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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프럼 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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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n From Eart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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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줄거리1.2. 제작1.3. 개봉
2. 스포일러
2.1. 첫 번째 반전2.2. 두 번째 반전2.3. 영화의 의미
3. 속편

1. 개요[편집]

2007년 개봉한 미국 영화. 1만4천 년 동안 살아온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SF에 속하는 영화.

영화의 내용은 주인공의 집에서 나누는 등장인물들의 대화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상당히 여운이 남는 결말을 이끌어낸다. 정확히 말하면 스토리, 플롯의 존재는 거의 전무하며, 1시간 30분 동안 주인공과 주변인들은 대화를 나누기만 한다. 역사학자인 주인공부터 신학자, 인류학자, 생물학자, 심리학자 등이 총출동하여 자신의 지식을 설파하는데, 주로 주인공이 자신이 살아온 얘기를 하면 다른 학자들이 거기에 대한 배경을 설명하거나 의문점을 제기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다른 학자들은 처음에는 장난처럼 질문을 시작하였다가 점점 더 얘기가 그럴싸하고 심각해지자 주인공의 얘기에 빈틈을 찾아내기 위해 쉴새 없이 반론을 펼치지만, 주인공이 너무나 논리정연하게 척척 답을 해내어 결국에는 다들 데꿀멍하게 된다. 주인공의 생애를 상당히 개연성 있게 풀어냈기 때문에 역사, 생물학, 신화종교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볼 수 있겠지만[2], 말초적인 재미를 원하는 거라면 다른 좋은 영화도 많다. 이 영화의 묘미는, 영화 내용을 따라가면서 주인공의 구술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상상력 유발'에 있기 때문.

1.1. 줄거리[편집]

견실한 교수이자 곧 학과장 자리를 충분히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이던 존 올드맨(John Oldman) 교수는 교직 10년째에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는 어디론가 떠나겠다는 말을 한다. 그러자 동료 교수들은 그가 떠나기 전날 밤에 그의 집에서 작별 파티를 해주기로 한다. 동료들은 너무나 급작스럽게 떠나는 존에게 떠나려는 이유를 물어본다. 모두가 모인 허름한 오두막집에서 존 올드만 교수는 자신에 얽힌 비밀을 조용히 풀어나가기 시작하는데...

1.2. 제작[편집]

스타트렉환상특급의 시나리오를 맡았던 제롬 빅스비 원작이며 저예산 영화계의 수작이다. 20만 달러 남짓 들었다고 한다. 스크립트 작가들에게 $69,000+$40,000+$25,000, 나머지는 배우 출연료나 영화 촬영비용이었다. 영화를 보면 정말 집 안에서 이야기만 하므로 예산 정말 적게 들였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흔히 있을 법한 회상장면 하나 없다. 배경인 집 한 채와 출연료가 제작비 대부분이라고 한다. 연극으로도 문제없이 각색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사람들도 많을 텐데, 감독 리처드 솅크먼이 2012년에 실제로 연극으로 각색하여 큰 호평을 받았다. 한국에서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2014년 11월 7일부터 2015년 2월 22일까지 공연되었다.

출연진은 아주 유명하진 않지만, 나름대로 어디서 많이 본 중견 배우들로 채워져 있다. 존 역을 맡은 주연 데이빗 리 스미스의 경우엔 CSI : Miami에서 릭 스테틀러로 출연한다. 댄 역을 맡은 토니 토드캔디맨스타 트렉 TNG / DS9에 출연한 배우이며, 더 락에서 험멜 장군에게 협력한 흑인 장교로 출연하였다. 이디스 역의 엘렌 크로퍼드는 ER에서 간호사 리디아 역할로 출연했다.

영화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누가 뭐라 하건 우리는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등의 메시지는 곱씹어 볼 만하다.

크레딧에 깔린 노래 Forever의 가사가 영화 내용과 절묘하게 연결되면서 잔잔한 감동을 준다. 이 노래는 솅크먼 감독이 작사하였다.

솅크먼 감독은 DVD판에 "불법다운로드 입소문으로 이 영화를 홍보해준 사람들한테 감사한다"라는 자막으로 확고하게 대인배 인증을 했다. 하지만 이후 참여한 작품들을 보면 안습이라는 말밖에 안 나온다....

