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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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일부 게임에서는 슬립 스트림을 드래프트라 칭하기도 합니다. 이에 대한 내용은 슬립 스트림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1. 영어단어 draft2. 스포츠 용어
2.1. 개요2.2. 특징2.3. 이야기거리2.4. 한국의 드래프트2.5. 특별 드래프트 사례2.6. NFL 드래프트
2.6.1. 2018 NFL 드래프트
2.7. 괴담2.8. 기타
3. 트레이딩 카드 게임 매직 더 개더링의 룰 중 하나

1. 영어단어 draft[편집]

1. (명사) 초안 (동사) 초안을 짜다
2. (명사) 선발 (동사) 선발하다
3. (명사) 맥주를 담는 용기 (=draught)

2. 스포츠 용어[편집]

사실상 일반적인 대중들에게는 이것 때문에 잘 알려져있다.

2.1. 개요[편집]

프로 스포츠에서 신인 선수를 선발하는 방식의 하나. 한 해에 프로 계약을 원하는 모든 선수를 모아놓고 구단이 정해진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뽑아가는 개념이다. 신인선수만이 아니라 리그의 특정한 상황에 따라 기존선수를 대상으로 드래프트를 쓰기도 한다. 가령 리그에 신생팀이 들어온 상황에서 신생팀 선수 수급을 위한 확장 드래프트 혹은 KBO의 해외진출선수 특별지명 따위가 이 같은 경우의 예이다.

북미권이나 아시아권 스포츠계에서 흔히 시행하며 유럽은 드래프트라는 개념이 약하고 하는 곳도 적다. 당장의 유럽 축구계 및 농구계만 봐도 알 수 있다. 스페인같은 경우 축구, 농구 할 것없이 FC 바르셀로나레알 마드리드가 휩쓸고 있는 이유도 이에 기인한다.

드래프트제는 프로와 아마추어간 협약과 선수의 신분에 대해 당사자가 모두 합의를 거치지 않으면 효력이 없다. 이를 미국에서는 '단체교섭협약(Collective Bargain Agreement)', 약칭 CBA라고 하며,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매년 노조와 사측이 벌이는 노사협상을 말한다. 이 협상 합의문이 없으면 리그는 돌아가지 않는 직장 폐쇄상태가 되며, 드래프트, 웨이버 공시, FA 제도등 리그 내 모든 선수 신분 관련 규정은 저 CBA 문서가 없는 한 종이쪼가리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CBA를 갱신하는 연도[1]가 다가오면 매년 선수협회와 구단주연합은 조금이라도 자신의 몫을 더 챙기기 위해 단체행동을 하고, 이로인해 파업이나 리그 스케줄 지연 등의 사건이 발생한다.

앞서 주지한 이런 규정이 없는 유럽의 스포츠리그에는 드래프트가 없으며, 구단이 자체적으로 팜 또는 선수수급을 통해 전력을 유지하기 때문에 한 번 강팀이 되거나 인기팀이 되어버리면 돈을 무지막지하게 쓰면서 팀의 전력을 유지하게 된다. 그런데 재밌게도 자본주의이 대명사인 미제미국에서 시작된 이러한 사회주의 스타일의 제도(...)는 주로 미국스타일의 폐쇄적 독립 리그 체제에서 주로 사용한다. 따라서 아마추어 선수는 본인의 의사에 따라 드래프트를 거부할 권리를 갖는데, 이 경우는 그 리그에 들어오지 못하는 제재를 받게 된다. 물론 타 리그에서 뛰는 것을 막지는 못하기에 자기가 원하는 팀에 지명이 되지 않으면 J.D. 드류후쿠도메 고스케, 초노 히사요시처럼 독립리그(실업리그)로 옮겨 뛰다 원하는 팀으로 옮기는 경우도 있다. 다만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같은 경우는 드래프트를 아무리 해봤자 꽝이 나오는 경우가 수도 없이 많은 데다가, 외국유망주들은 아마추어 FA 계약이라는 명목 하에 데려오기도 한다. 그런데 이 역시도 안 터지는 경우가 터지는 경우보다 수없이 많긴 하다.

한국의 스포츠리그는 아마추어 선수층이 얇다는 이유로 졸업생 전원을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제로 드래프트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한국 사정상 그냥 눈감아 주고는 있지만, V-리그문성민 등의 사례[2]를 비롯해 이미 여러 번 문제가 된 적이 있으며, 드래프트를 거부할 권리가 분명히 있음에도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사실 한국은 대부분의 스포츠리그가 폐쇄형 독립리그이고 기반조차 취약하기에 자유계약 제도가 정착하기에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2.2. 특징[편집]

드래프트의 장점이자 주요 목적은 하위팀의 전력보강기회 제공, 검증되지 않은 신인에게 지나치게 많은 돈을 주는 일 방지 등이 있다.이 때문에 드래프트 순위는 주로 성적 역순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최초 도입은 미국 미식축구 NFL이다. 1950년대 각 구단별 재정 불균형 때문에 불과 10여 년 사이에 50여 개 팀이 사라지는 막장을 경험하고 나서 팀간 전력평준화를 위해 성적 역순에 따른 드래프트 제도를 도입하였다. 동시에 도입한 것이 엄격한 하드 샐러리캡(연봉총액제한)과 이익공유제(모든 구단 수입의 40%를 리그 사무국이 일괄 징수하여 전 구단에 균등하게 분배). 이 3가지 제도로 NFL은 절대 강자도 절대 약자도 없는 치열한 경쟁으로 전 구단 흑자라는 전대미문의 업적을 달성했다. 이는 전세계 프로스포츠에서 거의 유일무이한 사례. 가장 미국적인 리그에서 가장 사회주의적인 제도를 통해서 성공했으니 이 또한 대단한 일이다. 이러한 제도는 비슷하게 다른 미국내 3대 스포츠에 적용되었다. 특히 여기에 미국식 리그 시스템은, 드래프트로 들어오는 신인의 연봉을 일정기간 고정하고 단계적으로 상승하게 만드는 루키 스케일-연봉조정 기간이라는 시스템이 같이 있어서, 좋은 신인을 재정적인 부담 없이 쓸수 있다는 장점도 같이 있다. 물론 이것은 구단 입장에서는 장점이지만 선수 입장에서는 반대로 기회의 박탈이 된다.

반면 드래프트의 단점매년 들어오는 아마추어 선수들의 재능이 일정치 않다는 것. 가끔 KBO리그의 89년 이용철같은 별볼일 없는 신인들만 오게 될 때도 있지만, 어느 해에는 그해 FA 최고선수보다도 압도적인 신인이 나올 수도 있다.[3] 따라서 압도적인 실력을 가진 선수가 드래프트 대상으로 나올 경우, 몇몇 하위팀이 그 선수를 얻기 위해 노골적인 탱킹(Tanking:고의로 '최선을 다하는지 않는 경기운영')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NBA의 르브론 제임스나 한국 여자배구의 김연경, 김민지, MLB의 스티븐 스트라스버그브라이스 하퍼 같은 초특급 유망주가 나올 경우. 이들은 모두 소속팀이 전 시즌에 언론과 배구팬들의 비아냥에도 굴하지 않고 연패행진을 거듭해서 쟁취한(...) 선수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특급선수들 중에도 꽤나 꽝이 많이 나오니 함부로 했다가는 오히려 손해만 잔뜩 보는 경우도 적지않다.

하지만 이 탱킹의 존재는 반대로 장점으로도 작용하는데, 이런 초특급 신인을 뽑으면 팀은 이 선수들을 육체적으로 최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20~27세 정도의 나이까지 리그에서 정한 최소한의 연봉만 주고 부려먹을 수 있다.[4] 유럽 축구계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앙토니 마르시알처럼 20살도 안 된데다 상위리그 검증도 안 된 어린 유망주를 단지 가능성만 보고 타팀에 뺏기지 않기 위해 수천만 유로의 이적료와 연봉을 주며 먼저 질러야 하는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둘다 맨유인 건 기분 탓이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선수는 극소수의 대성공 케이스일 뿐 돈값을 못하는 선수라면 팀에 미치는 금전적 피해 수치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수준이며, 이런 선수들은 대부분 먹튀 항목에 이름을 올린다.

