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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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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필리핀의 전직 대통령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2. 1번 인물의 영부인 이멜다 마르코스3. 사파티스타의 부사령관 마르코스
3.1. 개요3.2. 활동3.3. 사상3.4. 비판

1. 필리핀의 전직 대통령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편집]

2. 1번 인물의 영부인 이멜다 마르코스[편집]

이멜다 마르코스 항목 참고.

3. 사파티스타의 부사령관 마르코스[편집]

3.1. 개요[편집]

부사령관 마르코스(Subcomandante Marcos). 사파티스타 민족 해방군(EZLN)의 주 대변인. 멕시코 원주민 차별금지에 앞장서는 운동가이자, 아나키스트.

3.2. 활동[편집]

파일:external/img.hani.co.kr/021074000120031015480_43_2.jpg

항상 검은 복면을 쓰고 있으며[1], 그렇기에 누구나 '부사령관 마르코스'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후 '검은 복면'과 '별 세개가 박힌 낡은 군모,' '파이프 담배'가 그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신비의 인물처럼 서술되곤 하지만 사실 얼굴과 신상이 일찍 밝혀졌다. 본명 Rafael Sebastián Guillén Vicente으로 1957년 생이며 사회학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다 게릴라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1983년에 원주민들을 근대화시키고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맞게 변화시키고자 치아파스에 갔지만 원주민들이 지난 500년 동안 싸우고 살아온 역사를 듣고 자기가 그들로부터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1994년 1월 1일 사파티스타의 무장투쟁을 주도하며, 주 대변인으로 활동한다. 하지만 그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이 권력을 장악하고 혁명군이 되고자 한다면 그것은 우리(사파티스타)에게는 실패이다"라고 말하며, 무력 보다는 언어와 인터넷의 힘으로 사파티스타의 투쟁을 주도하였다.[2]

그는 이에 대하여 "나의 말이 나의 무기"[3]라고 말하였으며, 사파티스타의 생각과 활동을 시나 편지, 에세이 등의 형식으로 인터넷 등에 올렸다. 그의 글은 전세계적으로 많은 진보주의자들과 아나키스트들의 지지와 연대를 이끌어냈으며, 멕시코 정부가 사파티스타를 함부로 무력진압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한편 2001년에는 원주민 권익보호 법률의 입법을 촉구하며, 멕시코 시티까지 평화행진을 주도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말 그대로 '펜이 칼보다 강하다'라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이 시대의 체 게바라,' '20세기 마지막 낭만적인 혁명가'라고 불리며 주목받았다. 또한 신자유주의세계화에 반대하는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그는 항상 원주민들을 제치고 나서지 않으며 항상 원주민들이 전면에 나서도록 했다. "마르코스는 사령관이 아니고 부사령관이다. 원주민들이 사령관이다."라고 말하며, '부사령관'을 자처했다.[4] 그렇기에 2001년 멕시코 국회에서의 연설도 직접 나서지 않고, 원주민 여성 사령관[5]인 에스테르가 연설을 했다. 관련 기사

2006년에는 '부사령관'이라는 직함을 버리고, '0 대표(Delegado Cero)'라는 이름의 한 시민에 불과하다고 언급했다. 관련기사 '모든 것은 무(0)에서 시작된다.'라는 의미로, 무장투쟁보다는 시민들과 연계하여 보다 본격적으로 정치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한다. 이와 함께, 오토바이로 전국 투어를 벌였다.

이후부터 현재까지 공식적인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3.3. 사상[편집]

우리는 무력으로 우리 해결책을 강제하기를 원하지 않으며, 민주적인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우리는 이전의 게릴라 방식의 고전적인 무장투쟁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군사적인 대립이 아니라 정치이다. 우리는 전쟁을 일으켜 죽거나 죽이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듣기 위해 싸운다.

인류 역사에서 좌파의 사유는 권력에 맞설 때는 가장 풍요로운 것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권력을 장악할 때는 가장 빈곤한 것 가운데 하나였다.

민중이 질서를 만들고, 정부는 이를 따른다.

그의 사상은 아나키즘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일체의 권력을 반대하고, 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그렇기에 멕시코 대통령에게 "여러분이 정의하고 보호하는 세계에 우리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원하는 세상에는 대통령 당신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차이입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에 따라 현재 치아파스 주에서 사파티스타가 자치를 실시하는 5개 지역에서는 일체의 정부 지원을 거부하고, 공동체 생활을 실시하고 있다.

3.4. 비판[편집]

한편으로는 그의 신비주의 전략으로 인하여 지나치게 그가 포장되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게릴라 판타지'라고 언급하면서, 오히려 사파티스타 운동 이후 치아파스 원주민들의 상태가 악화되었거나 그 상태가 변함없다고 비판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비판도 존재하지만, 그가 멕시코 원주민 문제를 국제 사회에 공론화시켰으며, 이들의 자치권을 획득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1] 복면을 언제 벗을 거라는 질문에 그는 "멕시코가 복면을 벗는 날."이라고 답하였다[2] 물론 처음 12일 간은 무력투쟁을 전개하긴 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정부군의 공격에 대한 방어 이외에는 무력을 사용하지 않았다.[3] 그의 말과 인터뷰를 엮은 동명의 책이 출간된 바 있다. 우리나라에는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2002)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4] 이 뜻에 동조하는 영주권 등 체류비자 소지 외국인들과 비원주민들은 부사령관이 되는 모양이다.[5] 이 사령관은 지휘관의 의미보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큰 편이다. 앞서 언급한 바 처럼, '원주민들'이면 모두 사령관이라는 것. 그렇기에 이름이 알려진 사파티스타 '사령관'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