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 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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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유도.png   16세기 종교개혁을 주도한 독일의 신학자 마르틴 루터에 대한 내용은 마르틴 루터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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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평화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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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1902년

1903년

1904년

1905년

장 앙리 뒤낭
프레데리크 파시

엘리 뒤코묑
샤를 알베르 고바

윌리엄 크리머

국제법학회

베르타 폰 주트너

1906년

1907년

1908년

1909년

1910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에르네스토 모네타
루이 르노

클라스 아르놀드손
프레드리크 바예르

데스투르넬 드 콩스탕
오귀스트 베르나르트

국제평화국

1911년

1912년

1913년

1914년

1915년

토비아스 아서르
알프레트 프리트

일라이휴 루트

앙리 라퐁텐

수상자 없음

1916년

1917년

1918년

1919년

1920년

수상자 없음

국제적십자사

수상자 없음

우드로 윌슨

레옹 부르주아

1921년

1922년

1923년

1924년

1925년

칼 브란팅
크리스티안 랑에

프리드쇼프 난센

수상자 없음

오스틴 체임벌린
찰스 도스

1926년

1927년

1928년

1929년

1930년

아리스티드 브리앙
구스타프 슈트레제만

페르디낭 뷔송
루트비히 크비데

수상자 없음

프랭크 켈로그

나탄 쇠데르블룸

1931년

1932년

1933년

1934년

1935년

제인 애덤스
니컬러스 머리 버틀러

수상자 없음

노먼 에인절

아서 헨더슨

카를 폰 오시에츠키

1936년

1937년

1938년

1939년

1940년

카를로스 사베드라 라마스

로버트 개스코인 세실

난센국제난민 사무국

수상자 없음

1941년

1942년

1943년

1944년

1945년

수상자 없음

국제적십자사

코델 헐

1946년

1947년

1948년

1949년

1950년

에밀리 그린 볼치
존 모트

미국 퀘이커 봉사위원회
영국 퀘이커 봉사협회

수상자 없음

보이드 오어

랠프 번치

1951년

1952년

1953년

1954년

1955년

레옹 주오

알베르트 슈바이처

조지 C. 마셜

국제연합 난민고등판무관사무소

수상자 없음

1956년

1957년

1958년

1959년

1960년

수상자 없음

레스터 B. 피어슨

도미니크 조르주 피르

필립 노엘 베이커

앨버트 루툴리

1961년

1962년

1963년

1964년

1965년

다그 함마르셸드

라이너스 폴링

국제적십자사

마틴 루터 킹

국제연합아동기금

1966년

1967년

1968년

1969년

1970년

수상자 없음

르네 카생

국제 노동 기구

노먼 볼로그

1971년

1972년

1973년

1974년

1975년

빌리 브란트

수상자 없음

헨리 키신저
레득토 (수상 거부)

숀 맥브라이드
사토 에이사쿠

안드레이 사하로프

1976년

1977년

1978년

1979년

1980년

베티 윌리엄스
마레드 코리건

국제앰네스티

안와르 사다트
메나헴 베긴

마더 테레사

아돌포 페레스 에스키벨

1981년

1982년

1983년

1984년

1985년

국제연합 난민고등판무관실

알바 뮈르달
알폰소 가르시아

레흐 바웬사

데즈먼드 투투

핵전쟁방지국제의사회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1990년

엘리 비젤

오스카 아리아스

유엔 평화 유지군

14대 달라이 라마

미하일 고르바초프

1991년

1992년

1993년

1994년

1995년

아웅산수지

리고베르타 멘추

넬슨 만델라
프레데리크 데클레르크

이츠하크 라빈
시몬 페레스
야세르 아라파트

조지프 로트블랫
퍼그워시 회의

1996년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카를루스 벨루
조제 하무스 오르타

지뢰금지국제운동
조디 윌리엄스

존 흄
데이비드 트림블

국경 없는 의사회

김대중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국제연합
코피 아난

지미 카터

시린 에바디

왕가리 마타이

국제원자력기구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그라민 은행
무함마드 유누스

앨 고어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

마르티 아흐티사리

버락 오바마

류샤오보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엘런 존슨 설리프
리마 보위
타우왁쿨 카르만

유럽 연합

화학무기 금지기구

말랄라 유사프자이
카일라시 사티아르티

튀니지 국민4자대화기구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후안 마누엘 산토스

핵무기 폐기 국제운동

드니 무퀘게
나디아 무라드

마틴 루터 킹의 주요 수상과 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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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스미소니언 재단의 잡지, 스미소니언 매거진이 “미국사 가장 중요한 100인의 인물”을 선정했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들을 뽑았기 때문에 미국인이 아닌 사람들도 많다.
미국 역사를 총망라해서 뽑았기 때문에 부정적인 인물들도 있다.

