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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게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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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디오게네스01.jpg[1]

그는 미친 소크라테스다.


플라톤



1. 개요2. 사상
2.1. 개 같은 선비2.2. 세계 시민 사상
3. 일화4. 트리비아

1. 개요[편집]

정신병자 디오
그리스의 괴짜 철학자. 흑해 연안의 시노페 출신이다. 고대 그리스의 전기작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2]와 구별하기 위해, 보통 '시노페의 디오게네스'라고 부른다.

환전상이었던 아버지가 돈을 위조하다 걸려 고향에서 추방당하자, 아테네로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안티스테네스를 만났고, 곧 그의 제자가 되었다. 역시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플라톤과는 앙숙이었다고 전해진다.[3] 사실 디오게네스가 일방적으로 괴롭힌다

파일:아테네학당01.jpg

이탈리아화가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에서, 그림 가운데 비스듬히 누워있는 사람이 바로 디오게네스다. 당시 최고의 괴짜답게 주변에 사람이 없다

2. 사상[편집]

2.1. 개 같은 선비[편집]

그의 스승이었던 안티스테네스(BC 445-365)는 인간은 덕(德)을 위해 살아야 하며, 그것을 위해서는 선한 마음만 필요할 뿐 재산과 명성과 외모 따위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가르쳤다. 역시 누구 제자 답다

디오게네스는 여기서 더 나아가, 쓸데없는 욕심을 버리고 자연에 적합한 것만 취하면, 인간은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믿었다. 그에게 있어 '행복'이란, 인간의 자연스런 욕구를 가장 쉬운 방법으로 만족시키는 것이었다. 이 때 자연스러운 욕구는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보기 흉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감출 필요도 없다. 그리고 그는 정말 그 말대로 살았다. 진짜다. 사람들로 가득한 아고라 광장 한복판에서 자위를 할 정도였으니까. 그러고서는 하는 말이...

"배고픔도 이처럼 문질러서 해결된다면 좋았을 것을!"


(...)
이같이 모두 앞에서 당당한 게 아니라면 혼자 있을 때도 당당한 게 아니며, 인간은 공적인 장소에서 자기 삶을 내보일 수 있을 정도로 떳떳하게 살아야 한다는게 그의 생각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부와 권력에 전혀 흥미가 없었고, 기성 도덕과 관습을 우습게 보았다. 알렉산드로스 3세와의 일화는 이러한 그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그의 명성은 자자하여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디오게네스를 찾아온 일이 있었다. 그는 양지 바른 곳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다."
"나는 디오게네스, 개다."
"내가 무섭지 않은가?"
"그대는 선한 자인가?"
"그렇다."
"그렇다면 뭣 때문에 선한 자를 두려워 하겠는가?"
이에 알렉산드로스가 "소원이 있으면 말하라"라고 하니, 디오게네스는 "햇빛을 가리지 말고 비켜달라"고 대답했다. 무례한 저 자를 당장 처형해야 한다고 나서는 부하들에게, 알렉산드로스는 "내가 만약 알렉산드로스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그들을 말렸다.

사실 뒷이야기가 있다 카더라.
알렉산더 왈, "날 이렇게 대한 건 니가 처음이야"

진중권은 이 일화에 대해 『앙겔루스 노부스』 (2003)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왕은 세상의 모든 것을 가졌다. 개는 그 어느 것도 갖기를 거부했다. 대왕은 다른 이에게 권력을 행사한다. 개는 권력을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휘두른다. 그러나 부와 권력의 정점에 서있는 대왕의 위력도 개에게는 아무 감명을 주지 못했다. 대왕이 되고 싶지 않은 개. 그러나 개가 되고 싶은 대왕. 여기서 우리는 대왕의 것보다 더 컸던 개의 '영혼의 크기'를 볼 수 있다.


디오게네스의 사상은 이처럼 대부분 '일화'로 전해진다. 그는 '철학이 말이 아니라 행함에 있음'을 철저하게 보여준 인물이었고, 실제로 어떠한 저술 활동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4] 그저 자신의 기행으로써 세상의 모든 것을 비웃어버리고, 이를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기존의 가치관을 한번 의심해보게 만들 뿐이었다.