당연하지만 독립 리그 제도로 뛰는 미국, 일본, 한국 등의 스포츠리그에서는 팀의 전력을 강화하기 위해 돈보다도 중요한 것이 바로 이 드래프트로 신인을 골라내는 것이다. WAR 항목에도 나와 있지만, 세계의 야구 재능이 몰려드는 메이저리그 야구조차 자유계약시장에서 1년에 WAR 1을 더 올리려고 지출하는 연봉은 800만 달러가 넘는다. FA 제도는 아무리 뛰어난 선수들을 데려와도 가성비가 신인(또는 첫 FA자격 미취득자)과 비교가 되지 않으며, 거의 대부분의 선수들이 빠른 시기 내에 성적 하락을 겪는다. 이 때문에 피지명되는 선수들은 좋은 성적을 내도, 자신을 지명한 팀의 보유권이 없어지기 전까지 금전적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MLB의 인터내셔널 FA나 포스팅 시스템 제도처럼 드래프트를 거치지 않고 입단한 선수들은 처음부터 고액을 받기도 하며, 금방 자유의 몸이 되버리는데, 신인 드래프트 출신 선수들은 그렇지 못하니 불만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외국 선수가 벼슬

다만, 미국 스포츠의 경우 어디까지나 같은 나이대의 FA보다 싸게 쓰는 것 뿐이지 최소연봉급으로 FA 자격 획득 직전까지 특급 선수를 부려먹는건 불가능하다. NBA의 경우 드래프트의 순위에 따라 루키 계약액이 정해지는데 2017년 드래프트 전체 1픽인 마켈 펄츠의 루키 계약은 기본 2년 1500만불, 옵션 2년 3300만불로 합계 4년 4800만불인데 이걸로 이미 앙토니 마르시알맨유와 계약한 연봉(주급 약 76,000유로 - 연간 약 470만불)을 가볍게 능가한다. 결코 싸다고는 할 수 없다. 이후 맥시멈 계약을 따내면 연 수천만불 이상 받을 수도 있다. MLB는 2년(슈퍼2 규정 적용시)까지는 최소연봉을 받지만 2년 이후에는 연봉조정에 들어가는데 이 연봉조정액(연봉조정 안하고 선수와 계약해도 된다)이 특급 선수일 수록, 그리고 연차가 쌓일수록 상당히 커져서 브라이스 하퍼제이크 아리에타 같은 특급 선수의 경우 FA 이전에도 년 1300~1500만불쯤 받는다. 역시 이후에 FA 계약하면 수천만불 이상 받게 된다. 즉, 드래프트 제도라고해도 무조건 싼 값에 좋은 선수들을 마구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연봉은 시장 크기에 따라가는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선수의 현재가치보다 싸게 쓰는 건 맞으니까, 이를 보상하는 겸해서 입단시에 계약금을 주게 된다. 문제는 계약금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고, 원하지 않는 팀으로 가기 싫어 징징을 시전하여 계약에 난항을 겪거나 아예 입단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례는 존 엘웨이, 일라이 매닝. 야구에서는 前 보스턴 레드삭스 외야수 J.D. 드루의 경우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지명받았다가 계약금을 더 받아내고 싶어서 지명을 거부하고 독립리그에 입단했다가 1년 뒤 드래프트를 재수하는, 당시로써는 충공깽스러운 선택을 했으며, 그 결과 은퇴할 때까지도 필라델피아 원정만 오면 무시무시한 야유를 받는다.

한국에서의 드래프트 거부 사례는 프로축구의 김종부, 박주영이나 남자 배구의 이경수 등 버라이어티한 사례들이 많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입단을 목표로 하여 드래프트를 거부한 초노 히사요시, 스가노 도모유키 역시 마찬가지.이태원LG 트윈스에 입단하기 싫다는 이유로 지명을 거부하고 동국대학교로 갔는데 대학교 졸업 후에 또 LG 트윈스에 지명돼서 끌려갔다가 선수생활 말아먹었다. 한번 사고쳤다고 바로 방출시킬거면 뭐하러 선수한테 욕먹어가면서 근성으로 두번이나 지명을 한건지...

NBA나 NHL 같은 리그에서는 위의 탱킹을 방지하기 위해 '드래프트 로터리'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전년도 성적 역순으로 자동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년도 성적을 기준으로 일정 수의 팀에 전체 1번 픽의 확률을 차등으로 부여하고, 드래프트 전에 추첨을 통해 1, 2, 3순위를 뽑아 순위를 재조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꼴등을 하더라도 무조건 1순위 지명권을 받아오는게 아니라서 잘못하면 성적은 성적대로 망하고, 최상위 지명권도 못얻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하지만 정규 시즌 순위가 낮을 수록 고순위를 뽑을 확률을 높게 주므로 그래도 탱킹을 하는게 현실이다.

NBA에서는 1985년 드래프트에 최초로 시행이 되는데, 이 제도를 통해 특급 유망주들이 간혹 처음부터 빅마켓 팀에 가는 경우가 나오곤 한다. 예를 들자면 최초로 시행됐던 그 해에 최대어 패트릭 유잉이 당시 꼴찌가 아니었던 뉴욕 닉스 유니폼을 입게 되었고, 2008년에는 1.17%라는 낮은 확률을 뚫고 시카고 불스가 1순위를 따내서 데릭 로즈를 얻게 됐다. 그렇다고는 해도 확률이 차등이기 때문에, 대부분 NBA 전문가들은 로터리 1위 경쟁팀이 되면 자기 동네 응원팀이라도 그냥 연패해서 로터리 확률이나 높이라고 할 정도다.

문제는 그럼에도 이 로터리에 대해 뒷담화나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 NBA가 특급 신인을 빅 마켓에 보내 (프랜차이즈) 스타로 만들려고[5] 로터리 추첨을 조작한다는 것인데,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 근거는 전혀 없다.

이런 이유로, 미국 프로리그에 있어서 신인 드래프트는 정규 시즌중이건 비시즌이건 중요한 이벤트이고 따라서 TV중계가 따라온다. 특히 컴바인-드래프트 연계가 잘 짜여진 NFL 드래프트의 경우 2018년 6개 스포츠채널등에서 중계되어 총합 3.57%의 시청률에 총 550만명의 시청자가 관람한 나름 중요 TV컨텐츠중 하나다.

2.3. 이야기거리[편집]

  • 몇몇 해에는 정말 뛰어난 재능들이 몰리기도 하고,[6] 몇몇 해는 그야말로 흉작으로 꼽히기도 하는 등 희비가 엇갈리는 것은 앞에서도 언급했는데, 그 중에서도 특정 몇년은 이름이 붙을 정도로 특이한 경향성이 보이기도 한다.
    특히 이런 것 잘하는 것이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이다. 1999년 드래프트는 일명 조시 드래프트라고 불리는데, 조시 베켓조시 해밀턴이 그 해 투타 최대의 유망주였기 때문. 3년만인 2001년 드래프트는 다시 마크 드래프트라고 해서 마크 프라이어마크 테세이라가 투타 최대의 유망주였다.하지만 전체 1순위는 조 마우어였다는게 함정 2002년 드래프트는 잭 그레인키, 프린스 필더 등 재능이 넘치는 선수들이 많은 해였지만 그런 거 없이 빌리 빈이 자신의 방식으로 선수를 영입한 일명 머니볼 드래프트로 유명하다. 이런 것은 드래프트 단계부터 유망주 선수들의 홍보를 하는 수단이기도 해서 각종 스포츠 팬들은 이런 요소를 도입해야 한다고 아우성이지만...

  • NBA의 경우 농구라는 종목 특성상 드래프트 상위픽이 슈퍼스타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아서[8][9] MLB 이상으로 드래프트를 포장하고 특히 각 해의 1번픽 예상 선수들은 근 1년 전부터 언론과 전문가들이 금칠을 해 주는데, 이 포장질의 절정이 고1 때부터 무려 3년간 포장을 해 줬던 르브론 제임스. 그러나 르브론이 데뷔했던 2003년은 1984년,[10] 1996년[11][12]과 함께 느바 역사상 3대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드래프트로 꼽히는 해[13]라, 무턱대고 르브론만 띄워 줬던 것은 아니고 다른 선수들도 굉장히 주목을 받았다.