개척자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헨리 허드슨

아메리고 베스푸치

존 스미스

조반니 다 베라차노

존 뮤어

메리 웨더 루이스
윌리엄 클라크

새커거위아

키트 카슨

존 웨슬리 파월

닐 암스트롱

혁명가 & 저항가들

마틴 루터 킹

로버트 E. 리

토마스 페인

존 브라운

프레드릭 더글러스

수전 B. 앤서니

W. E. B. 두 보이스

테쿰세

타탕카 이오타케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

말콤 엑스

대통령들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율리시스 S. 그랜트

우드로 윌슨

에이브러햄 링컨

제임스 매디슨

앤드루 잭슨

시어도어 루스벨트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로널드 레이건

조지 W. 부시

첫 여성들

포카혼타스

안나 엘리너 루스벨트

힐러리 클린턴

마사 워싱턴

오프라 윈프리

헬렌 켈러

소저너 트루스

제인 애덤스

이디스 워튼

베티 데이비스

사라 페일린

범법자들

베네딕트 아놀드

제시 제임스

존 윌크스 부스

알 카포네

빌리 더 키드

윌리엄 M. 트위드

찰스 맨슨

와일드 빌 히콕

리 하비 오즈월드

러키 루치아노

존 딜린저

예술가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앤디 워홀

프레데릭 로 옴스테드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

잭슨 폴록

존 제임스 오듀본

조지아 오키프

토머스 에이킨스

토마스 내스트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안셀 애덤스

종교인들

조셉 스미스 주니어

윌리엄 펜

브리검 영

로저 윌리엄스

앤 허치슨

조너선 에드워즈

L. 론 허버드

엘런 화이트

코튼 매더

매리 베이커 에디

빌리 그레이엄

팝 아이콘들

마크 트웨인

엘비스 프레슬리

마돈나

밥 딜런

마이클 잭슨

찰리 채플린

지미 헨드릭스

마릴린 먼로

프랭크 시나트라

루이 암스트롱

메리 픽포드

제국-건설자들

앤드루 카네기

헨리 포드

존 데이비슨 록펠러

존 피어폰트 모건

월트 디즈니

토머스 에디슨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

하워드 휴즈

빌 게이츠

코르넬리우스 밴더빌트

스티브 잡스

운동선수들

베이브 루스

무하마드 알리

재키 로빈슨

제임스 네이스미스

아놀드 슈워제네거

타이 콥

마이클 조던

헐크 호건

짐 도프

세크리테어리엇

빌리 진 킹

출처

Congressional Gold Medal
의회 명예 황금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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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6년

