을 벌였다는 일화 등이 숨겨져 있다.[13] 마당쇠의 이긴 했지만 심지어 88올림픽도 나온다.[14] 웅진 단행본 기준 첫번째는 2권 임꺽정 관련 에피소드이고, 두번째는 저 장면은 사실 같은 작가가 그린 다른 작품 <우리겨레 위인이야기>에 나왔다.[15] 참고로 이 이야기는 예전에 연재되었던 '서당골 호랑이 훈장님'이라는 만화에서 일부분을 각색하여 넣은 것이다.[16] 훈장님은 아예 담뱃대를 입에 매달고 있다시피 하고 술에 떡이 돼서 마당쇠에게 업혀오는 장면도 심심치 않게 있으며 그리고 학동들도 술지게미를 먹고 취한 적도 있다.[17] 본래 연재 당시에는 요철 발명왕이 제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