드래프트의 중요성 때문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가능성이 희박한 하위권의 경우 팀 운영을 일부러 개판으로 하는 이른바 탱킹을 시전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위에 언급된 르브론 제임스를 뽑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로, 2002-03 시즌 당시 공동 꼴찌를 기록한 덴버와 함께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개판인 경기력을 선보였다. 또한 1983시즌 후반에 기괴할 정도로 연패를 거듭한 휴스턴 로키츠[14] 역시 탱킹이 의심되는 팀이었고,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 도입된 것이 하위 7개팀 들 사이에서 1~7순위를 정하는 로터리 제도이다.[15][16]

추가로 NBA의 경우 자동 참가라고 해서 신청을 하지 않은 선수들도 일정 자격을 갖추면 자동으로 지명 대상이 되어 선수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지명될 수 있다.[17] 그 자격요건은 다음과 같다.

  • 미국인 선수의 경우

    • 1. 4년간 대학에서 뛰었을 것.

    • 2.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미국 대학에 입학하지 않았을 경우, 고교 졸업 이후 4년이 지났을 것.

    • 3. NBA 외의 프로리그 팀과 계약을 해서 뛴 경험이 있을 것.

  • 외국인 선수의 경우

    • 1. 드래프트가 열리는 해 기준으로 만 22세 이상일 것.[18]

  • 2. NBA 외의 미국 리그의 프로팀과 계약해서 뛴 경험이 있을 것.


당연하지만 뽑혔다고 해서 강제로 NBA에 끌려와 뛰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선수가 훗날 NBA에서 뛰기로 마음먹었을 경우에는 그를 지명한 팀이 그를 트레이드하지 않을 경우 무조건 이 팀과 계약을 해야 한다. 추가로 NBA팀 입장에서는 "데뷔 안 한 선수에 대한 권한" 역시 자산으로 취급되어 트레이드할 수 있다.

이 드래프트 대상자 조항은 수십 년간 계속해서 수정되었기 때문에 과거에는 정말 생뚱맞은 선수들도 뽑히곤 했다. 마이클 조던, 하킴 올라주원, 찰스 바클리, 존 스탁턴 등이 뽑힌 전설의 1984년 드래프트에서는 조던을 3번픽으로 뽑은 시카고 불스가 208번픽으로 육상선수 칼 루이스를 뽑기도 했는데, 황당한 것은 루이스는 정식농구 경력이 없었다는 점. 당시 시카고 불스에서 서부 지역 스카우트 팀을 이끌던 론 와이스는 남아 있던 선수 중 최고의 운동선수라서 뽑았다고 설명했다. 당연히 루이스는 NBA에서 뛰지 않았다. 재밌는건 NFL드래프트에서도 12라운드에 뽑혔다는 점.

루이스의 순위를 보면 짐작이 가겠지만, 당시만 해도 NBA는 소화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신인을 드래프트로 뽑았다. 팀이 겨우 23개인데 10라운드까지 진행되서 매년 200명 내외가 지명될 정도. 과거에는 이 라운드수가 왔다갔다 했는데, 1960년과 1968년에는 무려 21라운드까지 간 적도 있었다. 당연히 하위 라운드에서 지명된 선수들은 생존 가능성이 거의 없었고, 이 때문에 9, 10라운드까지 가면 뛰지 않을 게 뻔한 선수들도 종종 지명되곤 했다.

1977년에서 뉴올리언즈 재즈는 루이자 해리스를 7라운드 137번픽으로 지명했는데, 그녀는 NBA에서 사상 최초로 공식 지명된 여자 선수였다.[19] 그러나 당시 시대상으로 보나 남녀 사이의 수준차로 보나 그녀가 NBA에서 뛰는 것은 불가능했다.

가끔 하위 라운드 출신 중에 두각을 나타내는 이들도 있다. 1979년에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 3라운드 65번으로 뽑힌 빌 레임비어는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로 트래이드된 후 훗날 명예의 전당에 오를 정도로 탁월한 커리어를 보냈는데, 그는 역사상 최악의 더티 플레이어로도 유명하다. 탁월한 득점력과 무표정한 얼굴로 유명한 "Iceman" 조지 거빈 역시 3라운드 출신이다. 이에 1990년대 이후에는 2라운드로 줄어들었는데 이 드래프트에 강한 두각을 나타내는 팀이 샌안토니오 스퍼스다. 토니 파커는 1라운드 28번재 픽, 마누 지노빌리는 2라운드 59번째 픽이다. 사실 지금 에이스가 된 카와이 레너드도 인디애나에게 1라운드 15번째 픽이었는데, 그 잠재력을 눈치챈 경영진은 그를 트레이드 해왔다.

1985년에는 7라운드로 줄어들고 1989년에 현행 2라운드로 정착되면서 지명자 수는 훨씬 적어졌지만, 일단 지명된 선수들은 거의 안전하게 계약을 하게 되었다. 1990년대에 선수노조와 구단주들이 협상한 결과에 따라 1라운드 지명선수들은 전원 계약이 보장되며 지명순위에 따라 계약액수가 정해지게 되었는데, 규정상 보장은 아니더라도 2라운드 선수들도 대부분 관행에 따라 최소 2~3년의 최소연봉으로 계약을 한다.[20]

2.4. 한국의 드래프트[편집]

2.4.1. 프로농구[편집]

1996년부터 드래프트를 실시했다. 역대 국내선수 드래프트 현황은 당 사이트 참조.

발족서부터 여러가지 이유로 드래프트를 여러 번 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였다. 외국인 선수를 자유계약할 경우에 생기는 이른바 뒷돈문제를 고려하여 초기에는 외국인 선수를 드래프트로 선발했다가, 잠깐 자유계약으로 전환했더니 예상대로 뒷돈 문제가 터지면서 드래프트제로 환원. 그 외에도 귀화선수 특별 드래프트 등 드래프트가 자주 열린다.

2.4.2. 프로배구[편집]

배구리그의 팀 간 계약 관행과 여러 이권 다툼으로 드래프트에 관련해서 매우 파행이 잦았던 리그이다.

실질적 드래프트는 프로 출범 전인 2000년부터 시작되었고, 중간에 한양대학교 소속 이경수 선수 스카우트 파동으로 중단된 적도 있다. 여자배구리그에서는 1순위 선수를 위한 탱킹까지 발생한 데다 대한배구협회와 KOVO의 갈등으로 인해 몇 번이나 파행운영을 겪는 등 드래프트가 아직도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리그.

지난 2009년 드래프트에서도 대학교 3학년 마치고 얼리엔트리로 프로에 참가하려던 한양대학교의 거포 박준범[21]을 우리캐피탈의 유망주 싹쓸이[22]를 이유로 나머지 구단이 반대하여 드래프트가 파행을 겪는 등 좀처럼 구단과 협회, 선수간의 알력싸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나마 2012년 이후부터는 매 시즌 조변석개하는 농구보다는 제도가 무난하게 굴러가는 상황[23]이라서 그런지 문제가 별로 안보이는 편. 얼리엔트리도 확장되어 대학교 2학년뿐 아니라 고등학생(2013년 입단한 대한항공의 정지석이 박철우 이후의 첫 고졸 입단이다.)도 참가할 정도로 폭이 넓어졌다.

방식은 추첨제+역순위의 혼합이다. 전체 1~3순위는 전 시즌 리그 최저 순위 3팀이 각각 1순위 지명확률 50%, 35%, 15%로 나눠가져서 구슬 뽑기로 순서를 정하고, 이 순서에 따라 드래프트가 ㄹ자로 진행된다.

유독 지명권 양도 논의가 많은 종목이다. 즉, 마일영의 케이스가 많다는 소리다.

