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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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명2. 일상생활에서
2.1. 심각하게 어긋나는 경우2.2. 악의적인 맞춤법 지적
3. 표준어와 맞춤법의 차이4. 문학적 허용5. 역사
5.1. 신정국문(1905)5.2. 국문연구의정안(1909)5.3. 보통학교용 언문 철자법(1912)5.4. 언문 철자법(1930)5.5. 한글 맞춤법 통일안(1933)5.6. (북한) 조선어 신철자법(1948)5.7. (남한) 한글 간소화안(1953)5.8. (북한) 조선어 철자법(1954)5.9. (북한) 조선말 규범집(1966)5.10. (남한) 한글 맞춤법(1988)
6. 참고 문서7. 참고 사이트

1. 설명[편집]

철자법, 정서법이라고도 한다. 맞춤법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Orthography는, 그리스어의 ορθός(orthos; 올바른)와 γραφή(graphe; 쓰기)가 합쳐진 단어다. 즉 언어를 문자로 표기할 때의 올바른 표기법을 의미한다. 한국어영어 같은 각 나라의 언어를 한글, 라틴 문자 등의 문자로 표기할 때 사용되는 문자의 표기법 외에도 숫자 표기법, 문장 부호 표기법, 띄어쓰기, 외래어 표기법 등을 모두 포함한다. 즉, ‘우리말을 문자로 쓰려면 이렇게 써야 맞는 거다’라는 의미. 맞춤법의 가장 기본적인 의의는 각기 다른 표기법으로 말미암은 혼란을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맞춤법을 틀리는 경우가 많다. 자세히 배우지도 않거니와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많지도 않기 때문이다. 혹자는 한국의 맞춤법이 어렵다는 헛소리를 하기도 하는데, 아무리 양보해도 한국의 맞춤법은 딱히 어렵다고 할 수 없다. 당초에 관심이 없어서 아예 익히지도 않은 것(익힌다는 표현을 쓰기가 민망할 정도로 한국의 맞춤법은 어려운 편이 아니다.)과 관심,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실제로 지난한 것은 차이가 있다. 자신이 정서법에 무관심하고, 독서력이 얕은 것을 '한국의 맞춤법은 너무 어렵다'라고 해 버리는 것은 굉장히 불량한 자세다.

인터넷에서 가볍게 글을 쓰는 일이 많아짐에 따라 맞춤법을 어기는 경우가 많아졌다. '됐'을 있지도 않은 '됬'으로 표기하고, '했다'나 '갔다'와 같은 단어들은 '햇다'와 '갓다'와 같이 쌍시옷을 빼먹고 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컴퓨터를 사용할 경우에는 '했'이나 '햇'이나 그다지 큰 불편 없이 입력할 수 있지만, 휴대 전화에서는 쌍시옷을 입력하려면 은근히 귀찮기 때문에 '잇엇다' 따위로 적어버리고 마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자주 틀리는 맞춤법에 관해서는 자주 틀리는 한국어 참조.

2. 일상생활에서[편집]

일상생활에서는 자기보다 윗사람들에게 틀린 맞춤법을 지적당할 때의 수치심 때문에 나이가 먹을수록 이를 부끄럽게 여기고 자가교정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자신이 스스로 틀린 맞춤법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어렸을 때에는 이러한 인식이 없고 오히려 지적하는 사람에 대해 화를 내는 편이다. 직장생활이나 여러 공문서를 작성하거나 할 일이 생기면서부터 이러한 맞춤법에 신경쓰고 되도록이면 틀리지 않으려 노력하게 된다.

2.1. 심각하게 어긋나는 경우[편집]

일단 맞춤법에 무지하다는 것은 절대로 자랑거리가 아니다. 국어 정서법을 지키기 위한 의식적 노력은 당연한 것이며, 일체의 노력이 전무한 와중에 '알아보는 데 문제없잖아?'라고 껄렁껄렁하게 구는 것도 마땅찮은 자세다.

맞춤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글을 쓰면 가독성이 떨어지고, 읽는 이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 맞춤법이 심하게 어긋나면 못 배운 사람이라는 인식까지 줄 수 있다. 틀린 표기라도 읽는 이가 알아볼 수 있다면 다행이지, 아예 글의 이해에 지장을 줄 정도가 되면 답이 없다.

그리고 자문해 볼 것은, 자신이 맞춤법 준수를 한 번이라도 의식해 보았는가, 자신이 맞춤법 세칙을 한 번이라도 정독해 보았는가 하는 것이다. 아예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다가 돌연히, '맞춤법은 어렵고, 지킬 필요도 없다'라고 해버리는 것은 너무나 불량하다. 상술한 바지만, 우리나라의 맞춤법은 그렇게 어려운 편이 아니며, 다소의 의식적 노력으로 충분히 엄수할 수 있는 수준이다.

흔히 문제되는 문법 나치란 부류는, 맞춤법을 현재의 화제와 무관한 감정적 발언, 비하적 발언에 악용하는 이를 멸칭하는 것일 뿐, 문법 지적 자체를 나쁘게 여기는 게 아니다.

