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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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theran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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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특징
2.1. 주요 교리와 그 흐름2.2. 가톨릭/정교회/성공회와의 유사점과 차이점2.3. 성상 등 가톨릭적 구습에 대한 관점
3. 세계의 루터교회
3.1. 유럽의 루터교회
3.1.1. 옛 동구권의 루터교회3.1.2. 레스타디우스파(Laestadianism)
3.2. 북미의 루터교회
3.2.1. 미국의 루터교회3.2.2. 캐나다의 루터교회
3.3. 중남미의 루터교회3.4. 아프리카의 루터교회3.5. 아시아의 루터교회
3.5.1. 중국의 루터교회3.5.2. 일본의 루터교회
3.6. 대한민국의 루터교회
3.6.1. 산하 신학교
4. 창작물에서의 루터교회

1. 개요[편집]

루터교회는 마르틴 루터종교개혁을 시발로 하여 처음으로 역사에 모습을 드러낸 개신교단[1]이다. 그러나 이후 생겨난 장로교, 침례교 등의 교단들과는 상당히 다르고, 성공회처럼 가톨릭교회와 전례, 교리, 교회의 구조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2] 일반적으로 한국에서는 루터교회 또는 루터회로 칭하고 있으나, 유럽에서는 나라에 따라서 부르는 명칭이 다르다. 독일핀란드에서는 한국처럼 루터교회라고 부르지만 핀란드를 제외한 북유럽에서는 보통 스웨덴 국교회(Church of Sweden)처럼 그냥 국교회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3] 아이슬란드의 경우 '국교회(Þjóðkirkjan)'와 '복음주의 루터회(Hin evangeliska lúterska kirkja)'란 명칭을 혼용하고 있다.

본래는 루터란(Lutheran)이라고 불렸다. 즉 '루터빠' 정도의 뜻이었고, 당연히 이는 가톨릭 측에서 부르던 멸칭이다. "너네는 루터의 말을 따르니까 기독교도가 아니라 루터빠다!" 이런 느낌. 게다가 루터는 본래 자신의 주장은 어디까지나 '기독교'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가르침은 본래의 기독교로 돌아가자는 것이고 자신이 새로운 생각을 해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이름을 종파에 붙이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에게 매우 불경한 일이라 여겨 반대하였다.

하지만 루터교회 신도들은 계속 루터빠라는 욕을 먹자, 급기야 열받은 나머지 "그래, 우리 루터빠다! 어쩔래?"라는 식으로 나오게 된다. 그래서 루터교회(Lutheran Church)가 그대로 교파의 이름으로 완전히 굳어지고 말았다.

참고로 위의 문장은 마르틴 루터의 문장으로, 루터교회들은 위 문장을 간략화하거나 약간 바꾸어서 교회 로고로 사용하고 있다. 이외에도 간혹 백조상징으로 쓰는 경우도 존재하는데 이는 얀 후스가 콘스탄츠 공의회에 붙잡혀 화형당하기 직전 남긴 다음 유언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제 니놈들은 비쩍 마른 거위[4] 한 마리를 구워죽이겠지만 100년 뒤에 나타날 백조는 절대로 구워죽이지 못할 것이다"

《자유의지 논쟁》 55~56쪽에서는 흠좀무한 이야기가 나온다. 얀 후스에게 화형을 선고한 주교는 위의 말을 후스에게서 들었다. 시간이 흘러 그 주교는 죽었고, 아우구스티누스가 새겨진 스테인드 글라스가 있는 에르푸르트의 아우구스티노회 성당 지하에 묻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성당의 중앙홀을 보도록 새겨졌고, 그 중앙홀 바로 밑에 묻힌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홀에서 마르틴 루터가 사제 서품을 받았다!!

2. 특징[편집]

루터교회는 주로 신성 로마 제국의 형해화로 사실상 왕과 같은 권력을 지닌 독일의 대영주들과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북유럽의 군주들을 중심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북유럽의 군주들이 이탈리아에 있는 교황의 간섭에서 벗어나, 세속 군주의 왕력을 강화하려는 정치적 움직임의 영향도 크다. 이러한 정치적 배경 속에서 루터교는 국교 지위를 얻게 된 것이다. 그 영향으로 현재까지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그리고 독일 북부와 동부 전역에서 루터교회는 국교회(國敎會, state church)로서, 인구의 왕과 왕족들, 그리고 인구의 70~90%가 국교회 루터교인들이다.

한편, 네덜란드[5], 독일, 프랑스, 체코[6] 등지에는 개혁주의(칼뱅주의) 교회들과 한 교단으로 통합되어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러한 경우를 United Church 라고 한다.

2.1. 주요 교리와 그 흐름[편집]

초기 개혁(교회의 본질 회복)에 대한 교리의 기초는 마르틴 루터와 필리프 멜랑히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루터는 멜랑히톤에게 아우구스티누스의 칭의론과 개혁의 방향을 가르치고, 멜랑히톤은 루터에게 코이네 그리스어를 가르쳐 주었다.

마르틴 루터는 강력한 예정설을 주장하며, 아담을 통해 유전된 원죄로 자유의지가 완전히 타락하여 의 노예가 되었다는 노예의지론으로 설명한다 [7] . 따라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총이 구원의 핵심이다. 또한 하나님은 믿는 자들을 고난을 통해 신앙이 성장하게 한다는 십자가 신학을 제시하며, 당시 상선벌악에 치중하여 주님의 마음에 들수록 모든 것이 좋아진다는 스콜라 철학에 맞섰다. 이외에 성만찬세례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을 중시하고, 이신칭의 교리를 주장했다. 다만 츠빙글리와의 일치에 실패했는데 그 이유가 성찬론을 공재설[8]로 주장했기 때문이다. 상징설을 주장하던 스위스의 외콜람파디우스, 츠빙글리, 루터와 스위스 개혁자들을 만나도록 주선한 스트라스부르의 마틴 부써와 합의하지 못했다. 이는 오시안더 등에게 이어져서 루터파 내부에서 스위스, 스트라스부르 등 개혁교회들과의 일치 문제가 다루어 질 때, 일치신조의 필수 조항에 공재설을 넣었다. 동의한 개혁자들은 오늘날 루터회가 되고 동의하지 않은[9] 부류는 대부분 개혁교회와 일치를 이룬다.

멜랑히톤은 루터에 비해 온건한 어조로 《신학총론》[10] 을 저술하며, 개혁자들의 연합을 추구했다. 그는 가톨릭에서 루터에게 동조한 다양한 성직자들에게서 불거진 전례 문제에서 융통성을 발휘하면서도 장 칼뱅과 지속적으로 교류했다.[11] 칼뱅의 이중예정설에는 전적으로는 동의하지 않았지만,[12] 이외에 교리에서는 일치 했다. 그 때 공재설을 강력히 밀던 강경파 루터주의자인 오시안더 등 현재 루터교의 뿌리가 되는 개혁가들과 마찰을 빚었다. 멜랑히톤 스스로도 "스위스인들이 와서말한다. 멜랑히톤은 칼뱅처럼 생각하고 칼뱅은 멜랑히톤처럼 생각한다."고 제자들에게 말했을 정도. 멜랑히톤의 제자인 우르시누스는 칼뱅주의자인 올레비아누스, 에라스투스 등과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서를 만드는 등, 대개 멜랑히톤의 제자들은 스위스의 츠빙글리파, 칼뱅파와 함께 개혁교회를 이룬다.