1777년

1779년

1781년

조지 워싱턴

소장 호레이쇼 게이츠

소장 앤서니 웨인

사령관 헨리 리 3세

준장 대니얼 모건

1781년

1787년

1800년

1805년

1813년

소장 너새니얼 그린

존 폴 존스

대령 토마스 트럭스턴

준장 에드워드 프레블

대령 아이작 헐
대령 스티븐 디케이터
대령 제이콥 존스

1813년

1814년

대령 윌리엄 베인브리지

대령 올리버 해저드 페리
대령 제시 엘리엇

대위 윌리엄 워드 버로우즈 2세
대위 에드워드 맥콜

대령 제임스 로렌스

대령 토머스 맥도너
대령 로버트 헨리
대위 스티븐 카신

1814년

1814년, 1848년

1814년

대령 루이스 워링턴

대령 존스톤 블레이클리

소장 제이컵 브라운

소장 윈필드 스콧

소장 피터 부엘 포터
준장 엘리저 윌락 리플리
대령 제임스 밀러

1814년

1815년

1816년

소장 에드먼드 P. 게인즈

소장 알렉산더 마콤

소장 앤드루 잭슨

대령 찰스 스튜어트

대령 제임스 비들

1818년

1835년

1846, 1847년, 1848년

1847년

1854년

소장 윌리엄 해리슨
주지사 아이작 셸비

대령 조지 크로간

소장 재커리 테일러

소머스 호의 장교 및 승무원 구출

중령 던컨 잉그함

1858년

1863년

1864년

1866년

1867년

프레데릭 로즈

소장 율리시스 S. 그랜트

코닐리어스 밴더빌트

로버트 크레이튼
에드윈 J. 로우
조지 C. 스투퍼

사이러스 웨스트 필드

1867년

1871년

1873년

1874년, 1904년

1883년

조지 피바디

조지 F. 로빈슨

대령 자레드 크랜달 그 외

존 혼 주니어

존 폭스 슬레이터

1888년

1890년

1900년

1902년

1909년

조셉 프란시스

수석 엔지니어 조지 W. 멜빌 그 외

중위 프랭크 H. 뉴콤

중위 데이빗 H. 자비스
소위 엘스워스 P. 버트홀프
사무엘 J. 콜 박사

라이트 형제

1912년

1914년

1915년

1928년

대령 아서 로스트론

폴 H. 크라이봄 그 외

로물로 세바스티안 나온
에두아르도 수아레즈 무히카

찰스 린드버그

로알 아문센
움베르토 노빌

1928년

1929년

1930년

1936년

토머스 에디슨

최초로 성공한 대서양 횡단 비행사들

소령 월터 리드

준장 리처드 에벌린 버드

링컨 엘스워스

1936년

1938년

1939년

1940년

조지 코한

리처드 올드 리치 부인
안나 불리니

하워드 휴즈

목사 프란시스 퀸

윌리엄 시노트

1942년

1945년

1946년

롤랜드 바우처

1939-1941년 미국 남극 탐험대 멤버들

미합중국 육군 원수 조지 C. 마셜
미합중국 해군 원수 어니스트 킹

미합중국 육군 원수 존 조지프 퍼싱

준장 빌리 미첼

1949년

1954년

1955년

1956년

1958년

앨번 W. 바클리

어빙 벌린

조너스 소크 박사

남북 전쟁의 참전 용사들

준장 하이먼 리코버

1959년

1960년

1961년

1962년

로버트 고다드

로버트 프로스트

토마스 안소니 둘리 3세

밥 호프

샘 레이번

1962년

1968년

1969년

1973년

1977년

미합중국 육군 원수 더글러스 맥아더

월트 디즈니

윈스턴 처칠

로베르토 클레멘테

매리언 앤더슨

1978년

1979년

중장 아이라 C. 이커

로버트 F. 케네디

존 웨인

벤 아브러조
맥시 앤더슨
래리 뉴먼

휴버트 호레이쇼 험프리

1979년

1980년

1982년

미국 적십자

케네스 테일러

1980 미국 하계 올림픽

베아트릭스 여왕

대장 하이먼 리코버

1982년

1983년

프레드 워링

조 루이스

루이스 라머

레오 라이언

대니 토마스

1984년

1985년

해리 S. 트루먼

레이디 버드 존슨

엘리 비젤

로이 윌킨스

조지 거슈윈
아이라 거슈윈

1986년

1987년

1988년

나탄 샤란스키
에비탈 샤란스키

해리 차핀

에런 코플런드

메리 래스커

제시 오언스

1988년

1990년

1991년

앤드루 와이어스

로렌스 록펠러

대장 매튜 B. 리지웨이

대장 노먼 슈워츠코프

대장 콜린 파월

1994년

1996년

1997년

랍비 메나헴 멘델 쉬니어슨

루스 그레이엄
빌리 그레이엄

프랭크 시나트라

마더 테레사

바르톨로메오스 1세

1998년

1999년

넬슨 만델라

리틀록 9인

제럴드 포드
베티 포드

로자 파크스

테오도르 헤스버그

2000년

존 오코너

찰스 먼로 슐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로널드 레이건
낸시 레이건

나바호 족 코드 토커

2002년

2003년

대장 휴 쉘튼

토니 블레어

재키 로빈슨

도로시 하이트 박사

조셉 디레인 [br[ 해리 & 엘리자 브릭스
레비 피어슨

2004년

2006년

마틴 루터 킹
코레타 스콧 킹

터스키기 에어맨

14대 달라이 라마

바이런 넬슨

노먼 볼로그 박사

2007년

2008년

마이클 데바키 박사

아웅산수지

콘스탄티노 브루미디

에드워드 브룩

아메리카 원주민 코드 토커

2009년

2010년

여성 공군 서비스 조종사

닐 암스트롱
버즈 올드린
존 글렌

아널드 파머

무함마드 유누스

100연대 보병 대대
442 연대 전투단
군사 정보국

2011년

2012년

2013년

몬트포드 포인트 해병대

2001년 9월 11일 미국에 대한 테러 공격으로 사망한 남녀들

라울 발렌베리

애디 매 콜린스
데니스 맥네어
캐롤 로버트슨
신시아 웨슬리

제1 특수임무단

2014년

둘리틀 특공대 멤버들

미국의 공군 에이스들

제2차 세계 대전 민간 항공 초계 부대 멤버들

시몬 페레스

모뉴먼츠 맨

2014년

2015년

2016년

제65 보병연대

잭 니클라우스

셀마 몽고메리 행진

제2차 세계 대전 필리핀인 참전 용사들

OSS

2017년

밥 돌

파일:external/media.tumblr.com/tumblr_inline_mgzhhqZN7u1rrs41z.jpg

본명

마틴 루터 킹 주니어 (Martin Luther King Jr.)

국적

미국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US_flag_48_stars.svg.png

출생

1929년 1월 15일[1]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사망

1968년 4월 4일(향년 40세)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 시 로레인모텔

학력

보스턴 대학교 신학 박사

직업

목사, 신학자, 시민사회운동가, 인권운동가

배우자

코리타 스캇 킹

신체

169cm

종교

개신교 (침례회)

서명

파일:external/www.leialivro.com.br/Martin-Luther-King-raridade-assinatura.jpg

1963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
Time Man of the Year 1963

파일:attachment/time_1963.jpg

요한 23세
1962

마틴 루터 킹
1963

린든 B. 존슨
1964


1. 개요2. 전반적인 생애
2.1.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2.2. 나는 산 꼭대기에서 약속의 땅을 보았습니다2.3. 무덤과 추모 조형물
3. 평가4. 비판5. 여담

1. 개요[편집]

[2]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네 자식들이 이 나라에 살면서 피부색으로 평가되지 않고 인격으로 평가 받게 되는 날이 오는 꿈입니다.
(I have a dream that my four little children will one day live in a nation where they will not be judged by the color of their skin, but by the content of their character.)

어둠으로 어둠을 몰아낼 수는 없습니다. 오직 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증오로 증오를 몰아낼 수는 없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그것을 할 수 있습니다.
(Darkness cannot drive out darkness only light can do that. Hate cannot drive out hate only love can do that)


검은 천사[3]

미국의 비폭력 흑인 인권 운동가. 개신교 침례회목사 통칭 킹 목사. 미국에서는 이니셜인 MLK라고 쓰기도 한다.

2. 전반적인 생애[편집]

미국에서 흑인으로 태어났지만, 나름대로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인물이다.[4] 아버지 마틴 루터 킹 시니어(Martin Luther King Sr.)가 목사였고 가족들 역시 기독교 신자였기 때문에 킹 역시 기독교를 믿게 되었다. 이후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하여 아버지와 의견 충돌을 빚었지만, 결국 목사가 되기로 결심하여 모어하우스 칼리지와 크로저 신학대학에서 학사학위를 마치고, 보스턴 대학교(BU)에서 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목사안수를 받은 교파는 침례회이다. 이때 대학에서 평생의 동반자이자 인권운동을 함께 한 코레타 스콧(Coretta Scott)과 결혼하게 된다.

대학을 다니면서 받은 차별[5][6] 등으로 인해 목사가 된 이후 흑인들을 위한 인권운동을 시작했으며, 앨라배마에서 버스 안에서 로자 파크스라는 흑인 여성이 백인 남성을 위해 자리를 비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되자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을 전개, 5만 명이 넘는 알라바마의 흑인들이 버스를 타지 않고 두 다리를 이용해 움직이며, 차가 있는 흑인들은 카풀을 시작하게 했다. 1년간에 걸친 운동 끝에 결국 로자 파크스는 풀려나고, 흑인이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비키지 않으면 체포되는 것은 위헌이라는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얻어낸다.