2.2. 악의적인 맞춤법 지적[편집]

인터넷에서의 맞춤법 지적을 해야 하나 하지 말아야 하나는 굉장히 오래된 이야기지만, 맞춤법을 지적해 놓고 상대가 기분 나빠한다면 자신이 대상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투를 사용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누가 보아도 명백하게 비하적 의미가 담긴 투로 지적해 놓고 상대방이 이에 대해서 화를 내면 틀렸으면 인정해라, 반성해라 하는 사람들은 답이 없다. 맞춤법 지적은 지적당하는 처지에서 뜬금없는 일이기에 기분 나쁜 투로 지적하면 당연히 기분이 나쁘다. 맞춤법을 지적할 수는 있지만 지적할 때는 겸손하게 하자. 예를 들면, 사람들을 위해 팁을 다루는 설명문을 작성하거나 공감을 이끌 글을 작성했는데 뜬금없이 맞춤법 지적이 나오면 기분이 좋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상대방은 고마워하는 마음이나 공감해주는 답변, 아니면 내용에 대해 고쳐야 할 피드백을 받길 원하지 맞춤법으로 수준을 평가받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신의 관심 분야에 대해 타인이 올바르지 못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경우, 틀린 정보를 교정하고 싶어하는 행태를 보인다. 대다수 상황에서는 해당 분야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었으므로 관심 분야에 정통한 사람의 적절한 지적이 들어온다면 오류를 시인하고 보완한 뒤 이야기를 계속할 것이다. 그러나 맞춤법이라는 분야는 말 그대로 전반적 국어 문법에 관한 것이라 그 어떤 주제로 이야기하더라도 해당 대화는 맞춤법과 결부될 수 있으며 따지고 보면 가장 기본적인 요소다. 고로 맞춤법 지적을 함으로써 생기는 갈등은 오류를 수정하고 싶어하는 당연한 욕구와 해당 분야에 대해 대화를 하지 않았음에도 들어오는 지적에 대한 불쾌감, 자신을 기본도 못하는 낮은 수준의 사람이라고 인식되게 만드는 불쾌감 사이에서 생긴다고 볼 수 있다. 사실상 맞춤법을 지적해도 갈등이 생기지 않을 때라곤 누군가가 어느 것이 맞냐고 질문을 했을 때나 맞춤법 자체를 주제로 놓고 대화하는 상황 외에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1]

키보드 배틀 시 맞춤법 논란까지 나오면 이미 갈 데까지 갔다고 보면 된다. 예를 들면 이런 거. 할 말은 없는데 꼬투리 잡아서 욕은 해야겠고….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이라는 저서에서 추천한 것이기도 하다. 물론 요즘은 상대방을 대놓고 조롱하려 하지 않는 한은 이런 걸로 잡고 늘어지는 게 더 어리석어 보이는 데다, 문법 나치 취급받기 십상이므로 논쟁 중에 “맞춤법 틀렸다! 하하하!”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애초에 논쟁 중에 맞춤법 논란이 나온 시점에서, 이미 논리로 이기는 게 아니라 그냥 어떻게든 널 짓밟고 이기겠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3. 표준어와 맞춤법의 차이[편집]

많은 사람이 맞춤법과 사투리를 혼동한다. 이 때문에 맞춤법 오류를 지적하는 사람에게 표준어 제일주의자라며 비난할 때가 있는데, 맞춤법을 지적하는 것과 표준어 제일주의 사상이 있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사투리를 글자로 옮겨 적은 것은 맞춤법을 틀리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사투리를 소리 나는 대로 풀어 적는 것은 (비명시적) 맞춤법을 어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쥬는 ~하주라고 쓰면 안 된다. 쥬는 한국어 표기에서 (원칙적으로는) ~지유의 줄임말로만 쓰이기 때문. 그리고 제주도 사투리에서는 원칙적으로 아래아를 쓴다는 점이 표준어와는 다르다.

다만 사투리의 맞춤법은 배우기가 힘든 것이 아쉬운 점. 국어 교과서나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서 찾아보자. 체계적으로 정리된 적은 없지만, 국어원의 검수를 받은 출판물에서 몇몇 사투리의 표기가 고정되는 걸 보면 가이드라인이 있는지도 모른다.

4. 문학적 허용[편집]

소설 혹은 시를 쓸 때 운율을 맞추거나 문장을 더 괜찮게 하거나, 설정상 맞춤법을 틀리게 쓰기도 한다. 이를 문학적 허용이라고 한다. 시의 경우에는 운율이 중요한 문학이기 때문에 단어를 줄이거나 의도적으로 달리 쓰고, 소설이나 수필 등의 경우에는 작품의 설정상 맞춤법을 틀리게 쓰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게 남용되면 좋지 않다. 초심자들이 많이 하는 실수로 본인은 맞춤법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문학적 허용' 운운하면서 마구 쓰는 것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모름지기 문법을 파괴하려면 문법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보다 더 잘 알고 있어야 한다.