영화에서 조니 워커 그린 라벨이 나오는데, 본래 블루 라벨을 쓰려다 블루 라벨이 없어서 그린 라벨을 썼다고 한다. 조니 워커 창업주의 이름은 '존'으로 주인공의 이름과 일치한다. 게다가 조니 워커의 브랜드 슬로건은 Keep walking이다.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

기획 단계에서 스티븐 스필버그도 시나리오를 탐냈다고 한다. 그가 만들었다면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됐을지도 모른다. #

1.3. 개봉[편집]

미국에서는 극장 개봉 없이 DVD로만 2007년 10월에 출시되었다.

대한민국에는 2010년 ㈜크래커픽쳐스가 수입해 9월 30일 극장 개봉을 예정했으나관련 정보 개봉되지 못했고, 후에 VOD 출시로 공개되었다. 쿡 tv에서도 상영하고 있다.

그리고 2015년 8월에 부산영화의전당에서 "서머 스페셜 2015" 영화제로 상영되었다.

2. 스포일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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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첫 번째 반전[편집]

주인공 존 올드만은 약 1만 4천 년간을 살아온 늙지 않는 존재. 불사인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다.[3] 심한 질병에 걸린 적은 있지만 죽은 적은 없고, 흉터가 안 남지만 작중 생물학 교수가 말하는 가설 중 "세포가 완전히, 낭비 없이, 노폐물 없이 재생한다면" 흉터가 새 살에 밀려 떨어져 나가버렸던 것일 수도 있다. 본래 크로마뇽인으로 유럽 지방에서 태어났다. 그는 육체 나이가 약 35살 정도가 되었을 때 시간이 지나도 자신이 늙지 않음을 알게 되고, 동족들은 그가 타인의 생명력을 흡수한다는 이유로 쫓아냈다고 한다. 그는 결국 10년마다 무리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 때론 자신이 자신의 아들 행세를 하며 무리에 계속 남아있기도 했다, 그러다가 걸려서 공문서 위조로 투옥되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기온이 매우 낮았고, 그는 태양이 뜨는 쪽이 더 따뜻할 것이라는 생각에 동쪽으로 향한다. 그러다가 인도에 이르러 부처를 만나 그의 가르침을 받은 뒤, 로마 제국이 지배하고 있던 중동 지방으로 돌아와 서방에 맞게 재해석된 불교 이론을 퍼뜨리려 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이 불교 이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고, 그는 결국 로마에 의해 십자가형에 처해진다. 존은 인도에서 배웠던 고통을 죽이는 방법과 신진대사를 줄이는 방법을 이용해 죽은 척하고 살아날 수 있었다. 동굴에 버려진 뒤 3일이 지나 몰래 빠져나가려 했지만 자기 제자들에게 모습을 들키고 만다. 존은 자신이 부활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으나, 이미 무아지경에 빠져 제멋대로 기뻐하는 추종자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고. 결국 그 자리를 도망치듯 빠져나와 다시 유럽 지방으로 돌아간다.

한편, 그의 가르침을 따랐던 자들은 존을 신격화했고, 그의 이름은 시대가 되면서 조금씩 변화되어 예수란 이름이 되며[4] 실제 존과는 상관없는 전설들을 만들어 붙였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기독교의 예수라는 것. 존은 자신의 가르침이 세월이 지나면서 너무 변질되었다고 한탄하였고[5],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자 신학자인 이디스는 자신의 신앙을 뒤흔드는 그의 말에 신성모독이라며 울먹거리기까지 하였다.