그 이후로도 계속되는 인권운동을 전개했으며 흑인이 백인과 동등한 시민권을 얻기 위한 운동을 펼쳐왔다. 그 결과 196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으며, 일부 과격파 흑인들을 어르고 달래서 비폭력 운동을 펼쳐왔다. 1965년 이후엔 과격 운동가인 말콤 X를 만나며 과격파 운동가들과의 연대를 꾀했으나, 1968년 4월 4일에 과격파 백인단체의 인물인 제임스 얼 레이에게 암살당했다.[7] 그의 죽음에 수많은 사람들이 슬퍼했고 음모론이 발생했으며 미국 전역에서 킹 목사의 죽음에 분노한 흑인들의 폭동이 일어나 도시 중심부에서 방화와 건물, 차량 파괴, 약탈 등 폭력시위가 벌어졌다. 흑인 폭동은 흑인 지도자들의 자제 요청과, 수천명의 군인, 경찰이 출동하면서 시위대는 저절로 해산되었다.

2.1.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편집]

그는 지금까지도 수많은 흑인들의 목사로 남아있으며, 그가 한 수많은 연설 가운데 1963년 8월 28일 워싱턴 행진 때 링컨 기념관 앞에서 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로 시작되는 연설은 지금까지도 인류에 회자되는 역사적인 명연설로 남았다. 그리고 그 명대사는 지금도 간간이 교과서에 실린다.

본래 이날을 위해 따로 준비한 원고가 있었지만, 수많은 인파를 보자 마음이 바뀌어 평소 그가 즐겨 하던 연설을 했다고 한다. 내용은 항목 참조.

그가 암살당한 후 미국 정부는 1월 셋째 주 월요일을 마틴 루터 킹의 날로 지정, 국경일로 만들었다. 월요일 수업이 많은 대학생들에게는 마른 하늘의 단비 같은 휴일[8]. 뭐 지금 살아있었어도 80대이니 충분히 왕성히 활동을 했을 인물이다.

여담인데, 이 연설에서는 니그로(negro)가(negro는 스페인어로 검정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스페인어 발음은 네그로이다) 흑인종을 나타내는 언어로써 쓰인다. 최소 1960년대에는 니그로가 아직 멸시적 의미보다는 오히려 학술적이고 공식적인 표현이었다는 근거가 된다.[9]

2.2. 나는 산 꼭대기에서 약속의 땅을 보았습니다[편집]

그가 암살당한 장소인 테네시주 멤피스의 로레인 모텔(Lorraine Motel)은 현재 민권 박물관(Civil Rights Museum)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곳에서 암살당하기 전날 저녁인 1968년 4월 3일에 그는 이곳 발코니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짤막한 연설을 한 게 마지막 연설이 되었다. 자신의 최후를 예감했는지 그는 이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가장 어려운 문제를 반드시 풀어야 할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생존을 위해서는 그 문제를 반드시 풀어야만 합니다.

오늘 저녁 우리는 좀 더 단단한 각오로 굳세게 일어서도록 합시다.
좀더 확고한 신념을 갖고 힘차게 전진하도록 합시다.

우리의 조국이 본연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힘찬 행진을 시작하도록 합시다.
우리에게는 조국을 좀 더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져 있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저는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 앞에는 무섭고 어려운 날들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저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저는 높은 산 꼭대기에 올라 '약속의 땅'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사는 것이 모든 사람의 염원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그런 염원이 없습니다.
저는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저를 높은 산 꼭대기로 데려가셨습니다.
거기서 저는 굽어보았습니다.
'약속의 땅'이 제 눈 앞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제가 여러분과 함께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오늘 저녁 분명히 알아두셔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저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될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말리라는 것을.

오늘 저녁 저는 대단히 행복합니다.
저에게는 아무런 걱정도 없습니다.
저는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저의 눈은 오로지 다시 이 땅을 찾아오시는 주님의 영광을 바라볼 따름입니다.



2.3. 무덤과 추모 조형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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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 목사의 무덤 곁에는 2006년 1월 30일에 타계한 부인 코레타 스콧 킹 여사가 안장되었다. 그의 석관에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의 마지막 문장 "드디어 자유가, 드디어 자유가! 전능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가 마침내 자유로워졌나이다!"의 끝을 조금 바꾼 "마침내 제가 자유로워졌나이다!" 가, 부인의 석관에는 고린도전서 13장 13절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가 묘비명으로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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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22일 킹 목사 추모 조형물이 워싱턴 D.C.의 내셔널 몰에서 일반에 공개되었고, 개장식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제시 잭슨 목사를 비롯한 미국의 주요 흑인 명사들이 참석했다. 그런데 조형물의 시안이 공개되었을 때는 조각상의 자세가 너무 위압적이라는 지적이 나왔으며, 조각에 착수했을 때는 흑인을 하얀 돌로 조각하는 게 타당한지를 놓고 일부가 갑론을박을 벌인 적이 있다.

3. 평가[편집]

20세기 후반부에 일어난 미국의 흑인 인종차별 철폐 운동의 아이콘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인지도와 평가도 높고 인권운동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미국 내 흑인들의 인권 향상의 역사는 이 사람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도 없다.