5. 역사[편집]

한글 표기는 소리 나는 대로 적는 표음주의와 어원을 살리는 형태주의가 대립해왔다. 근대에 표기법이 만들어진 이래 주된 경향은 형태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이었다. 이는 받침의 종류로도 알 수 있는데, 처음에는 실제로 해당 소리가 나는 받침만 오다가('받침은 8자로 충분하다'(八字可足用)) 뒤에 잇따르는 소리에 형태를 맞추기 위해서 여러 받침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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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겹받침을 쓰는 것이 완전히 근대의 창작인 것은 아니다. 한글을 발명한 세종대왕 본인 역시 형태주의적 표기로 '흙', '닭' 등을 쓸 수 있다고 훈민정음 해례본25장 뒷면에서 밝힌 바가 있다. 그러나 한글 초기의 문서에서도 모음이 이어지면 대체로 두 번째 받침은 연철로 이어적었고, 자음이 이어질 때에도 겹받침으로 쓰는 경우도 있고 안 쓰는 경우도 있고 불규칙하다. 어원을 살리는 표기는 발음 규칙에 대한 이해가 선결되어야 하므로 보편 교육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널리 퍼지기 힘들었을 것이다. 당장에 않과 안의 구분만 봐도

재미있게도 15세기에 겹받침을 쓸 때는 대체로 ㄹ+자음 꼴이 많았다. 다른 경우에는 겹받침을 잘 쓰지 않았다. 대체로 소리 나는 받침만을 표기했던 시기이기 때문에 'ㄹ+자음' 받침의 발음이 당시에는 가능했으리라는 견해도 있다. 사실 현대 국어에서도 ㄹ을 섞어서 발음하는 사람들이 다시 생기기도 했고...

오늘날의 맞춤법은 표음주의와 형태주의를 절충하여 '얽히고설키다'와 같은 표기가 생기게 되었다. 앞의 '얽히고'는 [얼키고]로 소리나지만 동사 '얽다'와 그 피동형 '얽히다'에서 온 것이 분명하므로 원형을 살려 '얽히고'라고 표기하지만 뒤의 '설키다'는 앞의 '얽히고'와 운을 맞추기 위함일 뿐 '섥다'라는 단어도 없고 피동형인 '섥히다'도 없어 '섥히다'라고 표기할 근거가 없으므로 소리나는대로 '설키다'라고 적는 것이다.

구한말까지는 명문화된 규정이 없었다. 애초에 갑오개혁(1894) 이전엔 한글이 공식 문자도 아니었으니. 다만 조선초기에는 연철표기법이 주류를 이뤘고, 조선중기부터 구한말 시기까지는 중철표기법이 주를 이뤘다. 당시의 표기법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받침은 ㄱ, ㄴ, ㄹ, ㅁ, ㅂ, ㅅ, ㅇ만 쓴다.
    당시 한글은 표음주의의 성향을 강하게 가지고 있어서 받침으로 실제로 소리가 날 수 있는 자음만 올 수 있었다. '같이', '있어서' 등과 같이 ㅌ, ㅆ 등의 자음은 받침으로 쓰지 않고 '갓히', '잇서서' 등으로 뒷 글자에 자음을 써주었다.


대한제국 시기에 맞춤법을 만드려는 시도가 시작되었다. 종두법으로 유명한 지석영의 신정국문(新訂國文)이나 국문연구의정안 등이 그 사례다.

5.1. 신정국문(1905)[편집]

1905년 7월 22일 지석영고종에게 건의하여 의정부 관보에 공표된 표기법. 고종의 재가를 받아 국가에서 공식으로 선포되긴 하였으나 지석영 본인의 독자적인 의견이어서 약간 받아들이기 힘든 면도 있었다. 갑자기 논의도 없이 새로운 글자 를 창제하자거나, ㅅ계합용병서한자 반복 부호(漢文疊字) 〻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틀린 가설을 내세우는 등. 그래서 이에 대하여 좀 더 논의하고자 대한제국의 학부(學部)에서 국문연구소를 설치하여 논의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의정부 관보에 실린 원문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신정국문 항목에서 시청각자료로 확인할 수 있다. 조정에 건의한 문건이므로 고종실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905년 7월 29일 2번째 기사: 지석영이 아뢴 대로 국문을 새로 고치다

新訂國文五音象形辨(새로 고친 국문 5음의 상형변):

ㄱ 【牙音, 象牙形。】 ,ㅋ 【牙音, 重聲。】 , ㆁ 【牙喉間音, 象喉扇形。 ○音失其眞, 今姑闕之。】 , ㄴ 【舌音, 象舌形。】 , ㄷ 【舌音, 象掉舌形。】 , ㅌ 【舌音, 重聲。】 , ㄹ 【半舌音, 象捲舌形。】 , ㅁ 【唇音, 象口形。】 , ㅂ 【唇音, 象半開口形。】 , ㅍ 【唇音, 象開口形。】 , ㅅ 【齒音, 象齒形。】 , ㅈ 【齒舌間音, 象齒齦形。】 , ㅊ 【齒音, 重聲。】 , ㅿ 【半齒音, 象半啓齒形。 ○音失其眞, 今姑闕之。】 , ㅇ 【淺喉音, 象喉形。】 , ㆆ 【喉齒間音, 象喉齶形。 ○音失其眞, 今姑闕之。】 , ㅎ 【深喉音。】