2.2. 가톨릭/정교회/성공회와의 유사점과 차이점[편집]

가장 오래된 개신교의 분파이자 장자 교단이라 할 수 있으며, 그래서 전체적으로 봤을 때 예배의 전례적 특성이나 교회 제도 등은 가톨릭 쪽에 조금 가까운 편이긴 하다. 물론 성공회가 좀 더 가까울 수 있겠지만, 루터교회의 예배를 처음 본 사람은 좀 어리둥절할 수도 있다. 또한 가톨릭 신부들과 같이 목사[13][14]들이 로만 칼라를 착용하며, 주교의 모자인 주케토도 쓰는 등 가톨릭과 비슷한 제도가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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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가톨릭적 양식은 북유럽의 루터회에서 더욱 크게 드러난다. 스칸디나비아 루터교회의 경우 모두 국가 정책으로써 종교개혁을 받아들이고 그 교리를 교회에 녹여 교회를 교황청 휘하에서 탈피시킨 뒤 교회를 국가가 장악하는 전형적인 국교회적 특성에서 출발했다. 이런 점은 사실 개교회적 측면이 강조된 원래의 루터교회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오히려 성공회와 같은 모습을 가지게 된 것이다. 즉, 교리적인 내용만 루터교회의 것을 받아들인 것이며 의식적, 제도적 측면에서는 훨씬 국교회 조직 유지측면에서 유리한 가톨릭적 요소들과 주교제가 유지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였다.

지금도 각 교회는 국교로써의 위상을 가지며 가톨릭교회 시절부터 이어져오던 교구 체계와 주교직들을 그대로 전승받는다. 다만 북유럽에서도 각 나라간에 미묘한 차이는 있는데, 스웨덴이 가장 가톨릭적인 요소가 많은 편이며 덴마크, 노르웨이,핀란드는 평신도 경건주의 영향으로 좀 약한 편이다. 또한 덴마크의 경우 특이하게도 주름진 칼라를 성직자 복장으로 사용한다. 덴마크와 인접한 북독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이나 함부르크 일부의 성직자들도 (드물지만) 주름진 칼라를 착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특성 때문인지 성모 마리아 항목에서도 볼 수 있듯 성모 공경도 인정한다. 대한민국의 루터교회도 8월 15일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기념일로 해놓았다.[15][16] 성공회영국에서의 '세속 군주의 교회 지배'를 목적으로 국가 주도하에 가톨릭 구조에 개신교적 교리를 도입하여 만들어졌다는 정치적 위치는 북유럽의 루터교와 비슷하다. 사실상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성공회나 다름이 없다는 이야기이며 성공회와도 이런 공통점을 서로 감안해 '포르보 공동체'를 결성해 스칸디나비아의 국교회와 성공회 간의 성사 교류를 결정함으로써 사실상 하나의 공동체로 합쳐진 것이나 다름없는 관계가 되었다.

허나 엄연히 가톨릭 교리에 반발하여 생겨난 교파인 만큼, 루터교회만의 특징도 분명하게 존재한다. 마르틴 루터보편교회론을 부정하고 지역교회론을 주장했기 때문에 관구제를 채택한 성공회와 달리 개교회의 개성과 자치를 존중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또한 '준성사'란 이름으로 7성사를 사실상 모두 인정하는 성공회와 달리 루터교는 다른 개신교들처럼 2가지 성례만을 인정한다. 성인이나 순교자에 대한 공경도 어디까지나 축일로 기념하여 그들의 믿음과 순교정신을 기억하고 본받자는 정도이지, 가톨릭처럼 '우리와 함께 하느님께 기도해주는 이들'로 보는 게 아니다. 애초에 루터 본인부터마리아를 포함한 성인들에게 통공기도를 드리는 것과 성유물 개념에 대해 우상숭배라며 매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었다가 그가 죽고 나서 멜란히톤이 너무 과격하다고 생각했는지 가톨릭 전통을 조금 손봐서 재도입한 것에 가깝다.[17] 결정적으로 루터교 국가들은 마르틴 루터부터가 수도원 무용론을 주장했기 때문에 남녀 수도원을 각 국가별로 모두 개혁 과정에서 없애버려 오랫동안 존재하지 않았고[18] 가톨릭, 정교회 국가에서 지금도 존재하는 길거리 십자고상(Wayside cross)이나 죽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거나 위령비를 세우는 행위, 세례명을 주는 제도 등을 모두 개혁 과정에서 없애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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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언급한 가톨릭전례복도 마찬가지로 20세기 전반까지는 일반적인 복장이 아니었다. 원래는 먼나라 이웃나라에서 묘사한 것처럼 까만 목사가운에 하얀색 'ㅅ'자형 칼라를 두른 복장이 일반적이였고[19] 1960년대까지는 국교회 성향이 강한 북유럽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1970년대 이후 교회 일치 운동과 함께 고교회 루터파 운동이 활성화되며 기존의 개신교적 정체성보다는 전례적인 분위기를 중시하게 되면서 가톨릭과 비슷한 복장 체계가 도입된 것. 페로 제도는 아예 사복 정장 차림으로 예배를 인도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교회 제도 측면에서는 구교회(가톨릭, 정교회)나 성공회와는 차이가 꽤 크다. 유형적 보편교회론을 강조하고 반드시 어딜 가나 주교제를 실시하는 위 교회들과는 달리 루터교는 국가 혹은 각 교단들마다 교회제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된 것처럼 북유럽발트해 연안 국가들의 루터교회는 역사적인 이유로 주교제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고, 미국이나 독일 등지의 루터교단들 중에서도 주교제를 실시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20] 그러나 구교회나 성공회의 주교제와는 매우 거리가 먼 장로제, 회중제와 비슷한 형태의 교단 구조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실제로 하단에 언급된 미국의 WELS(위스콘신 시노드)의 경우 회중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LCMC(Lutheran Congregations in Mission for Christ)[21] ,아시아에서 가장 큰 루터교단인 인도네시아 바탁 루터교단 등의 교단들도 회중제를 실시하고 있다.

또, 일부 교단들은 주교제를 실시하더라도 회중제적 요소를 동시에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어서[22] 다른 주교제 교회보다 개교회의 권한이 강한 편이다. 반대로 회중제를 실시하더라도 주교제적 요소들을 받아들인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 루터교의 모체인 미국의 LCMS(미주리 시노드)[23]

예배 형식도 가톨릭이나 성공회 고교회파가 연상되는 장엄한 형태[24][25]에서 다른 개신교와 별 차이 없는 형태, 그 중간적인 형태 등 다양하다. 전례를 최대한 준수하더라도 성호를 아예 안 긋는 경우가 있을 정도. 다만 상술했듯이 대다수의 루터교회의 예배 양식은 루터교 내에서 상대적으로 개방적이라고 하더라도 침례교 등 다른 개신교단 등과 비교하면 여전히 엄숙하고 전례적인 편이며, 침례교오순절교회 등과 비슷한 양식의 예배 드리는 경우는 확실히 드물다. (특히 미국 등지의) 루터교회에서는 개방적인 분위기의 예배와 전례적인 예배를 병행하는 경우도 꽤 많다.[26]

다만, 성공회에서도 교의적 고교회파와 전례적 고교회파가 어느 정도 구분되고 전례적 저교회파와 교의적 저교회파가 어느 정도 구분되듯이 루터교 내에서도 양식적으로 엄숙하고 예전적이더라도 신학,신앙관에서는 가톨릭과 차이가 뚜렷하고 명확하게 선을 긋는 경우도 있으며, 후술할 미국의 LCMS내부의 고교회파나 보수적인 군소 교단 등지[27]에서도 전례적,양식적으로는 상당히 장엄하나, 신학적으로는 상당히 보수적이고, 가톨릭과는 거리가 먼 경우도 있다. 양식적으로 고교회적이라고 반드시 신앙관 측면에서 보편 교회에 가깝거나 에큐메니즘에 유화적인 건 아니다. 오히려 양식적으로 매우 장엄하더라고 신학적으로도 상당히 보수적이고, 본래 루터교적인 입장을 강경하게 대변하며, 에큐메니즘에도 부정적인 경우도 존재한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루터교에서는 저교회/고교회의 구분이 성공회보다 많이 흐릿한 편이다

덧붙여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루터회 수위 주교들은 다음과 같다. 북유럽 국교회라는 이름이어야 할 것 같다 [28]