백인들의 차별과 멸시를 받는 세대에서 태어났음에도 그 백인들과 흑인들의 공존과 통합, 모든 인종의 평등을 주장하는 인종을 초월한 인류애적 가치의 실현을 부르짖은 점과 그 수단으로 폭력을 동원하지 않고 비폭력 인권 운동으로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한 점이 킹의 가장 큰 특징이다. 물론 이상론만 설파하고 다니지는 않았고, 여러 가지 사회운동에 참여하고 인권 운동을 이끎으로서 연방 대법원의 흑인/백인 버스 좌석 차별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받아낸 사건에도 으뜸가는 활약을 펼치고 흑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는 등 현실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일조하였다. 또한 인종차별 폐지 관련 운동 외에도 미국의 젊은이들을 희생시키지 말라면서 베트남 반전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인종차별 외 다른 인권문제에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진 행적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킹은 기독교 침례회 목사였으므로 자연히 그의 행적은 기독교 사상에 뿌리를 둔다. 특히 킹이 비폭력 운동과 흑백 통합 공존의 가치를 설파하고 다닌 것에는 성경에 등장한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킹의 인권운동에서 가장 큰 특징은 비폭력인데 사실 처음부터 비폭력을 밀고 나간 것은 아니다. 물론 폭력을 용인한 것은 아니지만 워낙에 킹을 노리는 세력과 협박도 많고 해서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총을 구비해 두었고, 폭력에 대단히 부정적이긴 했지만 자기 방어를 위한 폭력적 수단의 동원은 어느 정도 긍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같은 개신교 커뮤니티 내에서 백인 반전 운동가들과 교류하면서 비폭력 운동에 대한 확신이 생겨나게 되었고 자기방어와 개인 무기 소지를 등진 채 비폭력 인권운동의 틀을 다지게 되었고, 그의 삶이 끝나는 그날까지 비폭력 운동에 대한 신념을 고수했다.

말콤 엑스와 가장 큰 대비를 이루는 부분이기도 한데, 이 비폭력 운동이라는 수단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인권 운동가라는 이름으로 킹을 가장 빛나게 만들어주는 반면 엑스는 이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또한 킹의 핵심 주장이자 그의 사상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부분은 '흑인과 백인, 둘은 어느 하나 우월한 인종이 아니라 평등하며 따라서 평등하게 대우받고 함께 공존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 옳다'였지만 급진적 성향의 엑스는 킹이 백인들에게 휘둘리고 있다며 그의 인권운동을 지나치게 타협적이라고 생각했다. 엑스 외의 과격파 흑인들 역시 킹의 온건적 인권운동을 못마땅하게 보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이런 여론과 별개로 당시 흑인들 사이에서 킹의 사상이 더 큰 지지를 받았고 많은 흑인들이 킹을 자신들의 지도자로 여기며 그에게 동조했던 것은 명백하다.

비폭력 운동과 인종 평등의 가치 주장 및 흑인들의 인권 신장을 위해 힘쓴 공로로 1964년 10월 14일,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된다. 이 수상 소식을 듣고 당시 FBI 국장이었단 존 에드거 후버가 분노했다는 뒷이야기가 전해진다.

다만 킹 목사도 인간인지라 약점은 있었다. FBI에서 킹 목사의 약점을 캐내다가[10] 성적 간음에 관한 혐의를 발견했다. 이에 관해 킹 목사의 친구였던 랠프 애버내시(Ralph Abernathy)는 그의 자서전에서 킹 목사가 여자에 약하다고 했지만 후에 이것이 외설적인 것보다는 감정적인 것에서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킹 목사의 인생을 저술했던 데이비드 개로(David Garrow)는 킹이 매일 만나는 여자들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간음에 대한 사실을 말한 적이 있었다.

FBI는 이것을 꼬투리로 잡아 킹 목사가 지금 하는 인권운동을 멈추지 않으면 자신들이 알아낸 킹 목사의 비밀을 온 사방에 알리겠다며 익명의 협박 편지까지 보냈다. 마치 넌 이제 끝났어 라고 윽박지르는 듯한 내용인데 그 때문에 킹은 자살까지 생각했지만 결국 굴복하지 않았다. FBI는 이것을 신문기자들에게 폭로하여 기사를 내라고 했지만 모든 신문기자들이 이를 거부했고 오히려 후버야말로 치졸하게 남의 약점이나 캔다는 비난도 받았다고 한다. 킹의 위상이 워낙에 어마어마했고 무엇보다 FBI는 이 사생활 이야기를 킹의 인권운동을 꺾을 목적으로 캐낸 거였던 데다, 협박과 도청 등의 수단을 동원하여 킹을 겁박했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킹 목사의 사생활 건과 관련하여서는 FBI를 비난하는 미국 내 여론이 압도적으로 많다. 결국 극비에 부치고 National Archives에 2027년까지 보관해 두기로 했다. [11]