존은 유럽을 떠돌아다녔으며 1600년 경 자신과 비슷한 존재로 보이는 사람을 만났다. 존이 말하길, 자신이 겪은 경험들을 서로 비교해 봤을 때, 불사일 확률이 높지, 확신하는 게 불가능했다고 한다. 그 사람과 헤어진 지 200년 후 벨기에의 기차역에서 다시 한 번 언뜻 본 거 같다고 했지만, 수많은 인파 속에서 그의 종적을 놓치고 말아서 그가 진실로 늙지 않는 존재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후 존은 돼지치기 자크 본으로서 빈센트 반 고흐와 친분을 맺게 되었고, 그로부터 직접 그림 한 점을 선물받기도 하였다. 그 그림은 꽤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현대까지도 간직하고 있었고, 극중 이디스가 고흐 풍의 그림이라며 놀라워하며 출처를 묻기도 한다. 고흐의 사후 1890년 미국으로 건너와 지금까지 미국에서 살고 있었다. 존이라는 이름만 썼다고 했는데 "존 자크 본"이었나? 장 자크 본일 수도 있다 서양에서는 John이라는 이름은 Jack라는 별명으로도 불리우며, 이 경우 프랑스 이름 Jacques는 John의 프랑스식 이름이라고 해석될수도 있다.[6]

그럴듯한 설명으로 예수 불자설 떡밥이 활활 퍼지게 만드는 데에 일조하기도 했다.

2.2. 두 번째 반전[편집]

존이 만 년 넘게 살아 왔다는 말에 흥미를 보이던 교수들은 어느 새 도저히 믿어지지 않지만 따져 보면 틀린 말은 아닌 존의 주장을 두고 서로 격렬한 논쟁을 하고 있었고, 이 사태를 수습할 수 없게 된 존은 지금까지 자신이 했던 얘기가 전부 농담이였다면서 사태를 무마한다. 이후 파티는 끝나고, 존의 집에 초대된 동료 교수들은 한 명씩 자리를 뜬다.

교수들이 모두 떠나자 존에게 연심을 품고 있는 존의 조교수, 샌디[7]는 존에게 오랜 세월 동안 성을 바꿔 가면서 살아 왔으니 그 동안 써왔던 이름이 더 있는 거 아니냐고 묻자 존은 그동안 자신이 사용했던 이름들을 나열한다. 그러면서 존이 60년 전에 보스턴에서 거주하며 하버드 대학의 화학 교수를 맡았던 시절에는 '보스턴 티 파티'를 패러디한 존 토머스 파티(John Thomas Partee → John T. Partee)라는 이름을 썼다고 말하는데, 이 때 마지막으로 나가려다가 그 이름을 들은, 파티에 초대된 교수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심리학 교수인 윌 그루버의 안색이 갑자기 굳어진다. 윌은 존이 어릴 적에 행방을 감춘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이로 인해 자기가 만 년 넘게 살아 왔다는 존의 말이 전부 사실은 아니더라도 윌보다는 오래 살아 왔다는 사실이 간접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윌은 존이 자신의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절규하지만, 존이 자신의 어머니의 이름과 어릴 적에 키우던 애완견의 이름까지 알고 있자 울음을 떠트리며 '어머니는 아버지가 우리를 버렸다고 말씀하셨는데'라고 말하면서 쓰러진다. 존은 윌을 토닥이며 그를 달래려고 윌을 어릴 적의 애칭인 윌리라고 부른다.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큰 충격을 받은 데다 파티 전날 아내가 췌장암으로 사망하면서 이미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상태였던 윌은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되어 그 자리에서 숨지고 만다.[8] 결국 존은 자신의 아들의 죽음을 눈 앞에서 목도하면서 큰 충격을 받게 되고, 혼자서 떠나려던 계획을 변경하여 자신을 사랑하는 샌디와 함께 떠나게 된다.

연극판에서는 영화와는 달리 윌의 죽음을 보고 난 뒤 존의 손을 잡으려는 샌디를 존이 안 돼...라면서 거절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 결말은 자신이 샌디와 사랑을 해서 아이를 낳게 되면 그 아이는 윌과 같이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아버지를 원망할 수 있으니 더 이상 이런 일을 겪고 싶지 않은 존의 심정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영화 중반 해리가 '이 중에 자네의 직계 자손이 있을 지도 모르겠군'이라는 대사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복선이었다. 또한 윌이 초반에 영원히 산다는 존의 말에 화를 내며 '내 장례식에는 올 거냐'라고 말하는데 이것도 복선이다. 윌의 사망으로 출동한 경찰이 조사를 해야하니 어디 멀리 가지 말라고 하자 '윌의 장례식에는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 윌이 계속해서 존에게 사용하는 상담 방법이나 내용을 살펴보면 알겠지만, 존이 가지고 있는 아버지와의 문제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들려 한다. 윌은 존이 자신을 신격화하는 것과 과대망상적인 행동이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있었던 문제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윌이 가지고 있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아버지에게 버림받은 것)가 다시금 살아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미 나이도 지긋하고, 수련을 거쳐 권위 있는 심리학자가 된 윌에게 이런 트라우마가 다시 살아난 것은 존이 그 트라우마의 주인공인 아버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존이 윌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 관객들은 감독이 계속해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서야 깨닫게 된다.