  • 2011-12시즌 현대캐피탈과 드림식스의 송병일, 이철규 ↔ 2011 드래프트 1순위 지명권 맞교환 시도[24]

  • 2012-13시즌 도중 변경된 삼성-드식간의 최귀엽+2013 드래프트 3라운드 지명권 ↔ 4억 5천만 원[25]

  • 2013 드래프트 직전 도공-인삼공사의 이재은, 이보람 ↔ 차희선, 2013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 양도[26]

  • 2013-14시즌 종료 후 한전-삼성의 곽동혁 ↔ 2014 드래프트 2라운드 지명권[27] 양도

  • 2015-16시즌 도중 대한항공-한국전력의 강민웅, 전진용최석기, 2016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28] 양도

  • 2016-17시즌 후 현대캐피탈-대한항공의 정성민 ↔ 2017 드래프트 2라운드 지명권 양도

  • 2016-17시즌 후 현대캐피탈-우리카드의 조근호, 우상조 ↔ 2017 드래프트 2라운드 지명권 양도

2.4.3. 프로야구[편집]

2.4.4. 프로축구[편집]

1988년부터 드래프트를 시작했다. 그러나 월드컵등을 통해 해외리그에 대한 관심이 올라가고, 자유로운 시장계약방식으로 돌아가는 해외리그에 선수 유출이 시작되면서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중단되기도 했었다. 김동현, 박주영 계약파동으로 2006년부터 드래프트가 재개되었지만 위의 이유로 야구에 비하면 드래프트에 대한 심리적 저항이 거센 편. 게다가 소위 루키라 불리는 어린 신인의 데뷔를 막는 제도이기도 하다. 유럽권에서는 실력만 인정 받으면 고등학생의 나이에도 데뷔전을 치르며 경험치를 쌓을 수 있지만 K리그는 드래프트 제도로 인해 어린 선수들의 계약이 막히는 경우가 발생한다(그런데 이는 드래프트나 노동법의 문제가 아니라 학원축구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2014년 12월을 화끈하게 달궜던 황희찬 사태 역시 이와 관련이 있다. 프로축구연맹도 장기적으로 드래프트를 폐지한다고 한다.

지명순위별로 연봉 상한선과 의무 계약 기간이 존재하는데 연봉 상한선도 낮은편인데다가 의무 계약도 4년이었고, 계약금도 없었기 때문에[29] 많은 유망주들이 낮은 연봉으로 인해 해외로(특히 J리그) 나가게 하는 결정적인 빌미가 되고 있다.(그리고 그 결과로 많은 유망주가 망가진다.) 그때문에 계약금에서 일부 금액을 지급받는, 일명 선수장사를 하는 대학팀 감독들이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30]그리고 드래프트를 반대하는 축구팬들조차 이들은 까임의 대상이다. 거기다 김종부 파동+김동현 파동+박주영 파동. 드래프트 부활에는 대학팀(고려대)이 가장 큰 공헌을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06년 드래프트 재개에 큰 목소리를 낸 시민 구단들 역시 최근에는 드래프트에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배기종이나 염기훈과 같이 팀에 대한 충성심이 없는 실력있는 선수는 결국 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보니, 아직 쓸만하지만 수도권팀들이 재계약을 하지 않은 베테랑과 조금 실력이 떨어져도 꾸준하고 충성심이 있는 유망주와 선수들, 그리고 용병대박위주의 운영을 많이 고려하고 있다.

다른 종목에서 멀쩡하게 돌아가는 드래프트가 축구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건 다른 국가의 리그와의 선수 이적이 적거나 거의 없다시피한 다른 종목들과는 달리 축구는 다른 국가의 리그들과 치열한 경쟁체제에 있다는 점이 크다. 한국에서 좋은 신인이 나오면 한국 축구팀들만 그 신인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일본, 중국 더 넓게는 중동이나 유럽에서까지 관심을 보이니 드래프트와 같은 선수에게 불리한 제도를 제시할 경우 선수들의 해외 유출을 막기가 힘들다. 선수 입장에서는 해외에서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데 연봉도 적고 자신이 원하는 팀을 정할 수도 없는 드래프트는 당연히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드래프트라는 방식은 위에도 서술되어있듯 폐쇄적인 미국식 스포츠 리그에 적합한 방식이며(메이저 리그 사커는 드래프트가 있다.) 전세계적으로 활발한 선수 이동이 일어나는 축구에는 적합하지 않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전년도 성적에 따라 지명권을 주는 드래프트 방식으로는 1부리그에서도 충분히 활약할 만한 선수가 2부리그에서 가고 싶어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본적인 고찰만 해도 신인선수들에게 얼마나 불합리하게 다가올 지는 생각해 볼 만한 문제다.

때문에 2012년 승강제 도입에 맞춰 매년 자유선발 선수를 1명씩 점진적으로 늘리되, 2016년에는 드래프트를 완전히 폐지하기로 하였다. 우선지명 방식을 병행하여 운영하는 기존의 방침에 2013 K리그부터 드래프트에 앞서 자유선발 방식을 도입한 것. 자유선발 인원은 2013년도에는 자유선발로 각 구단이 한명씩 계약할 수 있으며, 2014년도에는 둘, 2015년에는 셋, 2016년도에는 모든 신인을 자유선발로 전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단, 2016년 이전에 프로리그에 합류하는 신생구단은 자유선발 선수 제한이 2015년까지 5명씩 할 수 있도록 하여 구단의 경쟁력을 충분히 갖출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그리고 2016년부터는 완전 자유선발로 전환하도록 되어 있다.

2.4.5. e스포츠[편집]

2005년부터 실시되었다.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에 참가하는 10개팀이 커리지 매치를 통과해 프로게이머 자격을 갖춘 선수를 지명해 계약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10개팀이 각각 아마추어, 준프로 선수들의 풀이 별개로 존재하고 굳이 남의 팀 연습생을 빼갈 정도로 연습생 확보 경쟁이 이뤄지는 곳이 아닌지라(이영호가 유일하게 문제가 됐던 케이스) 드래프트가 크게 전력강화의 목적이 아니다.

카트라이더 리그 또한 2014년부터 드래프트 제도를 실시하였는데, 매 리그별로 8개의 레이싱팀[31]이 참가하여 선수를 뽑는다. 2014년에 열린 리그에서는 8개 팀이 1차~4차, 1순위~8순위로 한 명씩 선수를 뽑았으나, 2015년 이후 선수들이 미리 팀을 짜면 카레이싱팀이 그 팀을 통째로 드래프트하는 방식으로 바뀌어, 드래프트가 사실상 거의 무의미해졌다.[32] 특이한 점은 특정 선수의 소속 팀은 리그 기간동안만 적용되며, 리그가 끝날 시 그 팀은 해체되고 다음 리그에서는 새로운 팀으로 들어가게 된다. 또한, 모든 참가자 중 자율로 드래프트하는 것이 아닌, 드래프트 전에 따로 대회를 열어 뽑은 32명 중에서만 드래프트를 하는 방식이다.

레이싱 게임 내에서[33] 뒤로 따라가면 속도가 악착같이 붙어서 따라잡는 기술이다. 카트라이더에서 9엔진을 통해 생겨났다. 마리오카트에서도 있었다. 언제인지는 추가바람. 이걸로 마지막 한방을 노리는 망겜이 된 레이싱 게임의 예시 카트라이더

2.4.6. 프로바둑[편집]

2004년 한국바둑리그가 출범한 이후 드래프트를 시작한다. 한국바둑리그의 특이한 점은 스폰서팀만 고정이고 나머지 연고지와 선수는 매년 드래프트로 정한다는 것. 따라서 한 선수가 한 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매년 소속팀과 연고가 바뀔 수 있다. 매년 선수가 바뀌지만, 2007년부터 최규병 감독이 이끄는 영남일보팀이 3년 연속 한국바둑리그 우승을 달성했으며 3년 연속 영남일보팀에 뽑힌 김지석 6단이 MVP를 2회 수상하는 등 한국바둑리그의 에이스로 군림하고 있다. 예전에는 예선전과 랭킹을 따져가며 추려서 선수를 선발했으나 최근엔 한국기원 소속기사들 전원을 대상으로 하는 전면 드래프트로 선수를 선발하고 있고 2015시즌 부터는 보호선수 규정이 확대되면서 5명까지 선수를 보호할 수 있도록했다.

2.5. 특별 드래프트 사례[편집]

2.6. NFL 드래프트[편집]

파일:2018 NFL Draft.jpg

2018 NFL 드래프트 현장


NFL에서 매년마다 개최하는 신인선수 드래프트. 미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인 미식축구 드래프트답게 다른 프로 종목들과는 달리 많은 관심을 끄는 드래프트식인데다 무려 3일간 개최된다는 점 역시 특이사항이다. ESPN과 리그가 운영하는 NFL Network[34]에서 방송된다.