서양철학사에서 디오게네스는 '견유주의'의 스승으로 불린다. '개 견(犬)'에 '선비 유(儒)'를 썼으니, '개 선비' 내지 '개 같은 선비'인 셈이다. 왜 하필 '개'냐는 질문에, 디오게네스는 이렇게 말했다. "내게 뭔가를 주는 자에게는 꼬리를 치며 반기고, 아무것도 주지 않는 자에게는 시끄럽게 짖어대고, 내게 나쁜 짓을 하는 자는 물어버리기 때문이지."[5] 그래서 디오게네스의 무덤에는 강아지가 항아리 안에 들어가 있는 형상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나무위키에서는 개독이라는 짤방으로 사용된다 아래의 이야기는 그가 되고자 하는 '개'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알려준다.

언젠가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필리포스 대왕이 그를 붙잡아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나는 네 탐욕의 정찰병이다."[6][7]


실제로 그는 고약한 유머로 사람들의 약을 올리고, 그들을 불편하게 만드는데 열심이었다. 진중권은 이러한 디오게네스의 논증 방식에 대해 '예술적'이라고 평했다. 쓸데없이 복잡한 증명이나 추론을 사용하기 보다 고상한 논리를 단 한수에 날려버리는 독설, 말놀이, 행위예술을 선보이기 때문. 그리고 이 지점에서 어김없이, 적절한 일화가 등장한다.

누군가가 그의 앞에서 '운동'을 부정했다. 말하자면 세상의 모든 것이 움직이는 듯이 보이나 실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8]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폴짝폴짝 뛰며 그 사람의 주위를 뱅뱅 돌았다.

언젠가 플라톤이 이데아론을 설파하며 책상성과 물잔성에 대해 얘기하자, 그가 말했다. "내 눈엔 책상과 물잔은 보이지만, 책상성과 물잔성은 전혀 안 보이는데?"


이쯤되면 개가 맞다 물어뜯기 대마왕

견유주의를 퀴니코스 학파라고 부른다. 이 퀴니코스(영어로는 '시닉'Cynics이라 한다)라는 말에서 '시니컬'하다는 말이 나왔다. 그런데 '개'가 '시니컬'하다는 것, 다시 말해 '냉소적'이라는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원을 모른다면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의문점인데, 그리스어로 개는 '키온kyon'으로, 냉소적이라는 뜻의 독일어 단어 '치니슈zynisch'나 영어의 '시니컬cynical'이 여기서 유래됐다.

실제 견유주의의 정신은 오늘날 우리가 '냉소적'이라고 말하는 것과는 정반대에 가깝다. 오늘날 냉소주의는 행동이 수반되지 않는 말, 실천의 용기가 없는 말뿐인 비판에 지나지 않지만 견유주의는 그 반대였다.[9] 디오게네스는 비판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10]

디오게네스는 가난했지만 늘 부끄러움이 없는 자족자제(自足自制)의 생활을 몸소 실천했다. 평생을 집이 아닌 커다란 통 속에서 살았고, 단 한 벌의 옷만 걸쳤고, 그의 재산이라야 물을 떠먹을 때 쓰는 표주박이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개 한마리가 혀로 물 마시는 걸 보고, 개도 저렇게 물을 마시는데 뭐하러 이딴게 필요하냐며 표주박을 내던지고 개를 스승으로 삼아 지냈기에 귀찮은 사람이 와서 질문하면 "나는 개다. 그러니 꺼져!"라고 응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래서 개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그는 죽는 순간에도 '내 유해를 땅에 묻지 말고 맹수들의 먹이로 던져주라'라는 유언을 남겼다. 마지막까지 그는 지상의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살다간 철학자였다.

2.2. 세계 시민 사상[편집]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유명 철학자들의 삶과 사상> [11]이라는 책에서, 동명의 철학자 '시노페의 디오게네스'의 사상에 대해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그는 올바른 로고스를 가지고서 말했다. 만물은 만물 안에, 그리고 도처에 있다고. 빵 안에는 살이 있고, 채소 안에는 빵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보이지 않는 이동과 입자들을 통해 증기의 형태로 다른 모든 신체들 역시 모든 실체들에 들어가 하나를 이룬다."

인문학자 고병권은 그의 책 『살아가겠다』(2014)에서 이 사상을 아래와 같이 해석했다.

'빵 속에 살이 있다'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혹시 이런게 아닐까. 가령 우리가 죽게 되면 우리 몸의 어떤 부분은 미생물에게 분해될 것이고 그 일부는 식물의 뿌리를 통해서 흡수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식물 속에는 동물의 일부를 이루던 것이 분해되어 들어 있지 않을까. 꼭 죽어서가 아니더라도 실존하는 모든 것들은 서로를 부분적으로 품고 있다고 보았는지도 모르겠다.[12]


디오게네스는 어떤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만물 속에는 만물이 들어간다고 했다. 이 때, 만물은 각자 만물을 품고 있으므로, 만물은 그 자체로 평등하다. 그래서 누군가 그에게 "어디서 왔느냐"라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세계의 시민이다."