이 영화를 즐기는 포인트 중 하나는 극중 나름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름대로 자신의 전문분야를 이용해서 주인공의 이야기를 반박하려 하나 결국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하겠지만 보면 알게 된다.[9][10][11][12]

참고로 마지막에 독실한 기독교인인 이디스가 헤어지면서 존에게 키스를 어떻게 하는가[13]와 떨어지면서 짓는 표정도 관점 포인트.

2.3. 영화의 의미[편집]

주인공이 '예수' 혹은 '신' 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 존재의 실체는 그저 '오래 살기만 할 뿐인 인간' 이었다는 결론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권능의 상징으로 쓰이는 '신', 그리고 그 '신 본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 이해하고 실행할 수 있는 것들을 전파하려 했는데 세월이 지나보니 이 되어 있었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실제로 존은 "로마의 횡포에 반하여 사람들에게 불교적 가르침을 퍼트리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본인이 잠적한 후 이야기가 과장되고 살이 붙기 시작하더니 결국 예수 그리스도라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는 식으로 이야기 한다.

위에서 말한 영화의 제목인 'Man from Earth'는 주인공인 그도 결국 (지구든 땅이든) 무엇으로부터 시작된 인간임을 말한다. 즉 신이나 예수가 외계, 천상의 존재가 아니라 지구에서 시작된, 지구 출신자라는 얘기.

위에서 나온 것처럼 영화의 내용 전체를 짚어 보자면 '믿음'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지만, 그것 역시 사람의 일부분일 뿐이고, 결국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3. 속편[편집]

속편이 제작된다고 발표하였으며, 속편의 제목은 '맨 프럼 어스: 홀로세(The Man From Earth: Holocene)'로 확정지었으며 전편과 같은 출연진들이 나오며 각본은 전편 감독 리처드 쉔크만, 각본가로는 제롬 빅스비[14]를 대신해 그의 아들 에머슨 빅스비가 합류한다. 2016년 6월 촬영을 시작하며 2017년 개봉 될 예정이다. 2017년 6월 10일, Dances With Films에서 처음 공개됐다.

2018년 1월 16일에 제작진이 토렌트 다운로드 사이트인 'The Pirate Bay' 에 직접 무료로 배포했다. 'MovieSaints' 라는 사이트에서 돈을 지불하고 볼 수 있지만 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환불이 가능한듯. 그래서인지 영화 시작부분에 감독이 직접 등장해서 영화를 보고 재미있다면 사이트를 통한 후원을 부탁한다는 짧은 영상편지(?)가 있다. 재미와 함께 후원 금액도...

전작에서 아트 역을 맡았던 윌리엄 캇도 출연한다. 상영시간은 98분.

간단한 줄거리로는 존 올드맨은 이번에도 대학 교수를 하고 있고 드디어 나이를 먹기 시작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학교 학생 4명이 존 올드맨의 비밀을 알게된다. 섭섭하지 않게 이번도 종교와 관련된 내용이 포함된듯하다.

평가는 아주 나쁘다. 전작에 대한 모독이라고 욕을 먹고 있다.