매년 봄에 개최되는 미 프로 미식축구 선수 드래프트로 대학 미식축구 최대 유망주들이 NFL팀들에 의해 선택받는 기회이다. 특히 대학미식축구에서 유망주로 지목된 선수들은 어김없이 초청받는다. 다만 사정이 생겨 직접 참가할 수 없는 선수들은 집에서 지인들과 가족들이 모여 팀의 지명을 기다리게 된다.

대게 미국 대학 미식축구의 명문학교 출신들은 어김없이 단골로 출연한다. 앨라배마 대학교, 플로리다 주립대학교, 루이지애나 주립대학교,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와 같은 학교 출신들은 1라운드를 거의 장악하다시피 한다. 다만 팀이 최우선으로 해결하려는 포지션에 따라 일부는 1라운드 거의 막바지에 이르기도 한다. 한 예로 그린베이 패커스의 주전 쿼터백 애런 로저스는 1라운드 24번까지 내려오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대게 1라운드로 지명된 선수들은 즉시 전력감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1라운드로 지명된 선수들은 호명과 함께 가족, 친지들이나 지인들과 함께 감격을 나누기도 한다.

장소는 1965년부터 뉴욕에서 실시되어왔고, 특히나 1995년부터는 매디슨 스퀘어 가든 그리고 2006년부터는 라디오 시티 뮤직홀에서 거행돼 왔으나 2015년부터 뉴욕을 떠나 다른 도시에서 펼쳐지고 있다. 이로 인해 NFL 특수를 노리려는 많은 도시들[35]의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2015,16년부터 시카고에서 개최되면서 도시별 경쟁 체제의 서막을 알렸고 2017년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되었고, 2018년댈러스-포트워스 지역의 AT&T 스타디움에서 개최된다.

2.6.1. 2018 NFL 드래프트[편집]

2018년 드래프트는 특히 각 구단들의 눈치작전이 치열할 것으로 보이는데 특히 최대 쿼터백 유망주들이 즐비한 해여서 쿼터백을 최우선 전력감으로 삼아야하는 팀들에겐 트레이드나 픽 스왑을 통해 지명을 노리는 상황이 일어날 전망이 커진다. 와이오밍 대학의 조쉬 앨런(Josh Allen), UCLA의 조쉬 로즌(Josh Rosen),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샘 다널드(Sam Darnold), 그리고 오클라호마 대학교의 베이커 메이필드(Baker Mayfield) 등이 올 2018년 드래프트 1라운드 상위 픽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36][37]. 비 쿼터백 포지션은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의 러닝백 세이콴 바클리(Saquon Barkley)[38], 노트르담 대학교의 오펜시브 라인맨 쿠엔틴 넬슨(Quentin Nelson)[39], 노스 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의 디펜시브 엔드인 브래들리 첩(Bradley Chubb) 등이 있다. 그야말로 즉시전력감들을 올 2018년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얻을 수 있어서 무엇보다 행복한 고민을 할 구단들이다.

2018년 4월 26일{현지시간}으로 댈러스AT&T 스타디움에서 거행된 드래프트에서 클리블랜드가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2017년도 하이스만 수상자인 오클라호마 대학교의 쿼터백 베이커 메이필드를 1라운드 전체 1순위로 뽑아 충격과 공포로 시작된 가운데[40] 이후 거의 전문가의 예상도에 빗나가는 지명을 하는 팀들이 많은 가운데 올시즌 쿼터백 대부분이 탑 10순위 안에 모두 지명되어 나쁘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41] 다만 뉴올리언스 세인츠같은 팀은 순위 바꾸기를 너무하다가 결국에는 디펜시브 라인맨 마커스 대번포트를 지명했는데[42]1라운드감의 기량이 아니라는 혹평을 받고 있고[43], 시애틀 시호크스 또한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러닝백들을 패스하고[44] 샌디에이고 주립대학교 출신 라샤드 페니를 지명해서 혹평을 받은지라 귀추가 주목된다.

아울러 이번 2018년 NFL 드래프트 1라운드는 쿼터백으로 시작해 쿼터백으로 마무리 짓는 드래프트가 되었다.1라운드 전체 1순위로 브라운스가 베이커 메이필드가 지명됨으로 시작되었고 1라운드 마지막을 32순위로 볼티모어 레이븐스루이빌 대학교의 쿼터백 라마 잭슨을 지명함으로써 끝냈기 때문이다.

아울러 올해 2018년 드래프트에서 주목할 것이 시애틀 시호크스가 5라운드 141번째로 지명한 센트럴 플로리다 대학교 라인배커 샤킴 그리핀(Shaquem Griffin)인데 양막띠 증후군으로 인해 선천적으로 왼손이 자라지 못해 4살때 절단수술을 받은 장애인 선수이다[45]. 이 선수는 1년 먼저 입단한 쌍둥이 형 샤킬과 함께 시애틀 시호크스에서 뛰게 되었다.

전술한대로, 2018 NFL 드래프트는 3일에 걸쳐 ESPN, ESPN2, ESPN Deportes, Fox, ABC and NFL Network 6개 채널에서 중계되어 총합 3.57%의 TV시청률, 총합 550만명의 시청자가 시청하여 전년대비 시청률 25%,시청자수 20% 상승했다고 한다. 드래프트 시청률 상세 분석 기사.

2.7. 괴담[편집]

드래프트가 활성화된 미국에서는 그동안 발생했던 수많은 사건때문에 드래프트에 대한 이런저런 뒷이야기들이 많으며, 일부는 괴담을 넘어 징크스에 가까운 위력을 발휘하는 경우도 있다.