  • 웁살라의 대주교(스웨덴 교회)

  • 니다로스[29]의 의장주교(노르웨이 교회)

  • 코펜하겐의 주교(덴마크 교회)

  • 투르쿠의 대주교(핀란드 복음주의 루터회)

  • 아이슬란드(레이캬비크)의 주교(아이슬란드 교회)

  • 페로 제도의 주교 (페로 제도 교회)

2.3. 성상 등 가톨릭적 구습에 대한 관점[편집]

유일하고 거룩한 교회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복음을 순수하게 가르치고 성례전을 올바로 집행하는 성도의 회중이 교회이다. 교회의 참된 통일을 위해서는 복음의 가르침과 성례전의 집행에 관하여 일치하는 것으로 족하다. 인간의 전통, 곧 인간에 의하여 제정된 의식과 예식이 어디서나 같아야 할 필요는 없다.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서 제7조 - 교회에 관하여

사실 마르틴 루터도 우상숭배가 될 수 있다며 성상을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칼슈타트[30]나 츠비카우파 등 과격파들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되도록이면 구습에 물든 연약한 신자들을 배려하기 위해 당분간은 성상을 존치시키되, 절차를 밟아서 하나 둘 씩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바뀌었다. 또한 루터는 '복음적 자유'(Die Evangelische Freiheit)라는 개념을 강조했는데, 이는 갑작스럽게 기존의 분위기를 바꾸고 이를 강요하는 것은 결국 가톨릭교황적 권위주의와 다를 게 없다는 논리이다.[31]

그리고 마르틴 루터 항목의 후반생애 문단에서 알 수 있듯 성상을 제한적으로(?) 용인한 데는 정치적 타협이 필요했던 이유도 컸다. 이러한 역사적 연유로 인해 루터교회는 가톨릭, 정교회처럼 성화상이 예배 의식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교리적으로 강제하지 않으며, 제대 방향을 제외하면 성상에 직접 기도하는 것도 인정하지 않는다.[32] 따라서 각 국가별, 지역별, 개교회별로 교회 내부의 인테리어는 천차만별이라 웁살라 대성당이나 프라우엔키르헤처럼 장식이 으리으리한 경우에서부터 핀란드 삼십자 교회[33]처럼 성상, 성화, 스테인드글라스조차 없이 그냥 아무것도 없는 십자가에다 성만찬 도구, 촛불만을 두는 지극히 단순한 형태까지 다양한 모양으로 꾸밀 수 있다. 더 극단적으로는 이런 경우도 있다. 한국의 루터교회도 교회별로 십자고상이 있는 경우도 있고 없는 경우도 있다. 한마디로 예전적인 교회 치고는 매우 유연하다.[34]

네덜란드와 체코 등 일부 국가들은 'United church'라고 해서 루터교와 칼뱅교가 통합되어 있는 경우가 존재하는데, 이런 교단에 속한 교회들은 건물 인테리어는 칼뱅교쪽과 비슷한데 예배를 루터교식으로 드리는 경우가 간간히 존재한다.

교회 뿐 아니라 가정집이나 회사 등에서도 가톨릭이나 성공회는 십자고상이나 성모상[35]을 들이는 경우가 많은 반면, 루터교는 일반적인 개신교처럼 십자가 틀만 들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가톨릭, 정교회 등과 비교했을 때 미묘한 차이는 의외로 많은데 성만찬에 대한 해석 차이로 인해 제단에 감실이 없는 경우가 많다. 또한 루터 본인이 수도사 겸 대학 강사 시절부터 수호성인,[36] 성유물, 성수, 성염(聖鹽) 등에 대해 미신적이고 비성경적인 풍습이라고 거세게 비판했으므로 당연히 이런 풍습들은 폐지되었다.

3. 세계의 루터교회[편집]

발상지인 독일과 루터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국교로 삼은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북유럽 지역에서 교세가 강성하다. 독일계 이민자를 중심으로 전파되어 미국(주로 북부나 중서부)에도 적지 않은 신자가 있다 영국웨일스스코틀랜드에 전래되어 웨일스에서 꽤 세가 큰 편이다.

다만 본진이던 유럽북미에서는 성공회처럼 대체로 교세가 위축되어 가는 형편이다. 루터교세계연맹은 2014년 발표한 ‘2013년도 루터교회 신자 통계’에서 전 세계 루터교 신자 수는 7,226만 8,329명으로 집계됐다. 단일교단으로는 스웨덴 교회가 650만여 명으로 가장 신자 수가 많았다. 하지만 전체 교인 수로 합치면 1,200만여명인 12개 교단연합 독일 연합 복음주의 루터교회가 최대였다. 1990년 이후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유럽의 탈기독교 현상으로 조만간 그 지위를 잃게 될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헌금이란 개념 대신 아예 교회세를 강요한 유럽 루터교회들의 책임도 큰데, 현대 유럽인들이 더이상 교회를 다니려 하지 않는 데는 바로 세금 부담 탓도 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유럽 및 아메리카 지역에서 신자 수가 줄고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성장세를 보이는 판국이다. 그렇다고 유럽에서 감소세를 손 놓고 있지는 않으며 어느 정도 신앙을 지켜내려는 신자들도 엄연히 존재한다. 한편으로 국교회가 '자유주의화'되는 것에 반발한 성직자들이 대거 탈퇴한 뒤 보수파 독립 교단을 설립하거나 아예 가톨릭으로 넘어가기도 했다.

3.1. 유럽의 루터교회[편집]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루터교회는 독일 루터교회에서 유럽 루터교회로 발전하였다. 1525년 이후 프로이센, 1527년 이후 북구 제국 스웨덴과 핀란드, 1537년 이후 덴마크와 노르웨이, 1539년 이후 아이슬란드와 그리고 발트 해의 여러 국가들 등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였으며 그 외 일부 동부 유럽 지역으로 전해졌다.

독일에서는 ‘일치서’ 이후로부터 17세기 말까지는 루터교 정통주의의 시대이다. 이후 정통주의는 경건주의로 대체되었고, 경건주의 다음으로는 계몽주의가 뒤따랐다. 19세기 이후로 루터주의는 여러 다양한 신학 조류에 따라 조금씩 변화되곤 했다. 북유럽의 루터교회는 고교회파의 전통을 따르며 모든 면에서 사실 상 성공회와 거의 흡사하다. 그래서 북유럽의 루터교는 대체로 주교제 교회로서 유지되며 주교, 사제, 부제의 삼성직을 유지한다. 성직자에 대해 한국에서 목사라고 부르는 것과는 달리 신부라는 호칭을 쓴다.

3.1.1. 옛 동구권의 루터교회[편집]

마르틴 루터의 주 활동지가 구 동독지역이고, 프로이센의 건국과도 관련이 있는 만큼 옛 독일 영토였던 폴란드 서부지역과 남부 실롱스크, 치에쉰에도 극소수의 신자들이 존재하는데, 역사적으로 독일과 스웨덴이라는 두 신교국가와 대립하던 폴란드였기 때문에 루터교이고 칼뱅교이고 개신교도들은 숲 속에서 몰래 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사실 아일랜드에서처럼 폴란드에서도 민족적, 역사적 이유 때문에 개신교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긴 하지만 루터교도들 중에는 오히려 나치에 대항해서 폴란드 편을 들다가 수용소에서 순교한 목사도 있었다. 체코의 구 주데텐란트 지역에 있는 교회들도 2차대전 이후 체코 개신교단[37]이 그대로 접수해서 현재까지도 잘 남아있다(예시) 슬로바키아의 경우 산악지대라는 특성상 노르웨이처럼 목조 루터교회를 자주 볼 수 있다. 소수 교단으로서 구 동구권 국가의 루터교회는 복음주의 아우크스부르크 고백교회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한편 옛 슐레지엔 지역에는 SCEAV라는 독립된 지역 교단이 존재하며 표준 폴란드어체코어가 아닌 실롱스크 방언으로 예배가 진행된다.