1990년 시어도어 파파스라는 연구자가 킹이 자신이 가르친 학생의 논문을 표절하여 박사논문 3분의 1 이상을 베꼈다는 사실[12]을 발견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라는 연설의 감동적인 결말 부분 역시 아치볼드 케어리라는 흑인 목사가 1950년대에 한 연설과 상당부분 비슷하다. 다만, 케어리 목사의 연설 역시 기존에 있었던 노래 가사에서 따온 것. 즉 그의 유명한 인권 연설과 논문 다수는 상당 부분을 표절한 셈인데, 다만 표절이라고 결론이 난 상태는 아니고 논란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독창적인 논문이나 저술도 아니고 사람들을 움직이기 위한 연설이라면 최대한 감명깊은 표현을 어디서라도 끌어와서 쓰는 것이 당연하다. 연설인 만큼 주석을 달아서 출처를 밝힐 수도 없고 이것을 표절과 동일시 하는 것은 곤란하다. 물론 이는 킹 목사가 위대한 연설가는 아니었다는 증거가 되지만, 위대한 운동가였다는 평가에 흠이 있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킹 목사도 잘못된 행동을 했지만 그의 공적 모두를 깎아내린다면 사회적으로 비난 받을 수 있다. 마하트마 간디 등도 현재 여러 행적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도 인간이기에 당연히 잘못된 행동들이 지적될 수 있는 것이고 그렇다고 간디와 테레사의 인류애적 헌신과 자기희생적 봉사의 업적 및 공적이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 킹 목사는 흑인들의 인권과 인종차별 철폐라는 인류애적 가치를 위해 헌신한 인물이었으며 모든 흑인들의 영웅이었다. 인도인에게 간디가 지금의 인도를 있게 한 인물인 것처럼 킹 목사 역시 흑인들에게 차별없는 사회를 위해 헌신하다 간 흑인 인권 운동의 아이콘이다. 그의 잘못된 행동은 비판받아야 하겠지만 그가 남긴 업적과 인종차별 철페 및 인종간 평등에 대한 교훈은 결코 폄하될 수 없는 숭고한 것이며 그는 미개한 취급을 받던 흑인들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위해 노력하다 삶을 마감한 위인이었다. 그의 잘못된 행적 몇 가지로 그의 모든 철학과 공로를 깎아내리는 것은 결코 옳지 않은 일이며 모든 인종의 평등에 관한 그의 교훈은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소중히 간직하고 배워야할 중요한 가치다.

오늘날에도 킹은 단지 흑인뿐 아니라 백인, 황인 등 인종과 국적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 위인으로 남아있다. 오늘날 미국인들 사이에서 에이브러햄 링컨과 함께 가장 강력한 절대 까방권을 가진 인물 중 하나이다 미국의 마하트마 간디급 위상이라는 평가가 결코 과장이 아닐 정도.

현재 킹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탄생일(Martin Luther King, Jr. Day)"로써 모든 미국인들에게 기려지고 있다. 마틴 루터 킹 데이는 미국의 연방 공휴일로, 킹의 생일 즈음으로 설정해서 1월 셋째 월요일이다. 이름 그대로 마틴 루터 킹을 기리기 위한 날로 처음 공휴일 지정된 1986년에는 기념일 며칠전 레이건 대통령이 킹 목사의 미망인과 기자회견을 하는 등 전국 각지에서 기념행사가 있었다. 개인의 탄생일이 국가 공휴일이 된 것은 조지 워싱턴에 이어 두 번째인지 대통령도 아닌 일반인의 생일, 그것도 흑인의 탄생일이 휴일이 된다는 것은 전례에 없는 일이었다고 한다.

4. 비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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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에 시어도어 파파스가 저술한 책 <Plagiarism and The Culture War : The Writings of Martin Luther King, Jr, and Other Prominent Americans(표절과 문화전쟁 : 마틴 루터 킹의 집필과 다른 저명한 미국인들)>의 모습. 이 책으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사건이 세상에 드러났다

또한 하버드 대학의 교육심리학과 교수이자 보스턴 의과대학 신경학과 교수인 하워드 가드너는 (마틴 루터) 킹은 소박한 사람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부심이 강했고 거드름을 피우기도 했다. 그리고 거리낌 없이 과거의 유명한 종교 지도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곤 했다. 또한 종교 지도자로서 온당치 않은 위험하고 부질없는 개인적 행동을 하기도 했다. 그의 대학원 논문은 상당 부분이 표절된 것이었다. 또 FBI가 킹의 명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집요한 추적을 하면서 그가 많은 여성들과 관계를 맺었다는 증거가 드러나기도 했다. 킹은 가족은 물론이고 자신의 신조에 충실하지 못한 것에 대해 죄의식을 느꼈다.라고 증언 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마틴 루터 킹은 여성 편력이 심하여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냈던 여러 기부금들을 이용해 매춘여성을 사서 여러 여성들과 한꺼번에 변태적인 성관계를 맺는가 하면, 동료들과 섹스 파티도 벌였었다는 사실이 FBI에 의해 드러났다. 마틴 루터 킹은 FBI 국장 후버에 의해 60년대 초부터 공산주의자라는 혐의를 받아 암살을 당해 죽는 시점까지 FBI의 사찰을 받으며 온갖 협박도 받았었다.

그리고 훗날 이러한 이야기는 문서나 관련 증빙자료들을 통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FBI 관련 인사들의 폭로에 의해 드러났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마틴 루터 킹의 여성 편력과 관련해서는 당시부터 지금까지 완벽하게 폭로가 되면 그 파장이 엄청날 것이라는 예상과 더불어 FBI의 불법사찰에 대한 당시 관계자들의 책임을 물을 것을 우려, 그의 사생활을 기록한 방대한 도청기록은 현재 미국의 국립문서보관소에 보관되고 있으며, 이 1급 비밀문서들은 2027년까지 공개가 금지가 되어 그 이후에 공개될 예정이다.

아무튼 하버드 대학의 교육심리학과 교수이자 보스턴 의과대학 신경학과 교수로 다중지능이론(Multiple Intelligence)의 창시자인 하워드 가드너는 마틴 루터 킹의 이러한 베일에 싸여져 있었던 신화가 낱낱이 파헤쳐지자 그의 저서에서 '논문 표절과 복잡한 여성 편력의 증거가 드러났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물론, 마틴 루터 킹이 행한 여러 학위논문들의 표절을 비롯한 여러 연설문들의 핵심 요지에 대한 표절, 그리고 시민들의 기부금을 빼돌려 매춘여성들과 관계를 갖는 등 상당한 여성 편력과 같은 과오에도 불구하고 그가 세계인들을 위한, 즉 당시 극심했던 흑인과 백인간의 인종차별을 해결하고자 했던 진의, 그리고 평화적인 헌신과 사랑, 그리고 폭력을 부정하며 관용과 용서, 그리고 사랑을 사람들에게 설파하여 미국의 획기적인 인권 법안에 큰 공헌을 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겠다.