  • NBA의 2, 3번픽 징크스 : 1984년 드래프트에서 일어난 샘 보위와 마이클 조던의 사례로 너무나도 유명한 케이스. 유독 2번픽 선수가 3번픽 선수에 비해 실패확률이 높은 징크스를 말한다. 그리고 이는 2003년 다르코 밀리시치와 카멜로 앤써니를 통해서 재현된다. 이는 이후로도 드래프트때마다 선수의 전체적 재능과 팀의 필요(특히 포지션 문제)가 충돌할때 어떤 쪽을 택하는 것이 정답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도 쓰인다. 대부분 2번픽 선수가 실패하는 이유가 드래프트 당시 팀의 필요를 우선시[46][47] 하면서 재능이 떨어지는 선수를 뽑아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 포틀랜드의 센터 징크스 : 농구 재능으로는 사상 최고라는 찬사를 받던 센터 빌 월튼은, 포틀랜드 시절 수도 없이 부상에 시달리며, 가지고 있던 재능을 절반도 못 보여줬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예의 전당 멤버 ㅎㄷㄷ[48] 위의 2픽에서 언급한 샘 보위 역시 216cm의 장신에다 뛰어난 수비력을 지녔으며, 체격이 믿기지 않을 만큼 발이 빠르고 운동 능력이 탁월해 기대치가 높았다. 다만 폭발적인 모습으로 코트를 누비던 대학 2학년 시절에 정강이가 부러지면서 2년 가까이 쉬는 바람에, 4학년에 복귀해서는 부상 이전 만큼의 압도적인 모습은 보이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전에 보여준 기대치가 워낙 높아서, 당시 자타공인 대학 No.1 센터 패트릭 유잉, 성장 잠재력과 유연성은 유잉을 능가한다는 하킴 올라주원에 이은 대학 센터 No.3의 위치였다. 따라서 센터가 절실하게 필요했던 포틀랜드 입장에서는 샘 보위가 부상 전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면 충분히 납득이 가는 픽이었으나...보위는 건강하기만 하면 팀이 기대했던 빠른 스피드와 운동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문제는 발이 부러져 4년 동안 5차례나 수술을 받는 등 건강한 적이 거의 없었다는 점. 그 사이 훗날 무시무시한 이름들이 된 드래프트 동기들은 리그의 스타를 넘어 NBA의 역사를 빛내는 존재가 되어 포틀랜드의 선택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24년 전 보위의 경우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포틀랜드는 이번에도 케빈 듀란트대신 희대의 유리몸 그렉 오든을 전체 1번으로 뽑는다.(..) 그러나 오든은 르브론 제임스의 고교 시절에 필적하던 역대급 재능으로 고교 시절부터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만큼, 현재 케빈 듀란트의 모습만 보고 그를 뽑지 않았던 포틀랜드를 비난하긴 어렵다. 당시의 케빈 듀란트는 최고의 2순위였을 뿐, 2007년 드래프트는 '그렉 오든 드래프트'라고 불리며, 팀들이 대놓고 오든을 얻기 위해 노골적인 탱킹을 불사하던 시기였다. 그도 그럴것이 오든은 괴물같은 운동 능력과 당장 NBA에서 센터로 뛰어도 디펜시브 팀 수상은 맡아뒀다는 탁월한 수비력은 물론, 높은 BQ와 팀 플레이어로 재질도 훌륭하다는 극찬이 쏟아지던 초대형 정통센터 재목이었다. 게다가 전설중의 전설 빌 러셀마저 아예 자신의 후계자로 가장 가까운 스타일이라고 대놓고 애정을 드러냈으며, 농구계는 드래프트에 막 나온 루키에게 드와이트 하워드와 라이벌 구도로 리그를 양분할 것이라는 성급한 평가와 함께, 데이비드 로빈슨의 재래, 패트릭 유잉 수준의 기대치를 공공연하게 드러냈고, 심지어 망해도 디켐베 무톰보라는 단정까지. 이런 오든을 안 뽑는다? 그야말로 정신나간 짓 이었다. 드래프트 당시 완성도가 높은 듀란트도 매우 후한 점수를 얻었지만, 어디까지나 '다른 해에 나왔으면 1순위 감'이고 '오든을 제외한 1순위' 였지, 전체 1순위는 오든이 고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이미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이 드래프트 직후 오든은 무릎 미세골절로 수술을 받게 되어 시즌 아웃. 이후 화려한 부상 이력 속에 사이버 센터라는 오명과 명예의 전당급 노안으로 개그 소재로나 간혹 등장할 뿐, 듀란트보다 높은 평가를 받던 때는 아득한 기억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 NBA의 6번픽 필패 징크스 : 1978년 래리 버드가 전체 6번픽으로 명예의 전당에 오른뒤[49] 그 이후 NBA에서 전체 6번으로 입단한 선수들이 하나같이 망했다. 그보다 높은 픽의 선수들도 망할수 있는게 거친 프로세계지만 1988년 6번 허시 호킨스, 2001년 6번 셰인 베티에같이 괜찮은 선수정도로 남은 것이 그나마 선방이고 드라마틱하게 망한 선수가 한둘이 아니다. 심각한 유리몸으로 전락하거나 반쪽 주전, 심지어는 잘 뛰다가 멘탈이 망가지면서 훅가는 선수(ex:앤트완 워커) 등 유독 안좋게 망하는 사례가 잦아서 거의 징크스 수준까지 올라갔다. 거기다 2006년 전체 6번픽으로 지명된 후 신인상 수상 및 3년 연속 올스타에 뽑히며 맹활약해 6번픽 징크스를 깨줄거라 믿었던 포틀랜드의 브랜든 로이도 무릎 부상때문에 조기은퇴 크리를 맞고 6번픽 징크스는 현재진행형이 되고 있다. 그리고 포틀랜드의 2012년 6번픽 데미안 릴라드가 13년 신인상을 수상하는데... 아까부터 유난히 포틀랜드가 많이보이는데 기분탓이겠지

  • 주사위 징크스 - 드래프트 순위와 직접 연관이 있는건 아니지만, 과거 프로야구의 1차지명이라는 것이 존재하던 시절 OB 베어스에 존재했던 안습의 징크스. 잠실 라이벌이었던 OB 베어스와 LG 트윈스는 연고가 서울로 같기 때문에 1차 지명할 유망주가 서로 겹칠경우 주사위로 우선순위를 정했었다. 1991년부터는 1차 지명이 팀당 1명으로 줄었기 때문에 서울에 대어급 선수가 나오면 필연적으로 주사위승부를 해야했다. 그리고...두산은 주사위게임에서 매년 졌다. 이때문에 두산이 원하는 선수를 LG에게 줄줄이 뺏긴 안습의 역사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잠실시리즈 항목 참조.

2.8. 기타[편집]

2014년 NFL의 신인드래프트를 소재로 한 영화 '드래프트 데이'가 개봉하였다. 주연은 케빈 코스트너.

스포츠가 아닌 분야에서는 일본의 아이돌그룹 AKB48이 드래프트를 실시한다. 자세한 것은 AKB48/드래프트항목 참조.

WWE에서는 RAW와 SMACKDOWN 둘로 나뉜 후 간혹 드래프트를 터트렸다가 이후 흐지부지 로스터를 통일했다. 2016년 7월달 다시금 드래프트를 통해 로스터가 나뉘어졌다.

3. 트레이딩 카드 게임 매직 더 개더링의 룰 중 하나[편집]

즉석에서 확장팩을 뜯어 나온 내용물로 덱을 구성해서 플레이하는 리미티드 포맷의 일종으로, 그냥 부스터를 뜯고 바로 덱을 만드는 실드 덱과 달리 덱을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다른 플레이어와 경쟁을 벌여야 한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여러 플레이어가 함께 테이블에 앉고, 각자 부스터 팩을 하나씩 배부, 동시에 뜯는다.
2. 들어있던 카드는 자기만 볼 수 있도록 한다.
3. 플레이어는 시간 내에 각자 자기가 들고있는 부스터 카드 중 한 장을 골라, 자신만의 카드 풀에 넣는다. 비공개로.
4. 신호가 되면 모든 플레이어가 남은 부스터 카드를 특정 방향으로, 옆에 있는 플레이어에게 넘긴다.
5. 이런 식으로 부스터의 카드가 전부 플레이어들의 카드 풀에 들어갈 때까지 3~4를 반복한다.
6. 부스터 하나분이 다 떨어지면, 각 플레이어마다 새 부스터 팩을 뜯고 이를 반복, 한 플레이어당 부스터 세 팩을 뜯어서 이런 식으로 카드풀을 만든다.

참고로 부스터 카드를 어느 방향의 플레이어에게 돌릴지는 새 부스터를 뜯을 때마다 바뀐다.

모티프는 바로 위 항목의 스포츠 드래프트 맞다. 정확히는 MLB의 트레이딩 카드 게임에서 위 드래프트 개념을 카드에 접목시킨 룰에서 비롯되었다. 애당초 매직에 앞서 트레이딩 카드란 개념은 스포츠 선수들을 팬시 상품화한 카드들이 시초가 되었기 때문에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MTG에 드래프트 룰을 정립시킨 장본인은 바로 돈법사의 부사장이자 MTG 연구개발 부서의 수장인 빌 로즈다. 자세한 건 해당 항목 참고.