라트비아 루터교회는 유럽의 전반적인 트렌드와 역행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소련 시절인 1975년부터 민주화 직후인 1992년까지는 여성 목사 안수가 허용되어 있었지만 1993년 리가 대주교[38]가 보수성향으로 바뀌면서 이를 모조리 취소 및 금지했다. 또한 동성애 및 동성결혼에 대해서도 매우 부정적이라 2005년에 커밍아웃한 목사를 면직처리한 적도 있었다.[39]

에스토니아는 라트비아와 반대로 루터교인이 얼마 없는 상황이며 교단 성향은 중도-진보에 가깝다.

3.1.2. 레스타디우스파(Laestadianism)[편집]

루터교에서 파생되었지만 외형적인 예배 형식은 오히려 장로교침례교와 비슷하며[40] 극도로 보수적인[41] 특징도 가지고 있다. 오늘날 북유럽에서 교회에 자주 출석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부류이기도 한다.

자세한 사항은 항목 참조.

3.2. 북미의 루터교회[편집]

3.2.1. 미국의 루터교회[편집]

세계 루터교를 지탱하는 기둥이며 대략 미주리 시노드(Missouri Synod)와 미국 복음주의 루터 교회(ELCA)로 구분되어 투톱 양대 산맥 체제이다. 다만 신학적 노선 차이등으로 위 두 교단에서 갈라져 나오거나 통합되지 않은 수많은 군소교단들이 공존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모든 교단을 통틀어 총 780만명 정도의 신자들이 있으며, 침례회, 오순절교회에 이어서 미국 개신교 교파 중 3위의 규모이다.

다만 미국 내에서의 위상은 다소 애매한게, 일단 규모로는각각 3,800만명 정도의 신자 수를 가지고 있는 침례교, 1,000만명 가량의 규모인 오순절교회가 압도적이다. 사람들의 인식 역시 개신교하면 침례교나 오순절교 등을 먼저 떠올릴 정도로 대표성을 가진다. 위 두 교파와는 격차가 상당하다. 더군다나 미국이라는 나라가 건국부터 칼뱅주의의 역사적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사회 주류층이 WASP로 대표되는 영국계 미국인들이었기 때문에, 영미권에서 유래된 개신교 교파들의 문화적 영향이나 사회적 대표성이 좀 더 높다.[42]

예를 들어 장로회, 성공회, 감리회 등은 루터교보다 규모면에서는 작지만, 역대 대통령들 중 위 3교파의 신자였던 사람들은 많으나 루터교 신자가 대통령이 된 적은 없었다.[43] 한마디로 말해서 규모면에서는 침례교등에 밀리고, 대표성이나 문화적 영향등으로는 아무래도 영미권 개신교 교파인 장로회, 감리회 등에 밀리는 등 살짝 포지션이 애매하다. 하지만 정계 진출이 뜸하다 뿐이지, 가톨릭 수준으로 차별받은 건 아니었고 이들도 엄연히 WASP의 일원으로 편입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주어졌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이지만, 신자들 중에 독일, 스웨덴, 핀란드 등 루터교가 주류인 국가들 혈통인 경우가 많으며, 이들 이민자들의 후손이 많이 분포하는 노스다코타, 사우스다코타, 미네소타, 위스콘신, 미시건 등 중서부, 북부에 신자수가 많은 편이다.

가장 규모가 큰 교단은 '주류 교파'(Mainline)에 속하는 ELCA(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로), 대략 360만명 정도의 신자가 등록되어 있다. 역사 자체는 그다지 길지 않은 편으로, 1988년 3개의 다른 루터교 교단이 통합되면서 생겨단 교단이다.[44] 후술할 교단들에 비하면 굉장히 진보적, 나쁘게 말하면 '자유주의'적인 성향을 띄는 교단으로, 여성의 목사안수 등에도 굉장히 적극적이며, 2009년부터는 목사가 동성 커플에 대한 결혼 주례를 서는 것도 허용되었으며, 동년도부터 '성생활을 하고 있는'[45] 동성애자들에게도 목사 안수를 줄 정도로 굉장히 진보적이다. 더불어 트랜스젠더 목사도 있는 등 상당히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편.

다만, 이런 과정에서 점점 교단 자체가 '자유주의'화 되어 간다는 비판과 반발이 교단 내외부에서 빗발쳤고, 실제로 교단 내부의 상당수의 보수적인 신자들과 목사들이 교단을 탈퇴하고 새로운 교단을 세우는 등 분열 위기를 겪기도 했다.[46] 특히, 성소수자 포용 자체는 받아들여도, 목사 안수는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아서, 2010년 NALC(북아메리카 루터교회)로 떨어져 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성향 차이가 있는 3개의 서로 다른 교단이 합병되어 생긴 교단이니 만큼 진보적 성향 일색인 것은 아니고, 다양한 스펙트럼의 목사와 신자들이 공존한다. 그 중 보수적인 목사들은 교단 내부에서 하위 그룹을 조직하고 있기도 하며,[47] 이들 중 상당수는 점점 더 진보화되어 가는 교단의 성향에 반발하여 분리되기도 했다. 이렇듯 내부에서도 몆 차례 분열이 있기도 했고, 백인계 주류 교파에 속하는 다른 교단들이 그렇듯이 신자 수는 점점 감소하는 추세이다.[48]

한편, 교회 일치 운동에도 굉장히 적극적인 교단으로, 가톨릭과의 '의화 교리 합의(joint declaration on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이쪽이다.[49] 더불어 장로회(PCUSA), 성공회 등과도 공동 예배를 드리는 등 다른 개신교 교단들과도 교류가 많은 편. 이 때문인지, 교단 구조도 주교제이다[50]. 그러나 목회자의 호칭은 '사제'나 '신부'가 아니라 다른 개신교 교단과 마찬가지로 목사라고 부른다. 다만 예배 양식으로는 오히려 상당히 개방적이고 현대적인 예배도 병행하는 경우가 좀 있는 등, 예전적 예배만 드리지는 않는다.

반면, 진보적인 ELCA와는 대조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의 대표적인 교단으로 LCMS(루터교회-미주리 총회)가 있는데, 1840년대에 독일계 미국인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미주리주에서 조직되어, 역사가 상당히 긴 편이다. 약 200만 명 정도의 신자들이 등록되어 ELCA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ELCA와 대조적으로 꽤나 보수적인 성향이며, 이 때문에 여성 목사 안수나 동성결혼 주례 등도 허용하지 않는다. 다만, 보수적인 교단치고는 온건한 편이라 ELCA와의 대화나 협력도 좀 있는 편이고, 가톨릭이나 다른 개신교 교파와도 교류가 좀 있는 편이다. 특기할 만한 사안으로는 한국 루터교의 모체라는 점. 이 때문에 한국 루터교와 교류가 많은 쪽은 이쪽이다.[51] ELCA에 비해 교회 일치 운동에는 부정적인 편으로, 가톨릭과의 의화 교리 합의에 동의하지 않은 대표적인 교단이다. 또한, 독일 루터교회에서 분파된 배경 때문인지 주교제를 실시하는 ELCA와는 대조적으로 회중제를 채택하고 있다.[52] 한편, 원래 LCMS 소속이던 일부 진보적 성향의 목사들은 1988년 ELCA가 출범할때 교단을 탈퇴하고 그 쪽으로 가기도 했다.

한편, 두 대형 교단들을 제외하고도 꽤 많은 수의 군소 교단들이 존재하는데, 그중에 가장 큰 교단이 WELS(위스콘신 복음주의 루터회 총회)라는 교단으로, LCMS보다도 더 보수적인 성향을 띄며, 역사도 1850년대에 위스콘신주에 정착한 독일계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상당히 오래된 편.대략 40만명의 신자들이 있으며 두 대형 교단 다음으로 3번째로 큰 교단이다, LCMS와 유사하게 독일 루터교에서 파생된 교단이라 회중제를 실시하고 있다. 여담으로, 원래 LCMS와 협력관계에 있었으나, LCMS가 ELCA의 모체 중 하나인 ALC(American Lutheran Church)와의 협력관계를 강화하자, 이에 반발하여 1960년대 말에 사이가 멀어졌다.

