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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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명

디기리

본명

원신종

생년월일

1978년 12월 7일,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체 조건

172cm, 58kg, A형

특기

주짓수, 태권도, 택견

학력

명지고등학교
서울산업대학교 산업정보시스템공학 학사
서울산업대학교 산업대학원 정보산업공학 석사

데뷔

1999년 허니패밀리 1집 앨범 남자 이야기

1. 소개2. 이력3. 여담

난 디기리 프리스타일 MC 이제 내가 랩을 해 모두 들어봐
난 모든 리듬을 갖고 놀수있는 리듬의 마법사 디기리라 한다
허니패밀리 - 랩교 1막 中

지금의 모습이 내 예전의 어린 내 눈 속에 비칠 땐

그땐 어른으로 느꼈었겠지
하지만 실은 그때와 똑같지

디기리 - 아이에서 어른으로 中

1. 소개[편집]

리듬마법사
시대를 앞서간 1세대 래퍼이자 힙합계의 숨겨진 리릭시스트
허니패밀리 출신의 1세대 한국힙합 래퍼이다.

2. 이력[편집]

1999년 허니 패밀리로 데뷔했는데, 독특한 엇박 플로우[1]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스스로 말하기를 '모든 리듬을 갖고 놀 수 있는 리듬의 마법사' 디기리.

2000-2001년에 개리, 과 함께 허니패밀리를 나가고 리쌈트리오를 결성하기도 했지만 '풍류가', '빛 좋은 개살구' 두 곡만 낸 뒤 음악적 견해 차이로 디기리가 빠지고 길, 개리 2인 체제로 리쌍이 되었다.

2002 대한민국 앨범에 솔로 트랙인 '이 곳에서'를 선보이며 상당한 기대감을 모았고, 이런 기대감 속에 2004년 6월 4일 솔로 정규 1집으로 자신의 별명을 그대로 제목으로 쓴 〈리듬의 마법사〉를 발표했다. 음악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면서[2] 디기리 특유의 엇박 랩을 쏟아내는 수작으로 평가되나, 피처링으로 참여하여 mp3 다운족들을 향해 뱉어냈던 주석의 쌍욕을 기레기들이 디기리의 가사로 와전시키거나 디기리가 옹박의 토니 자에게 맞짱을 신청했다는 기획사의 해괴한 언플 등 여러 악재가 터지면서 흥행에 실패했다. 그야말로 비운의 명반. '전하는 말', 'This Is Diss'를 제외하면 19금 판정을 받을만한 곡이 없는데 엠넷닷컴과 엠넷닷컴에서 음원을 제공받는 네이버 뮤직에서는 이 앨범 전곡에 19금 판정을 내렸다.

2007년에는 허니패밀리로 돌아와 4집 〈네번째 이야기〉에 참여했지만 또 흥행에 실패했다.

2008년 9월 18일에는 병역검사 때 괄약근과 팔에 힘을 주고 혈압을 올려 4급 판정[3]을 받았다가 불구속 기소되어 같은해 11월 11일에 상근예비역으로 입대하였다.

제대 후 2012년에는 허니패밀리로 다시 돌아와 〈Go! Go!〉를 냈다. 하지만 또 망한 듯.

그 뒤로는 랩을 쉬고 주짓수 선수로 활동하다가, 2015년 1월 30일 팬텀의 멤버 한해의 솔로 앨범인 〈365〉의 수록곡 '넥 브레이커'에 피쳐링진으로 이름을 올렸다. 랩실력은 여전히 건재한 편. 랩을 쉬던 디기리가 갑자기 한해의 앨범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한해의 힙합플레이야 인터뷰에서 볼 수 있다. '넥브레이커'의 뮤직비디오에는 디기리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데, 한해의 인터뷰에 의하면 디기리 참여 전에 뮤직비디오를 찍었고, 또 디기리가 자신의 벌스를 한해에게 앨범 공장제조 3일전에 벌스를 녹음해서 보내줘서 디기리의 벌스를 뮤비에 넣을 시간이 없었다고 한다.

힙플 : 개인적으로도 디기리의 팬이었기 때문에 ‘넥 브레이커’ 에서 디기리를 섭외하는 과정이 궁금하다. 일화가 있다고 들었는데

한 : 진짜 힘들었다. (웃음) 개인적으로 새벽에 생각날 때면, 옛날 한국힙합들을 들으면서 리프래쉬를 하는 편인데, 그렇게 리프래쉬 하는 와중에 디기리형님 앨범을 다시 듣게 됐다. 너무 잘하더라 (웃음) 이게 어떻게 12년전인가 싶을 정도로.. 한창 많이 들었던 게 ‘Zero 영역의 Battle’이라는 곡인데, 그 벌스가 12년전 랩 이라기엔 말도 안됐다. 그래서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하고 있다가 정말 밑도 끝도 없이 비즈니즈(Bizniz)형을 통해 전화번호를 받아냈다.

그 뒤로 2016년 허니패밀리의 리더였던 박명호의 '침대구석'이란 곡에 피쳐링하고 쭉 활동이 없어 잊히는 듯 하다가, SHOW ME THE MONEY 6에 참가자로 출연했다.