新訂國文初中終三聲辨(새로 고친 국문의 초, 중, 종 3성에 대한 풀이):
初聲終聲通用八字, ㄱ 【기윽】 , ㄴ 【니은】 , ㄷ 【디귿】 , ㄹ 【리을】 , ㅁ 【미음】 , ㅂ 【비읍】 , ㅅ 【시옷】 , ㅇ 【이응。 ㄱㄴㄷㄹㅁㅂㅅㅇ八字난 用於初聲 윽은귿을음읍옷응八字난 用於終聲。】
初聲獨用六字(첫소리로만 쓰이는 6자):
ㅈ 【지】 , ㅊ 【치】 , ㅋ 【키】 , ㅌ 【티】 , ㅍ 【피】 , ㅎ 【히】
中聲獨用十一字(가운뎃소리로만 쓰는 11자):
ㅏ 【아】 , ㅑ 【야】 , ㅓ 【어】 , ㅕ 【여】 , ㅗ 【오】 , ㅛ 【요】 , ㅜ 【우】 , ㅠ 【유】 , ㅡ 【으】 , ᅟᆖ 【이으의 合音】[2] ㅣ 【이】 [3]


新訂國文合字辨(새로 고친 국문의 합자 풀이):
初聲 ㄱ字를 中聲 ㅏ字에 倂하면 가 字를 成하고 終聲 ㅇ字를 가 字에 合하면 강 字가 되나니 餘倣此하니라。
新訂國文高低辨(새로 고친 국문의 높낮이 풀이):
上聲去聲은 右加一點 【我東俗音에 上去聲이 別노 差等이 無함이라。】 하고 平入兩聲은 無點이오 凡做語之曳聲에 亦加一點하니라。


字音高低標(자음 높낮이표):
動 【움즉일동】 , 同 【한가지동】 , 禦 【막을어】 , 魚 【고기어】 之類餘倣此하니라。
做語曳聲標(말을 만드는 끝소리표):
簾 【발렴】 , 足 【발족】 , 列 【벌릴[4]렬】 , 捐 【버릴연】 之類餘倣此하니라。


新訂國文疊音刪正辨(새로 고친 국문에서 중첩음의 삭제 정정 풀이):

ᄀᆞᄂᆞᄃᆞᄅᆞᄆᆞᄇᆞᄉᆞᄋᆞᄌᆞᄎᆞᄏᆞᄐᆞᄑᆞᄒᆞ 十四字가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 字의 疊音으로 用하기에 刪正함이라。
新訂國文重聲釐正辨(새로 고친 국문 겹소리 정정 풀이):
ㄲㄸㅃㅆㅉ난 ㄱㄷㅂㅅㅈ의 重聲이라 古昔에 까따빠싸짜로 行하더니 挽近에 漢文疊字의 〻[5]를 倣하야, ᄭᅡ[6]ᄯᅡᄲᅡ싸짜로 用함이 還屬便易로대, '以'字를 'ᄡᅧ'[7]로 釋함은 無由하기 ㅅ傍에 ㅂ을 倂用함을 廢止함이라。

5.2. 국문연구의정안(1909)[편집]

1907년 7월 대한제국 학부 소속으로 설치된 국문연구소에서는 이능화, 어윤적, 주시경 등의 의원들이 모여 열 가지 문제에 관하여 논의하였다.각 의원들의 논의는 약 200쪽 가량으로 이기문(1970),《개화기의 국문연구》의 부록에서 영인본을 확인할 수 있다. 그 결과 확정된 의결안은 약 5쪽 가량. # 그 안건들과 논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一. 國文의 淵源과 字體及 發音의 沿革 (可)
二. 初聲中 ㆁㆆ ㅿ ◇ ㅱㅸㆄㅹ 八字의 復用當否 (否)
三. 初聲의 ㄲ ㄸ ㅃ ㅆ ㅉ ㆅ 六字 並書의 書法一定 (可, ㆅ은 폐기)
四. 中聲字 ‘ㆍ’자 폐지 및 ᆖ자 창제의 당부 (否)
五. 終聲의 ㄷㅅ 二字用法及 ㅈㅊㅋㅌㅍㅎ 六字도 終聲에 通用當否 (可)
六. 字母의 七音과 淸濁의 區別如何 (五音과 淸音, 激音, 濁音으로 구분)
七. 四聲票의 用否及 國語音의 高低法 (四聲票는 不用, 長音 左肩一點)
八. 字母의 音讀一定 (ᅌ 이응 ㄱ 기윽 ㄴ 니은 ㄷ 디읃 ㄹ 리을 ㅁ 미음 ㅂ 비읍 ㅅ 시읏 ㅈ 지읒 ㅎ 히읗 ㅋ 키읔 ㅌ 티읕 ㅊ 치읓 ㅏ 아 ㅑ 야 ㅓ 어 ㅕ 여 ㅗ 오 ㅛ 요 ㅜ 우 ㅠ 유 ㅡ 으 ㅣ이ㆍᄋᆞ)
九. 字順行順의 一定 (初聲 牙舌脣齒喉와 淸激, 中聲 「訓蒙字會」순)
十. 綴字法 (訓民正音例義대로 仍舊綴字-모아쓰기)