그 외에 2001년 ELCA의 보수파 목사들이 교단을 탈퇴하고 신설한 LCMC(Lutheran Congregations in Mission for Christ)라는 교단에 약 30만명정도의 신자가 있다. 특이한 점으로는 주교제를 실시하는 ELCA를 모체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중제를 실시하고 있다는 점.또한 전례적으로도 예전적인 편이다.

더불어 2010년에 ELCA에서 동성애자 목사 안수와 결혼 주례 허용에 반발해 ELCA를 탈퇴한 NALC(북아메리카 루터교회)라는 교단도 있는데,다른 군소교단와는 다르게 백인계 주류 교파로 분류된다. 다만, ELCA의 진보적 결정에 반발해 떨어져 나온 교단이니 만큼, 백인 주류 교단중에서는 보수적인 편이며, LCMS와 ELCA의 중간 정도 성향의 중도적 성향을 띈다. 더불어 교회제도로는 ELCA와 비슷하게 주교제와 회중제를 혼합한 형태의 제도를 채택한다. 신도 수는 14만 명 정도로 크지는 않은 편.

이외에도 다른 많은 군소 교단들이 있다.

3.2.2. 캐나다의 루터교회[편집]

개신교 위주인 미국과는 달리 가톨릭이 좀 더 우세한데다가, 역시 마찬가지로 개신교계에서 장로회, 감리회, 성공회등 영미권 개신교의 우세가 미국보다도 더 두드러지는 곳이라, 미국 루터교에 비해 위상은 떨어진다. 캐나다 전역에 약 47만명의 신자들이 있으며, 캐나다 연합교회[53], 성공회, 침례회 다음으로 4위에 해당한다.

캐나다의 루터교 역시 진보적인 캐나다 복음주의 루터교회(ELCIC)와 보수적인 캐나다 루터교회(Lutheran Church-Canada, LCC)가 있으며, 각각 미국의 ELCA,LCMS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한편, 미국의 루터교단들 중 캐나다까지 관할 지역에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54]

3.3. 중남미의 루터교회[편집]

중남미의 경우 역사적으로 이탈리아계 못지 않게 독일계나 북유럽계 이민자들이 꾸준히 건너온 덕분인지 브라질 남부의 히우그란지두술과 산타카타리나주 등에서 볼 수 있고[55] 아르헨티나에서도 루터교회를 좀 볼 수 있다. 다만 아프리카, 아시아와 달리 제3세계권임에도 감소세를 띄고 있다.

3.4. 아프리카의 루터교회[편집]

에리트레아에서 기독교를 탄압할 때 예외로 둔 게 바로 루터교회였다. 에티오피아와 전쟁을 벌일 당시 미국과 서구권, 이스라엘이 노골적으로 에티오피아를 지원할 때 북유럽 나라들은 중립을 지키면서도 미국과 서구권의 지원을 부정적으로 보였기에, 이에 대한 작은 감사로 극소수이긴 해도 에리트레아에 있던 루터교회는 탄압하지 않았다. 이렇게 정치적인 이유가 강하므로 루터교를 사실상 북한 봉수교회마냥 어용화시킨 것에 불과하고, 당연히 반정부 성향을 가진 신도들은 타 개신교도들처럼 탄압당하곤 한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신자 비율이 높은 나라는 나미비아인데, 독일이 아닌 핀란드 선교사에 의해 전해졌기 때문에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참조) 탄자니아 등에서도 루터교 교세가 꾸준히 늘어나는 중이다. 의외로 에티오피아에서도 활기를 띈다. 에티오피아 복음주의 교회 메카네 예수 교단 단일 신자 수가 635만여명으로 2위였으며 이 교단이 혼자서 전체 루터교인 증가의 절반을 차지했다.

3.5. 아시아의 루터교회[편집]

아시아에서 가장 루터교 비율이 높은 나라는 의외로 인도네시아다. 당연히 주류 민족인 자바인보다는 비교적 소수인 바탁족(Batak)들이 많이 믿고 있긴 하다.(인도네시아 바탁 루터교회). 참고로 인도네시아 기독교인은 중국계 아니면 소수 민족들이며 자바인은 100% 무슬림이다.

말레이시아 등에 교세가 꽤 큰 편이며 베트남은 중국처럼 종교를 공식적으로 규제하는 사회주의 국가로 루터교회가 들어가지 못했다. 인도 공화국에서도 루터교회의 성장세가 꽤 괄목할만한 수준으로 특히 안드라프라데시 주에 신자가 제일 많다.

중국인이 다수인 싱가포르홍콩과 비슷하게 웨일스에서 전래된 루터교가 흔하다.

3.5.1. 중국의 루터교회[편집]

중국어에서는 루터교를 신의종(信義宗)이라고 호칭한다.

영국령이었던 홍콩에는 웨일스에서 전래된 루터교가 흔하지만, 종교를 공식적으로 규제하는 사회주의 국가 중화인민공화국은 루터교가 들어가지 못하였다.

대만에서는 1950년대에 미국,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4국 루터교단의 전도로 대만신의회(台灣信義會)가 설립되었다. 대만성 각지에 30여 채의 예배당을 둔다.

3.5.2. 일본의 루터교회[편집]

일본은 한국과 달리 루터교회가 메이지 시기부터 들어왔으며, 여러 교단이 존재하고 있다. 다만 기독교가 전체적으로 마이너한 일본답게 교회보다는 유치원이나 학교 운영으로 더 많이 알려지기도 한다.

특이하게 'ルター教会'라 하지 않고 'ルーテル教会'(루테루 교카이)라 부르는데 아무래도 Luther를 '루터'가 아닌 '루테르'로 소리난다고 착각한 듯 하다.

  • 일본 복음 루터교회(JELC) - 일본에서 가장 존재감이 있는 루터교단으로 ELCA의 영향이 크며 규슈, 그중에서도 구마모토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유치원도 꽤 많이 운영하고 있다.

  • 일본 루터교단(JLC) - 한국루터회처럼 미국 미주리시노드의 영향을 받은 교단이며 34개 교회가 존재하고 있다. 세이보가쿠엔(聖望学園) 중고등학교[56]와 우라와(浦和) 루터 학원이 바로 이 교단에 소속된 학교이다.(둘 다 사이타마에 위치한다.)

  • 서일본 복음루터교회(WJELC) - 노르웨이와 핀란드 국교회에서 온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된 교단.

  • 긴키 복음루터교회

  • 일본 루터 동포교단 - 여타 루터교회들과 달리 복음주의적 성향이 강하며 내부 인테리어나 집기, 목사 복장도 장로교 스타일과 더 비슷하다.


3.6. 대한민국의 루터교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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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루터회의 예배. 예전성은 가톨릭 미사+성공회 고교회파 감사성찬례장로교 예배의 중간 쯤에 있다.[57]

대한민국기독교한국루터회에는 5천여 명의 신자가 있다. 원래 한국에 개신교 선교사 중에 가장 일찍 들어온 사람이 1860년대 유대계 독일인 목사 칼 귀츨라프였지만 조정의 반대로 감자포도 재배만 알려주고 순순히(?) 중국으로 돌아가버려서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1880년대 제너럴 셔먼호 사건 이후 개화기에 본격적으로 한국에 감리교장로교 등의 개신교 교파들이 들어왔으나[58], 장로교와 감리교가 크게 번성한 후, 루터교는 1950년대에 제일 늦게서야 본격적으로 들어왔다.[59] 게다가 개교회중심주의적인 특징을 가진 장로교가 강한 한국의 특성상, 루터교의 세는 약한 편이다.[60]

마이너하다는 소리를 듣는 대한성공회보다도 교세가 더 마이너하다. 대한성공회에는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방상훈 조선일보 회장, 방송인 사미자, 전직 국회의원 은수미 등 사회 각계에 영향력있는 인물들이 몇몇 있지만, 루터교회에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들자면, 배우였던 임동진 목사 정도.