[1] '지구에서 온 사나이'. 영어로 'from 지명'은 어디 출신이라는 말인데, 주인공 존이 딱히 출신지역 없이 그저 지구인일 뿐이라는 의미이다.[2] 사실 고증은 별로 잘 되어 있지 않다. 특히 역사, 종교에 대한 것은 시대정신에서나 나올 법한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들이다.[3] 차기작인 맨 프럼 어스: 홀로세에서 밝혀지지만 불사는 아니며 노화도 된다. 시기의 문제일 뿐.[4] 어느 시대던 그는 자신을 발음으로 "존"이라고 말해왔지만 표기 등의 이름으로 변화되면서 예수란 이름으로 변형돼온 것[5] 존이 신약 성서를 100자 이내로 압축해 보이기도 하였다.[6] 이 때 존이 재생하는 음악은 베토벤 교향곡 제7번 2악장.[7] 다른 사람들이 존의 말을 반신반의하며 듣고 있는 와중에 유일하게 존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처럼 샌디가 다른 인물들과 다르게 반응함으로 인해 샌디도 존과 같은 존재가 아니냐는 의견도 존재한다.[8] 존은 계속해서 이동하며 살기 때문에 되도록 이삿짐을 적게 하고 다녀 집에 있는 물건들을 기부하기 위해 영화의 중반에 자선단체에서 오는데, 소파를 옮기려고 할 때 윌이 심장병이 있다는 듯한 이야기를 한다. 게다가 어제 바로 아내를 떠나보낸 상태에서 아버지를 갑자게 만나게 되고 그 아버지가 불멸자 였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으니 멘탈을 유지할 수 없었던게 당연하다.[9] 그러나 인문학도나 인문학을 어느정도 아는 사람의 경우 의아함을 느낄 수 있다. 존은 논거도 제대로 대지 않고 논거라는 것도 학문적으로 제대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체로 존이 내가 어디에서 어떤 사람이었다고 말하면 다른 전문가들이 증거를 대라고 하거나 당시에 대한 질문을 하고 존이 증거는 대지 않고 즉답을 회피하며 믿건 안 믿건 너희 자유다 식으로 답하며 전문가들이 입다무는 패턴의 반복이다. 특히 예수에 대해서는 유대인 예수에 대해 요세푸스나 타키투스의 기록을 말하지 않아도 성경에서 언급된 그의 가족들이나 죽기 전의 시편기도로 충분히 반박할 수 있는데 기독교인도 역사학자도 이런 질문은 하지않고 존의 말에 반박을 하지 못한다.[10] 다만 이에 관해서는 '역사는 진공(공백) 상태를 싫어한다. 그러니 지어내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고 이에대한 허점은 시간이 해결해준다'라며 교수들끼리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즉, 예수의 가족에 대한 그 성경의 기록 자체가 거짓이고 시간이 지나며 그럴듯하게 굳어졌을 것이라는 확률이 있다는 얘기. 또한 존이 증거를 대지 않고 즉답을 회피하는 이유 또한 그는 1만 4천년, 혹은 그보다 못하다 하더라도 최소 인간의 수명을 뛰어넘은 수많은 세월을 보내면서 모든 물증들을 가지고 있을수는 없었다. (그 많은 유물들을 어떻게 매번 챙겨야 하는가..) 무엇보다 그 유물들이 모작이 아니냐고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하면 그 유물을 만든 사람이 동시대에 같이 살고 있지 않은이상 이를 입증할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러니 존이 즉답을 하거나 확실한 근거를 제시해봤자 본인의 경험일 뿐이라 믿을리가 없으니 그냥 넘어간것.[11] 사실 이는 존의 모든 이야기가 그렇다. 윌이 마지막에 존이 곧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되고 그의 유년기 시절에 불렀던 애칭과 강아지의 이름까지 다 알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그의 모든 역사적인 경험들은 순전히 경험일뿐이기 때문에 물적인 근거를 제시할수가 없는것이 많은게 당연하다.[12] 결국 존은 증명할 수 없는 주장을 했고, 이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도 없으니 자연스레 반박도 나올 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증명할 수 없는 것을 거짓이라 증명하는 일은 차고 안의 용에서 보듯이 매우 지난한 일이므로 반증도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존의 주장은 적당한 머리와 상상력만 있으면 아무나 할 수 있는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그럴 듯하고 흥미롭게 표현해낸 것이 이 영화의 강점이라고 볼 수 있겠다.[13] 영화 내에서 유일하게 존에게 키스를 하는 인물이다[14] 1998년, 이 영화가 나오기 9년전 사망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