1. 국문의 연원과 국문 자체 및 발음의 연혁
2. 초성 가운데 ‘, , , , , , ㅹ’ 8자를 다시 사용할지 여부 - 쓰지 말자.
3. 초성의 된소리 표기를 ‘, , , , , ’ 6자로 정할지 여부 - (ᄭ 와 같은 ㅅ계합용병서 말고) 각자병서(ㄲㄸㅃㅆㅉ)를 쓰자, 단 ㆅ은 폐기.
4. 중성 가운데 ‘ㆍ’자를 폐지할 것인지, 그리고 ‘ᆖ’자를 창제할 것인지 여부 - ㆍ를 폐지하지도 말고, ᆖ를 창제하지도 말자.(현상유지)[8]
5. 종성의 ‘ㄷ, ㅅ’ 2자의 용법 및 ‘ㅈ, ㅊ, ㅋ, ㅌ, ㅍ, ㅎ’ 6자도 종성에 통용할지 여부 - 가결[9]
6. 자모의 7음[10]과 청탁의 구별 문제 - 5음(아설순치후)[11]淸音(예삿소리)/激音(거센소리)/濁音(된소리)로 하자.[12]
7. 사성표를 사용할지 여부 및 국어음의 고저를 표기할지 여부 - 성조는 표기하지 않기로 하자. 장음은 왼쪽 점 1개로 표기.
8. 한글 자모의 명칭을 정하는 문제 - (ᅌ 이응 ㄱ 기윽 ㄴ 니은 ㄷ 디읃 ㄹ 리을 ㅁ 미음 ㅂ 비읍 ㅅ 시읏 ㅈ 지읒히읗키읔티읕피읖[13]치읓 ㅏ 아 ㅑ 야 ㅓ 어 ㅕ 여 ㅗ 오 ㅛ 요 ㅜ 우 ㅠ 유 ㅡ 으 ㅣ이ㆍᄋᆞ)로 읽자.
9. 자순(字順), 행순(行順)을 정하는 문제 - 자음은 아설순치후 + 예사/된소리 순으로, 모음은 훈몽자회 순으로 하자. (8항에서 적힌 대로)
10. 철자법[14] - 훈민정음에 나온 예전 방식대로[15] 모아쓰기로 하자.

의결안이 발표되고서 1년 후 대한제국멸망하여 공포되지는 못하였다. 그래도 이후 조선총독부의 보통학교용 언문 철자법에도 국문연구소의 의원이었던 어윤적 의원이 참여하는 등으로 내용이 계승된다.

오늘날 각자병서의 사용, 7종성 이외의 종성 표기(+'티읕', '치읓' 등의 호칭[16]) 등은 모두 국문연구의정안에서 처음 명문화된 것이다.

한편 차이점도 있는데, 의정안에서는 자모의 순서를 ㄱ(아)ㄴㄷㄹ(설)ㅁㅂ(순)ㅅㅈ(치)(후)ㅋㅌㅍ /ㅏㅑㅓㅕㅗㅛㅜㅠㅡㅣㆍ라고 하여 자음의 순서가 조금 다르다. 또한 여기에서의 순서에서도 보면 알 수 있듯이 아음인 ᅌ은 옛이응으로 폐지하기로 논의한 것이었는데 자음 순서에서는 옛이응을 아음으로 실어두고 있는 등(초성에서 등장하는 ㅇ은 위의 분류로는 후음에 속한다) ㅇ과 ᅌ을 혼동하고 있는 경우가 의정안 곳곳에서 확인된다. 'ㄱ, ㄷ, ㅅ'에 대하여 훈몽자회에서 적당한 한자가 없어서 비슷한 글자를 끌어와 조금 달라진 '기역, 디귿, 시옷'이라는 발음은 쓰지 않고 '기윽, 디읃, 시읏'이라고 하였는데 이 역시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다시 훈몽자회 식으로 돌아갔다. 북한에선 이걸 이어온 건지 아니면 또 다른 계기가 있었는지 '기윽, 디읃, 시읏'을 사용중. '장음을 점 하나로 찍어서 표시하자'는 내용도 이후 표기법에서 약간 더 길게 이어졌지만 오늘날엔 반영되지 않았다.

5.3. 보통학교용 언문 철자법(1912)[편집]

  • 서울 방언을 기준으로 삼음.

  • 아래아의 폐지. 한자음에서의 아래아는 그대로 두었다.

  • 받침 , , 이 추가로 인정되었다. '붉다', '삶다' 등이 현재의 형태로 쓰이게 된 게 이때부터. '있다', '빛' 등은 여전히 '잇다', '빗'으로 썼다.

  • 된소리는 ㅅ을 붙이는 방법인 ㅅ계 합용병서(ㅺ, ㅼ, ㅽ, ㅾ)만 인정되었다. 현행의 쌍자음(각자병서)은 인정되지 않았다.

  • 부사는 ''로만 적는다. (높히, 가벼히 등)

  • 가나

    • 가나 す/つ를 수/두로 적었다. 탁음은 한글에 탁음점을 붙였다.

    • 장음은 가장자리 점으로 표시했다.

5.4. 언문 철자법(1930)[편집]

  • 한자어를 적을 때 댜/뎌 등으로 적던 것을 자/저로 적게 되었다. 해당 시기에도 발음은 ㅈ이었는데 표기가 뒤처진 거였다고 한다.

  • 한자어 표기에 남아있던 아래아도 이때 폐지.

  • 받침을 더 많이 쓸 수 있게 됐다. , / , , 만 빼고 다 쓸 수 있게 됐다. '좋다', '했다' 등은 여전히 '조타', '햇다'로 적었다.