총회는 서울특별시 송파구 신천동에 있으며, 본부 교회라고 할 수 있는 중앙루터교회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후암동에 있다. 중앙루터교회는 남산 자락에 있는데 밀레니엄 힐튼 호텔 바로 옆에 있는 CJ그룹 본사 바로 건너편에 위치해 있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는 루터대학교가 있다. 다만 모교단의 형편 때문인지 재정난으로 교과부의 대학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또한 컨콜디아사라는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선교 및 전도활동은 주로 <루터란 아워>라는 라디오 프로그램 블록이나 잡지 홍보 등을 통해서 우회적으로 펼치는 편이지만, 성공회와 비교하면 드물게 사탕이라도 나눠주는 식의 전도를 하긴 한다.

당연하지만 다른 개신교 교파에서 옮겨오는 사례도 존재하는데, 지나치게 근본주의적인 성향도 마음에 안 드는데 가톨릭, 성공회[61]는 또 십자고상(천주교, 성공회 고교회파), 십자성호나 성모상(천주교의 경우)이 없으면 큰일 날 것처럼 가르치니 둘 다 마음에 안 들어서 루터교회로 오는 경우라 볼 수 있다. 루터교회가 개신교의 오리지널이라는 점이 개신교 정체성이 강하게 남은 이들에게는 매력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종교개혁의 시발점이자 첫 주자이며 장자임에도 불구하고, 우습게도 한국의 개신교 교파의 기득권층에서는 마르틴 루터를 개신교 영웅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대조적으로, 루터교는 성공회처럼 아예 다른 종교 보듯이 하는 경향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루터의 신앙이 어떤지, 루터가 만든 교파는 어떤 교파인지'에 대한 설명 자체가 부족하다.[63] 아니, 한국의 개신교인들 대다수는 ''' 마르틴 루터는 그저 스타트만 끊었을 뿐 아무것도 한 게 없으며 실질적인 종교개혁은 다 울리히 츠빙글리장 칼뱅이 해놓았다"'라고 착각하는 경향까지 있다.[64]

이는 아무래도 루터교가 다른 개신교들에 비해서 지성적인 면과 가톨릭적 성격이 강한 점에 대한 거부감이 큰 걸로 보인다. 더군다나 한국에서 루터교가 대한성공회, 한국기독교장로회처럼 교단 간 화합[65]에 적극적이고 진보적 단체로 알려져 있는 NCCK 소속이다 보니 일부 보수, 근본주의적 성향의 개신교인들은 더더욱 거부감을 보일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의 개신교 교단의 주류가 장로회감리회라서 루터교의 의식은 생소하다. 전술했다시피 해당 지역 가톨릭교회 역사가 루터교 교리만을 받아들여 옷만 바꿔서 그대로 전래되었기 때문에 당장에 예배에서부터 큰 차이가 난다. 물론 한국 루터교회 신자들이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집전되는 예배보다[66] 훨씬 가톨릭적이라 이질감은 분명히 존재한다.[67]

성상에 비교적 관대하다는 점도 한국 개신교인들에게는 껄끄러울 수 있는데, 이를 의식하는지 한국의 루터교회는 대한성공회와 달리 성상을 잘 설치하지 않고,[68] 성경대한성공회가 공동번역을 쓰는 것과 다르게 개역한글이나 개역개정을 사용하여 개신교 교단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였다. 또한 대한성공회가 고교회파(앵글로-가톨릭)의 영향이 강하게 받아서 로마 가톨릭과 유사한 모습을 꽤 보이는 반면에[69] 루터교회는 교리나 형태 면에서 상대적으로 다른 개신교 교파와 차이가 적고 개신교 교파로의 정체성도 더 뚜렷하다.

하지만 극단적인 반 에큐메니컬 근본주의자들, 혹은 극단적인 반개신교인들의 편견과 달리 한국 루터교회는 한기총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모두 가입한 회원이며 모든 개신교 교단에서 개신교의 상징적인 장자교단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임동진 등 루터교 신자인 유명인 다른 개신교 교회에서 설교 및 강연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한국의 개혁교단의 신학교수나 목사들도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독일 유학 케이스도 상당한데, 당연히 독일 개신교(EKD)는 루터교회가 중심이라서[70] 그 결과 한국의 개혁교단 신학에서도 루터파 신학의 영향이 아예 없다고 볼수도 없다. 결국엔 성공회나 루터교회나 예식은 구습이 남아 있긴 하지만 교리는 일반적인 개신교의 교리가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71]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사업은 한국 루터교회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는데 예장 통합, 감리교 등 교회일치를 강조하는 교단은 물론이고 가장 보수적이라는 교단들인 예장 합동과 예장 고신이 루터교회를 도와 거들었다.#

사실 신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기독교한국루터회를 독일이나 유럽의 루터파 교회와 비교해서는 안된다. 한국의 루터교회 시작은 미국의 미주리 시노드(LCMS)에 의해 시작되었는데, 생각보다 보수적인 교단이다.[72] 가령 북유럽과 프랑스, 벨기에, 캐나다의 루터교단이나 미국 ELCA 등은 동성결혼 집례도 허용하지만 미주리 시노드와 기독교한국루터회는 동성애 자체를 죄라고 보는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73] 물론 NCCK 소속 교단답게 극단적이진 않고 비교적 유연한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74] 기독교장로회대한성공회와 동일한 수준이라 보기는 힘들다. 당장 성찬식만 해도 아무 교파의 세례 교인이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성공회와 다르게 정식 교인으로 등록된 사람만 할 수 있는 교회들이 대다수다. 게다가 정치적인 면에서도 생각보다 중립적인 편.

1995년 한국 루터회에서 '세계를 빛낸 10인의 루터란'을 선정했는데 그중에 든 사람이 헤겔(...)과 키르케고르다. 사실 키르케고르는 신학자이기도 했으므로 그렇게 이상하게 볼 것은 없긴 하다. 참고로 쇠렌 키르케고르의 형인 페테르는 신학자로서 루터교 주교를 지냈다. 재미있는 것은, 키르케고르는 앞의 헤겔 철학을 비판하는 저작을 발표하면서 유명해진 인물이라는 것.

한국 루터교 내부에서는 한국의 감리교가 그랬던 것 처럼 장로교의 요소를 받아들여[75] 한국식 루터교의 형태로 나가야 하는지, 대한성공회처럼 아예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나타내어 자신만의 색깔을 내는 것이 맞는지 고민하는 목소리도 많다. 이미 루터교회들 중에는 자비송, 영광송 등의 가톨릭식 예전을 빼버리고[76] 찬송-교독문-성경봉독으로 간소하게 예배를 진행하는 곳들도 있다.[77] 어쨌든 목사를 양성하는 대학교도 그러하고, 전반적으로 교단의 생존을 위해 한국 상황에 맞는 체질 개선이 필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3.6.1. 산하 신학교[편집]

4. 창작물에서의 루터교회[편집]