[1] 리그 별로 다르나 보통 5~6년 정도가 갱신 주기.[2] 2008년 드래프트는 한국전력의 프로화와 우리캐피탈의 창단이 맞물린 드래프트로, 저 당시의 드래프티들이 신영석, 박상하, 황동일 등으로 2013년 드래프트 전까지 역대 최고의 드래프트로 언급되기도 할 정도였다. 당시 한국전력과 우리캐피탈은 각자의 이유 때문에 신인들을 최대한 많이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첨예한 대립이 발생했고, 결국 '한전-우캐-우캐-우캐-우캐-한전-한전-한전' 순으로 지명 순서가 결정되었다.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문성민은 드래프트를 거부하며 독일 리그로 진출하게 된다.[3] 선수 한 명의 영향력이 매우 큰 단체스포츠인 농구의 경우, 똑같이 드래프트 1순위지만 2003년 르브론 제임스같은 역사상 최고를 다투는 선수나 1997년 드래프트의 팀 던컨같이 올NBA퍼스트팀 (베스트5)에 드는 괴물 신인이 있는 반면, 앤서니 베넷처럼 결국 먹튀로 전락해 로스터 자리 하나가 아까워서 방출하는 허접들을 마지못해 1순위로 뽑는 예정된 꽝카드가 있을 수 있다. 실제로 베넷을 뽑은 캐브스는 아무 이득도 보지 못했지만, 던컨을 뽑은 스퍼스는 그 덕에 20년간 강팀으로 군림했다. 전설로 통하는 1984드래프트의 경우, 당장 이들의 첫 시즌에 마이클 조던하킴 올라주원이 동서부 올스타로 선정되어 올스타전에 참가했으며 명예의 전당 멤버가 네명에 이 클래스 출신 선수들이 MVP 트로피를 7개나 챙겨갔다. (조던 5개, 하킴 1개, 찰스 바클리 1개) 반면 실력 면에서 역대 최악으로 꼽히는 2000 클래스의 경우 올스타로 선정된 횟수도 아니고 올스타 출전횟수가 통틀어 3회다. 1순위 케년 마틴, 19순위 자말 매글로어, 43순위 마이클 레드로 모두 2004년에 딱 한번씩 올스타에 뽑혔다. 2000 드래프트는 하도 선수가 없어서 마이크 밀러가 11.9점 4리바운드이란 성적으로 신인왕을 탔지만 84드래프트 신인왕 조던의 성적은 28.2점 6.5리바운드 5.9어시스트에 2위였던 하킴조차 20.6점 11.9리바운드로 비교하기조차 민망한 격차가 있다. 1984년까지 가지 않더라도 르브론 제임스, 드웨인 웨이드, 카멜로 앤서니, 크리스 보쉬 등이 쏟아져나온 2003년 드래프트도 역대급으로 꼽힌다. 이에 따라 지명권의 가치도 천지차이인데, 위에 언급된 베넷의 경우 캐브스가 뽑을 선수가 없어서 지명권을 트레이드하려고 애썼지만 전체1순위 지명권임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팀이 전혀 없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뽑은 것.[4] 미국의 스포츠들은 전술한 루키 스케일로 인해 연차에 따른 연봉이 정해져있기 때문에 아무리 뛰어난 슈퍼루키라고 하더라도 그냥저냥한 10년차 넘어가는 베테랑보다 금방 많은 돈을 받지는 못한다. 역으로 말하면 슈퍼루키들이 꾸준히 롱런하면 정말 어마어마한 돈을 손에 쥘수 있으니 선수들은 다소 불공정해보이는 시스템에서 게을러지지 않고 누구보다도 노력하게 된다.[5] 실제로 NBA는 스타 선수에게 원 소속팀이 다른 팀보다 유리한 계약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 규정이 있다. 일명 designated player rule.[6] 대표적으로 NBA의 1984년 드래프트 1라운드는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입이 쩍 벌어지는 신인들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 대표적으로 아직까지도 농구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릴 정도의 슈퍼스타 마이클 조던[7]을 포함하여 하킴 올라주원, 찰스 바클리, 존 스탁턴 등이 쏟아져 나왔으며, 이 선수들은 현재 전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어 있는 레전드 선수들이다. 그 외에 NFL의 1983년 드래프트 1라운드나 르브론 제임스, 카멜로 앤써니 등이 등장한 2003년 NBA 드래프트가 손꼽히는 대형 드래프트.[7] 하지만 3번픽이었다. 놀랍게도[8] 농구는 신체 조건과 운동 능력이 거의 절대적인 스포츠로 뽑힌다. 반면 신체 조건과 운동 능력의 영향이 보다 적은 야구의 경우, 1라운더조차 메이저로 콜업될 확률이 절반도 안 될 정도.[9] 여담이지만 농구에서 야구와 같은 팜시스템이 정착되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위에 언급한 대로 신체능력이 절대적이다 보니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들은 벤치롤이라도 맡는 것이 보통이지, 경험을 위해 하위리그에서 뛰는 경우는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NBDL(현 D리그)가 출범하고 사실상 D리그와 연계가 된 NBA팀들은 자유롭게 선수이동이 가능하게 된 현 시점에도 신인들을 D리그에 보내 경험을 쌓게 하거나 부상에서 회복 중인 선수를 실전감각을 위해 D리그에서 뛰게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10] 하킴 올라주원, 마이클 조던, 찰스 바클리가 1, 3, 5픽이었고 16픽 존 스탁턴도 있었다. 네 선수 모두 은퇴 후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11] 앨런 아이버슨, 코비 브라이언트, 레이 앨런, 스티브 내쉬 등.[12] 참고로 코비는 13픽, 내쉬는 15픽이었다.[13] 1픽 르브론 제임스, 3픽 카멜로 앤서니, 4픽 크리스 보쉬, 5픽 드웨인 웨이드.[14] 당시는 동서부 컨퍼런스 꼴찌팀들 사이에서 동전 던지기를 통해 1, 2순위를 결정.[15] 현재는 팀 수가 늘어나 14개팀이 로터리에 참여하며, 승률별로 각자 다른 갯수의 탁구공을 넣은 추첨기를 통해 추첨한다. 당연히 꼴찌팀이 가장 많은 탁구공을 넣는다.[16] 그리고 이 제도 덕분에 1993년 드래프트 때 올랜도 매직이 대박을 터뜨렸다. 전 해에 샤킬 오닐(이때는 뒤에서 2위였다.)을 뽑아서 w41l41 로 괜찮은 성적을 보였기에 역으로 드래프트 순위는 꼴지였는데... 그 하나 넣은 탁구공이 그만 1순위에 나온 것이다. 드래프트를 중계하던 앵커조차 Oh my god.. 그리고 올랜도 구단주는 희희낙락.. 그리고 뽑은 이가 크리스 웨버[17] 참고로 이 자동 참가로 지명된 선수들 중 가장 유명하고 위대한 선수는 래리 버드였다. 버드는 1978년 당시 인디애나 주립대에서 3학년 시즌을 갓 마친 상태였지만 인디애나 주립대에 입학하기 전에 이미 인디애나 대학에 입학했다가 적응실패로 자퇴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연차상으로 이미 미국대학에 4년을 뛴 것이 된 셈이었다. 그러나 이 자동 참가의 대상자 대부분은 해외 유망주들이라 대부분의 팀들은 어차피 내년에 드래프트에 참가할 게 뻔한데다가 4학년을 마칠 예정이라 뽑아봤자 뛰지 않을게 뻔한 버드를 지명한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버드의 재능을 탐내던 셀틱스의 단장 레드 아워벡은 이를 간파하고 비교적 낮은 픽인 6번 픽으로 버드를 1978년에 선점했다. 물론 전력보강의 기회를 포기한 대가로 1978-79시즌은 바닥을 헤메어야 했지만 그 덕에 버드란 역대급 선수가 합류한 1979-80시즌엔 단숨에 61승으로 동부 1위이자 우승후보로 뛰어오를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이때는 드래프트가 TV로 중계되지 않던 시절이라(최초 중계는 1984년 드래프트였다) 버드는 자기가 셀틱스에 뽑힌 걸 지인에게 듣고 알았다고...[18] 즉, 드래프트가 2015년 6월 25일에 열린다면, 2015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에 만 22세가 되는 1993년 12월 31일생까지 자동 참가대상이 되는 것이다.[19] 1969년에 샌프란시스코 워리어즈가 데니스 롱을 지명했지만 리그가 이를 무효화했다.[20] 최소연봉은 연차에 따라 달라지는데, 신인 최소연봉은 2014-15시즌 기준 507,336달러이다(한화 약 5억7천5백만 원). 1라운드 지명 인원에게 추천되는 연봉기준은 Rookie scale이라고 하는데, 동시즌 기준 1순위 467만 달러에서 마지막 30순위인 92만7천 달러까지로 나뉜다. 