'세계의 시민'을 영어로 번역하면 '코스모폴리탄'이다. 그는 스스로를 '코스모스(우주)'에서 왔다고 했다. 참된 나라는 우주만큼 넓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시민사상, 즉 '코스모폴리타니즘'은 디오게네스의 이 대답에서 연원한 것이다.

지금에야 모든 인종과 사람의 본질과 자격이 동등하다고 여기는 것을 당연시하지만, 이러한 사상이 정착된 건 채 100년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디오게네스는 무려 2500여년 전에 모든 사람의 본질과 자격이 인종이나 성별과 상관 없이 동등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그의 사상이 당시 얼마나 급진적이고 충격적이었는지는 당대의 두 대철학자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통해 알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시아[13]인들은 철학할 머리가 없으므로 모조리 잡아서 노예로 삼아야 한다고 알렉산드로스에게 말했을 정도였다.

3. 일화[편집]

어느 날 플라톤이 토론을 하며 인간을 두 발로 걷는 깃털 없는 짐승이라 정의하는 일이 있었다.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털 뽑은 닭을 들고와서 "이게 플라톤의 인간이다."라고 말했다.[14]

이후로 플라톤은 항상 인간에 대해 설명할때마다 "손톱과 발톱을 가진" 이라는 말을 앞에다가 첨가하게 되었다고 한다. 모양빠진다 플라톤에 따르면 면도한 원숭이도 인간이다 손톱과 발톱을 가진 두 발로 걷는 깃털 없는 면도한 원숭이가 아닌 짐승

플라톤은 항상 욕망을 버리고 살라고 이야기했지만, 본인은 정작 커다란 집에 살았다. 이 사실이 못마땅했던 디오게네스는, 어느 날 진흙투성이 발로 플라톤의 집에 들어가서는 침대를 짓밟아놓고 나왔다.

이하 주석은 전부 출처니까 뭔 의미 해석 달린건지 읽어볼려고 누를 필요는 없다

언젠가 그가 플라톤에게 포도주와 말린 무화과를 좀 달라고 부탁했다. 통이 큰 플라톤은 부탁받은 물건을 항아리에 차고 넘치도록 채워 그에게 보냈다. 그러자 얻어먹는 주제에 한다는 소리가, "너는 2+2는 얼마냐 물으면, 20이라고 대답하냐?" 그럼 먹지 마라. 남은 음식이 상해서 속상해 한말은 아니었을까?[15]

한 젊은이가 철학을 배우겠다고 찾아온 일이 있었다. 디오게네스는 그에게 소금에 절인 생선을 한 마리 주며, 그걸 들고 자기를 따라다니라고 말했다. 젊은이는 생선을 슬그머니 땅에 내려놓고 도망쳤다. 우연히 길거리에서 그를 다시 만난 디오게네스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겨우 생선 한 마리 때문에 우정이 깨지다니."[16]


파일:등불01.jpg[17]

하루는 디오게네스가 벌건 대낮에 손에 램프를 들고 길거리를 돌아다녔다. 어떤 사람이 뭐하냐고 묻자, 그가 대답하기를, "인간을 찾고 있다네."[18]

시노페의 시민들이 자신에게 추방형(形)을 내렸다는 말을 듣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나는 그들에게 체류형을 내리노라."[19]

디오게네스는 항해를 하다가 해적선에 걸려 크레타의 노예시장에 팔려나간 적이 있었다. 노예상인이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 묻자, 태연히 "사람을 다스리는 일"이라 대답했다. 그러고는 좌중을 둘러보며 "혹시 이 중에 주인을 살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시오." 그러더니 한 사람을 가리키며 "나를 이 자에게 파시오. 이 자에게는 주인이 필요한 것 같소."라고 덧붙였다.[20]


그의 제자 크라테스는 훗날 이런 스승의 학설을 가지고 "무소유야말로 모든 것에서 벗어나는 비결"이라 하며 스토아 학파의 탄생을 예고했다.

최후도 꽤나 비범한데 90세 때 그냥 일부러 숨을 안 쉬어서 생을 마감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익지않은 고기를 먹다가 식중독으로 사망했다는 설도 있다.