  • 늑대와 양피지에서 '새로운 교회'를 만드는 장면에서, 작중 배경인 윈필왕국이 섬나라라서 영국의 성공회가 연상된다는 평이 많으나, 토트 콜의 모델이 마르틴 루터라는 것을 감안하면 루터교가 연상된다고도 볼 수 있다. 현실에서도 성공회와 루터교회가 유사점이 많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루터교회와 성공회를 어느정도 버무린 설정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1] 사실 개신교를 가리키는 단어들 중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항의하는 자들)'이란 명칭 자체가 바로 마르틴 루터를 지지하던 제후들이 스스로 그렇게 부르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2] 다만 일부 국가에서는 다른 개신교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도 있다. 실제로 체코네덜란드 같은 경우 칼뱅교와 루터교 교단이 통합되어 있다.[3] 아이슬란드를 제외하면 국교회 명칭을 쓰는 나라들은 모두 왕실이 존재하는 나라들이다. 이유는 후술[4] 체코어거위 혹은 기러기를 'Husa'라고 부른다.[5] 역사적으로 개혁주의가 압도적으로 우위인 나라이기 때문에 국교회 내부에서도 개혁주의가 주류이지만 소수의 루터교단이 존재해서 2004년에 그쪽과 합쳤다.[6] 1918년 출범한 체코 복음주의 형제회(ECCB)[7] 루터는 자신이 지은 저작 가운데 《소요리문답》, 《대요리문답》, 《노예의지론》을 남길 만하다고 꼽았다. 요리문답들에서는 기본적인 교리와 삶의 문제, 《노예의지론》은 이신칭의와 예정을 설명한다.[8] 예수의 승천 이후 그의 인성과 신성이 모두 편재하기에 성찬의 빵은 그의 몸이고, 포도주는 그의 피라는 이해[9] 멜랑히톤파.[10] 최초의 개신교 조직신학서다. 루터는 성경에 비견할 만큼 높게 평가했고 루터파 교리의 기본이 되었다.[11] 칼뱅 자체가 융통성 있는 인물이었다. 폴란드 개혁파에 감독제를 권유하고, 존 낙스의 과격한 저작을 출판 금지하기도 했고, 성공회의 토머스 크랜머 캔터베리 대주교와도 서신 왕래를 했다. 다만 공재설을 거부하여 강경 루터주의자들과 사이가 나빴는데, 루터에게는 예의를 갖추며 맞대응을 조심했다. 또한 멜랑히톤의 《신학총론》을 출판했다.[12] 칼뱅의 이중예정설은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예정설의 원액에 가깝다. 멜랑히톤은 전적인 타락과 예정에 동의하되, 지옥으로의 예정은 언급하지 않거나 조심스럽게 본다. 단, 루터는 칼뱅과 큰 차이가 없다고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참고.[13] 한국, 독일, 북미 일부 루터교회의 성직자 호칭, 그 외의 유럽에서는 엄격히 삼중성직제도를 지켜서 부제, 사제, 주교가 있고, 사제들은 신부님이라 호칭한다. 다만 스웨덴에서도 비공식적으로는 목사라고 부를 때가 많다. 잉마르 베리만의 영화인 <겨울 빛(nattvardsgästerna)>에서도 주변인물들이 주인공을 목사(Pastor)라고 부르지 신부(Präst)라고 부르지 않는다.[14] 그러나 덴마크핀란드 등에서도 성직자를 '목사'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핀란드에서는 교구 목회자를 seurakuntapastori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고, 영어로도 'pastor'로 번역되는 경우가 꽤 많다.[15] 정확히는 루터교회에서 나눠주는 달력이 그러하다.[16] 가톨릭성공회에서는 이 날을 성모승천대축일/성모안식축일로 기념한다.[17] 초기에는 7성사를 다시 도입한다는 무리수까지 내놓을 정도였는데, 그나마 이것도 후술하겠지만 교리적인 이유보다는 당대 혼란상 탓이 컸다.[18] 19세기~20세기에 와서야 수도회 개념이 다시 부활하긴 했다. 바실레아 슐링크(Basilea Schlink)가 설립한 '다름슈타트 마리아 자매회(Evangelische Marienschwesternschaft Darmstadt)'가 그런 경우이다[19] 지금도 독일 루터교에서는 이렇게 입는다. 그나마 뉴스 등에서 인터뷰를 할 때는 목사 가운 없이 정장에 넥타이 맨 차림으로 나오기도 한다.[20] 그리고 이들 교단 일각에서도 북유럽 루터교회들처럼 사도전승을 회복한 경우도 있다[21] ELCA(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에 속했던 일부 보수파 목사들과 교회들이 교단의 자유주의화에 반대해 2001년 떨어져 나와 신설한 교단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모체인 ELCA는 주교제를 실시하고 있다.[22] 예를 들어 ELCA가 이런 경우며, ELCA에서 분리된 NALC(북아메리카 루터교회)라는 교단도 이런 식의 체계를 가지고 있다[23] 여담으로 한국 루터교도 주교제는 아니다. 다만, 침례회나 장로회보다는 중앙집권성이 훨씬 강하다.[24] 실제로도 스웨덴 루터교에서는 장엄미사(högmässa)라 부른다. 미국의 일부 루터교회에서도 미사(holy mass)라고 부르는 경우도 드물지만 있다.[25] 심지어 극도로 고교회적인 소수 교회들의 경우 예배(미사) 때마다 향을 피우거나 트리엔트 미사가 연상될 정도로 엄숙한 형태를 띄는 예배를 집전하는 경우도 있고, 제대 디자인도 매우 가톨릭적인 경우가 있는 등 외견상으로는 가톨릭과 차이를 찾기 힘든 경우도 있다.[26] 오전 예배는 장엄예배, 오후 예배는 현대적인 예배를 드리는 식으로[27] 심지어 예배를 미사(holy mass)라고 부르며, 교회 내부 인테리어도 상당히 가톨릭적인 경우도 있다[28] 상술했듯이 북유럽 각 국가에서의 루터교는 여러모로 국교회를 연상케 하는 구석이 많다.[29] 현 트론헤임(Trondheim)[30] Andreas Rudolph Bodenstein von Karlstadt(1486-1541) 츠빙글리와 칼뱅 이전 개혁파 0세대(?)라고 할 수 있는 인물. 모세의 율법이 신약시대 이후에도 그대로 유효하므로 우상숭배 금지도 유대교처럼 철저해야 한다는 주장을 갖고 있었고, 적극적으로 성상 없는 '말씀만의 교회'를 주장했다. 즉, 츠빙글리와 칼뱅의 선배격이라 볼 수 있다. 루터는 처음에 동의했으나, 얼마 안 가 1522년에 이루어진 비텐베르크 개혁은 자신이 원하던 모습이 아님을 깨닫고 격렬한 키배 끝에 그와 등을 돌려버렸다.[31] 출처: "마틴 루터의 신학", 베른하르트 로제, 정병식 譯, 한국신학연구소 215페이지[32] 애초에 루터의 주장부터가 교회에서 성화나 성상을 만들거나 그려서 둘 수는 있지만, 그런 것으로 문자적인 율법과 말씀을 대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위의 책 217페이지)[33] 핀란디아 홀로 유명한 알바 알토가 설계하여 1958년 핀란드 남부 카리알라에 지어진 교회이다.[34] 성공회도 이런 면에서 비슷하긴 하지만 개교회 혹은 지방자치 성향인 루터교의 유연성은 관구제인 성공회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35] 성공회의 경우 고교회파에서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집에 성모상을 잘 안모셔둔다.[36] 종교개혁 직후 "그때 왜 내가 성 안나, 성모 마리아한테 기도했었지? 그리스도께만 기도했어야 하는데..."라고 후회한 일화가 있을 정도이다.[37] 1918년 루터교와 칼뱅교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연합교단.[38] 여담으로 라트비아 복음 루터교회는 원래 독일처럼 비교적 '저교회적'루터교가 먼저 전래되었으나,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영향을 받아서 주교제를 도입하고 사도전승을 회복하는 등 '국교회'와 비슷한 방향으로 바뀐 경우다[39] 그리고 이듬해인 2006년에는 라트비아 헌법이 개정되었는데, 동성결혼이 금지되었다.[40] 일반 루터교에 비하면 회중주의 성향이 매우 강한 점도 그렇다.[41] 물론 미국과는 양상이 많이 다르므로 근본주의라 부르지 않는다.