  • ㅊ받침으로 끝나는 단어들은 뒤에 ㅌ을, ㅌ받침으로 끝나는 단어는 뒤에 ㅊ을 적었다. 크로스 ex) 윷티(윷이) / 샅치(샅이)

  • ㄷ불규칙 용언에는 ㅅ받침을 썼다. (ㄷ규칙 용언은 ㄷ받침으로 쓰게 함)

  • 사이시옷을 쓰기 시작했다. 받침으로 적을 수 없는 경우에도 ㅅ을 홀로 썼다. ex) 문ㅅ자

  • 용언 ‘-아/-어’형에서 어간 끝소리가 ‘ㅣ, ㅐ, ㅔ, ㅚ, ㅟ, ㅢ’일 경우에 ‘-여’를 붙인다. ex) 되여

  • 가나

    • 가나 /는 현행처럼 스/쓰로 적게 되었다.

    • 일본어의 탁음 표기에 ‘ᅁ(ガ행), ᅅ(ザ행), ᅂ(ダ행), ᅄ(バ행)’과 같은 특수한 문자를 썼다.

    • 장모음 표기에 일본어의 장음 기호 ‘ー’를 사용했다. 이 영향으로 당시에 한글로 표기된 외래어들 중 몇몇에게 장음 기호가 들어간 걸 볼 수 있다. 다만 현대에 이 시대 글을 옮겨적을 땐 장음 기호인 걸 모르는 건지 그냥 하이픈으로 바꿔버리기 일쑤.

5.5. 한글 맞춤법 통일안(1933)[편집]

一、한글 마춤법(綴字法)은 표준말을 그 소리대로 적되, 語法에 맞도록 함으로써 原則을 삼는다.
二、표준말은 大體로 現在 中流 社會에서 쓰는 서울말로 한다.
三、文章의 各 單語는 띄어 쓰되, 토는 그 웃 말에 붙여 쓴다.

조선어학회에서 발표한 통일안. 당시엔 '마춤법'이라고 하였다. 현재 남북한 맞춤법의 토대가 되었다. 이것이 일제시대, 그러니까 분단 이전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남북한 맞춤법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었다.

  • 된소리를 적는 데 쌍자음을 적게 되었다.

  • 어중의 된소리는 나눠서 적지 않고 쌍자음으로 적는다. ex) 오빠(이전엔 '옵바')

  • 두음법칙 적용

  • 어원이 뚜렷하지 않은 ㄷ받침은 그냥 ㅅ으로 적는다. ex) 짓밟다(이전엔 '짇밟다')

  • '하다'를 ㅎ받침으로 줄일 수 있다. ex) 부지다(부지런하다)

  • 받침 ㅋ, ㅎ / ㄶ, ㅀ, ㅆ를 드디어 쓸 수 있게 됐다! 이제 '있다', '않다', '닳다' 등의 표기가 가능해졌다. (이전까지는 '잇다', '안타', '달타')

  • 방언이나 고어를 위해 과 같은 받침도 쓸 수 있게 됐다. 다만 ᇚ 받침은 약 반세기 뒤에 규정에서 제외되었다.

  • ㅅ ㅈ ㅊ을 첫소리로 삼는 ㅑ ㅕ ㅛ ㅠ를 ㅏ ㅓ ㅗ ㅜ로 적는다. 현재와는 달리 ㅅ도 들어가 있다는 것도 차이점.[17]

  • 띄어쓰기

    • 보조 용언은 붙여쓴다.

    • 의존 명사는 붙여쓴다. (현행 맞춤법에서는 띄어씀)

    • 숫자는 10진법에 따라 띄어쓴다. ex) 일억 삼천 사백 육십만 이천 오십 사 - 현행 맞춤법에서는 44항에 따라 만 자리 수마다 띄어씀. ex) 일억 삼천사백육십만 이천오십사

  • 문장 부호

    • 세로쓰기용 구두점만 인정했으나 1940년에 가로쓰기용 구두점도 인정. (현행 맞춤법에선 도리어 세로쓰기용 구두점이 폐지됨.)

    • 따옴표 역시 세로쓰기용 꺾쇠만 인정했지만 가로쓰기용 " 따옴표도 인정.

    • 고유명사에는 줄을 그었다. (이전에도 조금씩 쓰임)


잠시 'ㄹ꼬', 'ㄹ까'를 'ㄹ고', 'ㄹ가'로 적은 적이 있었다. 글자 사이에 ㄴ삽입 현상이 일어나는 경우 담ㅅ요처럼 죄다 사이시옷을 넣었다.[18] 이와 같은 점들은 개정판에서 폐지되었다.

이후 남북이 분단되면서 남북 각각에서 맞춤법 파동이 생겼다. 북에서는 형태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남에서는 표음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의 파동이 생겼던 것이 재미있는 점. 둘 다 파동으로 끝나고 완화되어 아직까지도 남북의 맞춤법은 1933년의 안을 기본으로 거의 유사하다.

5.6. (북한) 조선어 신철자법(1948)[편집]

꽤 특이한 맞춤법으로 이 맞춤법에서는 ㄹ, ㅅ, ㅎ, ㅇ, ㅂ 불규칙 용언을 나타내는 새로운 자음을 5개, ㅣ가 ㅓ와 어울려 ㅕ로 줄여지는(가지다 + 어 = 가지여) ㅣ 어간을 나타내기 위한 새로운 모음도 들어갔다. 하지만 이 새로운 6자모는 거의 쓰이지 않았고, 조선어 신철자법을 주도한 인물이었던 김두봉이 실각하면서 다음에 만들어진 조선어 철자법에서는 폐지되었다.