4. 트리비아[편집]

중세 아랍에서는 소크라테스랑 구별을 못했기에 통속의 소크라테스라고 불리는 경우가 있다. 플라톤의 언급이 생각나는 대목.

셜록 홈즈의 형인 마이크로프트 홈즈는 셜록 이상으로 사교성이 없어서 클럽 활동도 말 걸면 강퇴당하는 도서관 비슷한 곳에서 하는데[21], 그 클럽의 이름이 디오게네스다. 더불어 마이크로프트는 이 클럽을 만든 여러 인물 중 하나.

통속에서 개같은 생활을 했기 때문에 디오게네스의 친구들은 디오게네스 사후 이와 같은 조각을 만들어 묘비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국적도, 시대도, 직업도 다르지만 예술가 마르셀 뒤샹도 디오게네스와 비슷한 삶을 살았다.



여담으로 이 인물의 이름을 딴 정신질환도 있다이른바 수집증후군이라 불리는 정신질환

[1] 장-레옹 제롬, '디오게네스', 1860[2] 《유명한 철학자의 생애와 사상》이라는 책으로 유명하다.[3] 디오게네스는 훌륭한 사고는 단순성에서 나온다고 보고 추상적 사고를 경멸했다. 고로 추상적 사유의 대표격 플라톤과는 사이가 좋을리가.[4] 고병권, 『살아가겠다』, 2014[5]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철학자들의 삶과 가르침』 제6권 「디오게네스」 60[6] 고병권, 『살아가겠다』, 2014. p.31[7] 푸코에 따르면,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견유주의자의 역할을 아예 '카타스코포스(정찰병)'라고 불렀다. 견유주의자는 아무런 보호(피난처, 집, 나라)도 없이 앞서 파견된 자들, 앞서 내달리는 자들이며, 다시 돌아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아무 두려움 없이 고해야 하는 자들이다. (고병권, <살아가겠다>[8] 제논의 역설을 떠올리는 편집자가 있었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이건 파르메니데스의 학설이다. 당대 아테네 사람들도 이것이 파르메니데스의 학설임을 알고 있었다. 제논은 파르메니데스의 제자격 되는 인물이다.[9] 견유주의 학설은 그가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보다 그가 어떤 사람이냐, 어떤 정신의 소유자이냐이다.[10] 고병권, 『살아가겠다』, pp.33-34[11] 국역본은 『그리스 철학자 열전』이라는 제목으로 동서문화사에서 펴냈다.[12] 가령이란 얘기를 쓸 것도 없이 그냥 헤라클레이토스를 비롯해서 당대 많은 학자들이 하던 얘기다. 굳이 가령이라는 얘기를 쓰는 것이 이해되는 것은 디오게네스가 딱히 이에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기 때문이겠지만, 이미 그 전부터 그리스 학자들이 생명이나 사물의 순환에 관한 얘기는 많이 했다. 실존이란 어려운 용어를 쓸 것도 없고, 사물이 서로를 부분적으로 품고 있다는 것은 아낙사고라스가 이미 해서 유명한 얘기다.[13] 페르시아를 의미한다.[14] 사족을 붙이자면, 현실적으로 깃털 뽑은 닭은 걷지 못한다. 일단 단기간에 다 뽑을 경우 보통 통증에 의한 스트레스 때문에 쇼크사로 죽고, 여유를 두고 뽑아서 산다고 해도 닭은 조류치고 체격이 적잖이 큰 편이라 깃털 없이는 몸의 균형을 못 잡아서 쉽게 넘어지므로 제대로 못 걷는다. 사실 양계장에서 보면 깃털이 있는 닭들도 뒤뚱뒤뚱 걷다가 넘어지는 경우가 흔하다. 대신 체형이 작은 애완조류 중에 정신병에 걸려 자기 깃털을 자기 부리로 매일같이 죄다 뜯어대며 생존한 사례가 보고된 적이 있어 깃털없는 상태로 걷는 새(조류)가 존재하는 것은 가능하다. 단지 그게 닭이 아닐 뿐이다. 병아리는? 걔도 털뽑으면 죽어[15] 진중권, 『앙겔루스 노부스』 2003.[16] 진중권, 『앙겔루스 노부스』 2003.[17] 정직한 사람을 찾아다니는 디오게네스, 요한 H. 빌헬름 티슈바인 그림.[18] 진중권, 『앙겔루스 노부스』 2003.[19] 진중권, 『앙겔루스 노부스』 2003.[20] 진중권, 『앙겔루스 노부스』 2003.[21] 직장과 집을 빼면 활동하는 곳이 여기 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