다만 꼭 이 액수로 계약해야되는 것은 아니고, 팀과의 협상 결과에 따라 이 액수의 80~120%까지 받을 수 있다.[21] 2012년 프로배구 승부조작 사건에 가담하여 영구제명당했다.[22] 당시 한국전력도 준프로로 프로무대 참가를 한 마당이라 이로 인해 보강이 시원치 않기에 생긴 문제이다.[23] 게다가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의 창단 당시 드래프트에서 드식 창단 당시와 더불어 경기대학교 3인방의 얼리엔트리와 한국전력의 상황이 개판이라 또 파행이 나올 수 있었지만, 당시를 반면교사 삼아 전체 1픽 지명권을 한국전력에 주고 그 이후 8명을 연달이 지명하는 방식으로 분란을 차단했다.[24] 송병일을 먼저 드림식스로 보낸 다음, 1년 뒤에 이철규를 보내고 지명권을 넘겨받는 형식이었다. 현대캐피탈은 이 지명권으로 최홍석을 지명하려고 했으나 이철규가 이에 반발하고 은퇴하는 바람에 지명권을 돌려주는 대신 박주형을 받았다.[25] 원래 지명권 대신 민경환을 받았지만, 숙소이탈과 드식 복귀를 요구하면서 이를 받아들이는 대신 민경환이 드래프트 당시 수련선수로 입단했기에 3라운드 지명권을 받는 것으로 대체했다.[26] 이걸로 지명한 선수가 고예림이다.[27] 센터 우상조를 지명했다.[28] 레프트 김성민을 지명했다.[29] 2012년도 리그가 종료된 이후부터는 드래프트와 우선지명에 한해 3년부터 5년사이에서 선수와 구단간에 조정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또한 계약금에 대해서도 '계약금 우선지명 선수'와 '자유선발 선수'는 계약금을 설정하도록 되어 있다.[30] 선수가 유스시절 이미 계약한 계약서의 우선협상권을 씹어버리고 자기가 보내고 싶은 구단으로 보낸게 한두번이 아니다. 대표적인 피해팀은 모두가 예상 가능하듯이 포항.[31] 실제 프로 카레이싱팀![32] 왜냐면, 뛰어난 선수들이 자신들끼리만 팀을 미리 짜서 올라오고,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들의 경우는 실력이 부족한 선수들로만 팀을 짜서 올라가기 때문에 이미 팀 간의 밸런스가 매우 벌어져 있다. 따라서 1,2위로 우선순위를 얻은 팀과 7,8순위 등으로 밀린 팀이 경기를 할 경우, 6:0이나 6:1 등의 정규 리그 본선답지 않은 압살경기가 속출하고 있다![33] 흔히 마리오 카트 시리지 또는 카트라이더에서 있다[34] 2018 NFL 드래프트부터는 FOX가 1-3라운드 동시 송출을 함에 따라 공중파에서도 중계된다.[35] 특히나 지리적 여건 때문에 슈퍼볼을 개최하지 못하는 도시들[36] 슬리퍼로는 루이빌 대학교의 라마 잭슨(Lamar Jackson)도 무시못할 전력감이다.[37] 다만 이들에게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널드는 인터셉션 비중이 높을 정도로 무모한 면이있고, 앨런은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있으며(아울러 메이저 컨퍼런스 출신 학교가 아니어서 큰 경기 경험이 전무하다는 약점도 덤으로 듣고있다), 로즌은 대학선수시절 어깨수술과 두번의 뇌진탕 경력이 있어서 '유리몸'이란 혹평이 따르고, 메이필드는 인성문제가 걸려있다.[38] 이번 드래프트에서 대어로 꼽히는 유망주다. 뛰어난 운동신경에 성실하게 훈련에도 임하는 태도로 인해 최상급 인재로 분류되고 있다.[39]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에 지명되었다. 단장인 크리스 발라드가 넬슨에게 전화를 걸어 "부모님께 이사할 필요없다고 말씀드리게"라고 하는 동영상을 볼 수 있는데 넬슨이 수화기 저편에서 "콜츠야, 콜츠에 걸렸어!!"라고 기뻐하는 장면은 덤. 노트르담 대학교 캠퍼스가 있는 사우스벤드는 인디애나폴리스와는 2시간 반거리다. 시카고가 더 가까운건 함정[40] 전문가들은 대부분 샘 다널드나 세이콴 바클리가 1순위로 지명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었던 터였다. 하지만, 베이커 메이필드의 주가도 계속 오르고 있어서 메이필드의 1지명도 유력한 상황이었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쿼터백 최고점을 기록한 샘 다널드가 아닌 메이필드를 지명했다는 사실을 두고두고 까내리는 실정.[41] 다만 조쉬 로젠이 애리조나 카디널스에 지명된 후 가진 TV 인터뷰에서 어그로를 끌었는데 "이전 9개팀들은 큰 실수를 하셨어염. 후회하게 되실거예염"이란 말도 모자라 "풋볼 선수를 해야할 만큼 궁핍한건 아니지만 특별한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란 논지의 코멘트를 날려 제대로 밉상 인증을 찍었다. 이는 자이언츠에 지명된 새이퀀 바클리가 기자회견때 "자신이 구단의 얼굴(상징적인 존재)이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 그건 결과를 내고서야 할 말이다"라고 답한것과 다놀드가 "코치님들께서 바라시는대로 충실하게 임할것"이라고 한 것과 상당한 대조를 이룬다.[42] 대부분 세인츠팬과 미디어는 팀을 떠난 케니 바카로를 대체할 세이프티의 지명을 위해 픽업했다고 예상했다. 그 시점에 top 세이프티 유망주가 남아있었기때문에 더더욱.[43] 일부는 대븐포트가 텍사스 대학 샌안토니오 분교 출신이라서 그렇다고 하는데 오클랜드 레이더스가 버펄로 대학교 출신의 칼릴 맥을 지명하기도 했고 맥은 사실 준수한 플레이로 1라운드감으로 뽑히기도 전에 1라운드감이란 평가를 받은 다 있다.[44] 단적인 예로 1라운드 31순위에서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가 지명한 소니 미첼은 세이콴 바클리 다음으로 버금가는 러닝백 유망주로 지목 받았다.[45] 예전 메이저 리그에서 활약한 짐 애보트와 같은 케이스이다. 단 애보트는 오른손이 없다.[46] 그 문제의 1984년 드래프트때 하킴 올라주원은 전체 1위 지명이 확실했고, 센터보강이 절실했던 2순위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가 누구를 지명해야 되느냐라고 논란이 일었을때 일부 전문가들은 이렇게 답했다. 마이클 조던을 지명해 센터로 써라. 포틀랜드 입장에서는 대부분의 대학스타들이 모두 얼리엔트리를 신청했으나 전체 1번픽이 대놓고 확정이었던 초대형 센터가 대학 4년을 모두 마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그 선수와 하킴을 제외한 최고의 센터를 지명했던 거지만....[47] 앞서 언급된 다르코 밀리시치와 카멜로 앤써니의 경우에도 84년과 거의 똑같은데, 다만 이 땐 2번픽을 가졌던 디트로이트 피스톤즈가 파이널 우승을 노릴법했고 실제로 우승을 차지한 초 강팀이었음에도 트레이드를 잘해서 멤피스 그리즐리스의 2번픽을 가져왔기 때문에 이미 완성된 팀에 굳이 옵션을 하나 더 추가하느니 상대적으로 높이도 낮고 나이도 있는 인사이드진에 유망주를 추가해서 그 선수가 보고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세대교체를 하고자 하는 구단의 의도가 있었다. 물론 망했지만... 2009년 드래프트 전체 2번픽인 멤피스 그리즐리스의 하심 타빗도 당시 잭 랜돌프라는 에이스 파워 포워드와, 마이클 콘리,O.J 메요,루디 게이라는 젊고 유망해보였던 1,2,3번 유망주를 보유했기 때문에 유일한 약점이었던 센터 자리를 보강하기 위해 지명한 프로젝트형 빅맨이었는데 정말 역대 최악의 2픽 수준으로 폭망하고, 3번픽이었던 제임스 하든이 올스타 가드로 성장하면서, 최근엔 팀 사정보고 키우지 말고 그냥 잘하는 놈 뽑아 쓰자는 분위기가 대세.[48] 월튼은 부상으로 얼룩진 커리어만으로도 NBA 역대 최고의 50인에 뽑힌 선수지만, 그가 건강했을때 카림 압둘자바와 대등하게 매치업하는 괴물이었단 걸 생각하면 부상이 조금만 적었어도 훨씬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49] 참고로 래리 버드는 애초에 78년 드래프트에 참가할지, 대학 4학년을 다닐지 선택을 못한 상태여서 다른 팀들이 계속 넘기다가 보스턴 셀틱스가 버드 정도의 재능이라면 당장 합류 안해도 1년 정도 기다릴 수 있다며 그냥 무대뽀로 지명한 케이스다. 버드는 결국 4학년을 마치고 셀틱스에 합류했는데 만약 버드가 드래프트에 참가하겠다고 했다면 78년 1번픽은 버드였을 것이고 4학년을 마치겠다고 했다면 79년 드래프트에서 평생의 라이벌 매직 존슨과 1,2픽을 나눠가졌을 것이다.