  • 6개의 자모가 추가되었다. 해당 자모들은 불규칙 용언들을 규칙 용언으로 만들기 위한 자모들이 많다.

    • ㄹ불규칙 용언 : 𠀀 비슷한 모양의 글자[19]가 쓰였으며 이를 빼지 않고 적어 규칙 용언화하였다. ex) 놀(노+𠀀)ㅂ니다 (현행은 '놉니다')

    • ㅅ불규칙 용언 : 훈민정음에 있던 여린히읗을 다시 활용하였다.

    • ㄷ불규칙 용언 : 훈민정음에 있던 반치음 ㅿ을 다시 활용하였다.

    • ㅂ불규칙 용언 : Y 비슷한 글자가 쓰였다.

    • 르불규칙 용언 : 巳 비슷한 모양의 글자가 쓰였다.

    • ㅎ불규칙 용언 : ㅎ을 빼지 않고 적어 규칙 용언화하였다. ex) 하얗ㄴ (현행은 '하얀')

    • 앞의 자음 ㅣ 때문에 뒷소리가 ㅕ로 [j] 발음이 끼어 들어갈 땐 ㅣ대신 1 비슷한 다른 글자를 썼다.

  • 방언을 위해 ㄹ+여린히읗, ᇚ 등의 받침을 쓸 수 있게 됐다.

  • 사이시옷은 어깨표(')로 바꾸었다.

  • 몌/폐는 '메', '페'로 적는다. 이것은 아직까지도 북한에서 유지된다.

  • 두음법칙 폐지. 이는 아직까지도 북한에서 유지된다.

5.7. (남한) 한글 간소화안(1953)[편집]

한국어 위키백과 문헌

1949년 이승만 대통령은 현행 철자법을 폐지하고 일제 강점기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담화를 발표했다. 그동안 형태주의적 요소를 많이 받아들인 한글 맞춤법이 구한말 세대인 이승만 대통령에게는 너무 어렵고 번거로웠던 것(…). 1953년에 국무총리령이 발표되어 이 건을 밀어붙이게 된다. 하지만 국어학자들의 격렬한 반발에 부딪혔고, 문교부 장관이 연달아 사임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1954년에 이승만 대통령은 “3개월 이내에 현행 맞춤법을 버리고, 구한국 말엽의 성경 맞춤법에 돌아가라.”라는 담화를 발표했으며 새로 임명된 문교부 장관이 일단 간소화 안을 발표하고 무작정 국무 회의를 통과시켰다. 그러자 더욱더 각지의 반발과 비난이 빗발쳤으며 결국 1955년에 이승만 대통령은 이 방안을 취소했다.

  • 받침은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ㄺ, ㄻ, ㄼ만 허용한다. 언문 철자법 시기와 동일. ex) 잊다 → 잇다

  • 용언의 어간은 받침으로 쓰지 않고 연철해서 쓴다. ex) 잊으니 → 이즈니

  • 어원은 표시하지 않는다. ex) 길이 → 기리 , 낱낱이 → 낫나치

5.8. (북한) 조선어 철자법(1954)[편집]

1948년에 제시된 조선어 신철자법이 지금도 유지되는 조항을 제외하고는 상당히 문제가 많았고, 때마침 김두봉이 실각하자 북한은 1954년에 철자법을 개정한다.

  • 사이시옷 어깨표(1966년 조선말 규범집에서 폐지), 몌/폐를 '메', '페'로 표기, 두음법칙 폐지를 제외한 조선어 신철자법의 모든 조항을 폐지한다.

5.9. (북한) 조선말 규범집(1966)[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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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과 2010년에 각각 개정되었다.

  • ‘-ㄹ까, -ㄹ꼬, -ㄹ쏘냐’는 'ㄹ가', 'ㄹ고', 'ㄹ소냐'로 적는다.

  • 앞의 ㅣ때문에 뒷소리가 '여'로 나면 '여'로 적는다. ex) 되여

  • (사이시옷 현상을 적던) 어깨표 폐지. 사이시옷으로 복귀하지 않아 사이시옷을 표기하지 않게 되었다. '샛별', '빗바람'등은 예외.[20]

  • 명사가 조사 없이 이어서 쓰이는 경우 붙여 쓰는 걸 원칙으로 한다.

  • 의존명사는 붙여쓴다.

  • 보조용언은 붙여쓴다.

  • 따옴표는 ≪ ≫를 쓴다.

5.10. (남한) 한글 맞춤법(1988)[편집]

  • 모음조화에 어긋나게 굳어진 사례는 굳어진 것을 따른다. ex) 깡충깡충,

  • 기술자는 장이, 그 외엔 쟁이로 나누어쓴다. ex) 미장이 / 개구쟁이

  • 읍니다는 '습니다'로 쓴다.

  • 외래어에서 장음은 따로 적지 않는다. ex) 유우에프오우 → 유에프오/뉴우요오크 → 뉴욕(원칙대로는 뉴요크이나 관용상...)