[42] 미국 건국 과정에서 칼뱅주의의 영향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나, 청교도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들의 사상이 미국 독립 혁명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에 영향을 미쳤고, 하버드 대학교, 예일 대학교등의 미국 최초의 대학들 중 상당수들이 칼뱅주의 정신에 입각해서 세워진 점 등 미국이라는 나라의 기초부터가 칼뱅주의의 영향을 받기는 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반면 미국 루터교는 영미권 칼뱅주의 교파들이 주류를 차리한 이후,1700년대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전래가 되었고, 수적으로도 다수가 아니었다.[43] 최근에도 마찬가지. 도널드 트럼프 현 미국 대통령도 장로회 신자이며, 그와 대선에서 맞붙었던 힐러리 클린턴감리회 신자다.[44] 참고로 통합 당시 한 분파는 후술할 LCMS의 진보적인 목사들이 탈퇴한 그룹이다[45] 이게 굉장히 파격적인 게, 가톨릭 등 다른 교단이나 교파에서 성생활을 하고 있지 않은 동성애자들에게는 영성체 참여 등을 허용하는 경우는 있었고, 성생활을 하고 있는 동성애자들도 일반 신자로 받아들이는 교회들은 많지만, 목사 안수까지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에서 상당히 이례적인 조치다.[46] 후술할 LCMC(Lutheran Congregations in Mission for Christ)가 2001년에 분리되었고, NALC(북아메리카 루터교회)가 2009년의 성소수자 목사안수 관련한 결정사안에 불만을 가지고 2010년에 분리되었다[47] 사실 이런 현상은 네덜란드 국교회나 핀란드 국교회 등 대형, 진보 교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상이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 국교회에서도 보수적인 목사들은 '개혁주의 연맹'이라는 하위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48] 이런 현상은 대부분의 백인계 주류 교단에서 1980년대 이후 꾸준히 관측되고 있다. 점점 더 신학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진보화되고, 정치적 올바름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등의 교단 행보에 질려서 다른 교단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49] 추후에 감리회도 여기에 동의했다. 다만 루터교 내부에서도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교단들이 꽤 많은 편이다.[50] 다만, 회중제적인 요소도 동시에 받아들이기 때문에 가톨릭과 같은 수준의 중앙집권적 구조와는 거리가 있다[51] 한국 루터교가 LCMS에 비하면 좀 더 진보적인 편이다[52] 완전히 회중제는 아니고, 주교제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주교제를 베이스로 하고 회중제적 요소를 포함한 ELCA와는 반대[53] United Church of Canada, 캐나다 장로회를 위주로 감리회가 통합된 교단[54] 대표적으로 상술한 NALC(북아메리카 루터교회) 등[55] 사실 이 지역에 독일계 이민자들이 많이 정착했다.[56] 크게 휘두르며에 나오는 토세이(桐青) 고등학교의 모델로 추정된다는 그곳 맞다.[57] 성찬 예절은 가톨릭, 성공회 쪽보다는 일반 개신교 쪽에 가깝다.[58] 성공회도 이 시기에 조선에 유입[59] 애초에 한국 루터회의 역사 자체가, 6.25 전쟁이 막 끝나고 미국에서 2번째로 큰 교단인 미주리 총회(Lutheran Church Missouri Synod)에서 파견된 선교사들에 의해 전해진 것이다. 다만 이 덕분에 다른 NCCK 회원 교단들과 달리 신사참배 문제로부터는 근본적으로 자유로운 편이다.[60] 이는 개교회주의에 대한 해석이 달라서 벌어진 일이다. 다른 교파들은 교회 개척 자체를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하지만, 루터교는 목사가 마음대로 교회를 개척할 수 없도록 해버렸기 때문. 다만 한번 만든 교회 안에서는, 목사가 마음껏 인테리어나 예배 방법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61] 사실 일단 교리상으로 성공회도 다른 개신교 교파와 큰 차이가 없는 편이긴 하나, 한국 성공회는 가톨릭과 하드웨어나 교리면에서 유사성이 상당히 큰 앵글로-가톨릭 중심[62]이라 침례교장로교, 감리교 출신 개신교 신자라면 이질감이나 거부감이 강할 수 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62] 특히 과거의 대한성공회는 교의적인 측면에서도 고교회파의 성격이 강했다[63] 당장 대한민국에서 칼뱅이나 웨슬리에 관한 전문서적은 아무 개신교 백화점에서나 신학 코너에서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루터와 그가 만든 교리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룬 서적은 쉽게 구할 수 없어서 영어로 된 서적을 해외직구하던지, 굳이 한국어로 된 전문서적을 보고 싶다면 컨콜디아사에다 직접 주문하는 방법밖에 없다.[64] 사실 건물 안에 시각적 요소가 많이 남은 것도 그렇고, 성찬 해석도 예수가 그 자체로 빵에 그대로 임재한다는 설을 펴다 보니 칼뱅주의 입장에서는 카톨릭, 성공회와 다를 게 없는 반쪽짜리 개혁으로 보이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나 교리적인 면에서까지 루터가 카톨릭의 구습을 그대로 끌어안은 채 교황수위권만 부정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루터 역시 성인 공경이나 성유물 교리를 크게 경계하고 부정했다는 것이 정설이다.[65] 이른바 에큐메니컬 운동[66] 사실 한국에서 집전되는 예배도 꽤 예전적이고 이 때문에 루터교회에서는 성경과 찬송가 외에 '예배의식문'이란 소책자를 따로 구비해놓고 있다.[67] 한국의 경우 미국을 통해서 전래되었기 때문에 성공회보다는 예배 방식이 간소한 편이다. 그래도 한국의 다른 개신교도 입장에서는 가톨릭미사정교회성찬예배, 성공회감사성찬례를 떠올릴 수 밖에 없는것도 사실이다.[68] 사실 위에 나와 있듯이 마르틴 루터 본인도 성상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으며, 다른 나라들에서도 성상을 설치하지 않은 루터교회들이 얼마든지 많기 때문에 딱히 특이한 건 아니다[69] 같은 대한성공회 안에서도 성당에 따라 고교회파, 저교회파, 광교회파의 영향이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대한성공회 서울교구는 고교회파의 영향이 강하나, 부산교구는 복음주의적인 저교회파의 영향이 강해 일반적인 개신교와 상대적으로 차이가 덜하다.[70] 2차대전 이후 10여개의 루터교회 협회와 2개의 개혁교단으로 구성된 교회협의체이다. 참고로 2개 중 1개가 바로 동프리슬란트에 있다.[71] 단, 후술하듯이 루터교회가 성공회에 비해 교리,전례,양식,체계 등에서 다른 개신교와의 차이점이 훨씬 적다. 특히 앵글로-가톨릭의 경우 로마 가톨릭과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기도 하고[72] 미국에서 이보다 더 보수적인 교단으로는 위스콘신 시노드(WELS)가 있지만 한국에서는 저명성이 별로 없다. 미주리 시노드는 여성의 목회자 자격만 인정하지 않는 수준인데 비해 위스콘신 시노드는 아예 여성의 집사 직분조차 인정하지 않는다.[73] 링크된 기사에서는 미주리 시노드가 1981년에 생겨났다고 쓰여있지만 실제로는 미주리시노드가 ELCA보다 더 오래된 교단이다.[74] 그래서 위에서 언급된 유럽의 루터교단들과도 교류가 좀 있다.[75] 한국 개신교는 엄연히 장로교가 주류이고 타 교파들도 이를 의식할수밖에 없다.[76] 1달에 1번 성찬식을 할때만 예전문을 외운다.[77] 다만 상술했듯이 이러한 간소화된 예배 자체는 해외의 루터교회에서도 없지는 않다. 특히 경건주의적인 경향이 강하거나 젊은 층들 위주로 사목하는 교회,교단의 경우 간소화된 예배도 드리는것을 제법 볼 수 있다.전례적인 예배도 병행하는 경우가 다수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