비밀해제 FBI 20쪽 짜리 보고서에 따르면 킹 목사가 1968년 4월 4일 암살되기 3주 전에 작성된 것으로, 이번에 비밀 해제된 646건의 FBI 문서 속에 포함돼 있었다.

당시 FBI가 킹 목사를 공산주의자로 몰기 위해 갖가지 술수를 부리고 킹 목사에게 협박편지까지 보낸 전력이 있기에 해당 문건이 킹 목사를 막기 위한 일종의 음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란 증거를 찾을 수 없어서 섹스파티 건을 찾아낸 것이다.#

5. 여담[편집]

  • 마르틴 루터와는 다르다. 넬슨 만델라와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 마이클 조던은 토크쇼 진행자 제이 레노와의 인터뷰 도중 '한번 만나보고 싶은 과거의 인물'로 킹 목사를 꼽았다.

  • 공화당원이었다. FDR 이후 미국 공화당이 보수적으로 변한 걸 생각하면 의외의 사실.

  • 정치적으로는 미국 정부와 충돌이 심했는데, 일단 FBI에서 킹과 미국 공산당 내의 연계활동에 대해 특히 경계했다. 이유는 저명한 뉴욕 변호사이자 킹 목사의 조언자였던 스탠리 리바이슨(Stanley Levison)이 미국 공산당과 연계 되어있다는 것과 킹 목사의 다른 동지였던 헌터 피츠 오델(Hunter Pitts O'Dell) 이 미국 공산당의 반미활동협회(House Un-American Activities Committees)에 충성을 맹세한 것에 대해 연관이 되어 있다는 혐의가 있었다. 하지만 1979년, FBI는 증거불충분으로 킹 목사와 반미활동협회간의 연계가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킹 목사도 공산당과의 협의를 부인했지만 당시 FBI 의장이었던 후버는 루터 킹 목사의 부인을 믿지 않았고 킹 목사도 이에 반발해 후버를 비난했다고 한다. 킹 목사의 사생활까지 테이프와 녹음으로 감시하기까지 했다고.
    거기다 베트남 전쟁 때 반전운동을 벌여 당시 대통령 린든 B. 존슨에게도 위선적인 설교사라고 비난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은 결국 미국의 재정난 크리와 자존심 시망 효과를 가져왔으니...

  • 위에 묘사된 FBI와 초대 국장 후버와의 악연 덕에 당연히 킹 목사의 암살에 FBI가 개입된 것은 아닌지 하는 의혹도 있고 미드에서 이전부터 정부의 일에 개입한 비밀요원을 소개할 때 대부분 킹 목사 암살의 진범임을 강조한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X 파일의 담배 피우는 남자.

  • 트레키들과도 연이 있다. 한창 인종차별성차별 논란이 극에 달한 60년대와 70년대에 흑인 여성 캐릭터인 니오타 우후라의 등장이 잦은 걸 두고 NBC의 높으신 분들이 진 로덴베리에게 우후라 캐릭터를 없애라고 압력을 넣고 실제로 우후라의 비중은 거의 없어지기까지 했었다. 이에 우후라 역의 배우 니셸 니컬스는 낙담하고 사표까지 썼었는데[13], 어디서 소문이 흘렀는지 한 팬이 만나자고 요청을 했었다. 그 팬이 마틴 루터 킹이었다. 스타 트렉이 사람들에게 인종 차별을 극복할 힘을 주고 당신이 분한 캐릭터야 말로 자신이 주장하는 바이니 절대로 역할을 그만두면 안 된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우후라 비중이 늘어나는 건 물론, 스타 트렉은 여러 사회 문제를 은유를 통해 비평하는 단순한 SF쇼 이상의 매체로 자라났다.[14]

  • 창작물 쪽에서는 조지 워싱턴의 항복으로 미국 독립전쟁이 잘 끝나고 탄생한 영국령 북미연방을 그린 해리 터틀도브의 두명의 조지에서 1987년 현재 북미연방의 지도자로 나온다. [15] 1. "정직한" 사업가 리처드 닉슨을 암살하고 2. 조지 워싱턴의 항복을 그린 두 명의 조지라는 그림을 훔친 백인우월 분리주의자 모임인 자유의 아들들은 최종적으로 그를 암살하려는 듯.

  • X-Men의 캐릭터 프로페서 엑스는 마틴 루터 킹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한다. 온건파적인 느낌 때문으로 보이며, 라이벌 매그니토말콤 엑스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과격한 급진주의자였다는 점에서 모티브를 따온 모양이다.

  • 2015년에 그의 흑인 인권 운동을 다룬 영화 <셀마>가 개봉했으며 호평을 받았다. 흑인배우 데이빗 오예로워가 '마틴 루터 킹'을 맡았다. 셀마는 그가 흑인 인권 운동을 활발히 벌였던 앨라배마 주의 도시 이름이다. 예로부터 앨라배마를 비롯한 미국 남부 지방은 인종차별이 극도로 심했던 지역이기도 하다.