2.1. SHOW ME THE MONEY 6[편집]

악마의 편집의 무서움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래퍼

위의 한해 인터뷰에 언급된 '0영역의 배틀'의 벌스를 부르고 1차 예선에 합격했지만 합격을 준 개코는 '보통 합격하면 주변 참가자들이 환호의 박수를 쳐주는데 디기리를 합격 시킬 땐 그런 반응이 없었다'며 긴장해야겠다고 말했다. 때문에 일단은 논란이 있는데, 원곡이 엇박 랩이라 무반주로는 리듬감이 전달되기 어렵긴 해서 2차 예선을 봐야 판단할 수 있을 듯. 아무리 저 랩이 시대를 앞서간 랩이라는 평가를 받는다곤 해도 12년 전 곡을 지금 준비하는 건 너무 안일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2017년 7월 7일 방영된 쇼미더머니6의 2차 예선에서 Pass 1 : Fail 3 으로 턱걸이 3차 진출. Pass를 준 사람은 타이거 JK. 솔직히 떨어져야 하지만 붙여준 것이라며 진지하게 평가하는 JK앞에서 괄약근의 마법사 드립을 치며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었다. 위에 언급돼있듯 병역 기피로 기소되며 생겼던 별명을 자랑인 양 떠든 것.

진지한 태도의 JK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을 했음에도 불구, 장난식으로 넘겨버린 그의 태도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현재 JK의 예상대로 논란이 진행중이며 영비에게 태도를 언급하며 Fail 을 준것과 대비되는 심사는 인맥힙합이라는 떡밥을 다시 올려놓았다.

방송 이후 논란이 되자 JK는 자신의 SNS에 심사가 공정하지 못했다고 인정하고 사과하는 글을 게시했다. 관련기사

방송 직후 안 좋은 의미로 실검에 올랐다. 하루가 지나도 5위 안에는 있다.

뒤이어 디기리의 사과문도 올라온 상태.

하지만 래퍼 심바자와디의 인스타그램에서 이에 대해 글을 썼는데 "2차 예선장에서 과거에 일어난 일에대해 온 국민께 사과하고 싶어 나오셨다는 말씀과 그 90도로 숙인 고개만이 내 기억에 남아있다."라고 글을 써 악마의 편집때문이라는게 거의 기정사실화 되었다.

다만 이 것이 악마의 편집이더라도 이로 인해 어느정도 해소된 것은 인성논란이지 실력에 대한 논란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떨어뜨리지 않은 타이거JK도 문제가 있긴 하지만 2차때 보여준 랩 실력에 대한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3차 예선에서는 1:1배틀의 상대로 자신을 지목한 피타입과 배틀을 벌이게 되었는데 쉼없이 연습을 하는 모습과 피타입에게 2차때의 그 디기리가 아니다, 타이거JK에게 2차때 디기리를 끌어올린 자신에게 먹칠을 하지 않아주어 고맙다라는 표현까지 듣고, 특유의 여유로운 엇박 플로우 구사로 리듬의 마법사라는 별명의 진가를 보여주었다.

또한 2차때 디기리가 쇼미6에 참가한 이유와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사죄한다는 장면을 3화에서 디기리가 탈락이 확정되고 나서야, 즉 1주가 지나고 나서야 방송으로 내보내 엠넷은 그야말로 먼지가 되도록 까이는 중이다. 괄약근 사건 이후 사죄의 의미로 2번의 군생활과 10년의 자숙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악마의 편집으로 인해 최대 피해자가 될 뻔했으나, 오해를 잘 풀게되어 다행인 셈.

2.2. 쇼미 출연 후[편집]

힙플라디오 [매콤한라디오H] 24화에 출연하여 여러가지 썰들을 풀었다.

군대 2번 갔다온 썰을 풀었는데, 편법을 써서 공익을 갔고 편하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가니 이게 군대가는 것하고 별반 차이가 없다고 느꼈고 상당히 후회했다고 한다. 그리고 1년 동안 근무하다가 적발 되었고 재입대하여 군복무를 했다고.
라는건 본인 해석이고 신검당시 항문에 힘을주는 행위로 고혈압 4급 판정을 받았지만 검찰에 적발되어 재입대판정을 받은것이다

과거 리쌍[4]에 속해있었으나 탈퇴했던 것을 후회한다고 했다. 탈퇴 이유는 음악적 견해가 달라서 였지만, 5년만 참고 자기 앨범 내면 됐었는데 그렇지 못했던 걸 후회한다고....

G마켓 광고를 찍었다. cf송 가사에서 "이 랩은 내가 편집해. 악마처럼 멋지게." 라는 가사를 적음으로써 자기가 당한 악마의 편집에 대해 간접적으로 디스를 했다.

3. 여담[편집]

원썬과는 불알 친구라고 한다.

[1] 음절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끊으면서 불규칙한 리듬으로 박자를 타는 스타일. 그러다보니 박자를 엉망으로 탄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일정한 리듬으로 엇박랩을 하던 개리와는 대조적이다.[2] 이 때문에 당시에는 앨범에 통일성이 없다는 혹평을 듣기도 했다.[3] 그래서 얻게 된 별명이 1집 제목이자 자신의 별명 '리듬의 마법사'에서 따온 '괄약근의 마법사'이다.[4] 당시 리쌈트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