현재까지 우리가 쓰는 맞춤법은 1988년에 확립된 것이다.[21] 다만 2014년 10월 27일, 문화체육관광부는 현행 한글 맞춤법 중 문장 부호의 용법만을 일부 수정하는 개정안을 고시하였다. 개정안의 내용이 잘 이해가 안 된다면 조금 더 쉽게 풀어쓴 글을 읽어 보자.

6. 참고 문서[편집]

7. 참고 사이트[편집]


[1] '지적'이 아닌 '피드백' 같은 느낌으로 말을 하면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예를 들면, "죄송하지만, 맞춤법에 대해 피드백을 드려도 될까요?"라고 먼저 말하고 글을 적는 것이다. 이런 방식이 다른 방식들 보다는 상대방의 기분을 덜 나쁘게 할 것이다.[2] 실록 한문입력에서는 '으이의 합음'으로 잘못되어있다. 국문 번역 자료에서는 맞게 되어있다.[3] 신정국문 본문에서 '아래아를 폐지한다'라는 구절은 없으나 중성 단락에서 아래아를 포함하지 않음으로써 지석영이 아래아를 폐지하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아래에 '중첩음의 삭제' 부분에서 아래아를 'ㅏ'로 바꾸는 부분에서도 나타난다.[4] 실록에서는 '벌랄렬'로 되어있으나, 의정부 관보의 원문은 '벌릴렬'이 맞다. 실록에서의 오기.[5] 파일:누자기호.png 파일:실록누자.png 원문으로는 이와 같이 표기되어있는데(오른쪽은 실록), 지석영이 정확히 어떤 반복 부호를 보고 ㅅ과 닮았다고 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실록 입력본에서는 그냥 ㅅ으로 입력되어있으나, 글 맥락상으로도 다른 글자를 써야 할 것이고 실제 지면에서도 ㅅ과는 분명 다른 글자를 쓰고 있다.[6] 실록 입력본에는 'ᄭᅡ'가 누락되어있다. 실록 원본과 관보 원본엔 모두 'ᄭᅡ'가 존재한다.[7] 실록 입력본에는 '써'로 입력되어있으나, ㅂ계합용병서에 대한 언급이므로 원 표기를 살려서 표기하여야 한다.[8] 문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당대에는 (발음은 이미 ㅏ나 ㅡ로 합쳐진) 아래아(ㆍ)의 창제 당시의 발음이 ᆖ였을 것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에 ㆍ의 폐지와 ᆖ의 창제 논의가 같이 이루어졌다.[9] ㄷ 말음은 용언의 어간에서만 사용하기로 하였다. '씻다-씻어[씨서]'와 '믿다-믿어[미더]'의 경우에만 ㅅ과 ㄷ을 구분한 것. 체언에서는 모두 ㅅ으로 적는 것으로 통일하였다.[10] 아음, 설음, 순음, 치음, 후음(아설순치후)과 반설음, 반치음[11] 반치음 은 사라졌기 때문에 넣지 않았고, 반설음 은 설음에 포함시켰다.[12] 훈민정음에서는 현재의 ㄱ/ㅋ/ㄲ의 예삿소리/거센소리/된소리를 全淸(전청), 次淸(차청), 全濁(전탁)으로 구분하였는데 '激'이라는 표현을 새로 도입한 것이다.[13] 링크된 디지털한글박물관 입력본에는 ㅍ이 빠져있다.[14] 영어의 spelling에 해당하는 의미가 아니라, 각 자모를 '배열(철)'하는 방법으로 풀어쓰기를 할 것인지/모아쓰기를 할 것인지를 의미한다.[15] '仍舊'(잉구, 고치지 않고 예전대로 씀)이라는 표현에서부터 '풀어쓰기로 바꿔보고는 싶지만 갑작스러울 것 같으니 그대로 두자'라는 어조가 느껴진다. 실제로 국문연구소 의원 가운데 풀어쓰기를 지지한 사람들이 꽤 많았다. 주시경이 대표적이다.[16] 대체로 훈몽자회를 따랐으나, 훈몽자회에서는 ㅋㅌㅍㅎ 등을 종성으로는 사용하지 않았으므로 '티읕'이라고 부르지 않고 '티'라고만 하였다. 당장 바로 위의 신정국문까지만 해도 'ㅌ, ㅊ' 등은 '티, 치'로 부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17] 참고로 이렇게 표기가 강제 교정된 이후 다시 사와 샤의 발음이 구분되기 시작하면서, 이전 시대에 샤, 셔 등으로 발음되었던 단어들의 발음은 전부 사, 서 등으로 변했다. 星의 옛 표기가 셩인 게 그 예.[18] 때문에 이 시기에 나온 시를 보면 산새를 산ㅅ새라고 쓴 것도 있다.[19] ㄹ에서 첫 번째 가로획을 오른쪽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글자다. 좀 정확히 묘사하자면 T를 가로로 길게 쓰고 획을 이어서 C를 ㄷ자로 각지게 쓴 듯한 모양이다.[20] 남한에서도 사이시옷을 적용하지 않는데도 발음에서 사이시옷이 드러나는 경우는 존재한다. 기점, 초점, 시가, 호수(號數나 戶數), 도수가 대표적인 예.[21] 1988년 1월 19일 한글맞춤법을 고시,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1989년 3월부터 시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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