  • 드디어 그의 꿈이 이루어졌다 카더라 -- 어디까지나 농담이다(...) 킹 목사의 열망은 역할 바꾸기가 아니라 동등한 인간이 되는 것이었으므로 훌륭한 왜곡형 고인드립 되시겠다. 하지만 약간 진지하게 따져 보면, 흑인과 백인이 진정한 친구가 되어 서로가 웃음을 위해 옛날 지배적 구조를 풍자하는 방식으로 역할극을 찍으며 노는 것 또한 마틴 루터 킹이 진정으로 원하던, 흑인이 백인과 동등해지는 꿈에 매우 근접한 현실이기도 하다. 따라서 마냥 농담이나 마틴 루터 킹의 이상을 왜곡하는 드립이 아니라 정말로 그의 꿈의 실현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기도 한 사진이다. 그래서 요즘은 더 적절한 사람을 쓴다.


[1] 이날은 마틴 루터 킹 데이로 미국의 연방 공휴일이다.[2] 이 연설은 후에 표절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으나 자세히는 모른다. 같은 노래의 몇몇 소절을 인용한 것이 1951년 아치발드 캐리 주니어의 공화당 전당 대회에서 쓰인 스피치와 같다는 점에서 표절 의혹이 생겼으나, 이러한 노래의 몇몇 소절을 인용하는 것은 아프리칸-아메리칸 교회에서는 흔한 일이기에 의혹은 의혹일 뿐 표절이라고 하기엔 증거가 없다.[3] 조안 바에즈 (Joan Baez) - 태양의 전사 (Warriors of the Sun) 가사 中[4] 어렸을 적의 일화로, 킹이 옆집의 백인 쌍둥이 형제와 놀려고 했는데 그 형제의 어머니가 "넌 검둥이니까 검둥이들하고 놀아!"라고 했다. 킹이 울며 집으로 돌아오자 어머니 앨버타 윌리엄스 킹(Alberta Williams King)이 어린 킹을 달래면서 왜 흑인이 차별받는가, 인종차별이 정당한 것인가를 알려줬다고 한다.[5] 당시 미국 어디에나 그랬겠지만, 킹 목사의 고향은 텍사스, 앨라배마, 미시시피와 함께 지금까지도 인종 차별에선 1, 2위를 다투는(?) 조지아 주다.[6] 킹이 대학생 시절에 친구들과 식당에서 식사를 했었다. 그런데 백인 식당 주인이 "흑인 새끼들한텐 음식 안 파니 당장 꺼져!"라며 총을 쏘고(!) 난동을 피워 도망가야했다. 나중에 신고를 받은 경찰이 도착했지만 백인 손님들은 전부 침묵했다. 이에 백인 대학생들이 증언하기로 했지만, KKK 등 백인 우익/과격단체들이 압력을 넣는 바람에 증언을 취소했다고. 그래서 식당 주인은 무죄로 풀려난다. --고구마 1000개 먹은 기분[7] 제임스 얼 레이는 교도소를 3번이나 복역한 범죄자였다. 킹 목사를 살해한 뒤 영국으로 도주했으나 영국 경찰에게 체포되어 미국으로 넘겨져 99년형을 언도받아 복역하다 1998년 교도소에서 70세로 사망한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살해 1년 전 이미 교도소에서 수감 중 탈옥한 죄수였다![8] 많은 수업이 주로 월요일 수업을 기준으로 한 주의 커리큘럼이 돌아가기 때문에 월요일을 쉬면 그 주의 모든 수업이 영향을 받는다[9] 영화 <셀마>(2014)에서도 이 점을 고증에 반영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연설에서 항상 흑인을 Negro 로 지칭하며, 영화상에 잠시 단역으로 등장하는 말콤 X는 당시 오히려 비하적이라고 여겨졌던 Black 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인권 운동에 있어 온건파가 정치적 올바름을 반영한 용어를 쓰고 과격파가 비하적 용어를 취하는 것은 드물지 않은 일이다. 인도에서도 불가촉천민 문제를 두고 이에 소극적이었던 마하트마 간디는 하리잔(신의 아이들)이라는 완곡한 단어를 썼는데 진짜 불가촉천민 출신 정치인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는 이 용어에 반대하며 달리트(불가촉천민이라는 뜻을 그대로 가진 단어)를 쓰는 것을 고집했다. 이는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여겨지는 단어가 오히려 문제의 심각성을 은폐/축소한다고 여겨질 수 있기 때문.[10] 관련 흑역사를 다룬 작품에는 항상 나오는 이야기, SBS에서 더빙 방연한 후버 관련 전기 영화에서는 후버와 부하들의 대사로 킹 목사의 신음소리 언급이 나온다. KBS에서 방영한 '대통령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외화에서 느글느글한 원로 FBI 요원이 자기가 회의를 느꼈을 때가 킹 목사 침실에 도청장치를 설치했을 때라고 할 정도니[11] 참고로 이 시기에 케네디를 비롯한 높으신 분들에 대한 치부들은 대부분 2027년을 한도로 해서 아카이브에 넣었다.[12] 심지어 그 학생이 실수한 부분까지도 그대로 베꼈다[13] 그냥 차별 문제로 나가려던게 아니라 브로드웨이쇼를 의뢰받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실제 배우의 전공도 그쪽[14] 엄밀히 말하자면 처음부터 사회 비판을 둘러 말하려고 SF장르로 간 것이었다. 등장인물을 문제삼자면 우후라 말고도 그 사람들이 거품 물만한 게 수두룩하다. 주조종사인 히카루 술루는 동양인임에도 선장-부선장-기관장 다음의 지휘서열이 4위라서 선장과 부선장이 행성으로 내려가고 기관장이 동력문제로 자리를 비우면 자주 지휘권을 넘겨받는다. 이소룡이 그린호넷에서 조연인 카이토로 출연한 것과 거의 비슷한 시기였다는 걸 생각하자.[15] 영국이 미국보다 흑인 해방이 먼저 일어났기 때문에 이쪽 세계에서는 영국이 의외로 흑인에게 관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